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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525) : 김팔원(2)-김필교-김필규-김필영(1)(附 *한국문인협회 예천지부, <예천문단> 제10집 펴내...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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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팔원 : 퇴계문인/ 김팔원(金八元, 芝山, 安東, 1524~1569) 본관(本貫) 강릉(江陵)(daum 2012)
김팔원 : 사원일람<祠院一覽> 辛鍾友 著/ 김팔원(金八元)/ #경상도(慶尙道) 안동(安東)/ *인계서원(仁溪書院)/ 제향. 김자수(호상촌 세자좌보덕 절의 본경주) 김팔원(호지산 현감 본강릉)./ 祭享. 金自粹(號桑村 世子左輔德 節義 本慶州) 金八元(號芝山 縣監 本江陵)(daum 2012)
김팔원 : 경상도지(慶尙道誌) 권지(卷之) 구(九)/ 사원일람(祠院一覽)/ 안동(安東) ● 인계서원(仁溪書院)/ 제향 김자수, 김팔원(daum 2012)
김팔원 : 김팔원(金八元) 본(本) 강릉(江陵)/ 퇴계선생서절요(退溪先生書節要)/ 李滉 著 ; 李象靖 編./ 木板本. - [發行地不明 : 發行處不明], 純祖年間(1800-1834)./ 零本2冊 ; 32.4x21.9cm./ 四周雙邊. 半匡 ; 19.6x16.3cm.有界.10行10字.註雙行.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跋 ; 鄭宗魯, 金/ 수장본 중 卷之 1-2, 7-8의 2책 이외 缺本임(全10卷5冊)./ 이황(李滉)의 방대한 서간 중에서 이상정(李象靖)이 중요한 서간만을 가려 뽑아서 엮은 책이다. 일찍이 주자의 방대한 서간 중에서 퇴계가 중요한 것만을 간추려 《주자서절요(朱子書節要)》라 하고 서문까지 썼었는데 이상정이 그 예를 본받아 이같이 편집한 것이다. 그러나 본서에는 이상정 자신의 서문·발문이 실려있지 않다. 이상정의 손자인 이병운(李秉運) 등이 5책으로 간행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연대는 미상이다. 권1)에는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를 비롯하여 심통원(沈通源), 이준경(李浚慶), 권철(權轍), 홍섬(洪暹), 민기(閔箕), 임호신(任虎臣), 송기수(宋麒壽), 박순(朴淳), 조식(曺植), 노수신(盧守愼), 이담(李湛) 등에게 보낸 21편. 권2)에는 임형수(林亨秀), 노경린(盧景麟), 이문건(李文楗), 유희춘(柳希春), 박승임(朴承任), 백인걸(白仁傑), 박운(朴雲), 이원(李源), 안상(安敺), 김경언(金慶言), 성혼(成渾), 최응용(崔應龍), 정지운(鄭之雲), 홍인우(洪仁祐), 김극일(金克一), 권대기(權大器), 이전인(李全仁), 이달(李達), 송언신(宋言愼), 김기보(金箕報), 김형언(金亨彦), 황수량(黃遂良), 이순(李淳) 등에게 보낸 30편. 권7에는 이숙량(李叔樑), 오천(烏川)의 김부필(金富弼), 신중돈(愼仲惇), 김부의(金富儀), 금응협(琴應夾), 김부륜(金富倫) 등에게 보낸 31편. 권8에는 우성전(禹性傳), 구봉령(具鳳齡), 김명원(金命元), 오건(吳楗), 정곤수(鄭崑壽), 김수일(金守一), 김성일(金誠一), 정탁(鄭琢), 김팔원(金八元), 백운서원제생(白雲書院諸生), 남치리(南致利), 유운룡(柳雲龍), 유성룡(柳成龍) 등에게 보낸 31편. 책 끝에 정종로(鄭宗魯)·김확(金擴)의 발문이 있다. 위의 書에는 시사(時事)에 관한 것도 있으나 그보다는 경전상(經傳上)의 문제를 논한 것이 대부분이며 그 중에서도 사단(四端)·칠정(七情), 이(理)·기(氣) 등 성리학에 관한 것이 가장 많으며 예(禮)에 관한 것도 상당수이다.(daum 2012)
김팔원 : 김명원(金命元)/ (具鳳齡), 김명원(金命元), 오건(吳楗), 정곤수(鄭崑壽), 김수일(金守一), 김성일(金誠一), 정탁(鄭琢), 김팔원(金八元), 백운서원 제생(白雲書院諸生), 남치리(南致利), 유운룡(柳雲龍), 유성룡(柳成龍) 등에게 보낸 31편.../ www.shinjongwoo.co.kr(daum 2012)
김팔원 : 순거(舜擧), 수경(秀卿) 3위 [생원진사시] 명종(明宗) 10년(1555) 을묘(乙卯) 식년시(式年試) 진사 1등(一等) 2위 [상세내용] 김팔원(金八元) {2}에 대하여 1524년(중종 19)∼1589년(선조 22).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 자는 순거(舜擧) 또는.../ people.aks.ac.kr(daum 2012)
김팔원 : 퇴계학맥 - 인물편 - 김팔원(金八元 ; 1524∼1589).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순거(舜擧) 또는 수경(秀卿). 호는 지산(芝山). 아버지는 삼척훈도(三陟訓導) 적(績)이며, 어머니는 영춘이씨(永春李氏)로 자운(自芸)의 딸이다.../ toegye.ne.kr(daum 2012)
김팔원 : 품 명 : 퇴계선생서절요(退溪先生書書節要) 琴應夾, 金富倫 등에게 보낸 31편. 卷8:禹性傅, 具鳳齡, 金命元, 吳楗, 許?, 鄭崑壽, 金守一, 金誠一, 鄭琢, 金八元, 白雲書院諸生, 南致利, 柳雲龍, 柳成龍 등에게 보낸 31편. 卷9:李德弘, 具贊祿, 琴蘭秀, 柳仲淹, 權好文.../ erhm.co.kr(daum 2012)
김팔원 : Untitled Document 이름지은 것이다. 정사에는 "석문정사"라는 현판과 시판(詩板) 및 송암(松巖) 권호문(權好文), 지산(芝山) 김팔원(金八元), 문봉(文峯) 정유일(鄭惟一) 선생 등의 시판과 밀암(密庵) 이재(李裁) 선생이 지은 "석문정사기문.../ hakbong.co.kr(daum 2012)
김팔원 : 陶山諸賢들의 서찰을 모은 [先賢墨帖] 제4,제5. 2책/ 金太友, 天山齋 李咸亨, 坤齋 李命弘, 良仲, 李應進, ?淸亭 金富儀, 柏巖 金?, 文峯 鄭惟一, 文峯 鄭惟一, 翠巖 琴義筍: 琴應石 二子, 鶴峰 金誠一, 操省堂 金澤龍, 病柏堂 朴蕓, 芝山 金八元, 三省齋 孫興禮, 松顔 具贊祿,/ www.kobay.co.kr(daum 2012)
김팔원 : 약봉 선생 교유 인물 목차/ 2011.07.22/ (明宗) 4년(1549) 문과에 갑과 급제 대구부사를 지내고 시정(寺正)을 지냈다. 0김팔원(金八元) 1524년(중종 19)∼1589년(선조 22).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순거(舜擧).../ cafe.daum.net/wondongpa/Cd0... 의성김 원동파(daum 2012)
김팔원 : 이굉이 건립한 정자 귀래정(歸來亭)/ 2011.05.24/ 옛 사람이 아니니 비로소 깨닫는다. 무애(無涯)가 유애(有涯)임을 -‘귀래정’ 김팔원(金八元)- 낙동강이 합수되는 경승지에 정자를 짓고 당호를 귀래정이라 한 것은 이.../ cafe.daum.net/dlfwhtk/5y85/... 안동껑꺼이(daum 2012)
김팔원 : 선산파 인물고/ 2010.07.01/ 涵鏡堂, 성종 때 內禁衛 禦侮將軍, 退溪 李滉, 松巖 權好文, 松溪 權應仁, 博士 金八元 등과 交友, 忠順衛 副尉 휘 貴亨의 三子( 안동 검암 ) 友 諒 字 信甫.../ cafe.daum.net/kangcci/7E6o/... 신천강씨대종회(daum 2012)
김팔원 [專門資料] : [간행물] (明宗朝)金八元/ 安鐘和(daum 2012)
김팔원 : 산문기행/ eBook/ 심경호 지음 | 이가서 | 2007.04.03/ 책본문 : ..壽ㆍ권호금權好..이었다. 종행한 사람은 이원..愿ㆍ박숙량朴淑良ㆍ김팔원金八元 및 자신의 아들 주박周博등 4인이었다. 그는 그날 구대.. 臺에서 열린 승문원 저작 박승간朴承侃과.../ (654페이지)(daum 2012)
김팔원 : 한국의 서원과 학맥 연구(소성학술연구총서 1)/ eBook/ 경기대학교 소성학술연구원 지음 | 국학자료원 | 2002.11.29/ 책본문 : 경상좌도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퇴계문도 약 60여명이 등재되고 있다. 특히 申元錄·金八元(1543)·趙穆(1544)·金明一 등은 퇴계가 풍기군수에 부임하자 그를 따라와서 백운동서원.../ (81 페이지)(daum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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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교(金弼敎) : 1764(영조 40)-?, 예천 출신, 자는 명오(明五), 본관은 의성, 성균 생원 돈(墩)의 아들, 필화(弼華)ㆍ필영(弼永)의 형이다. 부모 사후(永感下)에 유학(幼學)으로서 1810년(순조 10) 식년 생원시에 3등 66위로 합격하였다.(司馬榜目, 醴泉郡誌 1939)
김필교 [專門資料] : 김필교(金弼敎)/ 2009.04/ 출전 :CD-ROM ≪사마방목(司馬榜目)≫(韓國精神文化硏究院)/ 국가지식포털(daum 2010)
김필교(金弼敎):1764(영조 40, 갑신)~1844(헌종 10, 갑진). 본관 義城. 자는 명오(明五). 호는 신와(新窩). 墩의 子. 1810년(순조 10) 생원시 합격. 저서:新窩集. ▣참고:司馬榜目(daum 2010)
김필교 : 사마방목(司馬榜目)/ 김필교(金弼敎)/【시험년도】순조(純祖) 10 1810 식년(式年) 생원(生員)/【합격등위】3등 0066/【본인 자】명오(明五)/【본인생년】갑신(甲申) 1764/【본인본관】의성(義城)/【본인구존】영감하(永感下)/【본인전력】유학(幼學)/【부친성명】김돈(金墩)/【부친과거】성균생원(成均生員)/【안항(제)】김필화(金弼華) 김필영(金弼永)(daum 2010)
김필교 : 의성김씨(義城金氏)/ 司馬試及第者 世宗29(1447)~高宗31(1894)까지 生員 170인 進士93인/ 28세 김필교 명오 신와 영조갑신 순조10 1810 경오식년 생원 안동 구미 매은공파/ 28世 金弼敎 明五 新窩 英祖甲申 純祖10 1810 庚午式年 生員 安東 龜尾 梅隱公派(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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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규(大統領「手足」… 政府 안의 政府/ 靑瓦臺 秘書室) [記事] : ◎실장․특보․8수석․2보좌관 등 구성/ 국정 파악․보고… 부처 간 업무 조정도/ 최고 통치자에만 책임… 서울대 출신이 38명/ 그림자처럼 대통령 보좌// 청와대 비서실은 흔히 막강한 권부로 비쳐진다. 형식상 청와대 비서실은「대통령의 직무를 보좌하기 위한 기구」(정부조직법 11조 2항)이어서 비서실은 대통령의 국정 수행을 보좌하기 위한 비서들의 집합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권력이 대통령 한 사람에게 집중되다시피한 대통령 중심제 아래서의 청와대 비서실은「최고 통치자」의 최지근 거리에 위치하면서 대통령을 수시로 만나 밀착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의 집합체이고 따라서 권부로 비쳐질 만하다. 청와대 비서실은 또한 국정의 모든 부분을 파악,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내각을 비롯, 정부 부처의 업무를 조정하는 부수적 기능도 지니고 있어「정부안의 정부」로서의 역할을 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청와대 비서실은 오로지 대통령에게만 책임을 진다. 청와대 비서실이「익명의 실세」들이 모인 곳으로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6공의 청와대 비서실은 권력엘리트의 산실로서 평가를 받고 있다. [인적 구성․직급] : ○…청와대 비서실은 1실장 1특보 8수석비서관(정무․행정․경제․민정․사정․의전․공보․총무) 2보좌관(외교안보․정책조사)과 각 비서실의 비서관, 행정관들로 구성되어 있다. 비서실장 특보 수석비서관 보좌관은 정무직으로 장․차관급이다. 정해창 비서실장 최영철 정치특보 김종인 경제수석 이상연 민정수석 등은 장관급이며, 그 외 수석비서관 보좌관은 차관급이다. 의전․총무수석은 1급이다. 비서실장을 비롯, 수석비서관과 모든 비서관은 원칙적으로「대통령의 비서」들로 비서실의 계선 조직은 행정 편의에 의한 관행일 따름이다. 비서관에는 1급(관리관) 2급(이사관) 3급(부이사관) 등이 있다. 행정관은 4급(서기관) 5급(사무관)이다. 보통 비서관은 1명에서 많으면 10여 명 안팎의 행정관을 밑에 두고 있다. 대통령령으로 규정된 청와대 비서실의 직제상 인원은 50명이다. 그러나 비서관급인 운용 요원을 포함하면 사실상의 비서관 수는 현재 58명이다. 5공 때 비서관급이 48명이었음을 감안하면 지금의 청와대 비서실 규모는 외형상으로는 크게 늘어난 셈이다. 청와대 비서실의 행정관은 118명이다. 비서관과 행정관은 정부 각 부처로부터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발된 엘리트 관료들이다. 180여 명의 비서관 행정관 중 사법․외무․행정․기술고시 등 각종 고시출신이 56명인 것만 봐도 비서실 인력의 우수성이 뒷받침된다. 청와대 비서관․수석비서관 60명에 대한 출신지 분포는 경북 18․서울 14․경남 11․충남 8․충북 3․전남 2명뿐이고, 경기․강원․전북․평북이 각 1명씩으로 경북지역 출신이 30%선. 경남북을 합칠 경우 비서관 이상 구성원 중 반 정도가 영남지역 출신이다. 출신대학 별로는 서울대가 38명으로 압도적이다. 경제비서관실에 김필규(과학기술․2급․경북 예천․서울대)가 있다.(이종구 정치부차장 韓國日報 1991-04-01)
김필규 : 재경예천대창중.고등학교 동문회cafe/ 국민권익위 부위원장 - 이영근(예천) 내정/ 3년전, 2008년 3월 14일/ ...(朴仁濟) 국가청렴위 비상임위원, 이영근(李榮根) 국가청렴위 정책기획실장, 검사 출신인 김필규(金弼圭) 변호사가 기용됐다. 이영근(국민권익위 부위원장) 기획원 예산처에서 30년 가까이 일한.../ cafe.daum.net/seouldaechong(dau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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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영 [記事] : 우즈베키스탄 뉴스 웹문서/ 중앙아시아 한국학 선구자 김필영(金弼榮, 1953- , 醴泉 出身, 醴泉初, 醴泉中, 醴泉農高 卒業, 江南大 敎授)/ 한국학자 김필영(金弼榮)은 웬만해선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본거지는 물론 집이 있는 파리이지만 포도주 농장을 운영하는 소뮈르,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한국학자니까 당연히 한국(그것도 남한과 북한을 아울러서), 그밖에도 가까운 친척들이 살고 있는 미국, 한인 이주 100주년을 맞는 멕시코 등등을 연중 수도 없이 돌아다닌다. 그의 스승 조동일 박사의 말처럼 역마살이 끼어도 단단히 낀 모양이다. 씩씩하고 자신감 넘치는 표정과 당당한 체구, 그리고 이따금 발휘하는 의도된 듯한 장난기와 약간의 과장은 조용히 책 속에 파묻혀 사는 학자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이렇듯 홍길동처럼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도 그는 2004년 9월 무려 1천60여 쪽에 이르는 `소비에트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사'(강남대 출판부)를 냈다. 학문이란 정신성만이 아니라 끈기와 체력으로 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예다. 2005년 봄에는 포도주 생산ㆍ경영자답게 양조학에 관한 저서도 출간할 계획이다. 그는 카자흐스탄의 아파트촌 건설에도 관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도 어색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돈벌이에 대한 관심을 적극적으로 표명한다. "한국학을 보급하고 한국 전문가를 키우려면 반드시 돈이 필요합니다. 벌 수 있다면 당연히 벌어야죠." 그는 학자일 뿐 아니라 각지에 한국학자를 키우는 후견인이자 양성자이기도 하다. 당연히 자금이 필요하다. 10여년 전에 시작한 소뮈르(파리에서 서남방 300km 앙제 부근) 농장은 면적이 약 10ha로 적포도주와 샴페인성 포도주, 단맛이 나는 후식용 포도주 등 3종을 생산하는데 사업이 "제법 된다"고 했다. 그 전에는 파리 15구에 중형 호텔을 직접 지어 경영한 적도 있을 만큼 그는 사업가이기도 하다. 그런데 실은 그냥 사업가가 아니라 `좀더 포괄적 의미에서 행동가'임을 그의 행적은 보여주고 있다.
◇대학도 포기하고 외국으로 : 경북 예천에서 여덟 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김필영(51)은 고교 시절에 영어판 `자본론'을 몇 차례나 읽었을 정도로 영어도 잘 했고 의식도 (지나치게?) 깨어 있었다. 진보 서적을 탐독하던 그에게 반체제적 사고방식이 깃든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고, 그런 성향 때문에 대학입시에 합격해 놓고도 결국은 진학을 포기했다. 앞에 나서는 운동권은 아니지만 적어도 기질로는 반정부적이었다. 당시의 반체제 세력들과 친해진 데에도 그런 배경이 있었다. 그는 형님이 있는 미국으로 갔다가 1978년 프랑스로 건너와 파리대학과 동방어문대학에서 중국어를 공부했다. 할아버지가 동학혁명군의 일원이었고, 1920년대부터 아버지와 형님들이 외국체험을 했던 집안 내력으로 보아 그가 외국행을 택한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파리에서 만난 이옥(李玉. 1928-2001) 교수의 충고가 한국학을 그의 평생의 업으로 만들었다. 파리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며 한국사 책을 내기도 했던 이옥 교수의 권유에 따라 김필영은 파리 제7대학에서 한국학 석ㆍ박사 과정을 마친 뒤 동방어문대학에서 '정지용의 시적 미학'이라는 논문으로 프랑스내 최초의 한국학 박사가 됐다. 이후 1992년 파리에서 국제비교한국학회를 설립했고, 2000년에는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서 중앙아시아한국학회를 설립, 초대 회장을 역임하는 등 중앙아시아 한국학의 초석을 다졌다. 그는 1980년대 말부터 유럽의 한국학자들과 만나면서 중앙아시아 한국학에 관심을 갖게 됐다. 1991년부터 중앙아시아를 드나들기 시작해 93년 우즈베키스탄 국립 타슈켄트 동방학대학교에 한국학대학을 설립했고, 94년에는 국립 카작(카자흐스탄)대학에 한국학과를 신설했다. 카작대학교 한국학과의 학과장 겸 한국어문학 교수로 임명된 1994년 9월부터 한국학과 첫 졸업생이 배출되던 99년 6월까지 줄곧 카자흐스탄에 있었다. 이후 파리 동방어문대학 한국학과 교수(한국문학)로 발탁돼 파리로 돌아왔지만 2004년 9월에 그만두었다. 다시금 카작대학의 교수가 돼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연구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손꼽아보면 모두 15년이란 세월을 중앙아시아에서 살았거나 오가며 보냈다.
◇크즐오르다 : 1937년 스탈린 정권의 소수민족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저 멀리 원동(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살다 쫓겨 온 고려인들이 처음 정착한 곳이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지역이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 이중 카자흐스탄의 첫 수도였던 크즐오르다(이후 카자흐스탄의 수도는 알마티를 거쳐 97년 말부터는 아스타나로 옮겨졌다)는 유달리 우리 민족과 인연이 깊은 곳이다. 크즐오르다는 한 마디로 고려인들의 문화ㆍ교육 중심지였다. 고려인들이 힘을 모아 원동고려사범대학을 옮겨다 문을 열고, 고려극장을 지은 곳이 바로 크즐오르다였다. 한반도 이외의 지역에서 최초, 유일의 한글신문이었던 `레닌기치'가 1938년 5월 재창간된 것도 그곳에서였다(이 신문은 당초 1923년 `선봉'이란 이름으로 창간됐고 그 후신격인 `레닌기치'가 1938년에 창간됐다가 1990년 폐간됐으며, 1991년에는 그 후신인 '고려일보'가 탄생해 현재까지 간행되고 있다). 원동고려사범대는 1938년 9월 러시아어 학교인 크즐오르다 사범대학으로 개편돼 조선어로 교육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가 소비에트 체체 붕괴 이후인 1991년 한국어과가 생겨났다. 그러나 알마티(알마아타)에서 1천200여km나 떨어진 그곳에 교수로 가려는 사람이 없어 자칫 폐과될 위기에 처했다. 그래서 나선 것이 또다시 김필영. 경기대학교의 지원을 받아 99년부터 2001년까지 그곳에서 교수로 일했다. 1999년 카자흐스탄대학 출판부에서 간행된 그의 `현대 한국어문법'(러시아어판)은 지금도 계속해서 구 소련권 전체에서 한국어 문법교과서로 쓰이고 있다. 해마다 경기문화재단에서 구입, 배포해주는 데 대해 그는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고송무와의 만남 : 그토록 오랫동안 중앙아시아에서 뒹굴었다면 고송무(高松茂.1947-1993)를 모를 리 없겠다 싶었다. 고송무는 그 분야의 개척자였다. 중앙아시아에 가면 현지어를 너무 잘해 택시운전사가 요금을 사양할 만큼 중앙아시아와 고려인을 사랑한 천재학자였지만 알마티에서 느닷없는 교통사고를 당해 믿을 수 없을 만큼 허망하게 생을 마감한 아까운 인물이다. 충남 금산 출신인 그는 서울 중앙고를 졸업한 뒤 국내 대학엘 가지 않고 터키 참전용사와의 인연으로 터키를 거쳐 헝가리에 갔다가(물론 미수교 시절에) 핀란드에 정착했다. 헬싱키대학에서 우랄어를 전공했으며 중앙아시아 한인들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인 연구 분야에서는 선배가 없는, 글자 그대로 선구자였다. "고송무 박사요?" 순간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김필영이 그를 만난 것은 1990년 바르샤바에서 열린 유럽한국학회에서였다. "중앙아시아에서 한국학, 같이 한번 해봅시다. 몸이 가벼운 내가 갈 테니(고송무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김형은 돈을 대!" 그렇게 해서 1992년 알마티에서 구소련지역 최초의 한국학 학술토론회가 열렸다. 한국학자 80여 명이 참석한 대규모 학술회의였다. 1992년 파리에서 국제비교한국학회를 창설한 것도 그와 함께 였다. 학문에 대한 열정이나 기획자 마인드 등 여러모로 죽이 맞았던 두 사람은 이렇게 두고두고 같은 길을 가자고 했다. 그런 터에 고송무의 객사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어떡합니까? 내가 가는 수밖에요. 파리의 가족에게는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 한국학과를 설치하고 1년 뒤에 돌아오겠다고 했는데 결국 6년이나 있다가 돌아왔어요. 그리곤 또다시 크즐오르다까지 가있다 왔으니...물론 이혼 당할 뻔했지요." 스물 다섯에 만나 서른에 결혼한 동갑내기 아내 조엘 여사와 두 아들은 어쩔 도리 없이 가장의 장기 부재를 받아들였다. "고 박사가 그렇게 가지 않았더라면 분명 나는 다른 일을 했을 겁니다. 지금도 매년 한 차례 금산에 있는 그의 묘를 찾습니다. 고 박사의 부친께서도, 의사이신데, 대단한 지식인이시죠. 사람 목숨, 참 터무니없어요." 말이 난 김에 그는 프랑스인 한국학자 몇 사람의 근황도 전했다. 한국민속학자인 알렉상드르 기모즈 박사(화가 방혜자 여사의 부군)는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이고, 고 이옥 교수에게서 한국어를 배운 첫 프랑스인 제자로 한국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기도 했던 앙드레 파브르(72) 씨는 고향인 남프랑스 페르피냥에서 암과 투병 중이다. 또 서울 가톨릭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다 한국학을 하게 된 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 한국학연구부장 다니엘 부셰(76. 김준엽 고려대 전 총장의 동서) 씨는 몇 해 전 조동일 교수와 공저로 '한국문학사'를 출판하기도 했다. 부셰 씨는 가랑시에르에 18세기 고옥(古屋)을 사들여 별장으로 개조하면서 한국 나무들을 심어놨다고 했다. 모두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탓에 한국, 한국인과 애환을 함께 했던 이들이다.
◇카자흐스탄을 주목하세요 : 그는 카자흐스탄 대학에서 가르치는 한편, 2005년 초로 예정된 국내 모 대학의 카자흐스탄학과 개설을 위해 한국으로 갈 예정이다. "(학과 개설이) 거의 확정적입니다. 사실 늦은 감이 있어요. 카자흐스탄에 대해 막연히 중앙아시아 국가, 고려인이 비교적 많이 사는 나라 정도로만 알고들 있지만 그 성장 잠재력, 특히 우리와의 관계를 보면 반드시 주목해야 할 나라입니다." 카자흐스탄은 면적이 272㎢로 한반도의 12배에 이르고 원유 추정 매장량이 966억 배럴로 세계 7위, 아연.스텐 매장량은 세계 1위일 정도로 자원부국이며 최근에는 연평균 10%대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게다가 고려인들에 대한 평가가 좋고, 고려인들이 장관급 요직을 여럿 차지하고 있다. 고려일보는 물론 한국말로만 공연하는 70년 전통의 고려극장도 버티고 있다. "경제전문가는 아니지만, 거의 전분야에서 진출할 가치가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안오면 안오는 기업만 손해에요." 그는 국내 대학 학과 개설 말고도 계속 바쁘다. 당장 1월 말에는 파리한인사회연구소장 자격으로 멕시코 국립대학과 함께 `멕시코의 한국사회와 한국학' 세미나를 개최한다. 멕시코 한인이주 10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열리는 이번 행사는 이 지역에서는 드물게 열리는 한국학 관련 모임으로 한국과 중남미의 전문가들이 참석한다. 이어 6월에는 키르기스스탄에서 중앙아시아 한국학회도 치러야 한다. 짬짬이 한국의 친구들을 찾아 술도 마셔야 하고.
◇한국학에 투자해야 한국이 강해집니다 : "왜 한국학을 합니까?" "문화비교론을 공부하다보니 한국이 세계문화권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알겠더군요. 그 위상을 높이려면 내 자신 전문가가 돼야겠고 다른 전문가들도 많이 배출해야 한다는 걸 절실하게 깨달았어요. 그런 것들이 지금 내가 하는 여러 가지 일의 바탕 생각이 된 거죠. 외국어도 잘해야 해요. 한국학한다고 한국 것만 알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세계문화를 어느 정도 알려면 적어도 6개 국어(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중국어 러시아어 아랍어)는 해야 해요. 저는 9개 국어를 합니다. 우리 국학자들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학문의 내용보다는 외국어 실력 부족 탓입니다. 제 은사이신 조동일 박사님께서 여러 언어를 하시는데, 아마도 국학 분야에서는 거의 유일한 경우가 아니신가 합니다." (조 박사에 대해 그는 "뒤만 따라다녀도 논문이 줄줄 흐른다"는 말로 존경을 표했다. 발상이 신선해서 결코 같은 이야기 두 번 하는 법이 없고 철저한 자기관리에 대해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며 거듭거듭 존경을 표시했다) "의학ㆍ공학ㆍ자연과학을 제외한, 한국과 한국인에 관한 모든 학문이 한국학입니다. 한국학술진흥재단이나 한국국제교류재단의 한국학 지원 수준은 훌륭한 편이라고 봅니다. 문학분야에서 대산문화재단의 후원도 요긴하게 활용되고 있구요. 무조건 키워야 합니다. 한국을 아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한국의 국력도 커지니까요." 이제, 중앙아시아 대초원을 달리는 유목민 대장같은 그의 당당함 속에 깃든 일말의 시심(詩心)을 들춰보는 것으로 인터뷰를 끝내자(실제로 그는 고향인 예천 지고개(酒峴)를 소재로 한 시 `지고개 전설' 등 세 편으로 2003년 재외동포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이기도 하다). 아마도 러시아가 소비에트 체제 붕괴 이후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던 시기에 썼음직한, 혹은 그런 시기를 떠올리면서 썼음직한 `겨울 바이칼 호수'가 그의 이렇듯 또다른 내면을 훔쳐보기에 적절하겠다.// 애써/애비가 뚫어 놓은/얼음 구멍 속에는/물풀 사이로/물고기를 나열한/한 폭의 수채화 같은/바이칼 호수가/걸려 있다//소년은/ 예전부터 내려오는/부리야트 민족의/전설을 꿰어/물풀을 헤치고/언 손을 비비며/낚싯줄을/내린다//뭍으로/끌려 나온/바이칼 호수는/영하 45도의 하중에/역사의 무게를/이기지 못하고/출렁이는 물고기로/얼어 버린다//소년이 둘러 멘/자루 속에는/망해 버린/소련의 현실에/아랑곳없이/장작 같은 오물들이/속절없이/퍼덕인다//앞날이 걱정스러운/애비의 한숨에/소년이 남기고 가는/발자국 위로/우울하게/떨어지는/빛 바랜/소련의 비늘들/ (시에 나오는 `오물'은 바이칼 호수에서 잡히는 물고기다. 보드카를 마시면서 안주 삼아 먹으면 맛이 기가 막힌.--기자 주)(dau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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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예천지부, <예천문단> 제10집 펴내...축하합니다.
예천문단 제10집(醴泉文壇 第10集) [冊] : 예천읍 노상리 출신 김지웅이 편집한 책으로, 396쪽, 사진, 도표, 23cm, 한국문인협회 예천지부(지부장 권오휘)가 2013년 12월에 발행하였다. 안동 도서출판에서 인쇄하였다. 목차는, 발간사 : 한국문인협회 예천지부장 권오휘) =2/ 격려사(사)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정종명) =4/ (예천문화원장 정희융) =6/ (예천교육지원청교육장 임상원) =8/ 초대글 가둔말(권숙월) =16/ 가을날(조영일) =17/ 길(황봉학) =18/ 특집 I 예천문단 발간 10주년을 축하하며-아름다운 사람의 좋은 글/ 생률(권규미) =22/ 고드름(김동억) =23/ 겨울 고운사(김경숙) =24/ 회룡포에서(김명자) =25/ 민들레(김희선) =27/ 나라꽃(나동훈) =29/ 먹을 갈다보면(민병도) =31/ 낙동강 둘레길(박상희) =33/ 건망증(박성애) 36/ 꽃나무 흔들리 듯(박영교) =38/ 오월 하늘(박성우) =40/ 감꽃 냄새(장진명) =42/ 어떤 날은(장효식) =44/ 달맞이꽃(전종대) =46/ 에밀레종 앞에서(정구찬) =48/ 아내와 홍시(김덕우) =50/ 예천과의 인연(김약수) 54/ 뒷집 산할매(이희경) =59/ 금대봉 꽃밭(장두강) =61/ 회원작 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강수정) =68/ 아버지를 그리며(권경섭) =73/ 갈대 외 4편(권오휘) =77/ 본다는 것 외 1편(김기홍) =86/ 서한송백 외 1편(김덕수) =90/ 살며시 감으면 외 2편(김민주) =93/ 고향의 향기 외 4편(김보영) =97/ 그대로의 침묵(김소현) =106/ 팔공산 1 외 3편(김운태) =107/ 그는 외 4편(김유진) =113)/ 마음 빗질 외 1편(김지웅) =120/ 비 내리는 날엔(김정숙) =122/ 엄마 냄새 외 2편(성순화) =124/ 붉은 장미 외 4편(신국초) =130/ 풍자넋두리(담배)(신동균) =136/ 하늘과 맞닿은 아름다운 길 하늘재를 다녀오다(박은명)=138/ 요선암에 서서 외 2편(윤혁) =142/ 느낌으로 일기 쓰기 외 2편(이근숙) =145/ 나는 우구일까요(이도영) =150/ 신호등 외 2편(이은주) =151/ 배꽃(이회숙) =155/ 거미의 3대 진법 외 4편(임무하) =156/ 툇마루 외 1편(임정두) =164/ 눈 내리는 대지 외 4편(임한수) =167/ 두루뭉실 예천보물여행(정희융) =174/ 우리 집 나리 외 1편(조춘식) =177/ 들꽃 외 4편(최명순) =181/ 꽃 눈 내린 길 걸으며 외 3편(추청화) =186/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외 2편(황영희) =191/ 회원작 시조/ 간이역 외 4편(유한나) =196/ 사자산 법흥사(윤혁) =201/ 특집 II 사진으로 보는 예천지부 발자취 =202/ 회원작 수필/ 미미 인형(강수정) =210/ 초간길 걷기 문학기행(권경섭) =213/ 인문학이란 나무를 심자 외 1편(김기홍) =221/ 유혹 이제 외 2편(김예희) =225/ 석송령(이근숙) =242/ 출산 고민의 정해(임무하) =246/ 세 할머니 이야기(조윤) =250/ 웃음 가득 찬 교육현장을 기대하며...(조춘식) =262/ 하늘로부터 내려온 마음(최해원) =266/ 산세베리아 꽃봉우리(추청화) =268/ 회원작 기행문/ 강원도 영월(김민주) =272/ 후쿠오카를 가다(김정은) =280/ 이스탄불-경주세계문화엑스포 2013(정희융) 292/ 졸업여행(황길영) =308/ 회원작 시나리오/ 학남이 학남에게(조윤미) =316/ 회원작 가사/ 여자소희가리(박준희) =334/ 논단/ 충효의 얼리 뿌리 내린 예천(박근노) =344/ 2013년 제10회 서하(西河)백일장 입선작/ 나- 초등운문 장원(박예은) =354/ 나- 중등운문 장원(이지수) =355/ 나무- 고등운문 장원(조채연) =356/ 나- 일반운문 장원(정준규) =358/ 나- 초등산문 장원(신지현) =360/ 사진- 중등산문 장원(이수현) =362/ 나- 고등산문 장원(김현정) =365/ 밥상- 일반산문 장원(김향숙) =368/ 나무- 대상(김성희) =373/ 심사평/ 편집후기/ 정관/ 발자취/ 회원명단
한국문인협회 예천지부(韓國文人協會 醴泉支部 `醴泉文壇 第10集 發刊') [記事] : 한국문인협회 예천지부(지부장 권오휘)는 최근 작품집 ‘예천문단’ 제10집을 펴냈다. 이번 호에는 예천문단 발간 10주년을 축하 하는 글과 사진으로 보는 예천지부 발자취를 특집으로 다뤘다. 회원들의 시와 시조, 수필, 박근노 씨의 논단 `충효의 얼이 뿌리내린 예천', 조윤미 씨의 시나리오 `학남이 학남에게'도 실었다. 또 김민주·김정은·정희융·황길영 씨의 기행문과 2013년 제10회 서하 백일장 입선작품도 담았다. 권오휘 지부장은 “지난해는 회원님들의 끈끈한 정을 바탕으로 참 많은 활동을 했다. 우리들이 쌓아가는 돌탑에 또 하나의 정성을 올렸다”며 “새해에도 문운이 활짝 열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醴泉新聞 2014년 01월 15일 (수) 17: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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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