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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3618:예천8경 중 금당실전통마을과 송림(6)(祝군청,박상열等)
작성자장병창 @ 2014.04.22 06:14:39

  예천의 자랑(3618) : 예천8경 중 금당실전통마을과 송림(6)(附 예천군, 한국지방자치경영대상 수상...축하합니다/상리초 교사 박상열 등 13명, 21일 장관 표창...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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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당실과 민족운동(金塘室과 民族運動) [論文] : 안동대학교 사학과 김희곤 교수의 논문으로, 안동대학교 안동문화연구소에서 2003년에 발행한 <금당ㆍ맛질의 역사적 위상> 33-43쪽(11쪽 分量)에 수록되어 있다. 목차는, 1) 시작하면서, 2) 의병항쟁, 3) 3.1운동, 4) 1920년대 이후의 민족운동, (1) 군자금 모집 활동, (2) 사회운동과 신간회 : 예천청년회의 사회운동적 성격은 1925년 9월에 예천청년연맹이 결성되면서 나타났다. 사회주의의 영향이 예천에도 미쳐지면서 ‘혁신’, ‘개신’의 바람이 불어닥친 것이다. 1925년 말에 용문청년회는 위원장 연령을 35세로 제한하고 170여 명의 회원을 확보하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금당실에 용문청년회관이 준공되어 문고를 설치하는 등 내실을 다져 나갔다(東亞日報 1926.10.7). 이어서 10월 2일에는 용문청년회 제3회 정기총회가 열려 김모의 사회 아래 김모와 박모 외에도 김모와 박모 등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특히 1926년에 들어 개포프로청년동맹이 결성되면서 반일 민족적 성향의 청년운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개포 출신인 박모가 앞장서고, 금당실의 권모도 주역 가운데 선두를 지키고 있었다(권모와 박모는 사돈관계). 그러한 모습이 1927년 6월에 그가 김모, 남모, 박모, 장모 등과 함께 예천군내 청년대회를 개최하고 신간회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을 결의하고, 지회 결성을 이끌어 내기에 이르렀다. 예천청년연맹이 1927년 3월에 신흥청년회와 결합하면서 예천청년동맹으로 조직이 변경되고, 성향도 더욱 강해졌다. 그러자 용문청년회는 예천청년동맹 용문지부로 변경하였다. 1928년 8월 23일에 제1회 총회가 박모의 사회로 열렸고, 김모를 위원장, 박모 외 8인을 위원으로 각각 선출하였다. 이 회의에서 강령이나 규약 등이 심의되고 회관 수리 문제도 의제로 다루어졌다(東亞日報 1928.8.30). 1927년 6월에 신간회 예천지회가 결성되었다. 안동지회보다 두 달이나 빨리 결성된 것이다. 회장에 안국, 부회장에 이대일이 각각 선임되고, 권원하가 총무를 맡았다. 신간회 예천지회에 간부로서 참가한 인물 가운데 금당실 출신으로는 간사를 맡은 박영진과 맛질 종가의 종손인 박영근이 대표적이다. 당시 권원하는 동아일보 예천지국 기자로도 활약하였다(東亞日報 1928.3.19). 한편 금당실에도 농민운동이 나타났다. 1923년 11월에 안동 풍산에서 풍산소작인회가 결성된 뒤, 그 여파가 주변으로 확산되었다. 특히 예천 지역에 그 영향이 컸다. 하리면에 풍산소작인회 은풍출장소가 개설된 것도 그러한 현상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은풍과 지보농민회가 사회주의 세력 가운데 화요회계였다면, 하금곡농민회와 개포농민회는 서울청년회계였다. 이 가운데 하금곡농민회는 1925년에서 결성되었는데, 본래 노동친목회였던 조직을 일신하여 명칭을 바꾼 것이다. 회원이 100여 명에 이르렀고, 간부로는 권모를 필두로 강모, 유모 등이 주도적으로 활동하였다(東亞日報 1926.10.25).

 

   권모의 농민운동은 1920년대 후반을 거쳐 1930년대에 들어서도 지속되었다. 1930년 2월에도 33일 동안 예천경찰서에 구금되다가 경북경찰부로 호송된 기록도 그러한 정황 가운데 하나이다(東亞日報 1920.3.28). (3) 무명당(無名黨)과 조공재건운동 : 사회주의자들이 1929년에 들면서 점차 좌우합작운동에서 이탈해 나갔다. 1928년 12월에 발표된 코민테른의 ‘12월테제’에 따라 민족 문제를 핵심 과제로 삼고 신간회로 집결했던 대열에서 이탈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12월테제’에서 표명된 일국일당(一國一黨), 즉 한국에 하나의 공산당이라는 원칙이 적용되었다.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 상태였으므로 조선공산당원은 일본공산당원이 되라는 것이고, 만주와 중국 본토 지역에서 활동하던 인물은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게 되었다. 따라서 1차부터 4차까지 결성되고 변천하던 조선공산당이 소멸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다가 1930년에 들면서 조선공산당재건운동이 시작되었다. 안동콤그룹과 김천그룹 및 영덕ㆍ영양그룹 등이 그러한 조직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천에도 조선공산당재건운동이 일어났으니, 바로 1932년 11월에 조직된 무명당이다. 무명당 조직 부서와 담당책을 보면, 지도부에서 서무 한모, 조직 박모, 선전 김모, 자금 황모, 상부그룹에서 언론에 한모, 김모, 실업가에 박모, 강모, 권모, 권모, 통신에 이모, 학교에 이모, 박모, 성모, 이모, 윤모이고, 하부그룹에서 면에 변모, 사방에 박모, 황모, 역에 이모, 황모, 교통에 이모, 심모, 김모 외 1명이었다. 무명당에 참가하여 활동한 금당실 출신은 권모가 단연 대표적이다. 그는 상부그룹 가운데 실업가를 당당하고, 직업그룹에서도 실업을 담당하였다. 판결문에 그의 직업이 음식점으로 기록된 점이나 실업을 담당한 점으로 보아, 당시 그가 음식점을 운영하면서 그 것을 방패막이로 삼아 조공재건운동을 벌인 것으로 짐작된다. 그리고 면 그룹 가운데 용문면을 담당한 인물이 하금곡리 출신이자 권모와 가까운 친적인 권모였다. 무명당의 존재가 일제 경찰에 의해 추적된 뒤에 주역들이 체포되었고, 권모는 1년 6월형을 언도 받고 옥고를 치렀다. 5) 외지에서 독립운동에 참가한 금당실 사람, 6) 마무리이다.

 

  금당실과 석송령(慶北度 農村마을綜合開發事業 公開 審議會) [記事] : 경북도(도지사 김관용)는 2008년도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대상지 농림부 추천을 위해 지역주민, 심의위원 등 7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2007년 11월 27일 도청 제1강당에서 자체심의위원회를 개최한다. 위원회는 지역개발전문가 9명으로 구성되어 2008년도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을 신청한 도내 15개 시․군 22개 권역에서 제출한 예비계획서와 권역위원장이 개발계획 발표를 토대로 심의하여 도내 신청권역들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도내에서 신청한 전 권역을 위원회의 결정사항을 첨부하여 11월 말까지 농림부에 신청한다. 2008년도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대상지 선정은 농림부 심사를 통해 최종 대상지가 결정되는데 농림부에서는 각 시․도에서 신청한 대상마을에 대하여 서류심사를 거쳐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지 선정하고 현장조사 등 예비타당성조사를 거쳐 2008년 3월중에 최종 대상지를 확정할 계획이다.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은 농촌마을의 경관개선, 생활환경정비 및 주민소득기반 확충 등을 통해 살고 싶고, 찾고 싶은 살기 좋은 농촌을 만들어 가는 사업으로 여러 개의 마을을 하나의 권역으로 묶어 권역당 40-70억 원을 5년에 걸쳐 지원하여 마을을 개발하는 사업이다. 2006년까지는 농림부에서 시도별로 사업 물량을 배정해오다가 2007년부터는 지역별 물량 배정 없이 공모방식을 도입하여 전국 신청 권역간 무한경쟁체계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지자체 및 공무원의 추진 역량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의 개발계획 이해와 참여의지 등도 중요한 요소가 됨에 따라 경북도는 권역주민, 지자체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수차례에 걸쳐 교육과 방문 지도를 실시하는 등 역량 강화에 힘써왔다. 이번에 신청한 예비권역들은 옥산서원으로 유명한 경주 세심권역, 국화로 유명한 안동 봉정사권역, 시설하우스 거봉포도로 유명한 경산 사월권역, 돌할매로 유명한 영천 돌할매권역을 비롯해 김천 시루메, 안동 학가산, 영천 은해사, 문경 궁기․생달, 의성 만경촌, 청송 달기, 영덕 옥계, 예천 금당실, 석송령, 봉화 청량산, 울진 삼당, 울릉 태화권역 등 나름대로 권역의 특성과 자원을 대표하고 있다. 특히, 이번에 제출된 대부분의 권역에서는 1년 전부터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선진지 견학, 전문가 초청 교육, 권역 발전 방안을 모색하는 자체회의 개최, 전문가 자문을 받는 등 권역 리더들을 중심으로 대상마을로 선정되기 위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어 전국에서 많은 대상지가 선정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경상북도는 ꡐ08년도 사업대상지로 선정되는 권역에 대하여는 경북도가 추진하고 있는<미래형 농촌마을 재개발사업>을 비롯한 <21C 새농촌마을가꾸기사업>과 연계하여 개발 효과를 극대화시킬 계획이다. 이태암 농수산국장은 이날 회의에서 권역의 발전을 위해서는 대상지 선정만큼이나 주민들 의지가 중요함을 강조하고 ꡒ나보다는 우리권역과 마을을 위해 고민하는 공동의 발전노력만이 사업이 성공할 수 있으며, 소득을 높이고 관광객이 찾아오는 신명나고 활력 있는 21세기형 농촌마을을 주민 스스로가 가꾸어 갈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ꡓ고 당부했다.(황경호 記者 韓國디지털뉴스 2007-11-26 16:11:31)

 

  금당실과 용문사(慶北 醴泉 龍門寺, 金塘室 마을 : 小白山에 안긴 千年古刹…돌리기만 하면 念佛하는 效果 輪藏臺 有名, 映畵․드라마 撮影地 脚光…구불구불 골목길 돌아 나올 땐 길 잃지 마세요) [記事] : 예천은 단술예(醴)와 샘천(泉)이다. 풍요와 자연의 '내음'이 지명에서 바로 우러난다. 예천군청이 발행한 관광가이드 팸플릿을 보면 온통 유적지고 빼어난 풍광이다. 용문사에서부터 산재한 서원과 향교, 그 유명한 회룡포까지. 충효의 고장이다. 임진왜란 당시 병조판서이던 약포 정탁, 철종 때 효자로 이름난 야계 도시복이 대표적이다. 충의 정신은 예천여고 출신인 신궁 김진호로 이어졌다. 예천진호국제양궁장도 그런 정신에 맞닿아 쉬이 지나칠 수 없다. 그러나 늘 그렇듯 아쉬움이 있다. 읍내 초입의 고층 아파트는 예천의 정신과는 담 쌓은 듯 까닭 없이 버티고 있다. 물론 그 아쉬움은 조금만 다리품을 들이면 쉽게 보상받을 수 있다. [금당실 전통마을] : 태조 이성계가 정말 이곳으로 도읍지를 옮겼다면 역사는 어떠했을까. 한양 사람들이 과천 아닌 문경새재에서부터 기어왔을지 모른다. 태조가 도읍지로 삼으려 했을 만큼 금당실(金堂室)은 명당이었던 모양이다. 북으로 백두대간 소백산맥 자락이 둘러쳐져 있고, 남으로 낙동강이 굽이친다. 지금은 많이 떠났지만 함양 박씨 집성촌이었다. 원주 변씨 고택에다 구한말 세도가 양주대감 이유인의 99칸 저택이 있던 곳이다. 마을 서쪽 입구에는 수령이 150년도 넘은 울창한 송림이 조성돼 있다. 북서풍을 막아주는 물리적 역할 뿐 아니라 마을의 품위를 더한다. 360여 가구 900여명이 사는 이곳은 문화재청 주관 아래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의 도읍지로 삼으려 했다는 금당실 마을. 세월의 무게를 담은 담장과 옛 가옥은 금당실의 힘이다. 돌담길은 거의 복원됐고, 군데군데 고택들이 되살아나고 있다. 아직 손길이 닿지 않은 담장과 옛 집은 세월의 풍파가 그대로 얹혀 있다. 골목길이 하도 구불구불해 돌아 나올 때 조심해야 한다. 새우장수가 길을 잃어, 새우 한 사발을 주고 길을 물어 나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보존의 미덕으로 영화․드라마 촬영지로 각광받는다. 박길상 이장(56)은 "촬영하겠다고 시도 때도 없이 온다."며 "가만있어도 가만 둘 것 같지 않지만, 어쨌든 조용한 마을로 남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소백산 용문사] : 용문사(龍門寺)는 그 위치부터 범상치 않다. 거의 반달모양으로 소백산 백두대간 줄기가 절을 감싸 안고 있다. 신라 경문왕(870)때 이 고장 출신 두운 대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이다. 안타깝게도 1985년 대화재로 대장전(大藏殿)만 남기고 절 전체가 거의 소실됐다. 대장전내 윤장대(輪藏臺)가 유명하다. 불경을 넣어두고 돌리는 장치인데, 한자를 모르는 불자들도 이를 돌리면 읽는 것을 대신한다는 뜻이란다. 음력 3월 3일과 9월 9일 두 번 돌린다. 대장전의 건축적 가치도 크다. 맞배지붕을 이었는데 건물 좌우측에 가려진 것이 없다. 구조물이 밖으로 돌출돼 건축학도들의 훌륭한 공부자료가 된다. 대웅전 격인 보광명전은 비로자나불이 주불이다. 맨 위쪽 극락보전 앞에 올라서면 산에 감싸인 절위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서쪽에 성보박물관을 건축 중이다. 화재에 대비하는 목적이 크단다.(박재일 記者 嶺南日報 2006-01-26 08:06:28)

 

  금당실마을(金塘室 整備事業 住民說明會) [記事] : 예천군은 2005년 5월 4일 오후 3시 용문면사무소 2층 회의실에서 김수남 군수, 강무한 군의원, 박재혁 면장, 주민 등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금당실마을 정비사업 주민설명회를 실시했다. 금당실마을 정비사업은 2005년 4월~2006년 4월까지 사업비 26억 원으로 8가구 28동을 고가옥(한옥)으로 정비할 계획으로 있다. 이 사업은 훼손되어가는 담장 및 고가옥의 원형 보존을 통해 소중한 문화유산을 후세에 전승 보존하고 예술인 거주 및 영화마을 구축으로 지역 홍보에 기여, 일반 관람객 및 전통서예체험관과 연계한 민박 및 농가 체험장 등으로 활용해 주민 소득 증대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설명회에서는 주민들에게 사업의 취지와 계획을 설명하고 공사 완료 후 무단 개조를 금지할 것, 민박 또는 농촌체험장 및 각종 촬영장 활용에 협조할 것, 향후 사업 순서를 정해 이주 기간을 최소화하고 순서에 따라 자체 이주 대책을 수립해 줄 것 등에 대해 협조를 부탁했다.(윤현숙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5-05-04 오후 8:37:31)

 

  금당실마을(慶北 醴泉 金塘室마을 - 돌담길 남아있는 勝地) [記事] : 금당실은 한반도의 동남부, 경상북도 북부의 서쪽인 예천군의 북서쪽 5.6k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예로부터 마을을 형성하기 알맞은 지역이라고도 합니다.  전쟁이나 천재지변에도 안심할 수 있는 땅! 흔히 이런 곳을 우리는 승지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 이렇게 경치가 좋거나 지형이 뛰어난 곳 열 군데가 있다고 하며, 그 중 한 곳이 금당실이라 했습니다. 정감록에 의하면 '금당실은 우리나라 십승지의 하나로 병화가 들지 못한다.ꡑ고 전하고 있고, 조선 태조가 도읍지로 정하려고 했던 금당실은 임진왜란 때에도 온전했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마을에는 조선시대의 생활상을 담고 있는 돌담길이 옛 형태 그대로 잘 보존되고 있고 선조들의 손길이 묻어 있는 고택들이 옛 선조들의 숨결을 담고 마을을 지키고 있습니다. 금당실은 조선시대 십승지 중의 하나로 양주대감 이유인의 99칸 저택 터를 비롯한 고가옥, 인근에는 초간 권문해의 유적인 초간 종택과 초간정, 용문사 등의 문화 유적이 많이 있고,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마을을 그대로 담고 있으며 사대부 생활의 재현과 대동운부군옥(보물 제878호), 초간일기(보물 제879호) 등의 사료적 의미를 가진 유교문화자원을 통한 교육의 장으로도 좋은 곳입니다. [마을 곳곳에 문화재] : 금당실 정보화마을의 문화재로는 신라 경문왕 10년(870)에 두운 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인 용문사가 있으며, 이는 한국관광공사에서 지정한 우리 군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입니다. 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소백산 용문사에는 국내 최고를 자랑하는 것이 있습니다. 맞배기와 지붕의 균형미를 보여주는 대장전(보물 145호)은 고려 명종 3년(1173)에 초건한 최고 오래된 목조 건물이며, 회전식 불경 보관대인 국내 유일의 윤장대(보물 684호), 대추나무에 불상을 조각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목불좌상 및 목각탱(보물 989호), 불국사의 것보다 규모가 더 웅장한 사천왕상 일주문이 있습니다. 이 외에도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 '초간일기'를 보관하고 있는 "예천권씨종택"과 초간 권문해 선생이 건립한 "초간정", "반송재고택", "사괴당고택", "금곡서원", "야옹정", "추원재 및 사당", "미산고택", "연곡고택", "춘우재고택" 등의 문화 유적지가 있어 주변 경관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소백산의 선물, 특산물] : 금당실 정보화마을의 특산물인 금당꿀은 소백산 줄기 아늑한 곳, 십승지 중의 제일 고장인 물 맑고 공기 좋은 금당실에서 생산되며, 가격보다는 최고의 꿀, 진짜 꿀을 만들겠다는 자부심 하나로 생산합니다. 예천군수와 양봉학 박사로부터 우수 농산물로 추천받은 지역 명품으로 보건환경연구원 및 양봉협회의 탄소동위원소 검사(설탕분 적출검사)를 거친 제품입니다. 세척고춧가루는 우선은 씹어서 매운 맛과 단 맛을 가진 매콤달콤한 고추를 사용하여 깨끗이 세척하여 고춧가루로 만들므로 안심하고 먹을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금당실 마늘", "휴구상황버섯", "금당실 은행", "금당실 속청", "생로얄제리", "프로폴리스" 등이 있습니다. [금당실 솔내음 가득한 체험행사] : 소백산 줄기 아늑한 곳에 위치한 금당실 마을은 예로부터 살기 좋기로 유명하여 정감록에 수록된 십승지 중의 한 곳입니다. 천년고찰 용문사가 마을을 굽어보고 있고, 조선시대 선조들의 생활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돌담길이 옛이야기를 품고 잘 보존되어 있는 정겨움이 가득한 마을 입니다. 물 맑고 공기 좋은 지역에서 피는 아카시아 꽃에서 부지런한 꿀벌들이 생산한 꿀도 떠 보고, 오로지 벌과 함께 살아오신 벌 아저씨의 꿀 이야기도 들어보고, 봄비 맞고 통통하게 물 오른 고사리도 꺾어 보고, 아카시아 향기 맡으며 산길도 걸어보면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이 아카시아 꽃향기와 금당실 솔내음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금당실 '쑤' 삼림욕장] : 금당실 '쑤'는 장장 2km나 울창하게 뻗어있던 소나무 숲으로 1892년 구한말 뒷산 오미봉에서 금을 잠채하던 러시아 소유 광산회사의 광부 두 사람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조선과 러시아간 외교문제로 비화되었고, 마을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던 상황이었기에 마을주민들은 마을의 공동 재산이었던 아름드리 소나무를 베어 배상금으로 충당하여 마을을 지켰다고 합니다. 그 후 주민들은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사산송계를 결성했으며, 그 후 지금까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성스러운 장소로 아이들의 꿈을 키우는 동산으로 한여름 들일에 지친, 농부들의 땀을 식히는 곳으로 마을 주민과 함께 해오고 있습니다. 잘 가꿔진 마을 숲에서 금당실 사람들과 함께 살아온 숲의 숨결을 느껴 봅시다. 금당실마을 찾아가기 (//geumdangsil.invil.org), 마을정보센터(전자정부본부 서비스정보화팀 국정브리핑 2005.5.17 (화) 14:52)

 

  금당실마을(金塘室村) [마을] : 용문면 상금곡리로, 조선 태조가 도읍지로 정하려 했던 곳이다.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이고,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무덤, 함양 박씨 3인을 모신 금곡서원(金谷書院), 함양 박씨 입향조 박종린(朴從鱗)을 모신 추원재(追遠齋) 및 사당(祠堂 : 民俗資料 第52號), 조선 숙종 때의 도승지 김빈을 보신 반송재고택(伴松齋古宅 : 文化財資料 第262號), 원주 변씨 입향조 변응령(邊應寧)을 모신 사괴당고택(四槐堂古宅 : 文化財資料 第337號), 구한 말 세도가 양주대감 이유인(李裕寅)의 99칸 대저택 터가 있으며, 이 외에도 개량된 고택들이 많은 전통 마을이다. 그리고 용문중학교를 중심으로 500여 m 가량 뻗어있는 100여 년 넘은 소나무와 용문면사무소 앞  300년 된 성황당 느티나무는 주민들의 안식처와 휴식 공간을 제공해 주고 있다.(慶尙北道廳 홈페이지 2002)

 

  금당실마을(道 監査官室 農村奉仕活動) [記事] : 경상북도 감사관실(감사관 이태현) 직원들은 2005년 9월 2일 자매결연마을인 금당실마을(용문면)을 방문, 농촌일손돕기를 실시했다. 이날 도청 감사관실 직원 16명은 오전 10시 용문면 직원들과 함께 구계리 정재성 씨 농가에서 고추따기 봉사활동을 실시하고, 점심시간에는 미리 준비한 비빔밥, 술, 과일 등 음식(90만 원 상당)으로 마을대표자 및 어르신, 지도자 등 90여 명과 함께 친교의 시간을 갖고 인근 마을경로당 4개소에 청소기 1대씩(40만 원)을 선물하고 오후 4시까지 고추따기 봉사활동을 실시한 뒤 돌아갔다. 도 감사관실과 용문면 금당실마을은 2005년 7월 21일 자매결연을 맺었다. 마을 주민들은 공직 생활에 바쁜 공무원들이 자매마을을 찾아 봉사활동을 해 준 것에 고마움을 표시했다.(윤현숙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5-09-03 오전 9:46:13)

 

  금당실마을(金塘室 마을, TBC 테마紀行 撮影) [記事] : TBC(대구방송)에서 매주 목요일 테마기행으로 방영되는 "산찾아 물따라"에 금당실 마을이 방영됩니다. 이 번 테마는 "십승지를 찾아서". 경북지역에 있는 십승지, 예천 용문, 영주 풍기, 봉화 춘양을 촬영하고, 타이틀을 촬영하러 다시 우리 마을로 오셨는데, 이 번 촬영을 위해 서울에서 귀한 기계도 가져오셨답니다. 예천 용문에서는 금당실 문화마을과 용문사, 병암정 등을 촬영했습니다. 방송은 2005년 9월 8일 저녁 7시 05분입니다!! 테마기행을 제작하는 프로듀서는 김승규입니다.(배진숙 記者 인빌뉴스 2005년 9월 15일 (목) 03:29)

 

  금당실마을(第3回 慶尙南道 情報化指導者 大會) [記事] : 2005년 8월 30~31일 1박 2일 간 경상남도 정보화마을(15개 마을) 운영위원장, 운영위원, 마을 주민, 경남도청 관계 공무원, 시군 관계 공무원 후반기 정보화마을 지도자대회를 경북 예천 금당실 커뮤니티 활성화 마을을 방문하여 정보 교류와 활성화 방안에 대한 워크숍을 가졌으며, 이튿날에는 강원도 삼척 너와정보화마을을 방문하여 체험학습 등으로 정보화 마을의 성공 신화 만들기를 위한 열띤 분임토의로 미래 발전 도약에 큰 도움이 되었다.(여숙임 記者 인빌뉴스 2005년 9월 15일 (목) 03:28)

 

  금당실마을(傳統이 살아 숨쉬는 龍門面 金塘室마을) [記事] : 금당실 마을은 용문면 상금곡리 일대의 마을로 '금당', '금곡'으로 불리우며 전통한옥, 돌담길 등 옛 정취가 그대로 보존돼 있어 최근들어 영화 촬영지, 체험마을로 각광받고 있다. 금당곡 혹은 금곡이라는 지명은 임진왜란 때 명 나라 장수가 지나가면서 '달우리재(鷄鳴峴)가 앞에 있고 개우리재(犬谷峴)가 오른쪽에 있으니 중국의 양양 금곡과 지형이 같다고 해 생겼으며 '금당'은 감천 문씨가 이곳을 개척해 사위인 박종린과 변응령이 정착해 지형을 펴니 연화정수형이라 하여 연못을 상징해 이름지었다 한다. 전쟁이나 천재지변에도 안심할 수 있는 '십승지'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으며, 경치가 좋고 지형이 뛰어나 병화가 들지 못하는 곳으로 임진왜란 때 피해를 입지 않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금당실마을에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무덤, 함양 박씨 3인을 모신 금곡서원, 함양박씨 입향조 박종린을 모신 추원재 및 사당(민속자료 제82호), 조선 숙종 때 도승지 김빈을 모신 반송재고택(문화재자료 제262호), 원주 변씨 입향조 변응령을 모신 사괴당고택(문화재자료 337호), 구한말 세도가 양주대감 이유인의 99칸 대저택 터가 있으며 이밖에도 개량된 고택들이 자리하고 있어 전통생활양식을 직접 느낄 수가 있다. 예부터 소나무를 베는 사람은 우물에 빠뜨릴 정도로 소나무를 아끼고 보호해 2km의 울창한 소나무 숲이 우거진 금당실 '쑤'는 송림욕을 체험할 수 있으며 아카시아 벌꿀뜨기, 서예교실, 고가옥 한옥체험, 산나물체험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보물로 가득한 천년고찰 용문사,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을 지은 초간 권문해 선생의 유덕을 기린 초간정과 연계 관광이 가능하며 예천읍내에서 928번 도로를 이용해 용문사 방향으로 차로 10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윤현숙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5-12-30 오전 10:5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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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군, 한국지방자치경영대상 수상...축하합니다.

 

  예천군 수상(醴泉郡, 韓國地方自治經營大賞 綠色環境分野 大賞 受賞 ; 漢川 故鄕의 江, 下水管渠 BTL事業 等 民選5期 親環境 施策 頭角 나타내) [記事] : 예천군(군수 이현준)이 제19회 한국지방자치경영대상 녹색환경분야에서 대상을 수상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번 평가는 재정운영과 창의혁신, 행정서비스, 문화관광, 복지보건, 창조경제, 녹색환경, 인적자원육성 총 8개 분야 전국 200여 지자체를 대상으로 2개월간 부문별 전문심사와 전문가 인터뷰 등 총 3차례의 평가와 최종 심사를 거쳐 수상기관을 선정했다. 예천군은 민선 5기 이현준 예천군수 취임과 함께『녹색성장 미래창조』등 4개 분야를 군정 방침으로 정하고 추진한 각종 군정 시책들이 성과를 나타내면서 녹색환경분야에 전국 최고 우수기관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게 된 것이다. 먼저, 도청이전과 발맞춰 본격적인 친환경 도시기반 구축과 정주여건 향상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한천고향의 강 조성사업’이 전국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 또한, 전국 최초 자원순환형 매립장을 조성해 생활폐기물의 안정적인 처리는 물론 재활용의 기반을 구축했으며 생활오수와 빗물을 분류해 악취, 하수구 역류 등 각종 주민불편사항 해결하기 위해 하수관거정비 임대형민자사업(BTL)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있어 좋은 점수를 받았다. 한국지방자치경영대상은 1996년부터 한국공공자치연구원 주관으로 시상하고 있으며 엄격한 심사를 거쳐 최종 수상기관을 선정하는 상으로 지방자치단체에 주어지는 상 중 최고의 권위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한편, 시상식은 오는 24일 오후 2시에 서울 공군회관에서 개최될 예정이다.(醴泉뉴스 2014년 04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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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리초 교사 박상열 등 13명, 21일 장관 표창...축하합니다.

 

  예천교육지원청(‘2014 醴泉 科學 꿈 잔치’ 開催 : 上里初 박상열 敎師, 敎育功勞 認定 長官表彰 受賞) [記事] : 예천교육지원청(김기한 교육장)은 2014년 4월 21일 예천초등학교 체육관에서 관내 각급 초ㆍ중학교장 등 교육가족 2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빅뱅! 2014 예천 과학 꿈 잔치’를 성황리에 개최하였다. 이날 함께 진행된 ‘제47회 과학의 날’ 기념식에서는 상리초 박상열 교사 외 1명이 교육공로가 인정되어 장관표창을 받았으며, 예천초 이정식 교사 외 1명이 교육감 표창을 받았다. 또한, 예천초 권해승 학생 외 10명의 학생들이 장관 표창을 받는 등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빅뱅! 2014 예천 과학 꿈 잔치’에는 관내 초ㆍ중등 18개교와 곤충연구소, 경도대학교 유아교육과 창작미술동아리, 예천글로컬인재교육원이 함께 동참하여 20여개의 다양한 과학 체험 프로그램 부스를 운영하여 많은 학생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특히 균형잡기의 원리를 이용하여 인형을 만들고 재미있는 놀이를 통해서 물체의 무게중심과 안전성 관계를 이해하는 감천초의 ‘외다리 인형들의 무도회’라는 체험 프로그램은 학생들로부터 많은 인기를 받았다. ‘빅뱅! 2014 예천 과학 꿈 잔치’는 대한민국 미래 창조의 주역으로 성장할 학생들의 과학적 상상력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교육에 관심이 많은 학부모들의 찬사가 이어졌으며, 앞으로 예천 과학의 비상을 기대하고 있다.(醴泉뉴스 2014년 04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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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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