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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652) : 예천8경 중 석송령(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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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송령(<우리가 정말…> 펴낸 전영우 敎授) [記事] : 전영우 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53)에게 소나무는 생명의 나무다. 1993년부터 주변 사람들과 함께 소나무를 가꾸고 보존하는 일을 해왔지만 최근 3년처럼 절실한 애정을 가진 적은 없었다. 전 교수는 3년 전 대장암으로 큰 수술을 받았다. 죽을 고비를 넘긴 뒤 1년 동안 학교를 쉬면서 뭔가 보람있는 일을 해보자는 생각을 했는데, ꡒ문득 소나무가 다가왔다ꡓ고 했다. 그때부터 이 책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소나무>(현암사)를 본격적으로 준비했다. 10년 전에 이미 가봤던 소나무 서식지를 수술 후 원기를 채 회복하지 못한 몸을 이끌며 2년 동안 다시 돌아봤다. 땅을 갖고 있어 매년 종합토지세를 내는 경북 예천군 석송령 소나무를 꼼꼼히 조사했고, 일본 국보 1호인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한국 양백(소백산과 태백산 일대) 지역의 소나무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불상이 있는 교토 고류지(廣隆寺)를 세 번이나 찾았다. 소나무가 있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든 갔다. 전 교수는 당시의 심정을 책에 이렇게 표현했다. ꡒ용기와 희망이 절실히 필요하던, 곤궁하던 세월에 소나무가 안겨 준 불가사의한 치유력은 얼마나 신묘했던가.ꡓ(272쪽) 한국은 대대로 소나무의 나라였다. 애국가 2절 중ꡐ남산 위에 저 소나무ꡑ는 조선 태종 때 지기(地氣)를 보완하고 복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에서 집중적으로 심은 것이고, 경복궁 덕수궁 등 궁궐도 모두 소나무로 지었다. 세금으로 바치던 쌀을 싣고 서울로 오던 조운선(漕運船)과 거북선 판옥선 등 전함도 소나무로 만들었고, 조선백자를 굽던 가마에도 꼭ꡐ영사ꡑ라 불리던 소나무 장작을 땠다. 그러나 지금은 궁궐 등 문화재를 복원하려고 해도 적합한 소나무를 찾기가 힘들다. 1960년대 남한 삼림의 60%를 차지하던 소나무 숲은 오늘날 항공사진으로 촬영해 보니 25%로 줄었다. ꡒ소나무 씨는 맨땅에 떨어져야 잘 자랍니다. 과거에는 솔잎이나 솔가지를 주워 땔감으로 많이 써서 소나무가 자랄 수 있었지만, 지금은 활엽수의 낙엽에 덮여서 소나무가 자라지 못합니다. 여기에 솔잎혹파리 등 병충해도 심했지요.ꡓ그렇다고 전 교수는 좌절하지 않는다. 그는 30년째 국민들이 소나무를 가장 좋아하는 나무로 꼽고 있는 것에 희망을 걸고 있다. ꡒ소나무는 한국인을 한국인답게 만들어주는 상징적인 생명문화 유산입니다. 물론 한국의 모든 숲을 소나무로 덮자는 것은 망발이지요. 다만 문화재 복원용 소나무라도 충분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민동용 記者 東亞日報 2004-10-16)
석송령(稅金내는 소나무 `石松靈` 새丹粧) [記事] : 세금 내는 소나무로 유명한 천연기념물 제294호인 '석송령'이 새롭게 단장됐다. 2004년 11월 11일 예천군에 따르면, 감천면 천향리에 있는 '석송령'에 대해 5개월여 간에 걸쳐 2천여만 원의 예산을 투입, 고사지 제거 및 수형 조절, 병충해 방제, 영양 공급, 지지철 보완 등의 '대수술'을 진행했다. 이에 따라 수령이 600여 년에 이르는 석송령은 건강한 소나무로 다시 태어나게 됐으며 관광객들에게도 더욱 아름다운 자태를 뽐낼 수 있게 됐다. 용 4마리가 동서남북으로 승천하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큰 소나무인 석송령은 높이 10m, 몸통 둘레 4.2m로, 마을 주민들이 부귀와 장수를 누릴 수 있도록 수호신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석송령은 1920년대 후사가 없는 한 주민이 세상을 뜨면서 내놓은 전답을 동네주민들이 나무 이름으로 등기를 함으로써 현재까지 종합토지세 등의 세금을 내고 있으며 특히 지난 80년대 중반 대통령 하사금 500만 원을 받아 이를 지역 학생들에 대한 장학금으로 사용하고 있다. 예천군 관계자는, "석송령을 찾는 관광객들이 늘어남에 따라 보호 사업을 벌이게 됐다"면서, "앞으로 석송령 주위 환경을 정비해 인근 예천온천과 연계한 관광 명소로 육성할 것"이라고 말했다.(慶北日報 2004.11.11)
석송령(天然記念物 石松靈 保護事業 完了) [記事] : 천연기념물 제294호로 지정되어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으며 세금 내는 소나무로 유명한 감천면 천향리 소재 석송령에 대한 2004년도 보호 사업이 완료되었다. 2004년 5월 28일부터 시작한 사업은 사업비 2천 2백만 원을 투입하여 나무종합병원에서 맡아 고사지 제거 및 수형 조절, 병충해 방제, 영양 공급, 지지철 보완 등의 사업을 시행해 왔다. 세부 사업 내용은 수형 조절 30개소, 솔잎혹파리 방제 3회, 응애 진딧물 방제 3회, 엽진 엽고병 방제 3회, 피목 지고병 방제 3회, 생리 증진제 처리 3회, 무기 양료 엽면시비 3회 등을 실시하였다. 한편 군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석송령 보호를 위해 지속적인 사업을 추진하는 한편 석송령을 찾는 관광객들의 편의 제공을 위해 주변에 대한 정비에도 적극 나설 방침이다.(醴泉新聞 2004-11-19 14:26:09)
석송령(<綠色文化運動 숲이 希望이다><31> 人格이 附與된 나무들 姓은 石. 이름은 松靈) [記事] : 나무에 인격이 있을까? 나무를 사랑하고 존중하고, 나무와 대화하고, 사물이 아닌 생명체로서 환대하고 찬사를 보내면 나무에도 인격이 생길 것이다. 감정 이입과 일체감을 형성하려면 나무를 인격체로 보는 마음이 중요하다. 나무를 사람과 같이 격식을 차려 대접해 준다면 나무는 여름에는 그늘을 제공하고, 겨울에는 연료를 공급해서 따뜻하게 해주며,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장소를 제공한다. 나무를 인격체로 대한 것은 글에서 잘 나타난다. 동량(棟梁)이란 글자는 건축재라는 뜻 뿐 아니라 재주 있는 출중한 사람을 뜻할 때 쓰인다. 또 속담에 '가지 많은 나무가 바람 잘 날 없다' '나무 같은 사람에 돌 같은 마음이다' '나무도 나이 들면 속이 빈다.'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말이 있는데, 모두 나무를 의인화한 것이다... 나무에 사람과 같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준 실례로는 석송령이 대표적이다. 경북 예천군 감천면에 석송령(石松靈)이란 600여 살 된 소나무가 있는데, 80년 전 석평 마을에 사는 이수목이란 노인이 소유하던 토지를 이 나무 이름으로 기증하고 세상을 떠나자 주민들이 그의 뜻을 모아 등기를 함으로써 재산을 소유한 나무가 되었다. 성(姓)은 석(石)이고 이름은 송령(松靈)이다. 땅에서 나오는 소득에 대한 여러 가지 세금을 내고 있으며, 은행에 저금통장이 있어 해마다 이 지방의 학생을 골라 장학금을 주고 있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에는 거금인 5백만 원을 이 나무에 준 일이 있는데, 이 또한 석송령을 인간으로 대접했던 까닭이다. 주민들은 석송계를 조직하고 매년 음력 대보름날 석송령 앞에서 지난 한 해 동안 변고 없이 깨끗하게 지낸 사람을 골라 제주(祭主)로 하여 제사를 올리고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빈다. 나무에 재산을 물려주는 바람에 자손 대신 마을 사람들이 묘소와 재산을 관리하고 마을 화합의 구심점이 되었으니, 석송령은 가히 인격을 가진 나무의 으뜸인 것이다. 한편 나무를 의인화하여 벼슬을 주었다는 전설도 있다... 아마도 나무는 사람 없이 살 수 있으나 사람은 나무 없이 살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극단적인 기후를 가진 곳에서는 소수의 사람이 살아가지만 사람이 사람답게 살려면 나무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선조들이 나무를 사람처럼 귀히 여긴 것이 자연보전사상의 모태가 되지 않았나 싶다.(京鄕新聞 2004-12-28)
석송령('石松靈' 保護事業 나서) [記事] : 천연기념물 제294호로 지정되어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으며 세금 내는 소나무로 유명한 감천면 천향리 소재 석송령에 대한 보호사업에 예천군이 발벗고 나섰다. 군이 1천만 원의 예산을 확보해 2005년 5월 4월 나무 종합병원과 계약을 체결해 5월부터 병충해 방제와 전국적으로 확산 기로에 있는 소나무의 에이즈라고 불리는 재선충병 예방 등 석송령 보호사업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군은 앞으로 솔잎혹파리 방제, 응애․진딧물 방제, 엽진․엽고병 방제, 피목 지고병 방제, 생리 증진제 처리, 무기 양료 엽면시비, 소나무 재선충병 예방 등 병충해 방제 사업을 적극 펼쳐 성송령 보호에 철저를 기해 나갈 방침이다. 석송령은 수령이 6백여 년 된 소나무로 이 마을의 안녕과 단합을 지켜주는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으며, 지난 85년 대통령 하사금 5백만 원으로 석송령장학회를 조직해 매년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주고 있다. 또한 최근 예천온천과 연계되어 석송령을 찾는 관광객들의 숫자도 날로 늘어가고 있어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이에 군은 천연기념물인 석송령 보호는 물론 관광객들의 편의 도모를 위한 주변 정비에 적극 나설 방침이다.(醴泉新聞 2005-05-13 17:18:49)
석송령(石松靈), 예천감천면 반송(醴泉甘泉面盤松), 예천천향리 노송(醴泉泉香里老松), 소나무, 부자나무(富者나무) [名木] : 감천면 천향리 804번지 석평(石坪)마을 앞 대지에 있는 노송(老松)으로, 경북도나무 제419호로, 천연기념물 제294호(1982.11.3 指定)이고, 예천군의 상징 나무(1986.12.6 指定)로 장수(長壽), 상록(常綠), 부귀(富貴)를 상징한다. 한 그루의 줄기에 여러 가지가 함께 뻗어 마치 우산을 펼쳐 놓은 것 같다. 수령 600년, 높이 10m, 둘레(사람 가슴 높이의 나무의 둘레)는 4.2m, 수폭(樹幅)은 동서가 32m, 남북이 22m, 그늘 면적 990㎡(324坪)로 두텁다. 우리나라에 오직 하나 뿐인 재산을 가지고 있어 유일하게 재산세를 납부하는 부자나무이고, 천향리의 안녕을 빌고, 액운을 쫓아주는 동신목이다. 이 나무는 약 600년 전 마을 앞을 흐르는 석간천(石澗川) 상류에서 홍수를 타고 떠내려 오던 어린 소나무를 어떤 주민이 건져 심었다고 구전되는데, 이 나무가 석송령(石松靈)으로 불리게 된 연유는 이 마을에 후사(後嗣)없이 살고 있던 이수목(李秀睦)이란 촌로(村老)가 말하기를, "사후(死後)를 부탁합니다."라고 하고, 그의 밭 2천 평을 이 나무 명의로 기증하고, 1930년 경 마을을 떠나자, 주민들(代表 柳泉佑)은 그의 뜻을 새겨 석평동(石坪洞)에 있는 영험있는 나무라고 하여 석송령(石松靈)으로 이름을 짓고 지주로 등기(1927.8.10)시켜 처음으로 나무가 지주로 되었다. 나무로서는 유일하게 토지(4,600㎡ 논밭)와 장학 기금 5백만 원을 소유한 부자나무가 되었다. 따라서 재산세를 납부하는 납세 의무자가 되었다. 주민들은 이 나무에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이 노송(老松)의 원활한 보호 관리를 위해 석송계(石松契)를 조직,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흘 날 자시에 마을에서 뽑은 축관과 제관 2명이 목욕재계하고 정성을 다해 마을의 번영과 풍년을 기구하는 동신제를 올린다. 이 나무가 소유한 토지의 수입으로 비료도 주고 약도 쳐주고 알뜰히 가꾸며 이 나무를 보호한다. 이는 옆으로 뻗어난 10여 m의 자기 가지를 못 이겨 1973년부터 9개의 돌기둥과 18개의 나무기둥에 떠 받쳐져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이 국내외에 널리 소개되자, 1985년 대통령께서는 500만 원의 특별 관리비를 하사한 바 있는데, 주민들은 보다 뜻있게 활용코자 석송령장학회(石松靈獎學會)를 구성, 역내 중·고등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석송령 애호사상 선양에 힘쓰고 있다. 일제 때 이 나무가 미신 숭배의 대상이라 하여 일인이 나무를 자르려 오다가 마을 어구에서 까닭 모르게 넘어져 크게 다쳤기 때문에 이 나무가 무사했다고 한다. 또 한때 마을 사람들이 전염병에 걸려 곤욕을 치룰 때 석송령에 정성껏 제사를 지내 전염병이 물러갔다고 하고, 6.25전쟁(1925) 때는 마을 사람들이 공습을 피해 석송령 밑에 숨어들어 한 사람의 피해도 없었다고 믿는 신령스러운 마을의 수호신으로 오늘도 받들어진다. 이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석송령을 해치면 큰 벌을 받는다고 믿고 있다. [趙雲濟의 詩] : 예천서 영주로 가다가/ 풍기로 가는 포장도로를 접어들면/ 감천면 석평마을/ 거기 길가에/ 반송이 하나 서 있는데/ 줄기 둘레가 4미터/ 높이는 10미터 쯤/ 6백 년의 나이에/ 가지는 게의 다리처럼 굵게 뻗고/ 가지마다 다듬은 돌로 괴고/ 전체는 철책으로 둘러싸였는데/ 그 옛날/ 소백산 어느 기슭에 싹이 나서/ 홍수에 떠내려 온 것을/ 이 마을 사람이 심었다는 것/ 그 후 이 나무를 사랑한 한 촌로가/ 자식 없이 죽을 때/ 전 재산 천여 평을 상속을 내려/ 그 곡수로/ 세금도 내고 장학금도 내는/ 세계에 하나 뿐인/ 부자나무/ 지금은/ 천연기념물 296호/ 부귀와 장수의 영험을 내리는 신령/ 죽으면서/ 자기의 염원을/ 소나무에 맡긴/ 갸륵한 마음/(保護樹誌 1972, 醴泉郡統計年譜 1981)
[朝鮮日報] : 감천면 천향리 양지바른 땅 1,379평의 주인으로, 해마다 마을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주고, 세금도 거른 적 없다. 1998년에 낸 세금은 6,210원. 음력 정월 14일이면 마을 사람들이 풍성히 상을 차려 대접한다. "오래 오래 사시라"고. 사람이 아니라 나무다. 600년 넘게 산 '세금 내는 나무'다. 1927년 8월이었다. 마을에 이수목이라는 노인이 살았다. 아들 없던 노인은 동신목(洞神木)인 이 나무에게 석송령이라는 이름과 함께 재산을 고스란히 물려주고 죽었다. 땅은 나무 앞으로 등기가 이전되었다. 이 후 마을 사람들은 땅에서 나오는 소출로 장학금을 주고, 세금을 내고, 해마다 제사를 지낸다. "연산군 때 물난리를 타고 떠내려 온 나무를 선비 하나가 건져 올려 심었다지." 마을 김택진(85) 옹 기억이다. 일제 때 나무 베러 온 순사가 갑자기 자전거가 뒤집어지더니 뇌를 다쳐 죽었다 카더라... 나무 안에 할배랑 할매가 살고 있다 카더라... 한 번 본 사람은 꼭 기억했다가 2,3년 뒤에 다시 부른다 카더라... 신비로운 생김새다. 얼핏 보면 숲으로 착각할 정도로 거대하다. 밑동은 어른 세 아름이 넘는다. 중간 양편으로 보통나무 밑동보다 더 굵은 줄기가 자라났다. 높이 10m, 몸통 둘레 4.2m, 나무가 가리는 땅만 200평을 넘는다. "저기 위쪽 좀 보이소. 용 네 마리가 동서남북으로 승천하고 있지예?" 나무와 함께 자란 권영업(40) 씨의 말이다. 용비늘처럼 굵고 세밀한 껍질에 이끼가 두텁다. 긴 세월 눈 맞고 얼었다 녹는 통에 위쪽 가지는 많이 부러져 나갔지만 세월은 가지들을 기기묘묘한 형태로 비비 꼬아 놨다. "나무가 아니지예. 나무님이라고요." 외지인이 나무에 오르기라도 하면 청천벽력 같은 고함이 사방에서 터진다. 우리 나무님 화나게 하지 말라고. 권씨는 1998년 솔잎혹파리로 고생하던 나무님 씨앗 200여 개를 싹튀워 어른 세끼 손가락만하게 키워놓았다. 앞으로도 600년은 더 살길 바라면서. 석송령! 그곳 그 자리에 뿌리내리고 육백 년 세월을 지켜온 나무님이다. 땅도 있고, 세금도 내고, 장학금도 주는 동신목이다.(朝鮮日報 1999.7.2 박종인 記者)
[文化日報 等] : 감천면 천향1리 석평(石坪) 마을 앞에 있는 소나무로, 천연기념물 제294호로 지정되었다. 우산 모양의 당당한 기풍을 내보이고 있다. 이는 약 600년 전 엄청난 비가 내려 큰 홍수가 있던 해 산사태로 떠내려 와 이 곳 개천(勿溪川) 가에 걸쳐있는 소나무를, 고려가 망하자 이 곳 물계촌(勿溪村) 강씨골(姜氏洞)에 은거해 있던 감찰(監察) 강종덕(姜宗德)이 정성스레 심고 가꾸었다는 전설이 있다. 한편 <예천군지>의 기록에는, 600여 년 전 홍수로 떠내려 온 어린 소나무를 어떤 주민이 건져 심었다고 하며, 나무의 키는 10m, 직경은 4.2m, 나무의 폭은 동서로 32m, 남북으로는 22m, 그늘 면적은 990㎥ 규모로 마을의 안녕과 단합을 지켜주는 동신수로 부귀, 장수를 상징하고 있다 한다. 이 석송령에서 150m 떨어진 곳에 강종덕의 재실 일남재(逸南齋)가 있고, 1.5km 위쪽 주마산에 묘소가 있다. 지난 5-6년 사이에 주변 환경이 많이 변했다. 방문객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최근에 개장한 인근의 예천온천과 중앙고속도로 덕분에 주말에는 1,500여 명의 인파가 들린다. 그래서 예천군에서 주차장을 넓히고, 정자를 만들고, 나무 호보 철책을 좀더 밖으로 넓혔다. 그러나 많은 관광객들이 나무 밑으로 거리낌 없이 들락거리고 함부로 막걸리를 주고 있어서 걱정스럽다. 이런 행위는 나무에게 치명적이며 이 나무가 쇠약해진 원인의 하나일 수도 있다. 사람들의 빈번한 출입은 흙바닥을 단단하게 만들고, 다져진 흙 속의 뿌리는 영양분이나 산소를 충분히 흡수할 수 없게 되어 나무는 차차 쇠약해져 고사하고 만다.(www.jinjukang.org 2003, 文化日報 2003.6.5)
[韓國日報 等] : 감천면 천향리 석평 마을 한가운데 서 있는 소나무로, 우뚝하고 잘 생겼고, 수령 600년쯤 된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진기한 나무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나무에게도 감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어떤 특수한 능력을 기대하며 자연과 조화된 삶을 살아왔다. 나무는 모든 생물들 중에서 가장 오래 살고, 덩치도 크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것을 숭상하는데, 그만큼 나무도 사람의 정신세계까지 긍정적으로 다듬어주고 사랑한다. 이 석송령이 재산을 갖게 되고 나라에 세금을 내며 학생들에게는 장학금까지 주게 된 사연을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이 소나무를 어렸을 때부터 바라보고 자라온 이수목이라는 석평 마을 사람이 이 나무로부터 특별한 영기를 느껴 1927년 자기가 소유하고 있던 전 재산인 1,191평의 전답을 이 나무 앞으로 상속해주고 석송령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토지대장에 보인 석송령의 주민등록번호가 3750-00248이고, 1927년 8월 10일부터 토지에 대한 소유권을 갖게 된 것으로 명기해 있다. 이 마을에 사는 석송령보존회장 김성호 씨에 따르면, 1975년 고 박정희 대통령이 이런 소식을 듣고 석송령 보호기금 500만 원을 보내줘 적지 않은 재산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 재산으로부터 나온 기금으로 석송장학회를 만들어 지금까지 이 마을 학생들 44명에게 혜택을 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나무에 음력 정월 보름이면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동신제를 지내고 부녀자들이 나무 주변을 돌면서 막걸리를 부어주는 행사를 매년 해오고 있다. 인간과 자연의 일체성을 느끼게 하는 풍습으로 이 동신제 때 석송령에 고하는 축문의 한 구절을 보면 다음과 같다. “신께서 도와주시어 모든 것에 사랑이 넘치고 우리가 간구할 때 병마와 모든 액운을 물리쳐 주시니 이 마을 사람들이 행복하므로 오래도록 정성을 다해서 모시겠나이다.” 한국전쟁 때 다른 마을 사람들은 죽고 다쳤지만 이 마을 사람들은 전혀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석송령은 법적 지위나 인격을 부여받아 인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인정될 뿐 아니라 정신적 지주가 되는 대표적인 우리 민속이라고 할 수 있다. <식물의 신비 생활>(피터 톰킨스, 크리스토퍼 공저)이라는 책에 보면, 식물도 우리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기뻐하고 슬퍼한다고 하였다. 예쁘다는 말을 들은 난초는 더욱 아름답게 자라고, 볼품없다는 말을 들은 장미는 자꾸자꾸 시들어간다고 하였다. 우리 선조들은 일찌감치 석송령과 같이 나무를 비롯한 대자연 속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에게 사람과 똑같은 인격을 부여하며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슬기로움이 있었던 것이다. 예천군은 1997년부터 수령 5-7년 된 그 아들 나무를 화분당 3만 원에 분양하고 있다.(韓國日報 2003.9.24, 朝鮮日報 2003.11.26)
[인터넷 1] : 감천면 덕율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접어들면 천향리 석평(石坪)마을에 수령 600년을 자랑하는 거대한 반송(盤松) 한 그루가 서 있다. 높이 10m, 수폭 동서 32m, 남북 22m라는 이 소나무는 그늘 면적만도 300여 평에 이르며, 부귀, 장수, 상록을 상징하고 마을의 안녕과 협동심을 북돋아주는 신목(神木)이다. 600여 년 전 마을 앞을 흐르는 석관천(石串川) 상류에서 홍수에 휩쓸려 떠내려 오는 어린 소나무를 마을 사람이 건져 심었다고 전해오는데, 1920년 경 이 마을에 살던 한 노인이 후사 없이 죽으면서 소유 토지를 기탁함으로써 한 인격체가 되어 석송령(石松靈)이라는 이름을 당당히 지니게 되었다. 석평 마을의 영험한 소나무란 뜻이다. 석송령 명의로 1500평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이 나무는 세금도 납부하고 마을 학생에게 석송령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하는 성스러운 나무이다. 막걸리를 좋아해서 행사 때마다 마시는 막걸리가 1년에 열 말도 넘는다고 하는데 아직도 원기 왕성해 보이는 이 나무의 건강과 장수를 빈다. 천연기념물 제294호이다. 예천에는 토지를 소유하고 세금을 납부하는 나무가 또 하나 있다고 한다. 용궁면 금남리 금원마을에 있는 수령 500년의 황목근(黃木根)이라는 이름을 가진 팽나무인데 토지를 4000평이나 소유하고 있으며 천연기념물 제400호란다. 유적도 많고 문화재도 많은 유서 깊은 예천을 하루 동안에 돌아보았으니 무엇을 얼마나 보았을까 마는 예천문화원을 비롯한 관계 기관의 친절한 안내로 이만큼이나 볼 수 있었던 것을 감사하며, 은근과 끈기의 예천이 계속해서 우리의 전통 문화를 아름답게 지켜나가는 고을이 되기를 빈다.(pwj32.com.ne.kr 2004)
석송령(石松靈 後繼者가 나왔어요) [記事] : "석송령(石松靈) 후계목 사 가세요." 경북 예천군이 천연기념물 제294호인 `석송령'의 대를 이을 나무를 키워 분양하고 있다. 2003년 11월 25일 예천군에 따르면 감천면 천향1리 804에 있는 석송령은 높이 10m, 몸통 둘레 4.2m, 그늘 면적 990여 ㎡에 이르는 600년 된 큰 소나무로 분재한 나무처럼 기묘하고 아름다워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또 마을 한 주민이 홍수 때 떠내려 온 어린 소나무를 심어 자란 것이라고 하는 석송령은 자기 이름으로 논·밭 5천87㎡를 갖고 있어 2003년 종합토지세가 8,850원이 나오는 등 세금내는 부자 나무다. 이에 따라 예천군은 석송령 보존과 전승을 위해 1997년부터 후계목 육성에 나서고 있다. 군농업기술센터가 현재 석송령에서 직접 씨앗을 따 발아시키는 방법으로 키우고 있는 어린 소나무는 600여 그루나 된다. 이 가운데 5~7년된 250그루를 조경수로 일반 사람들에게 판매하고 나섰는데, 화분에 담은 1그루는 3만 원이다. 예천군 관계자는, "석송령은 용 네 마리가 동서남북으로 승천하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며, "석송령의 성장 과정과 모습 등을 알기 위해 후계 나무를 육성하고 있다"고 말했다.(김효중 記者 聯合뉴스 2003-11-25 11:50)
석송령(植木日 맞춰 '나무' 關聯書 봇물) [記事] : 2004년으로 59회를 맞는 식목일을 앞두고 나무와 풀을 소재로 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박상진 경북대(임산공학과) 교수의「나무 살아서 천 년을 말하다」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천연기념물 나무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 쓴 책이다. 이 책은 마의태자의 한을 품은 경기도 용문사 은행나무, 자기 땅에서 당당히 세금 내며 사는 예천 석송령, 희고 고운 껍질로 좋은 일을 예견하는 서울 재동의 백송 등 천연기념물 나무들의 희로애락을 담았다. 박 교수는 최근 나무와 관련된 역사를 정리한 책「역사가 새겨진 나무 이야기」(김영사 刊)를 펴내기도 했다. 랜덤하우스중앙 刊. 240쪽. 식물 생태 사진가인 윤주복 씨의「나무 쉽게 찾기」는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나무 612종의 생태를 자세히 소개한 '나무 도감'이다. 책은 나무의 꽃을 봄꽃과 여름ㆍ가을꽃으로 나누고 이를 다시 붉은색, 노란색, 흰색, 녹색의 4가지로 분류했다.(함보현 記者 聯合뉴스 2004-03-30 06:31)
석송령(冊 : 韓國의 名品 소나무) [記事] : 사람도 법인체도 아닌 식물이 자신의 재산을 가지고 꼬박꼬박 재산세를 납부하고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준다. 경북 예천의 석송령은 1920년대 자식이 없는 한 할아버지로부터 재산을 물려받아 지금까지 주변의 땅을 소유하고 있다. 한국에서 자라는 1000여 가지 나무 중에서 소나무는 크고 굵은 줄기 등으로 땔감이나 건축재 등 실용성이 뛰어나 우리 선조에게 가장 많은 혜택을 준 나무 중 하나다. 그러나 윤선도의ꡐ오우가ꡑ의 한 대목ꡒ더우면 꽃 피고 추우면 잎 지거늘 솔아 너는 어찌 눈서리를 모르는다. 구천의 뿌리 곧은 줄을 글로하여 아노라ꡓ에서 알 수 있듯이, 소나무는 한민족에 실용성 이상의ꡐ정신적 벗ꡑ이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42그루의 소나무는 100살이라면 어린아이에 속할 정도로 평균 수명이 400~500살의ꡐ어르신ꡑ들이다. 이들 소나무는 몇 백년 세월 동안 마을 수호신 역할을 하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한국의 역사적 부침을 지켜봤다. 영월의 관음송은 세조에게 죽음을 당한 비운의 왕 단종의 최후를 지켜본 유일한 친구이며, 운문사의 처진 소나무는 임진왜란 때 근처 모든 절이 타는 동안에도 살아남은 마지막 생존자였다. 거대 역사뿐이 아니다. 얼싸안고 있는 형상의 포천 부부송은 아이를 가지지 못한 부부들이 찾아와 기원하고, 마을 수호신의 역할을 하는 괴산 청천면의 왕송은 주민들이 해마다 마을의 풍요를 기원하는 등 소나무는 일반 사람들의 삶 속에도 깊숙이 파고들어 그들의 희망이 되기도 했다. 국민대 산림자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전영우 씨는ꡐ한국의 명품 소나무ꡑ를 통해 우리의 역사와 함께 살아 숨쉬는 천연기념물 지정 소나무를 소개한다. 책에는 소나무마다 소개 사진을 여러 장 담고 있어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다른 개성을 가진 소나무들의 형상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옆으로 가지가 길게 뻗은 소나무, 위로 곧게 쭉 뻗은 소나무, 한쪽으로 휘굽어 꼬여서 그늘을 드리우는 소나무 등 소나무도 인간처럼 그 세월의 굴곡과 유전자에 따라 다른 형상을 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와 밀접한 소나무이지만 무분별한 개발과 관리 소홀, 자연 재해 등으로 고사한 나무들도 많아 전문가에 의한 관리가 시급한 실정이다.(정진수 記者 世界日報 2005-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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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