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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644) : 예천8경 중 용문사(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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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용문사 팔상탱(醴泉 龍門寺 八相幀畵 國寶 指定되나 : 釋迦牟尼 一生 그림으로 描寫…文化財廳 幀畵 眞僞 確認) [記事] : 예천군 용문면 내지리에 있는 용문사가 소장하고 있는 보물 제1330호 용문사 팔상탱이 사찰과 지역 문화재 담당관계자들의 노력으로 군 최초로 국보로 지정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용문사 팔상탱은 숙종 35년인 1709년 도문, 설잠, 계순, 해영 등의 화사가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석가모니의 일생을 잉태로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묘사한 그림으로 한 폭에 두 장면씩 네 폭으로 이루어져 있어 형식상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황토색 바탕에 붉은색과 녹청색을 주로 사용하여 주된 장면만을 강조하여 나타낸 비교적 간단한 구성을 하고 있는 용문사의 팔상탱화는 조선 전기의 도상과 화풍의 흐름을 이은 것으로, 이후 제작된 팔상도와는 차별화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에 용문사 청안 주지 스님은 그동안 사찰이 소장하고 있는 팔상탱화를 국보로 지정받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 2008년 8월 7일 문화재청 전문위원들이 용문사를 직접 방문, 탱화의 진위를 확인하고 돌아갔다. 예천군 문화재 담당 관계자는 "용문사 팔상탱은 이미 오래 전부터 독특한 구성과 화려한 채색으로 국보급 문화유산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며 "팔상탱이 군내 최초로 국보로 지정되면 이를 계기로 지역이 소장하고 있는 더 많은 문화재가 인정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張炳喆 記者 慶北日報 2008-08-12)
용문산(龍門山), 성불산(成佛山) [山] : 용문면 내지리(內地里)와 사부리(沙夫里)에 걸쳐 있는 산(785m)으로, 소백산맥의 지맥(支脈)에 솟아있다. 산록에는 870년(신라 경문왕 10) 두운 선사(杜雲禪師)가 창건한 용문사가 있는데, 여기에 자리잡고 있는 용문사 대장전(龍門寺大藏殿, 보물 145호)과 건물 안에 소장했던 국내유일의 회전식 윤장대(輪藏臺)가 문화재로서 유명하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신라 때 고승 두운(高僧杜雲)이 이 산에 들어와서 초막(草幕)을 짓고 살았는데, 고려 태조가 일찍이 남쪽으로 정벌을 나가는 길에, 여기를 지나다가 두운의 이름을 듣고 찾아갔다. 동구(洞口)에 이르러 홀연히 용이 바위 위에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용문산(龍門山)이라고 불렀다. 용문사 경내에 태봉(胎峰)이 있다. 1478년(성종 9) 왕후태실(王后胎室)을 모시고 성불산(成佛山)이라 했고, 1783년 문효세자(文孝世子)의 태실을 봉안하고 소백산 용문사(小白山龍門寺)로 고쳤다(新增東國輿地勝覽 1530, 醴泉郡邑誌 奎章閣所藏本, 醴泉郡邑誌 1770 1780 1786, 醴泉郡誌 1939). [인터넷] : 용문면·하리면·상리면에 있는 산(782m)으로, 이 산 아래 가람을 연 용문사가 이 산만큼이나 유명하다. 고려 건국 후에 태조 왕건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 용이 나타나 환영했고, 이를 기뻐한 태조가 산 이름을 용문산으로, 절 이름을 용문사로 각각 명명했다고 한다. 소나무가 대부분이고, 부족국가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어림성이 용문면 선리 산 45번지와 하리면 금곡리 산 450번지에 소재해 있다.(인터넷 netian 2001, www.san.go.kr 2002)
용문사(龍門寺(醴泉) 템플스테이 事務局입니다./ 귀의 삼보 하옵니다. 예천 용문사는 예천읍에서 북쪽으로 15km 정도 떨어진 소백산 기슭에 위치하며, 신라 경덕왕 10년 (870)이 고장 출신의 두문대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로 유명합니다. 용문사 명칭에는 2가지 유래가 있는데 고려 태조 삼한 통일을 위하여 두운대사를 방문코자 동구에 이르니 바위 위에서 청룡 둘이 나타나 인도 하였다 하여 절의 이름도 용문사로 불려 졌습니다. 예천 용문사는 사찰의 자연미, 성보 박물관, 수려한 자연경관 , 청명한 하늘, 수백 년 쌓인 세월을 지고선 고목적송, 산과 계곡의 조화를 이룬 최상의 갤러리 입니다. <용문사 템플스테이 프로그램 안내> 휴식형(산사 체험)템플스테이 안내 대상: 누구나 고요한 산사에서 심신을 쉬고 싶으신 분 휴식형: 예불, 공양, 시간이외에 자유시간입니다. 참가비: 1인 성인 1박2일(3만원)? 2박3일(5만원).. 준비물:? 세면도구, 사찰에서 수련복 제공, 1째, 3째 주말? 체험형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템플스테이 안내 1째 주말 1박2일 (토요일 3시 입재~일요일 2시 회향) 3째 주말 1박2일 (토요일 3시 입재~일요일 2시 회향) 진행: 예불, 사찰예절, 108배, 발우공양, 본 사찰 성보 박물관견학, 윤장대 체험,? 스님과의 차담, 참선명상, 연꽃(등) 만들기, 여름에 물놀이등 많은 참여 바랍니다. 참가비: 성인 1인 5만원, 고등학생 및 이하 1인 3만원, 준비물: 수건 및 세면도구, 간편한 옷차림, 우산? / 본 사찰에서 수련복 제공 2째, 4째 주말형 시민선방 (고요한 산사) 템플스테이 안내 2째 주말 1박 2일 (토요일 3시 입재~일요일 2시 회향) 3째 주말 1박 2일 (토요일 3시 입재~일요일 2시 회향) 진행: 예불, 사찰예절, 108배, 발우공양, 본 사찰 성보 박물관견학, 윤장대체험, 스님과의 차담, 참선 등 많은 참여 바랍니다. 참가비: 성인 1인 5만원, 고등학생 및 이하 1인 3만원 준비물: 수건 및 세면도구, 간편한 옷차림, 우산 등 / 본 사찰에서 수련복 제공/ 2박3일 단체 체험형 (육바라밀)프로그램으로 안내 진행: 예불, 사찰예절, 108배, 발우공양, 본 사찰 성보 박물관견학, 윤장대체험, 스님과의 차담, 참선명상, 연꽃(등) 만들기, 염주만들기, 레크레이션, 소백산산행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진행합니다. 많은 참여 바랍니다. 대상: 학교, 회사, 공공기관, 기업, 포교사, 불교단체 등 인원: 10~50명 정도 일정: 1박2일, 2박3일 원하는 날짜에 프로그램 진행함 참가비: 1박2일 성인 5만원 고등학생 및 이하 3만원 2박3일 성인 8만원 고등학생 및 이하 5만원 준비물: 수건 및 세면도구, 간편한 옷차림, 우산 등 / 본 사찰에서 수련복 제공 단체체험형 진행: 각 단체에서 프로그램 진행 대상: 학교, 회사, 공공기관, 기업, 포교사, 불교단체에서 진행 인원: 10~50명 정도 무박, 1박2일, 2박3일 원하는 날짜에 프로그램 진행함 참가비: 협의 후 결정 준비물: 준비물: 수건 및 세면도구, 간편한 옷차림, 우산 등 / 본 사찰에서 수련복 제공 법당, 방사, 수련장 준비됨. 템플라이프 (윤장대 문화재 체험) 템플스테이 안내 윤장대(보물 제684호)는 국내 유일의 불경 보관대로 이 대를 돌리면 한 가지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전해지며 세계적 문화유산입니다. 많은 불자인들이 윤장대 체험을 동참하고 있습니다. 소원성취문 쓰고 윤장대 돌리기 참가비: 1만원 접수안내 1)접수:템플사무국 2)온라인 접수 후 전화요망 용문사 템플스테이 사무국, 종무소(daum 2011)
용문사(醴泉 龍門寺 휴식형 템플스테이 안내) [記事] : 용문사(龍門寺)는 870년(신라 경문왕 10) 두운(杜雲) 선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옵니다. 예천 용문사 휴식형 템플스테이는 평일 (월~금)운영되고, 사찰에서 심신을 쉬고 자아 명상과 자연의 미를 만끽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사찰에서 보내는 시간 중 예불과 공양 시간이외에 모든 시간은 개별 자유 시간입니다. 비용: 성인: 1박 3만원, 준비물: 수건 포함 세면도구, 수련복은 제공됩니다.(daum 2011)
용문사(輪藏臺가 있는 醴泉 龍門寺) [記事] : 불교 조계종 예천 용문사(주지 청안스님)는 삼국통일을 이룩한 왕건이 천하평정의 뜻을 다진 천년고찰로 보물 145호 대장전 등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용문사는 사찰의 자연미, 성보박물관, 수려한 자연경관, 수백 년 쌓인 세월을 지고선 고목정승, 산과 계곡의 조화를 이룬 최상의 갤러리로 손꼽힌다. 예천 용문사는 경북 예천읍에서 북쪽으로 15㎞ 정도 떨어진 소백산기슭에 위치하며, 신라 경문왕 10년(870년) 이 고장 출신의 두운 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온다. 고려 태조 왕건이 신라를 정벌하러 내려가다 이 사찰을 찾았으나 운무가 자욱해 지척을 분간치 못했는데, 어디선가 청룡 두 마리가 나타나 길을 인도하였다 해 용문사라 불렀다고 한다. 고려 명종 때 '용문사 창기사'로 개명했으나 조선 세종대왕의 비 소헌왕후(筆者 註 : 성종의 비 제헌왕후의 태실, 즉 연산군의 태실임)의 태실을 봉안하고 '성불사 용문사'로 다시 고쳤고, 정조 때 문효세자의 태실을 이곳에 쓰고 '소백산 용문사'로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용문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각인 대장전은 경전을 봉인하는 전각으로, 안에 안치된 2좌의 윤장대로 더욱 유명하다. 고려시대 명종 3년(1173년)에 건축된 것으로 알려진 대장전은 조선 현종 11년(1670년)에 수리했다는 기록이 있다. 건물의 이름처럼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세웠다는 대장전은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 건물로 추정되어 한때 국보 제243호로 지정되기도 했다가 1963년도에 보물 제145호로 변경 지정됐다. 대장전 자체의 의미도 크지만 여러 가지의 불교문화재들의 가치 또한 대단하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윤장대(보물 제684호)를 비롯해 대장전(보물 제145호), 용문사 교지(보물 제729호), 대장전 목불좌상(보물 제989호) 등 성보문화재 10여점이 현존한다. 조선 숙종 때 대추나무로 조성된 목각탱화(보물 89호)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것으로 가로, 세로 각각 2미터가 조금 넘는 크기다. 특히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한 윤장대를 돌리면 번뇌가 소멸되고 공덕이 쌓여 소원이 성취된다고 해 예로부터 참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윤장대는 글을 읽지 못하는 중생을 위해 돌리는 것만으로도 경전을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을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회전식 불경 보관대'를 양쪽에 한 개씩 두 개를 만들었다. 높이 4.2m, 둘레 3.3m의 팔각정 모양으로 마루 속에 세운 아랫부분을 팽이처럼 만들고 손잡이를 달았다. 용문사가 천년고찰의 사찰을 체험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도 눈길을 끈다. 템플스테이는 사찰에서 직접 머물면서 사찰의 일상생활을 체험하고 한국 불교의 전통 문화와 수행 정신을 체험해보는 것이다. 새벽예불, 사찰예절, 108배, 참선수행, 발우공양, 다도 등 기본적인 수행생활을 체험하고 전통사찰의 전각, 석탑, 부도, 불상, 불화 등 불교 전통 문화에 대한 친밀한 접근과 이해를 얻게 되며, 자연 속에서 어우러져 살아가는 삶의 본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휴식형과 체험형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데, 휴식형은 1박2일, 주말, 2박3일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휴식형은 예불, 사찰예절, 108배, 발우공양, 본 사찰, 성보 박물관 견학, 윤장대 체험, 스님과의 차담, 참선 명상, 연꽃(등) 만들기, 촛불캠프 등 불교문화 체험과 휴식을 위주로 구성됐다. 용문사의 불교유물전시관인 성보박물관도 꼭 들려야할 곳 중 하나다. 지하 1층, 지상 1층 연건평 247평 규모의 현대식과 전통양식을 혼합한 건물로 전시실과 영상실, 수장고, 학예실 등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
전시실엔 용문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탱화와 영정 등 불화류와 불상, 제례의식 도구, 전적류, 기타 유물 등 200여 점과 함께 보물 제684호로 지정돼 있는 국내 유일의 회전식 불경보관대인 윤장대를 실제 모형과 같이 제작, 설치해 놓았다. 예천 용문사는 서울에서는 3시간(208㎞), 부산에서 3시간30분(250㎞), 대전에서 2시간20분(160㎞) 거리인 경북 예천군 용문면 내지리 391번지에 위치해있다. 불기 2555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사랑하는 가족 또는 연인, 친구들의 손을 잡고 천년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용문사를 방문해 업장을 소멸하고 소원을 성취시켜주는 윤장대도 돌려보고 부처님의 자비와 나눔 정신을 느끼며, 봄의 향기에 취해보는 건 어떨까.(聯合뉴스 2011.05.09 10:01)
용문사(龍門寺 佛紀 2555年 부처님오신날 奉祝法要式...管內 30餘個 寺刹 奉祝法要式!) [記事] : 불기 2555년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는 봉축법회가 예천군 관내 30여개 사찰에서 동시에 열렸다. 이날 봉축법회가 열린 용문사에는 이현준 군수, 김수남 예천불교신도연합회장, 안홍기 농협군지부장, 김장식 축협조합장, 홍성칠 변호사, 김학동 씨를 비롯한 신도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봉축법회는 "둥글고 또한 밝은 빛은 우주를 싸고/ 고르고 다시 넓은 덕은 만물을 길러/ 억만-겁토록 변함없는 부-처님 전에/ 한마-음 함께 기우려서 찬-양합니다" 용문사 합창단의 은은한 찬불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막을 올렸다. 이어 용문사 청안스님을 시작으로 이현준 군수, 김수남 예천불교신도연합회장, 권영일 군의원, 신도회장을 비롯한 용문사 관계자, 참석내빈 등의 순으로 부처님 제단에 헌화했다. 청안스님은 봉축사에서 "중생들의 삶은 주위를 원망하고 시기하는 것으로 중생들이 이런 삶을 살아갈 때에 더욱 고통스러운 삶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모든 중생들이 마음을 비우고 부처님의 자비 속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예천군불교신도연합회 김수남 회장은 "사부대중들은 희망과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부처님의 말씀처럼 살아가야 하며 무명에 가려 바르게 살지 못하는 중생들이 오늘부터 부처님의 자비 속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축사를 했다. 이현준 군수는 축사를 통해 "예천군 관내 모든 불자들이 이웃을 내 몸같이 생각하고 사랑으로 보듬어줄 때 참다운 불자로서의 소임을 다하는 것이며 이런 마음으로 군민이 뜻을 같이 할 때 예천이 더욱 살기좋고 인정이 넘치는 고장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용문사 합창단의 찬불가로 봉축법요식은 막을 내렸다. 찬불가(부처님 오신날)=꽃보라 흩날리는 룸비니 동산/ 한줄기 찬란한 빛이 우주를 덮고/ 거룩한 싯탈태자 탄생하실 때/ 유아독존 큰소리 누리 퍼지네, 사뿐히 자욱마다 바치는 연잎/ 태양보다 밝은 등 높이 드옵시고/ 사생의 모든 고난 녹여 주신 님/ 이 세상에 오신 날 사월 초파일... 이날 봉축법요식이 진행된 용문사 경내에는 법요식 내내 궂은비가 내려 부처님 오신 날을 봉축했다. 참석 사부대중들은 합장한 채 사홍서원(四弘誓願: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를 낭독하고 봉축식을 마쳤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1-05-10 오후 1:02:16)
용문사(千年古刹 龍門寺 境內에 있는 '丹靑紋樣' 專門 技術者 및 學界 寶物級으로 推定..) [記事] : 용문면 내지리에 소재한 천년고찰 용문사 경내에 1185년 용문사 중수기에 새겨진 단청 문양 '갖은 금단청 병머리초' 가 단청 기술자 및 연구사와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단청문양은 옛 조상들이 주로 목조 건축이나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채색되고, 목 조각이나 탱화 등에 주로 사용돼 왔으며 종교적인 엄숙성과 목조 건축물 보호를 위해 이용됐다. 특히 중수기에 새겨진 문양 형태는 특이하게도 비문 좌우로 화려하게 장식돼 마치 호리병을 세워둔 형태 안에 연꽃, 석류, 번엽 등의 문양이 뚜렷하고 파련, 인동등쿨무늬 문양이 비문 모서리 공간을 화려하게 감싸고, 음각은 손끝으로도 느낄 수 있을 만큼 정교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전문가들은 "'갖은 금단청 병머리초' 문양은 단청 문양 중 최고의 문양으로 손꼽히는 것으로 일반 사찰의 단청 문양에서는 거의 찾아 볼 수 없으며, 최고의 화공이 초안한 것으로 왕실에서 특별히 하사한 것으로 추정되며 종교적인 권위와 예술성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예천군청 이재완 학예연구사는 "용문사 중수기는 1185년에 왕실에서 용문사에 태실 비를 세우면서 왕실이 보호하는 국가사찰로 인정해주기 위해 특별한 문양이 새겨진 중수기를 하사해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용문사에 소재하고 있는 태실비는 성종 9년 소현왕후(張炳昌 註 : 제헌왕후의 誤記)의 태를 봉안한 태실비로 알려져 있다. 단청기술자 제448호 김윤기(46) 씨는 "현재 국내에서 용문사 중수비의 정교하고 화려한 단청 문양이 석판에 새겨져 있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1185년도의 비문이나 문양이 확실하다"며 "이런 문양이 발견된 것은 단청사에 귀중한 자료"라고 말했다. 한편, 천년고찰 용문사는 신라 경문왕 10년(870년)에 두운대사가 용문산에 이르렀을 때 큰 바위에서 용이 그를 영접했다고 해서 지금의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용문사에는 보물 제 684호로 지정돼 있는 윤장대를 비롯한 많은 불교 유물을 간직하고 있다. [경북일보 이상만 기자 공동취재](醴泉인터넷뉴스 2011-08-05 오전 9:40:09)
용문사(高麗 太祖 王建, 龍의 도움으로 後三國 統一 꿈 이뤄 : 醴泉 龍門寺) [記事] : 예천군 용문면 내지리에 위치한 용문사. 통일신라 말 두운선사가 창건한 이래 천년의 세월 동안 법음을 이어온 유서 깊은 고찰이다. 예천군 용문면에는 고승 두운스님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유명한 고찰 용문사(龍門寺)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풍수지리상 명당으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왕실의 태가 봉안됐고 특히, 국가의 난이 일어났을 때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법회가 열렸던 호국사찰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 용문사에는 국내에서 유일한 윤장대(보물 제684호)와 목조아미타여래좌상(보물 제1637호), 교지(보물 제729호), 대장전(보물 제145호) 등 국가지정 문화재만 10점 이상을 보유하고 있어 예천의 역사·문화적 가치가 뛰어난 곳이다. 예천군청 이재완 학예연구사가 "국내에 하나뿐인 우리나라 최고의 목공예품으로 국보급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윤장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용문사의 용의 전설 : 예천군청 이재완 학예연구사와 함께 용문면에 있는 천년의 고찰 '예천 용문사'를 찾아 역사적 의미를 조명해본다. 용문사 전시관에 소장된 '용문사기'에는 신라의 고승 두운스님이 이 산에 들어와 용을 몰아내고 못을 메운 뒤 초암을 짓고 살았다고 기록돼 있고 고려를 창건하기 전 왕건은 삼국통일을 이루기 위해 이곳에 은둔하고 있던 두운스님을 찾아 가던 중 지금의 용문사 자리에서 한 마리 용이 나타나 바위 위에서 왕건을 마중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용의 마중으로 왕건은 두운스님을 만나, 머리 숙여 두운스님께 예를 표하고 비밀스런 약속을 한 가지 했다고 전해지고 비밀스런 약속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용문사중수비'에는 왕건이 삼국을 통일한 후, 두운스님을 위해 재물을 모으고 기와를 구워 30간의 건물을 지어주고 매년 150석을 주어 공양비용으로 삼게 했다고 기록돼 있어 그 약속이 누추했던 암자를 국가를 수호할 수 있는 사찰로 만들어 주었다는 짐작만 할 수 있다. 이처럼 고려의 삼국통일은 용의 도움으로 이뤄졌고, 이에 사찰이름도 용문사가 됐다고 전해지고 있다. 용문사는 통일신라 말 두운선사가 창건한 이래 천년의 세월 동안 법음을 이어온 유서 깊은 고찰이다. 조선시대의 대문호인 서거정 선생은 이곳을 '산이 깊어 세속의 소란함이 끊어진 곳'으로 표현했을 만큼 청정도량이다.
△윤장대 한 번 돌리면 경전 한번 읽는 것과 같다 : 용문사에는 국내 유일한 윤장대를 비롯한 9점의 보물 외에도 300여점의 소중한 유물을 간직한 문화유산의 보고(寶庫)라 할 수 있다. 특히, 용문사에서는 1년에 두 번 특별한 법회가 열린다. 음력 3월 3일 삼짇날과 9월 9일 중양절에 열리는 이 법회에는 전국 각지의 수많은 신도들이 모여든다. 이날에는 평소에 일반인들이 돌릴 수 없었던 윤장대를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학예사는 "윤장대를 돌리면 경전을 한번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이 쌓인다고 하는 유래에 따라 경력에 의지하고자 하는 많은 신도들이 윤장대 돌리기를 기원한다. 다만, 문화재로 지정된 윤장대의 보호차원에서 1년에 두 번만 돌릴 수 있고 예천지역에서는 윤장대를 세 번 돌리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있어 1년에 두 번 열리는 윤전법회는 우리나라에서도 특별한 행사가 되고 있다 "고 말했다. 그만큼 윤장대를 돌릴 수 있다는 것은 신도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으며, 이날에는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신도들이 윤전법회에 참여하고 있다. 더구나, 신자들은 "세 번 돌리는 데에는 보통 이상의 근력이 있어야 하고, 아무나 돌릴 수 없는 만큼 신통력이 강해 일반인들이 쉽게 돌리지 못한다."는 속설이 전해지고 이처럼 윤장대는 영력을 지닌 신앙물로 인식되고 있으며, 신자들은 이 윤장대를 돌리기 위해 전국각지에서 이곳 용문사를 찾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윤장대란 우리나라에 유일한 것으로 써 경전을 넣어 경장을 회전할 수 있게 만든 불교공예품으로 대장전이나 장경각처럼 경전의 보관처임과 동시에 그 스스로가 경전신앙의 대상으로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용문사 대장전에 안치된 2좌(坐)의 윤장대는 용문사의 보물일 뿐만 아니라 용문사를 대표하는 문화재이다. '중수용문사기'나 '예천용문산창기사대장전중수상량문' 기록에 의하면 고려 명종 3년(1173) 자엄대사에 의해 초창됐고, 그 후 1621년에 대대적으로 중수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국내 유일한 국보의 가치를 지닌 조각 공예품 윤장대 : 윤장대를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팔각의 전각형(殿閣形)으로 중앙의 경갑(徑匣)에는 경전(經典)을 납치하게 돼 있고 하단 몸체에 붙어 있는 손잡이를 밀어 회전시킬 수 있는 구조이다. 기본적인 구조와 형태는 2좌가 동일하게 만들어져 대칭을 이루고 있어 음양의 조화를 나타내고 불단을 향해 좌측의 윤장대는 8면에 각기 다른 종류의 꽃을 형상화한 꽃살창호, 우측 윤장대에는 격자살창호로 돼 있다. 특히 꽃살창호는 통판 투조기법으로 살구꽃, 모란, 연화, 국화를 비롯해 미늘형태의 꽃살까지 다양하며 매우 정교하게 표현돼 있다. 전면에 용문양이 그려져 있고, 그 한쪽 모서리에는 붙잡고 돌릴 수 있도록 긴 횡목 손잡이가 설치돼 있다. 중심 기둥은 마룻바닥 아래의 건물 지반에 설치된 초석과 천장의 가구에 끼워져 회전축을 이루고 있어 시계바늘처럼 돌릴 수 있게 돼 있다. 이재완 학예사는 "소규모 불교 목공예품임에도 불구하고 목조건축양식을 그대로 축소해 옮겨놓은 신앙물로 그 표현이 매우 정교하고 세련되었을 뿐만 아니라, 은은하면서도 화려한 단청으로 인해 그 품격을 높이고 있는 국내 최고의 목공예품"이라며 "동시에 아담하면서도 나무의 목리를 그대로 드러내어 소박한 향내를 풍기고 있는 점은 우리 민족의 조형의식이 잘 발현돼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라고 설명을 이어갔다. 이처럼 예배 대상으로, 불교목공예품의 정수로 조성됐던 윤장대가 용문사에만 현존하는 것은 고려시대나 조선 초기에 조성된 유물들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병란을 겪으면서 모두 파실됐기 때문이다. 다행히 용문사는 전란으로부터 살아남아 우리나라의 유일한 윤장대를 보유한 사찰로서 유명세를 얻고 있는 것이다. 근래에는 전국의 많은 사찰에서 용문사 윤장대를 그대로 번안해 경내에 설치하고 있으며, 이는 용문사의 윤장대의 의미를 다시금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용문사 윤장대는 독특한 신앙물로서 의미보다 우리나라 전통문화의 일면을 파악할 수 있는 대표 문화재로서 가치를 지닌다. 이재완 학예연구사는 "정교하게 조각된 윤장대는 우리나라 최고의 공예품으로 국보의 가치를 지니고 있어 현재 문화재청에 국보로 신청 중이며 예천지역 최초의 국보가 될 것"이라며 "10년 후 예천의 문화재는 예천관광을 풍요롭게 해주는 불변의 자원으로 활용돼 관광수입을 극대화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이상만 記者 慶北日報 2011-08-05)
용문사(龍門寺) : ㅇ 위치 : 용문면 내지리, ㅇ 내용 : 용문사는 신라(新羅) 870년(경문왕 10) 두운대사(杜雲大師)가 당(唐)나라에 들어가 도(道)를 깨친 후 귀국하여 산천경관(山川景觀)이 수려한 소백산(小白山) 남쪽에 이르러 초옥 1칸으로 874년(경문왕 14) 용문사를 창건(創建)하니 두운암(杜雲庵)이었다. 고려(高麗) 태조(太祖)는 두운대사(杜雲大師)의 명성을 듣고 그의 가르침을 받아 삼한통일(三韓統一)을 이룩한 뒤 두운대사를 기리기 위하여 936년(태조 19)에 재물을 보내 중건공사를 시작하고 인근 주현(州縣)의 조세(租稅) 중에서 매년 150석을 공양하여 사찰(寺刹) 발전의 재원으로 충당토록 하였다. 1165년(의종 19) 자엄대사(資嚴大師)에 의하여 중건 불사가 시작되고 1171년(명종 원년)에는 태자(太子, 제22대 康宗)의 태(胎)를 일주문(一柱門) 밖의 좌비봉두(左臂峯頭)에 묻고 용문사(龍門寺)를 창기사(昌期寺)라고 개칭하게 하였으며 동왕 3년(1173)에 삼만 승제를 설하고 대장전(大藏殿)을 신축하여 당내 좌우에 윤장대(輪藏臺) 2좌를 설치하였다. 1179년(명종 9)에 중수 공사를 완공하고 선종 9문학도 500명을 모아 50일 간에 걸쳐 법회(法會)를 열었으며, 1185년(명종 15) 4월 경내에 완공을 기념하는 중수비(重修碑)를 세워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다. 조선(朝鮮) 1457년(세조 3)에 왕이 교지(敎旨 - 보물제729호)를 내려 승려(僧侶)들의 잡역(雜役)을 면제케 하였으며, 연산군(燕山君)의 어머니 폐비(廢妃) 윤씨(尹氏)의 태실(胎室)을 이곳에 묻고 성불산용문사(成佛山龍門寺)로 개칭(改稱)하였으나 1783년(정조 7)에 문효세자(文孝世子)의 태실을 이곳에 봉장(奉藏)하고 소백산용문사(小白山龍門寺)로 환원하였다. 1835년(헌종 원년)에 큰 화재(火災)로 소실된 보광명전, 해운루를 중건하였고, 1979년에는 대장전을 비롯한 여러 전각들을 대대적으로 보수(補修)하였으며, 1984년 화재로 소실된 영남제일강원, 보광명전, 해운루 등을 1990년 복원하였다. 이 사찰에는 국내(國內) 최고(最高·古)를 자랑하는 것이 있는데, 대장전(大藏殿 - 보물제145호)은 1173년(명종 3)에 초건(初建)한 오래된 목조(木造) 건물이며, 윤장대(輪藏臺 - 보물 제684호) 1쌍은 국내 유일(唯一)의 회전식 불경 보관대로 이 대(臺)를 돌리고 한 가지 소원(所願)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전해지는데 공부하는 이는 과거(科擧)에 급제하고 병고(病苦)에 시달리는 자는 병이 낫게 되며 박복(薄福)한 자는 다복(多福)하게 된다는 전경신앙(轉經信仰)으로 이는 선(善)한 마음으로 음덕(陰德)을 쌓아야 복(福)을 받는다는 것이다. 목불좌상 및 목각탱(木佛坐像·木刻幀 - 보물 제989호)은 대추나무로 만든 후불탱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크며 예술적 가치도 높다. 또한 사천왕상(四天王像)은 불국사(佛國寺)의 것보다 규모가 더 웅장하다. 천여년(千餘年)의 역사를 자랑하는 법보대찰(法寶大刹) 용문사에 얽힌 세 가지의 이적(異蹟)이 다음과 같이 전해온다. 먼저, 고려(高麗) 태조(太祖)가 삼한통일을 위하여 남정(南征)하는 길에 두운대사를 방문하고자 동구에 이르렀을 때 바위 위에 청룡(靑龍) 한 쌍이 나타나 어가(御駕)를 환영하기에 왕이 이를 기뻐하여 용문사로 불리어졌다고 하며, 다른 하나는 두운대사가 절을 짓기 위해 이곳에 이르렀을 때 바위에서 홀연히 진룡(眞龍)이 나와 영접하였다고 하여 산 이름을 용문산(龍門山), 사명(寺名)을 용문사(龍門寺)라 하였다 한다. 둘째, 이 절을 짓기 시작하였을 때 나무둥치 사이에서 무게가 16냥(兩)이나 되는 은병(銀甁) 하나가 나와 그것을 팔아서 공사비에 충당했다고 하며, 셋째, 1171년(명종 원년)에는 도량의 남쪽 9층의 청석탑(靑石塔)에 사리를 봉안하였는데, 이 때 오색(五色)의 구름이 소반을 에워쌌다고 전해온다. 1984년 초파일 다음날 화재로 인하여 해운루, 영남제일강원 등 많은 건물이 전소(全燒)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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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