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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자랑3635:예천8경 중 용문사(7)
작성자장병창 @ 2014.05.09 06:25:33

  예천의 자랑(3635) : 예천8경 중 용문사(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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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장대 비롯 말사 중 가장 많은 성보 소유, 박물관 건립해, 체계적 관리 모범] : 스님이 늦은 나이에 이토록 힘든 불사를 자청한 이유는 간단하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원력이다. 어떤 원을 세워 어떻게 활동하느냐가 중요하다. 원은 어떻게 세우는가. 그것이 옳은가 그른가 해야 할 일인가 아닌가만 보고 결정하면 된다. 그 일이 나에게 손해를 끼칠 것인가 이익을 줄 것인가 아니면 내가 힘들 것인가 아닌가 하는 다른 이유를 고려하면 안 된다. 나이도 따져서는 안 된다. 심지어 포교를 위한 명분도 옳지 않다. 옳으면 그냥 하면 된다. 용문사 불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에 한 것뿐이다. 나는 오직 이 일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용문사를 와서 쉬거나 기도 혹은 그냥 들러 부처님 말씀을 듣고 생각하는 기회를 갖게 되고 그래서 마음이 편안해지고 부처님을 따르게 되는 선연(善緣)을 맺게 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용문사의 가장 큰 보배는 윤장대(輪藏臺)다. 경전을 넣고 돌릴 수 있게 만든 윤장대는 전경신앙(轉經信仰)의 한 예다. 1173년 삼만승재(三萬僧齋)를 열고 대장전을 지었다. 그 안에 윤장대 2좌를 설치해 오늘에 이른다. 스님은 “불경을 접하는 사람이 없는 시대에 누구나 성불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주기 위한 방편으로 조성한 것이 윤장대다. 오늘날에는 현재에 맞는 윤장대 정신을 이어야한다. 누구나 쉽게 찾아와 불법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오늘날 용문사의 사명이다.” 스님의 방에는 3m는 족히 넘어 보이는 벽면 가득히 책이 꽂혀있다. 대장경 전질에서부터 최신 단행본까지 다양하다. 3분의 2는 직지사에 보내고 남은 책이다. 많은 공부를 했으면서도 스님은 법문을 하지 않는다. 당신이 세운 원력에 집중하기 위해 다른 모든 일은 멀리하기 때문이다. 퇴색해가는 농촌과 사찰을 되살리기 위한 한 노승의 수행 이야기다.

 

  [청안 스님은…] : 대전중·고등학교를 졸업한 엘리트 청년이었던 스님은 번민과 고뇌를 짊어지고 25세 때 출가했다. 수좌로 제방 선원에서 방부를 들였다. 고행의 일환으로 단식을 하다 위를 해치는 고통을 겪을 정도로 가행 정진했다. 출가하고 10년 늦게 녹원스님을 은사로 다시 득도했다. 1960~1970년대 수좌로 살았던 스님은 이후 서울 사당에 포교당을 마련했다.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이던 월주스님이 광고회사의 요청을 받고 청안스님을 천거해 CF 스타로 세상에 알려졌다. 1998년 예천 용문사 주지를 맡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박부영 記者 佛敎新聞 2621號/ 5月 8日字 2010-05-05 오후 5:17:46 / 送稿)

 

  용문사(龍門寺 實際 火災發生과 똑 같은 狀況 아래 '2010 災難對應安全韓國訓練' 實施) [記事] : 예천군은 2010년 5월 14일 오후 3시 천년고찰 용문사에서 중요 목조문화재를 화재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현장훈련을 실제상황과 똑같이 갖는 "2010 재난대응 안전한국훈련"을 실시했다. 용문사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가정 하에 민·관·군·경 150여명이 참여하여 소방헬기, 소방차, 응급복구차량 등으로 화재상황 신고 및 초기 소방 활동, 문화재반출, 부상자 구조와 이송, 헬기 및 소방차의 화재진압, 통신·전기 응급복구 및 방역 등 시간대별로 현장감있게 진행됐다. 또한 지난 13일 10시부터 20분간 예천읍을 대상으로 재난위험 경보발령에 따른 지진대피 훈련을, 관내 25개 학교는 교육청 주관으로 지진 대피훈련과 소방훈련을 함께 실시했다. 2010 재난대응 안전한국훈련은 전국 398개 기관·단체가 참여하는 가운데 5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실시하며, 첫날은 대규모 풍수해, 둘째 날은 지진 및 해일 등 복합재난, 셋째 날은 대형 인명피해 대응훈련으로 진행하여 국가 재난대응체제 구축과 시스템 점검 등을 위한 훈련이다. 예천군 관계자는 "이번 훈련으로 유관기관 및 단체와의 재난대응 협력체계 구축과 재난대응능력이 향상되었고, 군민들은 평소 생활주변 안전점검을 철저히 하고 각종 시설물 및 문화재 등에 재난 의심이 발견되면 신속히 신고하여 달라"고 당부했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0-05-14 오후 3:11:36)

 

  용문사(올 여름 山寺文化 體驗하며 `休~'...  龍門寺에서 템플스테이) [記事] : 잠시 현재의 조건에서 벗어나 나에게 주는 ?은 여행으로 삶의 지혜를 깨우치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전국 각 산사를 중심으로 올 여름 다양하게 진행된다. 특히 요즘 템플스테이 프로그램들이 사찰에서의 색다른 문화체험 수준에서 벗어나 개인의 삶에 가치를 심어 줄 수 있는 보다 심도 있는 방식으로 발전해 가고 있는 가운데 각 사찰들만의 독특한 프로그램들을 만나볼 수 있다. 김제 금산사(주지 원행) 에서는 ‘깨어있는 휴식’이라는 주제로 여름 템플스테이를 준비했다... 우리 지역을 벗어나 가족들과 함께 여행 삼아 타 지역에서 진행하는 템플스테이도 새로운 문화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법흥사(주지 도완). 강원도 영월에 위치한 법흥사의 ‘몽당연필 탬플스테이’는 우리가 꾸는 꿈은 반드시 이뤄진다는 자신감을 갖자는 실천적 템플스테이다... 국내 최고 높이인 42.7m의 3층 목탑이 있는 충북 진천의 보탑사(주지 능현)의 템플스테이 ‘사랑한다 말하세요.’ 각자가 지닌 용기를 통해 스스로를 변화시켜 갈 것을 말해준다... 경북 예천에 위치한 용문사(주지 청안)는 ‘아홉 번의 기다림’이라는 주제로 템플스테이를 진행한다. 끝과 시작을 알리는 경계의 숫자 ‘9’의 의미를 통해 윤회의 삶을 이해하고 기다림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이 곳의 템플스테이는 자가용 대신 버스를 타고 가야한다. 터미널 대합실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설레임을 느껴 보라는 것. 또 장작불 가마솥에서 직접 밥을 지으며 그 밥으로 발우공양까지 이어진다. 인생의 설레임이 사라진지 오래라면 용문사의 문을 두드려 봐도 좋을 듯 하다.(김효정 記者 全北道民日報 2010-07-14)

 

  용문사(龍門寺=資料 醴泉郡) [記事] : 용문사/ 소재지 : 용문면 내지리 391/ 시설규모 : 대장전 1, 영남제일강원 1, 자운루 1, 성보유물관 1, 범종각 외 7동, 주차시설 200대/ 주요특색 : 신라 경문왕 10년(870)에 두운 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로 한국관광공사에서 지정한 우리군의 관광명소이다.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소백산 용문사에는 국내최고를 자랑하는 것이 있다. 맞배기와 지붕의 균형미를 보여주는 대장전(보물 145호)은 고려 명종 3년(1173)에 초건한 최고 오래된 목조건물이며, 회전식 불경보관대인 국내유일의 윤장대(보물 684호), 대추나무에 불상을 조각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목불좌상 및 목각탱(보물 989호), 불국사의 것보다 규모가 더 웅장한 사천왕상 일주문이 있다. 이 외에도 조선 세조의 친필수결의 용문사교지(보물 729) 등 보물과 다수의 문화재를 간직한 문화유산의 보고이다. 전설에 의하면 고려 태조가 삼한 통합의 큰 뜻을 품고 두운 대사를 방문하고자 동구에 이르니 갑자기 바위 위에서 쌍용이 나타나더니 절로 가는 길을 인도하였다 하여 태조는 산 이름을 용문산, 절 이름을 용문사라 명명했다고 한다. 그리고 2006년에 247평 규모의 성보유물관을 준공 101종 193점(서지류, 불화류, 불상 및 공예 등)의 불교유물을 전시 및 수장하고 있으며 국내유일의 회전식 불경보관대인 윤장대의 모형을 제작 설치하여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직접 체험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하였으며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용문사와 연계하여 볼 수 있는 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 '초간일기'를 보관하고 있는 "예천권씨종택"과 초간 권문해 선생이 건립한 "초간정"이 있어 주변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교통이용안내 : 예천읍에서 북쪽으로 약 15Km위치, 1일 시내버스 9회 운행 - 30분 소요(醴泉新聞 2010년 09월 15일 (수) 12:37:06)

 

  용문사 : →예천용문사 목불좌상 및 목각탱, →용문사 교지, →용문사 대장전, →용문사 목각탱불, →용문사 부도, →용문사 소헌왕후 태실비(張炳昌 註 : 연산군의 모 제헌왕후의 誤記), →용문사 영남제일강원, →용문사 윤장대, →용문사 자운루, →용문사 중수비

 

  용문사 괘불(寶物 申告) [記事] : 경북도는 최근 문화재위원회를 열고 조선 노비문서 등 문화재 4점을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신청한다고 2004년 5월 28일 밝혔다. 보물 지정을 신청키로 한 문화재는 ▲조선 태조 7년(1398년)에 작성된 ꡐ홍무31년 노비문서ꡑ(구미시) ▲조선 세조 5년(1459년)에 사헌부 감찰들의 기능과 책무, 다짐 등을 기록한ꡐ총마계축ꡑ(구미시) ▲적천사 괘불(청도군) ▲용문사 괘불(예천군) 등이다. 용문사 괘불은 1690년 삼존 입불 형식으로 제작된 영산회상도로 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경북도는 이 밖에 안동 봉정사 목조관세음보살상과 구미 금강사 금동약사여래입상 등 15건을 도 지정 문화재 대상으로 선정했다.(최슬기 記者 京鄕新聞 2004년 05월 28일 22:04:36)

 

  용문사 교지(龍門寺敎旨), 용문사 [文化財] : 용문면 내지리 용문사에 있는 유물로, 보물 제684호이다. 1457년(세조 3)에 왕이 친히 수결(手決)하여 용문사(龍門寺)에 내린 교지이다. 가로 44.8cm, 세로 66.5cm의 지본(紙本)에 쓰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敎旨, 慶尙道 醴泉地 龍門寺乙良 監司守令曾下 傳旨更審尤加令護雜役免除者 國王(手決) 天順元年八月十四日" →예천용문사 교지

 

  용문사교지(龍門寺敎旨) [文化財] : 용문면 내지리 용문사 경내에 있는 문화재로, 보물 제729호이다. 조선 세조가 사찰의 잡역을 경감하라는 내용이며, 체제와 형식에 있어서 광덕사소장면역사패교지(廣德寺所藏免役賜牌敎旨 寶物 第1246號 1997.6.12 指定), 능성 쌍봉사교지(寶物 第1009號)와 같으며, 대상 사찰명과 발급 일자가 다를 뿐이다. 광덕사소장면역사패교지 1첩은 충남 천안시 광덕면 광덕리 640 광덕사에 소장 관리되고 있는데, 조선 세조 3년(1457) 8월 10일에 왕이 충청남도 천안에 있는 광덕사와 개천사에 내린 교지이다. 이 문서들은 국왕이 직접 내린 것으로 조선 전기 사패교지의 형식을 알려주는 자료이며, 세조 때의 불교정책을 살필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國家文化遺産綜合情報서비스 2004)

 

  용문사교지(자료=예천군) : 예천신문 | 2010.04.02. 11:44/ 용문사교지(보물 제729호)/ 소재지 : 예천군 용문면 내지리 391/ 소유자 : 용문사 (관리자:용문사)/ 자세한 설명 : 이 교지는 용문사 수호를 위해 조선조 7대왕 세조 3년(1475)에 관할 감사와 수령에게 용문사로 하여금 잡역을 면하도록 지시한 교지이다. 가로 44.8cm, 세로 66.cm의 저지본(딱종이)에 7행48자로 작성한 것인데 말미에는 세조의 친필수결이 있다.(daum 2010)

 

  용문사 대장전(龍門寺大藏殿) [글씨] : 용문면 내지리 용문사 경내에 윤장대를 보관하고 있는 건물로, 그 주련(柱聯)의 글씨는 입으로 쓴 구필(口筆)이다.(慧眼스님 佛敎서각전, www.heaan.co.kr 2002)

 

  용문사 대장전(龍門寺大藏殿), 용문사 [文化財] : 용문면 내지리 391번지 용문사 경내 동쪽에 있는 고려 때의 전각(殿閣)으로, 보물 제145호(1963.1.21 指定)이다. 1177년(고려 명종 7)에 초건(初建)되어 대장경(大藏經)을 보관하였다. 이 건물의 특색은 맞배집 처마 밑에 내외 2출목(內外二出目)의 공포(拱包)를 배치하고 기둥 사이마다 공간포(空間包)를 두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 맞배지붕이다. 남향으로 정좌(定坐)하고 있는 법당(法堂)으로서 1467년(세조 13), 1534년(중종 29), 1599년(선조 31), 1665년(헌종 6), 1670년(현종 11), 1760년(영조 43), 1769년(영조 43)에 중수(重修)한 것을 비롯하여 수차례에 걸친 국비(國費), 도비(道費) 보조 사업으로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72년에도 중수하였다. <사적기(史蹟記)>에는 대장전이 1665년(현종 6)에 중수되었다고 기록된 점으로 미루어 16세기 경 중건된 것으로 추측된다. 다듬돌 석축 기단(石築基壇) 위에 덤벙 주초(柱礎)를 놓고, 그 위에 주심포작(柱心包作)과 주간포작(柱間包作)을 배치하고 공포(拱包)는 주간(柱間)에 2구씩 배치한 다포식(多包式)인 내외 2출목(內外二出目)으로 공포(拱包)는 앞뒤에만 설치하고 좌우 측면에는 생략한 5량 가구(五樑架構)이다. 살미처마의 외부 우설(外部牛舌)은 단부(端部)가 앙설(仰舌)로 된 이재공(二齋工) 위에 최대 외단(外端)이 익공(翼工)으로 얹혀 있고, 그 위에 운공(雲工)이 얹혀 있고, 외부 이출목(外部二出木) 위에 외목도리(外目道理)를 받추기 위해 장설(長舌)을 첨가하여 높이를 맞추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공포(拱包)는 주두(柱頭)와 소누(小累)의 굽을 높이는 기법을 따르고 있어 포작(包作)의 운두(雲頭)가 높아졌는데, 가볍게 보이려고 바닥을 궁글리어서 조선 초기의 직선적이고, 강인한 인상을 풍기는 쇠서, 교두 등의 깎음법보다는 부드럽다. 앞쪽 기둥 간살이는 전부 개방하고 문짝을 달았는데, 기둥과의 사이에 좁은 판벽(板壁)을 만들었다. 고주(高柱)로 대량(大樑)을 떠받게 하고, 그 고주(高柱)에는 창방(昌枋)을 끼우고 있고, 중앙문(中央門) 뒤쪽에 낮은 불단(佛壇)이 있고, 좌우 협시(脅侍)를 거느린 작은 여래좌상(如來座像)이 좌정하였고, 뒤에는 후불탱(後佛幀)이 있고, 불단(佛壇) 좌우 협간(左右夾間)에 각각 한 틀의 윤장대(輪藏臺)가 설치되어 있다.

 

  용문사 대장전(龍門寺 大藏殿) [인터넷] :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내지리 용문사에 있는 문화재로, 보물 제145호이다. 1670년(현종 11)에 중수되었다. 용문사는 예천 읍에서 8km 떨어진 매봉산 줄기 속에 위치한 산지 사찰이다. <김룡사본말사지(金龍寺本末寺誌)>에 의하면, 870년(경문왕 10)에 두운(杜雲)이 절을 창건하여 용문사라 하였다고 한다. 두운이 이 산의 동구에 이르렀을 때 바위 위에서 용이 영접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절을 짓기 시작했을 때 나무둥치 사이에서 무게 16냥의 은병(銀甁) 하나를 캐어 그 것으로 공사비에 충당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절의 남쪽에 9층 청석탑(靑石塔)을 세우고 사리(舍利)를 봉안할 때는 4층탑 위로 오색구름이 탑 둘레를 돌았다는 전설이 전한다. 고려 태조가 936년(태조 19) 이 지방을 지나다가 두운의 명성을 듣고 용문사를 찾았는데, 그를 계기로 왕명에 의해 용문사가 크게 확장 중창되었다고 한다. 그 후에도 이 절은 1165년(의종 19) 왕의 칙명으로 중수되는 등 왕실의 관심이 높았다. 1171년 명종이 즉위한 뒤 태자의 태(胎)를 절 문 밖에 묻고 용문산 창기사(昌基寺)로 개칭하였는데, 1478년(성종 9) 소혜왕후(昭惠王后)의 태실(胎室)을 봉안하고 1480년 정희왕후(貞熹王后)가 중수하여 성불산(成佛山) 용문사라 하였다가, 1783년(정조 7) 문효(文孝)세자의 태실을 봉안하고는 소백산 용문사로 다시 고쳤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장전(大藏殿)을 비롯하여 보광명전(普光明殿), 응향각(凝香閣), 진영각(眞影閣), 명부전(冥府殿), 응진전(應眞殿), 회전문(廻轉門), 범종루, 강원, 천불전(千佛殿), 두운암(杜雲庵) 등이 있다. 용문사 경내에 남향으로 정좌하고 있는 이 대장전은 1177년에 초건된 이래 여러 차례 중수하였는데, 사적기에 의하면 1670년에 중수되었다고 한다. 전체 경역은 보광명전 영역과 대장전 영역으로 이분된다. 이 두 영역은 동서로 나란한 병렬축상에 배치되며 두 주 건물의 축은 평행하나 두 영역의 입구인 해운루와 자운루의 측은 각각 5˚씩 안으로 쏠려 있다. [건축물의 구조와 특징] : 대장전은 장대석으로 바르게 쌓은 석축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비교적 규모가 작은 맞배지붕 다포계 건축이다. 나직한 자연석 기단 위에 막돌 주초를 놓고 민흘림 기둥을 세웠는데, 기둥높이에 비하여 지붕이 큰 편이다. 사찰에서 다포계 맞배지붕 형식은 그리 흔치 않으나 임란 직후에 건립되는 경향을 띠고 있다. 정면의 3칸은 기둥 사이를 모두 같은 간격으로 나누고 그 위에 내외 2출목의 공포를 배치하였는데, 기둥 사이마다 공간포는 2개씩이다. 공포(慊包)는 안팎 똑같이 2출목(二出目)으로 짰으며, 그 결과 내목도리(內目道里)를 쓰지 않고 주심도리(柱心道里)로 서까래를 직접 받게 하였다. 주심도리가 대들보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자리하게 되어 지붕이 높아진 만큼 기둥은 짧아 보인다. 지붕의 가구 형식은 5량가로서 대들보 위에는 고복형(鼓腹形)의 동자주형 대공을 세웠고 마루대공은 초각한 판대공을 사용하였는데 이 역시 흔히 사용하는 수법은 아니다. 외부 귀공포 위 창방 뺄목에 붙인 귀면․용머리․연꽃봉오리 등의 조각이나 목각탱(木刻幀) 위의 용조각, 대들보 위 용조각 등은 목각탱과 어울려 화려한 조각 솜씨를 보여주고 있다. 그 위에 단청을 금단청으로 칠해 건물을 더욱 화려하게 치장하였다. 천장의 구성은 윤장대(輪藏臺, 보물 제684호)가 어칸 좌우에 설치된 관계로 중앙 칸에만 우물천장을 설치하고 협칸에는 연등천장을 두었다. 삼존불의 불단 양 옆의 윤장대(輪藏臺)는 팔각정 모양을 택하고 있으며, 왼쪽 윤장대의 꽃살창호는 다양하고 세련되게 조각되어 있다. 이 윤장대는 내부에 불경(佛經)을 넣고, 손잡이를 잡고 돌리면서 극락정토(極樂淨土)를 기원하는 의례(儀禮)를 행하는 도구이다. 마루 밑에 회전축의 기초를 놓아 윤장대를 올려놓았으며, 지붕 끝을 건물 천장부 가구에 연결하였다. 천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소란(小欄 : 가는 테두리 대)을 꽃무늬 모양으로 조각하고 그 안쪽 반자틀에 화려한 단층을 베풀어 장엄하였다. 대들보와 종보 사이에 초각한 화반을 설치하는 등 곳곳에 장식적인 부재들을 넣어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측면의 박공에서 보면 귀포의 다포 구성이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귀기둥으로 길게 뻗어 나온 장혀가 처마의 깊이를 강조하고 있다.(文化財廳, 韓國民族文化大百科事典, 文化藝術綜合情報시스템 2004)

 

  용문사대장전(龍門寺大藏殿 : 修理報告書) [冊] : 종합건축사사무소 신평(주)에서 실측 조사하고, 여래기획에서 편집한 책으로, 463쪽, 사진, 표, 그림, 30cm, 2004년 6월 28일에 예천군(郡守 金秀男)에서 발행하였고, 광진문화사에서 인쇄하였다. 목차는, 문화유산헌장, 발간사, 원색화보, 1) 사업 개관, 2) 연혁, 3) 배치 및 건축 양식, 4) 대장전 실측 조사, 5) 대장전 보수 공사, 6) 목재 연륜 연대 및 수종 분석, 7) 목재 인공 수지 처리, 6) 벽화 보존 처리, 부록 (1) 흑백 화보, (2) 실측 도면, (3) 참고 문헌이다.

 

  용문사 대장전((傳統建築物)龍門寺 大藏殿) [大學報告書] : 해피캠퍼스에서 2005년 11월 11일에 발행하였다. 20쪽 분량, 용문사 대장전에 대한 구조 및 일반적인 개요들을 상세히 나타낸 파워 포인트이다. [목차] : 연혁/ 용문사 연혁 / 대장전 연혁 / 용문사 배치 / [■ 건축양식] : 구조개요  / 평면구성 / 기단부/  축부/ 공포/ 수장/ 지붕/  [본문 요약] : 창방/ 형태 : 너비보다 춤이 큰 장방형 / 우주 창방 뺄목 문양 (다양함) / 전면 : 봉황과 용 배면 : 물고기 좌,우 : 당초문, 연봉 / 평방 / 위치 : 전 후면에 창방위 설치 / 형태 : 너비가 춤보다 큰 장방형 (특징적 처리 기법) / 둥글게 굴리지 않고 직절 함 / [구조개요] : 정면3칸, 측면2칸 규모 / 자연석 덤벙 주초 방식 / 화강석 장대석 기단, 화강석 계단 / 벽체 : 외역은 위에 회벽 마감 / 내부바닥은 우물마루 / 창호 : 궁판 달린 교살문, 궁판 달린 세살문 / 천정 : 우물천정, 연등천정 / 두리기둥 양식 / 겹처마의 맞배지붕 양식 / 내외각 2출목의 다포계 건축(daum 2008)

 

  용문사 대장전(龍門寺 大藏殿=資料 醴泉郡) [記事] : 용문사 대장전(보물 제145호 63.1.21 지정)/ 소재지 : 예천군 용문면 내지리 391/ 소유자 : 용문사 (관리자:용문사)/ 자세한 설명 : 용문사 경내에 남향으로 정좌하고 있는 법당으로서 고려 명종 3년(1173)에 초건된 이래 수차에 걸쳐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사적기에는 현종 6년(1665)에 중수되었다고 기록된 점으로 보아 16세기경 중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장전내에 윤장대 한 쌍(2좌), 목불좌상 및 목각탱이 있다.(醴泉新聞 2010년 09월 15일 (수) 12:59:54)

 

  용문사 대장전 목각탱(龍門寺大藏殿木刻幀) [文化財] : 용문면 내지리 용문사의 대장전 경내에 있는 목각 탱화로, 보물 989호이고, 1684년(숙종 10)에 제작되었다. 사각형의 목판 여러 장을 접합하여 그 위에 여러 가지 불교상과 문양을 치밀하게 조각한 나무 탱화를 목각탱이라 하며, 조선시대에 많이 제작되었다. 조선 불상이 그러하듯 약간 움츠린 자세에 엄숙한 모습이다. 대체로 금분을 칠하며 신체에 따라서 채색을 하기도 한다. 이는 상주 남장사 관음전 목각탱(보물 제923호), 남원 실상사 약수암 목각탱, 문경 대승사 극락전 목각탱, 서울 경국사 극락전 목각탱 등 우리나라 목각탱 6기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6기 중 용문사, 남장사 관음전, 실상사의 것이 비교적 고졸한 형태를 띠는 전기의 작품이라면, 대승사, 경국사, 남장사 보광전의 것은 전자에 비해 많은 상이 등장하고 구조적으로 복잡해지면서 양식화하는 경향의 후기 작품으로 분류할 수 있다.(인터넷 culture 2001, bgs.hs.kr 2002)

 

  용문사를 다녀와서([遺蹟探訪]龍門寺를 다녀와서) [大學報告書] : 레포트월드에서 2005-02-14 12:42:29에 발행하였다. 3쪽 분량이다. [목차] : 1. 머리말 : 백지 상태의 마음으로 / 2. 본론 / (1)용문사를 가는 길 / (2)용문사의 유례와 그 주변 경치 / (3)용문사의 문화재 / 3. 맺음말 : 영원히 가슴속에 자리 잡을 용문사 / [본문 요약] : Ⅰ. 머리말 : 백지 상태의 마음으로 / 태어나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절이라는 것 외엔 다른 특별한 사전 지식 하나 없이, 그렇게 경북 예천의 용문사를 향한 나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아무리 작고 초라한 유적지라 할지라도, 자신만이 간직할 벅찬 감동들을 좀더 강하게 간직하고자, 설레임과 기대감이 아닌 백지 상태의 마음으로 나는 여행길에 올랐다. 사실, 어떤 중요한 목적을 간직한 여행이기 보단, 이 가을에 어울리는 혼자만의 소박한 여행을 하고 싶었기에, 지도책을 보고 편하게 선택한 곳이 바로 이곳 용문사였다. 잘 모른다는 것, 생소하다는 것, 이것이 오히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몇 배의 감동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후에 나 자신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럼 그 감동의 세계를 향해 함께 출발해 보도록 하자. Ⅱ. 본론 / 1. 용문사를 가는 길 : 자동차를 타고 경북 예천의 나들목 이란 곳에서 내린 후, 시내버스를 타고 북쪽 방향으로 30분정도 가다보면, 정감록 십승지 가운데 하나인 용문면 금당실에 도착하게 된다.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 것은, 용문사를 가기까지의 그 주변배경을 감상하는데 훨씬 더 용이 하기 때문이며, 시골 마을 주민들의 대화와 표정까지도 직접 듣고 볼 수 있기 때문 이였다. 강줄기를 타고 2차선 도로 양 옆엔, 수 킬로에 이르기까지 벚꽃 나무가 즐비하게 서 있었고, 수확기로 접어든 황금색의 머리 숙인 벼들과 예쁘게 익은 꽃감들이, 시골 마을의 풍성함과 평화로움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었다. 달리는 버스 창가로, 가을 햇살을 받으며 날고 있는 빨간 고추잠자리를 보며 동심에 잠기기도 잠깐, 그렇게 소백산 자락을 지나 매봉산 해발 520미터에 도착하면 신라 경문왕 10년 (870년) 이 고장 출신인 두운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 용문사가 나타난다. / 2. 용문사의 유례와 그 주변 경치 : 먼저, 주차장에 이르면 멀리 매봉이 늠름하게 다가온다. 해발 865미터의 매봉은, 소백산 줄기가 죽령으로 내려와 두솔봉을 거쳐 저수령에서 월악산으로 가다가, 한 줄기가 남으로 내려와 맺힌 소백의 지봉 이다. 용문사는 바로 그 매봉의 남쪽 줄기에 앉아있다.(daum 2008)

 

  용문사 명부전(龍門寺冥府殿) [寺刹] : 용문면 내지리 용문사 경내에 있는 사찰로, 지장보살(地藏菩薩)과 시와(十王)을 함께 봉안하고 있다. 앞면 기둥에 내걸린 주련의 글은 다음과 같다. 이는 김천 직지사, 문경 대승사의 글과 같다. "지장보살 지니신 위대한 신통력/ 억겁을 두고두고 다 말하기 어렵네./ 보고 듣고 예배하기 잠깐 동안에/ 사람, 하늘 이익 얻기 무량하구나./"(wision.taegu-e.ac.kr 2002)

 

  용문사 목각탱(龍門寺木刻幀) [文化財] : 용문면 내지리 용문사 대장전 내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각탱으로, 맞배지붕 다포식의 단순 경쾌하며 웅장한 고려시대 건축의 특징을 간직한 법당인 대장전 안에는 아미타여래상과 그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의 삼존불을 배치하고 그 뒷쪽에는 후불탱화 대신에 신비로운 목각탱을 배치했다. 목각탱 아랫쪽에 먹으로 쓴 글씨에 의하면, 1684년(숙종 10)에 만들어진 것인데, 나무로 만든 후불탱(後拂幀)으로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바깥 테두리와 안 테두리로 나누어 만들었는데, 바깥 테두리는 장엄한 구름무늬와 극락조를 도안화했으며, 그 크기는 가로 205cm, 세로 261cm이고, 안쪽은 불상과 연꽃과 구름과 하늘을 불교식으로 해석하여 장엄하게 만들었다. 불교에서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이 있는 이상적인 땅을 서방정토 또는 극락정토, 극락세계, 극락국토라고도 하며, 무량수불토, 무량청정토라 부르기도 한다. 10만억 불국토를 지나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대승불교에서는 시간과 공간 개념을 보지 않고 깨달음과 마음의 청정으로 보고 있다. 아미타경에 의하면, 아미타불이 성불하기 전 수행하던 법장은 비구 시절에 우주의 온 나라 중에서 가장 훌륭한 정토를 이룩하겠다는 원을 세우고 성불하여 이룩한 것이 극락정토이다. 이 곳은 부처와 중생이 함께 산다는 뜻으로 동거예토(同居穢土)라고 하는데, 이 세상처럼 사바세계가 있는 곳을 동거예토라 하며, 극락 같은 나라의 땅을 극락정토(極樂淨土)라고 한다. 인간의 영원한 소망이요, 영원한 화두이다. 이 목각탱은 이러한 인간의 소망인 서방정토를 형상한 것이다. 아미타불을 서방정토의 중심에 단정하게 모셔두고 보주형 키 모양의 광배를 만들고, 광배에서는 서기어린 구름이 일어나 온 우주 공간으로 퍼져 나가게 만들었다. 아미타불 아래에는 수미산 중턱을 지키는 사천왕을 만들었다. 오른 쪽으로부터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은 비파를 들고 있고, 동쪽을 지키는 지국천왕(指國天王)은 칼을 들고 있고, 남쪽을 지키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은 용을 잡고 허리를 오른쪽으로 굽혀서 앞을 내다보고 있으며, 서쪽을 지키는 광목천왕(廣目天王)은 연꽃 위에 솟은 탑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아미타불 옆과 뒷줄에는 관음(觀音)ㆍ세지(勢至)ㆍ문수(文殊)ㆍ보현(普賢)ㆍ제장애(除障碍)ㆍ금강장(金剛藏)ㆍ지장(地藏)ㆍ미륵(彌勒)의 8대 보살을 배치하고, 윗줄 보살의 좌우에는 무릎을 꿇고 합장한 두 제자를 배치했다. 문수보살은 지혜의 표지로 칼을 들고 있으며, 보살들은 연꽃 또는 연꽃봉오리와 보병과 지팡이를 잡고 있다. 불상은 모두가 연꽃 위에 있으며 눈을 가늘게 뜨고 정면을 응시하는 단정한 얼굴이다. 팔대 보살은 모두가 작은 체구에 두터운 옷주름의 표현과 평면인 듯하고 개성이 없는 결점이 있다. 이는 서방정토의 본존인 아미타불과 같은 얼굴로 의도적으로 통일한 것으로 보이며, 같은 기법으로 표현했다. 인물의 사이 공간에는 연꽃과 보리수와 인동당초문 그리고 구름과 빛을 멋떨어지게 세련된 형으로 만들었고, 작은 불상들을 새겨 넣음으로 화려하고 장엄한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바깥 테두리의 문양까지 합쳐서 보면 불교의 우주관을 볼 수 있다. 수미산의 가장 높은 곳에는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이 있고, 그 밑에 화락천(化樂天)이 있고, 그 밑에 도솔천(도率天)이 있고, 그 밑에 야마천(夜摩天)이 있고, 그 밑에 도리천(도利川)이 있으며, 그 아래 수미산(須彌山) 중턱에는 사왕천(四王天)이 있다고 한다. 이 목각탱은 그 불교의 우주관과 서방정토를 부조와 투조 기법으로 조각하여 찬란한 금니(金泥)를 바르고, 테두리 윗쪽에는 좌우에 극락조를 만들었고, 중간에는 장엄한 구름무늬를 만들어 오방색을 칠하였다. 아래쪽에는 휘장자락까지 장식한 참으로 화려하고 장쾌한 불교 예술품이다. 극락정토를 조각한 이 목각탱 앞 불단 왼쪽에는 청동거울이 있다. 연화대 대좌 위에 불꽃 모양으로 조각한 나무테 속에 원을 두 개 겹친 모양의 청동거울은 닦지 않아 푸르스럼한 동녹이 슬었지만 극락세계에 들어가기 전 자신의 신행의 모습을 비춰보는 의미를 지녔으리라. 그런데 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 청동거울은 왜 보이지를 않는가? 이 또한 어리석은 인간의 탐심이, 있어야 할 자리에 두지 못한 결과는 아닐까. 관계되는 분들은 이 청동거울의 행방을 밝혀야 한다. 이 목각탱은 조선 후기에 유행하던 목각탱의 효시가 된 예술품이며, 약 200년 뒤에 부석사에서 만들어져 대승사에 보관되고 있는 국내 최대의 문경 대승사 목각탱의 교과서였다고도 할 수 있다. 아미타여래상과 광배와 피어오르는 구름무늬를 그대로 모방했으며, 다른 불상과 문양들도 많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100년 후에 만들어진 남원 실상사 목각탱은 또 다른 구성이다.(權相憲 松臺 8輯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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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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