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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3613:예천8경 중 금당실전통마을과 송림(1)(祝군청,이현준)
작성자장병창 @ 2014.04.17 05:37:43

  예천의 자랑(3613) : 예천8경 중 금당실전통마을과 송림(1)(附 예천군, 16일 재정 균형집행 도 평가...최우수상...축하합니다/이현준 군수, 15일 공약이행 전국평가 대상...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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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당실전통마을과 송림(醴泉 觀光8景 中 第3景 金塘室傳統마을과 松林) : 예천의 역사 관광지/ 2014/03/10 17:46/ 예천에서 자가용으로 15분 거리에 있는 용문면 금당실(金塘室)마을은 조선 태조(太祖)가 도읍지로 정하려던 곳으로 십승지지(十勝之地)의 으뜸인 곳으로 이곳에는 선사시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화유적이 산재해 있는데, 청동기(靑銅器) 시대의 고인돌무덤은 청룡사(靑龍寺)로 가는 길의 서쪽과 제곡리 권종국댁(宅) 중심으로 앞논과 뒤숲에 있으며, 금곡서원(金谷書院)은 취암(恥菴) 박충좌(朴忠佐:1287~1349, 咸陽人), 행정(杏亭) 박눌(朴訥), 남야(南野) 박경손(朴孫慶) 3인의 위패를 봉안하고 함양 박씨 문중 기금으로 1984년 건립하였다. 추원재및사당(追遠齋·祠堂-민속자료제82호)은 함양박씨 입향조인 박종린(朴從麟)을 모신 사당으로 1656년 건립하였으며, 반송재고택(伴松齋古宅-문화재자료제262호)은 조선 숙종 때 도승지(都承旨)를 지낸 갈빈 김빈(金賓)이 살던 집으로 구한말 양주대감 이유인(李裕寅)이 매입한 목조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사괴당고택(四槐堂古宅-문화재자료제337호)은 원주변씨 검추공파 입향조인 사괴당 변응녕(邊응녕:1518~1586)이 살던 터로 18세기 무렵에 세운 주택이다. 또한 구한말 세도가이며 법무대신을 지낸 양주대감 이유인(李裕寅)의 99칸(間) 대저택 흔적은 당시의 영화(榮華)와 세월의 무상함을 더해준다. 용문중학교 동편을 중심으로 500여m 가량 뻗어 있는 송림(松林)은 100여년 된 소나무로 시원한 그늘 밑에는 체육시설과 주민들의 휴식처가 있으며 겨울에는 방풍림(防風林) 역할을 한다. 또한 면사무소 앞 300여년 된 성황당터 느티나무는 주민들의 휴식공간을 제공해 주고 면민(面民)들의 애환(哀歡)이 담겨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금당실전통마을과 송림 : 예천 관광8경 선정. 금당실전통마을과 송림, 초간정 및 원림, 용문사 포함| 예천소식/ 권재상 | 2014.03.06. 21:35/ 조선시대 전통가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금당실 마을은 전쟁이나 천재지변에도 안심할 수 있는 땅으로 조선 태조가 도읍지로 정하려 했던 십승지 중에 하나이다. 이곳은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과 금곡서원, 추원재 및 사당(민속자료 제82호), 반송재고택(문화재자료 제262호), 사괴당고택(문화재자료 제337호) 등 문화재가 산재해 있고, 99칸 저택터가 남아 있으며, 마을 안길은 아름다운 돌담길로 되어 있고, 천연기념물 469호인 송림은 더위를 식혀주는 그늘 숲 역할을 하고 있다.(cafe.daum.net/yongdai21/CMU7/ 용대초등학교21회동창모임)

 

금곡장(金谷場), 상금곡장(上金谷場) [場] : 용문면 상금곡리(上金谷里)에 있던 일제 때부터의 5일장(五日場)으로, <군지(郡誌, 1939)>에서는 "3일과 8일에 개시(開市)", <교남지(嶠南誌, 1937)>에서는 "4일과 9일에 개시", <경북연감(慶北年鑑, 1971)>에서는 "5일과 10일에 개시"라고 하였다.

 

금당동(金堂洞) [十勝之地] : 용문면 북부 지역으로, <정감록(鄭鑑錄)>에 실린 십승지지(十勝之地) 중의 한 곳이다. 십승지지란 술가(術家)가 말하는 굶주림, 싸움 등의 염려가 없다는 10군데의 땅 즉 삼재(三災)가 범접(犯接)을 못한다는 곳이다. 흔히 한국에서의 피난지를 말하는데, 예천 금당곡(醴泉金堂谷)은 소백산의 영기(靈氣)를 받은 때문인 것 같다. 십승지지는 예천의 금당동(金堂洞), 풍기(豊基)의 금계촌(金鷄村), 안동의 춘양면(春陽面), 보은(報恩)의 속리산(俗離山), 운봉(雲峰)의 두류산(頭流山), 공주(公州)의 유구(維鳩)와 마곡(麻谷), 영월(寧越) 의 정동상류(正東上流), 무주(茂朱)의 무풍동(茂豊洞), 부안(扶安)의 변산(邊山), 성주의 만수동(萬壽洞)을 말한다. 이중환(李重煥)의 <택리지(澤里志)>에서도 예천인은 사람된 의리를 밝히고 성리학을 중하게 여겨 비록 외떨어진 촌락(村落)이나 보잘 것 없는 마을에도 글 읽는 소리가 들리고, 해진 옷을 입고 좁은 창을 내고 살더라도 또한 도덕과 성리학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서로 삼가고 솔직한 성격을 갖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지리적인 좋은 환경 아래에서 학문과 도덕을 갖춘 예천인들이야 말로 기독교의 천당이나 불교의 극락의 경지에서 살고 있다고 옛사람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

 

  금당동(金堂洞) : 南師古秘訣/ 저편자: 南師古(朝鮮) 著/ 발행자: [刊者未詳]/ 날짜: [刊年未-詳]/ 분류: 목록·해제 > 목록 > 규장각소장목록/ 제공: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원서명 南師古秘訣/ 청구기호 奎 12375/ 편저자(한자)  南師古(朝鮮) 著  판본사항 筆寫本 간행지 [刊地未詳] 책권수 1冊(4張)/ 편저자(한글) 남사고(조선) 저 간행연도 [刊年未詳] 간행자 [刊者未詳] 책크기 30×19.5cm/ 자료소개 南師古가 말한 秘訣을 간단히 기록한 것/ 목차 각지의 吉凶, 庚寅辛卯, 壬辰癸巳, 甲午乙未, 丙申丁酉, 戊戌己亥, 庚子辛丑, 壬寅癸卯, 甲辰乙巳, 丙午丁未, 戊申己酉, 庚戌辛亥, 甲寅乙卯 등의 吉凶, 十勝保吉之地:小白山下, 太白山下, 雲峯頭流山下, 醴泉金堂洞, 公州麻谷, 寧越正東, 茂朱舞豊, 扶安壺岩, 伽倻山下, 平平蔚三/ 四部분류  子部 術數類 기타/ M/F번호 M/F79-103-70-T//

 

금당 맛질 반서울(金塘맛질半서울) [마을] : 용문면에 있는 마을들로, 금당(金塘 : 上金谷里, 下金谷里), 맛질(渚谷里, 大渚里, 下鶴里)를 합친 마을이다. 이에 해당되는 지역은 다음과 같다.

  ♣ 半서울 = 金塘室[上金谷里+下金谷里] + 맛질

  ♣ 맛질 = 작은 맛질{渚谷里} + 큰 맛질{大渚里+陰達마(下鶴1里)+텃골} + 재달(下鶴 4里)

  ♣ 텃골 = 안 텃골(下鶴2里) + 바같 텃골(下鶴3里)

  [傳說] : 1) 명풍 남사고(名風南師古 : 李滉 弟子)가 말하기를, "이 마을과 맛질을 하나로 보면 서울과 흡사하나, 큰 냇물이 없음이 아쉽다."라고 하여 그 뒤부터 '금당 맛질 반서울'이란 말이 생겼다고 한다. 2) 조선 말엽 금당실(金塘室) 아흔 아홉칸 집 주인 양주대감 경주인 이유인(楊州大監慶州人李裕寅)이 살고 있었는데, 이유인은 당시 경상 감사(慶尙監司), 법부대신(法部大臣), 한성판윤(漢城判尹) 등의 벼슬을 역임한 세력가였다. 그는 맛질의 학자로 벼슬을 하지 않는 처사 안동인 권경하(處士安東人權經夏, 號正庵)의 집에 놀러가기를 자주 하였는데, 그 행렬(行列)이 마치 서울의 왕가 행차(王駕行次)와 흡사하고, 이 대감은 또 자주 맛질에 와서 교유(交遊)하였다. 이 후 사람들은 "금당 맛질 반서울"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하였다고 한다(嶺南의 傳說). 3) 18세기에 높은 벼슬에 올라서 국왕을 보필하고 국사(國事)를 보살핀 이곳 출신들이 많아 반조정(半朝廷)이라는 뜻에서 불리어졌다고 한다. 4) 조선 초기 이성계(李成桂)가 용문(龍門)을 도읍으로 정하기 위하여 그의 신하 권중화(權仲和, 柳川面 星坪里 德達 出身)에게 닭을 한 마리 주면서, "이 닭이 울기 전에 용문에 도착하면 용문에 도읍을 정하겠노라."라고 했는데, 닭이 이 고개를 넘어서면서 울음을 터뜨렸기 때문에 여기를 '금당 맛질 반서울'이라고 전하여 온다. 5) '맛질'이란 작은 맛질에 우거(寓居)한 권의가 맏아들이어서 맏길(맛질)이라고 했고, 또 마을 근처의 산과 들에서 마(薯, 고구마科에 屬하는 山藥)가 많이 나서 '마를 캐는 길목'이라고 맛질이 되었다고 한다. '반서울'이란 권의의 아들 7형제가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높이 되어서이다. 6) 높은 산이 사방으로 애워싼 가운데에 큰 들이 열렸으므로 맏일이라고도 하였다고도 한다. 7) 고종 때의 법부대신 이유인(法部大臣李裕寅, 楊州大監)이 서울 나들이 때, 그 행렬이 컸다

 

  금당 맛질 반서울(金塘맛질半서울) [傳說] : ᄋ 위치 : 용문면, ᄋ 내용: 금당(金塘 : 上金谷里, 下金谷里), 맛질(渚谷里, 大渚里, 下鶴里)를 합친 마을이다. 이에 해당되는 지역은 다음과 같다. ♣ 半서울 = 金塘室[上金谷里+下金谷里] +맛질, ♣ 맛질 = 작은 맛질{渚谷里} + 큰 맛질{大渚里+陰達마(下鶴1里)+텃골} + 재달(下鶴 4里), ♣ 텃골 = 안 텃골(下鶴2里) + 바같 텃골(下鶴3里), ᄋ 전설 : 1) 명풍 남사고(名風南師古 : 李滉 弟子)가 말하기를, "이 마을과 맛질을 하나로 보면 서울과 흡사하나, 큰 냇물이 없음이 아쉽다."라고 하여 그 뒤부터 '금당 맛질 반서울'이란 말이 생겼다고 한다. 2) 조선 말엽 금당실(金塘室) 아흔 아홉칸 집 주인 양주대감 경주인 이유인(楊州大監慶州人李裕寅)이 살고 있었는데, 이유인은 당시 경상감사(慶尙監司), 법부대신(法部大臣), 한성판윤(漢城判尹) 등의 벼슬을 역임한 세력가였다. 그는 맛질의 학자로 벼슬을 하지 않는 처사 안동인 권경하(處士安東人權經夏, 號正庵)의 집에 놀러가기를 자주 하였는데, 그 행렬(行列)이 마치 서울의 왕가 행차(王駕行次)와 흡사하고, 이 대감은 또 자주 맛질에 와서 교유(交遊)하였다. 이 후 사람들은 "금당 맛질 반서울"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하였다고 한다(嶺南의 傳說). 3) 18세기에 높은 벼슬에 올라서 국왕을 보필하고 국사(國事)를 보살핀 이 곳 출신들이 많아 반조정(半朝廷)이라는 뜻에서 불리어졌다고 한다. 4) 조선 초기 이성계(李成桂)가 용문(龍門)을 도읍으로 정하기 위하여 그의 신하 권중화(權仲和, 柳川面 星坪里 德達 出身)에게 닭을 한 마리 주면서, "이 닭이 울기 전에 용문에 도착하면 용문에 도읍을 정하겠노라."라고 했는데, 닭이 이 고개를 넘어서면서 울음을 터뜨렸기 때문에 여기를 '금당 맛질 반서울'이라고 전하여 온다. 5) '맛질'이란 작은맛질에 우거(寓居)한 권의(權檥)가 맏아들이어서 맏길(맛질)이라고 했고, 또 마을 근처의 산과 들에서 마(薯, 고구마科에 屬하는 山藥)가 많이 나서 '마를 캐는 길목'이라고 맛질이 되었다고 한다. '반서울'이란 권의의 아들 7형제가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이 높이 되어서이다. 6) 높은 산이 사방으로 애워싼 가운데에 큰 들이 열렸으므로 맏일이라고도 하였다고도 한다. 7) 고종 때의 법부대신 이유인(法部大臣李裕寅, 楊州大監)이 서울 나들이 때, 그 행렬이 컸다.(張炳昌 2001.6.29 醴泉郡廳 編纂 豫定 <醴泉의 傳說> 寄稿文)

 

  금당맛질 반서울(金塘맛질) : <김영진 시인>| 예천신문 | 2010.03.31. 17:27/ 금당 맛질/ <시와 함께 하는 경북북부문화 나들이*김영진 시인>/ 금당실은 상하 금곡리 옛 이름/ 맛질은 제곡리 대제리 텃골 이름/ 옛 선인들의 정겨운 이름 짓기는/ 고향의 정서에 녹아나게 한다.// 풍기·예천·안동·화곡 등의 심산유곡은/  <정감록> 10승지(十勝地)에 오른 명승지/ 그 한 자리가 바로 금당 맛질이로구나.// 금당실 지세는 연못의 연꽃마을이다./ 명나라 장수도 둘러보고/ 중국땅 양양을 닮았다고 감탄했다./ 낙향한 이유인*을 보러/ 한양에서 뜻있는 자들이 많이 찾아/ 반서울이라고도 했단다.// 망월봉 아래 맛질이 터잡고/ 그 주변에 금당이 이어져 있다./ 시냇물이 흐르고 풍광이 수려해/ 예천 사람 심성은 맑고 어질다.// *을미사변 때 법무대신을 지냈다./ 시작 노트 : <정감록> <감결>에 따르면 금당실은 조선 10승지 중 다섯 손 안에 드는 고장이다. 그러니 그 주변 경상북도 일대가 다 명승지일 수 밖에 없다. 울진 출신의 풍수쟁이였던 남격암(南格菴)의 <산수십승보길지지(山水十勝保吉之地)>에도 ”금당동의 북쪽 골짜기가 십승지이며, 지세가 깊숙하지 못하고 드러난 곳이기는 하나, 병란이 들어오지 않아 대대로 편안을 누릴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daum 2010)

 

  금당맛질사진첩(金塘맛질 寫眞帖 發刊 紀念會, 醴泉寫眞同友會 第17回 會員展) [記事] : 금당 맛질(용문면)을 주제로 한 사진첩 발간 기념회와 예천사진동우회 제17회 회원전(금당 맛질 사진), 제10회 포항사진연구회 교류전이 2005년 1월 29일부터 31일까지 예천문화회관 전시실에서 열린다. 개막은 29일 오후 3시.(醴泉新聞 2005-01-28 13:32:31)

 

  금당 맛질 사진첩(2005 醴泉 鄭鑑錄이 꼽은 十勝地 金塘 맛질 寫眞帖) [冊] : 예천사진동우회(회장 김일천)에서 촬영, 편집한 사진첩으로, 157쪽, 사진, 가로 30cm, 세로 21cm, 예천사진동우회에서 2005년 1월 29일에 발행하였다. 표지글은 서예가 달산(達山) 박근노(朴槿魯), 사진 설명 자문은 향토사학자 백산(栢山) 장병창(張炳昌)이다. 목차는, 발간사(예천사진동우회 회장 김일천), 예천군의 연혁 및 유래, 제1부 금당실/ 금당실의 유래 =17, 관공서ㆍ기관 =20, 종택ㆍ고택ㆍ정자 =29, 주거환경ㆍ생활상 =67, 제2부 맛질/ 맛질의 유래 =98, 종택ㆍ고택ㆍ정자 =98, 주거환경ㆍ생활상 =114, 제3부 금당실ㆍ맛질 주변 문화유적지, 명소/ 용문사 =118, 초간정 =126, 청룡사 =131,  감노루 =133, 예천권씨종택 =135, 의성김씨 남악종택 =137, 전주이씨 이정사 =140, 어림성지 =141, 운암지(두인못) =142, 기타 144, 부록/ 용문면 관내 마을 =146, 용문면 특산품=149이다.

 

  금당맛질 사진첩(찰칵! 金塘맛질 寫眞帖 發刊 : 醴泉寫眞同友會 ‘發刊紀念會, 第17回 會員展&浦港寫眞硏究會交流展’) [記事] : 예천사진동우회(회장 김일천)는 최근 정감록이 꼽은 십승지 중 한 곳인 금당 맛질(용문면)을 주제로 한 사진집 ‘금당 맛질 사진첩’(도서출판 온누리)을 냈다. ‘금당맛질 사진첩’에는 사진동우회원들이 지난 2003년부터 14개월 동안 용문면을 누비며 카메라에 포착한 정자, 사찰, 고택, 공공기관과 생활상 사진 등 700여 점이 담겼다. 제1부 금당실, 제2부 맛질, 제3부 금당실ㆍ맛질 주변 문화유적지, 명소로 꾸며졌으며, 부록에 용문면 관내 마을과 용문면 특산품을 수록했다. 사다리차를 이용해 52m 상공에서 찍은 금당실 전경, 예천읍 전경이 눈길을 끌며, 각종 문화재의 시골풍경, 주민들의 생활상 등 용문면(금당실)의 어제와 오늘의 역사를 오롯이 담고 있다. 김일천 회장은, “우리의 전통 문화를 현재의 시점에서 기록으로 남기고자 용문면 금당ㆍ맛질을 테마로 회원들이 촬영하게 됐다.”며, “이 사진첩이 세계 속의 예천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예천사진동우회는 2005년 1월 29일부터 31일까지 예천문화회관에서 제17회 회원 사진전 및 제10회 포항사진연구회(회장 조병율)와의 교류전을 열었다. 이날 강무한 군의원과 이의혁(안동ㆍ호명면 출생) 씨가 예천사진동우회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醴泉新聞 2005.2.3)

 

  금당ㆍ맛질의 역사적 위상(儒敎文化圈 傳統마을 3 學術發表會 金塘ㆍ맛질의 歷史的 位相, 日時 : 2003年 10月 25日(土) 13:30-16:35, 場所 : 醴泉文化會館 小會議室 2層, 主催 : 安東大學校 安東文化硏究所) [冊] : 안동대학교 문화연구소에서 편집한 책으로, 65쪽, 27cm, 2003년 10월에 안동대학교에서 발행하였다. 목차는, 1) 금당ㆍ맛질 유교뮨화권에서 생산된 문헌자료 소개(정양수, 1-20쪽), 2) 남야 박손경의 삶과 학문 세계(안병걸, 21-32쪽), 3) 금당실과 민족운동(김희곤, 33-43쪽), 4) 금당실의 오늘과 내일(안귀남, 44-65쪽)이다. 

 

  금당실 [記事] : 최어중의 기사로, <월간 산(月刊 山)> 1991년 7월호 222-225쪽(4쪽 분량)에 ‘<십승지(十勝地)를 찾아서> (전24회) 19) 예천의 금당실’이 수록되어 있다.

  금당실(醴泉 龍門面 金塘室, 未來의 땅 - 十勝地를 가다) [記事] : '정감록' 자체에서 내린 십승지의 정의는, "세상에서 피신하기 가장 좋은 땅" 이라고 했다. 여기서 '피신' 이란 말의 의미는 매우 다양하다. 내우외환(內憂外患), 즉 외적의 침입은 물론 국내의 쿠데타 등 정변으로부터 생명을 보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십승지라고 하여 모두 이런 조건을 충족하는 것은 아니다. 때론 단서 조항이 붙기도 한다. 예컨대, 예천(醴泉) 금당실(金塘室)의 경우, '임금의 수레가 닥치면 그렇지 않다' 고 했다. '물 위에 떠 있는 연꽃' 모양의 예천 금당실. 뒤편 왼쪽 산이 오미봉이다. 금당과 이웃한 맛질 동리를 합하면 서울의 반(半)은 된다고 전해 온다. 예천 금당실은 오늘날 경북 예천군 용문면(龍門面) 상금곡리(上金谷里)를 가리킨다. 먼저 예천군을 살펴보면, 이곳은 소백산 줄기가 북쪽을 막고 낙동강이 남쪽을 경계하는 천연의 요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낙동강 주변의 구릉을 따라 점촌에서 안동을 잇는 4차선의 34번 국도가 예천군을 동서로 횡단하고 영주와 군위를 잇는 28번 국도가 남북으로 관통하게 됐다. 여기에다 공항이 생기고 충북 단양을 잇는 저수령이 개통되면서 군청 소재지인 예천은 교통의 요지로 바뀌었다. 비결서가 말하는 '임금의 수레' 란 이같은 교통의 변화를 뜻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점에서 예천읍의 배후에 자리한 용문면 금당실은 결코 피란지가 아니다. 예천읍에서 용문면은 승용차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곳이다. 그럼에도 이 곳의 지형을 보면 분명 옛 사람들이 무엇을 중시했는가를 알 수 있다. 먼저 금당실을 처음 찾아가는 사람은 예천읍에서 두어 고개 넘자마자 눈앞에 전개되는 광활한 대지에 깜작 놀라게 마련이다. 초간정 주변 소나무와 기암․계곡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이룬다. "예천군은 물론 경북 전체에서도 면 단위로 우리 동네만큼 넓은 곳은 없을 것입니다. 상수원 보호 구역이 되다 보니 공기도 맑아 사람살기는 최적의 상태"라고 이 곳 토박이인 이승희(39) 씨는 자랑한다. 이 곳 금당과 이웃한 맛질(대제. 하학. 능천리)이란 동네를 합하면 서울의 반은 된다는 것이 이 지방에 전해오는 말. 다만 서울과 비교해 부족한 것이 한강 같은 큰 물이 가까이 없다는 점이다. 용문면 인구는 2천여 명. 이 중 반 가까운 인구(5百戶)가 금당실에 모여 산다. 소백산이 저수령을 넘어 월악산으로 가는 중에 한 가지가 남으로 내려와 매봉이 되고 여기서 다시 네 개의 봉우리를 만들고 다섯 번째 봉이 금당실의 주산이 됐다. 오미봉(五美峰)이 그 것이다. 오미봉은 마치 연꽃처럼 생겼다. 금당(金塘) 은 바로 이 연꽃이 피는 연못 자리다. 그래서 이 곳 지형을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 물 위에 뜬 연꽃)이라고 한다. "임진왜란 때 이여송 장군이 이곳 지세를 보고 인물이 난다고 하여 오미봉에 쇠말뚝을 박았다고 합니다. 그 이후 인물이 별로 안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판·검사는 다른 면에 비해 많이 배출한다." 고 장봉규(73) 씨는 귀띔한다. 용문은 쌀이 남아돈다. 또 '예천마늘' 의 주산지다. 이처럼 '가난' 을 모르는 데다 인물까지 배출하는 곳이다. 뜻있는 사람은 후손을 위해 아직도 둥지를 틀 만한 곳이다. [볼거리] : ▶용문사 : 용문면 내지동. 신라 경문왕 때(810년) 두운 선사가 개창. 용문면은 1914년 이 절 이름을 따서 붙였다. 보물 제145호인 대장전과 윤장대(보물 제684호. 대장경판을 걸어놓고 읽는 일종의 독서대)는 뛰어난 예술품으로 평가된다. ▶예천권씨 종가 및 별당 : 용문면 죽림리. 국가 지정문화재. 초간(草澗) 권문해의 '대동군부운옥' 책판과 '초간일기' 등이 전한다. ▶초간정 : 용문면 죽림리. 송림과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룬다.(최영주 編輯委員 中央日報 1998.4.9)

 

  금당실(生活속의 易學 이야기 : 鄭鑑錄) [記事] : 시끄럽고 혼란할 때에는 갖가지 유언비어가 난무하기 마련이다. 유비통신의 전언을 타고 정치와 경제의 주요 현안들이 갖가지 양념과 함께 민중 속으로 파고든다. 중국 주 나라 말기부터 성행하기 시작한 도참(예언을 믿는 사상)은 우리나라에 와서 갖가지 비결서의 형태로 그 모습을 갖추게 된다. 조선 중기 이후 민간에 성행하였던 국가 운명에 관한 대표적인 예언서로 정감록을 꼽는다. 민간에 전승되어 내려오는 뿌리깊은 계룡산 천도론은 이 책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정부가 대전 수도이양론을 제창하면서부터는 그 진가(?)가 더욱 확실해졌다고 볼 수 있다. 효력이 있어서인지 정부 제3청사가 들어서긴 했지만. 정감록이라는 명칭은 다음의 두 가지 경우를 포괄하고 있다. 첫째, 조선의 조상이라는 이심과 조선 멸망 후 일어설 정씨의 조상이라는 정감이 금강산에서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면서 조선 이후의 역사를 얘기하는 감결. 둘째, 이 감결에다 의상 대사의 산수비기, 도선 국사의 도선비결, 무학 대사의 무학비결, 남사고 선생의 남사고비결, 용호 대사 정염 선생의 정북창비결, 이토정 선생의 토정가장결, 그리고 원효 대사, 서산 대사, 유형원, 이율곡 등의 수 십 명이 저술한 비결들이 합쳐진 한국 비결의 완전 종합 집대성판. 가장 중심을 형성하고 있는 감결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이씨의 한양 몇 백 년 다음에는 정씨의 계룡산 수 백 년이 있고, 다음은 조씨의 가야산 몇 백 년, 또 그 다음은 범씨의 완산 몇 백 년이 이어지며 재차 왕씨의 송악(개성) 시절이 온다. 그 중간에 갖가지 재난이 있어 세태와 민심이 어지러울 것이다. 난리가 나면 십승지라고 이름 붙여진 보은 속리산, 안동 화산, 남원 운봉, 전북 부안의 호암, 무주의 무풍, 강원도 영월, 경북 예천 금당실, 풍기의 금계촌, 공주 계룡산, 합천 가야산 등의 10군데로 피난을 가면 살 수 있다.(성철재 韓國經濟 1998-11-24)

 

  금당실(龍門面 '金塘室 마을' 情報化 示範마을로 育成) [記事] : 천년고찰 용문사와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금당꿀로 유명한 전통 마을인 용문면 `금당실' 마을이 행정자치부가 주관하는 2002년도 정보화 시범마을로 선정돼 정보화마을로 육성된다. 이에 따라 총 4억 원의 예산이 투입돼 마을 정보센터를 구축하고 정보 콘텐츠 개발, 마을 주민에 대한 무료 PC 보급, 주민 정보화 교육 등 농촌 마을에 정보화 기반 시설과 활용 수준을 높이는 다양한 사업을 하게 된다. 정보화 시범마을이 조성되면 마을 각 가정마다 초고속 인터넷망이 설치 연결돼 정보화 기반이 갖춰지고, 이를 활용한 마을 홈페이지와 전자 상거래 시스템의 구축 등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정보 이용망이 새로 마련된다. 이에 따라 홈페이지를 통한 마을과 명소 홍보는 물론, 전자 상거래를 이용한 특산물 사이버 판매가 가능하게 돼 생활수준 향상과 더불어 농가 소득을 높이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금당실 마을은 정보화시범마을 뿐 아니라 1백65억여 원이 투자되는 유교문화권개발 사업이 함께 이루어짐으로써 이젠 금당실은 유교 문화와 정보 문화가 공존하는 퓨젼 빌리지로 다시 태어날 전망이다.(醴泉新聞 2002-06-27 12: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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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군, 16일 재정 균형집행 도 평가...최우수상...축하합니다.

 

  예천군 수상(醴泉郡, 地方財政 均衡執行 ‘最優秀賞’ 受賞 : 3年 連續 優秀機關으로 選定되는 記錄 세워) [記事] : 예천군은 2014년 4월 16일 경북도청에서 개최된 2014년도 3월말 지방재정 균형집행 평가 시상식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지방재정 균형집행 분야 3년 연속 최우수기관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군에 따르면 이번평가를 대비해 상반기 균형집행 목표액 1천 202억 원 중 3월말 정부목표 48%를 훌쩍 뛰어 넘는 65.69% 789억원을 집행해 경상북도 최우수상에 선정되는 쾌거를 올린 것이다. 그 동안 이현준 군수를 중심으로 각종 사업별로 대상지를 조기 선정 및 발주, 소규모 주민숙원사업 합동설계반 운영, 균형집행 추진상황실 설치·운영, 그리고 부서별 보고회 개최 등 균형집행에 총력을 기울여왔다. 지방재정 균형집행은 하반기에 치우쳐 집행되던 것을 상ㆍ하반기 예산을 균형 있게 집행해 이월액과 불용액을 최소화함으로써 재정운용의 건전성을 확보함은 물론 서민경제 활성화에 직접적인 효과를 미치는 일자리사업, 서민생활안정사업, SOC사업에 적극 투자하며 경기활성화를 위해 범정부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이다. 예천군 관계자는 “3년 연속 두각을 나타낸 것은 연초부터 집행률 부진사업에 대한 원인분석과 대책마련, 중점관리 대상 사업에 대한 일일 보고체계 등을 운영하는 강한 의지가 이루어 낸 성과이며 서민경제 활성화에도 직접적인 효과를 나타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편, 조만간 발표될 지방재정 균형집행 중앙평가에도 좋은 결과가 예상되며 지역개발을 위한 상사업비와 특별교부세 등 인센티브를 부여받을 것으로 기대된다.(醴泉뉴스 2014년 04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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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준 군수, 15일 공약이행 전국평가 대상...축하합니다.

 

  이현준(李鉉濬 醴泉郡守, 公約履行評價 ‘大賞’ 受賞 : 3個 分野 31個 公約事業 推進完了 및 정상 推進) [記事] : 이현준 예천군수는 2014년 4월 15일 서울 중소기업중앙회관 그랜드홀에서 법률소비자연맹이 주관한 전국지방자치단체장 공약이행평가에서 ‘대상(大賞)’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이는 지난 해 4월 한국매니페스토 실천본부에서 전국 227개 지자체를 대상으로 목표달성 분야, 공약이행 완료분야에서 도내 유일하게 최고등급인 SA등급을 받아 주민과의 공약을 가장 잘 지키는 단체장으로 뽑힌데 이어 다시 한번 행정 소통의 달인임을 입증 받은 것이다. 이현준 군수는 지난 2010년 7월 민선 5기 예천군수로 취임하면서 『3-3-3 희망 프로젝트』 추진을 위해 31개 사업추진을 군민들에게 약속하고 대부분의 사업을 성실히 이행했다. 특히, 2012년 곤충엑스포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였고 한천 고향의 강 사업, 생태하천 조성사업을 추진하는 등 친환경 녹색산업 활성화와 육묘용 상토 지원사업 추진과 유기농 농산물 재배단지를 조성하는 등 농업 경쟁력 강화는 물론 부자농촌 만들기 부문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대상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이번 공약이행 평가는 시민단체인 법률소비자연맹에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여 선정하였으며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는 선거풍토에서 아주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 주는 것으로 주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단체장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천군 관계자는 “31개 공약사업 중 28건은 이미 완료하고 나머지 3건은 정상 추진하고 있으며, 공약은 군민과의 약속인 만큼 성실한 이행으로 더욱 신뢰받는 군정을 추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醴泉뉴스 2014년 04월 16일, 한국일보, 타임뉴스, 신아일보, 뉴스1, 예천인터넷방송, 예천인터넷뉴스, 새경북인터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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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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