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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460) : 김우익(2)-김우일(1)(附 예천군, 11일 도평가 농정대상...축하합니다/예천군, 7일 적십자모금 장려상...축하합니다/예천연자방아와 이제명, 10일 친환경농산물 도품평회에서 우수상...축하합니다/예천방문 1,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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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익(金友益) [記事] : 원문자료/ 묘갈명(墓碣銘) : 우리나라의 예악과 문물은 세종 때에 크게 갖추어졌다. 이 당시에 문절공(文節公) 김담(金淡)은 일대의 공신으로서 덕과 열정이 가장 성대하였으므로 고을 사람들이 오랫동안 사당을 세워 제향하며 추모하였으니 공에게는 5대조가 된다. 고조부의 이름은 김만평(金萬枰)이니 좌통례를 지냈으며, 증조부 이름은 김좌(金佐)이니 충순위(忠順衛)를 지냈으며, 조부의 이름은 김택민(金澤民)이니 사섬첨정을 지냈다. 아버지는 김윤의(金允誼)이니 우부승지에 추증되었다. 어머니는 한양조씨(漢陽趙氏) 충의위(忠義衛) 조양(趙諒)의 딸이다. 1571년(선조 4)에 공을 낳았다. 이름은 김우익(金友益)이며, 자는 택지(擇之)이다. 어려서 송소(松巢) 권우(權宇)에게 수학하였으며, 자라서는 스스로 분발하여 힘써 공부하여 1612년(광해군 4)에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에서 학유(學諭)․학록(學錄)․학정(學正)을 위시하여 박사(博士)에 올랐으며 거산도 찰방으로 나아갔다. 1616년(광해군 8)에 황해도사 겸 춘추관기주관이 되었으며, 1617년(광해군 9)에 영원 군수에 제수되었고, 1621년(광해군 13)에 형조 좌랑과 병조 정랑이 되었다. 1623년(인조 1) 이후 안동과 진주의 제독으로 제수되었다. 1638년(인조 16)에 봉상시 주부에서 갑자기 한성부 서윤으로 옮겼고, 가을에 해미 현감에 제수되었다가 얼마 되지 않아서 물러났다. 1639년(인조 17)에 병으로 돌아가시니, 다음해에 감천(甘泉)의 고방산(古方山) 아래 사향(巳向)에 장사지냈다. 오호라! 공은 지극한 정성으로 어버이를 섬기었다. 승지공(承旨公)이 돌림병을 앓으니 변을 맛보며 하늘에 기도했다. 장례에 사람들이 다 꺼리고 피하기에 형제들과 친히 널을 붙들고, 흙을 덮어 장사를 치루고 삼년 동안 십 리가 넘는 길을 걸어서 매일 같이 성묘하였다. 형이 일찍 죽은 것을 지극한 한으로 여겨 홀로 된 형수와 고아가 된 조카들로 하여금 차마 조상의 제사를 해마다 하지 못하게 하였고, 종신토록 홀로 감당하며 갖추어 행하였다. 문절공 사당의 비각에 글자가 드러나지 않자 몸소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에게 명을 청하여, 돌을 쪼아 새겼다. 이어 그 아래 4대의 묘표도 세우고는, 탄식하며 ꡒ평생에 원하는 뜻을 끝마쳤다.ꡓ 라 하였다. 영원읍(寧遠邑)이 퇴폐해지니 공이 정성을 다하여 구획을 정하였다. 그러자 여러 해 동안 떠돌아다니던 사람들이 사방에서 돌아오게 되었으며 부(府)의 창고를 채워 넘치게 되니, 감사(監司)가 조정에 그의 치적을 알렸다. 해미에서는 치적이 더욱 드러나 한평(韓平) 이경전(李慶全)이 시를 지었고, 지금까지도 공덕비가 입으로 전해지니 그것은 해막(海幕)에 있다. 도내에서 최기(崔圻)의 옥사에 연루되어 귀양 가게 될 사람들이 많았는데, 당시의 사람들이 감사 백대형(白大珩)을 부추켜 장차 화가 미치려 하였지만 공이 의뢰하고 주선하여 일이 잠잠해졌다. 판서(判書) 남이공(南以恭)이 그 일을 상세히 알아 발탁하여 중용하려 한 것에 대하여 사예(司藝) 이숭언(李崇彦)이 시를 지었다. 이미 성명은 기쁘게 되었으나 운명을 달리하였다.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고을 사람들이 공을 추대하여 의병대장으로 삼았다. 창졸간에 병사와 군량을 장만한 것이 여러 읍 중에서 최고였다. 일찍이 스스로 그의 재주와 국량을 자부하여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고 하였으나, 끝내 쓰이지는 못하였으니, 운명이리라. 병들어 누워서는 약을 물리치며, ꡒ내 선조들은 모두 그리 오래 살지를 못하였는데, 나는 금년에 칠십이 다 되어가니 충분하다.ꡓ 라고 하였다. 자제들이 울면서 청하였으나 곧 입을 다물고는 그치었다. 그의 뛰어난 식견이 이와 같았다. 부인은 순천김씨(順天金氏)이니 옛날 재상인 승주(承주)의 후손이며, 생원(生員) 윤흠(允欽)의 딸이다. 4세 때에 어버이 상을 당하여서는 울며불며 고기를 먹지 않았고, 결혼하여서는 부드럽고 온화하게 부인의 도를 행하였다. 종들을 다스림에 기쁘거나 노한 기색이 없었으며, 공보다 12년 먼저 세상을 하직하였다. 묘소는 공의 묘소 앞에 있다. 딸이 다섯이며, 사위는 사인(士人) 권상신(權尙信), 생원(生員) 전유흠(全有欽), 정언(正言) 전익희(全益禧), 생원(生員) 민성(閔?), 유학(幼學) 김요필(金堯弼)이다. 아들이 셋이며, 김찬(金鑽)․김옥(金鈺)․김첨(金 金+詹)이다. 각자 아들이 하나씩이며, 김종호(金宗灝)․김종미(金宗渼)․김종급(金宗汲)이다. 내외손 남녀와 증손 남녀가 많이 번창하였다. 공의 관향은 선성(宣城)이다. 명(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웃는 모습은 화기가 넘쳐도/ 품은 뜻은 확연하였다/ 넓은 재주를 지니어/ 크나 큰 그릇이었다. / 마치 있는 것처럼 여겨지어/ 여기에서 그친다./ - 김응조(金應祖), 『학사집(鶴沙集)』(www.koreastudy.or.kr 2007)
김우익(金友益) : 본관(本貫) 예안(禮安), 시대(時代) 1571 ~ ?, 자(字) 언겸(彦謙), 호(號) 두암(斗巖)/ 이력(履歷)/ 영주문화 > 영주의 역사인물 > 조선시대/ 김우익(金友益 1571 ~1639) 자는 택지(擇之), 호는 두암(斗巖), 본관은 예안(禮安)이다. 문절공(文節公) 담(淡)의 5대손이다. 어버지는 증 좌승지(贈 左承旨) 윤의(允誼)이고, 어머니는 한양 조(趙)씨로 충의위(忠義衛) 양(諒)의 딸이다./ -. 송소(松巢) 권우(權宇)와 유연당(悠然堂) 김대현(金大賢)의 문인이다./ -. 광해군 4년(1612)에 문과(文科)에 병과(丙科) 제 2인(二人)으로 급제하였다./ -. 병조정랑(兵曹正郞), 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 황해도사(黃海都使) 등을 지냈다.(daum 2010)
김우익 : <국조 문과 방목>/ 김우익(金友益)/ 광해군(光海君)4년(1612년), 식년시(式年試) 병과2(丙科2)/ > 인적사항 생년(生年) 1571년, 신미, 자(字) 언겸(彦謙), 본관(本貫) 예안(禮安)/ > 가족사항 부(父) 김윤의(金允誼), 조부(祖父) 김택민(金澤民), 증조부(曾祖父) 김좌(金佐), > 이력 및 기타 전력(前歷) 유학(幼學), 관직(官職) 황해/도사(黃海/都事)(daum 2010)
김우익(金友益) : 본 예안(禮安)/ 영주 문화유적 > 정각/ 두암고택(斗巖古宅)에 걸려 있는 함집당(咸集堂) 편액이다. 두암고택은 두암 김우익(金友益, 1571~1638)의 집이다. 김우익(金友益)은 자가 택지(擇之), 호가 두암(斗巖), 본관은 예안(禮安)이다. 1612년(광해 4)에 문과에 급제한 후 영원 군수, 한성부 서윤(1638), 해미 현감 등을 역임했다. 김우익의 손자(孫子) 김종호(金宗灝)는 자가 심원(深源), 호가 함집당(咸集堂)으로 외조부 학사 김응조(金應祖)에게 수학하여, 1660(현종 1)에 생원시에 합격했다.(daum 2010)
김우익(金友益) : [시험관련 사항] 왕/년도 : 광해군(光海君) 4년, 과거시험연도 : 1612 임자, 시험명 : 식년시(式年試), 등위 : 병과2(丙科2)/ [인적 사항] 성명(姓名) : 김우익(金友益), 자 : 언겸(彦謙), 본관(本貫) : 예안(禮安)/ [이력 및 기타 사항] 전력(前歷) : 유학(幼學), 관직(官職) : 황해/도사(黃海/都事)/ [가족사항] 부(父) : 김윤의(金允誼), 조부(祖父) : 김택민(金澤民), 증조부(曾祖父) : 김좌(金佐)(daum 2010)
김우익 : 네이트 한국학/ 김휘병(金輝柄) 1856 병진 예안(禮安) - 김(金) 丙科 18위 김흠조(金欽祖) 예안(禮安) - 김(金) 丙科 2위 김우익(金友益) 1571 신미 예안(禮安) - 김(金)/ //koreandb.nate.com(daum 2010)
김우익(金友益) : [문과] 광해군(光海君) 4년 (1612) 임자(壬子)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2위/ [인적사항] 자 언겸(彦謙), 생년 신미(辛未) 1571년, 합격연령 42세, 본관 예안(禮安)/ [이력사항] 전력 유학(幼學), 관직 황해도사(黃海都事)/ [가족사항] [부] 성명 : 김윤의(金允誼), [조부] 성명 : 김택민(金澤民), [증조부] 성명 : 김좌(金佐)/ [출전]《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daum 2010)
김우익 : [專門資料] : 輓詞[金友益再從姪]/ 김우익(金友益) | 한국고전번역원 | 2007.02.12(daum 2010)
김우익 [專門資料] : 宣城金氏 咸集堂宗宅 [簡札 144]/ 정사년(1617) 3월 3일, 상주인 유만식(柳萬植)이 두암(斗巖) 김우익(金友益 : 1571∼1639)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동문, 친척, 친구 사이에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하며 형식은 편지글.../ 柳萬植 | 2007.01.13(daum 2010)
김우익 [專門資料] : 宣城金氏 咸集堂宗宅 [簡札 21]/ 병진년(1616) 4월 24일, 사돈 사이며 아우뻘인 전상열(全相烈)이 두암(斗巖) 김우익(金友益 : 1571∼1639)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동문, 친척, 친구 사이에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하며.../ 全相烈 | 2007.01.13(daum 2010)
김우익 [專門資料] : 宣城金氏 咸集堂宗宅 [簡札 37]/ 병진년(1616) 1월 30일, 유만식(柳萬植)이 두암(斗巖) 김우익(金友益 : 1571∼1639)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동문, 친척, 친구 사이에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하며 형식은 편지글 형식으로.../ 柳萬植 | 2007.01.13(daum 2010)
김우익 [專門資料] : 宣城金氏 咸集堂宗宅 [簡札 119]/ 모년 8월 24일, 유만식(柳萬植)이 두암(斗巖) 김우익(金友益 : 1571∼1639)에게 보낸 간찰(簡札)이다. 간찰은 동문, 친척, 친구 사이에 주고받은 편지로 서찰(書札)이라고도 하며 형식은 편지글 형식으로 서두.../ 柳萬植 | 2007.01.13(daum 2010)
김우익 [專門資料] : 우금촌 두암 고택 전경1/ 조선시대의 학자 두암(斗巖) 김우익(金友益, 1571~1639)의 종택. 20여 호의 민가가 산재해 있는 우금촌의 중앙에 위치한 동향집으로 정침 정면 7칸 측면 6.5칸, 함집당 정면 3칸 측면 2칸, 사당 6칸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 2007.01.09(daum 2010)
김우익 : 시도유형문화재 81호(경북) | 경상북도/ CJD111 | 2010.02.21 16:05/ //cafe.daum.net/ 우금촌 두암 고택 시도유형문화재 81호(영주시)/ 소재지; 경북 영주시 이산면 신암리 304/ 우금촌 두암 고택(友琴村斗巖古宅)은 두암(斗巖)이 20세에 분가할 때 지은 집으로 몸채 24칸·함집당 6칸·사당 6칸으로 되어있다. 정침은 조선 선조 23년(1590)에 지었고, 함집당(咸集堂)과 사당은 그 후대에 지은 것이다. 두암(斗巖) 김우익(金友益)(1571∼1639)은 선조(宣祖) 4년(1571)에 출생하여 광해군(光海君) 4년(1612)에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영원군수(寧遠郡守), 해미현감(海美縣監)을 역임한 후 한성부윤(漢城府尹)에 이르렀고, 인조(仁祖) 17년(1639)에 별세하였다.(daum 2010)
김우익 : 두암(斗巖) 김우익 선생/ 2008.08.08/ 두암(斗巖) 김우익(金友益 : 1571~1639) 소백 춘추 국장 김태환 순흥 선비촌 두암 고택(斗巖 古宅)의 주인 두암(斗巖, 諱 :金友益 : 1571~1639년) 선조의 자(字)는 택지(擇之)이고, 호는 두암. 금학헌(琴鶴軒) 宣城 15世이다.../ //cafe.daum.net/mundann/ 구선재(daum 2010)
김우익 : 여헌선생 급문록/ 2009.12.04/ 김녕(金寧) 1567(명종22)∼1650(효종 1). 선산 몽대 032) 김대진(金大振) 1571년(선조4) 현풍 지동 098) 김우익(金友益) 1571년(선조 4) ~ 1571년(선조 4) 영주 이산 034) 김진호(金震頀) 1571년(선조4) 선산 봉계 037) 김취려(金就礪.../ //cafe.daum.net/CHEONGJU/ 청주정씨(daum 2010)
김우익 : 예안김씨(禮安金氏)/ 2010.03.04/ ...) 김선(金?) 김수손(金首孫) 김수손(金首孫) 김신(金新) 김알(金?) 김약련(金若鍊) 김영범(金永範) 김우익(金友益) 김우일(金遇一) 김위(金?) 김윤석(金潤石) 김이길(金鯉吉) 김이만(金履萬) 김정후(金靜厚) 김준(金濬) 김증(金?).../ //blog.daum.net/ilkobstar/ 별중별(daum 2010)
김우익 : 선비촌 두암고택/ 2008.11.21/ 1975년 12월 30일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81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의 학자 두암 김우익(金友益 1571~1639)의 종택으로, 20여 호의 민가가 산재해 있는 우금촌의 중앙에 위치한 동향집이다. 넓은 사각형의 대지에 흙과 돌로 쌓은.../ //blog.daum.net/ksl1833/ 든돌(daum 2010)
김우익 : 우금촌두암고택 - ㅁ자형의 몸채 24칸, 함집당 6칸.../ 2007.08.07/ ...할 때인 선조<宣祖> 23년(1590)에 건립하였고, 함집당과 사당은 그 후대의 건축이다. 두암<斗巖> 김우익<金友益>은 선조<宣祖> 4년(1571)에 출생하여 광해군<光海君> 4년(1612)에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영원군수.../ //nexruby.tistory.com/ Ruby Tour 여행(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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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일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여지도서 / 補遺篇 (慶尙道) / 丹城縣邑誌 / 宦蹟 / 姜允 孫昌 ?政淸簡 成宗朝特加一階 曺植 南溟 趙宗道 後爲 咸陽郡守節死黃石山城 成遵 李瀞 安? 宋湲 尹? 安? 宋汝宗 以上丁酉亂前失其官案未詳年條 崔挺豪 癸丑來 申 景翼 癸丑來 金奉祖 丙辰來 李祥 戊午來 金德一 辛酉來 李元吉 壬戌來 孫? 甲子來 韓夢逸 丁卯來 權益慶 戊辰來 朴 庚午來 宋興詩 甲戌來 金鼎 丙子來 李永賢 戊寅來 沈慣 癸未來 李? 乙酉來 趙伯耘 庚寅來 李文望 甲午來 曺敬彬 戊戌來 沈? 戊戌來 鄭道應 己亥來 尹● 庚子來 李碩揆 癸卯來 黃晙 丙午來 李? 丙午來 李碩薰 辛亥來 柳? 辛亥來 李齊漢 辛亥來 尹壽益 甲寅來 安? 丙辰來 金重南 戊午來 趙/ <하권1006-2>/ 爾重 庚申來 李? 乙丑來 鄭重昌 丙寅來 李再明 戊辰來 崔柱岳 辛未來 金遇一 甲戌來 韓? 丙子來 李龍徵 己卯來 朴其良 辛巳來 鄭重胤 壬午來 黃夏弼 乙酉來 尹萬慶 丁亥來 尹東夏 壬辰來 洪錫九 癸巳來 朴? 癸巳來 趙榮世 戊戌來 權? 己亥來 宋徵賢 甲辰來 張爾樞 戊申來 權鏡 癸丑來 李遂? 甲寅來 鄭輯寧 乙卯來 金百鍊 戊午來 尹? 戊午來 李鎭五 壬戌來 蔡膺一 癸亥來 李世德 戊辰來 南圖逸 己巳來 金尙欽 癸酉來 趙? 甲戌來 李師佐 乙亥來 金壽鼎 己卯來 尹謐 庚辰來 蔡希範 辛巳來 李趾光 癸未來 趙漢鎭 乙酉來 李翼遂 戊子來 朴恒源 辛卯來 任? 壬辰來 閔垠 丁酉來...(www.history.go.kr 2009)
김우일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9년 1월 11일 (을묘) 원본351책/탈초본18책 (5/10) 1693년 康熙(淸/聖祖) 32년/ 仁政殿專經文臣殿講때 金汝楗 등의 성적현황/ ○ 仁政殿專經文臣殿講時, 兵曹佐郞金汝楗, 承文副正字李德運, 易粗, 典籍朴思一, 書通, 成均博士崔泰厚, 注書李壽仁, 承文副正字李孝根, 書粗, 學正申義命․金遇一, 典籍李技遠, 詩粗。(www.history.go.kr 2009)
김우일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19년 10월 8일 (무인) 원본354책/탈초본18책 (5/11) 1693년 康熙(淸/聖祖) 32년/ 申厚載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吏批, 以申厚載爲都承旨, 許垓爲庶尹, 鄭奎祥爲司僕主簿, 丁思愼爲洪川縣監, 金南佶爲軍資主簿, 羅晩成爲海運判官, 李瀏爲典籍, 明廷耈爲奉常參奉, 趙鳳徵爲南學訓導, 辛必馨爲禮曹正郞, 李後老爲活人別提, 朴希閔兼春秋, 愼碩泰爲學諭, 金遇一爲成均博士。(www.history.go.kr 2009)
김우일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20년 1월 4일 (임인) 원본355책/탈초본18책 (11/24) 1694년 康熙(淸/聖祖) 33년/ 崔潮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吏批, 以崔潮爲禮賓直長, 蔡呈夏爲內贍奉事, 南宮億爲宗簿主簿, 李宜振爲刑曹佐郞, 尹以?爲刑曹佐郞, 南五薰爲刑曹正郞, 金益礪爲內資主簿, 李斗望爲富寧府使, 李縉爲珍島郡守, 睦胤善爲泗川縣監, 金昌錫爲忠淸都事, 金鼎台爲軍器副正, 尹以寬爲判官, 金戡爲主簿, 南宮鈺爲相禮, 洪萬紀爲司僕正, 洪重夏爲吏曹佐郞。金遇一․權希說單付典籍。金?爲奉常主簿, 趙德?[趙德隣]爲說書, 柳後章爲諮議, 朴崇阜爲利仁察訪, 崔?爲橫城縣監, 尹有孫爲尙瑞直長, 李箕禎爲內資奉事。許增兼引儀。李鼎興爲刑曹佐郞, 安健行爲工曹佐郞, 李?爲安邊府使, 李光迪爲綾州牧使, 姜聖泰․邊是說爲引儀, 南相夏爲濟原察訪, 申喜澄爲監察, □□□爲內侍敎官, 洪宇夏․權?爲童蒙敎官, 鄭休爲重林察訪, 吳相玉爲尙瑞副直長, 李堂爲禁府都事, 李鳳徵爲副提學, 洪日章爲桃源察訪, 姜命世爲齊陵參奉, 李德玄爲光陵參奉, 崔瑞琳爲恭陵參奉, 李誠中爲崇陵參奉, 李相旭爲順陵參奉, 權斗經爲泰陵參奉, 金宗衍爲穆陵參奉, 柳述爲宗廟副奉事, 權?爲司宰主簿, 李序爲掌苑別提, 琴九成爲歸原[歸厚]別提, 李命完爲瓦署別提, 朴星瑞爲南部主簿, 尹徵夏爲司評, 愼爾益爲兵曹佐郞。池鳳逸單付活人別提。柳經河爲翼陵參奉, 李世龜爲崇陵參奉, 沈處良爲中部參奉, 康習爲敬陵參奉, 安如石除授兵曹參判, 洪楫爲濬源殿參奉, 韓益相爲尙衣直長。朱?單付學正, 金日佐單付學諭。裵正徽爲承旨, 金?爲璿源殿參奉, 李泌爲翼陵參奉, 沈弘元爲健元陵參奉, 李世弼爲假引儀, 丁道恒爲童蒙敎官, 趙鳴鳳爲敦寧奉事, 姜?爲兵曹參知。宗簿直長柳?, 內資直長元絅相換。姜?爲兵曹參議, 李湜爲參知。(www.history.go.kr 2009)
김우일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20년 2월 15일 (계미) 원본355책/탈초본18책 (9/21) 1694년 康熙(淸/聖祖) 33년/ 蔡彭胤 등이 사은함/ ○ 謝恩, 禮曹佐郞蔡彭胤, 兼春秋金遇一。(www.history.go.kr 2009)
김우일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20년 3월 13일 (을해) 원본355책/탈초본18책 (2/16) 1694년 康熙(淸/聖祖) 33년/ 金遇一이 李滉 등의 書院에 賜額하고 致祭하는 일로 善山 등으로 나감/ ○ 禮曹佐郞金遇一, 卒文純公李滉及金澍․河緯地․李孟專, 故參判朴彭年, 承旨成三問, 校理李塏, 參判河緯地, 司藝柳誠源, 摠管兪應孚等書院賜額致祭事, 善山․大丘․英陽等地, 出去。(www.history.go.kr 2009)
김우일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20년 4월 21일 (무자) 원본356책/탈초본18책 (6/20) 1694년 康熙(淸/聖祖) 33년/ 金遇一이 李滉 등의 書院에 賜額 致祭한 후에 들어옴/ ○ 禮曹佐郞金遇一, 卒文純公李滉等及六臣書院賜額致祭後, 入來。(www.history.go.kr 2009)
김우일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20년 4월 24일 (신묘) 원본356책/탈초본18책 (9/33) 1694년 康熙(淸/聖祖) 33년/ 晝講에 柳尙運 등이 입시함/ ○ 晝講入侍, 知事柳尙運, 特進官具鎰, 承旨金斗明, 玉堂金夢臣․韓聖佑, 假注書權?, 兼春秋金遇一, 史官金世鎬, 武臣南?。(www.history.go.kr 2009)
김우일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20년 4월 24일 (신묘) 원본356책/탈초본18책 (33/33) 1694년 康熙(淸/聖祖) 33년/ 宣政殿의 晝講에 柳尙運 등이 입시하여 大學演義를 강론함/ ○ 巳時, 上御宣政殿, 晝講。入侍, 知事柳尙運, 特進官具鎰, 參贊官金斗明, 侍講官金夢臣, 檢討官韓聖佑, 假注書權?, 記事官金遇一․金世錫, 武臣南?, 侍講官金夢臣, 進講大學衍義 自君牙曰夏暑雨, 小民惟曰怨咨, 至惟仁聖深念焉, 一遍訖。夢臣曰, 司監二字, 考見唐板演義, 則印以監司, 此本, 恐有訛誤, 故敢達。上曰, 校正之時, 必有誤矣。知事柳尙運曰, 非徒唐本爲然, 他冊, 亦無司監出處, 監司之誤爲司監, 無疑矣。上曰, 唯。上受而讀之, 一遍訖。金夢臣, 以文義進講曰, 此大學衍義, 宋眞德秀, 製進宋理宗之書也。人主之所當知者, 註解已詳, 今不必以一章一句, 講釋其義, 而缺玆小民, 惟知勞佚, 不知義理, 故雖祁寒暑雨, 尙且怨咨。況缺有所?其情者乎? 故爲國之道, 惟在於軫恤民缺荒亡。無表表可稱, 而?念小民之疾苦, 猶且缺則小民之疾苦, 不可不深軫也。缺而實惠, 若未下究, 則缺不以文矣。又曰, 趙光奇事, 缺有甚焉。臣竊附眞德秀陳缺還上, 民之受食, 不過十餘斗, 而還納時, 或輸二十缺式, 而收捧之際, 再三點退, 一匹之納費, 至二三匹, 此正與缺相類矣。以敎令不信, 言之, 則未有如我國之甚者。諺所謂缺政, 信不虛矣。特擧其一事而言之, 公私賤從母役之法, 己酉以缺變以此, 民不見信, 治未食效。當初立法之時, 必須詳審, 而敎令旣頒之後, 則不爲數數更變, 似宜矣。上曰, 唯。民間疾苦, 豈獨宋時爲然乎? 趙光奇之言, 正如儒臣所達矣。檢討官韓聖佑曰, 大學衍義, 推演大學之義, 以爲人主之監戒, 故小民之疾苦, 稼穡之艱難, 所以入於致知格物之要耳。周穆王, 盤遊無度, 幾亡其國, 而猶能軫念小民疾苦, 有曰, 厥惟艱哉。此孔子所以取於書也。漢文帝, 淸心寡欲, 終始一以文王, 而知小民之疾苦, 未有如漢文也。至於景帝時, 三十而稅一, 國用猶不至?乏, 此文帝示朴爲先之效也。唐德宗, 則不知保民之道, 至聞趙光奇之言, 而猶不能?然改圖, 及其末年, 復行陌錢法。以下皆缺 以上燼餘(www.history.go.kr 2009)
김우일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20년 4월 25일 (임진) 원본356책/탈초본18책 (7/18) 1694년 康熙(淸/聖祖) 33년/ 晝講에 任相元 등이 입시함/ ○ 晝講入侍, 同知事任相元, 特進官鄭重徽, 承旨尹以道, 玉堂金夢臣․韓聖佑, 假注書權?, 兼春秋金遇一, 史官金世鎬, 武臣邊是泰。(www.history.go.kr 2009)
김우일 [記事] : 승정원일기/ 숙종 20년 4월 26일 (계사) 원본356책/탈초본18책 (21/26) 1694년 康熙(淸/聖祖) 33년/ 熙政堂에 南九萬 등이 입시하여 金寅 등의 推鞫 내용을 陳達하고 이들과 연루된 사람들의 처리 방법, 黃海道 등의 還上을 分給하는 문제 등에 대해 논의함/ ○ 未時, 上御熙政堂, 鞫廳大臣以下請對。入侍, 領議政南九萬, 判義禁申汝哲, 知義禁徐文重, 同義禁鄭載禧, 左副承旨李東郁, 司諫朴世?, 掌令李宜昌, 假注書權?, 記事官金遇一․金世鎬。領議政南九萬進曰, 近來日氣, 朝晝之間, 寒暖異候, 伏不審聖體, 若何? 上曰, 無事矣。南九萬曰, 臣等承命推鞫, 已有日矣, 而罪人尙未承款, 只以文書陳達, 似欠詳細, 故敢此請對面陳耳。當初被拿者七人中, 李武得․實伊兩人, 則金寅, 稱以殺鷄同盟時, 貸武得錢文, 使實[實伊]買鷄云, 而寅與尹憘面質時, 寅又言?血同盟, 乃渠做作之虛言云, 故其二人, 已請放送。李益華․李養中, 則所干連, 亦是與寅?血同盟之事, 所當與武得等, 一體放送, 而猶有與寅․虎彬等, 往來尋訪之迹, 故姑爲仍囚, 以待端緖之現出, 李成?, 則寅?血, 凶書造作缺許文事, 且寅言, 渠欲上變時, 成?引到其家, 缺殺害之意, 缺且不直言, 缺多, 而憘之缺而今者憘․虎彬, 缺。上曰, 尹憘․成虎彬, 受刑已至七次, 徑斃之慮, 誠如大臣缺 在丁酉年間, 爲問事郞廳, 其時訊杖頗重, 受刑七次, 而得生者, 缺近來訊杖, 比前稍輕, 未知其由, 而七次而不死者, 亦可怪矣。上曰, 諸堂上所見, 何如? 次次陳達, 可也。判義禁申汝哲曰, 小臣無別樣所見, 而以爲推問二人之際, 或有端緖之可得矣。今則已受七次之刑, 而尙未就服, 如或徑斃, 則更無可問之路。李成?之情迹, 頗有可疑, 似當有推問之道矣。上曰, 見其獄情, 則李成?, 似爲同謀矣。知義禁徐文重曰, 小臣意見, 與大臣別無異同矣。同義禁鄭載禧曰, 臣意, 亦與大臣同矣。上曰, 尹憘․成虎彬, 受刑七次, 終不輸情, 慮有徑斃之患。今若推問成?, 則或有端緖之可得耶? 南九萬曰, 成夔之謀逆情節, 寅雖不直告, 而寅之上變時, 欲爲殺害一款, 似涉可疑。且憘․虎彬辭連人, 雖不?卽請拿, 而只鞫兩人, 更不盤問於他人, 其在按獄之體, 亦涉孤單。李成?, 爲先推問, 似宜矣。上曰, 李成?, 姑先推問, 得其端緖而後, 處之, 可也。榻前定奪 南九萬曰, 金海成, 則以寅所告觀之, 亦當與憘同獄, 而凡獄情, 必審其事之虛實, 然後乃爲盤問, 例也。鞫獄未完之前, 凡虛實等語, 雖於同廳諸臣, 亦不敢私相語及矣。今在咫尺之下, 何敢不達所懷乎? 凡人臣謀逆, 乃人情天理之外, 雖不可以人理推之, 然於其間, 亦必有事勢之或然與不然。今聞海成之妻母, 乃後宮之叔母, 而張大將給錢文五十兩, 使之置毒於解産時, 及飮食中云。至親之間, 勿論, 情理之如何, 揆以事勢, 似是必無之事, 而憘之所犯, 非特此一事, 故爲先刑推, 憘未服之前, 又爲拿鞫干連諸人, 則恐有濫及之?, 故亦欲待憘就服後處之矣。上曰, 置毒一款, 似是人情之外耳。南九萬曰, 當初寅變書中, 名出諸人, 有不卽請拿者, 尙多, 今欲取旨以定, 敢此仰達矣。尹憘與金大諫․閔文學․成虎彬三人書, 寅, 則以爲謀逆之書, 而觀其措辭, 有曰, 因金生聞京奇, 骨驚缺謀善處云, 三札大旨, 略相似矣。其所爲言, 雖缺是寅以西人缺與三人相缺必成矣。語缺自稱渠造缺自稱渠造缺爲上變, 故三人皆無答於憘․虎彬。旣以他犯缺學, 則欲待憘。虎彬就服後, 處之, 時未請拿矣。到今未知缺 上曰, 閔文學, 則章道, 而金大諫, 則元燮云耶? 憘․虎彬旣斃之後, 更無可問之路。金․閔兩人, 姑先拿問, 其在獄體如何, 而卿意, 亦以爲何如? 南九萬曰, 鞫獄事體, 至重且大, 不敢自下低仰, 惟在聖上, 裁處之如何耳。但憘之造凶書寄書札, 憘․虎彬等, 以爲誣陷西人之計, 而極口發明其謀逆, 誣陷西人, 旣非鞫問本旨, 當此之時, 乃以此事, 參錯於按問, 則益爲憘。虎彬自明之證, 而先絶其就服逆謀之路。舍其重而問其輕, 有違獄體。至於永肅門事, 若當上下陵替, 名分都喪, 在於垂亡之世, 則容或有之, 卽今國家, 雖多變故, 君臣上下之分, 猶嚴, 以局出身數十人, 突入闕門, 雖凶逆之人, 猝難生意, 而若謂謀逆, 則此事最爲關緊, 故虎彬, 已爲鞫問。憘與金大諫․閔文學․成虎彬, 通書密謀, 誣陷西人事, 非但渠等已爲就服, 文籍亦可考證, 告者寅尙在, 亦可從後問之矣。
上曰, 閔章道․金元燮, 固當拿問, 而予意亦有所持難, 姑觀前頭而處之, 可也。南九萬曰, 置毒與永肅門二事, 無他干證與文書, 只出寅口說而已。以此, 與憘․虎彬干連人等, 亦欲待憘․虎彬就服後, 處之, 時未請拿矣。上曰, 唯。南九萬又曰, 且虎彬掛箱文書中, 有欲呈捕盜廳所者, 及聚銀成冊, 而皆是誣陷西人之語也。吏曹判書柳尙運之名, 亦在其中, 以此問於虎彬則曰, 此冊此說, 皆寅所傳於吾, 而厥後寅偸奸吾妾, 故欲治寅虛妄淫奸之罪, 將呈捕盜廳, 而張萬春, 書給所志云。問於寅則曰, 此冊此說, 吾未嘗傳於虎彬, 而以吾偸奸渠妾之故, 欲構成吾罪, 做作虛言云。然則以此以彼, 皆爲虛事矣。本事旣已歸虛, 則書給所志人張萬春, 別無可問之事, 而或以爲萬春, 不可不請拿云。未知何以處之乎? 上曰, 獄情如此, 則不必請拿矣。南九萬曰, 且臣卽伏見禁缺嚴刑得情之敎, 希載之罪, 未知於律輕缺上所知, 則似無缺遽加刑訊缺姑未承款缺 徐文重曰, 希載 缺上曰, 以再下判付定罪, 可也。出擧行條 南九萬曰, 希載之事, 缺時未吐實, 似當鞫問, 而?, 曾在大臣之列, 國家缺疏觀之, 則可知矣。且法文內, 年八十, 則不加刑訊, 而以衆證, 定其罪。議缺似無異同, 不必更加刑訊, 參酌處罪, 未知何如? 上曰, 大臣所達, 不無意見, 勿爲刑訊, 可也。出擧行條 申汝哲曰, 臣年紀衰?, 視聽不明, 凡干獄情, 未能詳察, 而以各人之招, 觀之, 則前後脈絡, 皆歸於一, 未知末梢, 將何以處之矣。南九萬曰, 臣且有區區所懷, 今當登對, 敢此仰陳。國家不幸, 自甲寅以後, 二十年之間, 朝廷之飜覆, 今已四次矣。飜覆之際, 輒行誅殺, 擧國中分, 相爲讐敵, 其傷損國脈, 爲如何哉? 今臣猥蒙洪造, 復?朝端, 而擧世以他日誅戮之人, 指之, 將無以鎭人心而做國事矣。自今以後, 不可不一反前日所爲。且古人云, 禹․湯罪己, 其興也勃焉, 桀․紂罪人, 其亡也忽焉。?時諸臣之罪, 論其情狀, 實無可恕, 而但此皆非上所不知, 而渠等獨自爲之者也。到今聖明悔悟, 赫然更新, 執法之臣, 每持一截之論, 其於諸臣之論罪, 雖不敢寬貸, 而若論自上所處, 則如曰是皆予過也。予自責之不暇, 彼諸臣者, 何足深責? 凡於論罪之際, 宜皆差減其等, 以識予過云爾, 則豈不感動於人心, 欽仰於後世乎? 有司之臣, 雖不敢以此等說仰告, 而臣則位在大臣, ?侍咫尺, 其欲有光於聖德之意, 重且大, 其欲盡法於罪人之意, 輕且小, 敢此惶恐仰達矣。上曰, 大臣之縷縷陳達, 大意誠好矣。南九萬曰, 今此改紀之初, 被罪諸臣, 固當竝施曠蕩之典, 而續續煩達, 有違事體, 誠爲未妥矣。此後, 則令該曹抄啓, 有若歲抄者然, 自上下覽後處分, 似宜矣。上曰, 分付該曹, 一倂抄啓, 無復續續稟處, 可也。申汝哲曰, 頃因備忘記, 被罪諸人, 抄啓蒙宥, 而同罪之類, 未得放釋者, 尙有十數之多, 似涉不均矣。上曰, 亦有落漏者乎? 左副承旨李東郁曰, 當初備忘中, 以士夫被謫者, 抄啓缺則不爲擧論矣。申汝哲曰, 以士大夫被謫者, 抄缺擧論, 而士夫中缺上曰, 分付該府缺涉可疑, 曾缺服矣。今此世昌 缺之重, 一向嚴刑, 且人之弑逆, 固不可以天理人情, 推缺者, 尤是情理之外也。世昌則今姑停刑, 別遣敬差官于本道缺更爲按?後, 處斷何如? 上曰, 世昌受刑三次, 而不服, 或慮有可恕之道矣。參證人處, 更爲按?而處者, 大臣所達, 誠是, 而若遣敬差官于本道, 則罪人, 亦當下送同推, 而旣已拿致京獄之後, 不可更爲下送。在鄕參證人, 竝爲拿致, 以爲鉤問之地, 如何? 南九萬曰, 聖敎至當矣。當初發告人, 看證諸人, 及世昌妹二人, 令該曹捉致, 與世昌一處究問, 更得其情, 然後處置, 似宜矣。上曰, 干連人等, 竝致京獄, 一處?問後處之, 可也。出擧行條 南九萬曰, 昨者以承旨所達, 黃海․忠淸兩道還上, 有令廟堂稟旨分給之敎。黃海道, 則頃因監司之請給, 雖已分付, 而今則監司被重罪, 必不得擧行, 忠淸監司, 亦在罪謫中。兩道新監司, 不可不從速下送, 而黃海監司金洪福, 今方陳疏, 亦爲肅謝, 忠淸監司金構, 居在半日程, 亦未出肅, 竝命催促發送, 何如? 上曰, 依爲之。榻前定奪 南九萬又啓曰, 以任相元所達, 廣州?穀, 亦令稟旨分給矣。自備局別成關文, 使兼官擧行, 而兼官之奉行, 似難着實。且水原府事勢, 與廣州無異, 廣州留守及水原府使, 竝命催促發送, 何如?
上曰, 依爲之。榻前定奪 南九萬又啓曰, 冊禮都監篆文書寫官, 以洪受疇啓下矣。今聞受疇, 方在下考中, 不得行公云, 似合有變通之道矣。上曰, 洪受疇下考, 蕩滌, 可也。出擧行條 又啓曰, 頃者譯官等, 自對馬島回來, 而廟堂分付三件事, 皆不得成, 故因東萊府使狀啓, 禮曹回啓, 驛官罪罰, 請令廟堂稟處, 而所謂三件事, 裁判留館定日, 限及九送使兼帶, 則曾前倭差在館時, 以朝廷分付, 亦不得停當, 渡海譯官, 似難猝然得請。至於倭館隙地, 請出許民耕食事, 則當初作館時, 旣爲築墻定界, 而今欲除出一片之地, 請於異國之人, 殊極屑?, 其失事體, 甚矣。今以此事之不得請缺不得, 下詢于入侍堂上, 今竝置之, 何如? 缺(www.history.go.k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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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 11일 도평가 농정대상...축하합니다.
예천군(慶北道 農政評價 `農政大賞' 受賞 : 醴泉郡… 2011年부터 3年 連續 受賞 快擧) [記事] : 예천군은 2013년 11월 11일 오전 경북 농업인회관에서 열린 제18회 농업인의 날 기념행사를 겸한 농정평가 시상식에서 2013년 경상북도 농정업무 평가 최고의 영예인 `농정대상'을 수상했다. 예천군은 2011년, 2012년에 이은 3년 연속 `농정대상'을 거머쥐는 쾌거를 이뤘다. 이번 농정대상 평가는 농업정책, FTA 식품유통, 친환경농업, 농촌개발, 축산업 경쟁력 제고, 특수시책 등 6개 분야 21개 세부 항목으로 농업정책 전반을 대상으로 평가해서 그 결과 대상 1, 최우수 2, 우수 4개 자치단체를 선발해 기관표창을 하였다. 예천군에서는 금년 전체 예산의 20%가 넘는 역대 최고인 6백50억원을 농업분야 예산에 투입하는 등 평가항목 전반적인 분야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대상을 수상하게 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이 같은 성과는 전형적인 농업군으로서 농가소득 증대와 농정발전을 위해 농업관련 분야 전 직원이 투철한 사명감으로 어려운 농촌 현실을 직시하고 창의적인 사고와 긍정적인 마인드로 각종 농정업무를 추진해 온 결과로 평가된다. 그 동안 농업 관련 부서 직원들은 수시로 변화하는 농업환경 대처를 위해 농림축산시책설명회 등 정기적으로 업무연찬회를 개최하여 왔으며 자율적인 학습동아리인 예천농업발전연구회를 운영하여 예천농업의 발전방향에 관하여 의견을 공유하고 있다. 또한, 최근 정부 3.0의 가치인 농업인과의 개방, 공유, 소통, 협력을 위해 전국에서 처음으로 예천군청 농정과 페이스북 홈페이지(www.facebook.com/ycnong)를 개설하여 운영하는 등 앞서가는 농정업무를 추진한 결과 농업인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이현준 군수는 "3년 연속 농정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아 뿌듯하고 영광스럽다"며 "우리 군은 농정시책을 군정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고 농업인이 행복한 부자 농촌건설에 매진하고 한*중 FTA(자유무역협정) 협정 체결을 앞두고 농산물 개방화에 따른 대책에 역점을 두고 군정을 운영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醴泉新聞 2013년 11월 11일 (월) 11:4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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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군, 7일 적십자모금 장려상...축하합니다.
예천군 수상(醴泉郡, 赤十字募金 3年 連屬 郡部 ‘獎勵賞’ 受賞 : 募金活動에 앞장 선 功勞 認定받아) [記事] : 예천군(군수 이현준)은 2013년 11월 7일 오후 2시 포항시청 대잠홀에서 열린 대한적십자사 창립 108주년 기념 경북지사연차대회에서 적십자회비 모금활동에서 3년 연속 군부 ‘장려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아울러, 개인부문 수상으로 장광현(예천읍사무소), 이재길(새마을경제과), 김태년(신풍2리 이장), 박노전(갈구1리 이장) 씨가 대한적십자사 총재 표창을, 안성철(보문면사무소), 이상춘(금능1리 이장), 전기호(수계2리 이장) 씨는 대한적십자사경북지사 회장 표창을 각각 수상했다. 적십자회비는 대표적인 모금운동으로 불의의 재난 발생시 피해를 입은 이재민의 응급구호활동 등 각종 재난구호활동과 국민의 건강과 생명보호를 위해 소중하게 쓰이게 된다. 1949년 특별법인화한 대한적십자사는 인류 복지 구현을 위한 인도주의 이념을 바탕으로 어려운 이웃들에게 따뜻한 사랑의 손길을 전달해 온 한국의 대표적인 봉사기관으로 그 공익성을 인정받고 있다. 또한 새로운 희망 만들기 캠페인인 ‘희망풍차’ 사업을 통해 우리주변의 소외된 어린이, 어르신, 다문화가족, 북한이주민을 위한 아름다운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적십자 회비 모금으로 3년 연속 수상한 영광은 군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따뜻한 마음과 사랑의 실천이 만들어낸 결과이며 납부한 적십회비는 어려움에 처한 이웃에게 희망을 전하는 기금으로 쓰인다”고 말했다.(醴泉뉴스 2013년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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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연자방아와 이제명, 10일 친환경농산물 도품평회에서 우수상...축하합니다.
예천연자방아와 이제명(醴泉연자방아와 이제명 氏, 慶北 親環境農産物 品評會에서 優秀賞 受賞) [記事] : 2013 경북도 친환경농산물 품평회에서... 2013년 11월 10일 도에 따르면 대백프라자에서 지난 8일부터 3일간 열린 품평회에는 도내 22개 시군의 우수 친환경농산물 125점(곡류 15, 과일 34, 채소 30, 특작 21, 가공품 18)이 치열한 경쟁을 벌여, 이 가운데 21점이 선발됐다. 곡류 우수상은 유기농 쌀을 생산한 상주 김달영씨와 예천 연자방아가 차지했다. 과일류는 포항 곽우순 씨(유기농 사과), 예천 이제명 씨(유기농 배), 영덕 조창선 씨(무농약 포도)가 우수상을 받았다...(이종훈 記者 大邱新聞 2013-11-10, 20:3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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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1,066
예천군 방문(江東區 새마을婦女會, 醴泉 沙果따기 體驗行事 實施 : 下里面 박세진 氏 農家찾아 沙果따기 體驗) [記事] : 예천군에서는 지난 9월 12일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MOU를 체결한 서울시 강동구 새마을부녀회(회장 이순남) 회원 40여명을 초청하여 2013년 11월 11일 전통시장 장보기 투어와 더불어 사과따기 체험행사를 실시했다. 서울시 강동구 새마을부녀회원은 전통시장에서 장보기 투어를 한 뒤 요즘 본격적인 사과 수확기를 맞아 일손이 부족한 하리면 탑리 박세진 씨의 과수원을 찾아 사과따기 요령을 교육받은 후 사과를 따며 상자에 담아 포장하는 등 일손 돕기에 손을 보탰다. 또한, 회원들은 자신이 직접 딴 싱싱한 사과를 산지에서 저렴하게 구입하는 등 사과판매 촉진 행사도 함께하며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뒀고 이날 행사에는 예천군여성단체협의회(회장 오복순) 회원들이 함께 참여했다. 특히, 서울시 강동구 새마을부녀회는 지난 2013 곤충나라 Clean 예천농산물대축제 기간에도 방문하여 예천의 우수한 농산물을 구매하는 등 예천 전통시장 활성화 및 우리 지역 농ㆍ특산물 홍보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醴泉뉴스 2013년 11월 11일)
공군 제16전투비행단(大邱서남노회 聯合會 醴泉空軍部隊 訪問) [記事] : 대구서남노회 여전도회연합회(회장:한영화)는 2013년 10월 24일 대구남명교회에서 80여 명의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공군부대에 도착했다. 예천기지교회(윤찬영 군목)에서 한영화 회장(대구동산교회)의 인도로 선교부장 표미숙 집사(달성교회)의 기도 및 대구서남노회 여전도회연합회 실행위원들의 특송, 윤찬영 목사의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제하의 말씀으로 예배를 드렸다. 이날 대구서남 연합회는 예천기지교회에 목회활동비를 전달했으며 예천공군기지의 내부를 견학했다.(韓國基督公報 2013년 11월 11일 (월) 15:4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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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