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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3444:김양진(3)
작성자장병창 @ 2013.10.27 06:13:30

  예천의 자랑(3444) : 김양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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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傳)에 이르기를 ꡐ간언(諫言)을 따르면 흥하고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망한다.ꡑ 하였는데, 대우(大禹)․성탕(成湯)은 선한 말을 들으면 절하고 자신의 허물을 고쳤지만, 하계(夏癸) 11474) ․은신(殷辛) 11475) 은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시켰으니, 여기에서 성패(成敗)의 자취를 환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후세의 명철한 임금들이 간언 구하기를 미치지 못할 것같이 한 것은 진실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그러하지만 신하들은 임금의 뜻에 순종하는 자가 많고 거스르는 자는 적은데 이는 대개 순종하면 사랑을 받고 거스르면 미움을 받게 되며, 따라서 순종하기는 쉽지만 거스르기는 어려운 것이 또한 인정이기 때문입니다. 전하께서 즉위하신 지 이미 오랜데 대간(臺諫)․시종(侍從) 가운데 말 때문에 죄를 얻은 자가 없으니, 또한 우용(優容)하신 것이라 이를 만합니다. 그런데도 사기(士氣)가 진작되지 않고 직신(直臣)에 대한 소문도 들리지 않은 채, 부형(父兄)의 훈계와 붕우(朋友)의 경계가 모두 말하는 것을 금기(禁忌)로 삼고 있습니다. 나라를 다스리면서 사람들을 이 지경에 이르게 하였으니,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옛적에 육지(陸贄) 는 허물 듣기를 부끄러워하고 말을 청산유수처럼 잘하는 것이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는 깊은 폐단이라 지적하였었는데, 대개 허물을 부끄러워하면 말해 주기를 꺼리게 되고 말을 잘하면 상대를 이기려 힘쓰게 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덕성(德性)이 부드러우시어 자긍하거나 간언을 막는 일은 없습니다만 물아(物我)의 협의는 오히려 없애지 못하였으므로, 일찍이 한번도 선한 말을 듣거나 곧은 말을 채택하여, 탄연(坦然)히 이를 자신의 허물로 받아들임으로써 간언 받아들이는 데 인색하지 않다는 아름다움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반면 힘써 채택한 것은 모두 허물을 정당화시키던 끝에 나온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랫사람의 말을 너그럽게 용납하지 않으므로 혹 봉장(封章)을 올려 일을 논하는 자가 있으면 그때마다 어찰(御札)을 보내어 타고난 변론으로 힐책하시니, 기가 질린 미천한 신하들이 우러러 답할 길이 없습니다. 아, 대궐은 한낮에도 깊숙하고 지폐(?陛)는 하늘처럼 먼 것이므로, 임금이 유도(誘導)하여 듣고자 하여도 오히려 선한 말이 이르지 않을까 두려운 것이거든, 하물며 잘못을 부끄러워하여 간언을 막고 변론을 구사하여, 말한 자를 공격함에리까? 대신(大臣)이 된 자는 임금을 인도하여 도(道)로 나아가게 하고 또한 스스로도 너그럽게 우용하는 길을 열어 놓아야 하는데, 이제 사람의 한 마디 말이 자신을 핍박하게 되면 곧바로 견책을 가하니 이렇게 처신하면서 어떻게 임금으로 하여금 간언(諫言) 듣기를 좋아하게 하는 경지로 인도할 수 있겠습니까? 위에는 싫어하는 바가 있고 아래는 꺼려하는 바가 있으면 곧은 말이 들리지 않게 되는 것이니, 나라 일이 잘못 되지 않기를 바란들 되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선(善)을 취하는 도량을 넓히시고 스스로 훌륭하게 여기는 마음을 끊으시어, 자신의 잘못을 찾아냄으로써 덕을 빛내시고, 곧은 말을 받아들임으로써 지혜를 넓히소서. 또한 마땅히 나라의 요직(要職)에 있는 자들을 책려(策勵)하여 겸허한 마음가짐으로서 선을 받아들여 목동(牧童)의 말일지라도 버리지 말고 대체(大體)가 선하면 작은 잘못은 따지지 말게 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한다면 어찌 종사를 위하여 다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신 등은 듣건대, 기미(幾微)는 길흉(吉兇)이 나누어지는 분기점이므로 정치를 하는 자들은 늘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삼가고 조심한다 합니다. 만약 이미 일이 발생하였다면 장차 어느 곳에다 손을 쓸 수가 있겠습니까? 한 점의 불이 만 이랑의 들을 불살라 버릴 수 있고 개미굴 하나가 천 길 제방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입니다. 대저 인정(人情)이란 그 기미는 소홀히 여기고 어떤 일이 일어나면 이를 늘 뜻밖의 일이라고 하기 일쑤이나, 천하의 일이 어느 것인들 미미한 데서부터 환히 드러나고 작은 것에서부터 크게 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까? 지난번 대신들의 의논은 자못 송인(宋人)이 조장하던11476) 전철을 답습한 것으로, 대개 그 뜻은 뿌리를 이미 제거하였으니 잎사귀에 대해서는 걱정할 것이 없다는 것이었으나, 이는 인심이 한번 흔들리면 사방으로 걷잡을 수 없이 번져 기회를 타고 틈을 노려 다투어 자신의 계책을 마음대로 행사하여 한다는 것을 모른 처사입니다. 이렇게 된 뒤에는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보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들으니 그때에 귀를 기울여 말을 엿들으면서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란 자들이 곳곳마다 꽉 찼었다 하는데, 다행히 성지(聖志)가 굳으심을 힘입어 비록 스스로 소축(消縮)되기는 하였지만 요행을 바라고 화(禍)될 일을 즐겨하는 마음이 떠들썩하게 그치지 않고 있으니, 어찌 매우 위태로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장곤(李長坤) 이 비록 ꡐ당(黨)에 붙는 것을 배격하지 않으면 입지(立志)가 굳지 못하며 하는 일이 일정치 못하게 된다.ꡑ 하였으나, 자신은 높은 반열의 고관으로 부박(浮薄)한 무리11477) 들과 내통하여 한 때의 벼슬 임명을 모두 그들의 지시에 따르면서 감히 어기지 못하였으므로 국가에서 공의 순서대로 벼슬 주는 구전(舊典)이 하루아침에 그의 손에서 무너져 버렸으니, 그의 죄가 이미 많습니다. 이 사람은 신화(新化)11478) 에서는 버림을 받아야 하는데도 성주(聖主)께서 구휼하여 거두어 주고 대신들이 보전하여 도와주므로 벼슬에서 깎인 지 얼마 안 되었건만 이렇게 빨리 은혜를 베푸셨으니, 이는 용사(用捨)가 일정하지 않고 상벌(賞罰)이 분명하지 않은 것입니다. 신 등은 사방(四方)이 조정의 추향(趨向)이 일정한 방도가 없는 것인가 의심하여, 깊고 얕음을 엿보려는 자가 있을까 염려스럽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난(亂)이 이루어지기 전에 걱정하시고 계책은 일보다 앞서 제정하시어, 요행을 바라는 문을 열지 마시고 시비가 정하여진 것을 동요시키지 않음으로써 국속(國俗)을 진압하고 인심을 안정시키신다면, 어찌 종사(宗社)를 위하여 매우 다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신 등이 듣건대, 천하를 위하여 좋은 계책을 세우는 자는 기강(紀綱)의 이란(理亂)을 살핀다고 합니다. 이는 넓은 지역에 사는 많은 백성들이 각기 나름대로의 뜻을 품고 자신의 사심(私心)을 행하려 하므로 이를 총괄하여 정제(整齊)함으로써 각기 순리로 나아가게 하는 데는 기강으로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반드시 이를 급선무로 삼아야 하는 것으로, 재상은 이를 잘 유지시켜 감히 잘못됨이 없게 해야 하고 대간(臺諫)은 도와 살피되 사적으로 하는 것이 없어서, 공이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상을 주고 죄가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벌을 주어, 도리를 헤아리고 법을 지켜가는 것이 질서 정연하게 잘못됨이 없다면, 나라를 다스리기가 어찌 쉽지 않겠습니까?

 

  국가가 근년으로부터는 모든 일을 그럭저럭 구습만 답습하고 있으므로 모든 일이 제대로 거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관직에는 나라를 위하여 힘을 다하려는 사람이 없고 용법(用法)함에는 사심을 따르는 관리가 많되, 상하(上下)가 태연한 채 전혀 괴이하게 여길 줄 모르니, 능이(陵夷)되고 퇴패됨이 오늘에 이르러 극도에 달하였습니다. 이리하여 백성은 법을 모르고 관리는 제재할 줄 모르게 되었습니다. 국내(國內)의 금법(禁法) 가운데 방전(坊廛)의 일에 대하여는 진실로 말할 것도 없는 정도이며, 중국으로 가는 금은(金銀)에 대한 금법이 중전(重典)에 실려 있고 초피(貂皮)․화피(樺皮) 또한 방지하는 법이 설치되어 있는데도, 공공연히 가지고 가면서 두려워하거나 피하는 일이 없이 얼굴과 등이 바라다보일 정도로 잇달아 왕래하지만, 관리가 이를 범연히 보아 넘긴 채 아무도 검색하거나 제재할 줄을 모릅니다. 행인(行人)들에게 듣건대, 중국 사람이 이미 금은이 생산되는 곳을 알고 있다 하니, 만일 예전처럼 공납(貢納)하라고 독책한다면 백성들의 화를 어찌 이루 말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지금 다투어 서로 매매(買賣)함으로써 이(利)만을 도모하고 있으므로, 예의지국(禮義之國)의 옛 풍습이 지금에 와서 땅을 쓴 듯이 깨끗이 없어졌으니, 어떻게 중국 사람들에게 천대와 미움을 당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천견(天譴)이 이르는 것과 사신의 예대(禮待)를 박하게 하는 것은 괴이하게 여기기에 부족하거니와, 기강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오히려 두려워할 줄을 모르니, 신 등은 제방(堤防)이 이로부터 깡그리 무너져 나라를 다스릴 수 없게 될까 염려스럽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공(功)과 죄(罪)를 분명히 살피시어 상과 벌을 밝게 시행하시고 영(令)을 시행함에 있어서는 고식(姑息)을 삼가시고 법을 세움에 있어서는 변경(變更)을 삼가시어, 이로써 군하(群下)를 경칙하여 무너진 기강을 진작시킨다면, 종사를 위하여 어찌 매우 다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신 등은 듣건대, 땅의 힘이 생물을 기르는 것에도 어느 한계가 있는 것이고 사람의 힘으로 물건을 만드는 것도 역시 어느 한계가 있는 것인데, 만약 절제 없이 쓰고 한정을 두지 않고 취한다면, 끝에 가서는 반드시 취하여 충족시킬 수 없게 되는 것이므로, 임금은 공검(恭儉)으로 덕을 삼아야 한다고 합니다. 삼대(三代) 이후로 잘 다스린 것으로 이름난 사람은 한 문제(漢文帝) 만한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나라 역사에 기록된 것을 보면 첫째도 공검이었고 둘째도 공검이었으며, 그 실적을 더듬어 보건대 비단옷 입은 후궁이 없었다는 것과 노대(露臺)를 세우고 싶었으나 백금(百金)을 아끼려고 세우지 않았다는 것에 불과하였습니다. 이러할 뿐이었는데도 그 치효(治效)가 이루어졌으니, 공검이 치도(治道)에 끼치는 영향이 어찌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나라가 태평세월을 누려온 지 오래라서 국내외가 풍성함을 누린 데 젖어 사치한 풍속이 점점 고질적으로 이루어졌으므로, 천한 사람들이 후왕(侯王)의 복식을 꾸미고 여염(閭閻)집에서 궁궐의 제도를 본뜨고 있으며, 술과 음식을 대내(大內)의 법도가 아니면 진설하지 않고 안주와 과일도 먼 지방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면 진귀하게 여기지 않으며, 호우(豪右)들이 하는 바를 빈궁한 사람들이 본받아 하느라고 재산을 다 기울여 파산에 이르러도 중지시킬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이래서 선유(先儒)들이 ꡐ백성이 모두 비단 옷 입고 고기를 먹는데도 이를 금할 줄 모르는 것은 망하는 길을 취택하는 것이다.ꡑ 한 것이니, 어찌 깊이 두려워해야 될 일이 아니겠습니까? 비록 그러하지만 말로만 금하는 것이 몸소 금하는 것을 실천하는 것만 못합니다. 지금 세상에 살면서 지금 세상의 풍속을 바룸에 있어서는 비록 한 문제처럼 몸소 실천하여도 오히려 될 수 없을까 두려운 일이거든, 하물며 사치스러운 일로 아랫사람을 통솔함에리까?

 

  삼가 왕자(王子)․왕녀(王女)가 혼인할 적에 드는 물자(物資)와 궁궐의 아름다움은 자고 이래로 일찍이 보지 못하던 바였습니다. 외장(外藏)과 내탕(內帑)은 조종(祖宗) 때부터 저축한 것인데, 오늘에 이르러 전부터 저축하여 온 것이 바닥이 나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지금은 낭비를 징계하는 말이 파다한데도 경축하는 행사가 수없이 많으니, 출합(出閤)11479) 하는 물자를 반드시 이렇게 하려 한다면 온 나라의 백성이 힘을 다하여도 공급할 수 없을까 염려스럽습니다. 왕애(王涯)는 한때의 재상이었습니다만 그래도 감히 자기 딸을 위하여 비녀 1개를 사주지 못하였는데, 어찌하여 성명(聖明)께서는 이렇게 자식 사랑에 빠져서 피폐한 풍속을 이루게 하십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마음속의 사랑을 정상으로 돌리시고 몸소 솔선하는 교화를 도타이 보이시어 혼인에 있어 예도를 넘지 않게 하시고 궁실도 법제를 넘지 않게 하심으로써 사치스럽고 혼탁한 풍속을 순후하고 질박한 데로 돌아오게 하시면 종사를 위하여 어찌 매우 다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신 등이 선유(先儒)에게 듣건대 ꡐ자손이 재주가 있으면 집안이 번창하고, 인재(人才)가 많이 나오면 나라가 창성한다.ꡑ 하였습니다. 나라에 현재(賢才)가 있는 것이 집안에 재주있는 자손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니, 이들을 배양하는 것이 어찌 중대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옛날에는 학교(學校)를 조정의 대정(大政)으로 삼았으므로 삼덕 삼행(三德三行)․육덕 육의(六德六儀)11480) 등 교조(敎詔)가 한둘이 아니었는데, 후세에 이르러 이 예(禮)는 비록 없어졌으나 현명한 임금이 다스리던 태평 시대에는 그래도 신하들과 학문을 강론하는가 하면 학교를 증축하고 학생을 증원시켜 그 시대를 위대하게 만든 경우도 있었으니 또한 숭상할 만합니다. 처음 우리나라는 유교(儒敎)를 국시(國是)로 삼았기 때문에 학교에 관한 의범(懿範)과 굉규(宏規)가 전세(前世)에 비길 바 아니었으며, 거기다가 열성(列聖)의 배양이 마땅함을 얻었으므로 아름다운 덕을 지닌 선비와 성대한 인재가 점점 초창기(初創期)보다 많아졌었는데, 근대에는 훈도(訓導)하는 데 일정한 방법이 없으므로 유풍(儒風)이 예스럽지 못하여, 경사(卿士)의 자제와 이당(里黨)11481) 의 준수한 사람들도 학적(學籍)에다 이름만 올려놓고 구차스럽게 점수(點數)만 갖춤으로써 과거(科擧)보는 기일만 기다릴 뿐이기 때문에 학문과 덕을 갈고 닦는 유익함은 없고 고루하고 괴벽(乖僻)스러운 병통만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문장(文章)이 더욱 저속하여지고 경업(經業)이 더욱 경망스러워진 것은 대개 이 때문입니다. 또 옛날에 입학(入學)하여 공부하는 방법은 입학한 지 7년 만에 소성(小成)하고 9년 만에 대성(大成)하는 것11482) 으로, 진실로 문예(文藝)가 진보되고 덕이 이루어지는 것이 잠깐 사이에 성취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지금은 평소부터 인격이나 학문을 배양하는 사람이 없는데도 너무 자주 취사(取士)합니다. 대비(大比)11483) 이외에도 과거(科擧)를 설치하지 않는 해가 없으므로 선비들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깊이 연구하는 학구적 자세는 없이 사람마다 요행을 바라는 습성만 품고 있습니다. 이리하여 시서(詩書)를 거쳤다 가는 여관으로 여기고 육예(六藝)를 필요할 때만 쓰는 모경(?梗)으로 여겨 일단 벼슬을 얻게 되면 해오던 학업을 모두 버리므로 문학에 마음을 두고 원대한 지경에까지 이르려는 데 뜻 두는 자는 한둘에 불과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몸소 솔선하고 성심으로 진작시키시어, 선(善)을 일으키는 기틀을 고무(鼓舞)하여 사장(師長)의 직에 있는 선비를 권장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훈적(訓迪)의 임무를 다하게 하여 노력하지 않고 얻어지는 요행수를 없앰으로써 어진 이를 기르는 실상을 거행하도록 힘쓰신다면, 종사를 위하여 어찌 매우 다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신 등은 듣건대, 정사를 시행함에 있어서는 상(賞)이 있으면 반드시 벌(罰)이 있어야 하고 나라를 세움에 있어서는 문(文) 이 있으면 반드시 무(武)가 있어야 되는 것으로, 벌이 없으면 인심이 방종하게 되고 무(武)가 없으면 나라가 날로 약해지는 것이니, 이른바 문무(文武)를 병용(竝用)하는 것이 국가를 장구하게 이어갈 수 있게 하는 방법이라 합니다. 이 때문에 사방(四方)에 걱정이 없을 때라도 현명한 임금은 전쟁을 잊는 날이 없었는데, 이는 나라를 위한 걱정이 없을 때라도 현명한 임금은 전쟁을 잊는 날이 없었는데, 이는 나라를 위한 걱정이 깊은 데서 연유한 것입니다. 우리 조정은 1백 년의 왕업(王業)을 이어오면서 사방의 국경에 전쟁이 있음을 듣지 못한 지 오래므로 장수(將帥)는 기율(紀律)을 모르고 사졸은 항오(行伍)를 모르며, 진(鎭)에는 예리한 무기가 적고 군(軍)에는 축적된 군량이 없기 때문에, 식자들은 섶에 불이 당겨진 위태로움보다 더 급하게 걱정하고 있는데도 조정(朝廷)에서는 태연하게 보아 넘긴 채 고쳐 조처할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지난해 남방(南方)에 경보(警報)가 있을 적에 제장(諸將)들이 어쩔 줄 몰랐던 것은 진실로 말할 것도 없거니와, 지금 보잘 것 없는 오랑캐가 한 척의 배를 타고 여기저기 함부로 횡행하는데도 삼도(三道)의 경계(境界)에서는 아무도 다시 수하(誰何)11484)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충청도 의 비보(飛報)에 의하여 주장(主將)이 패배(敗北)를 숨겼던 상황을 모두 알게 되어 조야(朝野)가 울분으로 팔을 내젓고 사졸들은 통분한 나머지 타매(唾罵)하고 있는데도, 전하께서는 아직도 의심하면서 즉시 잡아다가 신문(訊問)하지 않고 있습니다. 군기(軍機)란 잠깐 사이에도 변할 수 있는 것인데 느릿느릿 지체하다가 사람을 내어 보내어 조사하게 함으로써 말을 꾸밀 수 있게 만들었으니, 이것이 어찌 위엄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이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군사(軍事)에 관한 계책을 수거(修擧)하시고 통솔하는 방략(方略)을 진작시키시어, 수시로 모아 무예(武藝)를 익히게 하고 열무(閱武)를 해이하게 하지 않음으로써 비록 태평하여 일이 없을 때일지라도 늘 적(敵)이 이른 것 같이 경계를 늦추지 않으신다면, 종사(宗社)를 위하여 어찌 매우 다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예로부터 임금이 누군들 자신이 살고 있는 당세가 다스려지고 태평해지게 하려고 않았겠습니까? 이를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은 같지만 치효(治效)가 현격하게 차이 나는 이유는 현명함에 대소(大小)의 구분이 있고 힘쓰는 것에 득실(得失)의 다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 등이 아뢰는 말은 진실로 진부하여 쓸모없는 말이기는 하지만, 신 등의 어리석은 생각에는 시무(時務) 가운데 가장 크고도 장구하게 해가야 될 일은 이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 같으므로 외람되이 말씀드리오니, 전하께서는 진부한 말이라 하여 고루하게 여기지 마소서.ꡓ/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6책 241면/ 【분류】 *외교-명(明) / *변란-정변(政變) / *인사-관리(管理) / *정론-정론(政論) / *과학-천기(天氣) / *왕실-국왕(國王) / *역사-고사(故事) / *풍속-예속(禮俗)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군사-군정(軍政)/ [註 11472]피전 철악(避殿撤樂) : 천변을 근신하는 뜻에서 정전을 피하고 무악(舞樂)을 중지하는 것. ☞ / [註 11473]상곡(桑穀)과 발목(拔木)의 변(變)이 도리어 상(商)나라 와 주(周)나라 의 경사(慶事)가 되었던 것처럼 : 아무리 재변이 닥쳐왔더라도 더욱 삼가고 조심하면 그 재변이 도리어 경사가 될 수 있다는 뜻. 상곡은 상서롭지 못한 나무로 은(殷)나라 태무(太戊)가 제위(帝位)에 오르고 이척(伊陟)이 정승이 되었을 때 이 상나무와 곡나무 조정의 뜰에 함께 붙어서 났는데 하루아침 한 아름이나 되도록 자라자, 태무가 두려워하여 이척에게 물으니 ꡒ요얼이 덕(德)을 이기지는 못하는 것이니, 덕을 닦으소서.ꡓ 하였다. 이리하여 태무가 덕을 닦고 선정을 베풀었으므로 은나라가 다시 부흥하였다 한다. 《사기(史記)》 은기(殷紀). 발목은 나무가 뽑혀지는 재변으로, 주(周)나라 성왕(成王)이 주공(周公)을 의심하자 그해 가을에 비바람이 크게 불어 곡식이 쓰러지고 나무가 뽑혔다. 이를 두려워 한 성왕이 대부들과 함께 금등(金?)에 들어 있는 주공의 축수문(祝壽文)을 꺼내어 보고 크게 감동하여 주공을 맞아들이니, 비바람이 그치고 곡식이 다시 다 일어나고 나무가 다 일어나 크게 풍년이 들었다 한다. 《서경(書經)》 금등(金?). ☞ / [註 11474] 하계(夏癸) : 걸왕(桀王). ☞ / [註 11475] 은신(殷辛) : 주왕(紂王). ☞ / [註 11476]송인(宋人)이 조장하던 : 매우 성급하고 한심한 의논이라는 뜻.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 상(上)에 ꡒ송(宋)나라 사람이 자기 논의 곡식 싹이 빨리 자라지 않는 것을 걱정하여 곡식의 싹을 모두 뽑아 올렸더니 다 말라 죽었다.ꡓ 하였다. ☞ / [註 11477]부박(浮薄)한 무리 : 조광조(趙光祖) 등을 가리킨다. ☞ / [註 11478]신화(新化) : 조광조 등을 제거한 뒤를 가리킨다. ☞ / [註 11479]출합(出閤) : 왕자(王子)가 장성한 뒤에 사궁(私宮)을 짓고 나아가서 사는 것. 또는 왕녀(王女)가 하가(下嫁)하는 것을 말한다. ☞ / [註 11480]삼덕 삼행(三德三行)․육덕 육의(六德六儀) : 삼덕은 지(智)․인(仁)․용(勇)이고, 삼행은 부모 봉양(奉養), 상사(喪事)에 근신(謹愼), 봉제사(奉祭祀)이다. 육덕은 지(知)․인(仁)․성(聖)․의(義)․충(忠)․화(和)이고, 육의는 제사(祭祀)․빈객(賓客)․조정(朝廷)․상기(喪紀)․군려(軍旅)․거마(車馬)를 말한다. ☞ / [註 11481]이당(里黨) : 25호(戶)를 이(里)라 하고 5백 호를 당(黨)이라 하는데, 여기서는 각 고장의 뜻이다. ☞ / [註 11482]7년 만에 소성(小成)하고 9년 만에 대성(大成)하는 것 : 공부하는 순서와 단계를 말한다. 《예기(禮記)》 학기(學記)에 ꡒ입학한 지 7년 만에 학문의 깊은 뜻을 강구하는 것을 보아 벗을 취하는 것을 소성(小成)이라 하고, 9년 만에 유를 미루어 널리 통달하고 마음의 지표를 굳게 세워 변동없는 것을 대성(大成)이라 한다.ꡓ 하였다. ☞ / [註 11483]대비(大比) : 식년시(式年試). ☞ / [註 11484]수하(誰何) : 검문하여 공격하는 것. ☞(www.history.go.kr 2009)

 

  김양진 [記事] : 중종실록 50권/ 중종 19년(1524 갑신 / 명 가정(嘉靖) 3년) 4월 25일(기미) 2번째 기사/ 사간원 대사간 김양진 등의 상소문/ 사간원 대사간(司諫院大司諫) 김양진(金楊震) 등이 상소(上疏)하기를, ꡒ하늘은 운행이 지극히 장건(壯健)하여 세공(歲功)을 이루고, 나라에는 원기(元氣)가 있어서 치도(治道)를 높이는 것이므로, 성인(聖人)의 정치는 천지와 함께 운전하여 멈추지 않고 아울러 운행하여 쉬지 않아서, 조치의 계책을 베풀고 공화(功化)의 성취를 극진히 하는 것이니, 그 기강을 세워서 그 명맥을 씩씩하게 하는 것이 없으면 어떻게 영성(盈盛)한 사업을 지키고 연익(燕翼)12043) 의 모책을 끼치겠습니까? 사람의 한 몸도 섭리(攝理)를 잘못한 것이 안에서 이미 커지면, 바람이 닥쳐오고 습기가 스며들어 지체(支體)로부터 주리(?理)12044) 에 미치고 피부로부터 장부(臟腑)에 통달하니, 그 우환은 이루 말할 수 없는데, 더구나 천하와 국가이겠습니까? 생각하건대, 우리 주상전하(主上殿下)께서 즉위하신 지 19년 동안 잘 다스리기를 더욱 간절히 바라셨으나 보람은 오히려 드러나지 않아, 밖으로는 다스리는 방도가 펴진 듯하나 안으로는 실로 완이(玩弛)12045) 하여 떨치지 않는 걱정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궁중에서는 여알(女謁)12046) 이 성행하고 극진한 자애(慈愛)는 절검(節儉)을 모르므로 풍속이 날로 퇴폐하고 법령만 점점 더 까다로워져서 관작(官爵)이 혼란하게 베풀어지고 상벌이 온당한 것을 잃고 군정(軍政)이 닦아지지 않으니, 천변이 거듭 이르는 것은 참으로 기강이 서지 않고 원기가 위축되어 분려(奮勵)해서 유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임금은 기강을 통섭(統攝)하고, 보필하는 것은 상신(相臣)이므로, 본디 마음을 평상하게 갖고 도량을 넓혀 뭇 의논을 합쳐 받아들이고 조석으로 납회(納誨)12047) 하여, 임금을 이끌어 도리에 맞게 하여 진기(振起)하는 계책을 다하지 않는 바가 없어야 할 것인데, 요즈음 일을 의논할 즈음에 편안한 것을 좋아하여 일이 구차하고 간략하게 되고, 또 접때 사대부(士大夫)가 부박(浮薄)하고 궤격(詭激)하였던 폐단을 핑계하고 공론(公論)일지라도 혹 즐거워하지 않아서, 가부를 논란하여 서로 도와 성취하는 뜻을 잃었으니, 서로 닦는 것이 부족한데도 그 책임을 다한다 할 수 있겠습니까? 신 등이 듣건대, 하늘이 높고 멀기는 하나 보고 듣는 것은 백성에게 있는 것이니, 유통하여 감응하는 것은 같은 이치가 관통하여 다름이 없으므로, 그 선악에 따라서 상서(祥瑞)와 이변이 곧 응험한다 합니다. 근래 홍수와 가뭄이 잇달아 해마다 흉년이 들어서, 온 나라 안은 굶어죽은 주검이 길에 가득하고, 저자 가운데에서는 한 말의 쌀값이 한 필의 베에 해당하니, 민생의 어려움이 이보다 심한 때가 없습니다. 더구나 정양(正陽)의 달에 날씨가 싸늘하여 서리․눈․우박이 내리고 지진과 흙비의 변고가 잇달아 보고되며 영동(嶺東)의 여러 고을에 절로 일어난 불이 번져서 거의 다 불탔으니, 이것은 전사(前史)가 경계한 것이고 전하께서 조심하고 두려워하셔야 할 것입니다. 제군(諸君)과 옹주(翁主)의 집을 짓는 것은 급한 일이 아닌데, 강원 ․ 충청 두 도의 백성이 재목을 나르기에 고달파서 유산(流散)한 자가 반이나 되는데도 백성의 재목을 억지로 사들이고 사장(私匠)을 다그쳐 모으며 굶주린 군졸을 몰아서 토목 일에 나아가게 하면서, 부질없이 봉료(俸料)를 맞게 하여 장인(匠人)을 권려하고 징채(徵債)를 늦추어 원망을 푼다고 하니, 이것이 어찌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돌보는 도리이겠습니까?

 

  신 등이 듣건대, 풍속의 오륭(?隆)은 사습(士習)에 관계되는 것이니, 사습이 바르지 않으면 인재가 진작되지 않고 풍속이 바루어질 수 없다 합니다. 지금 벼슬을 맡은 자는 염각(廉恪)12048) 이 적고 진용(進用)되기를 탐내는 자는 권문(權門)에 모여들므로, 새로 나아가는 젊은 선비도 학규(學規)를 업신여기고 경술(經術)을 숭상하지 않으며, 이따금 아직도 폐습을 답습하여 궤설(詭說)을 앞장 서 말하고 선악을 비판하고 사장(師長)을 능멸합니다. 학교를 설치하고 준수(俊秀)한 인재를 가려서 양성(養成)하는 까닭은 장차 뒷날의 소용으로 삼으려는 것인데 사습이 이에 이르렀으니, 이것은 스스로 애쓰는 것이 도탑지 않기 때문이기는 하나 실로 이끄는 방도가 어그러진 데에 말미암은 것입니다. 또 전하께서 여러 번 규정 밖의 일로 선비를 기쁘게 하려고 힘쓰되 한갓 부문(浮文)을 숭상하여, 양성의 보람을 보지 못하고 요행의 문을 더욱 열게 되니, 사습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바루어지고 풍속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아름다워지겠습니까? 신 등이 듣건대, 절검(節儉)은 임금의 큰 덕이니, 절약하지 않으면 재물이 다하고 검소하지 않으면 사치가 방자해진다 합니다. 그러므로 예전의 밝은 임금은 변변치 않은 음식을 먹고 허술한 옷을 입어 백성의 정상적인 공급으로 충당하였으니, 이는 길이 제왕으로서 본받아야 할 일입니다.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래로 절검에 뜻을 두어 백성을 사랑하는 도리를 아셨으나, 창유(倉庾)12049) 의 저축과 부고(府庫)의 재물은 다 쓰일 데가 있는 것인데 불시의 명목 없는 소용으로 외정(外廷)을 거치지 않고 대내에 바로 들이고, 혼가(婚嫁)하여 출각(出閣)할 때에 착용하는 완호(玩好)가 지극히 화려하므로 낭비가 적지 않아서 탕장(帑藏)이 다하면 반드시 저자에게 구하여 낭비를 절약하지 않고 사치한 버릇을 앞장 서서 만들며, 의빈(儀賓)․왕자(王子)의 집은 호화를 서로 숭상하고 널리 고관을 맞아 밤낮으로 연락(宴樂)에 빠지므로 사서(士庶)가 따라서 본떠서 필백(匹帛)의 소매와 반액(半額)의 눈썹12050) 이 되는 것은 괴이할 것도 없는 일이니, 재물이 다하고 사치가 방자하게 되지 않기는 어렵습니다. 신 등이 듣건대, 영(令)이란 오직 행할 뿐이요 취소하지 못한다 합니다. 대저 하나하나의 호령은 깊이 헤아려 그 시종 길이 행할 모책을 생각하고 한때의 생각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영이 행해지고 백성이 믿으며 유구하고 폐단이 없는 것인데, 지금은 그렇지 않고 처음에 먼 일을 꾀하지 않아서 곧 어긋나므로 논의가 마구 일어나서 오늘 회의하고 내일 다시 의논하여 견제가 끊이지 않으니 영이 내려지더라도 백성이 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법금(法禁)이 매우 세밀하여 문서가 가득 쌓여서 관리가 봉행하기에 어지러워 따라야 할 바를 모르고, 심하면 조문을 마음대로 해석하고 농간을 부리기까지 하여 따라서 간사한 짓을 하는 자가 많으며, 선왕(先王)의 좋은 법의 아름다운 뜻도 따라서 가벼이 의논하니, 전하의 호령을 신중하다 하겠습니까? 신 등이 듣건대, 민생은 욕심이 있으므로 다툼이 없을 수 없다 합니다. 다툼이 있으면 송사가 없을 수 없는데, 공명(公明)하고 강단(剛斷)하지 않으면 판결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금의 옥송(獄訟)은 흔히 전토(田土)와 노비(奴婢)에서 일어나는데, 욕심 많은 무리는 요행을 이롭게 여기고 귀척(貴戚)의 집에서는 협제(脅制)를 쉽게 여기는데도 관리는 어리석지 않으면 혹 사정을 따라서 그 시비곡직을 가리지 못하므로 도움이 없는 자는 원망을 품고 권세를 믿는 자는 방자하며, 판결할 즈음에 거기에 드는 종이를 지나치게 거두므로 폐해가 더욱 큽니다. 서울에서도 이러하니 시골은 따라서 알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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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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