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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3627:예천8경 중 초간정 및 원림(3)(附예천방문1,112)
작성자장병창 @ 2014.05.01 06:04:36

  예천의 자랑(3627) : 예천8경 중 초간정 및 원림(3)(附 예천방문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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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간정사(草澗精舍) [亭子] : 용문면 죽림리에 있는 정자로, 문화재자료(文化財資料) 제143호(1985.8.5 指定)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八作)지붕인데, 1582년(선조15)에 조성하였다. 이는 용문면 원류리 마을 앞 울창한 수림(樹林)과 기암괴석(奇岩怪石)이 절경을 이루고 있는 경승지(景勝地)에 우뚝 서 있다. 자연암석의 기단 위에 선 이 정자는 권문해(1534-1591)가 49세 때 정사(精舍)로 초건(初建) 한 것인데, 임진왜란(1592) 때 불타고 없어졌던 것을 1612년(광해군 4)에 재건했다가 병자호란(1636)의 와중(渦中)에 다시 붕괴되었다 한다. 남야 박손경(南野朴孫慶)이 찬한 중수기문(重修記文)에 따르면 현재의 건물은 권문해의 유덕(遺德)을 기리기 위해 그의 현손이 세웠다는데 당시는 석조헌(夕조軒), 화수헌(花樹軒), 백승각 (百承閣)을 함께 세웠으나 현판과 정자만이 남아 있다. 평면 구성은 자연 기단 위에 방주(方柱)를 세운 것인데, 앞면의 좌측 2칸은 온돌방을 배치하고 나머지 4칸은 통간의 대청으로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측배면은 단애(斷崖)를 이루어서 4면으로 난간을 설치해 두었다.

 

  ① 작정자(作庭者)의 자연관 : 권문해는 정통 성리학(性理學)을 이어받은 유학자로서 조선조 선비들의 공통된 생활 의식을 좇아 퇴관(退官)하여 향리에 내려와 경승지에 정사(精舍)를 짓고 강학(講學)과 집필에 힘쓰며 여생을 보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초간 문집(草澗文集)>에는 여지의 지방 선비들과 같은 풍류시(風流詩)나 위락적 심경(慰樂的心境)을 읊은 시문(詩文)을 찾아볼 수 없다. 초간(草澗)이라는 이름은 당시의 "시냇가에 자란 그윽한 풀포기가 홀로 애처롭다(獨燐幽草澗邊生)"라는 구절에서 "초간"의 두 글자를 따왔으며, 주렴계(周濂溪)가 말한 바 "수면(水面)에 이는 잔잔한 물결의 흔들림"을 이 곳에서 즐기려 하였다고 <초간정사 사적기>에 기록되어 있다. 정자의 명칭은 최초에 정사(精舍)로 불리었으므로 현재 이해되고 있듯이 풍류를 즐기기 위한 별섭정자이기보다 강학(講學)과 집필(執筆)을 위한 장소로 이해되어야 한다. 실제로 권문해는 향리인 죽림리에 기거하면서 이곳을 찾아와 <대동운부군옥> 전 20권을 집필하였고, 그의 아들 죽소 권별(竹所權鼈) 또한 이 곳에서 <해동잡록> 전 14권을 집필하였다.

 

  ② 정원(庭園)의 입지와 공간 구성 : 이 정원은 본가(本家)가 있는 죽림동에서 서북쪽으로 약 5리 떨어진 계곡에 위치한다. 죽림동의 종가(宗家)는 사랑채가 보물 제457호로 지정되어 있는 사적(史蹟)인데, 종가의 입지는 왼쪽에 백마산과 오른 쪽에 아미산으로 둘러싸인 대표적인 풍수 길지(風水吉地)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권문해는 죽림동 향리에 머물며 경승지를 찾아 매일 속칭 북두루미산의 산자락을 따라 오가며(竹林-가목이-남티-사시나무골-초간정사) 산책과 명상에 잠겼던 것이다. 이 정원은 본시 정사이었으므로 현재 살림집으로 쓰이고 있는 건물이 광영대(光影臺)라는 현판이 걸린 강학의 장소이었고, 마루 끝에 하인이 기거하는 살림방이 있었으며, 정자 건물 바깥에 서고(書庫)인 백승각(百承閣)의 건물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 정원의 구성은 광영대의 벽체를 경계로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이 엄밀하게 구분이 있어서 정자에는 위주(圍主)와 각별한 친분이 아니면 출입할 수 없는 신성한 곳으로 인식되었고, 며칠씩 기거하거나 교유 인물의 접대를 위하여 하인의 살림집이 부속되어 있었던 것이다.

 

  초간정 원림 : 예천 초간정 원림(자료=예천군) | 예천신문 | 2010.04.03. 11:20/ 예천 초간정 원림(명승 제51호 2008.12.26지정)/ 소재지 :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 350외 2필/ 소유자 : 권영기 외/ 자세한 설명 : "초간정 원림"은 용문면 원류마을 앞 계류가 굽이쳐 흐르는 암반 위에 세워진 초간정과 주변 자연 경관이 하나의 아름다운 전통원림 경관을 형성하고 있는 곳으로, 선조들의 무위자연사상을 보여주며, 바위를 휘돌아 흐르는 계류가 시원한 운치를 자아내고 주변 송림 및 바위가 어우러져 경관적 가치가 매우 크다. 특히 초간정은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대동운부군옥’을 저술한 조선 선조 때 학자인 초간 권문해(1534∼1591)가 1582년 지은 정자로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광해군 4년(1612) 재건했다가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 때 다시 붕괴된 것을 권문해의 현손이 세운 것으로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 기와집이다.(daum 2010)

 

  초간정 : 초간정(草澗亭) 기둥의 도끼 자국, ㅇ 위치 : 용문면 죽림리 초간정, ㅇ 내용 : 초간정(草澗亭 - 문화재자료 제143호)은 용문면 원류마을 앞 울창한 수림(樹林)과 기암괴석(奇巖怪石)이 절경을 이루고 있는 경승지(景勝地)에 우뚝 서있는 정사(亭舍)로서 1582년(선조 15) 초간 권문해(權文海, 1534~1591)가 건립하였다. 초간선생(草澗先生)은 우리나라 최초의 대백과사전(大百科辭典)인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 보물 제878호)>을 편찬한 퇴계 문하(退溪門下)의 대학자이다. 전설1 : 옛날 어느 선비가 과거(科擧) 준비를 하다가 초간정 난관을 백 바퀴 돌면 과거에 급제한다는 전설에 따라 난관을 돌다가 정자 밑 소(沼)에 빠져 죽었는데 남편을 잃은 부인이 원통하여 기둥을 도끼로 찍어 흠집을 냈다고 전해오고 있으며 지금도 그 자국을 볼 수 있다. 선비가 빠져 죽은 그 소(沼)의 깊이가 당시 명주꾸리 1개를 펴도 모자랄 정도로 대단히 깊었다고 하나 지금은 많이 메워져 있다. 전설2 : 1864년경 용문면 죽림 대소의 예천권씨(醴泉 權氏)들이 정자 주위를 거꾸로 100바퀴 도는 자에게 정자(亭子)를 주겠다고 하자 어느 초립동이 99바퀴를 돌고 나머지 1바퀴를 돌다가 낭떠러지에 떨어져 익사(溺死)하자, 그 어머니가 도끼로 찍었다. 전설3 : 옥매라는 기생(妓生)이 장고춤을 추다 물에 떨어져 죽자 화가 난 그의 어머니가 도끼로 찍었다. 주변에는 노송(老松)이 우거져 있고 물이 맑아 여름철에는 쉼터와 휴식처로 많은 사람이 찾고 있으며, 용문사(龍門寺)가 4km 이내의 가까운 거리에 있다.(龍門面홈페이지 2013)

 

  초간정과 금당실마을([同好同樂] 慶北 醴泉 草澗亭·金塘室마을) [記事] : 자전거 여행을 하면 좋은 점이 참 많다. 자연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우선 눈으로 풍경과 움직임을 파노라마처럼 즐길 수 있다. 같은 것이라도 계절 따라 달리 보이기도 한다. 다음은 코로 느끼는 호사다. 특히 5월 아까시아꽃 향기를 맡으며 페달을 밟을 때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쾌적하고 시원한 공기 냄새는 어떻고. 그러나 가끔 시궁창 썩는 냄새 같은 역겨운 냄새를 맡을 때도 있다. 나는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달릴 때가 가장 기분이 좋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페달을 밟으면 바람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오염되지 않은 작은 샛강을 끼고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달릴 때면 기분이 상한가로 오른다. 그때는 하늘을 나는 기분이다. 마음속에 묻어둔 모든 근심과, 스트레스가 날아간다. 남을 미워하는 마음도 사라진다. 그래서 자전거를 배운 게 얼마나 다행스럽고 고마운지 모른다. 아침부터 비가 올 것처럼 보여 갈까 말까 고민하다 떠나기로 했다. 목적지는 예천. ‘초간정’과 ‘금당실마을’을 둘러보기로 했다. 초간정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지만 달리는 시골길은 아름다웠다. 저 멀리 ‘초간정 3.6㎞’라는 팻말이 있었지만 헛갈렸다. 마침 정자에서 쉬고 있는 어르신들께 여쭤보니 “이쪽으로 쭉~가이소”라며 길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한참을 달렸는데도 초간정은 보이지 않았다. 어렵게 초간정에 도착했다. 초간정 앞에 흐르는 계곡에서는 꼬맹이들이 부모님과 함께 물고기와 다슬기를 잡고 있었다. 정겨운 그 모습이 너무나 예뻐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영상은 돌아오는 내내 떠오르곤 했다. 초간정은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에 위치한 경북문화재자료 제143호로,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을 저술한 초간 권문해가 지어 심신을 수양하던 곳이다. 선조 15년에 처음 지어졌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중건했다. 인조 14년 다시 불타 1870년 중창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참 예쁜 정자였다. 주변의 기암괴석과도 잘 어울렸다. 또 정자 옆에는 몇 채의 기와집이 있었다. 기와집은 돌담이 예쁘게 둘러쳐져 있어 그런지 더 멋있고 단아해 보였다. 초간정 밑으로는 넓지도 깊지도 않은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고 주변에는 수백 년 된 소나무들이 있었다. 비가 내렸다. 정자에 앉아 떨어지는 빗물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근심도, 미움도, 잡념도 다 사라졌다. 이런 곳에서 글을 읽고 시를 지으면 훌륭한 인재가 안 나올 리가 없을 것 같았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 그러나 내리는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더 머물렀다. 빗소리를 듣고 있으니 마음마저 느긋해져 빨리 돌아가야 한다는 조바심도 들지 않았다. 비가 그칠 때까지 한참 그곳에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금당실마을을 둘러보았다. 금당실마을은 조선 태조가 도읍지를 이곳으로 정할 것을 명했을 만큼 길지다. 전쟁과 흉년, 전염병이 없다는 삼재불입지지(三災不入之地)의 마을로 조선시대 양반의 기품이 그대로 배어 있다. 역사와 문화, 전통을 간직한 마을이고 곳곳에는 멋과 이름을 지닌 고택들이 있었다. 돌담에는 예쁜 꽃들과 청사초롱이 달려 있어서 더 아름답게 보였다. 이곳에는 대문이 없는 집이 많다. 그래서 마음 놓고 구경할 수 있었다. 또 민박이 가능해 가족이 함께 묵으면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밤이면 개구리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별빛도 아름다울 것 같았다. 그렇게 구경하다 보니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윤혜정(자전거타기운동본부 팀장)(每日新聞 2013-08-01)

 

  초간정과 병암정([류혜숙의 旅行스케치] 醴泉 草澗亭과 屛巖亭) [記事] : 자연이 허락한 정자, 수수한 詩 한 소절처럼 낭랑하다. 그곳은 무대이고 스스로 주인공이다. 그곳에는 낮과 밤, 해와 달, 하늘과 물, 바람과 비, 숲과 나무, 들판과 계절이 있고 삶과 죽음, 창조와 파괴, 선과 악, 기쁨과 슬픔이 있다. 때때로 그곳을 찾으면 깊이 경탄하였고 쓰리게 애통하였고 오래 기억하였다. ◆ 초간정 : 넓지 않고 깊지 않은 금곡천이 넓은 바위를 만나 짧게 굽이친다. 개울은 수량이 적어 속이 훤한데 짧지만 각이 큰 굽이는 바위 아래에 짙은 초록빛 소를 만들어 놓았다. 바위는 힘차고 단단한 기반으로 자리하고 그 위로 몇 단 석축을 돋우어 정자를 얹었다. 굽어 흘러 멀어지는 개울가엔 하늘로 오르는 송림이 경건하고, 정자의 열린 마루에는 그 풍경들 태연히도 앉아 있다. 손바닥을 펴 정자를 지워본다. 완성되지 못할 회화다. 완결 없는 시다. 초간정, 수풀과 계곡의 정자는 수수한 시의 한 소절처럼 낭랑하다. 초간정은 1582년 조선 선조 15년에 초간(草澗) 권문해 선생이 세운 정자다. 초간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을 지은 분으로 총 20권에 달하는 책의 완성에는 7년이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 완성이 1589년, 그러니 초간정은 선생의 그 길고 치열한 작업과 시간적으로 함께하면서 공간적으로는 몸과 마음을 내려두는 휴식처이자 수양처로 자리했을 것이다. 긴 시간 뒷수발을 감내했던 부인이 사망하자 1591년 초간 선생도 세상을 뜬다. 그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 ‘대동운부군옥’고본과 초간정은 소실된다. 초간정은 1612년에 중건되었지만 병자호란으로 다시 불탔다. 그 사이 ‘대동운부군옥’은 필사본으로만 남아 땅에 묻혔다. 그것이 빛을 보게 된 것은 1790년 7세손이 판각 작업에 나서면서부터다. 1836년에는 8세손에 의해 46년 만에 677장의 판목이 완성된다. 그리고 1870년 고종 7년에 초간정이 중창되었다. 지금의 건물은 그때 중창한 것으로 선생의 원고 등을 보관하기 위해 후손이 기와집으로 새로 고쳐 지은 것이다. 초간정 옆의 기와집들은 담장의 부드러운 곡선에 안겨있다. 정자 옆에는 몇 채의 기와집이 붙어 있다. 돌담의 부드러운 선으로 둘러쳐져 지붕만이 옹기종기 드러난다. 속으로 들어가는 문은 잠겨있어 이 건물들의 서사는 알 길이 없다. 개울로 내려가 보니 바위에 초간정 글씨가 새겨져 있고 정자의 측면에 ‘석조헌’ 현판이 걸려 있다. 저녁에 낚시를 하는 마루인가. 물고기가 낚일 리 없다 생각되지만 낚싯대 드리우는 유유함과 자적함이 은근하게 떠오른다. 금곡천에 가로놓인 출렁다리에서 초간정 방향으로 흐르는 개울과 주변 풍경 : 환상적인 송림과 함께 계곡을 따라 내려간다. 초간정을 부러 멀리하며, 정자의 모습이 나뭇가지 사이로 흘끔흘끔 보일 때까지 내려간다. 그 즈음 개울을 가로지르는 좁은 출렁다리가 나타난다. 한 사람만이 지나갈 정도의 너비다. 다리 위 한가운데에서 물과 바위와 숲과 초간정의 조각을 바라보고 다시 숲을 크게 휘돌아 초간정이 선택한 자연과 자연이 허용한 정자를 이리보고 저리 본다. 이곳의 본질적인 사명은 매혹하여 평온을 주는 것이라 믿는다. 그렇기에 머리와 가슴 잔잔하여도 반하고 탐하는 데 부끄러움 없었다.

 

  ◆병암정 : 병풍 같은 바위 위에 지어진 조선시대의 정자 병암정. 바위 아래에 작은 연못이 있고 그 가운데에 석가산이라 불리는 작은 섬이 있다. 눈앞에 병풍 같은 병암이 우뚝 서있다. 의젓하고 빙하처럼 차가운 바위다. 그 위에 담장으로 몸을 가린 건물 한 채가 놓여있다. 병암정이다. 이유인은 구한말 중인 출신으로 고종과 명성황후의 총애를 업고 경상감사, 한성판윤, 법무대신 등의 요직을 맡아 승승장구했던 인물로 일본과 맞선 항일 운동가였고 덕수궁의 수리를 맡았던 건축가이기도 했다. 병암정은 그가 낙향하여 지은 것으로 그때의 이름은 옥소정이었다. 그는 매일 이곳에서 고종황제를 향해 절을 올렸다고 한다. 그는 귀양살이 도중 의문사했다고 전해지는데 고종의 죽음을 들은 후 곡기를 끊고 죽음을 맞이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쨌든 꽤 경외심과 엄숙함을 느끼게 하는 스토리의 주인공이지만 입신출세와 재산형성 과정에서 수많은 의혹과 지탄을 받은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옥소정 건립 과정에서 강제로 부역을 동원하는 등의 권력행사로 원성을 샀다고 한다. 그가 죽자 예천 권씨 문중에서 옥소정을 사들여 병암정이라 이름을 고쳤고 독립 운동가였던 권원하가 이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곁에는 별묘를 세워 선조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병암정 절벽 아래는 연못이다. 연못 가운데에는 아주 자그마한 섬이 있다. 몇 해 전 방영되었던 드라마 ‘황진이’에서 이곳은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한다. 섬에는 정자가 서있었고 구름다리가 놓여 있었다. 황진이는 이곳에서 첫사랑인 도령과 처음 만나고, 첫 키스를 하고, 반지를 받았다. 다리와 정자는 철거된 상태다. 그때로부터 조금 더 시간이 흐른 오늘, 병암정 연못은 경악스럽고 허탈하다. 물과 섬은 가장자리가 작도되어 돌덩이들로 꽁꽁 매여졌다. 연못은 목욕탕 같고 섬은 밥그릇에 담긴 고봉밥 같다. 병암정으로 오른다. 담과 건물도 최근에 손질되었다. 담은 심리적인 안정감과 갑갑함을 동시에 준다. 경관으로의 시선도 차단하고 있어 물리적인 폐쇄감도 느껴진다. 병암정 마루에 서니 들과 먼 마을이 시원하게 열린다. 담장아래에 디딤돌에 놓여 있다. 돌 위에 올라서면 담장너머 너른 들이 열리고 시선을 떨구면 둥근 연못이 보인다. 자연적이지도 인간적이지도 장식미마저도 느껴지지 않는다. 연못은 병암정의 정원이자 미학적인 완성에 중요한 요소이다. 정원은 건축의 문제가 아니라 상상력의 문제다. 상상력이 없다면, 존중이라도 해야 한다. 병암정이 이곳에 있는 이유에 대한 존중, 그리고 자연의 에너지와 자유에 대한 존중 말이다. 건축물은 역사로 태어나지만 그 뒤에는 문화에 속한다. 오늘의 문화에…. ☞찾아가는 길 : 55번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예천 IC에서 내려 회룡포, 예천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예천읍에서 928번 도로로 용문면 금당실 전통마을 쪽으로 간다. 금당실 마을 가기 조금 전에 병암정이 있고, 금당실마을 지나 조금 더 가면 초간정이 있다.(嶺南日報 旅行칼럼니스트記者 2012-03-23 07:59:35)

 

  초간정사(草澗精舍(亭)) : 죽림리 353번지에 있는 亭子로, 큰 盤石 위에 亭子 6間, 藏板閣 4間이 있으며, 앞에 큰 내가 돌아 흐르고 소나무 숲이 울창해서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龍門面홈페이지 2013)

 

  초간정, 자운루, 사괴당고택(龍門面 草澗亭, 紫雲樓, 사괴당古宅 : 道 有形文化財, 民俗資料로 陞級) [記事] : 도지정 문화재자료인 용문면 초간정, 자운루(용문사), 사괴당 고택이 2013년 4월 8일자로 유형문화재와 민속자료로 각각 승급되어 고시됐다. 이번에 승급된 문화재는 관내 27건의 도지정 문화재 자료 중 건축기법, 관련 인물, 역사 등의 문화재적 가치와 보존가치가 높은 문화재다. 초간정(문화재자료 143호)은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을 저술한 초간 권문해(權文海 1534~1591) 선생이 세우고 심신을 수양하던 곳. 기암괴석과 주변의 경관이 조화를 이뤄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유형문화재 475호로 승급됐다. 용문사 자운루는 대장전(大藏殿)과 대향하고 있는 건물로 임진왜란 때 승병(僧兵)들이 회담을 했던 곳으로, 승속들이 승병들을 돕기 위해 짚신을 만든 호국의 장소. 문화재자료 169호에서 유형문화재 476호로 승급됐다. 사괴당 고택(문화재자료337호)은 금당실마을의 첨추공파 입향조인 귀계(歸溪) 변희리(邊希李 1435~1505)의 증손 사괴당 응녕(1518~1586)가 터를 잡은 곳으로 18세기 전ㆍ후반에 건립된 건물로 조선후기 주택 변천사를 살펴 볼 수 있는 가치 있는 자료로 평가되어 민속자료 179호로 승급됐다. 예천군은 이번 문화재 승급으로 앞으로 문화재의 보존ㆍ관리뿐만 아니라 향후 소중한 문화재를 활용한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여 지역민들에게는 문화 향유의 기회와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지역문화콘텐츠로 발전시킬 계획이다.(醴泉新聞 2013년 04월 08일 (월) 10:46:34)

 

  초간정 원림 : [자연유산 보호· 활용 기반조성]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정부답변/ 2013.10.17/ 청령포 204,241㎡ 2008.12.26 역사유적명소 역사문화명승 49 명승 제51호 예천 초간정 원림 12,979㎡ 2008.12.26 별서원림 역사문화명승 50 명승 제52호 구미 채미정 56.../ 지식Q&A  |  답변 1ㆍ조회 249(daum 2014)

 

  초간정 원림 : 안동 가볼만한 곳 알려주세요./ 2014.01.06/ 과 원림(명승82호) -묵계 김계행공의 별서 (여름별장)... 예천의 드라마 '황진이' 촬영지인 '병암정'과 초간정...용문사....../ 지식Q&A  |  답변 5ㆍ조회 11,919ㆍ추천 7(daum 2013)

 

  초간정 원림 : 예천 초간정원림(醴泉 草澗亭 園林)/ 2011.10.19/ 초간정 ,122*61cm, 한지에 목판 ,ed :12 , 2011 초간정 송림, 61*180cm, 한지에 목판 ,ed :12 , 2011. 醴泉 草澗亭 園林 초간정은 조선 선조 때 학자인 초간 권문해(1534~1591.../ cafe.daum.net/namuartsp... 나무로 판 세../ 댓글 4(daum 2014)

 

  초간정 원림 : 시 낭송회 예천 용문사. 초간정 원림 답사(2013.8.4)/ 2013.08.29/ 경주시 시낭송회에서 예천지역 탐방 중 용문사. 간혈정 답사했습니다. -초간정 - 물 좋고 정자 좋고 반석 좋은 곳이 바로 초간정임. 제일 좋은 것은 명당에 자리함./ cafe.daum.net/bulguk14/... 불국사 초등학..(daum 2014)

 

  초간정 원림 : 초간정 일원/ 2012.06.15/ 그 후 2008년 12월 26일 초간정과 주변 경관을 포함한 12,979㎡ 구역이 예천초간정원림(醴泉草澗亭園林)이라는 이름으로 명승 제51호로 승격되었다. 많은 문화재 품은 천년고찰.../ cafe.daum.net/sinsatgat... 신삿갓 오지비../ 댓글 1(daum 2014)

 

  초간정 원림 : 명승 제51호 예천초간정원림(醴泉 草澗亭 園林)/ 2010.02.19/ 350번지 등 시대 조선시대 소유자 국유, 사유관리자 경북 예천군 예천 초간정 원림 예천 초간정 원림 설명 초간정은 조선 선조 때 학자인 초간 권문해(1534~1591)가 오랜.../ cafe.daum.net/storymom/... 동화사랑한마../ 댓글 1(daum 2014)

 

  초간정 원림 : 원림(園林)은 호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2010.08.06/ 경북 예천여행(2) 영남 유일의 원림, 예천 초간정원림 최종 업데이트 10.07.12 09:19 김정봉 (jbcaesar) 초간정원림, 원림, 정원, 예천권씨종택 예천.../ cafe.daum.net/MoontanRo... 문화관광해설-../ 댓글 2(daum 2014)

 

  초간정 원림 : 예천 기행 1/ 2012.11.20/ 남았다. 아름다운 사찰의 풍경을 마음에 담고 다음 코스인 초간정으로 향한다. 초간정 원림과 회룡포는 명승지이다. 식사 전 들른 곳은 초간정이다. 선조 때 인물 권문해 씨가.../ cafe.daum.net/cjsup-6/B... 충주 숲 6기/ 댓글 6(daum 2014)

 

  초간정 원림 : 예천 답사 사진/ 2013.06.09/ 쪼개는 기계 - 기요틴과 같다. 예천 용문면 초간정 초간정 비안개에 젖어있는 초간정 원림 모심기가 끝난 논 병암정.../ cafe.daum.net/dong--yan... 동양고전연구../ 댓글 2(daum 2014)

 

  초간정 원림 : 휴가길 예천, 이곳저곳/ 2012.08.08/ 윤장대가 보이네요. 고향 강변의 아침입니다. 피서철이라 사람들이 많이 와 있네요. 초간정원림입니다. 10승지의 한 곳인 예천 금당실입니다. 초간정을 지으신 예천권씨.../ cafe.daum.net/amunso/7N... 문화콘텐츠연../  댓글 4(daum 2014)

 

  초간정 원림 : 예천 답사에서 만난 나무들/ 2013.06.09/ 예천전통서예체험관(수련, 느티나무, 인동덩글), 금당실송림, 용문사 당단풍, 초간정원림 등입니다. 즐거운 답사였습니다. 숲과 문화 수강생들은 6월 19일 뵙겠습니다. .../ cafe.daum.net/dong--yan... 동양고전연구../ 댓글 1(daum 2014)

 

  초간정 원림 : ☆라우의 초간정 답사기 1-초간정으로 가는 길★/ 2005.01.30/ 14시간의(초간정을 찍고 바로 턴해야하는-_-;) 답사이기 때문이다. 초간정에 가게 된 연유는, 전통조경 원림 안에서 미학을 찾아 발표를 하는 전통조경미학 수업 때문이었다.../ cafe.daum.net/yugsamaeu... 역사 마을/ 댓글 2(daum 2014)

 

  초간정 원림 : 예천 관광8경 선정/ 2014.02.25/ 469호인 송림은 더위를 식혀주는 그늘 숲 역할을 하고 있다. ▲ 예천 관광4경 - 초간정 및 원림 조선 선조 15년(1582)에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 을.../ cafe.daum.net/an-land/d... 안동예천부동../ 댓글 4(daum 2014)

 

  초간정 원림 : 예천 초간정/ 2011.07.08/ 그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지 않고 정자가 들어앉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던 것이다. 초간정 원림의 경관은 정자에서 바깥을 내다보는 조망과 함께 외부에서 정자를 바라보는.../ cafe.daum.net/andonggir... 안동여고32회/ 댓글 2(daum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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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방문 1,112

 

  예천곤충생태원(醴泉郡, 어린이날 맞아 昆蟲體驗 行事 마련 : 5月 3日부터~6日까지 觀覽 爲主로 進行) [記事] : 예천군은 제92회 어린이날을 맞아 다음달(2014년 5월) 3일부터 6일까지 예천곤충생태원 일원에서 ‘어린이날 곤충체험행사’를 연다. 이번 어린이날 곤충체험행사는 세월호 여객선 침몰사고로 인해 당초 계획했던 행사규모를 축소하고 애도하는 마음으로 차분한 분위기속에서 관람 위주로 진행된다. 올해는 지난해와 달리 예천군 역점시책으로 추진 중인 백두대간곤충놀이나라 사업의 일환인 『동굴곤충나라』가 이번 일정에 맞춰 개장함에 따라 곤충생태원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동굴 곤충을 체험함으로써 색다른 재미와 볼거리를 선사할 예정이다. 곤충생태체험관에서는 ‘곤충역사관’, ‘곤충생태관’, ‘곤충자원관’ 등 곤충의 역사와 생태를 배울 수 있고, 13만 마리의 비단벌레로 꾸며진 비단벌레관, 화려하게 꾸며진 세계의 나비관, 67,001개의 벌방을 가진 초대형 말벌집, 곤충의 생활상을 축소한 디오라마 등 관람객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또한 3D입체영상을 매일 교차상영하고 이색곤충 특별전시 등이 진행된다. 특히, 야외 곤충정원 및 생태원에는 다양한 체험거리가 마련돼 있으며 나비터널에서 살아있는 나비관찰과 이채로운 식충식물온실, 비눗방울체험을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더불어 즐길 수 있다. 예천군 관계자는 “특히, 올해는 새로 조성된 동굴곤충나라에서 동굴 곤충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 있으니 밝게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즐거운 추억과 곤충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특히, 어린이날 당일 5월 5일에 곤충생태원을 방문하는 어린이는 무료입장의 혜택이 주어진다. 한편, 행사기간 중 어린이 안전사고와 미아 발생에 대비한 안전요원 배치, 일일보건소, 자원봉사단도 운영할 계획이며 기타 자세한 내용은 예천곤충연구소로 문의하거나 홈페이지(www.ycinsect.go.kr)를 방문하면 자세히 안내받을 수 있다.(醴泉뉴스 2014년 04월 30일)

 

  예천천문우주센터(醴泉天文宇宙센터, 家庭의 달 科學體驗프로그램 運營 : 5月 3日부터 6日까지 運營) [記事] : (재)예천천문우주센터는 가정의 달을 맞아 ‘과학체험프로그램’을 마련해 2014년 5월 3일부터 6일까지 4일간 운영할 예정이다. (재)예천천문우주센터에서는 최근 세월호 침몰 참사로 모두가 슬픔에 빠진 채 가정의 달을 맞았으나 더 밝은 미래를 만들어 가야할 우리 어린이들을 위해 기존 체험과 더불어 ‘과학체험프로그램’을 추가한 내용으로 구성해 운영한다고 밝혔다. 4일간 운영하는 과학체험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이 참여를 통해 직접 만들고, 학습해 보는 체험형 프로그램들로 구성될 예정이다. (재)예천천문우주센터는 주·야 천체관측이 가능한 천문대와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비행사 훈련체험시설인 ‘우주환경체험관’을 갖춘 천문ㆍ우주테마과학시설에서 별자리시계 만들기, 은하모형 만들기, 종이비행기 만들기, 천체관측체험 등을 마련해 준비하고 있고 있다. 이번 가정의 달 과학체험프로그램에 대한 궁금한 사항은 예천천문우주센터 홈페이지(www.portsky.net)를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기타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요 과학체험프로그램> : 프로그램명 내용 비고/ 별자리시계 만들기 생일별자리에 대한 학습 및 자신의 생일별자리가 그려진 시계만들기 참가비 무료(대상 : 어린이, 학생)/ 은하모형 만들기 폼클레이를 사용해 자신만의 은하를 만들어 창의력과 표현력 향상 참가비 무료(대상 : 전체)/ 종이비행기 만들기 종이비행기 만들기 및 날리기를 통한 비행원리 학습 참가비 무료(대상 : 전체)/ 천체관측체험 주간태양관측 및 별자리영상관람 체험비 유료(영,유아 체험제한)/ 우주환경체험 가변중력, 달중력, 우주자세제어체험, 4D영상체험 체험비 유료(이용제한. 키 : 125cm이상, 몸무게 : 20kg ~ 80kg)/ * 체험프로그램은 정해진 시간에만 운영됨. (진행시간은 홈페이지 참고 및 전화문의 바람.)/ * 사정에 따라 일정 등이 변경될 수 있음/. * 홈페이지 : www.portsky.net(醴泉뉴스 2014년 0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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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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