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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3342:김극일-김근-김기(1)(祝족구)
작성자장병창 @ 2013.07.14 06:16:02

   예천의 자랑(3342) : 김극일(군수)-김근(호군)-김기(지평)(1)附 예천군족구협회, 30일 도대회 종합 장려상...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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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극일(金克一) : 본관(本貫) 의성(義城), 시대(時代) (1522중종17~1585선조18), 자(字) 백순(伯純), 호(號) 약봉(藥峯), 거(居) 안동(安東) 천전(川前)/ 청계(靑溪) 진(璡)의 맏아들이며 이황(李滉)의 문인이다. 일찍이 거경궁리(居敬窮理)하니 스승이 「도(道)의 적중(適重)함이다.」고 칭찬하였다. 25세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정자(正字), 박사(博士)가 되었고 천(薦)으로 기거랑(起居郞)이 되고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을 거쳐 홍원현감, 청홍도사, 형조·예조·경상도사, 평해·예천군수, 성균관사성, 성주목사로 재직시 「계몽익전(啓蒙翼傳)」을 퇴계의 서문으로 간행하였으며 밀양부사, 내자사정(內資寺正)에 재직하였다. 외직(外職) 다섯 고을을 수령(守令)을 역임. 한결같이 주민 교화(敎化)에 힘써 선정(善政)을 남겼다. 사빈서원(泗濱書院)에 봉향(奉享)되고 연방세고(聯芳世稿)가 전한다.(daum 2010)

 

  김극일(金克一):1522(중종 17, 임오)∼1585(선조 18, 을유). 본관 義城. 자는 伯純. 호는 藥峯. 璡의 長子. 1548년(명종 1) 문과 급제. 司憲府監察, 醴泉郡守, 星州牧使 역임. 詩文 약간 편이 『聯芳世稿』에 전함. ▣참고:「墓碣銘」(金世鎬 撰) 집필:김태안(daum 2010)

 

  김극일 : ※ 聯芳世稿 (古一 810.829 연41)/ 金璡 編./ 木板本(後刷). - [慶北安東] : 臨湖書堂, 丙辰(1976)./ 5卷3冊 : 遺墨 ; 28.6x19.4cm./ 四周雙邊. 半匡 ; 19.9x16.3cm.有界.10行18字.註雙行.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조선 중기의 학자인 김진과 그의 다섯 아들 즉, 극일(克一), 수일(守一), 명일(明一), 성일(誠一), 복일(復一)의 시문(詩文)을 진(璡)의 9세손 용보(龍普)가 합집하여 연방세고라 명명한 것이다. 1797(정조 21)년에 간행된 것을 임호서당에서 1976년 後刷한 것으로 보인다.// 『약봉선생문집(藥峰先生文集)』은 김극일(金克一 ; 1522∼1585)의 시문집이다. 김극일의 자는 백순(伯純), 호는 약봉(藥峰), 진(璡)의 장자(長子)이다. 1546(명종 원)년 25세에 급제, 벼슬은 교서관 정자로 시작하여 대외 제직(諸職)을 역임하고 내자정에까지 이르렀다. 그의 문고(文稿)는 대단히 많았으나 소실(燒失)되고 본서에 수록된 것은 그 일부에 불과하다. 賦 1편, 문장(文章) 4편을 제외하고는 전부 시(詩)이다. 오절, 칠절, 오율, 칠율, 오고, 오배의 순으로 배열되어 있는데, 오고는 2수, 오배는 3수에 불과하고 오·칠언율절은 그 양이 거의 비등하게 많다. 오율과 칠률 사이에 육언사운(六言四韻) 2수가 끼어 있는 것은 특이하다. 극일의 시는 그 양은 많으나 아버지의 시와 비슷하여 타실일미(妥實一味)다. 김세호(金世鎬)는 「약봉묘갈명(藥峰墓碣銘)」에서 극일의 시문(詩文)을 "고고준결(高古峻潔), 무세속기(無世俗氣), 우장어시(尤長於詩), 득풍아유향"(得風雅遺響")이라 평했다. 그의 「제퇴계선생문(祭退溪先生文)」은 제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퇴계 송덕문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 정도다.//

 

  序 ; 李象靖. 目錄. ...卷之 2. 藥峯先生文集 (金克一) ; 詩 ; 種柏, 訪安上舍次李希正韻(2首), 臨河二十六詠(古室, 凉房, 竹坡, 藥疲, 梨庭, 菊逕, 桃磎, 楸樹, 棗園, 松關, 稼田, 蔬園, 廢亭, 鯉淵, 傳巖, 藥山, 柏林, 落潭, 仙刹, 沙岸, 柳汀, 西遷, 秋月, 墟煙, 莎郊, 狂客), 過宣城途中, 過陶山, 書祖泂軸, 書畵師崇祖軸, 書熙祖軸, 題壁上, 題聰明水, 題學瓊軸, 路險力倦不得往遊滿月白雲書贈寺僧(2首), 眞佛寺老僧惠澄, 古道菴高道兩畵像, 夜聞磬聲, 南峯舊闕基, 題風穴臺, 懷子中(鄭惟一)惇?(金富倫)夾之(琴應夾)(2首), 到汾川望祝融峯, 見飛準, 題遊山錄後, 偶成(3首), 雨中卽事, 次金愼仲(富儀)?淸亭十二詠(望山, 聽江, 邀月, 迎風, 讀書, 會友, 宴坐, 晩步, 蒔花, 種蔬, 養鶴, 釣魚), 三月與崔寬夫愼滯仲遊伽倻, 到噴玉臺(2首), 吟題石面, 賀季淵, 凌波橋, 喚鶴堂, 碧玉淵, 紫霞棧, 白玉巖, 巖上松, 松下花, 寶鑑潭, 噴雪灘, 舟中口號, 題新寧竹閣, 還家偶吟, 幽房, 獨坐, 苦寒記家中所見十六絶, 絲用圻字短句, 惟新道中, 訪崔子省山齋, 彈琴臺會禹承旨(5首), 與琴和受遊丹陽舍人巖(5首), 水使沈公?見邀與海雲朴?元同赴(2首), 過龍鳳寺山下馬上口號, 牙山次前韻示主?金行初(宗孝), 贈李明甫歸, 吟寄子省兄, 題鏡浦臺, 家園雜詠(12首)(仙遊亭, 壺隱亭, 永興院, 過?巖, 九曲灘, 雲寒巖, 仁德里, 廢城隍, 綠巖塔, 枕碧樓, 張夏墓, 楸樹峴), 主屹山禱雨(2首), 丙寅秋李府尹?日有作(2首), 題司馬所(2首), 鄕圍有作, 和安僉知(承宗)詠柏韻, 次鄭佐郞子中韻(4首), 以迎侯使相到多仁縣偶吟, 元日山齋遇설, 人日後一日贈李進士元承全秀才夢井(2首), 次鄭子中韻(3首), 次金都事景仁韻(2首), 六月十三日昏聞士純登第志喜, 次題壺隱亭, 次柳村韻, 次鄭子中題聖天軸, 八山翌朝舍弟士純得第來覲次其韻, 丹砂峽, 明月潭, 宿蓮臺, 文殊寺, 宿滿月菴, 次權章仲(好文)輩來訪遇所留詩還寄(2首), 司馬會以病不往(2首), 次雩祀祭官八齋司導寺曉起口占, 四月?六獨坐吟寄恕初, 六月五日到若木縣偶吟, 鈴齋偶吟(2首), 乞巧夜偶有所吟錄寄朴大提學, 偶吟, 過河生宅(名仁迪), 鳳飛巖, 孤山梅鶴亭吟贈河德哉, 贈子省別, 仁同縣曉行, 平海守洪德宏見訪, 題浮江亭(2首), 哭舍弟彦純, 九月初三大丘守李昌之?招往會禮山家(2首), 櫓鷺, 到靑杞夜坐陪飮, 哭襄陽安上舍(承宗), 偶吟呈座中, 次金重遠惠韻, 辛未?七重誘鳳飛巖觀漁錄示金重遠舍弟景純?同遊伽川諸君子(3首), 吟贈梁公燮歸晉州, 舟行次松溪韻(2首), 十五日午後與玄圃洛川諸公同舟向花園吟呈座上, 壬申初秋夜坐吟寄鄭子精(琢)(5首), 九月初旬逢開寧?姜明遠夜話, 始雪凝?夜起有感(2首), 至月初吳一別季純, 二月十三訪鄭子精於禮泉甕井寺一宿而別(2首), 次題李成之涑水亭詩卷, 三月三日同居昌高靈試內禁衛取才于州城外沙汀, 五月二十六日乃?日吟寄景純, 送文益誠赴宣川, 九月九日吟奉崔內翰雲溥, 還家, 正月十三日宿永嘉曉到權章仲巖堂, 正月十八日舍弟士純以政言來聞慶守李仲耳龍宮守安彦輔舍弟正字來會夜話次障子韻起遊(4首), 次韻權章仲(2首), 夕宿權章仲山齋曉上城山次周愼齋權判書韻)3首), 白雲亭作(4首), 雲襄箕城?車敬叔見訪索詩書以贈之, 與權蓋叔幷?登金將軍江樓(2首), 吟雪, 三月三日上後園山脚吟寄舍弟士純(3首), 逢士純夜飮, 到景出山母瑩書示士純, 春日獨坐, 偶書, 到寺書示士純, 宋別裵汝友(三益)拜正言歸京, 山水亭, 次士純田家韻, 承廬江書院諸公見招以未疾未得赴吟寄, 書示舍弟(7首), 嘗櫻桃, 五月二十一日聞除密陽, 次鼇山東軒何字韻, 次西樓頭字(2首), 伏次何字(2首), 次共父村字韻, 自解, 夜來有作呈諸公, 次共父風字韻, 九月初七急聞敬差之至出宿西村民家記事述懷(6首), 八穿火洞, 登林峴, 登眼嶺小咽, 孔巖, 三足堂懷舊, 望三足先生(金大有)墓有感, 立巖, 將出山吟呈郡伯, 遊山後寄伊西郡伯, 家居卽事, 修?瘙壇有感, 曉起偶吟, 憶子省南山宅(2首), 留天安贈主?子芳求和, 贈全羅都事李明甫, 披香堂呈主人孟平先生, 與牧判餞使相于樓船次板上韻, 夜八永春, 渡熊津, 歸覲日寄安上舍(2首), 答黃上舍應奎(2首), 與金景仁及兩地主察訪遊枕碧樓, 使相豫鳥玉二事謝之, 曉發定山, 椒井對月寄三年?, 次黃蔚山韻, 宿堤川, 招王應奎, 廬江書院開基日書示諸公, 超仙臺卽事贈主人, 題白雲亭南桂, 次寧德淸心樓韻, 題靈井寺, 四月初八醉起漫成錄寄李汝成(六言2首).

 

  卷之 3. 藥峯先生文集 : 詩 ; 丁卯夏奉送退溪先生(2首)(附退溪先生次韻), 題學峻上人軸(3首), 題壁, 偶成, 臘月二十四日欲謁退溪先生自豊基過榮川夜向禮安馬上偶成, 甘五日進拜溪上次先生韻, 還路遇雪吟呈溪上, 記目前所見作罷官何事好吟答人問(7首), 送士純隨計吏如京, 記所見, ?軒吟, 五月二十六日乃吾生日舍弟景純爲供酒食季妹生日亦偶同故第二絶及之(2首), 偶書, 偶見殘菊數叢埋汲於幽篁奔尊之下感而賦之, 次朴重甫(承任)韻題悟上人軸, 到寺彌村三樹亭(2首), 謝襄陽?來訪兼有規戒, 聞慶國谷曉行, 憶弟, 八城作, 次崔景肅韻兼呈子省(5首), 江上奉送退溪先生還鄕, 次寄明彦(大升)令公韻, 四月聞子省家紅桃碧桃尙在吟寄, 次仁同西樓韻(4首), 遊伽倻山, 題菊舫寄松溪, 到八?待宣慰使崔子省不至, 花園縣次黃錦溪(俊良)韻(2首), 書齋卽事(3首), 尋春過伊川次裵景餘韻, 到寺夜吹笛, 夜聞風水析廢之聲吟呈景餘, 山路卽事, 遊東湖次東郊韻, 六月十五往川谷書院與金肅夫鄭道可尹大承諸人會於杏壇上道可誦黃錦溪詩日綠樹陰濃翠幄成溪風吹散讀書聲歸來半?黃昏近孤負方塘霽月明請與翫月以事不得留還衙交欠撒以寄之(2首), 道可以吾詩專廢翫月爲不可故更次以申前說, 次題百花軒, 還家, 卽事, 傷天鵝, 贈別李季獻(王羽), 贈李共父, 遊雲門午咽臺巖, 襄陽道中, 延?縣道中作, 與惟新?畵點靑龍寺贈寺僧, 權而立成子敬鄭以健遊塔亭以詩來○次答(2首), 題審藥軸, 次湖陰(鄭士龍)書桂幢軸, 次仲擧韻, 詠沙椀中石菖蒲呈彦華求和, 題牟良驛, 題僧軸, 凌波堂次板韻, 敬次退溪先生韻, 安僉知惠紅?謝以長律, 次權貳相山亭退溪韻(2首), 次題?基館, 次韻寄題暎蓮堂, 次使相韻, 吟寄洛中故人, 次焰畢齋韻, 次韻寄題金彦璞茅亭, 題叔父聚後亭, 念四寄宣城金彦遇愼仲琴夾之金惇?(4首), 二月初九日試居接儒生于東軒吟示諸生(2首), 寒食日往?堂與諸公飮話(3首), 三月晦日吟示諸弟, 五月十六日偶書(2首), 贈具景瑞(鳳齡)還朝, 次題壺隱亭(4首), 謝子中見訪, 次題金仲?(彦璣)書齋(3首), 八山懷孤雲金生, 淸凉山懷退溪先生, 靑巖亭, 遊舍弟景純新亭吟寄半刺城主(2首), 九月廉八與諸弟陪嚴侍遊仙遊亭(3首), 臘月十一舍弟景純邀韓獻納希仲孝友崔都事復初興元作話招我同會以病不赴吟寄景純, 臘月夜坐偶成, 養?, 失鷹, 寄尹參判致遠, 次出山三日遐韻堪韻人韻錄寄子中(3首), 四月初奉別崔景肅令公出按關東, 次星州南訛亭韻留別李承旨子修(憙)(2首), 重陽上南亭呈坐中諸公, 仁同試院次板上韻, 孤山梅鶴亭吟贈河德哉, 正朝吟寄松溪, 題浮江亭, 書舍弟景純亭(2首), 八月初三積雨始晴病起思鄕偶書, 十二月十三日哭退溪先生(3首), 東湖與大丘長有期適有故不來以詩相問仍次其韻(2首), 伏次嚴侍寫眞寄仙遊亭韻, 過客書示遠接使鄭相公贈從事官柳成龍詩松溪次韻吾亦交欠撒, 次題李監察元厚鶴舞亭(2首), 題白雲亭(4首), 寄具承旨景瑞, 寄題朱通判德元慕亭, 將入山先寄士純, 次李季獻到蔚珍寄余之作, 三月十二欲往景黜寺無馬未果梨雪滿階又無賞春之酒吟寄士純, 苦熱, 送別雲甫遊楓岳, 自木川來天安思鄕有作, 次錦江樓船韻, 到淸安留宿東望故山不堪鄕思作長律, 題公山南軒, 到荊江, 題椒井, 宿丹陽時?基?曹淑來, 送黃仲擧出守星州, 次金舜擧(八元), 次彦華韻(2首), 書示諸弟, 次舍弟士純詠枯竹韻, 公州披香堂食蓮有感, 贈趙士敬(穆), 人日詠雪二十韻, 次松溪效演雅體題東湖錄後二十韻, 次高靈東軒韻./ 賦 ; 竹溪賦./ 書 ; 答權章仲./ 祭文 ; 祭退溪先生./ 碑碣 ; 龍巖先生朴公孝子碑, 申松溪碑閣銘, 王父秉節公碣陰誌./ 附錄 ; 墓碣銘, 墓誌銘.(daum 2010)

 

  김극일 : <국조 문과 방목>/ 김극일(金克一) : 명종(明宗)1년(1546년), 증광시(增廣試) 병과1(丙科1)/ > 인적사항 : 생년(生年) 임오(壬午), 자(字) 백순(伯純), 호(號) 약봉(藥峯), 본관(本貫) 의성(義城), 거주지(居住地) 천전(川前)/ > 가족사항 : 부(父) 김진(金璡), 조부(祖父) 김예범(金禮範), 증조부(曾祖父) 김만근(金萬謹), 외조부(外祖父)   민세경(閔世卿), 처부(妻父) 권지,이위(權祉,李위)/ > 이력 및 기타 : 전력(前歷) 유학(幼學), 관직(官職) 부사(府使)(daum 2010)

 

  김극일 : 泗濱書院/ 위치 :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 건축 : 1685년(숙종 11) 思義祠로 창건, 1868년(고종 5) 훼철, 1908년 일부 복원, 임하댐 건설로 인해 현 위치로 이건/ 배향인물 : 김진(金璡), 김극일(金克一), 김수일(金守一), 김명일(金明一), 김성일(金誠一), 김복일(金復一)/ 배향일: 不享/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9호(1985.8.5)  소유자 : 金時雨/ 『嶠南誌』: 在郡東四十里肅宗乙丑建享進士金璡從享牧使金克一察訪金守一生員金明一文忠公金誠一司成金復一/ ▶ 해설 : 泗濱書院은 靑溪 金璡(1500-1580) 선생과 그의 다섯 자제인 藥峯 金克一(1522-1585)?龜峯 金守一(1528-1583)?雲巖 金明一(1534-1570)?鶴峯 金誠一(1538-1593)?南嶽 金復一(1541-1591) 형제의 遺德을 追慕하고 後學을 양성하기 위하여 숙종 11년(1685)에 士林과 자손들의 公議로 건립하였다. 廟號는 ?景德祠?라 했다. 1709년(숙종 35) 동구 밖 泗水 가로 이건하여 ?泗濱書院?이라 하였다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하여 훼철되고 1882년(고종 19) 사림과 본손들에 의해 복설되어 講堂과 廚舍만 남아있다. 講堂은 五樑架構의 瓦家 박공집으로 되어있고 廚舍는 ?ㅁ?자형주택으로 안동지방 士林들의 건축양식인 傳統韓瓦家로 그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이 건물은 임하댐 건설로 인해 임하면 사의리 621에서 1987년 현 위치로 移建하였다. 【참고 1】『泗濱志』에 泗濱書院의 奉安文과 常享文이 실려 있음. 【참고 2】마을 뒤편 임하댐 보조댐 제방 바로 아래에 있다. 뒤편에는 靑溪 선생의 묘소를 돌보기 위해 지은 景山精舍와 大朴 선생의 묘소를 돌보기 위해 지은 松石齋舍가 있다. 우측에는 서원에 딸린 齋舍가 있다. 『안동군 지정문화재 편람』(daum 2010)

 

  김극일 : <울진군지>/ 오월루(梧月樓)/ 김극일 시 / 金克一 詩// 새로 난 대나무 맑은 그늘 신비로운데 / 新竹淸陰秘/ 하필 수고롭게 뒷 정자에 올라야 하리 / 何須上後亭/ 인간 세상에는 삼복더위인데 / 人間三伏熱/ 오월루 위에는 가을소리 드리노라 / 樓上九秋聲/ 가을이면 이슬방울 둥글게 맺혀있고 / 露氣秋團白/ 저물녘엔 술 그림자 푸르게 이어졌지 / 松光夕送靑/ 시 짓는 재주꾼들 모두 모였으니 / 詩才供凡案/ 편히 앉아 한가로움 즐겨보세 / 宴坐勝閑行(daum 2010)

 

  김극일 : 문헌(文獻)// 1. 남명학파(南冥學派) 관련(關聯) 인명록(人名錄)/ 이상필(문학박사,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편찬, 제공(2005년 4월)/ 김극일 1522- 백순 약봉 의성 안동 퇴계문인/ 金克一 1522- 伯純 藥峰 義城 安東 退溪門人// 2. 퇴계문인/ 김극일(金克一, 藥峯, 安東 川前, 1522~1585) 본관(本貫) 의성(義城)// 3. 사원일람<祠院一覽> 辛鍾友 著/ 김극일(金克一)/ #경상도(慶尙道)  안동(安東) / *사빈서원(泗濱書院) :숙종을축건경현사 무자승위서원(肅宗乙丑建景賢祠 戊子陞爲書院)./ 제향. 김 진(호청계 생원 증이판 본의성). 김극일(호약봉 진子 목사 본의성). 김수일(호귀봉 극일제 생원 본의성). 김명일(호운암 수일제 생원 본의성). 김성일(호학봉 명일제 감사 증이판 시문충 본의성). 김복일(호남악 성일제 사성 본의성)./ 祭享. 金 璡(號靑溪 生員 贈吏判 本義城). 金克一(號藥峯 璡子 牧使 本義城). 金守一(號龜峰 克一弟 生員 本義城). 金明一(號雲巖 守一弟 生員 本義城). 金誠一(號鶴峯 明一弟 監司 贈吏判 諡文忠 本義城). 金復一(號南嶽 誠一弟 司成 本義城)./ #경상도(慶尙道)  청도(淸道) / *자계서원(紫溪書院) : 선조무인건 현종신축액(宣祖戊寅建 顯宗辛丑額)./ 제향. 김극일(호모암 일손조부 지평 증집의 시효절 본김해). 김일손(호탁영 증도승지 시문민 본김해). 김대유(호삼족당 일손질 호조좌랑 본김해)./ 祭享. 金克一(號慕庵 馹孫祖父 持平 贈執義 諡孝節 本金海). 金馹孫(號濯纓 贈都承旨 諡文愍 本金海). 金大有(號三足堂 馹孫姪 戶曹佐郞 本金海).//(daum 2010)

 

  김극일 : 泗濱書院 主享 및 配享人物 : 藥峰 金克一(중종17년(1522)-선조18년(1585) 향년 64세) : 청계대조의 長子. 자는 伯純, 호는 藥峰. 墓誌을 보면 어릴 적에 豪氣차고 俊逸했다. 청계선생을 따라 태학에서 공부할 때, 하시는 말마다 문득 사람들을 놀라게 했으며 서울의 관료들과 선비들이 다투어 서로 전하면서 神童이라 일컬었다. 소수서원에서 공부하다가 퇴계 선생께 배웠는데, 문학이 일찍 성취되어 뛰어 나시니 선생이 그 그릇을 매우 중하게 여겼다. ‘일찍이 잘못을 보고 이제 깨닫노라’는 말씀으로 인하여 글을 보내어 勸勉하시기를 ‘얻음이 적다고 만족을 깊이 하지 않고 지난 일로서 경계 삼기를 이미 오래 쌓는다면, 마침내 얻음이 없다고 한들 무엇을 근심하랴.’ 하였으니 그 기대하는 바의 원대함이 이와 같았다. 명종원년(1546) 25세에 文科에 及第하여 校書館正字가 되었으나 모친 상고를 당하여 삼년상을 마치고 司勇에 복직, 동 六년 承文院正字, 著作, 博士를 거쳐, 동 八년 承政院注書로서 春秋館記事官을 겸하다가, 刑曹佐郞, 司憲府監察로 옮기고 이듬해 외직으로 洪原縣監에 부임하여 가난한 백성들을 돌보아 좋은 치적을 남겼다. 동 十一년 淸洪道(지금의 忠淸道) 都事가 되고, 동 十五년 禮曹正郞, 軍器寺僉正을 거쳐 平海郡守에, 동 二十一년 司宰僉正, 醴泉郡守를 거쳐 선조2년(1569년) 成均館司成, 司導寺正등을 역임하고 星州牧使에 부임하여 동 六년에 사임했으며, 동 八년 密陽府使에 부임하여 동 十三년 부친 청계선생의 喪을 당하여 三년상을 필하고, 동 十五년 內資寺正 거쳐 이듬해 司憲府掌令에 올라 그 四년 뒤인 동 十八년(1585년) 五월 二十六일에 별세하셨다. 성주목사 당시 도산을 방문하여 퇴계 선생이「啓學翼傳」을 제자들에게 정서하여 易東書院에 보관하라 하기에 그 자리에서 “그런 귀중한 책을 한 곳에 두기보다는 반포하여 學問에 有益하게 널리 읽도록 함이 좋겠습니다”라 하니 星州에서 판각하도록 許諾하고 序文까지 지어 보냈다. 이와 같이 교육용 典籍을 발간하였다. 유학을 興起하고 선행을 표창함으로써 풍속과 교화를 이루는데 힘을 쏟은 결과 다스린 다섯 고을의 치적이 當世의 수령 중에는 으뜸이었다. 선생의 글은 높고 깨끗하고 蒼古하여 陳腐한 말이 없었으며, 더욱 詩에 뛰어나 짙고 옅음과 맑고 아름다움에 있어 각각 그 情趣가 극진하니 한 때 시문으로 이름이 있는 분들이 모두 선생이 가장 앞선다고 추앙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戰亂 중에 散逸되고 겨우 몇 권이 남아 있다./ 독서 讀書// 독서는 의리를 찾는 것인데 讀書尋義理 / 어찌하여 찌꺼기를 핥을 것인가 豈可事糟粕 / 성현은 책속에 있어 聖賢黃卷中 / 너무나도 밝게 지시해주네 指示太明白 // 퇴계 선생이 자녀들에 내린 10훈에는 “독서는 의리를 窮究하며 그 깊은 뜻을 연구하는데 목표를 두어야지 말재주를 일삼는 겉치장에 기울어지면 안된다.”(讀書當以硏窮義理, 不可爲言語文字之學)라는 조목이 있다. 이 시는 스승의 가르침인 성현의 의리를 궁구하겠다는 신념을 담았다고 하겠다./   미친 사람 狂客// 거처하고 잠 잘 내 집이 있고 有宅可寢興 / 밭 갈아 농사지을 땅이 있으며 有田可耕? / 푸른 산은 나를 버리쟎는데 碧山不負吾 / 미친 듯이 분주하니 정말 괴이해 應怪狂奔走//  홀로 앉아서 獨坐// 빈방엔 한점 티끌도 없고 室虛無一塵/ 마음이 고요하니 즐거웁기만 心靜有餘樂/ 편안히 앉아서 거문고 타면 宴坐撫孤琴/ 가을 뜰에 낙엽이 저절로 지네 秋庭葉自落// 선생의 구도자적인 무욕 정관의 경지를 보여주는 시이다. 고요하고 평안한 집안, 청정한 마음은 선생이 도달한 達觀적 삶의 공간이며 정신적 평정이 머물고 있는 장소이다. 게다가 감흥의 극치를 불러일으키는 거문고 줄을 뜯는다. 나뭇잎이 지는 소리는 거문고에 화답하는 북 장단으로 들린다. 홍진의 명리와 세속의 갈등과는 멀리 떨어져 무심의 경지에 이른다./ 묘소는 川前 飛鯉谷 卯向이시다.//

  大宗宅 : 左書己字形 55칸 구조이며 대청에 부속된 廊下?內堂의 3段式 마루?온돌방마다 일광이 일시에 드는 것이 특색이다. 국가지정 문화재 보물 제450호(1967. 6. 23)이다.(daum 2010)

 

  김극일 : 경상도지(慶尙道誌) 권지(卷之) 육(六)/ 누대승람(樓臺勝覽) 부(附) 제영(題詠)/ 영덕(盈德)/ ● 호호대(浩浩臺) 재(在) 남(南)/ 선산(善山) 김종직(金宗直) 호(號) 점필재(점畢齋). 시(詩)/ 여강(驪江) 이언적(李彦迪) 호(號) 회재(悔齋). 시(詩)/ 의성(義城) 김극일(金克一) 호(號) 약봉(藥峯). 시(詩)/ 덕수(德水) 이식(李植) 호(號) 택당(澤堂). 시(詩)(daum 2010)

 

  김극일 : <울진군지>/ 제3장 관안(官案) 제2절 평해군/ 2. 조선조/ 김극일(金克一) : 문과(文科)로서 1560년(명종 15년) 12월 9일 부임, 1564년 8월 16일 검찰의 판결로 파직됨.(daum 2010)

 

  김극일 : 학봉선생문집(鶴峯先生文集) (古西 151.53 김53&#53313;)/ 金誠一 (1538∼1593) ; 字 士純, 號 鶴峯, 本貫 義城./ 木板本. - [發行事項不明]./ 8卷3冊.行狀.年譜.合5冊 ; 29x20.9cm./ 四周單邊. 半匡 ; 20.1x15.5cm.有界.11行21字.註雙行. 上下內向二葉花紋黑魚尾. / 조선 중기의 정치가·학자인 김성일의 시문집과 부록 등이다./ 序 ; 趙絅, 金應祖. / 祭文, 臨川書院奉安文, 臨河鄕社奉安文, 臨川書院常享文. / 目錄. / 김극일(金克一) 본관 의성(義城) 김성일의 백씨(伯氏)/ 卷之 1. 詩 ; 江上次奇高峯(大升)韻伏呈退溪先生行史(2首)(己巳), 再遊洗心臺遇小雨, 奉送仲氏(守一)還鄕, 奉送伯氏(克一)出宰星山, 送尹尙中(卓然)赴京(2首), 敬次退溪先生韻, 次烏川諸丈遊淸凉山韻, 文殊臺, 登硯滴峯, 呈伯氏, 退溪先生挽詞(辛未), 暮春寓居景出山舍琴景休鳳瑞忽至仍留宿臨別贈此(乙亥), 敬次退溪先生韻題誾師軸, 陶山梧竹滿庭乘月徘徊感淚潛然, 奉送許使君丈出宰春川, 奉送柳晦甫(根)赴京(2首), 雨後遊山莊, 偶吟, 殘菊, 劍歌, 佇福院途中遇雪(丁丑), 龍灣感興, 龍灣別席, 雙關河, 遼東城, 大陵河, 我所思(4首), 豊潤縣雨中, 壺隱亭十二詠(戊寅)(荷池, 柳堤, &#23905;社, 溪莊, 煙林, 雪逕, 雲亭, 雨溪, 花疲, 稼田, 局絲, 洞會), 次愛日堂重新錄韻, 問歸棧, 歸棧答, 過岬貫古城, 靑溪亭八景(己卯)(西山翠柏, 東嶺丹楓, 溪邊釣月, &#24144;上耕雲, 秋山放鷹, 野亭爭鵠, 壽宴會客, 燕居談農), 九月二十一日出京暮抵楊州, 二十二日冒雨抵抱川留宿, 宿豊田驛, 二十四日曉發豊田見氷有感, 夕宿金城驛, 夜聞灘聲, 曉起, 過昌道驛有感(2首), 宿淮陽次壁上韻留贈主&#29292;( 2首), 馬上望黃草嶺白雪璂天夕宿草芳院, 登黃草嶺, 夕渡石津, 過香棧, 夜入別害堡, 頒衣, 題廟坡堡, 宿魚面堡, 雙靑堡, 黔義嶺, 次吉州東軒韻, 將軍堡, 明川館 讀林錦湖亨秀遊山詩, 森森堡(在京城), 朱溫堡途中望長白山, 玉蓮堡次許美叔韻(2首), 氈城弔奇服齋遵(2首), 氈城館夜坐, 次鄭圃隱先生夢周常州除夜韻, 次慶源東軒韻, 次圃隱女眞地圖韻(庚辰), 次圃隱中秋韻, 匡州阻雪六言(3首), 阿山堡, 阿吾地堡次韻, 次撫夷堡韻(2首), 次慶興東軒韻, 次制勝亭韻, 次圃隱集中韻(2首), 西水羅堡觀日出, 重到訓戎鎭(2首), 穩城夜坐書懷, 登元帥臺, 午咽古站驛, 嶺東驛觀日出次板上韻, 登磨雲嶺大霧四塞, 夜登浩浩亭別韓公則準, 洪原館次伯氏韻, 望雲臺, 終喪壬午, 白雲亭曉起看雲, 燈花, 白雲亭十二詠(秋月, 春花, 煙江, 雪山, 茂林, 平沙, 雁陣, 魚隊, 眠鷗, 放牛, 村笛, 漁火), 花壇.(daum 2010)

 

  김극일 : 하계직원 연수 2 -내앞종택과 병호시비/ 2008.09.19/ ...또한 다섯 아들을 오룡(五龍)에 비유해서 오룡지가(五龍之家)라 칭하기도 했다고 한다. 오룡은 약봉 김극일(藥峯 金克一, 1522-1585), 귀봉 김수일(龜峯 金守一, 1528-1583), 운암 김명일(雲岩 金明一, 1534-1570), 학봉 김성일(鶴峯 金誠一.../ http://blog.daum.net/whang77/ 황도사의 사주여행(daum 2010)

 

  김극일 : 자녀 성공의 키는 아버지가 쥐고 있다/ e-Book/ 이해명 지음 |  예담프렌드 |  2006.09.22/ 책본문 : 급제시켜 의성 김씨를 당대 최고의 명문가 반열에 오르게 만들었다. 약봉藥峯김극일金克一, 구암龜峯김수일金守一, 운암雲岩김명일金明一, 학봉鶴峯김성일金誠一, 남악南嶽김복일金復一.../ 96페이지(daum 2010)

 

  김극일 : 안도에게 보낸다/ e-Book/ 이황 지음 |  정석태 옮김 |  들녘 |  2006.06.23/ 책본문 : ...안동부사 한옥韓沃*이 오늘 아침 이곳에 온다는구나. 그리고 성주목사 김극일金克一*은 26일에 이곳에 오겠다고 하더니만, 예안현에서 알려오기로는 25일에 본가를 떠났다고 하니.../ 297페이지(daum 2010)

 

  김극일 : 한국의 명문 종가/ e-Book/ 이순형 지음 |  서울대학교출판부 |  2007.01.25/ 책본문 : ...1) 이러한 지적(知的) 분위기 속에서 청계공의 첫 아들 약봉(藥峯) 김극일(金克一)은 25세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둘째 귀봉(龜峯) 김수일(金守一), 셋째 운암(雲岩) 김명일(金明一.../ 419 페이지(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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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金瑾) :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호군(護軍)을 지냈다.(醴泉郡誌 1939)

 

  김근(金瑾) : [무과] 정조(正祖) 8년 (1784) 갑진(甲辰) 정시(庭試) 병과(丙科) 2568위/ [인적사항] 생년 신유(辛酉) 1741년, 합격연령 44세, 본관 김해(金海)/ [이력사항] 전력 한량(閑良)/ [가족사항] [부] 성명 : 김한삼(金漢三), 관직 : 학생(學生)/ [생부] 성명 : 김정삼(金鼎三), 관직 : 학생(學生)/ [출전]〈왕세자책봉경용호방(王世子冊封慶龍虎榜)〉(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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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 [記事] : 세종실록 32권/ 세종 8년(1426 병오 / 명 선덕(宣德) 1년) 4월 2일(을축) 2번째 기사/ 우대언 김맹성이 두 사신에게 문안하다/ 우대언 김맹성(金孟誠)이 두 사신에게 문안하니, 백언(白彦)이 말하기를, ꡒ형 백중량(白仲良)과 아우 백인우(白仁雨)와 조카 김기(金琦)와 숙부 황보경(黃補敬) 등을 데리고 돌아가서 어버이를 뵙도록 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나, 아마 벼슬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서 감히 청하지 못하오.ꡓ하므로, 맹성이 이 말을 계하니, 임금이 중량 등에게 명하여 역마를 타고 따라가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영인본】 3책 17면/ 【분류】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9)

 

  김기 [記事] : 세조실록 5권/ 세조 2년(1456 병자 / 명 경태(景泰) 7년) 10월 1일(정유) 3번째 기사/ 권공․신전․김세민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화천군(花川君) 권공(權恭)에게 광덕 대부(光德大夫)를 더하고, 신전(愼詮)을 황해도 관찰사(黃海道觀察使)로 삼고, 개성부 유수(開城府留守) 김세민(金世敏)․단사관(斷事官) 허종항(許從恒)․경력(經歷) 안철손(安哲孫)․도사(都事) 이괴(李塊)․경기도 관찰사(京畿都觀察使) 이승손(李承孫)․도사(都事) 김기(金琦)에게는 각각 한 자급(資級)을 더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7책 153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www.history.go.kr 2009)

 

  김기 [記事] : 세조실록 8권/ 세조 3년(1457 정축 / 명 천순(天順) 1년) 7월 7일(무진) 1번째 기사/ 지평 김기가 사헌부의 의논으로 홍일동을 파직시킬 것을 아뢰니 불윤하다/ 지평(持平) 김기(金琦)가 본부(本府)1989) 의 의논을 가지고 아뢰기를, ꡒ홍일동(洪逸童)이 어명(御命)을 받고 중국에 가다가 중로(中路)에서 마음대로 돌아와 과거 시험을 치루었고, 이미 시험을 본 뒤에도 아뢰지 아니하고 돌아갔습니다. 과거 시험에 합격하게 되자 성상께서 명소(命召)하였는데도 또한 오지 않았으니, 불경(不敬)하기가 너무 심합니다. 또 노모(老母)가 집에 계신데도 먼 길 가기를 사양하지 않았으므로, 충(忠)과 효(孝)에 모두 어그러짐이 있으니, 임용(任用)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청컨대 파직(罷職)하고 내쫓아서 선비의 기풍을 권려(勸勵)하소서ꡓ하니, 전지하기를, ꡒ어찌 그러한 작은 과실(過失) 때문에 서용(敍用)하지 않겠는가.?ꡓ하였다. 김기가 다시 아뢰기를, ꡒ홍일동은 무지(無知)한 어린아이가 아닌데도 소행(所行)이 이와 같았으니, 이를 임용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ꡓ하니, 임금이 전지하기를, ꡒ범한 바가 고의적인 정상이 없었고, 특히 작은 과실이었을 뿐이다. 그것을 다시 말하지 말라.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7책 208면/ 【분류】 *사법-탄핵(彈劾) / *인사-임면(任免) / *인사-선발(選拔) / *윤리(倫理) / *외교(外交) / *정론(政論)/ [註 1989]본부(本府) : 사헌부(司憲府). ☞(www.history.go.kr 2009)

 

  김기 [記事] : 세조실록 42권/ 세조 13년(1467 정해 / 명 성화(成化) 3년) 5월 29일(계사) 3번째 기사/ 김기가 함흥 유향소 품관이 서명한 사목을 가지고 와 이시애의 동정을 아뢰다/ 김기(金琦)가 함흥(咸興) 유향소(留鄕所)의 품관(品官) 윤극검(尹克儉) 등 14인이 서명(署名)한 사목(事目)을 가지고 돌아와서 아뢰기를, ꡒ민심(民心)이 순역(順逆)을 알지 못하고 한결같이 이시애의 말만을 믿어서, 신이 백단(百端)으로 개유(開諭)하여 군중의 의혹이 조금 풀렸으나, 아직도 〈도총사〉 이준(李浚)과 허종(許琮)이 적신(賊臣)으로 의심하기에 지극히 간절히 깨우쳐 주었더니, 모두 말하기를, ꡐ그렇다면 네가 이시애에게 서한을 보내어 속히 내알(來謁)하게 하라.ꡑ고 하므로, 신이 마침내 서한을 보냈습니다. 또 윤자운(尹子雲)을 석방하여 함께 오려고 반복하여 개유(開諭)하였으나, 사목(事目)을 듣지 않고 말하기를, ꡐ1. 신면(申?)이 이달 15일에 본부(本府)에 도착하여 남도(南道)의 군사를 징발하여 모으고, 18일에는 윤자운과 구치동(丘致?)이 부내(府內)에 들어와 손욱(孫旭)․심원(沈湲)․변처관(邊處寬)․김후(金厚)․박종문(朴宗文)․김중륜(金仲倫)․이효석(李孝碩)과 더불어 각기 반인(伴人)을 거느리고 밀의(密議)하였는데, 모두 다 갑주를 입고 궁시(弓矢)를 가지고 있었으며, 전령(傳令)의 표신(標信)을 만들어, 윤자운은 대장(大將)이 되고, 구치동․손욱은 종사관(從事官)이 되며, 신면은 중위 장(中衛將)이 되고, 김후는 종사관(從事官)이 되며, 박종문은 좌위장(左衛將)이 되고, 변처관은 우위장(右衛將)이 되며, 이효석은 후위장(後衛將)이 되었는데, 지금 군사(軍士) 50인이 성문(城門)을 파수하고 있으며, 19일에는 이 도(道)의 거민(居民)들을 모두 죽이고 곧 서울을 범하려고 의논하였으며, 또 심원으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토관(土官) 이중무(李仲茂)와 이시애(李施愛)의 족친(族親) 전숙손(全叔孫) 등 5부자(父子)와 의친 갑사(議親甲士) 이승언(李升彦)․이승손(李升孫) 형제를 옥에 가두었으므로, 그 반상(反狀)이 이미 드러난 까닭에, 갑사(甲士) 이중화(李仲和)가 전한 이시애의 이문(移文)에 의거하여, 18일 밤에 신면․구치동과 반인(伴人)․가노(家奴) 등 16인을 죽였으며, 1. 김후(金厚)는 모반(謀反)한 정유(情由)를 국문하여 옥에 가두었고, 1. 신면은 변처관으로 하여금 표신(標信)을 가지고 1백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함관령(咸關嶺)을 점거하게 하고, 이효석(李孝碩)은 송동령(松洞嶺)을 점거하게 하였으며, 1. 신면이 피살될 때에 유흥언(劉興彦)과 이중화(李仲和)․이석중(李石中)․이석근(李石根)․무금(無金) 등이 쏘아 맞히었다.ꡑ 하였습니다.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8책 81면/ 【분류】 *변란(變亂)(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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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군족구협회, 30일 도대회 종합 장려상...축하합니다.

 

  예천군족구협회(慶北道知事旗 足球大會, 郡部 綜合 獎勵賞) [記事] : 예천군족구협회(회장 하종형)가 2013년 6월 29일, 30일 양일 간 성주군 성주중학교에서 열린 제11회 경북도지사기 족구대회에서 군부 종합 장려상을 수상했다. 이날 대회에서 일반부, 40대, 50대 경기에 출전해 우수한 성적으로 군부 종합 장려상의 기쁨을 누렸다.(醴泉新聞 2013.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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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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