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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541) : 김홍은-김홍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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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은 : 예천읍 출신, 근무처 (주)매일닷컴전산, 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산격동 1621 유통단지 전자관 2층 307, 재구예천군민회 사무차장이다.(醴泉郡廳홈페이지 鄕友會 2009)
김홍은 : 재경예천군민회cafe/ 2010재대구예천군민회 임원 및 사무국명부/ 작년, 2010년 4월 29일/ 8 부회장 김철섭 대구시청 읍 부회장 김종협 (전)대구시건설본부관리부장 감천 9 부회장 김홍은 (주)매일닷컴전산 읍 10 부회장 남진성 대한지적공사군위군지사 감천 11 부회장 박정환 (주).../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1)
김홍은 : 장세대 회장 재대구 예천읍민회장 취임식/ 작년, 2010년 4월 9일/ .,,/ 아래, 김범일 대구시장님 축하해 주시는 모습, 바쁘신 중에도 오셔서 고맙습니다. 김홍은 상임부회장이 이취임식 개회를 선언하는 모습. 신임,회장님 깃발인수와 공로에 감사장을 드리는 모습 .../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1)
김홍은 : 체육대회/ 3년전, 2008년 6월 6일/ 회장과 집행부 2번째 일요일 문경에 많이 참석 하이소... 군민회 사무처장 장세대 ...상임 부회장 황병창님 ..고생하셨습니다... 군민회 사무차장 김홍은... 수석부회장 김수환님 수고하셨습니다./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1)
김홍은 : 재구보문면민회 신년교례회-2008년 1월 24일/ 3년전, 2008년 1월 26일/ ...발전하였습니다. 내빈으로는 조용래 재구예천군민회장님과 황병창 상임부회장님, 장세대 사무국장님, 김홍은 사무차장, 박호근 사무차장, 권경숙 여성부장님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 주셨습니다./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1)
김홍은 : 재구예천군민회 정기총회, 신년교례회 '성황'/ 3년전, 2008년 1월 24일/ 행운권 추첨으로 고향의 정을 나누는 의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신임회장단 △회장: 조용래 △수석부회장: 김수한 △상임부회장: 황병창 △사무처장: 장세대 △사무차장: 박호근, 김홍은 △총무: 박명훈/ cafe.daum.net/woruddPcjsrns(daum 2011)
김홍은 : 예천신문cafe/ '재구예쳔군읍민회 정기총회, 회장 이취임'/ 작년, 2010년 4월 9일/ ...3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정기총회는 군민회 이재점 이사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김홍은 상임부회장이 개회선언을 했다. 이날 권영배 사무국장과 조현우 총무가 공로패를 받았다. 백관현 .../ cafe.daum.net/ycnews365(dau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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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재 : 1954- , 예천 출신, 일본의 음악 명문 도호음대를 졸업, 79년 도쿄 국제지휘콩쿠르에 참가하면서 새별로 떴다. 14개국 92명 참가자 가운데 그가 거둔 성적은 1위 없는 2위, 신예 지휘자 최고 영예인 사이토 히데오상(1979)을 받은 것은 이 때이다. 심사위원들은, "정확한 바톤 테크닉과 풍부한 표현력이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라고 평했다. 이듬해(80년) 200여 명 경쟁자를 물리치고 26세의 조선인 그가 신일본필하모닉 지휘자로 뽑힌 것도 일본 음악계의 화제였다. 일본 TV와 나고야필하모닉, 쿄토필하모닉 전속지휘자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35세 때 독일로 가서 윤이상에게 배웠다. "윤이상 선생의 음악을 10년 넘게 27곡 정도 일본에서 연주했습니다. 이 가운데 12곡은 일본 초연입니다"라고 하였다. 79년 이후 북한에서 조선국립교향악단, 교토시향을 지휘했다. 뉴욕 카네기홀에도 데뷔, 98년 아타나베 아키오상을 받으면서 지휘자로서 절정을 구가하고 있다. 2000년 10월 20일 아셈 개막 축하 공연 때 귀국하여 KBS교향악단을 지휘, 백건우(피아노)와 함께 부조니의 '피아노협주곡'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출연한 것이 한국 초연이었다. 그의 음악을 듣지 못한 일본인은 거의 없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히트작인 '모노노케 히메'와 '바람 계곡의 나우시가' 등의 영화 음악을 지휘하였다. 일본 TV의 '나의 음악회'나, '오케스트라가 왔다'에서는 단골 지휘자이다. 이런 대중적 활약상은 그가 클래식 무대에서 거둔 성과가 받쳐주고 있다. 일본 음악계는 그를 일본 최고의 차세대 지휘자의 한 사람으로 뽑는다. 그는 일본의 양대 지휘자상을 수상한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음악을 '대륙적'이라고 했다. 솟구치는 감정을 파도처럼 터뜨리는 스타일이란 이야기이다. 그는 '민족적 기질 탓'이라고 하지만, 윤이상은, "대담하면서도 섬세하고, 신비적이면서도 활력있다."라고 극찬했다.(김용운 記者, 한겨레新聞 2001.10.18, 朝鮮日報 2000.10.19)
김홍재 : 김홍재 지휘자/ 출생 1954년, 일본/ 소속 울산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데뷔 1978년 도쿄시티필 연주회 지휘/ 학력 도호 음악대학/ 경력 2007년 제8대 울산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수상 1998년 와타나베 아키오 음악상(daum 2010)
김홍재 : 예술의 전달 20주년 기념콘써트 지휘자. 김홍재/ 살아왔던 삶이 녹녹치 않아서인지 정말 남달라 보였다. 그날 예술의 전달 20주년을 기념해 선곡했다는 "불새" 연주는 완전 환상이였다. 원시림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랄까... 내 기억에는 없는데 그립고 아득한 느낌... 그날 차세대 피아노영재 김선욱, 소프라노 신영욱 님도 왔지만 여러 악기가 함께 소리내는 곡이 최고!(daum 2010)
김홍재 : [조선일보] 2008년 02월 08일(금)/ '무국적 난민’ 재일 조선인으로 일본 음악계에 우뚝 선 지휘자 김홍재(53)씨./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민단도 조총련도 아닌 무국적 조선인으로 살아온 그는 음악 영재교육은커녕 오디오가 없어 음악다방에서 클래식을 깨우치고 ‘조센징’이라는 민족적 차별을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난민이라는 신분은 그의 삶을 모질게 했고 드라마틱한 굴곡을 만들었다. 월간조선 2월호는 일본 최고 음악상인 ‘사이토 히데오 상’과 ‘와타나베 아키오 상’을 수상하는 등 일본 최고의 음악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김홍재 씨를 소개했다. 1954년 일본 고베에서 태어난 김씨는 국적을 가지지 않았다. 선친은 경북 예천 출신이고 어머니도 대구 달성 출신이지만 김씨는 조총련도 민단도 아닌 김씨의 신분은 조선적(朝鮮籍)을 가졌다. 일본의 외국인 등록증에 있는 국적란에 한국도, 북한도 아닌 조선적으로 적힌 것이다. “1965년 한일수교 조약이 체결되면서 한국 국적을 찾는 사람이 많았지만 남북이 통일될 때까지 조국을 찾지 않겠다는 이들이 있었고 이들이 바로 조선적”이라는 것이 김씨의 설명이다. 국적을 택하지 않은 대가는 혹독했다. 유학은 불허됐고 해외 연주회에 나가려면 여권이 아닌 일본 정부의 여행 허가증을 갖고 다녀야 했다. 그 흔한 해외 콩쿠르조차 출전하지 못했다. 일본정부가 ‘망명 우려가 있다’며 보내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김씨는 외가에서 자라며 피아노를 전공한 큰외삼촌 이대우, 둘째 외삼촌 작곡가 이철우 씨 등으로 영향을 받으며 음악과 친숙해졌다. 김씨는 고베 조선 중·고급학교에 진학해 취주악반에서 클라리넷을 연구했다. 중학교 시절 전 일본 민족학교 음악경연대회에 출전하면서 관현악단을 지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무렵 일본 최고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의 지휘를 보고 지휘자가 되기로 결심을 굳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김씨는 일본에서 가장 권이 있는 사립명문인 도호음대에 진학해 눈물나는 노력을 했다.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연습실에 들어갔고 밤늦게 하숙집으로 돌아갔다. 주말에는 연습실에서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너무 고생해서 늘 영양실조에 시달렸고, 과로로 천식이 도지기도 했다. 노력을 바탕으로 2학년이 지나면서 두각을 나타내고 졸업하면서 도호음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단 한 명의 지휘자로 선발됐다. 김씨는 전체학생 중에서 3명을 뽑는 오디션에 선발되면서 동양 최고 지휘자라는 평을 받는 오자와 세이지로부터 지도를 받게 된다. 오자와 세이지는 “너는 다른 학생과는 다르다. 너는 대륙적이다”며 “지휘는 테크닉이나 외형이 아니라 내면이 중요하고, 마음으로 지휘해야 한다”라며 김홍재를 가르쳤다. 하지만 김홍재는 무국적자의 설움을 톡톡히 당했다. 79년 23살의 김홍재는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도쿄 국제콩쿠르에 참가했다. 무국적자이기 때문에 외국에서 벌어지는 해외콩쿠르에 참석할 수 없었던 탓에 도쿄에서 벌어지는 국제콩쿠르 대회는 결코 놓칠 수 없는 대회였다. 대회에서 김씨는 월등한 실력으로 예심을 거쳐 본선에 올랐지만 마지막에 ‘1등 없는 2등’을 차지했다. 1등에게 주어지는 해외유학조성금은 일본 국적 입상자에 한해서 주어진다는 조항을 들어 2등을 줄 수밖에 없다는 대회조직위원회는 판단 때문이었다. 해외유학의 꿈은 물 건너갔지만 김씨는 특별상인 ‘사이토 히데오 상’을 수상했다. 그에게 1등상을 주지 못한 대회 조직위원회측의 배려였다. 대학을 졸업한 뒤 겨우 데뷔에 성공한 젊은 지휘자가 ‘사이토 히데오’상을 탔기 때문에 일본 언론들은 그를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이후 김씨는 86년 일본에 온 당대 유럽 최고 음악가 윤이상 선생의 작품을 들은 뒤 충격에 빠진다.
그리고 89년 윤이상이 살고 있는 독일로 유학을 떠난다. 윤이상은 1967년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면서 2년간의 옥고를 치른 뒤 독일에 귀화, 동양적인 선율을 바탕으로 유럽 최고의 음악자로 떠올랐다. 무국적자인 김씨는 해외유학이 불가능했지만 일본 클래식계에서 높아진 위상 때문에 가까스로 승낙을 받아냈다. 윤이상은 김홍재를 자식처럼 대했다. 제자들에게는 관대했지만 김씨에게는 혹독했다. 연주회에 가면 “오늘 연주회에서 그 사람은 어떻게 연주했으며 너는 어떻게 느꼈느냐”고 묻곤 했다. “꾸지람은 많이 받았어요. 기본적인 것이 돼야 예술을 하는 법이라고 늘 강조하셨어요. 그래도 데뷔 10년 동안 (일본에서)인정을 받았는데’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선생을 만나 한 단계 더 발돋움할 수 있게 됐어요”라며 윤이상 선생의 위대함을 표현했다. 윤이상에게 가르침을 받은 김홍재는 98년 3월 일본 음악계가 일본 최고 지휘자에게 주는 ‘와타나베 아키오’상을 수상한다. 해다마 주는 상이지만 그 해 두각을 나타내는 지휘자가 없으면 아예 뽑지 않을 정도로 까다로운 상이었다. 일본 클래식계는 일순 술렁였으나 놀라운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김씨는 2000년 10월 드디어 서울 땅을 밟았다. 서울 아셈축하공연에서 KBS 교향악단을 지휘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지금껏 살아온 너무 힘들었고 한국 사회가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김씨는 “제 아이들까지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연주여행을 하려면 그때그때 각국 영사관을 찾아 허가를 받아야 했어요. 이젠 자유롭게 음악을 하고 싶습니다. 제 피가 흐르는 조국의 선율을 연주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김씨는 울산시향에서 지휘하며 그 동안 숨겨두었던 조국에 대한 음악적 열정을 승화시킬 예정이다. “열정을 쏟아 울산을 문화도시로 키우겠습니다. 조국이 저에게 준 사랑을 돌려주고 싶습니다”라며 조국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작성자 희도리/ //blog.naver.com(daum 2010)
김홍재 : [펌]재일교포 2세 지휘자 김홍재 씨/ 글쓴이 fagott/ 날짜 2002/5/9 0시 05분/ 조회 1332/ 조선일보에서 퍼왔습니다/ [밖에서 뛴다] 재일교포 2세 지휘자 김홍재 씨/ 그의 이름을 모를 수는 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을 듣지 못한 일본인 은 없을 것이다. 교포2세 지휘자 김홍재(42). 일본의 양대 지휘자상을 동시 수상한 유일한 인물. 그를 최고의 차세대지휘자로 부르는데 주저 하는 사람은 일본 내에서 아무도 없다. 2002년 3월 나가노(장야) 동계장애인올림픽. 정적을 깨고 김홍재의 지휘봉이 허공을 갈랐다. 나가노교향악단의 '식전서곡'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32개국의 선수단이 속속 입장했고, 개막식의 열기는 고조돼갔다. 화려한 개막식 행사에 도취한 일본인들은 깡마른 얼굴의 지휘자가 누구인지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일본의 자존심이 걸린 국가적 행사에 한국인이 지휘봉을 잡았으리라고는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오래 전부터 일본인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아온 클래식 지휘자였다. 일본 영화사상 최다 관객동원 기록을 수립한 영화 '모노노 케히메'와 10여년 전 히트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84년) 등의 영화음악도 그가 지휘를 담당했다. 이 두 영화는 음악으로도 크게 인기를 끌었다. 일본TV의 '나의 음악회'나 '오케스트라가 왔다'는 등의 TV연주회에서도 그는 단골 지휘자였다. "김홍재의 음악을 들어보지 않은 일본인은 없다"는 말은 그래서 과장만은 아니다. 그의 20년 지휘자 인생은 누구보다 화려하다. 음악의 명문 도호(동붕)대학을 졸업한 후 79년 도쿄 국제지휘콩쿠르에 참가하면서 일약 새 별로 떠올랐다. 14개국 92명의 참가자 중 성적은 1위없는 2위. 지휘자 최고의 영예인 사이토(제등수웅)상도 동시 수상했다. 심사위원들은 "정확한 '바통 테크닉'과 풍부한 표현력이 무한한 가능성을 잠재하고 있다" 고 평했다. 이듬해엔 신일본필하모니의 전속지휘자로 선발됐다. 오디션에 참가한 2백여 명의 쟁쟁한 경쟁자를 물리치고 26세의 그가 뽑힌 것이 음악계에선 큰 화제였다. 28세 때 일본TV의 전속지휘자가 됐다. 31세에 나고야(명고 옥)필하모닉에, 33세에 교토(경도)필하모닉 지휘자로 취임했다. 35세엔 독일로 유학가 윤이상에게 사사받았다. 윤이상은 "대담하면서도 섬세하고, 신비적이면서도 활력있다"고 극찬했다. 38세 때 뉴욕 카네기홀에서 데뷔 무대를 갖고 미국에도 진출했다. 그의 재능은 일본 최고의 음악프로듀서 히사이시(구석양)의 눈에 띄었다. '모노노케 히메'의 음악지휘를 맡은 것도, 나가노 장애인올림픽의 개막연주를 지휘한 것도 그가 추천한 것이었다. 외국인인 그가 지휘를 맡는데 일부 반대도 있었다. 그러나 히사이시가 "김홍재가 아니면 안된다" 고 고집, 성사시켰다고 한다. 그의 음악세계는 분명히 일본인과 차이가 있다. 일본인 지휘자들은 기교를 중시하고 감정표현도 절제하는 편이다. 반면 그의 음악은 '대륙 적'(본인의 표현)이다. 테크닉보다는 솟구치는 감정을 파도처럼 터뜨리는 스타일이다. "민족적 기질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말한다. 그의 지휘자 경력은 지난 6월 와타나베(도변효웅)상을 받으면서 절정 에 달했다. 와타나베상은 작년 수상자를 내지 않을 정도로 선정에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있다. 사이토상과 함께 지휘자에게 주어지는 두 상을 동시수상한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 심사위원인 다나베(전변임) 일본필하 모닉 전무는 "일본의 음악계를 지고나갈 그에 대한 기대의 증명"이라고 말했다.
부모가 물려준 '조선' 국적을 그대로 갖고 있지만 북한 체제에 찬성 하지 않으며, 국적에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는다고 그는 밝혔다. 내년엔 일본의 주니어 오케스트라(10∼22세)를 이끌고 서울 공연에 나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의 꿈은 일본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연주가들을 모아 '재일코리안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것이다. ▲54년 효고현 출생 ▲78년 도호학원대학 졸업 ▲79년 제14회 도쿄국제지휘콩쿠르 2위 ▲80년 신일본 필하모닉 전속지휘자 ▲85년 나고야 필하모닉 지휘자 ▲87년 교토 필하모닉 지휘자 ▲96년 영화「모노노케 히메」 음악지휘 ▲98년 나가노 동계장애인올림픽 개막식 지휘 ▲사이토상(79년)과 와타나베상(98년)동시 수상./ //www.goclassic.co.kr(daum 2010)
김홍재 : 한일시평 제163호 [재일동포 지휘자 김홍재] | 이름 : 참기술 | 날짜 : 2008년 02월 10일 | 조회 : 1134/ 한일시평 제163호 (2008년 2월 10일) 재일동포 음악인 김홍재 최영호 (영산대학교) www.freechal.com/choiygho 오는 2월 15일 예술의 전당에서는 개관 20주년 특별 프로그램으로 재일동포 지휘자 김홍재(金洪才)와 KBS 교향악단, 그리고 프리마돈나 신영옥,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협연하는 화려한 연주 무대가 펼쳐진다. 김홍재는 현재 울산시향 상임지휘자로 활동하면서 KBS교향악단의 객원 지휘를 겸하고 있다. 그는 음악적 해석에 있어서 남북한과 일본의 동양적 감성을 아우르고 있을 뿐 아니라 서양의 고전음악과 현대음악을 독창적으로 소화해 내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스승이기도 한 윤이상은 생전에 그의 음악 기법에 대해 “대담하면서도 섬세하고 신비적이면서도 활력 있는 기교와 감성을 겸비하고 있다”고 평가한 일이 있다. [박성미, 김홍재, 나는 운명을 지휘한다, 2000] 김홍재는 1954년 10월 효고현(兵庫縣)에서 민족학교 교육자였던 아버지 김정민과 어머니 이판생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초급학교에서 고급학교에 이르기까지 조선학교에서 수학했다. 그는 재일동포 2세로 일본으로 귀화하지 않고 2005년 한국국적을 선택하기까지 ‘조선적’을 유지해 왔다. 이런 이유로 해외유학이 곤란했고 해외 콩쿠르에 출전하기도 어려웠다. 지휘자가 되어서도 해외 연주회에 나가려면 여권이 아닌 일본 정부의 여행 허가증을 갖고 다녀야 했다. 그런 그가 어느 인터뷰에서 조선적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어려움에 대해서, “물론 조금의 어려움은 있었다. 특히 해외공연을 할 때 여권을 받을 수 없었던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재일동포면 누구나 겪는 것이기에, 또 나는 조선인이기에 당연히 겪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이렇게 견딘 것이 지금 당당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라고 대답했다. [//blog.daum.net/pine19/7660277] 김홍재가 일본에서 세계적인 지휘자로 성장하는 동안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는데, 2000년 10월 'ASEM 축하 예술의 전당 10월 음악제' 의 일환으로 서울에서 KBS 교향악단과 첫 공연을 가진 후 한국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 책이 국내에서 출판된 이후 몇 번의 국내 연주 나들이를 하면서 더욱 알려졌다. 2004년에는 통영국제음악제의 개막 공연으로 윤이상의 오페라 '유령의 사랑' 을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연주했으며, 2006년 10월 국립극장에서 개최된 '2006 겨레의 노래뎐' 에서 국립국악관현악단을 지휘했다. 2007년 11월에는 울산시립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취임했다. '월간조선' 올해 2월호는 그의 성장 과정과 음악세계를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 가운데 일부를 인용 소개한다. [조선닷컴, 2008. 2. 8] -------------------- 김씨는 외가에서 자라며 피아노를 전공한 큰 외삼촌 이대우, 둘째 외삼촌 작곡가 이철우 씨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음악과 친숙해졌다. 김씨는 고베 조선 중·고급학교에 진학해 취주악반에서 클라리넷을 연구했다. 중학교 시절 전 일본 민족학교 음악경연대회에 출전하면서 관현악단을 지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무렵 일본 최고 지휘자 오자와세이지(小澤征爾)가 지휘하는 것을 보고 지휘자가 되기로 결심을 굳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김씨는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사립명문 도호(同朋)대학 음대에 진학했다.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연습실에 들어갔고 밤늦게 하숙집으로 돌아갔다. 주말에는 연습실에서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너무 고생해서 늘 영양실조에 시달렸고, 과로로 천식이 도지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2학년이 지나면서 두각을 나타내고 졸업하면서 도호음대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단 한 명의 지휘자로 선발되었으며 오자와세이지의 지도를 받게 된다. 오자와는 “너는 다른 학생과는 다르다. 너는 대륙적이다”며 “지휘는 테크닉이나 외형이 아니라 내면이 중요하고, 마음으로 지휘해야 한다”라며 김홍재를 가르쳤다. 하지만 김홍재는 무국적자의 설움을 톡톡히 당했다. 1979년 23살의 김홍재는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도쿄 국제콩쿠르에 참가했다.
무국적자이기 때문에 외국에서 벌어지는 해외콩쿠르에 참석할 수 없었던 탓에 도쿄에서 벌어지는 국제콩쿠르 대회는 결코 놓칠 수 없는 대회였다. 대회에서 김씨는 월등한 실력으로 예심을 거쳐 본선에 올랐지만 마지막에 ‘1등 없는 2등’을 차지했다. 1등에게 주어지는 해외유학조성금은 일본 국적 입상자에 한해서 주어진다는 조항을 들어 2등으로 할 수 밖에 없다는 대회조직위원회의 판단 때문이었다. 해외유학의 꿈은 물 건너갔지만 김씨는 특별상인 ‘사이토히데오(齊藤秀雄)상’을 수상했다. 그에게 1등상을 주지 못한 대회조직위원회측의 배려였다. 대학을 졸업한 뒤 겨우 데뷔에 성공한 젊은 지휘자가 ‘사이토히데오’상을 탔기 때문에 일본 언론들은 그를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이후 김씨는 1986년 일본에 온 당대 유럽 최고 음악가 윤이상 선생의 작품을 들은 뒤 충격에 빠진다. 그리고 1989년 윤이상이 살고 있는 독일로 유학을 떠난다. 윤이상은 1967년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면서 2년간의 옥고를 치른 뒤 독일에 귀화, 동양적인 선율을 바탕으로 유럽 최고의 음악자로 떠올랐다. 무국적자인 김씨는 해외유학이 불가능했지만 일본 클래식계에서 높아진 위상 때문에 가까스로 승낙을 받아냈다. 윤이상은 김홍재를 자식처럼 대했다. 제자들에게는 관대했지만 김씨에게는 혹독했다. 연주회에 가면 “오늘 연주회에서 그 사람은 어떻게 연주했으며 너는 어떻게 느꼈느냐”고 묻곤 했다. 김씨는 2000년 10월 드디어 서울 땅을 밟았다. 서울 ASEM축하공연에서 KBS 교향악단을 지휘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지금껏 살아온 것이 너무 힘들었고 한국 사회가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김씨는 “제 아이들까지 고생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연주여행을 하려면 그때그때 각국 영사관을 찾아 허가를 받아야 했어요. 이젠 자유롭게 음악을 하고 싶습니다. 제 피가 흐르는 조국의 선율을 연주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 [한일시평] 지난 호 자료는 한일민족문제학회 홈페이지 www.kjnation.org<한일관계시평> 또는 최영호 홈페이지 www.freechal.com/choiygho<한일시평>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charmit.kr(daum 2010)
김홍재 : [밖에서 뛴다] 재일교포 2세 지휘자 김홍재씨/ 그의 이름을 모를 수는 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을 듣지 못한 일본인 은 없을 것이다. 교포2세 지휘자 김홍재(42). 일본의 양대 지휘자상을 동시 수상한 유일한 인물. 그를 최고의 차세대지휘자로 부르는데 주저 하는 사람은 일본.../ //www.chosun.com(daum 2010)
김홍재 : [00.10.20] 지휘자 김홍재의 인생 드라마/ <> 한겨례신문 2000년10월20일16시56분 KST 지휘자 김홍재의 인생 드라마 무국적 재일 조선인이라는 한계와 좌절을 딛고일본 열도를 사로잡은 지휘자 김홍재(金洪才. 46). 이같은 파란만장한 인생역정 때문에 서울 예술의 전당이.../ //musicnote.pe.kr(daum 2010)
김홍재 : [00.10.18] 재일지휘자 김홍재 "좋은 음악은 국경이 없다"/ <> 조선일보 2000.10.18 [공연] 재일지휘자 김홍재 "좋은 음악은 국경이없다" 호리호리한 체구에 털털한 웃음. KBS교향악단을 지휘, 백건우(피아노)와 함께 부조니의 ‘피아노협주곡’을 한국 초연(20일·예술의전당)하러 지난 13일.../ //musicnote.pe.kr(daum 2010)
김홍재 : 울산시향 상임지휘자에 김홍재 씨/ 울산시향 상임지휘자에 김홍재 씨/ 연합뉴스 | 기사입력 2007-10-30 10:11/ (울산=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daum 2010)
김홍재 : 무국적 난민에서 한국국적으로… 울산시향 상임지휘자 김홍재/ 무국적 난민에서 한국국적으로…/ 울산시향 상임지휘자 김홍재/ 출처 : 조선일보|기사입력 2008-02-08 13:33 |최종.../(daum 2010)
김홍재 : 세계적 명성의 지휘자 김홍재, 피아니스트 백혜선 초청/ 부서명 admin/ 구분 행사 안내 첨부파일 ======/ 세계적 명성의 지휘자 김홍재, 피아니스트 백혜선 초청 ====== 울산시립교향악단 제116회 정기연주회 베토벤 시리즈 『황제』 o일 시 : 2007. 6. 21(목) 7:30pm o장 소 : 울산문화예술.../ (daum 2010)
김홍재 : 조센진에서 일본 최정상 지휘자가 된 김홍재의 음악/ ...분위기나 성격을 느낄 수 없고 오히려 보헤미아 국민주의적 성격과 향토색이 짙은 작품이라고 한다. ▲ 지휘자 김홍재 신나라 모두 세 장의 음반에서 재일 조선인이란 굴레를 과감히 떨고 일어서 재일동포의 희망으로 우뚝 선 지휘자.../ (daum 2010)
김홍재 : <인터뷰> 울산시향 새 상임지휘자 김홍재씨/ 울산시향 새 상임지휘자 김홍재씨 (울산=연합뉴스) 울산시립교향악단의 새 상임지휘자에 재일교포 출신음악가 김홍재씨가 선임됐다. 사진은 김 지휘자가 지휘하는 모습. 울산시향 제공. <인터뷰 기사 참조> yonglae@yna.co.kr (끝.../ (daum 2010)
김홍재 : 지휘자 김홍재-피아니스트 손열음 러시아 거장의 숨결을 연주하다/ , 라흐마니노프, 림스키 코르사코프 곡 등을 선보인다. 탁월한 곡 해석력으로 더 깊은 감동을 전달할 김홍재 지휘자와 맑고 고운 피아노 선율을 선사할 세계 정상급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음악적 교감이 기대된다는 게 주최측의 설명이다.../ (daum 2010)
김홍재 : 울산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김홍재 “시민의 열정에 감동을 창조”/ ...또 듣기 위해 찾아오는 그 청중들을 위해 지휘합니다. 울산시립교향악단의 제8대 상임지휘자로 활동 중인 김홍재 지휘자가 서툴지만 또렷하게 말했다. 지난해 11월 23일 울산문화예술회관 대 공연장에서 열린 김 지휘자 취임연주회.../(daum 2010)
김홍재 : <한민족 리포트> 재일 지휘자 김홍재편에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요. >>2001.8.20 KBS 1 <한민족 리포트>라는 프로그램에서 >>재일 지휘자 김홍재편을 방영했습니다. >>그 분에 대해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참 가슴 아프게 봤죠. >>근데 그 방송을 보면서.../ (daum 2010)
김홍재 : 무국적난민 최고의 지휘자 되다 "김홍재"/ 2008-08-11 23:53:23/ 무국적 난민`으로 살면서도 일본 최고 지휘자에 오른 김홍재 씨(53)는 무서울 정도로 음악에 집중한다. 연주회를 앞두면 잘 먹지도 않고 잠도 이루지 못한 채 오직 선율을...(daum 2010)
김홍재 : 울산시향 상임지휘자에 김홍재 씨/ 국방일보/ 울산시향 상임지휘자에 김홍재 씨 울산시는 지난달 30일 울산시립교향악단 제8대 상임지휘자로 재일교포 출신 음악가 김홍재(사진) 씨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김 지휘자는 이대욱 제7대 상임지휘자에...(daum 2010)
김홍재 : 조센진에서 일본 최정상 지휘자가 된 김홍재의 음악/ 22일 연합뉴스에 실린 임기창 기자의 기사에 취임 1돌이 된 김홍재 울산시향 상임지휘자의 얘기가 있었다. 김홍재는 "지휘자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잘못된 점만 지적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분명한 신뢰를 줘 역량을 150% 끌어...(daum 2010)
김홍재 : 한국의 지휘자 (3) _ 정치용/ 김용윤/ 이대욱/ 김홍재/ 연주한 바 있다. *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 자료에서 발췌 11. 김홍재 # 관련 기사 - 2000. 11. 여성동아 (동아닷컴) _ 막노동꾼에서 일본 최고의 지휘자가 되기까지 - 2000. 10. 디지틀조선일보 _ 좋은 음악은 국경이 없다 # 프로필...(daum 2010)
김홍재 : 제목 : 시립교향악단 김홍재 상임지휘자 취임연주회/ 기획사 울산시립예술단 선택사항 및 할인조건 회관회원(일반,청소년,가족,단체)이면 30%할인 세계적 명성의 지휘자 김홍재 이제 우리 울산의 자랑이 된 김홍재 최상의 사운드와 열정적인 연주를 펼치며 진한 감동과 함께 클래식의 진수를...(daum 2010)
김홍재 : 울산시향 김홍재 상임지휘자, 취임 1주년 기념연주회 기자회견/ 장애인 연주자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등 단원들의 수준 에 연연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김홍재 지휘자는 내년에는 울산청소년교향악단을 지도해 울산시향과의 합동 야외무대도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취임 2년째인...(daum 2010)
김홍재 : 울산시립교향악단 김홍재 지휘자, KBS교향악단 객원 지휘/ 김홍재 상임지휘자가 KBS교향악단 제641회 정기연주회의 객원지휘자로 나선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김홍재 지휘자는 이번 연주회에서 베토벤과 무소륵스키의 작품을 특유의 감성으로 풀어낸다. 9일 KBS 교향악단과 울산문화예술...(daum 2010)
김홍재 : 김홍재 시향 지휘자 재위촉(울산시)/ (관장 권혁진) “2009 교향악축제 연주회, 김홍재 지휘자의 스승인 고 윤이상 선생의 무악, 멘델스존 서거 200주년 연주회, 호반광장 클래식 산책 등의 연주회에서 보여준 김홍재 지휘자의 능력은 울산시향의 수준을 국내최고에서 ...(daum 2010)
김홍재 : 슈만과 클라라 (클래식음악 동호회) :: 네이버 카페/ ...년은 예술의 전당 20주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를 기념하는 음악회가 열립니다.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휘자 김홍재 씨가 KBS 교향악단을 지휘하고, 김선욱 군과 신영옥 씨가 협연할 예정입니다. 코리안 월드 스타 시리즈 I...(daum 2010)
김홍재 : otr 공연포탈사이트/ 이 이번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다. 특별히 이번 <2006 겨레의 노래뎐>은 일본이 인정한 최정상의 재일(在日) 지휘자 김홍재가 지휘를 맡으며 흩어진 한민족의 염원인 하나된 조국에 대한 열망이 녹아든 감동의 공연으로 세간의 이목과...(daum 2010)
김홍재 : 마에스트로 김홍재 울산시립교향악단 지휘자로 재위촉/ 2011년 까지 2년간 울산시향의 지휘자로 계속 활동하게 됐다. 울산문화예술회관은 (관장 권혁진) 2009 교향악축제 연주회, 김홍재 지휘자의 스승인 고 윤이상 선생의 무악, 멘델스존 서거 200주년 연주회, 호반광장 클래식 산책 ...(daum 2010)
김홍재 : 제목없음/ .com 프로그램 이영조 Requem for Strings 말 러 교향곡 제5번 G. Mahler Symphony No.5 c# minor 지휘자 김홍재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으시면 아래주소로 가셔서 보시면 됩니다. 한민족 리포트 다시보기 입니다(daum 2010)
김홍재 : 김홍재 지휘자 국립 오페라단·국악관현악단 지휘/ 울산문화예술 위상 드높인다 31일 예술의 전당 ‘나비부인’ 내달 5~6일 ‘네줄기 강물이…’ 울산시향 김홍재 상임 지휘자(사진)가 오는 31일 국립오페라단 공연과 9월5~6일 국립국악관현악단 공연의 지휘를 맡아 울산 문화예술의 위상을...(daum 2010)
김홍재 : 김홍재 상임지휘자‘지휘봉’ 1주년/. ‘양성원 첼로’와 환상의 협연 시향, 24일 문예회관 정기연주 울산과의 인연이 벌써 1년이다. 마에스트로 김홍재 지휘자가 울산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지휘봉을 잡은지도 어느새 1년이 훌쩍 지나갔다. 오는 24일 울산문화예술회관...(daum 2010)
김홍재 : 김홍재 지휘자 데뷔 30주년 기념음반/ 콘서트’는 당시 일본 내 교포들 중 민단과 총련의 화합을 위해 남과 북, 어느 편도 나누지 않고 하나됨을 말하기 위한 취지로 열렸다. 김홍재 지휘자 역시 당시 무국적자로서 애틋한 조국애가 음반 속 음악에 잘 표현돼 있다...(daum 2010)
김홍재 : 울산시향 김홍재 상임지휘자 연임/ 문예회관 관계자는 "2009 교향악축제와 멘델스존 서거 200주년 연주회, 호반광장 클래식 산책 등에서 보여준 김홍재 지휘자의 능력이 울산시향의 수준을 크게 발전시키는 수준으로 평가돼 재위촉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2007년 10월 말...(daum 2010)
김홍재 : 사람이 살고 있어요! ::/ 열린 공연은 1, 2부로 나뉘어 1부에는 박영희, 김영동의 곡을, 2부에는 박범훈, 나효신의 곡이 북한 출신 지휘자 김홍재의 지휘로 연주되었다. 작곡가부터 지휘자 그리고 이를 연주하는 악단까지 국내에서 구성할 수 있는 가장...(daum 2010)
김홍재 : 국립국악관현악단 네줄기 강물이 바다로 흐르네/ ...작곡하였다. 출연 작곡가 - 김홍재 조선적(朝鮮賊)이라는 주어진 운명을 넘어 희망을 지휘하는 일본 최정상의 지휘자 김홍재, 2000년 출간된 그의 저서 『김홍재, 나는 운명을 지휘한다』를 통해서 그의 감동적인 삶과 성공스토리는 이미...(daum 2010)
김홍재 : KOUS-한국문화의집/ ...성격이었다면 이번 연주회는 국악관현악의 ‘시대별’ 명곡들을 엄선하였다고 할 수 있다. 특별초빙지휘자 김홍재의 지휘 아래 국악관현악 초기의 작품에서부터 현재의 작품까지 엄선한 명곡들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또 하나의...(dau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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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