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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213) : 권상로(총장)(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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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러한 불교개혁론이 根底에는 한국 불교의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정신이 자리하고 있음을 주목해야만 한다. 사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근대 학문의 전제 조건은 자기 자신까지도 비판의 대상에 올려놓을 수 있는 냉철한 비판 의식의 유무이다. 권상로는 한국 불교를 禪도 아니요 敎도 아닌 畸形的 불교라고 비판하면서, 불교의 쇠퇴는 결국 國運의 침체와 倫常의 퇴폐로 이어지게 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22) 물론 불교의 쇠퇴는 조선 500년 간의 정치적 탄압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傳統과 我執에만 얽매어 있는 불교계의 無事安逸을 비판하기도 한다.23) 그는 나아가 이러한 무사안일의 원인으로 자신감과 미래에 대한 낙관적 희망의 결여를 꼽으면서, 불교가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청년들의 흥기가 필수적임을 역설하고 있다.24) 특히 종교간의 경쟁은 점점 치열해 가는데 新舊 세력간에 갈등의 골만 깊어 가는 당시의 불교계의 현실을 苦觀으로 파악하면서, 양자의 중립적인 위치에서 화해를 촉구하고 있음이 또한 주목된다.25) 결과적으로 이러한 비판적 인식이 있었기에 불교 개혁의 청사진도 나올 수 있었던 것이며, 또한 이러한 비판 의식은 그의 불교학이 근대성의 기반 위에 서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가 여기에만 머물렀다면 그의 불교 연구가 결코 근대성을 확보했다고 평가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것을 뛰어 넘어서 한국 불교를 史的으로 조망했다는 점이 그를 근대 한국 불교학 성립의 공로자로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더 발전된 방법론을 적용한 철학적, 과학적 불교 연구는 한참 뒤에야 나오게 된 것이지만, 그러한 발전된 연구를 가능케 해 주는 자료의 체계적 정리라고 하는 측면에서 한국 불교사의 정립은 커다란 의의를 갖는 것이며, 바로 여기서 근대 한국 불교학의 여명은 밝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進化論的 歷史觀에 의해 退步가 아닌 進步라는 개념으로 역사를 파악하게 된 것이니, 先聖이나 祖師들을 무조건 숭배하고 역사를 聖人 시대로부터의 타락이나 퇴보로 여기는 전통적 역사 인식의 극복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불교사를 서술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비판적인 안목을 보여주는 것으로, 불교학의 근대화는 여기에서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방법론적으로 볼 때, 역사학적 접근 방법에 의한 자료의 수집은 또 다른 종류의 다양한 비교 연구를 가능케 하는 기초적인 작업이라는 점에서 방법론상의 근대성 또한 높게 평가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근대 한국 불교학의 성립기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시기는 역사학적 방법론에 입각한 자료의 축적과 정리로 특징지울 수 있으며, 이러한 작업을 선구적으로 해 나갔다는 점에서 권상로를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즉 최초의 한국 불교 역사서라는 지위를 점하고 있는 <朝鮮佛敎略史>(1917) 이외에도 필생의 작업으로 <韓國寺刹全書>, <李朝實錄佛敎?存>, <韓國佛敎資料?>, <三國史記佛敎?存>, <增補文獻備考佛敎?存>, <高麗佛敎?存> 등의 자료집을 내놓음으로써 한국 불교사 서술을 위한 기초를 제공했다고 하는 점에서 근대 한국 불교학의 성립에 기여했던 것이다.26) 한편 이러한 불교 사서들에는 한국 불교학사상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많은 논점들을 담고 있어서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참고도서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예컨대 그는 최초로 한국불교사에 대한 시대구분을 시도하였는데,27) 당시의 한국 불교를 과거 탄압받았던 불교가 다시 태어나기 위한 몸부림을 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更生過渡時代라고 이름 붙인 것이 주목된다.28)
또한 그는 한국불교의 源流를 파악하는데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는데, 이는 한국 불교의 정통성을 확립한다든지 개혁의 이념을 정립한다든지 하는 작업과 같은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한국 불교 종파의 기원 문제라든지, 法統 규명, 그리고 禪의 본질 논쟁 같은 것들이 그 예이다. 우선 한국 불교 종파의 기원에 대해 그는 최초의 저서인 <조선불교약사>의 부록에 <諸宗宗要>를 두어서 한국 불교사에 등장하는 諸宗의 宗要를 상술하였으며, 이후 논문을 통해서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데, <불교>지 54호(1928, 11)부터 61호(1929, 7)까지 ‘朝鮮에서 自立한 宗派’라는 제목 하에 ꡐ華嚴宗ꡑ, ꡐ念佛宗ꡑ, ꡐ律宗ꡑ, ꡐ曹溪宗ꡑ, ꡐ神印宗과 摠持宗ꡑ, ꡐ天台宗과 始興宗ꡑ으로 나누어 한국 불교 종파의 연혁을 논구하는 글을 연재하고 있다. 한국 불교 종파의 기원을 탐구하는 이런 작업은 護敎的 敎理史에서 벗어나 불교 종파의 변천과 사회와의 관계를 추적할 수 있는 재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것인데, 그의 작업이 후학들의 종파 연구에 기본이 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두 번째로 한국 불교의 宗祖, 또는 法統 규명 문제에 대해서,29) 그는 이른바 道義 종조설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30) 사실 道義는 禪宗 九山門 중에서도 역사가 가장 오래된 迦智山의 開祖라는 점에서 그를 宗祖로 내세우는 것이 상당한 타당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道義 이후 고려 중기까지의 傳法 관계가 不分明하다는 문제가 있다. 권상로도 이에 대해 말하기를, “曹溪宗의 宗祖가 當然히 道義國師임은 躊躇할 바 아니언마는 太古國師를 宗祖로 崇戴하지 아니치 못하게 된 理由가 한가지 있었으니 그것은 별 것이 아니라, 卽是道義國師로부터 太古師에 이르기까지의 傳法系統이 亦是 失傳하는 주비에 들어가고 없는 까닭이었다. …31) ”라고 하여 太古宗祖說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심정적으로는 道義를 종조로 내세우려고 함을 강하게 내비치고 있다. 실제 그는 <忠州靑龍寺事蹟>이라는 자료에 의거하여 道義로부터 太古에 이르는 系譜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32) 결국 그의 道義종조론은 太古종조론을 소급시킨 셈이지만, 그가 古書房에서 필사했다고 하는 자료의 신빙성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그는 普照知訥이 曹溪宗을 開宗한 것이라는 설에 대해서는 극력 비판을 가하고 있는데, 그런 오해가 생겨나게 된 이유는 普照國師가 曹溪山(松光山)에 거하게 되면서, 그 후손들을 ꡐ조계산 第몇世ꡑ라고 쓰게 되니, 이후 山字와 宗字를 혼동하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33) 세 번째 한국 불교의 원류를 파악하기 위한 또 하나의 논쟁점은 이른바 三種禪 논쟁인데, 그는 중앙불교전문학교 교수 시절 강의용 교재로 집필했던 <韓國禪宗略史>에서 ꡐ禪門에 對한 論爭ꡑ이라는 제목으로, 백파긍선(白坡亘璇, 1767˜1852)의 <선문수경(禪門手鏡)>으로부터 축원지하(竺源震河, 1861˜1926)의 <선문재정록(禪門再正錄)>에 이르는 논쟁의 과정을 간단히 소개하고 있다.34) 책의 성격상 간단한 논술로 이루어져 논쟁에 대한 그 자신의 견해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한국 선종의 약사를 다루면서 이 논쟁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는 자체가 중요한 관점으로서 뒷날의 계속된 토론을 이끌고 있다고 생각된다.
Ⅳ. 끝맺는 말 : 지금까지 권상로가 근대 한국 불교학 형성에 끼친 공로를 살펴보았다. 근대 한국 불교학의 1세대는 역사학적 방법론에 입각한 자료의 축적으로 특징 지울 수 있는 시기이다. 그는 李能和(1869˜1943)와 더불어 한국 근대 불교학의 1세대로서 근대적인 종교 연구 방법론을 불교 연구에 적용하였으며, 그 결과 많은 자료와 중요한 업적을 남겨 한국 불교학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고 평가된다. 또한 한국 불교학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논쟁점들을 최초로 문제삼고 있다는 점에서 근대 한국 불교학의 성립은 그로부터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는 분명 전통 교학자로서 근대적인 학문방법론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아직도 미흡한 점이 많이 있고, 또 실제로 많은 부분에서 일정한 한계를 보여 주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당시 한국 불교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할 때, 근대적인 방법론 천착을 위해 상당히 노력한 흔적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위에서 지적한 종교학 방법론 이외에도, 예컨대 文體의 측면에서 그 자신 漢學의 대가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글을 國漢文 혼용, 또는 순 한글로 쓰고 있으며, 당시 새로운 불교 연구방법론 확산을 위해 불교 잡지에 梵語 연구를 위한 참고 자료를 남기고 있는 등,35) 근대적인 실험 정신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등이 높이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본다. 따라서 그는 전통 교학과 근대불교학의 접점에 위치해 있다는 평가가 가장 적절할 것이다. 다만 그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인 친일 문제로 인해 그에 대한 적극적인 평가가 조심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든 그의 불교학에 대한 좀더 다양한 분석을 통해 한국불교학의 근대적 성격은 좀더 확실히 밝혀질 수 있으리라고 기대해 보는 바이다. 주제어 : 정체성, 방법론, 종교다원주의, 비교법, 진화론, 종교유형론, 불교개혁론, 종교기원론, 한국불교사, 평등주의
=Modern Characteristics of the Buddhism by Kwon Sang-ro / Lee Jae-hun / In general, it is the application of the methodology that differentiates the modern science from the traditional approaches to the human knowledge. In that sense, Kwon Sang-ro is the pioneer who introduced the modern methodology to the study of Buddhism. And indeed, he clearly marks the beginning of the true modern Buddhism of Korea. / Kwon Sang-ro seems to have an accurate understanding on both of the comparative and evolutionary approach that were the only available heuristics in the early stage of the religious study, and based on that, developed quite unique theories on the religious typology and the origin of religion as well. Furthermore, he come to a clear recognition of the religious pluralism, where he believes, Buddhism must strive for the promotion and renovation in order to survive and progress as well in the time of religious rivalries. It is the motive behind which his effort has been put up with in the search for the methodology of the modern Buddhism. / Kwon Sang-ro, based on the thoroughly pragmatic and primitive egalitarianism embedded in the Buddhism, shows a level-headed critical ethos on the real picture of the Korean Buddhism, in that he left behind with a large volume of pioneering works as concentrating on the establishment of the history of Korean Buddhism in accordance with the evolutionary approach. In addition, he has steered the orientation of the Korean Buddhism by placing into the academic arena for such issues as the periodic classification, the origin of branches of thoughts, clarification on traditions, debate on the nature of Korean Zen Buddhism, etc.(미주현대불교 2008)
권상로 [記事] : 퇴경 권상로의 문학적 업적/ redddoors님/ 2006-07-31 14:23/ 신고 / 사찰 편액을 찾아서】(26)권상로의 심원사․표충사 편액 / 명주전…예서체 필획 진중한 글씨 / 고령정…꾸밈없어 보는 눈 편해/ ◇철원 심원사 ꡐ명주전ꡑ. / ◇밀양 표충사 ꡐ고령정ꡑ. / 퇴경 권상로(退耕 權相老․1879~1965)는 1896년 문경 김룡사(金龍寺)에서 서진(瑞眞)을 은사로 득도하였다. 그는 김룡사 불교전문강원을 마치고, 원종(圓宗) 종무편집부장, 문경 대승사(大乘寺) 주지, 조선불교월보사 사장, 불교사 사장, 중앙불교전문학교 교수, 불교조계종원로회 원장, 동국대학교 초대총장 등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퇴경은 일생을 한국불교학의 정립과 불교사상의 선양에 전념하였던 근대의 고승이며, 조선불교사 등 30여 종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책을 펴낸 위대한 불교학자였다. 퇴경은 7세부터 10여 년 간 서당에서 한학을 배워 서법에 구애받지 않고 각 체에 능했으며, 학자다운 고박(古朴)한 글씨를 썼다. 현재 사찰에 남아 있는 편액으로는 서울 화계사 <삼각산제일선원>, 철원 심원사 <명주전>, 밀양 표충사 <예제문>, <고령정>, 문경 대승사 <사불산대승사>, 영주 희방사 <희방사> 등이 대표적이다. 철원 심원사 <명주전> 편액에는 ꡐ임인자자일 팔십사세 사문 퇴경 상로(壬寅自恣日 八十四歲 沙門 退耕 相老)ꡑ라는 관지와 ꡐ퇴경 권상로인(退耕, 權相老印)ꡑ이라는 방인 2과가 있다. 명주전은 명부전, 지장전, 시왕전의 이칭으로 지장보살이 명주(明珠)를 들고 있기 때문에 붙인 전각의 명칭이다. 이 편액은 1962년 자자일, 즉 하안거가 끝나는 마지막 날인 7월 보름에 쓴 것이다. 편액의 글씨는 질박(質朴)한 필획의 예서로 진중(鎭重)한 서미(書味)를 지녔다. 밀양 표충사 <고령정> 편액은 변죽 없는 통판에 음양각으로 글씨를 새긴 것으로, 액판 좌측에 ꡐ퇴경(退耕)ꡑ이라는 관지만 있다. 이 편액은 현재 박물관 내에 전시되어 있는데, 1839년(헌종 5)에 시작된 표충사의 이전과 관련된 편액으로, 표충사가 옛 영정사(靈井寺) 터로 옮겨온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편액의 글씨는 꾸미지 않은 고박(古朴)함에 의연한 문기(文氣)가 어려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글씨이다. 안병인 <대한불교진흥원>(daum 2008)
권상로 [記事] : 퇴경당권상로대종사사적비(退耕堂權相老大宗師事蹟碑)/ 조회(184) / http://blog.joins.com/mulim1672/8146876/ 등록일 : 2007-06-16 00:50:00 / 퇴경당권상로대종사사적비(退耕堂權相老大宗師事蹟碑) : 이 雲達山 金龍寺는 예부터 많은 高僧大德이 난 伽藍이다. 여기가 敎宗의 講伯이자 學壇의 銳學이셨던 退耕堂 權相老 선생이 出家하여 부처의 거룩을 깨치셨으니 이는 그 敦厚한 聲名과 더불어 길이 빛날 사연이다. 선생은 佛紀 2423년(公元 1879) 2월 28일 산좋고 물맑은 聞慶고을 山北面 石鳳里에서 權賞泳씨의 맏이로 태어나 불기 2509년(1965) 4월 19일 享年87세로 世緣을 다하시니 法臘은 67이셨다. / (퇴경당 권상로 대종사사적비 : 제자인 석전 이병주 글을 쓰고 여초 김응현 쓰다) / 貫鄕은 安東이고 退耕은 雅號이자 堂號이며 法階는 大宗師셨다. 타고남이 슬겹고 다사하신 데다 공부가 워낙 뛰어나서 진작부터 大成할 조짐이 넘났다고 한다. 일찍이 이웃마을 私塾에서 科業을 위한 經史와 詩賦를 專心타가 東學民亂을 들러싼 內外情勢를 탓하여 發心한 나머지 佛紀2440年(1896년) 4월 사무친 願을 세워 이 金龍寺 瑞眞 스님을 恩師로 歸依 得度하여 一代 時敎를 마치고 佛紀2447年(1903) 5월 永安 스님 밑에서 入室 逮幢하셨다. 이어 金龍寺 부설인 慶興과 성의강원의 강사를 역임하고 佛紀2450년(1906) 上京하여 東國大學校의 搖籃으로 新學問의 發祥인 明進學校를 나오셨다. 다시 四佛山 大乘寺 住持를 거쳐 佛紀2456년(1912)에는 中央宗務院 編輯部長에 選任되어 朝鮮佛敎月報와 佛敎誌를 主管하시며 衆論을 통한 宗風振作에 이바지한 功이 크셨다. 한편 金龍寺中央學校와 尙州 普光學校의 講師를 역임한 뒤 宗立學府인 中央佛敎專門學校 敎授로 就任하여 校舍新築과 아울러 改名한 惠化專門學校 敎授 在任 中에 日帝의 덧없는 特別措置令으로 억압한 뒤 차마 廢校되자 佛敎總本山敎學硏修委員長에 轉任돼 總務院에서 執務 佛紀2489년(1945) 8,15 光復으로 復校되어 改名한 東國大學校 敎授로 輔任되어 새로 자리잡은 南山 기슭 東岳을 오르내리시며 敎學에 몸바치셨다. 그 뒤 불기2494년(1950) 6,25動亂으로 釜山에 南下하여 學長職을 맡아 校勢를 擴充하여 불기2497년(1953) 2월 綜合大學校로 昇格시켜 初代總長에 취임하셨다. 그 해 停年退任과 함께 名譽敎授로 推戴되고 佛紀2506년(1962) 4월에는 東國大學校 大學院에서 名譽哲學博士 學位를 받고 8월에는 文化大勳章을 타셨다./ (퇴경당 권상로 사적비 비음) : 가만히 생각건대 선생의 평생은 오로지 敎學으로 一貫하셨지만 모름지기 典籍과 씨름하신 勇往精進의 연속이셨다. 항상 쓰고 베끼신 因果가 방대한 等身의 編著이니 특히 朝鮮佛敎史와 朝鮮文學史를 비롯하여 70년 課業인 朝鮮地名沿革考와 朝鮮寺刹全書는 金鼎의 一鸞이다. 그 浩瀚한 섭렵과 다함 없는 울력에는 그 누구도 驚服치 않을 수 없다. 그리고 時調의 漢詩譯과 唐詩의 時調譯인 退耕譯詩集과 말씀하시듯 쉽게 풀이한 三國遺事譯講과 觀音禮文講義는 共譯인 불교성전과 함께 譯述의 대표작이다. 또한 六書의 論證인 字學管窺는 知音 董作賓의 贄意로 中國大陸雜誌에 실려 韓國字學을 跨하였고 詩文遺稿인는 正楷로 草하신 原考대로 東國大圖書館 등에 간수되어 두루 활용되고 있다. 무릇 선생의 手不釋卷은 博覽强記를 보태어 無不通知의 該搏을 자아내서 字典과 辭典이오 事典이 無色한 學海라는 讚嘆을 누리셨다. 그러나 선생은 그 높깊은 學問을 自利보다 오히려 他利에 훈수하신 점이 남다른 偉德이시니 그 佛性으로 가다듬은 자상으로의 指導와 辨證으로 剔抉한 考證을 반기를 들리듯 布施한 尊宿이셨다. 이에 선생의 우람스런 信行과 無可無不可의 事蹟을 우러러 받드는 후학들이 至誠을 모아 선생의 因緣이 깃든 이 金龍寺 앞뜰에 터를 가려 반석을 다지고 長毋相忘의 紀要를 銘刻하는 바다. 碑字는 제자 李丙疇와 金膺顯이 짓고 썼으며 刻字와 장엄은 金明圭가 도맡아서 마물렸다.(完)/
* 동국대교육대학원에서 석전 이병주 선생님에게 <韓國 漢詩의 理解>란 선생의 저서를 과목으로 들었다 그 때 이 책을 쓰시게 된 동기를 말씀하실 때 퇴경당 권상로 선생과 우전 신호열 선생에게 공부하던 시절의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마침 김용사일주문 옆에 석전 선생이 비문을 지은 권상로 선생 사적비가 있어 담아와 정리해 보았으나 흐릿해 원문이 제대로 옮겨졌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있었으면 그 자리에서 정리를 했을 터인데 디카에 담아 집에 와 정리했기에 확대해서 보아도 흐릿한 한자어가 있어 오류가 있을 것이다. 퇴경당은 친일승으로 알려졌으나 그분의 불교 교학과 우리 국문학에 대한 공과는 인정해야 할 것이기에 참고삼아 올려본다.) / * 우리나라 한시를 공부하시는 분들에게 민음사에서 나온 <李炳疇 著 韓國 漢詩의 理解>의 일독을 권합니다. 석전 선생님의 서울 고유의 언어와 함께 해박한 설명으로 엮은 한편의 수필을 읽는듯 새겨 읽는 맛이 따사롭습니다./ (운달산 김용사 일주문 바로 옆에 있다)(daum 2008)
권상로 [記事] : 예제문(禮制門 退耕 權相老(1879~1965)/ 조회(98) / http://blog.joins.com/mulim1672/ 등록일 : 2006-05-13 07:45:32/ 권상로 선생은 <사찰전서>를 쓴 불교 학자로 그리고 동국대 총장을 지낸 학승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 우리 시조를 한역하기도 한 분으로 큰 학자이었기에 붓을 들어 인연있는 사찰에 편액을 많이 단 것 같습니다 아래는 그분에 관한 자료입니다. <1896년 문경 김룡사(金龍寺)에서 서진(瑞眞)을 은사로 득도하였다. 그는 김룡사 불교전문강원을 마치고, 원종(圓宗) 종무편집부장, 문경 대승사(大乘寺) 주지, 조선불교월보사 사장, 불교사 사장, 중앙불교전문학교 교수, 불교조계종원로회 원장, 동국대학교 초대총장 등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퇴경은 일생을 한국불교학의 정립과 불교사상의 선양에 전념하였던 근대의 고승이며, 조선불교사 등 30여종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책을 펴낸 위대한 불교학자였다. 퇴경은 7세부터 10여 년 간 서당에서 한학을 배워 서법에 구애받지 않고 각 체에 능했으며, 학자다운 고박(古朴)한 글씨를 썼다. 현재 사찰에 남아 있는 편액으로는 서울 화계사 <삼각산제일선원>, 철원 심원사 <명주전>, 밀양 표충사 <예제문>, <고령정>, 문경 대승사 <사불산대승사>, 영주 희방사 <희방사> 등이 대표적이다. 철원 심원사 <명주전> 편액에는 ꡐ임인자자일 팔십사세 사문 퇴경 상로(壬寅自恣日 八十四歲 沙門 退耕 相老)ꡑ라는 관지와 ꡐ퇴경 권상로인(退耕, 權相老印)ꡑ이라는 방인 2과가 있다. 명주전은 명부전, 지장전, 시왕전의 이칭으로 지장보살이 명주(明珠)를 들고 있기 때문에 붙인 전각의 명칭이다. 이 편액은 1962년 자자일, 즉 하안거가 끝나는 마지막 날인 7월 보름에 쓴 것이다. 편액의 글씨는 질박(質朴)한 필획의 예서로 진중(鎭重)한 서미(書味)를 지녔다. 밀양 표충사 <고령정> 편액은 변죽 없는 통판에 음양각으로 글씨를 새긴 것으로, 액판 좌측에 ꡐ퇴경(退耕)ꡑ이라는 관지만 있다. 이 편액은 현재 박물관 내에 전시되어 있는데, 1839년(헌종 5)에 시작된 표충사의 이전과 관련된 편액으로, 표충사가 옛 영정사(靈井寺) 터로 옮겨온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편액의 글씨는 꾸미지 않은 고박(古朴)함에 의연한 문기(文氣)가 어려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글씨이다. 안병인<대한불교진흥원>(daum 2008)
권상로 [記事] : 용문면 하학리 텃골 출신인 퇴경 권상로(退耕 權相老․1879~1965, 東國大 總長)의 저술이나 관련 내용이 실린 저술이다./ 지식자료 ( 총 17 건 )/ 관련순 등록일순 가격순 평가순/ 1) 논설 (論說) : 조선불교 (朝鮮佛敎)와 제대거사 (諸大居士) / 퇴경 (退耕) 권상로 (權相老) (2,500원, 10Page) / 저자 : 권상로/ 제목 : 논설 (論說) : 조선불교 (朝鮮佛敎)와 제대거사 (諸大居士) / 퇴경 (退耕) 권상로 (權相老)/ 발행학회 : 불교진흥회/ 출간년도 : 1916 / 카테고리: 논문 > 학술논문 > 인문과학 ㅣ 등록일 : 2003/07/10 ㅣ 등록자: 학술정보 / 태그: 朝鮮佛敎 , 諸大居士 , 退耕 , 권상로 , 논설// 2) 논설 (論說) : 불교보급적 2 대사업 (佛敎普及的二代事業) / 퇴경 (退耕) 권상로 (權相老) (2,500원, 6Page) / 저자 : 권상로 제목 : 논설 (論說) : 불교보급적 2대사업 (佛敎普及的二代事業) / 퇴경 (退耕) 권상로 (權相老) 발행학회 : 불교진흥회 출간년도 : 1916 / 카테고리: 논문 > 학술논문 > 인문과학 ㅣ 등록일 : 2003/07/10 ㅣ 등록자: 학술정보 / 태그: 佛敎普及的二代事業 , 退耕 , 권상로 , 논설 , 論說// 3) 교리 (敎理) : 천 (天)과 정토 (淨土)의 계설 (界說) / 료사범부 (了事凡夫) 권상로 (權相老) (2,500원, 6Page) / 저자 : 권상로 제목 : 교리 (敎理) : 천 (天)과 정토 (淨土)의 계설 (界說) / 료사범부 (了事凡夫) 권상로 (權相老) 발행학회 : 불교진흥회 출간년도 : 1916 / 카테고리: 논문 > 학술논문 > 인문과학 ㅣ 등록일 : 2003/07/10 ㅣ 등록자: 학술정보 / 태그: 了事凡夫 , 敎理 , 淨土 , 界說 , 계설// 4) 불교결의 (佛敎決疑) : 제 12 문답 ; 문자 (問者) 함석기 (咸錫璣) , 퇴경 (退耕) 권상로 (權相老) 해답 (解答) (2,500원, 7Page) / 저자 : 권상로 제목 : 불교결의 (佛敎決疑) : 제 12 문답 ; 문자 (問者) 함석기 (咸錫璣) , 퇴경 (退耕) 권상로 (權相老) 해답 (解答) 발행학회 : 불교사(불교) 출간년도 : 1926 / 카테고리: 논문 > 학술논문 > 인문과학 ㅣ 등록일 : 2003/07/10 ㅣ 등록자: 학술정보 / 태그: 佛敎決疑 , 咸錫璣 , 問者 , 權相老 , 退耕// 5) 문답 (問答) : 불교결의 (佛敎決疑) ; 제 16 문답 양잠 (養蠶)의 범계여하 (犯戒如何) , 일신불자 (一信佛子) 문 (問) , 퇴경 권상로 (權 (2,500원, 6Page) / 저자 : 권상로,일신불자 제목 : 문답 (問答) : 불교결의 (佛敎決疑) ; 제 16 문답 양잠 (養蠶)의 범계여하 (犯戒如何) , 일신불자 (一信佛子) 문 (問) , 퇴경 권상로 (權相老) 답 (答) 발행학회 : 불교사(불교) 출간년도 : 1926 / 카테고리: 논문 > 학술논문 > 인문과학 ㅣ 등록일 : 2003/07/10 ㅣ 등록자: 학술정보 / 태그: 문답 , 一信佛子 , 佛敎決疑 , 問答 , 權相老// 6) 개화기잡지, 근대잡지, 불교계 잡지, 조선불교월보, 근대불교시가, 불교가요, 권상로, 개화기시가, a Buddhistic magazine, a magazine i (4,100원, 26Page) / 저자 : 김종진 ( Jong Jin Kim ) 제목 : 발행학회 : 한민족문화학회 출간년도 : 2007 / 카테고리: 논문 > 학술논문 > 어문학 ㅣ 등록일 : 2007/11/01 ㅣ 등록자: 학술정보 / 태그: 개화기잡지, , 근대잡지, , 불교계 , 잡지, , 조선불교월보,// 7) [나말여초] 나말여초 선종관련 논문요약 (1,000원, 8Page) / 우리나라 선종불교사에 대한 연구는 초기에 이능화, 忍滑谷快天, 권상로 등에 의해 정리되었는데, 이능화는 자료의 정리 단계에 머물러 있었고, 忍滑谷快天는 극히 개괄적으로 다루었으며, 권상로는 나말여초의 선종불교를 9산선문으로 소개하였다. 그 후에도 김영수, 김동화 등이 연구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이러한 연구들은 우리나라 섡ᄋ불교사 연구의 방향을 제시하고 자료를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하겠지 / 카테고리: 리포트 > 교육학 ㅣ 등록일 : 2002/04/16 ㅣ 등록자: pulchra1 ㅣ 구매평가 B / 태그: 나말여초 , 나말여초 선종사상사 , 나말여초 선종정책 , 나말여초 선종연구 , 나말여초 선종의 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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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