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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334) : 김경조(대사성)(3)-김경종(소장)-김경찬(우수상)-김경태(원장)-김경한(의장)(1)(附 예천방문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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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조 [記事] : 성종실록 252권/ 성종 22년(1491 신해 / 명 홍치(弘治) 4년) 4월 25일(경오) 3번째 기사/ 이평의 개정을 청한 김경조 등의 상소문/ 김경조(金敬祖) 등이 상소(上疏)하기를, ꡒ신 등이 듣건대, 천지(天地) 사이에는 반드시 그러한 도리도 있으며, 간혹 그럴 수 있는 운수도 있는데, 도리는 진실로 사람이 지켜야 할 것이지만 운수는 성인(聖人)이 구애하는 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옛날의 성군(聖君)이나 현군(賢君)은 반드시 그러한 도리나 혹 그럴 수도 있는 운수를 믿지 않고 조금이라도 이변(異變)을 만나면 틀림없이 먼저 허물을 자신에게 돌리고, 자신을 책망하여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걱정하여 상림(桑林)에서 기도하고 자신을 책망하는 말을 내며23229) , 운한시(雲漢詩)를 읊으며 하늘에 이르는 정성을 나타내었기 때문에23230) 당시에 비록 가뭄의 재변(災變)이 없을 수는 없었으나 그것을 그치게 할 수 있었으니, 이 어찌 자기 한 사람이 덕(德)을 닦을 뿐이겠습니까? 하늘에 감응하기를 성실하게 하고 형식적으로 하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삼가 전하(殿下)께서 허물을 반성하고 자신을 책망하시는 취지를 보건대, 비록 성탕(成湯)의 육책(六責)이나 주선(周宣)23231) 의 측신(側身)23232) 이라 하더라도 어찌 이보다 더할 수 있겠습니까? 성지(聖旨)에 현명하고 뛰어난 계책을 얻어 등용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성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뜻이며, 동방(東方) 천만세(千萬歲)토록 태평의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여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삼가 원하옵건대, 전하께서 민영견(閔永肩)의 오늘날 마음은 비록 그러하다고 하더라도 훈유(薰?)23233) 는 같은 그릇에 담을 수 없으며, 어진 사람과 간사한 사람은 같은 세대에 함께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어질고 능력이 있는 사람을 진출시키려면 반드시 먼저 간사한 사람들을 제거시켜야 합니다. 지금 조정에 과연 모두 어질고 능력이 있는 자가 반열(班列)에 배치되어 있고 간사한 무리들은 모두 제거된 것입니까? 정병(政柄)23234) 을 제멋대로 다루면서 상관(上官)에게 의지하고 아첨하는 자가 추관(秋官)23235) 에서 직책을 다하지 못하고 녹(祿)만 먹고 있으며, 제멋대로 나쁜 짓을 하여 행동이 장사치와 같은 자가 무고(武庫)를 감독 관리하며, 용렬하고 완악하며 무식한 자가 갑자기 당상관(堂上官)에 승진하여 큰 진(鎭)의 책임자가 되며, 잗달고 변변치 못한 자가 성랑(星郞)23236) 의 지위에 갖추어 있으며, 편녕(便?)23237) 하고 교묘한 수단으로 남을 속이며 여러 가지 추잡한 언행을 구비한 자가 외람되게 육경(六卿)의 다음 지위에 있습니다. 이평(李枰)과 같이 탐욕스럽고 부끄러움이 없는데 이르러서는 나라 사람들이 함께 아는 바인데도 전하께서는 여러 사람의 의논을 물리치시고 특별히 전조(銓曹)의 벼슬에 임명하셨습니다. 그래서 신 등이 복합(伏閤)23238) 하여 파직(罷職)을 청한 것이 거의 한 달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굳이 물리치시고 받아들이지 않으시어 사람을 기용하는 실수가 마땅히 이보다 더 큰 것이 없는데, 하늘의 허물을 책망하는 것이 여기에 있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전하께서 아무리 현명하고 뛰어난 계책을 얻어 등용하려고 하더라도 이러한 몇 사람을 제거하지 않으신다면, 전하께서 반성하고 수양하는 뜻이 한갓 형식뿐이고 실상이 없어 마침내는 견책을 알리는 위엄에 응답할 수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신 등이 삼가 생각하건대, 하늘이 전하에게 경계를 보인 지도 이미 오래입니다. 지난해에는 벼락이 궐정(闕庭)에서 사람에게 떨어졌고 별이 변고를 보였으며, 금년 여름에는 때아닌 서리가 내렸고 가뭄이 재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들으니, 이 달 20일에는 연풍(延?) 등지에 우박(雨雹)이 내려 곡식을 손상시켰다고 하였습니다. 신 등이 모르긴 합니다만, 전하께서는 반드시 그러한 이치와 간혹 그럴 수 있는 운수로 우연히 이런 재앙이 있다고 여기십니까? 신 등이 모르긴 합니다만, 전하께서는 천심(天心)은 인애(仁愛)하고 인군(人君)은 성실한 명(命)으로 그 덕(德)을 바로 잡는다고 여기십니까? 신 등은 전하께서 한두 사람을 잘못 기용하여 하늘의 견책을 초래하였다고 생각합니다. 대저 인주(人主)가 행동하는 바가 하늘을 움직이기 때문에 위(位)를 천위(天位)라 하고, 녹(祿)을 천록(天祿)이라고 하는데, 그 함께 다스리는 것이 무엇이든 하늘이 명한 바가 아님이 없기 때문에 인사(人事)가 잘못되는 것을 따라 하늘의 변고가 자주 감응되니, 어긋남이 없는 것입니다. 상홍양(桑弘羊)23239) 을 삶아 죽이지 않자 천한(天漢)23240) 의 즈음에 크게 가물었으며, 홍(弘)․패(?)23241) 를 죽이지 않자 성도(成都) 중에 오래도록 가물었으며, 이덕유(李德裕)23242) 가 정승에 임명되자 곧 비가 내렸으며, 장상영(張商英)이 정승이 되자 큰비가 내렸으니23243) , 그 한두 사람을 잘못 기용한 것이 하늘에 관계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전하께서 빨리 그릇된 사람을 제거하시어 하늘의 경계에 응답하신다면 지금 비록 가뭄의 변고를 면할 수 없다 하더라도 가뭄의 재해를 그치게 할 수 있습니다.ꡓ하였는데, 전교하기를, ꡒ영돈녕(領敦寧) 이상과 정부(政府)에 보이도록 하라.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39책 252권 22장 B면/ 【영인본】 12책 18면/ 【분류】 *역사-고사(故事) / *농업-농작(農作) /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과학-천기(天氣)/ [註 23229]상림(桑林)에서 기도하고 자신을 책망하는 말을 내며 : 상림 육책(桑林六責)을 말함. 은(殷)나라 성탕(成湯)이 7년 동안 큰 가뭄이 계속되었을 때에 비를 빌기 위하여 상림(桑林)에서 여섯 가지 일을 가지고 스스로 자책하였는데, ꡒ제가 정치에 절제(節制)가 없이 문란해졌기 때문입니까? 백성들이 직업을 잃고 곤궁에 처해 있기 때문입니까? 뇌물이 성하여 왕도(王道)를 해치고 있기 때문입니까? 참소하는 말로 인하여 어진 사람이 배척당하기 때문입니까?ꡓ 하였다는 고사. ☞ /
[註 23230]운한시(雲漢詩)를 읊으며 하늘에 이르는 정성을 나타내었기 때문에 : 운한시(雲漢詩)는 《시경(詩經)》 대아(大雅)에 있는 시. 이 시는 본래 주(周)나라 대부(大夫) 잉숙(仍叔)이 선왕(宣王)을 칭송하여 지은 것이다. 선왕은 여왕(?王)의 아들로 즉위할 때 정사(政事)가 크게 어지러웠고, 또 가뭄의 재앙을 만났는데, 측신(側身)하고 덕행(德行)을 닦음으로써 선정(善政)을 베풀어 재앙을 없애고자 하였다. 이에 백성들이 왕화(王化)가 다시 행해지는 것을 크게 기뻐하였고, 왕이 근심하고 조심하는 것을 보자, 잉숙이 백성을 대신하여 운한시를 지어 선왕을 칭송하였다. 그런데 실제 운한시는 첫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선왕이 서술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본문에서 운한시를 지었다고 한 것임. ☞ / [註 23231]주선(周宣) : 주(周)나라 선왕(宣王). ☞ / [註 23232]측신(側身) : 두려워 삼가느라고 잠시도 몸이 편안치 못함. ☞ / [註 23233]훈유(薰?) : 향기를 풍기는 풀과 악취가 나는 풀. 즉 군자와 소인을 비유함. ☞ / [註 23234]정병(政柄) : 정권. ☞ / [註 23235]추관(秋官) : 형조(刑曹). ☞ / [註 23236]성랑(星郞) : 낭관(郞官). ☞ / [註 23237]편녕(便?) : 구변이 좋고 심술이 바르지 않아 아첨을 잘함. ☞ / [註 23238]복합(伏閤) : 나라에 큰 일이 있을 적에 조신(朝臣) 또는 유생(儒生)들이 대궐문 밖에 이르러서 상소(上疏)하고 임금의 재가(裁可)가 날 때까지 엎드려 청하던 일. ☞ / [註 23239]상홍양(桑弘羊) :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의 시중(侍中). 유명한 염철법(鹽鐵法)과 균수 평준법(均輸平準法)을 실시하여, 국가의 이익을 따지는 데 있어서 백성의 아주 미세한 것까지 하였으므로, 국가의 이익은 매우 컸음. 그러나 후세의 유학자(儒學者)들로부터 한 무제 말기에 군도(群盜)가 일어난 것은 이같은 가혹한 경제적 수탈 때문이었다고 비난을 받았다. 여기서 홍양을 삶아 죽인다고 한 것은 무제 당시에 날이 몹시 가물자 황제가 여러 관리들에게 비가 오게 하는 계책을 물었는데, 태자 태부(太子太傅) 복식(卜式)이 말하기를, ꡒ지금 상홍양이 벼슬아치들로 하여금 저자에 앉아 물건을 팔아 아익을 구하도록 하니, 상홍양을 삶아 죽여야 비가 올 것입니다.ꡓ라고 한데서 온 고사임. ☞ / [註 23240]천한(天漢) : 한(漢)나라 무제(武帝)의 연호. ☞ / [註 23241]홍(弘)․패(?) : 송홍(宋弘)과 후패(侯?). ☞ / [註 23242]이덕유(李德裕) : 당(唐)나라 경종(敬宗) 때 사람. ☞ / [註 23243]장상영(張商英)이 정승이 되자 큰 비가 내렸으니 : 송(宋)나라 휘종(徽宗) 때에 날이 몹시 가물고, 혜성(彗星)이 갑작스레 나타난 적이 있었는데, 장상영(張商英)을 재상으로 임명하자, 혜성이 그날 밤 즉시 사라지고, 그 다음날 비가 내렸다는 고사. ☞(www.history.go.kr 2009)
김경조 [記事] : 연산군일기 4권/ 연산군 1년(1495 을묘 / 명 홍치(弘治) 8년) 4월 20일(갑술) 3번째 기사/ 어세겸․홍귀달․노공필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어세겸(魚世謙)․홍귀달(洪貴達)․유순(柳洵)을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로, 노공필(盧公弼)을 겸 지의금부사(兼知義禁府事)로, 안우건(安友?)을 병조 참판(兵曹參判)으로, 권건(權健)을 동지춘추관사(同知春秋館事)로, 김경조(金敬祖)를 형조 참의(刑曹參議)로, 이승건(李承健)을 겸사헌부집의(兼司憲府執義)로, 민상안(閔祥安)을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1책 4권 16장 B면/ 【영인본】 12책 661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경조 [記事] : 연산군일기 35권/ 연산군 5년(1499 기미 / 명 홍치(弘治) 12년) 9월 18일(을해) 1번째 기사/ 대사헌 김경조 등이 이조에서 사정을 쓰는 잘못을 아뢰었으나 들어 주지 않다/ 대사헌 김경조(金敬祖)․대사간 이균(李均) 등이 아뢰기를, ꡒ이조(吏曹)가 사정을 쓰는 것이 한 가지가 아닌데도 모두 너그러이 용납하시니, 그 이유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신 등이 합사하여 논계(論啓)한 지가 이미 한 달이 넘었는데도 아직 윤허를 얻지 못하였으니, 이것은 오로지 신 등이 직책을 다하지 못한 때문입니다. 청컨대 신 등의 직위를 갈아주옵소서.ꡓ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았다./ 【태백산사고본】 9책 35권 4장 B면/ 【영인본】 13책 377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경조 [記事] : 연산군일기 35권/ 연산군 5년(1499 기미 / 명 홍치(弘治) 12년) 10월 12일(무술) 1번째 기사/ 대사헌 김경조가 사죄의 처결이 정체되는 일은 불가하다고 아뢰다/ 경연(經筵)에 납시니, 대사헌 김경조(金敬祖)가 아뢰기를, ꡒ근일 천변으로 해서 정체된 옥사가 있을까 염려하시고 전지를 내리어 원통함을 풀게 하시니 은택이 지극히 우악(優渥)하옵니다. 그러나 사죄(死罪)가 많이 정체되어 오래도록 처결되지 못하는 것만은 매우 불가합니다.ꡓ하고, 참찬관(參贊官) 최진(崔璡)은 아뢰기를, ꡒ근래 천변이 한두 번이 아니오니, 아차산(峨嵯山)에서 사냥[打圍]하는 것을 정지하여야 하겠습니다.ꡓ하고, 김경조가 또 아뢰기를, ꡒ성균관(成均館)의 노비(奴婢)는 각사(各司) 공천(公賤)의 예와는 다릅니다. 일찍이 안향(安珦)이 자기의 노비를 사문(斯文)을 위해서 관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전에는 가져다 다른일을 시키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 여종을 새로 태어난 공주에게 하사하시므로 예조에서 그것이 불가함을 아뢰니 하교하시기를, ꡐ영구히 주는 것이 아니다.ꡑ 하였는데, 지금까지 돌려보내지 않았습니다. 청컨대 속공(屬公) 노비로서 대신 주시옵소서.ꡓ하니, 왕이 이르기를, ꡒ영구히 종으로 삼는 것이 아니니 천천히 돌려주겠다.ꡓ하였다. 박은(朴誾)이 아뢰기를, ꡒ근래 천변이 매우 많습니다. 평안도의 적변(賊變)은 근고에 없는 일이오며 작년과 올해에 민간의 실농(失農)도 역시 전대 사기를 상고해도 이처럼 심한 적이 없었사오니, 마땅히 공구 수성(恐懼修省)하시어 천변에 보답하셔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근래에 오래도록 경연에 납시지 않으시니, 이것이 상체(上體) 미령해서이지만 그러나 어진 사대부를 면접하실 때가 없으니, 신은 매우 실망하옵니다.ꡓ하고,
지사(知事) 홍귀달(洪貴達)은 아뢰기를, ꡒ근래에 적변이 없는 달이 없는데 장수들이 하나도 변에 응하는 자가 없습니다. 서쪽 변방은 그렇다 하더라도 신은 더욱 남방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왜란(倭亂)을 겪은 후로 백성들은 간담이 서늘해서 조금 적변을 만나도 모두 산으로 도망가 숨고 방어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당금의 할 일은 안으로 정사를 닦고 밖으로 적을 물리쳐야 하겠습니다. 정사를 닦아 밝히고, 상과 벌이 분명하고 믿음성 있으면 사람들이 서로 다투어가며 권장 격려될 것입니다. 또 신이 의금부(義禁府)에 있을 때 보오니, 변방에서 잘못한 자를 모두 경한 법으로 다루므로 후에 종군하여 잘못하는 자가 있더라도 징계할 길이 없습니다. 적을 만나서 그 조치를 잘못한 자는 형장 1백을 때려 먼 변방으로 충군(充軍)하여 공을 세워 스스로 속하게 한다면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여 더욱 자진해서 힘을 다하게 될 것입니다.ꡓ하고, 특진관(特進官) 박안성(朴安性)은 아뢰기를, ꡒ오늘 대간․대신의 아뢴 말이 과연 옳습니다. 평안도 군사가 적을 만나더라도 감히 싸우지 못하고 모두 손을 묶어 자진해서 항복하는데, 그렇게 되는 이유는 아무리 억지를 쓰고 싸우려 해도 후원이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좌․우 절도사를 두면 서로 구원하게 되어 변위(邊圍)가 더욱 견고할 것이오니, 대신들에게 의논하게 하여 좌․우 병사(兵使)를 두게 하옵소서.ꡓ하고, 영사(領事) 정문형(鄭文炯)이 아뢰기를, ꡒ평안 절도사를 예전에는 좌․우로 두었는데 지금은 한 명이라서 아무리 적변이 있더라도 한 절도사로는 미처 구원할 수 없습니다. 세종․문종조에는 좌도 절도사가 강계 부사(江界府使)를 겸하고, 우도 절도사는 삭주 부사(朔州府使)를 겸하여 좌우로 나누어 방수(防守)하니, 적변을 만나더라도 수미(首尾)의 구원이 되어 방어가 매우 주밀하였습니다. 근래에 평안도에 적변이 한 번이 아닌데도 절도사가 한 번 적과 만나 싸우지 못했습니다. 왜와 야인(野人)은 일반인데, 경상도에는 병․수사 (兵水使)가 각각 2명씩이요, 전라도에는 병․수사가 3명이온데 유독 평안도 긴요한 곳에만 한 절도사를 두니, 매우 불가하옵니다. 다시 좌․우 절도사를 두기를 바라옵니다.ꡓ하였으나, 답하지 않았다./ 【태백산사고본】 9책 35권 9장 B면/ 【영인본】 13책 380면/ 【분류】 *재정-역(役) / *군사-군정(軍政) / *왕실-경연(經筵) / *왕실-행행(行幸) / *과학-천기(天氣) / *정론-간쟁(諫諍) / *사법-재판(裁判) / *신분-천인(賤人) / *외교-야(野)(www.history.go.kr 2009)
김경조 [記事] : 주제별연표 / 전체 검색어 : 金敬祖ㅣ총 1건/ 1489년 05월 15일/ (성종 20년 5월 임신) 부모가 아들들에게 노비를 나누어.../ 【 출 전 】: ≪조선왕조실록≫ 11, 탐구당 영인본, 473쪽 /【 연표>주제 】 : 노비연표 > 노비상속(www.history.go.kr 2009)
김경조(金敬祖) : [문과] 세조(世祖) 8년 (1462) 임오(壬午) 별시(別試) 정과(丁科) 4위/ [인적사항] 본관 순천(順天)/ [이력사항] 전력 진사(進士), 관직 황해감사(黃海監司), 본인문과 성종(成宗) 10년(1479) 기해(己亥) 중시(重試)/ [출전]《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daum 2010)
김경조(金敬祖) : [문과] 성종(成宗) 10년 (1479) 기해(己亥) 중시(重試) 병과(丙科) 2위/ [인적사항] 본관 순천(順天)/ [이력사항 ]전력 사예(司藝), 본인문과 세조(世祖) 8년(1462) 임오(壬午) 별시(別試)/ [출전]《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daum 2010)
김경조(金敬祖) : [시험관련 사항] 왕/년도 : 성종(成宗) 10년, 과거시험연도 : 1479 기해, 시험명 : 중시(重試), 등위 : 병과2(丙科2)/ [인적 사항] 성명(姓名) : 김경조(金敬祖)/ [이력 및 기타 사항] 특별시 : 임오1462별시방(壬午1462別試榜), 전력(前歷) : 사예(司藝)(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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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종 : 김경종 산악도서 소장 목록/ 김경종/ 06-24 13:44 | HIT : 2,577/ 안녕하세요 제가 소장하고 있는 산 관련자료 첨부파일(한글 2002)로 올립니다./ 목록보기/ NO S U B J E C T NAME DATE HIT/ Notice 2008년 오를뫼 산악회 활동현황 김경종 2007·02·08 2037/ Notice 회원별 정기산행 현황(2007.12.31) 김경종 2008·01·27 3355/ Notice 우리나라 산악회 회보발행 현황 김경종 2006·03·29 3063/ Notice 준회원 점수 현황 김경종 2005·08·13 2730/ Notice 김경종 산악도서 소장 목록 김경종 2005·06·24 2577/ Notice 오를뫼산악회 장서현황 오를뫼기록부 2003·04·30 2611/ Notice 오를뫼산악회 상장 발급 현황 오를뫼기록부 2003·04·26 3367/ Notice 히말라야 8,000m급 14개 봉우리 등정자 오를뫼기록부 2003·08·01 2561/ Notice 대구.경북 5개 대학 山관련 자료현황 김경종 2004·12·08 4398/ Notice 우리나라 히말라야 원정보고서 목록 오를뫼기록부 2003·06·27 8316/ Notice 대구광역시계 종주보고서 오를뫼기록부 2001·07·09 9042/ Notice 백두대간 자료목록 오를뫼기록부 2003·06·27 4841/ Notice 한국의 100대 명산 오를뫼기록부 2002·11·14 4771/ Notice 대구광역시 산악단체 會誌 발행 현황-1 오를뫼기록부 2001·07·24 3422/ Notice 오를뫼산악회 - 만다Ⅰ·Ⅱ봉 원정기 오를뫼기록부 2002·05·31 6902/ Notice 오를뫼산악회 언론보도 현황 오를뫼기록부 2003·10·01 4663/ Notice 오를뫼인 산악회 활동기간 오를뫼기록부 2003·11·26 3143/ Notice 대구, 경북 지역 산악회-원정등반사 (하) 오를뫼기록부 2003·11·29 4932/ Notice 대구, 경북 지역 산악회-원정등반사 (상) 오를뫼기록부 2003·11·29 5745/ Notice 정기산행현황(창립~현재) 오를뫼기록부 2004·03·26 4023/ Notice 오를뫼산악회 역대 공개산행현황 오를뫼기록부 2004·03·31 3279/ Notice 마라톤기록-오를뫼회원 오를뫼기록부 2004·03·31 4159/ Notice 대한민국 해외원정등반 조난약사 오를뫼기록부 2004·03·31 3566/ 23 2007년 오를뫼 산악회 활동현황 김경종 2007·02·08 1346/ 22 오를뫼산악회 2006년 활동사항 기록부 2006·01·03 2088/ 21 오를뫼 제25.26호 배부현황 김경종 2007·01·30 838/ 20 2005년 산악회 활동현황 김경종 2005·01·19 2352/ 19 오를뫼산악회 20년사 김경종 2005·08·29 1284/ 18 등산용어 (ㅇ~ㅎ) 오를뫼기록부 2001·07·24 9412/ 17 등산용어 (ㄱ~ㅅ) 오를뫼기록부 2001·07·24 8254/ 16 오를뫼산악회 2004년도 활동 상황 오를뫼기록부 2004·03·31 2466/ 15 오를뫼산악회 20년사 배부현황 김경종 2004·12·03 1558/ 14 회보 오를뫼 제24호 배부현황 김경종 2004·09·07 1438/ 13 대구광역시 산악단체 창립일 오를뫼기록부 2003·08·21 1771/ 12 오를뫼 제23호 발송현황 오를뫼기록부 2004·02·16 1614/ 11 오를뫼산악회 2003년도 활동 상황 오를뫼기록부 2004·01·29 3996/ 10 가르왈히말라야 만다봉 원정보고서 발송현황 오를뫼기록부 2003·04·30 1745/ 9 오를뫼 제22호 발송현황 오를뫼기록부 2003·02·20 1690/ 8 오를뫼산악회 2002년도 활동 상황 오를뫼기록부 2003·01·30 2078/ 7 산행통계표-김경종 오를뫼기록부 2002·02·26 1583/ 6 책소개-젊은 알피니스트의 마음 오를뫼기록부 2001·07·09 1957/ 5 정기간행물총목차-사람과산 오를뫼기록부 2001·07·09 2341/ 4 정기간행물총목차-월간산 오를뫼기록부 2001·07·09 5424/ 3 한국의 산 오를뫼기록부 2001·07·09 2712/ 2 베스트 산악도서 오를뫼기록부 2001·07·09 2199/ 1 대구시립 공공도서관 산도서 안내 오를뫼기록부 2001·07·09 1914/ http://olm.or.kr(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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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찬 [記事] : *예천동부초등학교 김경찬, 경북백일장에서 우수상...축하합니다./ 김경찬 [記事] : 예천동부초등학교 6-1 김경찬이 안동에서 열린 2009 경북어린이 백일장(白日場) 운문부(韻文部)에서 우수상을 수상하였다.(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9.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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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태(金景泰) : 구분: 한국근현대인물자료/ 날짜: 1900/ 분류: 인물 > 한국근현대인물자료/ 제공: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한국근현대인물자료/ 이름 김경태 ( 金景泰 )/ 민족구분 한국인/ 생년월일 1) 1900-99-99/ 나이 1) 49세(1949년 현재)/ 출신지 1) 慶尙北道 淸道 出身, 2) 경상북도(본적)/ 현주소 1) 서울특별시 龍山區 元曉路 2가/ 현직업 1) 관리, 2) 종교인(천도교)/ 학력 大邱農林學校 卒業/ 경력및활동 1) 慶尙北道 淸道郡廳, 慶尙北道 勞務課, 慶州郡, 醴泉郡, 道小作課 等 多年間 勤務, 善山郡 內務課長, 金泉郡 農?課長, 解放後 金泉郡守, 道人事處 補任課長 等 歷任, 1947년 慶尙北道 勞□局長에 就任하여 1949년 현재에 이름, 2) 慶尙北道 金泉郡守 역임, 慶尙北道 勞動局長, 大韓農會 副會長, 天道敎中央總部 監査院長, 天道敎中央總部 宗議院議長 역임, 天道敎中央總部 宗務院長(1967년 현재)/ 종교 1) 천도교/ 참고문헌 민국인사(대한민국인사록) 27, 대한인물(대한민국인물연감) 제1편 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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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金慶漢) : 1917- , 예천읍 지내리 못안 출신, 대창학원, 56년 성균관대 국문학과 졸업, 47-56년 대창중(大昌中) 교감, 56-83년 동성중고(東星中高) 교사, 서울대 미대, 성균관대, 개방대, 강원대 국문학 강사를 지냈다. 백치 김좌진장군 기념사업회(白治金佐鎭將軍記念事業會) 상임부회장(現), 일제총독부청사철거촉진회(日帝總督府廳舍撤去促進會) 상임위원(現), 어문(語文)바로잡기운동 범국민협의회 상임부회장, 동 상임의장(現)이다. 탑골대회의 광장개설 공동대표이다. 연구문으로는 <대동운부군옥고(大東韻府群玉考)>,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에 대한 연구>, <시조 형식에 대한 재고(再考)>, <도산기(陶山記)의 문장고(文章考)>, <시조문학의 시대성>, <한글 전용에 따른 맞춤법의 문제점, 한자 폐지에 따른 일론고(一論考)>, <외래어 문제에 대한 통시적(通時的) 고찰>, <외래어 문제에 대한 조사 분석>, <국어 순화에 대한 일론고(一論考)>, <어문춘추(語文春秋)>를 15년 간 발행인으로서 발간(合本 1,2輯 刊行)하였다. 저서로 <한중일(韓中日) 3국 청년에게 권고함(1998)>이 있다.(醴泉文學 1990 1995, 醴泉新聞 1998.7.23)
김경한 : 한중일 3국 청년에게 권고함(韓 中 日 三國 靑年에게 勸告함 : 東洋의 平和的인 發展을 爲하여) [冊] : 예천읍 지내리 못안 출신인 김경한(金慶漢, 1917- , 大昌學院, 成均館大 國文學科 卒業, 大昌中 校監, 서울大 成均館大 開放大 江原大 講師, 語文바로잡기運動 汎國民協議會 常任議長, 塔골大會의 廣場開設 共同代表)의 저서로, 344쪽, 23cm, 서울 인물연구소(人物硏究所)에서 1997년에 출판하였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경상대, 경일대, 고려대(서창), 단국대(천안, 중앙), 대진대, 명지대(서울), 서경대, 성균관대(중앙), 연세대, 인하대, 한경대, 한서대이다.
김경한 : 어문춘추(語文春秋 : 갈뫼정 短信) [冊] : 예천읍 지내리 못안 출신인 김경한(金慶漢, 1917- , 大昌學院, 成均館大 國文學科 卒業, 大昌中 校監, 서울大 成均館大 開放大 江原大 講師, 語文바로잡기運動 汎國民協議會 常任議長, 塔골大會의 廣場開設 共同代表)의 저서로, 304쪽, 삽도(揷圖), 27cm, 서울 인물연구소(人物硏究所)에서 1987년에 출판하였다.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단국대(중앙), 영산원불교대, 한림대이다.(keirs 2005)(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김경한 [專門資料] : [학술지논문] <국어교육> 동이문화고 (東夷文化考) (7p)/ 김경한 | 한국국어교육학회 | 1997(daum 2011)
김경한 [專門資料] : [] 광복 40년의 어문정책을 진단해 본다, 어문정책 시정을 촉구하는 건의문 (18p)/ 김경한 | 한국어문교육연구회 | 1988.12(daum 2011)
김경한 [專門資料] : [학술지논문] 특집 「 도남의 국문학연구 」 비판 : 「 도남의 국문학연구 」 개관 / 도남 조윤제 박사와 국문학 (15p)/ 김경한 | 도남학회 | 1988(daum 2011)
김경한 [專門資料] : [] 한자문제에 대한 일논고(II) (14p)/ 김경한 | 한국어문교육연구회 | 1986.10(daum 2011)
김경한 [專門資料] : [] 한자문제에 대한 일론고 (17p)/ 김경한 | 한국어문교육연구회 | 1986.03(daum 2011)
김경한 [專門資料] : [] "맞춤법안(1979. 12, 문교부안)의 문제점고(問題點考) (17p)/ 김경한(金慶漢) | 국어국문학회 | 1983.05(daum 2011)
김경한 [專門資料] : [] 국어순화에 대한 관견 (11p)/ 김경한 | 한국어문교육연구회 | 1981.05(daum 2011)
김경한 [專門資料] : [] 한자어(漢字語)의 위치정립을 위한 일고찰(一考察) (5p)/ 김경한(金慶漢) | 국어국문학회 | 1980.10(daum 2011)
김경한 [專門資料] : [] 국어순화에 대한 일고찰(一考察) -반성을 위한- (12p)/ 김경한 | 국어국문학회 | 1977.12(daum 2011)
김경한 [專門資料] : [] 국어순화 630단어에 대한 검토 (15p)/ 김경한 | 한국어문교육연구회 | 1977.08(daum 2011)
김경한 [專門資料] : [학술지논문] <국어 교육> 신문 사설이 보여주고 있는 국어순화 운동 (30p)/ 김경한 | 한국국어교육학회 | 1977(daum 2011)
김경한 [專門資料] : [] 외래어표기(外來語表記) 문제에 대한 통시적(通時的) 고찰(考察) (26p)/ 김경한(金慶漢) | 국어국문학회 | 1976.10(daum 2011)
김경한 [專門資料] : [] 한자어를 외래어로 보는 모순을 논함 (9p)/ 김경한 | 한국어문교육연구회 | 1975.09(daum 2011)
김경한 [專門資料] : [] 외래어 사용에 관한 조사결과 분석 (5p)/ 김경한 | 국어국문학회 | 1975.09(daum 2011)
김경한 [專門資料] : [] 외래어(外來語) 사용(使用) 문제(問題)에 대(對)한 일고찰(一考察) (39p)/ 김경한(金慶漢) | 국어국문학회 | 1975.04(daum 2011)
김경한 [專門資料] : [학술지논문] <연구> 외래어 문제에 대한 조사 결과 보고 (29p)/ 김경한 | 한국국어교육학회 | 1975(daum 2011)
김경한 [專門資料] : [] 시정을 촉구해 마지않는 외래어사용문제 (18p)/ 김경한 | 한국어문교육연구회 | 1974.12(daum 2011)
김경한 [專門資料] : [] 국어 문제 3제 -장단음과 자형변조와 외래어와- (5p)/ 김경한(金慶漢) | 국어국문학회 | 1974.09(daum 2011)
김경한 [專門資料] : []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創制)와 민족적(民族的) 고민(苦憫) (4p)/ 김경한 | 국어국문학회 | 1961.05(daum 2011)
김경한 [專門資料] : []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소고(小考) (5p)/ 김경한 | 국어국문학회 | 1960.08(daum 2011)
김경한 : 어문춘추 제3집/ 冊/ 김경한 지음| 인물연구소 펴냄 | 2000-12-30(daum 2011)
김경한 : 한.중.일 삼국청년에게 권고함/ 冊/ 김경한 지음| 인물연구소 펴냄 | 1997-05-15(dau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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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1,017
예천군 교육(原語民 英語敎育은 醴泉에서 始作하세요! : 醴泉郡原語民畵像英語學習센터 오는 8月부터 開設 運營) [記事] : 예천군은 21세기 세계화, 국제화 시대에 외국인과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글로벌 인재를 육성하기 위하여 오는 8월부터 ‘예천군 원어민 화상영어 학습센터(http://abc.ycg.kr)’를 구축해 운영한다고 2013년 7월 5일 밝혔다. 군은 지난 2일 서울시 서대문구와 ‘원어민 화상영어학습 상호 협력에 관한 협약’을 체결해 서대문구에서 제공하는 원어민 화상영어 학습 프로그램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 예천군은 시설 투자 예산을 절감하고 학생들에게는 수준 높은 영어 교육 환경을, 학부모들에게는 사교육비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덜어 주게 되었다. ‘예천군 원어민 화상영어 학습센터’는 해외에 나가지 않고 저렴한 비용으로 가정에서 원어민 강사와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누며 의사소통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학습공간이다. 또한 월평균 수강생이 100명 이상일 경우, 저소득층 온라인 영어 콘텐츠 무상 제공이나 수강생 중 상위 0.5~1%의 우수 학생에게 국내외 무료 영어캠프 기회까지도 주어지게 된다. 이현준 예천군수는 “많은 학생과 군민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국제화 시대에 꼭 필요한 영어 소통능력을 갖춘 글로벌 지역인재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원어민 화상영어’ 학습은 필리핀 현지 화상학습센터와 연계해 ‘A반(월 ,수 ,금)’과 ‘B반(화, 목)’으로 나누어 진행되며, 수업시간은 ‘A반(월, 수, 금)’은 1일 30분, ‘B반(화, 목)’은 1일 45분씩 1주일에 총 90분으로 진행된다. 교육시간은 오후 2시부터 밤 11시 사이 수강생이 원하는 시간을 선택하면 된다. 원어민 강사 한명에 대한 수강생의 수에 따라 1:1, 1:2, 1:3, 1:4 수업 4가지 방식이 있으므로 원하는 방식을 선택하면 된다. 수업은 1개월 단위로 신청 가능하며, 수강료는 1개월에 1:1 수업은 8만5천원, 1:2는 4만3천원, 1:3은 3만2천원, 1:4는 2만5천원으로 사설학원이나 타 자치단체에 비해 저렴하게 운영된다. 예천군 원어민 화상영어 학습센터는 강사소개, 수업 과정, 무료 레벨테스트, 수강후기 등 다양한 콘텐츠를 알차게 포함하고 있어 수강생들의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수강을 희망하는 군민이면 누구나 7월 23일부터 7월 31일 기간 중에 화상영어 학습센터 홈페이지(http://abc.ycg.kr)에 접속하여 교육신청을 하면 오는 8월부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기타 화상영어에 대한 보다 자세한 사항은 전용상담센터 또는 예천군 총무과로 문의하면 된다.(醴泉뉴스 2013년 07월 0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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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