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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3468:김응렴(3)-김응조-김응천-김의지-김의진-김이갑-김이규(1)(祝맥반석쌀,황가영,검도관/예천방문1,071)
작성자장병창 @ 2013.11.20 06:21:24

  예천의 자랑(3468) : 김응렴(3)-김응조-김응천-김의지-김의진-김이갑-김이규(1)(附 예천맥반석쌀, 14일 장관상...축하합니다/예천 출신 황가영, 18일 심청효행상 선정...축하합니다/예천검도관, 17일 검도 도대회.. 3위...축하합니다/예천방문 1,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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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응렴 [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33년 11월 24일 (임자) 원본1150책/탈초본64책 (23/31)  1757년 乾隆(淸/高宗) 22년/ ○ 副護軍尹勉矩․朴時佐․蔡慶承․鄭彦忠, 副司直徐命彬․權爀․金尙翼․徐志修․元景淳․洪樂性․李吉輔․李世演․金應濂, 副司果吳德新, 副司正金復休, 訓鍊參軍林尙根, 權知參軍白信圭, 權知封事李沃, 竝單付。(www.history.go.kr 2009)

 

  김응렴 [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34년 6월 14일 (무진) 원본1157책/탈초본64책 (11/19)  1758년 乾隆(淸/高宗) 23년/ ○ 親政。吏批判書洪啓禧在外, 參判李昌壽, 參議洪樂性, 行都承旨南泰會進, 以金尙翼爲大司憲, 具允鈺爲吏曹佐郞, 李敬玉爲吏曹佐郞, 朴弼燧爲兵曹佐郞, 李晉圭爲文學, 鄭恒齡爲弼善, 柳世?․李普觀爲持平, 李堉․柳思欽爲掌令, 李聖檍爲獻納, 張淀․任誠爲正言, 李世澤爲副校理, 盧聖中爲龍岡縣令, 李壽德爲司諫, 李德海爲執義, 沈?之爲司書, 姜必履爲刑曹佐郞, 李定鎭爲司僕主簿, 朴通源爲漢城參軍, 尹光億爲咸安郡守, 柳瑞東爲宗簿正, 金持黙爲濟用判官, 鄭僑良爲西部奉事, 李世澤爲兼中學敎授, 李德一爲尙瑞直長, 柳健爲掌樂正, 柳正源爲春川縣監, 李賢伋爲梁山郡守, 金應濂爲開城經歷, 洪啓九爲陽城縣監, 尹在謙爲晉州牧使, 金?爲敦寧都正, 李山重爲司評, 李山斗爲判決事, 洪相宜爲尙瑞副直長, 朴鴻壽爲慶尙都事, 李嘉遇爲戶曹參議, 辛宅寧爲內資直長, 姜潤爲典籍, 金處恭․朴宗彦爲學諭, 李長泰爲承文著作。(www.history.go.kr 2009)

 

  김응렴 [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35년 6월 20일 (기사) 원본1169책/탈초본65책 (15/22)  1759년 乾隆(淸/高宗) 24년/ ○ 兵曹口傳政事, 副司直吳彦儒․金善行․徐志修․南有容․趙重晦․兪彦國, 副司果李商芝․李廷喆․李世演․李厚達․任希敎․李?․柳健․李基德․南惠老․沈益聖․朴致隆․李弘稷․南鶴宗․具壽國․朴起采․鄭恒齡․閔塾․李運海․金會元․李光?․安復駿․任鏡觀․朴奎壽․安正仁․李奎徽․趙重明․金應濂․尹在謙․權瑞東․愼爾復․徐海朝․趙台祥․李世師․金敎材․金鍾正․李顯祚․李宅鎭․李興宗․安兼濟․李鎭恒․李正吾․崔台衡․尹光暹․崔載興․韓光?․朴志源․李鎭衡․權相龍․李仁采․洪應輔․鄭彦祥․呂善應, 副司正朴相老․金魯鎭․洪樂純。(www.history.go.kr 2009)

 

  김응렴 [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36년 2월 28일 (계묘) 원본1178책/탈초본65책 (19/27)  1760년 乾隆(淸/高宗) 25년/ ○ 曺命采爲大司憲, 宋瑩中爲大司諫, 李?爲司諫, 申應顯․金應濂爲掌令, 申思運爲獻納, 權相龍爲正言, 李壽勛爲兼司書, 李吉輔爲刑曹參判, 韓光肇爲大司成, 李天輔爲御營都提調, 金尙魯爲奉常都提調, 金尙魯爲宗廟都提調, 金相奭爲惠民提調, 韓翼?爲掌樂提調, 李仁培爲兵曹佐郞, 安正仁爲左通禮, 李聖檍爲掌樂正, 趙漢弼爲恭陵令, 李錫心爲南部都事, 閔百順爲濟用主簿, 鄭松爲繕工監役, 兪彦鉉爲富平府使, 校書傅士單金台一, 奉常參奉單成大中。(www.history.go.kr 2009)

 

  김응렴 [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36년 4월 6일 (경진) 원본1180책/탈초본66책 (14/19)  1760년 乾隆(淸/高宗) 25년/ ○ 有政。吏批, 判書韓翼?三牌不進, 參判徐志修進, 參議金尙喆進, 都承旨具允鈺進, 以金應濂爲掌令, 李行源爲禮曹佐郞, 柳觀鉉爲軍資正, 李錫奎爲禁府都事, 權必稱爲瑞山郡守, 李廷黙爲海美縣監, 鄭景曾爲大興郡守, 李?爲牙山縣監, 魚錫文爲靑陽縣監, 朴敬行爲結城縣監, 李蓍廷爲吏曹佐郞。兵批, 判書李昌壽進, 參判金善行病, 參議李萬宗入直, 參知洪樂性濬川所進, 同副承旨李思觀進。兵批啓曰, 黃海水使․永宗僉使, 今當差出, 而擬望之人乏少, 本道守令及他道守令․邊將, 竝擬, 何如? 傳曰, 允。以李命稷爲知事, 洪樗爲曹司衛將, 韓後裕爲衛率, 柳惠基爲黃海水使, 金光白爲永宗僉使, 金尙培爲吾又浦[吾叉浦]僉使, 李雄載爲彌助項僉使, 具善修爲東里僉使, 張日起爲赤梁僉使, 吳廷熙爲德積僉使, 劉宗翼爲智島萬戶, 宋重泰爲龜山僉使, 崔道浹爲古突山別將, 崔道涵爲長木浦別將, 柳元茂爲舒川萬戶, 林億柱爲南村別將, 尹亨理爲德浦僉使, 黃錠爲訓鍊判官, 具秉五爲宣傳官, 金貞漢爲助泥浦萬戶, 李聖師爲內禁衛將, 金元禮爲馬梁僉使, 李漢昌爲兼內乘, 栗浦權管單李熙春, 副司直鄭彦儒。(www.history.go.kr 2009)

 

  김응렴 [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36년 4월 19일 (계사) 원본1180책/탈초본66책 (14/25)  1760년 乾隆(淸/高宗) 25년/ ○ 兵批, 判書李昌壽病, 參判金善行病, 參議李萬宗病, 參知權?入直進, 同副承旨李思觀進, 李邦綏․洪樗․趙?․金應濂․權瑞東爲副護軍, 尹東度․李吉輔․尹東暹․洪麟漢․金選慶․李憲黙爲副司直, 金魯鎭․朴相老爲副司果。(www.history.go.kr 2009)

 

  김응렴(金應濂) : 본관(本貫) 의성(義城), 시대(時代) (숙종36:1710~영조37:1761), 자(字) 성희(聖希)/ 이력(履歷)/ 안동향교지(安東鄕校誌) 第一節 人物/ 김응렴(金應濂) (숙종36:1710~영조37:1761)/ 의성인(義城人). 자(字)는 성희(聖希)로 학봉(鶴峯)의 후(后)이다. 영조(英祖)26년 문과(文科)(1750)에 급제(及第)하니 창방(唱榜)때 명지(名紙)에 「금반과거(今般科擧)에 명현(名賢)의 후예(後裔)를 얻으니 나의 마음이 즐겁고 가상(嘉尙히 여기노라」라고 배서(背書)하였다. 관(官)은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을 지냈다.(daum 2010)

 

  김응렴 : 영주문화 > 영주의 역사인물 > 조선시대/ 김응렴(金應濂) 본관은 의성(義城)이다. 성일(誠一)의 후손이다./  -. 영조 26년(1750)에 문과(文科) 급제하여 장령(掌令)을 지내다(daum 2010)

 

  김응렴 : <국조 문과 방목>/ 김응렴(金應濂)/ 영조(英祖)26년(1750년), 식년시(式年試) 병과15(丙科15)/ > 인적사항 생년(生年)  1710년, 경인, 자(字)   성희(聖希), 본관(本貫)   의성(義城), > 가족사항 부(父) 김이도(金以鍍), 조부(祖父) 김두기(金斗基), 증조부(曾祖父) 김수(金燧), 외조부(外祖父) 금치(琴緻)/ > 이력 및 기타 전력(前歷) 유학(幼學), 관직(官職)    지평(持平)(daum 2010)

 

  김응렴(金應濂) : [시험관련 사항] 왕/년도 : 영조(英祖) 26년, 과거시험연도 : 1750 경오, 시험명 : 식년시(式年試), 등위 : 병과15(丙科15)/ [인적 사항] 성명(姓名) : 김응렴(金應濂), 자 : 성희(聖希), 본관(本貫) : 의성(義城)/ [이력 및 기타 사항] 전력(前歷) : 유학(幼學)/ [가족사항] 부(父) : 김이도(金以鍍), 조부(祖父) : 김두기(金斗基), 증조부(曾祖父) : 김수(金燧), 외조부(外祖父) : 금치(琴緻)(daum 2010)

 

  김응렴(金應濂) : [문과] 영조(英祖) 26년 (1750) 경오(庚午)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15위/ [인적사항] 자 성희(聖希), 생년 경인(庚寅) 1710년, 합격연령 41세, 본관 의성(義城)/ [이력사항] 전력 유학(幼學)/ [가족사항] [부] 성명 : 김이도(金以鍍), [조부] 성명 : 김두기(金斗基), [증조부] 성명 : 김수(金燧), [외조부] 성명 : 금치(琴緻)/ [출전]《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daum 2010)

 

  김응렴 [專門資料] : [한국학자료] 事變假注書成箕柱出使, 代以金應濂爲/ 成箕柱|金應濂/ 2008.03.23(daum 2010)

 

  김응렴 [專門資料] : [한국학자료] 事變假注書金應濂出使, 代以李?爲事/ 金應濂|李?/ 2008.03.23(daum 2010)

 

  김응렴 : 의성김씨(義城金氏)/ 2010.03.04/ ...김우수(金禹銖) 김우영(金羽永) 김우옹(金宇?) 김우홍(金宇弘) 김욱(金頊) 김운추(金運秋) 김원(金瑗) 김응렴(金應濂) 김응룡(金應龍) 김이상(金履常) 김이재(金以載) 김익령(金益齡) 김익령(金益齡) 김전(金?) 김정국(金正國) 김제민.../ //blog.daum.net/ilkobstar/ 별중별(daum 2010)

 

  김응렴 : 敦寧府都正 印賢相公 (돈령부도정 인현상公) 승정원일기 中에서/ 2008.03.15/ .... 심구택(沈九澤)을 사성으로, 윤용식(尹容植)을 장악원 정으로, 정이원(鄭履源)을 형조 참의로, 김응렴(金應濂)ㆍ원민학(元敏學)ㆍ김재연(金載淵)을 돈녕부 도정으로 삼았다. 겸문학에 윤용식(尹容植)을 단부하였다. 이기종(李起鍾.../ //cafe.daum.net/inga1/ 교동인씨(daum 2010)

 

  김응렴 : 문과 급제자/ 2003.11.05/ ...) 김시권 (金是權) 1583-1643 자중(子中) 봉파(鳳坡) 인조(仁祖)8년(1630) 병조좌랑 (兵曹佐郞) 김응렴 (金應濂) 1710-1761 성희(聖希) 영조(英祖)26년(1850) 사헌부 장령 (司憲府 掌令) 김기찬 (金驥燦) 1748-1812 덕여(德汝.../ //cafe.daum.net/vvkimth/ 의성김씨 장사랑공파 종친회(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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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응조([不遷位 紀行 .43] 학사 김응조(1587∼1667년) : 醴泉 勿溪書院 配享) [記事] : 학사(鶴沙) 김응조(1587∼1667)는 인조반정, 병자호란 등 심각한 내우외환의 혼란기에 관직생활과 은거를 반복하며 모범적 지식인의 삶을 보여준 선비였다. 명망 높은 가문의 가학과 훌륭한 스승들의 가르침을 체득한 그는 80평생을 그 가르침대로 선비의 떳떳한 도리를 지키며 살다 갔다. 외유내강의 성품을 지녔던 그는 평생 가난하고 굴곡 많은 벼슬생활을 계속하면서도 국가와 백성을 위해 최선을 다했고, 심신을 수양하며 유유자적하는 생활을 통해 내면적으로 충만한 삶을 살려고 했다. 우뚝한 가시적 업적이나 학문적 성과는 남기지 않았으나 당대의 지식인으로 부끄럼 없는 삶을 보여준 학사는 말년에 평생을 회고하며 지은 자명(自銘)에서 이렇게 말했다. ‘학문을 일삼았으나 천기(天機)를 알지 못하고, 관직에 있었으나 시정(時政)에 통달하지 못했다. 선비는 사람이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의 근본을 견고하게 하는 것을 사모하고, 해바라기가 햇빛 쪽으로 기우는 것은 사물의 본성이다. 인간의 삶은 남가일몽에서 깨어남과 같고, 만 가지 계책은 그림자 잡으려는 것과 같아라. 저 학가산(鶴駕山)과 사천(沙川)을 바라보니 물은 맑고 산은 푸르러, 천년만년 혼백을 비추리라.’ ◆독서와 산수유람을 꿈꾸었던 선비 : 학사의 다음 말에서도 그 삶과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나는 본래 책 보기를 좋아해 무한한 취미를 갖고 있는데, 눈이 어두워서 마음껏 찾아나가지 못해 옛사람이 끼친 끄트머리나마 엿볼 수가 없으니 이것이 첫 번째 한스러움이다. 또 평소 산수유람에 취미가 있어서 만년에 학사(鶴沙)에 마치 신선이라도 살 듯한 집터를 가려두고 그곳에 이를 때마다 번번이 흥이 일어나고 즐거워서 배고픔도 잊어버리거늘, 속인에게는 그 즐거움을 말하기 어렵고 또 그 곳에서 늙어 죽을 때까지 항시 거처하며 세월을 보내지도 못하니 이것이 두 번째 한스러움이다. 그리고 손님 좋아하기를 그저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물과 먹을 것을 구하듯 하는 정도이지만, 집이 가난해서 기장 넣은 닭요리를 대접하지 못하고 흰 망아지를 문간에 묶어둘 수도 없으니 이것이 세 번째 한스러움이다.’ 학사의 부친은 유연당(悠然堂) 김대현이다. 산음현감 등을 역임한 유연당도 불천위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9형제를 두었는데, 일찍 세상을 떠난 여덟째를 제외한 8형제 모두 사마시에 합격하고, 그 중 5형제가 대과에 합격해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가문이 되었다. 당시 인조는 마지막 김숭조가 대과에 급제하자 ‘팔련오계지미(八蓮五桂之美)’라고 칭찬하고, 마을 이름을 ‘오미동(五美洞)’이라고 지어주었다. 학사는 유연당의 여섯 째 아들로, 영주에서 태어났다. 7세 때 소학을 배우기 시작했고, 10세 때부터는 다른 형제들과 권호신·권두문의 가르침을 받았다. 16세에 부친을 여읜 학사는 맏형인 봉조를 가장으로 받들며 학업에 매진했다. 1606년에는 형 연조와 함께 서미동에 은거 중인 서애 류성룡을 찾아가 배움을 청했다. 다음해 5월 서애가 별세하므로 오랫동안 가르침을 받은 것은 아니었으나, 학문의 발단과 요체에 대한 깨달음은 이때 비롯되었다. 학사는 서애의 학문을 ‘성(誠)’으로 요약했다. 1613년 생원시에 합격했으나, 광해군의 혼정 때라 더 이상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위기지학(爲己之學)에만 힘썼다. 인동의 대학자 여헌(旅軒) 장현광을 찾아가 배움을 청하고, 성리학 학문 탐구에 전념했다. 10년 후, 인조가 즉위한 1623년 5월 알성시에 비로소 응시해 병과에 급제한 뒤 승문원 권지부정자를 시작으로 벼슬길에 들어섰다.

 

  ◆청나라 연호인 ‘北’자 일상생활에 쓰지 않아 : 1633년 선산부사로 재직하면서 이웃 고을 인동에 있던 여헌을 수시로 찾아가 학문의 깊이를 더하면서 여가에 글도 지었다. 다음해 홀연히 벼슬을 버리고 고향 영주로 돌아왔다. 그는 영주 갈산에 세 칸의 소박한 남애정사(南厓精舍)를 짓고, 두 칸의 방 이름은 명재(冥齋)로, 마루 이름은 아헌(啞軒)으로 지었다. 눈 감고 입 닫고서 지내겠다는 의미였다. 명재 앞에는 청향지(淸香池)라는 못을 파고 연꽃을 심었다. 학사는 늘 연꽃을 바라보며 광풍제월(光風霽月)의 맑고 밝은 기상을 닮고자 했고, 그에 짝하도록 매화·대나무·소나무·국화를 심어 마음을 가다듬으며 즐거움으로 삼았다. 1635년 9월 사헌부 지평이 되었고, 이듬해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휴가를 얻어 고향에 머물던 학사는 형님(영조)과 함께 달려갔으나 성이 함락되자 곧바로 돌아왔다. 이후 더욱 벼슬을 멀리하고 지내고자 했던 학사는 문을 닫고 자신을 지키며 일상생활에 청나라 연호였던 ‘북(北)’이라는 글자를 쓰지 않았고, 관의 문서를 받아도 청의 연호가 적힌 첫 장을 떼어내고서야 눈길을 주었다. 1640년 사간원 헌납에 제수되자 사양하고 인동부사로 부임했으며, 이듬해 벼슬을 그만두고 학가산과 사천이 만나는 지점 기슭에 학사정사(鶴沙精舍)을 짓고 만년을 보내고자 했다. 호도 ‘학사’로 정했다. 두 칸의 방은 완심재(玩心齋), 네 칸의 마루는 성심헌(醒心軒)이라 명명했다. 1643년 이후 여러 벼슬을 거쳤고, 1659년(효종 10년) 4월 공조참의로 임명받아 상경하다가 효종이 승하하자 인산(因山) 뒤에 병을 이유로 사직하고 귀향했다. 1662년 조정에서 그를 사간원 대사간으로 불렀으나 고령을 이유로 나아가지 않았고, 1664년에는 78세 노인인 그에게 갑자기 체포령이 떨어졌다. 수년 전 담양부사를 지낸 적이 있는데 그 고을의 환곡미 질이 너무 떨어진 것이 문제가 되었다. 이 일 때문에 그 고을 수령을 지낸 이들 10여명에게 책임을 물었고, 학사도 포함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예조판서가 학사를 극구 변호, 고신(告身:관직 임명장)을 환수하는 선에서 일이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평생 개결하게 살았던 그에게 이 사건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이 일 직후에 그는 자신의 평생을 회고하는 ‘자명(학사모옹자명)’을 지었다. 2년 후인 1666년(현종 7년) 조정은 두 해 전에 빼앗은 고신을 돌려주며 다시 서용하라는 명과 함께 종2품 가선대부로 승진시켜 명예가 회복되기는 했다. 그 다음해 1667년 동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했고, 몇 개월 후 다시 한성부우윤에 제수됐으나 또한 사양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그해 12월에 별세했다.

 

  ◆백성의 찡그린 눈썹 펴주려 했던 애민정신 돋보여 : 학사는 사대부 지식인으로서 자신이 할 일에 대해 ‘처음에는 도를 배우고, 중간에는 임금을 그리워하며, 마지막에는 시대를 근심하는 것’이라 규정했다. 37세에 시작된 그의 관직생활은 인조, 효종, 현종 세 임금에 걸쳐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일로 일관했다. 내직에 있을 때나 외직에 있을 때나 더 나은 백성의 삶을 위해 힘을 다했다. 그가 외직으로 나간 다섯 고을(흥덕, 선산, 인동, 밀양, 단양)에는 모두 선정비가 세워졌으며, 그 고을 주민들은 학사의 자손이나 마을 사람을 만나면 반드시 학사의 선정을 언급하며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의 애민정신을 잘 보여주는 예로 ‘찰미당(察眉堂)’ 이야기를 들 수 있다. 1641년 인동부사 시절, 학사는 관사를 옮겨 지으며 ‘찰미당’이라고 명명한 뒤 지은 기문에서 ‘백성들이 관청에 올 때 크거나 작거나 늙거나 어리거나 할 것 없이 그들의 눈썹을 보면 모두 찡그리고 있으니 촌리(村里)에 있는 자들임을 알 수 있었다. ‘찰미’로 이름 지은 것은 그런 실상에 뜻을 둔 것이다. …조세가 무겁다고 성내기도 하고, 노역이 빈번하다고 성내기도 하며, 심지어 형벌이 지나치다고 성내기도 하며 …내가 찡그리게 했다면 반드시 펴줄 사람이 있을 것이니, 뒷날 그런 군자를 바라며 쓰노라’고 했다. 백성들의 찡그린 눈썹을 통해 그들의 실상을 알고 자신을 반성하며 훗날의 군자를 기다린다고 썼지만, 학사의 애민정신을 읽을 수 있다. 그 즈음 지은 시 ‘찰미당’이나 ‘춘첩(春帖)’등에서도 목민관의 마음가짐에 따라 백성들이 눈썹을 찡그리거나 펴게 된다고 읊었다. ■ 김응조 약력 △1587년 영주 출생 △1596년 형제들과 권호신·권두문에게 수학 △1604년 김굉의 딸과 결혼 △1610년 도산서원에서 석계 이시명과 함께 독서 △1623년 알성시 급제, 우복 정경세 찾아가 배움 △1625년 병조정랑 △1631년 흥덕현감 △1645년 ‘사례문답(四禮問答)’ 편찬 △1666년 ‘서애선생변무록’ 지음 △1667년 별세 △1670년 물계서원(예천) 배향(글=김봉규 記者 嶺南日報 2012-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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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응천 : 1958- , 예천읍 동본리 출신, 원동(元東)의 장자, 예천중(22회) 졸업, 의학 박사(醫學博士), '유방암 암유전자(乳房癌癌遺傳子)에 대한 연구' 논문으로 대한외과학회의 학술상(學術賞)을 수상(1992)하였다. 예천읍에 김응천 의원을 개업하였다.

 

  김응천 : 재경예천대창중.고등학교 동문회cafe/ 예천중 22회 총동기회 1백여 명 친목 다져/ 4년전, 2007년 9월 7일/ 예천중 22회 총동기회 1백여 명 친목 다져 예천중학교 제22회 총동기회(회장 김응천)가 지난 1일 예천읍 광일컨벤션웨딩홀에서 열렸다. 이날 총동기회에는 전국 각지에서 1백여 명의 동기회원들이 .../ cafe.daum.net/seouldaechong(daum 2011)

 

  김응천 : 2007년도 예천중학교 총동문 가족 체육대회 개최/ 4년전, 2007년 9월 2일/ ...가정마다 좋은 일들이 일어나는 축복의 행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늘 행사에서 김응천 22회 총동기회 회장은 동기회원들이 모금한 500만원의 총동문회 발전기금을 장대복 회장에게 전달하고.../ cafe.daum.net/seouldaechong(dau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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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의지(金義之) : 1497(연산군 3)-?, 개포면 우감리 김령 김씨 입향조(金寧金氏入鄕祖), 초휘(初諱)는 의손(義孫), 자는 인원(仁元), 호는 동은(東隱), 백촌 문기(白村文起)의 증손자, 상주 화대면(尙州化垈面)에서 개포면 우감리 우감산(牛甘山)으로 이주(移住)하여 스스로 죄인이라 자처하여 항상 평량자(平凉子)를 썼다. 일찌기 외아들 국(國, 聞慶山陽果谷寓居)의 가르침에 게으르지 않았고, 시비곡직(是非曲直)에 중용(中庸)의 도로 처신할 것과 충군애국(忠君愛國)한 선조(先祖)의 뜻을 본받아 항상 검소한 생활을 영위할 것을 가르쳤다. 매년 10월 24일 단종의 승하일(昇遐日)을 당하여서는 개포면 가곡리 어룡산(魚龍山)에 올라 영월의 장릉(莊陵)을 바라보고 단종이 지은 자규시(子規詩)를 외우고 통곡 사배(四拜)했다. 후세에 사단(祠壇)을 짓고 당을 지으니 이름하여 모작당(慕鵲堂)이라고 하였다. 묘는 개포면 우감리 대망터(大芒터)에 있다 하나 자세하지 못하다.(族譜 1983)

 

  김의지 : 문경시 동은재(東隱齋)/ 2009.08.06/ : 1956년 丙申 관 리 자 : 과곡리 김녕김씨(金寧金氏) 문중 동은재(東隱齋)는 동은처사 김의지(東隱處士 金義之)를 우모하여 후손이 세우고 풍산 유승우(豊山 柳承佑)가 기(記)를 하였다. 김의지(金義之) : 자(字)는 인원(仁元)이요.../ //blog.daum.net/38xix/ 나의 뿌리(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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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의진(아시아배구선수권대회 한국선수단장으로 선임) [記事] : 김의진 서울시립대 교수(예천읍 지내리 출생ㆍ대한배구협회 상임이사)가 2009년 8월 26일부터 31일까지 대만 치아이에서 열리는 세계여자배구선수권대회 아시아지역 예선전과 9궐 3일부터 14일까지 베트남 하노이에서 잇따라 열리는 아시아여자배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한국선수단 단장으로 선임됐다. 김 교수는 25일 선수단과 함께 대만으로 출국했다. 이번 대회에선 이성희 감독(GS칼텍스)을 비롯 김연경 외 12명의 선수단이 참가한다.(醴泉新聞 2009.8.27)

 

  김의진 : 재경예천대창중.고등학교 동문회cafe./ daum.net/seouldaechong/ 예천초등 55 동창회/ 작년, 2010년 8월 7일/ 일 시 : 2010. 08. 14(토). 14시 장 소 : 예천축협 한우프라자 회 비 : 30,000원 2010. 7. 예천초등 55회 동창회장 김의진 총무 남기성/ cafe.daum.net/seouldaechong(daum 2011)

 

  김의진 : 김의진 스포츠조선 사업단장 -서울시립대 교수로 부임/ 3년전, 2008년 9월 6일/ 김의진 스포츠조선 이사대우 사업단장 서울시립대 교수로 부임 김의진(예천읍 지내리 출생) 스포츠조선 이사대우 사업단장이 지난 1일 서울시립대 교수로 부임했다. 김 교수는 지난 1990년 스포츠조선.../ cafe.daum.net/seouldaechong(daum 2011)

 

  김의진 : 출향인 김의진씨(예천읍) 스포츠조선 이사겸 편집국장으로 승진/ 5년전, 2006년 10월 24일/ 5일자로 스포츠조선 이사겸 편집국장으로 승진한 김의진씨(예천읍. 예천초등. 예천중. 예천농고. 성균관대) 축하드림니다/ cafe.daum.net/seouldaechong(daum 2011)

 

  김의진 : 김의진 스포츠조선 사업단장 -서울시립대 교수로 부임/ 3년전, 2008년 9월 4일/ 김의진 스포츠조선 이사대우 사업단장 서울시립대 교수로 부임 김의진(예천읍 지내리 출생) 스포츠조선 이사대우 사업단장이 지난 1일 서울시립대 교수로 부임했다. 김 교수는 지난 1990년 스포츠조선.../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1)

 

  김의진 : '차기 예천군수선거 예비후보군 자천타천 12명 거론'/ 2년전, 2009년 1월 22일/ ...가운데 단연 첫 머리에 올릴 정도로 지역정가에선 출마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또 김의진(55·예천읍 출생·전 스포츠조선 편집국장) 서울시립대 교수, 도희섭(48·상리면 출생) (주)다보 회장.../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1)

 

  김의진(醴泉邑 池內里 出身 김의진 敎授(大韓排球協會 專務理事) 醴泉排球協會 訪問...) [記事] : 대한배구협회 전무이사이며 국민대학교 교수인 김의진 교수(전 스포츠조선 이사대우. 사업단장)와 전 국가대표 출신 김성민, 이도희, 장윤희 선수가 예천을 방문하여 예천군배구협회 회원들에게 배구지도&경기로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현재 GS칼텍스 OB선수로 활동 중인 장윤희 선수와 인천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코치로 활동 중인 이도희 선수 등은 이날 5시간 동안 예천중학교 체육관에서 예천군배구협회 회원 및 관내 배구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경기와 환담을 나누었다. 이날 모임을 주관한 예천읍 지내리 출신 김의진 교수는 "이번 모임이 예천 배구인들의 기량향상에 도움이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인사하고 "앞으로 시간이 허락하면 고향 배구발전을 위해 자주 방문 할 것"을 약속했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2-07-17 오전 8:57:00)

 

  김의진 [專門資料] : [학술지논문] 테니스 서브 스탠스 유형별 하지관절 모멘트의 패턴 연구 (8p)/ 김성섭, 김의진...  | 한국운동역학회  | 2008 | 태그:  Tennis, Pinpoint Stance, Platform Stance, Serve ...(daum 2013)

 

  김의진 [專門資料] : [학술지논문] 건장한 남자의 심폐기능과 염증과의 관련성 (7p)/ 김의진 ( Euy Jin Kim )  | 한국운동생리학회(구-한국운동과...  | 2008 | 태그:  심폐기능, 염증, cardiopulmonary function, inflammation(daum 2013)

 

  김의진 [專門資料] : [학술지논문] 운동과학편 : 웨이트 트레이닝시 단백질 보충제 섭취가 신체구성 및 근기능 변화에 미치는 영향 (16p)/ 김양식, 김의진...  | 한국사회체육학회  | 2001(daum 2013)

  김의진 [專門資料] : [학술지논문] 자연과학편 : 신체분절(身體分節)의 운동이 던지기운동에 미치는 영향 (6p)/  김의진(Euy Jin Kim)  | 한국체육학회  | 1982(daum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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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이갑 : 사마방목(司馬榜目)/ 김이갑(金爾甲)/【시험년도】숙종(肅宗) 25 1699 식년(式年) 생원(生員)/【합격등위】2등 0030/【본인  자】원중(元仲)/【본인생년】병오(丙午) 1666/【본인본관】의성(義城)/【본인거주】예천(醴泉)/【본인구존】자시하(慈侍下)/【본인전력】유학(幼學)/【부친성명】김주(金迬)/【부친품계】통정대부(通政大夫)/【부친관직】함평(咸平) 행(行)현감(縣監)/【부친관직】나주(羅州)진관(鎭管) 병마절제도위(兵馬節制都尉)/【안항(형)】김이천(金爾천) 김이해(金爾楷) 김이추(金爾樞) 김이표(金爾標)/【안항(서제)】김이규(金爾逵)(daum 2010)

 

  김이갑 : 의성김씨(義城金氏)/ 司馬試及第者 世宗29(1447)~高宗31(1894)까지 生員 170인 進士93인/ 22세 김이갑 원중 신재 현종병오 숙종25 1699 기묘식년 생원 예천 개방 불구당공파/ 22世 金爾甲 元仲 新齋 顯宗丙午 肅宗25 1699 己卯式年 生員 醴泉 開芳 不求堂公派/ 형제(兄弟) 제(弟) 김이규(金爾逵)(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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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이규 : 1954- , 유천면 출신, American conservatory of musie 대학원 졸업, Musical art 박사, 기독음대 노스트웨스트 신학대 교수, 서울 명성교회 지휘자, 3.1절기념 오케스트라 콘서트와 촤리스 심포니오케스트라, 기독음대생 정기연주회 등을 지휘하였다.(醴泉鄕土新聞 1998.12.22)

 

김이규 : 깨뜨린 옥합 김이규 편곡 myfly300 님께서 요청한 곡입니다/ 2010.01.10/ 깨뜨린 옥합 - Arr 김이규 편곡(합본).nwc 깨뜨린 옥합 - 김이규편곡[명성교회].mp3/ //cafe.daum.net/lordfirst/ 오직 주만(daum 2010)

 

김이규 : 깨뜨린 옥합 / 내가 주님 앞에 무엇입니까 [김이규 편곡]/ 009.09.14/  뜨린옥합(김이규편곡).zip 깨뜨린옥합 / 내가주님앞에무엇입니까 [김이규 편곡]/ ttp://cafe.daum.net/lordfirst/ 오직 주만(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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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맥반석쌀, 14일 장관상...축하합니다.

 

  예천맥반석쌀 : 농림축산식품부가 주최하고 (사)한국쌀전업농중앙연합회가 주관해 2013년 11월 11일부터 14일까지 개최된 '제16회 전국쌀대축제'에서 예천의 맥반석쌀이 농림축산식품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이번 행사는 농산물시장 개방화로 외국 농산물이 수입되는 가운데 우리 쌀을 소비자에게 직접 홍보, 우리 농업에 대한 신뢰향상을 위해 '제18회 농업인의 날'을 맞아 열렸다. 이번 선발 과정은 지난 4월 농가로부터 출품신청을 받아 지난 달 22일까지 시료출품 후 제출된 시료를 통해 벼와 쌀 각각 3가지 방법으로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 선발됐다. 한국식품연구원은 완전미 비율과 수분함량, 단백질함량 등 외형과 성능평가를 실시하고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은 식미테스트, 농산품품질관리원 영등포시험장에서는 잔류농약검사를 실시해 허용치 기준 이상은 순위 상관없이 자동 제외됐다. 각 도에서 심사절차를 통해 도 별 5점씩 걸러 출품하고 중앙에서는 총 32점이 심사대상에 올라 까다로운 평가과정을 거쳤으며...(정구철 中部每日新聞 2013-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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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 출신 황가영, 18일 심청효행상 선정...축하합니다.

 

  황가영(그대들의 애틋한 孝心, 世上에 빛이 되다) [記事] : 가천문화재단(이사장ㆍ이길여 가천길재단 회장)은 제15회 심청효행대상 '심청효행상' 부문 특별상으로 황가영(18·경북 예천, 경안여고 3년) 양을 선정했다고 2013년 11월 18일 밝혔다... 제15회 심청효행대상 시상식은 12월 3일 오후 7시 30분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리며, 시상식 후에는 가천길재단 창립 55주년 기념 장사익 무료 콘서트가 진행된다. 심청효행대상은 가천문화재단 이사장인 이길여 가천길재단 회장이 1999년 고전소설 '심청전'의 배경인 인천시 옹진군 백령면에 심청동상을 제작, 기증한 것을 계기로 제정됐다. 올해 심청효행대상은 교육부ㆍ문화체육관광부ㆍ법무부ㆍ보건복지부ㆍ여성가족부ㆍ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ㆍ한국문화원연합회ㆍ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ㆍ인천광역시ㆍ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 등의 후원으로 진행됐다. 제15회 심청효행대상... 특별상 수상자에게는 장학금ㆍ상금 각 300만원이 지급된다. 또한 부문별 수상자에게는 장학금ㆍ상금뿐 아니라 가천대 길병원 진료비 평생 감액과 100만원 상당의 무료 종합건강검진권 2장이 부상으로 제공된다. 또한 가천대학교 수시전형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수상자 배출 학교와 추천기관에는 200여만원 상당의 교육기자재와 홍보비 등이 별도로 지원된다. 한편 가천문화재단은 12월 2일부터 4일까지 2박3일간 모든 수상자와 가족, 해당 수상자 배출학교 교사를 인천으로 초청해 연주회 관람, 놀이공원 이용 등 다양한 문화체험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김도현 記者 京仁日報 2013-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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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검도관, 17일 검도 도대회.. 3위...축하합니다.

 

  예천검도관(第22回 道知事盃 市.郡對抗 劍道選手權大會 醴泉劍道館 '團體戰 3位' 快擧!) [記事] : 경상북도검도회가 주최·주관한 "제22회 경상북도지사배 시·군대항 단별 검도선수권대회"가 2013년 11월 17일 오전 10시 대구대학교 검도관에서 개최되어 대한검도회 예천군검도관(관장 권경호) 소속 예천검도회팀이 단체전 3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올려 체육웅군 예천을 대내외에 널리 알렸다. 이번 대회에 대한검도회 예천검도관에서는 초단부 박건호 3위, 초단부 김상익 씨(삼성컴퓨터 대표)가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소년초단부 안진우 군이 준우승, 소년2단부 전영훈 군이 3위에 입상하는 등 노소를 가리지 않고 고른 성적으로 입상했다. 1953년 창립 발족된 대한검도회는 1956년 전국체육대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꾸준히 성장하다 1994년 대한검도회가 대한체육회 가맹단체 중 최초로 문화체육부 산하 사단법인으로 인가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검도인구는 50여만 명, 대한검도회 등록 유단자는 10만 명에 이른다. 검도의 목적은 첫째, 예의는 인간이 지켜야 할 가장 근본적이고 규범이 되는 상대적 행위로 검도에서 예의를 잃으면 오직 칼을 사용하는 투쟁만이 강조될 수 있으니 이를 경계해야 한다는 예의를 가장 중요시 하고, 심신 건강과 신의를 지키는 스포츠로 일반인들의 인기가 높다. 예천군검도관 권경호 관장은 "칼은 올바른 일을 위해 써야 하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활인검(活人劍)"이라고 설명하고 "부당한 것을 없애고 믿음으로 사귀며 헌신적으로 사회에 봉사하는 인간이 되도록 스스로 노력하고 이를 실천해야 진정한 검도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3-11-18 오후 1:3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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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방문 1,071

 

  예천군문화회관(犯罪 없는 社會! 밝고 健全한 靑少年 育成 爲해 犯放委가 앞장선다!...) [記事] : 법무부 범죄예방위원 상주지역협의회(협의회장 김성환)는 2013년 11월 19일 오후 4시 20분 예천군문화회관에서 '2013 밝은 사회를 위한 범죄예방 한마음대회'를 개최한다. 이날 행사에는 예천·상주·문경 3개 지역 각 기관단체장과 학생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청소년 보호를 위한 결의를 다지고 청소년들의 사기를 북돋아 올바른 청소년으로 육성하기 위한 사회적 분위기 조성을 위해 마련됐다. 또한, 범죄예방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한 유공으로 예천지구협의회원 남수경 씨가 상주지청장 표창을 받는 등 우수범죄예방위원 6명, 유공공무원 9명, 모범학생 42명에 대한 시상이 있으며, 생업조성금 지원 4명, 자매결연 청소년 45명에게 격려금을 전달한다. 범죄예방위원들은 청소년 범죄를 예방하고 선도활동을 다짐하는 결의문을 낭독하였고 특히, 이날 대창고등학교 밴드공연과 예천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의 댄스 공연이 더해져 행사의 분위기를 더욱 다채롭게 만든다. 김성환 법무부 범죄예방위원 상주지역협의회장은 "희망을 품고 꿈을 꾸는 건전한 청소년 육성은 우리 사회의 의무로서 적극적인 범죄 예방과 선도활동에 협조를 바라며, 청소년들은 각자 올바른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하기 위한 인성과 능력을 함양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새慶北인터넷뉴스 2013년11월19일 09시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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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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