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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610) : 예천8경 중 삼강주막(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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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주막과 용궁순대([作家 慶北飮食을 이야기하다 .6] 김정현이 만난 三江酒幕과 醴泉 龍宮순대) [記事] : 예천군 풍양면 삼강주막(三江酒幕). 길손도 모이고 강물도 모여드는 곳이다. 태백 황지에서 내려온 낙동강과 안동 내성천, 그리고 문경 금천이 서로 만나는 자리에 바로 삼강주막이 서 있다. 영남대로의 딱 중간지점인 이곳은 강을 건너던 나루가 있던 곳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와 보부상, 뱃사공 등 길손들이 찾아들어 주막이 번성했다. 이 때문에 길손들의 허기를 달래던 음식이 유난히 발달했다. 순대국밥부터 막걸리와 국수 등 종류도 다양했다. 삼강주막과 더불어 예천은 용궁순대로 유명하다. 예천군 용궁면에는 특별한 순대집들이 있다. 웬만한 순대는 소창이나 대창을 사용하지만 용궁순대는 ‘돼지 막창’을 쓰는 것이 특징이다. 가격이 두 배 이상 차이 나지만 살이 도톰하고 쫄깃해 순대의 씹히는 식감을 위해 아직도 막창을 고집하고 있다. 손으로 직접 빚는 전통제조법을 고수하고, 지역에서 생산하는 부추·파·찹쌀·선지·한약재 등 10여 가지의 영양 많고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 맛이 깔끔하다. ‘작가, 경북음식을 이야기하다’ 6편은 예천 삼강주막의 음식과 용궁순대에 대한 이야기다. 소백산맥 남쪽 기슭에서 발원한 내성천(乃城川)이 예천 회룡포를 감싸 돌아 문경에서 흘러나온 금천과 마주하면 곧바로 낙동강과 몸을 섞는다. 그렇게 내성천과 금천, 낙동강 세 강이 만나는 곳이라 해서 삼강(三江)이라는 지명이 생겨났다. 영남대로의 중간지점인 이곳은 나루가 있던 곳이다. 이 때문에 자연히 주막도 함께 들어섰다. 농경이 삶의 근본이고 거의 전부이던 시절, 사람들에게 강은 쉽사리 넘나들 수 없는 장벽 그 자체였다. 그렇지만 장벽이 아무리 높아도 넘나드는 사람이 있듯이 강 또한 그랬다. 아무리 깊고 거칠어도 강을 건너는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모험심이 앞선 탐험가와 같은 거창한 이가 아니었다. 자식과 아내의 목구멍을 메마르지 않게 하려는, 식구의 생계와 좀 더 나은 꿈을 위해 길 없는 길을 두려운 마음으로 찾아 나선 사람들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이들이 보부상이다. 그들은 이문을 추구하는 장사꾼이었지만 멀리 떨어진 이쪽과 저쪽의 상이한 물산을 전파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드넓은 산천과 세상의 수많은 소식을 두루 보고 듣는 ‘첨단 여행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거운 등짐을 지는 것과 하루에 수십 리를 걷는 고단한 행보는 뱃속을 든든히 채우지 않고서는 어려운 노릇이었다. 과것길에 나선 유생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지평선이 펼쳐지고 바다가 가까워 온갖 먹거리의 구색이 갖춰진 남녘 땅 유생이라면 굳이 치열한 과거의 장(場)에 목매지 않아도 되었다. 아니, 오히려 끝없는 눈치 보기의 살벌한 정쟁(政爭)은 애초부터 외면하고, 유유자적 예(藝)를 즐기며 한 세상을 보낼 수도 있었고 또 그런 이들이 있었다. 어쩌면 그런 까닭에 예부터 남녘 땅 여러 곳이 예향으로, 맛의 고장으로 부러움을 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낙동강 상류 언저리의 궁벽한 고을은 사정이 달랐다. 순흥벌이니 안동벌이니 상주벌이라고 해도 지평선은커녕 아득한 준령이 시야를 막고 있었다. 가진 이라 해봐야 기껏 몇 백석지기. 유유자적과는 애초부터 인연이 없었다. 호구지책을 위해서라도 학문과 관직에 목을 매야 했다. 이 때문에 과것길에 나서는 걸음은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쩌랴! 북쪽 준령을 넘는 길은 산이 깊어 도적을 비롯한 온갖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름부터 추풍낙엽처럼 떨어질지 몰라 피했다는 ‘추풍령’이었으니 그만큼 돌아가고 싶은 길이었다. 결국 ‘문경(聞慶)새재’로 방향을 잡아야 했고, 삼강마을에서 강을 건너야 했다.
이 때문에 삼강마을의 주막은 번성했다. 보부상 패거리에 과것길 유생, 소금 등 각종 물물을 운반하는 뱃사공, 관청 일로 이동하는 관리가 주막을 드나들었다. 서둘러 강을 건넌다 해도 문경새재까지는 또 한나절 길이니 그들 대부분은 삼강주막에서 든든히 배를 채워야 했다. 요즘에야 장국밥이라면 당연히 쇠고기 양지머리나 사태로 풍성한 맛을 내지만 그 옛날 작은 시골 주막에서 귀하디귀한 쇠고기를 쓴다는 건 언감생심. 아마 장국밥의 실체는 삶은 시래기에 된장을 푼 시래기국밥이거나, 어렵사리 구한 선지로 맛을 낸 선지국밥 정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보부상이며 노 젓는 배꾼 등 힘 쓰는 일을 하는 이들은 물론이고, 멀고 먼 과것길에 나선 이도 왠지 시래기국밥 정도로는 금세 허기가 밀려들던 터였다. 순대는 그 기원을 딱히 정할 수 없을 만큼 아주 오래 전부터 전해져온 먹거리다. 양의 창자에 그 피와 고기 등을 넣어 만든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렇다고 안동이나 예천 언저리의 궁벽한 산골에서 양을 기르지는 않았을 터. 아니, 그에 앞서 이미 아득한 예전부터 창자 속에 이런저런 것들을 넣어 ‘순대’라는 이름의 먹거리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어떻게든 전해졌을 테니…. 진작부터 주막에서는 순대국밥이 장국밥보다 더 주인노릇을 하고 있었는지 모를 일이다. 참으로 궁핍한 역사였다. 그것은 오직 좁은 땅덩이와 궁벽진 산골 운운하는 타고난 운명을 탓할 일이 아니었다. 오직 땅을 일구는 농경에만 매달린 까닭이었다. 어쨌거나 곡물과 푸성귀에만 의존하는 삶은 단백질과 지방 부족으로 푸석거렸다. 농경의 바탕이 되는 소는 특별히 나라의 허가를 받아야 잡을 수 있었을 뿐더러 그마저도 서민은 먼발치에서 냄새나 맡을 수 있을 뿐이었다. 닭이 있었지만 그놈은 알을 낳으니 귀한 손이라도 맞이하면 모를까 아무 때나 널름 잡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대식구에 한두 마리 잡아서는 공연히 입맛만 버려놓을 일이었다. 그러니 가장 수월하고 넉넉하게 먹을 수 있었던 것이 돼지고기였다. 그것은 더없는 먹거리요 영양원이었다. 즐거운 축제에서도, 슬픈 상사(喪事)에서도, 일상에서도……. 어쩌다 잡게 되는 돼지 한 마리. 뼈다귀에 발목까지 버릴 것도, 버릴 리도 없는 먹거리였다. 그런데 창자를 두고서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양은 그 피와 고기를 같이 넣어 순대를 만든다지만, 기름지고 감칠맛 나는 돼지고기를 굳이 창자 속에 쑤셔 넣어 먹을 까닭이 없잖은가. 영민한 이 땅의 아낙들이 먼저 머리를 썼을 것이다. 쌀이나 찹쌀 같은 곡물에 부추, 숙주, 파 등의 채소를 돼지 피와 같이 양념해 속을 채우고 쪄내니, 어라! 이거야말로 쫄깃하게 씹히는 질감에 고기와 채소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잘 차린 밥 한 상 전부의 맛이 아닌가! 게다가 속을 꽉 채운 곡물은 순대 한 접시면 한 끼 요기로도 충분하니 어찌 길손의 사랑을 얻지 않으랴. 돼지 부속물 고기 몇 점 곁들인 순대국밥 한 그릇,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순대 한 접시에 막걸리 몇 잔. 남녀노소, 빈부의 차이를 뛰어넘는 사랑 속에 바로 곁에 있음에도 별달리 인식하지 않던 세월까지 있었다. 그것은 갑자기 찾아온 천년 가난의 질곡을 끊은 풍요 속에서 굽고 지지고 볶는 요란함에 취한 까닭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잠시나마 사라진 적도 없으니 김치나 된장처럼 일상이 된 연유이리라. 인근 상주골의 앳된 처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홀린 듯 예천 용궁마을의 한 총각에게 시집을 왔다. 새댁이 된 처녀는 벌써 30년째 시어머니가 해오는 ‘단골식당’ 일을 거들며 점차 안주인이 되어 갔다. 순대나 국밥은 일상이 된 세상이니 시어머니도 상호에 순대를 넣지는 않았다. 묵묵히 순대를 만들던 여인의 머릿속에, 가끔 질긴 질감으로 씹는 맛을 버리는 소창보다 막창순대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막창은 지금도 대부분 그렇지만 굽거나 볶아서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일단 씹는 맛은 질긴 편이었다.
그러나 여인은 삶거나 쪄내면 질감이 달라지리라 여겼다. 작심하고 속을 채워 쪄내니 질긴 식감은 쫄깃쫄깃해졌고, 두꺼운 막창에서 배어나온 육즙은 구수한 맛을 내 소창순대의 맛을 뛰어넘었다. 여인은 막창 특유의 냄새만 줄이면 새로운 순대가 되리라 자신하며 오랫동안 애썼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예천 용궁마을에 길손이 찾을 리 없었다. 강 위로 다리가 놓이고 그 번성하던 영화를 잃은 게 수십 년이니 그새 삼강주막도 동리 아이들에게조차 낯선 이름이 되어 갔다. 그렇게 모든 것이 사라져 가는 세월에, 퇴락한 용궁마을의 낡은 식당을 지키며 묵묵히 순대를 만들어오던 여인은 혹여 희망을 품었던가? 시어머니가 세상을 버리고 집주인이 된 여인에게 어느 날부터인가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떠난 이들이 돌아온 것은 아니지만, 도시에서의 삶에 지쳐 자연과 옛것의 흔적에서 위안받으려는 길손들의 걸음이 이어진 것이다. 인근의 삼강주막이며 회룡포 등지를 돌아보고 낡은 옛 간판의 향수에 젖어 여인의 식당에 들렀던 이들이 막창순대 맛에 눈이 휘둥그레지며 입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제 삶의 터로 돌아간 뒤에도 그 맛을 잊지 못해 탁송을 부탁하는 이까지 있었다. 삶은 혼자서 사는 것이 아니고 영화도 독점으로 누리려 해서는 이루어지지 않는 법. 여인의 좁은 식당에 손님이 넘쳐나자 형제와 이웃들도 하나둘 막창순대를 만들기 시작했다. 특정인이 아니라 마을이 들썩이자 지방자치단체도 팔을 걷어붙일 수 있었다. 브랜드화 작업에 나서고 전통음식타운 조성을 계획했다. 갑자기 많은 것들을 잃어버린 세월이었다. 바로 곁에 있어 그러려니 했으나 어느 날 돌아보면 사라져버린 많은 것들. 먹거리라고 다르지 않다. 명색만 남아 있을 뿐 그 맛은 이미 흔적조차 없는 것들이 얼마이던가. 그래서 아득한 옛적부터 오늘까지, 있는 듯 없는 듯 우리네 곁을 지키다가 이제 저마다의 이름까지 얻은 순대의 부활이 참으로 기쁘다. 글=김정현(소설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고문)(嶺南日報 2012-07-30)
삼강주막과 회룡포(洛東江 줄기가 휘감은 '물돌이 마을' 回龍浦'물의 故庄' 醴泉, 洛東江·乃城川·금천 세 물머리 만나는 곳) [記事] : 나그네 허기 채웠던 ‘삼강주막’ 100년 넘게 명맥 : 내륙인 경북 예천은 물의 고장이기도 하다. 풍양면 삼강리는 낙동강·내성천·금천이 만나는 세 물머리다. 낙동강 1300리 중 발원지인 황지에서 이곳까지 600리, 부산까지는 700리 길이다. 이곳은 1900년대 중반에도 부산에서 소금을 실은 나룻배가 드나들었다. 일제 때는 부산 소금과 경북 북부지역의 미곡, 산채 등을 맞바꾸던 장이 섰다. 그보다 앞서 조선시대에는 영남지역 선비들이 과거를 보기 위해 지나던 영남대로의 길목이기도 했다. 혹자는 이곳을 3강3맥의 지세라고 한다. 삼강에다가 안동 학가산맥과 대구 팔공산맥, 문경 주흘산맥의 끝자락이 만나는 곳이어서이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던 날 삼강 나루터를 찾았다. 영남대로의 길목다웠다. 이 땅의 마지막 주막인 삼강주막은 흔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주막 뒤로 삼강이 보이고, 그 사이에 500년 수령의 회나무가 비에 젖은 주막을 위로하고 있었다. 인근 경북 지역은 물론 멀리 충북에서 온 차량도 눈에 띈다. 삼강주막이 터를 잡은 때는 1900년쯤. 보부상과 장돌뱅이들이 삼강에서 이슬을 피해 허기와 갈증을 풀었을 것이다. 근처를 오갔던 나그네와 주민들도 삼강주막에서 고단한 삶을 위로받고자 했을 터다. 한 사발 막걸리가 주는 힘이다. 삼강주막은 그 후 100년 넘게 명맥을 유지했다. 그러다가 2005년 삼강주막의 2대 주모 유옥연 할머니가 90세 나이로 세상을 떴다. 길손들에게 애정과 관심을 곡진하게 보여줬던 주모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남았다. 삼강주막 복원에 3년 가까이 의견을 모은 주민들은 군청의 도움으로 주막을 다시 열었다. 그때가 지난해 1월. 마을 부녀회가 할머니의 뜻을 이었다. 질펀한 시골 분위기는 많이 줄었지만, 이곳을 찾아 옛 정취에 취하는 묵객과 문인도 많다. 주민들이 손수 만든 두부와 파전, 누런 주전자의 막걸리가 되살려주는 추억을 담아가고 싶어서다. 부엌에 들어가 보니, 유 할머니의 삶의 지혜가 전해진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 주객들은 외상을 많이 했다. 할머니는 글을 못 읽어 외상 장부를 빗금으로 대체했다. 집에서 오는 방향별로 손님을 구별하고, 외상 횟수까지 파악했다고 한다. 한 되는 긴 빗금으로, 작은 되는 반금으로 그었다. 다 갚으면 가로로 줄을 그었다고 하는데, 아직 몇 군데에는 가로줄이 보이지 않는다. 유 할머니가 세상을 떴을 때, 제일 슬퍼했을 사람은 빗금으로 표시된 주객이 아니었을까.
예천에서 더 볼 곳은 용궁면 대은리의 회룡포. 회룡포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비룡산 장안사에 올라야 한다. 장안사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전국 세 곳의 명산에 세운 사찰의 하나다. 이곳에서 보면 물돌이 마을 회룡포가 은은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강원과 경북 북부를 숨차게 달려온 낙동강 줄기가 한 차례 쉬었다가는 마을이다. 낙동강 줄기가 물동이동을 형성해 절경을 만들어낸다. 긴 세월이 깎고 다듬어 이런 물돌이를 만들어 낸 자연의 힘이 경외롭다. 이미 많이 알려져 찾는 이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비 오는 날에는 적막감마저 흐른다. 이 빗물은 낙동강이 회룡포를 좀 더 두툼하게 감싸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곳 물돌이동 회룡포는 안동 하회마을, 영주 수도리 무섬마을, 영월 선암마을과 같은 지형이다. 그중에 제일로 친다. 물길은 높이 190m의 비룡산을 350도 되돌았다. 낙동강 지류가 마을을 휘감으면서 주위에 고운 모래밭을 일구었다. 높은 곳에서 보면 회룡포는 육지 속의 섬마을처럼 보인다. 그러나 섬은 아니다. “학의 목처럼 가느다란 목줄기를 삽으로 한 번만 뜨면 섬이 된다.”며 이곳 사람들은 웃으면서 회룡포의 지형을 설명한다.(박종현 記者 世界日報 2009.11.26)
삼강주막과 회룡포(막걸리 한 사발에 疲勞 말끔히…물돌이동 보며 活力 再充電 : 18 醴泉 三江酒幕) [記事] : 낙동강, 내성천, 금천 등 삼강(三江)이 모여 하나의 큰 강을 이뤄 자연의 경이로움을 보여주는 곳, 옛 과거보러가는 선비들의 쉼터이자 막걸리 한 사발에 보부상의 애환과 삶을 엿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예천의 삼강주막이다. 이곳 삼강주막은 옛 선조들이 등용을 위해 과거보러 가는 길목이자 뱃사공들과 짐꾼 보부상들의 쉼터이며 각종 물류창고로서 활용된 장소로서 양반, 보부상, 농민들의 계층을 떠나 막걸리 한 사발에 피로를 풀고 덕담을 나누던 주막이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대구와 서울을 잇는 단거리 뱃길로, 낙동강을 오르내리는 소금배와 집산된 농산물이 모이는 곳으로 봇짐장수, 방물장수들로 주막은 늘 장사진을 이루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도로가 뚫리고 낙동강 물줄기 위로 다리가 가로질러 놓이면서 이곳은 점차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고 주막과 주모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갔지만 삼강주막 유옥연(주모) 할머니는 지난 2005년 90세로 세상을 뜰 때까지 70년간 주막을 지키며 찾아오는 상인들을 위해 장사를 했었다. 많이 배우지 못한 유 할머니는 글도 숫자도 알지 못해 외상을 줄 때마다 본인만 알아볼 수 있게 부엌 한 켠 벽에다 칼금을 그어 놓았다. 한 잔을 외상하면 짧은 금, 한 주전자를 외상하면 긴 금을 세로로 그어 놓았다가 외상값을 죄다 갚으면 옆으로 길게 금을 그어 외상을 지워 지금도 주막 흙벽에 그을음과 함께 고스란히 남아 있다. 유 할머니가 세상을 뜬 후 주막은 한동안 주인을 찾지 못하다가 경북도가 그 문화·역사적 가치를 인정해 민속자료 134호로 지정한 후 2007년 1억5천만 원의 예산으로 옛 모습 그대로 복원시켰다. 허물어지는 슬레이트 지붕 대신 짚단을 얹은 원래 모습에 진흙을 바른 담장, 구들장, 아궁이는 그대로 두고 칼금을 그어 외상을 표시한 부엌도 원형 그대로 남겨두고 방 2개와 다락, 툇마루에 원두막(정자) 2채가 새롭게 신축돼 새로운 관광지로 명승을 얻고 있다. 현재 삼강주막에는 새 주모 권태순(70) 할머니가 맡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막걸리와 안주거리(배추전, 두부, 묵)를 내놓고 있으며 주막이 복원됐다는 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주말이면 발 디딜 틈이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삼강주막 옆 회회나무엔 전설이 깃들여져 있다. 지금으로부터 300년 전 상주군에 있는 한 목수가 이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면 사고도 나지 않고 큰 돈을 번다하여 연장을 가지고 이 나무를 베려고 하니 사람들은 마을을 지키는 영험스러운 나무라 하여 베지 못하게 말렸지만 듣지 않았다. 나무그늘이 좋아 낮잠이 들었는데 꿈에 백발을 날리는 노인이 무서운 모습으로 나타나서 "만약 이 나무를 해치면 네가 먼저 죽으리라"하므로 꿈에서 깨어나니 하도 생생하여 식은땀을 흘리며 겁에 질려 벌벌 떨면서 혼비백산 달아났다고 한다.
태백산 능선의 수많은 산자락에 둘러싸여 유유히 흐르던 내성천이 산을 부둥켜안고 용틀임을 하듯이 휘감아 돌며 빠져나가는 특이한 지형을 형성하는데 이곳이 회룡포이다. 회룡포는 한 삽만 뜨면 섬이 되어버릴 것 같은 아슬아슬한 물도리 마을로, 2005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6호 지정, 2009년 국토해양부와 한국하천협회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 최우수상 수상, 대한민국 여행작가가 추천한 가장 아름다운 여행지 등 화려한 수식어를 자랑하는 만큼 맑은 물과 넓은 백사장이 어우러진 자연경관으로 전국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육지 속의 섬마을'이다. 애초에는 물이 굽이굽이 돌아간다는 회룡과 인접한 곳으로 기묘하게 이루어진 지형이 의로운 자연환경을 이루었다 하여 의(義)자와 내성천(乃城川)이란 성(城)자를 따서 의성포란 이름을 얻었으나 물돌이동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이웃 마을인 의성군에 가서 회룡포를 찾는 웃지 못할 일이 많아지자, 의성포를 둘러싼 회룡마을과 용포마을의 첫 글자를 따서 회룡포로 부르게 되었다. 회룡포는 나룻배가 아니면 접근하기 어려워 한국전쟁을 피해갈 정도로 한적한 곳이었다. 그래서 나라의 큰 난리가 있을 때마다 인근 백성의 은신처가 됐다. 지금은 마을 대부분이 논밭이지만 원래는 밖에서 보면 안에 무엇을 들었는지 모를 정도 소나무가 무성했다. 회룡포마을의 전체 면적은 8만 평쯤으로 사람이 들어와 산 것은 조선 고종 때 예천의 아랫마을 의성군에 살던 경주 김씨 일가가 소나무를 베고 논밭을 개간하였으며 현재는 9가구 20여명이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이 마을과 세상을 이어주는 길은 개포면에서 들어오는 임도와 육지의 모래밭과 마을의 모래밭을 이어놓은 철다리다. 교각을 세우고 공사장에서 쓰는 구멍이 숭숭 뚫린 철판을 두 줄로 깔아 놓은 다리로 마을 사람들은 구멍이 뽕뽕 나 있다고 해서 '뽕뽕다리'라고 부른다. KBS 인기드라마 '가을동화'의 주인공 준서와 은서가 어린 시절 놀던 곳으로 다리를 건너보는 것 또한 신나는 추억거리가 된다. 내성천과 회룡포의 참모습을 한눈에 보려면 장안사가 있는 비룡산 중턱의 회룡대에 올라야 한다. 솔향기 그윽한 장안사는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며 금강산과 경남 양산, 국토 중간인 비룡산에 하나씩 모두 3개의 장안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고려시대에는 문인 이규보가 머무르며 '장안사에서'란 절창을 지어낸 유서 깊은 도량이다. 회룡포의 자태를 완벽하게 드러낼 수 있는 절묘한 곳에 있는 회룡대는 산줄기와 물줄기가 어우러진 최고의 물돌이동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으뜸 포인트다. 아마 이런 전망대가 없었다면 회룡포의 아름다움은 아직도 묻혀 있었을지도 모른다. 비룡산 등산로를 따라가다 보면 낙동강, 내성천, 금천이 합쳐지는 삼강이 보이는데 깎아 지르는 듯한 이곳에는 삼한시대부터 격전지로 유명한 원산성이 있다. 천혜의 요새로 된 토석혼축으로 된 성 주변에는 많은 고분이 흩어져 있으며 봉수대와 군창지가 남아있다. 백제 시조 온조가 남하할 때 마한 최후의 보루인 이곳 원산성을 점령한 후 백제를 세웠다고도 전해지며 삼국사기에 의하면 상당기간 백제의 요새로서 삼국이 충돌했다고 한다. 그 당시 얼마나 격전지였던지 지금도 피끝이라는 언덕에는 비가 많이 오면 성 아래 마을인 성저마을에 아비규환과 원혼의 소리가 들려온다고 한다. 고구려의 온달 장군이 전략 요새인 이성을 점령하려고 남하하다 아차성에서 전사했다고 하나 밝혀지고 있지는 않다.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명승지 회룡포에 대한 자연적·문화적 경관을 최대한 보호하면서, 탐방객들이 체험하며 즐기고 볼 수 있도록 보완하고자 소나무 숲 복원, 마을 안 도로 및 담장 정비, 연지 및 휴식공간 조성, 마을 내 전선 지중화 등을 추진해 아름다운 회룡포를 보존하고자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양승복ㆍ이상만 記者 慶北日報 2012-11-12)
삼강~회룡포 강변길(‘느리게 걸으며 自然을 느껴요′ : 行安部, '우리 마을 綠色길 베스트 10' 選定) [記事] : 행정안전부(장관 맹형규)는 2012년 7월 24일 여름 휴가철 느리게 걸으며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우리 마을 녹색길 베스트 10’을 선정, 발표했다. 베스트 10은 지난해 ‘우리 마을 녹색길’로 선정된 80곳 가운데 53개 지방자치단체가 신청한 지역을 중심으로 선정됐다. 광역시 가운데는 광주 동구의 ‘무등산 자락 다님길’과 울산 울주군의 ‘영남 알프스 하늘 억새길’이 뽑혔다. 도 지역에서는 △경기 양평군 ‘두물머리 물래길’ △강원 철원군의 ‘소이산 생태 숲 녹색길’ △충북 충주시 ‘비내길’ △충남 서산시 ‘서산 아라메길’ △전북 정읍시 ‘백제가요 정읍사 오솔길’ △전남 여수시 ‘금오도 비렁길’ △경북 예천군 ‘삼강∼회룡포 강변길’, △경남 함양군 ‘지리산 자락길’ 등이 포함됐다. 한편 행안부는 지난 5월 ‘우리 마을 녹색길 지킴이단’을 구성, 운영 중이다.(신종명 記者 아시아투데이 2012-07-24 12:01)
삼강~회룡포 강변길(“白沙場과 물, 山, 숲길 同時에 鑑賞할 수 있어요” : 醴泉 三江~回龍浦 江邊길, 우리마을 綠色길 베스트 10에 뽑혀) [記事] : 예천 삼강~회룡포 강변길이 전국에서 걷기 좋은 녹색길 10곳 가운데 1곳으로 선정됐다. 예천군에 따르면 2012년 7월 24일 행정안전부가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우리마을 녹색길 베스트 10’을 선정, 통보했다고 밝혔다. 녹색길 베스트 10은 지난해 ‘우리마을 녹색길’로 선정된 80곳을 다시 심사해 결정됐다. 전문가에게 의뢰해 경관성, 환경성, 접근섭, 편의성, 관심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종 선정됐다. 이번에 선정된 예천군의 삼강~회룡포 강변길은 내성천과 낙동강 언저리 10.1km를 휘돌아 오는 원점회귀형 순환코스다. 삼강(낙동강.내성천.금천)강변길과 회룡포둘레길, 내성천산책길, 뿅뿅다리길 등 스토리가 있는 주제별 테마길로 걷는 재미가 쏠쏠하고, 800m에 달하는 유실수 길은 고향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특히, 비룡산과 능선을 따라 걸으며 국가 명승지 제16호인 ‘회룡포’를 굽어보는 3.6km 연계코스는 백사장과 물, 산, 숲길 4가지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어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명품 길이다. 이 연계코스를 내려오면 지난해 농림수산식품부으로부터 ‘워크숍ㆍ MTㆍ세미나 하기 좋은 농어촌 마을 22곳’으로 선정된 ‘회룡포여울마을’이 나온다. 회룡포여울마을은 천년고찰 ‘장안사’ 등산로 아래에 있는 마을에 자리 잡고 있다. 예천군이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의 하나로 1995년 개교하여 2003년에 폐교된 옛 향석초등학교 건물을 매입, 2년에 걸쳐 리모델링 공사를 통해 재탄생했다. 가족실과 단체실 등 숙박시설 11실과 80명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세미나실, 식당, 휴게실 등을 갖추고 있고 농사체험과 짚공예체험, 염색체험, 떡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는 체험시설 2동이 마련되어 있다. 또 자가용 21대나 버스 3대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주차시설이 조성되어 있다. 천혜의 비경과 각종 체험거리 못지않게 이름난 먹거리도 유명하다. 회룡포 마을에서 차를 타고 5분만 가면 전국으로 유명한 예천의 대표 음식 ‘용궁순대’ 집이 7~8군데 있다. 주말이면 관광객들로 넘쳐나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빈다. 용궁순대는 소창, 대창의 2배 값인 막창을 사용해 씹는 맛이 쫄깃하다. 순대 제조도 손으로 직접 빚는 전통방식을 고수하고 지역에서 생산된 부추·파·찹쌀·선지·한약재 등 10여 가지의 영양 많고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 맛이 깔끔하고 담백하다. 한편 녹색길 베스트 10에는 예천의 ‘삼강~회룡포 강변길’을 비롯해 울산 ‘영남 알프스 하늘 억새길’과 광주 ‘무등산 자락 다님길’, 경남 함양군의 ‘지리산 자락길’, 경기 양평군의 ‘두물머리 물래길’, 강원 철원군의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 충북 충주시의 ‘비내길’, 충남 서산시의 ‘서산 아라메길’, 전북 정읍시의 ‘백제가요 정읍사 오솔길’, 전남 여수시의 ‘금오도 비렁길’이 선정됐다.(醴泉뉴스 2012년 07월 26일)
삼강주막 :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ㅡ예천 회룡포/삼강주막/ 2013.10.16/ 경북북부지방에서 낙동강 700리길 중 단 하나 남은 삼강주막 경상북도 민속자료 134호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며, 매년 8월 초에는 이곳에서 막걸리 축제가 열린다. 약 500년쯤.../ cafe.daum.net/sansamtkd... 【우수카페】../ 댓글 10(daum 2014)
삼강주막 : 비 오는 날 혼자서도 가끔 막걸리 마시려가는 삼강주막/ 2014.02.12/ 조선시대 마지막 주막인데 아주 소탈하면서도 아름답지요. 回龍浦 회룡포는 낙동강의 지류인 내성천이 용이 비상하는 것처럼 물을 휘감아 돌아간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cafe.daum.net/daum1000/... 좋은글과 좋은../ 댓글 18(daum 2014)
삼강주막 : 세 번째 삼강주막에서/ 2013.11.25/ 회룡포에서 서울로 올라오기 전 삼강주막에 들러 막걸리 한잔~/ cafe.daum.net/54mal/... 54년 말띠/ 댓글 20(daum 2014)
삼강주막 :
예천 삼강주막 소개/ 2013.07.16/ 예천 삼강주막 : 삼강주막은 삼강나루의 나들이객에게 허기를 면하게 해주고 보부상들의 숙식처로 때론 시인 묵객들의 유상처로 이용된 건물이다 1900년경에 지은 이 주막은.../ cafe.daum.net/jeontongo...
전통옹기를 사../ 댓글 10(daum 2014)
삼강주막 : 영주 무섬마을과 예천 삼강주막/ 2013.08.30/ 통로였답니다. 이 마을 무섬아리랑 축제 때 뮤지컬로 재현한 상여행렬에 사용한 상여, 예천 삼강주막, 삼강나루의 나들이 객에게 허기진 뱃속을 채워주고 보부상들의 숙식처였으며.../ cafe.daum.net/maylove52... 어린왕자의 들../ 댓글 53(daum 2014)
삼강주막 : [예천] 국가에서 홍보를 담당하는 술집 <삼강주막>/ 2012.03.26/ 돌아앉은 맛집을 매의 눈으로 탐색하던 중 계속 반복하여 시야에 들어오는 이정표! 삼강주막? 이럴 수가~! 술집이다...! 국도(國道)...국가에서 지정하여 관리하는 국가의.../ cafe.daum.net/liveinboo... ♥독서클럽♥ ../ 댓글 21(daum 2014)
삼강주막 : 예천군의 삼강주막과 회룡포 마을 뿅뿅다리/ 2013.11.01/ 자연부락 뿅뿅다리를 건너 회룡포 마을을 가네요.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삼강주막은 예전에 나룻터 뱃사공들과 보부상이며 길손들이 드나들던 주막거리에요.../ cafe.daum.net/gksshd/Ml... 청송 무아의 ../ 댓글 13(daum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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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