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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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222) : 권세개(박사)-권세구(전적)-권세원(독립운동가)-권수(감사)-권수(학유)-권수경(영화감독)-권수붕(박사)(附 예천방문 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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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개(權世개) : 1957- , 예천읍 상리 출신, 대창중(大昌中), 대창고(大昌高), 청주대, 한양대 행정대학원 졸업, 98년 필리핀 Gregorio Araneta대 행정학 박사, 환경관리공단(環境管理公團)에 근무하고 있다.(醴泉新聞 1998.3.12 1999.3.25)
권세개 : 수질환경관계법규/ 권세개저| 남양문화| 2005.05.15/ 현장 실무자와 수험생을 위한 지침서로서 최근개정법에 의한 예상문제 및 기출문제 상세해설.(daum 2010)
권세개 : 조직도 - 환경관리공단/ 김병호 각종 측정장비 및 차량관리 환경분석2팀 오화석 환경분석2팀장 권세개 KOLAS 및 정도관리 업무 홍대웅 악취관련 측정 및 분석업무 황용열 토양ㆍ지하수 분석.../ http://emc.or.kr(daum 2010)
권세개 : Notice/ 임소정 홍선희 일반계약직 5호(급) [소음정책개발담당] 고준희 임창우 권세개 홍현수 (이상 4명) 일반계약직 5호(급) [TCTO / 군창정비담당] 강민석 허우석 한.../ http://ekukka.co.kr(daum 2010)
권세개 : 12월 20일 한국환경공단 봉사팀방문/ Daum 카페 | 지난달, 2010년 12월 21일 (화)/ 한국환경공단 토양지하수분석팀에서 권세개 차장님 이하 직원분들이 참사랑 어르신들을 찾아 봉사하셨습니다. 시설청소, 어르신 발마사지, 어르신을 위한 노래잔치까지 너무도 따뜻하고 아름다운 모습 감사드립니다. 지역사회의.../ cafe.daum.net/ckaenddl/BxXv/ | 참둥이(dau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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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구(權世矩) : 조선 영조 때, 용문면 금당실(金塘室) 출신, 본관은 예천, 1752년(영조 28) 정시 문과(庭試文科)에 갑과(甲科)로 장원 급제하였다.(韓國人의 族譜, 英祖實錄)
권세구 [記事] : 영조실록 80권/ 영조 29년(1753 계유 / 청 건륭(乾隆) 18년) 10월 29일(경술) 2번째 기사/ 문과․무과의 전시를 설행하다/ 문과(文科)․무과(武科)의 전시(殿試)를 설행(設行)하여 권세구(權世矩) 등 34인을 뽑았다./ 【태백산사고본】 57책 80권 21장 A면/ 【영인본】 43책 501면/ 【분류】 *인사(人事)(www.history.go.kr 2009)
권세구 [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30년 9월 20일 (병신) 원본1111책/탈초본61책 (18/28) 1754년 乾隆(淸/高宗) 19년/ ○ 吏批啓曰, 成均司成李奎徽除授後, 過限未肅拜, 典籍權世矩受由過限未上來, 竝依例改差, 何如? 傳曰, 允。(www.history.go.kr 2009)
권세구(權世矩) : [시험관련 사항] 왕/년도 : 영조(英祖) 29년, 과거시험연도 : 1753 계유, 시험명 : 식년시(式年試), 등위 : 갑과1(甲科1)/ [인적 사항] 성명(姓名) : 권세구(權世矩), 본관(本貫) : 안동(安東)/ [이력 및 기타 사항] 전력(前歷) : 유학(幼學)/ [가족사항] 부(父) : 권만건(權萬建), 조부(祖父) : 권시일(權時一), 증조부(曾祖父) : 권흥문(權興門), 외조부(外祖父) : 유순(柳洵)(daum 2010)
권세구(權世矩) : [문과] 영조(英祖) 29년 (1753) 계유(癸酉) 식년시(式年試) 갑과(甲科) 1[장원(壯元)]위/ [인적사항] 생년 신축(辛丑) 1721년, 합격연령 33세, 본관 안동(安東)/ [이력사항] 전력 유학(幼學)/ [가족사항] [부] 성명 : 권만건(權萬建), [조부] 성명 : 권시일(權時一), [증조부] 성명 : 권흥문(權興門), [외조부] 성명 : 유순(柳洵)/ [출전]《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daum 2010)
권세구 : 네이트 한국학/ ...甲科 1위 권성(權晟) 안동(安東) - 권(權) 甲科 1위 권성(權() 1653 계사 안동(安東) - 권(權) 甲科 1위 권세구(權世矩) 1721 신축 안동(安東) - 권(權) 甲科 1위 권세항(權世恒) 1665 을사 안동(安東) - 권(權) 甲科 1위 권세형(權世衡.../ http://koreandb.nate.com(daum 2010)
권세구 : (5) 항재집(恒齋集) 해제/ 2010.03.12/ ...貢納하는 물품 가운데 들어 있는 人情木이라는 명목의 뇌물을 폐지할 것 등을 청한 내용이다. 卷2~3은 書이다. 權世矩에게 보낸 答書는 『近思錄』에 대한 問目에 답한 것이고, 鄭萬陽 형제에게 보낸 답서는 『家禮』에 대한 問目에.../ http://cafe.daum.net/nostalgia1007/ 달 밝은 窓 아래서(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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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세원(權世遠) : 1889(고종 26)-1945, 용문면 출신, 그는 1919년 4월 2일 용문면 상금곡리에서 수 백 명의 군중을 주동하며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곳의 만세운동은 권석인(權錫寅)이 고종 황제의 인산(因山)을 참례차 상경했다가 서울의 만세운동을 직접 목격하고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오면서 구체화되었다. 이에 평소 항일 의식이 투철하던 그는 권석인, 권석호(權錫虎), 권석효(權錫孝), 변용구(邊用九) 등과 함께 예천읍 장날인 3월 12일에 거사하기로 약정하고 독립선언서를 등사하는 등 준비를 진행하였다. 그런데 일경의 삼엄한 경계망으로 인하여 거사를 다음 장날인 3월 17일로 미루었으나, 이 때도 역시 일경의 철통같은 감시로 인하여 사전 탐지되어 중지하고 말았다. 이렇듯 거사가 지연됨에 따라, 그들은 어떠한 일경의 탄압과 경계에도 불구하고 거사를 단행하기로 뜻을 굳히고 4월 2일 오후 10시에 만세시위를 단행하였다. 그는 수 백여 명의 시위 군중의 선두에 서서 횃불을 앞세우고 면사무소와 동리 각처에서 시위를 전개하던 중 일경에 피체되고 말았다. 그는 이 일로 1919년 4월 9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언도받고 공소하였으나 5월 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이 3.1운동(1919)의 공훈을 기리어 대통령 표창(1992)을 추서하였다.(大韓民國 獨立有功者功勳錄 第10卷 國家報勳處 1993年 43쪽, 判決文 1919.5.5 大邱覆審法院, 3.1運動實錄 李龍洛 803쪽, 獨立運動史 國家報勳處 第3卷 418-419쪽, 獨立有功人物錄 1992)
권세원(權世遠) : 구분: 독립운동자공적자료/ 날짜: 1889-11-15/ 분류: 인물 > 독립운동가자료 > 독립운동자공적자료/ 제공: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유공자명(한글) 권세원 유공자명(한자) 權世遠/ 생존여부 사망/ 성별 남/ 생년월일 (양)1889년 11월 15일/ 사망년월일 (양)1945년 09월 07일/ 본적 1. 경상북도 예천군 龍門面 竹林里 26/ 독립운동당시 주소 慶北 醴泉郡 龍門面 竹林里 26/ 관리번호 6446/ 훈격 대통령표창/ 포상년도 1992/ 운동계열 3.1운동/ 독립운동 활동지역 醴泉/ 수형년수 징역 6월/ 공적개요 1919.4.3 慶北 醴泉郡 龍門面에서 權錫寅과 함께 독립만세 운동을 主導하여 독립만세를 先唱하고 운집한 군중과 같이 면사무소 앞길에서 시위하며 만세를 高唱하다가 被逮되어 懲役6月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심사년월 참조문헌 제목 관련 이미지/ 권석인 등 판결문 1p ,//
권세원(權世遠) : 용문면 죽림리 출신, 본관은 예천, 초간(草澗) 문해(文海)의 후손, 1919년 3.1운동 때 항일운동을 하여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醴泉鄕校誌 2004)
권세원(權世遠) : 수형인명부/ 구분: 독립운동가옥고(獄苦)기록/ 날짜: 1919-05-05/ 분류: 인물 > 독립운동가자료 > 독립운동가옥고(獄苦)기록/ 제공: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수형인명부 - 사료메타 상세 조회/ 이름(이명) 권세원/ 한자명 權世遠/ 생년월일 1889-11-15/ 본적 慶北 醴泉郡 龍門面 竹林洞 26/ 출생지 慶北 醴泉郡 龍門面 竹林洞 26/ 주소 慶北 醴泉郡 龍門面 竹林洞 26/ 직업 농업/ 비고/ 죄명 보안법위반/ 형기구분 징역-년 형기 징역 6월/ 복역월수 징역 : 6 집행유예 : 0 태 : 0/ 판결일자 1919/05/05 확정일자 1919/05/05/ 판결처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 소장처 경북 예천군 용문면 사무소//
권세원 : 예천군 출신 독립운동가 소개-권세원(權世遠) 선생/ 네이버 블로그 | 5년전, 2007년 9월 30일/ 권세원(權世遠) 1889.11.15~1945. 9. 7 경북 예천 3.1운동 대통령표창(92) 경북 예천(醴泉) 사람이다. 1919년 3월 권석인(權錫寅)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등사하여 각 동리에 배부하는 등 시위준비를 하다가 일경의 심한.../ blog.naver.com/hshork79/ 한국정신문화수도에서..(daum 2012)
권세원 : 1919년 권세원(權世遠) 대구복심법원 판결문/ 발행처 대구복심법원/ 발행일 1919/ 자료소개 징역 6월(원판결 취소)/ 본문요약 죽림동 밭에서 다중과 함께 한국독립만세를 외쳤다.(daum 2012)
권세원 : 독립유공자(공훈록) ㅣ 국가보훈처/ 대통령표창(92) 경북 예천 권세연 權世淵 의병 1836.~1899.12.10 애국장(90) 경북 봉화/ 권세원 權世遠 3.1운동 1889.11.15~1945. 9. 7 대통령표창(92) 경북 예천/ 권수동 權壽童 학생운동 1908.11.15~1949. 5.../ mpva.go.kr(dau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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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수(權綏) : 용궁현(龍宮縣) 출신, 본관은 안동, 예천군 계용(醴泉君季容)의 아들, 음사로 감사(監司)에 이르렀다.(竺山勝覽 1934, 醴泉郡誌 1939)
권수 : 자랑1763:정구령縣監(祝복천사.현예빈等/예천방문289)/작성자 장병창/ 東萊人麗末登第官至應敎麗朝政亂棄官來居于本縣九潭里後改名承源入享浣潭祠 金得男 麗朝登第官至吏曹參判 高士原 麗末登第本朝官至藝文館直提學 權綏 安東人登第官至監司 文傑 初名彬 政丞 龜之六世孫登第官至獻納出宰襄陽淸愼居官 </ http://ycg.kr(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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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수(權洙) : 예천 출신, 자는 학원(學源), 호는 월헌(月軒), 본관은 안동, 영로(永老)의 아들, 퇴계 이황의 제자이다. 천성이 강직하여 같이 어울리던 사람들이 꺼려했으나 뜻을 돈독히 하고 힘껏 노력하여 사마시에 합격하고, 1552년(명조 7) 식년문과에 병과 8위로 급제하자 문우들이 일시에 칭찬하여 말하기를, "경학을 겸비함은 중국 사신을 접빈할 때 매우 중요하다."라고 하였다. 학유(學諭)를 지냈고, 권시중(權是中)이 행장(行狀)을 썼다.(文科榜目, 조동윤 醴泉인터넷新聞 2001.10.8)
권수(權洙) : [시험관련 사항] 왕/년도 : 명종(明宗) 7년, 과거시험연도 : 1552 임자, 시험명 : 식년시(式年試), 등위 : 병과8(丙科8)/ [인적 사항] 성명(姓名) : 권수(權洙), 자 : 학원(學源), 본관(本貫) : 안동(安東)/ [이력 및 기타 사항] 소과 : 1546(병오) 생원시, 전력(前歷) : 생원(生員), 관직(官職) : 학유(學諭)/ [가족사항] 부(父) : 권영노(權永老)(daum 2010)
권수(權洙) : [문과] 명종(明宗) 7년 (1552) 임자(壬子)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8위/ [인적사항] 자 학원(學源), 본관 안동(安東)/ [이력사항] 전력 생원(生員), 관직 학유(學諭), 타과 명종(明宗) 1년(1546) 병오(丙午) 생원시(生員試)/ [가족사항] [부] 성명 : 권영노(權永老)/ [출전]《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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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수경(4月 26日 開封, 注目받고 있는 映畵 '맨발의 기봉이' 권수경 監督은 醴泉 土種) [記事] : 최근 영화팬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불러 일으켜 최고의 화제작으로 등장한 휴먼드라마 '맨발의 기봉이'의 권수경(40) 감독이 예천 출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권 감독에 대한 지역민들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권수경 감독은 아버지 권석재(69,예천읍 상리) 씨와 어머니 변정교(66) 씨의 2남 중 둘째로 예천초, 예천중, 대창고,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북경영화학교에서 장예모 감독에게 영화 수업을 받은 후 영화 '비천무'에서 조감독을 맡은 바 있으며, 이번에 영화 '맨발의 기봉이'로 데뷔하게 됐다.(윤현숙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6-05-11 오후 8:49:18)
권수경 : 영화감독/ 출생 1968년 (만43세) | 원숭이띠/ 데뷔 2004년 영화 '내사랑 브루스리'/ 주요작품 : 슈퍼스타 2009 | TV// 리틀 히어로 2011 | 영화// 맨발의 기봉.. 2006 | 영화// 학력 - 북경 전영학원, - 경희대학교 국문학/ 경력 2007 ~ 제6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단편영화상 심사위원, 1999 ~ 영화 '비천무' 조감독, 1998 ~ 베이징 영화아카데미 입학/ 영화(2건) : 맨발의 기봉이 2006.04.26, 감독,각본/ 리틀 히어로 감독// TV(1건) 슈퍼스타 2010. 연출(daum 2011)
권수경 : 권수경/ Daum 카페 | 작년, 2010년 5월 24일/ 권수경| 수다방/ 핑크로즈 | 2010.05.24. 18:30/ “‘러브 스토리’에 감동 먹고 영화에 내 인생 걸었죠” 수경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들은 많이 알지만 남자는 처음이다. 이름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달리 ‘맨발의 기봉이’를 데뷔작으로 만든 권수경 감독은 진짜 남자처럼 생겼다. 이런 표현이 외모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독자들은 알 것이다. 87학번인 권 감독은 고르바초프의 동방정책에 의해 동구권이 대몰락하는 세계사적 격변기에 대학을 다녔다. 경희대 국문학과를 나온 그가 왜 영화를 만들려고 했을까? 시인 유하, 소설가 이창동 처럼, 혹은 시인이며 소설가였던 하재봉 처럼 활자 문화에서 영상 문화로 중심 이동되고 있는 문화의 흐름을 읽고 변신한 것일까? 그의 대답은 ‘아니다’였다. 영화를 하고 싶었지만 집안의 반대가 너무 강해서 차선책으로 시나리오를 쓸 수 있는 국문과에 진학했다. 그렇다면 고등학생이었던 그에게 영화를 하고 싶은 강렬한 욕망을 불러일으킨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광고회사에서 영상제작 기초 다진 뒤 중국 유학 : 에릭 시걸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아서 힐러 감독이 영화화한 ‘러브 스토리’가 바로 그 계기였다. 1970년 만들어진 이 고전적 사랑 이야기가 고등학생의 마음을 울린 것이다. TV 명화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눈이 퉁퉁 붓도록 눈물을 흘리면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고 권 감독은 고백했다. ‘내 인생의 영화’가 ‘러브 스토리’라는 것은 권수경 감독을 이해하는 데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러브 스토리’는 신파적 코드를 갖고 있었지만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사랑 이야기로 당시 문 닫을 위기에 처해 있던 파라마운트사를 일약 영화사 순위 1위로 올려놓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권수경 감독이 가장 만들고 싶은 영화도 슬픈 멜로 영화다. 1995년 대학을 졸업한 그는 곧바로 광고회사에 취직했다. 그가 영화를 하고 싶어하는 줄 알고 있던 한 선배가 그에게 광고회사 입사를 권했다. ‘빡세게’ 하드 트레이닝을 하지만, 영상 제작의 기초를 튼튼하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97년 3월까지 약 2년 동안 그는 100여 편의 광고를 만들었다. 최진실, 심은하, 김지호를 모델로 한 신원 에벤에셀의 의류 광고는 거의 다 찍었다. 콘티 짜고 세트 설치하고 장비 빌리고 촬영하는 과정을 모두 경험했다. 영화는 각 분야가 분업화되어 있지만 광고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밑바닥 일을 배우는 데는 오히려 광고 쪽이 더 좋다는 것이다. 광고회사를 그만둔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중국으로 영화 유학을 떠났다. 장예모나 첸 카이거 등 중국 5세대 감독들의 영화를 유난히 좋아했기 때문이다. 특히 권 감독이 좋아한 감독은 장예모였다. 1년 넘게 랭귀지 스쿨을 다니며 중국어를 익힌 뒤 1998년 9월, 18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베이징영화학교 대학원 연출과에 합격했다. 총 정원은 5명. 3명은 중국인, 2명은 외국인 학생이었는데 권 감독과 함께 뽑힌 사람은 프랑스 여학생이었다.
베이징 유학 시절 그는 소중한 경험을 두 가지 했다. 하나는 장예모 감독이 만들던 ‘책상서랍 속의 동화’ 촬영 현장에 현장 실습을 나가서 약 2주 동안 자신이 존경하는 거장의 작업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촛불도 안 들어오는 산간벽지에서, 영화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아이들을 캐스팅해서 찍은 ‘책상서랍 속의 동화’의 촬영 현장은 권 감독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아이들에게 연기를 시키는 게 아니라 상황을 자세히 설명한 뒤 “너라면 어떻게 하겠니?”라고 물으며 촬영을 하는 장예모의 모습에서 그는 많은 것을 배웠다. 또 하나의 소중한 경험은 중국 올 로케로 찍은 한국 영화 ‘비천무’의 연출부로 일한 것이었다. 2001년 9월, 3년제인 대학원을 졸업하고 그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베이징에서 학교를 다닌 3년 동안 그는 매년 단편영화 하나씩을 만들었다. ‘건배’ ‘에피소드 1, 2’ ‘에피소드 3’ 등 3편이었다. 학년을 올라가기 위해서는 매 학년 마지막에 제출하는 단편영화가 심사를 통과해야만 했다. 졸업 논문은 ‘임권택, 장예모 감독의 비교론’이었다. 두 거장 감독의 공통점은 자기 민족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간혹 오리엔탈리즘을 상품화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두 감독은 그런 목적이 아니라 실제로 민족 문화에 대한 무한한 애착과 자긍심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었다. 두 감독의 차이점은, 장예모 감독이 임권택 감독에 비해서 도회적이고 세련된 기법으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다. 귀국 후 권수경 감독은 두 편의 영화가 엎어지는 경험을 했다. 첫 번째 작품은 김수로, 김선아가 캐스팅된 ‘내 사랑 브루스 리’였다. 이소룡을 동경하는 무술인과 가수를 지망하는 음치가 만나 각자의 꿈을 이뤄가는 이야기였다.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캐스팅까지 마친 이 영화는 2004년 촬영 직전 제작 투자가 중단되어 결국 엎어졌다. 다음 작품은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였다. 감우성, 장나라, 봉태규가 캐스팅됐지만 배우들이 약하다는 이유로 촬영이 무산됐다. 지금 같았으면 김수로든, 김선아든, 감우성이든 제작자들이 반색을 하며 투자했겠지만 당시만 해도 제작자들은 이들의 티켓 파워가 약하다고 판단했다. ‘비천무’의 연출부 경험은 권수경 감독에게 신현준이라는 친구를 만들어주었다.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마음이 맞았고 이때의 인연이 ‘맨발의 기봉이’로 이어졌다. 권 감독의 작품이 연이어 엎어지는 것을 본 신현준은 VHS로 녹화된 테이프 5개를 주었다. 그것을 본 권수경 감독은 곧바로 영화화를 결심했다. 2003년 2월 KBS-TV ‘인간극장’에 방송된 엄기봉 씨 이야기였다. 원래 시나리오가 있었지만 권수경 감독은 다른 방향으로 자신이 직접 시나리오를 다시 쓰겠다고 제안했고, 방송된 기봉 씨 이야기 중 어머니의 틀니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비천무’ 통해 신현준과 인연 … 의기투합 ‘맨발의 기봉이’ 만들어 : ‘맨발의 기봉이’는 2004년 프리 프러덕션을 시작해 2005년 10월부터 2006년 2월까지 석 달 반을 찍었고, 한 달 반 동안 후반 작업해서 시사회를 가졌다. 올 상반기 한국영화 중에서 가장 기대를 모으고 있는 ‘도마뱀’ ‘사생결단’과 같은 주에 개봉한다.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지 모르지만, 세 편의 영화 모두 장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섣부른 예측을 하기 힘들다. ‘맨발의 기봉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신현준의 변신이다. 카리스마 넘치던 황 장군은 어디로 갔는지, 입에 보철을 낀 채 히죽거리며 웃는 기봉 역의 신현준은 약간의 정신지체 장애가 있는 실제 주인공을 그대로 재현해냈다. 권 감독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진정성이다. 욕심 부리지 말고 초지일관 캐릭터를 유지하자는 감독의 말을 신현준은 충실히 따랐고 거의 NG 없이 촬영했다. 현장에서 가장 많은 NG를 낸 사람은 권 감독이다.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너무 웃었기 때문이다. “슬프게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웃음과 감동을 주는 게 기본 설정이었다. 웃음은 자신 있는데 감동은 잘 모르겠다.” 한국의 어머니 김수미는 현장에 100인분의 간장게장을 가지고 나타나 스태프들을 즐겁게 했다. 모두 3그릇씩 밥을 먹었다고 한다. 직접 담근 김치나 총각김치를 촬영지인 경남 남해까지 가지고 와서 스태프들에게 제공한 김수미는 진정 한국의 어머니였다. “이 영화는 실화가 갖고 있는 리얼함으로 감동을 준다. 영화화되면서 실제 주인공인 두 분의 삶에 파문이 일어 누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법 없이 살아갈 효자와 팔순 노모가 언론에 오르내리면 좋은 일보다 그렇지 않은 일이 더 많이 생긴다. 실제 기봉 씨에게는 혹이 있다. 영화에서는 그것을 심장병으로 바꿨다.” ‘맨발의 기봉이’를 만든 권수경 감독은 당분간 쉬면서 다음 작품을 구상해보겠다고 했다. 삶의 깊이를 영화적으로 드러내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다는 그의 소망은 이제 이루어지고 있다. 문제는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못지않게 어떻게 이야기하는가다. 그는 쉬는 동안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그 해답을 찾아내려고 한다./ cafe.daum.net/foodmail/RVAZ/| 요리.인테리어.맛집 생활 노하우 공유와 친목카페 [푸드메일](daum 2011)
권수경 : [DVD] 맨발의 기봉이 (신현준,김수미,임하룡,탁재훈,권수경) - 한영/ 싸이월드 | 2년전, 2009년 2월 7일/ 맨발의 기봉이(Barefoot Gibong) 감독 : 권수경 출연(배우) : 신현준 , 김수미 , 임하룡 장르 : 드라마 , 가족 상영시간(분) : 99분(전체관람가) 제작사 : (주)태원엔터테인먼트 발매일 : 2007-05-29 [ 상세정보.../ www.cyworld.com/| 나이스가이(daum 2011)
권수경 : 2011.01.10/ 권수경 - 무비스트/ 영화감독 권수경, 맨발의 기봉이 연출, 바이오그래피, 관련기사 제공./ http://www.movist.com/movies/ 전체 > 인물 > 영화인 > 영화감독 > 권수경(daum 2011)
권수경 : 권수경 - 씨네21/ 영화감독 권수경, 맨발의 기봉이 연출, 관련기사 제공./ http://www.cine21.com/Movies/Mov_Person/ 전체 > 인물 > 영화인 > 영화감독 > 권수경(daum 2011)
권수경 : 맨발의 기봉이 - 씨네21/ 휴먼 드라마, 권수경 감독, 신현준, 김수미 출연, 제작노트, 스틸컷, 리뷰 제공./ www.cine21.com/Movies/Mov_Movie/movie_detail.../ 영화 > 영화작품 > 맨발의 기봉이(daum 2011)
권수경 : 감독 2006년 맨발의 기봉이/ 각본 2006년 맨발의 기봉이/ 권수경 감독은 100여 편의 CF를 감독하고 북경 영화학교에서 장예모 감독에게 영화수업을 받은 후 <맨발의 기봉이>로 감독 데뷔를 하게 됐다. 영화 <비천무> 조감독 시절 친구가 된 배우 신현준의 권유로 영화의 소재가 된 다큐멘터리를 처음 보고 감동을 받아 영화화를 결심하고 오랜 시간 실제인물들을 설득해 마침내 영화화하게 됐다. 감독은 실제 이야기의 감동적인 요소를 잘 살려내기 위해 최대한 다큐멘터리에 충실하면서 극적 호소력을 갖추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일기예보, 카메라, 빨래 같은 다큐멘터리에서도 소개된 실제 에피소드는 그대로 살리면서 이장의 아들, 사진관집 주인 등 가공의 캐릭터를 덧붙여 갈등과 애정의 구조를 만들어 영화의 극적인 재미를 더하게 된다. 오랜 CF 감독시절을 통해 익힌 섬세한 영상연출 감각이 빛을 발할 <맨발의 기봉이>는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만큼 많은 사람들의 공감과 감동을 끌어내는 아름다운 휴먼드라마로 탄생할 것이다./ [Filmography]/ 1995~1997 광고,TV CF 100 여 편 연출(daum 2011)
권수경 : 〈스포츠칸〉[충무로 파일] ‘전체관람가’ 흥행작 A to Z/ 9시간전, 2011년 1월 12일 오전 3:48 | 경향신문 | 미디어다음 >/ ...(2009)는 292만9713명, 장진 감독의 < 굿모닝 프레지던트 > (2009)는 253만3312명, 권수경 감독의 < 맨발의 기봉이 > (2006)는 234만7311명이 관람했다. < 말아톤 > < 집으로… > 열풍도...(daum 2011)
권수경 : 〈스포츠칸〉[충무로 파일] 흥행 감독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지난달, 2010년 12월 20일 (월) | 경향신문 | 미디어다음/ ...)은 외국어대 터키어과, 김대우(방자전·음란서생)는 외국어대 이태리어과, 권수경(맨발의 기봉이)은 경희대 국문과, 오종록(첫사랑 사수 궐기대회)은 부산대 독문과, 손재곤(달콤...(daum 2011)
권수경 : 2011 '연기돌' 블루칩 미리보기①…수지·대성·동호/ 지난달, 2010년 12월 16일 (목) | OSEN | 미디어다음/ ...'에 캐스팅돼 내년 활발한 활동이 기대되는 아이돌이다. 걸그룹 시크릿 멤버 한선화는 권수경 감독의 영화 '리틀히어로' 여주인공으로 캐스팅, 남주인공 정준호와 호흡을 맞춘다. 한선화는...(daum 2011)
권수경 : 대창80년사:부록(10) 부장교사-대입자(1)/ 작성 장병창/ 지난달, 2011년 2월 11일 (금)/ ...(체육), 권기철(경영), 박경수(건축), 황석근(무역), 김운기(미술교육), 이용희(태권도), 권수경(국문), 이일형(미술교육), 윤권화(경영), 변우서(금속), 여규덕(체육), 하종찬(무역), 이형수(산업.../ cafe.daum.net/seouldaechong/ 재경예천대창중.고등학교 동문회(daum 2011)
권수경 : 예천동부초등학교총동문회cafe/ 예천 출신 감독이 만든 멋진 영화 "맨발의 기봉이" 꼭 보시와요/ 3년전, 2008년 1월 21일/ 꼭 한번 보세요. 영화명 : 맨발의 기봉이 감독 : 권수경 (예천초등학교68회 권세민, 대창고 졸) 예천읍 상리 출생 출연 : 신현준, 김수미, 임하룡, 탁재훈.../ cafe.daum.net/yceast(dau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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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수붕(權壽붕) : 1634(인조 12)-?, 용문면 제곡리 작은 맛질(小渚谷) 출신, 자는 미서(眉瑞), 본관은 안동, 현감 심언(縣監審言)의 현손, 생원 상달(尙達)의 손자, 학생(學生) 향의 양자, 학생 유의 아들, 수구(壽龜)의 동생, 수기(壽祺)의 형, 사계(沙溪)의 제자이다. 편모 슬하(慈侍下)에서 유학(幼學)으로서 1660년(현종 1) 가을에 증광 진사시에 3등 42위로 합격, 1679년(숙종 5) 식년 문과에 을과 5위로 급제하여 성균관 박사에 이르렀고, 풍채가 준정(峻整)하고 태도가 고요하였는데, 불행히도 서울에서 천연두(天然痘)로 수를 누리지 못하여 세인이 아까워했다.(司馬榜目, 文科榜目, 醴泉郡誌 1939, 襄陽誌 1661, 醴泉郡邑誌 1770 1786 1841, 朝鮮寰輿勝覽 1929)
권수붕(權壽朋) : [진사시] 현종(顯宗) 1년(1660) 경자(庚子) 증광시(增廣試) 증광진사 3등(三等) 12위(42/100)/ [인물요약] 자 미서(眉瑞), 생년 갑술(甲戌) 1634년(인조 12), 합격연령 27세, 본관 안동(安東), 거주지 예천(醴泉)/ [관련정보] [문과] 숙종(肅宗) 5년(1679) 기미(己未) 식년시(式年試) 을과(乙科) 6위(9/36)/ [이력사항] 전력 유학(幼學) 생부구존 자시하(慈侍下)/ [가족사항] [부] 성명 : 권향(權?), 관직 : 학생(學生), [생부] 성명 : 권유(權?), 관직 : 학생(學生), [형] 성명 : 권수구(權壽龜), [제] 성명 : 권수기(權壽祺)/ [출전] 《경자 증광 사마 방목(庚子增廣司馬榜目)》(하버드옌칭도서관[K 2291.7 1746 (1660.1)])(daum 2012)
권수붕 : 權壽朋에게 관직을 제수함 기록물 居首한 權壽朋에게 二分을 주고 權宇亨 등에게는 각각 一分을 주라는.../ 기록물(dau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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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975
예천군 방문(파워블러거 및 旅行作家 팸투어 가져 : 回龍浦, 三江酒幕, 龍門寺 觀光 및 體驗行事 가져) [記事] : 예천군이 국내 여행전문가를 초청해 지역의 관광지 알리기에 나섰다. 군에 따르면 2013년 3월 15일부터 1박2일 일정으로 파워블로거 및 관광 전문기자, 여행 작가 등 20명을 초청해 지역의 주요 관광지와 체험 시설을 둘러보고 체험하는 ‘파워블로거 및 여행기자단 팸투어’를 실시했다. 팸투어단의 첫 일정은 예천곤충생태원 방문으로 유충 키우기와 나무 곤충 만들기 체험을 하는 등 신비로운 곤충 세계와의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이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양궁 경기장인 ‘예천진호국제양궁장’으로 자리를 옮겨 선수 출신 강사와 함께 과녁에 활시위를 당겨 보는 양궁체험을 한 후, 천년고찰 용문사에서는 국내 유일 회전식 불경보관대인 윤장대를 돌리면서 소원을 비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 이튿날에는 비룡산 회룡포전망대에 올라 내성천을 350도 휘감아 돌아 나가는 육지속의 섬마을 회룡포를 감상한 뒤 뿅뿅다리를 건너 마을을 일주하는 둘레길을 산책한 후 용궁의 명물 ‘용궁순대와 오징어불고기’를 맛볼 예정이고, 낙동강 7백리 마지막 남은 주막 ‘삼강주막’에서 글을 모르던 주모가 벽에 금을 그어 외상을 관리하던 장부를 관람하는 것으로 팸투어 일정은 끝맺는다. 예천군 문화관광과 관계자는 “이번 여행작가 팸투어를 통해서 다른 지역에서는 느껴 보지 못한 예천 여행의 색다른 즐거움을 직접 체험하고 느낀 바를 전국의 여행객과 네티즌에게 소개해서, 지역의 이미지 제고와 경기 활성화에 기여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醴泉뉴스 2013년 0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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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