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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3626:예천8경 중 초간정 및 원림(2)
작성자장병창 @ 2014.04.30 06:08:02

  예천의 자랑(3626) : 예천8경 중 초간정 및 원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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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간정(名勝) [記事] : 문화재를 보존, 민족문화를 계승하고 인류문화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법이 바로 문화재보호법이다. 문화재는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 민속자료 등으로 분류되며 크게는 국가지정문화재와 시`도지정문화재, 문화재 자료로 구분된다. 국가지정문화재는 국보` 보물` 중요무형문화재` 사적` 명승`사적 및 명승` 천연기념물` 중요민속자료 등 8개 유형으로 나뉜다. 2007년 말 현재 국가지정문화재는 국보 309건, 보물 1천513건, 사적 475건, 천연기념물 381건, 명승 30건 등 모두 3천84건에 달한다. 국가지정문화재 중 경치가 좋기로 이름난 경승지로서 역사적, 예술적, 경관적 가치가 크며 자연미가 빼어나게 아름답고 고유성, 희귀성, 특수성이 큰 곳을 ꡐ名勝(명승)ꡑ이라 부른다. 문화재청은 2008년 11월 구미 採薇亭(채미정)과 예천 草澗亭(초간정) 園林(원림), 경북 문경 관음리~충북 충주 미륵사 터를 연결하는 옛길인 하늘재 등 5곳을 명승으로 지정 예고했다. 2009년 3월에는 ꡐ명승ꡑ으로 정식 지정된다... 예천군 용문면 원류마을 앞 계류가 굽이쳐 흐르는 암반 위에 세운 초간정은 주변 전통 원림과 어우러져 경관이 빼어나다... 이번에 채미정 등 경북 3곳이 명승에 추가됨으로써 경북지역에는 기존의 울진 불영사계곡, 주왕산계곡, 예천 회룡포, 예천 선몽대, 봉화 청량산, 안동 백운정 및 개호송 숲, 죽령 옛길, 문경토끼비리, 문경새재 등 9곳에서 모두 12곳으로 늘어난다. 전국의 명승 51곳 중 12곳이 경북에 있게 된다. 우리 지방에 경치가 수려한 곳이 많다는 방증이다. 문화재보호법에는 ꡐ문화재의 보존`관리 및 활용은 원형 유지를 기본 원칙으로 한다.ꡑ고 되어 있다. 우리의 자연문화유산을 아끼고 보호하는 것은 우리 지역민들의 몫이다. 경승이 명승이 되느냐, 보잘 것 없는 것이 되느냐도 우리에게 달려 있다.(홍석봉 中部本部長 每日新聞 2008-12-20)

 

  초간정( '醴泉 草澗亭 園林‘ 等 5件 名勝 指定) [記事] : 문화재청(청장 이건무)은 2008년 12월 26일, 문화재청의 명승 지정 자원조사에서 추천된 대상지와 시․도에서 지정 신청한 대상지 중에서 관계전문가 현지조사 및 문화재위원회 검토 등을 거쳐「충주 계립령로 하늘재」, 「영월 청령포」, 「예천 초간정 원림」, 「구미 채미정」, 「거창 수승대」를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으로 지정하였다... 명승 제51호 「예천 초간정 원림(醴泉 草澗亭 園林)」은 예천군 용문면 원류마을 앞 계류가 굽이쳐 흐르는 암반 위에 세워진 초간정과 주변 자연 경관이 하나의 아름다운 전통원림 경관을 형성하고 있는 곳으로, 자연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선조들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을 보여주며 바위를 휘돌아 흐르는 계류가 시원한 운치를 자아내고 주변 송림 및 바위와 어우러져 경관적 가치가 큰 명승지이다. 초간정(草澗亭)은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 대동운부군옥 > 을 편찬한 조선 선조 때 학자인 초간 권문해(1534˜1591)가 1582년 지은 정자로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광해군 4년(1612) 재건했다가 1636년 병자호란 때 다시 붕괴된 것을 권문해의 현손인 권봉의가 세운 것으로 현재 문화재자료 제143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번에 지정하게 된 충주 계립령로 하늘재 등 5개소는 옛길, 동천, 원림 등 다양한 분야의 명승 문화재로 문화재 특성에 따라 원형 복원 및 보존․관리 사업을 추진하게 될 예정이며, 향후 지역문화의 구심점으로 활용되길 기대해 본다. 출처:문화재청(뉴스와이어 2008.12.26 09:53)

 

  초간정(우리나라 첫 百科事典의 産室, 草澗亭) [記事] : 경북 예천군 용문면 개울가에 자리한 초간정이란 작은 정자가 2008년 12월 26일 국가 명승지(51호)로 지정됐다. 초간정은 국내 여행에 어지간한 조예가 있는 마니아에게도 생소한 이름이다. 자료를 뒤져도 ꡐ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ꡐ대동운부군해ꡑ를 집필한 권문해가 세운 정자ꡑ 정도의 설명이 전부다. 이 책은 단군 이래 선조 때까지 역사․인문․지리 등을 총망라, 총 20권 20책으로 구성된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제878호)로 지정됐다. 조선 선조 때 만들었으니 400년을 넘겼다. 이 역작의 주인공인 권문해는 어떤 사람일까. 그리고 이 정자를 왜 지었을까. 모든 것이 궁금했다. 초간정을 이해하려면 이를 세웠던 권문해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조선 선조 때 별시문과 병과에 급제, 관찰사․좌부승지 등을 지낸 학자다. 권씨의 본은 안동과 예천 두 개 뿐이다. 권문해는 조선시대 세도를 과시했던 안동 권씨가 아니다. 안동 권씨에 비해 세가 훨씬 적었던 예천 권씨다. 이 때문에 퇴계 이황에 사사했고, 8년 후배 서애 유성룡 등과 교분이 깊었을 만큼 인품과 학문의 조예가 깊었으나 소위 ꡐ연줄ꡑ이 없어 입신출세에는 한계가 있었다. 유성룡이 판서를 지내며 ꡐ잘 나갈 때ꡑ 자신은 좌부승지에 그쳤으니 오죽했을까. 이를 절감한 그는 고향 예천으로 낙향을 결심한다. 이 때 찾은 곳이 종가가 있는 용문면 죽림리. 이곳에서 그는 1334년 중국의 음시부가 지은 백과사전 ꡐ운부군옥ꡑ을 읽고 또 읽었다.  여기서 힌트를 얻은 그는 한국의 백과사전 편찬을 결심한다. 그리고 역사․인문․지리 외에 국명․성씨․인명․효자․열녀․수령․신선․나무․금수 등으로 나눠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을 완성했다. 낙향 10년만이다. 필생의 역작을 탈고한 권문해는 기력이 다한 탓인지 2년 만에 세상을 뜨고 만다. 향년 58세였다. 초간은 권문해의 호다. 풀(草)과 산골의 물(澗)이란 뜻이다. 초간정은 권문해가 낙향 3년 후 지은 정자다. 예천권씨종택에서 10리도 떨어지지 않은 조용한 곳이다. 그렇다고 흔히 볼 수 있는 정자처럼 높은 곳에 ꡐ군림ꡑ하고 앉아 세상을 내려다보는 곳도 아니다. 오직 정자 바로 아래 개울만 시야에 들어올 뿐이다. 지금은 바로 옆에 도로가 뚫려 소음이 심하지만 당시에는 물소리․새소리 외엔 달리 들을 만한 소음은 없었을 것이다. 책을 읽고 작품을 집필하는데 더없이 좋은 조건이다. 주차장에서 내려다보면 위치가 절묘하다. 금곡천이라 불리는 작은 개울이 큰 바위를 만나 ꡐᄀꡑ자로 휘돌아가는 모퉁이 작은 절벽 위에 아담하게 서 있는 것이다. 절벽 위에 돌을 쌓아 축대를 만들고, 그 위에 정자를 지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정자는 주변의 아름드리 소나무숲과 어울려 멋진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초간정의 원래 이름은 초간정사. 초간이 학문을 가르치고 정신을 수양하는 집이란 의미다. 깊은 뜻을 가진 건물은 그러나 이후 여러 차례 수난을 당한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에서 발견된 대동운부군옥을 불사른 왜군은 초간정마저 불태웠던 것이다. 광해군 때 다시 세웠으나 인조 14년(1636년) 또다시 화마에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지금의 건물은 초간의 8대손이 1870년 중창한 것이다.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던 지난 주말. 정자에 앉아 안빈낙도는 아니더라도 초간의 세계를 좇아보려 했으나 허사였다. 절벽을 기어오를 수 없으니 사주문을 통해 들어가야 하는데 굳게 잠겨 있었던 탓이다. 하지만 밖에서 바라보는 멋진 자태만으로도 초간에게 한 걸음 다가설 수 있는 듯했다.(박상언 記者 日刊스포츠 2009.01.13 10:52)

 

  초간정 [記事] : 十勝地 & 九曲 카페/ 초간정(草澗亭) -예천/ 글쓴이: mt주왕/ 2009.02.23 01:29/ 경북 예천군 용문면 개울가에 자리한 초간정이란 작은 정자가 2008년 12월 26일 국가 명승지(51호)로 지정됐다. 초간정은 국내 여행에 어지간한 조예가 있는 마니아에게도 생소한 이름이다. 자료를 뒤져도 ꡐ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ꡐ대동운부군옥ꡑ을 집필한 권문해가 세운 정자ꡑ 정도의 설명이 전부다. 이 책은 단군 이래 선조 때까지 역사․인문․지리 등을 총망라, 총 20권 20책으로 구성된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제878호)로 지정됐다. 조선 선조 때 만들었으니 400년을 넘겼다. 이 역작의 주인공인 권문해는 어떤 사람일까. 그리고 이 정자를 왜 지었을까. 모든 것이 궁금했다. 초간정을 이해하려면 이를 세웠던 권문해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조선 선조 때 별시문과 병과에 합격, 관찰사․좌부승지 등을 지낸 학자다. 권씨의 본은 안동과 예천 두 개뿐이다. 권문해는 조선시대 세도를 과시했던 안동 권씨가 아니다. 안동 권씨에 비해 세가 훨씬 적었던 예천 권씨다. 이 때문에 퇴계 이황에 사사했고, 8년 후배 서애 유성룡 등과 교분이 깊었을 만큼 인품과 학문의 조예가 깊었으나 소위 ꡐ연줄ꡑ이 없어 입신출세에는 한계가 있었다. 유성룡이 판서를 지내며 ꡐ잘 나갈 때ꡑ 자신은 좌부승지에 그쳤으니 오죽했을까. 이를 절감한 그는 고향 예천으로 낙향을 결심한다. 이 때 찾은 곳이 종가가 있는 용문면 죽림리. 이곳에서 그는 1334년 중국의 음시부가 지은 백과사전 ꡐ운부군옥ꡑ을 읽고 또 읽었다. 여기서 힌트를 얻은 그는 한국의 백과사전 편찬을 결심한다. 그리고 역사․인문․지리 외에 국명․성씨․인명․효자․열녀․수령․신선․나무․금수 등으로 나눠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을 완성했다. 낙향 10년만이다. 필생의 역작을 탈고한 권문해는 기력이 다한 탓인지 2년 만에 세상을 뜨고 만다. 향년 58세였다. 초간은 권문해의 호다. 풀(草)과 산골의 물(澗)이란 뜻이다. 초간정은 권문해가 낙향 3년 후 지은 정자다. 예천권씨종택에서 10리도 떨어지지 않은 조용한 곳이다. 그렇다고 흔히 볼 수 있는 정자처럼 높은 곳에 ꡐ군림ꡑ하고 앉아 세상을 내려다보는 곳도 아니다. 오직 정자 바로 아래 개울만 시야에 들어올 뿐이다. 지금은 바로 옆에 도로가 뚫려 소음이 심하지만 당시에는 물소리․새소리 외엔 달리 들을 만한 소음은 없었을 것이다. 책을 읽고 작품을 집필하는데 더없이 좋은 조건이다. 주차장에서 내려다보면 위치가 절묘하다. 금곡천이라 불리는 작은 개울이 큰 바위를 만나 ꡐᄀꡑ자로 휘돌아가는 모퉁이 작은 절벽 위에 아담하게 서 있는 것이다. 절벽 위에 돌을 쌓아 축대를 만들고, 그 위에 정자를 지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정자는 주변의 아름드리 소나무숲과 어울려 멋진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초간정의 원래 이름은 초간정사. 초간이 학문을 가르치고 정신을 수양하는 집이란 의미다. 깊은 뜻을 가진 건물은 그러나 이후 여러 차례 수난을 당한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에서 발견된 대동운부군옥을 불사른 왜군은 초간정마저 불태웠던 것이다. 광해군 때 다시 세웠으나 인조 14년(1636년) 또다시 화마에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지금의 건물은 초간의 8대손이 1870년 중창한 것이다.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던 지난 주말. 정자에 앉아 안빈낙도는 아니더라도 초간의 세계를 좇아보려 했으나 허사였다. 절벽을 기어오를 수 없으니 사주문을 통해 들어가야 하는데 굳게 잠겨 있었던 탓이다. 하지만 밖에서 바라보는 멋진 자태만으로도 초간에게 한 걸음 다가설 수 있는 듯했다.(daum 2009)

 

  초간정(자료=예천군) : 예천신문 | 2010.04.03. 11:19/ 초간정(문화재자료 제143호 1985.08.05 지정)/ 소재지 :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 350/ 소유자 : 권영기/ 자세한 설명 : 이 건물은 『대동운부군옥, 大東韻府群玉』을 저술한 초간 권문해(權文海 1534~1591)가 세우고 심신을 수양하던 곳이다. 조선 선조(宣祖) 15년(1582)에 처음 지어진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중건하였으나, 인조(仁祖) 14년(1636)에 다시 불타는 등 수난을 거듭했는데, 지금의 건물은 초간의 현손이 1870년 중창한 것으로 기암괴석과 주변의 경관이 조화를 이루어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정자채는 사주문을 통하여 들어가며 뒤쪽과 오른쪽은 절벽을 이루고 있다. 자연기단 위에 주초를 놓고 네모기둥을 세운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집이다. 정면 3칸 중 앞면의 좌측 2칸은 온돌방을 배치하고 나머지 4칸은 통간의 대청으로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측면은 사면으로 난간을 설치해 두었다.(daum 2010)

 

  초간정 : 용문면 `초간정'(자료=예천군) | 가볼만한 곳/ 예천신문 | 2010.04.02. 15:21/ 초간정/ 소재지 : 용문면 죽림리 166/ 시설규모 : 정자 1, 기타 2, 주차장/ 자세한 소개 : 초간정은 울창한 수림과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있는 명승지로 조선 선조 15년(1582)에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의 저자 초간 권문해 선생(1534-1591)이 건립하였으며, 지금의 건물은 그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현손이 세웠다. 초간정은 흐르는 냇물과 바위 위에 떠 있는 듯한 자태가 아름다우며 민박도 가능하다./ 교통이용안내 : 예천읍에서 시내버스로 15km, 1일 9회 운행 소요시간 20분/ 연락처 : - 초간정(권영일), - 용문면사무소(daum 2010)

 

  초간정(慶北 醴泉 ‘草澗亭' : 풀내음과 물소리가 어우러진 神仙의 空間) [記事] : 퇴계 선생 문하생인 草澗公의 별서 정원/ 선비들의 청아한 정신세계 오롯이 간직/ 김종배 예천문화원장/ 경북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동의 울창한 송림(松林)을 지나 서북쪽 용문사로 가는 길목 맑은 냇물이 아름답게 휘감은 지점에 조용하고 아담한 草澗亭(초간정)이 있다. 축대를 쌓아 절벽 위에 세워진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이 정자는 주변의 울창한 송림과 어우러져 멋진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이 골짜기는 과거길 당나귀의 숨소리와 솔새 가냘픈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옹기종기 모여 앉은 바위사이를 감도는 해맑은 물빛이 봄, 여름, 가을, 겨울 4계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울창한 송림 사이에 옥류와 함께 절경을 이뤄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휴식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초간정은 퇴계 선생의 문하생으로 승정원 좌부승지 등을 지낸 초간 권문해가 선조 15년(1582) 49세 때 지은 정사(精舍)로 이곳에서 심신을 수양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광해군 4년(1612)에 재건했으나 병자호란 때 다시 불탔고, 고종 7년(1870) 권문해의 현손인 권봉의가 다시 세웠다. 현재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143호로 지정되어 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병화를 겪고 있었던 어느 날 草澗精舍(초간정사)의 편액을 소(沼)에서 5색 무지개가 영롱하여 종손이 파보았더니 고스란히 보존돼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초간정의 '초간(草澗)'은 당나라 시인 위응물이 읊은 '?州西澗(저주서간)'의 "나 홀로 계류가에 자라나는 우거진 풀을 사랑하노니(獨?幽草澗邊生)“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풀은 하잘 것 없는 식물로 비칠 수 있으나 봄이면 싹을 틔우고, 여름에는 꽃과 잎을 피우며, 가을에 열매를 맺고, 겨울에 씨앗을 갈무리하는 천지자연의 순행 원리를 한 번도 거스른 적이 없다. 옛 선비들이 풀에서 자연의 섭리를 찾아냈던 것이다. 초간정에서 바라보는 계곡물은 소소한 것 같지만, 거기에도 우주의 원리가 숨어있다. 옛 성현들은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계류가 고인 것은 맑아서 요동하지 않고 더러움을 용납하여 받아들이는 아량이 있으며, 또한 나쁜 것을 흘려버려서 머물러 두지 않고 만물을 이롭게 하기를 무궁하게 하는 것을 보면 인간의 도리 또한 이에 있을 것이다." 풀이나 계류를 보면 수시로 변하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그 속에 숨은 보이지 않는 불변의 이치를 발견할 수 있다. 초간정에는 한 포기의 풀, 한 줄기의 계류도 관조의 눈으로 바라보려고 했던, 당시 선비들의 청아한 정신세계가 담겨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머리를 숙이게 한다.(新亞日報 2010년 09월 05일 (일) 17:18:51)

 

  초간정(祖上의 智慧와 슬기가 돋보이는 草澗亭) [記事] : 한국의 정자건축은 그 위치나 건축의 동기, 이를 즐기던 사람들의 심성 등이 어우러져 저마다의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43호 초간정(草澗亭)은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 원류마을 앞에 위치해 있다. 원류마을은 `금당실 마을`로 더 잘 알려진 곳으로 이곳에서 용문사로 들어가는 길목에 초간정이 있다. 초간정은 우리나라 최초의 대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을 편찬한 초간 권문해(草澗, 權文海 1534~1591)가 1582년에 건립한 정자이다. 현재의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1612년에 재건하고, 병자호란 때 소실되어 다시 세운 것을 그 후 1870년에 중수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초간정으로 가는 길목에는 주변의 울창한 수림과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초간은 만석꾼 부자가 나는 자리와 당대의 학자가 날 자리를 놓고 비교하다가 선인농학형(仙人弄鶴形)이라는 이곳에 터를 잡았다고 전한다. 물이 단층면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폭포라고 한다면, 초간정을 감사고 흐르는 작은 물길 속에 바위를 타고 흘러내리는 물의 급한 흐름을 폭포라고 할 수 있을까? 높이는 1미터 남짓 되고, 물소리 또한 그리 높지도 않다. 오히려 부드러운 물소리라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또한 정자 아래는 수직 절벽 대신 큰 바위들이 어울려 정자를 받치고 있는 것이 전부이다. 조선시대 정자건축이 그러하듯이 초간정 또한 시내가 휘감고 돌아 흐르는 경관 좋은 암반 위에 자리 잡은 팔작기와집으로 자연기단위에 주초를 놓고 그 위에 네모기둥을 세운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배면의 좌측 2칸에는 온돌방을 배치하고 시내물이 돌아 흐르는 쪽의 4칸은 통칸으로 우물마루를 깔고 계자난간을 돌려 풍치를 한층 돋우고 있다. 북쪽 처마 밑에 `草澗精舍(초간정사)`란 현판이 걸려 있다. 필자는 초간정 정자마루 양쪽에 설치된 판자벽이 실내환경조절적인 측면에서 큰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정자의 동쪽은 물이 휘돌아나가는 곳으로, 반달형상의 소와 그 건너편을 막고 서 있는 병풍바위가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밋밋하게 흘러내리던 시냇물이 몇 층의 커다란 바위 사이로 소리치며 흘러내리는 곳이기도 하다. 만약 그곳에 판자벽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면, 소리치며 휘돌아 나가는 물길이 만들어낸 소와 절벽바위에 온종일 시선이 사로잡히고 말 것이다. 자연이 만들어낸 그것은 여가를 즐기기엔 좋을지는 몰라도 학자가 공부하기엔 부적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책 읽는 이에게는 판자벽의 차단이 나름의 숨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판자벽 하나로 공부와 휴식 사이를 넘나들게 했던 조상들의 숨은 지혜와 슬기가 돋보인다. 문득 `한국의 정자건축` 특집 다큐멘터리 촬영 때 환희 비추는 보름달아래 초간정 마루에 서서 대금을 길게 불던 기억이 새롭다.(최영식의 文化財 散策, 영남이공대 교수,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慶北每日新聞 2011-10-19 오후 9:19)

 

  초간정과 예천권씨고택(김영택의 펜畵로 본 韓國(43) : 草澗亭과 醴泉 權氏 古宅) [記事] : 조선시대에 백과사전이 있었을까요? 있었습니다. 조선 최초의 백과사전은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이라는 책으로 선조 22년(1589)에 초간(草澗) 권문해(權文海․1534~1591)가 편찬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역사, 지리, 문학, 예술, 풍속, 인물에 산 이름, 꽃 이름, 동물 이름 등을 열거한 것입니다. 한자의 운(韻) 107자로 순서를 삼았기에 ꡐ운부군옥ꡑ이라 하였지요. 삼국사기, 계원필경 등 한국서적 176종에 사기, 한서 등 중국서적 15종을 더한 총 191종의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총 20권 20책을 만든 것입니다. 출판사도 아닌 개인이 영리 목적 없이 학자적 열정으로 이룩한 대단한 성과물로 보물 제878호입니다. 초간 선생이 남긴 초간일기(草澗日記)도 보물 제879호입니다. 선조 13년(1580)에서 선조 24년(1591)까지의 일상사와 국가의 크고 작은 일에 대한 기록이 담겨있습니다. 많은 자료들이 불에 타고 없어진 임진왜란 이전의 역사적 자료를 보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초간 선생의 아들인 죽소(竹所) 권별(權鼈․1589~1671)도 국내 최초의 인물사전인 해동잡록(海東雜錄)과 죽소일기(竹所日記)를 남겼습니다. 부전자전이라고 대단한 아버지에 대단한 아들입니다. 학문이 뛰어난 학자들이 높은 안목으로 훌륭한 정자를 남긴 경우가 많습니다. 초간 선생이 지은 초간정(草澗亭)이 무척 아름답다고 하기에 벼르고 별러 취재를 가보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보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고택은 보수가 끝날 무렵이라 사진이라도 찍을 수 있었으나 초간정은 비계를 세우고 장막까지 둘러쳐놓아 취재가 도저히 불가능하였습니다. 그래도 취재 대상을 바꾸기는 싫더군요. 초간정 주변의 풍광이 펜화가를 매혹시켰거든요. 초간 선생의 종손이 제공한 겨울사진 바탕에 새로 찍은 자료 사진을 이용하여 여름 풍경을 담은 펜화를 만들었습니다. 힘들었던 것은 오전 11시 경에 찍은 겨울사진의 명암을 오후 4~5시 경의 명암으로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물 위의 기암괴석이 제대로 표현되어 초간정의 멋이 120% 살아났으니 고생한 보람이 있네요. 펜화의 장점이기도 하고요. 초간정은 소백산에서 흘러내리는 금곡천이 기암괴석 사이에서 깊은 웅덩이를 이루는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정자 앞 계곡은 나무 그늘로 어둑한 것이 심산유곡에 온 듯합니다. 이만한 정자터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이런 아름다움에 반했기에 집에서 5리나 떨어진 곳에 초옥을 마련하고 학문의 장소로 삼았던 게지요. 선조 15년(1582)에 초가로 짓고ꡐ초간정사ꡑ라 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중건합니다. 그러나 병자호란에 다시 불에 탑니다. 지금의 건물은 1870년에 다시 지은 것입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마루 구석에 2칸짜리 온돌방을 들였습니다. 전면은 개방하였으나 좌우측에는 나무판자를 끼워 넣은 골판문을 달았습니다. 온돌방에도 골판문을 달았습니다. 초간정은 밖에서 바라보아도 아름답지만 마루에 앉아 계곡을 내려다보는 풍류도 일품입니다. 자연과 하나가 된다는 것이 이런 것이지 싶습니다. 일본인이나 중국인은 집안에 연못을 파고 인공 섬을 만든 위에 예쁜 다리를 놓고 기화요초를 심어 인공미가 넘치는 정원을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인위적인 아름다움을 체질적으로 싫어합니다. 자연을 자연 그대로 즐기는 것이 최상의 삶이 아닙니까? 요사이 일본식 건축방식을 모방해놓고는 선(禪)의 일본식 발음인ꡐ젠ꡑ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래 놓고는 한술 더 떠서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현대화하였다고 우기는 경우도 있으니 사기도 그런 사기가 따로 없지요. 초간 선생의 고택을ꡐ예천 권씨 종택ꡑ이라고 부릅니다. 초간 선생의 할아버지가 선조 22년(1589)에 지은 집입니다. 사랑채가 걸작인데 독립된 형태를 취하고 있어ꡐ별당ꡑ이라고도 부릅니다. 왼쪽에 온돌방 2개를 붙여놓고 오른쪽으로 6칸 넓이의 마루를 두었습니다. ꡐ육간대청ꡑ이란 바로 이런 넓이의 마루를 말하는 것입니다. 마루와 방 주위에 쪽마루를 덧대고 난간을 둘러 다락집 모양이 되었습니다. 기단이 높직하여 누대처럼 멋이 있습니다. 대청 앞은 전부 개방하였고 옆면과 뒷면은 골판문을 달았습니다. 천장을 올려다보면 상당히 공을 들여 꾸민 모양이 눈에 들어옵니다. 조선 초기의 우수한 건물로 보존 상태가 좋아 보물 제45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종택은 보수공사가 끝마무리 단계였습니다. 새 목재로 갈아 끼운 기둥과 서까래의 밝은 나무 색이 오랜 세월에 퇴색한 목재와 뒤섞여 눈에 거슬려 보였습니다. 그런데 기술자가 칠을 하니 감쪽같이 고색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황토와 먹물에 철을 산화시켜 만든 석간주를 아크릴 에멀션에 탄 도료인데 나무를 보호하는 기능도 한답니다. ꡐᄆꡑ자 안채도 중요민속자료 제201호인데 초간 선생의 13대 종손 내외가 살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집도 사람이 살지 않으면 생명력을 잃고 쉬 망가진다는데, 고택에는 사람 냄새가 배어있고 윤기가 돌아 보입니다. 종부의 음식 솜씨가 좋아서 육류를 못 먹는 펜화가에 맞추어 채식 국수를 처음 만들었다는데 그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권씨 종택이나 초간정 만으로는 답사 일정이 남는다는 분은 초간정에서 가까운 용문사를 찾아보세요. 용문사는 신라 때 창건한 고찰입니다. 용문사 대장전의 목각탱과 윤장대(輪藏臺)만 보셔도 답사의 내용이 알차게 됩니다. 경전을 넣은 8각 구조물인 윤장대는 국내 단 하나 뿐인 희귀한 문화재로, 돌리는 것만으로 큰 공덕이 있다는 예불 도구입니다. 솜씨 좋은 소목장이 정성을 다해 만든 윤장대의 8면에는 아름다운 꽃살 장식이 베풀어진 문이 있어 8장의 그림엽서를 보는 듯합니다. 대장전은 보물 제145호이며, 윤장대는 보물 제684호이고, 목각탱은 보물 제989호입니다.(김영택 펜畵家 週刊朝鮮 2005년 8월 18일 (목) 13:52)

 

  초간정 기둥 도끼 자국 [傳說] : 용문면 죽림리 초간정 기둥에 있는 도끼 자국으로, 옛날 어느 선비가 이곳에서 과거 준비를 하다가 초간정 난간을 백 바퀴 돌면 과거에 급제한다는 전설에 따라 난관을 돌다가 정자 아래의 소에 빠져 죽었는데, 남편을 잃은 부인이 원통하여 기둥을 도끼로 찍어 흠집을 냈다고 전해오고 있으며, 지금도 그 자국을 볼 수 있다. 선비가 빠져 죽은 그 소의 깊이는 명주꾸리 1개를 풀 정도로 대단히 깊었다고는 하나, 지금은 많이 메워져 있다. 고증 : 예천군향토문화연구원 장병창(경상북도 홈페이지 2000.7.18, //etmdb.provin.kyongbu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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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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