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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3355:김돈(2)(祝동부초)
작성자장병창 @ 2013.07.27 06:19:26

  예천의 자랑(3355) : 김돈(응교)(2)(附 예천동부초, 25일 양궁 전국대회 우수 성적...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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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돈 [記事] : 세종실록 39권/ 세종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3월 2일(갑신) 3번째 기사/ 집현전 응교 김돈에게 새로 인쇄한 《성리대전서》를 읽어보라고 명하다/ 윤대를 행하고 경연에 나아갔다. 임금이 집현전 응교(集賢殿應敎) 김돈(金墩)에게 이르기를, ꡒ《성리대전서(性理大全書)》가 지금 인쇄되었는지라, 내가 이를 시독(試讀)해보니 의리(義理)가 정미(精微)하여 궁구(窮究)하기에 쉽지 않으나, 그대는 정상(精詳)한 사람이니 마음을 써서 한번 읽어 보라.ꡓ하니, 김돈이 아뢰기를,  ꡒ스승에게 배우지 않으면 쉽사리 궁구해 볼 수 없지마는, 신(臣)이 마땅히 마음을 다하겠습니다.ꡓ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ꡒ비록 스승을 얻고자 하나 진실로 얻기가 어렵다.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2책 39권 25장 A면/ 【영인본】 3책 118면/ 【분류】 *왕실-경연(經筵) / *사상-유학(儒學) / *출판-서책(書冊)(www.history.go.kr 2009)

 

  김돈 [記事] : 세종실록 40권/ 세종 10년(1428 무신 / 명 선덕(善德) 3년) 5월 21일(임신) 3번째 기사/ 김돈이 서한 이래 역대 왕조의 계보도를 수찬하여 올리다/ 직 집현전(直集賢殿) 김돈(金墩) 이 왕명을 받들고 서한(西漢) 이래 역대 〈왕조〉 계보도(系譜圖)를 수찬(修撰)하여 올렸다./ 【태백산사고본】 13책 40권 18장 A면/ 【영인본】 3책 131면/ 【분류】 *출판-서책(書冊) / *역사-고사(故事)(www.history.go.kr 2009)

 

  김돈 [記事] : 세종실록 48권/ 세종 12년(1430 경술 / 명 선덕(宣德) 5년) 6월 28일(정유) 2번째 기사/ 김돈이 종학의 교수의 확충과 교학 방법 등에 대해 상서하다/ 종학 박사(宗學博士) 김돈(金墩)이 상서하기를, ꡒ신이 외람되게 성은(聖恩)을 받자와 신에게 종학 박사를 제수(除授)하옵시니, 신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밤에 늦게 잠자며 보양(輔養)하는 도리를 생각하오나,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와 삼가 한두 조목으로써 감히 성청(聖聽)을 어지럽게 하옵나이다. 신은 듣건대, 예전 제왕(帝王)들은 배움을 대무(大務)로 삼지 아니한 이가 없었사온데, 그 가르침은 모두 가까운 데에서 시작되었으니, 《소학》은 ꡐ왕공(王公) 이하의 자제들이 배운다. ꡑ고 하고, 《대학》은 ꡐ천자(天子)의 원자(元子)와 증자(衆子)가 배운다. ꡑ고 하였습니다. 이러므로 한(漢)․당(唐) 때에는 혹 군국(郡國)에 종사(宗師)를 두고, 혹 왕국(王國)에 학관(學官)을 두었으니, 역시 옛 사람의 끼친 뜻에 거의 가까웠고, 조(趙) 씨의 송(宋)나라 에 이르러서 그 제도가 크게 갖추어졌으니, 그 조서(詔書)에 이르기를, ꡐ종손(宗孫)과 지손(枝孫)이 매우 많으나 교도하는 방법이 잘되지 못하였다. ꡑ하고, 근신(近臣)에게 명하여 학행(學行)이 있는 선비를 뽑아 교수(敎授) 를 삼게 하니, 그 교양하는 방법도 더욱 자상하였다고 할 만합니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전하께서는 몸소 실행하시고 마음으로 깨닫는 나머지 종친들을 위하여 학교를 세워, 인륜(人倫)의 도리를 알게 하여 성벽처럼 튼튼히 나라를 돕게 하시니 매우 거룩한 제도입니다. 비록 그러하오나 귀하게 자라난 습성(習性)을 고쳐 바로잡기는 어렵사오니, 덕행(德行)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감화시킬 수가 없으며, 문학(文學)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지도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신은 본디 타고난 성품이 용렬하고 어리석으며, 학술이 거칠고 성기어 자신을 다스리는 술법(術法)에도 어둡거든, 하물며 스승의 우두머리가 되어 그 덕을 보양(輔養)할 수가 있겠습니까. 신은 어명을 받은 날부터 항상 그 임무를 감당하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는 바이온데, 더욱 교관(敎官)의 수가 적어서 가르쳐 주는 바가 정밀하지 못하오니 더욱 두렵고 조심스런 마음을 품고 있나이다. 그러하온데 성균관에는 2품 이상은 겸 대사성(兼大司成)이나 겸사성(兼司成)이라 이르고, 3품 이하는 대사성(大司成) 이하의 벼슬이 있사온데, 종학(宗學)에는 사성(司成) 이하를 박사(博士) 로 삼으니 종학의 직임이 도리어 성균관 보다 가볍게 됩니다. 그것은 예전 교육 정책에 비추어 멀고 가까움과 친절하고 소홀한 차등이 어떠하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도덕이 있고 노성(老成)한 2품 이상의 한 사람을 임명하여 사표(師表)로 삼고, 3품 이하의 4, 5인을 조교(助敎)로 삼아서 덕성(德成)을 기르고 문예(文藝)를 강구케 하면, 왕자와 종친이 모두 연구하고 단련하여 점차로 함께 군자(君子)의 행태(行態)로 변하게 되지 않을 이가 없게 될 것입니다. 신은 듣건대, 교양하는 방법은 권하고 징계하는 술책이 없을 수 없다고 하옵니다. 비록 요(堯) ․ 순(舜) 때라도 반드시 종아리 쳐서 명심하게 한다고 하였사오니 하물며 후세에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송조(宋朝)의 종학 제도는 그 교양 권과(敎養勸課)와 시험해 뽑고, 올리고 내치는 법이 모두 태학에 따랐으니, 그 권장하고 징계하는 법이 갖추어졌다고 이를 만하온데, 이제 종학 안에서 도의(道義)에 벗어난 자와 글을 정성들여 읽지 않는 자는 비록 그때그때 위에 아뢰었으나, 그래도 범하는 자가 계속해 있습니다. 예전 주(周)나라 성왕(成王) 이 어릴 적에, 주공(周公) 이 백금(伯禽) 1580) 을 종아리 쳐서 경계하였사오니 천자의 높은 지위로서도 오히려 이와 같이 하였사온즉, 하물며 천자보다 아래에 있는 자이겠습니까. 엎드려 바라옵건대, 박사에게 명하여 작은 과실이라도 범한 자가 있거든 성균관 학령(學令)에 따라 즉시 그의 노복에게 매를 쳐서 징계하오면, 사람들이 범법하기를 중난하게 여겨 거의 게으르지 않을 것이며, 교양하는 데에 만분의 일이라도 도움이 있을 것입니다. 신은 듣자오니 주(周)나라 벽옹(?雍)1581) 에는 동쪽과 서쪽에서 와서 복역하였고, 한(漢)나라 대학에는 와서 보고 듣고 하는 사람이 대개 억만(億萬)이 된다고 하였는데, 하물며 학교 안에 있어서 비록 부리는 하인들과 같은 천인(賤人)이라도 누가 즐거워하지 아니하오리까마는, 지금 종학 안에 있는 하인으로서 일을 보는 자는 낮에는 물러가서 밥 먹을 여가도 없고, 밤에는 장번(長番)의 노고(勞苦)가 있사오니, 신은 견딜 수 없다는 탄식이 혹시 점점 일어날까 걱정되나이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유사(有司)에 명하여 무릇 종학 안에서 일을 보는 자에게는 궐내(闕內)에서 3일 만큼씩 번(番)을 바꾸어 드는 예에 따르면, 천한 하인들이라도 또한 성덕(聖德)의 아름다움에 감복하여 즐거워하고 기뻐하며 정성을 다하게 될 것입니다.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5책 48권 32장 B면/ 【영인본】 3책 243면/ 【분류】 *정론-정론(政論) / *교육-특수교육(特殊敎育) / *역사-고사(故事)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註 1580] 백금(伯禽) : 주공의 아들. ☞ / [註 1581]벽옹(?雍) : 천자의 학교. ☞(www.history.go.kr 2009)

 

  김돈 [記事] : 세종실록 53권/ 세종 13년(1431 신해 / 명 선덕(宣德) 6년) 9월 30일(신묘) 3번째 기사/ 김돈이 어버이 봉양을 위해 외직을 청하다/ 성균 사성 김돈(金墩)이 말씀을 올리기를, ꡒ신은 초야(草野)의 미천한 몸으로 성은을 입사와 뛰어올려서 성균 사성을 삼으시고, 인하여 종학 박사(宗學博士) 를 겸하게 하시와 이제 이미 해가 넘었사오니, 은총의 우악(優渥)하옵심이 실로 분수에 넘치오매, 신은 밤낮으로 그 직책을 다하기를 맹서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이 그윽이 엎디어 생각하옵건대, 신자의 직분은 충효보다 더 큰 것이 없사온데 한쪽이라도 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선후(先後)와 장단(長短)1752) 의 다름이 있기 때문에, 《경(經)》 1753) 에는, ꡐ어버이 섬기기를 효도로 하므로 임금에게 옮겨서 충성한다. ꡑ고 이르고, 《전(傳)》에는, ꡐ어버이 섬기는 날은 짧고 임금을 섬기는 날은 길다. ꡑ고 하였사오니, 이는 옛 성현이 천리(天理)에 근원하고 인정을 참착하여 만세에 교훈을 내리신 것입니다. 신의 어미가 전라도 강진현(康津縣)에 있사온데, 나이가 78세이오며, 더욱 풍랭증(風冷症)의 묵은 병이 있으므로, 신이 매양 어미를 생각하매 마음속이 어지럽습니다. 또한 신은 학문이 깊지 못하고 한갓 보고들은 작은 학식으로써 외람되게 문신의 반열에 끼어 있은 지 오래 되었사온데, 이제 만약 노모(老母)를 생각지 아니하여 풍속을 무너뜨리면, 신의 평일 몸을 닦아세우던 근본이 땅에 쓰러져 없어질 것이오니, 장차 무슨 수로 종친(宗親)의 덕을 보양(輔養)하오며, 또 무슨 얼굴로 조정에 서 있겠습니까. 옛 사람은 어버이를 위하여 외직(外職)1754) 에 나아가기를 원한 이가 있었사오니, 만일 성은을 받자와 이웃 고을의 수령을 얻게 되오면, 위로는 벼슬에 이바지할 수 있으며, 아래로는 어버이를 섬길 수 있을 것이오니, 신하와 아들의 도리를 거의 둘 다 온전히 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엎디어 바라옵건대, 도량(度量)을 크게 넓히시고 이 어리석은 뜻을 굽어 좇으시와, 효도로 다스리시는 정치를 빛내시고 풍속을 장려하시오면 다행함을 이루 이기지 못할까 하옵니다.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6책 53권 32장 A면/ 【영인본】 3책 344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윤리(倫理)/ [註 1752]장단(長短) : 섬기는 날수의 많고 적음. ☞ / [註 1753] 《경(經)》 : 효경(孝經). ☞ / [註 1754]외직(外職) : 수령을 가리킴. ☞(www.history.go.kr 2009)

 

  김돈 [記事] : 세종실록 54권/ 세종 13년(1431 신해 / 명 선덕(宣德) 6년) 10월 27일(무오) 2번째 기사/ 장흥 부사 김돈이 사조하니 인견하다/ 장흥 부사 김돈(金墩)이 사조(辭朝)하니, 임금이 인견하여 말하기를, ꡒ그대가 외직에 임명될 신하가 아닌데 그대의 글을 보고 마지못하여 임명했으니, 가거든 그대의 직무에 근실히 하라.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7책 54권 12장 B면/ 【영인본】 3책 350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www.history.go.kr 2009)

 

  김돈 [記事] : 세종실록 63권/ 세종 16년(1434 갑인 / 명 선덕(宣德) 9년) 2월 6일(갑인) 6번째 기사/ 집현전 직제학 김돈의 어머니에게 쌀․콩 등을 하사하여 그의 봉양의 뜻을 다하게 하다/ 쌀․콩 각각 10석과 젓[?]과 장(醬) 각각 한 항아리를 집현전 직제학 김돈(金墩)의 모친에게 하사하였다. 김돈이 일찍이 집현전에 들어가 오랫동안 경연(經筵)에 시종해 왔는데, 늙은 어머니가 전라도 강진현(康津縣)에 살고 있다 하여, 지방관이 되어 돌아가서 봉양하기를 빌어 장흥 도호부사(長興都護府使)에 제수되었다가, 그 임기가 차기도 전에 다시 본전(本殿)2156) 직제학으로 소환되고, 인하여 어머니를 데리고 서울로 오라고 명하였기 때문에, 드디어 이 하사가 있게 된 것이다. 그의 형인 김전(金塡)도 영암(靈巖)의 수령으로 나갔었는데, 역시 임기가 차기 전에 예조 정랑에 발탁 임명되었다./ 【태백산사고본】 20책 63권 17장 A면/ 【영인본】 3책 543면/ 【분류】 *왕실-사급(賜給) / *인물(人物)/ [註 2156]본전(本殿) : 집현전. ☞(www.history.go.kr 2009)

 

  김돈 [記事] : 세종실록 67권/ 세종 17년(1435 을묘 / 명 선덕(宣德) 10년) 3월 21일(계사) 2번째 기사/ 사신과의 강론과 제술을 대비하고자 정인지․김돈․안지․김문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예문 제학 정인지(鄭麟趾)가 가대사성(假大司成)을, 집현전 부제학 김돈(金墩)․안지(安止) 등으로 가사성(假司成)을, 수찬(修撰) 김문(金汶)으로 주부(注簿)를 삼으니, 이는 사신과의 강론(講論)과 제술(製述)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였다./ 【태백산사고본】 21책 67권 26장 A면/ 【영인본】 3책 619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외교-명(明)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www.history.go.kr 2009)

 

  김돈 [記事] : 세종실록 66권/ 세종 16년(1434 갑인 / 명 선덕(宣德) 9년) 10월 2일(을사) 4번째 기사/ 처음으로 앙부일구를 혜정교와 종묘 앞에 설치하여 일영을 관측하다/ 처음으로 앙부일구(仰釜日晷)를 혜정교(惠政橋)와 종묘(宗廟) 앞에 설치하여 일영(日影)을 관측하였다. 집현전 직제학(直提學) 김돈(金墩)이 명(銘)을 짓기를, ꡒ모든 시설(施設)에 시각보다 큰 것이 없는데, 밤에는 경루(更漏)가 있으나 낮에는 알기 어렵다. 구리로 부어서 그릇을 만들었으니 모양이 가마솥과 같고, 지름에는 둥근 톱니를 설치하였으니 자방(子方)과 오방(午方)이 상대하였다. 구멍이 꺾이는 데 따라서 도니 겨자씨를 점찍은 듯하고, 도수(度數)를 안에 그었으니 주천(周天)의 반이요, 신(神)의 몸을 그렸으니 어리석은 백성을 위한 것이요, 각(刻)과 분(分)이 소소(昭昭)하니 해에 비쳐 밝은 것이요, 길 옆에 설치한 것은 보는 사람이 모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시작하여 백성들이 만들 줄을 알 것이다.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1책 66권 1장 A면/ 【영인본】 3책 592면/ 【분류】 *과학-역법(曆法) / *어문학-문학(文學)(www.history.go.kr 2009)

 

  김돈 [記事] : 세종실록 68권/ 세종 17년(1435 을묘 / 명 선덕(宣德) 10년) 4월 20일(신유) 3번째 기사/ 집현전 부제학 김돈 등의 불교의 폐단과 그 금지에 관한 상소/ 집현전(集賢殿) 부제학(副提學) 김돈(金墩) 등이 상서하기를, ꡒ불씨(佛氏)가 인륜을 파괴하고 교화를 상하여, 국가에 해가 된 것이 그 유래가 오랜 것은 선유(先儒)가 일찍이 말하였고, 성상께서 밝게 아시는 바이오니, 신 등이 감히 덧붙여 말할 것이 없고, 아직 오늘날의 백성을 미혹시키고 재물을 좀먹는 것을 가지고 예감(睿鑑)을 어지럽게 하나이다. 엎드려 보건대, 승도(僧徒)들이 어리석은 백성을 속이고 꾀여 왕년에는 수륙회(水陸會)를 한강에서 베풀었고, 전년(前年)에는 큰 도량(道場)을 회암사(檜岩寺)에 베풀고 크게 법회를 벌이어 온 도성 안의 사민(士民)으로부터 종친(宗親)․척리(戚里)에 이르기까지 우러러 받들고 시사(施捨)하기를 시간에 뒤질까 두려워하니, 법이라는 것은 반드시 귀하고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시작한 연후에야 백성에게 행할 수 있는 것인데, 불사(佛事)를 금하여 끊는 것이 영전(令典)에 실려 있고, 전하께서 또 거듭 밝히어 중외에 포고하였으나, 지금 귀하고 가까운 사람들이 앞장을 서니, 이것은 법이 먼저 위에서 무너지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백성의 미혹하는 것을 어떻게 바로잡겠습니까. 하물며 근년 이래로 수재와 한재가 서로 겹치어 나라의 근본이 되는 백성들이 기근(飢饉)을 면치 못하는데, 일없이 놀며 역사를 피하는 무리들이 천백 명으로 떼를 지어 민생을 고혹(蠱惑)하고 앉아서 백 가지의 음식을 먹고 있으니 참으로 탄식할 일입니다. 중 같은 무뢰배(無賴輩)들이 없는데 회암사 가 가까이 교관(郊關) 안에 있어서 해마다 떼로 모이어 사민을 유혹하니, 오늘날 성명(聖明)의 때로서는 진실로 혐의될 것이 없지마는, 후일의 폐단을 점점 자라게 할 수는 없사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특별히 유사(攸司)에 명하여 일을 주간하는 중을 죄주고, 우러러 받드는 사람을 금하며, 그 콩과 조를 거두어 굶주리는 백성을 진휼하고, 그 베와 비단을 몰수하여 관가의 용도에 보태어, 영구히 변방 오랑캐의 교(敎)를 끊고 이 백성의 미혹을 끊게 하시면, 지극한 소원을 이기지 못하겠나이다.ꡓ하니, 계본(啓本)을 머물러 두었다./ 【태백산사고본】 22책 68권 7장 B면/ 【영인본】 3책 624면/ 【분류】 *사상-불교(佛敎) / *구휼(救恤)(www.history.go.kr 2009)

 

  김돈 [記事] : 세종실록 68권/ 세종 17년(1435 을묘 / 명 선덕(宣德) 10년) 6월 8일(무신) 1번째 기사/《통감훈의》의 찬집관들에게 잔치를 베풀고 시를 짓게 하다/ 경회루(慶會樓) 아래에 나아가 《통감훈의(通鑑訓義)》의 찬집관(撰集官)인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 윤회(尹淮)․경창부 윤(慶昌府尹) 권도(權蹈)․예문 제학(藝文提學) 정인지(鄭麟趾)․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설순(?循)․이조 참의(吏曹參議) 이선(李宣)․집현전 부제학(集賢殿副提學) 김돈(金墩)․안지(安止)․동부승지(同副承旨) 권채(權採)․대사성(大司成) 유효통(兪孝通)․세자 좌보덕(世子左輔德) 최만리(崔萬理)․우보덕 박중림(朴仲林)․직제학(直提學) 안완경(安完慶)․직전(直殿) 김말(金末)․의정부 사인(議政府舍人) 허후(許?)․봉상 소윤(奉常少尹) 신기(愼幾)․응교(應敎) 김신민(金新民)․이명겸(李鳴謙)․호군(護軍) 최효손(崔孝孫)․교리(敎理) 유의손(柳義孫)․정창손(鄭昌孫)․호조 정랑(戶曹正郞) 이사증(李師曾)․부교리(副校理) 이계전(李季甸)․좌문학(左文學) 어효첨(魚孝瞻)․판관(判官) 신석견(辛石堅)․사직(司直) 황보양(皇甫良)․전 첨사(僉使) 유승유(柳升濡)․수찬(修撰) 김문(金汶)․부수찬(副修撰) 최항(崔恒)․감찰 노숙동(盧叔仝)․주부(注簿) 남수문(南秀文)․수찬(修撰) 이사철(李思哲)․부수찬 김순(金淳)․좌사경(左司經) 조석문(曹石門)․전 감찰(監察) 이원상(李元商)․박경손(朴慶孫)․부사직(副司直) 백효삼(白?參)․전 주부 오신지(吳愼之)․부령(部令) 김중종(金仲宗)․봉례(奉禮) 장근지(張謹止)․좌정자(左正字) 이계원(李季?)․박사(博士) 유지(庾智)․사정(司正) 이보흠(李甫欽)․직장(直長) 김의몽(金義蒙)․정자(正字) 박팽년(朴彭年)․송처검(宋處儉)․이영서(李永瑞)․권지 정자(權知正字) 정자영(鄭子英)․간의대 제조(簡儀臺提調) 지중추원사 이천(李?)․낭청(郞廳) 판사(判事) 서인도(徐仁道)․직제학(直提學) 김빈(金賓)․부사직 조완벽(趙完壁)․부사정 신희(申熙)․교리 이순지(李純之) 등에게 잔치를 베풀었는데, 왕세자(王世子)와 여러 대군(大君)들이 시연(侍宴)하고, 도승지(都承旨) 신인손(辛引孫)․좌승지(左承旨) 정갑손(鄭甲孫)․좌부승지(左副承旨) 이견기(李堅基)․우부승지(右副承旨) 유수강(柳守剛) 등도 입시(入侍)하였다. 임금이 전대(前代)의 문신(文臣)인 이색(李穡)․정몽주(鄭夢周) 등의 경학(經學)의 아름다움을 고루고루 들면서 탄식하기를, ꡒ지금은 어찌하여 훈고(訓?)를 바르게 하는 사람도 없는가. 유생(儒生)들이 시학(詩學)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오로지 내가 시학을 숭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장(詞章)은 말예(末藝)이니 후세에 비록 ꡐ아무 시대에는 시학을 숭상하지 않았다. ꡑ고 말하더라도 해될 것은 없다. 그러나, 예전의 성현(聖賢)들로서 시와 부(賦)에 겸하여 능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나도 역시 시학에 뜻이 있다. 위에서 좋아하는 이가 있으면 누가 좋아하지 않겠는가.ꡓ하고, 인하여 잔치에 참예한 문신들로 하여금 각각 시(詩)를 짓게 하였다. 잔치를 파하매 윤회(尹淮) 등이 전문(箋文)을 올려 사은(謝恩)하였는데, 그 말에 이르기를, ꡒ해[離日]가 중천(中天)하였으니, 크게 문명(文明)의 운수를 열었고, 구름[需雲]이 우택(雨澤)을 패연(?然)히 내리니 편벽되게 총애(寵愛)의 융성함을 입었습니다. 영광과 감격이 실로 깊사와 놀랍고 두려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신 등이 외람하게 말학(末學)으로 함께 좋은 때를 만났습니다. 재주는 삼장(三長)2458) 이 없사온데 그릇 수교(?校)2459) 의 임무를 받았고, 공(功)은 촌효(寸?)도 없이 다만 시소(尸素)2460) 의 기롱만을 더하였는데, 어찌 성상(聖上)의 은혜가 두루 용품(庸品)에 미칠 줄이야 생각인들 하였겠습니까. 빛나게 녹평(鹿?)2461) 의 잔치를 주시어 흡연(洽然)히 어수(魚水)2462) 의 즐거움을 이루었습니다. 보좌(寶座)에 구름이 열렸으니 얼굴은 지척(咫尺)과 다름이 없삽고, 하상(霞觴)2463) 에 봄이 가득하니 은택이 기부(肌膚)에 젖었습니다.

 

  머리에는 찬란한 꽃을 꽂고, 귀에는 균소의 풍악[均韶之樂]2464) 이 목메었습니다. 오직 오늘의 특이한 은수(恩數)는 진실로 예전에 드물게 듣는 일이오니, 이것은 대개 주상 전하께서 유정(惟精) 유일(惟一)하여 중도(中道)를 잡으시고, 시종여일(始終如一)하게 학문을 주장하시어, 요명(堯明)․순철(舜哲)의 신성(神聖)으로써 만기(萬機)를 재결(裁決)하시고, 한강(漢綱)․당목(唐目)의 규모(規模)를 상고하시어 백대(百代)를 감관(鑑觀)하심을 만나, 드디어 노둔한 바탕으로 하여금 큰 은혜를 입게 하셨습니다. 신 등은 삼가 마땅히 미로(微勞)를 굽어 다하여, 융성하옵신 부탁을 우러러 생각하옵니다. 이미 취하고 이미 배불렀사오니 이에 주아(周雅) 2465) 의 장(章)을 잇고, 수(壽)하옵시고 강(康)하옵시되, 항상 기주(箕疇) 2466) 의 복을 비옵니다.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2책 68권 24장 A면/ 【영인본】 3책 633면/ 【분류】 *출판-서책(書冊) / *왕실-의식(儀式) / *사상-유학(儒學) / *인물(人物) / *어문학-문학(文學)/ [註 2458]삼장(三長) : 재․학․식(才學識)을 말함. ☞ / [註 2459]수교(?校) : 교정(校正). ☞ / [註 2460]시소(尸素) : 시위 소찬(尸位素餐)의 약어(略語)인데, 직책을 다하지 않고 자리만 차지하여 녹만 받아 먹는 일임. ☞ / [註 2461]녹평(鹿?) : 시경(詩經)의 편명. ☞ / [註 2462]어수(魚水) : 군신간에 뜻이 합함을 말함. ☞ / [註 2463]하상(霞觴) : 신선이 사용하는 술잔. ☞ / [註 2464]균소의 풍악[均韶之樂] : 천상의 음악. ☞ / [註 2465] 주아(周雅) : 시경의 편명. ☞ / [註 2466] 기주(箕疇) : 기자(箕子)의 홍범 구주(洪範九疇)를 말함. ☞(www.history.go.kr 2009)

 

  김돈 [記事] : 세종실록 68권/ 세종 17년(1435 을묘 / 명 선덕(宣德) 10년) 6월 9일(기유) 2번째 기사/ 개․친에게 작호를 내리고․이맹균․이숙묘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개(李?)로 숭록 대부(崇祿大夫) 순성군(順城君)을, 이친(李?)으로 정헌 대부(正憲大夫) 서원군(瑞原君)을, 이맹균(李孟畇)으로 이조 판서(吏曹判書)를, 이숙묘(李叔畝)로 형조 판서(刑曹判書)를, 윤형(尹炯)으로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를, 이견기(李堅基)로 우승지(右承旨)를, 유수강(柳守剛)으로 좌부승지(左副承旨)를, 김돈(金墩)으로 우부승지(右副承旨)를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22책 68권 27장 A면/ 【영인본】 3책 634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돈 [記事] : 세종실록 77권, 세종 19년(1437 정사 / 명 정통(正統) 2년) 4월 15일(갑술) 3번째 기사/ 주야 측후기인 일성정시의가 이룩되다/ 처음에 임금이 주야 측후기(晝夜測候器)를 만들기를 명하여 이름을 ꡐ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ꡑ라 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이룩됨을 보고하였다. 모두 네 벌[件]인데, 하나는 내정(內庭)에 둔 것으로 구름과 용을 장식하였으며, 나머지 셋은 다만 발이 있어 바퀴자루[輪柄]를 받고 기둥을 세워 정극환(定極環)을 받들게 하였다. 하나는 서운관(書雲觀)에 주어 점후(占候)에 쓰게 하고, 둘은 함길․평안 두 도의 절제사 영에 나누어주어서 군중의 경비하는 일에 쓰게 하였다. 또 승지 김돈(金墩)에게 명하여 서(序)와 명(?)을 짓게 하니, 그 글에 이르기를, ꡒ의상(儀象)은 더 말할 것 없이 요․순 으로부터 한․당에 이르기까지 모두 귀중히 여겨서 그 글이 경사(經史)에 갖추어 나타났으나, 예전과 시대가 멀어서 그 법이 자세하지 아니하였는데, 삼가 생각하건대, 우리 전하께서는 세상에 뛰어난 신성(神聖)한 자질로써 정무를 보살피는 여가에 천문법상(天文法象)의 이치에 유념하시어, 무릇 예전에 이르는바, 혼의(渾儀)․혼상(渾象)․규표(圭表)․간의(簡儀) 등과 자격루(自擊漏)․소간의(小簡儀)․앙부(仰釜)․천평(天平)․현주(縣珠)․일구(日晷) 등의 그릇을 빠짐없이 제작하게 하셨으니, 그 물건을 만들어 생활에 이용하게 하시는 뜻이 지극하시었다. 그러나 하루의 시각이 1백 각이요, 그리고 밤과 낮이 반씩이로되 낮에는 햇볕을 헤아려서 시간을 아는 그릇은 이미 갖추었으나, 밤에 이르러서는 《주례(周禮)》 에 별을 보고 밤 시각을 구분하는 글이 있고, 《원사(元史)》 에도 별로써 시각을 정하는 말이 있으나 그 측정하는 방법은 말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에 밤낮 시각을 알리는 그릇을 만들기를 명하여 이름을 ꡐ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ꡑ라 하였다. 그 제도는 구리[銅]를 써서 만들었는데, 먼저 바퀴를 만들어 세(勢)를 적도(赤道)에 준하여 자루[柄]가 있고, 바퀴의 지름[徑]은 2척, 두께는 4분, 넓이는 3촌이다. 가운데 십자거(十字距)가 있는데, 넓이는 1촌 5분, 두께는 바퀴와 같다. 십자 가운데는 축이 있는데, 길이는 5분 반이고 지름은 2척이다. 북쪽 면을 깎아 파되, 중심에 1리(釐)를 두어서 두께를 하고 가운데 둥근 구멍을 겨자[芥]씨 같이 만들었다. 축은 계형(界衡)을 꿰고, 구멍은 별을 살피는 것이다. 아래에는 서리고 있는 용의 모양을 만들어 바퀴 자루를 물고 있는데, 자루의 두께는 1촌 8분이며 용의 입에 1척 1촌이 들어가고 밖에 3촌 6분이 나왔다. 용의 밑에는 대가 있는데, 넓이는 2척이고 길이는 3척 2촌이며, 도랑과 못을 만들었는데, 수평(水平)을 취한 것이었다. 바퀴의 윗면에 세 고리[環]를 놓았는데, 이름을 주천도분환(周天度分環)․일구백각환(日晷百刻環)․성구백각환(星晷百刻環)이라 한다. 그 ꡐ주천도분환ꡑ은 밖에 있으면서 움직이고 돌며, 밖에 두 귀[耳]가 있는데 지름은 두 자, 두께는 3분, 넓이는 8분이다. ꡐ일구백각환ꡑ은 가운데에 있어 돌지 아니하고, 지름은 1척 8촌 4분이고, 넓이와 두께는 밖의 것과 같다. ꡐ성구백각환ꡑ은 안에 있어 움직이고 돌며, 안에 두 귀가 있는데, 지름은 1척 6촌 8분이고, 넓이와 두께는 안팎 고리와 같다. 귀가 있는 것은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세 고리의 위에 계형(界衡)이 있으니, 길이는 2척 1촌, 넓이는 3촌, 두께는 5분인데, 양쪽에 머리가 있고 가운데는 비었으며, 길이는 2촌 2분이고, 넓이는 1촌 8분으로, 세 고리[環]의 그림을 덮지 못하게 한 것이다. 허리의 중간 좌우에 각각 용이 하나씩 있으니, 길이는 1척이고, 함께 ꡐ정극환(定極環)ꡑ을 받든다. ꡐ정극환ꡑ이 둘이 있는데, 바깥 고리와 안 고리의 사이에는 구진대성(句陳大星)이 나타나고, 안 고리의 안에는 천추성(天樞星)이 나타나니, 남북의 적도를 바르게 하는 것이다. 바깥 고리는 지름이 2촌 3분이고, 넓이가 3분이며, 안 고리는 지름이 1촌 4분 반, 넓이가 4리(釐)이고, 두께는 모두 2분인데 약간 서로 대여서 십자와 같다.

 

  ꡐ계형ꡑ 두 끝에 빈곳의 안팎에 각각 작은 구멍이 있고, ꡐ정극환ꡑ 바깥 고리의 양쪽에도 작은 구멍이 있어, 가는 노끈으로 여섯 구멍[六穴]을 통해 꿰어서 ꡐ계형ꡑ의 두 끝에 매었는데, 위로는 해와 별을 살피고 아래로는 시각을 알게 한 것이다. ꡐ주천환(周天丸)ꡑ에는 주천도(周天度)를 새기되, 매도(每度)를 4분으로 하고, ꡐ일구환(日晷環)ꡑ은 1백 각을 새기되, 매각(每刻)을 6분으로 하였다. 성구환도 일구환과 같이 새겼으나, 다만 자정이 신전자정(晨前子正)에 지나서 하늘이 일주(一週)하는데, 1도를 더 지나가는 것과 같이 다름이 있다. ꡐ주천환ꡑ을 사용하는 법은, 먼저 수루(水漏)를 내려서 동지 신전자정을 맞추고, ꡐ계형ꡑ으로 북극 둘째 별이 있는 곳을 살펴서 바퀴 가에 표시하고, 인해 주천 첫 도의 초에 맞게 한다. 그러나 세월이 오래 되면 천세에 반드시 차가 생기니, 《수시역(授時曆)》으로 상고하면, 16년이 약간 지나서 1분이 뒤로 물러나고, 66년이 약간 지나서는 1도가 뒤로 물러나므로, 이에 이르러 다시 살펴서 정한다. 북극 둘째 별은 북극에서 가깝고 가장 붉고 밝아서, 여러 사람이 보기 쉽기 때문에 이것으로 측후(測候)한다. ꡐ일구환ꡑ의 사용은 ꡐ간의(簡儀)ꡑ와 같고, ꡐ성구환ꡑ을 사용하는 법은 첫해 동지 첫날, 새벽 전 밤중 자정을 시초로 하여 ꡐ주천환ꡑ 초도의 초에 맞게 하여 하루에 1도, 이틀에 2도, 사흘에 3도로 하여 3백 64일에 이르면 곧 3백 64도가 되고, 다음해 동지 첫날 자정에는 3백 65도가 되니, 하루에 공도(空度)가 3분이고, 이틀에 1도 3분으로 3백 64일에 이르면 곧 3백 63도 3분이 된다. 또 다음해 동지 첫날에는 3백 64도 3분이니 하루의 공도가 2분이고, 이틀에 1도 2분으로, 3백 64일에 이르면 곧 3백 63도 2분이 된다. 또 다음해 동지 첫날에는 3백 64도 2분이니 하루의 공도가 1분이고, 이틀에 1도 1분으로 3백 65일에 이르면 곧 3백 64도 1분이 되니 이를 일진이라고 이른다. 일진(一盡)이 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다. 무릇 인사의 동정(動靜)하는 기틀[機]은 실로 해와 별의 운행(運行)하는 법칙에 매였고, 해와 별의 운행은 의상 가운데 밝게 나타나므로, 옛 성인이 반드시 정치하는 도의 첫째 일로 삼았으니, 요의 역상(曆象)과 순의 선기(璇璣)가 이것이다. 우리 전하께서 제작하신 아름다운 뜻은 곧 요․순과 더불어 법을 같이 하였으니, 천고에 내려오면서 일찍이 없던 거룩한 일이다. 아아, 지극하도다. 이를 마땅히 새겨서 후세에 밝게 보여야 할 것이므로 신(臣) 돈이 감히 손으로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명을 지어 올리노라.ꡓ 하고, 그 글에 이르기를, ꡒ요임금은 역상을 공경하고, 순임금은 기형에 뜻을 두니 대대로 전하여서 제조가 정밀하다. ꡐ의(儀)ꡑ라 하고 ꡐ상(象)ꡑ이라 하여 그 이름이 같지 아니하나, 땅을 보고 하늘을 살펴서 백성의 일을 보여 주었다. 옛일이 이미 멀어서 제도가 퇴폐하여졌으니 책에 실려 있은들 그 뜻을 뉘가 알리오. 신성하신 임금이 시대에 응해 나시어, 요․순의 법을 받아 표(表)와 누(漏)와 의(儀)와 상(象)의 옛 제도를 회복했네. 백각(百刻)으로 때를 정해 밤낮을 나누었고, 햇볕으로 때를 아는 그릇은 있으나, 밤에도 살피고자 의상[儀]을 만들도록 명령을 내리셨네. 그 이름 무엇인고. ꡐ일성정시의ꡑ라 일컬으며, 쓰는 법은 어떠한고. 별자리를 살펴보고 햇볕과 맞추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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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동부초, 25일 양궁 전국대회 우수 성적...축하합니다.

 

  예천동부초등학교(醴泉東部初 洋弓部, 洋弓大會에서 優秀한 成績 거둬 : 團體戰 2位, 個人戰 김유경 선수 2位) [記事] : 예천동부초등학교(교장 임정달) 양궁부는 제25회 회장기 전국 초등학교 양궁대회에서 단체전(김유경, 김태희, 지화진, 권민경)에서는 2위, 개인전에서는 김유경 선수가 개인 종합 2위(금 2개, 은 1개)를 차지하여 예천양궁의 저력을 다시 한 번 과시하였다. 2013년 7월 23일부터 ~25일까지 원주양궁장에서 열린 이번 대회에서 개인전에서 김유경 선수가 35m와 25m에서 금메달 2개를 땄고, 30m에서 은메달을 추가하여 개인 종합 2위의 영광을 안았다. 또한 단체전에서는 김유경, 김태희, 지화진, 권민경 선수가 단체2위의 기쁨도 안게 되었다. 허영희 감독과 안신영 코치는 “하루도 빠짐없이 꾸준히 실시한 훈련과 특유의 정신력이 이번 대회에서 좋은 결과를 이끈 것 같다.”고 헀다. 김숙희 교감은 “자신의 목표를 위해 한발 한발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예동궁사들을 위하여 예동 교육가족 또한 열심히 뛰도록 하겠다.”고 하며 선수들의 노고를 치하했다.(醴泉뉴스 2013년 07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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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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