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이곳은 군민 여러분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게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게재된 내용에 대한 답변은 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건전한 통신문화 정착과 군민의식함양을 위하여 실명으로 운영되며특정인 비방, 광고, 음란물, 유사 또는 반복 게시물 등은 사전 통보없이 삭제됨을 알려드립니다.
※게시판의 건전한 운영을 위하여 "예천군 인터넷 시스템설치 및 운영에 관한 조례 제6조" 에 해당하는 글은 사전예고 없이 삭제되며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에 의하여 처벌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글 등록시 제목이나 게시내용, 첨부파일등에 개인정보(주민등록번호, 사업자등록번호, 통장계좌번호 등)는 차단되오니 기재를 금합니다.
예천의 자랑(3609) : 예천8경 중 삼강주막(15)
---
◆ 삼강나루 지킴이 4백 년 회화나무 : 삼강주막에서 온전히 제 모습을 간직한 것이 있다면 수령 4백 년 가까운 회화나무다. 근래에 조성된 시설물이나 강을 가로지르는 철제교량이 삼강나루와 어울린다고 볼 수 없어 오로지 회화나무만이 옛 역사를 대변해주고 그 회화나무 아래 들어선 장날의 향수까지 느끼게 한다. 삼강주막에 오면 먼저 ‘학자수’ 혹은 ‘선비수’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이 회화나무에게 말을 붙여 봐야 한다는 말까지 있다. 나루터 주막의 시끌벅적한 분위기와는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자유분방하면서도 기품 있는 나무다. 조막만한 크기로 서 있는 주막은 넉넉하게 펼쳐진 회화나무의 품 안에 쏙 들어가 앉았다. 주막은 그래서 더 아늑해 보이고 나무는 실제보다 훨씬 우람하고 높아 보인다. 삼강 나루터가 북적이던 시절에 이 나무는 나룻배를 타기위해 순서를 기다리는 나그네들이 햇볕을 피해 쉬던 그늘이었다. 주막이 생긴 뒤로는 주막의 앞마당에 시원한 그늘을 드리웠던 정자나무이기도 했을 터. 나무 그늘에는 어김없이 술꾼들의 거방진 술판이 흥겹게 벌어졌을 거다. 그러나 나루터가 사라지고 강변에 둑방을 높이 쌓아 강바람을 막아버린 지금 회화나무는 주막과 함께 그저 오래된 나무일 뿐이다. 하지만 한 그루의 회화나무가 아니었다면 삼강주막은 철이 지난 썰렁한 영화세트장처럼 살풍경했을지 모른다. 오래된 회화나무가 있어서 강나루와 삼강주막이 더욱 설득력을 지니게 된다. 삼강나루가 더 이상 나루가 되지 못하고 옛 이야기가 전설이 되게 한 것은 삼강교이다. 삼강교가 뚫리던 2004년 4월, 평생 눈물을 보이지 않던 유옥연 할머니가 봉당마루에 앉아 쓸쓸히 눈물 훔치며 애꿎은 담배만 피워대는 모습을 봤다고 하는 이웃의 증언에서 알 수 있듯이 그때 이미 자신과 주막의 운명을 알아챘던 것이다. 오래 전부터 전해져오는 것이 또 하나 있다면 ‘들돌’이란 큰 돌이다. 120kg이 넘는다는 이 바위도 예긴즉슨 나루터 인부의 품삯을 결정하는 잣대로 쓰였다지만 언젠가 ‘1박2일’팀들이 다녀가면서 강호동도 들지 못했다는 점을 상기하면 그 또한 꾸민 이야기일 가능성이 짙다. 하지만 그 정도의 허구는 재미와 위안을 주는 스토리텔링쯤으로 이해해도 괜찮겠다. 여기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역 명물 ‘용궁 순대’도 그렇거니와 이 지역의 명주 ‘용궁 막걸리’가 ‘진땡이’란 이유로 오히려 삼강주막에서는 외면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2005년 유옥연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면서 자식들이 할머니가 쓰던 세간과 반짇고리, 옷가지 등을 죄다 태우고 없애버려 유품을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용궁양조장을 경영하는 권씨 부부는 2년 전 날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양조장 사업을 정리하기로 결심을 굳게 한 바로 그 다음 날 ‘1박2일’팀들이 들이닥쳐 방송을 타는 바람에 전통의 용궁막걸리를 살릴 수 있었다고 말한다.
◆ 삼강에서의 진정한 풍류 : 아무튼 이곳에 와서는 다른 데서 느낄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느끼고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먼저 단순한 관광이나 놀이에 머물지 않고 옛사람의 체취를 더듬고 이해하며 그 숨결을 더불어 호흡해야 할 것이다. 역사와 전통은 보존차원에서 접근할 때, 비록 원래의 형태는 아닐지라도 그 전형과 전통의 맥을 유지할 수 있지만, 관광자원 개념이 우선시될 경우엔 자칫 그 역사와 전통이 훼손되기 쉽다. 뭔가를 보여주고 팔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이 들어서고, 진정한 전통은 그 현혹 뒤에 감춰지거나 슬그머니 자취를 감춰버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그런대로 번잡하지 않고 복원의 의미도 되살리고 있지만 여기서 ‘장사속’이 더 깊숙이 개입되면 자칫 그 역사마저 왜곡되고 변질될 우려가 있다. 예로부터 우리의 선조들은 자연과 함께하는 멋을 알고 풍류를 즐겼다. 환경과 조건이 아무리 험난하고 생활이 고단하더라도 이를 극복해내는 슬기를 지녔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고귀한 정신과 삶의 가치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문명이 진보하였더라도 진정한 삶의 여유와 풍요는 옛 조상들에 비해 반드시 좋다고만 할 수 없다. 현실생활에 일백 퍼센트 만족하진 않았겠지만 안빈낙도하며 감사할 줄 알았다. 그 조상들의 숨결과 흔적이 자연과 함께 진하게 배인 곳이 바로 옛 주막이고, 삼강나루와 주막은 그 대표적 공간이다. 아직도 전통의 예절과 풍습이 살아 숨 쉬고 천혜의 자연이 아름다운 이곳 예천에 발걸음이 닿는다면 잠시 삼강주막에 들러 도란도란 ‘배추찌짐’을 나눠먹으며 옛 풍류의 모드로 돌아가 가슴 한곳을 따뜻하게 데워볼 일이다. 마음을 환하게 열면 옛사람들이 머물며 지내온 생활 모습을 아련히 느낄 수 있다. 얼마간 세월의 흐름도 잊게 한다. 보부상과 사공들의 초가삼간 숙소에서 옛날 폼으로 앉아 배추전에 막걸리를 기울이는 즐거움만으로도 그게 어딘가. 경북 북부지방은 물론 영월 등 강원도 남부지방의 길손과 보부상까지 삼강을 찾았다는데, 그들의 마음으로 돌아가면 지금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소중한 것들을 다시 찾을지도 모르는 일. 잠시 휴대폰은 꺼두고 옛날식으로 정보를 교환하고 낯선 사람들과도 대화를 터보는 것이다. 어쩌면 주모의 걸쭉한 입담과 주모에게 거는 은밀한 수작의 감춰진 스토리 하나쯤 발굴해낼지도 모르겠다. 이제 소금배와 나룻배는 사라지고 삼강교와 신작로가 들어서면서 교통요지로서의 인적은 끊겼지만, 주막의 옛 정취를 찾으려는 발길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군청에서도 회룡포 등과 묶어 관광자원으로 활용코자 주변을 잘 정비해 두었다.
특히 회룡포는 삼강주막과 지근거리에 있어 강물 따라 굽이굽이 흐르는 민초들의 애환과 풍류를 느끼기에 손색이 없는 곳이다. 회룡포를 빼고 삼강주막을 관광할 수 없고, 삼강주막을 건너뛰고 회룡포만 감상할 수도 없다. 이제 봄이 완연해졌다. 번잡한 도회의 삶에서 벗어나 고즈넉한 풍경과 옛 인심이 그리워진다면 삼강주막으로 가서 막걸리 한 주전자 나눠 마시고 수백 수천 년 전에도 똑같이 흘렀을 그 강물 따라 천천히 걸으며 회룡포의 물줄기를 눈에 오래 담아두는 것은 어떠한가. 삼강나루와 회룡포는 사람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수 있는 최적의 휴식공간이 되어줄 것이다. 이 봄, 옛 사람들의 풍류를 한 아름 느끼고, 역사와 이야기가 있는 곳으로의 소풍이라니.(권순진 詩人·칼럼니스트 大邱日報 2013.03.28 01:00)
삼강주막(三江酒幕 常設公演 18日부터 열려 : “2013 時間도 쉬어가는 幸福한 旅程 속으로”) [記事] : 예천군과 경상북도는 예천문화원과 오는(2013년 5월) 18일부터 9월 29일까지 5개월간 일정으로 풍양면 삼강주막에서 주말 상설공연을 실시한다. 이번 주말 상설공연은 칠백리 낙동강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삼강주막의 옛 시대상을 읽을 수 있는 공간적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 개최된 것이다. 특히, 삼강주막은 낙동강과 내성천, 금천이 합류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관광지이다. 이곳은 예로부터 서울로 장사하러 가는 배들이 낙동강을 오르내릴 때, 그리고 선비나 장꾼들이 문경새재를 넘어 서울로 갈 때 반드시 거쳐 가던 길목으로, 1960년대까지 상거래로 매우 활발했던 곳이었으나, 뱃길이 끊기고 도로가 생기면서 점차 인적이 끊기게 된 곳이다. 이후 삼강주막은 故 유옥연 할머니 혼자서 손님을 맞이하던 곳으로 2005년 경상북도민속자료 제134호로 지정되고, 주모가 있는 낙동강 칠백리 마지막 주막이라는 입소문을 타면서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찾아드는 명소가 되었다. 또한, 8월 2일부터 4일까지는 삼강막걸리 축제가 함께 열려 많은 관광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예천군 관계자는 향후 우리군의 소중한 관광자원인 문화재를 활용한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여 지역민들에게는 문화 향유의 기회와 내방객들에게는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등 지역문화콘텐츠로 발전시킬 계획이다.(醴泉뉴스 2013년 05월 15일)
삼강주막(2013 時間도 쉬어가는 幸福한 旅程 속으로 三江酒幕 常設公演 實施) [記事] : 예천군과 경상북도는 예천문화원과 2013년 5월 18일부터 9월 29일까지 5개월간 일정으로 풍양면 삼강주막에서 주말 상설공연을 실시하고 있다. 주말 상설공연은 칠백리 낙동강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삼강주막의 옛 시대상을 읽을 수 있는 공간적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 개최된 것이다. 특히, 삼강주막은 낙동강과 내성천, 금천이 합류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관광지이다. 이곳은 예로부터 서울로 장사하러 가는 배들이 낙동강을 오르내릴 때, 그리고 선비나 장꾼들이 문경새재를 넘어 서울로 갈 때 반드시 거쳐 가던 길목으로, 1960년대까지 상거래로 매우 활발했던 곳이었으나, 뱃길이 끊기고 도로가 생기면서 점차 인적이 끊기게 된 곳이다. 이후 삼강주막은 故 유옥연 할머니 혼자서 손님을 맞이하던 곳으로 2005년 경상북도민속자료 제134호로 지정되고, 주모가 있는 낙동강 칠백리 마지막 주막이라는 입소문을 타면서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찾아드는 명소가 되었다. 또한, 8월 2일부터 4일까지는 삼강막걸리 축제가 함께 열려 많은 관광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예천군 관계자는 향후 우리군의 소중한 관광자원인 문화재를 활용한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여 지역민들에게는 문화 향유의 기회와 내방객들에게는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등 지역문화콘텐츠로 발전시킬 계획이다.(醴泉인터넷放送 2013-05-27 오후 12:18:06)
삼강주막([테마있는 名所] 醴泉 三江酒幕--酒母 酒案床에 歲月도 쉬었다 가는 곳) [記事] : “주모, 여기 술 한 상이요” 주모는 손님이 많아서 신이 났고 손님은 외상 긋는 맛에 술이 더 당긴다. 손바닥만한 초가주막, 손님 끊길 날이 없다. 여기저기서 술 달라는 외침에 주모 손놀림이 빨라졌다. 왁자지껄하던 주막, 어느 새 하나 둘씩 자리를 털고 일어날 즈음, 그러나 술값 내는 사람은 없다. “주모~” 하고 외치며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휙’ 그으면 그게 바로 ‘계산’이다. ‘술값 외상’이다. 술값은 툭하면 외상이다. 아니, 외상술이 더 맛좋다. 그런데 외상도 하루 이틀 한 두 명이라야지, 주모는 글자라고는 한 자도 모른다. 외상장부에 기록할 수가 없다. 밀린 술값 어떻게 받아냈을까. 삼강주막. ‘봄 돈 칠푼은 하늘이 안다’고 했듯이 옛날 시골서 농삿일하던 사람들에게 돈이 어디 있을까. 그래도 술은 마셔야 하지, 일하다 허기지고 목마를 땐 대포 한 잔이 최고였다. 결국 외상술이다. 봄에 마신 술값은 가을 추수를 해야 갚을 수 있다. 몇 달을 외상하는데 글을 모르는 주모지만 자신만의 외상장부가 있어야 했다. 외상한 사람을 기억하며 벽에다 부지깽이로 금을 그어 표시해뒀다. 소위 ‘벽체외상장부’다. 외상이 얼마나 많았던지 온 벽에 줄이 빼곡하다. 세로로 짧은 줄은 한 대포 외상이고, 긴 줄은 한 되 외상이며 갚은 사람은 가로로 줄을 그어 ‘변제완료’임을 표시했다. 그럼 한 두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기억했을까. 이 주모는 사람 기억은 기가 막히게 잘 했다. 다만 글자만 몰랐을 뿐. 소설처럼 들린다. 몇 백년 전 조선시대 속으로 들어간 듯한 주막 이야기다. 느닷없이 ‘주막’이야기라니. 하지만 불과 8년 전까지 생생하게 이어져 온 주막이다. 대포 한 잔의 추억 삼강주막. :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에 있는 이 삼강주막은 1900년경에 지어졌다. 100여 년 전 지어진 주막이다. 그러나 최후까지 남아 마지막으로 영업을 한 주막으로 그 의의가 매우 크다. 삼강주막 주모는 6ㆍ25때 남편을 잃고 4남매 키우기 위해 이 일을 시작해 2005년 9월까지 60년간 이 자리를 지켜왔다. 그리고 일을 그만둔 지 한 달 후 10월 88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불과 8년 전만해도 조선시대 주막풍경이 이곳에서 펼쳐졌다고 하니 역사는 그리 멀리만 있는 게 아니었다. 술이라면 한 방울도 입에 못 대는 필자가 주막을 찾았다. 술이 중요하랴. 여기서 즐기는 사람들 모습, 또 이 ‘주막풍경’이 좋아서다. 이 마을 이장님이시자 주막을 설명해주시는 정재윤(65) 선생님을 찾아 주막과 마을의 내력을 들어봤다. 삼강주막이 있는 삼강리는 강원도 황지 태백산에서 발원한 낙동강이 600리를 흘러 이 곳까지 왔고, 경북 봉화에서 흘러 영주를 거친 내성천이 또 이곳에서 합류한다. 내성천은 3km 상류에서 회룡포를 350도 회전하고 다시 반대로 180도를 돌아 여기에 도착한다. 그리고 문경 사불산에서 발원한 금천이 여기서 합류해 세 개의 강이 만난 마을 즉 ‘삼강(三江)마을’이 됐다. 이 강은 여기서부터 부산 다대포까지 다시 700리를 흘러 낙동강 1300리 물길을 이룬다. 정재윤 선생님이 삼강주막에 대해 설명해 주신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의 지형을 보면 또 재밌다. 강 너머 북쪽의 산은 문경 주흘산(1106m) 줄기 끝이고 동쪽은 안동 학가산(870m)의 끝이며 남쪽은 멀리 대구 팔공산(1192m)의 끝이 여기까지 밀고 올라와 멈췄다. 산과 강의 조화가 아름다운 마을이다. 삼강(三江)이란 이름은 400년 전 입향 시조가 지었다. 이 마을 입향 시조는 임진왜란 때 옥에 갇힌 이순신 장군을 선조 임금에게 건의해 구한 약포 정탁 대감의 셋째아들 청풍자공 정윤목 선생이다. 문인으로 이름을 날린 청풍자공 선생은 400년 전 광해군 때 입향해 청주 정씨 집성촌이 됐다. 이 마을은 지금도 오로지 청주 정씨들만 산다. 정탁 대감은 이웃의 류성룡과 함께 퇴계 이황 선생의 제자다.
오늘날 삼강마을은 약 30호에 70명이 산다. 1960년대에는 100호가 넘기도 했다. 이 작은 집성촌에서 국회의원(정재원)과 방직계 1인자로 불린 재벌(정재호)도 배출했다. 이곳에는 주막과 사공들의 숙소 등 대여섯 채의 초가건물과 500년 넘은 회화나무 2그루가 있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던 나루터는 현대화 물결에 쓸려가 흔적조차 없어졌다. 주막은 아주 작다. 8평이다. 그런데 눈여겨 볼 게 참 많다. 이 손바닥만한 초가지만 이것저것 알고 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그 옛날 서민들의 ‘가장 작은 집’의 대명사가 초가삼간(草家三間)이다. 아무리 작게 지어도 기본은 초가삼간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이 주막은 그에도 못 미치는 초가 두 칸(草家二間)이다. 전면 두 칸, 측면 두 칸으로 두 칸 겹집에 방이 2개, 부엌과 마루, 다락까지 있을 건 다 있다. 오밀조밀 기막힌 구조다. 한옥에서는 기둥과 기둥 사이를 한 칸이라고 한다. 보통 기둥과 기둥 사이에 방이 하나 있으니 초가삼간이라고 하면 방 두개가 설계된다. 그런데 이 주막은 초가 두 칸에 방을 두 개나 냈다. 그리고 부엌은 뒤쪽으로 뺐다. 삼강주막의 전후좌우 모습. : 또 다른 특징은 방 2개에 문은 무려 7개다. 문이 왜 이렇게 많을까. 작은 방이지만 항상 많은 손님들이 들락날락하는 곳이니 서로 엉키지 않고 출입할 수 있게 곳곳에 문을 달았다. 조그마한 부엌에도 문이 4개나 된다. 손님은 많고 주모는 혼자서 일한다. 이 방의 손님, 저 방의 손님, 마루의 손님, 마당의 손님이 “주모, 여기 술 한 병” 하고 외치는데 어떻게 다 왔다갔다 할 수 있을까. 이 주막이 한창 번창할 땐 막걸리를 하루 10말, 15말을 팔았다고 한다. 그러니 문이 하나였으면 주모는 쓰러졌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를 위해 사람이 앉는 곳을 향해 문을 다 냈다. 주모가 몸만 돌리면 주안상을 다 건넬 수 있게 했다. 손바닥만한 집, 벽 반 문 반이다. 주모 한 사람을 위한 최적의 주막 설계도인 것이다. 작은 초가 주막 하나에서 건질 지혜가 정말 많다. 이 주막에서 빼먹지 말고 꼭 봐야 할 게 바로 황토벽에 금을 그은 외상장부다. 학술연구를 온 학자들도 무릎을 치며 감탄해 했다는 벽체외상장부다. 주모는 수많은 손님이 외상하고 갔지만 글은 몰라도 이 부지깽이 자국이 누구의 외상인지는 혀를 내두를 정도로 기억하고 표시했다. 부엌 안 벽에도 빼곡히, 바깥벽에도 빼곡히 그었다. 주모가 기록한 벽체 외상 장부. : 관광객이 와서 손으로 문질러 많이 망가지기도 했다. 이제는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는 몇몇 부분에 아크릴판을 붙여 보존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은 벽체외상장부다. 서민이 살아온 이 귀한 삶의 흔적 어찌 놓치랴. 또 지금은 흔적조차 사라졌지만 삼강나루는 주막이 생기기 전부터 유명한 나루터였다. 내륙인 만큼 조선시대 소금이 귀하던 시절, 부산에서 소금배가 여기까지 올라와 농산물과 교환해 가던 집하장이자 선적장이었다. 또 영남의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보러 갈 때 넘어야 했던 고개, 추풍령과 조령(문경새재), 죽령 중 가장 선호한 문경새재로 가는 길목이었기에 이 나루터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옛날 선비들 사이에서는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죽령을 넘어 가면 죽쑨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였으니 문경새재가 장원급제의 길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다 보니 수많은 선비들이 이곳에서 나룻배를 탔다. 나루터의 마지막 사공 유영하 선생님은 지난 1980년 중반까지 일했다. 그 이후로 마을 젊은 주민들이 교대로 노를 잡다가 2003년 지금의 교량이 생기면서 나루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때의 나룻배 역시 모래사장에 방치해뒀다 썩어 없어졌다. 지금은 다들 아쉬워하고 있다.
삼강주막의 이모저모. : 이 마을의 아픔은 1934년 갑술년 대홍수 때 찾아왔다. 마을 절반 이상이 침수됐다. 지금은 둑길이 있지만 당시엔 마을과 바로 강이었다. 그때 보부상 숙소와 사공숙소가 유실됐다가 2008년 고증을 통해 복원됐다. 주막 주변의 집들도 지금은 도로 너머 편으로 옮겨갔다. 지금 이 마을 중앙에 59번 국도와 다리가 가로지르고 있다. 마을이 두 토막 났다. 주민들은 우회 건설을 주장하며 강하게 반대했지만 민(民)이 관(官)을 이기지 못했다. 지금 멋진 관광명소가 되고나서 모두가 이 흉물스런 다리를 보고 혀를 차지만 이미 돌이킬 수도 없는 상황이 됐다. 주민의견과 탁상행정 간의 간극이 이런 흉물스런 결과를 가져왔다. 저 다리가 없고 그 자리에 나룻배가 떠다니면 관광주막, 관광나루터로 만점일 테다. 우리의 옛 풍경을 고이 간직하고 후손들에게 전해줄 소재를 너무 쉽게 없애버렸다. 마을을 두 토막 내버린 59번 국도와 그 다리. 우회해서 건설했으면 좋았을 다리다. 주막 뒤에는 500년 된 회화나무가 있다. 유난히 크고 굵은 가지 6개가 사방으로 뻗어있어 수 십 명이 앉아 쉴 수 있는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다. 주민들은 지금도 매년 정월 보름에 제일 나이 많은 회화나무에서 동신제(洞神祭)를 지낸다. 회화나무에는 재밌는 이야기가 있다. 아녀자들이 아침 일찍 물동이에 강물을 담아 이고 왔는데 이 때 회화나무 잎의 아침이슬이 물동이에 떨어진 물을 마시면 자손이 벼슬한다고 했다. 그래서 선비들은 이 나무를 아주 아꼈고 학자수(學者樹)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이 회화나무에 또 하나의 전설이 있다. 이웃 상주에 사는 목수가 이 나무로 배를 만들면 잘 뜨고 돈도 많이 번다하여 톱을 들고 베러 왔다가 나뭇 그늘에서 잠시 잠이 들었는데 꿈에 나무 수호신이 나타나 ‘이 나무를 베면 네놈은 명에 못 죽는다.’고 고함치자 혼비백산해 달아났다고 한다. 신성한 나무에는 늘 해코지하는 사람을 혼내주는 이야기들이 전해온다. 마을을 지켜주는 회화나무. 500살이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다리 너머 한 그루가 더 있는데 크기는 작아도 나이는 더 많다고 한다. 회화나무 고목 두 그루가 결국 나루터와 연결하는 마을 입구였던 것이다. 그 사이를 교량이 갈라놓아 살풍경이 됐다. 주막 뒤 회화나무 아래에는 크고 둥근 돌 하나가 있다. ‘들돌’이다. 옛날 농경사회에서는 어린 머슴이 장성하면 한 해 품삯을 올려 받기를 원한다. 나도 컸으니 품삯을 더 많이 받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진 자’ 주인은 어림없다. 그래서 무작정 못 올려준다고 할 수는 없으니 돈 올려 받을 만큼 농삿일에 힘을 쓸 수 있느냐를 테스트한 후 합격하면 올려주겠다고 한다. 그게 바로 저 ‘들돌’을 들어보게 하는 것. 들면 올려주고 못 들면 안올려준다. 그런데 저 돌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든다. 무게가 120kg에 달걀처럼 둥글게 생긴 저 돌, 미끄러워서도 못 든다. 힘쓰다간 허리 다친다. 주인 나리의 횡포다. 삼강주막 관광객은 평일 300~400명, 주말엔 1500명 정도 몰린다. 이곳에서는 막걸리와 파전, 도토리묵, 국밥, 국수 등을 판다. 사공숙소와 보부상숙소 건물은 방에 들어가 술 한 잔 즐길 수 있다. 이것 말고도 관광객들이 식사와 술을 마실 수 있는 집들이 두 채 더 있다. 일요일에는 각종 공연도 있어 흥에 겨운 주막풍경을 즐길 수 있다. 양반 과거길 등 체험과 한옥 및 황토찜질방에서 민박도 가능하다. 삼강주막은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34호로 관리되고 있다.(남민 記者 헤럴드경제 2013-07-15)
삼강주막(第21回 醴泉아리랑祭 열려 : 三江酒幕에서 ‘얼쑤~ 좋다!’ 舞臺와 觀客의 集團的 疏通 이끌어) [記事] : 2013년 7월 21일 오후 4시 삼강주막 공연장에서 제21회 예천아리랑제 개회식과 더불어 삼강주막을 소재로 한 마당극이 공연됐다. 금년으로 벌써 21회를 맞이하는 예천아리랑제로 선보인 이번 공연은 처음으로 삼강주막을 소재로 한 마당극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고 또한 예천사람으로 구성된 공연팀이라 더욱 큰 관심을 모았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민예총예천지부는 90년대 토종 닭싸움 대회를 시작으로 매년 예천아리랑제를 열어오고 있으며 그동안 도효자 체험 행사, 그네뛰기 등 전통놀이 체험, 문화포럼, 청소년어울마당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전통문화 전승 보전에 노력해 오고 있다. 이번 삼강주막 공연은 우리 지역민과 함께 호흡하고 삼강주막을 찾아온 많은 관광객들이 전통 마당극을 통해 삼강주막에 얽힌 이야기와 역사를 알아가는 소중한 시간을 가졌다. 이현준 예천군수는 인사말을 통해 “그 동안 삼강주막을 무대로 한 많은 예술 공연이 개최되었으나, 정작 삼강주막을 소재로 한 공연물은 없었는데 이번 마당극을 통해 우리민족의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주막에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醴泉뉴스 2013년 07월 22일)
삼강주막(醴泉 사람들이 보여준 마당극 三江酒幕 好評) [記事] ; “삼강아∼ 삼강아∼ 우리 삼강 애비 못 봤니껴?” 구수한 예천사투리에다 풍자와 해학이 돋보인 마당극 `삼강주막’ 공연이 2013년 7월 21일 제21회 예천아리랑제 일환으로 펼쳐졌다. 풍양면 삼강주막에서 공연된 마당극 `삼강주막'은 풍물패의 뒤를 따라 등짐 진 보부상들이 지게작대기를 들고 몽두리 춤을 추면서 막이 올랐다. 둘째 술꾼마당에서는 보부상들이 삼강주막에 얽힌 따뜻한 일화를 들려주었다. 셋째 마당에서는 술에 취한 보부상들이 익살스런 걸음걸이를 보여주며 공연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넷째 혼례마당에서는 두 처녀의 등장과 함께 삼강이 부부를 등장시켜 풍자와 해학의 진수를 보여 8백여 명의 관객들을 들었다 놨다 했다. 다섯째 마당에서는 모든 출연진과 주민들이 신명나게 어우러진 대동놀이 한마당으로 마무리 했다. 한편 이번 공연은 처음으로 삼강주막을 소재로 한 마당극이라는 것과 출연진 모두 예천사람으로 구성했다는 점에서 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행사를 주최한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예천지부(지부장 김소내)는 그 동안 도효자 효공원 체험, 도남백일장 개최,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 농촌유학 협력 사업, 문화강좌, 문화답사 등 전통문화 전승 보전에 노력해오고 있다. <삼강주막 출연진> : △연출극본: 황영호 △기획 제작: 안성배 △삼강이 엄마: 김태동 △주모: 선순덕 △술꾼1: 권호랑 △술꾼2: 엄정희 △술꾼3: 변의수 △보부상: 배진숙 △처녀1: 이민영 △처녀2: 이경애 △피리반주: 박은영 △징반주: 황재영 △악사: 탁상현, 권누리, 최성규(풍물굿패 참넋)(醴泉新聞 2013년 07월 24일 (수) 11:59:13)
삼강주막(‘三江酒幕 막걸리祝祭 ’開催 : 2日부터~4日까지 醴泉 三江酒幕에서) [記事] : 2013 삼강주막 막걸리축제가 우리나라의 마지막 주막인 예천 삼강주막에서 ‘나그네 반기는 酒 한 사발’이라는 주제로 개최된다. 여름휴가가 절정기인 2013년 8월 2일부터 4일까지 3일간 삼강주막 막걸리축제를 풍양면 삼강리 삼강주막에서 열린다고 예천군(군수 이현준)과 세계유교문화재단(이사장 김상철)은 밝혔다. 이번 축제는 2일 오후 6시 개막식을 시작으로 남궁옥분, 강민주, 박미영, 류기진, 온희정, 지원이 등 가수들이 신나는 축하공연을 선보이며, 축제기간 동안 통기타, 트로트, 농악, 사물놀이, 댄스, 악기연주, 지역대학 공연 등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또한 관람객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행사도 준비되어 있다. 삼강주막 노래자랑, 퀴즈열전, 막걸리 3종 경기, 삼강주막 막걸리 알아맞히기, 막걸리 빨리 마시기, 얼음 위에서 펼쳐지는 레크리에이션 등 다양한 이벤트들도 진행될 예정이다. 전시 프로그램으로는 우리나라 막걸리 주제 기획전, 아시아권 대표 술 기획전시, 돌담길 갤러리, 청사초롱 등이 펼쳐지며 가상 음주 체험, 떡메치기체험, 민속놀이 체험, 양반자전거 체험 등 다양한 체험프로그램도 즐길 수 있다. 취중진담 삼강주막 우체통을 통해 편지 전달하기, 취화선 부채 만들기, 봉숭아물들이기, 꽃 책갈피 만들기, 막걸리칵테일 시음, 막걸리를 활용한 먹을거리 전시 및 시음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만끽할 수 있다. 부대행사로는 오후 2시~3시 삼강주막 막걸리 무제한 무료시음행사와 예천의 농·특산물을 판매하는 장터가 열리며 삼강주막에서 회룡포로 넘어가는 비룡교 강변길에서 다양한 이벤트도 진행될 예정이다. 특히, 경북도립대학교 피부미용과에서 막걸리를 활용한 비누·로션 전시와 샴푸·미스트 만들기 체험, 공연 프로그램에도 안동대학교 등 지역 대학의 동아리가 적극 참여할 예정이어서 함께 하는 지역 축제의 의미를 살리고 활기를 불어넣는 등 지난해 보다 더욱 풍성하고 다채로운 축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삼강주막은 1900년 무렵에 지어져 내성천과 금천, 낙동강의 3강이 만나는 예천군 풍양면 삼강나루터에 위치한 주막으로, 지난 2005년 마지막 주모였던 유옥연 할머니가 작고하면서 방치됐다가 주막의 희소성과 문화적·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경상북도민속자료 134호로 지정되어 복원됐다.(醴泉뉴스 2013년 08월 01일)
삼강주막(三江酒幕 막걸리 加工工場 開場式 : 브랜드 名 ‘三江酒幕 酒’, ‘三江 處女뱃사공’ 生産) [記事] : 삼강나루를 왕래하는 보부상, 사공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삼강주막 인근에 막걸리를 빚어내는 삼강주막 막걸리 가공공장이 2013년 12월 4일 오전 11시 마을주민 1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장식을 가졌다. 막걸리 가공공장은 총 7억원의 사업비로 233㎡규모를 갖춘 건물을 준공하였으며 삼강주막 영농조합법인(대표 정재충)이 ‘삼강주막 酒’, ‘三江 처녀뱃사공’이라는 2종류의 상표를 달고 시중에 판매하고 있으며 1일 30말(1말/20ℓ)정도 생산하여 연간 2억원의 농외소득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주요판매처는 예천농협 하나로마트, 리마트, 홈마트, 백두쇼핑, 문경지역 슈퍼 등에 판매할 계획이며 삼강주막을 찾아오는 관광객에게는 선물용(3병 6,000원, 6병 10,000원)으로 무인 판매대에서 판매하고 앞으로 관외 지역에 새로운 판매처를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또한, 삼강주막 영농조합법인은 삼강주막 막걸리의 우수성과 차별성을 크게 부각시켜 대외에 널리 알릴뿐 만 아니라 지역농업의 경쟁력 강화로 부자농촌, 풍요롭고 살기 좋은 지역 발전을 위해 선도적인 역할을 다할 계획이다. 이현준 군수는 격려사를 통해 “막걸리 가공공장이 우리지역 대표 관광지인 삼강주막이 있어 조금만 더 노력하고 홍보한다면 우리 지역 대표 가공특산품으로 판매가 한층 더 확대될 수 있도록 우수한 제품 생산에 힘써줄 것”을 당부했다.(醴泉뉴스 2013년 12월 04일)
본 페이지의 관리부서는 홍보소통과전산정보팀(☎ 054-650-6073)입니다.
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