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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3281:권중화(2)(祝체육회/예천방문994)
작성자장병창 @ 2013.05.14 05:47:25

  예천의 자랑(3281) : 권중화(영의정부사)(2)(附 예천군체육회, 13일 도체 3위...축하합니다/예천방문 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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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중화 [記事] : 태조실록 5권/ 태조 3년(1394 갑술 / 명 홍무(洪武) 27년) 2월 14일(갑신) 3번째 기사/ 하윤 등 11인에게 역대 현인들의 비결을 상고하여 요점을 뽑아 바치라고 명하다/ 영삼사사(領三司事) 권중화(權仲和)․검교 문하시중(檢校門下侍中) 이무방(李茂方)․판삼사사(判三司事) 정도전(鄭道傳)․문하 시랑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 성석린(成石璘)․대학사(大學士) 민제(閔霽)․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 남은(南誾)․첨서중추원사(僉書中樞院事) 정총(鄭摠)․검교 대학사(檢校大學士) 권근(權近)․중추원 학사(中樞院學士) 이직(李稷)․대사헌 이근(李懃) 등 10인에게 명하여, 좌도 도관찰사(左道都觀察使) 하윤(河崙)과 함께 동국(東國) 역대(歷代) 여러 현인(賢人)들의 비록(秘錄)을 두루 상고하여 요점을 추려서 바치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책 5권 5장 B면/ 【영인본】 1책 55면/ 【분류】 *출판-서책(書冊)(www.history.go.kr 2009)

 

  권중화 [記事] : 태조실록 5권/ 태조 3년(1394 갑술 / 명 홍무(洪武) 27년) 2월 16일(병술) 1번째 기사/ 권중화 등이 《비록촬요》를 바치니 하윤․이직에게 진강케 하다/ 임금이 수창궁에 거둥하였다. 영삼사사(領三司事) 권중화(權仲和) 등이 《비록촬요(秘錄撮要)》를 바치니, 임금이 하윤(河崙)과 이직(李稷)으로 하여금 진강(進講)하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책 5권 5장 B면/ 【영인본】 1책 55면/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경연(經筵) / *출판-서책(書冊)(www.history.go.kr 2009)

 

  권중화 [記事] : 태조실록 5권/ 태조 3년(1394 갑술 / 명 홍무(洪武) 27년) 2월 18일(무자) 2번째 기사/ 조준, 권중화 등에게 풍수에 관한 비결책을 가지고 무악의 천도지를 살펴보게 하다/ 좌시중 조준과 영삼사사 권중화 등 11인을 보내어 서운관(書雲觀)의 원리(員吏) 등을 거느리고 《지리비록촬요(地理秘錄撮要)》를 가지고 가서 천도할 땅을 무악(毋岳) 남쪽에서 살펴보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책 5권 5장 B면/ 【영인본】 1책 55면/ 【분류】 *왕실-행행(行幸)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www.history.go.kr 2009)

 

  권중화 [記事] : 태조실록 5권/ 태조 3년(1394 갑술 / 명 홍무(洪武) 27년) 2월 20일(경인) 3번째 기사/ 권중화 등에게 술을 하사하다/ 사자(使者)를 보내어 권중화(權仲和) 등에게 술을 내려 주었다./ 【태백산사고본】 2책 5권 9장 A면/ 【영인본】 1책 57면/ 【분류】 *왕실-사급(賜給)(www.history.go.kr 2009)

 

  권중화 [記事] : 태조실록 5권/ 태조 3년(1394 갑술 / 명 홍무(洪武) 27년) 2월 23일(계사) 2번째 기사/ 권중화와 조준이 무악 천도를 반대하고, 하윤만이 찬성하다/ 영삼사사(領三司事) 권중화(權仲和)와 좌시중(左侍中) 조준(趙浚) 등이 무악(毋岳)으로부터 돌아와서 아뢰었다. ꡒ무악(毋岳) 남쪽은 땅이 좁아서 도읍을 옮길 수 없습니다.ꡓ 좌도 도관찰사(左道都觀察使) 하윤(河崙)만이 홀로 아뢰기를, ꡒ무악(毋岳)의 명당(明堂)이 비록 협착(狹窄)한 듯하지마는, 송도(松都)의 강안전(康安殿)과 평양(平壤)의 장락궁(長樂宮)으로써 이를 관찰한다면 조금 넓은 편이 될 것입니다. 또한 고려 왕조의 비록(秘錄)과 중국에서 통행(通行)하는 지리(地理)의 법에도 모두 부합(符合)합니다.ꡓ하니, 임금이 말하였다. ꡒ내가 친히 보고 정하고자 한다.ꡓ/ 【태백산사고본】 2책 5권 9장 B면/ 【영인본】 1책 57면/ 【분류】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왕실(王室)(www.history.go.kr 2009)

 

  권중화 [記事] : 태조실록 6권/ 태조 3년(1394 갑술 / 명 홍무(洪武) 27년) 6월 27일(을미) 2번째 기사/ 서운관 관원이 무악이 수도로 좋지 않다고 하니, 다른 곳을 물색하게 하다/ 임금이 도평의사사에 교유(敎諭)하였다. ꡒ무악(毋岳) 신도(新都)의 땅은 앞서 10여 재상들에게 명하여 이것을 보고 지금은 이미 결정하였는데, 서운 관원(書雲觀員) 유한우(劉旱雨)와 이양달(李陽達) 등이 말하기를, ꡐ신의 배운 바로 보아서는 도읍으로 정할 곳이 아닙니다.ꡑ 하니, 나라의 큰 일이 이보다 중한 것이 없는데, 혹은 좋다 하고 혹은 좋지 않다 하니, 전일에 가 본 재상 및 서운관 관원과 더불어 그 옳고 그른 것을 논의해서 알리라.ꡓ 영삼사사 권중화(權仲和)와 우시중 김사형(金士衡)이 여러 재상들과 더불어 서운관의 말한 바를 기록하여 아뢰었다. ꡒ다 옳지 못하다 합니다.ꡓ임금이 말하였다. ꡒ이들로 하여금 다시 좋은 곳을 물색하게 하라.ꡓ/ 【태백산사고본】 2책 6권 5장 A면/ 【영인본】 1책 65면/ 【분류】 *왕실-행행(行幸)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www.history.go.kr 2009)

 

  권중화 [記事] : 태조실록 6권/ 태조 3년(1394 갑술 / 명 홍무(洪武) 27년) 7월 12일(기유) 1번째 기사/ 음양 산정 도감을 설치하다/ 음양 산정 도감을 두었다. 영삼사사(領三司事) 권중화(權仲和)와 판삼사사 정도전, 문하 시랑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 성석린(成石璘)․삼사 우복야 남은(南誾)․정당 문학(政堂文學) 정총(鄭摠)․첨서중추원사(僉書中樞院事) 하륜(河崙)․중추원 학사 이직(李稷)․대사헌 이근(李懃)․ 평원군(平原君) 이서(李舒)로 하여금 서운 관원과 함께 지리와 도참(圖讖)에 관한 여러 책을 모아서 참고하여 교정하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책 6권 6장 A면/ 【영인본】 1책 66면/ 【분류】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출판-서책(書冊)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www.history.go.kr 2009)

 

  권중화 [記事] : 태조실록 6권/ 태조 3년(1394 갑술 / 명 홍무(洪武) 27년) 9월 9일(병오) 2번째 기사/ 정도전 등에게 한양의 종묘․사직․궁궐․시장 등의 터를 정하게 하다/ 판문하부사 권중화(權仲和)․판삼사사 정도전․청성백 심덕부․참찬 문하부사 김주․좌복야 남은․중추원 학사 이직 등을 한양 에 보내서 종묘․사직․궁궐․시장․도로의 터를 정하게 하였다. 권중화 등은 전조 숙왕(肅王) 시대에 경영했던 궁궐 옛터가 너무 좁다 하고, 다시 그 남쪽에 해방(亥方)의 산을 주맥으로 하고 임좌병향(壬座丙向)이 평탄하고 넓으며, 여러 산맥이 굽어 들어와서 지세가 좋으므로 〈여기를 궁궐터로 정하고〉, 또 그 동편 2리쯤 되는 곳에 감방(坎方)의 산을 주맥으로 하고 임좌병향에 종묘의 터를 정하고서 도면을 그려서 바치었다./ 【태백산사고본】 2책 6권 14장 B면/ 【영인본】 1책 70면/ 【분류】 *왕실-행행(行幸) / *역사-고사(故事)(www.history.go.kr 2009)

 

  권중화 [記事] : 태조실록 8권/ 태조 4년(1395 을해 / 명 홍무(洪武) 28년) 윤9월 28일(기축) 1번째 기사/ 백관이 공복을 입고 반송정에 나아가 신주를 봉영하다/ 백관이 공복(公服)을 갖추어 입고 반송정(盤松亭)에 나아가 신주를 봉영(奉迎)하였다. 상로(象輅)에 모시어 의장(儀仗)과 풍악을 잡히고 새 종묘에 안치하고, 판문하부사 권중화(權仲和)에게 명하여 이안제(移安祭)를 행하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책 8권 7장 B면/ 【영인본】 1책 83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www.history.go.kr 2009)

 

  권중화 [記事] : 태조실록 8권/ 태조 4년(1395 을해 / 명 홍무(洪武) 28년) 10월 14일(갑진) 1번째 기사/ 홍영통이 말에서 떨어져 죽은 것 때문에 대신들에게 요여를 내려 주다/ 좌정승 조준․우정승 김사형․판문하부사 권중화․판삼사사 정도전에게 대[竹]로 만든 요여(腰輿) 하나씩을 내려 주고, 기로 제신(耆老諸臣)에게도 내려 주었는데, 대체로 홍영통이 말에서 떨어져 죽은 것을 경계한 것이었다./ 【태백산사고본】 2책 8권 11장 B면/ 【영인본】 1책 85면/ 【분류】 *왕실-사급(賜給) / *의생활(衣生活)(www.history.go.kr 2009)

 

  권중화 [記事] : 태조실록 9권/ 태조 5년(1396 병자 / 명 홍무(洪武) 29년) 5월 12일(무진) 1번째 기사/ 새 종(鐘)이 완성되다/ 새로 주조(鑄造)하게 한 종(鐘)이 이룩되었으므로, 감역 제조관(監役提調官) 권중화(權仲和)와 이염(李恬)에게 각각 비단 2필씩 내려 주었다./ 【태백산사고본】 2책 9권 8장 B면/ 【영인본】 1책 92면/ 【분류】 *왕실-사급(賜給) / *광업(鑛業) / *예술(藝術)(www.history.go.kr 2009)

 

  권중화 [記事] : 태조실록 9권/ 태조 5년(1396 병자 / 명 홍무(洪武) 29년) 6월 17일(계묘) 2번째 기사/ 판문하부사 권중화 등을 보내어 사돈 맺자고 한 일을 사례하다/ 판문하부사 권중화(權仲和)와 상의중추원사 구성로(具成老)를 경사(京師)에 보내어 혼사를 맺자고 한 일을 사례하고, 인하여 양마(良馬) 12필을 진헌하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책 9권 10장 A면/ 【영인본】 1책 93면/ 【분류】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9)

 

  권중화 [記事] : 태조실록 10권/ 태조 5년(1396 병자 / 명 홍무(洪武) 29년) 11월 6일(경신) 1번째 기사/ 요동 백호 하질이 죽게 된 경과를 추궁하는 명 좌군 도독부의 자문/ 사은 진표사(謝恩進表使) 권중화(權仲和)와 진전사(進箋使) 구성로(具成老)와 남경에 억류되어 있던 사신(使臣) 유구(柳?)와 정신의(鄭臣義)가 남경 에서 돌아왔는데, 신의가 좌군 도독부(左軍都督府)의 자문을 전하였다. 그 자문은 이러하였다. ꡒ본부(本府) 좌도독(左都督) 양문(楊文) 등 관원이 삼가 황제의 명을 받자왔는데, ꡐ지난해 5월에 조선국 진마 사신(進馬使臣) 양첨식(楊添植) 등이 본국에 돌아갈 때에, 요동 도사(遼東都使)에서 백호(百戶) 하질(夏質)과 군인(軍人) 유완자(劉頑子) 등 10명을 시켜 양첨식 등을 호송하여 압록강까지 이르게 하니, 그곳에 이른 진마 사신(進馬使臣)이 좋은 말로써 백호(百戶)와 기군(旗軍)들에게 설유(說諭)해서 압록강 건너에 있는 의주 만호부(義州萬戶府)의 관역(館驛) 안에 머물러 놓고 변변치 못한 예(禮)로 서로 접대하면서 말이 많았으나, 백호 하질은 그 말을 옳게 여기지 않고 압록강 을 떠나서 배가 중류(中流)에 이르자, 그 중의 선부(船夫) 1명이 백호 하질 의 목 밑에 있는 옷깃 단추를 거머쥐어 한꺼번에 강물로 던져서 백호가 강물에 빠져서 죽었으니, 이것이 과연 조선 국왕 의 계책이었는가? 혹은 의주 만호(義州萬戶)가 나쁜 것인가? 이런 경박하고 간사한 것들이 함부로 흔단(?端)을 일으켰으므로, 좌군 도독부를 시켜서 조선 국왕에게 자문을 보내어 의주 만호로 하여금 와서 회답하게 하라.ꡑ 하였습니다.ꡓ/ 【태백산사고본】 3책 10권 7장 B면/ 【영인본】 1책 97면/ 【분류】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9)

 

  권중화 [記事] : 태조실록 10권/ 태조 5년(1396 병자 / 명 홍무(洪武) 29년) 11월 6일(경신) 2번째 기사/ 권중화 등이 김적선 일행이 등주에서 배가 부서져 익사했음을 아뢰다/ 권중화(權仲和) 등이 말하였다. ꡒ김적선(金積善) 등이 등주(登州) 바다를 지나다가 풍랑을 만나서, 배가 부서져 일행이 모두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ꡓ/ 【태백산사고본】 3책 10권 8장 A면/ 【영인본】 1책 97면/ 【분류】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9)

 

  권중화 [記事] : 태조실록 10권/태조 5년(1396 병자 / 명 홍무(洪武) 29년) 11월 23일(정축) 4번째 기사/ 사돈 맺자고 한 것과 사신 유구 및 권중화 등이 돌아온 것에 사은하는 주문/ 판삼사사 설장수와 중추원 부사 신유현(辛有賢)을 남경에 보내어 사은(謝恩)하였다. 그 주문(奏文)은 이러하였다. ꡒ배신(陪臣) 하윤(河崙) 등이 남경에서 돌아와 삼가 성지(聖旨)를 전해 받자왔사온데, ꡐ나는 실심(實心)으로 친(親)하려고 한다. 내 자손이 사내아이는 많고 여아는 적다. 그 곳에서는 겨우 8세에서 16세에 이르면 성정(成丁)이 된다고 한다. 그곳은 실사(實事)는 적고 허사(虛事)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내가 너와 친하는 데 너는 반드시 지성을 요하고 일이 생기는 것을 요하지 않는다.ꡑ 하였고, 또 예부(禮部)의 자문(咨文)에 의거하여 삼가 성지(聖旨)를 받자왔는데, ꡐ보내 온 사신(使臣) 유구(柳?) 등이 모두 수재(秀才)가 아니므로 본국으로 돌려보낸다.ꡑ 하였사오니, 신이 성은(聖恩)에 감사하옵고, 온 국민이 기꺼워하는 경사입니다. 삼가 배신(陪臣) 설장수(?長壽) 등을 보내어 안장 갖춘 말[鞍馬]과 예물(禮物)을 가지고 경사(京師) 에 가서 사은(謝恩)하게 하옵니다.ꡓ 또 예부(禮部)에 자문(咨文)을 보내었다. ꡒ배신 권중화 등이 경사에서 돌아왔는데 삼가 황제의 분부를 전해 받자온즉, 중화 등 네 패의 사신(使臣) 정사(正使)와 종사관(從事官) 26명에게 각각 말 1필씩 주어서, 말을 타고 돌아오게 하였다 하오니, 이것을 듣고 당직(當職)은 감사하옵기가 실로 깊습니다.ꡓ/ 【태백산사고본】 3책 10권 8장 B면/ 【영인본】 1책 97면/ 【분류】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9)

 

  권중화 [記事] : 태조실록 11권/ 태조 6년(1397 정축 / 명 홍무(洪武) 30년) 2월 8일(신묘) 1번째 기사/ 의안백 화와 좌정승 조준 등에게 명하여 우정승 김사형 등에게 잔치를 베풀게 하다/ 의안백(義安伯) 이화(李和)․좌정승 조준(趙浚)․봉화백(奉化伯) 정도전(鄭道傳)에게 명하여 우정승 김사형(金士衡)에게 잔치를 베풀게 하니, 사은사(謝恩使) 권중화(權仲和) 이하 여러 사신(使臣)과 구육(?六)도 이에 참예하였다. 김사형에게 서대(犀帶)를 하사하였다./ 【태백산사고본】 3책 11권 2장 B면/ 【영인본】 1책 100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사급(賜給) / *외교(外交)(www.history.go.kr 2009)

 

  권중화 [記事] : 태조실록 11권/ 태조 6년(1397 정축 / 명 홍무(洪武) 30년) 5월 27일(무인) 2번째 기사/ 박자안을 순군옥에 가두고 국문하였는데, 윤방경․하윤이 연루되어 함께 투옥되다/ 박자안(朴子安) 을 순군옥(巡軍獄)에 가두고,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 권중화(權仲和)로 위관(委官)을 삼고, 대간(臺諫)․형조(刑曹)와 함께 국문하니, 자안의 공사(供辭)가 경상도 도절제사 윤방경(尹邦慶)과 계림 부윤(鷄林府尹) 하윤(河崙)에게 미치었다. 모두 옥에 불러오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3책 11권 16장 A면/ 【영인본】 1책 107면/ 【분류】 *사법-재판(裁判)(www.history.go.kr 2009)

 

  권중화 [記事] : 태조실록 13권/ 태조 7년(1398 무인 / 명 홍무(洪武) 31년) 2월 11일(무자) 3번째 기사/ 영삼사사 권중화에게 광주에서 종 만드는 것을 감독케 하다/ 영삼사사(領三司事) 권중화(權仲和)를 명하여 광주(廣州)에서 주종(鑄鐘)하는 것을 감독하게 하였는데, 백금(白金) 50냥을 넣어 주조(鑄造)하여 성공하였다./ 【태백산사고본】 3책 13권 5장 A면/ 【영인본】 1책 116면/ 【분류】 *광업(鑛業) / *예술-미술(美術)(www.history.go.kr 2009)

 

  권중화 [記事] : 태조실록 13권/ 태조 7년(1398 무인 / 명 홍무(洪武) 31년) 4월 4일(경진) 1번째 기사/ 광주에 거둥하여 새로 주조한 종을 보다. 군사 1,300명을 동원, 서울 종각 아래에 옮기다/ 광주(廣州)에 거둥하여 새로 주조(鑄造)한 종을 보고 제조(提調) 권중화(權仲和)에게 안마(鞍馬)를 내려주고, 좌․우도(左右道) 군사 1천 3백 명을 풀어서 시가(市街)의 누(樓) 아래에 수운(輸運)하여 놓았다. 처음에 종을 주조하라고 명하고, 조금 있다가 시가(市街)에 누(樓)를 짓고 권중화와 이염(李恬)으로 제조관을 삼았었는데, 염(恬)은 성질이 강퍅(剛愎)하여 제 마음대로 하고 남의 말을 듣지 않아서, 세 번이나 주조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임금이 오로지 중화(仲和)에게 맡기니, 중화가 여러 사람의 의논을 널리 청취하고, 또 교묘한 생각을 써서 한 번에 주조하여 만드니, 임금이 기뻐하여 이 상(賞)이 있었던 것이었다./ 【태백산사고본】 3책 13권 11장 A면/ 【영인본】 1책 119면/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사급(賜給) / *군사-지방군(地方軍) / *광업(鑛業) / *건설(建設) / *예술(藝術)(www.history.go.kr 2009)

 

  권중화 [記事] : 태조실록 14권/ 태조 7년(1398 무인 / 명 홍무(洪武) 31년) 윤5월 18일(계사) 1번째 기사/ 정도전 이지란 설장수 성석린 등을 불러 위로하고 잔치하다/ 북쪽 양정(?亭)에 술자리를 준비하고 봉화백(奉化伯) 정도전․참찬 문하(參贊門下) 이지란․월성군(月城君) 설장수(?長壽)․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 성석린(成石璘)을 불러서 명령을 받들어 사신으로 갔던 일을 위로했는데,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 심덕부(沈德符)․영삼사(領三司) 권중화(權仲和)․좌정승 조준․우정승 김사형(金士衡)․의성군(宜城君) 남은(南誾)이 잔치에 배석(陪席)하여 한껏 즐기다가 헤어졌다./ 【태백산사고본】 3책 14권 10장 A면/ 【영인본】 1책 126면/ 【분류】 *왕실-의식(儀式)(www.history.go.kr 2009)

 

  권중화 [記事] : 태조실록 15권/ 태종 7년(1398 무인 / 명 홍무(洪武) 31년) 9월 1일(계유) 5번째 기사/ 김정준을 전농 판사로 삼다. 친왕자를 공으로, 종친을 후로, 정1품을 백으로 봉하다/ 김정준(金廷雋)을 승진시켜 전농 판사(典農判事)로 삼았다. 비로소 친왕자(親王子)를 공(公)으로 삼고, 여러 종친을 후(侯)로 삼고, 정1품(正一品)을 백(伯)으로 삼았다. 익안공(益安公)을 중군 절제사(中軍節制使)로, 회안공(懷安公)을 좌군 절제사(左軍節制使)로, 지금 전하747) 를 우군 절제사(右軍節制使)로, 복근(福根)을 봉녕후(奉寧侯)로, 양우(良祐)를 영안후(寧安侯)로, 이백경(李伯卿)을 상당후(上黨侯)로, 심종(沈淙)을 청원후(靑原侯)로, 이화(李和)를 판문하부사 겸 영의흥삼군부사(判門下府事兼領義興三軍府事) 의안공(義安公)으로, 심덕부(沈德符)를 영삼사사(領三司事) 청성백(靑城伯)으로, 조준(趙浚)을 좌정승 평양백(平壤伯)으로, 김사형(金士衡)을 우정승 상낙백(上洛伯)으로, 권중화(權仲和)를 예천백(醴泉伯)으로, 성석린(成石璘)을 문하 시랑찬성사 판호조사(門下侍郞贊成事判戶曹事)로, 이지란(李之蘭)을 문하 시랑찬성사 판형조사 의흥삼군부 중군 절제사(門下侍郞贊成事判刑曹事義興三軍府中軍節制使) 청해군(靑海君)으로, 이무(李茂)를 참찬문하부사 판예조사 의흥 삼군부 좌군 절제사(參贊門下府事判禮曹事義興三軍府左軍節制使)로, 장사길(張思吉)을 참찬문하부사 판공조사 의흥 삼군부 우군 절제사(參贊門下府事判工曹事義興三軍府右軍節制使) 영가군(永嘉君)으로, 조박(趙璞)을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로, 하윤(河崙)을 정당 문학(政堂文學)으로, 이거이(李居易)를 참지문하부사(參知門下府事)로, 조영무(趙英茂)를 판중추원사 의흥 삼군부 중군 동지절제사(判中樞院事義興三軍府中軍同知節制使)로, 조온(趙溫)을 중추원사 의흥 삼군부 좌군 동지절제사(中樞院使義興三軍府左軍同知節制使)로, 김로(金輅)를 동지중추원사 의흥 삼군부 우군 동지절제사(同知中樞院事義興三軍府右軍同知節制使)로, 장사정(張思靖)을 상의중추원사(商議中樞院事)로, 이천우(李天祐)를 동지중추원사 겸 병조 전서 의흥 시위사 상장군 지삼군부사(同知中樞院事兼兵曹典書義興侍衛司上將軍知三軍府事)로, 정탁(鄭擢)을 중추원 학사(中樞院學士)로, 장철(張哲)을 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로, 남재(南在)를 의령군(宜寧君)으로 삼고, 이문화(李文和)를 그전대로 도승지로 삼아 상서 윤(尙瑞尹)을 겸무하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3책 15권 1장 A면/ 【영인본】 1책 136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왕실(王室) / [註 747]전하 : 태종(太宗). ☞(www.history.go.kr 2009)

 

  권중화 [記事] : 정종실록 1권/ 정종 1년(1399 기묘 / 명 건문(建文) 1년) 3월 13일(갑신) 5번째 기사/ 조박의 건의에 따라 처음으로 집현전을 활성화시키는 조치를 취하다/ 처음으로 문신(文臣)으로 하여금 집현전(集賢殿)에 모이게 하였다. 대사헌 조박(趙璞)이 상언(上言)하였다. ꡒ집현전은 한갓 그 이름만 있고 실상은 없으니, 청컨대 옛 제도를 회복하여 서적을 많이 비치하고 예문 교서(藝文校書)로 하여금 주장하게 하되, 문신 4품(品) 이상으로서 관각(館閣)의 직책을 띤 자는 날을 번갈아 모여서 경적(經籍)을 강론하게 하여 고문(顧問)에 대비케 하소서.ꡓ 임금이 심히 허락하고, 좌정승(左政丞) 조준(趙浚)․예천백(醴泉伯) 권중화(權仲和)․대사헌(大司憲) 조박(趙璞), 중추(中樞) 권근(權近)․이첨(李詹)으로 제조관(提調官)을 삼고, 문신 5품(品) 이하로 교리(校理)에 충당하고, 7품(品) 이하로 설서(說書)․정자(正字)에 충당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7장 B면/ 【영인본】 1책 146면/ 【분류】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권중화 [記事] : 정종실록 4권/ 정종 2년(1400 경진 / 명 건문(建文) 2년) 6월 1일(갑오) 2번째 기사/ 공신이 아닌데도 군에 봉했던 것은 모두 없애고, 권중화․이거인 등을 모두 치사하게 하다/ 공신이 아닌데도 군(君)에 봉해진 자는 모두 파하고, 권중화(權仲和)로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를 삼아 치사(致仕)하게 하고, 이거인(李居仁)․권희(權禧)․한천(韓?)․최영지(崔永沚)․경보(慶補)를 모두 판삼사사(判三司事)를 삼아 치사(致仕)하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책 4권 14장 A면/ 【영인본】 1책 174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www.history.go.kr 2009)

 

  권중화 [記事] : 태종실록 1권/ 태종 1년(1401 신사 / 명 건문(建文) 3년) 1월 25일(을유) 4번째 기사/ 공․후․백의 작호를 부원 대군․부원군․군으로 고치다/ 공(公)․후(侯)․백(伯)의 호(號)를 고치었으니, 참람되게 중국 을 모방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의안공(義安公) 이화(李和)․익안공(益安公) 이방의(李芳毅)․회안공(懷安公) 이방간(李芳幹)은 모두 고쳐 부원대군(府院大君)으로 봉하고, 봉녕후(奉寧侯) 복근(福根)․영안후(寧安侯) 양우(良祐)․완산후(完山侯) 천우(天祐)와 상당후(上黨侯) 이저(李佇)․청원후(靑原侯) 심종(沈淙)은 모두 고쳐 군(君)으로 봉하고, 평양백(平壤伯) 조준(趙浚)․상락백(上洛伯) 김사형(金士衡)․예천백(醴川伯) 권중화(權仲和)․창녕백(昌寧伯) 성석린(成石璘)․여흥백(驪興伯) 민제(閔霽)․ 서원백(西原伯) 이거이(李居易)․ 진산백(晉山伯) 하윤(河崙)은 모두 고쳐 부원군(府院君)으로 봉하고, 단산백(丹山伯) 이무(李茂)는 고쳐 단산군(丹山君)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1책 1권 11장 A면/ 【영인본】 1책 195면/ 【분류】 *인사-관리(管理) /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9)

 

  권중화 [記事] : 태종실록 2권/ 태종 1년(1401 신사 / 명 건문(建文) 3년) 7월 27일(갑인) 2번째 기사/ 양인의 딸과 혼인한 천민의 자식을 사수감에 소속시키다. 이에 관한 권중화의 상소문/ 천구(賤口)가 양녀(良女)에게 장가들어 낳은 자식을 사수감(司水監)에 속하게 하였으니, 몸은 양인(良人)이지만 역(役)은 천역(賤役)이기 때문이다. 예천 부원군(醴泉府院君) 권중화(權仲和)가 상소하기를, ꡒ본조(本朝)의 노비의 소생은 어미를 따르고 아비를 따르는 법이 오래 되었습니다. 흉포(凶暴)한 천구(賤口)가 많이 양녀(良女)에게 장가들어 소생은 모두 사천(私賤)이 되니, 이 때문에 천구는 날로 늘고 양민(良民)은 날로 줄어서 나라 역사에 이바지할 자가 크게 감소되오니, 원컨대 이제부터는 천구가 양인과 서로 통하지 못하게 하고, 양녀로서 이미 천구의 아내가 된 자는 또한 이혼하게 하고, 혹 영을 어기는 자가 있게 되면, 그 죄를 종의 주인[奴主]에게 미치게 하소서.ꡓ하여, 윤허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6장 A면/ 【영인본】 1책 210면/ 【분류】 *신분-천인(賤人) / *풍속-예속(禮俗) / *재정-역(役)(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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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군체육회, 13일 도체 3위...축하합니다.

 

  예천군체육회(醴泉郡, 最少 經費로 道體 郡部 綜合 3位 快擧....) [記事] : 예천군이 중위권 입상을 목표로 참가했던 제51회 경북도민체전에서 군부 종합 3위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둬 체육웅군의 위상을 높혔다. 예천군은 김천에서 열린 이번 대회에 15개 종목에 선수 및 임원 304명을 출전... 대회 첫날 골프가 개인 및 단체 우승을 차지한데 이어 대회 마지막 날인 2013년 5월 13일 테니스에서 종합 우승, 육상과 태권도에서 2위를 차지하는 등 막판 뒷심을 발휘하며 칠곡, 의성에 이어 군부 종합 3위라는 쾌거를 일궈냈다. 김주석 예천군체육회 실무부회장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준 선수 임원들이 눈물겹도록 고맙다"며 "내년 대회에는 반드시 군부 우승을 차지해 선배들이 이뤄놓은 체육 웅군의 위상을 되찾아 오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예천군 선수단은 13일 오후 6시 폐회식을 마치고 저녁 8시 30분경이면 군청 전정에 도착할 예정으로 있어 군민들의 따뜻한 격려와 환영이 필요할 전망이다.(새慶北인터넷뉴스 2013년05월13일 16시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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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방문 994

 

  예천유등문화축제 2013(2萬 5千餘 觀覽客 몰려든 '2013 醴泉유등文化祝祭' 成功祝祭 評價 속 幕내려) [記事] : 2013년 5월 11일~12일(2일간) 한천변에서 개최된 '2013 예천유등문화축제'가 12일 인기가수 초청 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린 가운데 이번 축제에 연인원 2만 5천여 명이 다녀간 것으로 최종 집계되어 성공축제로 자리매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특히 축제 마지막을 장식한 인기가수 초청 공연에는 주민과 인근 영주.안동.문경시와 멀리 태백시에서 인기가수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예천을 찾는 등 주최측은 1만여 명이 공연을 관람했다고 밝혀 예천유등문화축제가 지속적으로 개최될 전망이다. 이날 저녁 공연에는 각종 행사에 빠지지 않고 초청되는 설운도, 최석준, 문현주, 박진도, 우연이, 소명 등 국내 최정상급 인기가수 20여명이 2시간에 걸쳐 자신의 히트곡을 열창하여 참석자들은 박수를 치며 행복한 저녁을 보냈다. 이현준 군수, 권점숙 군의장은 '2013 예천유등문화축제'가 성공을 거두자 함께 무대에 올라 '잘 살꺼야'를 열창하며 행사 성공을 위해 애써 준 축제추진위원장인 청안 스님을 비롯한 운영위원들과 자원봉사자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이번 축제가 첫번째 개최되었지만 나름대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현준 군수, 권점숙 군의장을 비롯한 각 기관단체장과 5만여 군민들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한마음으로 소통하며 축제에 적극 참여하여 성공으로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예천유등문화축제가 많은 관람객들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은 첫날 개심사지오층석탑 다례제 및 봉축법요식, 색소폰 공연, 전통소리보존회 국악공연, 윤종식 포크송, 다문화 장기자랑, 작은 음악회, 룸비니유치원 식전공연, 유등점등식 및 난타공연, 제등행렬과 인기가수 초청 공연 등 잘 짜여진 프로그램 덕분에 가능했다. 이번 축제 성공 뒤에는 박중식 문화관광과장을 비롯한 직원과 축제추진위원장인 청안 스님을 비롯한 위원들이 사전 준비단계에서부터 소통하며 철저한 프로그램 구성 및 전시. 공연의 진정성으로 타 축제와 차별화를 선언, 예천문화의 우수성을 대내외에 널리 알렸다는 평가를 받도록 만든 성공축제를 이끈 주인공들이다. 또한 "예천문화원, 예총예천지부, 각 사찰 주지 스님 및 신도회장과 신도, 경북도립대학교 페이스페인팅 봉사팀, 대창고 마돌이 봉사단, 예천여고. 예천군불교청년회, 예천불교정법회, 육바라밀 불자신행단 등 많은 자원봉사자들도 성공축제를 위해 초여름 날씨에도 비지땀을 흘리며 최선"을 다했다. 특히, 자원봉사자 대부분이 농업이나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는데다 바쁜 영농철임에도 불구하고 2일 동안 생업을 중단한 채 축제 현장으로 달려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지켜본 주민과 관광객들은 "진정한 봉사와 지역을 사랑하는 이들이 있는 한 예천의 미래는 밝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천년의 빛과 향기-한수야 놀자! 란 슬로건 아래 처음 개최된 이번 예천유등문화축제 관람객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단위 학생, 젊은 친구들이 많이 참석해 예천유등문화축제를 이해하고 믿음과 사랑, 친밀감을 느끼도록 했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축제로 평가받으며,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의 진단이다. 한 축제전문가는 "예천유등문화축제가 일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고 부족했던 시행착오를 다듬고 고쳐 유등축제를 계속할 경우 천혜의 자연과 한천변의 아름다운 풍광,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모을 때 유등축제의 시발지라고 일컬어지는 경남 진주시를 능가하는 축제로 발전시킬 수 있는 소지가 풍부하다"고 말했다. 이번 축제는 총 1억2천여만 원의 적은 예산(도비 5천만원, 군비 5천만원, 자부담 2천만원)으로 축제를 성공시켜 엄청난 금액을 투자하여 축제를 개최했으나 실패하고 막대한 예산만 날리고 꼬리를 내린 일부 자치단체의 축제와 비교할 때 대조를 이루며 예천인의 저력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이현준 군수는 "축제가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한 자원봉사자 여러분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며 감사를 표하고 "내년에는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가 더욱 풍요로운 대한민국 최고의 예천유등문화축제가 될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2013 예천유등문화축제 첫날 경북도민체육대회 관계로 참석치 못한 김관용 도지사를 대신하여 부인 김춘희 여사가 개심사지오층석탑 다례제 및 봉축법요식에 참석하여 재단에 연꽃을 올리는 등 행사에 적극 참여해 경북도 차원에서도 예천유등축제에 큰 관심을 표명했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3-05-12 오후 9:2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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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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