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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651) : 예천8경 중 석송령(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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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송령(소나무가 綜土稅 낸다/ 慶北 醴泉 石坪마을 600살짜리) [記事] : ◎무후 노인 천2백 평 상속 유언/ 63년 동안 납세… 장학사업도// 경북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 416의 6백 년생 소나무 석송령은 1992년 10월 말까지 10,510원의 세금을 물어야 한다.「세계 유일의 세금내는 소나무」인 이 노송은 자신이 소유한 대지 1,191평에 대해 1992년분 종합토지세를 부과받았기 때문이다. 나무 둘레 4.2m, 높이 10m의 이 동신목이 납세의 의무를 부여받은 것은 1928년부터. 이 마을에 살던 이수목 노인이 후손 없이 죽음을 앞두고는 자신의 전 재산인 땅 1,191평을「믿을 수 없는 사람」들을 마다하고 마을 수호신인 소나무에게 상속한 것. 석평마을의 영험있는 소나무란 머리글자를 따서 석송령이란 이름으로 소유권 이전 등기를 마치고는 1991년까지 63년 간 한 번도 납기일을 넘기지 않아「조세의 날」 수상 후보자로도 손색이 없다. 세금은 마을 주민들로 구성된 석송령 관리계가 맡아서 내주고 있다. 그늘 면적은 400여 평에 이르는 석송령은 세금만 내는 것이 아니고 돈도 벌고 85년부터는 장학사업까지 해오고 있다. 세금 무는 소나무를 가상히 여긴 전두환 전 대통령이 보내준 500만 원의 격려금을 토대로 석송령장학회가 조직, 매년 4~5명의 마을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 오고 있는 것. 주민 권동구 씨(58)는,『제사 때 사용한 고깔을 태워 먹으면 득남한다는 소문까지 나돌아 아들은 낳으려는 부녀자들이 몰려들어 1년 전부터 고깔 예약 사태가 빚어진다.』고 말했다. 석송령은 건강도 좋은 편이어서 73년 예천군에서 늘어난 가지를 대리석 기둥으로 받쳐주고 80년 황달기를 보여 영양주사 한 차례 맞은 것 외에는 6백 살의 나이에도 이파리 하나 병들지 않고 정정하다.(조세현 記者 京鄕新聞 1992-09-17)
석송령(慶北 醴泉 6百 年된 石松靈 : 名所 巡禮) [記事] : ◎땅 1천여 평 소유ꡐ부자나무ꡑ/ 70여 년 전 한 노인에 상속받아 꼬박꼬박 세금/ 장수․부귀의 상징… 주민들 계 만들어 보호 앞장// 경북 예천군 예천읍에서 영주 방향 국도를 따라 8㎞ 가량 가다가 풍기로 빠지는 길로 꺾어들어 4㎞쯤 더 달리면 마치 큼직한 우산을 펼쳐놓은 듯한 노송 한 그루가 길 왼쪽에 떡 버티어 서 있다. 예천군 감천면 천향1리 속칭 석평마을 앞에 동서 32m, 남북 22m의 길이로 푸르른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는 6백 살 나이의 이 소나무가 바로 1992년 1만3천40원의 종합토지세를 낸 일명ꡐ부자나무ꡑ석송령이다. 조선 초기 마을 앞을 지나는 석간천에서 홍수를 타고 떠내려 오던 어린 소나무를 어떤 주민이 건져 올려 심었다고 전해지는 이 소나무가 자기 명의의 토지를 소유하고 해마다 납세의무를 지게 된 내력은 일제 치하인 1920년대 말로 거슬러간다. 당시 이 마을에서 자식 없이 살던 이수목이란 노인이 이 나무에ꡐ석평마을의 영험있는 나무ꡑ란 뜻의 석송령이란 이름을 지어주고는 마을 옆의 자기 땅 1,191평에 대한 소유권을 이 나무 명의로 이전한 채 세상을 뜬 것이다. 그 뒤 주민들은 석송계를 조직해 석송령의 재산관리와 나무 돌보기에 나섰고, 이 나무를 동신목으로 떠받들어 해마다 정월 대보름 자정에 마을의 번영과 풍년을 비는 동신제를 올려왔다. 마을 주민 모두가 계원인 석송계는 석송령 소유의 땅에 집을 짓고 살거나 밭을 일구고 있는 주민들이 내는 임대료(1992년 13만여 원)를 받아 우선 세금을 낸 뒤 남는 돈은 동신제 비용과 나무 관리비에 보태 쓰고 있다. 석송계는 또 지난 85년 대통령이 보내온 5백만 원의 기금으로 석송장학회를 꾸려 해마다 이 마을 출신의 중․고 입학생 가운데 성적이 좋은 3~5명에게 10여만 원씩의 장학금을 지급해오고 있다. 지난 82년 천연기념물 제294호로 지정된 석송령은 최근 들어 봄․가을마다 단양과 안동을 오가는 관광버스가 한 동안 멈추어 관광객을 쏟아내기도 해 이젠 제법 그 이름이 다른 지방에까지 알려지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관광객들이 울타리를 마구 넘나들고 나뭇가지에 올라가 기념사진을 찍어대는 통에 별도의 관리인을 두지 못한 주민들은 혹 석송령을 상하게나 하지 않을까 무척 조바심을 내고 있다. 석송령 소유의 땅에 집을 짓고 사는 주민 권영업(34) 씨는, ꡒ어릴 적부터 이 나무를 볼 때마다 마음이 경건해지는 느낌을 받고 자랐다ꡓ며, ꡒ당국에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만큼 좀더 적극적인 보호 대책을 세워줘야 할 것ꡓ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 나무에는 지난 73년부터 세우기 시작한 돌기둥 10개와 쇠파이프 32개가 늘어진 가지의 무게를 받쳐주고 있어 언뜻 보기에도 세심한 보호가 절실함을 알 수 있다. 석송계의 계장이자 석송령의 음덕으로 군의회 의장직까지 맡게 됐다는 김지환(66) 씨는ꡒ일제 말 이 나무를 베어 조선소에 보내려던 일본인 관리가 자전거를 타고 나무 옆 개울을 건너다 넘어져 뇌를 다쳐 죽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ꡓ고 이 나무의 영험함을 자랑한 뒤, ꡒ장수․부귀․상록의 얼을 담은 이 나무는 활과 함께 예천의 상징이 되고 있다ꡓ고 말했다.(안영수 記者 한겨레新聞 1993-02-21)
석송령(萬物相) [記事] : 소나무는 이제 국가적 상징이 될만큼 우리 사회의 귀염둥이로 새삼 자리 잡았다. TV화면에 대통령 당선자의 얼굴과 함께 비치는 것이 속리산의 저 유명한 정이품송이다. 현대에 들어 소나무는 정치적 상징물이 되기 앞서, 도시의 조경수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소나무 망국론」이 횡행하던 일제 때의 사정을 기억한다면 가히 소나무의 복권이라 할만하다. 소나무는 척박한 땅에 잘 자란다. 때문에 소나무가 잘 번식한다는 것은 그만큼 지력의 퇴폐를 뜻한다고 해서 나온 주장이 적송 망국론이다. 이제 학계의 시각도 달라졌다. ▼산에 들어가면 상쾌한 기분이 드는 것은 나무가 내뿜는 발산 물질 피트치드(phytcide) 때문이다. 소나무과 나무들에 이 성분이 많다. 소나무 삼림욕을 하면 특히 동맥경화 예방에 효험이 있다 한다. 이런 과학적인 규명을 알기 전에도 한국 사람의 소나무 사랑은 유별났다. ▼정이품송처럼 벼슬을 받았다는 소나무도 있지만 사람처럼 성명 3자를 가진 소나무도 있다. 경북 예천군 감천면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294호는 성은 석씨요, 이름이 송령이다. 이 잘 생긴 나무를 사랑했던 분이 일제 때 땅 2천 평을 남겼기 때문에 석송령은 토지 소유자로서 사업자 번호를 갖고 있고, 지금도 해마다 재산세를 납부한다. 나무에다 인격을 부여할 정도로 한국 사람의 자연 사랑은 지극했다. ▼이런 전통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멸종 위기의 야생 동식물 국제거래 협약에 가입하기로 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가입의 결과로 웅담 등 생약재 사용이 규제를 받게 된다. 한국 사람의 유별난 강장제 선호에 어떤 제동이 걸리는 자각이 있었으면 한다.(朝鮮日報 1993-02-21)
석송령(쥐라기 소나무) [記事] :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의 소나무에 대한 애착과 관심은 유별났다.「남산 위에 저 소나무」처럼 애국가에도 등장하고 있고, 수 많은 산수화에는 으레 낙랑장송이 나오는가 하면 소나무가 벼슬을 받거나 세금을 내고 있는 경우도 있다. 지난 90년 폭풍우로 쓰러져 전국적인 관심 속에 회생시키려 애썼던 서울 통의동의 백송 얘기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고 있다.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나무 중에는 충북 보은 속리산의 정이품송과「부인나무」인 정부인송이 가장 유명하다. 수령 약 6백 년으로 알려진 이들 나무는 다행히 아직까지 정정하다. 그러나 충북임업시험장에서는 이들 나무의 대를 잇기 위해 지난 80년부터 씨앗을 받아 7백 그루의 어린 나무를 키우고 있다.「세금내는 소나무」얘기 역시 소나무에 대한 우리의 정서를 잘 말해주고 있다. 경북 예천 석평마을에「석송령」이란 이름을 갖고 있는 이 소나무는 주민등록번호와 1천2백여 평의 땅까지 소유하고 있다. 수령 6백 년인 이 나무를 소중히 여기던 마을 유지가 땅을 나무 명의로 이전했기 때문. 1994년 10월에는 1만1천4백 원의 종합토지세까지 내기도 했다. 최근 멀리 호주에서 1억5천만 년 전인 중생대에 서식했다가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쥐라기 소나무」의 집단서식지가 발견되어 세계 식물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호주식물원은 이 소나무의 씨앗을 채취하여 새싹을 키우는 데까지 성공했다. 소나무의 끈질긴 생명력도 놀랍지만 솔잎혹파리로 피해를 입고 있는 우리나라 소나무의 보호 대책은 무엇인지 생각게 한다.(京鄕新聞 1994-12-17)
석송령(「숲과 文化硏究會」國民大 전영우 敎授 : 環境과 人間) [記事] : ꡒ풀 나무와ꡐ대화ꡑ 못 나누면 생태맹ꡓ/ 아름다운 숲찾기 올해로 29번째 행사/ꡒ숲속엔 조상의 문화 역사 예술 민속 체취ꡓ// 풀냄새가 풋풋하다.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연초록 빛조각들…. 숲 저편에서 머리카락을 흔드는 바람이 가볍게 불어온다. 겨울을 보내고 신록의 길목에서 맞는 4월의 숲은 언제나 싱그럽다. 숲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조용히 책을 읽는 사람,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 낮잠을 청하는 사람, 신을 벗고 맨발로 흙의 기운을 느끼는 사람, 서로 다른 나무와 풀들이 어울려 숲에서 살듯이 사람들도 가지각색으로ꡐ숲 속의 정지된 시간ꡑ을 즐긴다. 이윽고 사람들이 원을 그리며 모여든다. ꡒ아카시아 꽃향을 맡노라면… 흘러간 우정이 떠오르네.ꡓ ꡒ오늘은 맨발로 풀밭을 거닐다. 그 기쁜 감촉이 사흘은 가리.ꡓ시인의 노래에 숲은 고요와 평화로 채워진다. ꡐ아름다운 숲 찾아가기ꡑ. 국민대 삼림자원학과 전영우(45) 교수를 비롯한ꡐ숲과 문화 연구회ꡑ회원들의 숲사랑 행사다. 시인, 소설가, 학자, 화가에서부터 회사원, 농부, 그리고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운 숲 찾아가기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은 다양하다. 이들은 직업과 나이에 상관없이 하나가 되어 아름다운 숲을 노래한다. ꡒ사람들은 숲의 소중함을 모르고 그저 먹고 마시고 춤추며 노는 유흥의 장소로 여기고 있습니다. 숲이 가까이 있어도 숲의 참의미를 모르고 살아갑니다.ꡓ ꡐ숲과 문화 연구회ꡑ는 자연계와 인간계의 끊어진 연결고리를 이어준다. 인간은 자연인 흙에서 태어났다. 단 한 순간도 흙을 밟지 않고 사는 도시인들은 자연과 유리되어 있다. 그러기에 자신도 모르는 압박 속에서 하루를 살아가는 불안의 상태에 놓여 있게 된다. ꡐ생태맹환자.ꡑ우리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진단이다. 문맹과 컴맹은 글과 컴퓨터를 다루지 못하는 사람이다. 효율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생태맹은 자연과 대화를 나누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다. 풀과 나무와의 교감을 나누지 못한다. 방법을 모른다기보다는 원래부터 지니고 있던 자연과의 교감 방법을 잊어버렸음이다. 삶의 대부분을 기계에 의존하면서부터 인간들은 생태맹 환자가 됐다. 자연의 소중함을 모른 채 살아가는 난치병에 걸려 있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결국 현대인은 자신이 자연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모른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회발달의 단계에 따라 인간의 욕구도 변화를 겪는다. 미국의 학자 매슬로(Maslow)는, ꡒ인간은 생리적 욕구→안전 욕구→친화 욕구→평가 욕구→자아실현 및 심미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욕구가 변천한다.ꡓ고 말했다. 60년대 이후 우리 사회는 고도 경제 성장을 경험했다. 그러나 경제 발전에 따른 물질적 풍요의 이면에는 배금주의와 물질주의, 환경오염이 새로운 문제로 대두됐다. 인간은 소외됐으며 실질적인 삶의 질은 저하됐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은 지금 생리적 및 안전 욕구를 거쳐 자아실현과 심미적 욕구를 추구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매 주말이면 수 십 만의 사람들이 오염되지 않은 자연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사람들은 왜 자신들이 자연을 찾는지 숲을 찾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ꡒ녹지 비율이 30% 이하로 떨어지면 사람은 불안감을 느끼고 심리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따라서 숲이라는 녹지공간은 시멘트벽으로 단절된 도시의 삭막한 정신을 치유해 주는 병원과 같은 공간입니다. 또 충분한 녹지 공간을 접하고 있는 사람들일수록 자아실현의 욕구가 강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인간의 자아실현 욕구는 창조의 원동력이며 안정된 인격의 출발점입니다.ꡓ그는 지난 92년 숲을 통해 자연의 고마움을 알고 올바르게 이용해 보존하자는 취지로ꡐ숲과 문화 연구회ꡑ를 창립했다. 시민을 위한 녹색 체험, 자녀와 함께 숲 찾아가기, 숲속 작은 음악회, 시낭송회, 숲속 문화제, 사진전 등 그때그때 특정 주제를 가진 아름다운 숲 찾아가기 행사만도 1997년으로 29번째를 맞이했다. 서울시내 종묘에서부터 강원도 점봉산, 멀리는 제주도의 비자나무숲까지 연구회는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이 깃들인 전국의 숲을 시민들과 함께 찾아다녔다. 숲은 나무와 풀들의 서식 공간과 사람의 휴식 공간 이상의 의미를 안고 있다. 문화는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세계관, 인생관 또는 삶의 어우러진 표현이라고 말한다. 숲에는 도교, 불교, 음양오행설, 풍수지리 등 자연조화사상에 뿌리를 둔 우리 선조들의 정신적인 가치가 내재되어 있다. 그러기에 한국의 숲에는 우리 조상의 문화가 어려 있으며 역사와 예술, 민속이 담겨있다. 오랜 세월을 자연과 벗하며 지냈던 한민족의 얼굴을 찾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숲이다. ꡒ우리 선조들은 나무와 숲을 물질로 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인격을 부여해 벼슬을 내리거나 재산을 물려주기도 했습니다. 속리산 정이품송이나 등기부에 토지를 소유한 경북 예천의 석송령(후손이 없던 이수목 노인이 토지를 물려주어 지금도 재산세를 내고 있는 소나무)이 그 예입니다. 숲과 나무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 즉 균형 잡힌 생태 관계를 유지하는 중간자 역할을 해왔지요. 숲은 인간을 자연과 튼튼하게 연결해 주는 생태 고리였던 셈입니다.ꡓ그는 숲을 가꾸고 자연과 공존하기 위해서는 삶의 양태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먹고 떠들고 마시는 소비의 문화에서 명상하고 산책하는 숲의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다.ꡐ숲과 문화ꡑ, 숲이라는 공간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어떤 정신문화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 던지는 그의 화두다.(이제교 記者 文化日報 1997-04-29)
석송령(나무와 숲이 있었네 ; 전영우 지음 ; 학고재, 13,000원 ; 多樣한 個性 지닌 곳곳의 숲과 文化 敍述) [記事] : 국민대 전영우 교수(산림자원학)가 최근 펴낸 「나무와 숲이 있었네」(학고재 刊)는 우리 숲과 나무의 아름다움과 고마움을 전해준다. 문화유산뿐 아니라 숲과 나무도「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다. 지난 92년부터 시인, 학자, 화가 등이 어울린「숲과 문화 연구회」를 이끌고 격월 간「숲과 문화」를 발행하고 있는 저자는 보통 사람들이 몰라서 지나치는 우리 숲과 나무의 소중함을 때론 겸재 정선의 그림 등 다양한 예를 들어 쉽게 설명한다. 이 책은 마을 소나무(경북 예천 석송령)에 인격을 부여, 토지대장까지 갖게 하고 이를 상속하게 할 만큼 나무와 숲을 사랑했던 우리 민족의 나무 사랑을 일깨워준다. 지은이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나무와 숲은 더 이상 경제적 효용 가치가 있는 대상이 아니라 가족과 친구처럼 다가온다.(김한수 記者 朝鮮日報 1999-06-15)
석송령(醴泉 石松靈 ; 稅金 내고 獎學金도 주고 … 600年 마을 지킨 '巨木') [記事] : 석송령. 경북 예천군 감천면 양지바른 땅 1,379평 주인이다. 해마다 마을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주고, 세금도 거른 적 없다. 1998년에 낸 세금은 6210원. 음력 정월14일이면 마을 사람들이 풍성히 상을 차려 대접한다.『오래 오래 사시라』고. 사람이 아니라 나무다. 600년 넘게 산「세금 내는 나무」다. 1927년 8월이었다. 마을에 이수목이라는 노인이 살았다. 아들 없던 노인은 동신목(洞神木)인 이 나무에게 석송령이라는 이름과 함께 재산을 고스란히 물려주고 죽었다. 땅은 나무 앞으로 등기가 이전됐다. 이 후 마을 사람들은 땅에서 나오는 소출로 장학금을 주고, 세금을 내고, 해마다 제사를 지낸다.『연산군 때 물난리를 타고 떠내려 오는 나무를 선비 하나가 건져 올려 심었다지. 』 마을 김택진(85) 옹 기억이다. 일제 때 나무 베러 온 순사가 갑자기 자전거가 뒤집어지더니 뇌를 다쳐 죽었다 카더라… 나무 안에 할배랑 할매가 살고 있다 카더라… 한 번 본 사람은 꼭 기억했다가 2,3년 뒤에 다시 부른다 카더라…. 신비로운 생김새다. 얼핏 보면 숲으로 착각할 정도로 거대하다. 밑동은 어른 세 아름이 넘는다. 중간 양편으로 보통 나무 밑동보다 더 굵은 줄기가 자라났다. 높이 10m, 몸통 둘레 4.2m. 나무가 가리는 땅만 200평을 넘는다. 『저기 위쪽 좀 보이소. 용 네 마리가 동서남북으로 승천하고 있지예?』 나무와 함께 자란 권영업(40) 씨 말이다. 용비늘 처럼 굵고 세밀한 껍질에 이끼가 두텁다. 긴 세월, 눈 맞고 얼었다 녹는 통에 위쪽 가지는 많이 부러져 나갔지만 세월은 가지들을 기기묘묘한 형태로 비비 꼬아 놨다.『나무가 아니지예. 나무님이라요. 』 외지인이 나무에 오르기라도 하면 청천벽력 같은 고함이 사방에서 터진다. 우리 나무님 화나게 하지 말라고. 권씨는 1998년 솔잎혹파리로 고생하던 나무님 씨앗 200여 개를 싹틔워 어른 새끼손가락 만하게 키워놓았다. 앞으로도 600년은 더 살길 바라면서. 석송령이 사는 예천에는 강과 산이 만든 초대형 풍경화, 의성포(現 回龍浦)가 있다. 용궁면에 있는 의성포는 뒷산에서 이어지는 토끼길 빼고는 사방이 물에 에워싸인 마을, 거대한 물돌이동이다. 장마 끝나면 넓은 모래밭엔 물놀이 하는 어린이들 발자국이 새하얗게 찍힌다. 600년을 살아낸 나무님과 순진무구한 포구가 그렇게 예천 땅에 곱게 숨어 있다. 석송령. 그곳 그 자리에 뿌리내리고 600년 세월을 지켜온 나무님이다. 땅도 있고, 세금도 내고, 장학금도 주는 동신목이다.(박종인 記者 朝鮮日報 1999-07-02)
석송령(發見! 이 채널) [記事] : MBC TVꡐTV 특종! 놀라운 세상‘(오후 7시 20분)에서 경북 예천군 석평마을에 있는 고목(古木) ꡐ석송령ꡑ을 취재했다. 이 나무는 주민등록번호는 물론 자기 명의의 재산까지 가지고 있다.(朝鮮日報 2003-08-19)
석송령(新羅 때 地名 그대로 간직한 醴泉/ 石松靈) [記事] : 감천면 덕율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접어들면 천향리 석평(石坪)마을에 수령 600년을 자랑하는 거대한 반송(盤松) 한 그루가 서 있다. 높이 10m, 수폭 동서 32m, 남북 22m라는 이 소나무는 그늘 면적만도 300여 평에 이르며, 부귀, 장수, 상록을 상징하고 마을의 안녕과 협동심을 북돋아주는 신목(神木)이다. 600여 년 전 마을 앞을 흐르는 석간천(石澗川) 상류에서 홍수에 휩쓸려 떠내려 오는 어린 소나무를 마을 사람이 건져 심었다고 전해 오는데, 1920년 경 이 마을에 살던 한 노인이 후사 없이 죽으면서 소유 토지를 기탁함으로써 한 인격체가 되어 석송령(石松靈)이라는 이름을 당당히 지니게 되었다. 석평마을의 영험한 소나무란 뜻이다. 석송령 명의로 1,500평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이 나무는 세금도 납부하고 마을 학생에게 석송령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하는 성스러운 나무이다. 막걸리를 좋아해서 행사 때마다 마시는 막걸리가 1년에 열 말도 넘는다고 하는데 아직도 원기 왕성해 보이는 이 나무의 건강과 장수를 빈다. 천연기념물 제294호이다. 예천에는 토지를 소유하고 세금을 납부하는 나무가 또 하나 있다고 한다. 용궁면 금남리 금원마을에 있는 수령 500년의 황목근(黃木根)이라는 이름을 가진 팽나무인데 토지를 4,000평이나 소유하고 있으며 천연기념물 제400호란다. 유적도 많고 문화재도 많은 유서 깊은 예천을 하루 동안에 돌아보았으니 무엇을 얼마나 보았을까 마는 예천문화원을 비롯한 관계 기관의 친절한 안내로 이만큼이나 볼 수 있었던 것을 감사하며, 은근과 끈기의 예천이 계속해서 우리의 전통문화를 아름답게 지켜나가는 고을이 되기를 빈다.(pwj32.com.ne.kr 2004)
석송령(東洋畵家 이호신 '소나무야 소나무야'展) [記事] : 동양화가 현석(玄石) 이호신이 1년여 간 전국을 누비며 '소나무 기행'에 나섰다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소나무만큼 우리 민족의 문명 발달에 영향을 미친 나무는 없을 것이다. 궁궐을 비롯한 옛 건축물 축조의 재료는 소나무였고, 물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쌀과 소금을 실어 날랐던 조운선도 소나무로 만들어졌다. 세계에서 자랑하는 조선백자도 영사라고 불리는 소나무 장작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대용품이 없는 소금의 생산도 이 땅의 솔숲이 감당해야 했다. 또 왜적을 무찌른 거북선과 전함도 물론 소나무로 만들어졌다. 이처럼 물질적 기능의 중심이었던 소나무는 또한 우리 민족사의 곧고 굳은 정신적 기개와도 맥을 같이하고 있어 오늘날도 우리는 나무하면 소나무를 가장 먼저 떠올리고 있는지 모른다. 현석의 소나무 기행도 민족사와 같이 해 온 소나무의 정신적․물질적 영향 탓이 아닐까 한다. 특히 조형미가 뛰어난 소나무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에 대해 현석은, ꡒ소나무가 유명한 경북 울주군 평해읍 월송리에서 자란 어린 시절의 추억 때문인 것 같다ꡓ고 말한다. 현석이 1년여 동안 소나무 기행을 통해 만났던 소나무를 화폭에 담아 전시회를 열고 있다. 2004년 3월 26일 개관해 동년 4월 6일까지 서울 금호미술관 전관에서 열리는 이 번 전시회에서는 대관령, 준경릉, 홍성, 안면도, 예천(石松靈), 청도, 포항, 진주, 통영, 보성, 강진, 영주, 춘양, 울진, 고성, 수원, 서울, 제주, 일본 교토 등에서 만난 소나무 51점이 전시된다. 특히 '사라지는 소나무 숲', '예감-산불 후' 등의 작품은 인간의 자연 파괴에 대한 경고이고, '우리는 서로 지기(知己)' 등 5m가 넘는 대작은 인간과 자연의 동일체를 역설한다. 이 번 전시는 산림청이 후원했다.(유재명 京仁日報 2004-03-30)
석송령(4. 靜 - 때로는 沈潛하고 싶은 時間. 고요 속으로의 沈潛 : 醴泉 石松靈) [記事] : 박종인의 저서로, 조선일보사에서 2001년 5월 1일에 펴낸 <다섯 가지 지독한 여행 이야기(느낌따라 떠나는 감성여행지 38군데)> 4번에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여느 여행 안내서와는 다른 독특한 여행 이야기를 담았다. 조선일보 여행전문 기자인 저자는 여행의 추천지를 지역별, 계절별이 아닌 느낌에 따라 분류하였다. 몽환적인 즐거움(幻)과 한가로운 여행(遊), 그리고 슬프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 더욱 지독한 슬픔을 맛볼 수 있는 여행(哀), 고요 속으로의 침잠(靜), 지금은 죽어 없거나 혹은 펄펄하게 살아 있어 이 땅 골속골속 아름다움을 채워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인(人)까지 저자는 이렇게 다섯 가지 여행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름다운 풍경 사진과 함께 가는 길, 묵을 곳, 먹거리 등 다양한 여행 정보가 들어 있는 이 책은 우리를 새로운 여행의 세계로 안내해 줄 것이다. 이 책은 아주 독특한 여행 안내서이다. 우선『다섯 가지 지독한 여행 이야기』라는 책이름이 그렇다. 그리고 일반 여행 안내서와는 달리 저자가 추천하는 여행지를 지역별, 계절별이 아닌 느낌에 따라 환(幻)․유(遊)․애(哀)․정(靜)․인(人)으로 나눈 점도 그렇다. 이 책을 쓴 저자 또한 독특하다. 자칭 타칭 도사로 명산대천을 쏘다니며 하늘과 땅과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글을 쓰기를 지독히 좋아하며, 그래서 하늘이 주신 천직이라고 생각하는 여행 담당 기자의 역할을 지독히 열정적으로 해내고 있다. 저자는 대자연과 인류가 펼쳐내는 대장엄(大莊嚴)을 경험하려면 800세까지 살아야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희박해 더욱 여행에 열중하게 된다고 말한다. 환(幻)은 환상을 품고 떠날 수 있는 곳들이다. 볼거리로는 섬진강 매화, 섬진강 산수유, 바래봉 철쭉, 인제 개인동, 무안 회산지 연꽃, 어둠의 환(幻)인 삼척 환선굴, 선덕여왕릉과 경주 남산, 세월의 환(幻) 변산반도를 추천한다. 몽환적인 즐거움을 준다. 유(遊)에서는 한가로이 노닐면서 즐길 수 있는 곳들을 골랐다. 아무 생각 없이, 가족 혹은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탕용견(宕湧甄), 주왕산, 진천, 보탑사와 농다리, 양평, 충북 드라이브 코스, 56번국도․구룡령, 파주 초릿골, 군위 석굴암, 인제 방태산휴양림, 김포 덕포진교육박물관으로 시간과 공간을 즐길 수 있다. 애(哀)는 슬프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 더욱 지독한 슬픔을 맛볼 수 있는 곳. 영월, 단양 온달산성, 만추를 느끼기 좋은 충남 아산과 서산, 청원, 응달마당, 인각사, 눈 덮인 철원, 김제 평야이다. 정(靜)은 때로는 고요 속으로 침잠하고 싶을 때 이 곳을 찾으면 좋다. 봉화 청량사, 남도 석물, 수종사, 순창 강천산, 강화도 마리산, 예천 석송령, 가을의 사색 영주 부석사, 봄의 사색 직지사, 부여 무량사이다. 인(人)은 사람 역시 여행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사람들은 머릿속으로 그 사람을 떠올리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고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들이다. 비수구미 사람들, 안성 서일농원, 자연주의 농부 김광덕, 정선 된장공장, 우록동 녹동서원과 왜장 사야가이다. 물론 저자의 이러한 분류는 주관적이기 때문에 당신은 같은 장소에서 저자와는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그 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이 책이 주는 정보를 좇아서 새롭게 분류하는 자유가 당신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여행을 한 뒤의 감상만을 기록한 책이 아니다. 각 여행지에 대한 상세한 정보들이 있다. 가는 길, 묵을 곳, 먹거리, 기타 유용한 정보를 실어 이 책에 소개된 정보만으로도 충분히 주말여행을 즐길 수 있다.[예스24 提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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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