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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3185:권득형-권렴-권만(1)(附예천방문971)
작성자장병창 @ 2013.02.07 06:31:05

   예천의 자랑(3185) : 권득형(진사)-권렴(학자)-권만(1)(총제)-(附 예천방문 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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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득형(權得衡) : 예천읍 우계리 어린촌(愚里村) 사람, 자는 가균(家均), 본관은 안동, 의평(倚平)의 아들, 1522년(중종 17) 식년 진사과에 1등 5위로 합격하였다.(司馬榜目, 襄陽誌 1661, 醴泉郡誌 1939)

 

  권득형(權得衡) : [생원진사시] 중종(中宗) 17년 (1522) 임오(壬午)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1등(一等) 5위/ [인적사항] 자 가균(可均), 본관 안동(安東), 거주지 예천(醴泉)/ [출전]CD-ROM 《사마방목(司馬榜目)》(韓國精神文化硏究院)(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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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렴 : 예천의 금석문 1 | 간행년:2003   저자:예천문화원   발행처:예천문화원 / 農菴 安東權公(濂) 墓碣銘/ 농암 안동권공(염) 묘갈명公의 휘는 濂이고 字는 淸源이요 성은 權이니 自號를 農菴이라.../ 예천 내용이 수록된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넷 유교관련도서이다.//

 

권렴(權濂) : 1659(효종 10)-?, 용문면 하학리 출신, 자는 청원(淸源), 호는 농암(農岩), 본관은 안동, 의(檥)의 후손이다. 문학으로 저명하였고, 유고(遺稿)가 있다. 고향에 농암정(農岩亭)을 창건하고 여생을 보냈다.(朝鮮寰輿勝覽 1929)

 

  권렴 : 농암정(農巖亭) 중건/ 농암 권렴(農岩 權濂)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정자로 '재달'마을에 있다./ 2007.11.05(daum 2010)

 

  권렴 : 농암정(農巖亭)/ 이 건물은 농암(農岩) 권렴(權濂)을 추모하기 위해 1600년경에 건립하였는데, 현재의 건물은 1934년에 중건한 것이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기와집이다. 기둥은 모두 각주(角柱)를.../ 2007.11.05(daum 2010)

 

  권렴 : 하학리의 문화재/ 2009.04.06/ 용문면 하학리 212-1 대 N36°41'16.8443" E128°27' 04.9130" 근대ㆍ일제강점기 / 누정 농암農岩 권렴權濂을 기리기 위해 1600년 경 건립하고 1934년에 중건한 정자로 ‘재달’ 마을에 자리잡고 있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http://cafe.daum.net/yms1/ 용문중학교 제1회 동창회(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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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만 : 야일집(野逸集) [한국국학진흥원-고도서]/ 『야일집』은 권만(權? ; 1571~1635)의 시문집이다. 권만의 자는 자심(子深), 호는 야일(野逸), 본관은 안동이다. 아버지는 응성(應星)이며, 예천(醴泉)에서 태어났다. 그는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읍에서 의병소모장(義兵召募將)에 추천함에.../ 예천(醴泉)에 대한  KRpia-한국의 지식콘텐츠ꡐ역사자료ꡑ이다.//

 

  권만 [記事] : 태종실록 18권, 태종 9년(1409 기축 / 명 영락(永樂) 7년) 7월 24일(갑오) 2번째 기사/ 경차관 보고로 평민을 관둔전에 역사시킨 성주 목사 이백지 등을 자원 부처시키다/ 성주 목사(星州牧事) 이백지(李伯持)․영해 부사(寧海府使) 권만(權蔓)․지울주사(知蔚州事) 양오복(楊五福)․지영주사(知永州事) 이백함(李伯含)․울진 만호(蔚珍萬戶) 권소(權紹)․횡천 감무(橫川監務) 구익령(具益齡)․가평 감무(加平監務) 김욱(金郁) 등을 자원(自願)에 따라 부처(付處)하였으니, 경차관(敬差官)이 돌아와서 아뢰기를, ꡒ평민(平民)을 역사시켜 관둔전(官屯田)을 경작하였습니다.ꡓ고 하였기 때문이다./ 【태백산사고본】 7책 18권 5장 B면/ 【영인본】 1책 499면/ 【분류】 *사법-행형(行刑) / *농업-전제(田制)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www.history.go.kr 2009)

 

  권만 [記事] : 태종실록 26권/ 태종 13년(1413 계사 / 명 영락(永樂) 11년) 7월 16일(계사) 1번째 기사/ 말 사육 문제로 전흥․권만․김정준 등을 경차관으로 파견하다/ 경차관(敬差官)을 나누어 보냈다. 순금사 대호군 전흥(田興)을 경기․충청도에 보내고, 판제용감사(判濟用監事) 권만(權蔓)을 경상도․전라도에 보내어 말을 기를 만한 땅을 상지(相地)하게 하였다. 호조 참의 김정준(金廷雋)을 제주(濟州)에 보내어 먼저 양마(良馬) 1백여 필을 추쇄(推刷)하여 오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1책 26권 4장 B면/ 【영인본】 1책 677면/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교통-육운(陸運)(www.history.go.kr 2009)

 

  권만 [記事] : 태종실록 28권/ 태종 14년(1414 갑오 / 명 영락(永樂) 12년) 10월 18일(무자) 2번째 기사/ 진도가 목장으로써 적당한가를 조사․의논하다/ 대호군(大護軍) 전흥(田興)과 중관(中官) 노희봉(盧希鳳)에게 명하여 가서 진도(珍島) 목장(牧場)을 보게 하였다. 처음에 전 총제(摠制) 홍유룡(洪有龍)․병조 참의 권만(權蔓) 등이 아뢰기를, ꡒ 진도(珍島)는 목장(牧場)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ꡓ하여, 전년(前年)에 목책(木柵)을 설치하도록 명하고 백성들을 옮겨서 거주하게 하고, 이어서 군수(郡守)가 우도 수군 도만호(右道水軍都萬戶)를 겸하게 하였다. 임금이 전라 감사(全羅監司)의 보고에 인하여 내섬 소윤(內贍少尹) 이위(李衛)에게 명하여 가서 살펴보게 하였는데, 이위가 지군사(知郡事) 이각(李恪)과 함께 와서, ꡒ섬의 풀이 모두 띠[茅]이므로 말이 먹지 못하여 파리하였습니다.ꡓ하니, 김승주(金承?)가 아뢰었다. ꡒ 진도(珍島)의 풍토(風土)는 비록 제주(濟州) 와 같지 않으나, 반드시 각처 목장에 못지 않을 것이니, 가볍게 버릴 수 없습니다.ꡓ 임금이, ꡒ 김정준(金廷雋) ․ 이각(李恪) ․ 이위(李衛) 등이 모두 말하기를, ꡐ수초(水草)가 부족하여 목장(牧場)의 땅으로 마땅하지 않다.ꡑ고 하므로, 이 때문에 이를 버리고자 한다.ꡓ하였으나, 김승주가 굳이 청하니 임금이 뜻을 결정하지 못하다가, 드디어 전흥과 노희봉 등을 보내었다. 전흥 등이 복명(復命)한 것도 또한 이위 등의 말과 같았다./ 【태백산사고본】 12책 28권 34장 A면/ 【영인본】 2책 42면/ 【분류】 *교통-마정(馬政) / *호구-이동(移動) / *군사-군정(軍政)(www.history.go.kr 2009)

 

  권만 [記事] : 태종실록 31권/ 태종 16년(1416 병신 / 명 영락(永樂) 14년) 4월 17일(기묘) 3번째 기사/ 권만․신열의 관직을 다시 임명하다. 하윤의 청으로 변계량 등의 관직을 추가하다/ 경상도(慶尙道)의 경주 안동도 병마도절제사(慶州安東道兵馬都節制使) 권만(權蔓)을 고쳐서 좌도 병마도절제사(左道兵馬都節制使)로 하고, 상주 진주도 병마도절제사(尙州晉州道兵馬都節制使) 신열(辛悅)을 고쳐서 우도 병마도절제사(右道兵馬都節制使)로 하고, 경승부윤(敬承府尹) 변계량(卞季良)에게 수문전 제학(修文殿提學)을, 직예문관(直藝文館) 박희중(朴熙中)에게 지제교 겸 춘추관 기주관(知製敎兼春秋館記注官)을 가했다. 처음에 좌의정 하윤(河崙)이 변계량에게 위촉하여 그의 선묘(先墓)의 신도비(神道碑)의 명문(銘文)을 짓게 하고, 박희중으로 하여금 이를 쓰게 하고, 임금에게 아뢰기를, ꡒ이것은 신(臣) 일가(一家)의 대사(大事)입니다. 계달(啓達)한 뒤에 진양(晉陽) 3718) 으로 보내어 입석(立石)하고자 합니다.ꡓ하니, 임금이, ꡒ내가 경의 세계(世系)를 자세하게 알고 있다.ꡓ하였다. 하윤이 이어서 아뢰기를, ꡒ이 비석은 영구히 남을 것이니, 비문을 지은 자와 비문을 쓴 자가 훌륭한 직함이 없습니다. 빌건대, 변계량 에게는 관각(館閣)3719) 을 가하고, 박희중 에게는 자급(資級)을 가하소서. 만약 관직의 궐원(闕員)이 없다면 지제교 겸 관각(知製敎兼館閣)의 직함을 띠게 하소서.ꡓ하니, 그대로 따랐다. 두 사람은 모두 하윤 의 문생(門生)이었다./ 【태백산사고본】 14책 31권 30장 A면/ 【영인본】 2책 112면/ 【분류】 *군사-군정(軍政) /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 [註 3718] 진양(晉陽) : 진주(晉州). ☞ / [註 3719]관각(館閣) : 수문(修文)의 관직을 말하는데, 예문관(藝文館)․집현전(集賢殿)․수문전(修文殿)․보문각(寶文閣), 또는 뒤의 홍문관(弘文館)의 벼슬. 여기서는 관각 당상(館閣堂上)을 이름. ☞(www.history.go.kr 2009)

 

  권만 [記事] : 태종실록 34권/ 태종 17년(1417 정유 / 명 영락(永樂) 15년) 8월 20일(계묘) 1번째 기사 유사눌을 함길도 도순문사로 권만을 경상도 도절제사로 삼다/ 유사눌(柳思訥)을 함길도 도순문사(咸吉道都巡問使)로 삼고, 권만(權蔓)을 경상도 병마도절제사(慶尙道兵馬都節制使)로 삼았다. 사헌집의(司憲執義) 성엄(成?)이 아뢰기를, ꡒ 유사눌(柳思訥)이 일찍이 경상도 감사(慶尙道監司)의 직책을 받았으므로 이미 청하여 파면하였는데, 지금 또 순문(巡問)의 직임(職任)을 제수하시니, 신 등은 미편(未便)하다고 생각합니다.ꡓ하니, 임금이 한참 말이 없다가 육조가 나가기를 기다려서 대언(代言) 등에게 하교(下敎)하였다. ꡒ집의(執義)가 일을 아뢸 때에 내가 말하지 않은 것을 경 등은 아는가? 내가 성질이 급하여 육조가 있을 때에 발언을 극단으로 말할 폐단이 있기 때문에 감히 말을 하지 않은 것이다. 헌사(憲司)에서 어째서 이런 일을 아뢰는가? 유사눌(柳思訥)이 감사가 되었을 때에 파면하기를 청하고, 총제(摠制)의 직을 제수하매 말하지 않다가 순문사(巡問使)를 제수하매 또 파면하기를 청하니, 그 까닭이 무엇인가? 그러나 이것도 역시 언관(言官)이 마땅히 할 일이고, 내가 말하지 않은 것도 까닭이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 이러한 일을 아뢰는 자가 있으면 내가 반드시 내치고 대답하지 않겠다. 경 등은 그리 알라. 유사눌 이 지신사(知申事)로서 장죄(杖罪)를 속(贖)받고 귀양보내었으니, 죄가 또한 족하다. 죄가 있으면 죄를 주고 허물을 고치면 쓰는 것이 어찌 사심(私心)인가? 대언(代言)으로 있을 때에 내가 혹 연거(燕居)에서 접견하여 대접하기를 친하고 믿었으니, 친하고 믿는 사람을 쓰지 않고 어찌하겠느냐? 일찍이 지신사를 지낸 사람은 모두 불차 탁용(不次擢用)4655) 하여 다른 사람은 모두 육조에 들어갔으니, 만일 유사눌 을 판서(判書)에 탁용하면 헌사(憲司)에서 또한 어찌하겠는가? 내가 공신을 쓰는 것은 국가를 위하는 것이지마는, 비록 공신이 아니라도 쓰임이 있는 재주는 내가 반드시 쓴다. 이러한 사람을 버리고 또 어떠한 사람을 쓰겠는가? 나의 말을 가지고 말하지 말고, 경 등이 사사로이 말하여 집의(執義)로 하여금 알게 하라.ꡓ조말생(趙末生) 등이 말하기를, ꡒ주상의 교지가 크게 옳습니다. 신 등도 또한 집의를 그르게 여깁니다. 죄가 있으면 개과천선(改過遷善)하면 쓰는 것이니, 어찌 감히 일호(一毫)의 사의(私意)가 있겠습니까?ꡓ하니 임금이 말하였다. ꡒ내가 착한 것을 좋게 여기고 악한 것을 미워하지 못하겠는가? 나는 사실 착한 것을 좋게 여기고 악한 것을 미워한다.ꡓ/ 【태백산사고본】 15책 34권 12장 A면/ 【영인본】 2책 183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註 4655]불차 탁용(不次擢用) : 관계(官階)의 차례를 밟지 아니하고 벼슬에 올려서 씀. ☞(www.history.go.kr 2009)

 

  권만 [記事] : 세종실록 4권/ 세종 1년(1419 기해 / 명 영락(永樂) 17년) 5월 12일(병진) 3번째 기사/ 권만․박초․이지실을 삼도의 도체찰사로 삼다/ 권만(權蔓)을 경상도 도체찰사에, 박초를 전라도 도체찰사에, 이지실(李之實)을 충청도 도체찰사로 삼았다. 그 때에 만이 모상(母喪)으로 경상도 예천군에 돌아가 있더니, 기복(起復)161) 하고 역마로 불렀다./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3장 B면/ 【영인본】 2책 315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註 161]기복(起復) : 상을 마치기 전에 다시 벼슬을 시키는 일. ☞(www.history.go.kr 2009)

 

  권만 [記事] : 세종실록 4권/ 세종 1년(1419 기해 / 명 영락(永樂) 17년) 6월 25일(무술) 3번째 기사/ 본도로 돌아가는 대마도 왜적을 방비키 위해 권만 등을 조전 절제사로 삼다/ 병조에서 계하기를,  ꡒ이제 대마도 왜적 이 본도로 돌아갈 때에 반드시 땔나무와 식수를 준비해 갈 것이니, 경상․충청․전라 해도(海道) 각처의 조전 절제사(助戰節制使)로 하여금 각각 병선을 거느리고 나누어 요해지(要害地)에 머무르면서, 오는 자를 맞아서 치게 하소서.ꡓ하니, 상왕이 이를 좇아 전번에 도절제사로 있던 권만(權蔓)과 동지총제 이천(李?)을 모두 경상 해도 조전 절제사로 삼고, 동지총제 박초(朴礎)를 전라 해도 조전 절제사로 삼고, 공조 판서 이지실(李之實)을 충청 해도 조전 절제사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18장 B면/ 【영인본】 2책 323면/ 【분류】 *군사-관방(關防) / *군사-군정(軍政) / *군사-전쟁(戰爭) / *인사-임면(任免) / *외교-왜(倭)(www.history.go.kr 2009)

 

  권만 [記事] : 세종실록 4권/ 세종 1년(1419 기해 / 명 영락(永樂) 17년) 6월 26일(기해) 2번째 기사/ 길 떠나는 권만을 환관을 보내 전송하다/ 권만이 길을 떠나니, 임금이 환관 박성우(朴成祐)에게 명하여 전송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18장 B면/ 【영인본】 2책 323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권만 [記事] : 세종실록 4권/ 세종 1년(1419 기해 / 명 영락(永樂) 17년) 7월 7일(경술) 2번째 기사/ 정역․권홍․이종무 등을 승진시키고, 다시 병선을 거느리고 대마도 왜적을 치게 하다/ 정역(鄭易)에게 한성 부사를 맡기고, 권홍(權弘)으로 영가군(永嘉君)을 삼고, 이종무로 의정부 찬성사, 이순몽으로 좌군 총제, 박성양(朴成陽)으로 우군 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를 삼아, 동정(東征)한 여러 절제사는 모두 좌목(座目)을 올리고, 싸움에 죽은 병마부사 이상은 쌀과 콩 각각 8석, 군관(軍官) 은 사람마다 각각 5석, 군정(軍丁)은 사람마다 3석을 주었다. 상왕이 동지총제 이춘생(李春生)을 보내어 동정군중(東征軍中)에 나가 하사한 술로 제장들을 위로하고, 유정현에게 일러 말하기를, ꡒ 중국으로부터 돌아온 적선 30여 척이 이 달 초3일에는 황해도 소청도에 이르고, 초4일에는 안흥량(安興梁)에 와서 우리 배 9척을 노략하고 도로 대마도로 향하니, 우박과 권만(權蔓)으로 중군 절제사를 삼고, 박실과 박초로 좌군 절제사, 이순몽과 이천으로 우군 절제사를 삼아, 각각 병선 20척을 거느리게 할 것이니, 도체찰사가 다 거느리고 다시 대마도로 가되, 육지에 내려 싸우지는 말고, 군사를 거느리고 바다에 떠서 변을 기다릴 것이며, 또 박성양으로는 중군 절제사를, 유습으로는 좌군 절제사를, 황상으로는 우군 절제사를 삼아, 각각 병선 25척을 거느리고 나누어 등산(登山)․굴두(窟頭)와 같은 요해처(要害處)에 머무르게 하고, 적의 돌아오는 길을 맞아 쫓으며, 협공으로 반드시 대마도까지 이르게 하라.ꡓ하고, 곧 종무 이하 10 장수에게 갑옷과 옷 한 벌을 주었다./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21장 A면/ 【영인본】 2책 324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군사-휼병(恤兵) / *군사-군정(軍政) / *군사-전쟁(戰爭) / *외교-왜(倭)(www.history.go.kr 2009)

 

  권만 [記事] : 세종실록 4권/ 세종 1년(1419 기해 / 명 영락(永樂) 17년) 7월 17일(경신) 2번째 기사/ 김만수를 경상도 병마도절제사, 권만을 수군도절제사로 삼다/ 상왕이 전 도총제 김만수(金萬壽)를 경상도 병마도절제사로, 권만(權蔓)을 경상도 수군도절제사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24장 A면/ 【영인본】 2책 326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권만 [記事] : 세종실록 7권/ 세종 2년(1420 경자 / 명 영락(永樂) 18년) 2월 6일(갑진) 3번째 기사/ 경상좌도 수군도절제사 권만이 사람을 보내어 지방 특산물을 바치다/ 경상좌도 수군도절제사 권만(權蔓)이 사람을 보내어 지방 특산물을 바치니, 수행하는 대소 제신과 군사들에게 내려 주었다./ 【태백산사고본】 3책 7권 26장 A면/ 【영인본】 2책 374면/ 【분류】 *재정-진상(進上) / *왕실-사급(賜給)(www.history.go.kr 2009)

 

  권만 [記事] : 세종실록 12권/ 세종 3년(1421 신축 / 명 영락(永樂) 19년) 5월 14일(을해) 2번째 기사/ 병조에서 대열할 때의 편제에 대해 아뢰다/ 병조에서 계하기를, ꡒ대열(大閱)할 때에 모든 군사들은 모두 갑옷을 입고 병기(兵器)를 가지게 하며, 별군(別軍)은 각기 화통(火桶)을 가지게 하고, 또 2품 이상의 관원으로서 군직(軍職)을 가진 자는 오위(五衛)에 나누어 소속하게 하고, 육조(六曹)와 소속된 여러 관사(官司)는 아래와 같이 중외(中外) 오소(五所)에 나누어 소속하게 할 것이니, 중위(中衛)는 의정부․돈녕부(敦寧府)․이조․병조․대언사(代言司)․사헌부․ 사간원․삼군진무소(三軍鎭撫所)에서 각기 소속된 여러 관사(官司)를 거느리고, 도진무(都鎭撫) 최윤덕(崔閏德)․내금위 절제사(內禁衛節制使) 조연(趙涓)․충의위 절제사(忠義衛節制使) 석근(石根)에 속하게 하고, 좌소(左所)는 예조(禮曹)에서 소속된 여러 관사를 거느리고, 중군 총제(中軍摠制) 이담(李湛)․별시위 절제사(別侍衛節制使) 박구(朴矩)에 속하게 하고, 우소(右所)는 형조(刑曹)에서 소속된 여러 관사를 거느리고, 중군 도총제(中軍都摠制) 곽승우(郭承祐)․별시위 절제사(別侍衛節制使) 권만(權蔓)에 속하게 하고, 전소(前所)는 호조에서 소속된 여러 관사를 거느리고, 중군 총제 이흥제(李興濟)․별시위 절제사(別侍衛節制使) 한 장수(韓長壽)에 속하게 하고, 후소(後所)는 공조(工曹)에서 소속된 여러 관사와 한성부(漢城府)를 거느리고, 중군 동지총제 전흥(田興)․충의위 절제사 조대림(趙大臨)에 속하게 할 것이니, 이상은 중위(中衛)와 각소(各所)에 군직(軍職) 2품 이상을 나누어 소속케 한 것이고, 이 외의 여러 관사는 대열(大閱)과 보통 때의 연습에도 모두 참여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좌위(左衛)의 중소(中所)는 좌군 판부사(左軍判府事) 이화영(李和英)․중군 총제 이춘생(李春生)․내시위 절제사 송거신(宋居信)이 이에 속하고, 좌소(左所)는 좌군 도총제 이징(李澄)․충의위 절제사 남휘(南暉)가 이에 속하고, 우소(右所)는 우군 총제 신호(申浩)․충의위 절제사 조서(趙敍)가 이에 속하고, 전소(前所)는 좌군 총제 이흥발(李興發)이 이에 속하고, 후소(後所)는 좌군 동지총제 이종선(李種善)이 이에 속하며, 우위(右衛)의 중소(中所)는 좌군 판부사(左軍判府事) 박자청(朴子靑)․우군 동지총제 윤하(尹夏)가 이에 속하고, 좌소(左所)는 우군 도총제 홍부(洪敷)․중군 첨총제(中軍僉摠制) 심보(沈寶)가 이에 속하고, 우소(右所)는 우군 총제(右軍摠制) 유은지(柳殷之)가 이에 속하고, 전소(前所)는 별시위 절제사 왕인(王麟)이 이에 속하고, 좌소(左所)는 우군 동지총제 윤득홍(尹得洪)이 이에 속하고, 전위(前衛)의 중소(中所)는 내금위 절제사(內禁衛節制使) 조비형(曺備衡)․우사금 절제사(右司禁節制使) 문귀(文貴)가 이에 속하고, 좌소(左所)는 중군 총제(中軍摠制) 김월하(金月下)․우사금 절제사(右司禁節制使) 홍해(洪海)가 이에 속하고, 우소(右所)는 우군 동지총제 원민생(元閔生)이 이에 속하고, 전소(前所)는 좌군 동지총제 지백안(池伯顔)이 이에 속하고, 후소(後所)는 별시위 절제사 박지(朴芷)가 이에 속하고, 후위(後衛)의 중소(中所)는 우군 도총제 권희달(權希達)․중군 동지총제 이숙묘(李叔畝)가 이에 속하고, 좌소(左所)는 중군 동지총제 허권(許權)이 이에 속하고, 우소(右所)는 별시위 절제사 박성양(朴成陽)이 이에 속하고, 전소(前所)는 중군 총제 박광연(朴光衍)이 이에 속하고, 후소(後所)는 우군 동지총제 홍섭(洪涉)이 이에 속하게 하며, 이상의 군직(軍職) 2품 이상은 진도(陣圖)를 예습(?習)하게 하소서.ꡓ하니, 상왕이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4책 12권 4장 B면/ 【영인본】 2책 432면/ 【분류】 *군사-병법(兵法) / *군사-군정(軍政)(www.history.go.kr 2009)

 

  권만 [記事] : 세종실록 12권/ 세종 3년(1421 신축 / 명 영락(永樂) 19년) 6월 2일(계사) 2번째 기사/ 박성양․박광연․권만을 각각 경상․충청․전라도 병마 도절제사로 삼다/ 박성양(朴成陽)으로 경상도 병마도절제사를 삼고, 박광연(朴光衍)으로 충청도 병마도절제사를 삼고, 권만(權蔓)으로 전라도 병마도절제사를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4책 12권 7장 B면/ 【영인본】 2책 434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권만 [記事] : 세종실록 17권/ 세종 4년(1422 임인 / 명 영락(永樂) 20년) 9월 25일(기묘) 1번째 기사/ 조씨로 의정 궁주를 삼다/ 조씨(趙氏)로 의정 궁주(義貞宮主)를 삼으니, 조뇌(趙賚)의 딸이요, 이씨(李氏)로 혜순 궁주(惠順宮主)를 삼으니, 이운로(李云老)의 딸이다. 처음에 임금이 김익정(金益精)을 시켜 이원(李原)에게 의논하기를, ꡒ 조씨는 가례색(嘉禮色)이 뽑았으므로 빈을 봉하고자 하니, 어떠하냐.ꡓ하니, 원이 말하기를, ꡒ 조씨가 예를 이루지 못하였으니, 빈(嬪)을 봉(封)할 수는 없는 것이라.ꡓ하였는데, 임금이 그러하게 여겼다. 조대림(趙大臨)으로 평양 부원군(平壤府院君)을 삼고, 허조(許稠)로 이조 판서, 이지강(李之剛)으로 호조 판서, 김여지(金汝知)로 예조 판서, 탁신(卓愼)으로 의정부 참찬, 박광연(朴光衍)․ 권만(權蔓)으로 중군 총제(中軍摠制), 이수(李隨)로 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을 삼고, 조치(趙?)로 좌군 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를 삼아 그대로 전라도 수군 도안무처치사(全羅道水軍都安撫處置使)로 유임시키고, 조뇌(趙賚)는 우군 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 서미성(徐彌性)으로 사헌집의(司憲執義), 배윤(裵閏)으로 사헌장령(司憲掌令), 정갑손(鄭甲孫)으로 사간원 좌정언(司諫院左正言), 이흥발(李興發)로 충청도 병마도절제사(忠淸道兵馬都節制使), 현귀명(玄貴命)으로 경상도 병마도절제사(慶尙道兵馬都節制使), 박구(朴矩)로 경상좌도 수군 도안무처치사, 문귀(文貴)로 전라도 병마도절제사, 노원식(盧原湜)으로 황주 목사(黃州牧使), 김자지(金自知)로 판원주목사(判原州牧事), 최순(崔詢)으로 판춘천도호부사(判春川都護府事), 최견(崔?)으로 판안변도호부사(判安邊都護府使), 이상흥(李尙興)으로 판경원도호부사(判慶源都護府使)를 삼았다. 신(愼)은 가선(嘉善) 예문 제학(藝文提學)으로 뛰어올라 자헌(資憲)을 받게 되니, 사양하면서 말하기를, ꡒ신이 재주도 없이 여러 번 주상의 은덕을 입사와, 직위가 2품에 이르게 되나, 조금도 도움도 되지 못하고, 이제 또 뛰어서 재보(宰輔)의 임명을 받게 되니, 반드시 벼슬자리만 차지하고 있다는 기롱만 들을 것입니다.ꡓ하매, 임금이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신(愼)은 겸손하고 고요하여, 주장한 것이 분명하고 정성스러워서, 외화(外華)는 없으나, 학문은 정밀하였고, 동지(動止)가 법도가 있었다. 임금이 그의 어짊을 알고 가려서 달리 대접한 것이다. 뇌(賚)는 의정 궁주(義貞宮主)의 부친으로 상호군(上護軍)에서 가선(嘉善) 을 받게 되고, 치(?)는 왜(倭)를 잡았다는 공로로 동지총제(同知摠制) 휘하(麾下)로 옮기게 된 것이요, 전(前) 동정(同正) 정숭립(鄭崇立)은 사직(司直)이 되고, 전(前) 천호(千戶) 박현우(朴賢祐)․김득명(金得明)은 위용 장군(威勇將軍)이 되고, 또 군공(軍功)으로 일등 선군(一等船軍)은 하번 갑사(下番甲士)에서 한 등급을 올려 주고, 이미 공패(功牌)를 받은 염간(鹽干)에게는 해령 대장(海領隊長)을 시키고, 이등 선군(二等船軍)은 해령(海領)에서 한 등급을 올려 주게 하고, 이미 공패(功牌)를 받은 염간(鹽干)에게는 해령 대부(海領隊副)를 시키고, 공패(功牌)가 없는 자에게는 공패를 주게 하고, 삼등(三等)에는 각기 쌀[米] 넉 섬, 면포(綿布) 세 필을 내리고, 또 윤득민(尹得民)에게는 상(賞)으로 상호군(上護軍) 을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6책 17권 29장 B면/ 【영인본】 2책 503면/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사급(賜給)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www.history.go.kr 2009)

 

  권만 [記事] : 世宗實錄 19卷/ 세종 5年(1423 癸卯 / 명 영락(永樂) 21年) 2月 5日(丙辰) 7번째 기사/ 총제 권만의 졸기/ ○摠制 權蔓 卒, 致賻。/ 【태백산사고본】 6책 19권 12장 B면/ 【영인본】 2책 524면/ 【분류】 *인물(人物) / *왕실-사급(賜給)(www.history.go.kr 2009)

 

  권만(權蔓) : [요약정보] 생년 ?(미상), 졸년 1423(세종 5), 시대 조선 전기, 본관 미상, 활동분야 무신 > 무신/ [상세내용] 권만(權蔓)에 대하여 : 미상∼1423년(세종 5). 출사 시기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1409년(태종 9)에 영해부사(寧海府使)를 거처 함길도도순문사(咸吉道都巡問使)를 지냈다. 세종 때 대마도 왜적의 약탈이 점점 심하여지자 1419년(세종 1)에 권만과 이천(李?)은 경상해도 조전절제사(慶尙海道助戰節制使)로 삼고 이지실(李之實)은 충청해도 조전절제사 박초(朴礎)는 전라 조전절제사로 삼아 왜적을 소탕하게 하였는데 이 때에 권만이 길을 떠날 때 세종이 환관 박성우(朴成祐)에게 명하여 특별히 전송하게 하였다. 벼슬은 절제사(節制使) 등을 두루 거처 중군총제(中軍摠制)까지 올랐고 권만이 죽자 왕이 부의(賻儀)를 내려주었다./ [참고문헌] 朝鮮王朝實錄 세종/ [집필자] 권이태(daum 2012)

 

  권만 : 김서형(金瑞亨)/ [부] 성명 : 김효온(金孝溫) [조부] 성명 : 김자첨(金子瞻) [증조부] 성명 : 김구정(金九鼎) [외조부] 성명 : 권만(權蔓) [처부] 성명 : 강재(康載) [출전]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규장각[奎106]) 수정일 수정내역 2005-11.../ people.aks.ac.kr(daum 2012)

 

  권만 : 네이트 한국학/ (父) : 김효온(金孝溫) 조부(祖父) : 김자첨(金子瞻) 증조부(曾祖父) : 김구정(金九鼎) 외조부(外祖父) : 권만(權蔓) 처부(妻父) : 강재(康載) 네이트 푸터 영역 서비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광고문의 | 네이트.../ koreandb.nate.com(daum 2012)

 

  권만 : 청해이씨 청해백 자 맹중숙계 조선왕조실록 사료집(靑海李氏 靑海伯 子.../ 작년, 2011년 11월 30일/ 禮曹率所屬諸司, 中軍摠制李湛、別侍衛節制使朴矩。 右所: 刑曹率所屬諸司, 中軍都摠制郭承祐、別侍衛節制使權蔓。 前所: 戶曹率所屬諸司, 中軍摠制李興濟、別侍衛節制使韓長壽。 後所: 工曹率所屬諸司, 漢城府中軍同知摠制田興.../ 조회수: 265(dau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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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방문 971

 

  예천군노인복지회관(慶北道黨 女性委員會 설맞이 어르신 떡국 나눔 奉仕 ; 醴泉郡老人福祉會館에서 열려) [記事] : 경북도당(위원장 강석호) 여성위원회(위원장 김인중)가 설을 맞이하여 소외된 어르신들을 모시고 사랑의 떡국 나눔 봉사활동을 펼쳐 지역사회의 귀감이 되고 있다. 2013년 2월 6일 오전 이한성 국회의원 지역구인 예천군에 소재한 노인복지회관(관장 김정표)에서 북부지역 담당 도당여성위원회 이원자 부위원장 등 20여명이 예천지역의 형편이 어려운 200여명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여성위원회에서 준비한 떡국을 정성을 다해 끓여 대접하면서 따뜻한 정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행사에 동참한 이한성 국회의원 부인 이은희 여사는 “떡국과 함께 따뜻한 마음까지 전달되었으면 한다”며 “멀리 예천까지 방문해 뜻 깊은 행사를 준비해주신 강석호 도당위원장과 여성위원회에 감사드린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김인중 여성위원회 위원장은 ‘즐겁고 풍요로운 설 명절이 어려운 이웃들에게 외로운 시간이 될 수 있어 어르신들께 마음을 전달하고자 여성위원회에서 작은 정성을 모아 어르신들이 떡국을 드시고 희망찬 한해를 보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원자 예천소속 부위원장은 “이렇게 마음이 따뜻한 행사를 우리지역에서 갖게 해주신 여성위원회에 고마움과 이를 계기로 예천을 홍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며 “앞으로도 이런 행사를 자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醴泉뉴스 2013년 02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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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읍 상설시장(慶北道 地方公務員敎育院 道民과 함께하는 따뜻한 설맞이 '傳統市場 場보기') [記事] : 경상북도 지방공무원교육원 정강수 원장을 비롯한 35명의 직원들은 2013년 2월 6일 설 명절을 앞두고 예천읍 상설시장을 찾아 전통시장 이용 캠페인을 벌이고 제수용품과 참기름 등 지역 특산물을 구입하는 전통시장 장보기 행사와 소비자 물가 점검을 실시했다. 이번 행사는 설 명절을 앞두고 인터넷 상거래와 대형마트 증가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통시장의 활성화에 기여하고, 또한 명절을 앞두고 요양원을 직접 찾아가 노인들을 위로하고 온정을 같이 나누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이번 전통시장 장보기는 최근 치솟는 소비자 물가를 점검하고 어려움에 처해있는 전통시장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한편, 우리 농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전통시장 이용 캠페인과 더불어 설 명절 차례상에 올릴 수 있는 우리 먹거리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3-02-06 오후 1:4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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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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