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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3464:김유의-김유중-김윤구-김윤식-김윤안-김윤주(1))附예천방문1,070)
작성자장병창 @ 2013.11.16 07:10:46

  예천의 자랑(3464) : 김유의-김유중-김윤구-김윤식-김윤안-김윤주(1)(附 예천방문 1,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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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의(金兪義) : 1384(우왕 10)-1451(문종 1), 하리면 율곡리 큰밤실 출신, 자는 공직(公直), 호는 잠고(潛皐), 본관은 김해, 두(㺶)의 아들, 윤상(尹祥)의 제자, 조선 정종 때 문과(文科)에 올라 봉상시 봉사(奉常寺奉事), 예빈시 별제(禮賓寺別提)를 지냈으나 아버지의 제사(祭祀) 때에 귀향했다가 어머니가 이르기를, "너는 감히 새로운 왕조 조선에 벼슬을 거부한 부친의 가르침을 저버리느냐?"라고 꾸짖자, 마침내 벼슬에 뜻을 끊고 자기 집에 "잠고(潛皐)"라고 써서 붙여 의지를 굳혔다. 묘는 백석산(白石山) 자좌(子坐)에 있었으나 실전(失傳), 보문면에 있는 제단비명(祭壇碑銘)은 1992년 10월에 16세손 두호(斗湖)가 지었다.(族譜, 朝鮮寰輿勝覽 1929, 嶠南誌 1937, 醴泉의 金石文 2003)

 

  김유의 : 예천의 금석문 1 | 간행년:2003   저자:예천문화원   발행처:예천문화원 / 潛皐 金海金公(兪義) 祭壇碑文/ B202_0093.jpg/ 예천 내용이 수록된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넷 유교관련도서이다.//

 

  김유의 : 김해(가락)김씨 율은공파의 본향은 예천 미울입니다!/ 2005.10.04/ 아랫글은, 3년 전에 본인(김종오)과 장병창 예천신문 논설위원 간에 주고받은 것인 바, 조상 어른들의 생거지(生居地)에 대한 의견개진이므로 혹 참고가 될 듯하여 옮겨 왔습니다... 金佇를 비롯하여 아들 김전(金鈿/1320-1392/229번), 손자 김두(金두/玉+斗/1338-1400/226번), 증손 김유의(金兪義/1384-1451/238번), 고손 김순지(金順志/1422-1484/285번) 등 다섯 분을 하리면 율곡리 큰밤실 사람이라 했습니다.../ //cafe.daum.net/9595kim/ 김해김씨 율은공파(daum 2010)

 

  김유의 : 11월 30일에 발생한 문중 종산(宗山)의 화재 관련 사진설명./ 2005.12.03/ ..., 2>. 그 우측 아랬쪽에 동향으로 나란히 모셔진 2세(繼節堂公/金鈿)ㅡ3세(退愼齋公/金王+斗)ㅡ4세(潛皐公/金兪義)ㅡ5세(司猛公/金順志) 선조들의 단소 역시 화재를 당하지 않아 무사 했으며, 3>. 가운데 남향으로 모셔진 윤씨.../ //cafe.daum.net/9595kim/ 김해김씨 율은공파(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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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중(金有中) : 1393(태조 2)-1453(단종 1), 용궁면 영양 김씨 입향조(英陽金氏入鄕祖), 지로(智老)의 아들, 1415년(태종 15) 용궁현감(龍宮縣監)으로 부임하여 선정을 하였다. 1425년(세종 7)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홍문관 정자(弘文館正字)를 거쳐 박사(博士)를 지내고, 사간원 사간(司諫院司諫)에 올랐다. 언로(言路)의 창달함과 올바른 이론과 문사 행의(文辭行義)가 의연히 당세에 알려졌다. 용궁 현감을 인연으로 아들 철린(哲麟)과 더불어 용궁면 월오리 다래에 정착하여 대대로 살다가 19세기에 후손 만상(萬相)이 용궁면 산택리로 이거하여 대대로 살고 있다. 무덤은 용궁면 가야리 장승산 유좌원(長升山酉坐原)에 있으나 병화로 증표(證標)가 없다.(醴泉郡誌 1939, 族譜)

 

  김유중 [記事] : 국역 영가지.선성지합본/ 간행년 : 2001/ 저자 : 안동문화원/ 발행처 : 안동문화원/ 131) 예안(禮安) 전후(前後) 남행(南行)/ ...김유중(金有中) 용궁현감... 고려때 인물로 대소과(大小科)는 미상이다.(www.koreastudy.or.kr 2007)

 

  김유중 [記事] : 국역 영가지.선성지합본/ 간행년 : 2001/ 저자 : 안동문화원/ 발행처 : 안동문화원/ 34) 과거에 급제한 사람(科弟)/ 김유중(金有中) : 지로(智老)의 아들. 문과 급제. 벼슬은 현감. 숭의사직(崇義司直)을 한 아들이 있다.(www.koreastudy.or.kr 2007)

 

  김유중 : re:김내옹(金乃雍) 내 고장의 인물/ 2006.11.07/ 유(劉)씨로 본관은 충주이고 법명은 기화(己和)이며 법호는 득통, 당호(堂號)는 함허당(涵虛堂)이다. 김유중(金有中) 태조 2년(1393)~단종 원년(1453), 본관은 영양으로 감사 성일(成일)의 현손이며 지로(智老)의 아들이다. 태종 1.../ //cafe.daum.net/youngjibkim/ 慶州金氏 版圖判書將有公派(daum 2010)

 

  김유중 : 역대인물개요/ ...소수 성씨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많은 인물과 선조들의 자취를 기리는 빼어난 유적을 가지고 있다. 11세 金有中(김유중;예안) 이 홍문관박사를 지냈고 그 아우 金有庸(김유용) 의 딸은 眞城李氏(진성이씨) 집안에 출가하여 李滉(이황.../ //yeongyangkim.com(daum 2010)

 

  김유중 : 제목 없음/ 유(劉)씨로 본관은 충주이고 법명은 기화(己和)이며 법호는 득통, 당호(堂號)는 함허당(涵虛堂)이다. 김유중(金有中) 태조 2년(1393)~단종 원년(1453), 본관은 영양으로 감사 성일(成일)의 현손이며 지로(智老)의 아들이다. 태종.../ //sanbut.com(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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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구 : 예천 출신, 대창중, 독일 하이텔베르크대 졸업, 동 대학 철학 석사, 동 대학 철학박사(철학과 독문학 복수 전공)이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크대 미술사 연구, 명지대 철학과 교수이다. 저서로, <Glauben und Wissen>,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립론에 관하여>, <Fragestellung Kants in der 'Kritik der reinen Vernunft'>, <시대적 요청으로서 칸트>, <간추린 철학사>(共著), <Religion, Moral und Aufklarung>(Frankfurt a.M. 1996), <칸드 철학의 윤리와 종교에 대한 라인홀트의 해석>, <해석학과 현대 철학>(共著)이다.(松園金敎容先生傘壽紀念論文集 1997)

 

  김윤구 [專門資料] : [학술지논문] 임석진 교수 정년기념논총 / 한국헤겔학회 편 : 제5부 칸트와 독일관념론의 전개 ; 칸트철학의 윤리와 종교에 대한 라인홀트의 해석 - 영혼불멸을 중심으로 - (21p)/ 김윤구  | 한국헤겔학회  | 1998(daum 2010)

 

  김윤구 [專門資料] : [학술지논문] 독일관념론 ① : 칸트철학의 종교와 윤리에 대한 라인홀트의 해석 - 신의 현존을 중심으로 - (35p)/ 김윤구 ( Yun Ku Kim )  | 한국헤겔학회  | 1997(daum 2010)

 

  김윤구 [專門資料] : [학술지논문] 독일관념론 : 시대적 요청으로서 칸트 (44p)/ 김윤구  | 한국헤겔학회  | 1995(daum 2010)

 

  김윤구 : 헤겔연구 7/ 한국헤겔학회 편 지음| 청아출판사 펴냄 | 1997-02-10/ [목차] : 오늘날에도 헤겔의 변증법은 가능한가? / 양우석 010. <실천철학> 011. 오늘날 법철학이란 무엇인가? / Aron Baruzz 012. <독일관념론> 013. 칸트 철학의 종교와 윤리에 대한 라인홀트의 해석 / 김윤구(daum 2010)

 

  김윤구 : 헤겔연구 6 / 한국헤겔학회 편 지음| 청아출판사 펴냄 | 1995-12-01/ [목차] : '정의론'에 끼친 헤겔의 영향 / 울리히 슈타인포르트 009. 인식이 변증법과 사회과학 / 한승완 010. 철학의 시간성과 '새로움'의 문제 011. 루소롸 헤겔, 법과 역사 / 김종철 012. 시대적 요청으로서 칸트 / 김윤구(daum 2010)

 

  김윤구 : 대창80년사:중고병설시대(29) 송원선생논문집-영풍수련장입소/ 작성 장병창/ 2달전, 2011년 1월 27일 (목)/ ...(權相浩), 권용정(權容正), 김교은(金敎殷), 김돈(金墩), 김봉균(金奉均), 김상묵(金相?), 김윤구(金潤求), 김정식(金正湜), 김종길(金宗吉), 박의원(朴義源), 박천익(朴天翼), 박치정(朴治正),.../ cafe.daum.net/seouldaechong/ 재경예천대창중.고등학교 동문회(daum 2011)

 

  김윤구 : 재경예천군민회cafe./ daum.net/woruddPcjsrns/ (축) 재경대창중학교 20회 동기회 창립모임-(보고)/ 2년전, 2009년 3월 12일 ...전 해병대부사령관, 권동칠 (주)트랙스타회장, 권오종 경북도위원, 권승하 국정원 국장, 김윤구 명지대철학과교수, 권영식 대창고교감, 김영학 경안여중 교감, 여전구 리라공고 교감, 박희성 양주중.../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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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식(金允植) : 1927- , 지보면 지보리 상락(上洛) 출신, 본관은 김해, 낙출(洛出)의 장자, 지보(知保)초등, 52년 서울장로회신대 신학과 졸업, 66년 일본동경신대(東京神大) 대학원 수학, 70년 피츠버그신학교 수료, 83년 미국 세인트엔드루스 장로교대 신학 박사(神學博士)이다. 52년 경안로회(慶安老會) 목사 안수(牧師按手), 52년 예천읍 예천교회 목사, 59년 (學)경안고(慶安高) 이사, 66년 성소병원(聖召病院) 이사장, 대한예수교장로회 회록 부서기(會錄副書記), 동 서기(同書記), 71년 동 총회 총무(同總會總務), 74년 종암교회 목사, 총회 규칙부, 군목부(軍牧部), 사회부(社會部), 전도부(傳道部) 부장, 평신도 지도위원장, 총회 2천년대를 향한 장기발전계획위원장, M.N.C.C 부회장, 동 회장, 한독위원장, 한일교회위원회 위원장, <기독교사상(基督敎思想)> 편집위원장, 장로회신학대동문회장, 78년 장로교신학대 이사, 동 강사, 83년 계명대 재단이사, 84년 한국기독교회협의회장, 한일교회협의회장(韓日敎會協議會長), 한독교회협의회장(韓獨敎會協議會長), 86년 종암교회 목사, 90년 예장 부총회장(副總會長), 91년 예장 총회장, 기독공보(基督公報) 이사장, 93년 연세대 재단이사, 총회세계선교부(總會世界宣敎部) 부장, 남북교회 나누임운동본부 위원장, 97년 종암교회 원로목사(현)이다. 저서로 <강요된 은총>, <흔들리는 지구촌>, <한국영남교회사(韓國嶺南敎會史, 1987, 共著)>, <로마서 강해>가 있다.(知保面誌 1987, 醴泉文學 3輯(1991) 20輯(1999) 21輯(2000), 每日新聞 1993.7.8, 每日名鑑 1996 1997 1999 2001, 韓國을 움직이는 人物들 1997).

 

   [인터넷] : 예천교회를  20여 년 목회하면서 경안노회 서기를 역임하고, 부장을 거쳐 제72-73회 노회장을 역임하고 총회 총무로 고향을 떠나 중앙교회를 목회하면서 한국기독교회 협회장으로서 교단의 얼굴인 총회장이 되었다.(인터넷 야후 2002)

 

  김윤식 : 목사/ 출생지 경북 예천/ 소속 종암교회 원로목사/ 학력 세인트앤드루스장로교대학 대학원(daum 2012)

 

  김윤식 : 영원한 사귐(김윤식목사 회고록)/ 웹문서/ B6 /하드커버 종암교회의 원로 목사로 있는 범양 김윤식 목사의 회고록. 목회여정 회고, 해외 교회 방문기, 샬롬지 기고 기도문, 제76회 총회장 활동보고 등 김윤식 목사의 걸어온 길을 정리했다. 개인정보취급방침 l.../ gajabook.co.kr(dau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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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안(金胤安) : 1610(광해군 2)-1654(효종 5), 개포면 경진리 검바우(劒岩) 예안 김씨 입향조(禮安金氏入鄕祖), 자는 응술(應述), 본관은 예안(禮安, 宣城), <칠정산(七政算)>의 저자인 문절공 담(文節公淡)의 5세손, 군자감부정 사희(副正士熙)의 아들, 득선(得善, 承政院左承旨)ㆍ명선(明善)ㆍ취선(取善)ㆍ창선(昌善)의 아버지이다. 참봉(參奉)을 지냈으나, 죽은 후 장례원 판결사(掌隷院判決事)에 증직(贈職)되었다. 내구 첨추 안잠(內舅僉樞安潛)의 시양(侍養)을 위하여 영주(榮州)에서 선조 때 검바우로 옮겨 대대로 살게 되었다. 그러나 순흥 안씨(順興安氏)는 모두 떠나갔다. 묘는 호명면 백송리에 있고, 묘비가 있는데, 묘갈명(墓喝銘)은 1987년 12월에 인동 장건덕(張建德)이 찬하였다. 친히 검암(劍岩)의 바위 위에 옛 집승정(集勝亭) 터에 개원정(開遠亭)을 지었으나 오랜 세월동안 도괴되어 오던 중 1934년 후손들이 그 유지(遺址)에 다시 세워 현존하고 있다. 후손은 개포면 검암(劍岩), 유천면 손곡(柳川面蓀谷)과 죽안(竹岸), 문경군 수평(聞慶郡水坪)과 화장(花庄), 제천군 청전(堤川郡靑田), 선산군 하도(善山郡河圖)와 화곡(花谷), 감천면 천향(甘泉面泉香) 등지에 산거(散居)한다.(醴泉의 金石文 2003)

 

  김윤안 : 예천의 금석문 1 | 간행년:2003   저자:예천문화원   발행처:예천문화원 / 判決事 禮安金公(胤安) 墓碣銘/ ... 이다. 묘는 공의 묘 뒤에 있다. 공이 외삼촌 僉樞安公 潛을 시양하기 위하여 醴泉 蘆浦村으로 옮겨 살으시니 후.../ 예천 내용이 수록된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넷 유교관련도서이다.//

 

  김윤안 : 개포면 전설설화/ Daum 블로그 | 2011.12.22/ 십운(集承亭 十韻)은 중국까지 널리 알려졌다. 덕수 이씨도 살던 터인데 임진왜란 무렵 예안 김씨의 김윤안(金胤安)이 영주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이래 지금은 그 후손의 집성촌(集成村)이 되었다. 이곳은 옛 노포면(蘆浦面)의.../ blog.daum.net/ibjc115/ 새천년 희망의 땅 웅..(daum 2012)

 

  김윤안 : 沃川金氏(옥천김씨)/ Daum 카페 | 2012.03.18/ (이전)에도 本貫(본관)을 沃川(옥천)으로 하는 科擧(과거) 及第者(급제자)가 있다. 金곤(김곤)의 祖父(조부)는 金胤安(김윤안), 曾祖父(증조부)는 金士熙(김사희)이다. - 進士(진사) 金天益(김천익)을 始祖(시조)로 하는 文獻.../ cafe.daum.net/usk912/ 낙동강 우포늪(daum 2012)

 

  김윤안 : 沃川金氏(옥천김씨) (953)./ Daum 블로그 | 2011.06.17 김태일(金兌一)/ 한국 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부] 성명 : 김곤(金?) [생부] 성명 : 김개(金鎧) [조부] 성명 : 김득선(金得善) [증조부] 성명 : 김윤안(金胤安) [제] 성명 : 김해일(金海一) [출전]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규장각[奎106]) 수정일 수정내역.../ people.aks.ac.kr(daum 2012)

 

  김윤안 : 개포면 지명유래/ Daum 블로그 | 2011.12.22/ 노포(蘆浦), 검암(劍岩) : 예안(禮安) 김씨(金氏)들의 집성촌이며 옛 노포면(蘆浦面)의 중심마을이다. 김윤안(金胤安(1550년)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마을 앞의 큰 바위가 모양이 칼처럼 생겼다 하여 검(劍)바우라고 했으며 또.../ blog.daum.net/ibjc115/ 새천년 희망의 땅 웅..(daum 2012)

 

  김윤안 : 김곤(金?)/ 한국 역대인물 종합정보시스템/ [이력사항] 전력 생원(生員) 관직 감찰(監察) [가족사항]  [부] 성명 : 김득선(金得善) [조부] 성명 : 김윤안(金胤安) [증조부] 성명 : 김사희(金士熙) [외조부] 성명 : 권방(權昉) [자] 성명 : 김곤일(金袞一) [출전].../ people.aks.ac.kr(daum 2012)

 

  김윤안 : 본관별 종류-김씨(16)/ Daum 카페 | 2008.11.05/ 본관이 예안으로 되어있고, 김곤 이전에도 본관을 옥천으로 하는 과거 급제자가 있다. 김곤의 조부는 김윤안(金胤安), 증조부는 김사희(金士熙)이다. 진사(進士) 김천익(金天益)을 시조로 하는 문헌도 있다. 과거 급제자는.../ cafe.daum.net/jungbokyu/AIl5/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daum 2012)

 

  김윤안 : 김곤(金?)/ 네이트 한국학 | 2009.03.15/ 관직(官職) : 감찰(監察) [가족사항] 자(子) : 김곤일(金袞一) 부(父) : 김득선(金得善) 조부(祖父) : 김윤안(金胤安) 증조부(曾祖父) : 김사희(金士熙) 외조부(外祖父) : 권방(權昉) 네이트 푸터 영역 서비스 이용약관.../ koreandb.nate.com(daum 2012)

 

  김윤안 : 김태일(金兌一)/ 네이트 한국학 | 2009.03.15/ (金海一) 부(父) : 김곤(金?) 생부(生父) : 김개(金鎧) 조부(祖父) : 김득선(金得善) 증조부(曾祖父) : 김윤안(金胤安)...(daum 2012)

 

  김윤안 : 금시조(琴是調)/ 신종우의 인명사전/ 조부(祖父) 금인(琴인) 증조부(曾祖父) 금원수(琴元壽) 처부(妻父) 김윤안(金胤安) 이력 및 기타 소과(小科) 1612(임자) 생원시 특별시(特別試) 전력(前歷) 생원...(daum 2012)

 

  김윤안 : 김 관(金 灌)/ 신종우의 인명사전 | 2008.11.02/ (禮安) 가족사항 부(父) 김득선(金得善) 생부(生父) 조부(祖父) 김윤안(金胤安) 증조부(曾祖父) 김사희(金士熙) 외조부(外祖父) 권방(權昉) 처부(妻父) 자(子) 김곤일(金袞一) 이력 및.../ www.shinjongwoo.co.kr(daum 2012)

 

  김윤주(김윤주 前 군포시장 (龍門面) 어떤 사람일까~!! : 2010년도 재경군민회 자랑스런 출향인상 수상자) [記事] : 그는 오랜 전통과 선비정신이 아직도 일상의 근간을 이루고 있고 향토문화가 살아있는 효(孝)의 고장 경북 예천에서 칠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마을은 소백산맥의 지맥이 북쪽으로 높게 펼쳐져 있어 산새가 아버지 품 같고 남쪽으로 낙동강과 내성천 유역을 형성하여 풍요와 안녕이 기대되는 분지형태의 고장이다. 이곳에서 청정하고 아름다운 농경생활만큼이나 순박하고 뿌리고 가꾸는 대로 거두어지는 작은 철학을 배우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당시 어른들의 말이 곧 법이고 따라야 할 규칙이었던 그의 집안의 가풍은 정직(正直)이었다. 그래서 거짓말을 하면 절대 용서가 안 되는 엄격한 가정교육 속에서 그는 집안의 맏이로 대들보라는 무거운 책임이 지워진 채 성장했다. 그 당시 농경사회가 경제 일반을 차지하였듯이 누구나 농사일을 하며 살았던 때라 부모님이 일하러 나가시면 그는 늘 동생들을 보살피고 돌봐야 했다. 자신도 어린데 더 어린 동생 여섯 명을 데리고 있으면서 싸우면 말려야 하고, 먹을 것이 있으면 나누어줘야 하며 울면 달래주어야 하는 맏형으로서의 큰 책임을 지는 부지런한 어린 시절이었다. 저녁때가 되면 부모님이 오시기 전에 밥까지 지어야 하는 일인삼역을 하며 지냈던 그는 학업성적까지 우수한 모범 어린이였다. 그렇게 언제나 든든한 맏형으로서 책임을 다하며 동생들에게 본을 보였다. 그는 그때에 나눔의 원칙과 내리사랑이 몸에 배였는지 어른이 되어서도 언제나 자신이 어느 사회위치에 있던지 맏형으로서의 의식을 져버린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가난한 형편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더 이상의 학업은 진행할 수 없었다. 너무도 학교에 가고 싶었고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러나 동생들과 집안 형편을 위해서 진학을 접고 농사일을 도우며 독학을 했다. 실로 주경야독하는 자신의 의지와 싸우는 생활이었다. 그의 끈기와 의지는 집안의 외가 쪽 아저씨가 운영하는 책방의 책을 모조리 독파하는데 기여했다. 무슨 책이든 책이 좋아서 읽고, 독서하는 것이 좋아서 읽고, 남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서 읽다보니 그렇게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갈급했던 지적욕구(知的慾求)를 충분하게 채울 수 있어 독서삼매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이다. 때때로 시나 수필 등 글도 쓰면서 멋진 글귀를 남기기도 하고 마음에 꿈을 심기도 했다. 그렇게 자신을 다듬어가며 독서를 통해 섭렵한 다양한 지식은 훗날에 두고두고 자신의 일상에 진주알 보석처럼 깨우침과 큰 교훈으로 가르침을 주는 교과서가 되었다고 한다. 그때가 참으로 아름다운 시절이었음을 이제와 돌아보면 아련하게 느낀단다. 그 중에도 또렷하게 솟아오르는 글귀는 ‘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라고 한다. 그는 ‘인생은 내가 삽질하고 호미질하는 대로 개척되고 그렇게 만들어진다!’ 라고 굳게 믿었다. 그리고 신념대로 운명을 재단하고 계획하는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 되어 성년을 맞이했다.

 

  그가 서울에 올라와 처음 시작한 일은 군대 가기 전 친척집의 벽돌공장에서 심부름을 하는 일이었다. 잠시 머무는 일이었지만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경제활동을 체험하고 노동자들의 일상을 느끼는 시작이 되었다. 모든 것이 이론과는 다른 실상이지만 자신의 체험 속에서 보호받아야 할 권리도 느끼고 자신의 존재의미에 소명이 느껴질 때쯤 나라를 지키는 일에 부름을 받았다. 군복무를 마친 후에 새롭게 <범양냉방> 회사에 취업을 했다. 그리고 점차 사회도 알고 동료와 이웃을 돌아보는 따뜻하고 정의로운 시민의 한사람으로, 노동자로 거듭나고 있었다. 그는 열심히 일을 해도 일한 만큼의 노동력이 제대로 인정되지 못하는 사회적 불합리성과 열악한 근로조건에 관심을 가졌다. 자신보다 동료들의 모습을 통해서 더욱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그는 노동자들의 땀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되기를 소망했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대접을 받으며 일하는 만큼 잘 살기를 희망했다. 그래서 취업 3년이 지나면서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그들의 근로조건 개선을 통하여 취약한 작업환경을 바꾸고 싶어 회사에서 쫓겨날 각오와 함께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많은 근로자들이 함께 뜻을 같이 해주었고 큰 힘이 되었다. 스스로 요구만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와의 적절한 관계유지와 협조로 서로 협력하는 노사관계, 즐거운 일터를 위해 많은 날을 고뇌하며 노력하는 조합운영을 했다. 그의 노동자를 위한 노력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역 노동자를 대표하는 의장으로서의 역할이 주어졌다. 그는 더욱 다양하게 그들의 권익과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한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특히 노동자들이 서로 정보를 교류하고 그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노총문화센터를 만든 것은 그의 큰 보람이라고 한다. 그가 노동운동을 함에 있어 항상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의 대표로 그들의 권익을 위해 관공서나 중앙정부에 건의하는 일도 허다했으나 뜻이 관철되지 않고 접힐 때가 더 많았다. 그래서 그는 그들을 위해 건의하는 위치가 아니고 수용하는 위치가 된다면 경험자로서 올바른 집행과 행정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 노동운동의 방향을 시민사회로 확대시켜 모든 이들의 행복을 위해 일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더 큰 일을 위해 군포시 민선시장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시장이 되어 거리로 나갔을 때 자신의 손을 잡고 눈물을 훔치며 반기던 많은 사람들 때문에 콧등이 시큰하던 기억은 지금도 가슴이 찡하다고 한다. 그는 무엇보다 군포시민의 맏형으로서 지난날 자신처럼 생활이 어려워 배울 기회를 놓치는 어려운 청소년들과 소외계층 등 힘없는 곳에 반드시 힘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이 겪었던 경험과 지혜를 통해 오직 정직하고 옳은 것이 무엇인가와 공익우선주의를 기준으로 삼아 집행자로서의 소임을 다하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그는 “개인의 이익보다 공익에 원칙을 두고 다른 사람이다 잘 살면 나도 더불어 잘 산다. 일하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작은 도움으로 시민이 잘 산다고 생각하면 즐거웠다. 군포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하나씩 채워갈 때마다 더 멋진 그림이 채워졌다. 완성을 못했던 그림이 있어 아쉽기는 했지만...” 그는 아직도 곳곳에 자신의 임기에 채워졌던 그림을 보며 살아온 인생에 오케이 동그라미를 한다. 그는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죽을 각오로 오직 의(義)로운 일에 충실했던 이순신 장군과 정직과 성실을 몸소 실천으로 보여준 자신의 어머니를 가장 존경한다고 한다. 그분들을 닮고 싶어 지금껏 열심히 살다보니 후회 없는 삶이 되었다는 그는 겸손한 마음으로 후배들에게 이른다.  “어른을 공경하고 지속적으로 꿈을 가져라. 꿈은 이루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조급하게 굴지 말고 노력하며 기다려야 한다. 특히 나 개인을 위해서보다 공익이 되는 꿈을 갖고 키워 가면 좋겠다. 다른 사람이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고 ,내가 남을 믿어야 남도 나를 믿는 신뢰 있는 사회 건강한 사회가 된다. 나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믿고 따라주어 고맙고 그분들에게 실망시키지 않고 보답하고자 더욱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가 이르는 대로 나보다 남이 행복해지기를 바라고 매사에 공익우선에 원칙을 둔다면 나도 더불어 잘살고 행복한 아름다운 시민사회가 될 것이다.

 

  * 김윤주는 어떤 사람 * : 경북 예천군 용문면 출생, 범양냉방 노동조합 위원장, 한국노총 경기중부지역지부 의장, 안양군포의왕 환경운동연합 지도위원,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중앙위원, 경기도 노총장학재단이사, 군포시장(민선 2, 3기), 가족행복위원회 경기도총괄본부장, 대통합민주신당 창당준비위원, 제 18대 국회의원선거 비례대표후보(통합민주당 26번), (사)동북아평화연대 자문위원, (사)청소년운동연합 군포지회장, 대통령포상, 석탑산업훈장, 한국지방자치경영대상 최고경영자상, 2010년1월 재경예천군민회 자랑스런 출향인상 수상(權垠 서울本部長 醴泉인터넷放送 2010-01-11 오전 12:41:52)

  김윤주(김윤주 군포시장 한세대 '名譽博士') [記事] : 용문면 방송리 태생의 김윤주 군포시장이 2011년 8월 23일 열린 한세대학교 ‘2010년도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명예 행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날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김윤주 시장은 민선 2기와 3기를 역임하는 동안 지역발전과 행정에 많은 공적을 쌓았으며, 와신상당 끝에 민선 5기 군포시장으로 다시 당선돼 역점시책으로 펼치고 있는 ‘책읽는 군포 만들기’를 통해 군포시의 교육과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높이 평가됐다. 김윤주 시장은 용문초등(34회)을 졸업했으며, 청년시절 범양냉방 용접공으로 입사해 탁월한 리더십과 동료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4선 노조위원장으로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노력해 왔다. 또한 한국노총 경기중부지부 의장을 역임하고 시민사회운동에 투신해 안양·의왕·군포 환경운동연합, 언론시민연대 등에서 활약해 왔으며, 군포시민들의 지지 속에 민선 2기, 3기를 거쳐 다시 5기 군포시장에 당선돼 군포시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현재 군포 속에 예천을 알리는 한편, 재경예천군민회 지도위원으로 고향사랑을 실천하고 있으며, (사)동북아평화연대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醴泉新聞 2011년 09월 01일 (목) 10:50:40)

 

  김윤주(當選人事/ 김윤주(龍門面 出身) 군포시장 當選者) | 예천신문 | 2010.06.04 15:32/ 존경하는 군포시민 여러분! 오늘의 승리는 군포시민 모두의 승리입니다. 저 김윤주는 우선 위대한 승리의 주인공이신 군포시민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또한 이 위대한 승리의 자리에 저를 불러주신 것에 대해서도 감사의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사랑하는 군포시민 여러분! 오늘 군포시민 여러분의 소중한 부름을 받은 저는 우선, 시민화합에 힘쓰는 시장이 될 것입니다. 우리 군포시가 민선4기의 파행과 더불어 길고 길었던 선거기간 동안 편이 갈리고 갈등의 골이 깊게 파인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 김윤주는 화합하는 군포, 상생 공존하는 군포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군포의 어르신, 장애인, 여성, 어린이, 청소년, 청년 여러분. 저 김윤주는 앞으로 4년 동안 힘들고 외로운 삶을 살고 계신 서민의 친구가 될 것입니다. 특히 군포의 어르신과 여성, 장애인 여러분께 모든 것을 내어줄 각오로 혼신의 힘을 다하여 시정에 임할 것입니다. 덧붙여, 군포의 아이들과 청소년을 위한 ‘아이들의 시장’이 될 것입니다. 오늘 역사적인 승리의 주인공이 되신 군포시민 여러분, 여러분의 선택이 결코 잘못된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직접 눈으로 귀로 몸으로 확인하실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달라진 시청 분위기, 달라진 군포의 거리, 달라진 행정서비스를 통해  다시금 오늘 여러분의 선택이 자부심과 긍지로 되돌아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위대한 승리의 주인공이신 군포시민 여러분! 저 김윤주를 민선2,3기에 이어 5기 군포시장으로 뽑아주신 여러분의 뜻을 충실히 받들어 발전하는 군포, 희망찬 미래를 창출하는 살기 좋은 도시 군포문화와 예술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아름다운 군포를 만들어내겠습니다. 예천인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하는 군포시장이 되겠습니다. 그동안 고향 선.후배님들께 감사인사 조만간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년 06월 02일 군포시장 당선자 김 윤주 배상(daum 2010)

 

  김윤주 : 개표 마감/ 총투표수 119,580/ 개표수 119,531/ 2010.6.3 08시 50분 기준 | 출처:SBS/ 1번 부창렬 한나라당  38.9 % 44,979/ 2번 김윤주 민주당  55.0 % 63,690 당선/ 3번 유희열 자유선진당  4.2 % 4,847/ 7번 송용순 평화민주당  1.9 % 2,244(daum 2010)

 

  김윤주 : 김윤주 군포시장 당선자/ 연합뉴스 | 입력 2010.06.03 07:59/ (군포=연합뉴스) 6.2 지방선거에서 군포시장에 당선된 김윤주 후보. 김 당선자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벽돌공장서 일하다 노동운동을 했다. 2010.6.3(daum 2010)

 

  김윤주 :  초교 졸업. 벽돌공장 공원 김윤주 군포시장 당선자/ (군포=연합뉴스) 6.2 지방선거에서 군포시장에 당선된 김윤주 후보. 김 당선자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벽돌공장서 일하다 노동운동을 했다. 2010.6.3(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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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방문 1,070

 

  예천군 방문(日帝治下 이상룡 先生 滿洲亡命길 되밟는다 : 安東獨立運動記念館·新興武官學校記念事業會 再現 行事) [記事] : “무릎을 꿇고 종이 될 수 없다. 누구를 위해 발길을 머뭇머뭇하랴. 돌아보지 않고 호연히 나는 가리라”  1911년 일제치하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떠났던 석주 이상룡 선생(1858~1932)의 불굴의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겨 보는 행사가 안동에서 재현된다. 안동독립운동기념관과 (사)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은 2013년 11월 16일~17일까지 석주 선생의 만주망명길을 되밟아 보는 행사를 개최한다고 2013년 11월 14일 밝혔다. 국가보훈처의 지원으로 안동시민 70여명이 참여하는 이번 행사는 오는 16일 오전 8시 안동독립운동기념관에서 출발을 시작으로 예천, 상주를 거쳐 추풍령역까지 도보와 버스로 이동하게 된다. 또 추풍령역에서 기차를 이용해 서울역에 도착한 뒤 숙소인 경기도 파주로 이동한 후 행사의 취지를 되새길 `석주 이상룡 선생과 신흥무관학교`라는 주제의 강의(이준식 박사)와 함께 17일 임진각을 지나 도라산 전망대까지 이동하는 것으로 행사가 마무리 된다. 이밖에 16일 오후 2시 안동독립운동기념관 개관 6주년 기념으로 `일제하 전시체제기 경북지역 항일투쟁사 연구`란 주제로 학술회의에 이어 나라사랑 가을음악회도 개최된다. 김희곤 안동독립운동기념관장은 “이번 행사를 통해 풍전등화와 같이 위험에 처한 나라의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모든 기득권을 버리면서 몸소 노블리스 오블리쥬를 실천한 석주 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안동의 독립운동가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겨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권광순 記者 慶北每日新聞 2013.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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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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