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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231) : 권영진(붓장)(2)-권영통(판관)-권영팔(필장)-권영하(회장)-권영학(궁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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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진 : 무형 문화재(2개...)/ Daum 카페 | 11년전, 2001년 9월 1일/ 무형문화재 제1호 ☜ * 칠장(생옻칠) 漆匠 * * 붓장(붓匠) * 권영진 옹은 1929년 11월 2일 경북 예천에서 출생하였다 보통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당시 예천의 명필장 홍세유 씨 문하에서 붓만들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뒤 대구.../ cafe.daum.net/dream747/4Evo/7 | 꿈을 먹고 자라는 우리들!(daum 2012)
권영진 : 무형문화재 - 서울특별시 붓장/ 지젤 | 2004-10-15 12:53 | 조회 109 | 답변 1/ 무형문화재 붓장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종목 시도무형문화재 5호/ 명칭 붓장(붓匠)/ 분류 공예기술/ 지정일 1992.09.30/ 소재지 서울 종로구 낙원동 284-6/ 붓장은 문방사우(文房四友)의 하나인 붓을 만드는 사람 또는 기술을 말한다. 붓은 털의 품질이 가장 중요한데, 첨(尖)·제(濟)·원(圓)·건(健)의 네 가지 덕을 갖추어야 한다고 한다. 이는 붓끝이 뾰족해야 하고 가지런해야 하며, 털 윗부분이 끈으로 잘 묶여서 둥근 것, 오래 써도 힘이 있어 한 획을 긋고 난 뒤에 붓털이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털의 재료로는 양·여우·토끼·호랑이·사슴·이리·개·말·산돼지·족제비 등의 털이 사용되며, 붓의 대는 대나무를 많이 사용한다. 제작과정을 살펴보면 우선 털을 고르게 한 후에 적당량을 잡아 말기를 한다. 말고 나서 털끝을 가지런히 다듬는 ‘물끝보기’ 과정을 거친 뒤 대나무와 맞추고 마무리 작업을 한다. 붓장은 전통공예기술로서 기술을 보호하고 전승하기 위해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였으며, 서울에 살고 있는 권영진 씨가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2004-10-15 12:56(daum 2012)
권영진 : 서울시 무형문화재/ 네이버 블로그 | 6년전, 2006년 1월 16일/ 서대문구 붓 장(筆匠) ¶ 지정번호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5호 ¶ 지정년월일 1992년 9월 30일 ¶ 보유자 권영진(權永鎭) ¶ 전승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조선장(造船匠) ¶/ blog.naver.com(daum 2012)
권영진 : 서울무형문화재 제5호/붓장 권영진/ Daum 카페 | 2004.05.31/ 붓과 함께 한 60여년 서울무형문화재 제5호 붓장 권영진/ 붓장 권영진(74, 서울 무형문화재 제5호) 선생의 작업실은 서울 종로의 낙원상가아파트 자택에 함께 하고 있다. 외관에서 보기보다 더 튼실해 보이는 낙원상가아파트.../ cafe.daum.net/golmoo/s8/9 | 규방칠우(daum 2012)
권영진 :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5호 필장 권영진 옹 취재기.../ Daum 카페 | 2005.03.20/ 죽파 권영진. 1. 만들 수 있는 붓의 종류와 가짓수는 얼마나 되나요? →약 150여 가지 정도 되며 보통은 작가들의 주문을 받아서 제작을 하기 때문에... 신지요?? → 정말 문제지 그것 때문에 붓장이들이 모두 전업하고 있는.../ cafe.daum.net/seowha/CYu/21 | 서화인모여라*^^*(daum 2012)
권영진 : 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이 꾸미는 사랑방문화/ Daum 카페 | 2005.04.04/ (토) 단청장 양용호. 4.17(일) 향온주장 박현숙. 4.18(월). 휴관. 4.19(화) 화문석장 한순자. 4.20(수) 붓장 권영진 시연없음 4.21(목) 소목장 김창식. 4.22(금) 황칠장 홍동화. 4.23(토) 채화칠장 김환경. 4.24(일.../ cafe.daum.net/koreahandicrart/5Urj | 규방공예(daum 2012)
권영진 : [펌] 제9회 서울무형문화재 작품전(4.5-4.24까지)/ 네이버 블로그 | 2005.05.22/ 나타내는 칠보와 은위에 모양을 내며 붙이는 금부가 있다. 기법으로 상감, 입사, 조이 조각이 있다. ▲ 붓장 권영진_각종 모필. <민화장>- 민화는 꾸밈없이 살아온 서민의 삶 속에서 태어나 우리겨레의 신화와 종교, 정신이.../ blog.naver.com/jslmq/ 바람 風(daum 2012)
권영진 : 무형문화재 - 서울특별시 붓장/ Daum 지식 | 2004.10.15/ 말고 나서 털끝을 가지런히 다듬는 ‘물끝보기’ 과정을 거친 뒤 대나무와 맞추고 마무리 작업을 한다. 붓장은 전통공예기술로서 기술을 보호하고 전승하기 위해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였으며, 서울에 살고 있는 권영진 씨가 그 .../ k.daum.net// 시도무형문화재 제5호(서울) 붓장(붓匠)/ 네이버 블로그 | 2007.10.05(daum 2012)
권영진 : 붓장/ 네이버 블로그 | 2004.12.18/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5호 ▒ 지정연월일:1992년 9월 30일 ▒ 보유자 : 권영진(權永鎭) ▒ 전승지 :서울특별시 붓장이란 서화용구(書畵用具)의 하나인 붓을 만드는 장인을 말한다. 붓은 짐승의 털을 추려.../ blog.naver.com/mare1020/ 마레한복- (부산한복...// 붓장 筆匠/ Daum 카페 | 2005.08.02(daum 2012)
권영진 : [펌] 붓장/ 네이버 블로그 | 2005.02.15/ 1992년 9월 30일 서울특별시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다. 기능보유자는 권영진이다. 그는 1929년 11월 2일 경북 예천(醴泉)에서 출생하였다. 보통학교를 마치자마자 예천의 명필장 홍세유 씨 문하에 들어가 붓 만드는.../ blog.naver.com/gravity_7/ "백비"(白賁) : 无思..(daum 2012)
권영진 : 서울 무형 문화재 축제--"남산골한옥마을에서 무형문화재에 빠져봅시다"/ Daum 카페 | 2005.04.23/ (한상수) / 나전장(정명채) / 초고장(한순자) / 등메장(최현열) / 체메우기(최성철) / 단청장(양용호) / 붓장(권영진) / 서울송절주(이성자) / 삼해주약주(권희자) / 연날리기(노유상) 예능체험 판소리 / 판소리고법 / 가곡.../ cafe.daum.net/hanjihouse/Yn/99 | 한지하우스 ▶ 한지공예 전문카페(daum 2012)
권영진 : [펌] 서울 무형문화재전 개최/ 네이버 블로그 | 2005.05.12/ 선보인다. 서울지방 전통을 오롯이 보존, 계승하고 있는 회원은 신중현(생옷칠장), 노유상(지연장), 권영진(붓장), 한영화(자수장), 김은영(매듭장), 한순자(초고장), 손대현(나전칠장), 윤병훈(오죽장), 김원택(은공장.../ blog.naver.com/jarona/ 은행나무(daum 2012)
권영진 : 남산 한옥마을입니다./ Daum 카페 | 2008.01.28/ 기능 피금정 4 연날리기 노유상 ○ 7 2시~3시 기능 피금정 4 연날리기 노유상 ○ 6 6시~7시 기능 김춘영가옥 5 붓장 권영진 ○ 6 5시~6시 기능 청류정 8 삼해주약주 권희자 ○ 8 5시~6시 기능 청류정 8 삼해주약주 권희자 ○ 6.../ cafe.daum.net/2004knou/ 방송대문화교양학과예사모(daum 2012)
권영진 : 붓장 筆匠 - 권영진(權永鎭) 옹, 무형문화재 제5호/ 네이버 블로그 | 2008.07.09/ 가장 긴 털)의 선이 가지런하여, 붓끝을 누르면 부드러운 탄력이 손가락에 전해지며 허리가 튼튼하다. 붓장 권영진(74, 서울 무형문화재 제5호) 선생의 작업실은 서울 종로의 낙원상가아파트 자택에 함께 하고 있다.../ blog.naver.com/kimkyoc/ 림호의 블로그// 붓장 筆匠 - 권영진(權永鎭)/ Daum 카페 | 2010.03.08(daum 2012)
권영진 : 붓장 : 붓대에 여러 가지 장식을 하여 애장품으로 ... (시도무형문화재).../ 이라이프 플러스 | 2009.02.21/ 족제비털로 만든 것으로 서예, 단청, 제도, 도안 등 섬세함을 요하는 일에 주로 사용했다. 참고자료 : 문화재청 찾아가는 길 Powered by Naver 전승자 이름 권영진 붓장 / www.elifeplus.co.kr(daum 2012)
권영진 : 무형문화재(공예) <Homework>/ Daum 카페 | 2010.03.28/ (朴光勳) 1996.12.31 자수장(刺繡匠) 한영화(韓榮嬅) 1996.12.31 매듭장(每듭匠) 김은영(金銀暎) 1996.12.31 붓장 권영진(權永鎭) 2005.09.22 사망 등메장(登每匠) 최헌열(崔憲說) 2002.04.23 초고장(草藁匠) 한순자(韓順子).../ cafe.daum.net/weerey/KxnF/171 | WYK(위례청소년지킴이)(daum 2012)
권영진 : 수채화가 김원구, 목우국제구상미술축전 초대전/ 제주의소리 | 2007.09.23/ 기여했으면 한다 고 말했다. 김 화백은 제20회 한국수채화공모전에서 '생’이라는 작품으로 붓장 권영진 선생을 기리기 위한 '인간문화재 권영진상'을 수상한 바 있다. ▲ 만추의 하늘래.../ www.jejusori.net(daum 2012)
권영진 : 제주투데이/ 웹문서/ 색체의 변화로 표현해 냈다. 노인 얼굴의 왼쪽 부분의 청색은 과거, 반대를 현재를 나타낸다. 인간문화재 권영진상은 붓장 권영진 선생을 기리기 위한 상. 이번 공모전에서는 한국미술협회 제주도지회 회원 양근석 씨(39)의.../ ijejutoday.com(daum 2012)
권영진 : 장고장 서남규/ 웹문서/ 정문길 죽패도 한병문 화가 성재휴 고려청자 류근영 매듭 김희진 금관 김인태 조각가 박찬갑 민속화 김만희 붓장 권영진 소목장 김창식 지함 상기호 연장 노유상 짚공예 자수 강태경 부부.../ www.photowang.net(daum 2012)
권영진 : 서울 무형문화재 독일전 안내책자에서 - 전체목차(작성 중)/ Daum 카페 | 2008.07.19/ 무형문화재 제1-4호 송절주 - 이성자,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호 지연장 - 노유상,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4호 붓장 - 권영진,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5호 삼해약주 - 권희자,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8호 삼해소주 - 이동복.../ cafe.daum.net/gbgzigi/KhCR/10 | 경복궁지기(daum 2012)
권영진 : 발대식& 숙제!!!/ Daum 카페 | 2009.03.01/ (盧裕相)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동 182 홍연아파트 15-101, 92.9.30일 지정, 5. 붓장(筆匠)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5호, 보유자 : 권영진(權永鎭), 서울특별시 종로구 낙원동 284-6 낙원아파트 A-1006호, 92. 9. 30일 지정.../ cafe.daum.net/weerey/KxnF/5 | WYK(위례청소년지킴이)(dau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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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통(權永通) : 지보면 수월리 수동 안동 권씨 입향조(首洞安東權氏入鄕祖), 호는 가암(佳菴), 현감 용평(縣監用平)의 5세손, 자상(自常)의 3자, 진(珒, 箕子殿參奉)의 아버지이다. 안동 북후면(北後面) 가구(佳邱) 출신, 1564년(명종 19)에 용궁현관(龍宮縣官)을 지내다가 수동에 입향하였다. 문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판관(訓練院判官)을 지냈다. 1474년(성종 5) 4월 17일 왕이 이르기를, "영변(寧邊)에 귀양 중인 권영통을 방면(放免)하라."라고 하였고, 이듬해 2월 14일에 사령장(告身)을 돌려받았다. 갑자사화(甲子士禍, 1504) 때 안동부 북선면 가구동(安東府北先面佳邱洞)에서 지보면 수동(首洞)에 이주하여 50가구가 세거 중이다. 묘는 지보면 어신리 오송산(烏松山) 간좌(艮坐)에 있는데, 묘갈명(墓喝銘)은 1995년에 성균관전학 동래 정양수(鄭亮秀)가 지었다.(知保面誌 1987, 成宗實錄, 醴泉郡誌 1939, 醴泉의 金石文 2003)
권영통 : 예천의 금석문 1 | 간행년:2003 저자:예천문화원 발행처:예천문화원 / 訓練院判官 安東權公(永通) 墓碣銘/ B202_0245.jpg/ 예천 내용이 수록된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넷 유교관련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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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팔(權寧八) : 1924- , 예천읍 상리 출신, 40여 년 간 붓을 만들어왔다. 어린 시절에 붓을 만들기로 소문난 필장을 찾아다니며 기술을 전수받은 뒤 예천에서 '문방사우'의 하나인 붓을 만드는 외길 인생을 살고 있다. 특히 예천붓을 전국적으로 명예를 떨치도록 했던 필장(筆匠) 김성태의 제자이다. 붓을 만드는 데는 황모(黃毛), 우이모(牛耳毛), 묘모(猫毛), 자모(紫毛), 양모(洋毛) 등이 쓰이나 요즘은 주로 양모, 족제비 털을 쓰고 있다. 털이 가늘고 길고 잘 간추려진 것일수록 좋은 붓이다. 좋은 붓은 1자루에 20만 원에 팔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요즘 유림, 서예학원에서 주문한 붓을 만들고 있는데, 좋은 붓은 혼이 담겨야 한다며 정성을 쏟고 있다. 그러나 붓 만드는 기술을 배우겠다는 젊은이가 없어 필장이 사라진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每日新聞 1997.4.3, 醴泉新聞 1997.2.20)
권영팔 : 장인의 정신| ♠아름다운 글/ 문향 | 조회 58 | 2005.11.12. 23:06/ 시골길을 한참가다 어느 마을 마당에 눈길을 모은다. 따뜻한 가을 햇살이 살포시 내려앉은 마당 한켠 잡초와 채소들이 적당히 뒤섞여 어쩐지 여유있는 그 모습이 마음에 든다. 그렇게 스스럼없이 망설임 없이 불쑥 주인을 만난 건 편안하고 포근한 시골 마당의 풍경과 주인의 정하고도 선한 눈빛 때문이었던 것 같다. 문명의 틈바구니 속에서, 어쩌면 이렇게 묵향처럼 은은히 퍼지는 인간적인 장인이 그리워 그를 찾았나 보다. 나는 그의 선한 눈빛 앞에서 가난하지만 행복한 삶의 모습들을 보았다. 선한 눈빛의 사람 앞에서 가난은 그리 큰 폭력이 될 수 없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착하다는 것은 이미 모든 것을 이긴 자의 표정이기 때문이다. 눈빛이 선하고 표정이 순한 사람들이 그려 가는 삶은 그래서 이 힘든 세상에서 아름다운 위안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붓 하나에 인생을 쏟아 붓는 필장(筆(匠) 권영팔(80.경북 예천군 예천읍 상동리) 옹. 그를 보자마자 갑자기 주눅이 든 것은 작은 체구. 불편한 몸이지만 그 속에서 흘러나오는 당찬 세월의 흔적, 붓처럼 곧은 그의 말과 태도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장인의 이러한 모습에 이끌려 그의 인생이, 그의 정신인 붓의 이야기가 어느 때보다 강렬한 호기심으로 다가왔다. 안동시 도산면 가일이 고향이라는 그는, 60년 동안 한 가지만 알고 살았다 한다. 17살 때부터 시작한 붓 만들기는 그의 평생을 ,겹겹이 쌓인 세월이 번뜩 스친다. 그렇게 채웠다. 그는 당시 필장(筆(匠)으로 널리 알려졌던, 스승 고 김성태(金星太) 씨로부터 붓 만드는 모든 공정을 성실히 배웠다.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하체를 제대로 쓸 수 없었던 그는 우연한 기회, 스승 동생의 권유로 붓 만들기를 시작해, 30여 년간 스승과 함께 붓 만드는 일에 전념했다. 스승과 그가 만든 붓은 60년대까지 전국 상인들의 손을 거쳐 각 고을의 유림들과 서예학원 등으로 팔려나가면서 명성을 떨쳤다 한다. 비록 객관적인 인증 절차를 밟지 않아 인간문화재 등의 칭호는 갖고 있지 않지만, 전통 붓 제작 외길인생 60년의 장인으로 손색없는 여정이었다. 누가 알아주거나 알아주지 않거나 홀로 외로이 걸어온 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유명세가 오히려 싫단다. 세상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묵묵히 한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그이기에, 세상의 새삼스런 부산스러움이 달갑잖은 모양이다. 그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당당함은 이런 연유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예로부터 사람을 평가할 때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 하여 맨 먼저 얼굴과 몸의 생김새를 보고, 그 다음엔 말하는 언변을 보고, 다음엔 글을 쓰는 글재주를 보고, 맨 나중에 판단력과 가치관을 본다고 하여 붓으로 쓴 글이 사람을 나타내는 매우 중요한 항목이라고 여겨졌다. 이는 붓이 단지 글을 쓰는 도구가 아니라 정신의 통로 역할을 수행함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단다. 손과 마음에 맞는 좋은 붓을 만나는 일은 글씨를 쓰는 사람들의 소망이기도 할 것이며 하나의 붓이 탄생하기까지 노력과 인내의 시간을 보낸 장인의 소망이기도 하다. 마음과 붓을 일체시켜 손을 통해 붓끝을 타고 흐르는 진한 묵의 길. 마음이 손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 .그것이 붓이며, 붓을 만드는 이가 그토록 바라는 세상이 아닐까 한다. 글을 쓰는 선비는 좋은 옷을 입는 것 보다 좋은 붓 한 자루 가지는 것이 소망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글씨의 훌륭함은 글자의 자획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묵 속에 갈아 넣고, 붓 끝에 모아낸 정성의 양에 의하여 최종적으로 평가되는 것이라 한다. 사람의 아름다움도 이와 같아 타고난 얼굴의 조형미보다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의 굴곡과 경험의 축적이 내밀한 인격이 되어 나타난다 할 때, 장인의 얼굴은 실로 아름다움 그것이었다.(dau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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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하(權寧河) : 1932- , 용문면 하학리 168번지 출신, 호는 온석(溫石), 본관은 안동, 용문초등(19回), 54년 예천농고(3회), 58년 서울대 농대 잠사과(蠶絲科, 1回) 졸업, 71년 동 행정대학원 도시 및 지역계획학 행정학 석사(行政學碩士), 58년 농사원 잠업시험장 촉탁(農事院蠶業試驗場囑託), 60년 육군 복무, 62년 농림부 농산국 잠업과 농업 기사(農業技士), 68년 농림부 양잠계장 겸 잠사계장(農業技佐), 70년 국립 부산 서울생사검사소 검사과장, 71년 동아대, 서울시립대 농대 강사(蠶政學), 72년 한국공간학회 이사, 73년 국립서울 부산생사검사소 건사과 과장, 74년 농수산부 잠업과장, 77년 동 국립잠종장장(國立蠶種場長, 農林技監), 77년 농림수산부잠업진흥심리위원, 82년 농진청 잠업시험장장(蠶業試驗場長), 84년 잠사학회장, 90년 (社)대한잠사회 회장, 94년 한국견직연구원 원장(韓國絹織硏究院 院長)을 지냈다. 그는 1960년대의 잠업 중흥 전기를 맞아 사명감있는 인재 양성에 때를 맞추어 직접 본인이 행정에 참여하는 계기로 삼았다. 잠업계에 투신하여 생사 수출액을 150억 선으로 신장시키는데 주역으로 기여하였고, 잠업 관계법령 정비 및 행정 제도의 쇄신에도 주도적 역할을 맡아 크게 활약하기도 하였다. 특히 1982년부터 약 6년간에 걸쳐 새로운 누에 및 뽕나무 품종을 10여 가지 육성 인공 사료로 누에를 사육하는 기술을 연구하여 1985년에는 농가에 보급하는 등 열과 성을 다하여 잠업 활성화 사업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1982년부터는 연간 1만여 명의 잠업 농가 육성을 실시하고 잠업 후발(後發)의 외국에 대해서도 6년 간 매년 기술연구생을 교육시키면서 직접 해외에 출장, 지도를 하며 국위를 선양하는데 큰 몫을 차지하기도 했다. 1982년 농촌진흥청 잠업시험장장(蠶業試驗場長)으로 1984년 이래 한국잠사학회장을 겸하는 등 1958년 졸업 후 1962년부터 계속 농림부에 적을 두어 책임을 다하였다. 한편 일본, 불란서, 이태리, 스웨덴, 미국 등지를 수차례 시찰, 각국의 생사 시장을 조사하는 한편 한일잠사위원회에 한국 대표로 10여 차례 일본에 참석하여 명실 공히 잠업계의 일인자로서 손색이 없도록 연구 정진하기도 했다. 또한 후진들 육성에도 남다른 뜻을 두어 서울대 농대 잠사학과 동문회 회장을 역임, 서울산업대 강사, 동아대 농대 강사로 올바른 후진들을 많이 배출하기도 했다. 농수산부 잠업진흥심의회심의위원, 대한잠사회 잠업진흥대책회 위원으로 누에 및 뽕나무 품종 개량 및 사육과 재배법 연구, 병충해 방제 연구, 제사 기술 개선 및 견직물가공 연구, 외국과의 연구사업 교류 및 기술지도 등에 여념이 없었다. 대통령 공로표창, 한국섬유공업학회감사패, 근정포장(勤政褒章)을 받았다. 저서로 <한국잠업사(共著)>, <농정(農政) 40년사(共著)>, <새로운 잠업 기술과 경영(共著)>, <한국 잠업의 현황과 전망>, <한국잠사업의 오늘과 내일>, <잠업 자원의 합리적인 관리 방안> 등이 있다.(嶺友俱樂部 第99號 1982, 每日年鑑 1984 1985 1986 1987 1988, 每日名鑑 1996 1997, 醴泉文學 7輯 1993, 醴泉新聞 1993.9.9, 韓國을 움직이는 人物들 1997, 朝鮮日報 DB 2003, 다음 百科事典 2004, 엠파스 人物檢索 2004)
권영하 : 용문을 빛낸 사람들/ 2008.05.07/ 權寧河(용문초 19회) * 농수산부 잠업과장 및 국립잠종장장 * 농촌진흥청 잠업시험장장 * 특별법인 한국견직연구원장 * 사단법인 대한잠사회 회장/ 공적사항 한국의 잠사에 관한 행정연구와 업계를 총괄하는 단체에서 40년간 봉직하면서 오직 잠사, 견직 발전이라는 일념의 길을 걸어 왔으며 특히 잠사업이 눈부신 발전을 하던 1960~1970년대에 잠사 증산과 수출 확대를 위한 기획과 집행 그리고 여러 법령과 제도의 정립, 잠사류 가격정책 기초 확립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다 하였으며 잠사업계의 균형발전에 큰 역할을 다하여 한국 잠사업 중흥에 금자탑을 쌓는데 큰 공을 남겼음./ http://cafe.daum.net/woruddPcjsrns/ 재경예천군민회(daum 2010)
권영하 : 한글제목 : 뽕밭 밑 苗圃의 洪水 被害 調査 報告/ 영문제목 : Flood Damage and Recovery of Mulberry and Graftages/ 저널정보 : 한국잠사학회지 1990년 32권 2호 118~120/ 저자 : 李梡周/權寧河/金光泳/崔營哲/朴光駿/ http://kmbase.medric.or.kr(daum 2010)
권영하 : [용문을 빛낸 사람들]선정 발표/ 3년전, 2008년 1월 23일/ '용문을 빛낸 사람들 5명 선정' 용문초등 총동창회. 변명우, 변우량, 권창륜, 권영하, 강형 씨 용문초등총동창회(용원·용대·용서초등 포함)...(daum 2011)
권영하 : 재경예천군민회cafe/ [용문을 빛낸 사람들]선정 발표/ 2008.01.23/ 위해 앞장서고 있으며, 예천서예 발전을 위해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산업부문 권영하(76.용문초 19회) 한국 잠사의 산 증인, 40여 년간 잠사·견직 발전이라는 외길을 걸었다. 잠사업이 눈부신 발전을.../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2)
권영하 : 용문사랑 > 용문을 빛낸 사람들 > 산업분야 권영하(용문 19회 졸업)/ 웹문서/ 농수산부 잠업과장 및 국립잠종장장 * 농촌진흥청 잠업시험장장 * 특별법인 한국견직연구원장 * 사단법인 대한잠사회 회장 공적사항 한국의 잠사에 관한 행정연구와 업계를 총괄하는 단체에서 40년간 봉직하면서 오직 잠사../. yongmun.org(daum 2012)
권영하 : 과거로의 여행/ Daum 카페 | 2009.10.17/ 우리지역에는 용문면 하학리에 사시는 권영하라고 하는 분이 잠사업(누에를 이용한 산업)에 일생을 바치고 살았던 분이다. 그 분이 잠업에 종사할 때 누에산업을 위해 벼농사의 3배 수익을 보장하여 육성하였으나 이후 1980년.../ cafe.daum.net/yms1/K6BK/ 용문중학교 제1회 동창회(daum 2012)
권영하 : 농민신문 지면 PDF 데이터베이스/ 웹문서/ 시행 서면계약-신고등 의무화 농지매매증명 상한선 부재지주 농수산업 구조조정 중장기계획 착수 대한잠사회장에 권영하 씨를 선출 원더로그 주식회사 조비 면 1 면 최종편집 1990-12-10 Copyrightⓒ 2009 농민신문사. All.../ pdf1.nongmin.com(daum 2012)
권영하 :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동창회/ 웹문서/ 사당동에서 이상영 신임동문회장(잠사65)의 취임인사 겸 제1차 운영위원회를 가졌다. 이상영 동문회장의 인사말과 2006년 경과보고가 있었고 협의결과 선임된 신임 임원은 다음과 같다. ▲회장:이상영(65) ▲고문: 권영하(54).../ snuagria.or.kr(daum 2012)
권영하 : 학술논문 > 농학 > 기타(농학) 최신 업데이트 자료 - 154PAGE/ 해피학술/ Varieties by Topical Application of Juvenile Hormone Analog " 마영일(Young Il Mah), 권영하(Young Ha Kwon), 이상풍(Sang Poong Lee) 한국잠사학회, 한국잠사학회지, 한국잠사학회지 제26권 제1호, 25~29쪽(총 5쪽).../ happyhaksul.com(dau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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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학(慶尙北道 無形文化財 保存會 創立總會 開催) [記事] :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보존회는 2009년 6월 19일 김천시문화회관에서 지역의 전통문화를 계승보존하고, 무형문화재를 연구 발전 육성하기 위하여 전수자 양성과 국내외 전시 및 시연, 회원 상호간 친목도모를 통해서 고유문화 발전시키는 목적으로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보존회“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27명의 기능 보유자가 한자리에 모여서 정관 및 제 관련규정을 제정 및 임원 선임 및 각 분과별 위원회를 구성하고, 7월초 안동에서 임원 회의를 가질 예정이다. [임원명단] : 회장 권영학(예천 궁장 보유자), 부회장 김일웅(김천 징장 보유자), 부회장 김연박(안동소주 이수자), 부회장 정순임(판소리 보유자), 이사 황규욱(문경 호산촌 교육조교), 이사 김삼식(문경 한지장), 이사 조석탑(제전농요 후보), 이사 이무남(청송 옹기 보유자), 이사 이면규(영풍 장도 후보), 이사 양규석(예천 통명농요 후보), 이사 이자성(청송 한지 보유자), 감사 송강호(김천 과하주 보유자 후보), 조석탑(저전 동농요 후보).(최도철 取材部長 金泉新聞 2009-06-23 오후 4:47:00)
권영학(마음으로 만든 활, 마음으로 쏜다-權寧鶴 弓匠) [記事] : 대를 이어 활을 만들어온 한국을 대표하는 궁장(弓匠) 기능보유자인 권영학(權寧鶴,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6호) 씨는 명무(名武)이자 명궁(名弓)의 칭호를 갖고 있다. 이 세 가지 기능 보유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 신문 TV에 소개된 사례만 해도 줄잡아 200번은 될 것이다. 권씨에 뒤이어 활 만드는 장인으로 서울에서 활동하는 권무석(서울시 무형문화재 23호) 씨, 경기도 부천에서 살고 있는 김박영(金博英,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씨도 궁장이다. 이들은 모두 경상북도 예천 출신이다. 궁장은 한국의 고유 궁인 각궁을 전통적으로 제작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사람이다. 각궁은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47호이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활을 제작하는 사람은 모두 십여 명에 불과하다. [한국 양궁의 뿌리 예천 양궁] : 청소년(16세) 시절부터 지금까지 50여년 한길을 걸어온 권영학 씨의 인생엔 활에 담긴 수많은 사연이 녹아있다. 활을 만드는 궁장이었던 부친(권태진) 밑에서 7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어깨 너머로 배워 온 활 만들기가 결국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찬밥 신세였던 소위 "쟁이"의 길이었다. 옛날 한 동네 대학생이 한 명도 있기 힘든 1964년 대학(동국대 농과대) 재학 중 4급 공무원 공채시험에 합격하여 출세 길도 열릴 수 있는 그였다. 숱한 고민 끝에 가업(家業)을 잇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김진호(현 한국체대 교수) 선수를 배출하기도 한 예천여자중고등학교 양궁부도 권씨의 작품이다. 1979년 베를린 세계양궁선수권대회에서 김진호 선수가 5관왕을 차지해 세계 양궁계를 깜짝 놀라게 한 이후로 전국에 양궁 붐이 일어났다. 예천양궁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전통각궁을 제작하고 전통궁도의 토양이 그 기반이 됐다. 양궁을 창설하게 된 역사적 배경이다. ꡒ예천 궁도는 한국 양궁의 시발점ꡓ이라며 세계에 우뚝 선 한국 양궁의 오늘을 있게 한 자부심이 그의 형형한 눈빛에 어려 있었다.
[각궁은 선비의 심신수련용] : 활은 궁간(弓幹)의 길이에 따라 장궁(長弓)과 단궁(短弓)으로 나누어진다. 장궁은 활의 길이가 2m이상으로 주로 삼림지대나 해안 지대의 민족들이 사용해왔다. 단궁은 2m 이하로 초원지대의 민족들이 주로 사용하던 활이다. 구조에 따라 환목궁(丸木弓)과 복합궁(複合弓)으로 분류된다. 또 사용된 재료에 따라 나무로 만들면 목궁, 대나무로 만들면 죽궁, 소뿔로 만들면 각궁, 놋쇠로 만들면 철궁 등으로 구분한다. 대나무 한 가지 재료로 제작한 것도 있고, 대나무, 뿔 등 여러 가지 재료를 복합하여 제작한 것도 있다. 대나무․뽕나무․참나무․소 심줄 ․물소 뿔․민어부레․화피 등 여러 재료가 동원된다. 우리나라의 활은 크기로는 단궁이며 여러 가지 재료를 사용한 복합궁으로,「복합단궁」이라 한다. 쇠뿔(牛角) 쇠심줄 같은 것을 재료로 하여 만드는 것이 현존하는 각궁(角弓)이라 불리는 우리나라 전통 심신수련용 활이다. 원래는 각궁 외에도 예식에 쓴 예궁 등 우리 활은 10개 종류가 있었다. 가장 일반적인 정량궁(正兩弓)은 활짱의 길이가 5.5척, 군왕(君王)이 위용으로 지니는 예궁(禮弓)은 6척에 달한다. 전투용에는 대소의 차이가 있으나, 기마용(騎馬用)의 동개(활과 화살을 넣어 등에 지는 제구)는 단궁(短弓)에 사용되는 것이다. 활은 옛날 중국의 창(槍), 일본의 칼(刀)과 더불어 수렵(狩獵)의 도구로서 뿐만 아니라 전쟁의 수단으로도 사용되어 왔다. 예천 활은 복합단궁(復合短弓)으로 재료의 처리와 제작과정이 손으로 이루어지는 수공예품(手工藝品)이기 때문에 보기에도 아름다움이 뛰어나다. 활 제작은 크게 활을 만드는데 필요한 각종 재료를 준비하는 과정, 재료들을 모아 활로 만드는 과정, 만든 활이 제 모양을 갖추고 그것을 쓰는 사람의 몸에 맞도록 해궁(解弓 = 활 풀이)과정, 그리고 마무리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활 제작 작업은, 5월에서 9월까지 재료 처리 기간 이외에 하나의 활이 완성되는 기간은 약 다섯 달(150일) 소요된다고 한다. 활은 모두 자연조건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천연재료로 처음부터 끝까지 빈틈없이 사람의 손길이 미쳐야 하는 고난도 작업으로 기후와 기온에 맞추어 이루어지는 단계별 작업이다. 각궁은 활짱(활의 몸)의 손잡이 부분(줌통)과 양쪽 끝(정탈목 고잣잎)에는 참나무와 뽕나무를 각각 대지만, 강력한 탄력을 유지하는 오금 부위에는 죽심(竹心)을 넣고 그 안팎에다 쇠뿔과 쇠심줄을 부레풀로 접착시킴으로써 탄성(彈性)의 강도를 높였다. 이때 수우각(水牛角 , 무소뿔)을 깎아 댄 것을 흑각궁(黑角弓)이라 하고, 또 한우각(韓牛角)은 백각궁(白角弓)이 되는데, 백각으로는 큰 활을 만들지 못하는 결점이 있어 흑각궁을 높이 쳤다. 이러한 각궁은 목궁(木弓)이나 죽궁(竹弓)에는 비할 수 없이 화살을 멀리 날리는 강한 힘을 분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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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