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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526) : 김필영(2)-김필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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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영 [記事] : 문학소식 웹문서/ 양현주 (작성일 : 2004-09-01 10:58:54, 조회 : 1241)/ 홈페이지 //member.kll.co.kr/kosmos / 제목 '소비에트 고려인 문학사' 낸 김필영(金弼榮, 1953- , 예천 출신, 醴泉初, 醴泉中, 醴泉農高 卒業, 江南大 敎授) 교수/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의 문학작품은 현대의 비평 잣대로 볼 때 수준이 낮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에서 민족의 말과 문화를 지키려 노력한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프랑스 파리의 국립동방어문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치는 김필영(50) 교수가 펴낸 '소비에트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사'(강남대출판부刊)는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한 이후 고려인들이 일궈낸 문학작품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분석한 역작이다. 책의 분량이 무려 1천60쪽에 이른다. "자료를 모아 정리하는 데 꼬박 14년이 걸렸습니다.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사는 중국의 조선족 문학사와 함께 한민족 문학사를 총체적으로 정리하는 데 필요한 지역 문학사입니다"김 교수는 1978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대학과 국립동방어문대학에서 중국어를 공부했다. 파리대학 이옥(1928-2001) 교수의 권유로 이 대학에서 한국학 석․박사과 정을 수료한 그는 국립동방어문대학에서 '정지용의 시적 미학'이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0년대 말부터 유럽지역의 한국학 학자들과 만나면서 중앙아시아 지역의 한국학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1991년 중앙아시아로 건너가 이듬해 우즈베키스탄 국립 타슈켄트 동방학대학교에 한국학대학을 설립했고, 1994년에는 국립카자흐스탄대학에 한국학과를 신설하기도 했죠" 그는 1992년 파리에서 국제비교한국학회를 설립했고, 2000년에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서 중앙아시아한국학회를 설립해 초대 회장을 역임하는 등 중앙아시아의 한국학을 개척한 인물이다. 1990년대 초 중앙아시아로 건너가 수집한 각종 문학 관련 자료를 정리한 것이 이번에 대산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출간한 '소비에트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사'이다. 이 책은 연해주의 한인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한 1937년부터 옛 소련이 붕괴된 1991년까지 고려인 문학을 형성기, 발전기, 성숙기, 쇠퇴기로 나누어 시기별로 정리했다. 형성기는 1937년부터 스탈린이 사망한 1953년까지로 잡았다. 고려인들이 1938년 카자흐스탄의 중심 도시인 크즐오르다에서 창간한 신문 '레닌기치'가 이 시기 고려 인 문학의 구심점이 됐다. '레닌기치'의 문예란에 실린 각종 시와 산문, 고려극장에서 공연된 연극의 대본 등이 책에 빠짐없이 소개돼 있다. 발전기는 '레닌기치'가 카자흐스탄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기관지로 승격된 1954년부터 1969년까지. '조선시집'이라는 첫 작품집이 단행본으로 출간됐고, 20여년 간 수용소 생활을 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시인 강태수(1908-2001)가 활약했던 시기이다. 의병들이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을 터는 이야기를 그린 고려인 최초의 장편소설로 김준의 '십오만원 사건'이 1962년 출간됐다. 성숙기는 카자흐스탄 작가동맹 산하에 고려인작가 분과가 정식으로 설치된 1970년부터 1984년까지로 잡았다. 이 시기에는 작가의 경력 등이 소개돼 있는 '시월의 햇빛'을 비롯해 '씨르다리야의 곡조' '그대와 말하노라' '해바라기' '행복의 노래' 등 작품집과 개인시집 등 다섯 권이 출간됐다. 쇠퇴기는 고르바초프가 집권한 뒤 개혁․개방정책을 펴던 시기다. 이 시기에 처음으로 민족과 강제이주에 관한 글이 나오기 시작하는 등 작품활동이 자유로워졌다. 그러나 강제이주 1-1.5세대들이 문단에서 차츰 떠나고 후세대 문인들을 배출하지 못한 상황에서 고려인 문학은 차츰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중앙아시아 고려인은 1937년 강제 이주 당한 세대와 그들의 후손, 옛 소련에 유 학하거나 외교관 등으로 나왔다가 정착한 사람, 2차대전 때 사할린에 징용자로 끌려갔다가 1970년대 초 이주해온 사람 등 크게 세 부류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들이 고려인 독자를 위해 고려 말로 창작한 작품이 고려인 문학입니다. 카자흐스탄 출신이지만 러시아어로 작품활동을 하는 아나톨리 김 등은 고려인 문학사에 넣지 않았습니다. 90년대 이후 '고려일보'를 통해 발표되는 고려인 문학은 우리말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북한 망명자들이 중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고려인 문학의 지리적 범위는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시아 5개 지역을 포함한다. 이 가운데 고려인 문화의 중심지였던 크즐오르다가 있는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문학사를 중심으로 이 책은 서술됐다. "고려인 문학은 순경음 'ᄫ' 등 우리 중세언어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언어학의 보고입니다. 마치 수십년 간 냉동고에 보관돼 있다가 불쑥 튀어나온 것처럼 함경도의 옛 방언과 20세기 초 언어가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고려인 문학은 개화기의 신체시나 신소설 등 한국문학사의 발전과정을 거치지 않았고, 한국문학과 단절된 기간에 러시아 문학과 접촉한 특성이 남아있는 독특한 작품세계를 보입니다. 한국문학사에서 특이한 공간을 차지하는 그들의 작품세계를 꼼꼼히 분석하는 후속연구가 나오길 기대합니다. 이 책이 그런 연구의 밑거름이 됐으면 합니다" 박사논문 지도교수였던 국문학자 조동일 전 서울대 교수의 권유로 이 책을 집필했던 김 교수는 2004년 7월말 귀국해 1개월여 동안 교정 등 출간작업에 매달려왔다고 말했다. 2004년 9월 3일 프랑스로 돌아가는 그는 모 대학에서 추진하고 있는 카자흐스탄 학과가 개설되면 한국으로 돌아올 계획이다.(정천기 記者 聯合뉴스)(daum 2009)
김필영 : 한국학자 김필영/ 한국학자 김필영 유목민 장군의 기상과 그 속에 숨은 시인기질 (파리=연합뉴스) 이종호 기자 = 한국학자 김필영(金弼榮)은 웬만해선 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본거지는 물론 집이 있는 파리이지만 포도주 농장을 운영하는 소뮈르,.../ //www.sky114.net(daum 2010)
김필영 : [사람속으로] “중앙亞 한국학 전파에 인생 걸었죠”-김필영 교수님 -/ 2011.10.18 | Daum 블로그/ 한국학자 김필영 씨(52)를 빼고선 중앙아시아의 한국학을 논할 수 없다. 지난 15년 동안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에 한국학을... 하다. 새 봄에 그는 한국에 온다. 오는 3월부터 강남대에 대우교수로 부임해 .../ blog.daum.net/mygreentree/ ♧초 록 세 상♧(daum 2013)
김필영 : 소비에트 고려인 문학사 펴낸 김필영 교수/ 2004.09.01 | 연합뉴스/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사를 펴낸 프랑스 파리의 국립동방어문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치는 김필영(50) 교수.//문화부 기사참조/ 2004.9.1 (서울=연합.../ newslink.media.daum.net(daum 2013)
김필영 : 김필영 교수/ 2008.05.31 | Daum 카페/ 김필영 박사, 이용복 선생과 이민영선생. 그리고 대학원생. 그리고 맨 좌측은 김 박사의 지우 000장님/ cafe.daum.net/lovesisarang/_album/ 시사랑 사람들(daum 2013)
김필영 : 카자흐스탄학과 개설 김필영 교수/ 2006.04.19 | 연합뉴스/ 올해 봄학기 용인 소재 강남대학교에 카자흐스탄학과를 개설한 김필영(52) 국제학부 교수.//문화/ -문화부 기사 참조- 2006.4.19(서울=연합뉴스) jsle/ newslink.media.daum.net(daum 2013)
김필영 : [월남화하는 한국] 대학교수 등 北사이트(우리민족끼리) 가입명단.../ 2013.04.14 | 네이버 블로그/ 모스크바 한인회 서울지회장 강남대 김필영 교수 통진당원 남창우 2002년 귀순한.../ blog.naver.com/ wp825님의 블로그(daum 2013)
김필영 : (좋은시-97)백석의 흰바람 벽이 있어-불역 김필영/ 2006.09.28 | Daum 카페/ 고민도 하고 수십 번을 고쳤습니다. 출판 전까지 아직 몇 차례 더 수정을 해야 합니다. 파리에서 김필영 김필영 교수(1953~ ) (파리동방외문어대학 교수. 한국학박사/강남대 겸임 교수) Il y a une cloison blanche(흰 바람벽이.../ cafe.daum.net/lovesisarang/ 시사랑 사람들(daum 2013)
김필영 : 우즈베키스탄 여행/ 2011.09.01 | Daum 블로그/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부하라, 사마르칸트 3곳에 실크로드 여행을 했다. 음식문화학교 학생들이 주축이 되고 김필영교수님이 전체적인 스케쥴 관리와 통역을 담당해 주셨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중앙아시아의 문화와.../ blog.daum.net/plusad/ THINKPIA(daum 2013)
김필영 : 새콤 개운달착 지근한 홍어탕의 맛/ 2009.11.27 | 한겨레21/ 이러한 다양한 표현이 외국어에도 있는가 궁금해 수개 국어에 능통한 강남대 김필영 교수에게 물으니, 영어의 경우 'sweet'(달다), 'bitter'(쓰다), 'so.../ h21.hani.co.kr(daum 2013)
김필영 : ‘주막’의 근대성/ 2013.01.14 | Daum 블로그/ 육회는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육회 400g 2만원, 육회비빔밥 1만원). 지난 10월 14일 예천이 고향인 강남대 김필영 교수와 그 아들과 같이 ‘예천아리랑’ 복원 공연을 보러 갔다가 육회 한 접시, 비빔밥 세 그릇으로 소주를 세.../ blog.daum.net/fourseason0/ =포시즌=(daum 2013)
김필영 : 카자흐스탄 고려인 시인 강태수의 시세계/이승하/ 2011.11.19 | Daum 블로그/ 있지 않다. 2000년부터 세 군데 책자에 그의 작품에 대한 소개가 이루어졌다. 프랑스 국립동방어문대학교 김필영 교수는 소비에트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사(2004)에서 강태수의 시를 소개하고 시세계를 소략하게 정리하였다.../ blog.daum.net/kazns/ 남산 위에 저 소나무(daum 2013)
김필영 : Arirang TV | Heart to Heart/ 2009.03.13 | 웹문서/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 아시아에 한국학을 전파한 한국 학자이며 한국에서 ‘소비에트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사’를 출판하고 오는 3월부터 강남대에 대우 교수로 부임해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을 강의하는 김필영 교수를.../ www.arirang.co.kr(daum 2013)
김필영 : 흰 바람벽이 있어 / 백석 (불어 역/ 김필영)/ 2011.12.12 | Daum 카페/ 전까지 아직 몇 차례 더 수정을 해야 합니다. 파리에서 김필영 출처 <시사랑사람들 문학, 2006.09.10> 시인의 자서 기고 ....... 김필영 문학박사, 파리대학 동방어문학과 교수 우즈벡 대학원 학국학 교수, 현 강남대 겸임교수/ cafe.daum.net/lovesisarang/jvI/ 시사랑 사람들(daum 2013)
김필영 : 계봉우의 자전적 기록 <꿈속의 꿈>/ 2010.01.02 | 네이버 블로그/ 정확히 전모를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던 차에 2009년 카자흐스탄에서 계봉우의 행적을 추적, 연구해 왔던 김필영 교수가 계봉우의 육필에 약간의 주석을 붙여 <꿈속의 꿈>(강남대학교 출판부)을 펴냈다. 계봉우는 1880년.../ blog.naver.com/hakmin8/ 김학민이 꿈꾸는 세상(daum 2013)
김필영 : 카자흐스탄에서의 대학생활/ 2009.11.04 | 굿모닝 용인/ 카자흐스탄의 나자르바예프 대통령도 참석한 이 행사에 우리 강남대학교의 총장님과 우리 전공의 지도교수님인 김필영 교수님도 초대를 받으셨다. 공식 행사가 끝나고 며칠 후, 학생들만의 행사도 열렸는데, 우리나라의 학교.../ www.yongin21.co.kr(daum 2013)
김필영 : September 2008 | 산은소식 | 2008.12.25 | 웹문서/ 언어의 비밀번호를 풀다 강남대 카자흐스탄학과 김필영 교수는 언어의 달인이다. 우리나라말을 비롯하여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아랍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카자흐.../ www.kdb.co.kr(daum 2013)
김필영 : 아리랑과 주막/진행자 윤중강 글/ 2010.08.10 | 네이버 블로그/ 지난 2009년 10월14일 예천이 고향인 강남대 김필영 교수와 그 아들과 같이 ‘예천아리랑’ 복원 공연을 보러 갔다가 육회 한 접시, 비빔밥 세 그릇으로 소주를 세.../ blog.naver.com/fm991/ 국악방송 블로그(daum 2013)
김필영 : 윤동주 문학제 개최/ 웹문서/ 동북아 문학과 한민족 위상 텐알라 교수(우즈베키스탄국립대) 윤동주, 조명희, 강태수 민족시인간 비교문학 김필영 교수(크즐오르다대학교) 2부 시낭송, 뒷풀이(윤동주문학관-인사동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1부 윤동주 국제.../ minmun.org(daum 2013)
김필영 : 과학의 원수/ 2011.05.27 | Daum 블로그/ 있는데, 독립기념관으로 옮겨가기 직전, 카자흐스탄 알마타시의 카작대학교에서 석좌교수로 강의하고 있는 김필영 교수로부터 먼저 이 자료를 입수하여 책으로 발간하게 되었다. 지면을 빌어 김 교수에게 감사드린다. 1999년.../ blog.daum.net/nyscan/ 계속이 힘이다.(daum 2013)
김필영 : “기사 쓰면서 한국어 실력도 쑥, 쑥”/ 2009.07.15 | 굿모닝 용인/ 본지 시민기자로 활동 중인 외국인 유학생 4명이 강남대 김필영 교수(국제학부)와 함께 지난 9일 강남대 앞 음식점에서 간담회를 가졌다. ‘세계속의 용인’이라는 코너를 통해 용인에서의 삶과 세계 각국의.../ www.yongin21.co.kr(daum 2013)
김필영 : 겨울 바이칼 호수--김필영/ 2008.05.31 | Daum 카페/ 한국문학교수/강남대 초빙교수 --국립동방어문대학교는 루이 14세 때 설립된 교육기관으로 현재 91개의 외국어 교육과 외국학 연구를 하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전문 고등교육기관이다. 시의 후기 (글.김필영.../ cafe.daum.net/lovesisarang/ 시사랑 사람들(daum 2013)
김필영 : 시문학 창간 40주년 기념행사를 마치고/ 김필영/ 2011.12.06 | Daum 카페/ 시문학 창간 40주년 기념행사를 마치고 김필영 (시인, 한국시문학문인회 사무국장) 잘 아시다시피 불혹(不惑)이란 어떠한 경우에도 미혹되거나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孔子의 "40세가 되어서는 미혹되지 않았다(四十而不惑.../ cafe.daum.net(daum 2013)
김필영 : 한국시문학문인회 시사뉴스/ 2009.06.11 | 웹문서 원동력 을 탐구하는 세미나가 각 섹션별로 열렸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한국에서 이천수 대진대학총장, 김필영 강남대교수, 반병율 한국대 교수가 참석하였고 알마티에서 김정복 외대 한국어과 교수가 발제자로 나섰다. 특히.../ www.dabai.com(daum 2013)
김필영 : 자랑 1684 : 김필영 敎授(祝 안택수.이동면/예천방문 210)/ 작성 장병창/ 웹문서/ 겸 한국어문학 교수(1994-1999)로 일하면서 중앙아시아 한국학 발전을... 교수이다. 2003년 제5회 재외동포문학상 시부문 가작에 입상하였다. 입상 작품은 지고개의 전설 외 2편이다.(醴泉新聞 2003.8.14) 김필영.../ ycg.kr(daum 2013)
김필영 : 한국학의 ‘거성’ 계봉우 선생 족적을 찾아/ ::: 기호일보 :::/ 시문을 남겼다고 말했다. 이어진 주제발표에서는 반병률 한국외대 교수의 러시아혁명과 계봉우의 민족운동, 김필영 강남대 교수의 소비에트 중앙아시아 고려인 문학과 계봉우가 차례로 발표됐다. 여기서 반 교수는 선생의.../ www.kihoilbo.co.kr(daum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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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원(金必源) : 1722(경종 2)-1770(영조 46), 감천면 현내리 출신, 자는 유당(幼堂), 호는 삼구당(三瞿堂), 본관은 풍산, 입향조 서정(瑞庭)의 맏아들, 석원(錫源)ㆍ시원(始源)의 형이다. 편모 슬하(慈侍下)에서 유학(幼學)으로서 1756년(영조 32) 식년 생원시에 3등 87위로 합격, 1758년(영조 34) 6월 2일 생원으로서 함민정에서 임금이 실시한 관학 유생(館學儒生)의 제술(製述) 시험에서 수석으로 급제하였고, 1759년(영조 35)에 식년 문과에 병과(丙科) 35위로 급제하여 한림을 거쳐 1764년(영조 40) 4월 2일 승정원 주서(注書)로서 사간원의 탄핵을 받았으나 윤허되지 않았다. 그 후 도사(都事), 병조 정랑(兵曹正郞), 사헌부 지평(持平) 벼슬을 하였다. 묘는 감천면 토일촌(吐日村) 뒤 임좌에 있다.(司馬榜目, 文科榜目, 英祖實錄, 虛白堂世蹟 1999, 安東鄕廳事例謄錄)
김필원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청대일기 / 淸臺日記 下 / 戊寅(1758, 英祖 34) / 六月, 大 / 十二日 / 晴而陰. 權生歸, 修付兩處答狀. 權生乃錫衡公之五代庶孫, 自安康移居南山, 而兄弟九人云. 全羅伯 洪?漢送節扇二十五柄, 修答伏, 送邑內. 朝報, 自京來, 二十九日至初二日. 京畿旱酷, 上親行祈雨祭五次, 得雨周洽矣. 安東 金必源, 泮試登第極幸, 鶴沙傍孫而金參判宗孫云, 尤幸. 二十九日入侍時, 行司直 洪鳳漢所啓, 朝臣乘轎?之隨品許乘, 非直爲榮身, 乃所以尊體貌也, 而君父動駕之時, 則必也騎馬, 陪從不敢乘?往來者, 亦道理然也. 今番郊外動駕之時, 卿宰之乘?往來於祗迎班, 極爲未安, 宜有嚴飭矣. 上曰, 此則駭然. 曾吾爲王子時, 亦當大駕, 輒以鞍馬往來矣. 其君動駕, 敢乘?乎. 此後犯者, 備局隨聞單記草記宜矣. 領議政 李天輔所啓, 海西有惑世誣民之事, 上煩天聽, 至有特遣按御史之擧. 本道之臣, 職在宣化之任, 道內旣有此妖物, 則固當梟示狀聞, 鎭定一道人心, 而置之不問, 一任其猖肆誣惑, 害及他道, 其失職之責, 揆以國體, 不可無罪, 本道監司 沈?罷職何如. 上曰, 所奏誠是, 依爲之. 李曰, 本道兵使, 則能送軍官機察云, 雖不能推捉正法, 而猶勝於道臣矣. 上曰, 兵使亦不可無飭, 一體罷職, 而/ <하 471>/ 大司憲官敎․朝報 / 作牌 / 市直․夏等褒貶 / 告目 / 地方官竝令該府處之可也. 忠淸黃海兩道旱災與京畿無異, 而去月二十五日, 得一犁雨, 水田則移秧, 而高燥處則未得移秧云矣(www.history.go.kr 2009)
김필원 [記事] : 한국사료 총서/ 청대일기 / 淸臺日記 下 / 己卯(1759, 英祖 35) / 五月, 大 / 初九日 / ?侄自一直還. 孫院長雲述再昨來見, 因向武夷. 聞李君鼎延喪其長子, 不勝慘然慘然. 嶺南人翰薦得準点者五人, 趙錫龍․金夢華․崔光璧․李汲․金必源矣.(www.history.go.kr 2009)
김필원 [記事] : 영조실록 91권/ 영조 34년(1758 무인 / 청 건륭(乾隆) 23년) 6월 2일(병진) 1번째 기사/ 함인정에서 관학 유생의 제술을 행하고 김필원에게 급제를 내리다/ 임금이 함인정에 나아가서 관학 유생(館學儒生)의 제술(製述) 시험을 친히 행하였다. 북교(北郊)에 거둥할 때에 공경히 맞이한 때문이다. 수석을 차지한 생원(生員) 김필원(金必源)에게 급제(及第)를 내렸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43책 689면/ 【분류】 *왕실(王室) / *인사(人事)(www.history.go.kr 2009)
김필원 [記事] : 영조실록 103권/ 영조 40년(1764 갑신 / 청 건륭(乾隆) 29년) 4월 2일(계미) 2번째 기사/ 간원에서 주서 이종영․김필원을 개차할 것을 청하다/ 간원【정언 이계(李?)이다.】에서 전계(前啓)를 거듭 아뢰었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또 아뢰기를, ꡒ당후(堂后)15879) 는 실직이고 청선(淸選)이 되는데, 이종영(李宗榮)은 사람과 문벌이 미천하며, 김필원(金必源)은 어리석고 무식하니, 청컨대 두 사람을 개차하소서.ꡓ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ꡒ김필원은 어떠한지를 내가 모르나 이종영은 정승의 후예인데, 지나치지 않은가?ꡓ하고, 윤허하지 않았다. 이계가 인피(引避)하니, 그 직을 체차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44책 163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註 15879]당후(堂后) : 주서(注書)의 별칭. ☞(www.history.go.kr 2009)
김필원 [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34년 6월 2일 (병진) 원본1157책/탈초본64책 (22/22) 1758년 乾隆(淸/高宗) 23년/ ○ 戊寅六月初二日辰時。上御涵仁亭。北郊祇迎館學儒生製述入侍時, 讀券官申晩․李鼎輔․金善行, 右承旨尹東暹, 對讀官鄭存謙․洪梓․李明煩․具允鈺, 假注書李時逸, 記事官李海鎭․柳敍五以次進伏訖。上曰, 濟濟多士矣。東暹曰, 入門數, 六十三矣。晩曰, 日氣甚熱, 連爲勞動, 聖體若何? 上曰, 一樣矣。晩曰, 昨日講經, 今又親臨, 臣等罔知攸奏, 昨日寢睡若何? 上曰, 善睡矣。上命明煥進前, 出賦題田畯至喜, 命書之。晩曰, 懸題乎? 上曰, 然矣。上曰, 頒紙可乎? 東暹承命, 以次頒紙訖。上曰, 儒生, 出製于月廊可也。上曰, 注書出去, 持擧條紙入來, 臣時逸承命出, 持擧條紙入伏。上親書題曰, 擬本朝祈雨祭祭官謝, 錫馬賜弓之典, 又書曰, 銀臺․玉堂․翰注․騎省入直堂郞, 堂上堂下試官製進。上曰, 兵郞吳尙顯, 爲道科乎? 晩曰, 爲道科壯元, 而善文矣。上曰, 善文云, 予欲觀其文矣, 仍命少退。上曰, 午後入侍時, 則侍衛盡去可也。未時收券入侍時, 上曰, 下試官先讀之。允鈺進伏, 讀一軸訖。次命明煩梓存謙以次讀之, 上命賜?糊湯, 使之引器自飮。上曰, 趙明履在時, 時當炎熱, 故賜而飮之, 今已作故人矣, 北京亦有此乎? 晩曰, 古文與醫書有之, 應有之矣。上曰, 嶺南亦有之乎? 梓曰, 此乃閭家罕有之物也。上曰, 再考, 則士之師, 讀而考之可也, 善行進讀, 考訖, 以三中爲首, 上, 親自坼封曰, 生員金必源, 誰也。善行曰, 居嶺南, 而臣時出巡題, 使之試才, 則無右於金必源矣。上曰, 居嶺南何邑。晩曰, 兼春秋知之矣。海鎭曰, 居安東矣。上曰, 安東․慶州․星州相距幾許。海鎭對曰, 或二日程, 或三日程矣。上曰, 承旨書之。居首生員金必源, 直赴殿試, 之次生員鄭夢弼, 進士李壽咸, 幼學黃萬錫, 各給二分。出傳敎 上曰試官應製, 試券則明日考之, 可也。諸臣以次退出。(www.history.go.kr 2009)
김필원 [記事] : 승정원일기/ 영조 34년 6월 3일 (정사) 원본1157책/탈초본64책 (20/21) 1758년 乾隆(淸/高宗) 23년/ ○ 今六月初三日辰時。上御崇文堂。大臣備局堂上次對入侍時, 左議政金尙魯, 右議政申晩, 知事李益炡, 行司直金聖應, 禮曹判書洪象漢, 行司直洪鳳漢, 戶曹判書李宗白, 副司直申晦, 刑曹判書李益輔, 吏曹參判李昌壽, 訓鍊都正具善復, 副護軍鄭汝稷, 大司成金善行, 副司直徐志修, 開城留守金致仁, 同副承旨李長夏, 假注書安景說, 記事官李鎭海․柳敍五諸臣以次進伏訖。上曰, 注書誰也? 長夏曰, 安景說。上曰, 在於何地? 長夏曰, 在嶺南。上曰, 何邑也? 景說曰, 在永川。尙魯曰, 日熱比酷, 伏未審聖體調攝如何? 湯劑進御如何? 上曰, 湯劑姑置之。尙魯曰, 此慶尙監司趙雲逵狀啓也。枚擧東萊府使趙?牒報, 以爲本府債弊, 欲使永草, 則朝家給代, 必使相當, 然後可以永杜日後之弊, 而以此九百石之米, 充代於五千三百餘兩之錢, 實是行不得之事, 開市稅銀, 未滿百數, 而亦歸應下, 實無餘剩之可補於給代者, 射軍木, ?價銀, 如欲許劃, 則豈無推移之道, 而此若難便, 則被執人蔘收稅, 自是本府之前日所管者, 右項數條中, 從長加劃事, 請令廟堂稟處矣。萊府債路, 旣令永革, 而一年公下之代, 不爲區劃, 則該邑財力, 無他出處, 邊上重地, 誠甚可慮。頃者所劃九百石米, 果爲不足, 不可不加劃, 以充不足之數, 射軍木, 則減半之故比前太縮, 實難取用, ?價銀, 則乃是弓角契人直受之物, 亦非可論。此外反復量度, 無可推移着手者, 所謂被執蔘收稅, 亦係單蔘補用之資, 在該曹, 割而分之, 雖涉切悶, 以此蔘劃給之外, 恐無他道。?被執蔘之自萊府, 什一收稅, 載於續大典, 而聞壬申年間, 該曹取議廟堂, 直爲收稅事, 成節目擧行云, 此則不但該曹之遙管見失, 大不如萊府之隨卽收稅而已。續典, 旣是頒降之法典也。如非萬不獲已之事, 則追後變改, 決不可爲, 自今爲始, 令萊府, 依續典收稅, 仍許定數取用, 似宜矣。晩曰, 當初九百石米許劃時, 已慮其不足矣。今欲加劃, 則?價銀, 射軍木, 皆無推移之勢, 只此被執收稅中, 定數許給之外, 實無他道矣。上曰, 此是戶曹所管之事, 戶判先陳之可也。宗白曰, 壬申節目變通之後, 雖許被執, 自本曹依黃帖成給之數, 當收稅, 而必多滲漏之弊, 故雖無萊府所請, 臣方欲以依續典, 自萊府收稅之意仰達矣。自萊府收稅, 以禮單之需, 事例當然, 而至於劃給萊府, 則決知其不可矣。上曰, 諸臣之意, 何如? 益炡曰, 俄與大臣諸臣, 論此事而旣無他變通之道, 則被執收稅中, 定數許給, 似爲得宜矣。聖應曰, 萊府, 邊上重地, 不可不許, 而戶判則似悶矣。象漢曰, 臣亦以爲當許萊府, 而若令加數被執, 則在戶曹, 亦無所損矣。鳳漢曰, 萊府債息之代, 準所請劃給, 然後祛民弊重邊門之道, 始可得宜, 而旣無好樣道理, 惟此稅蔘之劃給, 差可順便, 戶判雖以職掌所管, 有所爭難。今年以前, 黃籤所捧之稅, 不過斤餘, 今若加數被執, 以其收稅, 略給萊府, 則在戶曹, 有所益, 而無所損矣。晦曰, 戶判之如是爭難, 固是矣。而萊府以邊上重地, 給債革罷之後, 無以支過, 則朝家當軫念, 區劃給代, 而無他著手處, 蔘稅一條之外, 更無好樣變通之道, 量其需用, 定數劃給則似好矣。益輔曰, 臣亦自外議之, 以爲當給萊府也, 萊府旣罷債錢, 則不可不劃給其代, 而無他可給之物, 此雖當屬於戶曹者, 以稅蔘定數給之, 似宜矣。昌壽曰, 有司之臣, 爭之固宜, 然朝家, 旣已軫念邊上重地龜劃給代之需, 而無他着手處, 則蔘稅一條, 定數劃給似宜矣。善復曰, 旣無他條變通之道, 則似當定數, 劃給萊府好矣。汝稷曰, 臣別無意見, 而亦以爲定數劃給於萊府, 恐好矣。善行曰, 倭人處所給之蔘, 戶曹買用云, 被執稅, 則屬之戶曹, 其代則自戶曹, 以錢劃給於萊府似好。臣意, 則以爲凡係收稅, 全屬戶曹, 不可劃給於他處, 有不得已之事, 則以他條變通, 爲宜云矣。志修曰, 邊上重地, 宜加軫念, 旣無他變通之道, 則勢不可不如是區劃, 而第伏念法令之數改, 極爲可悶, 此乃續典所載, 而壬申年之變通, 已未免遽然。壬申之事, 今又變通, 則尤爲數改, 臣意, 則壬申變通時, 亦必有意見, 姑令戶判, 退而詳考其時變通委折, 明知其利害, 然後改之, 恐合事宜矣。
致仁曰, 萊府, 邊上重地也, 自朝家深念民弊, 革罷債路, 則其所給代, 必須相當, 然後可以永久遵行, 而實無推移着手之處。惟此稅蔘一條, 差可順便, 且被執之自本府收稅, 載於續典, 今雖變改, 此乃復舊也, 恐無銷刻之嫌矣。宗白曰, 萊府之凋弊, 臣亦豈不念, 而以國體言之, 則收稅, 自是地部之事, 以地部之稅入, 許屬於外邑, 亦豈無日後之弊乎? 廟堂之議, 欲許被執之加數, 以得失言之, 則在本曹, 雖曰無損, 以事例言之, 則勿論被執之多寡, 皆是本曹之所當收稅者, 千斤被執, 則當收千斤之稅, 十近被執, 則當收十斤之稅, 其不可割屬於萊府, 則不在於被執之多寡矣。尙魯曰, 使萊府牧稅者, 乃遵守法典也, 不可以續續變通論也。晩曰, 有司之臣, 則如是爭執, 固其職也, 而邊上重地, 亦不可不念。今若使萊府依前收稅, 則此乃復舊, 非數數變改者, 不必以銷刻爲嫌也。上曰, 此復舊也, 非數變也。無論收稅蔘之劃給萊府與否, 爲先令萊府, 依續典收稅可也。尙魯曰, 諸臣所達, 雖有蔘差, 非收蔘稅, 則終無他條區劃之道, 且收稅一事, 當自廟堂, 從長指揮, 在戶曹, 亦可以有得而無失矣。以一年被執中, 限四斤劃給萊府事, 定式分付, 何如? 上曰, 依爲之。出擧條 尙魯曰, 此黃海前兵使田雲祥狀啓也, 以爲道內陸鎭牙兵闕額, 以鎭民子枝塡充, 而其子枝之投屬邑役者, 不能刷還, 故簽丁無路, 編伍不成, 使其地方官, 專管充定, 一如束伍之例, 鎭軍之散在他邑者, 以本邑納未布軍, 推移換給事, 請令廟堂稟處矣。各鎭牙兵之苟充, 不成樣如此, 則誠非細慮, 而如欲使各其地方官, 專管充定, 則近來邑邑軍額, 名色浩多, 不遑塡闕, 其何可創增無前之事, 以貽各邑之弊乎? 鎭軍之相換, 外面雖似便易, 而不但移來移送之際, 自多窒?, 亦有弊端, 良役實摠中, 某邑某軍幾名, 一一區分載錄, 若非萬不獲已, 則亦不容輕議變改, 此兩款竝置之, 至於鎭軍子枝之不得混侵, 旣有令甲, 而各邑之不遵朝令, 任其投屬者, 極爲駭然。此則分付道臣, 各別嚴飭, 其中投屬之類, 使之一倂査出, 還屬本鎭, 何如? 上曰, 依爲之。出擧條 晩曰, 蔘弊, 續典所載, 而法舊弊生, ?思所以變通乎? 但後人不及前人, 而欲以一時意見爲之, 此甚可悶。上曰, 右相所奏是矣。徐志修之言, 亦是也, 卽今堅守者, 續大典也。承旨書之, 以度支事, 推之續大典後, 有更張之事, 其人已故, 雖不申飭, 以此觀之, 非徒此也。令備局, 取覽續大典後, 各司草記, 若有更張之事, 自備局, 草記重處, 其請勿施, 當該承宣, 一體勘律。出傳敎 尙魯曰, 騎判, 只行侍衛後, 更無出仕之意, 必使行公, 如何? 上曰, 今番除之有意, 承旨書之。兵判李成中嶺伯後, 吏判特解, 曲伸廉義伊後參贊, 廉隅又伸, 往者之事, 今無可言。其於廉隅․伸而又伸, 而今聞大臣所奏, 侍衛外, 曹務不爲擧行云, 事體寒心, 從重推考, 卽爲牌招入侍。出傳敎 尙魯曰, 臣頃以孝昭殿終獻官, 爲捧祭物, 進往典祀廳, 則祭物, 熟設假家之下, 不設板而只鋪地排, 事體極爲未安, 此雖由於前例若此, 而事關祭享, 不可拘於前例有無矣。兩魂殿, 祭物假家, 卽令鋪設補階板, 何如? 上曰, 依爲之。出擧條 鳳漢曰, 臣以小民最難堪之弊, 有所仰達者矣。近來無賴悖惡之類, 假稱司憲府風聞, 刑曹風聞, 突入於資?稍饒之民家, 始示多般威喝, 終乃受賂放解。今日東家, 明日西家, 種種作弊, 罔有紀極, 彼愚昧之民, 不知其假托。惟以費財圖免爲幸, 間或有累次遷變, 至於破?者, 豈意聖明之世, 有此行劫之徒乎? 事之痛駭, 莫此爲甚, 宜有別樣懲禁之道矣。尙魯曰, 果如所聞, 則便一白晝强盜也, 萬萬驚駭, 宜付之捕廳矣。上曰, 此則無異强竊之盜, 此則奸細之輩, 令捕廳, 期於必捉, 從重嚴處。出擧條 致仁曰, 臣於頃日筵中, 以外監貢人事發端, 而未及仰陳, 故今雖遞職, 敢達矣。外監貢人等, 戊辰以上九年內, 先進排未上下之數, 至於五萬七千八百餘兩, 全以公私債彌縫, 故一年二年, 勢窮力竭, 至有戊辰年擊鼓之擧, 其時戶判朴文秀, 謂以當下之數, 從當上下, 而其中最見督之守摠兩營, 所負錢一萬五千七百五十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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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