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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356) : 김돈(응교)(3)(附 경북도립대, 교육역량강화사업 6연속 선정...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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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로 바탕하여 만든 솜씨가 뛰어나서 비할 수 없고, 둥근 바퀴[圓輪] 먼저 하고 거(距)가 있어 운용한다. 남북이 높고 낮아 적도를 모방하고, 대 위에 용이 서려[蟠], 바퀴 자루 물고 있다. 도랑과 못이 있어 물을 담아 바르고, 바퀴 위에 세 고리[環]가 서로 붙고 의지하여 바깥 것은 주천이니, 도와 분이 벌여 있고, 안의 두 고리는 일구․성구인데, 성구환의 각은 천도같이 지나도다. 안팎 것은 움직이나, 중간 것은 굳게 붙어 움직이지 아니한다. 계형이 전면에 가로[橫] 있어 굴대[軸]가 중심을 꿰었도다. 굴대에 구멍 뚫어 겨자[芥]같고 바늘 같아 계형의 빈[虛] 끝에는 도와 각이 새겨 있다. 쌍룡(雙龍)이 축을 끼고 정극환을 받들었다. 안팎에 환(環)2727) 이 있고, 그 사이에 별이 있다. 그 별은 무엇인고. 구진(句陳)과 천추(天樞)로다. 남북이 정하였고 동서가 바르도다. 측후법(測候法)은 어떠한고. 실[線]을 써서 살펴본다. 고리[環] 위에 곧게 걸고 계형 끝에 내려 꿰어, ꡐ일구ꡑ에는 둘을 쓰고 ꡐ성구ꡑ에는 하나 쓴다. 제좌(帝座)2728) 가 붉고 밝아 북극에 가까우니, 실을 써서 살펴보면 시각을 알 수 있다. 누수(漏水)를 먼저 내려 자정을 알아보고, 윤환(輪環)에 표지(標識)하여, 주천환의 도는 것을 여기에서 일으킨다. 밤마다 도는 것이 한 도를 지나가니 도와 분이 나뉘어서 비롯하고 끝맺는다. 그릇은 정밀하고 두루 쓰인다. 선철(先哲)이 많았으나 이 제도가 없었는데, 우리 임금 처음으로 이 의상을 만드시어 희(羲)․화(和)에게 내리시니 만세의 국보일세.ꡓ하였다. 그 글에, ꡒ구리를 써서 만들었다.ꡓ로부터, ꡒ다하면 처음으로 돌아온다.ꡓ까지는 임금이 친히 지은 것인데, 승지 김돈이 직제학 김빈(金?)에게 보이며 이르기를, ꡒ내가 감히 글을 짓고자 함이 아니라, 다만 경들이 이를 가지고 깎고 보태어서 명과 서를 지어 오래 전하기를 도모하려고 한다.ꡓ고 하였는데, 임금이 시각을 정하는 제도를 서술한 글이 간이(簡易)하고 상세하여 손바닥을 가리킴과 같이 명백하기 때문에 돈 등이 능히 한 글자도 바꾸지 못하고 그 글의 머리와 끝만 보태어 그대로 명을 지었다고 한다. 그 소간의(小簡儀)는 예문관 대제학 정초(鄭招)가 명과 서를 함께 짓기를, ꡒ당요(唐堯)가 세상을 다스리자 먼저 희(羲)․화(和)에게 명하여 햇볕을 살펴서 시각을 바르게 하였는데, 이로부터 내려오면서 시대마다 각각 그 그릇이 있었고, 원나라 에 이르러 갖추었다. 금상 16년 가을에 이천(李?)․정초(鄭招)․정인지(鄭麟趾) 등에게 작은 모양의 간의를 만들기를 명하니, 비록 옛 제도에 말미암았으나 실은 새 법에서 나왔다. 밑바탕[趺]은 정한 구리로 하고, 개울물의 모양을 만들어서 수평을 정하고 남북의 위치를 바루었다.
적도환(赤道環)의 전면에는 하늘 둘레의 도․분을 나누어 동서로 운전(運轉)하여 칠정(七政)과 중외관(中外官)의 입숙(入宿)하는 도․분을 헤아린다. ꡐ백각환ꡑ은 ꡐ적도환ꡑ의 안에 있는데, 면에는 12시와 1백 각을 나누어 낮에는 햇볕으로 알고 밤에는 중성(中星)으로 정한다. 사유환(四游環)이 규형(窺衡)2729) 을 가지고 동서로 운전하여, 남북을 내렸다 올렸다[低昻]하고 규측(窺測)하기를 기다린다. 기둥을 세워 세 환을 꿰었는데, 비스듬히 기대면, 사유환은 북극에 준하고, 적도환은 천복(天腹)에 준한다. 곧게 세우면 사유(四維)가 입운(立運)이 되고 백각이 음위(陰緯)가 된다. 공작이 겨우 끝나자, 여러 신하들이 명(銘)을 새겨 뒷세상에 전하기를 청하므로, 임금이 신(臣) 초 에게 명하시니, 신이 절하고 명을 올리노라.ꡓ하고, 명하기를, ꡒ하늘의 도는 하는 일이 없고, 그릇 또한 간략함을 숭상하였다. 옛 간의는 기둥이 많았는데, 지금의 이 그릇은 들고 갈 수 있겠도다. 사용하는 방법은 간의와 같았으나, 간략한 것을 더욱 더 간략하게 만든 것이다.ꡓ하고, 또 그 작은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에 이르기를, ꡒ전에 만든 일성정시의는 너무 무거워서 행군할 때에 불편하기 때문에, 다시 작은 정시의(定時儀)를 만들었으니, 그 제도는 전의 것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한데, 정극환을 없앤 것은 경편(輕便)하게 하려고 함이다. 먼저 누수로써 첫해의 새벽 전 밤중을 알아 맞추어서 북극 둘째 별이 있는 곳을 살펴 바퀴 가[輪邊]에 표지(標誌)하되, 그 획을 가장 길게 긋고, 북쪽으로 향하여 다시 세 획을 긋되, 점점 짧게 하고 사이의 거리는 모두 4분지 1도로 하였다. 첫해 동지 첫날 새벽 전 밤중에 주천환(周天環)의 초도를 바퀴 가의 긴 획에 닿게 하고, 다음 해에는 다음 획에 닿게 하며, 또 다음 해에는 또 다음 획에 닿게 하고, 또 다음 해에는 가장 짧은 획에 닿게 하여 해마다 한 번씩 옮겨서 5년째에 이르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동지 첫날에 성구환의 신전자정이 주천환의 초도에 닿고, 1일 자정에는 1도, 2일에는 3도에 당하여, 매년 다 그렇게 되어 여분이 없고, 다른 것은 전의 정시의와 같다. 일구를 사용하는 법은 전의 것과 같다.ꡓ고 하였다. 그 간의대(簡儀臺)는 승지 김돈(金墩)이 기록을 지었는데, 이르기를, ꡒ선덕 7년 임자년 가을 7월 일에 성상께서 경연에 거둥하여 역상의 이치를 논하다가, 예문관 제학 신 정인지 에게 이르기를, ꡐ우리 동방이 멀리 바다 밖에 있어서 무릇 시설하는 바가 한결같이 중화의 제도에 따랐으나, 홀로 하늘을 관찰하는 그릇에 빠짐이 있으니, 경이 이미 역산의 제조(提調) 가 되었으므로, 대제학 정초(鄭招) 와 더불어 고전을 강구하고 의표를 참작해 만들어서 측험(測驗)하는 일을 갖추게 하라. 그러나 그 요는 북극 이 땅 위에 나온 높낮이를 정하는 데 있다. 먼저 간의를 만들어 올림이 가하다. ꡑ고 하시므로, 이에 신 정초와 신 정인지는 옛 제도를 상고하는 일을 맡고, 중추원사 신 이천은 공역(工役)을 감독하는 일을 맡았다. 먼저 나무로 모양을 만들어, 북극 이 땅에서 38도가 나온 것을 정하니, 《원사(元史)》에 측정한 것과 조금 합하므로, 드디어 구리로 간의를 만들어 장차 이룩되매, 호조 판서 안순(安純)에게 명하여 후원(後苑) 경회루 북쪽에 돌을 쌓아 대를 만드니, 높이는 31척이고, 길이는 47척, 넓이는 32척인데, 돌로 난간을 두르고 간의를 엎드려 놓았다.
정방안(正方案)을 그 남쪽에 펴고, 대의 서쪽에는 동표(銅表)를 세웠는데 높이는 5배(倍)고, 8척의 얼(?)이다. 청석(靑石)을 깎아 규(圭)를 만들고 규의 면에는 장․척․촌․분을 새겼다. 그림자[影]를 일중(日中)의 그림자와 맞추어서 음양의 차[盈]고 주[縮]는 이치를 미루어 알도록 되었다. 표 서쪽에 작은 집을 세우고 혼의와 혼상을 놓았는데, 혼의는 동쪽에 있고 혼상은 서쪽에 있다. 혼의의 제도는 역대에 같지 아니하나, 이제 《오씨서찬(吳氏書纂)》에 실린 글에 의해 나무에 칠을 하여 혼의를 만들고, 혼상의 제도는 베[布]에 칠을 하여 몸통을 만들되 둥글기는 탄환(彈丸) 같고 둘레는 10척 8촌 6분이다. 종횡으로 하늘 둘레의 도․분을 그렸는데, 적도는 중간에 있고 황도는 적도의 안팎에 나들되 각각 24도가 약하다. 중외관성(中外官星)이 두루 벌여 있어 하루에 한바퀴를 돌고 1도를 더 지나간다. 노끈으로 해를 얽어 황도에 매고, 매일 1도씩 물러나서 행하여 하늘의 행함과 합하였다. 물을 이용하여 기계가 움직이는 공교로움은 숨겨져서 보이지 아니한다. 이 다섯 가지는 옛 사기에 자세히 기록되었다. 경회루 남쪽에 집 3간[楹]을 세워서 누기(漏器)를 놓고 이름을 ꡐ 보루각(報漏閣) ꡑ이라 하였다. 동쪽 간[東楹] 사이에 자리를 두 층으로 마련하고 3신이 위에 있어, 시(時)를 맡은 자는 종을 치고, 경(更)을 맡은 자는 북을 치며, 점(點)을 맡은 자는 징[鉦]을 친다. 12신은 아래에 각각 신패(辰牌)를 잡고, 사람이 하지 아니하여도 때에 따라 시각을 보(報)한다. 천추전(千秋殿) 서쪽에 작은 집을 짓고 이름을 ꡐ 흠경각(欽敬閣) ꡑ이라 하고, 종이를 붙여서 산 모양을 만들어 높이는 일곱 자 가량인데, 집 가운데 놓고 안에는 기륜(機輪)을 만들어서 옥루수(玉漏水)를 이용하여 치게 하였다. 오색구름은 해를 둘러 나들고, 옥녀(玉女) 는 때를 따라 방울을 흔들며, 사신 무사(司辰武士)는 스스로 서로 돌아보고, 4신과 12신은 돌고 향하고 일어나고 엎드린다. 산 사면에는 빈풍(?風) 사시(四時)의 경(景)을 진열하여 백성의 생활이 어려움을 생각하게 하였다. 기기(?器)를 놓고 누수의 남은 물을 받아서 천도의 영허(盈虛)하는 이치를 살피게 하였다. 간의는 비록 혼의보다 간략하나, 옮겨서 쓰기가 어렵기 때문에 작은 간의 둘을 만들었으니, 대개 모양은 극히 간단하다. 사용하는 것은 간의와 같은 것이다. 하나는 천추전 서쪽에 놓고, 하나는 서운관에 주었다. 무지한 남녀들이 시각에 어두우므로 앙부일구(仰釜日晷) 둘을 만들고 안에는 시신(時神)을 그렸으니, 대저 무지한 자로 하여금 보고 시각을 알게 하고자 함이다. 하나는 혜정교(惠政橋) 가에 놓고, 하나는 종묘 남쪽 거리에 놓았다. 낮에 측후하는 일은 이미 갖추었으나, 밤에 이르러서는 징험할 바가 없어서, 밤낮으로 시각을 아는 그릇을 만들어 이름을 ꡐ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ꡑ라 하였다. 4벌[件]을 만들어, 하나는 만춘전 동쪽에 놓고, 하나는 서운관에 주고, 둘은 동서 양계의 원수영(元帥營)에 나누어주었다. 일성정시의는 무거워서 행군하는 데 불편하므로 작은 정시의를 만들었는데, 그 제도는 대개 같고 조금 달랐다. 이 여섯 가지는 각각 서․명이 있어 자세히 기록되었다. 또 현주일구(懸珠日晷)를 만들었으니, 밑바탕을 네모나게 하였는데 길이는 6촌 3분이다. 밑바탕 북쪽에는 기둥을 세우고 남쪽에는 못을 팠으며, 북쪽에는 십자를 그리고 기둥머리에 추(錘)를 달아서, 십자와 서로 닿게 하였으니, 수준(水準)을 보지 아니하여도 자연히 평하고 바르다. 1백 각을 작은 바퀴에 그렸는데, 바퀴의 지름은 3촌 2분이고 자루가 있어, 비스듬히 기둥을 꿰었다. 바퀴 중심에 구멍이 있어 한 가닥 가는 실을 꿰어서 위에는 기둥 끝에 매고 아래에는 밑바탕 남쪽에 매어 실 그림자가 있는 것을 보고 곧 시각을 안다. 흐린 날에는 시각을 알기 어려우므로 행루(行漏)를 만들었으니, 몸이 작고 제도가 간략하였다. 파수호(播水壺)와 수수호(受水壺)가 각각 하나씩인데, 갈오(渴烏)로 물을 바꾸어서 자․오․묘․유의 시각을 쓴다. 작은 정시의와 현주(懸珠)․행루 등을 각각 몇 개씩 만들어 양계에 나누어주고, 남은 것은 서운관에 두었다.
말을 타고 가면서도 시각을 알지 않을 수 없으므로 천평일구(天平日晷)를 만드니, 그 제도는 현주일구와 대개는 같으나, 오직 남쪽과 북쪽에 못을 파고 중심에 기둥을 세워 노끈을 기둥머리에 꿰고, 들어서 남쪽을 가리키는 것이 다르다. 하늘을 징험하여 시각을 알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정남침(定南針)을 쓰나, 사람이 만든 것을 면치 못하여 정남일구를 만드니, 대개 정남침을 쓰지 아니하여도 남북이 스스로 정하는 것이다. 밑바탕의 길이는 1척 2촌 5분이고, 양쪽 머리의 넓이는 4촌, 길이는 2촌이며, 허리의 넓이는 1촌, 길이는 8촌 5분이다. 가운데 둥근 못[池]이 있는데 지름은 2촌 6분이고, 물도랑이 있어 양쪽 머리로 통하여 기둥 가를 돌게 하였다. 북쪽 기둥의 길이는 1척 1촌이고, 남쪽 기둥의 길이는 5촌 9분인데, 북쪽 기둥의 1촌 1분 아래와, 남쪽 기둥의 3촌 8분 아래에는 각각 축이 있어서 사유환(四游環)을 받는다. 사유환이 동서로 운전하여 1각 반에 하늘을 한 바퀴 돈다. 도는 4분으로 만들고, 북쪽의 16도로부터 1백 67도에 이르기까지 중간이 비어서 쌍환의 모양과 같고, 나머지는 전환(全環)으로 되었다. 안에는 한 획을 중심에다 새기고 밑에는 네모난 구멍이 있는데, 직거(直距)를 가로 설치하고 거 가운데 6촌 7분을 비워서 규형(窺衡)을 가지게 하였다. 규형은 위로는 쌍환을 꿰고, 아래로는 전환에 다달았다. 남쪽과 북쪽을 낮추고 올려서 지평환(地平環)을 평평하게 설치하되, 남쪽 기둥의 머리와 같게 하고, 하지(夏至)날 해가 뜨고 지는 시각에 준하여, 반환(半環)을 지평아래에 가로 설치한다. 안에는 낮 시각을 나누어서 네모난 구멍의 밑바탕에 닿게 하고, 북쪽에는 십자를 그리고, 북쪽 축 끝에 추를 달아 십자와 서로 닿게 하니, 또한 수평을 취하게 한 것이다. 규형(窺衡)을 쓰는 법은, 매일 태양이 극도분(極度分)에 갈 때를 당하여, 햇볕을 통해 넣어서 정원(正圓)이 되게 하고, 곧 네모난 구멍으로 반환의 각을 굽어보면, 자연히 남쪽의 위치가 정하고 시각을 알 것이다. 그릇이 무릇 열 다섯인데, 구리로 만든 것이 열이다. 두어 해를 지나서 만드는 일을 마치니 실로 무오년 봄이다. 유사가 그 시말(始末)을 기록하여 장래에 밝게 보이기를 청하니, 이에 신이 그 논의에 참예한 까닭으로 신에게 그 사실을 기록하기를 명하셨다. 신은 간절히 생각하건대, 때를 알려 주는 요는 하늘을 관측하는 데 있고, 하늘을 관측하는 요는 의표에 있으므로, 요가 희(羲)․화(和)에게 명하여 책력에 일월성신(日月星辰)을 형성하고, 순은 선기옥형(璇璣玉衡)을 만들어 칠정(七政)을 바루었으니, 진실로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의 일이 부지런함을 늦출 수 없기 때문이다. 한 ․ 당 이후로 시대마다 각각 그릇이 있었으나, 그 법을 혹은 얻고, 혹은 잃어서 쉽게 셀 수 없었는데, 오직 원나라 곽수경(郭守敬)이 만든 간의․앙의․규표 등의 그릇은 정교(精巧)하다 이를 만하다. 오직 우리 동방에는 제작한 것을 아직 듣지 못하더니, 하늘이 좋은 운수를 열어 문교가 바야흐로 일어나니, 삼가 생각하건대, 우리 전하께서 성신의 자질과 공경하는 마음으로 정무를 보살피는 여가에 역상이 정밀하지 못함을 염려하고, 측험(測驗)하는 일이 갖추지 못함을 생각하여 그릇을 만들게 하시니, 비록 요 ․ 순 의 마음일지라도 어찌 이에 더하리오. 그 그릇을 만든 것이 한둘만이 아니나, 약간을 기록하여 참고에 갖추게 하고, 그 규모는 옛 것만을 본받은 것이 아니라, 모두 성상의 마음으로 재결하여 다 정묘(精妙)를 극진히 하였으니, 비록 원나라 곽수경 이라도 그 기교(技巧)를 베풀 수 없을 것이다. 아아, 이미 수시력(授時曆)을 교정하고, 또 하늘을 관측하는 그릇을 만들어, 위로는 천시를 받들고 아래로는 민사에 부지런하시니 우리 전하께서 물건을 만들어 일에 힘쓰게 하는 지극한 어지심과, 농사에 힘쓰고 근본을 중히 여기는 지극한 뜻은 실로 우리 동방에 일찍이 없었던 거룩한 일이니, 장차 높은 대와 더불어 무궁토록 함께 전할 것이다.ꡓ하였다.
그 그릇을 만든 척식(尺式)은, 옛사람이 법도의 그릇에는 반드시 주척(周尺)을 썼는데, 척식을 바루어 정하는 것은 예로부터 어려워하였다. 주자가 사마 문정공(司馬文正公) 2730) 의 집 석각본(石刻本) 척식을 취하여 《가례》에 실어서 후세의 법을 삼았으나, 《가례》의 판본이 세상에 행하는 것이 하나만이 아니어서 주척의 장단이 같지 아니하여 또한 의거하기 어려웠는데, 판중추원사 허조(許稠)가 홍무 계유년간에 아버지 상을 당하여 진우량(陳友諒)의 아들 진이(陳理)의 가묘에 신주 만드는 척식을 구해 얻어서 가척본(假尺本)을 만들었고, 또 의랑(議郞) 강천주(姜天?) 의 집에서 지본주척(紙本周尺)을 얻으니, 그것은 바로 그 아버지 강석(姜碩) 의 아우 강유원(姜有元)이 원사(院使) 김강(金剛)의 간직한 상아척본(象牙尺本)을 전한 것인데, 전면에 쓰기를, ꡐ신주척 정식(神主尺定式)ꡑ이라 하였다. 지금의 관척을 2촌 5분을 없애고 7촌 5분을 쓰면, 바로 《가례부주(家禮附註)》에 반시거(潘時擧) 가 이른바, ꡐ주척은 지금 성척(省尺)의 7촌 5분 약(弱)이라. ꡑ고 한 말과 같다. 두 척본을 서로 비교해 보니 어긋나지 아니하므로, 비로소 신주 만드는 제도를 정하여 올리니, 이로부터 무릇 사대부집 사당의 신주와 도로의 이수(里數)와 사장(射場)의 보법(步法)을 모두 여기에 의거하여 정식을 삼았다. 근래에 또 판사역원사(判司驛院事) 조충좌(趙忠佐) 가 북경 에 가서 새로 만든 신주를 사 가지고 와서, 다시 이 자와 비교하니, 촌․분이 서로 합하니, 이 자는 지금 중국에서도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만든 의․상․표․누(儀象表漏) 등의 그릇을 모두 이 자를 써서 제정하였다고 한다./ 【태백산사고본】 24책 77권 7장 A면/ 【영인본】 4책 66면/ 【분류】 *과학-천기(天氣) / *과학-역법(曆法) / *역사-고사(故事) / *도량형(度量衡)/ [註 2727]환(環) : 정극환. ☞ / [註 2728]제좌(帝座) : 북극성. ☞ / [註 2729]규형(窺衡) : 저앙(低昻)․고저(高低)를 보는 기계. ☞ / [註 2730] 사마 문정공(司馬文正公) : 사마 광(司馬光). ☞(www.history.go.kr 2009)
김돈 [記事] : 세종실록 68권/ 세종 17년(1435 을묘 / 명 선덕(宣德) 10년) 6월 12일(임자) 1번째 기사/ 직산에서 돌아오는 사신 이충을 김돈․조계생․이숙묘 등이 가서 맞이하다/ 사신(使臣) 이충(李忠)이 직산(稷山)에서 돌아오니, 우부승지(右副承旨) 김돈(金墩)을 명하여 한강(漢江)에 가서 맞이하였는데, 참찬(參贊) 조계생(趙啓生)과 형조 판서(刑曹判書) 이숙묘(李叔畝) 등이 또한 가서 참예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2책 68권 27장 B면/ 【영인본】 3책 634면/ 【분류】 *외교-명(明)(www.history.go.kr 2009)
김돈 [記事] : 세종실록 69권/ 세종 17년(1435 을묘 / 명 선덕(宣德) 10년) 7월 3일(임신) 2번째 기사/ 2품 이상의 관직과 음직이 있는 부인에게 초거를 타도록 하다/ 우부승지 김돈(金墩)을 명하여 여러 신하들에게 의논하기를, ꡒ지금 내가 공장(工匠)에게 명하여 초거(?車)를 만들게 하였는데, 이를 탈 수 있는가 없는가. 탈 수 있다면 품계(品階)를 제한하여 타게 할 것인가. 여러 사람이 의논하여 아뢰라.ꡓ하니, 윤번(尹?)은 아뢰기를, ꡒ마땅히 부제학 이상의 관직에게 이를 타도록 해야 될 것입니다.ꡓ하고, 허조(許稠) 등은 아뢰기를, ꡒ이를 타는 것이 심히 편리하니 마땅히 2품 이상의 관직에게 이를 타도록 해야 될 것입니다.ꡓ하고, 또 아뢰기를, ꡒ부인들이 이를 타는 것도 또한 편리하니, 음직(蔭職)이 있는 부인들은 모두 마땅히 이를 타도록 하소서.ꡓ하니, 임금이 허조 등의 의논에 따랐다./ 【태백산사고본】 22책 69권 1장 A면/ 【영인본】 3책 640면/ 【분류】 *왕실(王室) / *교통-육운(陸運)(www.history.go.kr 2009)
김돈 [記事] : 세종실록 70권/ 세종 17년(1435 을묘 / 명 선덕(宣德) 10년) 11월 23일(경인) 2번째 기사/ 정갑손․이견기․유수강․김돈․권채가 흰 꿩 잡은 것을 하례하니, 정지시키다/ 승지 정갑손(鄭甲孫)․이견기(李堅基)․유수강(柳守剛)․김돈(金墩)․권채(權採) 등이 흰 꿩 잡은 것을 하례하니, 명하여 하례를 정지하게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2책 70권 7장 A면/ 【영인본】 3책 658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 *재정-진상(進上)(www.history.go.kr 2009)
김돈 [記事] : 세종실록 77권/ 세종 19년(1437 정사 / 명 정통(正統) 2년) 4월 11일(경오) 2번째 기사/ 김종서․이숙치 등이 야인 토벌 계획을 올리다/ 함길도 도절제사 김종서와 도관찰사 이숙치(李叔?) 등이 상언하기를, ꡒ신 등이 이징옥․박호문과 더불어 같이 논의하였습니다. 신 등이 야인들이 오면 어루만지고 가면 쫓지 아니한다는 의리를 알지 못한 것이 아니며, 또한 변경에 틈을 내기를 좋아하는 것이 해로움인 줄 알지 못함이 아니옵니다. 그러나 야인의 성질이 인의(仁義)가 부족한 까닭으로 비록 인으로 어루만질지라도 덕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도리어 시랑(豺狼)같은 마음을 품으면서 흉하고 교활함이 있기 때문에, 비록 방어하는 방법이 있을지라도 매양 그 틈을 엿보아서는 반드시 벌같이 쏘는 독을 베푸는 것은 지금만이 아니라 옛부터 이러하였습니다. 예전에 회이(淮夷) 가 가까이 있으면서 자주 침노하니, 비록 주나라 의 후한 덕으로서도 토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 혐진 의 소굴이 우리나라 경계와의 거리가 3백 리 미만이니 가깝다 아니할 수 없고, 우리에게 화를 입힌 것도 무릇 7, 8차인즉 자주 침노하였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한두 번도 이미 심하였는데, 하물며 7, 8차례이오리까. 우리가 대의로써 풀이하여 치지 아니하오면, 저들이 장차 말하기를, ꡐ대의에 좇아 치지 아니한다. ꡑ고 하오리까. ꡐ겁내고 약하여서 치지 아니한다. ꡑ고 이르오리까. 만약 겁내고 약하여서 치지 아니한다고 저들이 말하게 되면, 교만한 마음이 날로 더하여 화가 날마다 성할 것입니다. 저들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ꡐ 조선 은 비록 침노하여도 복수하지 아니하나, 올량합 의 무리는 반드시 보복하므로 조선 을 침노함만 같지 못하다. ꡑ고 하는데, 그 말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이 오랑캐만이 아니라, 둘러 있는 잡종 오랑캐가 잇따라 일어나서 다투어 엿보는 마음이 있게 되면, 변방 백성의 화가 장차 며칠이 아니 되어 또 일어날 것입니다. 화기(禍機)가 박절하온데 어찌 수년을 기다리오리까. 늦추면 화가 또 이를 것이고, 급히 하면 화가 혹 이르지 아니할 것이니, 늦추고 급히 하는 기회를 진실로 잃을 수 없습니다. 기회를 잃으면 후회한들 장차 어찌하오리까. 신 등과 두 장수의 뜻이 진실로 이와 같으므로 감히 시설할 조건을 삼가 뒤에 기록 하옵니다. 1. 동쪽을 치면 서쪽을 방비하고, 서쪽을 치면 동쪽을 방비하는 것은 병가(兵家)의 떳떳한 일이오니, 이미 각진으로 하여금 항상 혐진 을 방비하고 또 홀라온(忽剌溫)을 방비하게 하며, 두 오랑캐 종족만이 아니라 근처에 있는 여러 종족과도 각각 방비가 있게 하였으니, 만약 크게 군사를 일으키려면 인민들을 모두 거두어 성채(城寨)에 들이어 보호하고, 남은 군사와 장정을 가지고 무략(武略)이 있는 수령을 택하여 4진에 나누어 지켜서 다른 도둑을 방비하면 마땅히 뜻밖에 근심은 없을 것이니 어찌 홀라온 을 염려하오리까. 1. 4진에서 수빈강(愁濱江)까지의 그 사이에 올량합과 알타리는 전연 없고 거기 퍼져 사는 자는 오직 골간뿐입니다. 올량합과 알타리는 혐진과 많은 원수와 틈이 있어서 날마다 토벌하기를 청하나, 매양 변장으로 하여금 거절하게 하였으니, 만약 크게 군사를 일으키려 하면 모름지기 향도를 삼을 것이나, 일을 미리 알 수 없으므로 마땅히 달래기를, ꡐ강 건너 두문(頭門) 등의 곳에는 노루와 사슴이 많으니, 너희들과 가서 사냥할 만하다. ꡑ고 하여, 이끌고 나가서는 드디어 여러 군사에 나누어 붙여서 향도를 삼으면, 저들은 우리의 실정을 알지 못할 것이고 우리는 그 힘을 이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올량합과 알타리는 이제 안심하고 자리를 정하여, 농사짓고 생활하며 부동(浮動)하는 형상이 없으며, 또 그 소굴이 모두 군사를 행할 때에 지나가는 곳이 아닙니다.
1. 오는 8월에 좋은 날을 택하여 군사를 내어 9월 보름 때에 군사를 이끌고 돌아올 것이니, 반드시 가을에 군사를 행하고자 함은 도적이 만약 미리 알고 도망해 숨으면 오히려 볏곡을 베어서 군량을 보충할 수 있어, 저들에게는 해롭고 우리에게는 유익할 것이며, 또한 위엄을 보이는 데도 족할 것입니다. 1. 다섯 길로 나누어 침략하되, 한 길에 8백 명에 지나지 않게 하고 중심부에만 1천 명으로 하면 이것으로 족합니다. 적은 군사를 쓰면 좁은 곳에서 유리하고, 군사가 많으면 정(精)하지 못합니다. 1. 군사 조발(調發)할 때를 당하여 칭탁해 말하기를, ꡐ 홀라온과 혐진이 가을을 기다려서 크게 군사를 일으켜 침범해 들어오고자 하니, 4진의 군사와 말이 본디 적어서 보태지 않을 수 없으므로, 도절제사의 영(營)에는 원액(元額) 외에 1천 명을 더하고, 4진에서는 각각 8백 명을 더하였다. ꡑ고 하며, 경중(京中)과 외방에 행문 이첩(行文移牒)하는 문서에도 모두 이와 같이 하면, 능히 우리 군사들의 이목을 어리석게 만들어 미리 알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1. 군졸은 본도의 각 고을에서만 징발하되, 정군(正軍)․선군(船軍)․수성군(守城軍)․반당(伴黨)․향리(鄕吏)․역자(驛子)․공사 복예(公私僕隷) 및 한량(閑良)으로서 건장하고 용맹한 자와 말이 실한 것을 모두 다 조발할 것입니다. 1. 정군 한 사람은 갑옷을 입고 활․화살․칼, 혹은 창을 가지며, 주자(廚子) 한 사람은 역시 갑옷을 입고 활과 화살을 차며, 우비를 가지고 우대(雨袋)로써 음식과 양식을 나누어 담아서 안장에 걸고, 혹은 말도 타고 혹은 걷기도 하여 각각 정군의 뒤를 따르되, 적을 만나면 또한 스스로 원조하며, 정수(定數)외의 짐은 일체 금할 것입니다. 1. 군관(軍官) 의 수가 적음을 칭탁해 말하여 4진에서 각각 10인씩을 더하고, 주장(主將)이 있는 곳에는 20명을 더하게 하여 날래고 용맹한 군사를 고르기에 힘쓰며, 모두 갑옷과 투구를 주어 보내되 토벌하는 뜻을 알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ꡓ하니, 임금이 도승지 신인손과 좌부승지 김돈(金墩)에게 명하여 의정부에 가서 논의하게 하매, 동지중추원사 정흠지․호조 판서 심도원․병조 판서 황보인 등도 참예하였는데, 모두 말하기를, ꡒ4진을 새로이 설치하여 튼튼하지도 못하고, 속히 토벌할 수도 없으며, 비록 혹 쳐서 이길지라도 옳지 못합니다.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24책 77권 3장 A면/ 【영인본】 4책 64면/ 【분류】 *외교-야(野) / *군사-군정(軍政)(www.history.go.kr 2009)
김돈 [記事] : 세종실록 80권/ 세종 20년(1438 무오 / 명 정통(正統) 3년) 1월 7일(임진) 3번째 기사/ 흠경각이 완성되어 김돈에게 기문을 짓게 하다/ 흠경각(欽敬閣)이 완성되었다. 이는 대호군 장영실(蔣英實)이 건설한 것이나 그 규모와 제도의 묘함은 모두 임금이 마련한 것이며, 각은 경복궁 침전 곁에 있었다. 임금이 우승지 김돈(金墩)에게 명하여 기문을 짓게 하니, 이에 말하기를, ꡒ상고하건대, 제왕이 정사를 하고 사업을 이루는 데에는 반드시 먼저 역수(曆數)를 밝혀서 세상에 절후를 알려 줘야 하는 것이니, 이 절후를 알려 주는 요결(要訣)은 천기를 보고 기후를 살피는 데에 있는 것이므로, 기형(璣衡)과 의표를 설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상고하고 징험하는 방법이 지극히 정밀하여 한 기구 한 형상만으로는 능히 바르게 할 수 없다. 우리 주상 전하께서 이 일을 맡은 자에게 명하여 모든 의기(儀器)를 제정하게 하였는데, 대소 간의(大小間儀)․혼의(渾儀)․혼상(渾象)․앙부일구(仰釜日晷)․일성정시(日星定時)․규표(圭表)․금루(禁漏) 같은 기구가 모두 지극히 정교하여 전일 제도보다 훨씬 뛰어나 오직 제도가 정밀하지 못하고, 또 모든 기구를 후원(後苑)에다 설치하였으므로 시간마다 점검하기가 어려울까 염려하여, 이에 천추전(千秋殿) 서쪽 뜰에다 한 간 집을 세웠도다. 풀[糊]먹인 종이로 일곱 자 높이의 산을 만들어 집 복판에 설치하고, 그 산 안에다 옥루기(玉漏機) 바퀴를 설치하여 물로써 쳐올리도록 하였다. 금으로 해를 만들었는데 그 크기는 탄자만 하고, 오색 구름이 둘러서 산허리 위를 지나도록 되었는데, 하루에 한 번씩 돌아서 낮에는 산 밖에 나타나고 밤에는 산 속에 들어가며, 비스듬한 형세가 천행에 준하였고, 극의 멀고 가까운 거리와 돋고 지는 분수가 각각 절기를 따라서 하늘의 해와 더불어 합치하도록 되어 있다. 해 밑에는 옥으로 만든 여자 인형 넷이 손에 금 목탁을 잡고 구름을 타고, 동․서․남․북 사방에 각각 서 있어 인․묘․진시 초정(初正)에는 동쪽에 섰는 여자 인형이 매양 목탁을 치며, 사․오․미시 초정에는 남쪽에 섰는 여자 인형이 목탁을 치고, 서쪽과 북쪽에도 모두 이렇게 한다. 밑에는 네 가지 귀형(鬼形)을 만들어서 각각 그 곁에 세웠는데 모두 산으로 향하여 섰으며, 인시가 되면 청룡신(靑龍神)이 북쪽으로 향하고, 묘시에는 동쪽으로 향하며, 진시에는 남쪽으로 향하고, 사시에는 돌아서 다시 서쪽으로 향하는 동시에 주작신(朱雀神)이 다시 동쪽으로 향하는데, 차례로 방위를 향하는 것은 청룡이 하는 것과 같으며, 딴 것도 모두 이와 같다. 산 남쪽 기슭에는 높은 축대(築臺)가 있어, 시간을 맡은 인형 하나가 붉은 비단옷 차림으로 산을 등지고 섰으며, 인형 무사 셋은 모두 갑옷 차림인데 하나는 종과 방망이를 잡고서 서쪽을 향해서 동쪽에 섰고, 하나는 북[鼓]과 부채를 잡고 동쪽을 향해 서쪽에서 약간 북쪽으로 가까운 곳에 섰고, 하나는 징[鉦]과 채쭉을 잡고 동쪽을 향해서 서쪽에서 약간 남쪽으로 가까운 곳에 서 있어서, 매양 시간이 되면 시간을 맡은 인형이 종 치는 인형을 돌아보고, 종 치는 인형도 또한 시간을 맡은 인형을 돌아보면서 종을 치게 되며, 매경(每更)마다 북과 부채를 잡은 인형이 북을 치고, 매점마다 징과 채를 잡은 인형은 징을 치는데, 서로 돌아보는 것은 종 치는 인형과 같으며, 경․점마다 북 치고 징 치는 수효는 모두 보통 시행하는 법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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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도립대, 교육역량강화사업 6연속 선정...축하합니다.
경북도립대(작지만 强한 名品 慶北道立大學에서 꿈 實現하세요~ : 敎育品質 認證大學 이어 敎育力量强化事業 6連續 選定 '快擧') [記事] : 작지만 강한 명품 대학을 지향하고 있는 경북도립대가 인근에 인구 10만 명 규모의 도청이전 신도시 건설로 획기적인 도약의 전기를 맞고 있다. 경북도립대는 지난 1997년 정부의 오지개발 촉진 정책에 따라 낙후지역개발을 촉진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지역주민 자녀에게 고등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경북도가 설립한 공립대학이다. 도청 이전 신도시는 10.96km2 규모로 경북도립대서 10km 거리에 위치하며 2014년 하반기 도청 청사 이전을 시작으로 2027년 신도시가 완성될 시 경북의 행정과 문화산업의 중심지가 될 전망이다. 때문에 경북도립대는 이와 때를 맞춰 신도시 주민을 위한 평생교육체계 구축 및 지역발전의 싱크탱크 역할 수행 등 공익적인 역할 확대방안을 마련, 공립대학으로써의 사명을 다한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경북도립대는 학과와 교육내용을 지역사회와 경북도정의 변화요구에 따라 끊임없이 구조 조정하며 시대변화와 발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실예로 최근 설립된 응급구조과와 축산과의 경우도 도정에 필요에 따라 설립돼 그 결과 평균 경쟁률이 17대 1.5대 1 수준으로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또 자동차과의 경우 도장분야로 특화해 우리나라 최고수준의 학과로 발돋움 했으며 토목과와 소방방재과, 지방행정학과의 경우 공직진출로 경쟁력을 갖고 있는 학과로 손꼽히고 있다. IT 특약계열의 경우도 전자통신 분야에 에너지 분야를 추가하는 등 산업계의 요구와 기술수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대표적인 학과로 소문나 있다. 공무원이 되길 원한다면 경북도립대를 선택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공무원 양성의 대표적인 학과가 지방행정, 토목, 소방방재과로 경북도 소방본부, 예천군, 울릉군, 영양군, 청송군, 영덕군과 협약을 통해 매년 공무원 특채를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제도를 통해 2000년부터 52명의 학생이 공직으로 진출했으며 공무원 공채에도 48명이나 합격했다. 이 같은 성과는 공무원이 되길 원하는 학생들에게 맞춤형 환경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학생들의 지원도 늘고 있다. 이에 대학측은 학교 기숙사는 물론 공무원 양성반을 위한 심화학습실을 별도로 운영해 밤 12시까지 개방하고 교수들도 교대로 매일 심화학습실에 상주하며 학생들의 공부를 돕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모의고사를 실시, 성적이 우수한 학생에게 장학금 지급, 공무원 사이버 강의 무료제공 등 학생들이 마음껏 공부하며 자기 꿈을 성취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 경북도립대의 또 하나의 강점 중에 하나가 공립대학의 특징인 저렴한 등록금과 다양한 장학제도를 들 수 있다. 사립전문대학의 경우 등록금이 보통 5~600만원에서 800만원이 넘는 전문대학도 있지만 경북도립대의 경우 연간 등록금이 240만원 정도로 사립전문대학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장학혜택은 다양하고 풍부하다. 장학금 종류가 32가지로 지난 한 해 학생 1인당 장학금이 170만원이 지급됐다. 아울러 경북도립대의 경우 눈앞의 취업률도 중요시 하지만 사회가 필요로 하는 창의적이고 자기 주도적인 실무능력과 기초 및 전공지식을 두루 갖춘 인재 양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학교 안에서 취업을 위한 모든 스펙을 갖출 수 있도록 역량을 쏟고 있으며 LIG넥스원, 안동의료재단 등 70여개의 업체와 협약체결로 학생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가질 수 있게 돕고 있다. 또한 직업이해도 증진을 위한 전공별 특강, 취업 및 진로상담, 취업캠프, 직장체험프로그램, 영어 캠프, 자격증 취득 등 다양한 취업지원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해 학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외부평가에선 남다른 두각을 나타내기도 해다. 6년 연속 교육역량강화사업에 선정되는가 하면, 2012년도 교육과학기술부에서 실시한 전문대학 기관평가에서 교육품질 인증대학으로 선정됐다. 전문대학 기관 평가 인증제도는 교육행정의 투명성과 효율성, 경쟁력 제고를 위해 정부가 정한 72개 평가기준을 통과해야 인정돼 2014년부터 정부의 행정, 재정이 우선 지원될 것으로 보인다. 더 넓은 세계로의 진출이 이젠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만큼 경북도립대는 미국, 필리핀, 중국 등 여러 나라에 매년 어학연수, 문화체험, 해외 봉사 목적으로 학생들을 해외에 보내고 있으며, 지난해에만 200여명의 학생이 해외에 다녀오기도 했다. 좁은 한반도를 벗어나 무궁무진한 기회의 땅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대학의 사명이자 목표가 돼야 한다는 것이 경북도립대를 이끌고 있는 김용대 총장의 교육 철학이기 때문이다.(새慶北인터넷뉴스 2013년07월27일 01시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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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