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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3598:예천8경 중 삼강주막(4)(祝예천검도관,이선영,정동욱)
작성자장병창 @ 2014.04.02 06:13:02

  예천의 자랑(3598) : 예천8경 중 삼강주막(4)(附 예천검도관, 30일 전국대회 청소년부 단체전 3위...축하합니다/예천군 이선영, 30일 도 탁구대회 1위...축하합니다/지보면 예천두레원 정동욱 대표, 사과식초 국내 첫 개발...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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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강주막(慶北 醴泉 三江酒幕으로 막걸리 자시러 오이소! : 하루 平均 300餘 名 몰려) [記事] : 경상북도(도지사 김관용)는 문화재(민속자료 제304호)로 지정된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소재 삼강주막을 2007년 12월에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해 2008년 1월 17일부터 막걸리와 배추전 등 옛 주막에서 먹던 토속음식과 주모의 구수한 입담을 들을 수 있는 옛 정취가 살아있는 주막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동년 1월 22일 밝혔다. 삼강주막은 예천 용궁면과 풍양면이 만나는 낙동강 곡류점 내성천과 금천이 낙동강으로 합류되는 강변에 1900년 전후에 건립된 것으로 삼강나루의 나들이객과 낙동강을 이용하는 소금배, 보부상들의 숙식처로, 때론 시인과 묵객들의 유상처로 이용되어 왔다. 특히 주막의 규모는 작지만 그 기능에 충실한 집약적 평면 구성의 특징을 잘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이 시대 마지막 주막으로 건축 역사 자료로서 희소가치가 크고 옛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적 의의를 간직하고 있다. 경북도는 문화재위원, 향토사학자들의 자문과 고증을 거치고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반영한 결과 복원에 나서기로 하고 2007년 퇴락된 주막 건물, 화장실, 원두막 등을 복원하는데 1억5000만 원을 투입해 규모와 형태, 초가지붕 등을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 또 삼강리 동네주민 중 권태순 씨와 정수영 씨를 주모로 선발해 현재 막걸리, 배추전, 두부, 묵 등 전통음식으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으며 전국 각지에서 하루 평균 300여 명이 주막을 찾아 성황을 이루고 있다. 경상북도 관계자는 "앞으로 삼강주막에 9억 원을 투자해 옛 뱃사공 및 부보상 숙소 복원, 진입로 정비, 주차장 설치, 전통화장실 설치, 수변공원 등을 조성, 인근 회룡포 마을과 함께 역사문화 관광지로서 관광벨트를 구축해 이곳을 경북 북부지역의 또 다른 관광명소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우성문 記者 뉴시스 2008년 1월 22일 (화) 19:27)

 

  삼강주막(三江酒幕) [記事] : 金和鎭(김화진)은 구한말인 1895년에 태어난 사람으로 조선시대 사회풍습에 관해 두루 해박한 지식을 가졌었다. 그의 책 ꡐ한국의 풍토와 인물ꡑ(1973년)에 수록된ꡐ옛날의 음식점ꡑ편은 이 땅의 옛 술문화를 보여준다. 여기서 그는 ꡒ지금으로부터 약 70년 전까지(ꡐ옛날의 음식점ꡑ 집필 연대는 1967년) 서울 안의 음식점은 목로술집, 內外(내외)술집, 사발막걸리집, 母酒(모주)집, 이채를 띠고 여자가 助興(조흥)하는 술집은 색주가뿐이었다ꡓ고 썼다. 이 중 목로주점은 서서 술을 마시는 선술집, 내외주점은 ꡒ행세하던 집 노과부가 생계에 쪼들려 건넌방이나 뒷방을 치우고 넌지시 술을 파는 술집ꡓ, 색주가는 여자가 술을 따르고 노래를 불러 흥을 돋우는 그렇고 그런 술집이었다. 사발막걸리집은 사발 단위로 값을 정해 파는 술집, 모주집은 술찌끼를 걸러낸 賤品(천품)의 술을 파는 집으로 기록되어 있다(강명관 ꡐ조선의 뒷골목 풍경ꡑ 중 ). TV 사극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酒幕(주막)의 경우 대개 행인들이 빈번하게 오가는 길목이나 장터 근처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나그네와 보부상 등이 막걸리로 목을 축이며 다리쉼을 하는가 하면 하룻밤 유숙하는 여관 역할도 했다. 팔도를 떠도는 장사치들이 주로 이용했던 것으로 보아 주막은 상품경제의 발달과 관계가 있고 따라서 조선 후기 정도에 등장했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桑田碧海(상전벽해)가 된 우리사회에서 주막 역시 옛날 풍경이 된 지 오래다. ꡐ마지막 주막ꡑ으로 알려졌던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의 삼강주막도 3년 전 ꡐ마지막 주모ꡑ 유옥연 할머니가 세상을 뜨면서 문을 닫았다. 주막을 아끼던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 섭섭한 마음이 통해서였을까, 죽었던 삼강주막이 다시 살아났다. 경북도가 민속자료 304호로 지정한 데 이어 쓰러져가는 주막을 초가지붕 옛날모습대로 복원한 것이다. 글을 모르던 윤 할머니가 외상값을 큰 금 작은 금으로 표시했던 흙바람벽도 살려냈다. 마을 주민 중에서 주모를 선발, 최근 주막문을 열자마자 전국 각지서 하루 평균 200여 명씩 찾아드는 등 성황을 이루고 있다 한다. 옛 정취를 찾아보기 힘든 요즘 막걸리 사발에 배추전과 묵`두부, 거기다 주모의 푸짐한 인정까지 얹혀지는 삼강주막의 부활소식이 반갑다.(전경옥 論說委員 每日新聞 2008년 01월 25일)

 

  삼강주막("傳統 酒幕의 맛, 醴泉 三江에 물어봐" : 三江酒幕 復元 한 달만에 하루 平均 200餘 名 발길) [記事] : '예천 삼강주막으로 동동주 자시러 오이소'  2007년 12월 복원된 삼강주막(예천군 풍양면 삼강리)이 20여 일간의 준비 작업을 끝내고 옛 풍경대로 주막을 운영하자 전국 각지에서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 2008년 1월 17일 문을 연 이래 인근 상주 함창이나 문경 영순은 물론 대구․서울․울산 등 전국 각지에서 하루 평균 200여 명이 주막을 찾고 있다. 주말에는 자리가 없을 정도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 이같이 관광객이 몰려드는 이유는 동동주와 배추전․묵․두부 등 옛 주막에서 먹던 음식 맛을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옛 정취가 살아있는 주막과 나루터, 그리고 구수한 입담을 들을 수 있는 주모가 있기 때문. 마을주민회에서 여러 경쟁자를 제치고 주모로 선발된 권태순(70) 씨는 "70년 간 주막을 지켰던 속정깊고 인심 후했던 유옥연 할매 기억 때문이겠지요. 저 또한 유 할머니 뜻을 받들어 정감있는 주막으로 만들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현재 주막에서 인기리에 팔리고 있는 동동주는 권씨가 직접 빚은 것이다. 개장 이래 매일같이 찾고 있다는 권태윤(56․상주시 합창읍 교촌리) 씨는 "3년 전 윤 할매가 돌아가신 뒤 주막 문을 닫아 섭섭했는데, 복원돼 다시 문을 여니 옛날 생각이 난다."며 "술 생각이 날 때마다 동료들과 이곳으로 오는데, 경치도 좋지만 무엇보다 술맛이 최고."라고 했다. 경북도와 예천군은 이곳에 옛 뱃사공 및 부보상 숙소를 복원하고 인근 지역을 공원으로 조성, 인근 회룡포 마을과 함께 역사문화 관광지로 만들 계획이다.(최재수 記者 每日新聞 2008년 01월 24일)

 

  삼강주막(洛東江 700里 唯一한 酒幕 "豊壤 三江酒幕"을 찾아서) [記事] :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34호로 지정된 삼강주막은 낙동강 700리 나루터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조선시대 주막이다. 1900년경 지은 이 주막은 삼강나루의 나들이객들에게 허기를 면해주고 보부상들의 숙식처로 때론 시인 묵객들이 머물던 곳이었다. 살아있는 전설로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던 삼강주막은 지난 2005년 9월 유옥연 주모가 돌아가신 후 폐허로 변했던 것을  2007년 1억5천만 원의 사업비로 삼강주막을 해체한 후 원형 복원공사 및 주변 정비사업을 완료하게 되었다. 주막 뒤편 산이 문경 영순면의 달봉산으로 등산로가 있으며 정상에서의 삼강주변 풍경은 아름답다. 복원 후 두 칸짜리 방의 주막은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밀려오는 손님을 감당하지 못해 급기야 비닐하우스를 설치하게 되었지만 장맛은 손맛이라고 비닐하우스에서 마시는 막걸리가 어찌 제맛이 날지 의문시 되었지만 쌀로 직접 빚은 막걸리에 손두부, 메밀묵, 배추전을 안주로 하는 한 셋트(12,000원)는 저렴한 가격에 옛날 맛을 느껴볼 수 있기에 주말에는 알바(?)까지 나서는 등 하루 종일 정신없이 바쁘다고 한다. 예천군은 2008년에 9억 원의 사업비로 숙소 복원 2동, 주차장 및 휴게실 공원 조성, 진출입로 포장 등의 기반 시설을 확충하여 회룡포와 연계한 체험 관광객 맞이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차량이 주막까지 들어오고 비닐하우스에서 손님을 맞는 현재의 주막은 옛것을 보기 위해 찾는 이들에겐 다소 어수선하고 왠지 낯설다는 느낌을 받고 있지만 기반시설이 완료되고 나면 완전한 옛날 모습을 되찾을 것으로 큰 기대가 되고 있다. 삼강주막 옆의 삼강나루터를 알리는 장승이 왠지 자꾸만 초라해져 보였다. 차라리 없었다면 더 좋았을 것처럼 느껴졌다. 시설물 하나를 설치할 때도 체험관광객들이  과연 기념사진을 찍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인가를 깊이 고민했으면 한다. 이웃 문경시 산양면 소재지 입구에 최근 설치된 장승과 좋은 비교가 될 것 같다... 2008년 2월 3일 찾은 삼강주막. 쌀로 직접 빚은 막걸리에 손두부, 파전의 안주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맛이었다. 좁은 방에는 2개의 상이 있는데 처음 보는 이들끼리 겸상을 해도 금방 친해지는 것은 어찌 보면 우리의 옛것을 바라보는 마음이 같아서 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선해야 할 것도 많았다. 주막 복원을 하는 과정에서 소홀해진 부분에 대해 한 번쯤 점검을 했으면 한다. 음식을 담아내오는 그릇을 보면 '대지한식부페' 상호가 새겨져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아니다 라는 느낌이 들었다. 투박한 옛날 용기를 사용하지는 못할망정 듣도 보도 못한 부페 그릇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아직은 마인드가 많이 부족한 것 같았다. 삼강주막을 찾는 이들은 옹기로 빚은 그릇 등 옛 정감이 나는 그런 것을 원한다.

 

  겉모양만 옛것이고 내용은 현대식이라면 관광객들은 이내 식상해 질 것이다. 화장실 또한 정비해야 할 것이다. 외부는 싸리나무로 가리더라도 시설물은 현대 수세식으로 해야 여자와 어린이들이 볼일을 보는데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며 또한 지붕이 없어 비가 오면 오물이 차서 넘쳐날 텐데 그 뒷감당은 또 어찌할 것인지 참으로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삼강주막은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는 육지속의 섬마을 회룡포와 연계되어 있는 예천만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자연문화유산이다. 개발도 좋지만 우리의 전통을 살리는 예천만의 독특함이 묻어나는 그래서 '경북 예천에 가면 그곳을 꼭 가보아야 한다.' 고 할 정도의 자부심이 묻어나는 삼강주막이 되길 간절히 바래본다. <醴泉邑事務所 장광현>(醴泉인터넷放送 2008-02-09 오전 10:04:14)

 

  삼강주막('三江酒幕' 새主人 권태순 酒母 : 나루터 오가는 길손, 詩人墨客 情趣 그대로…) [記事] : 낙동강과 내성천 그리고 금천 세 강줄기가 몸을 섞는 곳,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나루터. 그 옛날 나루를 오가는 길손들에게 허기를 면해주고, 때로는 묵객들이 쉬어가는 공간을 제공하던 낙동강 1천300리 물길의 마지막 주막 '삼강주막'. 지난 2005년 이곳 삼강주막을 지키던 이 시대의 '마지막 주모' 유옥련(90)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적막하던 주막집이 최근 다시 사람들의 발길로 부산해졌다. 2007년 말 버려졌던 주막이 복원된데 이어 2008년 1월 17일부터 영업을 재개했기 때문이다. 삼강주막의 새 주인이 된 권태순(70․풍양면 삼강리) 주모를 만났다. "문을 연 뒤 소문을 듣고 찾아온 손님들로 눈코 뜰 새가 없어요. 나야 괜찮지만 우리 영감이 몸살이 안 날지 모르겠어요." 주모 권 씨는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다고 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주중에는 하루 평균 70~80명, 주말에는 200여 명이 주막을 찾는다고 했다. 인근 상주 함창읍이나 문경 영순면은 물론 대구․서울․울산 등 전국 각지에서 찾고 있다고. 권씨는 이 때문에 되레 손님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집이 너무 작고 손님 맞을 방이 너무 비좁아요. 그래서 기다리다 못해 되돌아가는 손님들이 많습니다. 멀리서 찾아오셨는데…미안할 따름이죠, 뭐." 삼강주막은 30㎡ 규모로 7~8명이 앉을 수 있는 방 두 개에 부엌 하나, 그리고 다락과 툇마루가 전부다. 2008년 2월 1일 오후에도 차례를 기다리다 지쳐 주막과 나루터만 둘러보고 돌아가는 관광객이 눈에 띄었다. 권 씨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유를 3년 전 세상을 뜬 유 할머니에게서 찾는다. "옛날 추억 때문에 찾아 온 사람도 있지만, 70여 년간 주막을 지켰던 인심 좋은 유 할매에 대한 기억 때문이겠지요." 권씨는 유 할머니를 무뚝뚝했지만 인심 좋고 속정이 깊은 주모로 기억하고 있다. "할매는 동네 술도가에서 탁주를 받아다 팔았어요. 당시야 돈이 있었습니까. 대부분 손님들은 술을 마시고는 외상을 달아놓았지요. 외상값을 적어놓은 부엌 벽면을 보면 알 수 있어요."  권씨는 50년 전 이웃면인 유천면 송지리에서 이곳으로 시집오면서 나루를 건널 때 처음 유 할머니를 만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 할머니와의 특별한 인연을 강조했다.  "강변에 자리잡은 주막엔 의외로 먹을 물이 귀했어요. 그래서 할매는 매일 저희 집에서 동이에 우물물을 받아 머리에 이고 나르거나 손수레에 물을 실어다 먹었습니다. 할매 뒤를 이어 내가 주모가 된 것을 보면 보통 인연이 아닌가 봐요."  권씨는 2005년 10월 유 할머니 장례를 치르면서 자식들이 할머니가 쓰던 그릇이나 반짇고리․옷가지․이불 등을 죄다 태워버린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권씨는 2008년 1월 마을 주민회에서 여럿 경쟁자를 제치고 주모로 선발됐다. 나이도 적당하고 친절해 손님을 상대해야 하는 주모로는 적격이었기 때문. 그러나 무엇보다 술을 잘 빚는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아 선발됐다고 남편 정수영(70) 할아버지가 귀띔했다.  "다들 옛날 막걸리 맛이 난다며 많이 찾아요. 스무한 살에 시집와서 술을 빚기 시작했으니 한 50년이 다 됐네요." 현재 이곳에서 팔고 있는 음식은 솔 향기가 은은히 풍기는 막걸리를 비롯해 배추전․묵․두부 등 토속 음식이다. 옛 주모의 인심을 이어 막걸리 한 되에 5천 원, 묵과 두부는 2천 원, 배추전은 3천 원 등 안주 값도 싸다. 이 일을 시작한 후 권씨는 새벽녘에야 잠자리에 든다. 이튿날 팥 술을 거르고, 두부를 만들고, 묵을 쑤다보면 새벽이 되기 일쑤다. 힘들어하는 모습을 본 자식들이 그만두라고 하지만 권씨는 주막을 지킬 생각이다. 그것이 유 할머니의 뜻을 받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감 있는 주막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한 식구처럼 지내던 유 할머니를 생각하며 이곳을 오래오래 보존하겠습니다."(최재수 記者)

 

  ▨ 다시 태어난 낙동강 '삼강주막' : 예천군 풍양면의 삼강주막은 삼강나루의 나들이객에게 허기를 면해주고 여행길의 고단함을 풀어주던 곳이었다. 때론 보부상의 숙식처로 때론 시인묵객들의 쉼터로 이용됐다. 소금배가 없어진 뒤에는 강을 건너 서울, 대구 등으로 가려는 사람들로 붐볐으나 나룻배가 사라진 1970년대 들어 다리를 놓고 둑을 쌓으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완전히 끊겼다. 예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삼강주막은 귀중한 건축 자료로 가치가 있어 2005년 경북도 민속자료 134호로 지정됐다. 안타깝게도 오랫동안 주막과 함께한 유옥연 주모가 지난 2005년 세상을 떠나면서 그대로 방치돼왔다. 주막을 아끼던 사람들의 안타까움과 섭섭한 마음이 통해서였을까. 죽었던 삼강주막이 2007년 다시 살아났다. 경북도가 1억 5천만 원을 들여 훼손된 목재부와 지붕을 걷어내고 방 2개와 다락, 툇마루, 원두막(정자) 2채를 갖춘 옛날 토담 초가주막을 그대로 복원한 것이다. 글을 모르던 윤 할머니가 외상값을 큰 금, 작은 금으로 표시했던 흙바람벽도 살려냈다. 옛날 정취를 찾아보기 힘든 요즘, 막걸리 한 사발에 배추전과 두부로 목을 축이려는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每日新聞 2008년 02월 09일)

 

  삼강주막(洛東江 마지막 酒幕에서 만나는 '오래된 그리움' : 復元된 醴泉 三江酒幕을 찾아서) [記事] : 다시 삼강(三江)으로 길을 떠난다. 낙동강과 내성천, 금천의 세 강줄기가 몸을 섞는 나루.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로 간다. 거기 이백 살도 넘은 회화나무 그늘, 낙동강 천삼백 리 물길에 마지막 남은 주막. 일흔 해 가까이 뱃사람과 장사치들 등 나그네들을 거두었던 어느 술어미의 한이 서린 곳, 삼강 주막으로 간다. 삼강은 낙동강 하구 김해에서 올라오는 소금배가 하회마을까지 가는 길목, 내륙의 미곡과 소금을 교환하던 상인과 보부상들로 들끓던 곳이었다. 한 세기 전에 이 주막이 들어섰을 때, 삼강나루는 짚신 신긴 소를 서울로 몰고 가던 소몰이꾼으로 북적였다. 소 여섯 마리를 실을 수 있었다는 큰 나룻배는 바로 삼강의 번성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운(水運)의 쇠퇴와 함께 추억으로만 남은 옛 주막엔 소몰이꾼과 보부상 대신 각지에서 찾아든 길손들로 붐빈다. 꽃다운 열아홉 새색시 적부터 70여 년 동안 이곳을 지켰던 주모가 세상을 떠난 뒤 이 주막이 경상북도 민속자료로 지정되고 복원된 까닭이다. 경상북도와 예천군이 1억5천만 원을 들여 방 2개와 툇마루, 원두막 2채를 갖춘 옛 토담 초가 주막을 복원한 것은 2007년 12월이다. 낡고 헌 속살을 드러내고 있던 흙벽은 말끔하게 보수되었고, 문살이 거의 남지 않은 채 돌쩌귀에 간신히 걸려 있던 방문도 튼실한 새것으로 바뀌어 걸렸다. 주막 저편 강둑 쪽에 몇 걸음 간격으로 새로 세워진 원두막 두 채와 함께 보수된 주막집은 마치 맞지 않는 새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해 보인다. 이백 년 회화나무 그늘에 없는 것처럼 녹아 있던 낡고 허술한 슬레이트 지붕의 옛 주막은 거기 없다. 그러나 여전히 이 옛 주막집으로 오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끊이지 않는다. 삼강마을 주민 가운데 뽑힌 새 주모 권태순(70) 씨가 그들을 위해 주막을 다시 열었다. 주모가 직접 담근 진한 농주와 손수 만든 묵과 두부, 배추전 등이 나그네를 반긴다. 농주와 묵, 두부, 배추전으로 짠 상차림이 1만2천 원이다. 반자 없이 서까래를 드러낸 낮은 천장 아래 방은 좁다. 네모난 낮은 상을 마주하고 서너 사람이 앉으면 방이 꽉 찬다. 앞문 맞은편은 다락문이다. 옆에는 어울리지 않는 엔틱 형의 벽시계가, 그 아래엔 어느 주객이 남긴 낙서가 마치 편액처럼 걸렸다. 서까래에 걸린 백열등이 이 집의 역사만큼이나 허전하고 쓸쓸하다. 함께 온 옛 친구와 함께 마주 앉아 술을 마신다. 내 어릴 적 순경이나 도가(양조장) 사람의 눈을 피해 안방 아랫목의 위장한 우리 집 술독에서 익었던 그 술맛 그대로다. 두부도 묵도 시장에서 파는 물건과는 비길 수 없다. 담백하고 덜큼하지 않다. 배추전은 더 볼 것 없이 이 지역의 음식이다. 충청도에서 시집 온 집안 아주머니가 배추전을 부치면서 경상도에선 별 전을 다 먹는다고 흉을 보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맛이 있을 것 같지 않은 볼품없는 이 부침개가 경상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제사상에까지 오르게 된 건 이유 있다. 배추전은 배추의 담백한 맛이 그대로 느껴지는 채소전이다. 고소한 튀김옷 속으로 숨이 죽은 배추의 섬유질이 그대로 느껴진다. 게다가 다른 전에 비해 기름이 덜 스며들어 느끼하지 않고 담백한 맛을 이 지방 사람들의 미각이 놓치지 않은 것이다. 농주 몇 잔에 주기가 오른다. 방을 나와 주막집을 한 바퀴 빙 돈다. 나란한 또 다른 방 앞 섬돌에 신발 몇 켤레가 얹혀 있다. 방문 문고리에 큼지막한 자물쇠가 달린 것은 이 주막집이 관리되고 있는 확실한 증거다. 방문 왼쪽에 늘어져 있는 백열등도 이 오래된 풍경을 돕는 마땅한 소품이다. 하늘은 쨍하고 금이 갈 만큼 맑고 시린 푸른빛이다. 푸근한 초가지붕의 양감 위에 유연하게 뻗은 회화나무의 마른 가지가 그 하늘을 정교하게 가르고 있다. 하늘 까마득히 벋은 가지 끝에 까치집이 하나 달렸다.

 

  우리가 술상을 받은 방 뒤편이 부엌이다. 좁고 낮은 그 정짓간에 주모는 보이지 않고 며느리가 분주하게 전을 부치며 술상을 차리고 있다. 줄을 잇는 손님들 때문에 주모 혼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모양이다. 피어오르는 김 속에서 짓는 부인의 미소가 건강했다. 지붕의 무게에 짓눌려 휜 듯한 맨 서까래의 천장 너머 저편 벽에 글을 몰랐던 옛 주모가 외상값을 표시해 둔 눈금이 새겨진 벽이 남아 있다. 그을음 낀 벽에 남은 그 길쭉한 눈금은 이 주막에서 5남매를 길러냈던 유옥연 할머니의 고단한 삶의 흔적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드센 뱃사람과 장사꾼들을 거두어가며 여민 그이의 간난의 생애 한복판으로 밤새 뒤채며 삼강이 흘렀으리라. 정짓간 바람벽에도 새길 수 없었던 '술어미'의 한과 슬픔은 강둑을 따라 회화나무를 휘돌아 흘러간 강바람에 실려 갔을까. 회화나무 너머 제방에 오르니 비낀 햇살 아래 강물이 반짝였다. 갈수기라 수량이 준 강물 이편으로 갈대밭에 작은 배 하나가 버려져 있다. 강을 가로질러 예천군 풍양면과 문경시 영순면을 잇는 삼강교가 크고 날렵한 몸뚱이를 뉘고 있었다. 새로 복원한 옛 주막에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길손의 발길이 이어진다. 작은 방 둘로는 모자라 마당 한쪽에 세운 비닐하우스 안에도 손들이 들고난다. 주차장 노릇을 하는 마당과 도로 양옆에 잇달아 대인 차들도 여러 곳에서 왔다. 경상북도와 예천군은 앞으로 9억 원을 들여 주막 주변에 옛 뱃사공․보부상 숙소를 복원할 방침이라니 이 주변은 내내 나그네로 붐빌 전망이다. 승용차와 트럭, 혹은 관광버스를 타고 와 이 ꡐ전근대의 풍경ꡑ에 머물면서 사람들은 저 ꡐ낡은 시절ꡑ의 향수에 젖는 걸까. 시종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주막을 어슬렁거리던 중년의 양복쟁이 사내는 강 건너 영순이 고향이지만 여기만 오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ꡒ고향에는 없는 게 여기에는 있지요. 고향엔 이제 남은 게 뭐 있어야지요.…….ꡓ 건너편 방에서 음식을 들던 손들은 지상파 방송의 소개로 대구에서 왔다고 했다. 크게 볼 게 있는 건 아닌데 오니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선택에 만족해하는 듯했다. 인근 촌로들의 발길도 만만찮다. 막걸리를 마시며 옛 시절을 추억하는 것도 노인들에겐 생광스런 일일 터였다. 2007년 10월, 삼강주막을 다녀가면서 나는 그렇게 썼다. 한갓지게 사람들은 이 주막을 찾아오겠지만 그들이 만나는 것은 다만 한 시대의 모사(模寫)와 재현일 뿐, 그 시절 사람들의 땀내와 피울음으로 얼룩진 한 시대의 고단한 삶은 아니리라고. 그래도 사람들은 온다. 곳곳에 복원되는 과거의 흔적에 사람들이 꾀는 것은 그 예스러움에 그들이 스스럼없이 젖어들고 싶어 하는 까닭이다. 사람들은 이 디지털 시대의 신기루에 몸을 맡기고 살지만 자신들이 겪은 아날로그 시절을 못내 그리워하는 것이다. 그걸 무엇이라 이름할 수 있을까.

 

  그 오래된 그리움이란 진실로, ꡐ이 밀레니엄 시대에 여전히 우리의 마음이 넘지 못하는 19세기, 그 '전근대의 실루엣' 같은 것ꡑ일까. 그 존재마저도 의식하지 못하고 지냈던 사람들이 숭례문 소실에 대한 추모로 애를 끓이는 것은 바로 그같은 상실감의 표현은 아닐까. 이 시대의 변화에 조응하지 못하는 ꡐ어깃장 심사ꡑ는 어쩌면 낙동강 천삼백 리나 삼강나루를 오갔던 우리 선인들이 종내 버리지 못했던 정서의 원형일지도 모른다. 몸과 거죽은 양식으로 칠갑을 하여도 배추전과 막걸리에 녹여내는 우리네 정한은 시간과 역사의 격랑 속에서도 오롯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리라. 덧붙이는 글 | 2008년 2월 2일과 4일, 두 차례 다녀왔습니다.(장호철 오마이뉴스 2008.02.18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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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검도관, 30일 전국대회 청소년부 단체전 3위...축하합니다.

 

  예천검도관(醴泉劍道館 第12回 國民生活全國劍道大會 靑少年部 團體戰 3位 入賞 快擧!) [記事] : 제12회 국민 생활체육 전국 검도대회(3월 29일~30일) 및 회장단 이·취임식이 1천200여명의 임원 및 선수가 참석한 가운데 전남 강진군 국민체육센터 실내체육관에서 개최됐다. 이번 대회에서 청소년부 단체전에서 예천 검도관(관장 권경호) 소속 선수들이 3위(동메달)에 입상하는 쾌거를 이루었으며, 중년부 김상익(예천군 생활체육 검도연합회장)이 감투상을 수상하여 예천을 대내외에 널리 알리는 효과를 거양했다. 청소년부 출전선수(안진우.전영훈.황우림.윤석훈.박건호.김하늘)와 권경호 관장은 "모두가 열심히 수련한 결과 좋은 성적을 얻어서 기쁘고 앞으로 더욱더 열심히 수련하여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하며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예천군 체육회 관계자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1월 27일 예천검도관(관장 권경호)이 대한검도회에서 수상하는 최우수도장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4-04-01 오전 9: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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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군 이선영, 30일 도 탁구대회 1위...축하합니다.

 

  이선영(慶北道知事旗 卓球大會 이선영 20代 女子部 1位) [記事] : 제19회 경북도지사기 생활체육 탁구대회가 2014년 3월 29∼30일 이틀간 울진군민체육관에서 경북도내 20개 시·군 600명(선수 500·임원 100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경북도생활체육회가 주최하고 울진군생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경북탁구연합회가 주관한 이번 대회... 군부에서는 최상호(의성군)와 이선영(예천군)이 각각 20대 남녀부 1위를 차지했다.(이상환 記者 大邱新聞 2014-03-31, 21:3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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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보면 예천두레원 정동욱 대표, 사과식초 국내 첫 개발...축하합니다.

 

  정동욱(醴泉 두레원 정동욱 代表, 沙果 100%로 만든 '沙果食醋' 國內 첫 開發 : 施行錯誤 거쳐 食醋醱酵菌株 利用 生産) [記事] : 국내 첫 사과식초를 개발한 예천군 지보면 지보리의 예천 두레원의 정동욱 대표가 사과식초를 선보이고 있다. 식초는 자연이 준 기적의 물이라고 한다. 최근 식초가 건강 밥상과 각종 성인병, 피부미용에 좋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도시민들과 소비자들을 유혹할 다양한 식초개발에 지방 지자체마다 개발에 나서고 있다. 경북 예천군 지보면 지보로에 위치한 예천 두레원(대표 정동욱)이 국내 첫 물 한 방울 넣지 않은 순수 100% 사과만으로 만든 사과 식초를 개발해 소비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식초는 두뇌건강과 기억력 증진. 고혈방, 암, 골다골증, 뼈와 치아 튼튼, 다이어트 효과, 관절 통증치료, 수면장애 효소, 당뇨 ,등 성인병을 비롯한 각종 예방에 좋은 영양분(붕소, 칼륨, 철분 항산화, 항염증 ,펙틴, 항진균, 항세균 등)을 고루 갖추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국내 첫 첨가물을 넣지 않은 100% 사과로만 발효시킨 식초이다. 2012년 처음 사과 식초 만들기에 도전한 정동욱(65)씨는 경북사과 산학협력단 전문위원인 이진만 호서대 교수의 식초발효 균주를 이용한 기술지도로 개발에 나섰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실패는 탱크의 발효단계에서 늘 온도유지와 산소공급이 문제였다. 1년 6개월의 시행착오를 거쳐 경북대학교 경북 사과 산학연협력단(단장 강인규)과 농촌진흥청, 경북농업기술원의 지원과 기술지도로 그동안의 노하우를 경험 삶아 정 대표는 마침내 국내 첫 사과 식초 개발에 성공하게 됐다. 경북대 강인규 교수는 "100% 국내산 최상의 재료로 농가에게 기술 이전과 식초발효균주를 이용한 사과식초가 농가에 의해서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발됐다"고 밝혔다. 39,666㎡ (약1만2천평)에 손수 과수농사를 짓고 있는 정 대표는 최상의 사과만을 고집하며 위생적인 세척을 거쳐 파쇄, 착즙, 살균에 이어 가장 중요한 발효 단계를 거쳐 식초를 생산하고 있다. 정 대표는 "발효단계에서 온도와 산소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져야만 식초 균이 유지할 수 있어 최상의 사과식초가 만들어 질수 있다."고 말했다. 만들어진 식초는 옹기에 담겨지고 있다. "옹기가 숨을 쉬기 때문이다"는 정 대표는 "완성된 식초는 각종 음료와 섞어서 마셔도 건강에 좋다" 고 말했다. 국내 첫 사과식초인 예천 두레원 사과식초는 420㎖ 2병에 1만5천원에 판매가 되고 있다.(이상만 記者 慶北日報 201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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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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