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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3597:예천8경 중 삼강주막(3)(祝박지민,김태회/예천방문1,102)
작성자장병창 @ 2014.04.01 06:14:32

  예천의 자랑(3597) : 예천8경 중 삼강주막(3)(附 박지민(예천초)와 김태회(동부초), 28일 경북소년체전에서 대회 신기록 수립...축하합니다/예천방문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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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강주막(20世紀의 追憶 : 醴泉 豊壤 三江나루터, 아직도 그 자리엔 낡은 酒幕 한 채 외롭게…) [記事] : 3개의 강이 만나는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나루터. 강가에는 낡은 주막 한 채가 외롭게 서있다. 100년도 넘은 주막이다. 자그마한 방 2개와 부엌, 손바닥만한 마루가 전부다. 예전 수첩을 뒤졌다. 8년 전 나루터 앞에서 주막을 했던 '마지막 주모(酒母)' 유옥연 할머니와 인터뷰한 자료를 찾기 위해서다. 아직도 할머니의 모습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2년 전 90세의 나이로 돌아가셨지만 그때만 해도 정정했다. 맑고 푸근한 얼굴에 마음씨가 좋았다. 당시 대낮이었는데도 동네 노인들이 주막 마루에 걸터앉아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모두 술에 취해 벌게진 얼굴로 할머니와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끊임없이 안주 주문을 했다. 할머니는 취객들의 짓궂은 장난에도 인상 한번 찡그리지 않았다. 별 말 없이 웃기만 했다. 기자는 여든네 살 된 주모의 처신에 적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때 할머니는 50년 넘게 주막을 지키고 있었다. 할머니는 "30년 전만 해도 막걸리가 없어 못 팔았어. 하루 5말도 더 나갔지. 마당에는 서울로 팔려가는 소가 가득했고 장꾼들이 둘러앉아 떠들썩하게 막걸리를 마셨지."라고 했다. 할머니는 "나이가 먹어 아들, 딸네집에 가 있어도 이곳 생각이 나 하루, 이틀 만에 돌아온다."고도 했다. 할머니는 가고 주막만 남아 있다. 아무도 살지 않으니 썰렁하기 짝이 없다. 주막(경북 민속자료 제134호)은 보존된다지만 사람의 정이 그립다.(每日新聞 2007년 04월 06일)

 

  삼강주막("[文化藝術 踏査記 30選] <26>옛집의 香氣, 나무") [記事] :《(해미읍성에서) 두 나무의 실제 간격은 몇 걸음밖에 되지 않았지만 두 나무 사이에 놓인 삶의 거리는 아득하다.…그때 느티나무는 호야나무에 묶여 고통 받던 교인들을 어떻게 외면했을까. 아마 두 눈을 질끈 감고 귀를 막아야 했을 게다.…이렇듯 두 그루의 나무는 엇갈린 운명 속에서 삶을 이어 왔고 지금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서 있다.》 흔히 ꡐ나무처럼 살고 싶다ꡑ고들 말한다. 삶이 고단하거나 버겁다고 느낄 때 더 그렇다. 우리 눈에 비친 나무는 항상 꼿꼿하게 제자리를 지키며 굳건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무의 한살이를 꼼꼼하게 지켜본 사람이면 그런 말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안다. 겉으로는 당당하고 의연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나무도 제 딴에는 힘겨운 삶의 굴곡과 매듭들을 힘겹게 그러나 당당하게 헤쳐 가며 살고 있다. 나무는 알면 알수록 우리네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렇게 나무의 삶은 우리에게 삶의 태도와 방법을 묵묵히 가르친다. 그래서 나무는 특히 고맙다. 저자의 차를 타고 함께 천리포 수목원에 간 적이 있다. 자그마한 체구의 그에게 덩치 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크게 느껴져서 날렵하고 가벼운 차가 낫지 않으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온 나라 구석구석을 찾아다녀야 하고, 때론 거친 들판과 좀처럼 사람을 들이지 않으려는 자연의 숨은 곳을 찾으려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의 차는 불과 3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이 10년은 탈만한 거리를 이미 훌쩍 넘기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그렇게 불러냈는지 궁금했다.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고 무작정(옆에서 보기에는 그랬다) 온 나라를 뒤지며 나무 순례를 하는 걸 보고는 무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식물학자도 아니고 그 방면에 전문가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저 잠깐 머리 식히는 일이겠거니 했던 일이 한 해가 지나고 다시 서너 해를 넘길 때쯤 돼서야 그가 새로운 주제에 삶을 송두리째 걸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땅의 늙은 나무들에 대한 그의 순례는 구도자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그저 나무에 대한 사랑과 삶에 대한 겸손함에서 온 것이라는 걸 이제야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다. 이 책은 옛 건축물과 함께 살아 온 나무들을 직접 보고 어루만지면서 그 감동적인 느낌을 옮겨 놓은 나무와 역사 답사기다.

 

  가장 한국적인 정원으로 평가받는 전남 담양군 소쇄원의 소나무, 19세기 조선 최고 지성의 흔적이 남아 있는 충남 예산군 추사 김정희 고택의 백송(白松), 이 땅의 마지막 주막인 경북 예천군 삼강주막 옆의 회화나무 등등. 이 나무 답사기는 지금까지 그가 펴낸 여러 권의 나무 관련 책들과 조금은 다르다. 무엇보다 ꡐ더불어 산 나무ꡑ에는 그 나무와 함께 그 집, 거기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다솜한 역사까지 넘침도 모자람도 없이 잘 어울려 있다. 관념으로 쓴 글이 아니라 힘겹게, 그리고 여러 번 찾아가 직접 보고 느끼고 익혀 두었던 게 따뜻한 그의 시선으로 되살아난 것은 분명 고마운 일이다. 그는 나무가 있어 행복할 것이다. 또 나무는 그가 있어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그 나무의 속내를 전해 주는 책이 있어 우리는 함께 행복하다. <김경집 가톨릭大 敎授 哲學>(東亞日報 2007년 5월 11일 (금) 05:30)

 

  삼강주막(이 時代 마지막 酒幕, 三江酒幕 : 洛東江邊 110餘年 風霜 간직, 슬래트지붕 外 옛 모습 그대로) [記事] : 흔히 낙동강을 1300리라고 말한다. 강원도 태백의 황지연못에서 발원하여 부산 앞 바다까지 이르는 말이다. 이 1300리 길은 얼마나 많은 애환들을 간직하고 있을까? 물론 기쁨도 있을 것이고 또한 숱한 슬픈 사연들도 있을 것이다. 그 1300리 머나먼 길목에 우리를 전설 속으로 끌어들이는 듯한 주막이 있다. 기쁨보다는 왠지 슬픈 사연이 더 많을 것 같은 초라하게 홀로 서 있는 주막. 낙동강 변 이 시대의 마지막 주막이라고 일컬어지는 곳, 바로 '삼강주막'이다. 이 주막을 보는 순간 마치 세월이 멈춰선 듯 이 시대와 너무나 먼 것 같은 옛 모습에 그만 숨이 막힌다. 1900년 전후에 생긴 삼강주막은 예천 용궁면과 풍양면이 만나는 낙동강 곡류점 내성천과 금천이 낙동강으로 합류되는 강변에 있다. 이곳은 삼강나루의 나들이객과 낙동강을 이용하는 소금배, 보부상들의 숙식처, 또는 시인이나 묵객들의 음류 마당으로 이용되어 온 곳이다.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166-1. 삼강주막의 주소지이다. 삼강은 내성천과 금천․낙동강이 합류하는 곳이라서 붙은 이름으로 주변 경관이 아름답고 맑은 물과 넓은 백사장이 어우러져 있다. 예로부터 이곳은 서울로 가는 길목으로 장사하던 배들이 낙동강을 오르내렸고, 문경새재를 가기 전에는 이곳 삼강 나루터를 꼭 거쳐 갔으며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여 상거래가 번성했다.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주막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으며 그 옆에는 5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힘센 장정 두세 명이 밀어붙이면 곧 넘어갈 것 같은 90여 년이 다 된 흙벽의 15평정도 조그마한 주막이 쓰러질 듯 서 있다. 예전에는 초가지붕이던 것을 강에서 불어오는 심한 바람 때문에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에 슬레트 지붕으로 바꾼 것 외에는 예전 그대로라고 한다. 두 칸짜리 작은 방과 부엌 하나가 전부다. 이제는 집 뒤로 보이는 새로 난 다리가 삼강나루를 대신하고 있다. 나루가 없어진 삼강 나루터의 주막에선 지금까지 역사를 지켜보시던 유옥연(90) 할머니께서 2005년에 돌아가시고 주인 잃은 주막만이 기울어진 벽에 의지해 쓸쓸히 자리하고 있다.(日刊스포츠 2007.6.6)

 

  삼강주막(洛東江 奉化에서 尙州까지 : 龜尾 直前까지 1級水 維持) [記事] : 봉화 석포에서 태백산 눈꽃열차로 유명한 승부역을 지난 낙동강은 울진군과 봉화군의 경계를 이루며 구불구불 흐르다 영양군 일월산(1218m)에서 발원한 광비천을 만나 현동으로 내려간다. 이 물줄기를 보려면 승부역에서 석포 쪽으로 다시 나와 31번 국도 늦재를 넘어야 한다. 여기서 울진 방면으로 난 36번 국도를 타고 분천역으로 들어가면 낙동강 본류를 다시 만날 수 있다. 울진군 서면 광회리에서 북쪽 고개를 넘으면 간이역사도 없는 양원역(봉화군 소천면 원곡리)으로 갈 수도 있고, 80년대까지 세계 최남단 열목어 서식지였던 울진군 서면 전곡리 골포천을 볼 수도 있다. 길은 험하지만 대부분 포장도로로 이어진다. 낙동강 본류로 그냥 내려가려면 봉화군 소천면 현동리에서 울진 쪽으로 36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관암 제2터널 직전에서 오른쪽 소로로 내려서면 된다. 이 길에서도 끝까지 낙동강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봉화군 재산면 경계에서 낙동강은 모든 자동차길과 기차길을 버리고 홀로 15km를 흘러 은어낚시로 이름난 봉화군 명호면으로 들어간다. 명호를 지난 낙동강은 퇴계 선생이 천하의 비경이라 칭찬했던 청량산길로 이어진다. 청량산을 지난 낙동강은 낙동강 수계에서 제일 큰 담수호인 안동호를 지나 임하댐에서 내려오는 반변천을 만난다. 안동시는 안동호와 임하호라는 거대한 인공호수 바로 밑, 두 하천의 합수지점에 자리한다... 안동을 지난 낙동강은 병산서원과 하회마을을 휘돌아 ꡐ구담습지ꡑ로 흘러든다. 구담습지는 안동댐과 임하댐으로 가로막힌 낙동강이 습지를 만들어 스스로를 지켜가는 현장이다. 수많은 물고기와 식물들이 살아가는 구담습지를 지나는 동안 낙동강은 다시 맑은 빛을 되찾아 하류 예천으로 흘러간다.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는 낙동강과 내성천, 금천이 만나는 곳이다. 이 세 강의 물뿌리는 모두 백두대간에 닿아 있다. 낙동강 본류는 백두대간 싸리재(1268m․태백시)에서, 내성천은 구룡산(1345m․봉화군)에서, 금천은 대미산(1115m․문경시)에서 발원한다. 옛날 삼강나루는 남쪽에서 문경새재를 넘어 서울로 가던 나그네들과 강을 건너는 소들로 늘 북적였다고 한다. ◆우리나라 마지막 주막, 백년주막 = 여자들이 술을 팔던 작부집도 3곳이나 있었다는데 지금은 그저 조용한 강변마을일 뿐이다. 2004년엔 예천군 풍양면과 용궁면을 잇는 새 다리가 놓였다. 2004년까지 이곳 삼강나루엔 우리나라에서 마지막 남은 ꡐ백년주막ꡑ이라는 주막집이 있었다. 유옥련(2004년 88세로 작고) 할머니가 50년 넘게 지켜왔던 이 주막집은 나루가 사라진 뒤에도 동네 노인들의 마실장소로 명맥을 유지했다. 최근 경상북도는 삼강나루 복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삼강리를 지난 낙동강은 상주시 사벌면 퇴강리에서 백두대간 속리산 문장대(1033m)에서 발원한 영강을 만난다...(전호성 남준기 記者 來日新聞 2007-07-16)

 

  삼강주막(三江酒幕) [記事] : 삼강주막할머니, 할머니 떠나고 난 후 뒤꼍의 회화나무도 문득 기운을 잃어버리고, 강물도 늬엄늬엄 느리게만 흘러갑니다. 보았을까요. 회화나무를 힘없이 돌아가던 바람, 흙바람벽에 할머니 그어놓은 외상줄들을. 한 잔 술에 세로금 하나, 한 주전자면 길게 가로금, 이제 더는 외상 그을 이도 지울 외상도 없건만, 바람은 자꾸만 허튼 금들을 헤작거리고, 헤작거리지만 그 금들 채 지워지기도 전에 바람이 먼저 흙으로 돌아갑니다. 봉놋방의 할머니 담배냄새 채 사라지기도 전에 흙으로 돌아갑니다.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이 땅의 마지막 주막집이라던 낙동강변 삼강주막을 지키던 유옥연 할머니가 세상을 뜬 지도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열여섯 꽃다운 나이에 뱃사공에게 시집와 다섯 남매 낳고 일찍 남편과 사별한 할머니는 70여년 세월 동안 홀로 주막을 지키다 아흔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생전에 무뚝뚝하지만 속정 깊던 할머니는 주머니 가벼운 사람들에게 무던히도 외상술을 내었고, 그 흔적은 흙벽에 그어진 외상장부로 남았다. 이제 더 이상 외상 그을 곳 없어진 사람들은 새로 난 다리 밑에 돗자리를 깔고 소줏잔을 기울이며 할머니의 진하디 진한 담배냄새를 그리워한다. 〈유성문 여행작가>(京鄕新聞 2007년 10월 08일 18:02:36)

 

  삼강주막(마지막 酒幕) [記事] :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낙동강변에 남아 있는 삼강주막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이 주막은 1900년경에 지어진 건축물로, 2005년 경북도 민속자료 134호로 지정됐습니다. 70여 년간 관리해오던 유옥연 할머니가 2005년 10월 세상을 떠나신 후 빈집으로... 있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김명수(대구시 달성군 현풍면 성하리)>(嶺南日報 2007-10-10 07:33:23)

 

  삼강주막(三江酒幕) [記事] : 삼강주막 할머니, 할머니 떠나고 난 후 뒤꼍의 회화나무도 문득 기운을 잃어버리고, 강물도 늬엄늬엄 느리게만 흘러갑니다. 보았을까요. 회화나무를 힘없이 돌아가던 바람, 흙바람벽에 할머니 그어놓은 외상줄들을. 한 잔 술에 세로금 하나, 한 주전자면 길게 가로금, 이제 더는 외상 그을 이도 지울 외상도 없건만, 바람은 자꾸만 허튼 금들을 헤작거리고, 헤작거리지만 그 금들 채 지워지기도 전에 바람이 먼저 흙으로 돌아갑니다. 봉놋방의 할머니 담배냄새 채 사라지기도 전에 흙으로 돌아갑니다.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이 땅의 마지막 주막집이라던 낙동강 변 삼강주막을 지키던 유옥연 할머니가 세상을 뜬 지도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열여섯 꽃다운 나이에 뱃사공에게 시집와 다섯 남매 낳고 일찍 남편과 사별한 할머니는 70여년 세월 동안 홀로 주막을 지키다 아흔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생전에 무뚝뚝하지만 속정 깊던 할머니는 주머니 가벼운 사람들에게 무던히도 외상술을 내었고, 그 흔적은 흙벽에 그어진 외상장부로 남았다. 이제 더 이상 외상 그을 곳 없어진 사람들은 새로 난 다리 밑에 돗자리를 깔고 소줏잔을 기울이며 할머니의 진하디 진한 담배냄새를 그리워한다. 〈글 유성문 旅行作家>(京鄕新聞 10/08 18:02)

 

  삼강주막(三江酒幕, 酒母 스카우트 突入) [記事] : 날이 추워지니 따뜻한 아랫목이 그립다. 아파트에서만 살아온 세대에겐 아랫목이라는 말도 온기를 잃었겠다. 나 또한 온돌방 아랫목을 1년에 한두 번 맛보는 정도랄까. 그래서 겨울여행에서는 외풍에 시달리더라도 장작불 지핀 아랫목이 있는 한옥 숙소를 물색한다. 몸을 누일 수 있는 곳은 못되지만, 그리운 온돌방 하나가 있다. 삼강주막의 온돌방이다. 삼강주막의 부엌엘 들어가면, ᄀ자형으로 꺾인 부뚜막이 있다. ᄀ자형으로 꺾인 중앙에서 군불을 지피면, 두 갈래진 방고래로 불길이 들어간다. 아궁이 하나로 방 두 개를 따뜻하게 만드는 흥미로운 아궁이다. 주모의 수고로움을 덜어주기 위해, 주모를 사랑한 누군가가 짜준 집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 아궁이를 지필 장작도 없고 주모도 없다. 겨울에 술이 얼까봐 부엌 안에 묻어둔 항아리도 비어 있다. 술항아리 위쪽의 벽에는 주모가 그어 놓은 금들이 계급장처럼 새겨져 있다. 삼강마을 나이 지긋한 촌로가 이 금은 내 금이고, 저 금은 뉘 금이라고 말한다. 주모가 외상값을 셈해 놓은 것이다. 삼강(三江)주막은 세 개의 강줄기, 낙동강, 내성천, 금천이 만나는 곳에 자리 잡았다. 실제로는 내성천과 금천이 먼저 만나 1㎞쯤 동행하다가, 낙동강과 합류한다. 낙동강과 합류하는 지점에 삼강나루터가 있고, 삼강주막이 있다. 삼강주막은 우리나라에 마지막 남은 조선시대 주막이었는데, 주모 유옥연 씨가 2005년 89살로 세상을 떠나면서 빈집으로 남아 있다. 주모 없는 주막은 쓸쓸하고 스산하지만, 사라질 운명의 주막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 최근에 보호 조처가 취해졌다. 주막 앞에는 이런 내용이 적힌 팻말도 서 있다. ꡒ1900년경에 지은 이 주막은 규모는 작지만 그 기능에 충실한 집약적 평면 구성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건축 역사 자료로서 희소가치가 클 뿐 아니라, 옛 시대상을 읽을 수 있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적 의의를 간직하고 있어 2005년 12월에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34호로 지정되었습니다.ꡓ 주막 옆에는 500살 넘은 회화나무가 든든하게 서 있다. 그리고 강물이 예전처럼 흘러간다. 강물 위로 무정한 시멘트 다리만 칼바람처럼 건너고 있다. 여행 작가들과 함께 지난겨울에 삼강주막을 찾아간 날, 삼강마을 주민들이 주막에 나와 우리 일행을 반겼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방안에 웃음소릴 가득 채운 채로, 주모가 그러했던 것처럼 배추적을 부치고 있었다. 노란 속배추에 밀가루를 엷게 묻혀, 기름 두른 번철에 기름 부어 고소하게 지지고 있었다. 배추는 흔하고 밀가루는 귀했는지, 밀가루가 한 겹 비닐막처럼 덮여 있을 뿐이다. 나는 주막의 온기라도 느껴보려고 신발을 벗고 방안으로 들어가, 웃음소리에 묻혔다. 동네 아주머니가 건넨 배추적을 아삭 소리 나게 베어 무니 입안에 배추의 달보드레한 맛이 번졌고, 그 배추를 채 끊어내기도 전에 막걸리 잔이 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갈증 난 사람처럼 벌컥벌컥 사발막걸리를 마시고, 손등으로 입술을 훔치며 내지른 감탄사란, 한국인만이 공감할 수 있는 맛이 아닐까. 주막 마당에서는 삼강마을 노인들이 막걸리 잔을 돌렸다. 모두들 주막의 단골손님이었다. 그들이야말로 새로운 주모를 기다리는 사람들 같았다. 옛일이 되었지만, 우리의 술 문화의 특징 하나가 주막문화다. 조선시대에는 상업성을 띤 양조장이 없었다. 장터에, 나루터에, 산 밑에 주막이 있어서, 그곳에서 돈 주고 술을 사먹었다. 음식과 술을 사먹으면 봉놋방에서 다른 길손들과 섞여 하룻밤을 자는 것은 덤이었다. 걸어서 하룻길을 가면 반드시 만나게 되었던 주막들이, 삼강주막을 마지막으로 이젠 모두 사라지고 군데군데 ꡐ주막거리ꡑ라는 지명으로 희미하게 기억될 뿐이다. 삼강주막은 좁다. 방 두 칸에 부엌 하나가 전부다. 집은 비스듬히 몸을 누이려 하고, 회회나무 말고 주막과 벗해주는 게 없다. 하지만 경상북도가, 예천군이, 삼강마을 사람들이, 주막을 지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어서 쓸쓸하지만은 않다. 2007년 11월부터는 경상북도 관광문화재과의 시설팀이 나서서, 삼강주막을 해체 복원하고 있다. 기울어가는 기둥도 바로 세우고, 지붕도 갈고, 외상값 산해 놓은 벽면까지 고스란히 복원해 놓을 삼강주막은 내년 초 다시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주모까지 영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삼강주막의 구들장에 엉덩이를 지지며 배추적에 막걸리 한잔 마실 날이. <허시명 /여행작가․술품평가>(한겨레新聞 2007-12-06)

 

  삼강주막 [記事] : 예천군 삼강마을, 삼강주막 암거박스에 벽화 그려 / 이름 관리자 / 날짜 2007-12-10 (18:26)/ 조회 11회 / 예천군 혁신마을인 풍양면 삼강마을에서는 삼강주막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할 목적으로 삼강주막으로 진입하는 암거박스에 벽화를 도안 제작한다. 이 사업은 혁신마을 조성사업의 세부사업 중 체험장 환경개선을 위하여 시행되는 것으로 총면적 280㎡의 벽에 선비들이 과거에 급제하여 금의환향하는 모습의 벽화로 1,200만 원의 예산으로 2007년 12월 15일에 완료할 계획이다. 풍양면 삼강마을은 내성천, 금천, 낙동강 합류하는 지점이라서 붙여진 이름으로 맑은 물과 넓은 백사장이 어우러져 있으며 삼강나루터에는 낙동강 1300리에 유일하게 남은 삼강주막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으로 현재 경상북도 민속자료 134호인 삼강주막은 보수작업이 한창으로 2008년 초에 보수가 끝난다. 한편, 예천군이 주요시책으로 추진 중인 혁신마을 조성사업은 풍양면 삼강리, 감천면 진평2리, 유천면 사곡리, 지보면 마산리가 혁신마을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 마을에는 3년간 1마을에 1억 원씩이 지원되어 농가 소득 증대, 마을 환경 개선, 복지시설 확충 등을 연차적으로 실시하여 주민의 삶의 질 향상과 도시민들의 체험 장소로 활용해 농촌지역의 새로운 소득원 창출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醴泉郡廳홈페이지 主要뉴스 2007.12.10)

 

  삼강주막(慶北, 옛모습 되살려 觀光産業 살린다 : 22個 傳統마을 等 50餘 곳서 復元事業, 洛東江 觀光開發 프로젝트와 連繫키로) [記事] :  ...경북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복원사업은 모두 50여 개. 안동시와 영주시 등 북부지역 8개 시․군에서 22개 전통마을을 복원하고 있다. 무너져 내린 성곽, 선조들이 유람을 떠나던 옛길, 철새 서식지, 주막, 나루터 등 복원 종류도 다양하다. 조선시대 마지막 주막인 경북 예천군 풍양면 ꡐ삼강(三江) 주막ꡑ은 2007년 12월 26일 준공을 앞두고 있다. 기울어 가는 기둥을 바로 세우고, 지붕도 갈고, 벽에 써놓은 외상값 장부까지 옛날 모습대로 복원했다. 1900년쯤 들어선 주막은 주모 유옥연 씨가 2005년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복원사업이 시작됐다. 경북도는 2008년부터 주모도 영입하고 주막 앞 삼강나루와 나룻배도 복원해 관광명소로 만들 예정이다... 이들 사업 대부분은 경북도가 추진중인 ꡐ낙동강 프로젝트ꡑ와 연결된다. 경북의 젖줄인 낙동강 700리(봉화~고령 282㎞)에 유람선을 띄우고, 나무 7000만 그루를 심어 생태로(路)를 조성한다는 낙동강 프로젝트를 중요한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계획이 완료되는 2020년이면, 2만개의 일자리와 수조 원의 경제파급효과가 생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남일 경북도 새경북기획단장은 ꡒ문화유산들의 정적인 면과 낙동강 프로젝트의 동적인 면이 합쳐지면 경북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ꡓ이라며 ꡒ이 모든 것은 선조들이 남겨준 경북만의 유산들이 있어 가능한 일ꡓ이라고 말했다.(이재우 記者 朝鮮日報 2007.12.25 02:36)

 

  삼강주막(慶北道, 옛 나루터와 酒幕 再照明을 通한 復元으로 觀光 資源化한다) [記事] : 경상북도는 낙동강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낙동강의 옛 나루터와 주막 등을 재조명하고 관광상품화하기 위하여 낙동강 700리 나루터 자원을 활용한 지역발전 정책포럼을 2007년 12월 27일(목) 14:00부터 고령 대가야박물관에서 향토사학자 등 학계, 관계 공무원 등 전문가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하였다. 포럼의 주요 내용은 신정일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 모임 대표이며, 황토현 문화연구소 소장은 ꡒ영남지방의 나루와 길의 복원 방향ꡓ이라는 기조강연을 통해 강은 인류문명의 발상지였지만 지금의 강 주변은 낙후된 체 빈집만 늘어나고 사람의 발길이 이어지던 강길이 없어진지 오래되었다고 강조하고 남한의 5대강과 조선시대 9대로인 영남대로, 삼남대로, 관동대로 등의 옛길을 역사의 길로 복원하고 길 박물관 건립으로 강의 소중함과 강의 모든 것을 일깨우는 계기로 삼아야 하며, 이와 연계하여 강 문화유산 해설사 양성과 나루터 및 주막 복원 등으로 현장체험 학습과 함께 내외국인의 관광프로그램으로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또한 대구한의대 정구은 교수와 유병규 가야문화권혁신협의회장, 곽희상 상주 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은 주제발표를 통해 낙동강은 영남지방의 모태이며,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고 영남지방의 역사와 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강으로서 낙동강 유역의 나루터는 사람의 수송과 각종 물자를 운송해 온 지난날 교통로와 교통수단의 중추적 구실을 해 왔다고 말하고 나루터 주변에 형성된 이야기, 생활도구, 인물 등 주막문화 소재의 발굴과 개발, 나룻배, 나루터, 주막을 중심으로 한 나루문화 서사의 재구성 및 근대화의 추억과 사연을 담은 고유한 이미지 개발, 나루와 주막문화의 원형복원과 재구성으로 다양하고 흥미로운 콘텐츠 발굴 및 개발 등을 제안했다. 도내 물류거점이자 문화 및 인적교류의 중심지인 옛 나루터는 고려, 조선시대에 물자의 운송로와 일본과의 교통무역, 문화교류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으며, 낙동강 700리 경북구간 주요 옛 나루터는 7개 시군 12개소 나루터가 있었다고 밝히고 옛 나루터가 있었던 지역인 예천 삼강주막 나루터 및 삼강주막 복원 등 삼강 강문화 체험사업은 현재 추진 중에 있으며, 앞으로 안동지역에 예던길 및 뱃놀이 등 옛 문화 체험활동 시설과 상주 뱃길복원, 고령에 개경포 이운행사 마당조성 등 낙동강 국제교류사를 재조명하는 등 낙동강 700리 주요지점에 유람선 운항 등 뱃길을 조성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경부 대운하와 연계추진으로 시너지 효과 극대화] : 경부대운하는 교통의 발달과 산업화에 따라 끊어진 물길을 복원하는 프로젝트로 당초 물류중심의 대운하 정책이 낙동강 프로젝트에서 제시한 생태․관광 및 레포츠 개념을 포함하는 것으로 수정․보완되어 대운하 사업과 낙동강 프로젝트가 상호 시너지 효과를 받을 수 있고 특히, 구미, 상주, 문경 등 내륙항을 통한 경북 서북부지역의 동시발전이 기대되며 2011년까지 완공을 목표로 추진계획인 경부 대운하와 연계하여 국책사업화를 추진함으로써 낙동강 프로젝트가 탄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이를 위해 일차적으로 내년 초 제정될『대운하 특별법』에 낙동강 프로젝트 추진에 걸림돌이 될 하천법, 수도법, 낙동강수계법 등 관련법의 규제조항 개정 및 특례조항 등 반영을 위해 행정력을 집중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출처:경상북도청>(뉴스와이어 2007년 12월 27일 (목) 15:38)

 

  삼강주막(醴泉郡, 三江酒幕 解體 復元工事 竣工) [記事] : 삼강나루의 나들이객에게 허기를 면하게 해주고 보부상들의 숙식처로, 때론 시인묵객들의 유상처로 이용된 삼강주막이 복원공사를 마치고 새로이 선보인다. 삼강은 내성천과 금천, 낙동강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맑은 물과 넓은 백사장이 어우러져 있으며 주변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곳으로 예로부터 서울로 가는 길목으로 장사하던 배들과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여 상거래가 번성했던 지역으로 알려져 왔다. 이번에 해체 복원된 이 주막은 1900년경에 지은 것으로 규모는 작지만 그 기능에 충실한 집약적 평면 구성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건축 역사 자료로서 희소가치가 클 뿐 아니라 옛 시대상을 읽을 수 있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적 의의를 잘 간직하고 있는 주막이다. 삼강주막은 그동안 건물이 노후되고 누수로 인하여 목부재가 훼손이 심해 주막이 전체적으로 기울어져 2007년 9월에 사업비 1억 5천만 원으로 전면 해체 복원을 시작하여 이번에 준공됨으로써 전국적 관광 명소로 크게 각광받을 것으로 전망된다.(作成 管理者 醴泉郡廳홈페이지 主要뉴스 2008-01-08 (20:35) 조회 20회)

 

  삼강주막(길 가던 나그네들 ꡒ酒母, 술 한잔 주소ꡓ: 醴泉 三江酒幕 復元 봄부터 營業) [記事] : 삼강주막이 옛 모습 그대로 복원됐다. 예천군은 이곳에 보부상․사공숙소 등을 추가로 지을 예정이다. 예천 삼강주막이 복원돼 3~4월께 영업에 들어간다. 예천군은 ꡒ지난해 9월 해체에 들어간 슬레이트 지붕의 삼강주막을 헐고 1900년경 지어진 네모난 토담 초가 그대로 복원했다ꡓ고 2008년 1월 9일 밝혔다. 기존 건물이 낡고 비가 새는 데다 목재부가 훼손되면서 기울어 1억5000만 원을 들여 해체하고 새로 지은 것이다. 새 주막(면적 30㎡)은 방 2개와 부엌․다락․툇마루, 마당가에 원두막(정자) 2채를 갖추고 있다. 이 주막은 삼강리 주민자치회에서 주모를 선발해 2008년 3~4월께부터 막걸리와 전 등을 파는 옛 주막처럼 운영될 예정이다. 내성천과 금천․낙동강이 합류하는 풍양면 삼강리에 있는 삼강주막은 낙동강 1300리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주막이다. 1960년대까지 경남 김해에서 낙동강을 따라 올라오는 소금배가 접안하던 애환 서린 나루터가 앞에 있다. 이곳을 거쳐 보부상과 선비, 서울로 가는 물품 등이 영남 관문인 문경새재를 넘나들었다. 지금도 주막 뒤에는 200여 년 된 회나무가 있어 옛 운치를 더해 주고 있다. 주막은 2005년 12월 경북도 민속자료 134호로 지정됐다. 인근 삼강리 마을(39가구 98명 거주)은 조선 초기부터 형성된 청주 정씨 집성촌으로 옛 기와집 등이 잘 보존돼 있다. 예천군은 나루터 옆에 보부상․사공숙소․공원․주차장을 건립하고 나룻배 운영을 검토하고 있다. 외지인이 찾는 관광지로 꾸미기 위해서다. 예천군은 ꡒ삼강주막은 옛 시대상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역사․문화적 가치가 커 전국적인 관광 명소로 키울 계획ꡓ이라고 밝혔다.(황선윤 記者 中央日報 2008.01.10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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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지민(예천초)와 김태회(동부초), 28일 경북소년체전에서 대회 신기록 수립...축하합니다.

 

  예천군 양궁(2014 慶尙北道 少年體育大會 盛了 : 洋弓에서 박지민(醴泉初)·김태회(醴泉東部初) 選手 大會新記錄 樹立) [記事] : 양궁의 박지민(예천초, 남초부 35m)은 342점으로 경북부별신기록(종전 341점)과 개인종합 대회신기록(1,389점)을 수립하였으며, 김태회(예천동부초, 35m)는 종전기록(323점)을 15점을 높은 338점을 기록하고, 개인종합에서도 1,374점으로 종전기록보다 19점을 경신하여 대회신기록을 갈아치웠다.(醴泉뉴스 2014년 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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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방문 1,102

 

  예천공설운동장과 예천진호국제양궁장(2014 慶尙北道 少年體育大會 盛了 : 陸上競技 女初部 200m에서 박신효 選手 大會新記錄 樹立) [記事] : 2014년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펼쳐진 ‘2014 경상북도소년체육대회’가 경북부별신기록 1개, 대회신기록 16개, 대회타이기록 1개를 수립하며 3일간의 대회를 마무리했다. 꿈과 미래를 열어갈 꿈나무들의 스포츠 축제인 『제43회 전국소년체육대회』 선발을 겸한 이번 대회에는 23개 교육지원청 소속 임원 및 선수 2,500명(임원 569명, 선수 1,931명)이 참가했다. 종목별 우수선수로는 육상경기 여초부 200m에서 영천중앙초 박신효 선수가 15년 만에 대회신기록(27"76, 종전기록 27"81)을 수립하였으며, 조현지(임고초, 여초부 800m), 김세종(대흥중, 남중부 1500m, 3000m), 김경훈(가천중, 포환던지기), 김다니(삼성중, 창던지기) 선수 등이 우수한 기록을 보여 전국소년체전에서 금빛 전망을 밝게 하였다. 수영종목에서는 이재명(경북체육중, 남중부 배영 50m, 100m), 황성호(김천중앙중, 남중부 접영 200m), 주세영(한일여중, 여중부 평영 200m) 선수가 각각 대회신기록 4개를 수립했으며, 손준우(경산서부초, 남초부 자유형 200m) 선수는 대회타이기록을 수립했다. 강민혁(금릉초, 남초부 플랫폼 3m), 박민석(김천중앙중, 남중부 플랫폼 3m) 선수 등도 경영과 다이빙에서 좋은 기량을 선보여 앞으로 더 좋은 성적을 기대하게 했다. 역도경기의 현소예(창포중, 여중부 +75Kg급) 선수는 제42회 전국소년체육대회 3관왕에 이어 올해도 3관왕을 기대하고 있는 유망주이며, 양궁의 박지민(예천초, 남초부 35m)은 342점으로 경북부별신기록(종전 341점)과 개인종합 대회신기록(1,389점)을 수립하였으며, 김태회(예천동부초, 35m)는 종전기록(323점)을 15점을 높은 338점을 기록하고, 개인종합에서도 1,374점으로 종전기록보다 19점을 경신하여 대회신기록을 갈아치웠다. 그 외 체조, 태권도, 역도, 씨름, 유도, 사이클, 복싱 종목과 단체경기 종목인 정구(남중부), 테니스(여중부), 검도(중학부)에서도 우수한 선수들이 발굴되어 제43회 전국소년체육대회 상위권 입상에 견인차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첨부파일 : 대회신기록 수립 현황.hwp (18432 Byte)(醴泉뉴스 2014년 0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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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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