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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3303:권한공(5)(祝이다은/예천방문1,004)
작성자장병창 @ 2013.06.05 06:02:44

   예천의 자랑(3303) : 권한공(정승)(5)(附 예천여중 이다은, 19일 태권도 전국대회 3위...축하합니다/예천방문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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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한공(權漢功) : 원명사(圓明寺)에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의 기재(忌齋)가 이르렀으므로 이 시를 짓다./ 서명: 牧隱集/ 저자: 이색(李穡)/ 분류: 고전국역서 > 문학 > 문집류(文集類)/ 제공: 한국고전번역원/ 목은시고(牧隱詩藁) 제19권/ 시(詩)/ 원명사(圓明寺)에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의 기재(忌齋)가 이르렀으므로 이 시를 짓다.// 남문은 형세가 우뚝 솟아 있고 / 南門勢突兀/ 진봉산은 높다랗게 깎아질렀는데 / 進奉山?巖/ 가랑비는 뜨락에 자욱이 내리고 / 微雨滿庭宇/ 아침 해는 솔과 삼목을 비추나니 / 初日照松杉/ 먼지 자욱한 속세를 멀리 벗어나 / 逈然出塵垢/ 신선과 범인을 초탈할 만하고말고 / 可以超仙凡/ 황조 원나라의 두 승상은 / 皇元兩丞相/ 호복으로 우리 조복과 나란히 했네 / 胡服聯朝衫/ 고흥군 유 영밀에 대해서는 / 高興柳英密/ 자앙의 붓이 칼날 같았거니와 / 子?筆如?/ 초상화에도 참담한 기색 있거니 / 丹靑有慘色/ 형세 궁해라 방금 참소가 두렵구려 / 勢極方畏讒/ 다행히 나는 영욕을 벗어나서 / 幸我脫榮辱/ 오래도록 기심을 잊었었다오 / 久矣忘機緘// 배주 승상(拜住丞相)과 탈탈 승상(脫脫丞相)의 진영(眞影)이 있는 곳이다./ [주D-001]고흥군(高興君) 유 영밀(柳英密) : 고려 후기에 벼슬이 첨의 정승(僉議政丞)에 이르고 고흥군에 봉해졌으며 시호가 영밀인 유청신(柳淸臣)을 가리킨다. 그는 일찍이 몽고어(蒙古語)를 배워 여러 차례 원(元)나라에 다녀왔고, 특히 외교에 능하여 충렬왕(忠烈王)의 총애를 받아서 여러 요직을 두루 역임했는데, 충숙왕(忠肅王) 때에 미쳐서는 원나라에 가서 조적(曺?) 등과 함께 충숙왕을 폐위시키고 심양왕(瀋陽王) 고(暠)를 옹립하려고 했으나 실패하고는 귀국도 하지 못한 채 원나라에서 죽었다. 이때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 권한공(權漢功) 또한 충숙왕을 폐위시키고 심양왕 고를 옹립하려던 유청신 등의 음모에 가담했었다./ [주D-002]자앙(子?)의 …… 같았거니와 : 자앙은 원나라의 한림학사(翰林學士) 조맹부(趙孟?)의 자인데, 그가 유청신에 대해서 어떤 비판적인 글을 혹 쓴 일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않다./ [주D-003]배주 승상(拜住丞相)과 탈탈 승상(脫脫丞相) : 배주는 원 영종(元英宗) 때에 중서 좌승상(中書左丞相)이 되었고, 탈탈은 순제(順帝) 때에 중서 우승상(中書右丞相)이 되었는데, 이들은 모두 현상(賢相)으로 일컬어졌다.//

 

  권한공(權漢功) : 예천군(醴泉君)의 부인 채씨(蔡氏)의 기단(忌旦)에 유 승제(柳承制)의 부인이 수정사(水精寺)에서 재(齋)를 올리는데, 나도 가서 참여하였다. 재를 마치고 나서는 성균관에 들어가 알성(謁聖)을 했는데, 그곳에 한 흑립(黑笠) 쓴 사람이 있었으나 그의 성명은 묻지 않았다. 비석을 보니 귀부(龜趺)가 없었다. 김경지(金敬之)를 방문하여 밀탕(蜜湯)을 마셨는데, 그의 아들 명선(明善)이 탕 그릇을 받들고 왔다. 이어서 권용부(權庸夫) 상의(商議)를 알현했는데, 판서(判書) 박원상(朴元祥)이 뒤따라왔고, 염정수(廉廷秀)는 나를 수행한 사람이었다. 여기서 간단히 술 한 잔 마시고 물에 밥을 말아 먹고 취포(醉飽)하여 돌아왔다. 박공(朴公)은 신선술(神仙術)을 좋아한다고 하였다./ 서명: 牧隱集/ 저자: 이색(李穡)/ 분류: 고전국역서 > 문학 > 문집류(文集類)/ 제공: 한국고전번역원/ 목은시고(牧隱詩藁) 제25권/ 시(詩)// 동방의 상례 제례는 불교를 숭상하기에 / 東方喪祭尙浮屠/ 채씨의 재연에 이 늙은이도 참여케 했네 / 蔡氏齋筵著老夫/ 돌아올 때는 돌다리에서 서로 헤어졌고 / 歸向石橋分馬首/ 나는 성균관에 들러 귀부도 물어보았지 / 入趨槐市訊龜趺/ 꿀물 공손히 올려라 천금 같은 아들이요 / 蜜湯?進千金子/ 진수성찬 대접받아 종에게도 밥 먹였네 / 珍饍仍霑白飯奴/ 우연히 만난 박군은 도의 맛을 즐기어서 / 邂逅朴君耽道味/ 산택을 좇아 파리한 신선 배우려 한다지 / 欲從山澤學仙?// [주D-001]천금(千金) 같은 아들이요 : 부귀한 집의 자제들은 매우 삼가서 몸을 보호한다 하여 이른 말이다./ [주D-002]진수성찬 …… 먹였네 : 두보(杜甫)의 〈입주행(入奏行)〉에 “그대 위해 술 사서 자리 가득 준비하고, 종에겐 흰밥 주고 말에겐 푸른 꼴 먹이리.[爲君?酒滿眼? 與奴白飯馬靑芻]” 하였다./ [주D-003]산택(山澤)을 …… 한다지 : 한(漢)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일찍이 천자(天子)에게 아뢰기를 “여러 신선들이 서로 전하여 산택 사이에 거주한 이들은 형용이 매우 파리하나니, 이것은 제왕이 하고자 하는 신선이 아닙니다.[列仙之傳居山澤間 形容甚? 此非帝王之仙意也]” 한 데서 온 말이다.//

 

  권한공(權漢功) :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의 기단(忌旦)에 사위인 염 시중(廉侍中)이 수정사(水精寺)에서 재(齋)를 올리는데, 나는 바로 장자(長子)인 화원군(花原君)(장자(長子)인 화원군(花原君)은 예천부원군 권한공(權漢功)의 장자로서 화원군에 봉해진 권중달(權仲達)을 가리키는데, 그가 바로 목은의 장인이기도 하다.)의 사위인지라, 당상(堂上)에서 염 시중을 모시고 앉았더니, 공(公)이 관음상(觀音像)을 가리키면서 이르기를 “이것은 나의 장모 채 부인(蔡夫人)께서 막내아들이 죽은 것을 인하여 재물을 희사해서 만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른바 막내아들이란 바로 내 장인의 아우인데, 연도(燕都)에서 죽었고 자식도 없다. [ 상세서지보기/ 서명: 牧隱集/ 저자: 이색(李穡)/ 분류: 고전국역서 > 문학 > 문집류(文集類)/ 제공: 한국고전번역원/ 목은시고(牧隱詩藁) 제26권/ 시(詩)// 수월관음이 장엄하기도 하여라 / 水月粧嚴□□□/ 소리 듣고 고통 구함을 순순히 하듯 하네 / 聞聲救苦似諄諄/ 막내아들을 유독 사랑함은 자친의 뜻이요 / 尤憐季子慈親意/ 중생을 널리 구제한 이는 대사의 몸이로다 / 普應?生大士身/ 전각은 거듭 새로워져 땅을 환히 비추고 / 殿宇重新明照地/ 산봉우리는 사방에서 모아들어 옹위하네 / 峯巒四合□□□/ 곡성 총재는 늙어갈수록 더욱 강건하니 / 曲城?宰逾?健/ 응당 빙옹을 닮아 구십 연세를 향수하리 / 應似氷翁九十春// [주C-001]장자(長子)인 화원군(花原君) : 예천부원군 권한공(權漢功)의 장자로서 화원군에 봉해진 권중달(權仲達)을 가리키는데, 그가 바로 목은의 장인이기도 하다./ [주D-001]수월관음(水月觀音)이 …… 하네 : 수월관음은 달이 비친 바다 위의 한 잎의 연꽃 위에 선 모양을 한 관세음보살상(觀世音菩薩像)을 가리키는데, 모든 고통 받는 중생(衆生)들이 관세음보살의 명호(名號)를 암송(暗誦)하거나 일컫기만 하면 관세음보살이 즉시 그 음성(音聲)을 관(觀)하여 바로 달려가서 그 모든 고통을 면하게 해 준다고 한다. 이 밖에 별칭으로는 구세보살(救世菩薩), 연화수보살(蓮華手菩薩), 원통대사(圓通大士) 등의 여러 가지 명호가 있다./ [주D-002]곡성 총재(曲城?宰)는 …… 향수하리 : 곡성 총재는 당시 문하 시중(門下侍中)으로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에 봉해진 염제신(廉悌臣)을 가리키고, 빙옹(氷翁)은 처부(妻父)의 별칭으로, 여기서는 곧 염제신의 처부인 권한공(權漢功)을 가리킨다.//

 

  권한공(權漢功) : 예천군(醴泉君)의 내외손이 모여서 술을 마시며 이름을 사촌회(四寸會)라고 하였는데, 해마다 두 사람씩 번갈아 가며 술과 음식을 마련하곤 하였다. 그런데 내가 근심과 병으로 지낸 십여 년 동안 이 모임도 거의 열리지를 않았는데, 이 오성(李鼇城)이 무너진 기강을 다시 세울 목적으로 삼월 초하룻날에 빈객을 많이 초청하고 크게 풍악을 연주하면서 예전보다 열 배나 더 성대하게 잔치를 마련하였다. 이에 다음 날에 시 한 수를 추록(追錄)하여 오성 좌하(座下)에 증정하면서 한번 웃어 보도록 하였다./ 서명: 牧隱集/ 저자: 이색(李穡)/ 분류: 고전국역서 > 문학 > 문집류(文集類)/ 제공: 한국고전번역원/ 목은시고(牧隱詩藁) 제28권/ 시(詩)// 비단옷 무더기 속에 울려 퍼지는 관현악 / 羅綺叢中絃管聲/ 주인이 누구냐 하면 바로 이 오성이시라네 / 主人云是李鼇城/ 난리 끝에 이 모임을 누가 또다시 마련했노 / 亂餘此會誰重辦/ 병든 뒤에 상봉하니 이 몸도 살아날 것 같네 / 病後相逢我再生/ 광달하다고 일컬어지는 왕사의 풍류라면 / 王謝風流稱曠達/ 태평 시대 구가하는 최로의 벌열이라 할까 / 崔盧閥閱値升平/ 백발로 누차 춤 춘 것을 비웃질랑 말아 주오 / 白頭屢舞莫嘲笑/ 야반에 취해서 돌아가니 닭이 벌써 울었습디다 / 夜半醉歸?已鳴// [주D-001]비단옷 무더기 : 수많은 기녀(妓女)들을 가리킨다. 기녀를 표현한 소식(蘇軾)의 시에 “소도가 봉우리 터뜨리니 봄을 못 이기는 듯, 비단옷 무더기 속에 단연코 으뜸일세.[小桃破?未勝春 羅綺叢中第一人]”라는 구절이 나온다. 《蘇東坡詩集 卷13 答陳述古》/ [주D-002]광달하다고 …… 풍류라면 : 왕사(王謝)는 세상의 구속을 받지 않고 자유스럽게 함께 어울려 노닐었던 진(晉)나라 왕희지(王羲之)와 사안(謝安)의 합칭으로, 목은 자신을 가리킨다./ [주D-003]태평 시대 …… 할까 : 최로(崔盧)는 위진(魏晉) 시대 때부터 당대(唐代)까지 장기간 조정에서 현달한 산동(山東)의 최씨(崔氏)와 노씨(盧氏) 집안의 합칭으로,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 권한공(權漢功)의 가문을 가리킨다. 목은은 권한공의 아들인 권중달(權仲達)의 사위이다.//

 

  권한공(權漢功) : 졸고천백(拙藁千百)/ 저자: 崔瀣/ 발행자: 한국고전번역원/ 날짜: 2006/ 분류: 고전국역서 > 문학 > 문집류(文集類)/ 제공: 한국고전번역원/ 권일재(權一齋)(권일재(權一齋)의 일재는 권한공(權漢功 : ? ? 1349)의 호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충렬왕 때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충선왕을 따라 원나라에 가서 왕으로부터 총애를 받았으며, 충선왕이 즉위한 후 밀직부사(密直副使)와 첨의평리(僉議評理)를 역임하였다. 최성지(崔誠之)와 함께 인사권을 장악하여 많은 뇌물을 받은 일로 인해 이사온(李思溫), 김심(金深) 등으로부터 탄핵을 당해 투옥되기도 하였다. 충선왕이 양위한 후에는 원나라에 가서 이제현(李齊賢)과 함께 만권당(萬卷堂)에서 독서하며 문명(文名)을 떨치기도 하였다. 충선왕이 토번(吐蕃)으로 유배된 후 충숙왕에 의해 구금되어 장류(杖流)되었으나, 원나라 황제의 명으로 풀려나온 뒤 그에 대한 복수로 심양왕(瀋陽王) 고(暠)를 옹립하고 충숙왕을 폐위시키려 하다가 실패하였다. 마지막 관직이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에 올랐고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문탄(文坦)이다. ≪고려사≫에서는 그의 열전을 간신전(姦臣傳)에 수록하고 있다.)를 대신하여 지은 어머니에게 드리는 제문/ 서명: 拙藁千百/ 분류: 고전국역서 > 문학 > 문집류(文集類)/ 제공: 한국고전번역원/ 졸고천백 제2권/ 권일재(權一齋)를 대신하여 지은 어머니에게 드리는 제문/ 모월 모일에 고자(孤子) 아무개는 돌아가신 어머니 고(故) 영가군대부인(永嘉郡大夫人)의 영령께 감히 고하나이다. 아, 사람이란 누구나 죽게 마련이니 이치상으로 볼 때 어찌 장생불사(長生不死)하는 이가 있겠습니까. 요절하는 사람이야 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다행히 오래 사는 경우라 하더라도 그 가운데는 간혹 질병에 걸려 병상에서 신음하면서 목숨을 끊고 싶어도 끊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님께서는 아흔다섯 해를 사셨는데, 일평생을 논해보면 이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10여 세에 우리 집안에 시집을 와서 22년 동안 나를 키웠고 50년 동안 부친과 함께 사셨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건대 선친께서는 공정(公正)하고 근검(勤儉)하신 분으로 하늘의 도움을 받아 75세까지 사시다가 갑자기 돌아가셨는데, 이때 어머니의 연세가 또한 72세였습니다. 이로부터 나는 한편으로는 두렵고 한편으로는 기뻐하는 마음으로 어머니를 모셔왔으니, 그 아들이 74세가 되고 또 요행히 상상(上相)의 자리를 차지하고 정동행성(征東行省)의 권한을 손에 쥐어 더없는 부귀를 누릴 때까지 어머니께서 여전히 건강한 몸으로 사시다가 이번에 생을 마치게 되실 줄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아, 슬프도다. 이는 실로 어머니께서 일찍이 음덕(陰德)을 모았기 때문에 큰 복을 받아 오늘에 이른 것으로, 이른바 ‘죽음을 집으로 돌아가는 듯이 여긴다.〔視死如歸〕’는 말에 해당될 터이니, 어찌 마음속에 유감이 있겠습니까. 다만 나는 형제자매가 없는 홀몸으로 젊어서는 처가살이와 벼슬살이에 매달리고 만년에는 공명심에 빠져 집과 나라를 떠나 30여 년 동안 부질없이 높은 관직에만 의지해 살아왔으니, 이것은 부모의 뜻을 받드는 양지(養志)에는 해당되겠지만 철에 맞추어 어머님의 거처를 살피고 맛있는 음식을 올리는 일에 있어서는 실로 마음을 저버리고 만 것이니, 돌아가신 지금에 와서 말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나에게 와서, “삶과 죽음의 이치는 마치 조석(朝夕)의 변화와 같고, 백발의 나이에 부모상을 당하는 것은 세상에 흔치 않는 일이며, 죽음 때문에 삶을 해치지 말라고 하신 성현의 분명한 가르침도 있다.”는 말로 위로하기도 하였습니다. 아, 모자(母子)간의 정이 늙어갈수록 돈독해져서 노쇠했다고 해서 그만둘 수 없는 일임을 그 누가 알겠습니까. 이번에 돌아가신 지 백 일째 되는 날을 맞아 용천사(龍泉寺)에서 재(齋)를 올려 복을 빌고 삼가 다과(茶果)와 시수(時羞)를 마련하여 경건한 마음으로 영연(靈筵)에 고합니다. 아, 슬프도다. 흠향하소서.//

 

  영혼사(迎魂辭)/ 물결은 휘감으며 동쪽으로 흘러가고 / 波??而東注/ 햇빛은 어둑어둑 서쪽으로 저무는데 / 景??以西沈/ 혼령이시여 어디에서 오셨나이까 / 魂歸來兮何所/ 눈물이 속눈썹을 타고 옷깃을 적십니다 / 淚承睫以霑襟// 송혼사(送魂辭)/ 마치 만난 듯한데도 보지를 못하여 / 若有遇而不睹/ 서글피 혼령의 소리나마 듣고 싶습니다 / 慨欲聞其無音/ 홀연히 문을 나서 망연자실 바라보지만 / 忽出門而自失/ 마침내 어디에서 찾아뵌단 말입니까 / 竟安究而安尋// [주C-001]권일재(權一齋) : 일재는 권한공(權漢功 : ? ? 1349)의 호이다.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충렬왕 때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충선왕을 따라 원나라에 가서 왕으로부터 총애를 받았으며, 충선왕이 즉위한 후 밀직부사(密直副使)와 첨의평리(僉議評理)를 역임하였다. 최성지(崔誠之)와 함께 인사권을 장악하여 많은 뇌물을 받은 일로 인해 이사온(李思溫), 김심(金深) 등으로부터 탄핵을 당해 투옥되기도 하였다. 충선왕이 양위한 후에는 원나라에 가서 이제현(李齊賢)과 함께 만권당(萬卷堂)에서 독서하며 문명(文名)을 떨치기도 하였다. 충선왕이 토번(吐蕃)으로 유배된 후 충숙왕에 의해 구금되어 장류(杖流)되었으나, 원나라 황제의 명으로 풀려나온 뒤 그에 대한 복수로 심양왕(瀋陽王) 고(暠)를 옹립하고 충숙왕을 폐위시키려 하다가 실패하였다. 마지막 관직이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에 올랐고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에 봉해졌다. 시호는 문탄(文坦)이다. 《고려사》에서는 그의 열전을 간신전(姦臣傳)에 수록하고 있다./ [주D-001]고자(孤子) : 부모상을 당한 사람이 자신을 지칭한 때 부르는 이름이다. 후대에 와서는 부친상을 당한 경우에는 그대로 고자(孤子)라 하고, 모친상을 당한 경우에는 애자(哀子)라고 하였다./ [주D-002]22년 …… 키웠고 : 국역 대본의 원문은 ‘至其?勞二十有二載’인데 문맥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외아들인 권한공이 22세에 결혼할 때까지 키워주었다는 뜻인지, 아니면 전처 소생인 자신을 22년 동안 키워주었다는 말인지 불확실하다./ [주D-003]한편으로는 …… 모셔왔으니 : 《논어(論語)》 이인(里仁)에 “부모의 나이를 몰라서는 안 되니, 한편으로는 기쁘고 한편으로는 두렵다.〔父母之年 不可不知也 一則以喜 一則以懼〕” 하였는데, 이에 대해 주자(朱子)가 주석을 붙이기를, “늘 부모의 나이를 기억하고 있으면 부모가 장수한 것에 대해 기쁜 마음이 들기도 하고 노쇠한 것에 대해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하여 얼마 남지 않은 여생 동안 효성을 다하려고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노력하게 된다.” 하였다./ [주D-004]상상(上相) : 재상(宰相) 가운데 가장 높은 재상으로, 권한공이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을 지낸 것을 가리킨다./ [주D-005]처가살이와 벼슬살이 : 국역 대본에는 ‘婚官’으로 되어 있는데 《동문선(東文選)》에는 ‘官’ 자가 ‘宦’ 자로 되어 있다. 판각상의 오자로 판단되어 ‘宦’ 자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당시에 결혼을 하면 처가에서 생활하는 풍속이 있었으므로 결혼과 관직 생활로 집을 떠났음을 말한 것이다./ [주D-006]죽음 …… 가르침 : 《예기(禮記)》 상복사제(喪服四制)에 의하면, 아버지나 임금이 돌아가실 경우 사흘이 지나면 밥을 먹고 석 달이 지나면 목욕을 하고 1년이 지나면 연복(練服)을 입는데, 애훼(哀毁)하면서도 목숨을 잃는 정도에 이르지 않는 것은 죽음 때문에 삶을 해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주D-007]시수(時羞) : 해당 계절에 나는 음식을 이른다.//

 

  권한공(權漢功) : 일재(一齋),문탄(文坦)/ 구분: 한국역대인물자료/ 분류: 인물 > 한국역대인물자료/ 제공: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권한공(權漢功)/ [요약정보]/ 시대  고려 후기/ 본관  안동(安東)/ 성  권(權)/ 호  일재(一齋)/ 시호  문탄(文坦)/ 성별  남/ 활동분야   문신/관료 / 문신-고려 / 문신/ [상세내용]/ 권한공(權漢功)에 대하여/ ?∼1349(충정왕 1). 고려 말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일재(一齋)/ 첨의평리(僉議評理) 책(?)의 아들이다. 충렬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1294년(충렬왕 20) 직사관(直史館)에 임명되고 원나라에 성절사(聖節使)로 다녀왔다. 뒤에 충선왕을 따라 원나라에 있으면서 총애를 받았다. 충선왕이 집권하게 되자 최성지(崔誠之)와 함께 인사권을 장악하였다. 충선왕이 귀국하자 측근에서 수시로 인견하고, 1309년(충선왕 1) 밀직부사(密直副使), 1310년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 1311년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밀직사(密直使), 1312년 첨의평리를 역임하였다. 오랫동안 인사권을 장악하면서 부정을 행하여 이사온(李思溫)·김심(金深) 등의 탄핵을 받아 투옥되었으나, 왕의 비호로 곧 석방되고 오히려 이사온 등이 유배당했다. 충선왕이 왕위를 충숙왕에게 물려주고 남으로 강절(江浙)에 유행(遊行)해서 보타산(寶陀山)에 이르렀는데, 이때 이제현(李齊賢)과 함께 수행하였다. 충숙왕 초에 삼사사를 거쳐 찬성사에 전임, 1314년(충숙왕 1) 권보(權溥)·이진(李?) 등과 함께 성균관에 모여 강남에서 새로 구입한 서적들을 고열(考閱)하였다. 당시 퇴위하여 원나라에 머물고 있었던 충선왕이 국내정치에 간섭하였는데, 이광봉(李光逢) 등과 연경(燕京)에 호종(扈從)하면서 권세를 부렸기 때문에 충숙왕과 틈이 생겼다. 충선왕이 백안독고사(伯顔禿古思)의 참소로 토번(吐蕃)으로 귀양가자, 순군(巡軍)에 갇혔다가 1321년 유배되었다. 그러나 곧 다시 풀려나와 그 보복으로 1322년에 충숙왕을 폐하고 심왕(瀋王) 고(暠)를 세우려고 획책했으나 원나라의 거부로 실패하였다. 1324년 예천군(醴泉君)으로 봉해졌다. 충혜왕이 원나라에 잡혀갔을 때, 재상·국로들이 모여 왕의 죄를 용서해주도록 청할 것을 의론하였는데 이를 반대하였다. 관직이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에 이르렀고,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일찍이 원나라의 명을 받아 태자좌찬선(太子左贊善)이 되었다. 시호는 문탄(文坦)이다. 저서로 《일재집》이 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一齋集//

 

  권한공(權漢功) : 고려 시대의 권신(權臣)(?~1349). 호는 일재(一齋). 성절사(聖節使)로 중국 원나라에 다녀왔으며, 충선왕의 총애를 받아 인사권을 장악하였다. 만권당에서 이제현과 함께 독서하며 문명(文名)을 떨치기도 하였다. 저서에 《일재집》이 있다.(daum 2010)

 

  권한공(權漢功) : 호 일재(一齋), 시호 문탄(文坦), 생졸년 ? (?) - 1349 (충정왕 1), 시대 고려 후기, 본관 안동(安東), 활동분야 문신/관료 / 문신-고려 / 문신/ 과거 및 취재 [고려문과] 충렬왕(忠烈王) 10년 (1284) 갑신(甲申) 충렬왕 10년 갑신방(忠烈王 十年 甲申榜)/ [상세내용] 권한공(權漢功)에 대하여 : 미상∼1349년(충정왕 1). 고려말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호는 일재(一齋). 첨의평리(僉議評理) 책(?)의 아들이다. 충렬왕 때 과거에 급제하여 1294년(충렬왕 20) 직사관(直史館)에 임명되고 원나라에 성절사(聖節使)로 다녀왔다. 뒤에 충선왕을 따라 원나라에 있으면서 총애를 받았다. 충선왕이 집권하게 되자 최성지(崔誠之)와 함께 인사권을 장악하였다. 충선왕이 귀국하자 측근에서 수시로 인견하고, 1309년(충선왕 1) 밀직부사(密直副使), 1310년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 1311년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밀직사(密直使), 1312년 첨의평리를 역임하였다. 오랫동안 인사권을 장악하면서 부정을 행하여 이사온(李思溫)·김심(金深) 등의 탄핵을 받아 투옥되었으나, 왕의 비호로 곧 석방되고 오히려 이사온 등이 유배당했다. 충선왕이 왕위를 충숙왕에게 물려주고 남으로 강절(江浙)에 유행(遊行)해서 보타산(寶陀山)에 이르렀는데, 이때 이제현(李齊賢)과 함께 수행하였다. 충숙왕 초에 삼사사를 거쳐 찬성사에 전임, 1314년(충숙왕 1) 권부(權溥)·이진(李?) 등과 함께 성균관에 모여 강남에서 새로 구입한 서적들을 고열(考閱)하였다. 당시 퇴위하여 원나라에 머물고 있었던 충선왕이 국내정치에 간섭하였는데, 이광봉(李光逢) 등과 연경(燕京)에 호종(扈從)하면서 권세를 부렸기 때문에 충숙왕과 틈이 생겼다. 충선왕이 백안독고사(伯顔禿古思)의 참소로 토번(吐蕃)으로 귀양가자, 순군(巡軍)에 갇혔다가 1321년 유배되었다. 그러나 곧 다시 풀려나와 그 보복으로 1322년에 충숙왕을 폐하고 심왕(瀋王) 고(暠)를 세우려고 획책했으나 원나라의 거부로 실패하였다. 1324년 예천군(醴泉君)으로 봉해졌다. 충혜왕이 원나라에 잡혀갔을 때, 재상·국로들이 모여 왕의 죄를 용서해주도록 청할 것을 의론하였는데 이를 반대하였다. 관직이 도첨의정승(都僉議政丞)에 이르렀고,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에 봉해졌으며 일찍이 원나라의 명을 받아 태자좌찬선(太子左贊善)이 되었다. 시호는 문탄(文坦)이다. 저서로 《일재집》이 있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一齋集(daum 2010)

 

  권한공(權漢功) : 봉호 예천군(醴泉君) , 예천부원군(醴泉府院君), 자 개숙호(愷叔號), 호 문탄(文坦) , 일재(一齋)/ 명 : "한공(漢?)"에 대한 용례/ 전거 용례/ 紀年便攷v4 ?時議所棄初忠宣之被流也下漢?洪哲於巡軍漢?自厠竇逃出及流海島歎曰天下雖廣大一身??難李?曰厠竇好矣漢?大?官至大匡右相大提學封醴泉府院君忠定己丑死謚文坦子仲和見下/ 紀年便攷v4 與蔡洪哲得罪於忠肅而?之附瀋王謀傾忠肅無所不至與宰相閔漬?上書於元請立瀋王?時議所棄初忠宣之被流也下漢?洪哲於巡軍漢?自厠竇逃出及流海島歎曰天下雖廣大一身??難李?曰厠竇好矣漢?大?官至大匡右相大提學封醴/ 紀年便攷v4 忠肅而?之附瀋王謀傾忠肅無所不至與宰相閔漬?上書於元請立瀋王?時議所棄初忠宣之被流也下漢?洪哲於巡軍漢?自厠竇逃出及流海島歎曰天下雖廣大一身??難李?曰厠竇好矣漢?大?官至大匡右相大提學封醴泉府院君忠定己/ 紀年便攷v9 權景裕漢?六世孫判官?子景祐弟字君饒一于?號痴軒金宗直門人成宗乙巳以生?登?試?翰林選湖堂性剛毅不喜作爲知時事(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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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여중 이다은, 19일 태권도 전국대회 3위...축하합니다.

 

  이다은(용인대 석사 백호체육관 이다은 學生 全國跆拳道품세大會 3位 차지) [記事] : 용인대 석사 백호체육관 수련생인 예천여중 이다은 학생이 2013년 5월 17일부터 19일까지 3일 동안 계명대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제10회 계명대총장배 전국태권도품세대회에서 3위를 차지했다. 이날 3위 입상은 관내에서 전국구 품세대회에 참가해 거둔 최초의 성과로 그 의미가 뜻깊으며, 그동안 백정훈 관장이 품세 선수단 집중 육성에 기울인 노력의 결과물이다. 이다은 학생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더 열심히 노력해 대한민국의 국기인 태권도를 널리 알리고 예천의 명예를 드높이는 사람이 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계명대학교와 대한태권도협회가 공동주최한 이번 대회는 우석대 총장기, 한체대 총장기, 동아대 총장기, 상지대 총장기와 함께 전국 5대 품세대회로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지고 있다. 이다은 학생을 지도하고 있는 백정훈 관장은 “이번 대회를 위해 도움을 주신 용인대 태권도 석사 동기인 신현창(남구미 태권도) 형님과 예천군태권도협회 천호상 회장님, 우리 지역 태권도 선후배님들에게 먼저 감사를 드린다”며 “앞으로 민족의 정기인 태권도가 바로 정립될 수 있도록 더욱 더 후학지도에 앞장서 나가겠다”고 말했다. 용인대 석사 백호체육관은 협회장기 태권도대회, 도지사기 태권도대회, 생활체육연합회장기 태권도대회 겨루기부문에서 다수의 입상을 차지했으며, 각종 행사 시 태권도시범공연으로 태권도의 저변 확대를 위해 앞장서고 있다.(醴泉新聞 2013.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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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방문 1,004

 

  예천군 체험마을(醴泉, 體驗마을 찾는 손님들로 북적 : 回龍浦, 知保 참우마을 等 體驗마을 活性化) [記事] : 예천군(군수 이현준)은 지난 한 해 동안 청정자연과 전통문화가 잘 어우러진 체험 마을을 찾는 각기 다른 손님들로 북적였다. 물돌이 마을로 유명한 육지속의 섬마을 ‘회룡포’나 조선시대 마지막 주막이 있는 ‘삼강주막’ 등 관광자원을 활용한 홍보 결과 도시민의 영농체험과 농촌문화체험, 민박 등 농촌관광에 활성화가 이뤄졌다. 특히, 지보 참우마을은 KBS 1TV 농촌드라마인 ‘산 너머 남촌에는 2’ 촬영팀은 매월 2회 촬영을 위해 숙박시설, 세미나실, 체험시설 등을 활용해 예천 참우 홍보에 큰 역할을 하였으며, 농림축산식품부 및 농촌경제연구원 등도 방문해 예천 한우발전에 관한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으로 색다른 주목을 받고 있으며 지난 5월 29일에는 경상북도 퇴직공무원들이 제2의 인생 설계를 위해 현장을 방문, 참우 마을은 이방인들로 정신이 없었다. 또한, 예천군에서는 체험 마을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체험마을 사무장 교육실시, 제철 농·특산물 꾸러미 판매 개발 등 지역 알리기에 제역을 다했으며 기존 운영상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체험마을 이미지 개선에 총력을 기울인 결과 2012년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주관하는 대한민국 농어촌대상에서 ‘삼강주막 체험마을’이 장관상을 수상하는 등 지역 발전을 주도했다. 한편, 2013년 5월 경상북도에서 조사한 농촌체험마을 현황 및 실태조사에 따르면 작년 한해 삼강주막마을과 회룡포마을을 찾은 방문객수는 58만여 명에 이른 것으로 경상북도에서 운영되고 있는 체험마을 중에서는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은 것으로 집계되었다. 예천군 농정과장(황병수)은 “체험마을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고 각종 워크숍, 선진지 견학을 통해서 주민들의 역량을 향상 시키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도움을 받아 상생하는 체험마을을 만들 것이며, 예천곤충연구소, 진호국제양궁장 등 지역의 대표 체험장과 연계해 각 마을별 특화 체험거리를 개발하여 전국 최고의 녹색농촌체험마을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醴泉뉴스 2013년 06월 04일)

 

  예천군 방문(다시 만나 기뻐요! 慶北 우리飮食 體驗 解說師 3期生 醴泉에서 園藝體驗 가져) [記事] : 경상북도 우리음식 체험 해설사 3기생 20여명은 회원단합 및 우리음식 연구를 위해 예천을 찾아 우리음식 연구와 함께 원예체험을 실시했다. 지난해 경주에서 실시한 3기 우리음식 해설사 과정을 수료한 30여명의 회원들은 소모임을 결성, 분기별 모임을 통해 회원 농가와 맛집 등을 방문해 음식 연구 및 체험을 통해 회원 단합과 정보교류를 하고 있다.  한편, 경상북도 우리음식 체험 해설사는 매년 각 시.군에서 선발한 2명이 3개월간 (사)한국전통음식체험교육원에서 140시간을 이수한 후 각 시.군에서 각 지역의 특색에 맞게 농가맛집 등을 운영하고 있다.(金相國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3-06-03 오후 8: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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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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