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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2982) : 용궁초등학교(11)(附예천군, 지방예산효율화, 도 우수상 수상...축하합니다/대창고등학교 관악부, 오케스트라 도 운영학교로 지정...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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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형('正直과 信賴로 顧客滿足 追究' : (株)第一발파, (株)태산建設 이길형 代表理事) [記事] : 최근 국내외 전반적인 침체에도 불구하고 지역 건설업을 선도하는 기업이 있다. 바로 (주)제일발파, (주)태산건설이다. 이길형 대표이사는 문경광업소 대성탄좌에서 10여년 근무하면서 실무를 배우고 터득한 기술로 (주)제일발파와 (주)태산건설을 설립했다. 고객이 모든 사업의 기반ꡑ이라는 생각으로 갈수록 변해가는 고객의 욕구와 취향에 대처하는 건축물을 제공함으로써 고객과 함께 하는 것을 경영이념으로 삼고 있다.ꡒ아직까지, 전반적으로 경기가 좋지 않지만 경영인이 전문적이 가치관과 정직함을 지닌다면, 이것은 어려움이라기보다도 또 다른 기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희 (주)제일발파, (주)태산건설은 겉만 화려한 공사보다는 신뢰받을 수 있는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발파에서 토공, 건물을 짓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ꡓ 이길형 대표이사의 회사 운영방침과 경영철학에서 믿음이 느껴진다. 현재 공사의 시공 유지관리 만큼 최고를 자부하며 지역에서 손꼽을 만한 수주 능력으로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이 대표이사는 문경 대성탄좌에서 화약관리 1급기사 자격증을 받았을 만큼 원칙에 충실하고 건설인들의 모범이 되고 있다. 사리에 벗어나는 사업의 진행과 시공은 철저히 배제하고 있으며 사업의 자존심을 지켜오고 있다. (주)제일발파는 16년 전에 창립하여 막힌 터널뚫기, 도로, 아파트 터, 산의 바위를 자갈로 만드는(석산) 토석 채취 등 폭파하는 사업을 주로 한다. 울산 현대건설(중공업) 발파공사, 목포 삼호조선소 발파공사, 울산 삼호지구 발파공사, 경남 덕어온천 개발공사 발파, 경북CC골프장 발파 공사 등을 하였다. 현재 대구 쌍용아파트 터파기 공사, 죽곡아파트 터파기 발파공사, 내륙간 고속도로(김천-화원 ․LG건설구간) 발파 공사를 하고 있다. (주)태산건설은 5년 전에 창립했다. 도로나 건설공사 터닦기, 건물골조 공사를 하는 회사다. 현풍 수해복구 옹벽(벽쌓기)공사, 운문사 유치원 공사(토건), 경주 냉동창고 토건 골조 공사를 하였고 상주 석산공사(산속에 묻힌 큰 바위를 자갈로 만드는) 추진 중에 있으며, 다른 사업도 추진 중에 있다. 이길형 대표이사는 용궁면 무이리 태생이다. 용궁초등, 용궁중, 문경종고를 졸업했다. 문경광업소 대성탄좌에서 10여 년간 근무하면서 실무와 경영철학을 익혔다. 무한경쟁시대로 불리는 21세기. 무한한 자부심을 갖고 믿을 수 있는 공사를 해오면서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 (주)제일발파, (주)태산건설. 시공업체들에게 신뢰를 받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급격한 변화에 발빠르게 움직이며 야심찬 이길형 대표이사의 열정과 직원들의 왕성한 활동력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이 대표이사는 고향에 계신 아버지 이병갑 씨와 어머니 남병임 씨를 자주 찾아뵙고 효자노릇을 하고 있다는 주위의 귀띔이다.(醴泉新聞 2007년 03월 22일 16:00:16)
이동춘(李東春) : 용궁초등 졸업, 점촌초등 교장을 지냈다.
이두호(李斗頀) : 1937- , 용궁면 향석리 출신, 호는 숭민(崇民), 본관은 경주, 중농(重農)의 한 농가에서 6남매 중 장남으로 자라 용궁초등(39회), 예천중(3회), 경북사대부고, 64년 서울대 정치과 졸업, 83년 동 보건대학원 보건행정학 석사, 87년 동 보건학 박사이다. 63년 제1회 행정고시 합격, 64년 국방부 재무국 감사과 재경사무관, 66년 감사원 심의실법규과 제3국 부감사관(副監査官), 71년 보사부기획관리실 법무담당관, 직무대리(行政事務官), 72년 기획관리실 법무담당관(書記官), 74년 복지연금국(福祉年金局) 연금관리과장, 74년 사회국 사회과장, 74년 약정국(藥政局) 약무제도과장(藥務制度課長), 75년 위생국 식품위생과장, 75년 환경위생국식품1과장, 76년 동 해외이주국장(副理事官), 76년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 보건의료정책론, 사회복지행정론 강사, 77년 보사부 사회국장(理事官), 80년 동 기획관리실장(管理官)으로 보사부에서 12년 간 국과장을 지낸 보사행정통이다. 업무 추진면에서 날카롭고 순발력이 뛰어나 부하들로부터 신망이 높다. 한편 연구하는 후진들을 위해 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 강사를 지내기도 했고, 경희대 행정대학원 강사로 출강을 하였다. 투철한 향토관에 입각하여 재경군민회 부회장으로 향리의 발전에 고군분투(孤軍奮鬪)하기도 하고, 고시동지회(高試同志會) 보사부지부장(保社部支部長)으로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찾아 노력하였다. 항상 책을 가까이 하면서 수필을 읽고 쓰는 것이 취미이고, 82년 제32차 WHO지역회 의장, 83년 환경청 차장으로 있으면서 <도시 폐기물 자원화에 관한 연구>로 서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학구파이기도 하다. 85년 숭전대(崇田大) 산업대학원 및 동국대 대학원 강사, 88년 제15대 보사부 차관에 올랐다. 이 때 의료보험제 논의 때 '통합주의(統合主義)' 주장으로 '조합주의(組合主義)'에 반대하다가 환경청장으로 전보(轉補)되었다. 90년 한림대 한림과학원 복지담당 책임연구 교수 겸 연구조정실장, 95년 (社)한국당뇨협회장(現), 축범반야기금(個人獎學財團) 이사장, 도서출판 '하늘재' 대표, 96년 월간지 <당뇨(糖尿)>의 발행인, 경산대 대학원 객원교수이다. 97년 재경예천군민회장(在京醴泉郡民會長)이다. 홍조근정훈장(紅條勤政勳章)을 받았다. 저서로는 <재정회계용어사전(財政會計用語辭典)>, <가정의례법 해설(家庭儀禮法解說)>, <사회보장제도론(社會保障制度論)> <고형 폐기물 관리론(固形廢棄物管理論)>, <빈곤론(貧困論)>, <보사법전(保社法典)>, <인간환경론(人間環境論, 共著)>, <국민의료보장론> 등이 있다.(每日年鑑 1984 1985 1986 1988, 大邱每日 88.3.6, 每日名鑑 1996 1997 1999, 韓國人物史 401쪽, 嶺友俱樂部 99號 1982, 醴泉文學 13輯, 大邱每日新聞 1986.6.5, 醴泉新聞 1996.1.11 1997.5.22, 韓國을 움직이는 人物들 1997, 醴泉文學 20號 1999, 인터넷 每日名鑑 2001, 東亞닷컴 人物情報 2004)
이면우(李冕雨) : 1940- , 용궁면 출신, 용궁초등, 용궁중(6회), 부산 동성고(釜山東城高), 동아대 상학과 졸업, 경희대 대학원 경영학 석사, 고려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수료, 65년 경남도청 기술직 공무원 출발, 동 경제과(經濟課), 동 세정과, 서울시 종로구청 지적계장, 대한지적공사(大韓地籍公社) 감사실장, 동 업무부장, 동 제주지사장, 동 인천지사장, 95년 동 서울지사장, 96년 동 경기지사장, 동 부사장을 역임하였다. 97년 재경용궁중상고(在京龍宮中商高) 동창회장, 98년 대한지적공사 지적기술연구소장(本部長)이다. 취임 즉시 전국토의 지적 재조사 방안과 통일 대비 북한 지적연구팀 및 2001년 국제측량올림픽(FIG) 국내 유치 기획단을 발족, 본격 업무에 착수했다. 한국보수보강기술원 부원장이다. 2003년 재경예천군민회 수석부회장이다.(醴泉新聞 1995.8.24 1996.9.12 1996.9.26 1997.5.29 1998.7.8 2003.6.12, 朝鮮日報 DB 2003)
이윤희("발빠른 郵政文化 先導해 나가" : 이윤희 局長) [記事] : ꡒ우체국에 근무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고, 배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려고 합니다.ꡓ 인천 계양우체국 이윤희 국장은 직원들 사이에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사람으로 통한다. 또한 기다리는 업무 형태에서 벗어나 고객들이 필요로 하는 업무를 직접 찾아 해결하는 자세로 고객 만족 실현에 앞장 설 것을 강조하는 국장으로도 소문나 있다. ꡒ첨단 정보 통신 및 우편 서비스 제공에 적극 앞장 설 계획입니다. 국가 기관, 학교와 사회 각 기관과 서로 연계해 우편 정보 업무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ꡓ 이 국장은 언제나 프로 정신으로 발빠른 우정 문화를 선도해 나가고 있다. 지난 번 경영 평가시 나타난 문제점에 대해 업무 처리를 실무 담당하고 있는 각 지점 우체국의 의견을 수렴해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경영 평가 우수 관서에 대한 사기 앙양 대책과 부진 관서 사후 조치는 별도의 계획을 수렴해 시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2002년부터는 광역 단위의 평가를 시행하며, 통합 경영 관리 시스템 및 균형성, 관리 시스템과 연계해 보다 선진적인 평가 체계를 구축해 상시적으로 행정 업무에서 경영 정보 제공이 되도록 평가 시스템을 전면 재구축할 것이라고 이윤희 국장은 말한다. 이 국장은 용궁면 무이리 태생으로 여주 이씨 참의공파 후손이다. 용궁초․용궁중․문경고․한국방송대학을 졸업하고 1968년 12월 인천 우체국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해 1984년 행정 사무관으로 승진하였다. 이 후 의령우체국장(85년), 부천우체국 업무과장(87년), 우정국 체신업무 수석담당관(89년)을 지냈으며 1996년 9월 서기관으로 승진해 진주우체국장(98년), 2002년 1월 부천우체국장에서 4월 인천 계양우체국장으로 자리를 옮겨 근무하고 있다. 이 국장은, ꡒ인간과 체신의 융화로 마음과 마음을 잇고, 정보와 통신의 융화로 새롭고 편리한 서비스를 창출해 인간의 가치있는 삶을 추구하기 위해서 최고의 친절과 봉사자로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ꡓ고 포부를 밝혔다. 부인 오봉선 씨와의 사이에 딸 윤선(연세대 대학원) 씨와 혜선(대졸)을 두고 있으며 부인은 시작 활동(필명 오사라․한국문인협회 회원)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이 국장은 틈만 나면 운동화를 신고 배낭을 메고 산을 찾아 활력을 불어넣고 삶의 의욕을 일깨우곤 한다.(醴泉新聞 2002-08-14 16:42:25)
이익현(李翊鉉) : 1914-1985, 용궁면 금남리 출신, 본관은 경주, 용궁초등, 대구사범학교 심상과(尋常科) 졸업, 함창남부초등 교사, 함창중학교 교감, 함창중고등학교(咸昌中高等學校) 교장, 상주군 교육위원, 예천군 교육회장, 예천초등 교장, 약동초등 교장 등을 지냈다. 국민훈장 목련장(國民勳章木蓮章)을 받았다(慶北大觀 1958, 慶北年鑑 1979). [中央日報] : 그의 가족들의 교직 경력을 모두 합하면 207년이나 되는 9명의 가족 교원 집안이다. 그는 44년 9개월 간의 교직 생활을 했다. 또한 부인 장분임(?-1990)도 22년 간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맏아들 진우(1944- , 가톨릭대 의대 교수)가 22년, 쌍둥이 둘째 아들 홍길(1946- , 복현초등)이 31년, 셋째 아들 인우(1946- , 경산중)가 25년, 셋째 며느리 나정숙(1948- , 예천 한알고)이 25년, 딸 연희(1949- , 서울 개포초등)가 23년, 딸 경희(1955- , 퇴직)가 5년, 딸 금희(1957- , 퇴직)가 8년 등으로 모두 합하면 강산이 20번이나 바뀔 세월을 교직에 봉직해온 가족이다. 그의 가족은 교사가 되지않은 두 아들을 모두 합해 4남 4녀, 지금 가족수는 34명이나 된다. 그래서 모두 만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방학이 있는 학교에 대부분 재직하고 있어 매년 겨울방학이면 한 곳에 모인다. 가족 단위로서는 최대의(?) 교육관련 세미나인 셈이다. 넷째 연희의 남편 권영우(1946- , 회사원,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는, "처음엔 무슨 교육관련 토론회라는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며, "가족 관련 이야기보다는 교육에 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뤘습니다. 타고난 교육자 집안"이라고 말했다. 1995년 겨울방학 때는 성남 연희 집에서 모였다. 그 자리에서 이인우의 둘째 아들 상진(1977- , 가톨릭대 영문과 1)이 교사가 되겠다고 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의 가족은 1996년 5월 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경북도교육청이 개최하는 '스승 가족 모시기' 행사에 참석, 교육 명가로 공적 표창을 받는다.(中央日報 1996.5.14 조문규 記者, 慶北大觀 1958)
이철우(李哲雨) : 용궁초등, 용궁중 졸업, 청송 군수(靑松郡守)를 지냈다.
이태준(李太準) : 용궁초등 졸업, 철학 박사(哲學博士)이다.
이희석(李熙碩) : 1953- , 용궁면 무이리 출신, 한지의 아들, 용궁초등(龍宮初等, 54회), 용산중(龍山中), 용산고, 76년 서울대 법학과 졸업, 78년 동국대 대학원 수료, 86년 미국 아메리칸대 대학원 항공우주법(航空宇宙法) 국제법 석사, 78년 제3회 군 법무관 임용 시험 합격, 79년 방공관제단 검찰관, 80년 공군본부 법제담당관, 81년 공군 고등군법회의 법무사, 82년 공군본부 송무 배상 담당관, 82년 비행단 법무 참모, 84년 공군본부 수사지도 검찰관, 85년 동 검찰부장(직대), 88년 공군법무감실 심판부장, 89년 동 검찰부장(중령), 91년 노벨재단 주관의 이태리 국제 인도법연구소에서 연수, 18년 간 공군 법무관(法務官, 3期), 93년 제18대 공군본부 법무감(대령), 95년 국방부 초대 고등군사 법원장, 96년 변호사 사무실(서울 서초구 서초동 1572-1 서보빌딩 3층에 있는 법무법인 韓中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을 개소하였다. (醴泉新聞 1996.6.6, 韓國을 움직이는 人物들 1997, 朝鮮日報 DB 2003, people.chol.com 2004, people.naver.com 2004, 醴泉文學 제29호 2004, 다음 百科事典 2004, 엠파스 人物檢索 2004, paran 人物 2004)
이희선(李熙先) : 1915- , 용궁초등 졸업, 시 과장(市課長), 도 계장(道係長), 심계원 사무관(審計院事務官)이다.(慶北學校大觀 1958)
용궁공립보통학교(龍宮公立普通學校, 1912-現 龍宮國民學校) : 1912년 4월 5일에 용궁면 읍부리 251-3(現 龍宮中學校 敷地)에서 설립 인가되었다. 역대 교장으로는 포촌노구오랑(浦村鷺九五郞, 1912-1921), 화전지경민(火田地耕民,1921-1923), 평야감일(平野勘一, 1923-1925), 주정보성(住井保盛, 1925-1928), 반총수일(飯塚秀一, 1928-1929), 향산귀(向山鬼, 1929-1933)이었다. 졸업생 수는 1915년에 7명, 1920년에 14명, 1925년에 16명 등이었다./ 1) 수학여행 : 학생 100여 명이 1921년 6월 4일 예천읍내에 와서 예천공립보통학교장의 예천 지방 소개를 듣고, 예천심상소학교(醴泉尋常小學校), 예천군청, 예천경찰서, 예천우편국(醴泉郵便局) 등을 견학하고 이튿날 오전 8시 경에 귀교(歸校)하였다./ 2) 연합운동회 : 용궁공보교(龍宮公普校)와 용궁심상소학교(龍宮尋常小學校)에서는 1922년 10월 17일 오전 10시부터 용궁공보교에서 연합대운동회를 성대히 개최하였다. 이 날 특히 예천 대창학원(大昌學院) 학생과 용궁공보교 학생간의 정구시합이 있었다./ 3) 신축 교사(校舍) 낙성식 : 1923년 11월 16일에 신축 낙성식을 성대히 거행하였는데, 이 날 김병태(金秉泰) 군수, 이돈영(李敦英) 과장을 위시하여 각 관공서원과 군내 각 단체 민간 유지 등 많은 인사가 참석하였다./ 4) 야학부(夜學部) 신설 : 1923년 12월 14일부터 용궁면(龍宮面) 내의 학령(學齡)이 초과한 아동을 모집하여 야학부(夜學部)를 신설하고 무료로 가르쳤는데, 이미 모집된 학생은 남자가 70여 명, 여자가 10여 명이고, 시간은 매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2시간이고, 과목은 일어, 산술, 조선어이었다./ 5) 학예회 : 1927년 3월 4일 동교에서 아동학예회를 개최하였는데, 장내는 대만원으로서 각종 학예가 있었다./ 4. 용문공립보통학교(龍門公立普通學校, 1921-現 龍門國民學校)/ 1921년 5월 21일에 설립 인가되고, 이듬해 6월 25일 용문면 상금곡동 583번지에서 개교하였다. 역대 교장은 산본우길랑(山本宇吉郞, 1922-1923), 대구보일(大久保一,1923-1923), 도변반치(渡邊半治, 1923-1928), 서방태이(緖方泰爾, 1928-1932)이었다./ 1923년 10월 15일 오전 10시부터 추계운동회(秋季運動會)를 동교 운동장에서 개최하였는데, 관중이 1,000명에 이르렀다. 전교생 연합체조로부터 각종 경기가 시작되었는데, 그 중 2인3각(二人三脚), 백족경주(百足競走), 달마경주(達摩競走) 등은 관객의 갈채를 많이 받았으며, 도보경주(徒步競走), 기취경주(旗取競走) 등 30여 종을 실시하였다./
일제침략하 한국36년사(1912.3.7) [冊] : 용궁공립보통학교의 설치가 인가되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년월일 1912-03-07/ <출전> 朝鮮總督府官報 1912.3.11/ 본문/ 禮山公立普通學校, 連山公立普通學校, 舒川公立普通學校, 鴻山公立普通學校, 靑松公立普通學校, 燕岐公立普通學校, 三水公立普通學校, 華川公立普通學校, 利原公立普通學校, 陝川公立普通學校, 南海公立普通學校, 仁同公立普通學校, 聞慶公立普通學校, 英陽公立普通學校, 龍宮公立普通學校, 禮安公立普通學校, 豊基公立普通學校, 知禮公立普通學校, 興海公立普通學校, 眞寶公立普通學校, 新寧公立普通學校, 海美公立普通學校의 設置를 각각 認可하다.”(history.go.kr 2005)
임우경(林又慶) : 1902-, 용궁면 읍부리 출생, 본적은 예천읍 서본리, 후손은 부산시 동래구 연산1동 57번지이다. 용궁공립보통학교 재학 중 1919년 18세로서 같은 학교 학생인 권오정(權五丁), 이병태(李炳泰), 기성룡(奇聖龍), 이순성(李舜成), 이준형(李俊衡) 등과 모의하여 결의문과 운동자 명단을 작성하고, 용궁 근방 각 동리 청년 학생들을 동원하여 1919년 3월 25일 용궁장날을 기하여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하기로 결정 맹약하였다. 그는 상기한 동지들과 일요일을 이용하여 극비리에 독립선언서와 태극기 큰 기 1개와 작은 기 150개를 준비하였다. 의거 날이 가까워지자 그는 동지들과 합심하여 상기한 운동자 명단에 실린 사람들을 최후 확인하고 내일로 임박한 의거의 마지막 손질을 하던 3월 24일 사전에 탄로되고 말았다. 즉 24일 밤 권오섭(權五燮, 같은 학교 학생)이 일본인 교장 우라무라(浦村)에게 밀고를 하자 우라무라는 헌병대에 연락하여 헌병대에서 밤중에 일 군경 40여 명을 용궁으로 출동시켰다. 파견되어 온 일군경은 용궁 주재 군경과 합동하여 용궁 근방 청년 학생은 모조리 체포하였고, 태국기, 독립선언서, 결의문, 운동자 명단 등도 모조리 압수해 갔다. 주재소에 연행된 청년 학생들은 운동자 명단에 따라 문초를 당했는데, 대부분은 주모자의 권유로 가담하게 되었다고 해서 당일로 방면이 되고, 상기한 임우경, 전오정, 이병태, 기성룡, 이준형, 이순성 등은 주모자로서 구속, 예천 일 헌병대로 압송되었다. 15일 간의 모진 고문과 심문을 마치고 권오정, 이병태, 기성룡, 이준형, 이순성은 각각 90대의 태형으로 석방되고, 임우경은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으로 압송되어 재판을 받았는데, 징역 10월의 선고를 받았다. 형이 확정되자 대구감옥으로 이송되어 여기서 옥고를 치렀다. 그 후 형기를 마치고 출옥한 그는 고국 광복의 일념을 저버리지 않고, 1922년 1월 용궁연합청년회를 조직하여 민족 독립정신을 고취하였고, 1926년 2월에 예천읍으로 이사를 하여 1928년 7월에는 예천노동조합을 결성하고 그 총무로 선임되었다. 일본 경찰의 감시가 심하므로 노동조합을 자퇴하고 부산으로 이주하였다. 8.15해방의 감격도 객지인 부산에서 맞았고, 해방 후 계속 부산에 살아오던 중 1971년 8월 부산에 있는 3.1운동지회에 가입하여 3.1정신을 되새기면서 노후를 조용히 보내었다.(龍宮鄕校誌 上卷 2005)
장석춘 : 1956- , 용궁면 산택리 출신, 정남의 장남, 용궁초등, 용궁중, 문경 청암고 졸업, 1981년 LG전자 구미공장에 입사, 91년 동 노조지부장, 99년 동 노조위원장이다. 2002년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하였다.(醴泉新聞 2002.5.16)
전병왕 : 1965- , 용궁면 가야리 출신, 용궁초등(66회), 용궁중(30회), 서울대 사회학과, 동 보건대학원 졸업, 행정고시(行政高試)에 합격하였다.
전세영(錢世永) : 용궁초등학교 졸업, 문경교육감(聞慶敎育監)을 지냈다.(慶北學校大觀 1958)
전재희(全載熺) : 1934- , 용궁면 가야리 출신, 본관은 용궁, 용궁초등, 부산중(釜山中), 54년 부산고(釜山高), 58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67년 캐나다 윈저(Winsor)대 대학원 경제학(經濟學) 수료, 61년 경제기획원 예산실 과장, 경제기획국, 경제협력국 사무관, 75년 경제과학심의회 총무과장, 76년 경제기획원 예산과장(書記官), 77년 주일대사관 경제협력관(駐日本大使館經濟協力官), 80년 대우통신(大宇通信, 株) 상임감사, 경제기획원 행정심의위원회 위원, 91년 대우투자자문 부사장, 93년 (주)동우개발(서울힐튼호텔) 서울 경주 대표이사 사장 때는 서울과 경주, 중국의 북경(北京)과 연변 그리고 베트남의 하노이로 이어지는 호탤체인을 구성하여 호텔경영 전문회사로 발판을 구축했다. 95년 대우그룹 고급 두뇌 집단인 대우투자자문(大宇投資諮問, 株) 대표이사 사장으로, 투자 관련 정보를 판매하고 투자 조언(助言) 업무로 금융기관, 보험회사, 대기업의 기관투자자(機關投資者)가 주고객(主顧客)이다. 그는 국내외 계약 자산(契約資産)이 1조5천억원이 넘는 국내 제일의 투자자문회사(投資諮問會社)의 선장(船長)으로 흑자(黑字) 경영으로 순항(巡航)하였다. 96년 한국투자자문업협의회장(韓國投資諮問業協議會長), 98년 쌍용자동차(주) 상임감사, 99년 넥션타이어 사외이사(현), 2000년 겜티브이 상임고문, 스카이 겜티브이 대표이사 사장(방송인)이다.(醴泉新聞 1996.11.7, 韓國을 움직이는 人物들 1997, 每日名鑑 1997 1999 2001, people.chol.com 2004, people.naver.com 2004, 다음 百科事典 2004, 엠파스 人物檢索 2004)
정재원(鄭載元) : 1906-1974, 풍양면 삼강리 출신, 자는 이선(而善), 호는 백민(白民), 본관은 청주, 좌의정 탁(左議政琢)의 후손, 무섭(武燮)의 독자(獨子), 용궁초등(11回), 상주농잠(尙州農蠶), 만주 간도 동아중(東亞中) 졸업, 풍양면 서기, 풍양면장, 해방(1945) 후에는 관재서장(管財署長), 삼호방직(三頀紡織) 전무(專務)를 거쳐 초대 2대 양대의 경북도의회 의원에 당선되었고, 경북도의회 의장(議長)에 3선(三選)되었다. 그리고 자유당 경북도당 부위원장을 역임하였다. 공적인 정치 이념 상의 대결을 제쳐놓고는 개인적 사감(私感)의 대립을 조작한 예가 털끝만치도 없었다. 그러기에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5.2총선에 자유당 공천으로 예천에서 출마하여 당선(民議院)되었다. 대전방직(大田紡織) 사장, 삼호방직(三頀紡織) 사장 고문, 제일화재(第一火災) 사장, 동 회장(會長)이다.(慶北大觀 1958, 慶北年鑑 1975 1980)
정진동(鄭鎭東) : 1910-1999, 풍양면 우망리 출신, 자는 춘경(春卿), 호는 금당(錦堂), 본관은 동래, 석산(石山) 승모(升謨)의 아들, 전 재경부장관 이규성(李揆成)의 장인이다. 용궁초등 입학, 풍양초등 졸업, 35년 경성제국대(京城帝國大) 법학부 졸업, 아주양행(亞洲洋行) 사장, 일본고등문관(日本高等文官) 행정과 합격, 39년 영양 군수(英陽郡守), 영주 군수(榮州郡守)를 역임하면서 일제 하에 군민들에게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었고, 43년 충북도 광공과장(忠北道鑛工課長)을 지내다가 해방(1945) 후 경북도 국장(慶北道局長), 관재청 관리국장(管理局長), 50년 국회내무위원회(國會內務委員會) 전문위원(專門委員), 51년 변호사(辯護士) 개업하여 저 유명한 한국전쟁 중 야당 국회의원 서민호사건(徐珉濠事件)을 변호해서 승소(勝訴)했으며, 55년 북삼화학공업회사 사장, 61년 제9대 교통부 차관(交通部次官)으로서 경북선 개통에 힘썼고, 공화당으로 정계에 입문, 63년 6대 국회의원(醴泉, 1963.11.26 選擧), 67년 7대 국회의원(예천, 1967.6.8 選擧)을 지내면서 경북선철도(慶北線鐵道) 개통, 풍지교(豊知橋) 등 교량 5개 가설, 10억 원의 공사인 전천후사업(全天候事業)과 양수장(揚水場)을 만들어 농업 근대화에 이바지하였다. 한편 중앙에서는 국회교통체신분과(國會交通遞信分科) 위원장으로 국내 교통 문제와 체신 행정 전반에 걸친 업무를 체계있게 다루어 어느 시대보다 급진적 발전을 할 수 있도록 많은 기여를 하기도 했다. 의정 생활을 하는 동안 새마을운동(1970)이 전개되기 전에 농촌의 발전을 위해 나름대로 연구를 하여, "향규(鄕規)에 관한 법안(法案)"을 만들어 제출하였으나 그 때의 현실은 산업 발전에만 전념했던 관계로 무산이 되었다. 공화당 경북제2지구 위원장도 지냈다. 83년 동래정씨 대종회장(大宗會長)이다. 지보면 매창리 풍지교(豊知橋) 옆 낙동강변에 공적비가 있다.(第7代 國會議員選擧鬪爭史 266-267쪽, 慶北年鑑 1975 1980, 嶺友俱樂部 99號 1982, 每日年鑑 1985 1986, 每日名鑑 1996 1997, 光復40年史, 韓國人의 姓譜, 京鄕新聞 1999.10.8, 每日新聞 1999.10.8, 醴泉郡誌 2005)
진흥서당(振興書堂) [터] : 용궁면 덕계리에 있던 서당으로, 국권피탈(1910)로 조국의 민족성과 우리 글 우리 말을 전승시키고저 당시 청년들인 도상선(都相瑄), 도현순(都賢淳), 도상정(都相廷), 도상빈(都相斌), 도상만(都相萬) 등은 사재(私財)를 수합하여 진흥서당이라는 간판을 걸고 설립자 등이 직접 강훈(講訓)도 하고 초빙 강사로 채정식(蔡正植), 박의문(朴懿文)이 강의하다가 7명 전원이 일경에 호출되어 3일 간 구류를 당하고, 그 후 덕계간이학교(德溪簡易學校)라 하여 사재를 추합(追合)하여 교실을 신축하고(敷地는 都氏門中 提供) 선생을 초빙하여 지역민들의 사설 교육 전당이 되었다. 일익번창(日益繁昌)하는 간이학교를 일제는 강제로 폐교시키고 용궁국민학교로 귀속시키니, 용궁동부국민학교라 칭하고 통제하였다. 그 후 장평국민학교(長坪國民學校)로 개명 설립하니, 진흥서원이 장평국민학교의 태동지이다. 장평국민학교의 연혁에는 인가 이전 기록이 누락되어 있다.(龍宮鄕校誌 上卷 2005)
최양영(崔養永) : 1918- , 용궁초등 졸업, 청도(淸道)경찰서장을 지냈다.(慶北學校大觀 1958)
한국근현대 신문자료(1923.11.23) [冊] : 용궁공립보통학교와 지보공립보통학교의 낙성식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문명 동아일보/ 기사제목 醴泉의 龍宮及知保兩公普落成式/ 발행년월일 1923-11-23/ 면수 04/ 단수 03/ 표제어 지보공립보통학교(知保公立普通學校)”(history.go.kr 2005)
한국근현대 신문자료(1923.12.19) [冊] : 용궁공립보통학교 야학부 관련 기록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문명 동아일보/ 기사제목 龍普夜學部好況(醴泉)/ 발행년월일 1923-12-19/ 면수 03/ 단수 08/ 표제어 용궁공립보통학교(龍宮公立普通學校)”(history.go.kr 2005)
한국근현대 신문자료(1927.3.9) [冊] : 용궁공립보통학교 학예회 관련 기록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문명 동아일보/ 기사제목 龍宮公普 學藝會(醴泉)/ 발행년월일 1927-03-09/ 면수 04/ 단수 12/ 표제어 용궁공립보통학교(龍宮公立普通學校)”(history.go.kr 2005)
황가영과 이재은(사랑의 便紙쓰기 캠페인, 醴泉南部初 황가영 最優秀賞 受賞) [記事] : 경북도새마을부녀회(회장 한혜련)가 전개한 '사랑의 편지쓰기' 캠페인에서 예천남부초등 황가영 학생이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경북도새마을부녀회는 2007년 6월부터 11월까지 열린 사랑의 편지쓰기 운동에 응모(초․중․고교 및 일반부 등 4개 부문)한 1,547편을 심사, 대상 1편을 포함해 총 45편의 수상작을 2007년 12월 20일 발표했다. ◇수상작 △최우수 황가영(예천 남부초등 6년), △우수 이재은(예천 용궁초등 5년)(허석윤 記者 嶺南日報 2007-12-22 07: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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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 지방예산효율화, 도 우수상 수상...축하합니다.
예천군 수상(醴泉郡 地方豫算效率化 優秀賞 受賞) [記事] : 예천군(군수 이현준)이 지방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한 지방예산 효율화 우수사례에서 세출절감분야와 체납액 징수증대 분야에서 각각 우수상을 수상했다. 경상북도는 지방예산 효율화 6개 분야(세출예산절감, 행사.축제개선, 세외수입증대, 예산운영의 주민참여확대, 지방세 체납액 징수 증대, 공유재산 활용)에 대해 각 시군에서 올라온 39건의 사례를 심사하였으며 예천군이 제출한 사례 2건 모두가 경상북도 우수사례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예천군은 ‘농경지내 영농장애 자연석을 활용한 공사비 절감’으로 67백만 원의 예산절감과 ‘체납자에 대한 보조금 지원제한 조례개정’으로 150백만 원의 재정수입을 증대한 효과로 우수상을 수상하였으며 이는 행안부에 우수사례로 제출되어 중앙심사를 받는다. 예천군은 앞으로도 지방예산 효율화에 지속적인 관심과 공무원의 참신한 아이디어로 지방재정 건전성 확보에 적극적으로 노력해 나갈 방침이다.(醴泉인터넷放送 2012-07-18 오후 3:02:20)
*대창고등학교 관악부, 오케스트라 도 운영학교로 지정...축하합니다.
대창고등학교 악대부(大昌高 管樂部 오케스트라 運營學校로 指定되다) [記事] : 전통과 실력을 자랑하는 대창고등학교 관악부가 경상북도 하반기 학생오케스트라 운영학교에 선정되어 지원금 8천만 원을 받게 됐다. 이승선 선생의 지도 아래 아름다운 선율 연주에 매진하고 있는 대창 관악부의 더 큰 발전과 성숙된 연주가 기대된다.(醴泉인터넷放送 2012-07-18 오전 11:5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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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