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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442) : 김양진(2)(附 우감리 출신 김인겸, 기초의학상 수상...축하합니다/유천초 김보미, 19일 서예실기 도대회 최우수상...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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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진 [記事] : 중종실록 26권/ 중종 11년(1516 병자 / 명 정덕(正德) 11년) 8월 6일(을묘) 1번째 기사/ 집의 김양진 등이 문에 화살 쏜 일로 피혐하다/ 집의(執義) 김양진(金楊震) 등이 문에 화살을 쏜 일로 피혐하니, 상이 ꡐ좌우를 물리치고, 의심쩍은 사람의 성명을 써서 아뢰어라.ꡑ고 명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5책 206면/ 【분류】 *사법-치안(治安) /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양진 [記事] : 중종실록 31권/ 중종 12년(1517 정축 / 명 정덕(正德) 12년) 12월 3일(갑진) 5번째 기사/ 김양진․공서린․윤자임․표빙․정응․김식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양진(金楊震)을 홍문관 직제학(弘文館直提學)으로, 공서린(孔瑞麟)을 응교(應敎)로, 윤자임(尹自任)을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으로, 표빙(表憑)을 교리(校理)로, 정응(鄭應)을 수찬(修撰)으로, 김식을 사포서 사포(司圃署司圃)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5책 364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양진 [記事] : 중종실록 31권/ 중종 12년(1517 정축 / 명 정덕(正德) 12년) 윤12월 13일(갑신) 6번째 기사/ 김정․김양진․조광조․공서린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정을 승정원 동부승지(承政院同副承旨)로, 김양진(金楊震)을 홍문관 부제학(弘文館副提學)으로, 조광조를 직제학(直提學)으로, 공서린을 전한(典翰)으로, 민수천을 응교(應敎)로, 신광한(申光漢)을 부응교(副應敎)로, 이수동(李壽童)을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으로, 유용근(柳庸謹)을 교리(校理)로, 정응(鄭應)을 부교리로, 기준(奇遵)을 수찬(修撰)으로 삼았다./ 사신은 논한다. 광조 는 소시부터 검칙 청수(檢飭淸修)하여 크게 중명(重名)이 있었다. 처음에는 조행(操行)으로 천거되어 사지(司紙)가 되었고, 얼마 안 가서 과거(科擧)에 제2등으로 뽑혀서 여러 번 청요(淸要)한 벼슬을 지내고, 이 때에 이르러 이 직을 제수받게 된 것이다. 출신(出身)한 지 30개월이 채 못되었으므로 사람들은 고금에 없는 일이라 하였다. 그를 따르는 자가 날로 많았고 상도 그를 의중(倚重)하였다. 그 사람됨이 의론이 청고(淸高)하고 인물의 옳고 그름을 가려, 개연히 세상을 바로잡고 풍속을 변화하는 것으로 자기의 임무를 삼으니, 공경(公卿) 이하가 모두 외경(畏敬)하고 혹은 삼가 피하기를 원수처럼 하는 자도 있었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5책 378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역사-사학(史學) / *인물(人物)(www.history.go.kr 2009)
김양진 [記事] : 중종실록 31권/ 중종 13년(1518 무인 / 명 정덕(正德) 13년) 1월 6일(병오) 1번째 기사/ 대사간 김양진이 남녀의 옥을 구별하여 수용하기를 청하니 윤허하다/ 조강에 나아갔다. 대사간 김양진(金楊震)․장령 정사룡(鄭士龍)이 전의 일을 아뢰었으나 모두 윤허하지 않았다. 김양진이 아뢰기를, ꡒ신이 들으니 전옥서(典獄署)와 의금부(義禁府)에서는 남녀의 옥(獄)을 구별하지 않고 같이 수용한다 합니다. 중죄인은 자기의 죄가 어떻게 할 수 없음을 이미 알므로 서로 간음하는 폐단이 없지 않습니다. 혹은 옥중에서 아기를 낳는 일도 있으니, 담을 쌓아서 분리 수용하게 하기를 청합니다.ꡓ하니, ꡐ그리하라.ꡑ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5책 386면/ 【분류】 *왕실-경연(經筵) / *정론-간쟁(諫諍)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사법-행형(行刑) / *윤리-강상(綱常)(www.history.go.kr 2009)
김양진 [記事] : 중종실록 31권/ 중종 13년(1518 무인 / 명 정덕(正德) 13년) 1월 15일(을묘) 1번째 기사/ 김양진․권벌이 하종해 등 4인 및 원팽조․김석철 등의 일을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다/ 조강에 나아갔다. 대사간 김양진(金楊震)․장령 권벌(權?)이 하종해(河宗海) 등 4인 및 원팽조(元彭祖)․김석철(金錫哲) 등의 일을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5책 389면/ 【분류】 *왕실-경연(經筵) /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www.history.go.kr 2009)
김양진 [記事] : 중종실록 31권/ 중종 13년(1518 무인 / 명 정덕(正德) 13년) 1월 19일(기미) 1번째 기사/ 김양진․정사룡이 하종해 등의 일을 아뢰니, 김석철과 원팽조를 체직시키라 하다/ 상참(常參)을 받고 조계(朝啓)를 들었다. 조강(朝講)에 나아갔다. 대사간 김양진(金楊震), 장령 정사룡(鄭士龍)이 하종해(河宗海)․김석철(金錫哲)․원팽조(元彭祖)․남치원(南致元)․박수림(朴秀林)의 일을 아뢰니, 상이 이르기를, ꡒ김석철․원팽조는 오늘 마침 인사이동이 있으니 체직시키고, 남치원은 적당한 법률을 적용하고, 박수림은 버려두라.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5책 392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경연(經筵) /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www.history.go.kr 2009)
김양진 [記事] : 중종실록 31권/ 중종 13년(1518 무인 / 명 정덕(正德) 13년) 1월 29일(기사) 5번째 기사/ 대사간 김양진 등이 하종해 등에 관한 차자를 올리다/ 대사간 김양진(金楊震) 등이 차자(箚子)를 올렸는데, 그 대략에, ꡒ신 등이 하종해(河宗海) 등에게 벼슬과 상을 지나치게 준 데 대하여 논한 지가 이미 1년이 지났는데도 상의 총명이 오히려 막연하오니 신 등은 실망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대저 옛날 성인은 벼슬로써 덕을 높이고, 위(位)로써 어진 이를 대우하였으니 천직(天職)을 함께 한 것이요, 하늘이 덕 있는 사람에게 명하시매, 5등급의 옷빛깔이 5등급으로 빛나게 되었으니 하늘의 명(命)을 이어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벼슬을 어찌 적격하지 못한 사람에게 함부로 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어질고 덕 있는 사람이 관직에 있으면 조정의 격이 높아지고 정사가 아름다워지며 치도(治道)가 융성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질고 덕 있는 이를 대우해야 할 명기(名器)로 천한 의원과 환관을 대우하게 되니, 하늘의 뜻을 어기고 인심을 거역함이 역시 심합니다. 조정의 격이 어디로부터 높아지고 치도가 어디로부터 융성해지겠습니까? 요즈음 자전(慈殿)과 세자[儲位]의 병환이 쾌차하시매, 온 나라 신하와 백성이 누구인들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 의원과 환관이 곁에서 약 시중을 든 것은 곧 직분(職分)에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비록 사소한 공로가 있더라도 상을 주는 것은 마땅하오나 온 나라의 공론을 거슬러가면서까지 지나치게 벼슬을 줄 필요는 없습니다. 속히 개정하시기를 청합니다.ꡓ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5책 393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관리(管理) / *왕실-궁관(宮官)(www.history.go.kr 2009)
김양진 [記事] : 중종실록 32권/ 중종 13년(1518 무인 / 명 정덕(正德) 13년) 3월 17일(병진) 1번째 기사/ 조강에서 대사간 김양진 등이 심정․경세창․이세정 등의 일을 아뢰다/ 조강에 나아갔다. 대사간(大司諫) 김양진(金楊震), 집의(執義) 정충량(鄭忠樑)이 심정(沈貞)․경세창(慶世昌)․이세정(李世貞)․박세영(朴世英)․남필원(南弼元) 등의 일을 아뢰니, 이세정․박세영․남필원에 대해서는 체직을 명하고, 나머지는 윤허하지 않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5책 410면/ 【분류】 *왕실-경연(經筵) /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양진 [記事] : 중종실록 32권/ 중종 13년(1518 무인 / 명 정덕(正德) 13년) 4월 4일(임신) 4번째 기사/ 김양진이 희우가 죽은 변을 당하여 자신을 책망하는 제사를 지낸 뒤 대제를 올리기를 청하다/ 대사간(大司諫) 김양진(金楊震)․정언(正言) 양팽손(梁彭孫) 등이 아뢰었다. ꡒ변고가 이처럼 극심하였으니 먼저 자신을 책망하는 제사를 지낸 뒤에 대제를 올려야 합니다.ꡓ/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5책 415면/ 【분류】 *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 / *과학-생물(生物) / *식생활-기명제물(器皿祭物)(www.history.go.kr 2009)
김양진 [記事] : 중종실록 32권/ 중종 13년(1518 무인 / 명 정덕(正德) 13년) 4월 13일(신사) 1번째 기사/ 김양진․정충량이 이승건․이희옹․황보겸․박배근․이곤 등의 일을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다/ 조강에 나아갔다. 대사간(大司諫) 김양진(金楊震)․집의(執義) 정충량(鄭忠樑)이 이승건․이희옹․황보겸․박배근․이곤 등의 일을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5책 419면/ 【분류】 *왕실-경연(經筵) / *사법-탄핵(彈劾) /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양진 [記事] : 중종실록 32권/ 중종 13년(1518 무인 / 명 정덕(正德) 13년) 4월 21일(기축) 6번째 기사/ 이장곤․김양진 등이 대사를 신중히 할 것을 아뢰다/ 대사헌 이장곤(李長坤), 대사간 김양진(金楊震), 집의 정충량(鄭忠樑), 장령 유옥(柳沃)․민수천(閔壽千), 헌납 유용근(柳庸謹), 지평 이청(李淸)․정응(鄭應), 정언 최산두(崔山斗)가 아뢰기를, ꡒ대사란 임금이 할 일이 아닙니다. 대사가 없는 나라는 정사가 반드시 공평하고 정사가 공평하면 사람이 죄를 범하지 않습니다. 지금 황제의 명을 받은 일이 몹시 중대하기 때문에 대사를 반포하고자 하나, 지난해 책봉할 때 도죄(徒罪)8348) 이하를 모두 소방하였으니, 대사란 본래 부당한 것인데, 어찌 두 차례씩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관작도 외람되게 더할 수 없는 것이라 백관의 가자 역시 하지 말아야 합니다.ꡓ하니, 전교하기를, ꡒ대사를 자주 내려서는 안 되니, 자주 내리는 것은 잘못이나, 응당 대사할 일에 대사하지 아니하는 것도 불가하다.ꡓ하였다. 대신과 대간․홍문관이 다시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5책 423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사법-행형(行刑) / *인사-관리(管理) / *왕실-비빈(妃嬪) / *외교-명(明)/ [註 8348]도죄(徒罪) : 《대명률(大明律)》 오형(五刑:태형〈笞刑〉․장형〈杖刑〉․도형〈徒刑〉․유형〈流刑〉․사형〈死刑〉) 중의 하나로서 1년에서 반년 간격으로 3년까지 있는데, 비교적 중한 죄로 각 관아의 노역에 처하게 한다. ☞(www.history.go.kr 2009)
김양진 [記事] : 중종실록 34권/ 중종 13년(1518 무인 / 명 정덕(正德) 13년) 8월 18일(을유) 3번째 기사/ 김극성․한효원․김양진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극성(金克成)을 예조 참판으로, 한효원을 경기 관찰사로, 김양진(金楊震)을 영해 부사(寧海府使)로 삼았다./ 사신은 논한다. 오늘날의 대간은 분노(忿怒)가 있으면 곧 그 사람을 논박하기 때문에 대간의 논의가 혹 존중되지 못하였고 논박당한 사람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였다. 김양진은 본디 명류(名流)라 일컬었고, 승지․대사간을 역임하였다. 다만 의론할 즈음에 자못 신진(新進)에게 거슬렸으므로 승지가 되었다가 논박을 받아 체직 당하였다. 이에 양진 이 불안하여 드디어 외직에 보임(補任)해 주기를 청하니 곧 영해 부사로 제수하였는데, 이는 그를 배척한 것이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5책 474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역사-사학(史學) / *인물(人物)(www.history.go.kr 2009)
김양진 [記事] : 중종실록 38권/ 중종 15년(1520 경진 / 명 정덕(正德) 15년) 1월 4일(계사) 5번째 기사/ 한세환․이행․이항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한세환(韓世桓)을 의정부 우참찬(議政府右參贊)으로, 이행(李荇)을 공조 참판 겸 홍문관 대제학 예문관 대제학(工曹參判兼弘文館大提學藝文館大提學)으로, 이항(李沆)을 겸 예문관 제학으로, 최명창(崔命昌)을 황해도 관찰사(黃海道觀察使)로, 안윤손(安潤孫)을 동지성균관사(同知成均館事)로, 서지(徐祉)를 형조 참의(刑曹參議)로, 윤은필(尹殷弼)을 좌부승지(左副承旨)로, 김양진(金楊震)을 사간원 대사간(司諫院大司諫)으로 이빈(李?)을 홍문관 부제학(弘文館副提學)으로, 정사룡(鄭士龍)을 홍문관 직제학(弘文館直提學)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5책 609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양진 [記事] : 중종실록 39권/ 중종 15년(1520 경진 / 명 정덕(正德) 15년) 4월 30일(정해) 4번째 기사/ 권균을 예조 판서로 김양진을 전라도 관찰사로 삼다/ 권균(權鈞)을 예조 판서(禮曹判書)로, 김양진(金楊震)을 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5책 657면/ 【분류】 *사법-재판(裁判) / *사법-치안(治安) / *변란-정변(政變)(www.history.go.kr 2009)
김양진 [記事] : 중종실록 40권/ 중종 15년(1520 경진 / 명 정덕(正德) 15년) 7월 5일(신묘) 3번째 기사/ 손중돈․이항․윤은필․김양진․서후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손중돈(孫仲暾)을 대사헌(大司憲)으로, 이항(李沆)을 홍문관 제학(弘文館提學)으로, 윤은필(尹殷弼)을 대사간(大司諫)으로, 김양진(金楊震)을 부제학(副提學)으로, 서후(徐厚)를 직제학(直提學)으로, 김유(金?)를 집의(執義)로, 소세양(蘇世讓)을 전한(典翰)으로, 채침(蔡?)을 사간(司諫)으로, 김극개(金克愷)․임추(任樞)를 장령(掌令)으로, 이순(李純)․황사우(黃士祐)를 지평(持平)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5책 675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양진 [記事] : 중종실록 44권/ 중종 17년(1522 임오 / 명 가정(嘉靖) 1년) 2월 7일(갑신) 2번째 기사/ 박호․조순․공서린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박호(朴壕)를 병조 참의로, 조순(趙舜)을 승정원 도승지로, 공서린(孔瑞麟)을 좌승지로, 윤은필을 우승지로, 최세절을 좌부승지로, 김안로(金安老)를 우부승지로, 김양진(金楊震)을 동부승지로, 유여림(兪汝霖)을 장례원 판결사로, 서후(徐厚)를 홍문관 부제학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6책 97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양진 [記事] : 중종실록 44권/ 중종 17년(1522 임오 / 명 가정(嘉靖) 1년) 2월 10일(정해) 4번째 기사/ 윤은필․최세절․김양진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윤은필(尹殷弼)을 승정원 좌승지로, 최세절(崔世節)을 우승지로, 김양진을 좌부승지로, 채침(蔡?)을 우부승지로, 정사룡(鄭士龍)을 동부승지로, 소세양(蘇世讓)을 홍문관 직제학으로, 소세량(蘇世良)을 전한(典翰)으로, 윤지형(尹止衡)을 응교(應敎)로, 김섬(金?)을 부응교로, 허관(許寬)을 사헌부 지평으로, 김안정(金安鼎)을 홍문관 교리로, 심사손(沈思遜)을 수찬(修撰)으로, 이공인(李公仁)을 박사로, 정언호(鄭彦浩)를 저작(著作)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6책 98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양진 [記事] : 중종실록 46권/ 중종 17년(1522 임오 / 명 가정(嘉靖) 1년) 10월 5일(정축) 6번째 기사/ 좌승지 최세절․우승지 김양진․좌부승지 채침․우부승지 정사룡․동부승지 이번이 사직을 아뢰다/ 좌승지 최세절(崔世節)․우승지 김양진(金楊震)․좌부승지 채침(蔡?)․우부승지 정사룡(鄭士龍)․동부승지 이번(李蕃)이 아뢰기를, ꡒ지금 출사(出仕)하라는 명이 계셨는데, 다만 옥사(獄辭)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신 등이 근밀(近密)한 자리에서 어찌 감히 직에 있으며 공무를 집행하겠습니까? 지극히 편치 못합니다.ꡓ하니, 전교하기를, ꡒ상산 도정(常山都正) 의 일은, 상하의 의견이 이미 귀일되었기 때문에 벌써 조율(照律)하도록 했으니 사직하지 말라.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6책 163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사법-재판(裁判) / *왕실-종친(宗親)(www.history.go.kr 2009)
김양진 [記事] : 중종실록 46권/ 중종 17년(1522 임오 / 명 가정(嘉靖) 1년) 11월 2일(갑진) 6번째 기사/ 김양진․김희수․김말문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양진(金楊震)을 이조 참의로, 김희수(金希壽)를 승정원 좌승지로, 김말문(金末文)을 우승지로, 소세양(蘇世讓)을 좌부승지로, 김극개(金克愷)를 우부승지로, 채소권(蔡紹權)을 동부승지로, 소세량(蘇世良)을 홍문관 직제학으로, 윤지형(尹止衡)을 전한(典翰)으로, 박윤경(朴閏卿)을 부응교로, 김안정(金安鼎)을 세자시강원 보덕(世子侍講院輔德)으로, 조종경(趙宗敬)을 사간원 정언으로, 강현(姜顯)을 시강원 사서(侍講院司書)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6책 172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양진 [記事] : 중종실록 47권/ 중종 18년(1523 계미 / 명 가정(嘉靖) 2년) 2월 18일(기축) 3번째 기사/ 김극성․김극핍․서후․김양진․표빙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김극성(金克成)을 공조 참판으로, 김극핍(金克?)을 사헌부 대사헌으로, 서후(徐厚)를 사간원 대사간으로, 김양진(金楊震)을 홍문관 부제학(弘文館副提學)으로, 표빙(表憑)을 전한(典翰)으로, 조한필(曺漢弼)을 사간(司諫)으로, 윤인경(尹仁鏡)을 응교(應敎)로, 심사손(沈思孫)을 부응교로, 윤사익(尹思翼)을 헌납으로, 이구령(李龜齡)을 세자시강원 문학(世子侍講院文學)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6책 196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양진 [記事] : 중종실록 47권/ 중종 18년(1523 계미 / 명 가정(嘉靖) 2년) 2월 20일(신묘) 1번째 기사/ 부제학 김양진이 사직하고자 하였으나 불허하다/ 부제학(副提學) 김양진(金楊震)이 아뢰기를, ꡒ문한(文翰)의 직임은 신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근래 안질(眼疾)을 얻어 잔글씨를 볼 수가 없으니, 만약 경연(經筵)이라도 있게 된다면 진강(進講)할 수가 없습니다. 비단 이것뿐만이 아니라 정사룡(鄭士龍)이 대사간이 되니, 대관(臺官)이 근시(近侍)로 있다가 논박을 받고 체직된 지 오래지 않았으니 미편하다고 아뢰어 체직시켰습니다. 신은 정사룡과 한때의 일이니, 부제학은 대간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신의 직을 갈아 주소서.ꡓ하니, 전교하기를, ꡒ부제학의 직임을 네가 어찌 감당하지 못하겠는가? 정사룡의 체직은 형세가 서로 용납되지 못하겠으므로 간 것일 뿐이다.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6책 196면/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물(人物)(www.history.go.kr 2009)
김양진 [記事] : 중종실록 47권/ 중종 18년(1523 계미 / 명 가정(嘉靖) 2년) 윤4월 22일(임술) 9번째 기사/ 장순손․조순․박호․유여림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장순손(張順孫)을 겸 지경연춘추관사로, 조순(趙舜)을 이조 참판으로, 박호(朴壕)를 예조 참판으로, 유여림(兪汝霖)을 이조 참의로, 김희수(金希壽)를 도승지로, 김말문(金末文)을 좌승지로, 김극개(金克愷)를 우승지로, 채소권(蔡紹權)을 좌부승지로, 김굉(金?)을 우부승지로, 윤인경(尹仁鏡)을 동부승지로, 김양진(金楊震)을 대사간으로, 정사룡(鄭士龍)을 부제학으로, 박윤경(朴閏卿)을 사간으로, 이순(李純)을 장령으로, 최극성(崔克成)을 헌납으로, 강숭덕(姜崇德)을 정언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6책 216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양진 [記事] : 중종실록 48권/ 중종 18년(1523 계미 / 명 가정(嘉靖) 2년) 6월 19일(무오) 5번째 기사/ 대사간 김양진이 언로를 열어주기를 상차하다/ 대사간 김양진 등이 상차(上箚)하기를, ꡒ재상(宰相)의 직은 백 가지 책임이 모인 곳이기에 아무리 훌륭한 사람일지라도 그 지혜가 다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니, 의당 잡념을 없애고 잘 듣고 살펴서 천하의 선(善)을 맞이하고, 아무리 미천한 사람이라 해도 모두 말을 다할 수 있게 하여 상(上)에게 절충(折衷)을 구해서, 그 말이 온당하면 채택하고 부당하면 내버리며, 아름다운 말이 버려지지 않고 물정(物情)이 숨김 없이 드러나도록 하여 상하가 서로 도와서 이르지 않는 것이 없게 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곧 천하의 선이 마침내 한 몸의 선으로 되는 것이니 어찌 물아(物我)의 혐의가 있겠습니까? 홍문관은 실로 논사(論思)하는 곳으로서, 꼭 말해야 할 일을 두고서 어찌 주저하고 묵묵하여 그 직을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근래에 대관을 탄핵하여 추방한 것이 비록 뒤늦은 잘못이 있긴 했지만 이는 실로 공론에서 나온 것인데, 대신은 그 실정을 살피지 않고서 외간의 의논이라고 지칭한 것입니다. 홍문관이 차자를 올려 지목하여 열거한 것을 또한 어찌 그만둘 수 있겠습니까? 재상이 된 자로서는 진실로 관유(寬裕)한 태도로 대우하여 언로(言路)를 넓혀야 할 것인데, 도리어 문자 사이의 말을 끄집어내서 말한 자에게 망신을 주었으니, 이것이 어찌 재상으로서 잡념을 없애고 선을 받아들이는 도리이겠습니까? 이항(李沆) 은 송조(宋朝) 의 명상(名相)으로서 덕업(德業)으로 명망이 높아 그 누구도 간언(間言)할 수 없었는데, 광인(狂人)이 망령되이 욕설을 퍼붓자 그는 오히려 그를 칭찬하여 마지않았습니다. 이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장차 자신의 자만스러운 낯빛이 마침내 천하의 선을 모조리 막아버리게 될까 염려해서이지 결코 그 광인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지금 조정이나 사림(士林)들 사이에 정론(正論)이 있는 곳으로는 모두가 홍문관 1사(司)를 지칭하게 되는데, 문사(文詞)의 사이에서 아무리 약간의 과격한 말이 있었다 하더라도 대신이 그들을 대우하는 것이 도리어 망령되이 욕설을 퍼붓던 광인(狂人)만도 못하단 말입니까? 더구나 말이 승역(乘輿)11464) 에 미치면 임금이 용모를 바로잡는 것이요, 일이 묘당(廟堂)에 관련되면 대신이 허물을 반성하는 것인데, 재상으로서 의당 자책(自責)하기에도 겨를이 없을 이런 때를 당해서 도리어 엄격한 말로 남을 꾸짖는데서야 말이 됩니까? 대신이 시종(侍從)의 말 가운데 가장 듣기 싫어하는 것은 ꡐ언로(言路)가 막힌다.ꡑ는 말인데, 그 ꡐ언로가 막힌다.ꡑ는 말을 싫어할 줄은 알면서 그 말한 바의 폐단을 알지 못하여 장차 사람으로 하여금 감히 말을 못하게까지 하니 어찌된 일입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시비(是非)를 분명하게 밝히시어 곧은 말을 너그러이 용납하셔서 언로를 활짝 열어 후폐(後弊)를 막으소서.ꡓ하니, 전교하기를, ꡒ어제 대신이 과연 홍문관의 의논으로 인하여 사면(辭免)하였으니, 이는 미안(未安)하게 여기어 그런 것이다. 만일 이 차자를 본다면 또한 반드시 성념(省念)할 것이다.ꡓ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6책 237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역사-고사(故事)/ [註 11464]승역(乘輿) : 임금이 타는 수레로 곧 임금을 뜻함. ☞(www.history.go.kr 2009)
김양진 [記事] : 중종실록 48권/ 중종 18년(1523 계미 / 명 가정(嘉靖) 2년) 6월 29일(무진) 3번째 기사/ 대사헌 성운․대사간 김양진 등이 상소하다/ 대사헌(大司憲) 성운(成雲)․대사간(大司諫) 김양진(金楊震) 등이 상소(上疏)하였다. ꡒ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은 치체(治體)를 살피는 데 있는 것입니다. 치체를 알면 일의 순서가 혼란하지 않아, 추사(趨舍)와 용력(用力)이 덜리고 따라서 날로 아름다운 지경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지만, 진실로 치체를 알지 못한 채 잗단 일에만 골몰한다면 쉴 사이 없이 수레를 달리면서 바쁘게 움직이더라도 끝내 공효(功?)가 널리 베풀어지는 것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삼가 살피건대, 전하께서는 못처럼 깊은 마음의 바탕과 옥처럼 아름다운 덕을 지니셨으므로, 근고 이래로 비견할 만한 분이 없습니다. 정치에 임하여는 목마를 때 물을 찾듯이 하시므로 온 나라 안의 생을 누리고 있는 백성들이 머리를 빼들고 마음을 기울여 지극한 정화(政化)가 있기를 기다려 온 지 오랜데도, 치효(治?)만 적막하여 일컬어짐이 없을 뿐 아니라 수백년 간 전하여 온 조종(祖宗)의 좋은 법마저도 거의 이상할 정도로 무너져 버렸으니, 말하매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 아프게 합니다. 진실로 전하께서 탁연한 신단(神斷)을 내리셔서 몸소 대강(大綱)을 확립, 법도를 고쳐 정신을 가다듬지 않으신다면, 정치가 날고 그릇되어져도 이를 두려워할 줄 모르게 될 것이니, 어떻게 감히 좋은 공효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시경(詩經)》 에 이르기를 ꡐ하늘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이에 그 감계(監戒)를 지키리라.ꡑ 하였으니, 왕자(王者)는 하늘을 아버지로, 땅을 어머니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천지의 괴변(乖變)이 발생하면 왕자는 두려워하면서 공경을 다하여 윤해(允諧)하기를 바라야 하는 것인데, 어찌 태연히 보고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전하께서 즉위하신 뒤로부터 천지의 재변(災變)이 끊이지 않았는데, 금년의 가뭄은 근고에 없던 바로서 조야(朝野)가 두려워하면서 걱정하느라 구제할 방도를 모르고 있으니, 이야말로 전하께서 두려워하면서 공경을 다해야 할 때입니다. 피전 철악(避殿撤樂)11472) 이 비록 문구(文具)이기는 하나 문구가 아니면 실상을 나타낼 수 없는 것입니다. 실상은 없으면서 문구만 일삼는 것은 진실로 불가한 것이지만, 실상만 중시하고 문구는 도외시하는 것이 예(禮)에 합당하게 하는 것의 아름다움만은 못한 것입니다. 이제 사신(使臣) 접대하는 의법(儀法)은 중하게 하려 하면서 도리어 하늘을 공경하는 예는 폐하고 있으니, 절문(節文)이 그 마땅함을 얻었다 할 수 있겠습니까? 옛적에 송(宋)나라 사람이 북사(北使)를 접대하기 위하여 연회를 베풀었는데, 우연히 해[日]의 변이 있자 무악(舞樂)을 중지하라고 의논을 제기한 사람이 있었으나 끝내 당시 재상에게 저지당하여 중지하지 않았으므로, 의논하는 자들이 지금까지 이를 비난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제 이웃나라 사신이 식견이 없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조금이라도 식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 조정(朝廷)이 예(禮)를 알고 있다고 하겠습니까? 대저 하늘이 견구(譴咎)를 드러내어 보이는 것은 공구 수성(恐懼修省)하게 하여 훌륭한 일을 하게 되기를 바라서인데, 하늘은 기어이 도우려 하는데도 자신은 스스로 상패(傷敗)를 취택한다면 이것이 가한 일이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안으로 성심(誠心)을 다하고 밖으로 예거(禮擧)를 극진히 하시어 항상 하늘을 대한 것처럼 두려워하시고 남이 보지 않더라도 더욱 삼가서 상곡(桑穀)과 발목(拔木)의 변(變)이 도리어 상(商)나라 와 주(周)나라 의 경사(慶事)가 되었던 것처럼11473) 하신다면, 어찌 종사(宗社)를 위하여 다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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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감리 출신 김인겸, 기초의학상 수상...축하합니다.
김인겸(慶北大 김인겸 敎授 基礎醫學賞 受賞) [記事] : 대한민국의학한림원(회장 남궁성은)과 한국화이자제약(대표이사 사장 이동수)은 최근 ‘제11회 화이자의학상’ 기초의학상에 경북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약리학교실 김인겸 교수(52)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개포면 우감리 김승룡(75) 조명옥(65) 씨의 차남인 김인겸 교수는 ‘히스톤 탈아세틸화 효소 억제에 의한 염류코르티코이드 수용체 전사 활성 조절과 고혈압 예방’에 관한 연구 논문으로 고혈압 치료제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였다는 평가를 받아 기초의학 부분의 수상자로 선정됐다. 제11회 화이자의학상 시상식은 오는 11월 6일(수) 오후 6시, 조선호텔에서 개최될 예정이며, 각 부문 수상자에게는 3천만의 상금과 상패가 수여된다. 화이자의학상은 기초의학 및 임상의학 2개 부문에서 당해연도 기준 2년 이내에 발표된 개별 논문의 우수성, 창의성, 과학성, 공헌도, 그리고 우리나라 환자들이 해당 연구를 통해 받는 실질적인 혜택 측면에서 가장 탁월한 논문을 선정해 수상자를 선정하고 있다. 특히, 기초와 임상 부문을 구분하여 시상하는 유일한 의학상이자, 연구자들에게 균등한 수상기회를 부여한다는 측면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醴泉新聞 2013년 10월 25일 (금) 14:3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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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천초 김보미, 19일 서예실기 도대회 최우수상...축하합니다.
김보미(柳川初, 韓國靑少年文化聯合 書藝實技大會 最優秀賞 受賞 : 5學年 김보미 學生 最優秀賞 受賞) [記事] : 유천초등학교(교장 이의식)의 방과후 교육이 학생들의 재능 성취로 큰 열매를 맺고 있다. 2013년 10월 19일 개최된 한국청소년문화연합 경상북도 학생 미술ㆍ서예 실기대회에서 5학년 김보미 학생이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번 대회는 경상북도가 주최하고 경상북도교육청이 후원하고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청소년문화연합 경북지부가 주관한 행사로서 어린이들의 미술과 서예부분의 재능을 발굴하고 촉진하기 위한 사업으로 이루어졌다. 학생들은 이번 서예부분 최우수상을 수상함으로써 최근의 영어웅변대회, 미술대회 등 각종 학생 재능 대회에서 탁월한 성적을 거두었고, 이는 농어촌 전원학교 프로그램을 통한 특기 교육의 긍정적 효과로 평가받게 되었다.(醴泉뉴스 2013년 10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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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