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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654) : 예천8경 중 석송령(4)(附 *예천초 박지민, 25일 양궁 전국대회 메달 획득...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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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송령([재미난 漢字] ⑪ 松(소나무 송)) [記事] : 松(소나무 송)은 木부 4회 총 8획인데, 뜻을 나타내는 木자와 음을 나타내는 公(공: 변치 않는다는 뜻→ 송은 변음)으로 이루어진 글자. 원래는 잎의 색깔이 언제나 변치 않는 상록수를 가리키는 한자였는데 그 대표적인 나무인 소나무를 의미하게 됐다. <우리나라에 소나무가 많은 까닭> : "일송정 푸른 솔은~"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가곡 중의 하나인 ꡐ선구자ꡑ는 첫 가사는 일송정 푸른 솔로 시작된다. 어디 그 뿐이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노래인 애국가에도 어김없이 소나무가 등장한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소나무. 겨울에도 잎이 변하지 않고 사시사철 푸른 상록수. 그렇기에 소나무는 예로부터 꺾이지 않는 ꡐ절개ꡑ를 상징하는 나무로 사랑받아 왔다. 속리산의 ꡐ정이품송ꡑ처럼 벼슬을 받은 소나무가 있는가 하면, 경북 예천군 감천면에 있는 천연기념물 제294호 ꡐ석송령ꡑ처럼 이름 석 자를 가진 소나무도 있을 정도다. 우리 선조들의 소나무 사랑이 이렇게 유별나다보니 우리나라 온 산하를 소나무로 뒤덮고 있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소나무가 이렇게 많아진 데는 숨겨진 비밀이 있다. 그리고 그 비밀은 몽골의 침략에서 벗어나고자 개혁운동을 펼쳤던 고려 공민왕의 믿음과 관련이 있다. 공민왕은 고려가 전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음양오행설에서 찾았다. 음양오행설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나무(東方木)에 속하는 데 백성들이 흰옷을 즐겨 입다보니 늘 전란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즉 흰색은 쇠(金)인데, 쇠는 나무를 이기므로(金克木) 좋지 않다고 규정했다. 따라서 동방목인 고려를 지키기 위해서는 백성들이 늘 푸른 옷을 입히고, 산에도 사계절 푸른 나무를 심어 온 나라를 푸르게 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공민왕은 추위와 병에 강하면서 늘 푸른 소나무를 심도록 권장했던 것이다.(김철진 記者 아시아經濟 2008-12-05 12:59)
석송령(慶北道 드라마, 映畵 撮影地로 '脚光') [記事] : 경북도가 최근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 돌풍과 함께 드라마와 영화 촬영지로 인기를 끌면서 국내 영상산업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2009년 2월 26일 도에 따르면 최근 봉화지역의 농촌마을을 배경으로 촬영된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가 독립영화계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경북 전역에서 10여 편의 드라마와 영화가 촬영이 진행되고 있다... 경북도 문화체육국 관계자는 "경북 예천에서 진행 중인 석송령 소재의 독립영화와 지역종가의 민속행사, 제사, 음식 등 다룬 종가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 등이 제작을 준비 중에 있다"며 "도내 많은 문화유산과 자연경관을 바탕으로 한 영상 콘텐츠 개발에 활성활 될 수 있도록 적극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정지훈 記者 뉴시스 2009.02.26 16:10)
석송령([郵票發行] 韓國의 名木 시리즈郵票(첫 번째 묶음)) [記事] : 2009년 4월 3일 '한국의 명목 시리즈(첫번째 묶음)'가 총 4종(연쇄), 각 56만 장(224만 장) 발행될 예정이다. 한국의 명목(名木) 시리즈를 통해 앞으로 4년 간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큼 뛰어나고 아름다운 나무, 신비한 전설을 간직한 나무들을 소개한다... 예천 천향리 석송령(천연기념물 제294호) : 굵은 곁가지가 남북으로 30m나 뻗어있는 이 나무는 수령 또한 600년에 이른다. 이 나무를 사랑했던 마을 주민이 석송령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땅을 물려주어서 세계에서 드물게 재산을 소유한 나무이기도 하다. 우표크기 : 22mm×50mm, 용지 : 평판 원지, 인쇄처 한국조폐공사 <출처 : 지식경제부>(UGN 慶北뉴스 2009-03-30 18:17:45)
석송령(甘泉面 泉香里 '石松靈' : 韓國 名木시리즈 郵票로 發行) [記事] : 지식경제부 우정사업본부는 2009년 4월 3일 감천면 천향리 석송령 등 `한국의 명목시리즈' 우표를 발행했다. 한국의 명목시리즈는 이번이 첫 묶음으로 1년에 한 번씩 4번이 발행되는데,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큼 아름답거나 신비한 전설을 간직한 나무를 담는다. 2009년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들 중 △예천 감천면 천향리 석송령 △진안 천황사 전나무 △장성 단전리 느티나무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를 소개하고 있다.(醴泉新聞 2009년 04월 09일 14:18:08)
석송령 [記事] : 예천 감천면 石松靈/ 2009.05.24 08:15 | 動植物/花卉/園藝 | ironyi 브로그/ 예천 감송면 石松靈/ 천연기념물 제294호/ 소재지 : 경북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 804/ 나이가 6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천연기념물 제294호인 이 소나무는 둘레가 4.2m, 키 10m나 된다. 일명 반송 또는 부자나무로 불리우며, 마을의 단합과 안녕을 기구하는 동신목으로 보호받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600년 전 큰 홍수 때 떠내려 온 것을 과객이 건져 심었다고 전한다. 그 후 1930년경 李秀睦이란 사람이 영험 있는 나무라는 뜻으로 石松靈이라 이름짓고, 자기 소유 토지 6,600㎡를 등기해 주어 이때부터 이 나무는 토지를 가진 부자나무가 되었다고 한다.(daum 2009)
석송령(稅金내는 소나무 石松靈 기네스 挑戰 : 醴泉郡 '世界的 名物' 弘報 爲해 韓國記錄院과 協議) [記事] : 경북 예천군이 지난 1985년 천연 기념물 제294호로 지정돼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는 세금내는 소나무 석송령을 기네스 세계기록 등재를 추진키로 함에 따라 석송령이 세계적인 명물로 재탄생될 전망이다.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 804번지에 자리잡고 있는 석송령은 높이 10m에 둘레 4.2m의 수령이 600여 년된 소나무로 수폭은 동서로 32m, 남북 22m나 되며 그늘면적 만도 1천여㎡나 된다. 이 소나무는 약 600년 전 큰비가 왔을 때 석간천에 떠내려 오던 작은 소나무를 마을 주민이 건져내어 심은 것이라 전해지고 있으며 1927년 자식이 없던 마을 주민 이수목이란 사람이 석평마을의 영험한 나무라는 뜻의 '석송령(石松靈)'이라고 명명하고 그의 소유 토지 3천607㎡를 이 나무에 상속 등기함으로써 부자나무로 이름을 알리게 됐다. 현재 감천면 천향리 일대 4필지 5천258㎡의 토지가 석송령 소유로 등재되어 있어 한 해 약 5만여 원의 토지세를 내고 있는 세금내는 소나무로 이름이 나있다. 지난 1985년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500만 원의 석송령 특별관리금 마을 주민들이 석송령보존회를 구성해 1986년부터 현재까지 마을 주민 자녀 40여 명에게 매년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기도 하다. 이에 예천군은 세계 최초로 토지를 소유한 반송으로 최장수 소나무로 알려져 있는 지역의 명물인 석송령을 세계적으로 홍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기네스북 등재 대행기관인 한국기록원과 기네스 세계기록 등재에 대한 협의를 추진키로 했다. 한편 예천군은 매년 수천만 원의 예산을 들여 나무종합병원에 위탁, 석송령에 대한 고사지 제거 및 수형 조절, 병충해 방제, 영양공급, 지지철 보완 등을 시행하며 지역 최고의 명물인 석송령 보호사업을 펼치고 있다.(張炳喆 記者 慶北日報 2009-07-22)
석송령과 초간정 [記事] : 귀연산우회 카페/ 충효의 고장 예천 기행-석송령과 초간정/ 글쓴이: 靑山/ 2009.06.10 14:20/ 충효의 고장 예천 기행 <석송령과 초간정> : 어렵게 길을 찾아 도착한 보문사는 작고 조용하지만 역사의 숨결이 스며있었다. 보문사 3층 석탑의 투박함 아름다움이 학가산 기슭에서 묵묵히 오랜 세월을 지키고 있음에 놀란다. 깊은 산중까지 드나들 수 있는 길이 있어 작고 아담한 절집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하며 서둘러 감천면으로 향한다. 예천에 들러 꼭 봐야 할 천연기념물이기에 서둘러 천향리에 당도하니 너무도 희한하고 기이하여 눈이 확 뜨인다. 예천 석송령은 소나무의 한 품종인데 가슴 높이의 줄기둘레가 4.2m, 키가 10m에 이르는데 수령은 600년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일명 반송 또는 부자나무라고도 불리며, 현재도 마을의 단합과 안녕을 기구하는 동신목으로 보호받고 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약 600년 전 풍기지방에 큰 홍수가 졌을 때 석관천을 따라 떠내려 오던 것을 지나가던 과객이 건져 심었다고 한다. 그 후 1930년경에 이 마을에 살던 이수목이라는 사람이 영험있는 나무라 하여 석송령(石松靈)이라는 이름을 짓고, 자기 소유의 토지 300평을 상속 등기해 주어 이때부터 이 나무는 수목으로서는 드물게 토지를 가진 부자가 되었다고 한다. 보은 속리산의 정이품송이나 부인송 보다는 그 모양이 다르지만 형태나 생육 특히 옆으로 뻗힌 나무줄기의 생동감은 그 어떤 소나무와 견주어도 빼어나다. 허약해진 정이품송이 도로변 차량과 사람들에게 시달려 말라죽는 모습이지만 석송령은 아직도 싱싱하게 도도한 기상을 뽐낸다. 주변 정자 옆에는 석송령 2세 나무가 자라고 있어 깊은 감동을 준다. 부디 싱싱하고 올 곧게 자라 마을을 지키고 나라의 안녕과 평안을 지켜주길 바래본다. 석송령의 담대하고 아름다운 반송에 취한 예천 여정은 저무는 해를 따라 용문면 죽림리로 향한다.
정자를 찾아 떠나는 여행의 귀결이어서인지 벚나무 도로 변을 따라 한참을 달린 여정은 노송과 잘 어우러진 풍광과 만난다. 초간정(草澗亭)은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郡玉)을 지은 초간 권문해(1534~1591)가 세우고 심신을 수양하던 곳이다. 조선 선조 15년(1582)에 처음 지어졌는데 임진왜란 때 불타 버린 것을 중건하였으나, 인조 14년(1636)에 다시 불타는 등 수난을 거듭했는데, 지금의 건물은 초간의 현손이 1870년 중창한 것으로 기암괴석과 주변의 경관이 조화를 이뤄 매우 아름답다. 정자채는 사주문을 통하여 들어가며 뒤쪽과 오른쪽 절벽을 이루고 있다. 자연기단 위에 주초를 놓고 네모기둥을 세운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집이다. 정면 3칸 중 앞면의 좌측 2칸은 온돌방을 배치하고 나머지 4칸은 통간의 대청으로 우물마루를 깔았으며 측면은 난간을 설치하였다. 지붕 석가래의 빗살무늬가 특이하고 난간에서 절벽을 바라보는 모습이 일품이다. 난간에 앉으니 찬바람이 겨드랑이에 살랑거려 너무도 시원하다. 절벽 건너에서 바라보면 바위벽에 초간정이라는 각자가 선명하다. 노송과 절벽 그리고 겹처마 팔작지붕의 아름다운 조화가 정자 문화의 수작으로 꼽힐 만큼 우수하다. 특히 옆 한옥에서는 한옥 체험을 할 수 있는 민박이 저렴한 가격에 운영되고 있어 관광객들에게 흥미롭다. 조용하고 아담하며 절벽 옆으로 흐르는 개천 그리고 노송이 어우러진 초간정에서 시를 읊고 심신을 수련했던 권문해 선생의 그윽한 선비적 기풍을 느껴 본다. 경북 예천에 보물처럼 숨겨진 우리 문화의 또 다른 정자 문화의 꽃을 볼 수 있음이 여간 행복한 것이 아니다.
해가 늬엇 늬엇 저무는 석양 무렵 영화 황진이 촬영지인 병암정을 찾았다. 이앙기로 모를 심는 농부들이 분주한데 수련과 연이 아름다운 연못 위에는 너무도 멋스러운 정자가 자리하고 있다. 병암정(屛巖亭)은 팔작 기와집으로 정자들 동쪽의 병풍처럼 생긴 큰 바위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건물은 예천 지역의 대표적 독립 운동가인 권원하(權元河)와 관련된 건물로 알려져 있다. 정자의 우측에는 3칸 규모의 맞배기집 별묘(別廟)가 있는데 원래는 인산서원의 사당이었으나 서원이 훼철되자 사당만 이곳으로 이전하여 권맹손, 권오기, 권오복, 권용을 봉사하는 별묘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드넓은 농촌 평야를 바라보며 위치한 병암정은 연못과 바위 절벽 그리고 연못에 드리운 정자의 또 다른 모습으로 사진작가들의 촬영지로 인기가 높다. 석양에 지는 햇살에 아름다운 풍광으로 다가오는 병암정을 찍기 위해 삼삼오오 카메라를 설치하고 포커스를 맞추는 사진 동호인들의 분주함이 연못가에 가득하다.
예천! 양궁 김진호의 고향! 아니 충효와 예의 고장! 멋들어진 영남 예천 권씨와 안동 권씨의 풍류가 묻어 있는 이곳은 정말 많은 문화 유적을 간직하고 있다. 낙동강을 따라 이어지는 갖가지 풍물과 내륙 깊숙이 간직된 조상들의 숨결이 건물과 정자 그리고 석송령과 같은 노송들로 가득히 다가온다. 하루를 꼬박 보아도 다 보지 못한 예천을 기행하며 한참을 굶주렸던 여행의 참맛을 느낌이 너무 행복하다. 여행은 또 다른 삶을 느끼게 하며 만나는 대상 모두가 한없는 즐거움을 줌에 여유와 기쁨이 두 배이다.(daum 2009)
석송령과 황목근(醴泉 石松靈․黃木根/ 제 이름으로 稅金내는 富者나무) [記事] : 600살 먹은 소나무 석송령. 후손없는 노인이 땅 1,379평을 소나무에게 물려줬다. 매년 이 소나무 밑에서 큰 제사를 지내고 석송령이란 이름으로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지급한다. 500살 먹은 팽나무 황목근. 마을 공동으로 관리하던 논밭을 아예 팽나무 앞으로 등기 이전했다. 매년 소작료로 쌀 5가마를 받는다. 1996년에는 250만 원짜리 건강 진단도 받았다. 경북 예천군의 토지 관리대장. 「3750-00248」번에「석송령」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흔하지 않은 이름. 토지 관리대장을 자세히 보면 대지 1,379평의 소유자라고 명시되어 있다. 1995년 종합토지소득세는 9,590원. 체납하지 않고 세금을 제 때 잘 냈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이 납세자의 나이가 600세로 기록되어 있는 것. 담당 공무원의 실수로 「0」을 하나 더 붙인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잘못 적은 것이 아니었다. 이 납세자는 사람이 아니라 조선 연산군 때 세상에 나온 소나무였다. 그럼 어떤 연고로 소나무가 땅을 갖고 세금까지 내게 되었는가. 때는 1927년의 무더운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젊었을 적에 머슴살이를 하며 힘겹게 돈을 모았던 이수목이란 분이 후손 없이 세상을 뜨게 되었다. 이 노인은 자신의 전 재산인 땅 1,379평을 마을의 동신목이었던 소나무에게 물려주었다. 석송령이라는 이름과 함께. 그 뒤 감천면 천향리 마을 사람들은 매년 음력 1월 14일 밤 12시에 나무 아래에서 이 노인의 명복과 마을의 안녕을 비는 큰 제사를 지낸다. 비용은 석송령이 소유한 논․밭에서 나오는 임대료로 충당하고 있다.『제사 모실 제관으로 선정되면 사흘 전에 깨끗이 목욕하고 일절 집 밖에 나오지 않아야 돼. 그 기간엔 담배도 못 펴』. 이 마을에 사는 전병렬 옹(73)의 설명이다. 석송령은 85년 근처의 임하댐 기공식에 참석하였던 당시의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나무 보호 기금으로 500만 원을 받았다. 그 돈을 마을 사람들로 구성된「석송령계」가 관리하며 매년 3~4명의 중․고생에게 석송령 이름으로 장학금을 지급해 오고 있다.『이 나무는 영험이 있는 나무여. 바람이 아무리 세차게 불더라도 제 모실 시간만 되면 그친다니까. 아 일정 시절엔 일본 순사들이 나무 베겠다고 오다가 멀쩡한 대낮에 석간천 다리 위에서 굴러 떨어져 버렸어』. 조재영 옹(85)의 자랑이 아니더라도 석송령은 나무 그 자체로도 가치가 있다. 강원이나 경북 북부지방에 발달된 소나무는 주로 금강형. 가지가 짧고 가늘며 나무뿌리가 깊은 형태의 질 좋은 소나무들이다. 그런데 석송령은 동북형의 풍모를 띠고 있다. 줄기가 곧고 수관이 난형인 동북형은 우산형이라고도 불리는데 주로 함경도 해안 지방에 발달되어 있다. 경북지방의 소나무들과 생김새가 달라서인지 석송령에겐 전설이 있다. 600년 전 풍기 지방에 큰 홍수가 났을 때 석관천으로 떠내려 오던 어린 소나무를 지나가던 과객이 건져 심었다는 이야기이다. 석송령은 천연기념물 294호로 지정되어 있다. 나무의 높이는 10m, 둘레는 4.2m이다. 나무가 제공하는 시원한 그늘의 면적이 242평 정도 된다. 예천군 토지 관리대장 「3750-00735」번의 이름은「황목근」이다. 주소는 용궁면 금남리 금원마을. 이 또한 석송령처럼 세금내는 나무이다. 1996년 대략의 나이는 500살. 소유한 땅은 2,821평. 1995년 종합토지 소득세 8,230원을 냈다. 한 번도 지방세를 체납하지 않은 우수한 납세자이다. 석송령보다 땅을 더 많이 가졌지만 석송령의 땅이 2차선 포장도로 옆인데 비해 황목근은「경빈 뜰」 한가운데 있어 세금은 좀 적게 냈다. 나무인 황목근이 자기 이름으로 땅을 가지게 된 것은 1939년의 일이다. 19세기 말부터 공동 기금을 모아 해마다 마을 잔치를 열어 왔던 금원 마을 사람들이 39년에 공동 논․밭을 아예 팽나무 앞으로 등기 이전해 버렸다. 5월이면 누런 꽃을 피운다 해서「황」이라는 성을 주었고, 이름은「목근」이라 지었다. 황목근은 매년 소작료로 쌀 5가마를 받고 있다. 그 쌀로 음력 정월 대보름날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풍년 농사와 무병장수를 비는 제사를 지낸다. 그리고 7월 백중날(음력 15일)에 또 한 번 황목근 그늘에 모여 농삿일에 지친 심신을 달래고 나무 주변을 보살핀다.『황목근이 마을의 구심점 역할을 톡톡히 합니다. 객지에 나간 마을 사람들은「황목근 잔칫날」에 맞춰 고향을 찾기도 하지요』이 마을 김택진 이장(59)은,『황목근은 올해(1996년) 군에서 나온 2백50만 원으로 건강 진단을 받은 호강하는 나무』라고 밝힌다. 황목근은 높이 15m, 둘레 3.2m의 팽나무이다. 팽나무는 땅이 깊고 지대가 낮은 곳에서 잘 자라 풍수에서는 비보림으로 널리 이용하고 있다. 황목근도 마을의 평화를 비는 뜻에서 비보림으로 심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석송령과 황목근. 소나무와 팽나무인 이들은 500년 넘게 우리 자연과 잘 어울려 왔다. 정중하며 엄숙하고 과묵하며 고결하게. 언제 보아도 싫증나지 않는 부자나무인 이들을 보면 찾는 이들의 마음까지 넉넉하게 되는 것 같다.(김용석 記者) [취재수첩] : 석송령․황목근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만약 태풍 등으로 석송령이나 황목근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그 재산은 어떻게 될까. 그리고 현행법 체계상 제3, 제4의 석송령이 탄생할 수는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재산」은 마을 주민 공동의 소유로 될 가능성이 높고, 이젠 제3의 석송령은 생겨날 수 없다. 민법의 규정에 따르면 황목근의 논․밭은 전형적인 총유의 한 형태이다. 황목근이 없어지더라도 나무를 관리하고 있는 마을 주민들의 의사에 따라 다른 이름의 나무에 땅을 넘겨 줄 수 있다. 아울러 자연인에게 땅을 파는 것도 가능하다. 상속에 의해서 땅을 취득한 석송령은 소유 관계가 황목근에 비하면 좀 복잡하다. 국가 소유로 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민법상 시효 취득 기한인 20년 이상 평온하게 토지에 대한 권리를 행사해 온 마을 주민들의 집합체인「석송령계」가 땅에 대한 일체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현행법은 자연인․법인이나 그 밖의 단체에만 상속권을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아무리 사랑스럽더라도 권리 능력이 없는 나무․바위․애완견 등은 재산을 물려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적법한 상속자가 없으면 재산은 국가에 귀속된다.<도움말 박성호 변호사․법원행정처 등기과 박광섭 사무관>(京鄕新聞 1996-08-01)
석송령과 황목근(石松靈․黃木根/ 나무도 稅金․獎學金 낸다) [記事] : ◎석송령, 1995년 종토세 9,590원 내어,ꡒ최고 부자ꡓ/ 황목근, 토지 3,648평 땅 제일 많이 보유// 현금과 부동산을 소유하고 종합토지세를 꼬박꼬박 내고 있는 두 거수가 한 고장에서 주민들의 아낌을 받으며 선의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경북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 석평마을에 있는 소나무 석송령과 예천군 용궁면 금남리 금원마을의 팽나무 황목근. 높이 10m, 둘레 4.2m의 석송령은 토지 1,300여 평에 현금 5백만 원을, 높이 15m, 둘레 3.2m의 황목근은 토지 3,600여 평에 현금 1백여만 원을 소유하고 있는 수령 600년의 동갑내기이다. 천연기념물 294호인 석송령은 1927년 8월 예천군 토지관리대장에 관리번호「375000248」로 등재, 대지 1,379평의 소유권자로 명기돼 있다. 후손 없이 임종을 맞게 된 이 마을 이수목 노인이 이름을 짓고 자신의 대지 소유권을 석송령 앞으로 이전함으로써 토지를 가진 나무가 됐다. 이곳에서 35㎞쯤 떨어진 이웃마을의 팽나무 황목근은 언제 이름을 얻게 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튼튼하게 잘 자라라는 뜻으로 이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관리번호「375000735」인 황목근은 1948년 2월 마을 주민들이 공동기금을 헐어 황목근 주변의 땅 827평을 산 뒤 이를 예천군 토지대장에 등재했다. 85년 석송령은 청와대로부터 500만 원의 보호 기금을 받자 이를 고스란히 예치해「석송 장학회」를 만들었다. 석송령은 장학 기금의 이자로 지금까지 모두 33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공익사업」에 한 몫하고 있다. 석송령의「재테크」에 자극을 받은 황목근은 1995년 12월 다시 주민들이 마을 공동 소유로 돼 있던 토지 2,821평을 예천군 토지대장에 등재했다. 이에 따라 황목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땅을 소유한 나무가 됐다. 석송령은 85년 마을 주민들로 구성된「석송령계」(회장 김지환․71)에서, 황목근은 48년 조직한「황목근계」(회장 정재흠․70)에서 나무 보호와 세금을 내는 등 관리를 전담해 오고 있다. 예천군 관계자는,『1995년 말 석송령이 9,590원, 황목근이 8,230원씩의 종합토지소득세를 납부한 점으로 미뤄 우리나라에서 최고 부자나무는 석송령인 셈』이라고 말했다.(김재산 國民日報 1996-07-20)
석송령과 황목근(文化財廳 '自然文化財地圖' 發刊-全國의 自然文化財 冊 한 卷에) [記事] : 문화재청은 최근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천연기념물, 명승, 사적 및 명승 등 329건을 수록한「자연문화재 지도」를 발간했다. 이 지도는 문화재를 시·도별로 분류하고 약도를 곁들여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했다. 문화재에 얽힌 일화, 전설, 풍습도 함께 수록했다. 이 지도에 따르면, 세금을 내는 소나무와 팽나무가 있다. 경북 예천군 감천면의「석송령」과 경북 예천군 용궁면의「황목근」이다. 석송령이라는 소나무는 오래 전 한 주민으로부터 땅 2,000평을 상속받았고, 황목근이라는 팽나무는 100여 년 전 이 나무를 신성시하던 주민들의 공동기금으로 3,700여 평을 증여받았다. 이 때문에 이 나무들은 각종 세금을 내며 수익금으로 장학금까지 내놓고 있다. 이 책은 자연과학 교육 자료로도 유용하다.(최정훈 記者 京鄕新聞 1999-11-11)
석송령과 황목근(稅金 내는 나무) [뉴스네트워크] : ◉앵커: 경북 예천군에 세금을 내는 나무 두 그루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광객들이 잇따라 이 마을을 찾고 있습니다. 농촌마을을 알리고 소득에도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재환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700살의 나이답게 웅장한 기품을 자랑하는 천연기념물 석송령입니다. 이 곳 땅이 석송령의 소유로 되어 있어 이미 토지세금을 물고 있는 나무로 이름이 나있습니다. 푹푹 찌는 더위에 푸른빛이 더해지자 이를 보려는 관광객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신영자(대전시 문화동): 저렇게 큰 나무가 저렇게 하나 어그러지지 않게 파란 나무는 보기에도 처음이에요. ◉기자: 예천온천과 함께 지역의 명물로 확실히 자리잡아 주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이동섭(마을주민): 예천온천에 오신 분들은 대략 여기를 다 거쳐 가시고 여기서 매점도 있고 식당도 있고... ◉기자: 들녘 한가운데 우뚝 솟은 팽나무. 노란 꽃을 피워 황이라는 성에 뿌리가 깊어 목근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수령 500여 년의 이 마을 보호수도 토지세금을 냅니다. 이 나무도 이 지역의 품질 좋은 쌀을 알리는 창구가 돼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김숙자(마을주민): 우리 동네는 이 거 아니면 우리 마을을 먼 데서 모를 거 아닙니까. 그죠. 그런데 이 걸로 인해 가지고 안다고 하는 거... ◉기자: 노고수가 관광 명소가 되면서 농촌마을의 새로운 소득원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KBS뉴스 이재환입니다.([사회] 입력 시간 : 2001.08.03 (19:00))
석송령과 황목근(綜合土地稅 내는 나무 : '週末이 기다려지는 幸福한 나무 旅行'..全國 52個 코스 260그루 有名 나무 紹介) [記事] : 성 전환을 한 '트랜스젠더 나무'와 땅을 소유하고 세금까지 내는 나무, 굶어죽은 자식의 한을 대신한 이팝나무, 이순신 장군의 쉼터가 됐던 나무, 집안에 심으면 학문이 높은 선비가 나온다는 나무 등등... 폭염주의보가 내릴수록 나무 그늘이 그리워지는 계절, 뙤약볕도 마다않고 선체에 매달렸던 용접공도 마스크와 용접봉을 내려놓고 집단 휴가를 떠나고 체험보고서 숙제를 안은 여름아이들이 방학에 들어간 즈음 나무를 찾아가는 여행서 한 권이 눈길을 끈다. 잘 나가는 중앙일간지 기자생활을 12년 만에 접고 나무에 마음이 꽂혀 9년간 한반도 남쪽을 미친 듯 쫓아다닌 끝에 옛 사람의 고단한 삶과 역사, 덧없는 세월의 풍상을 고스란히 담은 나무 칼럼니스트 고규홍의 책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나무여행'. 경남 남해 창선도 해안에서 만나는 왕후박나무는 '불멸의 영웅' 이순신이 정유재란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 당시 왜군과 일진일퇴를 거듭하다 대나무를 배에 가득 싣고 불을 질러 대나무 줄기 터지는 소리를 대포 소리로 착각한 왜군이 도망간 후 장군이 휴식을 취했다 해서 '이순신 나무'란 별명이 붙었다. 경북 예천군 감천면 석송령(石松靈)과 인근 용궁면 황목근(黃木根)은 세금을 내는 부자 나무다. 천연기념물 294호인 석송령은 나이가 600살이나 되고 생김새가 멋진데다 자신의 이름으로 토지대장에 땅 6천여㎡를 등재하고 있는 세계 조세사상 유례가 없는 경우다. 1928년 이 마을에 살던 이수목이란 노인이 자식이 없어 시름에 잠겨 있던 터에 꿈속에서 '걱정하지 말아라'란 목소리를 듣고 깨어보니 사람은 없고 나무만 서 있어 전 재산을 나무에 물려주기로 하고 군청으로 가 석송령이란 이름으로 등재하면서 이 이름과 땅을 얻게 됐다는 것이다. 마을에서는 군수까지 참여한 가운데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흘 날 석송령에서 동신제를 지낸다. 마을 사람들이 쌀을 모아 만든 공동재산을 팽나무 앞으로 등기 이전해 이뤄진 황목근 소유 땅은 1만2천200여㎡이며 황목근은 은행예금 150만여 원도 갖고 있다. 황목근은 해마다 땅을 소유한데 따른 종합토지세를 1만 원정도 내고 있다. 인천시 강화도 전등사 은행나무와 서울 성균관 문묘 은행나무는 열매가 열리는 암나무에서 수나무로 성을 전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과학적으로야 믿거나 말거나지만 전등사 은행나무는 조선조 말엽 탄압에 시달리던 스님들이 은행 공출량을 맞추지 못해 차라리 열매를 맺지 않도록 기도를 올렸고 성균관 은행나무에 대해서는 성균관 어른들이 글공부에 방해된다며 역시 같은 기도를 드려 수나무로 변했다고 한다. 옛날 자식을 제대로 먹이지 못해 병에 걸려 죽으면 아비는 시체를 묻고 그 위에는 죽어서라도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이팝(쌀밥의 함경도 사투리)을 먹으라는 마음을 담아 이팝나무를 심었다. 천연기념물 214호인 전북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의 이팝나무는 이처럼 가난과 굶주림에 얽힌 전설이 깃들어 있다. 고려시대 마지막 왕인 공양왕의 최후를 지켜보았던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 음나무는 무려 1천년을 넘게 한 자리를 지켜왔으며 충남 당진군 송산면에는 선비들이 이삿짐 목록에 넣을 정도로 아꼈고 집안에 심으면 학문이 높은 선비가 났다는 회화나무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나무가 있다. 이 밖에도 한 그루를 살려내기 위해 23억원을 들인 경북 안동 용계리의 은행나무와 보조국사 지눌과 제자 담당국사의 지팡이가 나란히 자란 나무라는 순천 송광사 천자암 곱향나무 쌍향수, 저자가 발굴한 후 TV 다큐멘터리로 소개된 경남 의령 백곡리의 감나무 등 여행지에서 만나는 나무 이야기는 끝이 없다. 이 책에 소개되는 나무는 52개 코스별로 대표 나무와 다른 4그루를 묶어 5그루씩 모두 260그루. 일일이 사진을 찍어 소개하고 '나무 찾아가는 길'과 '나무 바로 알기'를 함께 넣어 초행길이거나 나무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사람이거나 상관없이 활용하기 편하도록 했다. '백수' 시절 충남 태안군 천리포 수목원에서 눈을 맞으며 피어난 목련을 보다 나무 취재에 나서기로 작심한 전직 기자는 경기도 화성시에서는 버려진 듯 보이던 물푸레나무를 발굴, 문화재청에 건의해 천연기념물 제470호로 지정되도록 하기도 했다. 천리포 수목원 법인 감사와 한림대·인하대 겸임교수로도 활동 중인 고씨는 '이 땅의 큰 나무', '절집 나무', '알면서도 모르는 나무 이야기', '옛집의 향기, 나무' 등 책도 펴냈다.(정학구 記者 聯合뉴스 2007년 7월 27일 (금)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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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초 박지민, 25일 양궁 전국대회 메달 획득...축하합니다.
박지민(醴泉初 洋弓部 박지민 選手, 全國少年體育大會에서 메달 獲得 : 30m에서 銀메달 1個, 25m에서 銅메달 1個 獲得) [記事] : 예천초등학교(교장 김종락) 양궁부 박지민(예천초 6학년) 선수가 2014년 5월 23일부터 25일까지 인천 계양아시안양궁경기장에서 열린 ‘제43회 전국소년체육대회’(양궁)에서 은메달 1개(30미터 2위), 동메달 1개(25미터 3위)를 획득하였다. 예천초등학교 양궁부는 1981년 12월 21일 창단하여 1995년 제24회 전국소년체육대회(양궁)에서 단체전 3위(윤정혁 참가)에 입상한 후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는 20년 만에 메달을 획득하였으며, 개인전 메달 획득은 이번 대회가 처음이다. 이번 성과가 있기까지 경상북도교육청, 예천교육지원청, 경상북도양궁협회, 예천초등학교 총동창회 외 여러 기관에서 많은 관심 및 후원을 해 주었으며, 특히 예천초등학교 전 교직원은 양궁부 후원회를 조직하여 많은 관심과 격려를 보내주었다. 예천초등학교는 앞으로도 각종 전국대회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기 위하여 양은영 양궁코치, 윤종구 양궁감독 지도하에 선수들은 열심히 훈련에 임하고 있다.(醴泉뉴스 2014년 05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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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