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이곳은 군민 여러분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게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게재된 내용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건전한 통신문화 정착과 군민의식함양을 위하여 실명으로 운영되며특정인 비방, 광고, 음란물, 유사 또는 반복 게시물 등은 사전 통보없이 삭제됨을 알려드립니다.

※게시판의 건전한 운영을 위하여 "예천군 인터넷 시스템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6조" 에 해당하는 글은 사전예고 없이 삭제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에 의하여 처벌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글 등록시 제목이나 게시내용, 첨부파일등에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사업자등록번호, 통장계좌번호 등)는 차단되오니 기재를 금합니다.

제목자랑3515:김태일(2)(祝군청,용두리/예천방문1,082)
작성자장병창 @ 2014.01.08 06:49:12

  예천의 자랑(3515) : 김태일(2)(附  *예천군, 7일 일자리창출 도평가 우수군으로 선정...축하합니다/용두리, 경북의 산촌마을 발간책자에 소개...축하합니다/예천방문 1,082)

---

 

  김태일(金兌一) : 1637~1702(인조 15~숙종 28), 개포면 경진리 검암(劒岩) 출신, 字:秋伯, 號:蘆洲, 本貫:禮安, 父:?, 母:務安 朴氏, 居:安東. 金兌一은 戶曹參判에 증직된 金?과 ?皐公 權克諧의 딸 사이에 1637년(인조 15)에 태어났다. 參判公 ?은 郡 서쪽 花庄里에서 처가살이를 하다가 공의 나이 18세 되던 해에 공을 仲父 ?의 양자로 보냈다. 공은 어려서부터 두각을 나타내었는데, 沈靜하였고 말수가 적고 웃음을 아꼈으니 愼重하기가 어른과 같았다. 향리의 아이들과 어울릴 때면 무익한 놀이는 하지 않았으며, 손가락으로 땅바닥을 그어 번번이 글자를 만들어내니 사람들이 모두 기이하게 여겼다. 자라서는 형 郡守公 아우 府尹公과 함께 외조부 ?皐公 權克諧에게 수학하였다. 9세 때 [靑塚賦]를 지어 山陽의 李?에게 보이자, 李公이 읽고는 "이는 王安石의 詩意를 뒤엎었다. 이 아이의 훗날 성취를 헤아릴 수 없구나."(此反王介甫詩意, 是兒異日成就未可量也)라고 찬탄하였다. 15~6세에 四書三經을 독파하였고 틈틈이 班固와 司馬遷의 역사서 및 제자서를 두루 섭렵하였다. 1660년(현종 원년) 공의 나이 24세에 鄕試에 2등으로 급제하여 國子學諭兼奉常寺副奉事例에 임명되었고 學錄學正으로 승진하였다. 1664년(현종 5) 博士로써 典籍으로 승진하였고, 또한 司憲府監察로 승진하였으며, 1665년(현종 6) 가을 외직으로 興德縣監을 맡았다. 1673년(현종 14) 文臣兼宣傳官에 제수되었고 잠시 동안 成歡察訪을 맡기도 하였다. 1674년(현종 15) 봄에 승진하여 大丘判官에 제수되었다. 1677년(숙종 3) 겨울 兵曹佐郞에 제수되었으며, 1678년(숙종 4) 봄 외직으로 海西의 막료로 文化縣에서 別試를 관장하면서 科場을 엄격하게 관리하였다. 1685년(숙종 11) 봄에 晉州牧使를 제수받고, 1687년(숙종 13) 寧海府使를 제수받았다. 1689년(숙종 15) 봄 肅宗이 영해에 머물러 있던 持憲 李玄逸을 불러 國子司業으로 삼으려 하자 영해부사였던 공이 나서서 李公을 설득하여 進講하게 하였다. 그 해 가을 司憲府掌令으로 승진되었다. 1694년(숙종 20) 輔德으로써 司諫으로 옮겼으며, 또 司僕寺正을 제수받았다. 名利를 좋아하지 않고, 외직에 있을 때 善政을 많이 베풀었던 공은 1702년(숙종 28) 9월 4일 戌時에 66세의 나이로 죽었다. 공은 평생동안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으니, 새벽 닭이 울면 일어나 홀로 誦讀하였다. 관직에 있을 때 베껴쓴 書冊만 해도 수십 질에 달했다고 한다. 또한 일찍이 {周易}을 한 부를 베껴 그 속에 담겨있는 消長의 幾微와 進退의 도리를 훌륭하게 수행하였다. 만년에는 특히 {朱書節要}에 沈潛하였고, 海東先賢들의 문집도 두루 섭렵하였다. 또한 {朱子綱目}을 숙독함으로써 古今의 治亂 및 人物의 賢邪에 대해서도 훤히 꿰뚫었다. 詞章에 대해서는 그렇게 공력을 쏟지 않았지만 자연히 精鍊되어 典範에 부합하였으니, 즉 인근의 몇몇 선비들과 시편 및 편지를 주고받았다.(//www.koreastudy.or.kr 2007)

 

  김태일 [記事] : 비변사등록 새창/ 기사제목 司啓辭, 晉州牧使 ./ 왕 재위년도  숙종 11년 / 월일  乙丑二月初六日 / 司啓辭, 晉州牧使柳?前月大政除授, 未及上來, 被論見遞, 金兌一爲其代, 柳?, 家在嶺南, 本州迎新人馬, 往待於其家, 聞其遞改之奇, 又?上京矣, 兌一之家, 亦在嶺南醴川地, 今若待其上來肅謝後赴任, 則遠邑夫馬累度往來之際, 其弊不?, 且自今賑政方急, 本州曠官已久, 官事之虛疏, 亦甚可慮, 在前凶歲, 守令雖非在官移拜之人, 亦有除朝辭赴任之例, 則晉州牧使金兌一, 除朝辭赴任事分付該曹, 何如, 答曰, 允。(www.history.go.kr 2009)

 

  김태일 [記事] : 국역비변사등록 새창/ 기사제목 司啓辭, 晉州牧使 ./ 왕 재위년도  숙종 11년 / 월일  숙종 11년(1685) 2월 6일 / 비변사에서 아뢰기를  "진주목사(晉州牧使) 유지(柳?)가 지난 달의 대정(大政 : 12월 의 도목정 )에서 제수되었으나 미처 올라오기도 전에 대론(臺論)을 당하여 교체되고 김태일(金兌一)이 그 후임이 되었습니다. 유지의 집은 영남에 있으므로 진주의 신관을 맞을 인마(人馬)가 그 집에 가서 대기하고 있다가 교체되었다는 기별을 듣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김태일의 집도 영남의 예천(醴泉) 땅에 있는데 지금 만일 그가 올라와 사은숙배하고 부임하기를 기다리자면 먼 고을의 마부와 말이 여러 차례 왕래하게 될 터이니 그 폐단이 적지 않습니다. 또 지금부터는 진휼하는 일이 한창 바빠질 터인데 진주는 관직을 비운 지가 이미 오래되어 관청의 일이 허술함이 또 심히 걱정이 됩니다. 전에도 흉년에는 벼슬길에 있다가 전출된 수령이 아니더라도 조정 하직을 생략하고 부임한 전례가 있었으니 진주목사 김태일은 조정하직을 생략하고 부임하게 하라고 이조에 분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답하였다.(www.history.go.kr 2009)

 

  김태일 [記事] : 국역비변사등록 새창/ 기사제목 東萊府使薦 ./ 왕 재위년도  숙종 15년  / 월일  숙종 15년(1689) 3월 18일 / 이조에서 아뢰기를  "동래부사(東萊府使)의 자리가 비었습니다. 근례대로 비변사로 하여금 의논해서 천거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답하였다. / 동래부사 천 / 행상호군 신여철 / 행의정부 좌참찬 민암 : 이태귀(李泰龜)․이형상(李衡祥)․한형(韓?). / 이조판서 심재 : 이형상․김귀만(金龜萬)․신학(申?). / 예조판서 이관징 : 손만웅(孫萬雄)․박신(朴紳)․남후(南?). / 행부호군 박세채 / 병조판서 윤심 : 박신(朴紳)․흥수주(洪受疇). / 행부호군 민종도 : 신학․박신․김귀만. / 호조판서 권대재 : 이형상․박신․한형. / 형조판서 이우정 : 이형상․신학․김태일(金兌一). / 행사헌부 대사헌 유명천 : 김귀만․한형. / 한성부 판윤 오시복 / 행부호군 윤이제 : 김귀만․박신․한형. / 병조참판 이집 : 박신․김귀만․손만웅. / 비망 : ○ 박신․김귀만․홍수주.(www.history.go.kr 2009)

 

  김태일 [記事] : 국역비변사등록 새창/ 기사제목 東萊府使議薦 ./ 왕 재위년도  숙종 16년  / 월일  숙종 16년(1690) 6월 24일 / 낭청이 삼공의 뜻으로 아뢰기를  "동래부사와 판의금은 모두 긴중한 자리이니 정원으로 하여금 정관(政官)을 패초하여 즉시 정사를 열어 차출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답하였다. / 동래부사 천 / 행병조판서 민암 : 김주(金澍)․심벌(沈?)․정래상(鄭來祥). / 행예조판서 이관징 : 이형상(李衡祥)․손만웅(孫萬雄)․김태일(金兌一). / 의정부좌참찬 심재 : 김주․김흥복(金洪福)․이진휴(李震休). / 의정부우참찬 이우정 : 김홍복․김주․손만웅. / 행부사직 민종도 : 손만웅․이형상. / 이조판서 유명천 : 손만웅․유정휘(柳挺輝)․김태일. / 호조판서 오시복 : 이형상․손만웅․이진휴. / 지중추부사 윤이제 : 손만웅․이형상․김주. / 형조판서 정유악 : 이형상․손만웅․김태일. / 행흥문관부제학 이담명 : 손만웅․이준(李浚)․김태일. / 공조참판 이집 : 손만웅․정래상․김일기(金一夔). / 동지중추부사 권유 / 행성균관대사성 유명현 : 손만웅․이준․흥수주(洪受疇) . / 호조참판 이의징 : 이준․이형상․장진(張?). / 사헌부대사헌 이항 : 이형상 정래상․이진휴. / 동래부사 비망 : ○남후(南?)․흥수주․손만웅.(www.history.go.kr 2009)

 

  김태일 : 기사제목 吏曹啓曰, 義州府尹有闕 ./ 왕 재위년도  숙종 16년  / 월일  숙종 16년(1690) 6월 29일 / 이조에서 아뢰기를  "의주부윤이 비었으니 가까운 예대로 비변사로 하여금 상의하여 천거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 의주부윤 천 / 행병조판서 민암 : 이현조(李玄祚)․김주(金澍)․김흥복(金洪福). / 행예조판서 이관징 : 이형상(李衡祥)․김일기(金一夔)․김홍복. / 행의정부좌참찬 심재 : 이진휴(李震休)․손만웅(孫萬雄)․이형상. / 행의정부우참찬 이우정 : 김몽신(金夢臣)․김홍복․김주. / 행부사직 민종도 : 손만웅․이형상. / 이조판서 유명천 : 신후명(申厚命)․이현조(李玄祚)․김홍복. / 호조판서 오시복 : 이현조․김몽신․손만웅. / 지중추부사 윤이제 : 김주․김일기․흥수주(洪受疇). / 형조판서 정유악 : 김홍복․이희채 (李熙采)․이형상. / 행홍문관부제학 이담명 : 김일기․김주․김태일(金兌一). / 공조참판 이집 : 김주․김일기․이진휴. / 동지중추부사 권유 / 행성균관대사성 운명현 : 신후명․손만웅․김태일. / 호조참판 이의징 : 신후명․정래상(鄭來祥)․홍수주. / 사헌부대사헌 이항 : 김주․정래상․이진휴. / 의주부윤 비망 : ○허지(許?)․신후명․김홍복.(www.history.go.kr 2009)

 

  김태일 [記事] : 국역비변사등록 새창/ 기사제목 東萊府使議薦 ./ 왕 재위년도  숙종 20년 / 월일  숙종 20년(1694) 2월 27일 / 동래부사 천 / 행판중추부사 유명천 / 행호조판서 오시복 : 한명상(韓命相)․홍만기(洪萬紀). / 행공조판서 유명현 : 홍만기․한명상․김태일(金兌一). / 전행사헌부대사헌 유하익 : 오상유(吳尙游)․홍만기․박명의(朴明義). / 의정부좌참찬 정유악 : 한명상․홍만기․오상유. / 의정부우참찬 윤이제 / 지돈녕부사 이의징 : 박명의․홍만기․한명상. / 병조판서 목창명 : 한명상․홍만기․오상유. / 예조판서 권유 : 장진(張?)․홍주진(洪柱震)․한명상. / 이조판서 이현일 : 한명상․김태일․장진. / 형조판서 민취도 : 홍만기․한명상. / 행부호군 이담명 / 사헌부대사헌 권해 : 한명상․장진․홍주진. / 행훈련원도정 황징 : 박명의․홍만기. / 행홍문관부제학 이봉징 : 홍만기․한명상․장진. / 성균관대사성 민창도 : 이준(李浚)․홍만기․장진. / 비망 : ○한명상․박명의․홍만기.(www.history.go.kr 2009)

 

  김태일 [記事] : 숙종실록 21권/ 숙종 15년(1689 기사 / 청 강희(康熙) 28년) 8월 23일(병술) 1번째 기사/ 정유악․김태일․이윤수․이일익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정유악(鄭維岳)을 대사간(大司諫)으로, 김태일(金兌一)을 장령(掌令)으로, 이윤수(李允修)를 사간(司諫)으로, 이일익(李日翼)을 수찬(修撰)으로, 유천지(柳千之)를 장령(掌令)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9책 199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태일 [記事] : 숙종실록 21권/ 숙종 15년(1689 기사 / 청 강희(康熙) 28년) 10월 2일(을축) 2번째 기사/ 장령 김태일이 김우성을 다시 구문할 것을 아뢰다/ 장령(掌令) 김태일(金兌一)이 아뢰기를, ꡒ김우성(金宇成)은 정원로(鄭元老)의 매부[妹?]로서 김만기(金萬基)의 군관(軍官)이 되어 기관(機關)과 방략(方略)을 환히 알지 못함이 없었습니다. 정원로가 상변(上變)하자, 김우성도 체포하여 묻는 가운데 있었는데, 그 아는 바를 바로 지적하여 숨김이 없고자 하였으므로, 김석주 등이 크게 두려워하여 곧 석방하였으니, 당시에 말이 이미 자자(藉藉)하였습니다. 이입신이 김우성을 끌어대어 서로 면질(面質)하게 되자, 김우성이 큰 소리로 말하기를, ꡐ김석주․김만기․ 김진귀(金鎭龜) 등이 이입신을 시켜서 환시(宦侍)에게 말을 퍼뜨리게 하였다.ꡑ 하니, 이입신이 능히 분변하지 못하였습니다. 이것이 경신 무옥(庚申誣獄)의 긍경(肯?)인데, 끝내 구힐(究詰)6922) 하지 못하였으니, 청컨대 다시 나치하여 구문(究問)하게 하소서.ꡓ하였으나, 임금이 따르지 아니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9책 202면/ 【분류】 *사법-치안(治安) / *변란-정변(政變)/ [註 6922]구힐(究詰) : 깊이 조사해 밝힘. ☞(www.history.go.kr 2009)

 

  김태일 [記事] : 숙종실록 22권/ 숙종 16년(1690 경오 / 청 강희(康熙) 29년) 4월 25일(병술) 1번째 기사/ 이태귀․김태일․이정․최경중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태귀(李泰龜)를 집의(執義)로, 김태일(金兌一)․이정(李禎)을 장령(掌令)으로, 최경중(崔敬中)을 지평(持平)으로, 이우진(李宇晋)을 정언(正言)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9책 221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태일 [記事] : 숙종실록 22권/ 숙종 16년(1690 경오 / 청 강희(康熙) 29년) 7월 27일(병진) 4번째 기사/ 김태일을 헌납으로 삼다/ 김태일(金兌一)을 헌납(獻納)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9책 226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태일 [記事] : 숙종실록 22권/ 숙종 16년(1690 경오 / 청 강희(康熙) 29년) 9월 4일(신묘) 1번째 기사/ 이현조․김태일․홍돈․박정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현조(李玄祚)를 사인(舍人)으로, 김태일(金兌一)을 장령(掌令)으로, 홍돈(洪墩)을 교리(校理)로, 박정(朴?)을 부수찬(副修撰)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9책 228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태일 [記事] : 숙종실록 22권/ 숙종 16년(1690 경오 / 청 강희(康熙) 29년) 11월 27일(갑인) 1번째 기사/ 이현일․김태일․이관징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이현일(李玄逸)을 대사헌(大司憲)으로, 김태일(金兌一)을 장령(掌令)으로, 이관징(李觀徵)을 좌참찬(左參贊)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9책 233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태일 [記事] : 숙종실록 23권/ 숙종 17년(1691 신미 / 청 강희(康熙) 30년) 3월 3일(기축) 1번째 기사/ 성관․김태일 등에게 관작을 제수하다/ 성관(成瓘)․김태일(金兌一)을 장령(掌令)으로, 정시윤(丁時潤)․이동근(李東根)을 지평(持平)으로, 이일정(李日井)을 수찬(修撰)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9책 242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태일 [記事] : 숙종실록 23권/ 숙종 17년(1691 신미 / 청 강희(康熙) 30년) 8월 19일(신축) 1번째 기사/ 송광벽․이인빈 등에게 관작을 제수하다/ 송광벽(宋光璧)․이인빈(李寅賓)을 장령(掌令)으로, 이동표(李東標)를 교리(校理)로, 이우진(李宇晋)을 집의(執義)로, 김태일(金兌一)을 헌납(獻納)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9책 252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태일 [記事] : 숙종실록 24권/ 숙종 18년(1692 임신 / 청 강희(康熙) 31년) 4월 13일(임진) 2번째 기사/ 윤이도․박신 등에게 관작을 제수하다/ 윤이도(尹以道)와 박신(朴紳)을 승지(承旨)로, 권흠(權歆)을 대사간(大司諫)으로, 김태일(金兌一)을 장령(掌令)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9책 264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태일 [記事] : 숙종실록 24권/ 숙종 18년(1692 임신 / 청 강희(康熙) 31년) 5월 21일(경오) 1번째 기사/ 김태일을 헌납으로 삼다/ 김태일(金兌一)을 헌납(獻納)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9책 266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태일 [記事] : 숙종실록 25권/ 숙종 19년(1693 계유 / 청 강희(康熙) 32년) 7월 18일(경신) 1번째 기사/ 김태일․김몽신 등에게 관작을 제수하다/ 김태일(金兌一)을 장령(掌令)으로, 김몽신(金夢臣)을 필선(弼善)으로, 박명의(朴明義)를 문학(文學)으로, 정시윤(丁時潤)을 부교리(副校理)로, 홍중하(洪重夏)를 헌납(獻納)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9책 282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태일 [記事] : 숙종실록 25권/ 숙종 19년(1693 계유 / 청 강희(康熙) 32년) 9월 15일(병진) 2번째 기사/ 오상문․김태일 등에게 관작을 제수하다/ 오상문(吳尙文)을 정언(正言)으로, 김태일(金兌一)을 문학(文學)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9책 287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태일 [記事] : 숙종실록 25권/ 숙종 19년(1693 계유 / 청 강희(康熙) 32년) 10월 16일(병술) 2번째 기사/ 권해․김태일 등에게 관작을 제수하다/ 권해(權?)를 부제학(副提學)으로, 김태일(金兌一)을 헌납(獻納)으로, 홍중하(洪重夏)를 부교리(副校理)로, 이운징(李雲徵)을 승지(承旨)로, 유명현(柳命賢)을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로 승진시켜 임명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9책 288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태일 [記事] : 숙종실록 25권/ 숙종 19년(1693 계유 / 청 강희(康熙) 32년) 10월 23일(계사) 2번째 기사/ 안여석․김태일 등에게 관작을 제수하다/ 안여석(安如石)을 승지(承旨)로, 김태일(金兌一)을 보덕(輔德)으로, 조필(趙珌)을 사서(司書)로, 이준(李浚)을 교리(校理)로, 이필무(李必茂)를 장령(掌令)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9책 288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태일 [記事] : 숙종실록 25권/ 숙종 19년(1693 계유 / 청 강희(康熙) 32년) 10월 27일(정유) 2번째 기사/ 유명현․이동표 등에게 관작을 제수하다/ 유명현(柳命賢)을 홍문관 제학(弘文館提學)으로, 이동표(李東標)를 응교(應敎)로, 김태일(金兌一)을 집의(執義)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9책 288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태일 [記事] : 숙종실록 25권/ 숙종 19년(1693 계유 / 청 강희(康熙) 32년) 12월 6일(을해) 1번째 기사/ 권규․이윤수 등에게 관작을 제수하다/ 권규(權珪)를 대사헌(大司憲)으로, 이윤수(李允修)를 대사간(大司諫)으로 이준(李浚)을 집의(執義)로, 김태일(金兌一)을 사간(司諫)으로, 최경중(崔敬中)을 장령(掌令)으로, 이익년(李翼年)을 지평(持平)으로, 권중경(權重經)을 대사성(大司成)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9책 289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태일 [記事] : 숙종실록 26권/ 숙종 20년(1694 갑술 / 청 강희(康熙) 33년) 3월 6일(갑진) 4번째 기사/ 이봉징․권해 등에게 관작을 제수하다/ 이봉징(李鳳徵)을 대사헌으로, 권해(權?)를 부제학으로, 김태일(金兌一)을 보덕(輔德)으로, 오상문(吳尙文)을 부수찬(副修撰)으로, 최항제(崔恒齊)를 헌납(獻納)으로, 이운징(李雲徵)을 전라도 관찰사로, 홍중현(洪重鉉)을 부교리(副校理)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9책 294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태일 [記事] : 숙종실록 26권/ 숙종 20년(1694 갑술 / 청 강희(康熙) 33년) 3월 12일(경술) 1번째 기사/ 이원령․이제민 등에게 관작을 제수하다/ 이원령(李元齡)을 승지로, 이제민(李濟民)을 수찬(修撰)으로, 김태일(金兌一)을 사간(司諫)으로 삼았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39책 294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김태일 [記事] : 승정원일기/ 현종 2년 1월 9일 (기미) 원본166책/탈초본9책 (10/25)  1661년 順治(淸/世祖) 18년/ 睦性善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以睦性善爲舍人, 李處恒爲安陰縣監, 尹?爲宗簿正, 金益謙爲司藝, 金?爲右通禮, 洪柱三爲修撰, 金韶夏爲校書副正字, 李楷․金兌一竝爲成均學諭, 李壽仁爲執義, 昌寧縣監金尙重爲通政大夫, 軍器僉正李宇柱爲通政大夫。(www.history.go.kr 2009)

 

  김태일 [記事] : 승정원일기/ 현종 2년 2월 18일 (무술) 원본166책/탈초본9책 (5/14)  1661년 順治(淸/世祖) 18년/ 吳斗寅 등이 사은함/ ○ 謝恩, 獻納吳斗寅, 護軍金亨祥, 鍾城府使申?, 禮曹正郞金禹錫, 佐郞權斗樞, 學諭金兌一。(www.history.go.kr 2009)

 

  김태일 [記事] : 승정원일기/ 현종 2년 2월 24일 (갑진) 원본166책/탈초본9책 (3/15)  1661년 順治(淸/世祖) 18년/ 李慶果 등이 謝恩함/ ○ 謝恩, 承文著作李慶果, 奉常副奉事金兌一, 左副承旨閔熙, 參知吳挺緯。(www.history.go.kr 2009)

 

  김태일 [記事] : 승정원일기/ 현종 3년 7월 13일 (갑신) 원본175책/탈초본9책 (8/14)  1662년 康熙(淸/聖祖) 1년/ 朴?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以朴?爲持平, 洪燧爲江原都事, 尹善得爲引儀, 許積․南龍翼爲承文提調, 申命全爲嘉山郡守, 金世鼎爲兵曹佐郞, 李尙彦爲旌善郡守, 學正金兌一, 學錄李英?, 竝單付。吏曹政軸(www.history.go.kr 2009) 

 

  김태일 [記事] : 승정원일기/ 현종 4년 6월 21일 (정사) 원본179책/탈초본9책 (20/21)  1663년 康熙(淸/聖祖) 2년/ 李東老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有政。以李東老爲星州牧使, 任有後爲驪州牧使, 呂聖齊爲副修撰, 閔昇爲寧邊府使, 李翊爲副校理, 張善?爲持平, 南二星爲持平, 李慶果爲掌令, 成均學正李在容, 校書正字李尙悌, 竝單付, 李璞爲柒谷府使, 朴靖爲禮曹正郞, 安後說爲延安縣監, 鄭道應爲昌寧縣監, 趙見素爲懷仁縣監, 許恪爲興海郡守, 趙嗣文爲眞寶縣監, 金鎬爲長興主簿, 李敏敍爲校理, 韓聖輔爲禮安縣監, 吳命說單付成均學正, 金自南爲旌善郡守, 李時淵爲昌平縣令, 柳時蕃爲殷山縣監, 金弘振爲砥平縣監, 吳?爲豊基郡守, 金善英爲靑松府使, 朴贄爲禮曹佐郞, 趙?爲沙斤察訪, 洪柱溟爲尙瑞直長, 權?爲幽谷察訪, 李命聃爲漢城庶尹, 安弘靖爲平陵察訪, 李慣爲榮川郡守, 金益廉爲獻納, 尹坤爲咸從縣令, 張世良爲延曙察訪, 姜好奭爲良才察訪, 李袗爲江原監司, 吳得天爲輸城察訪, 李慶徽爲副提學, 李端錫爲正言, 姜栢年爲驪州牧使, 洪?爲戶曹佐郞, 崔自海爲司評, 洪茂爲司僕判官, 丁時傑爲平市令, 趙相漢爲龍岡縣令, 郭世翼爲監察, 李行夏爲尙瑞副直長, 朴長遠爲判尹, 宋時喆爲掌樂正, 洪南立爲司?正, 吳?爲監察, 曺漢英爲禮曹參議, 朴振翰爲軍器僉正, 學正金兌一, 學諭金啓光, 竝單付, 李行進爲兼同義禁, 李殷相爲戶曹參議, 朴世橋爲軍器僉正, 典籍崔鎭南․李耈徵․金時輝, 竝單付, 閔最爲內資主簿, 劉勳爲引儀, 柳普昌爲戶曹正郞, 李慶雨爲濟用副奉事, 趙時?爲引儀, 金振元爲工曹佐郞, 趙億爲工曹佐郞, 任暎爲禁府都事, 沈玖爲戶曹正郞, 李晩吉爲司藝, 金阜榮爲軍器主簿, 以洪處大爲兵曹參議, 李泰淵爲參知, 朴世堂爲兵曹正郞, 宋浚吉爲大司憲, 閔世冑爲歸厚別提, 許欽爲監察, 李廷欽爲軍器主簿, 李靖賢爲宗簿主簿, 白弘祐爲工曹佐郞, 金三俊爲軍資主簿, 沈之治爲司饔主簿, 金嚮爲工曹正郞, 兪瑾爲引儀兼漢城參軍, 李敏敍爲吏曹佐郞, 李洽爲慶興府使, 李曾賢爲廣興主簿, 崔壽徵爲兼引儀, 鄭虎翼爲掌苑別提, 金碩昌爲引儀, 李挺完爲造紙別提, 趙世彙爲典籍, 鄭載嵩爲京畿都事, 李一臣爲禮賓別提, 趙璋爲瓦署別提, 李興稷爲司僕主簿, 蘇斗山爲兵曹正郞, 宋胤吉爲奉常主簿, 李俊英爲義盛主簿, 閔維重爲副應敎, 李晛爲司宰主簿, 成均博士李雲林․朴以文竝單付, 司畜別提趙安及單付, 李之馨爲直講, 安廷煥爲禁府都事, 沈?爲典獄參奉, 崔渲爲健元陵參奉, 元格爲典籍, 金國瑞爲假引儀, 李志遠爲監察, 李光翼爲童蒙敎官, 李?爲禮賓主簿, 權說爲瓦署別提, 南二星爲觀象提調, 李?兵曹佐郞, 張時騫單付漢江渡丞, 養賢庫直長元?, 養賢庫奉事柳松齊, 竝單付, 以李慶億爲右副承旨。吏曹望單(www.history.go.kr 2009)

 

  김태일 [記事] : 승정원일기/ 현종 5년 6월 4일 (을미) 원본183책/탈초본10책 (20/20)  1664년 康熙(淸/聖祖) 3년/ 李程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有政。吏批, 以李程爲司諫, 金振翰爲校書正字, 尹趾完爲承文副正字, 金兌一爲學正, 趙壽益爲戶曹參判, 李尙達爲軍資判官, 安後說爲兵曹參議, 任義伯爲漢城左尹, 李敏政爲禁府都事, 洪茂爲泰仁縣監, 申厚載爲正言, 朴潾爲軍器僉正, 李一相爲工曹判書, 徐必成爲永川郡守, 尹遇丁爲京畿都事, 姜允亨爲判校, 金萬均爲宗簿正, 李克誠爲直講, 尹?爲奉常正, 李?爲司?正, 李聖麟爲監察, 任義伯爲刑曹參判, 南必大爲泰陵參奉。(www.history.go.kr 2009)

 

  김태일 [記事] : 승정원일기/ 현종 5년 6월 6일 (정유) 원본183책/탈초본10책 (9/15)  1664년 康熙(淸/聖祖) 3년/ 李一相 등이 사은함/ ○ 謝恩, 工曹判書李一相, 奉常正尹?, 濟用正朴濠, 軍器判官李河達, 僉正朴潾, 禁府都事李敏厚, 校書正字金振漢, 學正金兌一, 監察李聖麟, 永川郡守徐必成, 平山府使閔燾。(www.history.go.kr 2009)

 

  김태일 [記事] : 승정원일기/ 현종 5년 6월 17일 (무신) 원본183책/탈초본10책 (3/13)  1664년 康熙(淸/聖祖) 3년/ 金兌一에게 관직을 제수함/ ○ 以金兌一爲假注書。(www.history.go.kr 2009)

  김태일 [記事] : 승정원일기/ 현종 5년 7월 9일 (무술) 원본184책/탈초본10책 (3/7)  1664년 康熙(淸/聖祖) 3년/ 李材吉 등이 사은함/ ○ 謝恩, 新寧縣監李材吉, 成均博士金兌一, 同知柳汝槿, 羽林將尹時達, 參知金壽興, 雲山君守南宮忠。(www.history.go.kr 2009)

 

  김태일 [記事] : 승정원일기/ 현종 5년 7월 11일 (경자) 원본184책/탈초본10책 (10/16)  1664년 康熙(淸/聖祖) 3년/ 專經文臣의 殿講 성적/ ○ 專經文臣殿講時, 申厚載, 書純通, 李瑞雨․盧說之, 詩純通, 南夢星, 易略, 裵榮成春〈秋〉略, 姜碩耈書略, 柳極詩略, 曺挺宇․金兌一․柳星三書粗, 金元鼎詩略。(www.history.go.kr 2009)

 

  김태일 [記事] : 승정원일기/ 현종 5년 11월 22일 (기유) 원본186책/탈초본10책 (8/25)  1664년 康熙(淸/聖祖) 3년/ 金兌一에게 관직을 제수함/ ○ 金兌一爲假注書。(www.history.go.kr 2009)

 

  김태일 [記事] : 승정원일기/ 현종 5년 12월 3일 (경신) 원본186책/탈초본10책 (4/10)  1664년 康熙(淸/聖祖) 3년/ 呂聖齊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 有政。吏批, 以呂聖齊爲吏曹佐郞, 朴世堂爲正言, 鄭載岱爲司僕判官, 張鍵爲兵曹正郞, 金海一爲司錄, 崔應天爲鳳山郡守, 李耈徵爲禮曹佐郞, 宋克悌爲內贍主簿, 閔宗道爲監察, 李耆英爲司宰主簿, 孫必大爲禮賓正, 李尙眞爲校書提調, 任映爲保寧縣監, 柳?爲奉常僉正, 朴長遠爲刑曹判書, 朴長遠爲宗廟提調, 趙壽益爲漢城右尹, 黃浩爲价川郡守, 金兌一爲典籍, 洪重普爲軍器提調, 沈益善爲順安縣令, 鄭知和爲訓鍊都提調, 鄭知和爲內醫院提調。(www.history.go.kr 2009)

 

---

 

  *예천군, 7일 일자리창출 도평가 우수군으로 선정...축하합니다.

 

  예천군 수상(2013年 4/4分期 일자리創出 優秀部署 및 市ㆍ郡 施賞 : 道 女性政策館, 永川市, 尙州市, 醴泉郡) [記事] : 경상북도는 2014년 1월 7일 도 여성정책관, 영천시, 상주시, 예천군을 2013년 4/4분기 일자리창출 우수기관으로 선정, 시상했다. 이들 기관은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도 경제성장과 국민행복의 선조건인 고용창출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여 성과를 거양했다... 예천군은 지역커뮤니티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창출을 위해 8개 사회적기업을 지정·육성(65개 일자리창출)하고, 일자리 미스매치 해소를 위해 취업지원기관과 협력을 통한 취업박람회 개최(‘13.10, 28명 취업), 경북도립대학과 축산전문인력 양성사업(60명)을 추진했다. 또한 지역맞춤일자리창출사업 포럼 개최 및 농·특산물 공동브랜드개발을 위한 통합마케팅을 조직·육성(’13.10)하여 농축산업 6차사업화(유통·가공·관광결합)를 통한 일자리 창출에 좋은 점수를 받았다. 이인선 경상북도 정무부지사는 어려운 국내외 경제 여건 속에서도 일자리 창출에 열심히 노력하여 일자리창출 평가 우수기관으로 선정된 4개 기관에 대해 격려하며, 한해의 마무리와 시작이 좋은 만큼 2014년에도 일자리창출을 위해 더욱 더 힘써 줄 것을 당부했다. 특히, “정부에서는 경제 활성화와 국민행복을 위한 고용률 제고와 양질의 일자리창출에 모든 국력을 모아 선진국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 매진하고 있다”며 “도에서도 정부의 일자리창출 정책에 적극 동참하여 이의 달성을 위한 모든 역량을 모아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醴泉뉴스 2014년 01월 07일)

 

---

 

  *용두리, 경북의 산촌마을 발간책자에 소개...축하합니다.

 

  용두리(함 와보이소, 우리마을 : 몸과 마음이 便해지는 慶北의 山村마을 冊子 發刊) [記事] : 경상북도는 산촌마을의 생태관광 정보를 소개하고 그 이용을 안내하는 책자 ‘몸과 마음이 편해지는 경북의 산촌마을’을 발간했다. 도시인들이 경북도의 백두대간과 낙동정맥 주변의 산촌마을에서 휴양이나 관광을 즐기는데 유용한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책자는 울진 굴구지, 봉화 죽터마을, 영양 대티마을, 영덕 속곡, 청송 괴정리, 포항 두마리, 영천 공덕리, 군위 석산리, 경주 시다마을, 청도 오진리, 영주 두산리, 예천 용두리, 문경 적성리, 상주 입석리, 김천 평촌리 등 경북의 15개 시군을 대표하는 산촌생태마을을 소개했다. 소개된 마을은 낙동정맥과 백두대간에 가려 낙후되고 후미진 산촌을 대표하던 곳들이 신토불이 먹거리를 생산해내고, 걷기길, 산길 등을 개발해 도시인들이 꿈꾸는 힐링 장소로 변신한 곳들이다. 윤차규 경상북도 산림산업과장은 “경북의 산촌을 관광과 휴양목적으로 이용하는데 요긴한 안내서가 될 것”이라며 “특히 최근 급증하고 있는 로하스(LOHAS)족과 트레킹족의 산촌체험으로 산촌생태마을의 이용을 촉진할 뿐 아니라, 산촌생활을 꿈꾸는 도시인들을 끌어들여 더 살기 좋은 산촌마을로 다듬어 나가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경북도는 이 책자를 일반인이 널리 이용할 수 있도록 도내 산촌생태마을 및 전국 국공립도서관 등에 배부할 계획이다.(醴泉뉴스 2014년 01월 07일)

 

---

 

  @예천방문 1,082

 

  예천군청소년수련관 갤러리(靑少年修練館 갤러리 開館 記念展 열려 : 오는 13日까지, 靑少年修練館 2層 展示室에서 열려) [記事] : 예천군에서 군민들의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게 될 청소년수련관내 갤러리 조성사업을 지난 12월 마무리하여 개관기념 미술작품 전시회를 2014년 1월 4일부터 13일까지 10일간 청소년수련관 2층 갤러리에서 열린다. 이번 개관 기념전은 지역작가, 출향작가를 비롯한 경북도내 16개 시군의 미술협회 각 지부 우수 작가 등 66명이 참여하여 조각, 회화, 서예 등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된다. 청소년수련관 갤러리는 기존의 집회실과 휴게실 등을 리모델링하여 1백여 점 이상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274㎡규모의 실내외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예천군 관계자는 “앞으로 청소년을 비롯한 지역 주민들에게 좀더 접근하기 쉬운 장소에서 좋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예술인들의 보다 왕성한 작품 활동 지원으로 수련관 산책로 주변 조각공원과 연계한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醴泉뉴스 2014년 01월 04일)

 

 

 

 

본 페이지의 관리부서는 홍보소통과전산정보팀(☎ 054-650-6073)입니다.

최종수정일2019.02.12

페이지만족도

페이지의 내용이나 사용성에 만족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