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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349) : 김대현(원장)-김덕공-김덕린(전적)(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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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동추 사랑방 .129] 머리카락 짚신) [記事] : 마음을 다하는 '진심(盡心)'을 보기 힘든 요즘이다. 사욕을 위해 양심과 준법을 저버리는 일이 다반사인 이 시대의 우리를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가 있어 소개한다. 연재기사 '불천위 기행' 취재 중 '풍산김씨 허백당 세적(世蹟)'을 살펴보다 알게 된 내용이다. 허백당(虛白堂) 김양진(1467∼1535)의 증손자인 유연당(悠然堂) 김대현(1553~1602)과 관련된 이야기다. 두 사람 모두 불천위(큰 공적이나 학덕으로 영구히 사당에 모시고 제향하도록 한 신위) 인물이다. 유연당이 산음(山陰 : 경남 산청) 관아에서 사망했다. 함양군수는 여러 고을에 부음을 내고, 필선(弼善:조선시대 왕세자 교육을 담당하던 시강원의 정4품 벼슬) 권집, 정언(正言: 사간원 언관) 오장, 생원(生員) 박문양 등이 수의를 마련하고 염습을 도와 지성으로 상을 치렀다. 그리고 사망한 지 5개월 후(음력 8월) 선영인 광석산(경북 예천)에 안장됐다. 장례를 마친 몇 달 뒤인 겨울 어느 날, 그의 아들이 어머니인 유연당 부인 전주이씨에게 여느 때처럼 문안을 드리러 갔다. 그런데 이씨는 방안인 데도 머리에 흰 무명 수건을 둘러쓰고 있었다. "어머니 웬 수건을 쓰고 계십니까?" "겨울철이라 머리에 선뜩한 바람이 이는구나." 아무래도 이상한 느낌이 든 아들은 "어머니 그 수건 어디서 나왔습니까" 하고 물으면서 손을 이씨 머리 쪽으로 내밀었다. 이씨는 수건을 꾹 누르며 "나는 이 수건을 오랫동안 벗을 수가 없다" 하고는 눈물을 삼키며 일어서더니, 벽장 안에서 검은 줄이 얼룩얼룩한 짚신 한 켤레를 내놓았다. 신을 살펴보던 아들은 깜짝 놀라면서 "어머니 어찌된 일입니까. 이 신은…" 하며 두 손을 꼭 잡았다. "지난 봄, 너의 아버지 초상에 도와준 산음 고을 사람들에게 결초보은하고자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의 모든 정성을 다 드리기 위해 삭발하여 짚과 함께 신을 삼게 했다. 내 성의이니 그 분들에게 갖다 드려라." 아들은 그 신을 깨끗한 보자기에 싼 다음 가슴에 안고 500리 길을 떠났다. 수일 후 산음의 권집에게 사실을 이야기하고 신을 싼 보자기를 건네주니, 그는 깜짝 놀라면서 그 정성어린 물건을 거절할 수도 반송할 수도 없어 오장, 박문영 등과 의논한 끝에 작은 사당을 지어 보관했다. 그 후 270여년이 지난 1870년대 어느 날, 그곳 산음의 권씨 댁에서 동도회(同道會) 제현의 후손들이 모임을 가졌는데, 그때 유연당 후손 김병황이 참석했다가 그 사람들이 사연과 함께 돌려주는 신을 받아 곱게 싸안고 돌아와서 광석산 묘소 곁에 묻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읽었을 때 감로수를 마신 듯한 기분이었다. 이야기 주인공인 이씨 부인은 장성한 아들 8형제를 두었는데 모두 소과에 합격하고, 이들 중 5형제는 대과에 급제했다. 당시 인조 임금은 이 일을 '8련5계지미(八蓮五桂之美)'라며 칭찬했다.(嶺南日報 2010-09-16)
김대현 : [不遷位 기행 .43] 학사 김응조(1587∼1667년)/ 2012.02.08 | 영남일보/ 대접하지 못하고 흰 망아지를 문간에 묶어둘 수도 없으니 이것이 세 번째 한스러움이다.’ 학사의 부친은 유연당(悠然堂) 김대현이다. 산음현감 등을 역임한 유연당도 불천위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9형제를 두었는데, 일찍 ...(daum 2012)
김대현 : 과거시험 전국 4위 “영주엔 왜 잘 알려진 선비가 없나?”/ 2010.12.07 | 영주시민신문/ 1587~1667, 호鶴沙, 본관 풍산) 선생은 영천군 봉향리(현 영주시 하망동)에서 유연당 김대현의 여섯 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유연당 김대현은 영주에 입향 직후 ‘이산서원’의 원장을 맡을 만큼 학덕이 뛰어난 인물이었다...(daum 2012)
김대현 : [경북포토] 경상북도 "지방문화재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예고"/ 2008.04.12 | FMTV/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영주 유연당 문화재로 지정되는 영주시 하망동 소재『영주 유연당』은 유연당 김대현(金大賢, 1553~1602)이 1589년(선조 22) 그의 외가가 있던 봉향리에 건립했으며, 김대현이 거주하면서 전란...(daum 2012)
김대현 : 경북도, ‘영덕 화수루 및 초가까치구멍집’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예고/ 2008.03.19 | 뉴스와이어 | 미디어다음/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문화재로 지정되는 영주시 하망동 소재 『영주 유연당』은 유연당 김대현(金大賢, 1553~1602)이 1589년(선조 22) 그의 외가가 있던 봉향리에 건립했으며, ...// 영덕 화수루와 까치구멍집 국가지정문화재 지정 예고/ 2008.03.19 | 대구인터넷뉴스// 경북도, 지방문화재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예고/ 2008.03.19 | 연합뉴스보도자료 | 미디어다음(daum 2012)
김대현 : ‘유연당’ 도지정문화재로 지정 전국 3위 문화재보유도시의 저력/ 2008.03.24 | UGN경북뉴스/ 유연당은 山城(현 영주중앙의 구성공원)의 남쪽을 대표하는 고택으로 동쪽의 삼판서 고택(현 복원 중)과 서쪽의 백암고택(현 철거되고 없음)과 함께 이곳의 3대 고택 중 하나로, 김대현...// 하망동「유연당」도지정문화재로 지정/ 2008.03.25 | 영주신문(daum 2012)
김대현 : 안동의 인물 - 학사(鶴沙) 김응조(金應祖)/ 2008.07.02 | 안동넷/ 공은 허백당(虛白堂) 김양진(金楊震)의 증손인 유연당(悠然堂) 김대현(金大賢)의 아홉 자제 중 여섯째 자제이며 자는 효징(孝徵) 호는 학사(鶴沙) 휘는 응조(應祖)이며 본관은 풍산(豊山)이다. 16세 때 부친을 여의고 줄곧 ...// 학사(鶴沙) 김응조(金應祖)/ 2008.07.02 | 안동넷(daum 2012)
김대현 : 유연당 김대현(1553~1602)/ Daum 블로그 | 2011.12.09/ 유연당 김대현(1553~1602) 김대현은 오미동 풍산김씨 14대이며 김농의 장남으로, 한양 장의동(壯義洞)에서 태어났다. 1582년(선조 15) 생원시에 합격하였다. 장성해서 영남으로 돌아와 23세에 부친의 명을 받아 오릉동의 집을.../ blog.daum.net/shgh1225/ 자즐보쉼터(daum 2012)
김대현 : 제 목 : [52호]인물-넉넉한 덕과 단아한 장중 유연당 김대현/ 웹문서 | 2009.05.08/ 인물 한 둘은 난 곳이 바로 안동이고 보면 인물이 나는 것도 터 덕을 전혀 안보는 것은 아닌가 보다. 유연당의 내력 김대현(金大賢,1553-1602)의 자는 희지(希之)이고 호는 유연당(悠然堂)이다. 본관은 풍산이다. 고려조.../ sarangbang.andong.net(daum 2012)
김대현 : 유연당 김대현/ Daum 블로그 | 2010.12.06/ 성명 : 김대현(金大賢) , 1553년 ~ 1602년 본관 : 풍산(豊山) 자 : 희지(希之) 호 : 유연당(悠然堂) 출생지 : 한양(漢陽) 장의동(壯義洞) 분묘지 : 예천 광석산(廣石山) 입사경로 : 1582년(선조 15) 생원시(生員試) 급제, 이덕형.../ blog.daum.net/ 수산// 유연당 선조 사적 --국학진흥원 자료 펌/ Daum 카페 | 2008.03.17(daum 2012)
김대현 : 유연당 김대현 문집 해제에 있어서/ 웹문서/ 애쓰시는 진흥원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를 드립니다. 국학진흥원 자료를 많이 이용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유연당 김대현 문집 해제 부분의 말미에 그의 다섯 째 아들 등과 운운 한 것은 오류입니다. 유연당 선생의 아들은.../ ugyo.net(daum 2012)
김대현 : 넉넉한 덕과 단아한 장중 유연당 김대현--이해영 안동대 교수/ Daum 카페 | 2008.02.25/ 작성자 : 이해영 작성일 : 2000-11 제 목 : [52호]인물-넉넉한 덕과 단아한 장중 유연당 김대현 조선 인물의 반은 영남에서 나고 영남 인물의 반은 안동에서 났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사랑방 『안동』 ‘안동의 인물’을.../ cafe.daum.net/vndtksrla1/Df1O/14 | 풍산김씨좌윤공종중(daum 2012)
김대현 : 유연당, 희지 김대현(金大賢)/ 웹문서 | 2009.03.21/ 유연당, 희지 김대현(金大賢) 풍산(豊山) 김대현(金大賢) 1553(명종 8)∼1602(선조 35). 조선 초기의 학자. 본관은 풍산. 자는 희지(希之), 호는 유연당(悠然堂). 경상북도 출신. 아버지는 장례원사의(掌隷院司議) 농중.../ www.artsnet.co.kr(daum 2012)
김대현 : 유연당 김대현 선조/ Daum 카페 | 2008.07.10/ 유연당(悠然堂) 공은 아들 아홉 형제를 두었는데 여덟 형제가(한 명은 17세에 향시에 장원하고 선유하다 익사하였음) 모두 사마시(司馬試:생원 ...(朝鮮) 오백년사(五百年史)에 유일한 성자(聖者)로 선조(宣祖) 때 수령 김대현(.../ cafe.daum.net/vndtksrla1/Df1O/49 | 풍산김씨좌윤공종중(daum 2012)
김대현 : 풍산김씨 유연당 이야기/ Daum 블로그 | 2010.10.31/ 시를 보는 안목은 커지는데 취해 글씨 쓰니 때때로 얼룩이 지네. 이 시는 백암(栢巖) 김륵(金?)이 김대현의 유연당 운자에 차운한 작품이다. 유연당은 그 골목이 성곽 남쪽에 이어져 있고 유연당 주변의 시냇물은 성곽 밖.../ blog.daum.net/ 수산(daum 2012)
김대현 : 유연당/ 웹문서/ 유연당 김대현 자는 희지이고 호는 유연당이며 본관은 풍산으로 청백리 김양진의 후손이다. 문과에 올라 산음 현감으로 있다가 임진왜란이 일어난 후 경상도 안집사 김늑과 함께 의병활동을 하였다. 성격이 성자와 같아 그에.../ pungsan.x-y.net(daum 2012)
김대현 : 풍산 오미동 (풍산김문)/ Daum 블로그 | 2011.10.28/ 풍산김문의 위명은 익히 들어왔다. 물론 오록의 위명도 같이.... 오미동이란 동이름은 인조조 당시 유연당 김대현의 아들 8형제가 모두 사마시에 오르고 그 중 5형제가 문과에 합격함으로서 당시 유림을 경악케 했다.../ blog.daum.net/kumho1983/ 태평연화 의인지 촌(daum 2012)
김대현 : 유연당문집 중 기군문잡사 표지/ 민주화운동이미지자료/ ref.daum.net/item/ 국가지식포털(daum 2012)
김대현 : 경상북도 영주시청 문화관광 홈페이지의 영주 유연당입니다./ 웹문서 | 2009.05.24/ (悠然堂) 문화재자료 제534호 소재지 : 경상북도 영주시 하망동 288-2 지정일자 : 08. 3. 24 이 건물은 유연당 김대현(金大賢 : 1553 1602)이 선조 22년(1589)에 그의 외가가 있던 봉향리(奉香里 : 현 휴천동)에 건립하였다.../ tour.yeongju.go.kr(daum 2012)
김대현 : [不遷位 기행 .9] 허백당 김양진/ 네이버 블로그 | 2011.11.07/ 바꿨다. 지금의 동명인 오미(五美)는 인조 때인 1629년에 지어졌는데, 사연이 특별하다. 잠암의 손자인 유연당 김대현이 많은 아들을 잘 키우면서 온 나라에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일찍 사망한 술조를 제외한 8형제가 모두.../ blog.naver.com/cjkim_1/ 청록님의 세상이야기(daum 2012)
김대현 : 경북신문/ 웹문서/ 심의를 거쳐 영주의「유연당」을 3월 24일 도 문화재 자료 534호로 지정고시하였다. 영주 유연당은 유연당 김대현(悠然堂 金大賢, 1553~1602)이 1589년(선조 22) 그의 외가가 있던 봉향당(奉香里, 휴천동)에 건립했다. 그.../ kbnews.net(daum 2012)
김대현 : 미균 황유정 판서 현액시/ Daum 카페 | 2008.10.21/ ( 병선쇠초석양중 ) 塵生東閣風流遠 ( 진생동각풍류원 ) 誰識高名滿大東 ( 수식고명만대동 ) 悠然堂 金大賢( 유연당 김대현 ) 늙은나무 허물어진 담장 텅빈 옛 집 병든 매미 시든 풀 노을 지누나 먼지 낀 동각 풍류 멀어지고 그.../ cafe.daum.net/junganghwang/Rh4/218 | 황씨중앙종친회(daum 2012)
김대현 : [전통건축답사] 안동 풍산읍 풍산김씨 종택/ 네이버 블로그 | 2011.03.12/ 경상북도 지정문화재 민속자료 38호로 1982년 지정 원래 조선 선조(재위 1567∼1608) 때의 학자 유연당 김대현(1553∼1602) 선생이 세웠다고 한다. 지금 있는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버린 것을 선조 33년(1600)에 학호.../ blog.naver.com/laquint/ 집을 그리는 사람의..(daum 2012)
김대현 : 안동풍산김씨종택/ 우리사이닷컴/ * 요약설명 안동풍산김씨종택은 선조 때의 학자인 유연당 김대현 선생이 창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에 소실되고 1600년에 통훈대부 사헌부 지평을 지낸 학호 김봉조 공이 다시 건립하였다고 한다. * 상세설명 안동풍산김씨종.../ www.wooricy.com(daum 2012)
김대현 : 오미동 풍산김씨의 역사와 도림추원사 / 서성훈 (안동대학교 사학교 조교)-.../ Daum 카페 | 2010.02.14/ 고건축이 남아있다. 이 중에서도 특히 오미마을을 대표하는 문화재는 추원사와 도림강당이다. 추원사는 유연당 김대현을 위시하여 그 자제 八蓮五桂 등 모두 아홉 분의 위패를 모셔두고 선조의 공덕을 기리는 향사를 지내는.../ cafe.daum.net/pungsankim/BxLQ/9 | 풍산 김씨 충주파(daum 2012)
김대현 : 장암정이야기/ Daum 블로그 | 2010.09.22/ 海士) 김성근(金聲根, 1835~1919)이 썼다. 누정 이야기 - 김창조의 모범, 아버지 김대현 장암 김창조는 유연당 김대현의 3남이다. 김대현은 어려서 우계 성혼에게 배웠다. 그는 보지 않은 글이 없을 정도로 학문이 깊었으며.../ blog.daum.net/kumho1983/ 태평연화 의인지 촌(daum 2012)
김대현 : 세전서화첩(世傳書畵帖)/ 네이버 블로그 | 2010.07.25/ 총 65쪽으로 20쪽의 그림과 설명으로 그림마다 우측 상단에는 표제가 적혀 있는데, 16세기 인물인 유연당 김대현 (1553 ~1602)의 고조로부터 손자에 이르는 인물들의 생애와 관련된 내용들을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후대에.../ blog.naver.com/dankoon2001/ 단청 그 아름다움(daum 2012)
김대현 : 오미동 도림강당/ 우리사이닷컴/* 요약설명 이 건물은 선조 때의 학자 유연당 김대현 선생과 그 자제 8형제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추원사와 그에 딸린 강당이다. 선생의 8형제 중 5형제가 문과에 급제하여 국왕이 이 마을 이름을 오미리라고 했다는 전설이.../ www.wooricy.com(daum 2012)
김대현 : 安東 47位 불천위/ Daum 블로그 | 2011.08.09/ 이대산은 이수은의 현손이다. 풍산 오미리에 가세를 편 풍산김씨에는 불천위가 3位이다. 즉, 죽봉 김간, 유연당 김대현, 허백당 김양진이다. 허백당의 증손이 유연당이고, 죽봉의 고조부가 유연당이다. 안동지역에서 씨족이.../ blog.daum.net/cauly/ aim high shoot low(daum 2012)
김대현 : (주)영주인터넷방송/ 웹문서/ 마음의 병보다 깨끗하다,“고 하여 끝까지 우정을 잊지 않았다. 임진란이 끝난 후 기민 구제에 전력을 쏟았다. 유연당 김대현은 영주에서 태어나, 학문으로 엄격한 자녀교육을 근본으로 당대에 이름 있는 家門으로 집안을.../ iybc.co.kr(daum 2012)
김대현 : 우금(友琴)의 유래(由來)/ Daum 카페 | 2011.11.19/ (西派)와 동파(東派)로 분류되었다. ※ 김학사 응조 : 봉화군 물야면 오록에 있는 풍산 김문 (豊山 金門)의 유연당 김대현의 아들이며, 사간원(司諫院)의 대사간(大司諫)으로 당시 영주고을에서, 소고(嘯皐) 박승임(朴承任)과 함께.../ cafe.daum.net/dnrma33/IhTD/8 | ♧만간암♡가족♡카페♧(daum 2012)
김대현 : 약포 정탁 시고(보물)--화남공 유연당공과 관련됨/ Daum 카페 | 2011.05.30/ 1 봉차화남공 기시희지대현아계(奉次華南公 寄示希之大賢雅契)에 1수만 실렸다. 김대현은 본관이 풍산(豊山), 자는 희지(希之), 호는 유연당(悠然堂)이다. 성혼(成渾)의 문인으로 1582년 생원시에 합격했다. 1595년 성현도찰방.../ cafe.daum.net/vndtksrla1/Df1Q/42 | 풍산김씨좌윤공종중(daum 2012)
김대현 [專門資料] : [전문사전] 유연당문집 중 기군문잡사 표지/ 유연당문집은 조선 초기의 문신 김대현(金大賢, 1553~1602)의 시문집으로, 편자는 미상. 이 중 잡저의 (기군문잡사)는 1598년 명나라 장수 형개(邢坎)의 접대낭청(接待廳)에 있을 때 겪은 일을 기록한 것. 4권 2책./ 한국학중앙연구원(daum 2012)
김대현 [專門資料] : [전문사전] 오미동 도림강당 전경/ 묘우(廟宇)인 추원사(追遠祠)와 그에 딸린 강당. 추원사는 조선 선조 때의 학자 유연당(悠然堂) 김대현(金大賢)과 그 자제 8형제의 위패(位牌)를 모신 사당./ 한국학중앙연구원(daum 2012)
김대현 [專門資料] : [전문사전] 안동풍산김씨종택 전경1/ 선조 때의 학자인 유연당(悠然堂) 김대현(金大賢)이 창건했으나 임진왜란 때에 소실./ 한국학중앙연구원(dau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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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공 : 예천의 금석문 1 | 간행년:2003 저자:예천문화원 발행처:예천문화원 / 淸岡齋 金寧金公(德恭) 墓碣銘/ ...청강재(淸岡齋) 김녕김공(덕공) 묘갈명공의 휘는 덕공(德恭)이요 자는 노숙(魯叔)이요.../ 예천 내용이 수록된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넷 유교관련도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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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린 : 승정원일기/ 영조 16년 10월 17일 (갑인) 원본923책/탈초본50책 (8/11) 1740년 乾隆(淸/高宗) 5년/ ○ 元景夏啓曰, 義禁府啓, 海陵君?, 令該府處之事及良才察訪金德麟, 平丘察訪鄭纘僑等拿問事, 傳旨啓下矣。鄭纘僑今方待命, 卽爲拿囚, 而?以沐浴事, 下去黃海道文化地, 時未上來, 金德麟時在慶尙道龍宮地本家云。依例發遣府羅將, 拿來, 何如? 傳曰, 允。
김덕린 : 승정원일기/ 영조 17년 1월 28일 (갑오) 원본927책/탈초본50책 (21/31) 1741년 乾隆(淸/高宗) 6년/ ○ 又以禁府言啓曰, 良才前察訪金德麟, 令該府勘處事, 傳旨啓下矣。金德麟, 時在慶尙道龍宮地本家云。依例發遣府羅將, 拿來, 何如? 傳曰, 允。
김덕린 [記事] : 영조실록 31권/ 영조 8년(1732 임자 / 청 옹정(雍正) 10년) 3월 19일(병자) 1번째 기사/ 강경에서 수석한 유생 이산두․김덕린․박홍규에게 직부 전시를 명하다/ 유생(儒生) 이산두(李山斗)․김덕린(金德麟)․박홍규(朴鴻逵)에게 직부 전시(直赴殿試)6321) 하도록 명하였었는데, 강경(講經)에서 수석(首席)을 차지하였기 때문이었다./ 【태백산사고본】 24책 31권 14장 B면/ 【영인본】 42책 300면/ 【분류】 *인사-선발(選拔)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註 6321]직부 전시(直赴殿試) : 전시에 나갈 수 있는 자격을 얻던 일. 전시는 임금이 친림(親臨)하여 행하던 과거의 마지막 시험으로서, 여기에서 그 결과에 따라 갑과(甲科)․을과(乙科)․병과(丙科)의 등급을 정했음. ☞(www.history.go.kr 2009)
김덕린 [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14년 7월 3일 (계축) 원본874책/탈초본48책 (9/26) 1738년 乾隆(淸/高宗) 3년/ ○ 吏批, 以李德壽․趙遠命爲兼同經筵, 李挺郁爲司書, 鄭履儉爲修撰, 具程爲長淵府使, 田天祥爲遂安郡守, 魚錫胤爲瑞興縣監, 尙履昌爲康翎縣監, 許錫爲黃海都事, 李周鎭爲大司成, 金德麟單付校書正字。(www.history.go.kr 2009)
김덕린 [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15년 7월 28일 (임신) 원본894책/탈초본49책 (23/29) 1739년 乾隆(淸/高宗) 4년/ ○ 以吳命欽爲禮賓直長, 閔樂洙爲長興直長, 趙德常爲內贍直長, 權國衡爲尙瑞副直長, 金一基爲繕工副奉事, 韓命德爲軍資直長, 兪直基․金龜瑞爲監察, 李匡度爲司評, 洪采輔爲繕工監役, 南至爲禮曹佐郞, 朴弼載爲修撰, 李成中爲文學, 李德重爲兼輔德, 崔雲龍爲右通禮, 韓處熙․徐性慶爲典籍, 李德升爲繕工假監役, 沈?爲軍資奉事, 李齊衡爲惠陵奉事, 趙台祥爲司饔奉事, 李宜炳爲濟用副奉事, 沈?爲孝陵奉事, 兪性中․申晙爲司饔主簿, 趙鴻逵爲典設別提, 李?爲掌苑別提, 南鶴聲爲引儀, 洪鏡輔爲禮賓別提, 安廷輔․黃在河爲監察, 朴弼濂爲繕工監役, 沈益聖爲(爲)貞陵令, 權一衡爲軍資正, 黃梓爲兼東學敎授, 兪最基爲兼南學敎授, 李昌碩爲相禮, 閔百行爲兵曹佐郞, 呂光世爲典籍, 成胤績爲南海縣監, 吳命厚爲咸平縣監, 鄭愼儉爲漢城主簿, 兪彦民․韓德一爲禁府都事, 金弘澤爲繕工假監役, 尹得運爲內侍敎官, 黃景源爲禁府都事, 朴麟爲永禧殿參奉, 朴贇爲懿陵參奉, 尹琰爲惠陵參奉, 安欽爲崇陵參奉, 林志浩爲宣陵參奉, 李碩輔爲章陵參奉, 崔昌億爲尙衣僉正, 崔駿興爲燕岐縣監, 李重慶爲敬陵參奉, 李最源爲思陵參奉, 李彦基爲恭陵參奉, 李壽?爲寧陵參奉, 金道建爲康陵參奉, 金昌運爲光陵參奉, 金允升爲英陵參奉, 沈廷儀爲長陵參奉, 李廷瑗爲厚陵參奉, 魚有瑞爲長寧殿參奉, 金台南爲莊陵參奉, 徐進修爲敦寧參奉, 韓夢麟爲中部參奉, 李麟祥爲北部參奉, 李道普爲泰陵參奉, 尹東涵爲司圃別提, 柳紘爲敬陵令, 趙重晦爲說書, 司?寺直長黃?, 司饔直長張啓紹相換, 宗簿直長吳命鼎, 順陵直長洪應麟相換, 典籍李禎恒․兪應基․金德麟, 養賢庫直長姜守珪, 竝單付, 申益三爲晉州營將, 安允恭爲景福假衛將, 金大興․孫秀大爲訓鍊主簿, 朴大源爲四山監役, 李邦綏․崔吉祚爲宣傳官, 崔尙衡爲訓鍊正, 李景春爲惠山僉使, 李春馨爲南虞候, 李行相爲平安兵虞候, 沈德一爲乶下僉使, 金振光爲碧團僉使, 林蕃爲美錢僉使, 沈義希․李重錫․姜啓周․黃?․李行謙․尹勉述․李殷錫․元重會․韓光國爲武兼, 徐幹世爲平安監營中軍, 沈?爲乫波知僉使, 宋載遇爲五衛將, 任昌夏․李?․李泰燁․李彦燾․趙龜彬․金一龍․趙儆․金宗赫爲部將, 姜處恒․金慶兌․鄭興萊․李世冑․申宗國․金處良․趙完玉爲守門將, 李吉輔爲副率, 李昌碩爲古?山萬戶, 劉漢章爲防垣萬戶, 張興漢爲山羊會萬戶, 朴宗周爲忠壯將, 洪重一爲北評事, 李彦衡․沈廷最爲洗馬, 副護軍李會昌, 副司直李德重, 副司正鄭純儉, 尙州浦權管金之商, 黃土岐權管李枝蕃, 寶化堡權管姜文相, 加軒洞權管金聖興, 直洞權管金廷權, 甲巖權管朴再茂, 小農堡權管許奎, 自作仇非權管尹瑾, 同仁權管朴整羽, 馬馬海權管李錫台竝單付。(www.history.go.kr 2009)
김덕린 [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16년 3월 25일 (병인) 원본909책/탈초본49책 (8/19) 1740년 乾隆(淸/高宗) 5년/ ○ 洪聖輔, 以吏曹言啓曰, 頃日政承旨差出時, 望草旣出, 而正書之際, 兵曹參知金若魯, ?然落書, 事之可駭, 莫此爲甚。本曹假郞廳南胤寬, 卽爲汰去, 其代以成均館典籍金德麟, 差下察任, 何如? 傳曰, 允。(www.history.go.kr 2009)
김덕린 [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16년 9월 2일 (경오) 원본920책/탈초본50책 (11/19) 1740년 乾隆(淸/高宗) 5년/ ○ 吏批, 以魚有琦爲江界府使, 李鎭嵩爲渭源郡守, 金德麟爲良才察訪, 田興齊爲造紙別提。武甲科 全命肇爲典籍。文甲科(www.history.go.kr 2009)
김덕린 [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16년 10월 17일 (갑인) 원본923책/탈초본50책 (8/11) 1740년 乾隆(淸/高宗) 5년/ ○ 元景夏啓曰, 義禁府啓, 海陵君?, 令該府處之事及良才察訪金德麟, 平丘察訪鄭纘僑等拿問事, 傳旨啓下矣。鄭纘僑今方待命, 卽爲拿囚, 而?以沐浴事, 下去黃海道文化地, 時未上來, 金德麟時在慶尙道龍宮地本家云。依例發遣府羅將, 拿來, 何如? 傳曰, 允。(www.history.go.kr 2009)
김덕린 [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17년 1월 25일 (신묘) 원본927책/탈초본50책 (14/15) 1741년 乾隆(淸/高宗) 6년/ ○ 二十五日巳時, 上御熙政堂。大臣․備局堂上引見時, 領議政金在魯, 左議政宋寅明, 吏曹判書趙尙絅, 戶曹判書金始炯, 漢城判尹金聖應, 訓鍊都正具聖任, 行司直徐宗玉, 兵曹參判李周鎭, 左承旨宋秀衡, 校理尹得敬, 司諫權賢, 假注書趙明鼎․趙暾, 記事官愼爾復․邊是重入侍。領議政金在魯進伏曰, 日間風寒如此, 聖體若何? 上曰, 近來差勝矣。在魯曰, 有待下敎入侍之命, 而久未承下敎矣。丸劑連進耶? 上曰, 丸劑連服矣。在魯曰, 大王大妃殿氣候, 何如? 上曰, 安寧矣。中宮殿氣候, 何如? 上曰, 安寧矣。王世子氣候亦何如? 上曰, 好在矣。賢嬪宮氣候, 何如? 上曰, 平安矣。在魯曰, 丸劑更爲製進乎? 上曰, 尙有餘, 觀勢而製進宜矣。在魯曰, 小臣有病, 且因鞫坐, 不赴備坐久矣。根本罪人, 今已物故, 無可爲事矣。上曰, 卿等入來後, 欲問之矣。備局公事, 自此爲先陳達。在魯曰, 節屆春耕, 種麥甚急, 而尤甚處, 則救死不贍矣。前頭之慮, 實大矣。江原北道, 別爲?念, 而京畿峽中之邑, 方切遑遑云矣。上曰, 近峽之邑如此乎? 在魯曰, 峽民遑遑之狀, 因峽邑守令聞知矣。以不設賑故, 民間遑急, 甚於江原北道矣。上曰, 京畿句管堂上誰耶? 在魯曰, 徐宗伋也。未及入侍矣。在魯曰, 俄因金始炯, 備聞民間遑急事矣。左議政宋寅明曰, 臣等亦憂慮矣。金始炯, 自鄕上來, 目見民間遑急之事。金始炯曰, 臣得暇下鄕, 往見楊州一境, 景象有驚心慘目者。前秋在楊州時, 年事甚好, 及其秋成, 出米甚小, 民間形勢, 則甚爲遑急, 蓋楊州近峽, 故被災甚酷。江原道被災處, 則朝家?念甚勤, 故民生庶有生活之道矣, 而京畿則朝家?念, 旣不如江原道, 而今番耳聞目擊, 則春日漸長, 農務正迫, 而誠爲可悶矣。在魯曰, 楊州雖非尤甚邑, 而猶尙如此, 況他邑乎? 寅明曰, 勿論楊州, 其他畿邑, 聞甚遑急矣。上曰, 近峽之邑, 何故多被災耶? 田多畓小而然耶? 寅明曰, 畿營近而不爲申報故也。在魯曰, 監司晩請賑穀, 故劃給三千餘石矣。上曰, 有如燈下不明者然, 畿伯雖狀請, 而今日次對, 亦爲引見事, 注書出去, 分付。出榻敎 上曰, 重臣所達, 是矣。畿伯, 亦未詳知年事矣。在魯曰, 北伯狀啓中, 盜賊一款, 非狀啓之事也。徐宗玉曰, 臣待罪西藩時, 寧遠郡守柳鎭斗, 嚴於治盜, 盜賊皆散落矣。上曰, 其武弁何如人耶? 猛列乎? 寅明曰, 卽柳爀然一家人, 而武家大族也。宗玉曰, 朴文秀狀啓中, 北道本無盜賊, 而寧遠之盜皆踰入, 令廟堂, 申飭西道云者, 此是畏鎭而逃避入北者也。上曰, 何如? 在魯曰, 散在於永興․定平之間, 一派踰入慶尙道云矣。成川邑內, 富家明火賊事, 聞甚驚駭矣。其後谷山, 多有被捉者, 故肅川․平壤․順安等邑, 更無影響云矣。上曰, 欲問者久矣。捕廳所謂團名, 何也? 宗玉曰, 團名, 自古有之, 此乃賊輩, 廣張形勢之意也。上曰, 御將年少, 或不知之, 而訓將則想知之矣。具聖任曰, 此是賊輩, 自中行用之道[通]語也。宗玉曰, 古詩云, 不過行儉德, 盜賊本王臣, 似不必深慮也。若修德則自爲良民矣。上曰, 宰臣所達, 是矣。予意亦如此矣。在魯曰, 閭閻例多訛傳之語, 或有白地誤傳之弊矣。寅明曰, 臣於此盜, 雖無深慮, 而第於治盜一節, 不可少緩。大明末, 南方多流賊, 而一任招撫而不思鋤治之道, 終至於彌滿而不能制, 此不可不懲矣。上曰, 此則不然。非但不能猛治, 只事招撫而已, 本不能修德故耳。上曰, 雖以宋朝事言之, 胡虜在眞宗之時, 則不敢來侵, 在徽․欽之時, 長驅入來, 唯在其時之如何? 在魯曰, 正如上敎矣。在魯曰, 北伯狀啓, 請嚴飭關西云云。而此非回啓之事。上曰, 然矣。上曰, 皇朝事予諱而不言, 而前日元景夏所達是矣。撫綏而嚴法而已。嚮者擇守令事, ?已下敎, 而此亦擇守令爲上矣。寅明曰, 柳鎭斗不可無褒獎之道矣。上曰, 不能感化其民, 使之逃散爲盜, 予不欲褒獎矣。宗玉曰, 孟山?, 曾已貶下矣。還上未捧三千餘石, 事極駭然, 歲飜, 不得已停捧矣。
上曰, 誰也? 宗玉曰, 趙重呂也。在魯曰, 高山察訪李聖海, 因事上京矣身死, 其代, 不可不?速差送矣。上曰, 高山察訪之代, 以在京無故人, 口傳差出, 一兩日內發送。出榻敎 宗玉曰, 小臣交龜時, 狀請出代, 而吏曹未知有何故, 而尙不出代矣。高山察訪口傳時, 亦一體差出, 何如? 上曰, 都目雖近, 豈惜一闕乎? 孟山縣監居下之代, 亦爲口傳差出, 一兩日內發送。出榻敎 在魯曰, 孟山事, 極爲無據, 今方被拿命, 而判金吾, 方入侍矣。不可一番供辭而止, 不可不各別嚴處矣。上曰, 依爲之。上曰, 侍講院官員, 以開筵事疏請矣。卿意, 何如? 入學前開筵乎? 在魯曰, 自前每於入學前開講矣。固知在內, 多有勸獎, 而睿質夙成, 正急開筵矣。上曰, 少退, 有頃更命入侍。寅明曰, 入學開講, 是先朝舊例, 且殿下家法也。世子已岐?, 擇春和日, 間間開講爲好。上曰, 何書當先講乎? 童蒙先習, 何如? 冑筵雖設, 何必排日爲之乎? 在魯曰, 自前講筵始爲之, 當連次稟達, 而姑待春和, 宜矣。上曰, 然矣。在魯曰, 先講童蒙先習, 先知大綱領, 甚好矣。上曰, 初意則小學大文, 欲爲之矣。童蒙先習易知, 而功效則小學似愈矣。在魯曰, 小學則朱子之文, 文義長深, 沖年讀之, 至如元亨利貞, 則實難曉也。上曰, 元亨利貞, 臂[譬]喩猶易矣。上曰, 小學已抄出, 而內則二編, 正宜於此時講之也。在魯曰, 此則好矣, 且史記不可闕也。史略, 自內間間讀之乎? 上曰, 童蒙先習, 多是史略之語矣, 孝經則難解矣, 予猶難之。在魯曰, 其義深矣。孝經則小學後講之無妨矣。上曰, 入侍儒臣, 無兼官矣。上曰, 小學․孝經․童蒙先習中, 卿等以童蒙先習爲勝乎? 上曰, 注書出去, 招畿伯入侍, 問於侍講院, 先朝所先冊子, 以何冊先爲之事, 及日子排日與否, 問啓。京畿監司李益炡入侍。上曰, 畿伯入侍之意有之, 何其沓沓也。何不早思賑濟之道乎? 益炡曰, 陳疏請之, 狀啓請之矣。在魯曰, 畿伯疏請賑穀, 而民間方切遑急云矣。上曰, 畿邑皆卿等丘墓之鄕, 而卿等尙不知其如此矣。畿伯前進。上曰, 加平郡守金泰衍, 眞所謂焉用牛刀者也。申維翰, 勤幹之人耶? 吳志哲爲治何如也? 益炡曰, 能善治矣。寅明曰, 如吳志哲者, 無勢之人也。上曰, 左相言是矣。道臣必於如此之人, 顧恤, 可也。益炡曰, 臣所謂三衙穀物, 依狀請石數然後可以補賑矣。始炯曰, 戶曹元會耗, 無可推移之道矣。上曰, 重臣旣目覩民事之遑急, 而事關自己, 猶欲不許, 戶判推考。宗玉曰, 不堪賑政之守令, 則道臣, 宜卽面請變通可矣。更詢而處之好矣。寅明曰, 不堪賑政之人, 面請罷黜, 可也。宗玉曰, 永平郡守尹尙遠, 政丞之孫也。旣遭論駁, 則似不欲仍在矣。上曰, 尹尙遠, 不欲仍在耶? 益炡曰, 一邑若遞, 則三邑俱將動矣。上曰, 道臣所達, 是矣。旣已飭勵, 又何必遞之。上曰, 申維翰, 何如? 益炡曰, 頃與之言, 疲殘不勝任, 請遞。尙絅曰, 如此之人, 盡心供職, 能爲善治矣。上曰, 吏判之言是矣。何必遞之? 周鎭曰, 維翰, 屢經郡邑, 衰且柔弱, 甚矣。上曰, 趙國彬則前已知之矣。尹尙遠爲治不苟爲題, 其意貶耶。益炡曰, 褒也。上曰, 李益炯, 靈原君之子也。爲人勤幹矣。懲贖事何謂耶? 益炡曰, 犯禁之人, 不爲杖放懲贖, 故臺啓云云矣。寅明曰, 益炡, 今番貶題至公矣。上曰, 道臣貶題, 所見甚公矣。曾見李益炯於年少之時, 今則想已老矣。他無可論事耶? 益炡曰, 然矣。上謂李益炡曰, 召卿有意, 所請亦有所施, 日後有可問事, 則當賜對, 各別留意賑政爲之, 可也。上曰, 今則三道賑事已爲區劃, 更有他事乎? 宗玉曰, 西道江邊七邑, 水災慘酷, 一兩日?死者, 至於五百人之多, 北道則決不若此, 其時驚心, 何可盡達? 前已狀聞, 至如北伯之狀聞, 臣本不欲效尤, 雖只以臣營穀物, 足以分俵調賑, 故已區劃處之。新西伯巡歷時, 必有狀聞之事矣。依施之, 似好矣。寅明曰, 海伯事誠爲可悶。今當瓜滿遞歸, 而聞年事甚凶, 而渠有私情有老母, 欲爲遞歸, 且臣五寸姪女壻, 常時情誼不泛, 故果有私情, 不爲請仍於江原監司鄭亨復請仍時矣。靜而思之, 若循私不爲請任, 則民事誠爲可悶, 故限麥秋仍任之意, 敢達。在魯曰, 及瓜而代, 金石之典, 且海西年事, 雖曰荒?, 而不至大段。臣意與左相之意, 有異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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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