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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599) : 예천8경 중 삼강주막(5)(附 출렁다리녹색체험마을과 두레문화, 31일 사회적기업 창업팀에 선정...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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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주막(새로운 酒母 맞은 마지막 酒幕…慶北 醴泉 '三江酒幕' : 바쁜 걸음 멈추고 여기서 목이나 축이고 가이소. 酒母로 뽑힌 秘訣? 이 술상에 담겨있지) [記事] : 경북 상주에 사는 한민광(57) 씨가 2008년 2월 22일 오후 친구들과 '삼강주막(三江酒幕)'을 찾았다. "주막이 아직 있다고 해서 구경 왔어요. 진짜 그대로네요. 옛날에 여기 나루터에서 배도 타고 했거든요." 함께 온 친구들도 신이 났다. "옛날 서까래 그대로네. 불 때는 아궁이도 다 있어. 솥도 걸렸고. 잘 왔다, 야!"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낙동강이 내성천, 금천과 만나는 곳이다. 이곳에 삼강 나루터가 있다. 일제 때만해도 과거 물자와 사람이 분주하게 오가던 교통 요지였다. 부산에서 올라온 소금배, 쌀을 실은 미곡선 상인들의 물물교환으로 분주했다. 서울로 올라가는 장사치와 물자로 북적거렸다. 장이 서는 날이면 하루에도 나룻배가 30여 차례 강 이쪽과 저쪽을 오갔다. 삼강리 주민들은 그 시절을 어제처럼 기억한다. "사람들이 전부 일루 건너가. 소들도 전부 이리로 넘어갔지. 소장수들이 소를 댓 마리씩 사가지고 여기서 물을 건너 서울로 올라갔어요. 소마다 지가 신을 짚신을 한 짐씩 짊어지고 강을 건네. 그래 문경새재 넘어가지고 소한테 짚신 갈아 신겨가면서 서울까지 가는 거요. 과거 보는 사람들도 그래 다니고. 여기 주막도 손님이 그랬기 많았고. 소 일곱 마리를 실을 수 있는 나룻배와 사람 20명이 탈 수 있는 나룻배, 그렇게 두 척이 항상 왔다갔다 했지." 삼강주막은 1900년쯤부터 삼강 나루터, 거대한 회나무 아래 자리 잡았다. 지난 2005년 90세로 사망한 '마지막 주모(酒母)' 유옥연 할머니가 삼강주막을 꾸리기 시작한 건 1930년대였다. 70년 가까이 손님을 받았다. 유 할머니 이전에도 주모가 둘쯤 더 있었다지만, 주민들은 "주모라고 하면 유 할머니만 떠오른다."고 했다. 삼강리 정재윤 이장은 "유 할머니는 글도 숫자도 몰랐지만 머리가 비상했다"고 했다. "외상을 주면 부엌 흙벽에 칼로 금을 그었어요. 세로로 짧은 금은 '막걸리 한 잔'이고, 긴 금은 '막걸리 한 되'란 뜻이에요. 외상값 다 갚으면 가로로 긴 금을 그었지요." 부엌 흙벽에는 길고 짧은 금이 무수히 남아있다. 가로 긴 금이 없는 것도 많은 걸 보면, 주모의 인심이 그렇게 야박하진 않았던 모양이다. 번성하던 나루터와 주막은 1970년대부터 쇠락했다. 나루터 아래로 다리가 놓이고, 제방이 생기면서 인적이 끊겼다. 건설 붐으로 강바닥에서 골재를 파내면서 그렇잖아도 줄어든 물이 더 말랐다. 회나무 뒤통수까지 차오르던 강물은 이제 나루터 저 아래에서 골골 흐를 뿐이다. 손님은 끊겼지만 유 할머니는 주막을 유지했다. "그 할마시 아니면 벌써 없어졌지. 젊은 사람 같으면 접었을 텐데. 마을 사람 오면 소주 한 병 팔고, 두 병 팔고 했지. 배 없어지고는 할마시 혼자 세월을 보냈어요." 유옥연 할머니는 2005년 세상을 떠났다. 돌볼 주모가 없어진 삼강주막은 허물어져갔다. "우리나라에 주막은 이것뿐인데, 없어져야 되겠느냐"며 삼강리 주민들이 주막 살리기에 나섰다. 2005년 12월 경북도 민속자료로 지정됐다. 정재윤 이장은 "저 부엌 덕분에 문화재로 지정 받은 것"이라고 했다. "일반 가정집 부엌과 다르게 문이 네 개나 있죠? 몸만 움직이면 사방팔방으로 바로 나갈 수 있는 구조입니다." 주막집은 작지만 옹골차다. "여자가 작아도 아는 낳는다고, 있을 건 다 있다"는 이장 말마따나, 16평에 불과하지만 부엌, 방 둘, 툇마루에 다락까지 있다.
경북도에서 1억5000만 원을 지원받아 훼손된 목재와 지붕을 걷어내고 초가집을 복원했다. 유 할머니가 금을 새긴 흙벽은 그대로 뜯어냈다가 고스란히 살렸다. 1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원두막 두 채도 세웠다. 1934년 '갑술년 대홍수'로 무너진 흙집 두 채도 주막 앞에 다시 들어선다. 한 채는 사공이, 다른 한 채는 보부상들이 숙소로 사용했다. 2007년에는 새 주모를 '공모'했다. 그래 봤자 삼강리 마을 주민 대상이었지만. 선발 조건은 딱 세 가지였다. '술을 직접 담가야 한다.' '손님에게 친절해야 한다.' '주막을 비우면 안 된다'. 주민 셋이 주모 선발경쟁에 나섰고, 권태순(70)씨가 유 할머니의 뒤를 이을 주모로 선발됐다. 나이도 적당하고, 친절하고, 무엇보다 술을 잘 빚어서 남보다 높은 점수를 땄다. '마지막 주막이 복원됐다'고 소문이 나면서 요즘 삼강주막에는 다시 손님이 몰린다. 예전 같지야 않겠지만 평일 70여 명, 주말이면 200여 명이 삼강주막을 찾는다. 나이 좀 있는 분들은 옛 주막이 남아있다는 게 반갑고, 젊은 사람들은 신기하다. 주막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는 맛도 꽤 근사하다. 권태순 주모가 스물한 살에 시집와서부터 빚은 막걸리는 옛날 맛 그대로다. 많이 마셔도 머리가 아프지 않다. 두부와 묵도 공장에서 만든 것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안주 중에서 으뜸은 배추전. 물에다 밀가루 푼 묽은 반죽에 배춧잎을 잠깐 담갔다가 아무런 고명도 없이 그냥 프라이팬에 지져낸다. 심심하지만, 먹다 보면 희미한 단맛과 감칠맛이 배 나온다. 꾸밈없고 투박한, 그야말로 '경상도스런' 음식이다. 막걸리 한 주전자(1되) 5000원, 배추전 3000원, 두부 2000원, 묵 2000원. 1만2000원짜리 '세트'로 시키면 막걸리부터 배추전, 두부, 묵, 김치가 한꺼번에 나온다. 권태순 씨는 주모가 된 것이 영 탐탁잖은 척한다. "사람 꼬라지 안 되고 이게 뭐꼬?" 권 주모는 막걸리 자국이 확연한 바지를 손으로 가리켰다. 삼강리 노인회장인 남편 정수영(71)씨가 주막 살리기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던 사람 중 하나니, 주모도 남편이 하자 해서 나섰을 가능성이 있어 보이기는 한다. 주모 일을 시작한 뒤부터 권씨는 새벽 두 시는 돼야 잠자리에 든다. 다음날 손님에게 낼 막걸리를 빚고, 묵을 쑤고, 두부를 만들다 보면 시간이 휙휙 지나간다. 그래도 자기가 만든 술이며 안주를 손님들이 잘 먹으니 기분 좋다. 여기저기 신문이나 방송 인터뷰에서 "유 할머니를 생각하며 삼강주막을 오래 보존하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 진짜로 싫지는 않은 것 같다. 중부내륙고속도로를 달리다 점촌․함창IC에서 빠져나온다. 문경시에서 34번 국도를 타고 예천 방면으로 가다 보면 산양면 소재지에서 59번 지방도를 만난다. 풍양 방면으로 10분쯤 가면 삼강교다. 다리를 건너면 삼강주막 이정표가 보인다. 주막은 다리 바로 옆에 있다.(朝鮮日報 2008.02.28 11:18)
삼강주막(慶北醴泉 三江酒幕 : 酒幕~酒店) [記事] : 또 한 시절이 흘러갔으리라. 막걸리가 소주로 진화할 때 주모는 마담으로 세련돼 갔다. 신파는 신식의 위세에 눌려 '추억족'의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호롱불빛 어른거리는 주막의 술주정은 그냥 풋풋하고 호기스러웠다. 휘황찬란하고 번들거리는 주점의 취기에는 깨어진 병 조각처럼 으스스한 흉기(兇氣)가 감돈다. 주막의 '한가로움'은 붕괴되고 그 자리에 '삭막함'이란 씨앗이 떨어졌다. 외상술이 꼬리를 감추어버렸다. 주막은 허름했지만 장대했고 주점은 거대해도 홀쭉했다. '낭만의 술'은 어디로 가버렸는가. 술이 '발암(發癌)의 균'으로 매도되는 이때, 주막도 어느 날 박물관으로 걸어가 버렸다. 밤이다. 네온사인 작열하는 주점가를 걷지만 그 옛날 그 술집의 흥청거림과 유장미는 찾아볼 길 없다. 오직 내 식탁의 사연에만 귀를 기울인, 하여 술값만큼의 취기를 부리나케 집어넣고 화학적으로 마비된 몸을 이끌고 귀가한다. 주모와 마담의 교차점에 뭐가 있는가. 누군가는 웃음이 있다고 했다. 둘 다 웃음을 판다지만 남정네와는 '아름다운 거리'를 뒀으리라. 둘의 울림은 좀 달랐다. 한쪽은 정이 묻어 있는 것 같은데 다른 쪽은 '전략적 유혹라인'을 갖고 있었다. 주모는 '숙명적'인 구석이 있는데 마담은 다분히 '비즈니스적'인 탓도 있으리라. 청상과부가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눈물의 길. 주모는 자식 때문에 그 길을 견뎠다. 그도 비장한 세월의 채찍 덕분에 질그릇 같은 한 품새를 얻는다. 육자배기 같은 어투와 동선. 정작 그녀를 위로해주는 건 외간 남자가 아니라 세월이었다. 누구의 여자가 아닌 그래, 모두의 여자. 어느 날 고개를 돌리니 주막도 주모도 없었다. 딱 한 주막만 빼고. 2005년 10월 '이 시대의 마지막 주모' 유옥련 할매가 아흔 나이로 세상을 떴다. 삼강 주막은 2년간 방치됐다가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동민들이 복원시켰다. 2대 주모로 선발된 권태순 할매(70)가 지키고 있는 삼강주막의 막걸리 인심은 어떨까. 맛보기 위해 현지로 달렸다.(이춘호 記者 嶺南日報 2008.4.18)
삼강주막(三江酒幕으로 봄나들이 : 韓紙 芳名錄 4卷엔 落書가 빼곡히…젓가락장단은 멈출 줄 모른다./ 三江酒幕을 사랑하는 한 人士가 表具해 걸어놓은 '三江酒幕'이란 詩 한 首./ 유옥련 酒母가 외상장부로 利用한 검정 묻은 흙벽. / 메뉴는 딱 하나 1萬2千 원짜리 막걸리․배추전․묵․두부 세트 안주.) [記事] : [# 强烈한 봄볕…회화나무가 屛風처럼…젓가락에 걸리는 江바람도 멋진 안주] : 대구에서 차를 몬 지 1시간 30여 분.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에 도착했다. 여긴 낙동강이 내성천과 금천을 끌어당기는 포인트. 삼강(三江)에서부터 낙동강 700리가 카운트 다운된다. 위로 가면 단양과 안동 물길로 갈라진다. 앗, 저건 풍경이 아니고 그림 같다. 삼강주막 첫인상이다. 200년 수령의 회화나무 세 그루. 멋진 병풍으로 앉아 방문객을 맞는다. 저 나무가 압권이다. 없었다면 삼강주막의 매력도 격감할 듯. 뻗어 나온 10m 이상의 가지가 주막 위 초가지붕 바로 위에서 넘실거리고 있다. 제방이 시야를 가로막는다. 홍수 막으려다 보니 일제 때보다 강둑이 3m 이상 상승한 거다. 뒷마루에 앉아도 강줄기가 보이지 않는 게 아쉽다. 하지만 강둑에 오르면 금세 탄성을 자아낸다. 강 옆에 유채꽃 단지가 절정을 향해 달리고 있다. 강줄기와 유채꽃, 그리고 강둑에 외롭게 서 있는 회화나무, 주막, 밤에 백열전구에 불이 들면 기막힌 사진 한 장감이다. 맞은 편 산 너머에 하회마을과 쌍벽을 이룬다는 회룡포가 있다. [# 주말엔 전국에서 500~600명 몰려 삼강리 솔숲 옆엔 문화마을도 조성] : 주막촌에 닿으니 좀 혼란스럽다. 비뚤비뚤 주차된 차량, 왼편에 비닐하우스로 꾸며진 단체석, 컨테이너 주방. 플라스틱 의자, 호스 달린 수도. 관계자들도 그걸 알고 있단다. 곧 옛스럽게 치장될 거란다. 주막 옆 논도 조만간 주차장 등으로 둔갑한단다. 그럼, 안심. 그것 빼고는 기막힌 풍광이다. 강렬한 봄볕, 청명한 하늘, 원두막 그늘에 앉으니 바람의 진가를 알겠다. 여기선 젓가락에 걸리는 강바람도 멋진 안줏감이다. 삼강주막은 2년간 죽었다가 2008년 1월 17일 깨어났다. 경북도와 예천군에서 1억5천여만 원의 복원 비용을 줬다. 허물어진 주막은 리모델링됐다. 30㎡ 넓이의 주막은 방 2칸, 부엌, 뒷마루로 짜여져 있다. 하늘 간 주모를 대신해 새 주모가 공모됐다. 이 마을 특산물도 팔고 묵어갈 수 있게 한옥촌 스타일의 문화마을도 삼강리 솔숲 옆에 지어지고 있다. 일종의 팜스테이. 오후 1시를 조금 지난 시각. 서울 등지서 소문 듣고 찾아온 관광객들이 주막의 주인방과 나그네 방을 차지해 버렸다. 콧구멍만한 토방이다. 나그네방은 문이 3개. 바람이 푸짐하다. 누가 삼강주막이란 제목의 시를 표구해 걸어 놨다. 나이든 사람은 '추억'에 취하고 젊은이들은 '풍경'에 취하는가 보다. 벽엔 이백의 맘으로 휘갈긴 방문객의 애틋한 심사가 검게 적혀있다. 문화재라서 낙서도 자제하라는 안내문이 붙여져 있다. 그동안 한지를 묶어 만든 방명록 4권이 낙서로 가득 찼다. 여기선 볼거리 찾지 마라. 풍경의 행간을 찾아라. 그냥 바람과 주막, 그리고 푸른 못둑에서 삼강만 보고 간다고 생각해라. 싸리나무로 둘러쳐진 정낭, 머슴 근력 테스트할 때 사용하는 100㎏은 족히 넘어 보이는 '들돌'이 볼거리라면 볼거리. 2대 주모 권태순 할매가 안 보인다. 지척에 있는 집에 가서 김칫거리를 장만중이란다. 주말엔 500~600명이 들이닥친다. 이때는 마을 주민들이 2인 1조로 일당 5만 원을 받으며 지원 사격해 준다. 한 관광객이 주모의 아들 정재군(45) 씨에게 농담을 준다. "젓가락 장단도 괜찮습니까?" "노래만 잘 하면 괜찮습니다." 그 소리가 끝나기도 무섭게 잠깐 젓가락 장단이 흐른다. 도시민의 시름이 잠시 흥으로 대체된다.
[# 외상장부로 활용했던 벽은 문화재로 주막살리기 프로젝트는 아직 진행형] : 2005년 조선의 마지막 주모로 불렸던 유옥련 할머니. 1930년대부터 그곳에서 70여 년쯤 길손을 받았다. 주막은 1900년쯤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유씨 할머니 전에 두 명의 주모가 더 지나갔다고 한다. 80년대 초 근처 다리가 생기면서 배도 사라진다. 유씨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2년간 이 주막은 폐가로 방치됐다. 이때 2대 주모의 남편 정수영(70) 씨, 현재 정재윤 이장, 마을부녀회 등이 머리를 맞대고 '주막 살리기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문화재로 만들기 위해 거리를 찾았다. 하지만 별로 보이지 않았다. 관계자들도 주막의 역사는 인정되지만 문화재로 정하는 데는 난색을 표했다. 어렵게 하나 찾았다. 검정 묻은 부엌 흙벽에 마치 암각화처럼 보이는 외상장부 구실을 하는 벽이었다. 그 벽은 문화재로서 가치가 인정돼, 경북도 문화재 134호로 지정된다. 벽에 아이들이 낙서한 것처럼 선이 촘촘하게 그어져 있다. 유씨 할머니는 글을 몰랐다. 외상 만큼 칼로 흙벽에 금을 그었다. 세로로 짧은 금은 막걸리 한 잔, 긴 금은 막걸리 한 되란 의미. 외상값 다 갚으면 가로로 긴 금을 그었다. 그런데 가로 금보다 세로금이 더 많았다. 주모의 맘이 짠하다.(이춘호 記者 嶺南日報 2008.4.18)
삼강주막(洛東江 探査隊 醴泉區間 通過 : 1日 三江酒幕에서 中食, 尙州市 경천대까지 探査) [記事] : 경상북도가 낙동강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추진과 낙동강에 잠재된 다양한 자원현황 조사를 위해 2008년 4월 30일 낙동강 700리 탐사 대장정에 나선 가운데 탐사대가 5월 1일 예천군 구간을 통과했다. 이번 탐사는 단순한 물길 확인 차원을 뛰어넘어 전구간의 수량과 수질현황, 하천구조물 현황, 레포츠자원 현황, 전설이나 지명 등을 조사하게 되며, 경부운하 건설 등으로 낙동강 환경변화에 대비한 사전 현황조사에도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경북대 낙동강연구원과 공동으로 진행하는 이번 탐사에는 향토사학자 등 민간전문가와 주민, 언론인, 시군공무원 등 50여 명의 탐사대원이 낙동강 시발지인 봉화군 명호면 이나리 강변에서 고령군 개진면 개포리 개경포까지 보트를 타고 이동하면서 각종 조사와 함께 낙동강 권역 주민들의 여론도 듣는다. 첫째 날 안동댐까지 탐사를 마친 탐사대는 탐사 둘째 날인 1일에는 하회마을에서 풍천교, 삼강주막에서 경천대까지 보트로 이동하면서 탐사를 하고 12시에는 삼강주막에서 마을주민들이 준비한 중식을 하였다. 삼강주막은 내성천과 금천, 낙동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지어진 이 시대 마지막 남은 주막으로, 2005년 경상북도 민속자료 13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재 복원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탐사대는 보트를 이용하여 상주 경천대로 떠났으며 마지막 날인 2일에는 구미에서 고령 개경포까지 탐사를 끝으로 대장정의 막을 내린다.(황성한 記者 醴泉인터넷放送 2008-05-01 오후 5:18:53)
삼강주막(醴泉郡 '三江酒幕' 一帶 集中 開發 : 草家 商街․나루터 등 完全 復元 7億餘 원 投入 觀光 名所化 推進) [記事] : 예천군이 삼강나루의 나들이객에게 허기를 면하게 해주고 보부상들의 숙식처로 사용된 이 시대 마지막 주막인 삼강주막 일대를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명소로 만들기 위한 사업에 본격 나섰다. 군은 2005년 말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34호로 지정된 예천군 풍양면 삼강주막의 복원공사를 위해 2007년 말 1억5천만 원의 예산을 들여 1900년경에 지어져 붕괴 위험에 처해 있던 주막 건물을 전면 해체한 뒤 예전 모습으로 완전 복원해 관광객들에게 공개했다. 현재 삼강주막에는 평일과 주말에 300여 명에서 1천여 명의 관광객들이 찾아와 이 일대의 풍광을 감상하고 막걸리와 배추전 등 옛 주막에서 먹던 토속음식과 동네 주민들 중에서 선발된 주모의 구수한 입담을 들으며 주막의 옛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군은 이 일대 주변 부지를 추가로 매입해 경북도 직영으로 5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옛날 모습 그대로 보부상 숙소를 복원하고 1억 5천만 원의 예산을 추가로 확보해 나룻배를 운영하던 사공들의 숙소와 이곳을 찾던 선비들이 이용했던 말들의 쉼터인 마방까지 복원할 계획이다. 특히 20여억 원의 예산을 들여 그 옛날 보부상들이 주요 물목을 거래했던 저자거리를 조성키 위해 20여 동 이상의 옛날 초가 상가 건물을 복원키로 하고 7억2천여만 원을 들여 삼강나루터도 완전히 복원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조만간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수백년 전 이곳을 드나들던 황포돛대 나룻배를 타 볼 수 있는 날도 멀지 않았다. 군은 삼강주막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편의 제공 및 볼거리․즐길거리 등에 대한 다양한 발굴로 명실상부한 특색 있는 관광지로 만들어 나가기 위해 군청 실과소장 및 직원들의 발전적인 의견을 수렴하고자 삼강주막 주변의 관광 명소화를 위한 개발방안을 공모하고 있다. 한편 삼강주막이 자리한 삼강은 내성천과 금천, 낙동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맑은 물과 넓은 백사장이 어우러져 있어 주변경관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예로부터 서울로 가는 길목으로 장사하던 배와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면서 상거래가 번성한 지역이었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張炳喆 記者 慶北日報 2008-05-08)
삼강주막 [記事] : 재경예천군민회 카페입니다./ 예천 풍양 삼강주막(민속자료 제134호) 도지정문화재 보호구역 확대 지정 예고/ 글쓴이: 예천사랑/ 2008.05.29 12:43/ 제목 도지정문화재보호구역 확대지정 예고 공고(삼강주막) / 이름 임성자/ 부서 문화관광과/ 날짜 2008-05-22 (11:25)/ 조회 97회/ 첨부 문화재보호구역지정예고-삼강주막.hwp (565 KB)/ 경상북도 문화재보호조례시행규칙 제7조의2 제3항의 규정에 의거 도지정문화재보호구역 확대지정 예고를 다음과 같이 공고합니다./ 1. 공고명 : 도지정문화재보호구역 확대지정 예고 / 2. 대상문화재 : 예천 삼강주막 (민속자료 제134호)/ 3. 소재지 :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166-1 일원/ 붙임 : 예고 공고문 1부/ 경상북도 공고 제2008- 336호 / 공고/ 경상북도 문화재보호조례 제16조 제1항의 규정에 의거 아래 도지정문화재의 보호구역을 확대지정 하고자 동 조례시행규칙 제7조의2 제3항에 의거 다음과 같이 예고하오니, 동 예고사항에 대하여 의견이 있으신 분은 도보 공고일로부터 30일 이내에 경상북도청 문화재팀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2008.05.21/ 경상북도지사/ □ 확대지정 예고 대상 : 일련번호 지정별 문화재명 소재지 비고의 순서임/ 1 민속자료 134 예천삼강주막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166-1번지 일원/ □ 확대지정 예고 사유 : 삼강주막 복원 및 주변정비계획에 따라 기 매입한 필지에 대하여 보호구역을 확대 지정하고자 함 /□ 확대지정 예고기간 : 도보 공고일로부터 30일/ □ 연락처 : ᄋ 전 화 : 053-950-3314, ᄋ FAX : 053-950-3349, ᄋ 주소 : 우편번호 702-702, 대구광역시 북구 연암로 60번지 경상북도 문화체육국 문화재팀 / □ 확대지정 예고 내용 : ᄋ 필지별 【예천 삼강주막(민속자료 제 134호) 문화재보호구역 조정내역】/ 연번 소재지 기지정 구역 연번 조정(추가지정, 정정 포함) 소유자(주소) 비고/ 지번 지목 지적(㎡) 지정면적(㎡)/ 지번 지목 지적(㎡) 지정면적(㎡)/ 예천군(예천읍 노상리125-1)/ 1 삼강 166-1 전 170 170 1 166-1 전 170 170 〃/ 2 156-2 답 572 572 2 156-2 답 572 572 〃/ 3 157-2 답 236 236 3 157-2 답 236 236 〃/ 4 4 156 답 2,503 2,503 〃 추가/ 5 5 157 답 2,149 2,149 〃 〃/ 6 6 168 답 298 298 〃 〃/ 7 7/ 8 8/ 계 3필 978 978/ 계 6필 5,928 5,928/ 출처 : 예천군청 홈페이지(daum 2008)
삼강주막("살아있는 酒幕") [記事] : 먹는 이야기를 한다고 해 놓고 무슨 주막 이야기냐 하실 분이 있을 수 있겠지만서도 그건 아닙니다. 본 주막으로 말씀드리자면 사연이 깁니다. 지금도 살아있는 주막이기도 하고요. 할매가 김치전이나 두부국을 경상도 식으로 뻘겋게 끓려 내오면 나그네는 그 때서야 한시름을 놓게 되는 것이지요. 유명 방송국 9시 뉴스에 나오고부터는 인심이 조금은 사나워 졌다고들 하는데 ........하여간 이 주막은 조선시대 영남 사람들이 문경새재를 넘기 전 낙동강을 건너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지도를 펴 보세요. 낙동강이 원래부터 남쪽(남해)으로 흐르는 것이 아닙니다. 낙동강의 큰 두 줄기 하나는 안동에서 내려오는 본줄기와 소백산에서 내려오는 내성천이 '문경''상주''예천'이 부딪치는 곳에서 만나 그때부터 남쪽으로 흐르지요. 그래서 이곳을 삼강(즉 강이 3개 모인다)이라 불렀답니다. 이곳이 그런 위치적인 이점 때문에 나루터가 생기고 이름하야 삼강 삼강나루라고 부릅니다. 그 나루 길목에서 늙은 주모가 술을 파는 것이지요. 이곳에 최근에 다리를 놓아 관광하기에는 그만이지만 옛 정취는 살아졌습니다. 혹 영남지방을 가게 되면 들릴 만 곳이라 추천합니다. 겨울에는 아무래도 을씨년스럽겠고 조금 생경하겠지만 그런 맛도 괜찮습니다. 가끔은 그리고 찬찬히 보면 주변에는 볼만한 것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원시림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비무장지대처럼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삼강의 원시림을 볼 수가 있습니다. 원시림을 보고 난 후 막걸리 한잔에 두부국을 안주 삼으면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낙동강을 안을 수 있을 것입니다. 멀리 소백산이 보입니다. 소백산 쪽에서 내려온 내성천과 앞쪽은 안동 쪽에서 내려오는 낙동강 본줄기가 되겠네요. 이 두 강이 하나로 만나 삼강이 됩니다.(김영호 客員記者 安東넷 2008-06-30 오전 9:10:32)
삼강주막(堤防의 逆說) [記事] : 땀이 몇 바가지 흘렀을 것이다. 걷고 또 걷는 강길. 땀범벅으로 눈을 뜰 수 없을 지경이 되면 제방 너머에서 강바람이 찾아와 땀을 닦아 주었다. 기꺼이, 즐겁게 걷기로 마음을 먹자 뙤약볕도 땀도 도반(道伴․길동무)이 되었다. 강길 중에서도 최고는 제방길이었다. 적당한 상승감과 확 트인 시야는 제방길에서만 맛볼 수 있는 선물이었다. '2008 낙동강 도보순례 대장정'('강살리기 네트워크' 등 주최) 9일째를 맞던 2008년 7월 23일, 경남 창녕군 남지에서 순례단을 만났다. 위로하러 갔다가 위로받고 돌아왔다. 일행은 30여 명이었다. 서울에서, 섬진강변에서, 태백에서 걷기를 자청한 사람들이다. 모두 구릿빛 얼굴이었다. 몇은 수염이 더부룩했다. 이글거리는 눈빛 속에 벌써 강이 하나씩 흐르는 것 같았다. 걷고 또 걷고 젖고 말리기를 반복하다 지쳐 돌아온 저녁에 이들은 제방제(堤防祭)를 올렸다. 편육 몇 점과 막걸리 한 됫박이 제상으로 차려졌다. 누가 알기나 할까, 이날의 제방제를(하긴 제방제가 있다는 것도 이날 처음 알았다). "제방의 신이시여, 우리들 탐욕을 꾸짖으소서. 우리들 이기심을 나무라시고 무지를 책하소서. 그리하여 자연의 노여움을 거두게 하시고 제방을 굳건하게 지키게 하소서. 평화의 제방이 되게 하소서…." 남지 둔치의 강변은 저녁에도 쩔쩔 끓었다. 산천초목이 숨죽인 채 낯선 제방제를 물끄러미 구경했다. 20여 분간의 짧은 제방제가 끝나자 강 쪽에서 가냘픈 바람이 불어왔고, 참가자들은 노래를 불렀다. 왜 제방제를 하는가. 제방의 뜻을 새겨보기 위해서라고 한다. 목마른 강물을 달래는 제의라고 한다. 인간의 관점이 아니라, 강의 눈으로 물을 이해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강물도 목이 마르다'. 가두려는 인간의 욕망이 강을 목마르게 한다. 이 역설은, 산업문명의 이면을 뼈아프게 돌아보게 한다. 산업사회의 인간들은 개발 이익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제방을 쌓았다. 홍수는 늘어나고 제방은 성채처럼 날로 높아간다. 20세기의 강은 제방사라 할 정도로 실로 많은 제방이 건설됐다. 오늘날 강변 농경지 대부분은 실제로 제방의 산물이다. 그러나 자연 용량을 고려하지 않은 제방들은 보릿자루처럼 툭툭 터졌다. 인간이 조급하게 접근할수록 제방은 허술함을 노출했고, 홍수는 그 틈을 가차 없이 공격했다. 제방 붕괴에 따른 피해는 천문학적이다. 지난 2002년 태풍 루사 때 전국에서 270명이 숨졌고, 2003년 매미는 148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재산 피해액이 수조 원에 달했고 복구비용은 피해액의 배를 웃돌았다. 2002년 8월 낙동강 제방 붕괴로 흙탕물 바다로 변했던 김해시 한림면 주민들의 절규는 지워지지 않을 제방 수난사가 아닐 수 없다. 제방은 이처럼 철저히 두 얼굴을 한다. 마법처럼 농경지를 낳고는 악마처럼 모든 것을 쓸어간다. 아무리 쌓고 높여도 인간들은 불안하다. 무엇이 뒤틀린 것일까. 23일 제방제를 열면서 낙동강공동체 김상화 대표는 나직이 말했다. "인간의 교만이 문제지요. 제방을 높인다고 강이 고분고분해집니까. 더 사나워져요. 물이 흐를 공간을 더 내줘야 합니다." 그의 말은 대운하를 반대하던 정연한 논리보다 더 무겁게 다가왔다. 도보순례를 주최한 '강살리기 네트워크' 측이 내건 올해 슬로건도 '홍수와 더불어'란다. 홍수 이길 장사는 없다는 말이겠다. 도보순례단은 창원시 동읍 본포나루에서 또 하나의 '상실'을 목도한다. 가까스로 버티던 나루터 주막(찻집)이 제방공사로 끝내 헐린다는 소식이다. 뜻있는 인사들이 그토록 보존을 바라던 '문화재급' 주막이 헐린다니. 그동안의 보존운동이 허망하다. 주막이 단봇짐을 싸고 나면 콘크리트 제방이 그곳을 차지할 것이다. 제방과의 싸움에서 문화가 두 손 든 꼴이다. 슬프다. 경북 예천 땅 삼강주막의 옛 주모 유옥연 씨가 죽기 전 되뇌던 말이 떠오른다. "제방 놓인 뒤로 너무 답답해. 강이 보이나, 물이 보이나, 사람이 보이나. 경치 배럿어." 그래도, 제방을 높여야 할 것인가. 제방을 부여잡고 묻고 싶을 따름이다.(박창희 企劃探査部長 國際新聞 2008-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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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다리녹색체험마을과 두레문화, 31일 사회적기업 창업팀에 선정...축하합니다.
예천군 사회적기업(龍門 출렁다리綠色體驗마을. 醴泉通明農謠 두레文化 '社會的 企業 創業팀' 選定) [記事] : 예천군의 용문면 출렁다리녹색체험마을과 예천통명농요 보존·계승 단체인 두레문화가 2014년 3월 31일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에서 모집하는 '2014년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창업자 팀'으로 선정됐다.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은 혁신적 사회적기업 창업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 팀을 공모를 통해 선정하여 이들에게 창업에 필요한 창업공간과 창업사업비(2천만~4천만원), 맞춤형 멘토링 등 사회적기업 창업을 위한 원스톱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기업 육성프로그램이다. 예천군에서는 2014년까지 '지역특화형 사회적기업 10개이상 육성'을 목표로 지역특화형 모델 발굴과 컨설팅, 교육, 자원연계 등으로 사회적기업의 성공적인 생존을 지원하고 있으며 이번에 선정된 2개 팀도 지난 2월초 사회적기업 컨설팅을 통해 발굴했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대구경북지역 위탁기관인 대구대학교 산학협력단 사회적기업지원센터에 따르면 이번에 총 65개 팀이 신청해 그 중에 20개 팀을 선발했는데 특히 그 중 1위, 3위를 차지한 출렁다리녹색체험마을 팀과 두레문화 팀은 타 지역에 전파 가능한 우수모델로 성공적으로 창업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멘토링과 사업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편, 예천군에는 현재 사회적기업 7개소를 육성하여 이들 기업의 성공적인 자립을 위해 각 공공기관과 단체에 사회적기업의 생산품과 서비스를 우선 구매토록 홍보와 협조를 구하고 있으며, 현재 예비 사회적기업 에는 인건비와 사업개발비를 지원하고 있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4-04-02 오전 9: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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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