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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636) : 예천8경 중 용문사(8)(附 경북백일장·사생대회에서 우수상(조연정·박병준·김강민)...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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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 목각탱불(龍門寺木刻幀佛), 용문사 [遺物] : 용문면 내지리 391번지 용문사대장전(大藏殿) 내에 있는 양각 목조 탱불(陽刻木造幀佛)로, 정면 불단(佛壇)에 안치된 삼존불(三尊佛) 뒤에 있다. 1684년에 제작되어 국내의 목각탱불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중심으로 14구(軀)의 불(佛), 보살 군층(菩薩群層) 등이 조각되어 있는데, 기법이 매우 섬세하고 아름답다. 가로 2.9m, 세로 2.7m이다. →예천용문사 목불좌상 및 목각탱
용문사 목불좌상 및 목각탱(자료=예천군) : 예천신문 | 2010.04.02. 11:53/ 용문사 목불좌상 및 목각탱 (보물 제989호 1989.4.10 지정)/ 소재지 : 예천군 용문면 내지리 396/ 소유자 : 용문사 (관리자:용문사)/ 자세한 설명 : 목각탱은 용문사 대장전에 봉안되어 있는데 조선 숙종 10년(1684)에 조성되었는데 나무로 만든 후불탱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불교예술품이다. 외경은 가로 205cm, 세로 261cm, 내경은 가로 198cm, 세로 242cm이다. 조각면 중앙의 본존불은 보상당초문이 새겨진 화려한 키형 광배를 등지고 있다.(daum 2010)
용문사목조아미타불좌상 : 醴泉 龍門寺 木造阿彌陀佛坐像(자료=예천군) | 예천신문 | 2010.04.03. 11:12/ 예천 용문사 목조아미타불좌상(문화재자료 제510호 2006. 6.29 지정)/ 소재지 : 예천군 용문면 내지리 391/ 소유자 : 용문사/ 자세한 설명 : 이 불상은 1514년(정덕9)의 조성기에 의하면 원래 ‘三尊佛像’으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고, 양손을 후대에 보수하여 어색하지만 손의 위치로 미루어 아미타불상으로 추정된다. 둥근 얼굴에 이목구비가 오밀조밀하고 군살진 턱에 반개한 눈, 큼직한 백호, 귀 볼을 뚫은 점이 특징적이며 목에는 두 줄의 삼도가 나타나 있다. 보수된 양손, 목의 주름인 삼도가 선명하지 않는 등 완성도가 떨어지지만 16세기 불상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자료이다.(daum 2010)
용문사 목조지장보살좌상(龍門寺木造地藏菩薩坐像) [佛像] : 용문면 내지리 용문사에 있던 조선시대의 불상으로, 높이 50cm, 무릎너비 39cm, 김천 직지사 성보박물관(聖寶博物館)에 소장되어 있다. 나무로 모양을 완성한 뒤 금박을 입힌 보살상이다. 머리 위에 두건을 두른 모습으로 지장보살임을 알 수 있다. 수인(手印)은 엄지와 중지를 맞댄 설법인을 하고 있다. 통견의(通肩衣)를 하고 있으며 안에는 수평으로 걸쳐 입은 내의가 보인다. 가슴에는 영락 장식의 목걸이를 걸고 손과 귀에는 팔찌와 귀걸이를 하였다. 적정한 신체 각부의 비례나 나무를 다룬 모습에서 뛰어난 조각 솜씨를 엿볼 수 있다.(www.jikjimuseum.org 2002, 인터넷 한미르 2002)
용문사 보광명전(龍門寺普光明殿) [寺刹] : 용문면 내지리 용문사에 있는 본당으로, 1) 아미타경(阿彌陀經) 및 무량수경(無量壽經)을 근거로 하여 아미타불을 주불로 안치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극락전(極樂殿), 무량수전(無量壽殿), 보광전(例 : 南原 實相寺, 醴泉 龍門寺, 忠武 龍華寺)이라 한다. 아미타전이라고 했을 때는 아미타여래를 주불로 모신 불전임을 뜻하고, 무량수전이라고 했을 때는 무량수불을 주불로 한 의미인데, 아미타여래와 무량수불이 결국은 같은 여래이므로 마찬가지의 뜻을 갖는 불전이다. 극락전이라 함은 아미타여래나 무량수불의 정토를 극락이라고 한 데서 온 것이다. 아미타여래를 주존(主尊)으로 봉안하고 그 협시(脇侍)로 관음대세지보살을 봉안한다. 대웅전이 영산화상을 상징하고 있다면, 아미타전은 아미타여래의 법화인 미타화상을 상징화한 것이다. 2) 내벽 구석 창방 벽화에서는 남근(男根) 상징 머리가 강조된 '수성노인도'를 찾을 수 있고, 또 산신도(山神圖) 속의 동자(童子)가 바치는 공양물(供養物) 가운데 가끔씩 씩씩한 남근 상징의 죽순(竹筍)이 그려지기도 하였다.(윤열수, 궁서 기복 불교와 성의 사회 풍속사, 야후 2002)
용문사 부도(龍門寺浮屠), 용문사 [遺物] : 용문면 내지리 391번지 용문사 동향각(東香閣) 뒤 산록에 있는 3기의 부도로, 각기 다른 형태로 기단부(基壇部)가 지하에 매몰되어 확인되지 않으나, 상부(上部)는 석종형(石鐘形)으로 부도신(浮屠身)과 보주(寶珠)의 상륜(相輪)이 같은 일석(一石)으로 되어 있다. 부도는 원래 고승(高僧)들이 입적(入寂)한 뒤 다비(茶毘)하고 사리(舍利)를 봉안(奉安)하는 석조물(石造物)인데, 이 3기의 부도는 서산(西山, 休靜)의 9대손인 덕월, 은허, 황악 조사(黃岳祖師)의 사리 부도라 전하고 있다. [浮屠 1] : 부도신(浮屠身) 일부가 매몰되어 있고, 높이가 92cm, 부도 신(浮屠身) 62cm, 중경 (中徑) 59cm, 상륜(相輪) 높이 30cm이다. [浮屠 2] : 중판 앙련 기단(重瓣仰蓮基壇) 위에 부도신이 안치되어 있고, 같은 돌로 연(蓮)잎 안에 보주(寶珠)를 조성하여 상륜을 조영(造營)하였다. 전체 높이 130cm, 기단 높이 20cm, 폭 63cm이고, 부도신 높이 68cm, 중경(中徑) 61cm, 상륜 높이 42cm이다. [浮屠 3] : 방형(方形)의 2단 기단 위에 원형의 부도신이 안치되어 있고, 같은 형의 보주가 상륜을 구성하고 있다. 부도신에는 네 곳에 종(縱)으로 1조(條)의 돌대(突帶)를 만들어 그 사이에 염주문(念珠紋)을 연결하여 울타리를 뜻하는 조각을 각출하고, 상륜의 하단(下端)에도 같은 염주문(念珠紋)이 보주(寶珠)를 감싸고 있다. 높이 117cm, 기단 높이 31cm, 부도신 높이 53cm, 상륜 33cm이다.
용문사불교유물전시관(醴泉 龍門寺 ꡐ佛敎遺物展示館ꡑ 年末 着工) [記事] : 경북 예천군 용문면 내지리 용문사 경내에 추진 중인 ꡐ불교유물전시관ꡑ 건립 공사가 2004년 연말에 착공될 것으로 보인다. 예천군은 국비와 지방비 등 사업비 60억 원을 들여 건립할 용문사 불교유물전시관에 대한 실시 설계가 최근 시작돼 10월 경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건립 공사를 연말에 본격 착수해 2005년 말에 완공키로 했다. 유교문화권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지상 1층, 지하 1층 규모의 이 불교유물전시관(연면적 250평)에는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 수장고, 관리실 등이 들어서게 된다. 예천군은 불교유물전시관이 완공되면 각종 유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도난과 훼손을 방지할 수 있는 데다 기획전시실에서 전국의 유명 사찰이 소장한 불교 유물을 빌려 번갈아 전시해 이 곳이 ꡐ불교유물 교육장ꡑ이 되도록 할 계획이다. 870년(신라 경문왕 10)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천 년 고찰인 용문사에는 윤장대(輪藏臺․보물 684호), 용문사 교지(보물 729호), 대장전(大藏殿․보물 145호) 등 360점의 유물이 있었으나 그 동안 여러 차례 화재가 발생해 현재 대부분의 유물은 김천의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돼 있다.(최성진 記者 東亞日報 2004-06-23)
용문사불교유물전시관(龍門寺佛敎遺物展示館 : 建立基本計劃 調査硏究) [冊] : (사)한국건축박물관학회(대표이사 서상우)에서 2003년 9월 30일에 예천군수에게 최종 성과품을 제출한 보고서로, 202쪽, 사진, 표, 그림, 30cm, 2003년 9월 30일에 예천군에서 발행하였다. 목차는, 1) 건립 기본 계획/ (1) 건립 개요, (2) 전시 계획 : 현재 총 312점으로 정리된 유물 목록은, ① 전각류, ② 편액류, ③ 불상/조상류, ④ 불화류, ⑤ 영정류, ⑥ 전적류, ⑦ 제례의식 도구류, ⑧ 석물류, ⑨ 불교공예류, ⑩ 기타 유물이다. (3) 운영 관리, (4) 건축 계획, (5) 사업 추진 계획// 2) 자료 연구/ (1) 국내 유사 박물관 특성 조사, (2) 국외 유사 박물관 특성 조사, (3) 유물 및 전시 자료 조사 목록, 사진 목차, 표 목차, 그림 목차이다.
용문사 사천왕(龍門寺四天王) [遺物] : 용문면 내지리 용문사 경내에 있는 상으로, 절 들머리에 회전문(廻轉門)이라는 현판이 붙은 맞배지붕 건물 안에 커다랗게 수호신으로 만들어 놓았다. 사천왕은 동쪽에는 지국천(指國天)이 칼을 들고 있고, 남쪽에는 증장천(增長天)이 용을 잡고 있고, 서쪽의 광목천(廣目天)은 탑을 들었으며, 북쪽의 다문천(多聞天)은 비파를 들고 있는 모습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용문사 사천왕은, 광목천이 탑 대신 커다란 삼지창(三枝槍)을 들고 있으며 삼지창의 자루에 바람에 펄럭이는 휘장을 단 모습이다. 지국천은 거대한 칼을 잡고 왼손으로 칼날을 만지며 부릅뜬 눈, 꾹 다문 입으로 적을 한 칼에 베어 버릴 듯한 모습이다. 그러나 고동빛 얼굴에는 너그러운 겨레의 모습이 보인다. 거대한 왼발에 짓밟힌 잡귀는 발에 깔려서 다리를 붙잡고 일어나려고 버둥대는 모습이며, 다른 요괴 하나는 왼발을 부축하고 있다. 증장천은 오른손엔 용을 잡고 왼손엔 여의주를 들고 있다. 거꾸러져 엎어진 요괴를 발로 밟아 꼼작도 못하게 하고 있다. 짙은 고동색 얼굴에 퉁방울처럼 튀어나온 두 눈이여, 수염은 구름무늬로 도안화하였다. 광목천은 거대한 삼지창을 잡고 왼손은 허리에 댄 여유만만한 모습이다. 기어가는 요령 잡귀를 거대한 오른발로 지긋이 누르고 있다. 다문천은 비파를 들고 비파줄을 퉁긴 후의 손 모습이다. 엎어져 죽은 요괴를 발로 밟고 있는 모습이며, 흰빛의 얼굴에는 실눈을 뜨고 여유로운 웃음을 머금고 있다. 검은색 수염을 선으로 그렸으며 눈썹은 구름무늬이다. 사천왕 왼쪽 다리를 요괴들이 들고 못마땅한 표정으로 시중들고 있다. 5m나 되는 거대한 상이지만 인체의 비례가 정확하며, 표정과 자세가 개성적인 조형이다. 머리에는 모두 꽃과 구름과 불꽃과 날아가는 새로 장식한 관을 쓰고 있으며, 옷은 오방색으로 칠하고, 허리띠는 도깨비 얼굴로 장식했으며, 지국천과 증장천의 아랫도리는 수달 같은 짐승 가죽으로 가렸다. 사천왕의 크기도 크려니와 청색과 붉은 색이 대부분인 오방색의 장식과 함께 거대한 발로 요괴를 굴복시키고 있는 모습을 죄진 사람이나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보면 두려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물며 잡신을 섬기던 침략자 왜병들이야 혼비백산하여 달아났을 것이다. 사천왕이 지긋이 밟고 굴복시키고 있는 요괴들의 모습은 당 나라 군사와 왜장의 모습으로 보인다. 대머리의 요괴는 왜장의 모습이요, 다른 요괴도 복장과 쓰고 있는 모자가 당 나라의 군사이거나 왜병의 모습이다. 의병들의 지휘소였으며 군용 신발을 만들던 용문사 자운루(慈雲樓) 등 당시의 정황들로 미뤄볼 때, 회전문 안에 있는 사천왕은 호국신으로 세워졌음이 분명하며, 왜란 때 의병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한결 權相憲 2002.1.18)
용문사신도회('大義를 爲해 뜻 같이해야' : 청안 큰스님 七旬宴, 佛敎人 和合 한마당) [記事] : 예천불교사암연합회 벽담 청안(용문사) 큰스님 칠순연회를 겸한 불교인 화합 한마당 행사가 2008년 4월 17일 예천읍 홈웨딩뷔페홀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는 용문사신도회(회장 박일순)가 주최하고 대구 허청길, 대비심 보살 부부가 마련했다. 이 자리에는 청안 큰스님 및 각 사찰 주지스님, 신도회장, 신도 등 1천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으며, 김수남(예천군수) 예천불교연합신도회장을 비롯한 정용삼 경찰서장, 최명환 교육장, 이재창 군의원, 정기하 농협중앙회 군지부장, 정창모 노인회장, 최영수 군번영회장, 홍성칠 전 상주지원장 및 각급 기관단체장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청안 큰스님은 인사말을 통해 ꡒ이 산승의 칠순연에 동참해 주신 지역의 사암연합회 스님들, 바쁜 군정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빛내주신 김수남 군수님을 비롯한 사부대중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ꡓ며 ꡒ앞으로 크고 작은 모든 분야에 걸쳐서 우리 불자들이 대의를 위해 뜻을 같이하여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ꡓ고 당부하고 ꡒ예천불교회관 건립을 위한 이 산승의 소박한 소원이 이루어져 정법 홍포(弘布)와 정토(淨土) 건립의 초석이 되었으면 한다.ꡓ고 덧붙였다. 김수남 예천불교연합신도회장은 격려사에서 ꡒ평상시 큰스님의 불자들의 화합과 대중 포교에 솔선하시고 대의와 명분을 중시하며, 대화와 타협을 통해 어느 길이 올곧은 길인가를 고민하고 결정된 것에 대해서는 쉼 없이 최선을 다해 정진하시는 모습을 대하며, 예천불교신도들을 대신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ꡓ고 말했다. 용문사 박일순 신도회장은 축사에서 ꡒ지난 10여 년 동안 용문사 발전을 위하여 중창불사를 추진해 오셨습니다만 우리 신도회에서는 좋은 자리를 한번도 마련하지 못해 이번에 대비심 보살 부부의 공덕과 신도회의 마음을 모아 이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ꡓ고 밝혔다. 이어 축하떡 절단식이 있었다. 2부 연회에서는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청안 큰스님의 건강백세를 기원하고 불교인들의 화합을 도모하는 의미있는 시간을 가졌으며, 지역 불교인들의 숙원사업인 불교회관 건립을 위해 모든 불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동참할 것을 결의하였다.(醴泉新聞 2008년 04월 24일 14:03:58)
용문사 신중탱(龍門寺神衆幀) [佛畵] : 용문면 내지리에 있던 불화로, 1867년(고종 4)에 조성, 삼배에 채색, 153x318cm, 김천 직지사 성보박물관(聖寶博物館)에 소장되어 있다. 화면 왼쪽부터 제석천과 범천을 중심으로 한 명왕부(明王部), 위태천을 중심으로 한 천룡부(天龍部)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 무리는 황색, 적색, 녹색이 섞인 구름을 경계로 구분된다. 천부는 화면 왼쪽에 자리한다. 상단 오른쪽에 제석천과 범천이 합장을 한 자세로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바로 아래에 일광천자와 월광천자가 협시(脇侍)하고 있다. 이들 아래로 북, 생황, 대금 등의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천녀가 앞을 인도하고 그 뒤를 번과당을 등 천녀와 동녀가 따르면서 하늘 나라의 장엄함을 연출하고 있다. 명왕부는 화면 중앙에 자리한다. 분노한 얼굴에 여덟 개의 팔을 가진 예적 금강이 상단에 있고, 그를 중심으로 두 명의 천왕과 두 명의 보살, 여덟 명의 금강이 둘러싸고 있다. 두 명의 보살은 금강권, 금강삭, 금강애, 금강어 등 4 보살 가운데 보살로 추정되며, 여덟 명의 금강은 천제재, 벽독, 황수구, 백정수, 정성화, 청제재, 대신력, 자현신 등의 8금강이다. 천룡부는 화면 오른쪽에 자리한다. 깃털 장식의 투구를 쓰고 무장을 한 위태천은 왼쪽 맨위에 자리한다. 위태천의 오른쪽과 아래에는 여러 권속이 모여 있다. 이들 중 흰 용 수염을 하고 있는 용왕과, 부채와 영지를 든 산신, 흰 두건을 쓴 조왕신을 제외하고 다른 무신장들은 구체적인 존명을 알 수 없다.(www.jikjimuseum.org 2002)
용문사 영남제일강원(龍門寺嶺南第一講院), 용문사 [建物] : 용문면 내지리 391번지 용문사(주지 김능허) 경내에 있는 건물로, 1984년에 소실(燒失)된 것을 복원추진위원회(委員長 金秀男)에서 1992년 3월 20일에 상량(上樑)하였다.
용문사 영산회 괘불탱(龍門寺靈山會掛佛幀) [幀畵] : 용문면 내지리 용문사에 있는 탱화로, 통도사성보박물관연구원 김미경이 2002년 6월 19일에 특별전에 기고하였다.(www.tongdomuseum.or.kr 2002)
용문사 영산회 괘불탱(龍門寺 靈山會 掛佛禎) : 통도사 성보박물관 학예연구원 김미경의 논문으로, 11쪽이다. 각 장마다 각주가 있다. 목차는 1) 머리말, 2) 선교 융합된 영산회상 도상, 3) 제작 년대와 참여 화사, 4) 맺음말, 부록 : 예천 용문사 괘불 화기(畵記)이다.
1) 머리말 : ...1705년(숙종 31)에 조성된 이 탱화는 ‘용문산 창기사(龍門山昌期寺)‘라는 절 이름을 화기에 기록하고 있다. 이 탱화는 현존 작품 중 그 제작 연대에서 시기가 앞설 뿐 아니라 괘불탱화의 양식에 있어서도 후기 양식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특징을 대표할 만한 작품이라 할 것이다. 또한 도상에 있어서 사상적 기반이 선종 일색인 조선 후기 불교의 특징을 담은 법화경과 선사상의 융합 형태인 염화불(염花佛) 도상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도 이 괘불을 한 기준작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괘불탱의 도상을 이해하기 위하여는 먼저 법화경의 영산회 설법과 선가(禪家)의 삼처전심(三處傳心)에 대한 개념의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본 글에서는 법화경을 근거로 한 영산회상 염화불 도상의 특징과 화면 하단에 기록된 명문이 적힌 화기를 통해 제작 년대와 참여 화사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선교 융합된 영산회상 도상 : ...용문사 괘불은 괘불의 도상 형식 중 수직으로 가장 많이 조성된 석가 설법상의 영산회상도이며, 염화불을 묘사하였다... 마(삼배)본 채색이고, 크기는 1070x675cm의 긴 축 형태, 도상 형식은 오존여래형 입상이다. 즉, 화면을 가득 매운 밝은 구름을 배경으로 큰 반원형의 신광의 광배 안에 거대한 입상을 배치하였는데 뾰족한 육계(肉髻), 넓고 각진 사각형의 얼굴, 안정감이 있어 보이는 당당한 체구, 오른손은 어깨까지 올려 연꽃을 잡고 있고, 왼손을 가슴에 대고 있는 인상(印相), 통견의 화려한 불의 등은 전형적인 17, 18세기의 불화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본존은 양발을 어깨 넓이로 벌려 선 균형있는 자세로서 나발과 불의의 안단, 좌우 협시보살의 보발은 모두 엷은 군청색을 띄고 있다. 아난은 녹색의 승형 머리에 백색 소삼과 회색장삼, 붉은 가사를 걸쳐 짙은 고동색 바탕에 화문이 베풀어진 가사만을 걸친 가섭과 비교된다. 양 협시보살의 두광은 뒷배경이 모두 비추이는 검은 망사형의 두광으로 처리되어 있다. 도상 구성은 정면향의 본존상이 중앙에 두광과 신광을 배경으로 입상 형태를 하고, 오른손을 어깨 높이까지 들어올려 연꽃을 가볍게 잡고 있고, 왼손은 첫째, 셋째 손가락을 마주 짚어 복부 앞으로 들고 있는 모습이다. 본존 좌우측에 원형 두광을 갖춘 입상의 문수와 보현보살이 손에 연화를 들고 본존을 향해 협시해 있으며, 그 상방 뒤쪽이 본존 두광 좌우에는 아난ㆍ가섭존자가 합장하여 본존을 향한 자세로 각각 배치하고 있다. 화면에는 본존을 중심으로 2보살, 2제자만으로 권속들을 최대로 간략하게 배열하고 있다. 화면 상단에는 도상들 뒤를 구름이 에워싸고 석가불의 정상 계주에서 비치는 두 줄기의 서광이 채운 속으로 퍼져 나가고 있으며, 그 사이로는 천공이 펼쳐져 있다. 천공의 짙푸른 하늘에는 매화점문을 장식하여 무한한 공간감을 느끼게 한다. 천공의 매화점문 표현은 북장사괘불(1688)과 선석사괘불(1702)에 이어 용문사괘불(1705)까지 이어지고 있다. 특히 본 도상에서 문양의 장식은 북장사괘불의 영향이 많이 간취된다. 특히 채운과 옷자락에 베풀어진 백색과 나발 및 불의의 밝은 청색의 사용은 북장사괘불에 참여한 학능의 화법에서 즐겨 취한 색으로 보인다. 학능과 탁휘가 함께 참여한 갑사괘불이나 남장사감로탱, 선석사ㆍ용문사괘불 등에서 같은 영향을 볼 수 있다. 천공의 군청색의 표현에서 매화점문, 불보살의 천의에 시문된 이중원문과 크고 작은 연화초문은 북장사괘불과 동일하다. 선묘와 채색을 보면, 화면 중앙 본종의 육신은 황색도이고, 육신선은 가는 먹선 위에 주선을 겹쳐 긋고 있다. 따라서 흰색과 붉은 기가 감도는 두 제자의 육신색과 구별하고 있다. 머리에는 중앙 육계와 정상 계주가 표현되었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넓고 둥글면서 각진 편이다. 두 눈은 길며 눈꼬리가 위쪽으로 약간 올라가고 눈썹은 길고 산처럼 곡선이다. 코는 직선으로 내려와 그은 뒤에 양쪽 작은 콧망울을 나타내었고, 그에 비해 꼭 다문 붉은 입술은 매우 작다. 양 볼에는 각각 1조의 옴폭 패인 주름선을 긋고 콧수염과 턱수염을 표현하였다. 목에는 3조의 선을 아주 길게 그어 형식적으로 삼도를 나타내고 있다. 어깨를 감싼 불의는 바깥은 주색 바탕에 금채로 이중원문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그리고 있으며, 녹라의에는 홍녹의 연화초문을 그리고, 가슴으로 두른 군의는 금채의 연화 당초문으로서 가득 채웠으며, 하의는 연회색 바탕에 홍색 주름선과 백색 당초문을 일정한 간격으로 흩뜨리고 있다. 전반적으로 본 작품은 주로 군청과 녹청, 주색, 백색 안료 등을 사용하였고, 선묘는 주로 굵고 가는 선으로 먹선 외에 주선과 황선을 사용하였다. 권속의 표정이나 자세는 중앙을 향한 시선에 연화를 쥐거나 합장한 결인 등으로 본존의 존엄성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3) 제작 연대와 참여 화사 : 이 괘불은 화기에 의하면, 괘불을 조성한 목적을, ‘성상전하 수만세, 왕비전하 수제년, 세자구하 수천추 등(聖上殿下 壽萬歲, 王妃殿下 壽齊年, 世子邱下 壽千秋 等)’이라 하고 있어 왕실의 번영 및 수복강녕을 발원하며 제작한 것으로서 발원문이 주목을 끌게 한다. 척불숭유정책 하의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용문사는 왕실로부터 옹호를 받은 편임을 알 수 있다. 용문사에 전하는 것으로 보물 제729호로 지정된 교지는 1457년(세조 3)에 왕이 직접 잡역을 감해주라는 명을 내렸던 문건이다. 한편 1478년(성종 9)에는 소헌왕비의 태를 이 곳에 안장하였고, 그 후 1738년(정조 7)에 와서도 문효세자의 태를 장치했을 정도로 왕실과 밀접한 관련을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화기를 보면, 이 괘불의 제작 연대를 ’강희 사십사년 을유 사월(康熙 四十四年 乙酉 四月)‘이라 하여 1705년(숙종 31)임을 알게 한다. 그리고 음력 4월에 조성하여 경상좌도 예천군 북쪽의 용문산 창기사(龍門山 昌期寺)에 봉안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괘불의 봉안과 관계된 인명을 밝히고 있는데, 시주에는 92명의 승속(僧俗)이 관여되었다. 이 중 일반 시주자가 28명으로 대거 참여하고 있으며, 이들은 일반 보시자이고, 후배지 및 바탕 시주자로는 비구 광섭(廣攝)이 대화주로, 설오(雪悟)가 화주로서 불사를 주도하는 등 승려가 참여한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화질에는 증명산인 도모(證明山人 道母) 등 16명의 인명이 기록되어 있다. 소임별로 증명(證明)ㆍ지향(知香)ㆍ화원(畵員)ㆍ취홍(炊洪)ㆍ부목(負木)ㆍ별좌(別座)ㆍ화주(化主)로 나누고 있다. 화원으로는 성징(性澄)을 비롯하여 7명을 나열하고 있다. 이 창기사의 영산회 괘불 제작 불사에 관계한 화원은 총 7명이고, 그 가운데 우두머리격인 책임자는 성징임을 알 수 있다. 성징은 이보다 4년 앞서 제작된 상주 남장사감로탱(1701)에서 탁휘(卓輝) 등 7명의 화원과 함께 참여하였으며, 이듬해인 1702년 선석사괘불탱 제작에 동행하여 공동으로 불화를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성징은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초까지 봉정사에 상주하며 활동한 것으로 짐작되는 학능(學能) 화사 집단의 탁휘와 함께 남장사, 선석사 불화 제작에 참여했다는 점 등을 생각하면 성징은 경상도 지역 화승으로 학능-탁휘의 화맥을 계승하고 있다 하겠다. 그러나 이 또한 추정에 불과할 뿐 불분명한 성징의 화맥만큼 정확한 출신 사찰도 알 수 없다. 또한 18세기 전반의 성징과 중후반에 경상남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인물이 동일인일 경우 더욱 혼란스러워 진다. 성징의 활동을 살펴보면, 1701년 탁휘를 총감독으로 한 설잠(雪岑) 등과 함께 남장사감로탱을 제작한 후 이들 그룹은 이듬해인 1702년 탁휘가 주도하는 선석사괘불 제작에 설잠ㆍ법해(法海)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1705년 용문사괘불 제작에서 비로소 성징은 총괄 책임자가 되었고, 1724년 직지사감로탱을 총괄한 것을 보면 이 때 그의 필력이 무르익었을 시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성징은 경북 일원의 선석사ㆍ남장사ㆍ용문사ㆍ직지사 등의 사찰을 중심으로 18세기 전반에 활약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30여 년이라는 시간적 공백기 이후, 18세기 중반에서 후반에 이르는 시기에 등장하는 성징이라는 화승(畵僧)이 새로이 주목된다. 후자의 인물은 조선 중ㆍ후반기 통도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18세기 통도사를 근거로 크게 활약한 임한(任閑) 주도의 운문사 비로전 삼신불탱화(1755)와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삼장탱화(1755) 제작에 참여하였고, 통도사괘불(1767) 등을 제작하였다. 18세기 중반 경부터 경상남도 지역을 중심으로 새로이 등장하는 성징이라는 화승이 전반기의 성징과 동일인이라면, 그는 사불산과 황악산을 중심으로 한 경상북도 일원에서 활약하다가 내려와 경상남도 통도사를 근거로 활약 무대를 넓혀갔거나, 혹은 후기의 성징이란 화승이 전혀 다른 인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만일 전후기의 인물을 동일인으로 본다면 성징이 참여하였던 불화 제작 시기는 1701년부터 1767년에 이르기까지 약 70여 년 간이다. 그리고 18세기 후반부터는 불화 제작에 직접적인 참여는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만약 1701년 남장사불화 제작 시기를 성징이 나이 10대 후반으로 본다면, 70여 년이라는 활약상은 매우 드문 경우였을 것이다. 그 뒤 확인되는 자료로 1775년 통도사 영산전팔상탱 화기에 전 주지로 적고 있고, 1792년 제작된 통도사괘불과 삼장탱의 송주질에는 각각 “비구성징(比丘性澄)‘과 ’선덕성징(禪德性澄)‘으로 기재되어 있다. 1724년에서 1755년까지 30여 년이란 시간적 공백기가 의심이 들지만 만약 전자와 후자를 동일인이라고 본다면 그는 1750년대부터는 경남으로 이동하여 활약 무대를 넓혔고, 1792년까지는 생존하여 활동한 것이 된다. 한편 1701년 10대 후반의 어린 나이에 감로탱이라는 큰 불화 제작에 선두 그룹이 될 만큼 일찍부터 특출하였음에도 그의 행적에 관해 알려진 바가 없는 점, 또한 한창 필력이 무르익었을 시기에 30여 년이란 공백기를 가진 점, 또 하나는 화승으로서 주지를 역임했다는 사실과 80세를 전후한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송주로 기재된 점 등으로 보아 경북 지역과 경남 지역에서 활동했던 인물을 다른 사람으로 봐야 할 것인지 의문이 든다. 이러한 몇 가지 의문점은 계속되는 기록 자료의 발굴과 연구를 통해 하나씩 풀어가야 할 과제이다.
4) 맺음말 : 생략
부록 : 예천 용문사 괘불 화기(畵記) : ...공양대시주(供養大施主, 朴加音叉(必), 高眞香, 安?立), 대시주(朴仁弼, 禹成龍, 裵巨侍, 安命業, 朴萬祥, 金碩奉, 林宗立, 申命丑, 邊大元, 金是建, 朴成得, 金天金, 金莫龍, 黃碧山, 裵巨侍, 姜太生, 黃召史, 金雲望, 金石伊, 朴乭女, 張瑞仁, 黃今奉, 鄭元伊, 金斗乞, 申哲光, 朴占萬), 후배지시주(後排紙施主, 以下 法名은 比丘임, 太奎, 金命伊, 靈信, 克禪, 廣濟, 圓善, 智禪, 處益, 無俊, 文獻, 斗習, 廣喧, 草根, 取密, 呂澤봉, 太裕, 信全, 信念, 靈談, 海淳, 冲悅, 密彦, 敬坦, 海藏, 草文, 克敏, 三訥, 希旭, 震屹, 儀(僅)寬, 仁瓊, 希印, 信衍, 三雄, 震儀(僅), 三淨), 본사(本寺, 三綱住持 戒玄, 祖然, 首僧 裕察, 三補 禪澄, 老德 惠英, 妙熙, 法律, 忠惠, 惠學, 覺哲, 道均, 海月, 心寶), 산중(山中 本德 天印大師), 연화질 16명(緣化秩, 證明山人(1명) 道母, 知香(1명) 進悟, 畵員(7명) 性澄, 畵員 愼淨, 畵員 效安, 釋機, 圓認, 心日, 双會, 炊供(3명) 法連, 秀瓊, 戒習, 負木(1명) 德澄, 別座(1명) 宗悅, 化主(1명) 雪悟, 婆湯大施主 兼 大化主 淸風?子(1명) 廣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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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백일장·사생대회에서 우수상(조연정·박병준·김강민)... 축하합니다.
예천교육지원청(慶北어린이白日場·寫生大會(安東) 入賞者 名單) [記事] : □백일장 ◇운문부 △우수상 ...조연정(예천남부 6-1).../ □사생대회 ◇고학년부 △우수상 ...박병준(예천남부 5-1).../ ◇유치부 △우수상 ...김강민(예천사랑어린이집)...(慶北每日新聞 2014.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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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