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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3291:권진(6)(祝김창호,유천초,유천초/예천방문996)
작성자장병창 @ 2013.05.24 06:12:42

  예천의 자랑(3291) : 권진(입향조)(6)(附 감천면 출신 김창호, 20일 세계기록으로 에베레스트 14좌 완등...축하합니다/유천초등학교, <나의 창의적 체험활동 기록장-꿈·벗·멋의 행복한 어울림> 발간...축하합니다/유천초등학교, 24일 <뉴스레터> 창간호 발행...축하합니다/예천방문 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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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진 [記事] : 세종실록 59권/ 세종 15년(1433 계축 / 명 선덕(宣德) 8년) 2월 21일(을사) 3번째 기사/ 황희․권진․하경복 등을 불러 평안도에서 쓸 병장 잡물의 수량 등을 논의하다/ 영의정 황희․우의정 권진․도진무 하경복․이순몽․조뇌․판서 정흠지․최사강․참판 정연․황보인․중추원 부사 최해산 등을 불러서 일을 논의하였다. 그 한 가지는, ꡒ지금 병조에서 아뢴 평안도 에 쓸 병장 잡물(兵仗雜物)의 수량이 어떠한가.ꡓ하니, 황희 등은, ꡒ신 등의 생각으로는 적당하다고 여겨집니다.ꡓ하고, 하경복은, ꡒ다른 물건은 아뢴 대로 함이 마땅하나, 갑옷은 1천 5백 25부(部)가 너무 많으므로 3분의 1을 감하는 것이 마땅하옵니다.ꡓ하였다. 그 하나는,  ꡒ마병(馬兵)과 보병(步兵)의 수를 얼마나 써야 마땅할까.ꡓ하니, 조뇌는 마병 1천, 보병 2천을 말하고, 하경복․이순몽․정흠지․최해산․정연․황보인 등의 논의에는 마병 1천, 보병 1천이 좋겠다고 하였다. 권진은, ꡒ마병․보병 합해서 3천으로 함이 가하나, 마병의 수와 보병의 수는 주장(主將)으로 하여금 시기(時機)에 임하여 적당히 처리하여 정하게 하옵소서.ꡓ하였다. 그 한 가지는, ꡒ보병들이 착용할 갑옷과 투구를 군기감(軍器監)에서 간직한 것을 보낼까. 어느 곳의 갑주(甲冑)를 쓸 것인가.ꡓ하니, 모두가 아뢰기를, ꡒ본도(本道)의 각 고을에 간직한 것을 골라서 쓰는 것이 편합니다.ꡓ하였다. 그 하나는, ꡒ군사가 강을 건널 때에 배를 쓸 것인가, 부교(浮橋)를 쓸 것인가.ꡓ하니, 모두가 아뢰기를, ꡒ일은 비록 많으나 건너가기에 편리한 것은 부교만 못합니다.ꡓ하였다. 그 하나는, ꡒ군사는 모두 평안도에서만 조발(調發)할 것인가, 다른 도에서도 아울러 조발할 것이가.ꡓ하니, 정연․황보인․최해산 등의 논의로는, ꡒ황해도에서 5백 명, 평안도에서 2천 5백 명으로 할 것입니다.ꡓ하고, 황희․하경복․이순몽․조뇌 등의 논의로는, ꡒ황해도는 없애고 모두 평안도에서 조발할 것입니다.ꡓ하고, 최사강은, ꡒ황해도에서 6백 명, 평안도에서 2천 4백 명으로 할 것입니다.ꡓ하고, 정흠지는, ꡒ황해도에서 4백 명, 평안도에서 2천 6백 명으로 할 것입니다.ꡓ하였다. 그 하나는, ꡒ행군(行軍)할 때와 출정(出征)할 때에 진법(陣法)을 연습하는 것이 어떨까.ꡓ하니, 모두 아뢰기를, ꡒ진법을 익히면 저 도둑들이 먼저 알고 숨을 것이니, 가만히 행군하여 돌격(突擊)해 들어가는 것이 가합니다.ꡓ하니, 모두 황희 등의 논의에 따르고, 오직 기병과 보병의 수는 권진의 논의에 좇아, 주장(主將)으로 하여금 시기에 임하여 적당히 처리하여 수를 정하게 하였다. 또 논의하기를, ꡒ 중군(中軍) 과 좌․우군(左右軍)의 주장으로는 누가 가하냐.ꡓ하니, 모두가 아뢰기를, ꡒ 최윤덕으로 중군을 삼고, 이순몽을 좌군으로, 최해산은 우군으로 삼는 것이 마땅합니다.ꡓ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ꡒ좋다.ꡓ하였다. 숭선이 아뢰기를, ꡒ순몽이 신에게 말하기를, ꡐ대저 군사의 진퇴를 마음대로 하는 것은 오로지 중군에 있는데, 신(臣)이 좌군을 맡으면 어찌 성공하리오. 신의 생각으로는 윤덕을 중군의 상장(上將)으로 삼고, 신을 중군의 부장(副將)으로 삼고, 해산을 좌군으로 삼고, 강계 절제사 이각(李恪)과 호조 참의 김효성을 우군으로 삼아, 신이 정기(精騎) 5, 6백 명을 거느리고 선봉(先鋒)이 되어 몰래 저들의 땅에 들어가서, 만약 형세가 칠 만하면 치고, 칠 수 없으면 물러나 주둔하여 후군(後軍)을 기다리겠습니다. ꡑ고 하였습니다.ꡓ하니, 임금이 숭선으로 하여금 비밀리 세 의정에게 논의하게 하고, 인하여 명하기를, ꡒ예전에 대마도(對馬島) 를 정벌했을 때에 태종께서 출정하는 장병들에게 활과 화살을 하사하셨으니, 지금 순몽과 해산이 길을 떠남에 어떤 물건을 주어야 마땅할는지, 이것도 아울러 논의하라.ꡓ하였다.

 

  권진은 말하기를, ꡒ순몽과 해산은 모두 광망(狂妄)한 무리이므로, 오로지 군사를 맡기는 것은 옳지 못하오니, 청컨대 전자의 논의에 의하여, 하사할 물건은 활․화살․갑옷 등으로 하옵소서.ꡓ하고, 맹사성은, ꡒ윤덕으로 중군 상장군을 삼고, 순몽을 부장으로, 해산을 좌군으로, 각(恪)을 우군으로 삼음이 가하며, 하사할 물건은 권진의 논의대로 하옵소서.ꡓ하고, 황희는, ꡒ삼군(三軍)을 나누는 것은 맹사성 의 논의에 의하고, 하사하는 물건은 다만 말을 주는 것이 가하옵니다.ꡓ고 하였는데, 숭선 이 돌아와 아뢰니, 임금이 말하기를, ꡒ마땅히 활과 화살과 말을 하사하고, 삼군을 나누어 정하는 것은 황희와 맹사성의 논의에 좇을 것이다.ꡓ하였다. 최해산에게 명하여 먼저 평안도에 가서 압록강에 부교(浮橋)를 만들게 하고, 안숭선으로 사목(事目)을 닦아서 해산으로 하여금 최윤덕에게 말을 전하게 하였는데, 모두 임금이 명한 뜻이다. 1. 도절제사가 아뢴 공초(供招)의 말을 여러 신하들과 논의하고 반복해 생각하니, 파저강의 도적이 거짓 홀라온을 칭탁한 것은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나서, 단정코 의심이 없다. 오직 저 오랑캐의 풍속은 서로 바라보는 땅에 살면서 옛 은혜를 생각지 아니하여 간사함을 품고 사나움을 베풀어 변민(邊民)들을 찔러 죽이고는, 후환을 면하기를 꾀하여 도리어 홀라온을 칭탁해 말하여, 위로는 중국 을 속이고 아래로는 우리 조정을 속였으니, 토벌하지 아니할 수 없는데, 사이에 논의하는 자가 말하기를, ꡐ저 도적들이 홀라온을 칭탁해 말하여 이미 황제에게 아뢰었으니, 파저강을 허물하여 급히 칠 수 없다.ꡑ 하나, 나는 생각하기를, 황제가 차별 없이 한가지로 사랑하는 도량(度量)으로서 어찌 파저강을 믿고 우리나라에게 허물을 돌릴 것이랴. 반드시 이럴 이치가 없으며, 가사 혹 힐문할지라도 마땅히 사유를 갖추어 알리고, 또 태종 황제 가 선유(宣諭)한 성지(聖旨)를 끌어서 아뢰면 마침내 윤허함을 얻을 것이다. 이러므로 토벌하는 일을 정하여 군사의 수는 3천 명을 거느리되, 2천 5백 명은 평안도에서 내고, 5백 명은 황해도에서 내며, 그 기병과 보병의 수는 기회에 임하여 의논해 정한다. 1. 강이 깊어서 군사를 건너기가 어려우니 이것이 진실로 염려된다. 만일 여울 위로 건널 만한 곳이 있다면 가하거니와, 만약 건널 만한 곳이 없으면 도절제사와 더불어 같이 의논하여, 떠들고 들리지 말게 하여 두세 곳에 부교(浮橋)를 만들 것이다. 1. 강계․여연 등 강가에 머물러 사는 무지한 백성들이 일찍이 영리(營利)를 위하여 몰래 저들의 땅에 가는데, 관리들도 알지 못하여 금하지 않으니 허술함이 이와 같다. 지금 큰일을 당하여 소문이 새면, 작은 사고가 아니니, 비밀히 관리로 하여금 엄하게 고찰을 더하여 왕래를 끊게 하라. 1. 사람을 시켜 그 부락의 많고 적은 것과 산천의 험하고 평탄한 것을 엿본 뒤에, 가서 그 토벌할 기한을 정하고, 장병(將兵)과 편비(?裨)를 마련하여 아뢰라. 1. 보졸(步卒)들이 착용할 갑옷과 투구는 도내(道內)의 각 고을에 간직한 것으로 골라서 쓰도록 하라. 1. 부교를 만들 때에 연호(煙戶)의 정부(丁夫)를 쓰지 말고, 부근 각 고을의 선군(船軍)을 사역하라. 1. 대군(大軍)이 이미 강을 건넌 뒤에 적이 만약 불의(不意)에 나와서 혹 몰래 들어와 마음대로 날뛰거나, 혹 부교를 끊어서 군사의 다니는 길을 끊으면 이것도 가히 염려할 것이니, 군사를 나누어 굳게 지켜서 변이 있기를 기다리게 하라.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8책 59권 30장 B면/ 【영인본】 3책 450면/ 【분류】 *군사-군기(軍器) / *군사-군정(軍政) / *군사-지방군(地方軍) / *군사-휼병(恤兵) / *군사-병법(兵法) / *군사-전쟁(戰爭) / *인사-임면(任免) / *외교-야(野) / *외교-명(明) / *교통-수운(水運)(www.history.go.kr 2009)

 

  권진 [記事] : 세종실록 60권/ 세종 15년(1433 계축 / 명 선덕(宣德) 8년) 5월 3일(을묘) 6번째 기사/ 황희․맹사성․권진 등을 불러 정사를 논의하다/ 영의정 황희․좌의정 맹사성․우의정 권진․이조 판서 허조․판중추원사 하경복․호조 판서 안순․예조 판서 신상 등을 불러 정사를 논의하였다. 첫째는, ꡒ지금 군사를 일으켜서 서정(西征)한 까닭으로, 동맹가첩목아도 의심을 품고 두려워하여 편안히 살지 못하고 있으니, 내가 술과 음식을 주어서 그 마음을 안심시키고자 하나, 옛날 경인년에 술과 음식을 주고 이내 토죄(討罪)하였고, 근자에 최윤덕 이 이만주에게 술과 음식을 주고 곧 토벌하였으니, 지금 만약 사람을 시켜 음식을 주면, 저들이 본국의 뜻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의심을 내어 결국은 편히 살지 않을 것이니, 어떻게 처리할까.ꡓ하니, 모두 아뢰기를, ꡒ연전에 이만주가 우리나라 사람의 포로를 돌려보낼 때에 맹가첩목아도 협력하였는데, 지금 이미 이만주를 간사하다 하여 토벌하였으니, 맹가첩목아가 반드시 의심을 가질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보내어 음식을 주고 신의(信義)로서 대접하면, 저들이 처음에는 비록 의심을 둘지라도 나중에는 반드시 우리나라의 신의를 알고 편히 살 것입니다. 그러하니 사람을 보내어 효유하는 것이 낫습니다.ꡓ하고, 권진의 의견도 겸해서 포자(布子)를 보내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둘째는, ꡒ내가 왕위에 오른 뒤로 매양 문치(文治)에 힘을 쓰고 군사의 일에는 마음을 두지 아니하였는데, 내가 어찌 큰일을 좋아하고 공을 이루기를 즐겨서 야인을 정벌하였겠느냐. 적이 먼저 우리에게 해를 끼치므로 할 수 없이 거행하게 된 것인데, 다행히 크게 승리하였으니, 진실로 기쁜 일이나, 역시 두려운 것이다. 지금은 비록 성공하였을지라도 어떻게 이 공을 보전하여 영구히 후환을 없게 할 것인가.ꡓ하니, 모두 아뢰기를, ꡒ자랑하고 기뻐하는 것은 옛 사람이 경계한 바인데, 전하께서는 크게 승리한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두려워하시니, 이는 진실로 아름다운 뜻입니다. 신 등은 생각건대, 성책(城柵)을 굳게 하고 군량을 준비하며, 불의의 사변을 염려하여,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면 후환이 없을 것입니다.ꡓ하였다. 셋째는, ꡒ적이 와서 침노하면 장수된 자가 적을 가볍게 여기고 나가서 싸우다가 패전하는 것은 예나 이제나 항상 걱정하는 것인데, 지금 적을 토벌한 뒤인지라 만일 적이 보복하러 와서 침벌하면 가볍게 대적할 수 없으니, 지금부터 장수로 하여금 비록 적의 변이 있을지라도 조심하여 가볍게 동하지 말고, 성벽을 굳게 지키고 들에 있는 물건을 깨끗이 치우고 기다리다가, 칠 만한 형세가 이른 뒤에 기회를 살펴서 추격하여 잡는 것이 어떤가.ꡓ하니, 모두 아뢰기를, ꡒ상교가 지당하옵니다.ꡓ하니, 곧 평안도 절제사에게 비밀히 전했다. 넷째는, ꡒ내가 듣건대, 출정한 사람이 가졌던 말의 죽은 수가 거의 1천에 이른다고 하니, 하삼도(下三道)의 곡식으로 말을 사서 주거나, 그렇지 않으면 여러 섬에 있는 말을 주고, 혹은 관에서 그 말을 주어 그 값을 싸게 받는 것이 어떨까.ꡓ하니, 모두 아뢰기를, ꡒ종군하여 사상한 말을 어찌 다 보상해 줄 수 있습니까. 예전에도 이런 법이 있었다는 것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관곡(官穀)으로 말을 사서 주는 것은 더욱 옳지 못하고, 만약 역로(驛路)의 말이라면 채워 주는 것이 옳을까 합니다.ꡓ하였다. 황희․맹사성․권진․허조․신상 등은, ꡒ만약 부득이한 일이라면 말이 죽은 군졸에게 연한을 정해서 복호하소서.ꡓ하였으나, 홀로 안순은, ꡒ죽은 말의 수를 자세히 물어 보고, 또 여러 섬의 말의 수도 물어 봐서, 만일 그 수(數)에 차지 못하면 반드시 일시에 다 줄 것이 아니라, 금년과 명년에 나누어주는 것이 옳을까 합니다.ꡓ하였다.

 

  다섯째는, ꡒ변장(邊將) 및 사졸들로 하여금 알목하 야인과 여러 야인들과 더불어 말하기를, ꡐ 파저강 야인이 오래 전부터 본국의 은혜를 후하게 받았는데, 이제 배은망덕(背恩忘德)하고 이유 없이 무리를 동하여, 우리 변군에 돌입하여 우리 인민을 죽이고 재물을 약탈하였으니, 그 죄가 한도에 찼으므로, 우리나라에서 장수에게 명하여 토벌한 것이다. 어찌 전공(戰功)을 좋아하여 그렇게 하였겠느냐. 부득이한 데서 나온 것이다. 저들이 허물을 뉘우치고 스스로 마음을 새롭게 하여 성심으로 귀순하면, 국가에서 반드시 처음과 같이 대우할 것이다.ꡑ 이렇게 말하도록 효유하는 것이 어떨까.ꡓ하였다. 모두ꡒ이 의견이 매우 좋습니다.ꡓ하니, 그대로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19책 60권 14장 B면/ 【영인본】 3책 470면/ 【분류】 *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 / *군사-휼병(恤兵) / *군사-전쟁(戰爭) / *교통-육운(陸運)(www.history.go.kr 2009)

 

  권진 [記事] : 세종실록 60권/ 세종 15년(1433 계축 / 명 선덕(宣德) 8년) 5월 12일(갑자) 1번째 기사/ 상참을 받고 정사를 보다. 우의정 권진이 기와에 관해 아뢰다/ 상참을 받고 정사를 보았다. 우의정 권진이 아뢰기를, ꡒ세 별요(別窯)에서 만들어 굽는 기와는 오로지 평민을 위한 것인데, 평민이 사는 이가 없으니 각 호에 나누어주게 하소서.ꡓ하니, 임금이 한성부 에 명하여 도성 안에 기와를 덮지 아니한 집이 몇 호(戶)이고, 재력이 있고도 덮지 않은 집이 몇 호이며, 가난한 집이 몇 호인가를 상고하여 아뢰게 하였다. 임금이 여러 신하에게 이르기를, ꡒ지금 주문사(奏聞使)가 북경에 가는데 황제가 친히 물은 사유를, 만약 집사관(執事官)이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까.ꡓ하니, 권진이 아뢰기를, ꡒ중국의 군정(軍丁)이 도망해 온 것을 상국에 놓아 보냈더니, 이로 말미암아 야인이 분을 품고 변경의 인민을 살해하므로 토벌하였다고 할 것입니다.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9책 60권 25장 B면/ 【영인본】 3책 475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 *풍속-예속(禮俗)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외교-명(明) / *외교-야(野) / *주생활-가옥(家屋)(www.history.go.kr 2009)

 

  권진 [記事] : 세종실록 60권/ 세종 15년(1433 계축 / 명 선덕(宣德) 8년) 5월 16일(무진) 3번째 기사/ 최윤덕․권진․이순몽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최윤덕을 의정부 우의정으로 삼고, 권진을 우의정으로 치사(致仕)하게 하였다. 이순몽을 판중추원사, 안순을 호조 판서, 이각과 이징석을 중추원사로 삼고, 이숙치를 공조좌참판으로 평안도 도관찰사(都觀察使)를 겸하게 하고, 박안신을 공조 우참판, 남지를 예조 우참판, 김효성과 홍사석을 중추원 부사, 이사관(李士寬)을 호조 우참의, 권복(權復)을 병조 좌참의, 안구경(安九經)을 병조 우참의로 삼았다. 처음에 임금이 제장(諸將)의 공을 포상(褒賞)하기 위하여 대신들에게 의논하니, 허조는 영중추(領中樞)를 가설(加設)하여 윤덕을 상주자 하고, 맹사성은 자기 벼슬을 주고자 하여, 두 의견을 결정하지 못하였는데, 제수(除授)하는 날에 이르러 특히 좌대언 김종서에게 명하여 이부(吏部)의 선임(選任)을 맡게 하니, 군신들이 그 까닭을 알지 못하였다. 임금이 제수할 때를 당하여 종서 를 인견하고 이르기를, ꡒ경은 거년의 말을 기억하는가. 경과 더불어 일찍이 말하기를, ꡐ 윤덕이 가히 수상(首相)이 될 만하다. ꡑ고 하였는데, 수상은 그 임무가 지극히 중하므로 전공(戰功)으로 그 벼슬을 줄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윤덕이 비록 전공이 있다 할지라도 덕이 없으면 단연코 제수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전후에 사람을 취하고 버리는 것이 이와 같으니, 경은 거년에 말한 바와 오늘의 의논한 바를 가지고 다시 여러 대신들과 잘 의논하여 보고하라.ꡓ하매, 종서가 나와서 맹사성 등과 논의하니, 모두 말하기를, ꡒ윤덕은 공평하고 청렴하고, 정직하고 부지런하며, 조심하여 봉공(奉公)하는 사람이니, 비록 수상을 삼을지라도 부끄러움이 없다.ꡓ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ꡒ나의 뜻이 이와 같았는데 대신의 뜻도 이와 같으니 권진의 벼슬을 대신하게 하라. 내가 작은 벼슬을 제수할 적에도 반드시 마음을 기울여서 고르는데 하물며 정승이리오. 윤덕은 비록 배우지 않아서 건백(建白)2099) 의 일에 어두우나, 밤낮으로 게으르지 아니하고 일심봉공(一心奉公)하여 족히 그 지위를 보전할 것이다. 그리고 숙치(叔?) 는 평안도 감사 로서 북정(北征)할 때에 군사 조발(調發)과 군량 운수를 잘 하였기 때문에 품계를 올려 제수한 것이다.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9책 60권 30장 A면/ 【영인본】 3책 478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註 2099]건백(建白) : 윗사람에게 의견을 드림. ☞(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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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천면 출신 김창호, 20일 세계기록으로 에베레스트 14좌 완등...축하합니다.

 

  김창호(醴泉郡 甘泉面 出身 김창호 山嶽人, 世界記錄으로 8000m級 에베레스트 14좌 完登.....) [記事] : 경북 예천군 감천면 출신 산악인 김창호(44 몽벨) 대장이 세계 최단 완등 기록을 세우며 8000m급 14좌 무산소 등정에 성공하며 예천인의 기개를 전 세계에 떨쳤다. 대한산악연맹은 김 대장이 2013년 5월 20일 오전 9시께 에베레스트(8848m)를 등정, 히말라야 8000m 이상 14개 봉우리를 모두 올랐다고 밝혔다. 예천군 감천면 덕율리 출신으로 덕율초등학교와 감천중을 거쳐, 서울시립대학교 무역학과를 졸업한 김 대장은 국내에서 최초로 14좌를 모두 산소통에 의존하지 않고 올랐다. 그는 지난 2005년 7월 14일 남가파르밧(8156m) 등정을 시작으로 7년 10개월 6일 만에 완등을 달성해, 폴란드 산악인 예지쿠크츠카의 종전 세계 최단기간 완등 기록인 7년 11개월 14일을 1개월 8일 앞가는 쾌거를 이뤘다. 한국 산악인으로는 엄홍길, 고 박영석, 한왕용, 오은선, 김재수 대장에 이어 국내에서 6번째로 14좌 완등인 데다 8000m급 14좌 무산소 완등기록은 아시아 최초이고, 전 세계를 통털어도 김창호가 14번째라고 한다. 김 대장은 일찍이 차세대 기대주로 각광받으며, 주위로부터 겸손하고 공부하는 산악인이란 평가 속에 한국과 아시아를 대표하는 산악인으로서, 세계 산악계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며 명실공히 한국을 대표하는 산악인으로 주목을 받게 됐다. 김 대장은 이번 등정을 위해 원정대와 함께 인도양 해안가에서 출발해 서서히 고도를 높이며 40여일 만에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뒤, 5월 16일, 에베레스트 정상을 향해 길을 나서, 죽음의 공포를 딛고 5일 만에 정상 정복에 성공하며 불굴의 투혼을 보여줬다.(새慶北인터넷뉴스 2013년05월23일 17시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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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천초등학교, <나의 창의적 체험활동 기록장-꿈·벗·멋의 행복한 어울림> 발간...축하합니다.

 

  유천초등학교(柳川初, 幸福 敎育을 爲한 資料集 發行) [記事] : 유천초(교장 이의식)는 도내 최초로 어린이들의 체계적인 창의적 체험활동을 지도하기 위한 학생용 자료집 『나의 창의적 체험활동 기록장 - 꿈ㆍ벗ㆍ멋의 행복한 어울림』을 발행하여 전교생에게 배부하였다. 본 자료집은 교내외에 각종 체험활동, 봉사활동, 독서활동 등을 기록하고, 반성해 볼 수 있는 학습장 형태로 제작되었다. 개정교육과정의 창의적 체험활동을 알차게 정착시키고, 행복교육을 통해 학생들에게 꿈과 끼를 키워주려는 새로운 교육정책 비전을 학교 현장에 적극 반영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자료집에는 나를 중심으로 가정, 이웃, 지역, 국가로 확대한 사회적 역할과 배려, 봉사 등의 활동을 설계하고 실행 및 반성하는 자료를 수록하였다. 또한 진로탐색활동, 버드내 고전읽기 50 및 독서 토론활동, 또래와의 대화와 상담, 각종 영역의 체험 활동 기록이 가능하도록 되어있어 학교생활 전반을 걸쳐 보다 체계적인 생활지도와 체험활동 지도가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醴泉뉴스 2013년 05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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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천초등학교, 24일 <뉴스레터> 창간호 발행...축하합니다.

 

  유천초등학교(柳川初, 英字 뉴스레터 創刊號 發行) [記事] : 예천 유천초(교장 이의식)는 2013년 5월 24일 영자 뉴스레터 창간호를 발행하였다. 이번에 발행된 뉴스레터는 영어와 한글을 병용하였고, 초등학교 6학년까지의 영어교육과정 범위의 어휘와 문장을 사용하여 타학교와 차별화된 소식지로서의 기능을 하도록 집필되었다. 영자 뉴스레터를 담당하고 있는 권지현 교사는 학생들의 영어생활에 접할 기회가 충분하지 않다고 느껴 영자 뉴스레터를 통해 학생들에게 새로운 영어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기로 하였다. 영어로만 집필하기 보다는 학생들의 영어 이해력을 높이고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영어와 한글을 병용하기로 하였다. 영자 뉴스레터에 선생님들을 소개하는 짧은 문장을 제시하여 영어 수업 시간에도 학생들이 간단한 묻고 답하기에 활용될 수 있도록 하였고, 영어 일기, 영어 동시 등의 학생 작품을 소개하여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면서 동시에 도전 정신 북돋을 수 있도록 하였다. 영자 뉴스레터는 전교생과 학부모, 지역민들에게 배부되어, 영어 수업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영어 활용 문화를 조성하는데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생각된다.(醴泉뉴스 2013년 05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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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방문 996

 

  선몽대와 금당실([日常脫出] 慶北 醴泉 仙夢臺·金塘室 마을) [記事] : 심리학자 프로이트는 '꿈은 인간이 가지는 소망과 억압이 표출된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경북 예천의 선몽대는 신선이 되길 꿈꾸거나 신선을 보고자 한 선비의 욕망이 현실화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맛있는 샘이 밝게 솟는 물의 고장' 예천. 물 맑고 산이 높아 예로부터 경북에서도 은근하고 은은한 마을로 손꼽혔다. 물돌이 마을로 유명한 회룡포가 이름을 얻으면서, 길이 나고 사람의 발길이 잦아졌다. 거기에 100여 년 역사의 국내 마지막 주막인 삼강주막이 2009년에 복원되면서 경북의 대표 관광지로 자리매김했다. 그런 예천 땅에 숨은 명소가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퇴계 이황의 종손, 우암 이열도(1538~1591). 그는 꿈에서 신선을 본 뒤 '필이 꽂혀' 내성천 기슭에 누각을 짓는다. 할아비 퇴계는 아름다운 누를 지은 손자도 기특했겠지만, 선몽대 정취에 매료돼 선몽대 현액 글씨를 쓰고 시 한 수를 남긴다.

 

  정취에 반한 퇴계의 선몽대 현액 그대로// 왜가리·백로 한가로이 먹이 사냥/ 문학과 담 쌓았어도 시심 저절로// 미로 같은 금당실 마을의 길 찾는 재미 쏠쏠/ 진호국제양궁장 들러 '손맛' 한번 볼 만// '솔은 늙고 대는 높아서/푸른 하늘에 꽂힌 듯하고/강변에 흰 모래와 푸른 벽은/그림 그리기보다 어렵구나/내가 지금 밤마다 선몽대에 기대니/전날에 가서 기리지 못하였음을 한탄하지 않노라.'//

 

  퇴계가 '뻑 갔다'는 말을 듣고 서애 류성룡, 청음 김상헌, 한음 이덕형, 학봉 김성일 등 당대 최고의 유학자들과 벼슬아치들이 선몽대에서 놀다 갔다. 그때마다 너 나 할 것 없이 친필시를 남겼다. 이 시들이 담긴 현판이 지금 한국국학진흥원에 있다. 퇴계의 고결한 인품이나 학식이 아니더라도 선몽대에 서면 내성천의 아늑한 물줄기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붕괴 위험 탓에 보수 중인 선몽대엔 직접 못 올라간다. 대신 관광객을 위해 새로 만든 누각에 오르면 선몽대 솔숲과 내성천을 가슴에 담을 수 있다. 맑은 천 아래 모래가 체로 친 듯 보드랍게 깔려 있다. '선몽대 명사십리라!' 모래사장이 원근의 소실점을 그리며 낙동강 쪽으로 한없이 뻗어 있다. 한 폭 풍경화 가운데 왜가리와 백로 한 쌍이 한가로이 먹이를 찾고 있다. 굳이 문학소녀, 청년이 아니라도 시심이 자연스럽게 동한다. 선몽대 일대(명승 제19호)는 풍수학적으로 평탄한 모래 위에 앉은 기러기가 앉은(평사낙안) 지형이다. 낙동강으로 닿은 내성천 줄기 옆을 굵은 줄기의 소나무들이 마중하듯 울창하게 서 있다. 우암이 1563년 선몽대를 지었으니, 송림의 역사는 얼추 450년을 헤아린다. 선몽대 앞에 '산하호대(山河好大)'라는 비가 있다. 산과 물이 큰 것을 좋아한다? 알고 보니 산이 좋고 개울은 크고 길다는 뜻이란다. 솔숲 벤치에 앉은 노부부를 만났다. 부부는 결혼 60주년을 맞아 경북 구석구석을 여행하고 있다고 했다. 부부는 젊은 시절 이 주변에서 데이트를 했다면 추억의 한 소절을 노래처럼 들려줬다. 그늘 품 넓은 솔 아래에 잠시 앉았다. 내성천을 건너 솔 사이로 부는 강바람이 요란하지 않았다. 명사십리를 맨발로 걸었다. 햇살을 받은 따뜻한 모래 질감이 발바닥을 간지럽게 한다. 반짝이는 금모래가 예 있구나! 동심이 별건가? 물속을 휘휘 발로 저으며 첨벙첨벙 걸었다. '와' 소리가 절로 난다. 선몽대를 오가는 길도 은행, 단풍나무가 빽빽한 나무 터널 길이다. 가을엔 출사 장소로 손색이 없겠다.

 

  928번 지방도로를 따라 용문사 방향으로 천천히 달리면 금당실 마을이 나온다. 차를 몰다가 한눈을 팔았다간 놓치기 딱 알맞겠다. 정감록은 예천을 십승지지(전란 등을 피할 수 있는 길지) 중에서도 제1승지로 점찍었다. 예천 길지의 핵심이 용문면의 금당실 마을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도 이 마을에 도읍을 정하려고 했을 정도이니 땅 기운이 예사롭지 않다는 뜻이렷다. 마을 북쪽은 약 800m의 송림(천연기념물 제469호)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 이곳 말로 '금당실 쑤'라고 한다. 수해와 바람을 막기 위한 풍수학적 비보림이다. 1894년 동학혁명 때 마을 사람들이 노비 구출 비용을 마련하려고 송림을 함부로 벴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당시 법무대신인 이유인이 마을에 99칸 집을 짓고 살면서 송림을 보호해 그나마 이 정도로 유지됐다. 당시 이유인을 보려고 서울 관리와 사람들이 자주 놀러 와 마을의 다른 말인 '반서울'이 여기서 유래했다. 마을 남·동쪽으론 대하다방, 금당제유소, 대동철공소, 대동상회, 남일식당 등 각종 슬레이트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간판이나 건물, 골목 모양이 마치 1960, 70년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마을 중앙과 서쪽은 2006년부터 고택을 정비하고, 그 사이를 고샅길로 꾸몄다. 금당길, 배나무길, 구장터길, 나무지게길, 은행나무길, 동촌길, 고택길, 방송재길, 고인돌길 등 말 그대로 '길 천지'다. 아담한 길옆으로 덕용재, 진사당, 금곡초당, 호미당, 광서당 등 한옥미와 조경미가 돋보이는 고택이 고즈넉하게 앉아 있다. 집집 담벼락엔 두릅, 파, 보리, 엄나무를 정감 있게 심어놓았다. 담 높이도 낮아 안 마당이 훤히 보인다. 도시 아파트에 으레 있는 CCTV나 철제잠금 장치도 보이지 않는다. 층간 소음 걱정할 일도 없겠다. '사람 사는 집은 이래야 하는데'라는 탄식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고샅길과 고택 안내판이 잘 설치돼 있지만 길이 미로처럼 이리저리 나 있다. 헷갈리긴 하지만 길을 헤맨다는 불안감보다는 오히려 길 찾는 재미가 더 크다. 곳곳이 포토존이라 아이들이나 연인끼리 와도 깔깔댈 만한 즐길 거리가 풍부하다. 금당실 마을에서 차로 5~10분쯤 거리에 초간정과 병암정이 있다. 초간정은 우리나라의 최초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을 저술한 초간 권문해가 살던 집이다. 암벽 위에 선 정자 아래로 실개천이 휘돌아나간다. 개천 위로 지나는 출렁다리에 초간정을 바라보면 '저런 집에서 하루만 잤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팔작기와집인 병암정은 2006년 드라마 '황진이'에서 황진이(하지원 분)가 첫사랑 김은호(장근석 분)를 만나는 장면을 찍은 장소다. 정자 아래 호숫가 벤치에 앉아서 쉬기에 알맞다. 연꽃 피는 계절에 와도 좋겠다.

 

  예천은 '원조신궁' 여궁사 김진호(현 한국체대 교수)를 배출한 활의 고장이다. 그의 이름을 딴 진호국제양궁장에 가면 활을 공짜로 쏠 수 있다. 군에서 총깨나 쓴 남자들도 3~4㎏가량의 활을 들고 5초 이상 서 있으면 다리가 후들거리기 일쑤. 활을 쏜 소감? 일단 쏘면 안다. 활쏘기 강사 권혁용 씨는 '활 쏘는 사람은 '군자의 길을 걷는 사람'이란 말이 있다'며 '활을 쏘면 근육·척추 이완, 위장병 예방은 물론 집중력 강화와 스트레스 해소에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손이 즐거운 여행'으로 여정을 마무리하고 싶다면 꼭 활을 쏘아 보길....(전대식 記者)

 

  ■교통 1. 자동차 : 중앙고속도로~서안동IC~34번 국도~소산2교~괴정삼거리 호명 방면 좌회전~풍산태사로 6.2㎞~홍구동삼거리 예천·선몽대 방면 우회전~봉호로 2.2㎞ 이동~오천1교 앞 좌회전~선몽대길 600m 진행~선몽대./ 2. 대중교통: 1) 부산동부버스터미널(1688-9966)∼예천시외버스터미널(054-654-3798) 버스가 매일 1차례(17:00) 있다. 4시간 30분 소요. 예천터미널에서는 오천·한어 방면의 시내버스를 탄다. 오전 6시 20분부터 7대가 운행하며 소요시간은 45분가량. 2) 부산동부버스터미널에서 북대구시외버스터미널(1666-1851)로 가서 예천시외버스터미널로 옮겨가는 방법도 있다. 부산동부버스터미널∼북대구시외버스터미널 간 버스는 14:50, 17:00 두 차례 있고 1시간 40분 걸린다. 북대구시외버스터미널에서는 오전 7시 20분부터 예천시외버스터미널 행 버스가 매일 9대 다니고 있다. 소요시간은 1시간 30분가량. 버스 편이 여의치 않다면 부산역에서 무궁화호 열차(06:35, 16:15, 18:35, 4시간 10분 소요)를 타고 예천역으로 이동해도 좋다.

 

  ■연락처 및 이용 안내 :·예천군 문화관광과,·금당실마을, ·진호국제양궁 활쏘기 체험은 하루 전 예약. 무료.

 

  ■음식 :·예천읍 남본리의 산호냉면식당은 3대째 이어지는 60년 전통의 맛집이다. 예천참우 사골육수에 생강을 넣어 육수 맛이 독특하다. 100% 메밀가루와 고구마 전분만을 사용한 면발도 감칠맛 난다. 물냉면(6천 원)에 소고기 수육 소짜(1만 5천 원) 하나면 천하에 부러울 게 없다.(釜山日報 2013-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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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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