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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249) : 권오휘(지부장)-권완(목사)(1)(附 예천방문 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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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휘 : 예천읍 태생 권오휘 신임 한국문인협회 군지부장/ 작년, 2010년 1월 17일/ 권오휘 신임 한국문인협회 군지부장/ 예천신문 master@ycnews.co.kr/ “활발한 활동으로 지부 내실화와 회원 저변 확대에 힘쓰겠습니다.” 한국문인협회 예천지부 권오휘(47·시인) 신임 지부장은 예천읍 태생으로 예천초등, 대창중.../ cafe.daum.net/yckun/ 예천군민회(daum 2011)
권오휘 : 권오휘 신임 한국문인협회 군지부장/ @ycnews.co.kr/ “활발한 활동으로 지부 내실화와 회원 저변 확대에 힘쓰겠습니다.” 한국문인협회 예천지부 권오휘(47·시인) 신임 지부장은 예천읍 태생으로 예천초등, 대창중(29회), 대창고(27회), 대구대 국문과, 안동대 대학원.../ www.ycnews.co.kr(daum 2011)
권오휘 : 11일 제7회 서하(임춘) 전국 백일장 개최한다/ 작년, 2010년 9월 10일 | 예천인터넷방송 | view/ (사)한국문인협회 예천지부(권오휘 회장)가 9월 11일 오전 10시부터 예천군문화회관에서 제7회 서하(임춘) 전국백일장이 개최된다. 서하백일장은 국순전, 공방전 등 주옥같은 작품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가전체 문학에서 길이...(daum 2011)
권오휘 : (사)한국문인협회 예천지부, 2010년 정기총회 및 예천문단 제6집 평가회.../ 작년, 2010년 1월 10일 | 예천인터넷뉴스/ (사)예천문인협회(회장 권오휘)는 10일 오후 1시 감천면 신라식물원 내에서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2010년 정기총회 및 예천문단 제6집 평가회를 가졌다. 이날 정기총회에서는 결산 및...(daum 2011)
권오휘 : 대창80년사 : 중고병설시대(29) 송원선생논문집-영풍수련장입소/ 작성 장병창/ 2달전, 2011년 1월 27일 (목)/ ...년 2월 10일에 발간된 이 <송대(松臺)> 제7집은 대창중고등학교 교우지로, 이병열, 권오휘 교사가 엮어서 도서출판 한빛(안동)에서 찍었다. 가로 16cm, 세로 22cm, 305쪽이다. 김교용 이사장님의.../ cafe.daum.net/seouldaechong/ 재경예천대창중.고등학교 동문회(daum 2011)
권오휘 : 대창80년사 : 중고병설시대(19) 친목회규약-개교70주년행사(1)/ 작성 장병창/ 2달전, 2011년 1월 17일 (월)/ ...(施賞)에 소경섭 김상덕, 준비에 권영식 김세용 이준희 이병열 조동수, 기록에 윤주능 권오경 권오휘 최규영, 섭외에 김화동 박용태 도기철 최철영 김흥식, 구호에 고병갑 강미영 김점숙, 시설에 .../ cafe.daum.net/seouldaechong/ 재경예천대창중.고등학교 동문회(daum 2011)
권오휘 : 송대 연보(3)/ 작성 장병창/ 작년, 2010년 1월 4일 (중,고), ㅇ 19일 경북청소년지원봉사센터, 본교에서 봉사활동기본교육을 함(중), ㅇ 19일 권오휘 교사, 교내 국어과 공개 수업을 함(고). ㅇ 22일 스쿨벵킹 신청받음. ㅇ 29일 예천군올림피아드대회.../ cafe.daum.net/seouldaechong/ 재경예천대창중.고등학교 동문회(daum 2011)
권오휘(권오휘 韓國藝總 副支會長, 功勞賞 受賞) [記事] : (사)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예천지회(회장 최도성) 권오휘(49·시인·한국문인협회 예천지부장) 부지회장이 2012년 12월 17일 서울시 우리은행 본점 4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26회 한국예총예술문화상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수상했다. 권 부지회장은 예천 예술문화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했다. 권오휘 부지회장은 2003년 문예사조(시)로 등단하여 현재 대창고등학교 국어교사, 안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겸임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가족으로는 부인 이영임 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다.(醴泉新聞 2012년 12월 27일 (목) 10: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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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완 [記事] : 태종실록 11권/ 태종 6년(1406 병술 / 명 영락(永樂) 4년) 2월 10일(신미) 1번째 기사/ 임금이 매사냥을 구경하고 고니를 잡아 덕수궁에 올리다/ 임금이 동교(東郊)에서 매사냥[放鷹]하는 것을 구경하고 천아(天鵝)를 잡아서 즉시 덕수궁 에 바쳤다. 해가 정오(正午)가 지나도록 수라를 맡은 자가 미처 진상(進上)하지 못하고, 어가(御駕)를 따르는 내시(內侍)와 더불어 술만 올리다가 곧 환궁하였다. 대언 권완(權緩)이 아뢰기를, ꡒ이제 수라를 맡은 자가 미처 올리지 못하였으니, 어찌 죄를 다스리지 아니하겠습니까?ꡓ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ꡒ오늘 출유(出遊)한 것은 상례(常例)가 아니었다. 만약 이들을 죄 주면 외인이 반드시 나를 구실(口實)삼을 것이다.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4책 11권 6장 A면/ 【영인본】 1책 349면/ 【분류】 *재정-진상(進上)(www.history.go.kr 2009)
권완 [記事] : 태종실록 12권/ 태종 6년(1406 병술 / 명 영락(永樂) 4년) 9월 12일(무진) 1번째 기사/ 포천․철원 등지에서 강무하여, 사냥한 노루 3마리를 덕수궁에 바치다/ 임금이 사람을 보내어 노루 세 마리를 덕수궁 에 바쳤다. 임금이 포천(抱川) 등성이에서 고정모(高頂帽)를 쓴 두어 사람이 뒤쫓아오는 것을 보고, 좌우(左右)에게 묻기를, ꡒ저들은 누군가?ꡓ하니, ꡒ대언(代言)입니다.ꡓ하였다. 임금이 말을 멈추고 여섯 대언(代言)을 불러, 노희봉(盧希鳳)을 시켜서 각각 큰 바리[盂]에다 술을 부어 하사하고, 또 다시 큰 술잔[鍾]으로 한 잔씩을 하사하였다. 그리하여 좌대언(左代言) 윤사수(尹思修)는 엉금엉금 기어서 물러가고, 우대언(右代言) 권완(權緩)은 말을 타려 하다가 떨어지니, 임금이 웃었다. 이숙번(李叔蕃)을 불러 말하기를, ꡒ이곳에는 짐승이 적고, 날이 흐려서 비가 이처럼 내리니, 내 환궁하고자 한다.ꡓ하였다. 이숙번이 대답하기를, ꡒ지나신 곳마다 예전부터 이와 같으니, 만약 철원(鐵原) 지방으로 들어가시면 들이 평평하고 짐승도 꽤 많을 것입니다.ꡓ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13일[己巳]에 철원 지방에 들어가니, 과연 이숙번의 말과 같았다. 저녁 때 철원 의 신지(新池)에서 행차를 멈추었다. 임금이 중축(中軸) 사이에서 말을 달리며 짐승을 쫓았다./ 【태백산사고본】 4책 12권 28장 A면/ 【영인본】 1책 376면/ 【분류】 *군사-병법(兵法) / *왕실-행행(行幸) / *왕실-의식(儀式)(www.history.go.kr 2009)
권완 [記事] : 태종실록 13권/ 태종 7년(1407 정해 / 명 영락(永樂) 5년) 6월 24일(병오) 1번째 기사/ 정승과 김각 등이 창덕궁에 나아가다/ 정승과 김각 등 다섯 사람이 창덕궁(昌德宮)에 나오니, 임금이 정승을 맞이하여 편전(便殿)에서 술자리를 베풀고, 좌대언(左代言) 권완(權緩)에게 명하여 김각 등을 서상(西廂)에서 먹이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5책 13권 37장 B면/ 【영인본】 1책 400면/ 【분류】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9)
권완 [記事] : 태종실록 15권/ 태종 8년(1408 무자 / 명 영락(永樂) 6년) 4월 25일(계묘) 1번째 기사/ 사신 황엄․전가화․해수 등이 금강산에 유람하기를 청하다/황엄․전가화․해수․기원(奇原) 및 진경이 금강산(金剛山)에 가서 놀기를 청하니, 세자(世子)를 명해 흥인문(興仁門) 밖에서 전송하게 하고, 호조 판서(戶曹判書) 이문화(李文和)․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 권완(權緩)․총제(摠制) 이간(李?)․철성군(鐵城君) 이원(李原)으로 반행(伴行)을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6책 15권 20장 B면/ 【영인본】 1책 437면/ 【분류】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9)
권완 [記事] : 태종실록 16권/ 태종 8년(1408 무자 / 명 영락(永樂) 6년) 9월 29일(갑술) 6번째 기사/ 계품사 권완을 경사에 보내다. 잔여 만산군의 송환 계획에 관한 자문/ 계품사(計稟使) 우군 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 권완(權緩)을 보내어 경사(京師)에 가게 하였다. 예부(禮部)에 보낸 자문(咨文)은 이러하였다. ꡒ조선 국왕(朝鮮國王)이 근자에 승준(承准)한 내자(來咨) 가운데, ꡐ1건(件)은 도망 중에 있는 인구(人口)에 대한 일. 병부(兵部)의 자문(咨文)에 의하면, 「 동녕위 천호(東寧衛千戶) 김성(金聲) 등이 아뢰기를, 조선국에 가서 만산군(漫散軍)의 나머지를 취(取)하여 기발(起發)한 외에 아직도 1천 1백여 구(口)가 있는데, 모두 홍무(洪武) 연간(年間)에 오정타(五丁?)의 군적(軍籍)에 편입된 인수(人數)들로서, 본국(本國)에서 원년 향호(遠年鄕戶)와 관사 노복(官私奴僕) 등의 명목을 붙여 취발(取發)하지 않으므로 구주(具奏)한다고 하였다. 영락(永樂) 5년 11월 초1일 아침에 본부관(本部官)이 서각문(西角門)에서 흠봉(欽奉)한 성지(聖旨)에, 조선 국왕이 유이(流移)한 인구(人口)들을 만가(萬家)나 되게 요동(遼東)에 발회(發回)하여 군역(軍役)에 복귀하고 생업(生業)에 정착하게 하였으니, 그 나머지 남아 있는 것을 어찌 인색하게 취발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김성(金聲)이 그곳에서 재물(財物)을 탐(貪)하고 술을 좋아하여 남의 자녀들을 속이기를 지극히 나쁘게 하여, 국왕에게 알리지도 않고 비밀히 저 사람들을 팔아넘긴 것이다. 김성 그놈을 법사(法司)로 잡아 보내어 문죄(問罪)하고, 다시 진경(陳敬)을 시켜 역마(驛馬)를 타고 문서(文書)를 가지고 가서 국왕에게 말하게 하여, 즉시 김성 이 팔아먹은 인구를 빠짐없이 요동에 돌려보내어 복역(復役)․착업(着業)하게 하라 하시었다. 이 뜻을 받들어 이자(移咨)하여 부(部)에 보낸다.」 하였으므로, 본국에 행이(行移)하니 흠준(欽遵)하여 시행하고, 인하여 돌려보낸 인구의 수목(數目)을 회보하라.ꡑ 하였습니다. 여기에 준(准)해 조득(照得)하여 먼저 원년 향호와 관사 노복 등의 항목으로 머물러 두고 명령을 기다린 것과, 깊숙한 산골에 도망해 숨어서 찾아내지 못했던 인수(人數)를 자문(咨文)하여 주달(奏達)하기를 청하였으니, 그 사이에 어찌 팔아넘기는 폐단이 있었겠습니까? 이제 내자(來咨)를 받들어 의정부(議政府)의 장계(狀啓)에 의거하면, ꡐ흠의(欽依)하여 대호군(大護軍) 이의(李懿) 등을 보내어 본국(本國)의 동서북면(東西北面)과 평양(平壤) 등 부(府)․주(州)․현(縣)에 원래부터 존류(存留)해 있던 원년 향호와 관사 노복 유사경(劉思京) 등 4백 73구를 점득(點得)한 수 내(內)에서, 죽은 25구를 제외하고 실지로 남아 있는 4백 48구와, 원래 완전히 찾아내지 못한 수 내에서 현재 찾아 얻은 인구 김득부(金得富) 등 모두 1천 1백 53구를 나누어 4운(運)으로 만들어, 조사덕(曹士德)․김유진(金有珍)․임종의(任種義)․ 강유경(康庾卿)을 보내어 영락 6년 월 일에 계속해서 압령(押領)하여 요동 도사(遼東都司)로 해송(解送)해 인계하고, 지금 현재 해송한 인수(人數)와 물고(物故)된 인구를 개계(開啓)합니다.ꡑ 하였습니다.
이것으로 전번 것을 참조하여 상항의 기록한 것에 의해 이자(移咨)하오니, 조험(照驗)하여 주달(奏達)해 시행하기를 청합니다. 본국(本國)에서 취감(取勘)한 인구를 계산하면 현재 요동 도사에 보낸 인구가 1천 1백 53구인데, 초운(初運) 유사경(劉思敬) 등이 7백 81구이고, 제2운 이융(李隆) 등이 1백 59구이고, 제3운 유막수(劉莫遂) 등이 99구이고, 제4운 정세(鄭世) 등이 1백 14구이고, 물고(物故)가 4백 55구, 존류(存留)한 원년 향호와 관사 노복이 25구이고, 완전히 찾아내지 못한 각 가호(家戶)가 67구이며, 영락 5년에 이미 요동 도사에 자보(咨報)한 것이 3백 63구입니다.ꡓ/ 【태백산사고본】 6책 16권 20장 A면/ 【영인본】 1책 454면/ 【분류】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9)
권완 [記事] : 태종실록 17권/ 태종 9년(1409 기축 / 명 영락(永樂) 7년) 2월 19일(임진) 1번째 기사/ 총제 권완이 예부의 자문을 가지고 돌아오다. 왜적에게 잡힌 조선인의 송환 및 《대통력》 등의 송부 내용/ 총제(摠制) 권완(權緩)이 예부(禮部)의 자문(咨文)을 가지고 명나라 서울[京師]에서 돌아왔다. 그 자문(咨文)의 1건(件)은 성식(聲息)1448) 에 관한 일이었다. ꡒ영락(永樂) 6년 12월 초4일 아침에 본부(本部) 관원이 봉천문(奉天門)에서 삼가 성지(聖旨)를 받들었는데, ꡐ왜적(倭賊)이 조선에서 약탈하다가 이곳에 왔는데, 그곳에서 사로잡은 여섯 사람을 데리고 왔다. 그들이 해변을 약탈할 때 저들 여섯 사람이 도망하여 방어하는 관원에게 잡혀 왔기에, 심문하여 보니 조선 사람이다. 너희 예부에서는 저들에게 옷과 모자 노자[盤纏]를 주어서 도착한 조선 사신에게 데리고 돌아가게 하라.ꡑ고 하였습니다. 흠준(欽遵)하여 김득정(金得正) 등 6명을 사신 권완(權緩) 에게 교부(交付)하여 데리고 돌아가게 하는 외에, 본국에 자문을 보내는 바이니, 왕(王)은 알아서 시행할 것입니다.ꡓ 1건은 급사(給賜)에 관한 일이었다. ꡒ삼가 본국(本國) 왕에게 영락(永樂) 7년의 대통력일(大統曆日) 1백 본과 《권선서(勸善書)》 3백 부를 하사합니다.ꡓ/ 【태백산사고본】 7책 17권 11장 B면/ 【영인본】 1책 476면/ 【분류】 *외교-명(明)/ [註 1448]성식(聲息) : 소식. ☞(www.history.go.kr 2009)
권완 [記事] : 태종실록 17권/ 태종 9년(1409 기축 / 명 영락(永樂) 7년) 4월 10일(임오) 1번째 기사/ 명나라 황제가 보낸 《권선서》 3백 권을 운반해 오게 하다/ 《권선서(勸善書)》를 속히 운반해 오도록 명하였다. 임금이 말하였다. ꡒ권완(權緩)이 올 때에 황제가 《권선서(勸善書)》 3백 권을 하사하였는데, 중도에 두고 지금까지 서울[京城]에 운반해 오지 아니하니, 매우 불경(不敬)한 일이다. 황제가 만약 들으면 반드시 야만스럽다고 할 것이고, 이로 인해 흔극(?隙)이 생길는지도 알 수 없다. 권완이 스스로 말하기를, ꡐ형편이 가지고 오기가 어려웠습니다.ꡑ고 하나, 그 말이 잘못이다. 이번 길에 다른 물건을 가져온 것이 어찌 없었겠는가?ꡓ 임금이 속히 실어 오도록 명하였다./ 【태백산사고본】 7책 17권 22장 B면/ 【영인본】 1책 481면/ 【분류】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9)
권완 [記事] : 태종실록 17권/ 태종 9년(1409 기축 / 명 영락(永樂) 7년) 4월 19일(신묘) 2번째 기사/ 예문관 제학 권완에게 노비 6구를 하사하다/ 예문관 제학(藝文館提學) 권완(權緩)에게 노비 6구를 하사하였다. 잠저(潛邸) 때에 정성껏 복종하고, 사명을 받들고 중국에 가서 전대(專對)한 노고를 상준 것이었다./ 【태백산사고본】 7책 17권 24장 B면/ 【영인본】 1책 482면/ 【분류】 *왕실-사급(賜給)(www.history.go.kr 2009)
권완 [記事] : 태종실록 17권/ 태종 9년(1409 기축 / 명 영락(永樂) 7년) 6월 4일(을사) 3번째 기사/ 중군 총제 및 호조․형조 판서 등을 새로 임명하고 집의 한상덕을 파면, 이숙야로 교체하다/ 유용생(柳龍生)을 중군 총제(中軍摠制)로, 이빈(李彬)을 호조 판서로, 황거정(黃居正)을 형조 판서로, 이응(李膺)․권완(權緩)을 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로, 공부(孔俯)를 우군 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로 삼고,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 한상덕(韓尙德)을 파면하여 이숙야(李叔野)로 대신하였다./ 【태백산사고본】 7책 17권 43장 B면/ 【영인본】 1책 491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권완 [記事] : 태종실록 18권/ 태종 9년(1409 기축 / 명 영락(永樂) 7년) 9월 3일(임신) 5번째 기사/ 권신이 붕당짓는 것을 싫어한다는 임금의 의도를 누설한 권완을 파직시키다/ 민무구(閔無咎) 형제(兄弟)가 이숙번(李叔蕃)과 본래부터 서로 꺼리는 사이였었는데, 민무구 등이 폐(廢)하매, 임금이 일찍이 윤저(尹?)를 불러 사람을 물리치고 말하기를, ꡒ경은 무슨 까닭으로 이숙번에게 당부(黨附)하는가?ꡓ하였으니, 임금의 뜻은 대개 권신(權臣)이 붕비(朋比)하는 것을 미워한 것이었다. 윤저가 권완(權緩)에게 누설하였는데, 권완이 숙번에게 고하니, 숙번이 임금에게 말하였다. 이날에 임금이 권완의 관직을 파면시켰다./ 【태백산사고본】 7책 18권 19장 A면/ 【영인본】 1책 506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권완 [記事] : 태종실록 22권/ 태종 11년(1411 신묘 / 명 영락(永樂) 9년) 12월 7일(계사) 1번째 기사/ 하구를 중군 도총제로, 권완․이발을 경기․충청 도관찰사로 임명하다/ 하구(河久)를 중군 도총제(中軍都摠制)로, 권완(權緩)을 경기 도관찰사(京畿都觀察使)로, 이발(李潑)을 충청도 도관찰사(忠淸道都觀察使)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9책 22권 44장 B면/ 【영인본】 1책 612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권완 [記事] : 태종실록 23권/ 태종 12년(1412 임진 / 명 영락(永樂) 10년) 6월 23일(병자) 1번째 기사/ 중궁이 해산을 하자 문성군 유양과 좌대언 이관 등에게 내구마를 하사하다/ 문성군(文城君) 유양(柳亮), 좌대언(左代言) 이관(李灌)에게 내구마(內廐馬) 각각 한 필을 내려 주었다. 이 앞서 중궁(中宮)이 해산을 하였는데, 임금이 김여지(金汝知)에게 일렀었다. ꡒ중궁(中宮)이 매양 난산(難産)하는 병이 있어서 내가 걱정하였더니, 이제 경 등이 성의 있게 약을 공급함에 힘입어서 근심이 없으니, 내가 심히 기뻐한다. 검교 한성 윤(檢校漢城尹) 양홍달(楊弘達)․검교 참의(檢校參議) 양홍적(楊弘迪)․전 판전의감사(判典醫監事) 조청(曹聽) 등이 지은 약이 효험이 있었으니, 각각 쌀 10석을 내려 주고, 전의 주부(典醫注簿) 김토(金土)․부사직(副司直) 이헌(李軒)에게 쌀 각각 5석을 내려 주라.ꡓ 유양과 이관은 감제(監劑)2174) 하는 데 공이 있었던 까닭으로 이러한 하사(下賜)가 있었다. 또 중관(中官) 노희봉(盧希鳳)에게 저화(楮貨) 1백 장을 내려 주었으니, 또한 근로한 때문이었다. 대언사(代言司)에 전지(傳旨)하기를, ꡒ금년에 아들을 낳으면 복자(卜者)가 말하기를, ꡐ아이의 한도가 있다.ꡑ고 하니, 마땅히 딴 곳에서 양육하여야 하겠는데, 누가 자식이 없어서 기를 만한 자인가?ꡓ하니, 지신사 김여지(金汝知) 가 대답하였다. ꡒ권완(權緩)․양수(梁需)․황자후(黃子厚)가 모두 자식이 없습니다.ꡓ 임금이 말하였다. ꡒ권완은 노비가 많으니, 인심이 반드시 이것 때문이라고 할 것이고, 양수는 바야흐로 부임 중에 있고, 황자후는 여성군(驪城君)의 아들을 기르고 있으니, 모두가 당치 않다.ꡓ 김여지가 또 말하기를, ꡒ염치용(廉致庸)도 또한 자식이 없습니다. 성비전(誠妃殿)은 어떻습니까?ꡓ하니, 임금이 말하였다. ꡒ 성비전이 가하다.ꡓ/ 【태백산사고본】 10책 23권 43장 B면/ 【영인본】 1책 640면/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종친(宗親) / *왕실-사급(賜給)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의약-의학(醫學)/ [註 2174]감제(監劑) : 전의감(典醫監)에서 약(藥)을 제조(劑造)할 때 약방 대언(藥房代言) 등이 이를 감시 감독하던 일. ☞(www.history.go.kr 2009)
권완 [記事] : 태종실록 24권/ 태종 12년(1412 임진 / 명 영락(永樂) 10년) 7월 17일(경자) 8번째 기사/ 권완을 불러 경기의 곡식이 얼마나 손상되었는지를 묻다/ 권완(權緩)을 불러 묻기를, ꡒ경기(京畿)에서 바람으로 손상된 곡식이 얼마나 되느냐?ꡓ하니, 대답하기를, ꡒ대저 곡식이 손상된 것은 10분의 1에 불과합니다.ꡓ하므로, 임금이 말하였다. ꡒ지금 개성 유후(開城留後) 이문화(李文和)의 보고에 의하면 곡식이 크게 손상되었다 하여 경의 말과는 다르다. 비록 소수가 손상되었다 하더라도 내 반드시 백성의 양식을 다 징수하지는 않겠다.ꡓ 대체로 이문화의 보고를 의심하여서였다. 이때에 외방에서 온 어떤 사람들이 있어, 임금이 풍재(風災)의 심천(深淺)을 상문(詳問)하고, 각기 자기 소견대로 대답하게 하니, 말하는 것이 한결같지 아니하였다. 어떤 사람에게는 끝가지 힐문을 가하니 외방사람들이 이를 알고 점차로 말을 꾸며서 아뢰게 되었다. 권완은 본래부터 지조가 없는데 다 황음무도(荒淫無道)하여 감사의 직임에 합당하지 않았다. 지금 말하기를, ꡒ큰바람에 손상된 곡식을 10분의 1에 불과합니다.ꡓ고 하였는데, 실로 이것은 주상을 속인 것이다./ 【태백산사고본】 10책 24권 3장 B면/ 【영인본】 1책 643면/ 【분류】 *사법-탄핵(彈劾) / *교통-수운(水運) / *군사-금화(禁火)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www.history.go.kr 2009)
권완 [記事] : 태종실록 24권/ 태종 12년(1412 임진 / 명 영락(永樂) 10년) 9월 30일(임자) 2번째 기사/ 권완이 마전포 선상에서 임금에게 술을 올리다/ 임금이 환궁하니, 권완(權緩)이 마전포(麻田浦) 선상(船上)에서 술을 올렸다. 술이 거나하자 권완과 김한로(金漢老) 등이 일어나 춤을 추었다. 임금이 김여지(金汝知)에게 이르기를, ꡒ너무 편안하지 아니한가?ꡓ하니, 김여지가 대답하기를, ꡒ이 행사는 해마다 하는 상사(常事)이니, 해로울 것이 없습니다.ꡓ하였다. 임금이, ꡒ이것은 미사(微辭)2273) 로써 억지를 보이는 것이다.ꡓ하고, 권완에게는 말 1필을 광주 목사(廣州牧使) 안노생(安魯生)에게는 오의(?衣)2274) 1벌[領]을 내려 주었다./ 【태백산사고본】 10책 24권 17장 A면/ 【영인본】 1책 650면/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사급(賜給)/ [註 2273]미사(微辭) : 몇 마디 되지 않는 말. ☞ / [註 2274]오의(?衣) : 도포. ☞(www.history.go.kr 2009)
권완 [記事] : 태종실록 24권/ 태종 12년(1412 임진 / 명 영락(永樂) 10년) 10월 10일(임술) 2번째 기사/ 권완․허주․조비형에게 관직을 제수하고 성균관에 사․승․녹사를 주다/ 권완(權緩)으로 공안부 윤(恭安府尹)을, 허주(許周)로 경기 도관찰사(京畿都觀察使)를, 조비형(曹備衡)으로 경상도 병마도절제사(慶尙道兵馬都節制使)를, 마천목(馬天牧)으로 전라도 병마도절제사를, 김중보(金重寶)로 충청도 병마도절제사를 삼고, 절제사 겸 목사(節制使兼牧使)의 직임을 혁파하여, 신호(申浩)로 나주 목사(羅州牧使)를, 하자종(河自宗)으로 홍주 목사(洪州牧使)를, 이추(李推)로 창원 부사(昌原府使)를 삼고, 성균관(成均館) 양현고(養賢庫)에 사(使) 1원을 두어 성균 주부(成均主簿)로 이를 겸하게 하고, 승(丞) 1원을 두어 박사(博士)로 이를 겸하게 하며, 녹사(錄事) 1원을 두어 학유(學?)로 이를 겸하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0책 24권 19장 B면/ 【영인본】 1책 651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www.history.go.kr 2009)
권완 [記事] : 태종실록 24권/ 태종 12년(1412 임진 / 명 영락(永樂) 10년) 12월 12일(계해) 1번째 기사/ 윤자당․권완․박기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윤자당(尹子當)으로 길주도 도안무 찰리사(吉州道都安撫察理使)를, 권완(權緩)으로 판원주목사(判原州牧使)를 삼고, 박기(朴?) 등 7인에게 다시 성균 교서(成均校書)의 직(職)을 주었다. 박기 등은 시강(試講)할 때 가독(加瀆)함이 없었으므로 외방 교수(外方敎授)가 되고, 혹은 파직(罷職)되었다가 이때에 이르러, 중월 부시(仲月賦詩)에 1등(一等)으로 합격되었기 때문에 모두 복직하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0책 24권 32장 A면/ 【영인본】 1책 658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권완 [記事] : 태종실록 25권/ 태종 13년(1413 계사 / 명 영락(永樂) 11년) 4월 20일(무진) 1번째 기사/ 상왕이 정토사에 있다가 판원주 목사 권완의 집으로 옮겨가다/ 상왕이 판원주목사(判原州牧使) 권완(權緩)의 사제로 이어(移御)하니, 정토사(淨土寺)에서 이어한 것이다./ 【태백산사고본】 11책 25권 22장 A면/ 【영인본】 1책 669면/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국왕(國王) / *사상-불교(佛敎)(www.history.go.kr 2009)
권완 [記事] : 태종실록 25권/ 태종 13년(1413 계사 / 명 영락(永樂) 11년) 6월 5일(임자) 1번째 기사/ 박은․이응․한상경․유정현․조연 등에게 새 관직을 제수하다/ 금천군(錦川君) 박은(朴?)․영양군(永陽君) 이응(李膺)으로 겸 판의용순금사사(兼判義勇巡禁司事)를, 한상경(韓尙敬)․유정현(柳廷顯)으로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를 조연(趙涓)으로 공조 판서를, 박자청(朴子靑)으로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를, 하구(河久)로 우군 도총제를, 안성(安省)으로 강원도 도관찰사(江原道都觀察使)를 삼았다. 강원도도관찰사 우홍강(禹洪康)․충청도 도관찰사 이안우(李安愚)․충주 목사(忠州牧師) 권진(權軫)․원주 목사(原州牧使) 권완(權緩) 등이 충청도 제주(提州) 2568) 에 모여서 술을 마셨는데, 일이 발각되자 헌사(憲司)에서 탄핵하여 아뢰었다. 임금이 우홍강이 타도(他道)에 넘어 들어갔다고 하여, 특명으로 파직시켰다./ 【태백산사고본】 11책 25권 28장 A면/ 【영인본】 1책 672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註 2568] 제주(提州) : 제천(提川). ☞(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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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방문 983
예천공설운동장(第42回 春季 全國中高陸上競技大會, 第1回 全國初等學校 陸上大會 : 4月 19日부터 22日까지 4日 동안 열려) [記事] : 제42회 춘계 전국중고육상경기대회 및 제1회 전국초등학교 육상대회가 오는(2013년 4월) 19일부터 22일까지 4일 동안 예천읍 예천공설운동장에서 열린다. 예천군에서 전국대회를 치르게 된 데는 지난해 12월 개장한 육상보조경기장 덕분이다. 예천군의 육상보조경기장은 날씨와 상관없이 사계절 운동을 할 수 있는 비가림 시설을 설치한 전천후 연습장으로 실내에는 6개 레인의(길이 1백60m, 폭16m) 우레탄 트랙이 설치되어 있을 뿐 아니라 실내 장대높이뛰기 훈련 시설까지 갖춰져 있다. 예천군은 지난 1일부터 경기장 내 시설물 정비·점검은 물론, 시가지 환경정비, 숙박·식품접객업소 지도·점검, 교통시설물 정비 등 선수단과 관광객들의 불편 해소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특히, 이번 대회를 앞두고 국도 및 시가지 주요 도로변에 꽃길을 조성하고 경기장 시설물인 전기·방송 및 전광판 시스템 점검, 참가선수단 안전사고 예방 계획, 방역활동 등을 강화하고 있다. 또 시가지와 식당, 숙박업소에 환영 현수막을 부착하고, 위생업주들의 친절 교육, 자발적인 참여 유도 등 대회분위기 조성과 친절한 손님맞이 준비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예천군 관계자는 “예천에서 처음 열리는 전국 육상대회로 선수와 임원, 관광객 등 3천여 명이 지역을 찾아올 것으로 예상돼 약 25억원의 경제적 파급 효과가 기대된다” 며 “철저한 대회 준비로 참가 선수단 및 관광객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지역이미지 제고와 침체된 지역경기 활성화에 만전을 기할 방침이다”고 말했다.(醴泉新聞 2013년 04월 11일 (목) 09:43:17)
예천군청소년수련관(‘慶北北部未來포럼’ 열려 : 政府의 地域發展戰略과 慶北北部圈의 對應 方向) [記事] : 경북북부발전협의회(의장 황종규)에서는 2013년 4월 11일 오후 4시 예천군 청소년수련관에서 경북북부권 지역의 미래 발전을 위한 전략 포럼을 개최했다. 이날 포럼에는 이현준 예천군수를 비롯해 경북북부권 10개 자치단체 소속 북부발전협의회 위원 1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새 정부의 지역발전 전략과 경북북부권의 대응 방향’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포럼에서 신두섭(대통력직속지역발전위원) 정책연구관은 “지금까지는 중앙정부 시각에서 지역의 정책을 결정하거나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전략을 추진한 것에 대해 반성하고 앞으로는 지역 요구 조건에 충실한 지역 정책과 지역 정책의 주 대상인 주민의 삶의 질 개선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한, 지역발전의 미래상으로 지역일자리 창출, 지방중추도시권 육성, 지역발전 재정지원 체계 및 정책 집행 체계 개편을 추진 전략으로 내세웠다. 이현준 군수는 인사말에서 “지역간 삶의 질 격차와 일자리 불균형으로 인해 지방 도시는 점점 더 낙후되어 가고 있는 것이 현주소이며 이번 포럼을 계기로 경북북부권 지역 자치단체 간 연계 협력해 상생 발전해 나갈 것”을 당부했다. 한편, 이날 토론자로는 황종규 동양대 부총장(토론 좌장), 박상우 경북대 교수, 강창교 문경대 교수, 김규덕 경북도립대 교수가 나섰다.(醴泉뉴스 2013년 04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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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