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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587) : 예천8경 중 회룡포(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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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할 필요 없다. 픽~쓕~~픽~쓕 연방 눌러대는 카메라 스위치, 찰~칵 ~픽쓕 여기저기서 아름다운 회룡포 마을을 담기 위해 서로의 취향대로 각도를 맞추어 찍어대는 카메라의 셔터 소리들 셔터 누른 소리까지 경쾌하게 들리니 경치가 얼마나 좋았으면...... 그렇게 몇 컷의 사진을 카메라에 담아 아쉬움을 달래며 다시 또 길을 재촉 .... 기왕 나온 김에 낙동강 마지막 주막 삼강마을까지 가자하고 30여 분 달리니 낙동강 마지막 주막 마을 삼강마을이라는 푯말이 시야에 들어온다. 3개의 강이 합쳐지는 곳 ... 삼강이라 부른다. 옛 모습대로 복원해 놓은 삼강주막, 옆에 서 있는 노거수(회화나무 450년)가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예천 삼강 주막] :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34호, 소재지 : 경상북도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166-1번지, 삼강주막은 삼강나루의 나들이객에게 허기를 면하게 해주고 보부상들의 숙식처로, 때론 시인 묵객들의 유상처로 이용된 건물이다. 1900년경에 지은 이 주막은 규모는 작지만 그 기능에 충실한 집약적 평면 구성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건축 역사 자료로서 희소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옛 시대상을 읽을 수 있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적 의의를 간직하고 있다. [주막 방 안에 걸려있는 삼강주막 시화] : 삼강주막// 詩 碧波 김철진, 畵 靑竹 이순섭// 천삼백여 리 낙동강 물길이/ 내성천 금성과 만나 어우러지는 여기/ 삼강나루길목 지켜 앉은 / 삼강주막// 미투리 고무신 북적이며 스쳐간 낮이나/ 등잔불 지친 눈빛 거물거리는 밤/ 막걸릿잔에 오간 사투리 걸쭉한 육담과/ 무거운 한숨소리설화처럼 떠돌 뿐/ 뱃사공도 주모도 보부상도 사당패도/ 삼강 강물처럼 흘러가고 없는 오늘// 새 단장한 주막 늙은 괴화나무만/ 물기마른 눈빛으로 장승처럼 서 있다.// 강물은 야위어도 옛길 따라 흐르는데/ 늙고 병든 나룻배 한 척/ 뱃사공 잃은 강변에 노 없이 누워/ 원망어린 눈길로 삼강다리 바라볼 뿐/ 바람과 나그네는 / 흘러간 나달 추억을 더듬는 시방// 황토 바람벽 빼곡한 외상 술값 칼금만/ 그으름 쓰고 눈물처럼 남아 서럽다.// 이렇게 예천의 아름답고 삶의 묻어나오는 유적지를 뒤로하고 귀향길에 오른다. 달리고 또 달리기를 약 1시간 30여 분 지났을까? 문경세재 휴게소에 다달았다. 음료수 한 잔으로 피로한 여정을 달래고 또다시 출발, 비가 오다 게인 탓인지 날은 흐렸지만 이산저산 구름이 산위에 걸려있고 운무가 바람에 날리어 온갖 구름의 향연을 펼치고 있지 않는가? 운무가 피어오르고 있다. 구름의 아름다운 향연장을 구경하며 문경새재를 넘어 괴산 연풍에 도착한다. 다시 고속으로 갈까. 에라 구경도 할 겸 여러 번 왔다갔다한 길이지만 추억을 회상하며 국도로 가자 하구 계속 달려 수안보 충주를 지나 주덕에 도달하니 흐렸던 날씨도 구름 낀 한 구석으로 아름다운 석양이 빛을 내며 시야를 부시게 한다. "와우" 브라보 외친다. ..마치 어느 영화의 나온 듯한 석양의 연출, 나는 차를 갖길로 세우고 석양이 없어지지 않을까 하면서 잽싸게 카메라 스위치를 올리고 자동으로 놓고 연속 사격하듯이 tu터를 눌러댔다. 아! 자연의 신비여! 자연의 아름다움이여!........ 이렇게 감탄을 하며 늦은 귀향길을 재촉하여 장호원을 거쳐 죽산 백암 양지 용인시내를 거쳐 동백지구를 지나 죽전으로 오후 9시 20분에 도착, 후유 하며 짧은 여정의 끝맺을 감사하며 다음 여정을 생각한다.(daum 2008)
회룡포와 삼강주막 [記事] : 소스장류양념 블로그/ 내륙의 섬마을 예천 회룡포와 삼강주막/ 보고 싶은 공연 정보/ 2008/10/24 17:10/ 물돌이동은 하회의 다른 이름이다. 낙동강이 그 유장한 흐름으로 마을을 휘감고 흘러가는 형국이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모두 그만그만한 우리 하천들의 규모와 배산임수의 땅에다 터를 잡아온 선인들의 지혜를 헤아려 보면, 그런 모양새의 마을은 쌔고 쌨어야 한다. 경북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 회룡포 마을도 그런 마을 중 하나다. 하회마을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관광자원을 개발하려는 지방자치단체의 이해와 저마다 승용차를 부리는 시대에 힘입은 데다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TV 드라마 가을동화 덕분에 온 나라에 알려졌다.
<가을동화> 덕에 널리 알려진 회룡포 : 하회와 다른 점이라면 그 물이 낙동강 상류의 지류 내성천이라는 점과 그것이 휘감고 있는 마을이 명문거족 하회 류씨의 양반 마을이 아닌 소박한 농촌동네라는 것뿐이다. 물이 휘감고 도는 각도는 오히려 하회보다 더 크고 둥글다. 이 각도가 350°라는데 마지막 10°에 해당하는 부분이 이웃 개포면과 이어지니 육지 속의 섬마을이라는 표현은 사실이 아닌 셈이다. 이 마을을 소개하는 글에는 강이 산을 부둥켜안고 용틀임을 하는 듯한 특이한 지형의 회룡포라 하지만, 원래 이름은 의성포였다. 이웃 의성군과 혼동된다 하여 회룡포로 불리게 되었는데, 용틀임 따위의 과장도 그리 새삼스럽지는 않다. 이 땅에 흔하디 흔한 명명법일 터이나 이곳 지명이 용궁이니 용이 있어도 무방하겠다. 마을 건너편의 산이 높이 190m의 비룡산인데 회룡포에서 용틀임한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언덕이라 보면 얼추 격이 맞아떨어진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두 군데다. 차를 타고 들어가려면 인근 개포에서 비포장길로 가야하고, 용궁에서 들어가려면 부득이 공사장에서 흔히 쓰는 구멍 숭숭 뚫린 철판 두 개의 폭으로 이어진 이른바 뿅뿅다리를 건너 걸어가야 한다. 이태 전만 해도 속이 훤히 비치는 얕지만 맑은 물 위에 뜬 듯하기도 하고, 더러는 물에 살풋 잠기기도 하는 나지막한 다리였는데 지금은 두어 자쯤 높여 놓았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다면 다리를 천천히 건너가 보는 것도 쓸 만하다. 10여 가구밖에 남지 않은 호젓한 마을을 가로질러 저 끝자락부터 강둑을 따라 한 바퀴 돌아 나오는 것도 괜찮은 경험이다. 산은 산을 나와야 보인다. 마을을 보려면 뿅뿅다리를 건너와 물을 따라 완만하게 누운 비룡산을 올라야 한다. 잘 정돈된 산책로를 따라 오르면 회룡대란 이름의 전망대가 있다. 요즘 이름난 경승에서 흔히 보듯, 거기엔 시커멓고 커다란 수백만 원짜리 사진기를 든 사진가들이 삼각대를 세워놓고 오래 뜸을 들여 풍경을 담고 있는데, 무어 그리 기죽을 일은 없다. 우리가 가진 손바닥 안에 드는 보급형 디카로도 회룡포 마을의 아름다운 모습쯤은 담아내고도 남으니까. 이태 전에 찍은 400만 화소짜리 똑딱이 디카로 찍은 사진이나 천만 화소의 DSLR 카메라로 찍은 것이나 그것이 주는 감동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아쉬웠던 점은 거리가 마땅치 않아 마을을 안고 도는 강물을 담을 수 없었다는 점뿐이다. 10월 초순의 회룡포 마을은 고즈넉했다. 이태 전보다 벼논의 면적이 줄어든 게 뚜렷하다. 정갈하게 갈아놓은 밭에 10여 동이 넘는 비닐하우스가 이마를 맞대고 서 있는데, 빼곡히 들어찬 나무 사이로 얼굴을 내민 빨갛고 파란 기와와 슬레이트 지붕이 정겹게 다가온다. 거기 사는 사람들의 고단한 삶과는 무관하게. 갈수기로 가까워져 내성천의 수량이 줄고 있는지 마을을 휘감고 펼쳐진 백사장이 허옇게 그 켜를 드러내고 있는데, 멀리 뿅뿅다리는 마치 지워진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성곽처럼 마을 가장자리를 삥 둘러싼 둑길이 외롭다. 전망대에서 마을 반대편으로 내려가면 장안사가 있다. 천년고찰이라지만 지금의 절집은 1984년부터 불자들의 간절한 원력으로 일으켜 세운 것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국태민안을 염원하여 전국 세 곳의 명산에 장안사를 세웠으니, 금강산과 양산, 그리고 이곳 국토의 중간인 용궁 비룡산에 깃든 장안사가 그것이다. 몇 해 전, 동종이 땀을 흘린다 하여 한 지상파 방송이 화제로 보도하기도 했던 이 절집의 초창주는 신라 경덕왕 때 의상대사의 제자인 운명조사. 중창주로 고려 명종 때의 지도림 화상이 있는데, 그와 교유한 고려 문인 이규보가 이 절집에 머물다 가며 남긴 시편이 회룡대에 걸려 있다.
“산에 이르니 번뇌가 쉬어지는구나. / 하물며 고승 지도림을 만났음이랴. / 긴칼 차고 멀리 날 때에는 외로운 나그네 마음이더니 / 한 잔 차로 서로 웃으니 고인의 마음일세. / 맑게 갠 절 북쪽 시내엔 구름이 흩어지고 / 달 지는 성 서쪽 대숲에는 안개가 깊구려. / 병으로 세월을 보내니 부질없이 졸음만 오고 / 옛 동산 소나무와 국화는 꿈속에서 잦아드네. / 가족 건강에서 로또 1등 당첨까지” 절집 뜰에 차곡차곡 쟁여 놓은 기와는 기와불사의 흔적인데, 기왓장마다 쓰인 갖가지 기원은 산문 도량에 들어도 떨치지 못하는 번뇌의 한끝일지도 모른다. 대박의 꿈은 절집에 와서도 쉽사리 사위지 않는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로또 2등 이상 당첨이나 로또 1등 당첨으로 원망의 조건도 다양하다. 반면에 아토피 퇴치, 스케이트를 잘 타게 해 주소 라거나 이사 가서 페럿을 기르게 해 주세요 라는 소박하고 간절한 기원들도 있다. 어쩌면 앞과 뒤 두 기원 사이는 진흙과 연꽃, 번뇌와 해탈 사이만큼이나 멀지 모른다.
다시 비룡산의 산책로 따라 길을 재촉하면 낙동강․내성천․금천의 세 물줄기가 합쳐지는 삼강을 만나게 되지만 거기 남았던 마지막 주막집이었다는 삼강주막을 찾으려면 다시 차에 올라야 한다. 낙동강과 내성천, 금천의 세 강줄기가 몸을 섞는다 해서 삼강이란 이름을 얻은 곳은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이다. 삼강은 한때 낙동강 하구 김해에서 올라오는 소금배가 하회마을까지 가는 길목이어서 내륙의 미곡과 소금을 교환하던 상인과 부보상들로 북적이던 곳이었다. 그 나루터 곁, 200살이 넘은 회화나무 그늘에 삼강주막이 있다. 이 주막이 들어선 것은 1900년께. 소발에 짚신 신겨 서울로 몰고 가던 소몰이꾼이 소를 싣고 강을 건너기도 해 삼강나루가 붐볐을 때는 소 여섯 마리를 실을 수 있는 큰 배와 작은 배, 두 척이 있었다고 한다. 일제 말기까지는 소금배 상인과 부보상이, 소금배가 끊긴 후에는 강을 건너 읍내와 서울․대구 등지로 가려는 주민과 나그네들이 이 주막의 길손이었다.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70년대 다리가 놓이고 제방이 생기면서 주막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나루에 인적이 끊어졌으니 주막을 지나는 길손도 끊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 더구나 2004년 봄에 삼강교가 개통되면서 호젓했던 삼강의 풍광마저 사라졌다. [마지막 주모의 한이 서린 삼강주막] : 철근 콘크리트를 지은 우람한 다리 삼강교 밑에 폐가가 된 주막은 초라하고 쓸쓸했다. 퇴락한 팔작 형태의 슬레이트 지붕은 그나마 새마을운동의 은전을 입은 걸까. 우리 시대의 마지막 주모였던 옛 주인이 세상을 떠난 것은 그이가 아흔 살이던 2005년이다. 열여섯 살에 네 살 위 남편과 혼인한 그이가 이 주막의 주인이 된 것은 3년 뒤, 꽃다운 열아홉 살 때였다던가. 그이는 이 주막에서 5남매를 길렀고, 반세기 전에는 남편을 먼저 떠나보냈다. 드센 나루터 주막을 꾸려가는 고단한 세월에 아로새겨진 상처는 또 얼마일까. 그이가 흙벽에다 그어 놓은 가로 세로의 금이 외상장부였다는 것은 호사가들에겐 전설이 되었지만 그 바람벽에 새기지 못한 술어미의 한과 슬픔은 또 얼마였을지. 6년 전 처음 이 주막을 찾았을 때와 다르지 않게 삼강주막은 거기 우두커니 서 있었다. 낡고 헌 흙벽의 속살을 드러내고 방문을 죄다 열어젖힌 채. 사람들은 왜 이 낡은 주막집을 잊지 못해 잊을 만하면 다시 찾는 걸까. 우리가 주모에게 청해 소주를 마셨던 방의 문은 문살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채 간신히 돌쩌귀에 걸려 있었다. 임자를 잃은 지 어언 이태. 주인이 세상을 떴던 그 해 연말에 이 낡은 주막집은 경상북도 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규모는 작지만 그 기능에 충실한 집약적 평면구성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건축역사 자료로서 희소가치가 크고 옛 시대상을 읽을 수 있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적 의의가 커서다. 경상북도는 낙동강 1300리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이 조선시대 주막의 복원 사업을 올해 안에 시작한다고 한다. 주막이 복원되면 사람들은 한갓지게 승용차와 관광버스를 타고 와 이 전근대의 풍경에 머물다 저 낡은 시절의 향수에 젖다 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만나는 것은 다만 한 시대의 모사와 재현일 뿐, 그 시절 사람들의 땀내와 피울음으로 얼룩진 한 시대의 고단한 삶은 아니리라. 삼강리를 떠나는데 누렇게 익어가는 벼논과 주변 무성한 코스모스 더미 너머 웅크린 주막의 모습이 아련히 멀어 보였다. 열린 방문으로 사람 좋은 넉넉한 미소로 나그네를 맞던 여섯 해 전 주모의 모습이 얼핏 스쳐간 것 같기도 했다.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삼강교 위에 차를 세우고 우리는 세 물줄기가 하나로 섞여 흘러가는 강물을 잠깐 동안 굽어보았다. 뒤척이며 흐르는 강물 저편에서 지난 세기의 시간과 역사도 흘러갔을 터였다. 그렇다. 삼강의 나루터와 주막에 모이는, 사람들의 오래된 그리움은 이 밀레니엄 시대에 여전히 우리의 마음이 넘지 못하고 있는 19세기, 그 전근대의 실루엣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daum 2008)
회룡포와 삼강주막 [記事] : 남도답사일번지 카페/ 예천 회룡포와 삼강주막/ 글쓴이: 오영석/ 2008.10.28 23:56/ [가을이 있는 풍경1] 예천회룡포와 삼강주막/ 회룡포는 경북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와 향석리 일대에 자리한 마을이다. 내성천이 마을을 휘감아 돌며 흘러 나가는 물돌이동으로 하천의 물은 낙동강과 합류한다. 이로 인해 ꡒ육지 속의 섬마을ꡓ로 불리우는데, 맑은 물과 백사장이 어우러진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라 많은 사진작가들이 몰려든다. 이곳은 드라마 ꡐ가을동화ꡑ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전국적인 관광명소가 된 곳이다. 가을동화의 초기장면을 찍은 곳으로 은서와 준서의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2005년에는 명승 16호로 지정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필자가 낙동강의 제1비경으로 꼽는 곳으로 대한민국의 최고의 물돌이동이라 할만하다. 회룡포는 그 면적이 약 28만3천 평에 이르며 의성포마을은 약 6만7천 평이다. 사실 회룡포 내부는 대부분 논으로 별다른 볼거리는 없다. 변변한 식당이나 편의점조차 없는 곳이다. 이곳에 간다면 내성천을 사이에 두고 회룡포와 마주한 비룡산(190m)에 들러야 이 일대의 멋진 전경을 한눈에 바라보기에 좋다. 비룡산에는 숲 속 등산로와 산책코스가 있으며, 신라시대 운명 선사가 세운 천년고찰인 장안사가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사찰 뒷산에는 팔각정의 전망대인 회룡대가 있어 회룡포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9월말에서 10월 중순 경 벼가 황금빛으로 익어갈 무렵이 가장 아름답다. 이곳에는 삼한시대부터 격전지로 유명한 원산성이 있으며, 주변에 많은 고분이 흩어져 있다. 내성천 위로 회룡마을에서 의성포마을로 가는 뿅뿅다리가 세워져 있어 사람이 건너갈 수가 있지만, 차로 가려면 한참을 돌아서 들어가야 한다. 뿅뿅다리는 영화 ꡐ엄마ꡑ의 촬영지였던 곳이기도 하다. 뿅뿅다리는 건축용 철판으로 만든 다리로 동그란 구멍이 있으며, 길이는 80m, 폭은 50cm 정도 되는데 두 사람이 비켜 지나가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다리를 건널 때 ꡐ뿅뿅ꡑ하는 소리가 나서 뿅뿅다리라 불리는데, 예전에는 아르방다리라 불리기도 했다. 여름철에 비가 많이 오면 다리가 물에 잠기는 것이 단점이다. 그리고 회룡마을에는 용주시비가 세워져 있어 문학의 향기도 만끽할 수 있다. 회룡마을 끝에 있는 삼거리의 산 능선에 자리한 용주시비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서 비룡산의 장안사와 회룡대, 봉수대, 원산성을 둘러볼 수 있다. 뿅뿅다리를 건너는 관광객. 2008년 가을에는 비가 많이 와 다리가 물에 잠길 듯 위태롭다. 용주시비에서 비룡산 산행을 시작하는 게 좋다. 용주시비에서 장안사까지는 1.7km, 장안사에서 회룡대는 300m 거리이다. 회룡대에서 바라보는 회룡포와 내성천의 조망이 가히 절경이다. 수확기를 맞은 황금들판이 바람에 넘실대는 풍경에 저절로 배가 불러온다.
이제 삼강주막으로 발길을 돌린다. 삼강이란 내성천과 금천, 낙동강 등 3개의 강이 만나는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예전에는 선비를 비롯한 장사꾼 등이 서울로 갈 때 주막 옆의 삼강나루터를 이용해 문경새재를 거쳐 올라가는 교통의 요충지였던 곳이다. 하지만 낙동강 위로 삼강교가 생기면서 나루터는 유명무실해졌다. 그 자리에 배가 아직도 남아 있어 당시의 번화했던 나루터를 추억할 뿐이다. 이곳의 삼강주막은 1,300리 낙동강 물길 위에 마지막으로 남은 유일한 주막이다. 주막 앞에는 500년이 넘는 느티나무가 버티고 있는 데다 낙동강이 흐르고 있어 운치가 넘친다. 이곳 역시 영화 [엄마]의 촬영지로 느티나무 아래에 자리한 2개의 평상은 영화 ꡐ엄마ꡑ에 나왔던 소품이다. 삼강교에 막혀 이곳에서 3개의 강이 만나는 장면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운 점이다. 삼강교에 올라서면 3개의 강이 만나서 흘러가는 모습이 한눈에 잡혀 시원스럽다. 마지막까지 주막을 지키던 유옥연 할머니는 2005년 10월 90세의 나이로 돌아가셔서 다소 썰렁한 기운이 돈다. 주막에는 할머니가 건물 벽에다 남겨놓은 외상값 표시가 상형문자처럼 남아있어 긴 여운을 준다. 주막은 경상북도 민속자료 134호로 지정되었으며, 지금은 복원해서 관광지화하였다. 삼강주막에서 삼강교 반대편 도로로 올라가 언덕 위에 서서 내려다보는 마을 풍경 또한 압권이다. 마을 앞으로 강이 유유히 흐르는 가운데 들판이 황금빛으로 물든 모습은 풍요로운 고향의 가을을 만끽하게 한다.
[맛집 & 추천숙소] : 용궁면 읍부리의 용궁시장 내에 자리한 단골식당은 순대국밥과 오징어불고기로 유명한 식당으로 가을동화 촬영팀이 식사를 했던 곳이다. 이곳에서 직접 만든 순대로 요리를 하며, 오징어는 연탄불에 석쇠구이를 해서 나온다. 보문면 우래리의 학가산(882m) 자락에 자리한 학가산우래자연휴양림(www.hakasan.co.kr)은 숲속의 집, 복합 산막, 취사장, 전망대, 야외탁자, 야영 테크, 물놀이 장, 어린이놀이터 등의 편의시설을 잘 갖추고 있다.
[교통정보] 자가운전 :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에서 빠져서 34번 국도를 따라 예천으로 간다. (서울이나 중부지방에서 접근시 예천IC에서 빠지는 게 거리는 가깝지만, 시간은 더 많이 걸린다.) 예천읍에서 문경방면으로 10km를 달리다 개포라는 이정표가 나오면 우회전한다. 이후 회룡포 이정표를 따라 6.5km를 더가면 된다. 대중교통 : 예천여고 앞에서 출발하는 용궁행 버스를 타고 향석초등학교 앞에 내려서 15분 정도 걸으면 회룡포다./ 국정넷포터 김정수/ <김정수 님>은 여행작가로 홈페이지 출발넷(www.chulbal.net)을 운영하고 있으며, 저서로 <남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섬진강>, <남성미가 넘쳐흐르는 낙동강>, <주말에 떠나는 드라마 & 영화 테마여행> 등이 있다. 일본어 번역판인 <韓國 ドラマ & 映畵ロケ地 紀行>이 출간되었다.(daum 2008)
회룡포와 삼강주막(回龍浦와 三江酒幕, 全國的인 觀光地로 脚光받아) [記事] : 회룡포와 삼강주막이 전국적인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용궁면 대은리 회룡포 마을을 보기 위해 비룡산 전망대에는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는데 빼어난 경관을 보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쉽게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있다. 회룡포는 태백산 능선의 산자락이 둘러싸고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큰 산에 가로막혀 크게 휘감아 돌며 빠져나가는 특이한 지형으로 한반도 최고의 물도리 마을로 전국에 알려져 있으며 2000년도 방영된 가을동화로 전국에 조금씩 알려진 후 요즘 전국적인 명소로 떠올랐다. 또한 풍양면 삼강주막에도 2009년 여름휴가 때보다 더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낙동강 700리 마지막 주막으로 남아있는 삼강주막은 내성천과 금천이 낙동강으로 합류되는 나루터에 1900년경에 지어진 작은 규모의 주막으로 70여년 세월동안 주막을 지키던 유옥연 할머니가 90세의 일기로 2005년 10월에 돌아가신 후 방치되어 있다가, 주막 부엌이 사방팔방으로 연결되는 편리성과 독창성, 그리고 부엌 벽면에 암각화처럼 빗금을 새겨 표시한 외상장부 등이 희소성과 문화적ㆍ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12월 26일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34호로 지정되고 2008년 1월에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해 운영되고 있다. 각종 방송과 언론보도를 통해 삼강주막이 낙동강에 남아있는 유일한 주막이라는 것을 알고 전국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은 배추전, 묵, 두부, 솔솔 불어오는 강바람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시면 취하는 줄을 모른다면서 오히려 풍경과 추억에 취한다고들 말하고 있다. 회룡포의 비경을 구경하고 삼강주막의 옛 정취를 느끼고자 찾아오는 관광객으로 인해 회룡포와 삼강주막은 이제 전국적인 관광명소로 부각되고 있다. 예천군 관계자는 “명승 회룡포를 개발하기 위해 제2전망대를 설치하고 원산성 및 등산로 정비, 회룡포마을 전선 지중화, 생태공원 조성 등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삼강주막은 나루터를 복원하고 나룻배를 띄우는 등 낙동강 생태문화공원을 조성하며 강 건너의 회룡포를 연결하는 흔들다리를 가설하는 등 낙동강의 역사와 문화를 느껴볼 수 있는 역사문화체험명소로 적극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醴泉인터넷放送 2009-09-19 오후 7:22:43)
회룡포와 삼강주막(박재완의 기찬 旅行_그림처럼 떠있는 ‘陸地 속 작은 섬마을’, 洛東江 1300里 물길따라 唯一의 '三江酒幕' 情趣 물씬) [記事] : 이달 중순께 지인으로부터 예천을 가자고 연락이 왔다. 엥!, 예천이 경상도 어느 위치에 있는지 궁금했다. 맞다. 오래 전에 교통이 썩 편하던 시절이 아닐 때 소백산을 오르려고 예천을 다녀온 기억난다. 그리고 광주에는 서향순 양궁선수가 있다면, 예천에는 김진호 선수가 있어서 그런지 정감이 갔다. 예천(醴泉)의 예자는 단술을 의미도 하지만, 맛좋은 샘물의 뜻하기도 해, 물맛이 좋아 술맛이 좋기로 이름난 고장이다. 때문에 예천에는 지명 유래와 비슷한 주천(酒泉)이라는 샘이 읍내에 있다. 회룡포(回龍浦)는 한반도 최고의 '물돌이’ 마을이다. 경북 봉화에서 발원한 낙동강 상류의 제1지류인 내성천(乃城川)이 350도로 마을을 휘돌아 흐른다. 나머지 10도마저 물을 둘렸더라면 ‘육지 속의 섬’이 되었을 것이다. 낙동강 줄기의 안동의 하회마을이나, 강원도 영월동강의 한반도 지형의 물돌이도 어느 곳이던 여기에 비교를 안 한 게 좋을 것 같다. 삽질 뚝딱이면 섬이 될 것처럼 보인 회룡포, 경주김씨 집성촌으로 40여 호 살았으나, 현재는 9호 20여명이 오순도순 살갑게 시골의 정감어린 표현을 하면서 살고 있다. 잘 다듬어진 돌담길이며, 집 뒤뜰에 열린 감나무며, 마당에서 수확한 콩을 도리깨질한 모습이 영락없는 어린 시절 엄마 손에 끌려 외갓집에 간 기분이다. 회룡포를 가는 길은 뿅뿅다리를 건너는 방법과 개포면 면소재지를 경유해 비록 돌아가지만 차량도 이용할 수 있다. 걸어도 손쉽게 마을로 들어가려면 구멍이 숭숭 뚫린 공사용 발판을 이어붙인 다리인 일명 ‘뿅뿅다리’를 건너야 한다. 이 다리를 건너면서 광주천에도 뽕뽕다리가 있었는데 근대화 물결에 사라져 아쉬움이 남는다. 이 다리가 생긴 것은 불과 20년 전이란다. 이름이 뿅뿅으로 붙은 이유는 공사용 발판을 이어붙인 다리를 물이 찰랑거릴 때 건너면 구멍으로 들고나면서 퐁퐁 소리가 났는데, 어는 기자가 이곳을 취재하러 와서 이 다리를 건너며, 동네분의 설명을 들었다. 그런데 경상도 사투리를 잘못 알아들어 뿅뿅다리로 기사화하는 바람에 졸지에 다리이름이 되었단다. 물길은 평상시 깊지 않아 바지를 걷어붙이고 물을 건널 수 있을 정도다. 마을 앞산인 비룡산에 오르면 회룡포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그 곳 전망대에서 회룡마을 보면, 아! 그래서 회룡포라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성천이 마을을 부둥켜안고 용틀임하듯 휘감고 돌아간다 하여 지었으며, 원래는 개울이 성처럼 둘러싸고 있다 해 의성포라 불렀는데, 이곳이 물돌이 마을로 유명해지면서 의성군에 가서 의성포를 찾는 웃지 못 할 일이 많아지자 군에서 ‘회룡포’란 의미 있는 이름의 개명 했다고 한다. 회룡포는 산과 강에 둘러싸인 '오지 중의 오지’였으며, 한때는 죄인의 임시 귀양처였고, 한국전쟁 때는 피난처이기도 했다. 비룡산에 오르면 통일신라 때 의상대사의 제자인 운명대사가 세운 장안사가 있다. 최근에 중수해 옛 모습은 남아 있지 않다. 호젓하게 자리한 장안사는 전망대를 찾는 많은 사람들에 비해 인기척 없는 조용한 사찰이다. 장안사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한 뒤 국태민안을 위하여 금강산, 양산, 비룡산에 세운 전국 세 곳의 '장안사' 중의 하나이다. 신라 경덕왕 때(759) '운명조사'가 건립을 하고, 고려의 문인 '이규보'가 이 절에 머물며 글을 지었다고 한다. 절 앞까지 승용차로도 오를 수 있으나 경사도 심하여 잘못하면 사고의 위험도 있어 아래 주차장에 차를 두고 20분 정도 걸은 것도 좋다. 장안사를 지나 400m를 더 오르면 회룡대(回龍臺)라는 전망대가 있다. 이곳에서 서면 경관에 입이 딱 벌어진다.
이곳은 최근 1박2일과 가을동화 유명세를 타 많은 내방객들이 끊임없이 찾고 있는 곳이다. 건너보이는 회룡포의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영월의 한반도 지형이나 안동의 하회마을보다 물돌이가 심한 회룡포는 삽질 몇 번으로 섬이 될 만큼, 말 그대로 육지속의 섬이라고 하여도 손색이 없다. 회룡대에서 바라보는 회룡포는 마을을 감싸 안은 내성천과 넓은 백사장이 조화를 이루는데, 봄철에는 유채꽃과 여름에는 논에 특수작물을 심어 모자이크 문형과, 가을에는 황금벌판의 모습과, 한겨울에는 눈이 소복이 쌓인 모래밭과 마을의 전경과 내성천을 휘감고 있는 산들과 어우러진 비경은 예천의 가장 큰 자랑거리이다. 경북 예천군 풍양면에는 세 물줄기가 모이는 곳이 있는데, 안동댐을 지나온 낙동강, 태백산에서 발원한 내성천, 죽월산의 금천이 한 곳으로 모이는 곳으로 '삼강' 이라고 부른다. 아주 먼 옛날에는 이곳을 지나 회룡포, 하회마을까지 소금배가 들어왔다고 하며, 이 삼강나루터는 경남 김해에서 올라오는 소금배가 경북 안동 하회마을까지 가는 길목이었고, 개나리 봇짐지고 강을 오르내리던 보부상의 휴식처요, 정보교환 처요, 먼 길의 여정을 풀며 하룻밤 유하던 안식처인 상강주막. 갈증 난 목을 탁배기 한 사발로, 허기진 배를 따듯한 국밥 한 그릇으로, 사람 사는 냄새가 푹푹 나도록 인정미 넘쳤을 것 같은 삼강주막은 문경새재를 넘어 서울로 가기 위해서 또는 영남대로를 가기위해서는 꼭 지나쳐 가야 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이곳에 다리가 놓여지고 차량으로 이동하다보니 나룻배를 타는 사람들이 줄어들어 15년쯤 전쯤에 나루터는 없어졌다. 하지만 이제는 삼강주막을 둘러보려는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이곳에는 약 500년 된 회화나무 밑에 ‘삼강리주막’을 유옥련 할머니가 1930년부터 이 시대 마지막 주모라 불리면서 주막을 운영하였는데 글도 숫자도 모르는 할머니가 주막 벽에다 적어놓은 외상장부를 살필 수 있다. 흔적이 희미한 상태로 부엌 흙벽에 칼로 금을 그었는데 세로로 짧은 금은 막걸리 한잔 긴 금은 한 됫박 외상을 다 갚으면 가로로 길게 그어 표시했던 지혜를 가지고 70여년을 삼강이 빤히 내려 보인 곳에 자리 했다. 이곳에 다리가 생기면서 마지막 주모는 서글픈 눈물을 한없이 흘렀다 한다. 2006년에 마지막 주모는 생에 끈을 놓고 지금은 뱃사공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관광객들이 주막에 앉아 술잔을 기울인다. 강가가 빤히 보이던 주막은 슬며시 올라간 강둑에 가려 나룻배는 보이지 않고 차가운 다리만 눈앞에 보이고 그 위로는 씽씽 거리고 달리는 차량행렬처럼 세월도 더불어 달려간다. 그 외 예천의 볼거리는 국보급 보물과 문화재를 있는 용문사가 있다. 자녀들과 함께 하는 곤충의 모든 것을 공부 할 수 있는 곤충생태체험관, 금당실 마을, 용궁항교, 예천천문우주센터, 진호국제양궁장, 예천충효관, 사괴당 등 볼거리가 지천이다. 먹거리는 용궁면 용궁장(2일,7일) 장터에서 파는 오징어와 순대는 일품이다. 장날이 아니면 용궁면 소재지에 있는 순대집도 있어 이용하면 된다.(무등일보 2011-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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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