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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3288:권진(3)(祝윤옥희,은풍준시,알로에 음료)
작성자장병창 @ 2013.05.21 06:06:57

  예천의 자랑(3288) : 권진(입향조)(3)(附 예천읍 출신 윤옥희, 19일 양궁세계대회 우승...축하합니다/은풍준시, 15일 지리적표시단체표장 등록...축하합니다/예천 알로에음료, 중국 입맛 사로잡다...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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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진 [記事] : 세종실록 18권/ 세종 4년(1422 임인 / 명 영락(永樂) 20년) 11월 3일(병진) 1번째 기사/ 북경으로 가는 하정사에게 의관, 약물 등을 주어 보내다/ 하정사(賀正使) 중군 도총제(中軍都摠制) 권진(權軫)과 부사(副使) 좌군 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 이교(李皎)가 북경(北京)에 가는데, 의관(衣冠)과 갓[笠]․신[靴]․약물(藥物)을 주어 보냈다./ 【태백산사고본】 6책 18권 11장 A면/ 【영인본】 2책 510면/ 【분류】 *왕실-사급(賜給) / *인사-임면(任免) /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9)

 

  권진 [記事] : 세종실록 19권/ 세종 5년(1423 계묘 / 명 영락(永樂) 21년) 1월 25일(정미) 2번째 기사/ 송거신․정진․조비형․권진․박자청․변이원․민생․정효문 등을 제수하다/ 송거신(宋居信)으로 판좌군부사(判左軍府事)를 삼고, 정진(鄭津)으로 공조 판서를 삼고, 조비형(曺備衡)으로 중군 도총제(中軍都摠制)를 삼고, 권진(權軫)으로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를 삼고, 박자청(朴子靑)으로 좌군 도총제(左軍都摠制)를 삼고, 변이(邊?)와 원민생(元閔生)으로 중군 총제(中軍摠制)를 삼고, 정효문(鄭孝文)으로 우군 총제(右軍摠制)를 삼고, 윤하(尹夏)와 이숙묘(李叔畝)로 중군 동지총제(中軍同知摠制)를 삼고, 이중지(李中至)로 좌군 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를 삼고, 한혜(韓惠)로 좌대언(左代言)을 삼고, 곽존중(郭存中)으로 우대언(右代言)을 삼고, 조종생(趙從生)으로 좌부대언(左副代言)을 삼고, 김맹성(金孟誠)으로 우부대언(右副代言)을 삼고, 심도원(沈道源)으로 형조 참의를 삼고, 이사후(李師厚)로 지사간원사(知司諫院事)를 삼고, 정분(鄭?)으로 좌헌납(左獻納)을 삼고, 윤임(尹臨)으로 판공주목사(判公州牧事)를 삼고, 최윤덕(崔閏德)으로 평안도 병마도절제사를 삼고, 안순(安純)으로 함길도 도관찰사(都觀察使)를 삼고, 박초(朴礎)로 경상우도 수군 처치사(水軍處置使)를 삼고, 이각(李恪)으로 경상우도 병마도절제사를 삼고, 우박(禹博)으로 충청도 수군 처치사를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6책 19권 9장 A면/ 【영인본】 2책 523면/ 【분류】 *왕실-경연(經筵) /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권진 [記事] : 세종실록 19권/ 세종 5년(1423 계묘 / 명 영락(永樂) 21년) 2월 11일(임술) 4번째 기사/ 권진이 북경에서 돌아오다/ 권진(權軫)이 북경에서 돌아왔다./ 【태백산사고본】 6책 19권 14장 B면/ 【영인본】 2책 525면/ 【분류】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9)

 

  권진 [記事] : 세종실록 20권/ 세종 5년(1423 계묘 / 명 영락(永樂) 21년) 4월 21일(신미) 2번째 기사/ 권진이 북교에서 기우제를 행하다/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 권진(權軫)을 보내어 북교(北郊)에서 기우제(祈雨祭)를 행하였다./ 【태백산사고본】 7책 20권 9장 A면/ 【영인본】 2책 537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www.history.go.kr 2009)

 

  권진 [記事] : 세종실록 21권/ 세종 5년(1423 계묘 / 명 영락(永樂) 21년) 7월 30일(무신) 1번째 기사/ 평안도 도절제사가 중국 사신의 용봉참 유숙사실을 보고하다/ 평안도 도절제사 최윤덕(崔閏德)이 급히 보고하기를, ꡒ〈중국〉사신 소감(少監) 해수(海壽)와 예부 낭중(禮部郞中) 진경(陳敬)이 두목 20명을 거느리고 궤[子] 40여 개를 가지고 나와서 이 달 7월 27일 용봉참(龍鳳站)에 이르러 유숙합니다.ꡓ라고 하니, 즉시 판한성 권진(權軫)을 원접사(遠接使)로 삼아 선온(宣?)을 가지고 가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7책 21권 7장 A면/ 【영인본】 2책 551면/ 【분류】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9)

 

  권진 [記事] : 세종실록 21권/ 세종 5년(1423 계묘 / 명 영락(永樂) 21년) 8월 7일(을묘) 4번째 기사/ 권진․이숙묘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 권진(權軫)과 총제(摠制) 이숙묘(李叔畝)로 관반사(館伴使)를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7책 21권 9장 B면/ 【영인본】 2책 552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9)

 

  권진 [記事] : 세종실록 21권/ 세종 5년(1423 계묘 / 명 영락(永樂) 21년) 9월 29일(정미) 3번째 기사/ 원민생․성억․정진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마천목(馬天牧)으로 판우군도총제부사(判右軍都摠制府事)를, 원민생(元閔生)으로 우군 총제(右軍摠制)를, 성억(成抑)으로 좌군 총제(左軍摠制)를, 변이(邊?)로 중군 총제(中軍摠制)를, 오승(吳陞)으로 공조 판서를, 권진(權軫)으로 형조 판서를, 허주(許周)로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를, 정진(鄭津)으로 개성 유후(開城留後)를, 윤회(尹淮)로 예문관 제학을, 곽존중(郭存中)으로 승정원 지신사(承政院知申事)를, 정흠지(鄭欽之)로 동부 대언(同副代言)을, 차유(車有)로 사간원 우헌납(右獻納)을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7책 21권 20장 A면/ 【영인본】 2책 557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권진 [記事] : 세종실록 24권/ 세종 6년(1424 갑진 / 명 영락(永樂) 22년) 6월 24일(정묘) 2번째 기사/ 유관․권진에게 벽제에 나가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게 하다/ 우의정 유관(柳觀)․형조 판서 권진(權軫)에게 명하여 벽제(碧蹄)에 나가 사신을 맞이하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8책 24권 34장 A면/ 【영인본】 2책 607면/ 【분류】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9)

 

  권진 [記事] : 세종실록 25권/ 세종 6년(1424 갑진 / 명 영락(永樂) 22년) 7월 20일(계사) 3번째 기사/ 유후사 선위사 권진이 출발하다/ 유후사 선위사(留後司宣慰使) 권진(權軫)이 출발하였다./ 【태백산사고본】 8책 25권 11장 B면/ 【영인본】 2책 615면/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9)

 

  권진 [記事] : 세종실록 25권/ 세종 6년(1424 갑진 / 명 영락(永樂) 22년) 9월 23일(을미) 3번째 기사/ 원접사 형조 판서 권진과 공조 판서 이맹균이 떠나다/ 원접사(遠接使) 형조 판서 권진(權軫)과 공조 판서 이맹균(李孟畇)이 떠났다./ 【태백산사고본】 8책 25권 29장 A면/ 【영인본】 2책 624면/ 【분류】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9)

 

  권진 [記事] : 세종실록 26권/ 세종 6년(1424 갑진 / 명 영락(永樂) 22년) 10월 3일(갑진) 2번째 기사/ 서울에 들어올 날을 사신이 정하였다는 것을 권진․이맹균이 아뢰다/ 원접사(遠接使) 권진(權軫)․이맹균(李孟畇)이 역마(驛馬)로 달려와 아뢰기를,  ꡒ9월 29일에 사신이 탕참(湯站) 에 이르러 손수 쪽지를 써서 통사(通事) 에게 주어 먼저 보냈는데, 이르기를, ꡐ칙(勅)을 맞아들일 때에는 소복(素服)과 오사모(烏紗帽)에 흑각대(黑角帶)를 띠고, 조(詔)를 맞아들일 때에는 청의(靑衣)․오사모에 흑각대를 띠고, 조복(朝服)이 있으면 조복을 입고, 조(詔)․칙(勅)을 맞을 때에 모두 의장(儀仗)과 금고(金鼓)를 사용하되, 금고는 울리지 않는다.ꡑ 하였습니다. 이날 사신이 압록강을 건너왔는데, 모두 백립(白笠)을 쓰고, 백의(白衣)에 삼베띠[麻布帶]를 띠었으며, 또 빨리 〈서울에〉 가려고 하므로, 신 등이 이르기를, ꡐ전하(殿下)가 길한 날을 받아 오는 10월 21일에 칙(勅)을 맞이하고, 26일에 조(詔)를 맞이하고자 한다.ꡑ 하니, 사신이 대답하기를, ꡐ옳지 아니하다. 이제 우리 황제가 전하를 친아들처럼 여기고 우리들로 하여금 〈여기까지〉 와서 유시(諭示)하게 하는 것이며, 또 이제 만국(萬國)이 진위조하(陳慰朝賀)하는데, 왕국(王國)에서 맨 뒤에 이르게 되면 의리상(義理上) 어찌 되겠는가.ꡑ 하고 바로 황력(黃曆)을 내어놓고 서울에 들어갈 길일(吉日)을 선택하면서 이르기를, ꡐ칙사(勅使)는 10월 11일, 조사(詔使)는 15일로 하겠다.ꡑ 하고, 또 ꡐ연탁(宴卓)에 홍건(紅巾)을 사용하지 말라.ꡑ 하였습니다.ꡓ라고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9책 26권 1장 A면/ 【영인본】 2책 625면/ 【분류】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9)

 

  권진 [記事] : 세종실록 26권/ 세종 6년(1424 갑진 / 명 영락(永樂) 22년) 10월 5일(병오) 3번째 기사/ 태조 고황제의 유조로 백의와 각대로 사신을 수행함을 권진․이맹균이 아뢰다/ 원접사(遠接使) 권진(權軫)․이맹균(李孟畇) 등이 서장으로 아뢰기를, ꡒ사신이 모두 마포대(麻布帶)를 띠고, 또 영조례(迎詔禮) 때에도 오각대(烏角帶)를 사용한다고 써서 보였습니다. 신 등은 의심하건대,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의 유조(遺詔)로 3일 만에 복을 벗는다는 제도의 최질(衰?)을 가리킨 것인 듯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 〈3일 만에〉 길복을 입는다는 말은 감히 입밖에 낼 수가 없어서, 백의(白衣)와 각대(角帶)로 사신을 수행하고 있나이다.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9책 26권 2장 A면/ 【영인본】 2책 626면/ 【분류】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9)

 

  권진 [記事] : 세종실록 26권/ 세종 6년(1424 갑진 / 명 영락(永樂) 22년) 11월 3일(갑술) 1번째 기사/ 권진을 형조 판서로, 조상치를 좌정언으로 임명하다/ 권진(權軫)을 형조 판서, 조상치(曺尙治)를 좌정언(左正言)에 임명하였다./ 【태백산사고본】 9책 26권 21장 B면/ 【영인본】 2책 635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권진 [記事] : 세종실록 28권/ 세종 7년(1425 을사 / 명 홍희(洪熙) 1년) 6월 23일(신유) 5번째 기사/ 형조 판서 권진이 사직하기를 청했으나 허락하지 않다/ 형조 판서 권진(權軫)이 글을 올려 사직(辭職)하여 말하기를, ꡒ음양이 때를 그르치는 것은 형벌이 중도를 얻지 못한 소치인가 합니다. 신은 나이 69세이온데, 지나간 계묘년에 비로소 형조에 벼슬하여, 늙고 둔함이 날로 더하여 앞일을 잊어버리고 뒷일을 실수하므로, 형률을 판결하는 직무에 합당하지 아니하오니 신의 관직을 파면하옵시기를 비나이다.ꡓ하니, 임금이 보고 전교하기를, ꡒ경이 만일 관직을 사면한다면 내가 다시 어떤 사람에게 그 직무를 맡겨야 하겠는가. 이제 사표를 도로 내어 주노라.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9책 28권 27장 B면/ 【영인본】 2책 675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권진 [記事] : 세종실록 29권/ 세종 7년(1425 을사 / 명 홍희(洪熙) 1년) 윤7월 3일(경자) 2번째 기사/ 원접사 형조 판서 권진․도총제 이발에게 명나라 사신을 마중하게 하다/ 평안도 감사가 급보(急報)하기를,  ꡒ사신 4인이 7월 28일에 요동 을 출발하여 나온다고 합니다.ꡓ하니, 원접사(遠接使)로 형조 판서 권진(權軫)과 도총제 이발(李潑)을 시켜 선온(宣?)을 가지고 마중가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0책 29권 11장 A면/ 【영인본】 2책 684면/ 【분류】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9)

 

  권진 [記事] : 세종실록 31권/ 세종 8년(1426 병오 / 명 선덕(宣德) 1년) 2월 10일(갑술) 2번째 기사/ 권진․황희․허조․신상․신장․최사강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권진으로 찬성을 삼고, 황희를 이조 판서, 허조를 참찬, 신상을 예조 판서, 신장(申檣)을 좌군 동지총제, 최사강(崔士康)을 호조 참판에 임명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0책 31권 14장 A면/ 【영인본】 3책 7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권진 [記事] : 세종실록 31권/ 세종 8년(1426 병오 / 명 선덕(宣德) 1년) 2월 19일(계미) 3번째 기사/ 평양 선위사 찬성 권진이 길을 떠나다/ 평양 선위사(平讓宣慰使) 찬성 권진(權軫)이 길을 떠났다./ 【태백산사고본】 10책 31권 17장 B면/ 【영인본】 3책 9면/ 【분류】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9)

 

  권진 [記事] : 세종실록 32권/ 세종 8년(1426 병오 / 명 선덕(宣德) 1년) 4월 4일(정묘) 1번째 기사/ 백언이 수원부로 어버이를 뵈러 가니, 권진 등에게 전송하게 하다/ 백언(白彦)이 수원부(水原府)로 어버이를 뵈오러 가니, 윤봉(尹鳳)이 한강(漢江)에서 전송하였다. 임금이 접반사 찬성 권진(權軫)․참찬 최윤덕(崔潤德)․좌대언 조종생(趙從生) 등에게 명하여 가서 전송하게 하니, 백언이 말하기를, ꡒ대궐에 들어가서 하직하는 예(禮)를 행했어야 옳을 것을, 다만 전하께서 수고하실까 염려스럽고, 또 갔다가 돌아오는 것이 멀지 않은 까닭으로 궐례(闕禮)하고 가니, 이 뜻을 전하께 전달해 주셨으면 하오.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1책 32권 1장 A면/ 【영인본】 3책 17면/ 【분류】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9)

 

  권진 [記事] : 세종실록 33권/ 세종 8년(1426 병오 / 명 선덕(宣德) 1년) 9월 29일(기미) 1번째 기사/ 정사를 보다. 해청을 진헌하는 일에 대해 찬성 권진과 의논하다/ 정사를 보았다. 찬성 권진(權軫)이 계하기를, ꡒ해청(海靑)을 잡는다는 것은 반드시 기대하기 어렵고, 비록 잡는다 하더라도 또한 죽기가 쉬운데, 이제 만약 이를 바친다면 계속하여 바치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뒷날에 가서 요구하는 폐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오니, 이제 마땅히 우리나라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고 말을 만들어 황제께 주달하시어 뒷날의 폐해를 막으소서. 일찍이 듣자오니, 중국에서 해청을 잡으려고 제로(諸路)를 분주히 헤메고 다녔다 하오니, 그 폐해가 장차 우리나라에 이를 것이 두렵삽고, 또 매를 구하는 것은 오직 백성들만이 그 폐해를 받을 뿐 아니라, 이는 바로 황제의 부덕(不德)을 영합해 조장하는 것이 될 것이니, 어찌 바르고 착한 것을 진달하고, 간사하고 악한 일을 막는 의의라 하겠습니까.ꡓ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ꡒ어허, 이 무슨 말인가. 사대(事大)함에 있어서는 마땅히 성심껏 하여야 할 것이며, 황제께서 우리나라에서 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으니, 속일 수는 없다. 민간의 폐해를 나도 역시 알고 있다. 그러나 대의(大義)로 말할 것 같으면, 민간의 폐해가 있는 것은 그 일이 경한 것이나, 사대(事大)를 성실히 하지 않는 것은 그 일이 중한 것이다. 하기 어려운 일을 권면하고, 착한 말을 진달하는 것은 나의 직책이 아닌 것이니, 외국의 번왕(藩王)은 본래 황제를 간(諫)하는 의리는 없는 것이다.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1책 33권 19장 B면/ 【영인본】 3책 44면/ 【분류】 *외교-명(明) / *과학-생물(生物)(www.history.go.kr 2009)

 

  권진 [記事] : 세종실록 34권/ 세종 8년(1426 병오 / 명 선덕(宣德) 1년) 10월 8일(무진) 2번째 기사/ 찬성사 권진이 와서 문안드리고 술과 과일을 올리다/ 찬성사(贊成事) 권진(權軫)이 와서 문안을 드리고 인하여 술과 과일을 올렸다./ 【태백산사고본】 11책 34권 2장 B면/ 【영인본】 3책 45면/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의식(儀式)(www.history.go.kr 2009)

 

  권진 [記事] : 세종실록 34권/ 세종 8년(1426 병오 / 명 선덕(宣德) 1년) 12월 7일(병인) 3번째 기사/ 권진․오승․이춘생․박안신․김섭․황현․송인산․황보규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권진(權軫)으로 의정부 찬성(議政府贊成) 겸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를, 오승(吳陞)으로 예문관 대제학을, 이춘생(李春生)으로 중군 총제(中軍摠制)를, 박안신(朴安臣)으로 좌사간(左司諫)을, 김섭(金涉)으로 우사간(右司諫)을, 황현(黃鉉)으로 대사성(大司成)을, 송인산(宋仁山)으로 지사간(知司諫)을, 황보규(皇甫規)로 우헌납(右獻納)을, 최호생(崔虎生)으로 사헌지평(司憲持平)을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11책 34권 15장 B면/ 【영인본】 3책 52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권진 [記事] : 세종실록 36권/ 세종 9년(1427 정미 / 명 선덕(宣德) 2년) 5월 6일(계사) 3번째 기사/ 백언이 성묘하러 수원으로 가니, 권진 등을 보내 한강루에서 위로하다/ 백언(白彦)이 부친의 뫼에 성묘하러 수원으로 가매, 창성(昌盛)이 한강 까지 배웅하고, 찬성 권진(權軫)․호조 판서 안순(安純)․좌대언 김맹성(金孟誠)을 명하여 한강루(漢江樓)에서 위로하여 보내었다./ 【태백산사고본】 12책 36권 12장 A면/ 【영인본】 3책 72면/ 【분류】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9)

 

  권진 [記事] : 세종실록 36권/ 세종 9년(1427 정미 / 명 선덕(宣德) 2년) 5월 13일(경자) 1번째 기사/ 백언이 수원에서 오니 권진 등을 보내 한강루에서 맞이하여 위로 잔치를 하다/ 백언(白彦)이 수원(水原)에서 오는데, 찬성 권진(權軫)․공조 참판 이천(李?)․좌대언 김맹성(金孟誠)을 명하여 한강루(漢江樓)에서 맞이하여 잔치로 위로하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2책 36권 15장 B면/ 【영인본】 3책 73면/ 【분류】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9)

 

  권진 [記事] : 세종실록 36권/ 세종 9년(1427 정미 / 명 선덕(宣德) 2년) 5월 27일(갑인) 1번째 기사/ 창성과 백언이 금강산에서 돌아오매, 권진 등을 보내 잔치를 베풀다/ 창성(昌盛)과 백언(白彦)이 금강산에서 돌아오매, 윤봉(尹鳳)이 흥인문(興仁門) 밖에서 마중하고, 임금도 찬성 권진(權軫)․병조 판서 황상(黃象)․좌대언(左代言) 김맹성(金孟誠) 등을 보내어 잔치를 베풀어 위로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2책 36권 18장 B면/ 【영인본】 3책 75면/ 【분류】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9)

 

  권진 [記事] : 세종실록 37권/ 세종 9년(1427 정미 / 명 선덕(宣德) 2년) 9월 8일(계사) 2번째 기사/ 권진․허조․성엄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권진(權軫)을 찬성(贊成), 허조(許稠)를 숭정 대부(崇政大夫) 이조 판서, 성엄(成?)을 판한성부사, 곽존중(郭存中)을 이조참판, 최사강(崔士康)을 병조참판, 이징석(李澄石)과 우박(禹博)을 좌․우군 총제, 김오문(金五文)과 김효손(金孝孫)을 우군 동지총제, 심도원(沈道源)을 경창부윤(慶昌府尹), 박안신(朴安臣)을 예조 참의, 이승직(李繩直)을 공조 참의, 송인산(宋仁山)을 겸 지형조사(兼知刑曹事)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12책 37권 21장 B면/ 【영인본】 3책 91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권진 [記事] : 세종실록 39권/ 세종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1월 15일(무술) 2번째 기사/ 권진 등이 사통의 금령을 어긴 양녕 대군을 국문하자고 건의하다/ 의정부 찬성 권진(權軫)과 형조 판서 노한(盧?)이 계하기를, ꡒ양녕 대군 이제(李?)가 사통(私通)의 금령을 따르지 아니하고 감히 잡인(雜人)들과 교통(交通)하고, 또 세자(世子) 때부터 윤이(閏伊) 와 간통하였다고 속여 말하여 성상의 총명(聰明)을 속였습니다. 신 등이 이제 듣건대, 상서(上書)에 원망하고 패만(悖慢)스러운 말이 있다고 하니,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진실로 이와 같이 하여서는 아니될 일입니다. 원컨대 유사(攸司)에 내려 이를 다스리소서.ꡓ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ꡒ이보다 앞서 양녕의 실수가 많았으나 일찍이 유사에 내려 추핵(推?)하지는 않았는데, 이제 말한 바는 옳지 못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또 그 상서(上書)에는 원망하는 언사가 없었으니 다시 말하지 말라.ꡓ하였다. 권진 등이 또 계하기를, ꡒ이보다 앞서 양녕 의 실수가 진실로 많았지마는, 그러나 그 불의(不義)의 행실은 그 자신(自身)에 그쳤을 뿐이오니 오늘날 성상의 총명(聰明)을 속이고 패만(悖慢)하고 원망한 뜻과는 달랐습니다. 원컨대 유사에 내려 국문(鞫問)하소서.ꡓ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ꡒ양녕이 본디 문사(文辭)에는 부족(不足)한데다가 다만 윤이(閏伊)를 사랑하여, 그가 갇혔단 말을 듣고는 드디어 사형(死刑)에 처하지나 아니할까 의심하여, 그 뜻을 다 써서 구원하고자 하여 그런 것뿐이지 처음부터 원망하는 뜻은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형제의 사이에는 마땅히 작은 일로써 급작스럽게 논단(論斷)할 수는 없으니 다시 이를 말하지 말라. 반드시 말을 하고자 한다면 훗날에 친히 나를 보고 말하라.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2책 39권 3장 B면/ 【영인본】 3책 108면/ 【분류】 *왕실-종친(宗親) / *사법-재판(裁判)(www.history.go.kr 2009)

 

  권진 [記事] : 세종실록 41권/ 세종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7월 5일(을묘) 2번째 기사/ 권진․마천목․조선․정효전․조종생․최사강․조치․윤하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권진(權軫)으로 찬성사(贊成事)를, 마천목(馬天牧)으로 장흥군(長興君)을, 조선(趙璿)으로 한원군(漢原君)을, 정효전(鄭孝全)으로 일성군(日城君)을, 조종생(趙從生)으로 예조 참판(禮曹參判)을, 최사강(崔士康)으로 호조 참판(戶曹參判)을, 조치(曹致)․윤하(尹夏)․조모(趙慕)로 중군 총제(中軍摠制)를, 조뇌(趙賚)․이명덕(李明德)․이각(李恪)으로 좌군 총제를, 이중지(李中至)로 우군 총제(右軍摠制)를, 김익생(金益生)․신장(申檣)으로 중군 동지총제(中軍同知摠制)를, 심도원(沈道源)으로 좌군 동지총제를, 유사눌(柳思訥)로 한성부 윤(漢城府尹)을, 조계생(趙啓生)으로 대사헌(大司憲)을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13책 41권 2장 B면/ 【영인본】 3책 137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www.history.go.kr 2009)

 

  권진 [記事] : 세종실록 41권/ 세종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8월 3일(임오) 2번째 기사/ 이상이 평강에서 돌아오니 찬성 권진 등을 보내어 보제원에서 맞이하다/ 이상(李相)이 평강(平康)으로부터 돌아오니, 찬성(贊成) 권진(權軫)․판서(判書) 김자지(金自知)․좌부대언(左副代言) 정연(鄭淵)을 보내서 보제원(普濟院)에서 맞이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3책 41권 6장 B면/ 【영인본】 3책 139면/ 【분류】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9)

 

  권진 [記事] : 세종실록 41권/ 세종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8월 4일(계미) 1번째 기사/ 창성․이상이 노도 등지에 나가 노니 권진 등이 잔치를 베풀어 대접하려 하다/ 창성(昌盛)․이상(李相) 두 사신이 노도(露渡) 등지에 나가서 노니, 찬성(贊成) 권진(權軫)․판서(判書) 신상(申商)․관반(館伴) 성달생(成達生) ․우부대언(右副代言) 이사후(李師厚)가 잔치를 베풀고 대접하려 했으나, 두 사신이 잔치에 나아가지 아니하고 돌아왔다./ 【태백산사고본】 13책 41권 6장 B면/ 【영인본】 3책 139면/ 【분류】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9)

 

  권진 [記事] : 세종실록 41권/ 세종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9월 17일(병인) 5번째 기사/ 찬성 권진 등에게 명하여 창성을 영접하게 하다/ 찬성(贊成) 권진(權軫)․판서 안순(安純)․우대언(右代言) 허성(許誠) 등을 명하여 창성(昌盛)을 홍제원정(洪濟院亭)에서 영접하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3책 41권 18장 A면/ 【영인본】 3책 145면/ 【분류】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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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읍 출신 윤옥희, 19일 양궁세계대회 우승...축하합니다.

 

  윤옥희(醴泉郡廳 洋弓팀 尹玉姬 選手 월드컵 洋弓大會(中國 상하이) 優勝 快擧!!!) [記事] : 예천군청 양궁팀 윤옥희(28) 선수가 2013년 5월 19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양궁연맹(WA) 1차 월드컵 여자 개인전 결승에서 인도의 디피카 쿠마리 선수를 6-4(27-29 28-27 28-29 29-28 27-26)로 꺾고 우승을 차지, 대한민국은 물론, 양궁의 고장 예천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 쾌거를 올렸다. 윤옥희 선수는 지난 2006년 상하이, 2008년 크로아티아 포레치, 2009년 상하이 월드컵, 2010년 월드컵 파이널에 이어 다섯 번째 월드컵 개인 타이틀을 석권했으며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2관왕에 오른 뒤 결혼으로 2011년, 2012년에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다. 윤옥희는 결혼과 함께 슬럼프에 빠지는 듯 했으나 꾸준한 노력으로 올해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첫 출전한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여 기량이 녹슬지 않음을 입증했다. 윤옥희 선수는 세계랭킹 3위인 쿠마리와 풀세트 접전을 벌였으나 마지막 한 발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경기를 펼쳐 우승을 차지했다. 윤옥희와 쿠마리는 번갈아 한 세트씩 승리하면서 4세트 종료까지 세트 스코어 4-4로 맞서며 손에 땀을 쥐는 명승부를 펼치다 인도의 쿠마리는 마지막 5세트에서 9점, 9점 8점으로 26점을 기록했으나 윤옥희는 첫 두 발을 9점, 8점에 넣어 마지막 8점을 쏘면 패하는 상황에서 국제대회 경험이 풍부한 윤옥희 선수가 10점을 쏘아 우승을 확정지었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3-05-20 오전 9:4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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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풍준시, 15일 지리적표시단체표장 등록...축하합니다.

 

  은풍준시(殷豊蹲柹 地理的表示團體標章 登錄 : 名稱에 對한 獨占圈 確保, 獨自的인 브랜드 使用) [記事] : 예로부터 임금님께 진상해 오던 ‘은풍준시’가 2013년 5월 15일 특허청으로부터 지리적표시단체표장 등록돼 그 명성을 드높여 가고 있다. 군은 은풍준시의 지리적표시단체표장 등록으로 명칭에 대한 독점권을 확보, 타 지역에서 준시에 '은풍'이라는 지리적 명칭을 사용하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특히, 지리적표시단체표장을 등록하기 위해 군은 안동상공회의소 지식재산센터와 연계해 지난 2012년 9월 상표등록 출원을 신청해 8개월여 만에 등록했으며 이로써 ‘은풍준시’는 독자적인 브랜드 사용과 함께 유사상품, 허위표시제 등 상품 명칭 침해에 대해서도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2005년 7월부터 시행하는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은 지역의 지리적 특성에 의해 생산, 가공한 특산물에 지역명을 상표 등록해 그 명칭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제도로 예천군은 지금까지 초간정, 금당실, 선몽대 등 14건의 상표권을 출원ㆍ등록했고, 내년에는 용궁 토끼간빵을 지역 전통산업 지식재산 강화 사업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이현준 예천군수는 “이번 지리적표시단체표장을 통해 우리 군의 은풍준시 곶감이 타 지역에서 생산되는 곶감보다 우수한 상품임을 대내외에 널리 증명하게 될 것이며 나아가 예천 농산물의 글로벌 경쟁력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醴泉뉴스 2013년 05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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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 알로에음료, 중국 입맛 사로잡다...축하합니다.

 

  예천 알로에음료(慶北 農食品, 中國 입맛 사로잡다 : 상하이 國際食品博覽會서 85萬달러 現場契約 대추막걸리,...) [記事] : 경북의 농수특산물이 중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2013년 5월 19일 경북도에 따르면 지난 7~9일 열린 ‘2013 상하이 국제식품박람회’에서 85만7천 달러의 계약이 이뤄졌다. 도는 이 성과를 이어가기 위해 오는 10월 중화권 유력바이어를 초청, 문화·관광체험 팸투어를 겸한 수출상담회를 마련하는 등 수출확대를 위한 다양한 시책을 추진할 방침이다. ‘2013 상하이 국제식품박람회’에는 도내 유망수출업체 10개사가 참가해 마케팅을 펼쳤다. 도는 이번 박람회를 통해 꿀유자차(초록원·경산), 홍삼제품(풍기인삼공사·영주), 게살가공품(영덕농수산·영덕), 알로에음료(튜립인터네셔널·예천), 김치류(모아·영천) 등 다양한 품목을 선보였다. 특히 (주)진현식품(영천)의 ‘불고기맛 스낵김’은 바이어와 대형유통업체로부터 큰 호응을 얻어 36만 달러의 수출계약을 성사했다. 구암농산(청송)의 대추막걸리는 대추의 붉은 빛깔과 달큰한 맛으로 중국 현지인의 입맛을 사로잡아 43만2천 달러의 계약을 체결했다. 새얼바이오푸드(청도)의 미나리음료는 그간 aT대구경북지사의 수출기술컨설팅과 경북도의 가공라인 현대화 지원 등으로 여러 차례 국제식품박람회에 참여한 결과, 상하이의 빅 바이어와 5년간 300만 달러 납품 계약에 이어 이번 박람회장에서만 3만 달러의 추가 주문을 얻어냈다. 경북도 최영숙 FTA농식품유통과장은 “중국은 세계 2대 경제대국이며 거대 잠재적 식품 소비시장으로 소비자 구매력도 확대되고 있다”며 “중국시장에 적합한 포장 디자인 개발, 유망상품 발굴과 전략적 현지 마케팅 등 선제적 공략으로 동시다발적인 FTA에 대응하고 내수시장 안정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상하이 국제식품박람회는 70여 개국 2천여 개 업체가 참가한 중국 최대 농식품 전문박람회다.(김창원 記者 大邱日報 2013.05.20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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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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