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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286) : 권중화(영의정부사)(7)-권지(현감)-권지훈(가수)-권직형(효자)-권진(입향조)(1)(附 지보면 출신 이창대, <미러클 남산> 펴내...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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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중화 : 태종실록 1권/ 태종 1년(1401 신사 / 명 건문(建文) 3년) 1월 25일(을유) 4번째 기사/ 공․후․백의 작호를 부원 대군․부원군․군으로 고치다/ 공(公)․후(侯)․백(伯)의 호(號)를 고치었으니, 참람되게 중국을 모방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의안공(義安公) 이화(李和)․익안공(益安公) 이방의(李芳毅)․회안공(懷安公) 이방간(李芳幹)은 모두 고쳐 부원대군(府院大君)으로 봉하고, 봉녕후(奉寧侯) 복근(福根)․영안후(寧安侯) 양우(良祐)․완산후(完山侯) 천우(天祐)와 상당후(上黨侯) 이저(李佇)․청원후(靑原侯) 심종(沈淙)은 모두 고쳐 군(君)으로 봉하고, 평양백(平壤伯) 조준(趙浚)․상락백(上洛伯) 김사형(金士衡)․예천백(醴泉伯) 권중화(權仲和)․창녕백(昌寧伯) 성석린(成石璘)․여흥백(驪興伯) 민제(閔霽)․서원백(西原伯) 이거이(李居易)․진산백(晉山伯) 하윤(河崙)은 모두 고쳐 부원군(府院君)으로 봉하고, 단산백(丹山伯) 이무(李茂)는 고쳐 단산군(丹山君)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책 195면/ 【분류】 *인사-관리(管理) / *외교-명(明)//
권중화 : 태종실록 2권/ 태종 1년(1401 신사 / 명 건문(建文) 3년) 7월 27일(갑인) 2번째 기사/ 양인의 딸과 혼인한 천민의 자식을 사수감에 소속시키다. 이에 관한 권중화의 상소문/ 천구(賤口)가 양녀(良女)에게 장가들어 낳은 자식을 사수감(司水監)에 속하게 하였으니, 몸은 양인(良人)이지만 역(役)은 천역(賤役)이기 때문이다. 예천 부원군(醴泉府院君) 권중화(權仲和)가 상소하기를, ꡒ본조(本朝)의 노비의 소생은 어미를 따르고 아비를 따르는 법이 오래 되었습니다. 흉포(凶暴)한 천구(賤口)가 많이 양녀(良女)에게 장가들어 소생은 모두 사천(私賤)이 되니, 이 때문에 천구는 날로 늘고 양민(良民)은 날로 줄어서 나라 역사에 이바지할 자가 크게 감소되오니, 원컨대 이제부터는 천구가 양인과 서로 통하지 못하게 하고, 양녀로서 이미 천구의 아내가 된 자는 또한 이혼하게 하고, 혹 영을 어기는 자가 있게 되면, 그 죄를 종의 주인[奴主]에게 미치게 하소서.ꡓ하여, 윤허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책 210면/ 【분류】 *신분-천인(賤人) / *풍속-예속(禮俗) / *재정-역(役)//
권중화 : 태종실록 10권/ 태종 5년(1405 을유 / 명 영락(永樂) 3년) 7월 7일(경자) 3번째 기사/ 내사 정승을 의정부에서 영접하다. 예천부원군 권중화가 비를 빌다/ 내사(內史) 정승(鄭昇)이 그의 고향에서 돌아오니, 의정부(議政府)가 숭인문(崇仁門) 밖에서 맞이하였다. 예천 부원군(醴泉府院君) 권중화(權仲和)를 명하여 북교(北郊)에서 비를 빌었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책 331면/ 【분류】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외교-명(明)//
권중화 : 태종실록 11권/ 태종 6년(1406 병술 / 명 영락(永樂) 4년) 3월 24일(갑인) 6번째 기사/ 예조에서 계절에 따라 불씨를 갈아 쓰는 것에 대해 아뢰자 의논하여 시행케 하다/ 개화령(改火令)을 내렸다. 예조에서 아뢰었다. ꡒ삼가 《주례(周禮)》를 상고하면, ꡐ하관(夏官) 사훤(司?)이 행화(行火)630) 의 정령(政令)을 맡아 사철에 나라의 불[國火]을 변하게 하여 시질(時疾)을 구제한다.ꡑ 하였습니다. 선유(先儒)가 말하기를, ꡐ불씨[火]를 오래 두고 변하게 하지 아니하면, 불꽃이 빛나고 거세게 이글거려 양기[陽氣]가 정도에 지나쳐서 여질(?疾)이 생기는 까닭으로, 때에 따라 바꾸어 변하게 한다. 그 변하게 하는 법은 찬수(鑽燧)631) 하여 바꾸는 것인데, 느릅나무[楡]와 버드나무[柳]는 푸르기 때문에 봄에 불을 취하고, 살구나무[杏]와 대추나무[棗]는 붉기 때문에 여름에 취(取)하고, 계하(季夏)632) 에 이르러 토기(土氣)가 왕성하기 때문에 뽕나무[桑]와 산뽕나무[?]의 황색(黃色) 나무에서 불을 취(取)하고, 작유(?楢)는 희고 괴단(槐檀)은 검기 때문에 가을과 겨울에 각각 그 철의 방위 색[方色]에 따라 불을 취하는 것이다.ꡑ 하였습니다. 대개 불이라고 하는 물건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더욱이나 상용(常用)되므로 그 성질에 따르지 아니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오래되고 법이 폐지되어 불씨를 바꾸는 법령이 오랫동안 행해지지 아니하여, 섭리(燮理)하는 도리에 미진(未盡)함이 있습니다. 원하건대, 사철에 불씨를 바꾸는 영(令)을 내려, 경중(京中)에는 병조(兵曹)에서, 외방(外方)에는 수령들이 매양 사철의 입절(入節)633) 하는 날과 계하(季夏) 토왕일(土旺日)634) 에 각각 그나무를 문질러, 그 철의 불씨로 바꾸어 음식을 끓이는 데 사용하면 음양(陰陽)의 절후가 순조롭고, 역질(疫疾)의 재앙이 없어져서, 섭리(燮理)하여 조화(調和)하는 일이 갖추어지지 아니함이 없을 것입니다.ꡓ 임금이 말하기를, ꡒ예천백(醴泉伯) 권중화(權仲和)가 내게 이르기를, ꡐ사철에 불씨를 바꾸는 것은 예전에 그 제도가 있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옛 제도를 따르지 아니하여, 이 때문에 화재(火災)가 일어난다.ꡑ고 하였는데, 내가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있다.ꡓ하고 드디어 의정부에 내려 의논하여 시행하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책 352면/ 【분류】 *풍속-풍속(風俗) / *역사-고사(故事)/ [註 630]행화(行火) : 절기(節氣)에 따라 불씨를 바꾸는 일. 봄에는 느릅나무․버드나무에서, 여름에는 살구나무․대추나무에서, 가을 겨울에는 작유(?楢)․괴단(槐檀)에서 불씨를 얻었음. ☞ / [註 631]찬수(鑽燧) : 나무를 문질러 부벼 불을 일으킴. ☞ / [註 632]계하(季夏) : 음력 6월. ☞ / [註 633]입절(入節) : 입춘․입하․입추․입동. ☞ / [註 634]토왕일(土旺日) : 음양(陰陽) 오행(五行)에서 말하는 음력 6월에 토기(土氣)가 왕성한 날. 대개 입추(立秋) 전 18일 동안을 말함. ☞//
권중화 : 태종실록 16권/ 태종 8년(1408 무자 / 명 영락(永樂) 6년) 11월 23일(정묘) 1번째 기사/ 영의정부사로 치사한 권중화의 졸기/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로 치사(致仕)한 권중화(權仲和)가 죽었다. 중화(仲和)는 안동(安東) 사람인데, 고려(高麗) 정승(政丞) 권한공(權漢功)의 아들이다. 지정(至正) 계사년 을과(乙科) 제2인에 올라 공민왕(恭愍王)을 섬겨 대언(代言)이 되었다가, 지신사(知申事)로 옮기고 전선(銓選)을 맡았는데, 근신(謹愼)하고 주밀(周密)하여 친구(親舊)에게 사(私)를 두지 않으니, 공민왕이 심히 중하게 여기었다. 정당문학(政堂文學)으로 정사년에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었는데, 문하(門下)에 명사(名士)가 많았다. 염정(恬靜)1365) 자수(自守)1366) 하여 권귀(權貴)에게 아부하지 않아서 세상의 추중(推重)을 받았다. 여러 벼슬을 거쳐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에 이르렀다. 태조(太祖)가 즉위한 뒤에 기년(耆年)․숙덕(宿德)으로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를 제수하고 예천백(醴泉伯)을 봉하여, 본관(本官)1367) 으로 그대로 치사(致仕)하게 하였다. 고사(故事)에 정통하므로 무릇 상정(詳定)할 일이 있으면 반드시 나가서 물었다. 나이 비록 늙었으나 정력(精力)이 쇠하지 않아서 의약(醫藥)․지리(地理)․복서(卜筮)에 통하지 않은 것이 없고, 더욱이 대전(大篆)1368) 과 팔분(八分)1369) 을 잘 썼다. 평소에 산업(産業)을 다스리지 않고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앉아서 이[蝨]를 잡으며 이야기하였다. 늙어서 다만 말라빠진 말[馬] 한 필이 있었다. 나이 87세에 죽으니 조회(朝會)를 3일 동안 정지하고, 중관(中官)을 명하여 조제(弔祭)하였다. 유사(有司)에 명하여 예장(禮葬)하고, 문절(文節)이란 시호(諡號)를 주었다. 중궁(中宮)도 또한 내시(內侍)를 보내어 치제(致祭)하였다. 아들이 하나이니 권방위(權邦緯)이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책 464면/ 【분류】 *인물(人物)/ [註 1365]염정(恬靜) : 마음이 고요하고 평안함. ☞ / [註 1366]자수(自守) : 행실이나 말을 스스로 조심하여 지킴. ☞ / [註 1367]본관(本官) : 판문하부사를 말함. ☞ / [註 1368]대전(大篆) : 한자(漢字) 서체(書體)의 하나. 주(周)나라 선왕(宣王) 때 태사(太史) 주(?)가 만들었다고 하며, 그 특색은 번잡(繁雜)하고 수식(修飾)을 주로 한 점임. ☞ / [註 1369]팔분(八分) : 예서(隷書) 이분(二分)과 전서(篆書) 팔분(八分)을 섞어서 만든 한자(漢字)의 서체(書體). 한(漢)나라 채옹(蔡邕)이 처음 만들었다고 함. ☞//
권중화(李成桂를 熱烈히 歡迎하다, 淸州 百姓들) [記事] :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의약서로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이 있다. 세종의 명에 의해 1433년 노중례, 유효통, 박윤덕 등이 편찬했다. 내과·전염병·외과·이비인후과·안과·산부인과·소아과·치과 등 각종 임상을 망라적으로 다루고 있어 종합 의약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향약집성방의 모든 내용이 독창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에 앞서 편찬된 향약제생집성방(鄕藥濟生集成方跋)이라는 의약서를 꽤 많이 인용했다. 향약제생집성방은 권중화, 김사형, 김희선, 조준 등이 지은 것을 제생원(濟生院)에서 편찬했다. 당시 실력자인 권근(權近)이 이 의서의 발문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제생원의 향약집성방은 이 백성에게 혜택을 주기 위하여 지은 것이다. (…) 예천백 권상(權相) 중화仲和)와 더불어 그가 일찍이 저술한 향약방을 가지고 다시 수집을 더하여 전서의 판각을 완성하니, 장차 중외에 반포하고 영원히 전하여, 보는 자로 하여금 모두 그 거주하는 곳에 따라 약을 구할 수 있고, 병중에 따라 치료할 수 있음을 알게 하고…'-<동문선> 찬자 4명 중 한 명인 권중화(權仲和·1322∼1408)는 개인적으로 황당한 경험을 한다. 그는 고려의 사신으로 명나라에 들어갔다. 그러나 명나라에서 돌아와 보니 나라가 바뀌어 있었다. 1392년 8월의 일로, 조선이 개국됐다. '고려의 사은사였던 영복군 왕격과 정당문학 권중화가 중국 서울로부터 돌아와서 말하였다. "황태자가 4월 25일에 세상을 떠나니, 황제가 황태자의 아들 윤문을 세워 황태손으로 삼았습니다"'-<태조실록> 실록이 '고려의 사은사인'이 아닌, '고려의 사은사였던'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 때문이다. 태조 이성계는 집권 2년차를 맞으면서 개경의 구귀족을 혁파하기 위해 남쪽으로의 천도를 적극 추진했다. 계룡산 천도는 이때 등장했고, 그 발단은 이성계의 태실을 어디에 설치하느냐로부터 시작됐다. 이때 책임자 위치에 있던 인물이 바로 권중화였다. 그는 태실을 정한 후 계룡산 일대의 지도까지 작성, 이를 이성계에게 바쳤다. '태실 증고사 권중화가 돌아와서 상언하기를, "전라도 진동현(珍同縣)에서 길지를 살펴 찾았습니다" 하면서, 이에 산수형세도를 바치고, 겸하여 양광도(楊廣道) 계룡산의 도읍 지도를 바쳤다.'-<태조실록> 이성계는 계룡산의 지세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자 했다. 태조의 남행이 시작됐다. 중도에 '아내인 현비(顯妃)가 발병했고, 또 황해도와 평안도에 초적(草賊)이 출몰하여 개경이 위험하다'는 보고가 있었으나 이성계는 남행을 감행했다. 이때 왕이 된 이성계가 우리고장 청주를 통과한다. 실록에 청주고을 백성들의 환영 모습이 눈으로 보듯 묘사돼 있다. '청주에 이르니 목사 진여의(陳汝宜)와 판관 민도생(閔道生) 등이 나례(儺禮)를 갖추어 북교(北郊)에서 맞이하고, 부로(父老)들은 노래를 불러 올리면서 어가(御駕) 앞에 절하였다.'-<태조실록> 권중화는 본래 경상도 예천 사람이나 우리과장과의 인연이 7백년을 훌쩍 뛰어넘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가 지은 향약제생집성방이 음성 한독의약박물관에 보관·전시돼 있다. 보물 제 1235호다.(조혁연 大記者 忠北日報 2011-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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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 : 예천의 금석문 1 | 간행년:2003 저자:예천문화원 발행처:예천문화원 / 縣監 安東權公(輊) 墓碣銘/ ...司諫으로 德學風節이 爲世推重하여 學者들이 鳩谷先生이라 稱하였다. 묘소는 醴泉金谷(예천읍 용산(못골)) 之原巽.../ 예천 내용이 수록된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넷 유교관련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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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훈('韓國 歌謠界 샛별 誕生' : '지훈' 정풍송 先生 曲 받아 音盤 出盤, 30日 리베라호텔서 作品發表會) [記事] : 출향인 2세 지훈(19)이 한국 가요계의 샛별이 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감천면 덕율리 태생의 출향인 권명하(50․대창중 23회) 김영순(50․예천여고 19회) 씨의 2남 1녀 가운데 장남인 지훈은 2006년 11월 30일(목) 오후 7시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 베르사이유홀에서 음반 출반 기념회 겸 작품 발표회를 연다. 지훈은 어릴 때부터 가수가 꿈. 저명한 작곡가 정풍송 선생으로부터 노래 공부를 했으며, 이번에 주옥같은 작품 12곡을 받아 신인 가수로 입문하게 됐다. 성남서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지훈은 185cm의 훤칠한 키에 몸무게 76kg으로 미남형 얼굴. 올 수시 2차 모집에서 서울 종합예술대학에 장학생으로 합격했다. 이번 음반(발라드성 트로트)에는 톡톡 튀는 신세대에 어울리는 군가도 수록된 것이 특징. 이 군가는 내년(2007)부터 전군에 보급될 예정이다. 작곡가 정풍송 선생은 지훈을 ꡐ제2의 조용필로 만든다는 꿈ꡑ을 갖고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버지 권명하(미광이엔지(주) 대표이사) 씨는 ꡒ지훈이가 가수의 꿈을 활짝 펼칠 수 있도록 예천군민과 출향인들의 많은 격려를 바란다.ꡓ고 당부했다.(권오근 記者 醴泉新聞 2006년 11월 16일 16:05:06)
권지훈(故鄕歌手 지훈~ 많은 사랑 付託드립니다. 권명하(大昌中 23回), 김영순(醴泉女高 19回) [記事] : 2006년 11월 30일 저녁 7시부터 서울 리베라호텔에서ꡒ지훈ꡓ 군의 가수데뷔 음반발표회를 관중들의 열광 속에 성대히 치루었다. 2시간 예정이었던 발표회는 앙콜의 연속으로 밤 10까지 연장되었으며 단, 한 명도 중간에 자리를 뜨지 않았다. 이날 사회는 KBS MC 겸 리포터 조영구가 진행하였고, 개그맨 허둥 씨도 참석하여 관중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김동대 재경군민회장과 홍성칠 상주지원장이 축하 화환을 보내왔고 이한성 서울고검차장검사와 재경군민회 강성남 국장도 함께 자리를 해 더욱 빛났다. 이날 약 300여 명의 지인 및 손님이 참석하여 한곡한곡 불러질 때마다 우뢰 같은 갈채가 쏟아졌다. 지훈이는 뒷바라지 해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고 오늘 자신이 있기까지 혼신의 노력과 주옥같은 명곡 12곡을 주신 정풍송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말끝에 울음을 터뜨렸다. 관중도 다함께 눈시울을 적셨다. 이날 작사, 작곡, 편곡을 맡은 정풍송 선생님 내외분도 끝까지 자리를 함께 하며 지훈이를 격려 지도하였다. 지훈이는 이날을 기점으로 라디오국군방송과 교통방송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방송활동이 잡혀 있다고 한다. 아버지의 인사말에는 고향 예천인들의 전폭적인 사랑과 격려를 부탁하였고, 앞으로 지훈이가 국민들에게 사랑받고, 국민들의 가슴을 파고드는 노래를 하여 함께 울고, 웃는 노래를 할 수 있게 지도를 하겠다고 약속했다.(글쓴이 : 재경대창동문회 在京醴泉郡民會홈페이지 2006.12.06 09:49)
권지훈("앵콜, 앵콜" 歡呼 이어져 : 권명하 氏 長男 지훈 歌手 데뷔, 音盤 發表會 큰 呼應) [記事] : ꡒ우리 지훈이가 고향 예천을 빛내고 국민 모두에게 사랑받는 대형 가수가 될 수 있도록 많은 격려와 사랑 부탁드립니다.ꡓ 감천면 태생의 권명하(50․대창중 23회) 씨가 가수로 데뷔하는 아들 지훈 군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다. 2006년 11월 30일 저녁 7시,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 베르사이유홀에는 지훈(19) 군의 가수데뷔 음반출반기념회 겸 작품발표회를 축하하기 위해 3백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사회는 KBS MC 겸 인기리포터인 조영구 씨가 맡아 진행했으며, 개그맨 허둥이가 참석해 관중석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지훈 군의 열창에 2시간 예정이던 발표회는 관중들의 앵콜과 뜨거운 열기로 1시간이 연장됐으며, 한곡한곡이 불려질 때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행사장에는 호명면 출신인 이한성 서울고검차장검사, 재경군민회 강성남 국장, 지인, 방송 관계자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으며, 김동대 재경군민회장, 홍성칠 상주지원장이 축하화환을 보내왔다. 또한 지훈 군의 첫 음반에 작사, 작곡, 편곡을 맡아준 인기작곡가 정풍송 씨 내외가 끝까지 자리를 함께해 사제의 끈끈한 정을 느끼게 했다. 이 자리에서 지훈군은 ꡒ먼저 오늘이 있기까지 뒷바라지에 고생하신 부모님과 주옥같은 명곡 12곡을 아낌없이 주신 정풍송 선생님에게 감사함을 전한다ꡓ고 말했다. 지훈 군은 이날 출반기념회를 시작으로 라디오 국군방송, 교통방송 등 본격적인 방송활동에 들어갔다.(醴泉新聞 2006년 12월 07일 15:08:00)
권지훈(出鄕人 2世 歌手 지훈 醴泉서 熱唱) [記事] : 출향인 2세 가수 지훈(20)이 2007년 5월 21일 예천공설운동장에서 열린 ‘KBS 효 한마당’에 참석, 열창을 펼쳐 큰 박수를 받았다. 지훈은 감천면 태생의 출향인 권명하(51ㆍ대창중 23회) 김영순(51ㆍ예천여고 19회) 씨의 2남 1녀 가운데 장남이다. 지훈은 어릴 때부터 가수가 꿈, 저명한 작곡가 정풍송 선생으로부터 노래 공부를 했으며, 2006년 주옥같은 작품 12곡을 받아 신인 가수로 입문하게 됐다.(醴泉新聞 2007.5.24)
권지훈 : 지훈 가수/ 출생 1988년 7월 30일/ 신체 키185cm,/ 체중73kg/ 소속 MK테크/ 데뷔 2006년 1집 앨범 '어찌하라고'/ 학력 서울종합예술전문학교(daum 2010)
권지훈 : 가수 '지훈' 노인복지회관에 온천입욕권 300매 전달/ 2007.12.10/ [훈훈한 미담] 예천출신 가수 '지훈' 노인복지회관에 온천입욕권 300매 전달 우리지역 출신 가수 지훈(본명 권기훈) 이 예천군노인복지회관(관장 김정표)을 찾아 어르신들을 위해 써달라며 예천온천 입욕권 300매(90만원.../ http://cafe.daum.net/seouldaechong/ 재경예천대창중.고등학교총동문회(daum 2010)
권지훈 : 가수 "지훈" 인기가요 출연/ 4년전, 2007년 5월 11일/ 권명하의 子 가수 "지훈" 5월 13일 일요일 15시 30분 SBS TV 인기가요 생방송 출연!! 많은 시청바랍니다!/ cafe.daum.net/seouldaechong(daum 2011)
권지훈 : 권명하 아들 지훈 "MBC TV 가요큰잔치출연"/ 4년전, 2007년 5월 10일/ 안녕하십니까? 동문여러분! 예천대창중학교 23회 졸업생 권명하입니다! 이번에 제 자식놈 "지훈"이가 가수의 꿈을 갖고 조용필의 "허공" "미워미워미워"를 비롯해 한혜진의 "갈색추억" 등 수많은 .../ cafe.daum.net/seouldaechong(daum 2011)
권지훈 : 예천여성합창단 정기연주회 열려/ 4년전, 2007년 12월 7일/ 예천여성합창단과 예천윈드오케스트라, 예천 출신 소프라노 김현주(예천여고 31기), 가수 지훈이 출연하여 군민들에게 문화향수 충족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날 예천여성합창단은 “사랑하는 마음,.../ cafe.daum.net/seouldaechong(daum 2011)
권지훈 : '제11회 솔개뜰 어울마당 축제'/ 4년전, 2007년 10월 23일/ ...및 학생, 지역주민 등 1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백지영, 강진, 팝핀현준, 윤하, 스윗소로우, 지훈, 홍주, 한서경 등 국내 인기가수들이 출연한 축제 전야제 행사인 솔개뜰가요한마당잔치가 펼쳐졌다./ cafe.daum.net/seouldaechong(daum 2011_
권지훈 : 출향인 2세 지훈(19)이 한국 가요계의 샛별/ 5년전, 2006년 11월 19일/ '한국 가요계 샛별 탄생' '지훈' 정풍송 선생 곡 받아 음반 출반 30일 리베라호텔서 작품발표회 지훈~ 출향인 2세 지훈(19)이 한국 가요계의 샛별이 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감천면 태생의 출향인.../ cafe.daum.net/seouldaechong(daum 2011)
권지훈 : '효 한마당 예천군편 녹화'- 5/21/ 4년전, 2007년 5월 29일/ 미덕을 살리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본 행사에 앞서 지역출신 가수 이창희, 지훈 씨가 무대에 올라 열창으로 행사장의 분위기를 돋구었으며, 축포로 행사의 시작을 알렸다. 이어 박주희.../ cafe.daum.net/seouldaechong(daum 2011)
권지훈 : 재경송년밤 행사 =예천신문 내용/ 4년전, 2007년 1월 12일/ ...”고 다짐했다. 이어진 2부 행사는 홍승락 동문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출향인 2세 가수인 지훈 군이 작곡가 정풍송 씨와 함께 참석해 ‘교정에서’ ‘어찌하라고’ 등을 열창해 식장을 뜨겁게 달궜다. 지훈.../ cafe.daum.net/seouldaechong(daum 2011)
권지훈 : 고향 가수 지훈~ 12/11 송년의밤 행사 출연/ 5년전, 2006년 12월 6일/ (대중23회), 김영순(예천여고19회) 저는 대창중학교 23회 출신 권명하입니다. 저의 아들 “지훈”이가 지난 11월 30일 저녁 7시부터 서울리베라호텔에서 “지훈” 군의 가수데뷔 음반발표회를 관중들의...(daum 2011)
권지훈 : 재경예천군민회cafe/ 재경예천군민회 2011 신년교례회 성황리에 열려/ 2달전, 2011년 1월 19일 (수)/ 이날 예천여중고 24회(17회) 동문들의 영남농악 시연으로 장내 흥을 돋우었다. 또한 식후행사로 서예가인 도정 권상호 님의 라이브 서예와 가수 지훈의 뜨거운 열창으로 행사를 마무리했다./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1)
권지훈 : 재경예천군민회 2011 신년교례회 성황리에 열려/ 2달전, 2011년 1월 17일 (월)/ 영남농악 시연으로 장내 흥을 돋우었다. 또한 식후행사로 경기문화재 제8호인 최정옥 씨의 살풀이와 서예가인 도정 권상호 님의 라이브 서예와 가수 지훈의 뜨거운 열창으로 행사를 마무리했다./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1)
권지훈 : 재경예천읍민회 2010년 송년의 밤 성공리에 개최/ 작년, 2010년 12월 31일/ 진행을 하며 가수 한혜진 씨와 민요가수 김세라나 씨의 특별공연에 흥겨워했으며 출향인 자녀 지훈 씨의 특별공연으로 예천인들의 가슴은 벅차올랐다. 이날 향우회원 상호 간의 정을 나누고 우의를 .../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1)
권지훈 : 감천출신 가수 지훈의 <그런 줄도 모르고>인기가도 레이스.../ 2년전, 2009년 9월 3일/ 감천 출신 권명하의 자 지훈 군이 올해 3월 2집 음반을 발표하여 맹렬히 인기 레이스에 돌입했습니다. 지보중학교(제19회) 출신의 최고 작사가인 김병걸 작사, 이충재 작곡의 <그런 줄도 모르고>.../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1)
권지훈 : 감천면민 화합 노래자랑대회 - 예천신문/ 2년전, 2009년 10월 8일/ ...벌였으며, 흥겨운 노랫가락에 즐거움을 함께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또 감천면 출신 가수 지훈 씨의 축하공연을 통해 즐거움을 더했으며 행운권 추첨에서 유2리 김원배 씨가 송아지 당첨의 행운을.../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1)
권지훈 : 2009 재경감천중 동창회(5/21)/ 2년전, 2009년 5월 23일/ 2009년 5월 21일 총동창회 국방회관.. 우대영 전임회장님과.. 정재훈 신임회장님 가수 '지훈' 궂은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선·후배님들께서 자리를 빛내 주셨습니다..^^ 150여명의 참석으로 즐거운.../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1)
권지훈 : 가수모집과 기념음반 제작 안내--향토출신 작사가 김병걸/ 3년전, 2008년 11월 3일/ 봉화(이태호), 군위(이자연,신해철,윤사월), 왜관(신웅,신유), 울진(이도영,장민), 예천(최석준,지훈), 안동(조상영,권용,정지아), 상주(현동현,진성), 영주(조갑경) 등 많은 가수들이 대거 활동하고 있고.../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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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직형(權直衡) : 孝子/ 상위서지: 龍宮縣邑誌(慶尙北道)v01/ 저자: 龍宮縣/ 분류: 고도서 > 사부(史部) > 지리류(地理類)/ 제공: 한국학중앙연구원/ ▶ 서명 : (孝子)/ 孝子 : 權直衡[주:燕山時短喪法嚴直衡父母連逝服衰六年不食?菜事聞旌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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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權軫) : 조선 중기, 감천면 미석리 석남(石南) 안동 권씨 석남파(石南派)의 입향조(入鄕祖), 전은서별제(別提) 자(刺)의 아들, 충의위(忠義衛)에 올랐다. 아버지가 서울에서 안동 태화동 금곡으로 이거(移居)하였고, 진(軫)이 석남으로 이거(移居)하였는데, 현재 감천면(甘泉面)에서 살고 있는 안동 권씨(權氏)는 대부분 진(軫)의 후손이다. 기묘사화(己卯士禍) 후 그는 아버지의 유지(遺志)인 "한 가문(家門)의 성만(盛滿)을 귀신도 시기하는 법이다. 우리가 조상 대대로 부귀를 누렸으니 이제 남에게 양보할 때도 되었다. 다시는 벼슬길에 나가지 말라"를 이어 청운(靑雲)의 꿈을 포기하고 인적이 드문 석남리(石南里)를 찾아왔다. 당시 종형 철 (從兄轍)은 영의정(領議政)이요 종질 율(從侄慄)은 임진왜란(1592)에 큰 공을 세운 도원수(都元帥)다. 여러 번 벼슬에 나올 것을 종용받았으나 유지(遺志)을 내세워 거절하고 그 곳에 안주(安住)하였다. 석남(石南)의 유래는 석남과 구곡(龜谷) 사이 개울을 바라보는 곳에 잘 다듬어진 듯한 선바위 하나가 서 있다. 또 옛날 황새가 그 바위 위에 둥우리를 틀고 알을 낳아 새끼를 깐 곳이라 해서 황새바위라 부르기도 한다. 황새는 영물(靈物)이고 영물이 번식하는 곳에는 길상(吉相)이 찾아온다고 해서 그 곳을 세거지(世居地)로 삼았다. 후손 광(壙)은 문장이 널리 알려져서 먼 곳에서부터 배움을 청하였고, 그 후 영(穎)과 호(灝, 松泉)는 시문(詩文)에 능하고, 섭(燮)은 학문이 높아 오죽재 조의양(梧竹齋趙宜陽) 등이 존경하였다. 위(褘)와 보(補)는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고 회(檜)는 문과(文科)에 급제했다.
권진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여지도서 / 慶尙道 / 慶州 / 題詠 / 丈首?東岱 李奎報三百?諸云云蛟川倣左伊 鷄林眞骨固無多 高麗 金君綏詩武烈王孫文烈家云云古鄕尙在天南角今幸來遊作使華 四百年前將相家 高麗 張溢詩云云鏡開堂?幾雄誇只今繁麗憑誰問野杏山桃泣露華 崔薛出賢材 閔思平詩鷄林古與國云云禮樂學中夏郁郁乎文哉自其王納玉分司幕府開民皆賢者後?冠儼容儀 孤雲事業屬誰家 李達衷詩云云屈指英材也不/ <하권0359-1>/ 多益老?翁俱巳逝山川應復蘊精華 衣冠一千年 鄭樞詩宮省五十世云云英雄水朝海文物草連天 連城塔廟稠 李元紘詩鷄林最雄藩形勝冠南州撲地閭閻盛云云 千年故國多遺跡 金九容?權府尹詩鷄林樹色望中靑一點文星降翼精旌號影斜春日暖謳歌?隱?雲生云云十載曾遊慘別情遙想倚風樓上月閒吹玉笛有餘淸 開邦五鳳年 權近應 制詩伊昔赫居世云云相傳千歲久粗保一隅偏却獻鷄林土未朝鶴嶺天綿綿三姓祀永絶正堪憐 處處遺墟塔廟多 金?詩離離禾黍盡農家云云古國千秋朝市變山花依舊點年華 東都城郭變村家 朴元亨詩云云玉笛閑吹春思多五?壘壘荒草合一千年事總朝華 幾?諸陵金?出 成侃詩閭閻半是梵王家一片科陽古意多云云野花啼烏自年華 留與?人管物華 前人詩當日城中問幾家池臺處處夕陽多祗今草木渾依舊云云 五陵秋草夕陽/ <하권0359-2>/ 多 尹子雲詩羅代遺墟百姓家云云微茫往事問無處?下寒花?露華 寂寞千年王謝事 鄭孝常詩前項何處是吾家獨立蒼茫百感多云云閑吹玉笛尙豪華 遼鶴歸來丘?多 廬昐詩舊時春燕入誰家云云只有今人能解事閑吹玉笛弄韶萃 臺元瞻星夕照紅 崔淑精詩當年黃葉起西風玉笛吹殘王氣終五十代傳城郭在一千年過市朝空亭?鮑石秋蕪綠云云陳迹宛然人去盡倚?無語送飛鴻 一代遺民賢者後 權軫詩云云千秋古堞帝王家 錢塘十萬氣蒸霞 金淡詩春在桑麻揆地家云云六年坐嘯能無愧巾上靑夫只隔紗 瞻星臺上星初落 襄桓詩云云半月城頭月已斜 城是人非草色閑 李天年詩雲行烏歿灘聲古云云 隔溪脩竹塢 朴文佑 慈仁縣詩葉脫山容?軒明日脚斜云云犬吠有人家 十二詠鷄林靈異 徐居正詩金鷄??樹蒼蒼九百年未葉盡黃朴租開邦傳鵲祖金王納土似...(www.history.go.kr 2009)
권진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여지도서 / 慶尙道 / 陝川 / 名宦 / 新羅 宗貞 太宗王八年移押督州於大耶以阿飡 宗貞爲郡督 高麗 任元厚 仁宗朝出守 田元均 知郡淸廉不受苞?其撫細民未嘗不俯循哀惻及繩猾吏鋤/ <하권0385-4>/ 理甚威發奸摘伏如神一州敬憚決獄尤詳審雖受捧楚者皆曰田君決之 李兆年 忠烈王朝自禮賓內給事出爲知州 本朝權軫 嘗知此郡有美政民歌之曰權軫之前無權軫權軫之後亦無權軫 趙? 淸節無比嘗在郡子壻奴僕往來者皆?私糧又郡産銀口魚夏月雖至腐敗不許妻子嘗 曹尙治 牟恂 俱知郡 權得經 鄭而虞 俱爲郡守 兪好仁 爲司憲掌令以親老辭出守于郡而卒 新增趙穆 柳袗 俱有治績 李秉泰 以承旨知郡淸白有惠政吏民至今追思(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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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보면 출신 이창대, <미러클 남산> 펴내...축하합니다.
이창대(이창대 代表, 小說集 <미러클 南山> 펴내) [記事] : 지보면 태생의 이창대(예천중 8회) 전시문화시스템 대표가 최근 소설집 <미러클 남산>(수서원/ 값 2만원)을 펴냈다. 이씨는 이 책 서문에서 “권력의 중심은 동심원을 그려서 한 겹 한 겹 파도를 만들어 나갔다. 일반인이 그 파도의 중심 부근으로 넘어 가기란 하늘의 별따기란 걸 늦게야 알았다”며 “중·장년층은 이를 직시하고 바른 이성으로 사회를 보고 사회를 흐트러지지 않는 맑은 호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발간하게 됐다”고 밝혔다. 제1부 낯선 곳, 제2부 유혹, 제3부 장혜자의 대권 도전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3백여 쪽에 이르는 장편이다. 이 대표는 육군기술연구소, 육영재단 어린이회관에서 근무하였고, KIST 위촉 연구원, (주)사이언스 대표, 전시과학연구소장, (주)싸이홈넷 대표이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월간 신춘문예에서 수필가로 등단하였다. 저서로는 <대한민국은 지금>, <돈 못 벌면 사람도 아니다>, <함정 속에서 생존하는 지혜> 등이 있다.(함재봉 記者 醴泉新聞 2013.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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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