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이곳은 군민 여러분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게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게재된 내용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건전한 통신문화 정착과 군민의식함양을 위하여 실명으로 운영되며특정인 비방, 광고, 음란물, 유사 또는 반복 게시물 등은 사전 통보없이 삭제됨을 알려드립니다.
※게시판의 건전한 운영을 위하여 "예천군 인터넷 시스템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6조" 에 해당하는 글은 사전예고 없이 삭제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에 의하여 처벌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글 등록시 제목이나 게시내용, 첨부파일등에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사업자등록번호, 통장계좌번호 등)는 차단되오니 기재를 금합니다.
예천의 자랑(3588) : 예천8경 중 회룡포(25)
---
회룡포와 삼강주막([綠色相生벨트 떠오르는 '醴泉'] (1)걷기 名所化) [記事] : 옛부터 물맛 좋기로 소문난 예천. 세 곳에서 흘러든 물줄기가 삼강리에서 만난다. 태백산에서 발원한 내성천, 죽월산(충북)의 금천, 그리고 안동댐을 지난 낙동강이다. '육지 속의 섬' 회룡포마을을 찾아 금빛 모래톱 비경을 감상하고 삼강리 낙동강 변 삼강주막에서 시원한 막걸리에 부침개를 맛볼 수 있다. 이런 지형적 장점을 배경으로 예천군이 만든 것이 바로 '삼강~회룡포 강변길'이다. 회룡포와 삼강주막을 연계하는 각종 개발사업과 삼강리 일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녹색문화상생벨트 사업에 대해 2차례에 걸쳐 싣는다. 낙동강과 소백산맥에 둘러싸여 있는 경북 내륙 예천. 그래서 어느 농촌지역보다 옛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안동 하회마을보다 강물이 마을을 휘감은 모습이 훨씬 더 그림 같다.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 회룡포마을은 낙동강 지류 맑은 내성천이 마을을 태극모양으로 에워싸고 있다. 영락없는 '육지 속 섬마을'이다. 하회마을에는 서애 선생의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지만 회룡포마을에는 그런 사대부의 거창한 유산은 없다. 하지만 고향의 정취가 그대로다. 그래서 더욱 시골맛이 나고 전형적인 농촌 냄새가 짙은 곳이다. 회룡포 가는 길은 용궁면 소재지에서 승용차로 10분 정도. 향석리 장안사 절 밑까지 승용차가 올라갈 수 있다. 차에서 내려 비룡산 등산로를 따라 5분이면 바로 비룡산 전망대에 이른다. 가슴이 탁 트인다. 회룡포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강 아래 백사장이 눈이 시리도록 깨끗하다. 회룡포를 휘감아 흐르는 내성천은 금천과 합치고 다시 낙동강을 만나 큰물이 된다. 삼강리(풍양면)는 바로 이 세 줄기의 물이 합쳐지는 곳이다. 하류에 영풍교가 놓인 후 나루터와 나룻배 뱃사공이 사라졌다. 요즘은 삼강주막에서 회룡대를 갈 수 있도록 하는 '비룡교' 다리 공사가 한창이다. 이 다리가 준공되면 삼강주막과 회룡포가 하나로 연결되는 새로운 관광명소가 된다. 변함없이 나루터를 지키는 1천300리 낙동강 유일한 주막집인 삼강주막. 110년 전통의 삼강주막 2대 주모였던 유옥연 할머니가 2005년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자 2007년 허물어져 가던 주막을 현대식으로 복원해 마을 부녀회에서 운영하고 있다. 배추전과 손두부, 메밀묵에 막걸리 등 한상차림의 가격은 불과 1만2천원, 단연 인기다. 주말이면 하루 평균 1천~2천여 명이 찾는 관광명소가 됐다. 예천군 장원호 관광개발담당은 "낙동강과 내성천변의 아름다운 생태자원과 역사, 문화자원의 특성을 최대한 살려 회룡포 일원을 제주도 '올레길'과 버금가는 녹색길로 조성하고, 인근 삼강주막과 연계해 예천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만들 계획이다"고 말했다. 예천군이 국가명승지인 회룡포와 삼강주막 등 낙동강과 내성천의 수변공간을 활용해 만든 것이 바로 '삼강~회룡포 강변길'이다. '삼강~회룡포 강변길'은 삼강주막에서 출발해 비룡교~사림골~용포마을~제1 뿅뿅다리~회룡포~제2 뿅뿅다리~용주시비~회룡교~성저교~성저마을~원산성~야외무대 및 광장~삼강주막으로 이어진다. 모두 13.65㎞로 4시간 정도 걸린다. 이 구간은 삼강주막과 용포마을을 잇는 비룡교가 내년 8월 완공되면 걸을 수 있다. 지금은 용주시비 앞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걸어보는 것이 좋다. 한 바퀴 돌아오는 데 4시간 정도 잡으면 된다. 갈림길 곳곳에 안내판이 갈 길을 알려준다.
용주시비 주차장에 내리면 가장 먼저 내성천 물줄기가 나그네를 맞는다. 강 건너에는 기암절벽 사이로 수많은 소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그 사이로 불어오는 강바람은 걷는 이의 가슴과 마음을 시원하게 한다. 폭 50m는 족히 될 만한 모래사장은 신발을 벗고 걸으면 더욱 좋다. 성저마을을 지나면 원산성 숲길이다. 원산성은 삼한시대부터 유명한 격전지 중 한 곳이었다. 돌과 흙을 쌓아올린 이 성 주위에는 많은 고분이 흩어져 있으며 봉수대가 남아 있다.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삼강앞봉 조망대에 이른다. 옛날 삼강나루를 오가던 보부상과 사공들이 허기진 배를 달래고 지친 몸을 쉬던 삼강주막이 삼강교 옆으로 조그맣게 보인다. 조금만 더 걸으면 비룡교 공사 현장을 지나고 탁 트인 야외 광장에서 능선을 조심스레 타고 사림재에 오른다. 사림재 아래 용포마을로 들어서자 다 쓰러져가는 집 한 채가 눈에 밟힌다.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물 건너 산비탈 마을에 터를 잡았으며, 이제는 휑하니 빈집만 남게 됐을까. 내성천을 건너서 회룡포마을로 들어가려면 '뿅뿅다리'를 건너야 한다. 공사장에서 임시 통로를 만들 때 쓰는, 구멍이 숭숭 뚫린 철판을 이어붙여 만든 다리다. 이 다리가 생긴 것도 20여 년밖에 안 됐다. 그전에는 바지를 걷어 올리고 물을 건너야 했다. 그처럼 오지였으니 한때 임시 귀향처로 쓰였을 법하고, 6`25전쟁 당시 피란처였다는 말도 이해가 된다. 인적이 없던 이 외진 곳에 사람이 들어온 것은 조선 고종 때. 경북 의성에 살던 경주 김씨 일가가 소나무를 베고 밭을 일구었다고 한다. 한때 이곳이 ‘의성포’로 불렸던 것도 그 때문이다. 육지 속 섬마을 회룡포를 바깥세상과 이어주는 두 개의 뿅뿅다리를 건너면 처음 출발했던 용주시비 주차장으로 돌아온다. 차에 오르기 전 '용주시비'라는 안내판을 따라 잠시 오르면 그곳에 구계(龜溪) 김영락(1831~1906)의 '용주팔경시비'가 있다. 한때 용주로 불렸던 용궁 일대의 절경 8곳을 노래한 것이다. 강변길보다 조금 힘든 코스지만 물과 산, 숲길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어 참살이를 추구하는 현대인에게 알맞은 맞춤형 길이 있다. 용주시비 주차장에서 출발해 장안사~회룡대~봉수대~원산성~삼강앞봉~의자봉~적석봉~사림봉~사림재~용포마을~회룡포~용주시비 주차장으로 이어진다. 모두 10.65㎞로 4시간이 소요된다. 이 길은 굽이치는 내성천과 회룡포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요즘 회룡포가 다시 유명세를 타면서 전국의 등산 동호인들이 앞다퉈 찾고 있다. 가는 구간 곳곳에 산악회 리본이 매달려 있는데 얼핏 봐도 10여 개는 넘는다. 관광 삼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장안사로 오른 뒤 회룡대만 구경하고 돌아선다. 하지만 그래서는 참맛을 알 수 없다. 다소 힘은 들지만 이 길을 걸어보는 것이 좋다. 용주시비 주차장에서 쉼터를 지나 가파른 시멘트 길을 걷다 보면 장안사 절 입구가 나온다. 여기서 다시 나무 계단길을 따라 400여m 오르면 회룡대에 도착한다. 굽이치는 내성천과 회룡포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을을 둘러싼 금빛 모래사장은 금방이라도 뛰어가 뒹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회룡대 난간과 기둥 곳곳에는 낙서가 가득하다. 연인들이 찾아와서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며 남긴 사연들이다. 이곳에서 사랑을 염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돌아가는 물줄기와 회룡포가 태극의 음과 양처럼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회룡포 바로 건너편에 야트막하게 자리 잡은 산 때문이다. 고만고만한 산봉우리 서너 개가 있는데, 그 가운데 산봉우리와 골짜기 모양이 영락없는 '♡' 모양이다. 봉수대를 지나 등산로를 따라가다 보면 낙동강, 내성천, 금천(錦川)이 합쳐지는 삼강을 굽어볼 수 있는 원산성 절벽이 나온다. 이어 삼강앞봉, 의자봉, 적석봉, 사림봉까지 능선을 내닫고 사림재를 통해 용포마을로 내려오고 내성천을 건너 회룡포마을을 지나면 다시 출발점인 용주시비 주차장에 도착하게 된다. 이 코스는 걷는 데 5시간이 소요된다.(권오석 記者 每日新聞 2011-12-28)
회룡포와 삼강주막(陸地 속 섬마을 휘감은 乃城川, '가을童話'의 浪漫을 품고…) [記事] : ‘가을동화’는 너무나도 예뻐서 슬프다. 가을이 무르익는 이맘 때는 이런 곳에 한 번쯤은 가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소백산 능선의 산자락이 둘러싸고,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 휘감아도는 육지 속 섬마을인 경북 예천군 용궁면 회룡포마을에서는 가을동화 속 낭만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2000년 TV 드라마 ‘가을동화’의 촬영지이기도 했다. 이 작은 마을은 한적한 전원 풍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아기자기한 산들이 감싸 안은 평야지대와 추수를 앞둔 황금빛 들녘은 그야말로 동화 속 마을이다.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예천IC에서 내리면 갈등이 생긴다. 회룡포 전망대(이하 회룡대)로 갈 것이냐, 회룡포 마을로 먼저 갈 것인가. 숲을 보고 나무를 보는 것이 순서. 회룡포의 전경을 보기 위해 전망대로 향했다. 비룡산 입구에서 산책로를 따라 전망대까지는 1시간 거리. 편한 길을 선택했다. 전망대 가는 길에 장안사가 있고 그 입구까지 차가 올라갈 수 있다. 그런데 가파르다. 앞차와 속도를 맞추기 위해 잠시 멈췄더니 차가 뒤로 ‘훅’ 밀린다. 초보운전이라면 권하고 싶지 않다. 주차장에서 전망대까지는 10분 정도 거리다. 장안사를 지나니 가파른 나무계단이 나타난다. 모두 232개의 계단. 다리가 후들거린다. 헐떡거리며 회룡대에 오르자 발밑으로 가을동화가 펼쳐진다. 산과 들의 사랑스런 어울림은 한 폭의 그림이다. 한 삽만 뜨면 섬이 되어버릴 것 같아 아슬아슬하다. 마을 중앙에 ‘곤충나라 예천’이라고 큼직하게 색깔별로 장식해 두었다. 생뚱맞다. 회룡포는 한때는 죄인의 임시 귀양처였으며, 한국전쟁기에는 피란처이기도 했다. 사람이 들어와 산 것은 조선 고종 때. 예천의 아랫마을 의성(경북 의성군)에 살던 경주 김씨 일가가 소나무를 베고 논밭을 개간했다. 회룡포는 비상하는 용처럼 물이 마을을 휘감으며 돌아나간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낙동강 지류 내성천이 남쪽으로 흘러가다 길을 막아선 비룡산을 만나자 350도 돌아나가며 거대한 육지 속 섬을 만들었다. 물길 끝에 뭍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형국이어서 아침 이슬처럼 금방 ‘똑’ 떨어질 것 같다. 전망대에서 내려오는 길에 산 중턱에 위치한 장안사에 들렀다. 학이 춤을 추듯 뭇 봉우리들이 힘차게 굽이치고, 구름을 담아 놓은 듯 비룡이 꿈틀거린다는 비룡산(飛龍山)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입구에는 ‘비룡산 장안사’라는 현판이 걸린 범종각이 하늘에 걸린 듯 서 있다. 장안사는 하천을 낀 절벽지형에 자리 잡고 있어 아슬아슬하다. 사찰 터가 넓지 않아 한눈에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작고 아담하다. 이 절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로 759년(신라 경덕왕 8년) 의상대사의 제자인 운명조사가 창건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국태민안을 염원하기 위해 금강산과 경남 양산, 국토 중간인 비룡산에 하나씩 모두 3개의 장안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범종각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가면 이내 중창불사의 흔적인 대불이 눈에 들어오고 회룡대로 오르는 나무계단이 나타난다. 큰 법당 앞에는 귀여운 두 사자상이 마치 희희낙락하며 무엇을 떠받치고 있는 것 같다. 한참이나 한눈을 팔았다. 장안사를 내려와서 회룡포 마을 구경에 나섰다. 이정표대로 가다가 갑자기 길이 끊긴다. 금빛 모래 강물이 조용히 흐르는 위로 놓인 뿅뿅다리를 건넜다. 걸으면 ‘뿅뿅’ 소리가 나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글쎄다. 강물이 깨끗해서 강바닥이 훤히 보인다. 어린 물고기도 구경하고 곱게 쌓인 모래도 만져보고 물놀이에 딱이다. 서늘한 날씨 때문에 상상만 해보았다. 비록 우회하는 길이지만 차를 타고 들어갈 수도 있다. 개포면사무소 앞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도로를 이용하면 된다.
회룡포마을에서 20여 분을 달리면 삼강주막이 나온다. 3개의 강이 만나는 삼강과 낙동강 1천300리 마지막 주막이다. 삼강주막의 ‘삼강’(三江)은 글자 그대로 3개의 물줄기가 모이는 곳. 강원도 황지에서 발원하는 낙동강과 경북 봉화로부터 흘러오는 내성천, 문경의 금천이 이곳에서 몸을 섞는다. 삼강주막은 삼강을 건너기 전인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에 위치하여 110년 전 문을 연 조선시대 주막으로 옛 정취가 물씬 나는 현존하는 마지막 주막이다. 옛날에는 경남 김해에서 올라오는 소금배가 경북 안동 하회마을까지 가는 길목이었고, 과거길에 나선 선비들이 문경새재를 지나 한양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었다. 70여 년 세월 동안 이곳을 지키던 유옥연 할머니가 90세의 일기로 2005년 10월에 별세한 뒤 방치돼 왔다. 그러다 2008년 1월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주막 옆에는 수령 500년 이상인 회화나무와 함께 들돌이 보존되어 있다. 들돌은 본래 체력을 단련하기 위하여 들었다 놓았다 하는 돌로, 장성한 농촌 청년들이 농부로서의 역량을 인정받는 의례에서 생겼다. 이곳에 있는 들돌은 나루터와 주막을 중심으로 물류의 이동이 늘어 인력이 많이 필요하게 되자, 이 돌을 들 수 있는 정도에 따라 일꾼들의 품삯을 정하는 데 쓰였다고 한다. 한 번 시도를 해봤다. 꿈쩍도 않는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힘이 장사였나 보다. 막걸리 한 주전자와 묵을 시켰다. 막걸리 한 주전자 5천원, 묵 3천원. 양이 푸짐하다. 서너 잔을 마셨더니 취기가 오른다. 세상 시름을 잠시 잊는다. 주막 마루에 큰 대자로 누웠더니 가을 하늘이 이불처럼 포근하다. ◆대구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서안동IC에서 빠져 예천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회룡포를 알리는 이정표가 곳곳에 나타난다. 내성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지나 장안사·회룡대 이정표를 따라 오른쪽 길을 잡으면 이내 장안사 턱밑 주차장에 닿는다. 중앙고속도로 예천IC까지 가기보다 앞서 만나는 의성IC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오는 것이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이다.(최창희 記者 每日新聞 2012-10-03)
회룡포와 삼강주막(“따뜻한 봄날, 回龍浦 綠色길 거닐며 힐링하세요” : 醴泉郡 觀光客 誘致나서) [記事] : 내성천 물줄기가 350도 휘휘 감아 돌다가 만들어진 육지 속의 섬마을 회룡포. 예천군 용궁면 회룡포는 대한민국 최고의 물돌이 마을로 아름다운 비경과 바람이 잘 어우러진 곳이다. ♦장안사·원산성·삼강주막 등… 역사 품은 관광명소 `인기` : 사랑의 자물쇠로 사랑고백·뽕뽕다리서 낭만과 추억 만끽/ 용궁면소재지를 비껴 6분 정도 내달려 내성천으로 통하는 회룡교를 건너면 자연의 신비를 간직한 회룡포가 속내를 활짝 드러내고 반긴다. 회룡포의 아름다운 녹색길은 용주팔경시비가 서 있는 곳에서 시작된다. 이 시비에는 조선 후기 이 고장 출신 은둔 시인 구계 김영락(1831~1906)이 용주팔경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가 새겨져 있다. 포금산의 밝은 달, 무이의 맑은 바람, 금강(천)의 고기 잡는 불빛, 와우산의 낙조, 비룡산에 걸친 구름, 천축산 저녁 종소리, 말운산의 나뭇꾼 소리, 훤이들의 벼꽃 등 담겨진 내용을 읽게 되면 옛 선현들의 자연에 대한 사랑과 아름다운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산새들의 아름다운 멜로디와 내성천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면서 걷다보면 어느새 비룡산 주능선 바로 아래에 자리 잡은 장안사에 도착한다. 장안사는 신라시대에 지어진 전통 사찰로 규모가 아담하고 숲으로 둘러쌓여 포근하고 들판과 구릉 같은 산들이 평화롭게 내려다 보여 시원함을 준다. 장안사에는 고려시대 문신으로 동국이상국집을 지은 이규보(1168~1241)가 장안사에 들러 읊었던 시 한 수가 80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남아 전해지고 있다. 장안사에서 5분쯤 올라서면 비룡지릉의 하트 모양 산을 배경으로 사랑의 자물쇠를 채우는 곳에서 사랑의 언약을 한 후 회룡포의 그림 같은 전경을 배경삼아 렌지 속에 담을 수 있는 전망대에서 추억의 사진 한 장을 만든다. 이곳은 문화체육관광부가 “2012 사진 찍기 좋은 녹색 명소”로 선정한 곳이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섬 안에는 9가구 20여명이 집성촌을 이루며 옹기종기 모여 생활하고 있다. 이 마을의 유일한 길은 바람이 숭숭 뚫리는 철판이 두 줄로 길게 놓여져 있으며 이를 두고 `뿅뿅다리`라 한다. 이 뿅뿅다리는 가을동화 드라마 속 주인공 은서와 준서가 어린시절 뛰놀던 추억의 장소이다. 산행을 마치고 강으로 내려가 신발을 벗고 맑은 강물을 따라 고운 백사장을 걷는 낭만도 만끽해 보고 회룡포로 들어가는 뿅뿅다리도 건너고 맑고 깨끗한 강물에 들어가 강수욕도 할 수 있는 즐거움도 맛볼 수 있다. 회룡포를 구경하고 지척에 있는 정상에 올라 둘레 3.7m, 높이 2.7m인 정방형의 봉수대를 관람하고 작은 봉우리와 능선을 넘어 삼국시대 격전지인 원산성을 관람해 보는 것도 색다른 의미가 있다. 이 성은 둘레 920m, 높이 1.5~3m로 흙과 돌을 섞어 쌓은 토석 혼축성, 따뷔성, 또아리성이라고도 불린다. 이 성은 낙동강과 금천, 내성천이 합류하는 삼강이 배수진을 치고 있고 가파른 지형으로 되어 있어 사방을 손바닥 보듯이 조망할 수 있는 천연 요새 삼한시대 마한이 이 성에서 백제에 멸망하였고, 그 이후에도 신라, 백제, 고구려의 접경지에 위치한 탓에 격전이 잦았다고 성 안내판에 기록되어 있다.
회룡포를 둘러본 후 1시간정도 산림욕길을 따라 걷다보면 낙동강 700리에 마지막 남은 삼강주막이 나온다. 낙동강 물길이 내성천과 금천을 만나 어우러지는 곳이라 해서 삼강(三江)이라 불리는 이곳은 1950년대까지만 해도 대구와 서울을 잇는 단거리 뱃길로, 낙동강을 오르내리는 소금 배와 집산된 농산물이 모두 이곳으로 모여 삼강주막은 봇짐장수, 방물장수로 붐볐다. 그러나 1970년대에 도로가 뚫리고 낙동강 물줄기 위로 다리가 가로질러 놓이면서 이곳은 점차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고 주막과 주모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져 갔지만 주모는 2005년 90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70년간 주막을 지켰다. 글도 숫자도 알지 못했던 주모는 그만의 독특한 장부로 외상을 관리 했는데 그것이 바로 부엌 벽에다 칼금을 긋는 것! 한 잔을 외상하면 짧은 금, 한 주전자를 외상하면 긴 금을 세로로 그어 놓았다가 외상값을 죄다 갚으면 옆으로 길게 금을 그어 외상을 지웠다고! 지금도 주막 흙벽에 그을음과 함께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산책길을 걷다 배가 고프면 삼강주막 평상에 앉아 `주모 한상 차림`을 먹거나 전국 식도락가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오징어불고기와 용궁순대, 순대국밥 한 그릇으로 지친 심신을 채우면 된다.(鄭安鎭 記者 慶北每日新聞 2013.04.29)
회룡포와 삼강주막(陸地 속의 섬② 醴泉 回龍浦, 流麗한 물굽이의 전형 : 乃城川이 휘돌아 가는 醴泉 回龍浦) [記事] :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물굽이 마을로 알려진 예천 회룡포. 위에서 내려다보면 내성천이 유려한 곡선을 그린다. 물의 흐름을 롤러코스터의 선로에 비유하자면, 예천 회룡포(回龍浦)는 가장 무섭고 짜릿한 구간이다. 그만큼 곡류의 정도가 심하고, 사행천과 물굽이의 지형적 특성이 극적으로 나타난다. 무섬마을을 통과한 내성천이 산허리를 끊임없이 깎아낸 탓에 회룡포와 육지는 끊어질 듯, 말 듯 가느다랗게 이어져 있다.(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예천 회룡포의 뿅뿅다리 : 회룡포 마을에는 철제 발판을 엮은 다리인 '뿅뿅다리'가 놓여 있다. 발판의 동그란 구멍으로 물이 솟아오르는 모습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현재도 찾아가기 녹록지 않은 곳이지만, 여름철에 호우가 내리면 발이 묶일 수밖에 없는 회룡포는 과거부터 외딴 오지였다.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가 여의치 않아 단종의 유배지였던 영월 청령포처럼 선비들의 귀양처로 활용됐다. 그러다 조선시대 말엽에 회룡포에서 멀지 않은 의성에 살던 경주 김씨 일가가 이주해 전답을 일구고, 마을을 이뤘다. 그들은 고향의 지명을 따와 '의성포(義城浦)'라고 부르며 생활했다. 하지만 예천에 속해 있는 지역을 '의성포'라고 하면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이유로 10여 년 전에 '회룡포'로 개칭됐다./ 예천 회룡포 마을 풍경 : 물굽이 마을인 예천 회룡포 마을의 돌담길. 회룡포는 의성에 살던 경주 김씨 일가가 이주해 오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본래 '의성포'라고 불렸는데, 10여 년 전 '회룡포'로 개칭됐다. 무섬마을처럼 회룡포 마을에도 내성천 위에 외나무다리가 가로놓여 있었다. 그러나 내구성이 약한 나무다리가 낡아지면서 1997년 철제 발판을 엮은 새로운 다리를 만들었다. 발판의 둥그런 구멍으로 물이 솟아오르는 모양새 때문에 이른바 '뿅뿅다리'라고 일컬어진다. 본래는 '푱푱다리'라고 했으나, 언론의 오기가 널리 퍼지면서 '뿅뿅다리'가 됐다고 한다. 지금 회룡포 마을에는 뿅뿅다리가 두 개 있는데, 주차장과 연결된 첫 번째 다리의 풍경이 더욱 좋다. 회룡포 마을은 평범한 농촌이자, 영락없는 시골이다. 중심부에 군집해 있는 건물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농토이다. 오붓한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돌담과 정자, 송림을 만나게 된다. 햇살을 받아 일렁이는 강물과 깨끗하게 반짝거리는 은모래도 인상적이다. 사방이 산에 둘러싸여 있어 아늑하고 편안하다. 洛東江 唯一의 酒幕, 醴泉 三江酒幕 : 낙동강과 내성천, 금천 등 세 개의 강이 합수하는 지점에 위치한 삼강주막의 모습. 과거에는 김해에서 출발한 배가 새재를 넘기 전에 들르는 장소였다. 회화나무 아래서 막거리와 파전 등을 맛볼 수 있다. 경치가 빼어나고, 정감이 느껴지는 회룡포 마을은 향수를 달래고, 사색을 즐기기에 적합한 곳이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토마토, 포도, 옥수수를 수확하는 농촌 체험 활동도 할 수 있다. 회룡포 마을 인근에는 삼강주막과 장안사 등 함께 둘러볼 곳도 많다. ▲ 숙소와 먹을거리 = 회룡포 마을 내의 민박이나 주변 도시의 숙박시설을 이용한다. 회룡포에는 식당이 많지 않다. 인근의 용궁면에는 순댓국과 오징어 불고기를 내놓는 음식점이 몰려 있다..(이진욱 記者 聯合뉴스 2014.1.13)
회룡포와 선몽대(배우고 때로 익히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記事] : 2008년 7월 23일부터 25일까지 문화재청에서 실시하는 < 자연유산 다시보기 > 교육에 참여했다. 문화유산에 대한 지식은 어느 정도 갖춰져 있는데 자연유산에 대한 지식은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아 공부를 해보자는 생각에서다. 사실 자연과 문화라는 것이 무늬와 모양은 다르지만 그 뿌리는 같다. 자연이 땅을 딛고 일어선 것이라면, 문화는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이 대전의 천연기념물센터에서 있기 때문에 오래 간만에 기차를 탔다. 차를 몰고 가면 자연이 잘 안 보이지만 차를 타고 가면 자연이 잘 보이는 법이다. 1시간 45분 정도 철길 옆으로 펼쳐지는 경치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23일에는 강의식 교육이 있고, 24일과 25일에는 삼척과 영월로 현장 답사를 떠나는 것으로 되어있다... 자연유산이라는 큰 카테고리 속에 천연기념물, 명승, 천연보호구역이라는 세 가지 하위 개념을 두고 있다. 명승은 자연경관과 문화명소로 대별된다. 산악, 고원, 화산, 하천, 해안, 도서 등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이 그 첫째다. 둘째는 동식물의 서식지로서 가치가 있고 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셋째로는 역사 문화적 가치가 뛰어난 명소로 자연과 어우러진 경승지가 명승에 해당한다. 우리나라 명승 제1호는 강릉시에 있는 청학동 소금강이다. 그리고 제2호는 거제도의 해금강이다. 이들은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에 해당한다. 명승 제41호인 순천만은 동식물의 서식지로 경관이 뛰어난 곳에 해당한다. 이곳은 갯벌과 갈대밭이 어우러진 해안 경승지로 흑두루미와 저어새 등 희귀조류가 서식하거나 월동을 한다. 예천에 있는 회룡포와 선몽대 일원이 명승 제16호와 제19호인데 이들이 바로 역사문화적 가치가 뛰어난 명승이다. 회룡포는 내성천이 휘감아 돌면서 이룬 경승지이다. 회룡포 아래 삼강리에서 내성천과 낙동강이 합쳐진다. 이곳에는 유명한 삼강 주막이 있다. 선몽대는 퇴계 이황 선생의 조카인 우암 이열도(1538-1591)가 1563년 세운 누대이다. 이곳에서 선비들은 문장을 주고받으며 호연지기를 펼쳤다. 선몽대 주변에는 아름다운 숲이 조성되어 있고 그 앞으로는 내성천이 흘러 자연과 인공이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이상기 記者 오마이뉴스 2008.07.31 10:11)
회룡포와 용궁향교 [記事] : 귀연산우회 카페/ 충효의 고장 예천 기행-회룡대와 용궁향교 / 글쓴이: 靑山/ 2009.06.10 14:25/ 대전-상주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려 북상주를 벗어나면 잘 닦인 자동차 전용도로를 타고 문경을 지나 예천으로 향한다. 예천 초입 용궁면소재지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10여분 달리면 회룡교가 나온다. 회룡교를 건너 우측으로 산 중턱 장안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경내를 둘러본 후 조금 오르면 쉼터에 아미타대불이 자리잡고 있다. 비룡산에 있는 장안사는 신라가 삼국통일한 후 국태민안을 염원하면서 전국에 세운 세 개의 절 중 하나다. 북쪽의 금강산과 남쪽의 양산 그리고 이곳 용궁 장안사가 바로 그것이다. 신라 경덕왕 때(759년) 운명대사가 창건하였고, 세월이 지나면서 중창이 거듭되었다.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가 이곳에 머물며 시를 쓰기도 했는데 유구한 역사의 향기와 천혜의 자연 경관이 어우러져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종각을 지나 쉼터의 아미타대불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갈림길이 있는데 좌측에 회룡대가 있다. 회룡포를 조망하는 장소로 제격인 회룡대는 사시사철 변하는 경관을 감상하고 사진 촬영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성능 좋은 카메라로 한창 촬영에 열중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보기 좋다. 촬영 장소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근사한 모습을 담으려는 분주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카메라에 힘이 들어간다. 내성천을 용이 휘돌듯 한 바퀴 감돌아 금천, 낙동강과 만나는 이곳 지형이 용궁이라 부르는 이유도 회룡대기에 표현된다. 회룡대에 붙어 있는 회룡대기(回龍臺記)에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회룡대에서 오솔길 따라 오르면 원산성에 이르는데 이 산성은 삼국시대와 후삼국시대에 영웅(英雄)들이 각축하던 용주성(龍州城)이 여기이고 또 바람결에 풍경소리 울리고 독경 소리 은은한 이 언덕의 장안사에 머물던 고려의 대문호인 백운 이규보가 낙동강에서 뱃놀이하고 낙강범주(洛江泛舟)라는 유명한 시를 남겼을 만큼 시인 묵객의 발길이 예부터 이어지는 곳도 바로 여기 회룡포이다.」 또한 회룡포 안내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도 있다. ꡐ옛 사람들은 신선이 사는 꽃 피고 새 우는 아름다운 땅에 금은으로 꾸민 궁궐을 이상 세계로 그리며 살았으니 그 곳이 바로 이 고장이라 하여 용궁이라 이름 지었다라고 한다. 이곳은 주흘산, 팔공산, 학가산의 줄기가 한곳이 되는 곳이며, 또한 금천, 내성천, 낙동강이 함께 만나서 흐르는 삼산삼수(三山三水)의 고장으로 알려져 있다.ꡑ「회룡포는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용이 비상하는 것처럼 물을 휘감아 돌아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높이 190m의 비룡산을 다시 360도 되돌아서 흘러가는 육지 속의 섬마을이다. 맑은 물과 백사장이 어우러진 천혜의 경관을 가지고 있으며, 비룡산에는 숲속 등산로와 산책 코스가 있다.
회룡대에서 다시 무제봉에 올라 조금 가면 비룡산 봉수대가 있는데 동쪽으로 예천읍의 서암산, 서쪽으로 다인의 소이산, 북쪽은 산양의 가불산 봉수와 연락하였다고 한다. 고려 의종 3년(1149)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1895년 봉수제도의 폐지로 없어진 것을 다시 복원한 것이다. 소나무 숲을 지나 능선을 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종주 산행을 위한 코스와 제2 전망대로 가는 길이 이정표에 표시되어 있다. 우측은 원산성을 지나 삼강앞봉을 거쳐 의자봉, 적석봉, 사림봉을 돌아 사림재를 거쳐 회룡마을로 돌아오는 코스이다. 잠시 제2전망대로 향하여 조망을 본 후 다시 돌아와 원산성을 향한다. 원산성에 대한 기록은 몇 곳에 전하는데 회룡대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이 산에는 신라시대의 고찰인 장안사가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으며, 비룡산 등산로를 따라 가다 보면 낙동강, 내성천, 금천이 합쳐지는 삼강이 보이는데 깎아지르는 듯 한 이곳에는 삼한시대부터 격전지로 유명한 원산성이 있다. 천혜의 요새로 된 토석혼축으로 된 성 주변에는 많은 고분이 흩어져 있으며 봉수대가 남아 있다. 백제 시조 온조가 남하할 때 마한 최후의 보루인 이곳 원산성을 점령한 후 백제를 세웠다고 전해지며 삼국사기에 의하면 상당 기간 백제의 요새로서 삼국이 충돌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 얼마나 격전이 심했던지 지금도 피끝이라는 언덕에는 비가 많이 오면 성 아래 마을인 성저 마을에 아비규환과 원혼의 소리가 들려온다는 전설이 있다. 고구려 온달장군이 이 성을 점령하려고 남하하다가 아차성에서 전사하였다고 하지만 정확한 사실이 밝혀지지는 않고 있다.」 원산성은 둘레 920m, 높이 1.5~3m로 흙과 돌로 섞어 쌓은 토석 혼축성이다. 따뷔성, 또아리성이라고도 불리는 이 성은 원형으로 쌓았다하여 삼국사기에 원산성(圓山城)으로 기록되어 있다. 원산성은 문경의 금천, 영주의 내성천, 태백의 낙동강이 합류하는 삼강을 배수진으로 하고 가파른 지형을 이루며 사방을 일목요연하게 조망할 수 있는 천연요새이다. 삼한시대 마한이 이 성에서 백제에 패함으로써 멸망하였다. 그 후로도 신라, 백제, 고구려의 접경지에 위치한 탓에 격전이 잦았으며 성에는 세 곳의 샘과 한 개의 군창이 있으며, 성 주위에는 고분이 많았다고 한다. 원산성을 용주성이라고도 하는데 지명을 따서 지어진 이름이다. 회룡포가 있는 이곳의 지명이 용궁(龍宮)인데 서라벌의 축산이다가 고려 초에 용주가 되고, 현종 3년인 1012년부터 용궁이 되어 지금까지 천년동안 용궁으로 불리고 있다.
본 페이지의 관리부서는 홍보소통과전산정보팀(☎ 054-650-6073)입니다.
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