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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603) : 예천8경 중 삼강주막(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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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주막과 회룡포(洛東江 찾은 지율 "國土는 우리 몸이고 江은 핏줄") [記事] : 우리에게 환경과 생명의 소중함을 알려준 '천성산 지킴이' 지율 스님이 내원사 산문을 떠나 2009년 3월 초부터 낙동강 발원지인 강원도 태백 황지를 출발하여 한 달여 동안 걷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기도 하며 낙동강 1300리 물길 순례에 나섰다. 그런데 2009년 4월 13일부터 15일까지의 탐방은 방학을 맞은 청도 운문사 승가대학 비구니 학인 스님 30여 명과 함께 낙동강 구간 중 가장 아름답고 의미 있는 예천 회룡포와 삼강주막, 상주 경천대 일원을 둘러보기 위해 특별일정이었다. 14일에는 지율 스님 일행이 기자가 살고 있는 문경 인근에 위치한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주막(조선시대 마지막 남은 주막)에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운 마음과 직접 한번 뵙고 싶은 마음에 급히 차를 몰아 달려갔다.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오전 11시경 멀리 스님일행이 삼강다리 위에서 낙동강 물줄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곳 삼강은 문경 금천과 예천 내성천, 낙동강 등 3개의 강이 합쳐져 붙여진 이름으로, 사실상 낙동강 700리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다리중간에서 만나 지율 스님을 만나 합장배례하고 가까이에서 보니 단식할 때 사진에서 본 초췌한 모습보다는 많이 회복됐지만, 아직도 세상과 부딪치면서 마음고생이 심한 듯 야윈 모습이었다. 스님과 첫 대면이었지만 낯설지 않았고, 오히려 편안했다. 스님의 부드러운 눈빛과 미소는 오히려 따스하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지율 스님에게 "눈망울이 커서 눈물이 많은 스님이라고 누가 말했는데 정말 눈이 크네요." 했더니 "하도 많이 울어 이제는 흘린 눈물이 없다"면서 웃으셨다. 강변길을 동행하며 지율 스님은 생명의 젖줄인 낙동강의 푸르고 맑은 물과 그 속에 노는 물고기, 길가에 자라는 이름 없는 들풀과 꽃, 나무와 곤충 등 생명 있는 모든 것들과 수없이 많은 무언의 대화를 나누었다. 강의 품안에서 한없는 평안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스님의 눈빛으로 알 수 있었다. 지율 스님은 강과 물,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동행자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물이 곧 생명이다. 물이 죽으면 생명도 죽는다.", "천성산에 도롱뇽이 살 수 없다면 남극에서 펭귄도 살 수 없게 될 것이다", "환경파괴로 도롱뇽이 죽는다면 사람도 죽게 된다", "모든 생명의 무게는 다 같다" 길가에 핀 한 송이 풀꽃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한없는 애정을 표현하는 스님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이든 동식물이든 생명에 대한 무한한 외경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읽을 수 있었다. 도롱뇽 몇 마리 때문에 국책사업이 추진되지 못해 국가발전을 막는다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생명의 존엄성을 몸으로 주장할 때 보였던 고행자의 모습을 이곳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지율 스님은 강을 따라 걷는 도중 중간 중간 사진을 찍었다. 낙동강의 옛 모습과 현재 그리고 개발 후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고 했다.
"전에 천성산 자연과 도롱뇽에 대한 충분한 모니터링을 하지 못했음에 대해 못내 아쉬웠다"면서 "강의 변화 상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헤어질 때쯤 지율 스님에게 "왜 다시 숲에서 나와 강을 찾으셨습니까?" "이번 순례의 목적은 무엇이고 어떤 의미의 탐방이었습니까?"에 물었지만 끝내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지혜롭지 못하고 아둔한 기자에게 지율 스님은 "느낄 수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몸으로 느껴보자"고 선문답하듯 이야기하면서 "바늘구멍은 작지만 다 볼 수 있다. 지금 그 작은 구멍을 만들고 있다"라는 말만 들려주셨다. 다시 기자가 꼭 답변을 듣고 싶어 경부운하에 대한 지율 스님의 생각을 재차 물어보았더니 "천성산 고속철도도 그렇고 무턱된 반대가 아니다." 라고 전제한 후 조심스럽게 운하건설의 목적이 불분명한 점, 미래에 미칠 영향, 국민반대와 검증되지 못한 점 등에 대해 언급했다. "국토는 우리의 몸이고 강은 핏줄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무심히 쓰는 비누, 세제 등이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자각 후 사용을 자제했다"는 지율 스님은 "작은 것부터 자연을 지켜야 하며, 자연이 훼손된다면 국민이면 누구나 반대 할 수밖에 없다. 자연은 후세에게 물려줄 자산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운하에 대해서도 위의 요인이 해소되고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면 호응하겠지만 지금은 모두 무관심하다. 나를 포함해 누구나 국가 정책에 참여하고 결정에 관여해야한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이번 탐방에 함께 한 청도 운문사 승가대학 진광 강사스님에게 강을 바라본 3일간의 소감과 지율 스님과 함께한 시간에 대해 느낌을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말로만 환경, 생명, 사랑을 이야기했지만 이번 기회에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나니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이며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 유익한 시간이었고 지율 스님이 조곤조곤 들려주는 미처 알지 못했던 물이야기 풀꽃이야기를 들으며 걷는 시간이 꿈인 듯 아름다웠고 감동 그 자체였다. 천성산 도롱뇽을 살리려는 지율 스님의 생명사랑사상이 모든 이들의 가슴에 전파되기를 바라며 스님의 뜻대로 이 아름다운 강산이 그대로 보존되고 생명이 살 수 있는 환경이 훼손되지 않기를 바란다." 평범한 여인으로 돌아간다면 밥장사를 하면서 배고픈 사람들에게 밥을 주고 싶다고 하셨는데 여기 주막에 사시면 어떨까요? 불교에서 육도윤회란 업과 과보에 의해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에 다시 태어남을 믿는다는데 내가 후생에 도롱뇽이 될 수 있습니까? 지난번 산사를 나오신 이유가 뭇 생명들의 신음소리와 살려달라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라고 하셨는데 낙동강에서도 신음소리를 들으셨습니까? 달을 보라 하니 손가락을 본다는 말이 있듯이 산하를 보려 하지 않고 오직 스님만을 쳐다보는데 세상에다가 한 말씀하신다면 어떤 말씀을 주시겠습니까? 환경오염으로 지구온난화에 의해 한반도에 소나무가 50년 뒤에는 멸종할 수도 있다는데요. 단식했을 때 무서웠나요? 등등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난 잘 가시라고 인사드리고 돌아왔다. 물이 180도로 도는 것 같지만 360도로 돈다는 말씀, 각자가 화두를 가져라. 알 듯도 모를 듯 한 말씀들을 곱씹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스님 곁에 잠시 있었는데도 스님 것이 내게 베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마음이 평안했다. 아마도 내가 지율 스님과 함께 극락을 갔다 왔나 보다.(이만유 記者 오마이뉴스 2009.04.16 18:22)
삼강주막과 회룡포 [記事] : 하동카페이야기/ 예천 회룡포 삼강주막/ 글쓴이: 백월초당/ 2009.06.29 10:00/ 예천 회룡포와 삼강주막 막걸리/ 삼강주막을 아는 사람이라면 잘 아실 주막 부엌 황토벽의 금.. 숫자도.. 글도 모르던 할머니께서는 외상 장부를 그을음 가득한 부엌의 황토벽에다 기록하셨다. 유 할머니는 글도 숫자도 몰랐지만 머리가 비상했다고 한다. "외상을 주면 부엌 흙벽에 칼로 금을 그었어요. 세로로 짧은 금은 막걸리 한 잔이고, 긴 금은 막걸리 한 되란 뜻이에요. 외상값 다 갚으면 가로로 긴 금을 그었지요..." 삼강리 정재윤 이장님의 회고이다. 부엌 흙벽에는 길고 짧은 금이 무수히 남아있다. 가로 긴 금이 없는 것도 많은 걸 보면, 주모의 인심이 그렇게 야박하진 않았던 모양이다.
** 삼강 주막과 함께 한 회룡포 ** : 삼강 주막이 다시 문을 열고 길손을 맞이한다는 소식에 눈이 번쩍 띄었다.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낙동강이 내성천, 금천과 만나는 곳이다. 2005년 90세로 사망한 '마지막 주모(酒母)' 유옥연 할머니가 살아 계실 때 꼭 한번 들러 봐야지 했던 것이 결국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고 주막이 문을 다시 열고 새 주모를 맞이하고서야 때늦은 방문을 하게 된 것이다. 유옥연 할머니가 삼강주막을 꾸리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였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무려 70년 가까이 손님을 받았다. 예전의 허물어져 가던 슬레이트 지붕을 걷어내고 짚으로 지붕을 이어 올리고 황토로 벽을 단장한 주막은 이전 그림으로 보아오던 삼강주막과는 달랐지만 단촐한 한 채의 초가만으로도 옛 정취를 물씬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돌아가신 분의 체취가 흠뻑 배인 가마 솥.. 유옥연 할머니께서 날마다 만지고 손보시고 닦으셨던 솥.. 할머니 살아실 제 많은 길손들이 저 무쇠가마 솥 덕분으로 머나먼 여정의 허기를 달랬을 테고, 길손 끊어진 이후 할머니 홀로 외로이 주막을 지키며 질기디 질긴 삶의 부분을 이어 가셨을 그 유물. 유옥연 할머니는 길손 끊어진 주막의 조그만 황토 부엌에서 무엇을 생각하며 장작을 지피고 계셨을지.. 홀로 외롭게 너무나 적적 하셨을 할머니의 살아생전 말년을 생각하면 그 외로움이 내 가슴 속까지 전해져 오는 듯.. 코끝이 찡해져 옴을 주체할 수가 없다. 부엌 한 켠의 또 다른 유물.. 찬장. 할머니의 손길이 아마도 가장 많이 오갔을 것 같은 부분이다. 손이 많으면 많은 대로 늘 만져야 했을 것이고, 손이 없을 때면 언제 올지 모를 길손을 위해 늘 준비를 해야 하지 않았을까? 우리나라 옛 아낙들이 부엌의 기물들을 목숨처럼 사랑하고 귀히 여겼다니 아마도 유옥연 할머님도 그리 하지 않으셨으려는지. 마음씨 고운 주모의 손길을 느껴 보고자 낡은 찬장을 한참동안 만져보고 또 만져보고.. 정체가 무엇일까?? 주막 뒷 켠에 요상한 건축물 한 채가 있다. 길다란 나뭇가지로 촘촘히 엮어 만든 둥근 구조물.. 억누를 수 없는 호기심에 기대 잔뜩 하고 그 내용을 확인했다. 아하~!..."통시". 화장실이었다. 한 켠에 끈으로 고리를 만든 출입문이 있고 나무판으로 만든 발판 두개가 나란히 놓여 있고 가운데가 사각으로 뻥 뚫린.. 분명한 우리나라 토종 화장실이다. 출입문 옆에 두루마리 휴지가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현재도 사용 중인 현존하는 전설이다. 주막의 뒷 켠 장독대. 주모가 날마다 행주질하였을... 할머니 살아생전에는 장독도 좀 더 많았을 것이고 더 깔끔하지 않았을까? 오백 년 묵었다는 회나무와 함께 그림처럼 아름다운 삼강 주막.. 방문한 날은 길손이 무척이나 많았다. 유옥연 할머니의 체취를 좀 더 느껴보려고 방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먼저 온 길손들이 주막의 좁은 방을 가득 점령하고 있어 부득이 바깥에서 어두운 방안을 한번 일별하는 것으로 만족.. 바깥에는 찾아드는 겨울 길손들을 위해 비닐로 하우스를 마련하고 그곳에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놓았다. 비닐하우스 외에 짚으로 이엉을 얹은 평상이 두 개가 있지만 자리잡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비닐하우스는 아마도 따뜻한 계절이 돌아오면 없어 질 것 같고 그때쯤이면 주막의 정취가 한층 더할 것 같은.. 삼강 주막은 1,300리 낙동강 물길 위에 마지막으로 남은 유일한 주막이다. 영화 엄마의 촬영지로 느티나무 아래에 자리한 2개의 평상은 영화 나왔던 소품이다.
부산에서 예천의 주막까지 아침도 거르고 허위단심 달려간 주막에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했다. 삼강 주막의 유명한 배추전.. 그리고 두부와 메밀 묵.. 무엇보다 목마른 이들이 맛있게 들이켤 막걸리.. 고소한 배추전과 담백한 두부.. 그리고 메밀묵은 예전에도 먹어 본적 없고 이후에도 같은 맛을 다른 곳에서는 느끼기 힘들 듯.. 아쉽게도 운전을 해야 하는 관계로 막걸리만은 맛보지 못했고 옆자리의 길손들의 입을 빌리자면... "끝내준단다.."^^* 막걸리 한 주전자(1되) 5000원, 배추전 3000원, 두부 2000원, 묵 2000원. 1만2000원짜리 "세트"로 시키면 막걸리부터 배추전, 두부, 묵, 김치가 한꺼번에 나온다. 막걸리는 새롭게 주모가 되신 권태순 할머니께서 직접 빚으신다고.. 물론 두부와 메밀묵도 마찬가지.. 삼강나루터에서 올려다 본 삼강주막의 풍경. 주막은 강둑에 가리어 보이지 않지만 주막과 함께 한 고목은 그 자리에 주막이 있음을 알려준다. 나루를 찾는 길손들의 아름다운 이정표가 되었으리라.. 삼강 나루터.. 굽이 쳐 흐르는 낙동강을 외로이 지키는 이정표 하나.. 저물어 가는 햇살에 반짝이는 낙동강과 주막의 초가지붕, 그리고 삼강나루터 표지.. 이 모든 것들이 지난날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려니.. 물새 소리 한 자락 꿰뚫고 지나간 그 자리.. 오고가는 이 없는 빈 나루터에 홀로 남은 조각배... 예전 길손들의 발이 되어 주던 그 나룻배는 아닐지라도 홀로되어 찾는 이 없이 버려진 저 조각배의 외로움이 말년 홀로 주막을 지키던 유옥연 할머니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지금.. 할머니는 세상에 계시지 아니 하시지만은 하늘나라에서 다시금 길손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삼강주막을 내려다보시며 입가에 잔잔한 미소 한 자락 지으시고 계시리라.. 서녘으로 기울어간 초봄의 짧은 해를 바라보며 먼 길 달려 회포 푼 삼강주막을 이별하고 가까운 곳에 위치한 또 하나의 절경 회룡포로 발길을 옮겼다. 아직은 갈색으로 겨울옷을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한 삼강주막.. 흐르는 강물소리 힘차게 울려 퍼지고 푸르름과 화사한 꽃들이 지나는 길손들의 피로를 덜어 줄 때쯤 다시 한번 삼강주막과 나루터를 찾아보리라..
회룡대(回龍臺)의 위치 :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 삼강주막을 떠나서 약 15분간 달려간 회룡대.. 회룡포는 경북 예천군 용궁면 대은리와 향석리 일대에 자리한 마을이다. 내성천이 마을을 휘감아 돌며 흘러 나가는 물돌이동으로 하천의 물은 낙동강과 합류한다. 이로 인해 "육지 속의 섬마을"로 불리우는데 맑은 물과 백사장이 어우러진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회룡대는 비룡산에 자리하고 있고 회룡대는 그림처럼 아름다운 길이 백여 미터의 나무 계단으로 이어져 있다. 약간은 가파른 숨결을 느낄 때쯤 회룡대에 이르른다. 가파른 절벽 위에 매달린 듯 세워져 있는 정자 하나.. 그 곳에서 내려다보는 회룡포와 낙동강의 굽이 쳐 휘돌아간 풍경, 그리고 햇빛에 반짝이는 백사장의 멋진 모습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천혜의 절경. 회룡대에서 내려다보는 회룡포는 신비.. 그 자체였다. 이곳은 KBS 드라마 가을동화의 촬영지로 알려 지면서 관광명소가 된 곳이다. 가을동화의 초기 장면을 찍은 곳으로 은서와 준서의 어린 시절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2005년에는 명승 16호로 지정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일명 "뿅뿅다리".. 다른 이름으로는 "아르방 다리" 라고도 불리운다. 다리 위를 지날 때 걸음을 내딪을 때마다 "뿅뿅" 소리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재미있는 이름이다. 예전 나 어릴 때 시골 외가에 갔다가 도랑 위에 걸쳐진 저 구멍 숭숭 뚫린 임시 다리가 너무나 무서워 건너지 못하고 엄마께 겁 많다고 혼이 난 적이 있었다. 다리를 건너며 어릴 적 추억이 떠올라 혼자 미소를 지으니 함께 동행한 이가 묻는다... 왜 실없이 혼자 웃느냐고..^^;;
아직 이른 봄의 고즈늑한 오후.. 먼 길 달려온 나그네의 피곤한 다리를 쉬어가게 하는 아담한 원두막.. 회룡포를 감아 도는 강변에는 이런 원두막이 몇 개씩 있다. 좋은 날 평안한 마음으로 조용히 흐르는 강물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여 보고 싶기도 하고 골짜기를 지나는 바람의 속삭임도 들어보고 싶은 마음은 나만 그런 것일까? 회룡포의 아름다운 정취는 회룡대에서의 바라봄이 일품이지만 물돌이동의 조용한 정취를 느끼고 싶으면 회룡포를 직접 찾음이 옳으리니.. 아홉 가구가 단촐하게 모여 사는 회룡포 마을은 조용하고 평안하다. 전형적인 시골의 풍경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곳이다. 마을의 내부는 별로 볼거리는 많지 않지만 강둑을 따라 돌아가는 강둑 길을 걷노라면 세상의 모든 시름 다 던져 버리고 자연과의 호흡으로 내가 자연의 일부가 된 듯한 느낌이 너무 좋았었다. 저녁노을에 빛나는 회룡포의 강물 위로 그림처럼 드리워진 아르방다리.. 또 하나의 추억을 흘러가는 강물에 빛나는 저녁노을로 가슴에 담고 아쉬운 작별을 고한다.. 좋은 날 또 다른 추억을 만들어 볼 것을 다짐하면서...(daum 2009)
삼강주막과 회룡포(4大江 따라 1泊2日…ꡒ旅行을 떠나요~ꡓ: 올 여름 꼭 가볼 만한 4大江別 旅行地) [記事] : 2009년 여름에는 4대강 강변을 따라 가족여행을 떠나보자. 물줄기마다 흐르는 역사와 문화를 느끼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은 맑아지고 몸은 새로운 기운으로 가득 찰 것이다. 월간 <여행스케치>가 최근 펴낸 4대강 문화관광 안내 책자에서 소개한 ꡐ꼭 가볼 만한 4대강별 여행지ꡑ들을 강물을 따라 훑었다... [낙동강] 고즈넉한 전통의 향기를 좇아서 :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은 강원도 태백의 함백산 너덜샘에서 발원해 경상북도와 남도를 두루 돌아 부산 다대포로 흐르는 1천3백 리의 강이다. 한반도에서는 압록강 다음으로 길다. 중상류는 풀잎에 매달린 이슬방울 같은 감입곡류(산지나 구릉지에서 구불구불한 골짜기 안을 따라 흐르는 하천) 지형이 많고, 하류로 오면서 사구와 습지를 형성해 철새들에게 따뜻한 보금자리를 제공한다. 낙동강 상류 지역은 때묻지 않은 자연과 유구한 전통문화가 어우러진 곳이다. 첩첩이 산으로 둘러싸여 접근이 쉽지 않은 봉화,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육지이면서 섬을 품은 영주와 예천 등 저마다 확실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강은 봉화에서 제법 면모를 갖추기 시작해 안동에 이르러 거대한 호수를 이루고, 영주와 예천을 지나면서 여러 지류를 받아들여 몸집을 키운다... 조선 마지막 주막 ꡐ삼강주막ꡑ 들러 막걸리 한 사발, 육지 속의 섬으로 불리는 예천 회룡포. 낙동강과 내성천, 금천이 하나로 모이는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에 있는 ꡐ조선의 마지막 주막ꡑ 삼강주막도 꼭 들러야 할 곳이다. 뱃사공과 보부상들이 피로를 풀던 곳으로 지금도 영업을 한다. 주막 건물 뒤에 있는 수령 약 5백년 된 회화나무가 옛 정취를 더한다...(大韓民國 政策포털 2009.06.30)
삼강주막녹색농촌체험마을(三江酒幕綠色農村體驗마을 竣工式 開催 : 醴泉郡 豊壤面 三江里에 韓屋體驗場, 農事體驗施設 等 갖춰) [記事] : 예천군이 풍양면 삼강리에 조성한 삼강주막녹색농촌체험마을 준공식이 2008년 8월 22일 오전 11시 30분 체험마을 현지에서 개최되었다. 삼강주막녹색농촌체험마을추진위원회(위원장 정재윤) 주관으로 개최된 준공식에는 김수남 군수와 기관단체장, 지역주민, 출향인 등 100여 명이 참석하여 경과보고, 부위원장의 인사, 김수남 군수의 격려사, 참석 내빈들의 테이프 커팅 순으로 진행되었다. 이번에 준공식을 갖게 된 삼강주막녹색농촌체험마을은 최근 관광명소로 급부상한 삼강주막이 위치한 곳으로 친환경 농업, 자연경관, 전통문화 등 부존자원을 활용하여 농업의 부가가치를 증진시키고, 농가의 소득 향상 및 도시민의 다양한 수요에 맞는 체험·휴양공간을 조성하여 농촌체험관광 및 도농교류 기반을 구축하고자 용궁 회룡포마을, 상리 흰돌마을, 용문 출렁다리마을에 이어 예천군 관내에서 4번째로 오픈을 하게 되었다. 2007년 12월부터 전통한옥을 짓기 위한 목재 가공을 시작으로 출발한 삼강주막녹색농촌체험마을은 총사업비 2억 원을 들여 한옥체험장 1동과 농사체험장 및 주차장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과거길 체험, 양반 자전기타기, 산책로 거닐기, 벼 수확체험, 참죽체험, 밤줍기체험 등 다양한 체험거리를 구비하여 체험객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날 김수남 군수는 격려사를 통해 그간 추진위원의 노고를 치하하고 ꡒ앞으로 체험마을의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이번 준공식을 계기로 풍양면에 산재한 풍부한 문화재 및 자연자원을 바탕으로 대표적인 체험마을로 성장시켜 농가 소득을 증대하고 관광객에게는 농촌체험의 장으로 인기를 끌 수 있도록 역할을 잘 해 달라ꡓ고 당부했다. 정재석 추진위원회 부위원장은 ꡒ삼강리의 전통문화자원인 한옥과 삼강주막 등을 활용한 문화컨텐츠 발굴로 내실 있는 체험장이 되겠다.ꡓ고 포부를 밝혔다.(황성한 記者 醴泉인터넷放送 2008-08-22 오후 3:18:23)
삼강주막 회화나무(나무는 사람의 마음만큼 자란다 : 우리나라 마지막 酒幕 醴泉 三江里 酒幕의 회화나무) [記事] : 강변 가 주막에는 버드나무나 어울릴 듯하지만, 버드나무 대신 서 있는 것은 한 그루 회화나무. 2005년 10월 초하룻날에 죽은 우리나라 마지막 주모를 회상하는 듯 서 있는 이 나무가 있는 주막은 예전에는 낙동강을 나룻배로 건너 온 사람들이 반드시 머무르던 곳이다. 그러니 이 나무는 수백 년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지켜보았으랴. 이 회화나무뿐일까? 나주 쌍계정의 푸조나무, 봉화 청암정의 왕버들, 담양 면암정의 굴참나무, 화순 물염정의 벚나무, 정선 고학규 가옥의 뽕나무, 예안 향교의 무궁화 등 전국 옛집에서 사연 특별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을 나무 23그루가 책 <나무는 사람의 마음만큼 자란다.> 속에 등장한다. 모 일간지 12년 기자 생활을 접고 10년 동안 나무만 쫓아 매해 5만 킬로를 작정하고 다니는 저자가 어떤 날은 수백 리 길을 갔음에도 나무가 마음을 열어 주지 않아 되돌아 온 사연이 있거나, 이미 본 나무이건만 님 보듯 그리워서 설렌 마음으로 찾았던 나무 등이다. 나무를 좋아하는 터라, 정확히 말하면 잎이 돋기 전의 나뭇가지들을 좋아하여 삶의 위안을 그들로부터 어지간히 받기도 하는 터라, 나무 이야기나 실컷 들어 보자고 선택한 책이었다. 특별한 나무들을 덕분에 어지간히 만났다. 무엇보다 각별하게 얻은 것이란, 나무는 저를 아껴주는 사람의 마음을 먹고 자란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를 바라보아주는 사람을 거울삼아 그 모습을 닮아 자란다는 것이다. 또한, 나무 한 그루를 통하여 만나는 역사나 옛집의 향기, 옛사람들의 고단한 세월을 만나 봄도 자못 남달랐다고 할까?(김현자 記者 오마이뉴스 2007년 6월 5일 (화) 14:53)
삼강팔경(三江八景) [景觀] : 풍양면 삼강리(三江里)에 있는 여덟 곳의 경치로, 노암 정필규(魯庵鄭必奎, 1760-1831)가 지었다.
第1景 갈雲山峰 : 削出笑蓉第一峰 天中屹立衆山宗 從今暮갈歸雲過 日下群陰창幾重
第2景 靑山曉霧 : 갈雲西畔有靑山 千仍橫空太古顔 曉起拓窓看不厭 玲瓏曙霧畵圖間
第3景 白石暮煙 : 浩浩平沙鋪遠川 千年白石臥龍堅 蒼蒼斜日多奇賞 橫斷江村一抹煙
第4景 馬嶺春畵 : 南岡奇秀馬爲名 或取方言或取形 解得春花花信重 環山錦繡十分明
第5景 西壁晩楓 : 초壁蒼顔暎晩洲 淺紅霜葉點淸秋 吟詩爲問停車興 二月花應讓一頭
第6景 後堤遠望 : 盡日登臨屋後堤 群山표묘北東西 雲收煙斂淸明際 便覺心間眼不迷
第7景 山洞別庄 : 山幕深深鎖石門 遊人爭說小桃源 綱花不必爲奇事 地僻分明謝俗喧
第8景 淸沙繫舟 : 淸沙白石繫孤舟 往蹟何年物外遊 滿池蒼蒼松影裏 翼然新欖壓淸流
예천삼강리 나루터 주막(醴泉三江里 나루터 酒幕) [酒店] : 풍양면 삼강리에 있는 우리 나라 마지막 주막으로, <조선일보> ‘사석원의 대폿집 기행’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낙동강 1300리 하나 남은 마지막 주막, 300년은 족히 됨직한 회화나무 밑 주막은 거의 쓰러질 듯 기운 체 아무런 표지도 없이 가까스로 서 있다. 나루터 주막이라지만 나룻배는 마당 한 곳에 버려져 있고, 나루터가 없어진지도 15년쯤 되었다고 한다. 주막은 60-70년 전에 지은 흙벽집이다. 방은 네댓 명이 겨우 앉을 수 있을 옹색한 크기지만 서까레가 가지런히 널린 천장이 이채롭다. 연탄불 때는 방안이 훈훈하다. 할머니가 꽃무늬 어지러운 플라스틱 쟁반에 맥주 몇 병과 안주를 담아온다. 안주는 번데기, 흰콩으로 만든 콩장, 마른 멸치, 새우젓, 그리고 치토스 한 봉지, “나루터 있었을 때 좋았지요. 장날이면 배가 하루에도 20-30번 왔다갔다 했으니깐 엄청 바빴어요. 주막도 장사 잘 되었어요. 장날에 점심때면 술이 동났고요. 1980년대 초, 자동차가 늘더니 사람이 팍 줄었어요. 입에 거미줄 치게 된 뱃사공도 떠나고 할 수 없이 동네 사람들끼리 한 10년인가 돌아가면서 사공을 맡았지요. 그러다가 다 없어졌고...” 강바람이 문틈 사이로 요란하게 몰아친다.(朝鮮日報 2003.12.12) →삼강주막
예천삼강리 회화나무 [傳說] : 삼강리 낙동강 변에 수령 600년 넘은 회화나무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300년 전쯤 강 건너 상주군의 한 목수(木手)가 이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면 사고도 나지 않고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하여 이 나무를 베려고 배를 타고 강을 건너 왔다. 마을에서는 이 나무가 마을을 지키는 영험스러운 나무라고 하여 베지 못하도록 하였으나, 이 목수는 말을 듣지 않았다. 톱과 연장을 가지고 와서 나무 밑에 놓고 그늘도 좋아 잠시 쉴 겸 낮잠이 들었는데 꿈에 백발을 날리는 노인이 나타나더니, “나는 나무의 신(神)으로 만약 이 나무를 해치면 네가 먼저 죽으리라.” 하니, 꿈에서 깨어나자 겁에 질려 벌벌 떨면서 혼비백산하여 달아났다고 한다. 이곳 삼강(三江)은 낙동강(洛東江), 내성천(乃城川), 금천(錦川)이 합쳐지는 지점으로 물이 맑고 넓은 백사장(白沙場)이 어우러진 곳으로 예전에는 나루터가 있어 영남 남쪽에서 서울로 가는 물류(物流)를 대부분 이곳까지 운반하여 많은 사람들이 내왕하여 주막 등 상거래가 성행하였다. 또한, 청풍자(淸風子) 정윤목(鄭允穆)의 유업을 기리고 후학(後學)을 양성하기 위한 삼강강당이 있는 등 역사적 정취가 살아 숨쉬는 자연 그대로의 경관(景觀)이 뛰어난 곳이다. 또한 이곳에는 낙동강 700리 유일한 주막이 남아 있어 전국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醴泉消息 第348號 2006.8.25)
예천삼강리 회화나무(醴泉三江里 회화나무) [老巨樹] : 풍양면 삼강리 166-1번지 소재, 보호수(지정번호 11-27-12-23)이다. 수고 18.3m, 흉고 직경 159cm의 된 회화나무이다. 낙동강의 제방 가에 있는 노거수로, 북서 방향으로 낙동강이 흐르고 남쪽에는 옛날의 주막이 있던 곳이다. 15m 간격으로 주변에 작은 회화나무 한 그루가 더 있으며, 매년 정월대보름이 되면 동신제를 지내는 신목(神木)이기도 하다.(醴泉郡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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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