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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3267:권적(4)(附예천방문987)
작성자장병창 @ 2013.04.30 03:51:51

  예천의 자랑(3267) : 권적(참봉)(4)(附 예천방문 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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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적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4년 5월 23일 (임술) 원본265책/탈초본14책 (24/25)  1678년 康熙(淸/聖祖) 17년/ 避嫌중인 李堂揆의 遞差를 청하는 權迪 등의 계/ ○ 司諫權迪, 獻納金海一, 正言孫萬雄․朴紳啓曰, 大司諫李堂揆引嫌而退, 被推未勘, 在例應遞。請行大司諫李堂揆遞差。答曰, 依啓。(www.history.go.kr 2009)

 

  권적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4년 6월 10일 (기묘) 원본265책/탈초본14책 (8/9)  1678년 康熙(淸/聖祖) 17년/ 李堂揆 등이 謝恩함/ ○ 謝恩, 護軍李堂揆․權迪, 肅川縣監李斗龜。(www.history.go.kr 2009)

 

  권적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4년 7월 7일 (을사) 원본265책/탈초본14책 (23/27)  1678년 康熙(淸/聖祖) 17년/ 權迪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吏批, 以權迪爲司?正, 裵正徽爲直講, 成後周爲平市令。(www.history.go.kr 2009)

 

  권적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4년 7월 22일 (경신) 원본265책/탈초본14책 (13/27)  1678년 康熙(淸/聖祖) 17년/ 鄭維岳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吏批。以鄭維岳爲承旨, 權迪爲執義, 吳始復爲戶曹參判, 李宇鼎爲禮曹參判。濬源殿參奉李浣, 厚陵參奉鄭有錫, 相換。學正單, 韓范齊。閔宗道爲同義禁, 金盛最爲?谷縣令, 沈?爲抱川縣監, 邊四達爲甕津縣令, 安?爲扶安縣監, 許壕爲咸興判官。奉敎單, 安汝岳, 承文博士單, 李徵龜。韓柱爲富寧府使, 吳伯周爲理山郡守, 申履狀爲博川郡守, 李紳夏爲韓山郡守, 李雲徵爲咸悅縣監, 洪世亨爲淸州牧使, 尹以道爲公州牧使, 朴興文爲价川郡守, 金重南爲丹城縣監, 左承旨鄭維岳, 右承旨南天澤, 左副承旨權脩, 右副承旨兪夏益, 閔枋爲典獄奉事, 朴時璟爲永平縣令, 愼景尹爲慶源府使, 金煥爲中和府使, 李泰憲爲衿川縣監, 金壽一爲仁川府使, 韓侃爲長淵府使, 李以時爲明川府使, 具?爲掌令, 李后沆爲咸昌縣監, 韓?爲林川郡守。校書著作單, 權宇亨, 副正字單, 牟世茂。金學萬爲樂安郡守, 裵泰綏爲三水郡守, 金嗣胤爲雲山郡守, 尹爾霖爲金堤郡守, 康邃學爲醴泉郡守, 趙持恒爲陜川郡守, 崔峀爲玄風縣監, 李聖麟爲積城縣令, 李克?爲祥雲察訪, 鄭期泰爲銀溪察訪。平壤敎授單, 石之珩。接慰官嚴緝, 兼春秋安漢珪․曺孝昌․李?。(www.history.go.kr 2009)

 

  권적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4년 8월 14일 (임오) 원본266책/탈초본14책 (8/8)  1678년 康熙(淸/聖祖) 17년/ 趙嗣昌 등이 사은함/ ○ 謝恩, 造紙別提趙嗣昌, 司成權迪, 恃寨僉使金志雄, 鐵串僉使金國標, 昌洲僉使金匡輝, 平市令許?, 兵曹正郞金龜萬, 禮曹正郞李?, 敦寧都正權順昌, 登山萬戶河漢淸, ?山萬戶李相益, 玉浦萬戶張後良, 平壤敎授石之珩。(www.history.go.kr 2009)

 

  권적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4년 9월 1일 (기해) 원본266책/탈초본14책 (6/6)  1678년 康熙(淸/聖祖) 17년/ 외방에 있는 權迪에게 속히 올라오도록 下諭하기를 청하는 司憲府의 계/ ○ 府前啓, 李台瑞事, 李?事。司諫權迪, 時在慶尙道醴泉地, 斯速乘馹上來事, 下諭。答曰, 不允。下諭事, 依啓。(www.history.go.kr 2009)

 

  권적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4년 10월 17일 (갑신) 원본266책/탈초본14책 (3/9)  1678년 康熙(淸/聖祖) 17년/ 兵批의 관원 현황/ ○ 兵批, 判書金錫冑進, 參判鄭?進, 參議李?病, 參知未差, 左副申厚載進。魚尙佶爲副護軍, 權迪․宋廷濂爲副護軍, 趙宗著爲副司果。(www.history.go.kr 2009)

 

  권적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5년 1월 4일 (경자) 원본268책/탈초본14책 (18/24)  1679년 康熙(淸/聖祖) 18년/ 金垓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兵批, 行判書金錫冑, 將鬼薦考講坐起進, 參判李弘淵病, 參議禹昌績齋宿, 參知兪夏益進, 右副承旨朴信圭進。以金垓爲瑞山監牧官, 權迪爲副護軍, 丁昌燾․李俊悅․朴慶後爲副司直, 李增․金儁相爲副司果, 睦天翊爲副司勇, 李仁夏爲統制使。(www.history.go.kr 2009)

 

  권적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5년 1월 15일 (신해) 원본268책/탈초본14책 (20/28)  1679년 康熙(淸/聖祖) 18년/ 吳始壽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以吳始壽․權迪付副護軍。(www.history.go.kr 2009)

 

  권적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5년 2월 6일 (신미) 원본268책/탈초본14책 (14/29)  1679년 康熙(淸/聖祖) 18년/ 李光震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以李光震․林?․徐弘履爲五衛將, 閔暹爲宣傳官, 孟冑瑞爲副摠管, 陳孝謙爲白峙僉使, 李咸爲訓鍊主簿, 洪靑雲爲永達萬戶, 李顯運爲阿山萬戶, 文翊順爲慶德宮假衛將, 邊是泰爲宣傳官, 任允錫爲南陽監牧官, 鄭維岳․高天漢․李聃命․權迪․權是經․孫晩․金暹爲副護軍, 鄭載嵩․金龜萬爲副司直, 李瀏爲武兼, 學生白季民, 前司果全文獻, 加折衝, 鄭弘錫爲植松召募別將, 鄭重國爲部將, 權詢爲訓鍊判官, 李?爲僉知, 姜必遇爲副司果, 裵尙珩爲曹司衛將。(www.history.go.kr 2009)

 

  권적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5년 2월 9일 (갑술) 원본268책/탈초본14책 (21/24)  1679년 康熙(淸/聖祖) 18년/ 權迪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吏批, 以權迪爲司諫, 閔宗道爲弘文館副提學, 睦林儒修撰, 鄭維岳爲兵曹參判, 申晸爲同義禁, 吳斗寅爲戶曹參判, 權?爲監察, 李世基爲陰城縣監, 朴?爲敬陵參奉, 李有濟爲北部參奉, 李?爲監察, 李壽慶爲密陽府使, 呂翼齊爲司評, 張世南爲禁府都事, 睦來善爲右參贊, 李夏鎭爲大司諫, 韓范齊單付典籍, 金儁相爲持平, 吳挺昌爲吏曹參判, 李迪吉爲司饔主簿, 丁昌燾爲禮曹參議, 李萬封爲禮曹正郞, 安漢珪爲工曹正郞, 金禹澤爲工曹參判, 柳埴爲典獄奉事, 尹?爲大司憲, 權?爲吏曹正郞, 琴聖奎爲學諭, 申?爲承文副正字, 趙珩, 今加崇祿, 李郁, 今加通政。(www.history.go.kr 2009)

 

  권적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5년 2월 15일 (경진) 원본268책/탈초본14책 (32/40)  1679년 康熙(淸/聖祖) 18년/ 權迪에게 관직을 제수함/ ○ 以權迪爲副司直, 百官加下批。(www.history.go.kr 2009)

 

  권적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5년 3월 12일 (정미) 원본269책/탈초본14책 (13/20)  1679년 康熙(淸/聖祖) 18년/ 南天漢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吏批, 以南天漢爲左承旨, 兪夏益爲右承旨, 尹深爲禮曹參判, 金聲久爲副修撰, 吳始萬爲修撰, 洪宇遠爲知經筵, 權迪爲司僕正, 李萬榮爲引儀, 尹攀單付承文博士, 權大載爲大司諫。(www.history.go.kr 2009)

 

  권적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5년 3월 20일 (을묘) 원본269책/탈초본14책 (11/15)  1679년 康熙(淸/聖祖) 18년/ 輪對官에 權迪 등을 낙점함/ ○ 明日輪對官落點, 司僕正權迪, 濟用正權?, 內贍主簿南益豪, 繕公副正李華鎭, 司宰僉正金起文。(www.history.go.kr 2009)

 

  권적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5년 4월 20일 (갑신) 원본269책/탈초본14책 (5/6)  1679년 康熙(淸/聖祖) 18년/ 兪夏益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吏批, 以兪夏益爲刑曹參議, 金澍單付典籍, 李徵龜單付承文博士, 權迪爲執義, 吳挺緯爲工曹判書, 朴千榮爲掌樂正, 李筵爲鳳山郡守, 鄭公奭爲監察, 柳?爲禮曹正郞。(www.history.go.kr 2009)

 

  권적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5년 5월 12일 (을사) 원본270책/탈초본14책 (3/11)  1679년 康熙(淸/聖祖) 18년/ 權迪의 세 번째 呈辭/ ○ 執義權迪三度呈辭。入啓。遞差。(www.history.go.kr 2009)

 

  권적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5년 5월 13일 (병오) 원본270책/탈초본14책 (5/13)  1679년 康熙(淸/聖祖) 18년/ 李仁徵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兵批, 判書金錫冑出使, 參判鄭維岳病, 參議禹昌績進, 參知李聃命進, 右副承旨李鏶進。以李仁徵爲同知, 權迪․趙祉錫․白光玹爲副護軍。(www.history.go.kr 2009)

 

  권적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5년 6월 4일 (정묘) 원본270책/탈초본14책 (8/15)  1679년 康熙(淸/聖祖) 18년/ 李鳳徵의 罷職과 遞職을 청하는 趙祉錫의 계/ ○ 正言趙祉錫啓曰, 國朝所以重銓郞之選者, 蓋以專管堂下官通塞進退也。苟非公方負人望者, 莫宜居之。吏曹佐郞李鳳徵, 爲人無一可取, 素無人望, 而但藉家世, 冒點銓地, 前後幻弄辭說, 必欲?其私計者, 非止一再, 而頃日政廳, 參判吳挺昌, 欲擬李壽慶於亞長之望, 鳳徵執筆不書。挺昌問其由, 則鳳徵曰, 壽慶不合此選, 工判亦言之。工曹判書, 卽挺昌之兄挺緯也, 而鳳徵之意, 蓋欲引挺昌父兄之語, 以爲脅持之計也。挺昌知其兄必無是說, 而無以爲答, 歸問其兄, 則挺緯果無所言, 鳳徵做出之也。壽慶之合於此選與否, 雖不敢知, 而爲郞官者, 爲其私好惡, 而作爲無根之言, 脅持其堂上, 此豈士夫之風習哉? 此言傳播搢紳, 人莫不駭異。臣於再昨, 親問于挺緯, 則答以此實?然, 一如傳者之言云, 擧此一事, 可知其他。如此之人, 決不可置諸銓席, 故以鳳徵請罷之意, 發論於席上, 且簡問於司諫睦林儒, 亦書謹悉, 而諸僚皆曰, 聞此傳播之言, 果爲非矣。至於幻弄辭說一款, 似涉過重。臣又曰, 曾於去年, 趙祉錫適在言地, 以李沃․柳命天等竝拿事, 具草詣臺廳, 重被大司諫權?之狙擊啓遞, 終不得傳啓而退去矣。其時鳳徵言于司諫權迪曰, 趙祉錫歷訪我, 而李沃則不請拿云, 君亦依此爲之云, 此言多傳於士夫間。人之問于臣者, 不能盡記, 而其中李聃命․漢命兄弟, 問于臣而誠有是事乎? 臣答以無歷過鳳徵家之事, 且以竝請拿之, 故遭此?之狙擊, 人之爲言, 誠可笑也。聃命兄弟亦曰, 李鳳徵之爲言, 甚無據矣。聃命兄弟尙在, 焉可誣也云爾, 則長官曰, 旣發此言, 而所親聞, 則請罷之論, 未爲過重矣。獻納權歆, 正言李泰龜, 猶以請遞則可, 而至於幻弄辭說請罷, 則亦是過當。臣又曰, 前後行事, 若是其幻弄, 則決不可容貸, 同僚二人, 又以爲是, 語言所失, 終不回聽。噫, 今日臺閣軟熟成習, 稍有形勢, 則雖有罪過, 不欲相較, 此亦可以觀世變也。臣以孤?, 不諒世情, 發此妄言, 宜乎不見信於同僚也。不可晏然仍冒, 請命遞斥臣職。答曰, 爾之論列, 誠得臺閣之風采, 別無可避之事, 勿辭, 勿爲退待。(www.history.go.kr 2009)

 

  권적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5년 6월 8일 (신미) 원본270책/탈초본14책 (18/18)  1679년 康熙(淸/聖祖) 18년/ 閔宗道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吏批, 以閔宗道爲知義禁, 金龜萬爲正言, 閔宗道爲禮曹參判, 金益九爲工曹佐郞, 申琓爲慶尙都事, 權迪爲司諫, 金時鉉爲大丘府使, 許璧爲博川郡守, 鄭?爲戶曹參判, 權歆爲校理, 安如岳爲典籍, 牟世茂爲造紙別提。(www.history.go.kr 2009)

 

  권적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5년 6월 14일 (정축) 원본270책/탈초본14책 (2/27)  1679년 康熙(淸/聖祖) 18년/ 權迪의 세 번째 呈辭/ ○ 司諫權迪三度呈辭。入啓。遞差。(www.history.go.kr 2009)

 

  권적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5년 6월 21일 (갑신) 원본270책/탈초본14책 (17/36)  1679년 康熙(淸/聖祖) 18년/ 李弘淵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吏批, 以李弘淵爲判決事, 鄭?爲同義禁, 洪茂爲南陽府使, 蔡聖後爲衿川縣監, 李喜澤爲交河縣監, 權迪爲執義, 柳經立爲掌令, 金玉鉉爲大同察訪, 韓鼎相爲大丘府使, 鄭昌祉爲靑岩察訪, 睦惇和爲北部參奉, 南天漢爲戶曹參議, 洪禹績爲戶曹佐郞, 南?爲掌令, 趙嗣昌爲右水運判官, 李一舟爲漢城判官, 李煦爲副校理, 姜銑爲正言, 旌善郡守金錫衍, 加平郡守任以道相換, 天安縣監金錫衍, 通津縣監李夏徵相換, 成均博士單金世衡。(www.history.go.kr 2009)

 

  권적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5년 6월 23일 (병술) 원본270책/탈초본14책 (4/14)  1679년 康熙(淸/聖祖) 18년/ 吏曹에서 權迪이 죽었다고 아룀/ ○ 吏曹, 執義權迪身死, 啓。別致賻。(www.history.go.kr 2009)

 

  권적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5년 6월 24일 (정해) 원본270책/탈초본14책 (16/18)  1679년 康熙(淸/聖祖) 18년/ 召對에 金儁相 등이 입시하여 宋時烈의 按律處斷, 朴千榮의 罷職, 權迪에게 喪需를 題給하는 일 등에 대해 논의함/ ○ 召對時, 合啓, 請巨濟圍籬安置罪人宋時烈按律處斷。措辭見上 上曰, 勿煩。持平金儁相所啓, 請掌樂正朴千榮罷職。措辭見上 上曰, 不允。又所啓, 新除授執義宋挺濂, 時在慶尙道三嘉地, 請斯速乘馹上來事, 下諭。上曰, 依啓。侍讀官李漢命所啓, 執義權迪, 本以遠鄕之人, 有八十老母, 而客死京邸, 極爲可矜。自前近侍, 旅宦而死者, 或別有恤典。此則自下不敢直請, 而至如擔軍, 則在任身死者, 亦曾有題給之例, 權迪旣帶臺職客死, 則宜無異同矣。上曰, 有老母而客死京邸, 情理尤爲可矜。喪需, 令該曹題給。(www.history.go.kr 2009)

 

  권적(權迪) : [시험관련 사항] 왕/년도 : 현종(顯宗) 1년, 과거시험연도 : 1660 경자, 시험명 : 식년시(式年試), 등위 : 병과8(丙科8)/ [인적 사항] 성명(姓名) : 권적(權迪), 자 : 계여(啓余), 본관(本貫) : 안동(安東)/ [이력 및 기타 사항] 소과 : 1654(갑오) 생원시/진사시, 전력(前歷) : 생원(生員), 관직(官職) : 집의(執義)/ [가족사항] 부(父) : 권미윤(權美胤), 조부(祖父) : 권백용(權伯龍), 증조부(曾祖父) : 권여근(權汝勤)(daum 2010)

 

  권적(權迪) : 자 계경(啓卿), 호 구곡(鳩谷), 생졸년 1626 (인조 4) - 1679 (숙종 5), 시대 조선 중기, 본관 안동(安東), 활동분야 문신/관료 / 문신-조선중기 / 문신/ 과거 및 취재 [문과] 현종(顯宗) 1년 (1660) 경자(庚子)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8위, [생원진사시] 효종(孝宗) 5년 (1654) 갑오(甲午) 식년시(式年試) 2등(二等) 3위, [생원진사시] 효종(孝宗) 5년 (1654) 갑오(甲午) 식년시(式年試) 2등(二等) 2위/ [상세내용] 권적(權迪){2}에 대하여/ 1626년(인조 4)∼1679년(숙종 5).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계경(啓卿), 호는 구곡(鳩谷). 아버지는 미윤(美胤)이며, 어머니는 원주변씨(原州邊氏)로 일(鎰)의 딸이다. 1654년(효종 5) 생원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60년(현종 1) 홍문관전적에 임명된 뒤 예조좌랑·강원도사·형조정랑·성균관사성을 지냈다. 1668년 영암군수(靈巖郡守)로 있을 때에는 효열을 포창하고 학문을 권장하였으며, 굶주림에 허덕이는 백성들을 잘 구제하여 포상을 받았다. 1674년 사헌부지평이 되었고, 그뒤 평양서윤(平壤庶尹)·남원부사·충주목사·사간원헌납 등을 거쳐, 1678년 사헌부장령·사도시정(司도寺正)·용양위부호군(龍驤衛副護軍)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구곡문집》 4권 2책이 있다./ [참고문헌] 鳩谷文集(daum 2010)

 

  권적(權迪) : [문과] 현종(顯宗) 1년 (1660) 경자(庚子)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8위/ [인적사항] 자 계여(啓余), 생년 병인(丙寅) 1626년, 합격연령 35세, 본관 안동(安東)/ [이력사항]전력 생원(生員), 관직 집의(執義), 타과 효종(孝宗) 5년(1654) 갑오(甲午) 생원·진사시(生員進士試)/ [가족사항] [부] 성명 : 권미윤(權美胤), [조부] 성명 : 권백용(權伯龍), [증조부] 성명 : 권여근(權汝勤)/ [출전]《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daum 2010)

 

  권적 : 구곡, 계경 권적(權迪)/ 구곡, 계경 권적(權迪) 안동(安東) 권적(權迪) 1626(인조 4)∼1679(숙종 5).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계경(啓卿), 호는 구곡(鳩谷). 아버지는 미윤(美胤)이며, 어머니는 원주변씨(原州邊氏)로 일(鎰)의 딸이다. 16.../ http://artsnet.co.kr(daum 2010)

 

  권적 [專門資料] : 輓詞 權迪/ 권적(權迪)  | 한국고전번역원  | 2007.02.12(daum 2010)

  권적 [專門資料] : 술에 취해 공무를 전폐한 南龍翼의 罷職을 청하는 權迪 등의 계/ 權迪|朴紳|南龍翼|南龍翼/ 2007.03.19(daum 2010)

  권적 [專門資料] : 權迪 등이 관직에 나옴/ 權迪|朴紳/ 2007.03.19(daum 2010)

 

  권적 [專門資料] : 權迪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權迪|裵正徽|成後周/ 2007.03.19(daum 2010)

  권적 [專門資料] : 權迪 등이 사은함/ 權迪|洪禹績|黃戴仁|李重信/ 2007.03.19(daum 2010)

  권적 [專門資料] : 避嫌중인 李堂揆의 遞差를 청하는 權迪 등의 계/ 權迪|金海一|孫萬雄|朴紳|李堂揆|李堂揆/ 2007.03.19(daum 2010)

 

  권적 [專門資料] : 南龍翼의 罷職과 貢物을 潛賣한 尹?의 削去仕版 및 李?의 파직을 청하는 權迪 등의 계/ 成歡|湖西, 權迪|朴紳|南龍翼|尹?|尹?|李?|李?/ 2007.03.19(daum 2010)

  권적 [專門資料] : 金益勳의 遞差, 金錫胄의 從重推考, 朴千榮의 罷職 등을 청하는 權迪 등의 계/ 權迪|尹義濟|金益勳|金錫胄|朴千榮/ 2007.03.19(daum 2010)

  권적 [專門資料] : 金壽恒에게 내린 量移의 命의 還收, 逆賊緣坐와 伸救罪魁, 漏籍·代射에 연루된 자들의 처벌 등을 청하는 權迪 등의 계/ 居昌, 權迪|金海一|孫萬雄|朴紳|金壽恒|鄭祥龍|尹櫶|尹憲卿|崔錫鼎|趙根|鄭祥龍|尹櫶|尹憲卿|崔錫鼎|趙根|徐來遠|徐來遠/ 2007.03.19(daum 2010)

 

  권적 [專門資料] : 金壽恒에게 내린 量移의 命의 還收, 逆賊緣坐와 伸救罪魁, 漏籍과 代射에 연루된 자들의 처벌 등을 청하는 權迪 등의 계/ 權迪|朴紳|孫萬雄|金壽恒|鄭祥龍|徐來遠/ 2007.03.19(daum 2010)

  권적 [專門資料] : 輪對官에 權迪 등을 낙점함/ 權迪|權?|南益豪|李華鎭|金起文/ 2007.03.19(daum 2010)

  권적 [專門資料] : 權迪 등이 들어옴/ 權迪|金應祖/ 2007.03.18(daum 2010)

 

  권적 [專門資料] : 외방에 있는 權迪에게 속히 올라오도록 下諭하기를 청하는 司憲府의 계/ 慶尙道醴泉, 李台瑞|李?|權迪/ 2007.03.19(daum 2010)

  권적 [專門資料] : 吏曹에서 權迪이 죽었다고 아룀/ 權迪/ 2007.03.19(daum 2010)

  권적 [專門資料] : 權迪이 柴場 摘奸을 위해 通津으로 나감/ 通津, 權迪/ 2007.03.18(daum 2010)

 

  권적 [專門資料] : 權迪을 假注書로 삼음/ 權迪/ 2007.03.18(daum 2010)

  권적 [專門資料] : 權迪이 金? 등을 致祭하러 나감/ 忠淸|慶尙, 權迪|金?|金應祖/  2007.03.18(daum 2010)

  권적 [專門資料] : [간행물] 영암(靈巖) 권적(權迪), 강진(康津) 이복(李馥), 해남(海南) 한익주(韓翊周) 세 태수(太守)에게 준 시의 서문/ 남구만(南九萬)  | 2009.04.06(daum 2010)

 

  권적(權迪) : [생원진사시] 효종(孝宗) 5년 (1654) 갑오(甲午) 식년시(式年試) 생원(生員) 2등(二等) 3위/ [인적사항] 자 계여(啓余), 생년 병인(丙寅) 1626년, 합격연령 29세, 본관 안동(安東), 거주지 예천(醴泉)/ [이력사항] 전력 유학(幼學), 타과 현종(顯宗) 1년(1660) 경자(庚子) 식년시(式年試), 양시 양시(兩試)/ [가족사항] [부] 성명 : 권미윤(權美胤), 관직 : 학생(學生)/ [부모구존] 자시하(慈侍下)/ [제] 권술(權述)/ [제] 권인(權?)/ [출전]CD-ROM 《사마방목(司馬榜目)》(韓國精神文化硏究院)(daum 2010)

 

  권적(權迪) : 관련인물 :계경(啓卿)|구곡(鳩谷)|미윤(美胤)|일(鎰)관직 :홍문관전적|예조좌랑|강원도사|형조정랑|성균관사성|영암군수(靈巖郡守)|사헌부지평|평양서윤(平壤庶尹)|남원부사|충주목사|사간원헌납|사헌부장령.../ 2009.04.06(daum 2010)

 

  권적 [專門資料] : [간행물] 請?執義權迪啓/ 2008.03.21(daum 2010)

  권적 [專門資料] : 贈靈巖 權迪, 康津 李馥, 海南 韓翊周 三太守詩序/ 남구만(南九萬)  | 한국고전번역원  | 2007.02.12(daum 2010)

  권적 [專門資料] : 大司諫權?獻納權迪啓曰/ 2007.02.09(daum 2010)

 

  권적 [專門資料] : 賜祭文/ 권적(權迪)  | 한국고전번역원  | 2007.02.12(daum 2010)

  권적 [專門資料] : 鳩谷文集 v2(구곡문집 v2)/ 權迪(朝鮮)著  | 2007.01.12(daum 2010)

  권적 [專門資料] : 鳩谷文集 v1(구곡문집 v1)/ 權迪(朝鮮)著  | 2007.01.12(daum 2010)

 

  권적 [專門資料] : 豊山柳氏 河回마을 和敬堂(北村宅) 豊山柳氏 河回마을 和敬堂(北村宅) 通文100/ 무인년 7월에 문경향교 유학 권적 등이 호계서원에 보낸 통문(通文)이다. 통문은 서원(書院), 향교(鄕校), 문중(門中) 및 동류(同類)의 기관 및 단체나 개인에게 보내는 통지문이다. 주요 사안은 공동의 관심사를.../ 聞慶鄕校 幼學 權迪 等  | 2007.05.04(daum 2010)

 

  권적 [專門資料] : 金禹鼎의 先罷後推와 推緘이 아직 照勘되지 않은 李寅渙의 체차 등을 청하는 司憲府의 계/ 京畿仁川|慶尙道醴泉|京畿楊州, 金萬重|李?|李選|閔鼎重|成虎徵|申命圭|李鼎基|申翼相|金禹鼎|李寅渙|南龍翼|權迪|魚震翼/ 2007.03.19(daum 2010)

 

  권적 [專門資料] : 晝講에 洪宇遠 등이 입시함/ 洪宇遠|李夏鎭|柳命賢|李堂揆|李鳳徵|朴慶後|尹爾霖|安如岳|權迪/ 2007.03.19(daum 2010)

 

  권적 [專門資料] : 監察이 茶時를 한다는 安如石의 계/ 安如石|李?|權迪|宋光井|李綸|權歆/ 2007.03.19(daum 2010)

 

  권적 [專門資料] : 南天漢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南天漢|兪夏益|尹深|金聲久|吳始萬|洪宇遠|權迪|李萬榮|尹攀|權大載/ 2007.03.19(daum 2010)

 

  권적 [專門資料] : 殿講에 응시한 儒生들에게 시상함/ 周易|孟子|周易|書傳|周易|中庸|大學, 鄭載嵩|李國泰|鄭元鳳|權迪|禹拜昌|朴道一|孫湍/ 2007.03.18(daum 2010)

 

  권적 [專門資料] : 3차 祈雨祭의 獻官 姜栢年 등에게 熟馬 등을 賜給한다는 비망기/ 姜栢年|李殷相|李休徵|權?|李明傅|權迪|李宇鼎|趙爾炳|鄭?|元格/ 2007.03.18(daum 2010)

 

  권적 [專門資料] : 권적의 구곡문집 본문/ 문신 권적(權迪:1626~1679)의 문집./ 한국학중앙연구원  | 2007.01.15(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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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방문 987

 

  예천군 방문( ‘慶北 新道廳紀行’ 大邱·浦港住民 200名 參加) [記事] : “야~호, 신도청아, 내가 왔다!”  2013년 4월 27일 오전 10시 안동시 풍천면 갈전리 검무산 정상. ‘2013 시·도민과 함께하는 경북 신도청기행’에 나선 참가자들이 도청 이전지가 한눈에 펼쳐지자 탄성을 질렀다. 26~27일 양일간 실시된 ‘시·도민과 함께하는 경북 신도청기행’에는 대구와 포항지역 주민 200여명이 참가했다. 지난 8일부터 시작된 이번 기행에는 지금까지 대구와 경북도민 500여명이 동참했다. 이날 기행단은 검무산 등반을 시작으로 산 정상에서 풍수학 박사인 이몽일 대한여지연구소장의 경북도청 일원의 풍수학 강의를 듣고, 도청 공사현장을 방문해 신청사의 시설규모와 진행상황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장소를 안동 하회마을로 옮겨 점심 식사를 마친 기행단은 하회별신굿탈놀이를 관람했다. 기행단은 이어 마지막 행선지인 예천 회룡포 삼강주막을 찾아 최상열 문화관광해설사의 회룡포와 삼강주막 유래에 대한 해설을 듣고, 막걸리로 목을 축인 후 기행을 마감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참가했다는 신생길 씨(65·대구시)는 “작년에는 비로 인해 검무산 정상에 못 가 산악회 회원들과 다시 참가하게 됐다”며 “검무산 정상에서 도청이전 예정지를 보니 풍수학을 몰라도 한눈에 명당자리임을 알 수 있었다. 살기 좋은 신도시의 모습을 그려본다”고 말했다. 도청이전 예정지인 풍천면이 시댁이라는 이금영 씨(64·포항시)는 “지금껏 자주 시댁을 방문했는데, 신도청 이전지가 이곳으로 정해지면서 수년째 오지 못하다가 영남일보 신문을 보고 가족과 함께 참가했다”며 “비록 옛 추억이 서린 곳이 사라져 섭섭하지만, 멋진 신도시가 조성돼 후대에 물려줬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2013 시·도민과 함께하는 경북 신도청기행’은 영남일보와 <사>대경문화연구원이 주관하고 경북도·안동시·예천군이 주최한다. 오는 10월까지 12회(둘째, 넷째 토요일)에 걸쳐 진행된다. 200명 선착순 모집으로 참가비는 1만5천원(기념품, 식사비 포함)이다.(황준오 記者 嶺南日報 2013-04-29)

 

  회룡포와 삼강주막(“따뜻한 봄날, 回龍浦 綠色길 거닐며 힐링하세요” : 醴泉郡 觀光客 誘致나서) [記事] : 내성천 물줄기가 350도 휘휘 감아 돌다가 만들어진 육지 속의 섬마을 회룡포. 예천군 용궁면 회룡포는 대한민국 최고의 물돌이 마을로 아름다운 비경과 바람이 잘 어우러진 곳이다. ♦장안사·원산성·삼강주막 등… 역사 품은 관광명소 `인기` : 사랑의 자물쇠로 사랑고백·뽕뽕다리서 낭만과 추억 만끽/ 용궁면소재지를 비껴 6분 정도 내달려 내성천으로 통하는 회룡교를 건너면 자연의 신비를 간직한 회룡포가 속내를 활짝 드러내고 반긴다. 회룡포의 아름다운 녹색길은 용주팔경시비가 서 있는 곳에서 시작된다. 이 시비에는 조선 후기 이 고장 출신 은둔 시인 구계 김영락(1831~1906)이 용주팔경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가 새겨져 있다. 포금산의 밝은 달, 무이의 맑은 바람, 금강(천)의 고기 잡는 불빛, 와우산의 낙조, 비룡산에 걸친 구름, 천축산 저녁 종소리, 말운산의 나뭇꾼 소리, 훤이들의 벼꽃 등 담겨진 내용을 읽게 되면 옛 선현들의 자연에 대한 사랑과 아름다운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산새들의 아름다운 멜로디와 내성천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면서 걷다보면 어느새 비룡산 주능선 바로 아래에 자리 잡은 장안사에 도착한다. 장안사는 신라시대에 지어진 전통 사찰로 규모가 아담하고 숲으로 둘러쌓여 포근하고 들판과 구릉 같은 산들이 평화롭게 내려다 보여 시원함을 준다. 장안사에는 고려시대 문신으로 동국이상국집을 지은 이규보(1168~1241)가 장안사에 들러 읊었던 시 한 수가 80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남아 전해지고 있다. 장안사에서 5분쯤 올라서면 비룡지릉의 하트 모양 산을 배경으로 사랑의 자물쇠를 채우는 곳에서 사랑의 언약을 한 후 회룡포의 그림 같은 전경을 배경삼아 렌지 속에 담을 수 있는 전망대에서 추억의 사진 한 장을 만든다. 이곳은 문화체육관광부가 “2012 사진 찍기 좋은 녹색 명소”로 선정한 곳이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섬 안에는 9가구 20여명이 집성촌을 이루며 옹기종기 모여 생활하고 있다. 이 마을의 유일한 길은 바람이 숭숭 뚫리는 철판이 두 줄로 길게 놓여져 있으며 이를 두고 `뿅뿅다리`라 한다. 이 뿅뿅다리는 가을동화 드라마 속 주인공 은서와 준서가 어린시절 뛰놀던 추억의 장소이다. 산행을 마치고 강으로 내려가 신발을 벗고 맑은 강물을 따라 고운 백사장을 걷는 낭만도 만끽해 보고 회룡포로 들어가는 뿅뿅다리도 건너고 맑고 깨끗한 강물에 들어가 강수욕도 할 수 있는 즐거움도 맛볼 수 있다. 회룡포를 구경하고 지척에 있는 정상에 올라 둘레 3.7m, 높이 2.7m인 정방형의 봉수대를 관람하고 작은 봉우리와 능선을 넘어 삼국시대 격전지인 원산성을 관람해 보는 것도 색다른 의미가 있다. 이 성은 둘레 920m, 높이 1.5~3m로 흙과 돌을 섞어 쌓은 토석 혼축성, 따뷔성, 또아리성이라고도 불린다. 이 성은 낙동강과 금천, 내성천이 합류하는 삼강이 배수진을 치고 있고 가파른 지형으로 되어 있어 사방을 손바닥 보듯이 조망할 수 있는 천연 요새 삼한시대 마한이 이 성에서 백제에 멸망하였고, 그 이후에도 신라, 백제, 고구려의 접경지에 위치한 탓에 격전이 잦았다고 성 안내판에 기록되어 있다.

 

  회룡포를 둘러본 후 1시간정도 산림욕길을 따라 걷다보면 낙동강 700리에 마지막 남은 삼강주막이 나온다. 낙동강 물길이 내성천과 금천을 만나 어우러지는 곳이라 해서 삼강(三江)이라 불리는 이곳은 1950년대까지만 해도 대구와 서울을 잇는 단거리 뱃길로, 낙동강을 오르내리는 소금 배와 집산된 농산물이 모두 이곳으로 모여 삼강주막은 봇짐장수, 방물장수로 붐볐다. 그러나 1970년대에 도로가 뚫리고 낙동강 물줄기 위로 다리가 가로질러 놓이면서 이곳은 점차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고 주막과 주모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져 갔지만 주모는 2005년 90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70년간 주막을 지켰다. 글도 숫자도 알지 못했던 주모는 그만의 독특한 장부로 외상을 관리 했는데 그것이 바로 부엌 벽에다 칼금을 긋는 것! 한 잔을 외상하면 짧은 금, 한 주전자를 외상하면 긴 금을 세로로 그어 놓았다가 외상값을 죄다 갚으면 옆으로 길게 금을 그어 외상을 지웠다고! 지금도 주막 흙벽에 그을음과 함께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산책길을 걷다 배가 고프면 삼강주막 평상에 앉아 `주모 한상 차림`을 먹거나 전국 식도락가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오징어불고기와 용궁순대, 순대국밥 한 그릇으로 지친 심신을 채우면 된다.(鄭安鎭 記者 慶北每日新聞 2013.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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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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