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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642) : 예천8경 중 용문사(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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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용문사 성보유물관(千年古刹이자 佛敎文化의 寶庫로 널리 알려진 龍門寺 성보遺物館 竣工式) [記事] : 천년고찰이자 불교문화의 보고로 널리 알려진 용문사 성보유물관 준공식이 2006년 11월 5일 오후 2시 김수남 군수, 김관용 도지사, 신국환 국회의원, 남시우 군의장, 윤영식 도의원, 홍성칠 대구지법 상주지원장, 각 기관단체장, 직지사 녹원 스님, 청안 용문사 주시 스님, 주민 등 3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됐다. 오늘 준공식은 정인호 기획감사실장의 사업추진 경과보고에 이어 김수남 군수에게 지역 발전과 군민의 복지 증진을 위해 불철주야 헌신하여 선진 지방자치단체로 인정받고 특히 불교문화의 계승 발전과 용문사 성보유물관 건립에 기여한 공으로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지관(智冠․전 가산불교문화연구원장) 스님의 감사패를 전수받았다. 또 성웅 스님(직지사 주지)은 예천군청 문화관광과 김용규 씨와 시공사인 대림건설 정하록 대표에게 공로패를 수여하고 그간의 노고를 치하했다. 김수남 군수는 기념사에서 "예천군의 자랑거리인 성보유물관이 완벽하게 건설될 수 있도록 많은 협조를 해 준 군민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특히 시공사와 담당 공무원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김관용 도지사는 격려사를 통해 "지발 좀 잘 먹고살고 자식 취직 잘 되는 살기 좋은 경북도를 만들어 표를 많이 몰아준 예천군민들에게 보답할 생각"이라며 "도지사가 땅을 밟으면 뭔가 달라진다는 속언도 있는데 김수남 군수와는 나이도 똑 같고 자치단체장도 같이 한 만큼 앞으로 예천에 큰 사업들이 성사될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시우 군의장은 "성보유물관 준공식을 축하하고 참석한 모든 불자님들의 가정에 행운과 축복이 충만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신국환 국회의원은 용문사 청안 주지스님이 오신 이후 많은 일을 하고 있으며 여기에 김수남 군수가 독실한 불교 신자로 예산 지원을 확대한 결과 성보유물관이 건립되게 됐다"며 청안 스님과 김 군수를 칭찬했다. 직지사 녹원 회주 스님은 법어를 통해 "청원 스님이 용문사에 온 이후 성보유물관을 건립한 것을 큰 업적으로 생각하며 김수남 군수의 후원에 불자들을 대표해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용문사 청안 주지스님은 "북부유교문화권 개발사업에 포함될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해 준 김수남 군수에게 감사를 드리고 앞으로 용문사는 수행과 기도, 그리고 성숙의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오늘 용문사 행사의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용문사 입구에서 전면 차량을 통제하고, 행사장과 주변에도 안전요원을 배치하는 등 관람객의 교통편의 제공과 안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이날 개관, 일반에 공개된 성보유물관은 지하 1층, 지상 1층 연건평 247평 규모의 현대식과 전통양식 구조 건축물로 군이 사업비 60억 원을 투입 지난 2005년 3월 착공 1년 10개월 만에 준공됐다. 특히, 보물 제684호인 국내 유일의 회전식 불경보관대인 윤장대 모형을 비롯한 탱화, 영정 등 불화류와 불상, 제례의식 도구, 전적류, 기타 유물 208점과 훼손 등으로 전시가 불가능한 유물을 보수 정비해 전시하게 된다. 성보유물관 준공기념 경축행사로 오후 4시 대한불교방송 주최 불자가수회 지역예선 노래자랑이 펼쳐지고, 6시부터는 안동문화방송이 진행하고 중견 개그맨 김병조 씨의 사회로 현철, 태진아, 송대관, 최석준, 립스, 박주희, 남궁옥분, 길건, 붐 등 인기가수 초청 산사음악회가 계속된다. 오늘 행사에는 입추의 여지없이 용문사 경내에 3천여 명의 주민들이 참여하여 소백산 자락이 떠들썩하고 있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6-11-05 오후 12:21:10)
예천 용문사 승 각화사 수번물침 완문(醴泉龍門寺僧覺華寺守番勿侵完文) [古文書] : 안동영(安東營)에서 편찬(便撰)한 고문서로, 1책(4張), 원본(原本), 33.2x30.4cm, 6행 자수부정(六行字數不定), 1738년(영조 14)에 작성되었다. 동국대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keris 2002)
예천용문사 승 각화사 수번물침 완문(醴泉龍門寺僧覺華寺守番勿侵完文) [冊] : 안동영(安東營)에서 편찬한 원본(便撰 原本)으로, 1冊(4張), 33.2x30.4cm, 6행(行) 자수부정(字數不定), 1738년(英祖 14)에 발행하였다. DDC 218.61, 소장된 대학도서관은 동국대(중앙)이다.(keris 2005)
예천용문사 승 각화사 수번물침 완문(醴泉龍門寺僧覺華寺守番勿侵完文) : 저편자: 安東營使 發/ 발행자: [刊寫者未詳]/ 날짜: 1738/ 분류: 목록·해제 > 목록 > 한국고전적종합목록/ 제공: 한국고전적종합목록/ 표제/책임표시사항 醴泉龍門寺僧覺華寺守番勿侵完文 / 安東營使 發/ 판사항 筆寫本(原本)/ 발행사항 [韓國] : [刊寫者未詳], [英祖 14(1738)]書/ 형태사항 不分卷1冊(4張) : 無界, 6行字數不定, 註雙行 ; 33.2 x 30.4 cm/ 주기사항 年記: 戊午(1738)十一月 日/ 紙質: 楮紙/ 번호 지역 도서관명 청구기호/ 1 서울(11)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 D218.61-안225ㅇ//
예천용문사 승 서악사 수번혁파 완문(醴泉龍門寺僧西岳寺守番革罷完文) : 저편자: 暗行御史 編/ 발행자: [刊寫者未詳]/ 날짜: 1854/ 분류: 목록·해제 > 목록 > 한국고전적종합목록/ 제공: 한국고전적종합목록/ 표제/책임표시사항 醴泉龍門寺僧西岳寺守番革罷完文 / 暗行御史 編/ 판사항 筆寫本(原稿本)/ 발행사항 [刊寫地未詳] : [刊寫者未詳], 哲宗 5(1854)寫/ 형태사항 1冊(5張) : 無界, 8行字數不定 註單行, 無魚尾 ; 35.5 x 30.5 cm/ 주기사항 冊首 : 暗行御史出道時成冊/ 筆寫本/ 表紙墨書: 甲寅(1854)十月日/ 紙質: 楮紙/ 번호 지역 도서관명 청구기호 시작권호(권차)/ 1 서울(11)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 218.61- 암92ㅇ 冊1//
예천 용문사 승 서악사 수번혁파 완문(醴泉龍門寺僧西岳寺守番革罷完文) [文書] : 암행어사(暗行御史)가 지은 문서로, 5장, 30cm이다. 서울 동국대도서관에서 1983년에 출판하였는데, 동국대학교 경주도서관에 소장(청구기호 226.3 암92도)되어 있다.(인터넷 야후 2001, keris 2002)
예천용문사 승 서악사 수번혁파 완문(醴泉龍門寺僧西岳寺守番革罷完文 : 暗行御史 出道時 成冊) [冊] : 암행어사가 작성한 책으로, 1책(5張), 35.5x30.5cm. 선장(線裝). 8행(行) 자수부정(字數不定), 주쌍행(註雙行), 원본의 책머리(原本 冊首)에 ‘暗行御史出道時成冊 所藏印: 御使手決’이 있고, 지질(紙質)은 저지(楮紙), 1854년(哲宗 5) 필사(筆寫)하였다. DDC 218.61이고, 소장된 대학 도서관은 동국대(중앙)이다.(keris 2005)
예천 용문사 승 학화사 수번물침 완문(醴泉龍門寺僧學華寺守番勿侵完文) [文書] : 안동영사가 1738년(영조 14)에 지은 문서로, 동국대학교 경주도서관에 소장(청구기호 218.61 안225ᄋ)되어 있다.(인터넷 야후 2001)
예천 용문사에 불교유물전시관(醴泉 龍門寺에 佛敎遺物展示館) [記事] : 예천군에서 유교문화권개발사업으로 추진 중인 용문사불교유물전시관 건립 공사가 기본 계획안 수립으로 활기를 띠고 있다. 군은 2004년 10월 사업비 60억 원을 들여 예천군 용문면 내지리 용문사 경내에 250평 규모의 불교유물전시관 건립 공사에 착공, 오는 2005년 12월 완공할 계획이다. 군은 2004년 3월 기본 및 실시 설계 용역에 착수, 동년 4월 건물 형태 및 용도 이용 계획 실무 협의를 마치고 5월 기본 계획안 3개 안을 확정, 기본 계획 도면 작성에 들어갔다. 또 5월 말까지 기본 계획 도면이 작성되면 6월 전시 및 실시 설계 협의를 거쳐 실시 설계에 들어간다. 천 년 고찰 용문사는 여러 차례 화재로 절 소유의 유물을 본사인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관리 보관해 오고 있으며 용문사와 직지사에 보관 중인 유물은 고승들의 영정, 불교 공예품, 경전, 교지 등 약 310점에 이르고 있다. 특히 용문사 불교유물전시관이 완공되면 사찰 소장 문화를 체계적으로 관리, 도난과 훼손을 방지하고 불교 유적 체험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每日新聞 2004.5.24)
예천용문사 영산회괘불탱(寶物 指定 豫告) [記事] : 2005년 4월 낙산사 산불로 소실된ꡐ낙산사동종ꡑ이 보물에서 지정이 해제됐다. 또ꡐ오리 이원익 영정ꡑ등 3건은 보물로 추가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2005년 4월 5일 강원도 속초 낙산사 일원의 산불로 소실된 보물 제479호인ꡐ낙산사 동종ꡑ을 2005년 7월 7일자로 지정에서 해제 고시하기로 했다고 2005년 7월 5일 밝혔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ꡒ지난달 말 문화재위원회의 심의 결과 보물 지정에서 해제하기로 결정했다ꡓ며, ꡒ복원은 추진 중이지만 이미 문화재의 원본이 소실, 지정 가치를 상실했기 때문에 해제키로 했다ꡓ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또 이날, ꡐ오리 이원익 영정ꡑ(보물 제1435호), ꡐ거창 농산리 석불입상ꡑ(보물 제1436호), ꡐ양촌 응제시ꡑ(보물 제1090-1) 등 3건을 보물로 추가 지정했다. 문화재청은 이와 함께 백자대호 등 10건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이번에 예고된 보물은ꡐ백자대호ꡑ5건, ꡐ예천용문사 영산회괘불탱ꡑ, ꡐ남해용문사 괘불탱ꡑ, ꡐ일월반도도팔첩병ꡑ, ꡐ왕세자 탄강진하도십천병ꡑ, ꡐ은입사귀면문철퇴ꡑ등이다.(최태영 記者 머니투데이 2005.7.5 (화) 15:13)
예천용문사 영산회괘불탱(佛畵 2點 寶物 指定) [記事] : 문화재청(청장 유홍준)은 '예천용문사영산회괘불탱'(醴泉龍門寺靈山會掛佛幀)과 '남해용문사괘불탱'(南海龍門寺掛佛幀) 2점을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보물로 지정했다고 2005년 9월 6일 밝혔다. 괘불탱(掛佛幀)이란 부처나 보살의 초상 또는 경전의 내용을 그려 큰 괘도처럼 벽에 거는 그림을 이른다. 이번에 보물 제1445호로 지정된 '예천용문사영산회괘불탱'(가로 674.5㎝, 세로 1097㎝)은 경북 예천군에 위치한 용문사의 탱화로, 괘불탱으로서는 비교적 빠른 시기에 해당하는 1705년에 제작된 작품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 그림 대해, "둥글넓적해진 얼굴에 근엄함이 엿보이고, 어깨가 약간 올라가는 등 17세기에서 18세기로 넘어 가는 과도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보살상이 아닌 부처상으로써 지물(연꽃가지)을 드는 새로운 도상의 예로 조선시대 불화 연구에 학술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보물 제1446호로 지정된 경남 남해군 용문사의 '남해용문사괘불탱'(가로 613.7㎝, 세로 925.5㎝)에 대해서는 "인물의 형태, 표정, 신체 비례 등에 있어 18세기 중반 이후 불화의 전형적인 양식을 잘 보여주고, 조화롭고 세련된 표현 기법으로 18세기 중반 이후 불화 연구의 자료적 가치가 커 보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김용래 記者 聯合뉴스 2005년 9월 6일 (화) 11:26)
예천용문사 영산회괘불탱(龍門寺 靈山會掛佛幀 寶物 指定 : 朝鮮時代 佛畵 硏究 및 學術的 資料 價値 커) [記事] : 문화재청(청장 유홍준)은 2005년 9월 7일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용문사영산회괘불탱'을 보물(제1445호)로 지정하였다. 문화재청은,ꡒ용문사 영산회괘불탱은 괘불탱으로서는 비교적 빠른 시기에 해당하는 1705년에 조성된 작품으로 17세기에서 18세기로 넘어 가는 과도기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보살상이 아닌 부처상으로 지물(연꽃가지)을 드는 새로운 도상의 예를 보여주어 조선시대 불화 연구에 학술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다ꡓ고 보물 지정 사유를 밝혔다. 괘불탱의 전체 크기는 가로 674.5㎝, 세로 1,097㎝이고, 그림 크기 가로 611.8㎝, 세로 1,002.5㎝이다. [# 용문사 영산회괘불팅 보물(제1445호) 지정 사유] : 입상의 삼존불상을 배경으로 본존불상 머리 좌우에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를 배치시켜 5존도 형식을 취하였다. 삼존불상 가운데 통견(通肩)의 적색 대의(大衣)에 밝은 회청색 내의를 착용한 본존 불상은 머리 높이가 180㎝이고, 머리 광배의 폭만도 무려 273.㎝에 이르러 10미터가 넘는 화면 전체를 다 차지할 정도로 큼직하게 그려있다. 적색 대의에는 봉황문과 화문, 격자문, 연화문 등의 둥근 무늬가 전체에 걸쳐 정연하게 시문되어 있으며, 내의에는 흰색의 연꽃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본존불 하단 좌․우로는 협시보살상을 배치하였는데 두 상 모두 손 모습과 천의(天衣)의 표현만 약간 다를 뿐 본존불을 향해 몸을 틀고 있는 신체의 자세 및 벌리고 서 있는 발의 모습, 인물의 크기와 형태, 보관, 지물 등이 거의 대칭을 이루고 있다. 화면 상단 본존불상의 머리 좌․우에는 가섭존자와 아난존자가 자리하였으며, 배경으로는 황․적․청․녹색의 색구름대(彩雲帶)를 깔고 감청색의 하늘을 두어 공간감을 부여해주고 있다. 또한 그림 내부 하단 가운데 쪽에 왕실의 안위를 발원하는 내용의 글이 있으며, 테두리 하단부에는 화기가 있다. 이 괘불탱은 괘불탱으로서는 비교적 빠른 시기에 해당하는 1705년 조성의 작품으로, 둥글넓적해진 얼굴에 근엄함이 엿보이며, 어깨가 약간 올라가는 등 17세기로부터 18세기로 넘어 가는 과도기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보살상이 아닌 부처상으로써 지물(연꽃가지)을 드는 새로운 도상의 예를 보여주어 조선시대 불화 연구에 학술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다.(醴泉新聞 2005-09-16 10:31:42)
예천용문사 왕비태실(醴泉龍門寺 王妃胎室) [胎室] : 용문면 내지리 391번지 용문사의 동쪽 봉우리 남단에 있는 화강석비로, 비석은 화강석 기단 위에 이수(螭首), 비신(碑身)과 구부(龜趺)로 이루어져 있다. 1478년(성종 9) 2월 14일에 세워졌다. 비의 앞면에는 ’王妃胎室‘이라 각자되어 있고, 뒷면에는 ’成化十四年二月十四日‘이라고 음각되어 있다. 이수는 폭 50cm, 높이 36cm, 두께 22cm이고, 비신의 크기는 폭 49cm, 높이 75cm, 두께 22cm이다. 구부는 가로 110cm, 세로 170cm, 높이 100cm이다.(文化遺蹟分布地圖 醴泉郡 2005)
예천용문사 왕비태실 [記事] : 예천의 자랑(1346): 예천용문사 왕비태실은 제헌왕비태실(연산군태실)이다 / 예천용문사 왕비태실 [記事] : 성종실록 75권/ 성종 8년( 1477 정유 / 명 성화(成化) 13년) 1월 5일 갑진 3번째 기사/ 동지사 이승소가 왕비의 태실에 수호군을 정할 것을 아뢰다/ 주강(晝講)에 나아갔다. 강(講)하기를 마치자, 동지사(同知事) 이승소(李承召)가 아뢰기를, ꡒ왕비(王妃)의 태실(胎室)6972) 의 수호군(守護軍)은 법에 두도록 되어 있습니다. 중궁(中宮)의 태실이 경상도 예천(醴泉)에 있으니, 사람을 보내어 다시 살펴서, 그 산이 불길(不吉)하거든 길(吉)한 곳으로 옮겨 모시고 수호군을 정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ꡓ하였는데, 임금이 말하기를, ꡒ수호군을 두면 경작(耕作)을 금하는가?ꡓ하니, 이승소가 대답하기를, ꡒ그렇습니다.ꡓ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ꡒ경작을 금하면 백성의 폐해가 많을 것이니, 아직 그대로 두도록 하라.ꡓ하였다.(○御晝講。 講訖, 同知事李承召啓曰: ꡒ王妃胎室守護軍, 於法有之。 中宮胎室, 在慶尙道醴泉, 請遣人更審, 若其山不吉, 則移安吉地, 定守護軍何如?ꡓ 上曰: ꡒ若置守護軍, 則禁耕乎?ꡓ 承召對曰: ꡒ然。ꡓ 上曰: ꡒ禁耕, 則民弊多矣。 姑置之。ꡓ)/ 【영인본】 9 책 406 면/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종사(宗社)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註 6972]태실(胎室) : 궁가(宮家)의 태를 묻는 석실. ☞(www.history.go.kr 2007)/ 왕비 태실비(王妃胎室碑) : 1478년(成宗 9) 2월 14일에 왕후(王后)의 태실(胎室)을 용문사 동쪽 봉우리 남단(南端)에 봉안하였다. 용문사 동쪽 200m 거리에 위치한다. 이 태실의 석함(石函)은 일제 때 구황실 재산관리사무소(舊皇室財産管理事務所)에서 발굴해 가고, 지금은 태실의 외실(外室)과 비신(碑身) 및 구부(龜跌)만 남아 있다. 비신(碑身)은 높이 110cm, 너비 47cm, 두께 32cm이고, 구부(龜趺)는 높이 68cm, 횡경(橫徑) 122cn, 종경(縱徑) 154cm이고, 이수는 길이 53cm, 지름 53cm인데, 재료는 화강암(花崗岩)이다. 비신(碑身)은 다소 파손되었는데, 1977년에 용문면 내지2동 동민들의 협조로 복원시켜 놓았다. 비신의 정면에는 "왕비태실(王妃胎室)"이라 명기(銘記)되고, 후면에서"성화 14년 2월 14일(成化十四年二月十四日)"이라고 음각(陰刻)되어 있다./ 제헌왕후(齊獻王后) [記事] : 주제별연표 / ID : ch_wo_1504_05_06_0010 / 날짜 [AD] 1504-05-06L0 / 내용 : 폐비 윤씨를 제헌왕후로 추숭함./ ≪연산군일기≫ 권53, / 이름 : 폐비 윤씨 제헌왕후/ 주제어 봉작 / 출전 ≪연산군일기≫ 권53(www.history.go.kr 2007)/ 제헌왕후(齊獻王后) [記事] : 연산군일기 53권/ 연산군 10년( 1504 갑자 / 명 홍치(弘治) 17년) 5월 6일 을미 1번째 기사/ 백관을 거느리고 제헌 왕후를 인정전에서 추숭하다/ 왕이 백관을 거느리고, 옥책 금보(玉冊金寶)를 진열하고 제헌 왕후(齊獻王后)를 인정전에서 추숭(追崇)하였다. 전교하기를, ꡒ추숭은 특별한 예이다. 도감(都監)의 제조(提調)․낭청(郞廳)과 옥책 금보를 쓴 사람들에게 따로 은혜를 더한다. 예조 판서 김감(金勘)은 재주가 있고 또 이 일에 종사하기를 매우 부지런히 하였으니, 자품(資品)을 올리려고 하는데 어떤가?ꡓ 하니, 승지들이 아뢰기를, ꡒ성상의 하교가 지당하십니다.ꡓ 하였다. 명하여 제조․낭청과 여러 집사(執事)들의 이름을 써서 아뢰게 하였다.(○乙未/率百官, 陳冊寶, 追崇齊獻王后于仁政殿。 傳曰: ꡒ追崇別例也。 都監提調、郞廳及冊寶書寫人等, 別加恩數, 而禮曹判書金勘有才, 又從事於此甚勤, 欲超資何如?ꡓ 承旨等啓: ꡒ上敎允當。ꡓ 命書提調、郞廳及諸執事以啓。)/【영인본】 13 책 621 면/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사급(賜給) / *인사-관리(管理)/(www.history.go.kr 2007)/ 예천용문사 제헌왕후태실(醴泉龍門寺 齊獻王后胎室) [記事] : <성종실록> 중에 “중궁(中宮)의 태실이 경상도 예천(醴泉)에 있으니...”라고 하였다. 중궁(中宮, 中宮殿, 中殿, 坤殿)은 왕후를 높여 이르는 말이다. 성종의 왕비는 공혜왕후 한씨(恭惠王后 韓氏), 폐비 윤씨(廢妃 尹氏, 燕山君의 母, 1504년 齊獻王后 追封), 정현왕후 윤씨(貞顯王后 尹氏, 中宗(1488-1544. 재위 1506-1544)의 母, 1480 왕비 책립) 3명이다. 공혜왕후(1456(세조 2)-1474(성종 5))는 이조 성종(成宗)의 비로서 성은 한(韓), 본관은 청주(淸州),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 명회(明澮)의 딸이고, 1467년에 결혼식을 올렸고, 1469년 성종 즉위로 왕비에 올랐다. 1498년(연산군 4)에 휘의신숙(徽懿愼肅)으로 휘호(徽號)를 추상(追上)하였다. 소생은 없으며 능은 순릉(順陵)이다(國史大事典 1963). 연산군(1476(성종 7)-1506(중종 1))은 이조 10대 왕, 재위 1494-1506, 1483년(성종 14)에 세자로 책봉, 생모는 폐비 윤씨이다. 폐비 윤씨는 성종의 왕비, 연산군의 생모이다. 1477년(성종 8)에는 비상을 사용하여 왕과 그의 후궁을 독살하려는 등의 협의가 발각된 뒤부터 왕과 왕의 모후인 인수대비의 미움을 받게 되었다. 1479년 6월에 서인으로... 1482년에 사사(賜死)되었다. 1504년 5월 6일에 제헌왕후(齊獻王后)로 추숭(追崇)되었다.
이상의 기록에서 볼 때 ‘예천용문사 왕비태실’은 세종대왕의 왕비인 소헌왕후 심씨의 태실비(국사대사전(1963)의 기록)는 아니고, 성종의 생모인 소혜왕후(1437-1504) 한씨의 태실비(직지사 성보박물관의 기록)도 아니고, 성종의 첫째 중궁인 공혜왕후 한씨의 태실비(자녀없음)도 아니고, 성종의 셋째 중궁인 정현왕후 윤씨의 태실비(비 건립 후(1480) 왕비됨)도 아니다. 그렇다면 성종의 둘째 중궁인 제헌왕후 윤씨(1455년 이후에 부임한 예천군수 尹起畎의 딸, 폐비 윤씨, 燕山君의 生母)의 태실비가 틀림없다. 즉 권기모(權奇謨, 大昌中 卒業)가 예천군청 홈페이지(2001.9.12)에서 이르기를, “일제 강점시 이왕직에서 태실을 조사할 당시 태지석에는, ”景泰 六年(단종 3, 1455) 閏六月 初一日生 王妃 尹氏胎 成化 十四年(성종 9, 1478) 十一月 十二日 午時 葬“이라고 한자로 기록되어 있었다.” 라고 하였다. 예천용문사 왕비태실은 제헌왕후 윤씨가 1476년에 아들(후 연산군)을 낳으면서 왕비(중궁)로 책봉되어 연산군의 태를 예천 용문사에 안치하였다. 그리하여 1477년(성종 8) 1월 5일에 동지사 이승소가 왕비의 태실에 수호군을 정할 것을 아뢰었고, 이듬해인 1478년(성종 9) 5월 14일에는 안태사 한성판윤 서거정에 의하여 점혈되어 태가 묻어지고, 태실비가 세워졌다. 그리고 동년 11월 12일에 같은 장소에 태지석(胎誌石)을 다시 묻었다. 이는 제헌왕후(1455년 출생)가 어릴 때 예천군수 윤기견(1455년 이후 부임)을 따라와서 예천에서 살았기에 연산군의 태실을 예천 용문사에 안치하기를 원하였을 것이다./ →예천의 자랑(220) : 용문사의 태실은 누구의 것일까?(예천용문사 왕비태실비) (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3-3-27(9:51:0) 照會 157)/ →<예천의 자랑> 제2권(張炳昌 著 2004年) 303~304쪽(作成 張炳昌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7-05-01 오후 3:15:11)
예천용문사 윤장대(眞理의 바퀴를 돌려 慈悲로움을 求한다/ 醴泉 龍門寺 輪藏臺) [記事] : 박부하의 기사로, 서울 다른세상에서 1999년에 발행한 <산사의 미를 찾아서>(245쪽, 주로 색채, 삽도, 21cm, 寫眞目錄 244-245쪽) 중 208-214쪽(7쪽 分量)에 수록되어 있다. 한양대학교 안산도서관 과학기술자료실Ⅱ(4층)에 소장(청구기호 726.143 박44ㅅ=3)되어 있다.
예천용문사 윤장대(드라마ꡐ薯童謠ꡑ의 輪藏臺-元祖는 醴泉 龍門寺) [記事] : SBS 드라마ꡐ서동요ꡑ에서 선화공주가 서동(장이)을 생각하며 돌던 윤장대로 인해 불교문화재인 윤장대가 관심을 끌고 있다. 윤장대가 원형대로 보존돼 있는 곳은 경북 예천 용문사. 신라 제48대 경문왕 때 세워진 천년고찰로 많은 국보급 문화재를 갖고 있는데 이 중 900여 년 전 고려 명종에 제작된 윤장대(보물 제684호)는 특이한 불교 문화유산이다. 윤장대가 있는 대장전 앞에는 `윤장대를 돌리지 마세요.' `CCTV 촬영 중'이라는 안내문이 내걸려 대중적 인기를 말해준다. 대장전안에는 금빛 찬란한 목각탱화 좌우에 석등 모양의 윤장대가 각 하나씩 있다. 이전에는 윤장대를 아무나 돌릴 수 있었으나 2년여 전부터 훼손을 우려해 매년 음력 3월 3일과 9월 9일에만 돌릴 수 있도록 했다. 그러자 몰래 윤장대를 돌리는 사람들이 있어ꡐCCTV촬영ꡑ등 경고문을 내걸었다. 좌우 윤장대는 크기(높이 4m), 모양은 같지만 왼쪽은 꽃창살 무늬, 오른쪽은 빗살무늬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는 것이 다르다. 청안 주지스님은, "불경을 넣은 윤장대를 돌리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이 온 세상에 퍼지라는 것이요, 불경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돌리면 불경을 읽는 효과를 얻는다."고 설명했다. 또 윤장대를 돌리면서 소원을 빌면 성취가 되고, 일생 동안 쌓은 업장이 소멸된다고 전해져 윤장대 자체가 신앙의 대상이 됐다고 한다.(김병현 스포츠코리아 2005년 10월 26일 (수) 14:06)
예천용문사 윤장대(선화공주님, 輪藏臺는 도는 것이 아니라 돌리는 것입니다) [記事] : 2005년 10월 18일에 방영된 SBS 드라마ꡐ서동요ꡑ에서 선화공주가 진각사에서 서동(장이)을 생각하며 마치 탐돌이 하듯 빙빙 돌던 것의 정체에 대해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선화공주가 돌던 것은 탑이 아니라 나무로 만든 윤장대(輪藏臺)다. 석등처럼 생긴 목각 공예품으로 안에 불경을 보관했다. 손잡이를 잡고 연자방아 돌리 듯 돌리면 횟수에 따라 경전을 읽는 효과가 있고 소원이 성취된다고 전해지는 불교 문화재다. 윤장대는 실외용와 실내용 등 두 종류가 있으며 드라마 속에서처럼 실외용이 훨씬 규모가 크다. 현재 전해 내려오는 윤장대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경북 예천의 용문사 대장전 안에 있는 윤장대로 유일하게 원형이 보존돼 있다. 드라마 속 진각사로 나오는 사찰은 전북 부안의 내소사로 이곳 윤장대는 현대화된 것으로 2004년에 설치했다.(김병현 스포츠코리아 2005년 10월 26일 (수) 14:06)
예천용문사 윤장대(삼짇날과 重九節은 '龍門寺 輪藏臺 돌리며 所願 비는 날' ) [記事] : 용문사(주지 청안 스님)의 '윤장대'가 2006년 3월 31일(음력 3월 3일) 삼짇날을 맞아 오전 10시 용문사 현지에서 신도 및 관계자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일반인들에게 공개, 참석자들은 윤장대를 돌리며 소원을 빌었다. 윤장대는 고려 명종 때 대장경을 보관하는 용도로 만들어져 이 대를 돌리면서 소원을 빌면 바라던 바가 이루어진다는 설을 담고 있으며, 고려 명종 3년(1173) 자엄 스님이 용이 나타난 용문사에 대장전을 짓고 부처님의 힘으로 호국을 축원하기 위해 조성한 것이라 전해 오며, 대장전 내에 좌우 대칭으로 한 쌍이 배치되어 있는데, 문화유산적 가치와 보존 상태가 좋아 보물 제684호로 지정돼 있는 국내 유일의 회전식 불경 보관대인 불교문화 유산이다. 800여 년이 넘는 오랜 시간의 흐름에 따른 퇴락과 높이 4.2m, 둘레 3.4m에 이르는 무게 등으로 인해 더 이상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돌리는 것을 금지해 오다가 지난 2002년~2003년도에 보수공사를 완료하고, 이듬해인 2004년부터 봄을 알리는 명절 삼짇날(음 3월 3일)과 중구(중양)절(음 9월 9일)에는 일반인들도 행사에 참석하면 용문사 윤장대를 돌려볼 수 있게 됐다. 청안 스님(용문사 주지, 사암연합회장)은, "윤장대는 국내 유일의 문화재이기도 하지만 세계적인 문화재로 손꼽히고 있다"고 지적하고, "윤장대 돌리는 날을 맞아 불자들이 이 소중한 문화유산의 귀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고 자신의 소원과 염원을 성취하는 마음을 담아 윤장대를 돌려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소백산 줄기 해발 865미터의 매봉 중턱에 자리잡은 용문사는 신라 경문왕 때 두운 선사가 조성한 천년 고찰로 고려 태조가 군사를 이끌고 초암에 살던 두운 선사를 찾아 왔을 때 홀연히 용이 나타났다 해서 용문사로 이름 붙여졌다고 전해 오며, 사찰 내 산재해 있는 보물급 문화재를 비롯해 각종 문화유산들을 통해 선인들의 지혜와 문화재의 가치를 더듬어 볼 수 있는 명찰이다.(윤현숙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6-03-31 오후 1:3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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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