자유게시판

이곳은 군민 여러분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게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게재된 내용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건전한 통신문화 정착과 군민의식함양을 위하여 실명으로 운영되며특정인 비방, 광고, 음란물, 유사 또는 반복 게시물 등은 사전 통보없이 삭제됨을 알려드립니다.

※게시판의 건전한 운영을 위하여 "예천군 인터넷 시스템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6조" 에 해당하는 글은 사전예고 없이 삭제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에 의하여 처벌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글 등록시 제목이나 게시내용, 첨부파일등에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사업자등록번호, 통장계좌번호 등)는 차단되오니 기재를 금합니다.

제목자랑2959:명봉사(2)(祝군청.지보초/예천방문878)
작성자장병창 @ 2012.06.26 06:09:02

   예천의 자랑(2959) : 명봉사를 다녀와서(2)(附 예천군청, 22일 양궁 전국대회 동메달...축하합니다/지보초등학교 학생들, 24일 서예 전국대회 우수 성적...축하합니다/예천방문 878)

---

 

  명봉사 경청선원 자적선사 능운탑비(鳴鳳寺境淸禪院慈寂禪師凌雲塔碑) [碑] : 상리면 명봉리 명봉사 경내에 있는 비로, 그 비명(碑銘)은 다음과 같다. 고려국 상주 명봉산 경청선원 자적선사 능운탑 비명과 서문/ 대상(大相) 검교상서(檢校尙書) ㅁㅁㅁㅁㅁㅁㅁㅁㅁ 상주국(上柱國) 최언위(崔彦撝)가 왕명을 받들어 비문을 짓고, 문하승 ㅁ유(ㅁ裕)는 교지에 의하여 고서(古書) 가운데에서 집자(集字 : 歐陽詢體)하고, 문하승(門下僧) 연훈(然訓), 법오(法悟), 심장(心藏) 등이 글자를 새긴다. 허공(虛空)은 형상(形相)이 없고, 불성(佛性)은 생멸(生滅)이 없다. <缺落> 心 <缺落> 이러한 진여(眞如)를 생각하여 모든 실성(實性)을 터득할 수 없으니, 마치 색(色)이 곧 색이 아니고, 공(空) 또한 공이 아닌 것과 같다고 하겠다. 중생이 망녕된 생각이 마치 아지랑이를 보고 물인 줄 오인하는 것이고, 명(名)이란 오직 거짓된 이름일 뿐이니, 흡사 신기루와 같다. 심식(心識)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현상은 모두 말장난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 <缺落> 聖 <缺落> 先覺 <缺落> 之者, 구하는 자는 구할 것이 없음을 구하며, 배우는 사람은 배울 것이 없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유(有)인 물질과 무(無)인 공(空) 속에 진실이 함재(含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령스러운 지혜로 마음을 간직하고 그윽히 마니(摩尼)의 보배를 잘 지켜서 영성반야(靈性般若)에서 <缺落> 묘용(妙用)의 심기(心機)는 <缺落> 法 <缺落> 한 이는 우리 선사 뿐이라 하겠다. 선사의 법휘(法諱)는 홍준(洪俊)이요, 속성은 김씨니, 그 선조는 진한(辰韓)의 무족(茂族)이며 토군(兎郡)의 유명한 집안이었다. 혹은 자궐(紫闕)에서 널리 선행을 하며, 혹은 황문(黃門)에서 보국(輔國)하였다고도 한다. 본래는 <缺落> 요원(瑤源)으로부터 내려오는 별파(別派)이며, 옥수(玉樹)의 분지(分枝)였다. <缺落> 名配在 <缺落> 그 후 오랫동안 번복(藩服)의 귀호(貴豪)이었는데, 지금은 경주 사람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육정(陸正)이고, 아버지는 지유(志儒)이니, 혹은 오천중(五千中)에서 도를 배우고, 혹은 300의 시편을 연구하되, 항상 뜻을 물으면서 토론하였으니 문학을 좋아하며 소중히 여겼다. <缺落> 抄 <缺落> 戒, 어느 날 어머니는 비몽사몽(非夢似夢) 간에 그윽한 영감을 받은 태몽(胎夢)을 꾸었고, 그로부터 지혜롭고 복덕있는 아들을 낳기 위하여 오신채(五辛菜)와 고기 등은 모두 끊고, 날이 갈수록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였다. 822년 3월 13일에 탄생하였다. 선사는 날 때부터 특이한 자태를 지녔으며, 어려서도 어린아이답지 않았으니 유학(幼學)의 나이에 이르러 책 상자를 짊어지고 학당을 찾아가기도 하였다. 선사는 어려서부터 성격이 온순하고 공손하여 가풍(家風)을 잘 이었고, 항상 자신의 내면을 잘 극기하여 조덕(祖德)을 닦았다. 뿐 아니라 재주가 뛰어나 글을 읽음에 다섯 줄을 한꺼번에 읽어 내려갔으니, 천재라는 소문이 이려(里閭)에 떨쳤다. 일찍부터 불경을 열람하였고, 유교 또한 정통하였다. <缺落> 하늘을 날고, 바다의 넓음을 뛰어넘을 큰 포부를 가졌으니, 숲 속을 기어다니는 개미가 어찌 이 웅지(雄志)를 짐작할 수 있겠는가. 爭 <缺落> 於<缺落> 章之 <缺落> 其大小 <缺落> 이러한 뜻을 가졌기에 <缺落> 출가하여 입산하려는 생각뿐이었다. 부모는 아들의 출가하려는 뜻을 듣고는 애정을 억누르며 허락하였다. 출가의 길을 떠나 동쪽으로 가는 도중 태령(太嶺)을 지나 흑암선원(黑巖禪院)에 이르러 진경 대사(眞鏡大師)를 친히 뵙게 되니, 스님은 마치 빙자(氷恣)처럼 아름답고, 옥체(玉體)처럼 맑았다. 예배를 드리고, 마음에 뜻한 바를 아뢰었다. “스님은 사계(沙界)의 제항(梯航)이며, 법문(法門)의 영수(領袖)이시니 저를 받아들여 득도(得道)하게 하여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그리하여 도수(道樹)의 밑에 서게 되었고, 마침내 선림(禪林)의 보배를 얻게 되었다. 어느 날 진경 대사가 스님에게 이르기를, “인도(天竺)에서 심법(心法)을 전수한 조사(祖師)가 많았으니 제27대 반야다라(般若多羅)의 법을 전해 받은 달마 대사는 중국으로 와서 <缺落> 선종의 초조(初祖)가 되었으며, 그 후 곧 동토 선종의 제6조인 조계(曹溪) 혜능에 이르렀다. 이어 조사(祖師)와 조사(祖師)가 서로 전수하여 백암(百巖)에 이르게 되었다. 그 때 대사가 당 나라로 유학 가서 백암의 법을 받아 귀국하여 봉림사(鳳林寺, 경남 창원군 선남면 봉림리)를 창건하고 선풍을 크게 진작하였는데, 지금은 비록 그 법통이 단절되었지만, 그 도는 더욱 훌륭하였다. 이제 내가 지금 너희들과 함께 혜목(慧目)의 종지(宗旨)를 천양하여 봉림가풍(鳳林家風)을 영원히 무성하게 하며 장래의 후생들에게 보여 주고자 한다.”라고 하였다. 878년 명주(溟州) 입량 율사(入良律師)에게서 비악계를 받고, 그 후 각 사찰을 참배하면서 두루 명산과 승지(勝地)를 탐사하고 마하연(摩詞衍)을 탐구하고 많은 선지석을 친견하였다. 그 후 <缺落> 경명왕(景明王)이 봉림 대사는 법덕(法德)과 교덕(敎德)이 높을 뿐 아니라 현기(玄機)가 넓고 깊다 하여 특별히 단조(丹詔)를 보내서 경화(京華)로 초빙하였다. 선사는 서울로 가는 길에 여러 사찰을 거쳐 동천사(東泉寺)에서 잠깐 주석하다가 북궐(北闕)로 나아갔다. 此 <缺落> 山築 <缺落> 왕은 국사(國師)를 맞이하는 예로써 정성껏 낭열(囊列)을 행하였으니, 어찌 신하를 대하는 태도를 가졌겠는가. 그 후 예천에 이르러 한 단월(檀越)을 만나니 그는 정광(正匡)이란 사람이다. <缺落> 東瞻 <缺落>  반드시 신인(神人)이 있어 나의 도성(都城)에 들어올 것이므로 먼저 아름다운 상서를 나타냈다 하고, 교외(郊外)에서 영접할 때 선사에게 경례하며 현궐(玄闕)에 머물게 하고, 자신의 공을 치하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선사가 몇 년 간 영헌(靈軒)에 주석(住錫)할 때에는 마치 용이 앉아 비늘을 감추는 듯하며, 산중으로 돌아와 연오(蓮塢)에서 연좌(宴坐)함에는 흡사 학이 울 때 날개를 아래로 드리우는 것과 같았다. 바야흐로 하늘에까지 들렸으니, 어찌 상께서 선사가 선교(宣敎)의 7세손이요, 법응(法膺)의 제자임을 등지 아니했겠는가. 높이 선유 방편(善誘方便)을 열고 널리 미묘법문(微妙法門)을 설하니 불교를 배우려는 무리가 시시로 운집하여 큰 회상을 이루었다. 이 때 왕이 보소(寶所)로 특사를 보내어 선중(禪衆)을 반산(頒散)하고 봉성(鳳城)으로 옮겨 오시라고 초빙하였다. 선사는 앞을 내다보는 고견으로 피차(彼此)를 생각하고, 조사의 덕을 지키면서 앙례(仰禮)의 청에 감사하며 서울을 향해 길을 떠났다. 가는 도중 등(燈)을 보면서 탑(塔)을 참배하고 마음으로 그윽히 부촉(付囑)을 생각하여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경화(京華)에 도착하였다. <缺落> 임금이 스님의 봉의(鳳儀)를 바라보고는 귀의(歸依)할 원심(願心)이 더욱 간절하였으며, 스님의 용보(龍步)를 보고는 기꺼이 위로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졌다. 다음 날 옥당(玉堂)으로 맞아 들여 법회를 열고 법상(法床)에 올라앉으시니, 임금이 스님의 선덕(禪德)을 흠양하여 다른 위인들보다 10배나 더 영특함을 깨닫고 도풍(道風)을 이어 받들었으며, 친히 삼귀의(三歸依)의 예를 폈으며, 왕은 스님의 법문으로 듣고 이제야 마음이 열리게 된 것을 한탄하면서 인연이 소중함을 절감하였다. 그 후 <缺落> 궁사(宮使)를 보내어 스님을 초빙하여 귀산선원(龜山禪院)에 주지하도록 청하였다. 이 때 그 곳으로 가서 악개(咢盖)를 멈추고 회상(會上)을 개설(開設)하니, 배우려는 사람이 사방으로부터 모여들어 촘촘하기가 도마(稻麻)와 같고, 찾아오는 사람이 신선처럼 달려와서 줄을 서서 오고가니 도리성혜(桃李成蹊)와 같았다. 그리하여 미혹한 것으로부터 반성하게 하며, 빈 손으로 가서는 가득히 얻어서 돌아가게 하였다. 칭송하는 소리는 십방(十方)을 떨쳤으며, 고명한 이름은 천 년에 빛난다. 이는 당 나라의 장ㅁ(章ㅁ)으로 더불어 <缺落> 가히 동년(同年)으로 비교하여 말할 수 없다. 이 곳에서 연좌(宴坐)하는 동안 5년이 지났다. 이후 유종(遊宗)할 때가 임박하였으니, 왕의 <缺落> 911년 10월 1일 귀산선원 법당에서 입적(入寂)하였다. 돌아가신 모습은 살아있는 것 같았고, 과일 같은 입술은 마치 말을 하고 있는 듯 하였다. 육신을 던져 버리는 이치가 어찌 한결 같으랴. 어떤 스님은 나무 가지를 휘어잡고 열반하였고, 혹은 수도 중 그대로 입정(入定)한 듯 입적하기도 하고, 혹은 매미가 허물을 벗 듯 좌탈입망(坐脫立亡)하기도 하며, 혹은 섶을 쌓아 놓고 스스로 화장(火葬)을 하는 선사도 있었다. 선사의 세속 나이는 58세요, 승랍(僧臘)은 46이었다. 그 달 6일에 문인(門人) 등이 영구를 메고 명봉사(鳴鳳寺)의 북쪽 산 기슭에 임시로 가장하였다. 장사하는 날 조객인 사서(士庶)는 개울을 가득히 메웠고, 열반의 향내는 산골짜기에 넘쳐흘렀다. 하천은 슬피 울었고, 구름과 해는 수심에 잠겼으며, 임금도 항상 스님의 현종(玄宗)을 앙모하다가 갑작스런 열반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애통해 마지 아니하였으며, 시호(諡號)를 자적선사(慈寂禪師), 탑명(塔名)을 능운지탑(凌雲之塔)이라고 추증하였다. 선사의 공은 억겁을 열고 그 운(運)은 천 년으로 흘러가서 순정(淳精)에 응하여 구슬을 꿰어놓은 것과 같으니 함령(含靈)을 깨우쳐서 승경(勝境)에 출생하게 하며, 유진(遺塵)의 과일은 그 법을 베풀지 아니함이 없고, 망념(妄念)의 꽃은 같은 중생에게 그 색을 나타내지 않음이 없게 하였다. 움직이는 곳에 있으나 항상 고요하며, 또한 고요한 곳에 있으나 항상 움직여 그 묘용(妙用)은 가만히 쉬지 않았다. 그 법문을 듣는 자는 바람에 먼지를 말끔히 날려 버리는 것과 같았고, 깨달음을 얻는 사람은 마치 혁혁한 햇빛이 캄캄한 어두움을 쫓아 버리는 것과 다름이 없었으니, 선림(禪林)의 기재(杞梓)이며 법역(法域)의 동량(棟樑)이요, 奈 <缺落> 등(等)은 화성(華誠)과 자종(慈宗)의 장참(墻塹)이 되었고, 군생(群生)들의 자부(慈父)이어서 병을 치료하는 의왕(醫王)과 같다 하겠다. <缺落> 법을 전해 받은 제자인 작린(綽麟), 승담(承湛) 등 100여 인은 모두 마음이 찢어지는 듯 생전에 스님과 대하여 말씀드리던 일을 생각하였으며, 선덕을 추모하여 법은을 갚고자 하였다. 其親 <缺落> 丞歆魯 官居宰輔 職관宮闈 <缺落> 왕씨(王氏)의 운기(雲氣)이며 奉竺 <缺落>의 별파(別派)인 재가(在家) 제자 상부(尙父) 김공선소(金公善紹)와 대상홍공(大相洪公)이 있었으니 인자(仁慈) <缺落> 함이 구슬과 같이 맑고, 정열은 쇠를 끊을 정도로 강직하였다. 이러한 재가(在家) 제자들이 함께 스님의 선화(禪化)에 힘입어 각각 불후(不朽)의 인연을 가졌고, 모두 도풍의 감화를 받아 한량없는 공덕을 닦았으니 법역의 주석이며, 겸하여 국가의 금탕(金湯)과 같이 튼튼한 국가의 아성(牙城)들이라 할 수 있었다. 하신(下臣) 언위(彦撝)는 학해의 미파(微派)이며 사림의 말품(末品)이면서 외람되게 봉조(鳳詔)를 받들어 비문을 짓게 되었다. 명(銘)하여 가로되/ 축건(竺乾)에서 발상(發祥)한 우리의 불교가/ 제일조인 가섭의 법통을 이어받았네!/ 멀고도 먼 서역 땅인 고향을 떠나/ 구법승(求法僧)의 원으로 동토(東土)에 전했네./ 빛나는 정법복장(正法服藏) 법통을 이어받고/ 서건(西乾)의 불심(佛心)과 동토(東土)의 제자(弟子)들이/ 이심전심 그 마음 가을 못 달빛처럼/ 청명한 여름날 구름 흘러간 산정(山頂)에/ 우뚝한 큰 나무 하늘을 찌르는 듯/ 봉림(鳳林)의 뼈통을 현궐(玄闕)에 걸어놓고/ 한수의 남상(濫觴)처럼 흐르고 또 흘러/ 도도하게 흐르는 청정한 그 법수(法水)/ 애애(靄靄)하고 무성한 선림(禪林)의 정간(貞幹)들/ 자재(自在)히 흐르고 깊고 넓은 선하(禪河)여!/ 굳건한 의지로 심원을 조복받고/ 자비는 깊고 넓어 미물도 구제했네!/ 선사의 간곡한 부촉을 이어받아/ 위법망구(爲法忘軀) 대원(大願)으로 정진하였네!/ 수행(修行)은 높고 깊어 헤아릴 수 없어/ 현성(賢聖)을 초월한 독보적인 큰 스님!/ 자비사신 그 원력(願力)은 바다와 같도/ 천진(天眞)으로 잃지 않고 잘 보호하였네!/ 이 세상 어느 것을 견고하다 말하리!/ 공자도 인생을 서천(逝川) 같다고 했거늘!/ 941년 10월 27일 세움.

 

  명봉사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近代的 吏讀 公文書의 標本인 鳴鳳寺 鏡淸禪院 慈寂禪師 凌雲塔碑文) [放送原稿] : 예천군 상리면 명봉리 명봉사 경내에 있는 비입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이 비는 고려 태조 왕건이 이곳에 머물고 있던 자적 선사가 입적하게 되자, 태조 24년 즉 서기 941년에 세우도록 한 것입니다./ 비문에 의하면, 이 비를 세우는데 힘쓴 이는 태조 왕건은 물론, 혜윤 등의 국통 승려, 수문 등의 제자 승려, 신자들, 원길 등의 예천군청 관리, 길훤 등의 그 곳과 그 주변의 면장들, 그리고 기술자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당시 정계와 종교계의 인물들을 알 수 있고, 경북 북부 지역에서는 제일 오래된 비이기도 하지만, 이 비의 중요성은 비문 중에 이두가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경주 남산 신성비문(591), 신라 민정문서(755)에도 이두가 남아있지만, 이비의 이두는 신라의 이두와는 달리 고려 초 중앙 관서인 도평성에서 신자들에게 내린 공문서였다는 것입니다. 그 양식이 이조 말까지 우리나라 관공서 공문서에서 사용한 근대적 이두체제를 갖춘 최초의 것이라는데 큰 의의가 있습니다./ 또 고려 초의 이두 사용의 표본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크게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즉 이 비에 쓰인 표기법이나 어법은 신라시대의 이두에서 볼 수 없었던 다양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비문은 국어학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고, 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것입니다./ 40초 간 안동 MBC Radio에서 노은규 아나운서의 소개로 방송된다고 하여 이상의 글을 다시 다음과 같이 고쳤다./ 예천군 상리면 명봉사 경내에 '경청선원 자적선사 능운탑비'가 있습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이 비는 고려 태조 왕건이 서기 941년에 세우도록 한 것입니다./ 비문에 의하면, 이 비를 세우는데 힘쓴 당시 인물들을 알 수 있고, 경북 북부 지역에서는 오래된 비 중의 하나이지만, 이 비의 중요성은 비문 중에 이두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비의 이두는 신라의 이두와는 달리 이조 말까지 우리 나라 관공서 공문서에서 사용한 이두 체제를 갖춘 최초의 표본이라는데 큰 의의가 있습니다./ 이상의 개심사지오층석탑,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 등 두 원고는 2001년 6월 15일부터 동년 8월까지 안동MBC-Radio에서 매일 몇 차례씩 방송되었다.(張炳昌 2001.6.11 作成 放送原稿文)

 

  명봉사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鳴鳳寺境淸禪院慈寂禪師凌雲塔碑) [記事] : 시대   고려 / 연대   941년(태조24년) / 유형/재질   비문 / 돌  / 문화재지정   시도지정문화재 - 3호(경상북도)  / 크기   세로 175.7cm, 가로 93.9cm, 두께 30.3cm / 출토지   명봉사 경상북도 예천군 상리면 명봉리 산 1-1  / 소재지   (한국)명봉사-경상북도 예천군 상리면 명봉리 산 1-1 / 서체   해서(楷書) / 찬자/서자/각자    최언위(崔彦?) / 승(僧) □유(□裕) / 승(僧) 연훈(然訓), 승(僧) 법오(法悟), 승(僧) 심장(心藏)  / 명봉사(鳴鳳寺)에 있는 신라말 고려초의 선사 자적선사 홍준[慈寂禪師 弘俊, 882(헌강왕 8)~939(태조 22)]의 비이다. 귀부와 이수를 갖춘 전형적인 비로서 비신은 화강암으로 마모가 심해 알아볼 수 없는 글자가 다소 있다. 여말선초의 대표적 문인인 최언위(崔彦?)가 지은 것으로 추정하며, 문하 제자인 □유(□裕)가 고서에서 구양순체의 해서를 집자하여 대사 입적 2년 후인 941년(태조 24)에 세웠다. 비문은 30행에 1행 59자로 구성되었다. 비문은 자적선사가 구선선문의 하나인 봉림산문의 진경대사에게 출가하여 경명왕도 만나고 예천 지방세력의 후원도 받았으며 태조를 만나 경청선원(境淸禪院)을 조성하다 입적한 것을 기술하였다. 음기에 국가에서 선원 명칭을 윤허받은 것을 인용한 광평성 문서인 첩(帖)이 실려 있는데 여기에 이두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고려공문서와 이두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마지막에 국통과 삼강직(三綱職)과 재지 유력자들을 망라한 재자제자가 수록되어 고려초 지방세력 파악에도 중요한 자료이다.  / (단행본)黃壽永, 1999, 『黃壽永全集 4(금석유문)』, 혜안/ (단행본)秦弘燮, 1997, 『신라․고려시대 미술문화』, 일지사/ (단행본)한국역사연구회, 1996, 『譯註 羅末麗初金石文』上下, 혜안 / (논문)南豊鉉, 1994, 「高麗初期의 貼文과 그 吏讀에 대하여-醴泉鳳岩寺의 慈寂禪師의 陰記의 解讀-」『古文書硏究』5, 한국고문서학회/ (단행본)李智冠, 1994, 『校勘譯註 歷代高僧碑文』【高麗篇1】, 伽山文庫 / (단행본)許興植, 1984, 『韓國金石全文』中世上, 亞細亞文化社/ (논문)蔡尙植, 1982, 「淨土寺址 法鏡大師碑 陰記의 分析-高麗初 地方社會와 禪門의 構造와 관련하여-」『韓國史硏究』36/ (논문)金光洙, 1979, 「羅末麗初의 豪族과 官班」『韓國史硏究』23/ (논문)南豊鉉, 1976, 「高麗初期의 貼文(慈寂禪師凌雲塔碑陰)과 吏讀」『國語國文學』72-73/ (단행본)黃壽永, 1976, 『韓國金石遺文』, 一志社 ; 1994, 復刊 ; 1999, 『金石遺文 黃壽永全集4』, 혜안(韓國金石文綜合映像情報시스템 2007)

 

  명봉사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 : 재경예천대창중.고등학교 동문회cafe/.daum.net/ “여름휴가 물 맑고 산수 좋은 예천으로 놀러 오세요 ~”/ 지난달, 2011년 7월 25일 (월)/ ‘문종대왕 태실비’와 이두문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는 고려 태조 24년(941)에 세운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가 있다. 이외도 대웅전과 산신각, 부도, 5층석탑 등 귀중한 유적이 많다..../ cafe.daum.net/seouldaechong(daum 2011)

 

  명봉사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 : 소백산 명봉사(예천)/ 3년전, 2008년 5월 5일/ 미루어, 영조 11년(1735)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숭정기원후일백팔년을묘구얼이십오일建 ☆명봉사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유형문화재 제3호) 비의 전체 높이 2.91m, 좌대높이 0.52m, 비신높이.../ cafe.daum.net/seouldaechong(daum 2011)

 

  명봉사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 : 상리면 = 명봉사/ 5년전, 2006년 12월 29일/ < 명봉사> 소백산맥의 심산유곡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라 헌강왕 원년(875)에 두운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로 절의 동북쪽에는 고려 태조의 명으로 세운 자적선사능운탑비가 있어 고려시대에 국가적.../ cafe.daum.net/seouldaechong(daum 2011)

 

  명봉사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 : 예천신문cafe/ 명봉사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자료=예천군)/ 작년, 2010년 4월 2일/ 명봉사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유형문화재 제3호 1972.12.29 지정) 소재지 : 예천군 상리면 명봉리 산1-1 소유자 : 명봉사 (관리자:명봉사) 자세한 설명 화강석으로 만든 이 비는 전체 높이 2.../ cafe.daum.net/ycnews365(daum 2011)

 

  명봉사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 : 명봉사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자료=예천군)/ 작년, 2010년 4월 2일/ 명봉사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유형문화재 제3호 1972.12.29 지정) 소재지 : 예천군 상리면 명봉리 산1-1 소유자 : 명봉사 (관리자:명봉사)...(941)에 건립된 이 비석은 자적선사의 부도탑비이다. 대사의 속성은.../ cafe.daum.net/ycnews365(daum 2011)

 

  명봉사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 : 경북 예천 명봉사 문종대왕태실비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 작년, 2010년 2월 21일/ 명봉사 문종대왕 태실비 경청선원 자적선사능운탑비/ cafe.daum.net/jungmanroom/E... 상구보리 하화중생(daum 2011)

 

  명봉사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 : 예천 보물지정 예고된 목조아미타여래조상과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 2년전, 2009년 12월 31일/ ...잘 보여주고 있는 자료이다. 명봉사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유형문화재 제3호 1972.12.29 지정) 소재지 : 예천군 상리면 명봉리 산1-1 소유자 : 명봉사 (관리자:명봉사) 자세한설명 화강석으로 만든 이 비는.../ cafe.daum.net/kjdyedong/LTF... 예천동부초등학교 제24회 동창회(daum 2011)

 

  명봉사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 : 명봉사문종대왕태실비 및 경천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 3년전, 2008년 12월 31일/ *요약설명 경상북도 예천군 명봉사(鳴鳳寺)에 있는 명봉사경청선원자적선사릉운탑비(鳴鳳寺境淸禪院慈寂禪師凌雲塔碑). 자적선사(慈寂禪師, 882~939)의 인격과 공적을.../ cafe.daum.net/... 소백산 내원암 [국내 제2 지장보궁](daum 2011)

 

  명봉사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 : 소백산 명봉사(예천)/ 2년전, 2009년 1월 17일/ ☆명봉사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유형문화재 제3호) 비의 전체 높이 2.91m, 좌대높이 0.52m, 비신높이 1.9m, 폭 0.96m, 두께 0.20m. 고려 태조 24년(941)에 건립된 이 비석은 자적선사의 .../ cafe.daum.net/sangri33/Bdv8... 상리초등33회(daum 2011)

 

  명봉사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 : 경북 예천 소백산 명봉사/ 작년, 2010년 2월 15일/ 이두문자로 된 공문을 새긴 것으로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가 있다. 신축 중인 명봉사 일주문 명봉사 입구 명봉사 무량수전 가는 길 명봉사에서 바라다본 전경 명봉사 요사 명봉사 전경 명봉사 약사전내 약사여래불.../ cafe.daum.net/jungmanroom/B... 상구보리 하화중생(daum 2011)

 

  명봉사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 : 문경 대승사 아마타불 등 불교문화재 대거 보물 지정 ㅡ불교포커스/ 작년, 2010년 2월 25일/ ...1권1축(고려. 11세기) ▲성주 심원사 길흉축월횡간 목판 1점(1219년) ▲예천 명봉사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941년) 등 대구ㆍ경북 지역 중요 성보문화재가 보물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이와 함께 서울 개운사.../ cafe.daum.net/indelamang/an... 불교인드라망(daum 2011)

 

---

 

  *예천군청, 22일 양궁 전국대회 동메달...축하합니다.

 

  예천군청 실업양궁팀(醴泉郡廳 女子 洋弓팀 銅메달) [記事] : 대구 중구청 남자 양궁팀(감독 김덕용)이 2012년 6월 22일 막을 내린 ‘제29회 회장기 전국대학실업양궁대회’ 단체전 우승을 거머쥐었다. 김원섭, 홍성칠, 진성엽, 임하성 등 4명으로 구성된 중구청 양궁팀은 지난 21일 대구 율하체육공원에서 열린 대회 남자 일반부 단체전 결승에서 216점을 합작하며 214점을 쏜 인천 계양구청팀을 두 점차로 제치고 극적인 승리를 가져왔다. 16강에서 청주시청(226-222), 8강에서 현대제철(223-218)을 누르고 4강에 진출한 중구청은 준결승 상대인 코오롱을 228-227로 한점차로 누르고 결승에 올랐었다. 한편 여자대학부 결승에 올랐던 계명대(강민진ㆍ하나리ㆍ박새얀ㆍ유장미)는 경희대에 198-219로 패하며 아쉬운 준우승을 차지했고, 예선 1위를 차지했던 계명대 남자팀(진재왕ㆍ이진식ㆍ박재영ㆍ윤영웅)은 준결승에서 한체대에 패한 뒤 3ㆍ4위전에서도 배재대에 1점 뒤지며 4위에 머물렀다. 또 여자일반부 단체전에서는 예천군청 양궁팀(장진희ㆍ윤옥희ㆍ김현진ㆍ이다빈)이 3ㆍ4위전에서 광주시청을 219-214로 눌러 동메달을 차지했다.(이동률 記者 이정우 記者 大邱日報 2012.6.25)

 

---

 

  *지보초등학교 학생들, 24일 서예 전국대회 우수 성적...축하합니다.

 

  지보초등학교(知保初, 白日場 및 書畵大展에서 優秀한 成績으로 入賞 : 書藝部門 慶北道知事賞 5學年 정민규 學生) [記事] : 지보초등학교(교장 윤희정)는 한국청소년신문사가 개최한 제11회 전국 학생, 일반 백일장 및 서화대전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하였다. 한국청소년신문사 주최로 자연환경 보존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자연친화적인 인식을 제고하여 자연보호 정서를 심어주기 위해 운영된 이번 대회에서 총 24명의 학생이 입상하는 성과를 올렸다. 전국의 초, 중, 고등학생 및 일반인이 참가한 가운데 실시된 이번 대회에 본교 학생들은 서예, 운문, 산문, 미술, 독후감 분야에 응모하였으며 서예부분에서 5학년 정민규 학생이 경상북도지상장상을, 6학년 이민영 학생이 경상북도교육감상을 받음으로써 서예 실력의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시상은 2012년 6월 24일 대구교육대학교에서 이루어졌으며 입상자 명단은 아래와 같다. △ 서예부문 경상북도지사장 5학년 정민규 △경상북도교육감 6학년 이민영 △최우수 5학년 정희산 △우수 6학년 권민지 △장려 6학년 이윤아(醴泉뉴스 2012년 06월 25일)

 

---

 

  @예천방문 878

 

  명봉사계곡(한여름에도 뼛속까지 시린 물줄기…心身까지 ‘淨化’ : 우리故庄 避暑地 - 醴泉 鳴鳳寺溪谷) [記事] : 소백산 백운봉 아래 예천 명봉계곡은 한여름 삼복더위 속에서도 서늘한 바람이 옷속을 스며들며 한기를 느낄 정도로 여름철 피서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예천군내 최고의 피서지이다. 소백산 명봉사 계곡은 울창한 숲과 맑디맑은 계곡물이 어우러진 자연 그대로의 산수와 절경으로 예천군민은 물론 타지에서도 여름철 예천을 찿는 피서객이면 누구나 한번은 들리는 곳으로 피서철에는 발디딜틈조차 쉽게 찿기 어렵다. 특히 명봉사 계곡을 찿는 사람들은 우측 편으로 계속 이어진 계곡을 따라 즐비하게 늘어 선 아주 오래된 소나무, 전나무, 느티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서있는 모습만 봐도 모든 스트레스는 물론 더위가 날아가는 듯 하다고 탄성을 자아낸다. 계곡 물밑이 거울처럼 그대로 비쳐지는 맑은 물에 발을 담그는 순간 처음 온 사람들은 한여름에도 발이 시려워 10분 이상 발을 담그고 있기가 어렵다. 또한 명봉계곡은 사찰 입구에 자리를 잡고 있으나 계곡 길이가 길어 유일하게 지역에서 이곳을 찿는 피서객들에게 고기를 구워 먹는 일이 허락돼, 가족단위 피서객들로 늘 붐빈다, 이로 인해 한여름 철에는 이곳에 자리를 잡기 위해 새벽같이 사람들이 몰리기도 할 뿐 아니라 특별한 볼거리나 위락 시설이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 며칠씩 텐트를 치고 아예 피서 휴가를 이곳에서 보내는 이들도 늘고 있다. 한때 예천군에서는 이곳을 지역의 피서지로 개발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으나 사찰 입구인데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 훨씬 좋다는 지역주민들의 여론에 따라 아직까지 인공적인 시설물이 전혀 없는 천혜의 경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여름 피서를 다년 온 뒤 휴가 후유증으로 오히려 몸살을 앓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이와같은 걱정을 털고 글자 그대로 더위를 피해 가족들과 함께 모처럼 오손도손 모여 앉아 일상의 피로를 풀고 싶은 휴가 계획을 세운 피서객 이라면 예천군의 명봉계곡을 꼭 권하고 싶다. 더욱이 영주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도력으로 종이 봉(鳳 혹은 鶴)을 만들어 날렸더니 봉황은 높이 날아 부석사에서 200여 리나 떨어져 있는 학가산에 내려앉아 알을 까니 이곳에 절을 지었다는 설화를 안고 있는 천년 고찰 명봉사를 돌아보노라면 심신마저 정화된 듯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명봉사에는 문종대왕(文宗大王) 태실비(胎室碑)가 태를 묻은 곳은 매우 신성시하여 일반인의 출입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또 산을 보호하는 당시의 풍습 그대로 울창한 산림 속에서 천년 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하다. 유난히 더울 것으로 예보되고 있는 올 여름 더위를 피해 예천군 명봉계곡에서 산새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오케스트라 음률처럼 흐르는 계곡의 물소릴를 들으며 더위를 피해 가면 최고의 피서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명봉계곡은 경북 예천군 상리면 명봉리 501번지에 있으며, 예천읍에서 단양으로 넘어가는 927번 지방도를 따라 승용차로 약 25분 정도 가면 있다.(권용갑 記者 大邱日報 2012-06-24 19:32)

 

  예천진호국제양궁장(第9回 慶北道知事旗 全國 男女 初·中學校 洋弓大會(6月29日~7月1日) 準備 한창..) [記事] : 예천군이 오는(2012년) 6월 29일부터 7월 1일까지 3일간 예천진호국제양궁장에서 열리는 제9회 경상북도지사기 전국 남여 초·중학교 양궁대회를 앞두고 대회 준비에 여념이 없다. 이번 대회는 전국 초등 32팀, 중등 42팀 등 총 74개팀 초.중학교 양궁선수 274명이 참가하여 학교의 명예를 걸고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펼친다. 올해 9회째를 맞는 경상북도지사기 전국 남여 초·중학교 양궁대회는 그동안 국내 꿈나무 발굴의 장으로 자리매김하여 왔으며, 대회 때 마다 우수한 기록들이 쏟아져 한국 양궁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에 예천군은 참가선수들이 최상의 조건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양궁장 제초작업과 주변 환경정비 및 각종 시설물 점검 등 대회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또한 매년 양궁체험객이 늘어남에 따라 편의시설인 야외화장실을 보수하고, 경기장 주변 휀스 철거는 물론 주차선 및 주차장을 도색함으로써 양궁장을 찾는 관광객들의 불편해소를 위해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준비상황을 들러본 이현준 군수는 "예천진호국제양궁장이 매년 많은 양궁대회를 개최하면서 지역경기활성화에 크게 기여를 하고 있는 만큼 대회 참가선수단의 불편 최소화에 노력해 줄 것"을 당부했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2-06-25 오전 9:04:01)

 

 

 

본 페이지의 관리부서는 홍보소통과전산정보팀(☎ 054-650-6073)입니다.

최종수정일2019.02.12

페이지만족도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성에 만족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