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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655) : 예천8경 중 석송령(5)(附 예천교육지원청, 27일 전국체전에서 금메달 5개 획득...축하합니다/예천방문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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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송령과 황목근(正月大보름 天然記念物 洞神祭 열려 : 20日 밤 12時 天然記念物 石松靈 및 黃木根 現地) [記事] : 마을주민의 화합과 안녕, 풍년 농사를 기원하는 정월대보름 동신제가 6백여 년의 수령을 갖고 마을 동신목으로 추앙받고 있는 천연기념물 294호인 ꡐ석송령ꡑ 과 천연기념물 400호인 ꡐ황목근ꡑ 현지에서 열린다. 석송령회(회장 김형덕)에서는 무자년 정월대보름 석송령 동신제를 2008년 2월 20일 밤 12시 석송령 현지에서 김수남 예천군수, 석송령회 관계자, 마을주민 등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를 올린다. 제사는 일반제사와 같은 순서로 진행되며 축문을 낭독하고 풍년과 행운을 기원하며 태우는 20여 매의 소지가 올려지며 동제 후 다음날 아침 동네주민들이 모여 전날의 음식들을 나누어 먹는다. 동신제는 매년 음력 1월 14일 자정에 제관 2명과 동네주민이 참석한 가운데 지내며, 제관은 제례 3일 전 동네에서 액운이 없는 사람 중에 2명을 정하게 되며, 제관으로 선정된 사람은 동신제까지 외지 출입을 삼가며 집안에서 근신한다. 한편, 이날 같은 시간 천연기념물 400호인 용궁면 금남리 ꡒ황목근ꡓ 현지에서도 황목근보존회(회장 엄영우) 주관으로 정월대보름 맞이 동신제를 지낸다.(황성한 記者 醴泉인터넷放送 2008-02-20 오후 3:50:15)
석송령과 황목근 [記事] : 한국영상문학협회 카페/ 예천의 세금내는 나무/ 글쓴이: 동백꽃/서정부/ 2009.01.05 19:55/ 석송령 : 수령(樹齡)은 600여 년이며, 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11m, 가슴높이 줄기 둘레가 3.67m이고, 가지의 길이는 동․서쪽이 19.4m, 남․북쪽이 26.2m이다. 이 소나무는 약 600년 전에 큰비가 와서 풍기지방에서 시작된 홍수를 따라 흘러 내려오는 것을 어떤 과객이 건져내어서 이곳에 심은 것이라 한다. 그 뒤 이 나무는 좋은 성장을 계속하였는데 이 마을의 주민이었던 이수목(李秀睦)이란 사람이 이 나무에서 영감을 느끼게 되어 석송령이란 이름을 지어 주고 그의 소유토지 6,600㎡를 이 나무에 상속시켜 문서등기를 마쳤다. 토지와 같은 부동산을 나무가 소유한다는 것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일이다. 동리회관 건물도 석송령의 소유토지 위에 건축된 것이다. 이 소나무는 해마다 농지를 경작하는 사람으로부터 돈을 받고 그것을 은행에 저축하고 있다. 땅을 소유하고 있으니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지사. 고 박정희 대통령이 이 나무에 500만 원을 하사한 후, 이것을 장학기금으로 하여 매년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정월보름날 새벽에 동민들은 이 나무 아래에서 동제를 올려 평안을 비는데 사람들은 이 나무가 동리를 수호해 주고 있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다. 동제가 끝나면 아주머니들이 막걸리가 든 술병을 들고 이 나무의 주변을 돌면서 술을 땅에 뿌린다. 소나무는 술의 효과를 얻어 더욱 씩씩하게 자란다는 것도 사람들은 믿고 있다. 동리 노인들은 이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송계(松契)를 만들고 있다./ 황목근 : 1) 천연기념물 400호/ 명칭 : 예천금남리의 황목근/ 위치 :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금남리 696/ 감천면에 세금 내는 소나무 석송령이 있다면 금남리 금원마을에는 약 500년으로 추정되는 팽나무가 있습니다. 줄기둘레 3.2m, 키 15m에 이르는 큰 나무로 ꡒ황목근ꡓ이라 합니다. 전해 내려오는 말에 의하면 5월에 나무 전체가 누런 꽃을 피운다 하여 ꡒ황ꡓ씨 성을, 근본 있는 나무라는 뜻을 따 ꡒ목근ꡓ이라 하였답니다. 1939년 마을 사람들이 쌀을 모아 마련한 마을의 공동 재산인 토지를 황목근 앞으로 등기 이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재 12,232㎡의 땅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세금 내는 나무가 되었어요. 실제로 1996년의 경우 8,240원의 세금을, 1998년에는 10,440원의 세금을 납부했습니다./
2) 경상북도 예천 금원마을이라는 곳에 이름난 땅부자 나무가 있다. 팽나무란 이름보다 황목근이란 별명으로 유명한 이 나무의 나이는 약 5백년, 높이는 18미터, 줄기의 둘레는 네 아름에 둥그스름하게 잘 발달된 수관을 갖고 있다. 이 마을에는 오래 전부터 마을 사람들의 친목을 도모하고 풍년제를 지내기 위하여 쌀을 모아 공동의 재산을 마련하였다. 근대화가 되어 토지의 소유권에 대한 법적인 조치가 필요하자 공동재산을 등기부에 올려야만 하였다. 뒷날 혹시라도 재산다툼으로 아옹다옹 할 수 있는 공동명의를 피하는 방법을 찾았다. 기발하게도 마을 앞 당산나무 앞으로 등기를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오랫동안 논란 끝에 드디어 1939년 이 팽나무 앞으로 등기이전을 결정하게 된다. 팽나무라는 보통명사로는 등기가 되지 않으니 고유의 이름이 필요했다. 그래서 정해진 이름이 황목근(黃木根)이다. 팽나무가 5월에 황색 꽃을 피운다는 뜻에서 황이란 성을 따오고, 나무의 근본이란 뜻으로 목근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황목근은 현재 약 2,800평의 자기 땅을 가지고 있는 알짜 땅 부자다. 토지관리 대장에 엄연한 고유번호도 가지고 있고 매년 세금도 꼬박 꼬박 낸다. 나무의 모든 몸 관리를 국가에서 해주는 탓이다. 자고 나면 재산이 불어나는 행복한 나무다. 같은 예천군에 있는 석송령(石松靈)과 함께 자기 앞으로 등기된 땅을 가진 희한한 나무라서 사람들이 흥미로워한다. 황목근은 금원마을을 지켜주는 수호목이자 당산나무로 매년 정월 대보름 자정에 제사를 올리고, 다음날 온 마을 주민이 함께 모여 잔치를 벌여 왔다. 또 7월 백중날에도 마을 잔치를 열어 농사일로 지친 심신의 피로를 풀고 나무를 보살피는 행사가 이어진다. 황목근은 나무나라의 평범한 백성으로 태어났을 터이지만 이제는 재력가로서 인간 세계에까지 이름을 떨치니, 나무고 사람이고 모두가 부러워 할만하다. 자료출처 : 문화재청.성림회.경북 예천 회룡포 마을 - 정보화마을(daum 2009)
석송령 노래(石松靈노래 다시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感謝합니다) [記事] : 재경예천군민회 카페에 올린 석송령노래는 홍보용으로 저작권자 장점환 님이 양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쉬운 것은 문경 출신으로 석송령을 작사하여 예천군홈페이지에 올려두었던 파일이 예고없이 지워져 원본 파일을 저장해 두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작사자 장점환 시인님께서는 문경이 고향이시고 석송령을 방문하여 가사를 지으시고 지인에게 작곡과 노래를 부탁하셨답니다. 문학21에서 2000년에 등단하셨습니다. 전화로 부탁드렸는데 금방 올려주셨네요. 노래 잘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작사자 장점환 시인님께서 공유를 허락하시고 다시 들을 수 있게 하여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박재석 醴泉郡廳홈페이지 2006-07-05 오후 11:54:26)
석송령 노래 [歌詞] : 장점환 글, 나유성 곡으로, 2004년 8월 31일 오후 2:41에 발표되었다.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석송령// 1. 한세월 모은재-산 물려받은 석송령/ 굵은 가지 용틀임하듯 얼기슬기 뻗어있다./ 독수리 양날개 펴고 날아가는 기상이다./ (후렴) 솔가지 올망졸-망 솔방울 이여물고/ 석-관천 둔치위-에 대를 잇는 싹이 돋아/ 이수목 따뜻한 피가 가지마다 돌고 있다./ 2. 장학금 거둬내-고 세금 무는 반송목/ 솔-잎끝 부채질에 목련꽃이 활짝 핀다/ 남산을 올려다보던 잔솔밭도 깔끔하다/ (후렴) 솔가지...(장성대 醴泉郡廳홈페이지 自由揭示板 2006-07-16)
석송령 동신제(石松靈洞神祭) [祭祀] : 감천면 천향리 천연기념물 제294호인 석송령에서 열리는 해마다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동신제로, 이 석송령은 약 600년 전 호우 때 석곶천(石串川) 상류 풍기 지방에서 홍수를 타고 떠내려 온 어린 소나무를 주민이 건져 심은 것으로 전해온다. 1930년경에 이 마을 이수목이라는 사람이 소나무를 영험있는 나무라 하여 석송령으로 이름 짓고, 그의 사후를 부탁하며 자신의 토지 1,191평을 상속 등기해 주어 이 때부터 석송령으로 불리게 되었다. 매년 음력 1월 14일 자정에 제관 2명과 동네 주민이 참석한 가운데 지내게 되는 동신제는, 동신제 3일 전 동네에서 액운이 없는 사람 들 중에서 제관 2명을 정하게 되며, 제관으로 선정된 사람은 동신제까지 외부 출입을 삼가며 집안에서 근신한다. 음력 1월 13일 저녁 제관들은 나무에 두를 금줄을 만들며 14일 아침에는 제수를 장만하기 위해 장을 보고 오후에 장만해 둔 금줄을 나무에 치며, 저녁에 동제에 쓸 그릇과 음식을 장만하는데, 음식은 백설기, 돼지머리, 막걸리, 채소, 과일 등을 준비한다. 제사는 일반 제사와 같은 순서로 진행되며 축문을 낭독하고 가구 수만큼의 종이를 풍년과 행운을 기원하며 태우게 되며, 동제를 마치면 다음날 아침 동네 주민들이 모여 전날의 음식들을 나누어 먹는다. 특히 석송령제를 지낼 때 쓰는 고깔을 가져다 태워서 아들 없는 사람이 먹으면 아들을 낳고 공부하는 학생이 먹으면 공부를 잘 한다고 하여 14일 석송령제 때에는 고깔을 가지려 하는 사람들이 몰려온다는 일화가 있다(예천군 홈페이지 2000). [매일신문] : 감천면 천향리에서 200여 년 간 정월 보름마다 600년된 노송인 석송령에 지내던 동신제로, 이를 위해 '석송계'를 조직 운영하고 있다. 주민 중에서 한 해 동안 상고나 액운이 없었던 사람 2명을 제사일 3일 전에 제관으로 선정하는데, 이들 제관은 제사 날까지의 기간 중 금욕하고 외출을 삼가며 마을 앞개울에서 찬물 목욕하는 등 정성을 다한다. 또 외부인과 잡귀의 접근을 막기 위해 황토를 마을 어귀에서부터 제관의 집까지 뿌려 두며, 제관의 집에는 숯과 솔가지, 고추 등을 매단 금줄을 쳐 외부인 접근을 막는다.(每日新聞 1999.2.27)
석송령 동신제(天然記念物을 地域祝祭 求心點으로) [記事] : 국가가 지정하는 문화재 등급 중 하나인 천연기념물에는 동ㆍ식물이 주류를 이룬다. 이 중에는 그 마을의 공동체적 구심점 역할을 하는 당산나무나 숲이 많다. 이런 점에 주목해 문화재청(청장 유홍준)은 천연기념물과 관련된 민속행사를 지원함으로써 마을 축제로 승화시켜 나가기로 했다. 이를 위해 문화재청이 고른 천연기념물은 모두 9건. 제320호인 충남 부여 내산면 은행나무를 중심으로 전승되는 동신제, 제294호인 경북 예천 감천면 석송령을 기반으로 하는 동신제, 제169호 충남 서천 마량리 동백나무숲 일대에서 펼쳐지는 풍어제 등을 지원할 방침이다. 문화재청은 이들 민속제를 지역 축제로 활성화하고, 그 과정을 비디오나 CD 등으로 기록할 방침이다.(김태식 記者 聯合뉴스 2005.2.3 (목) 11:08)
석송령 동신제('石松靈'에 金秀男 郡守 큰절!) [記事] : 마을 주민의 화합과 안녕을 기원하는 정월대보름 동신제가 2005년 2월 22일 자정 김수남 군수, 석송령 회원, 마을 주민 등 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감천면 천향리 현지에서 개최됐다. 매년 정월대보름 제를 올리고 있는 석송령 동신제는 제례 3일 전부터 마을에서 액운이 없는 제관 2명을 정하고 제관으로 선정된 사람은 동신제까지 외지 출입을 삼가하고 목욕제계와 마음을 정갈하게 하는 등 제관들은 동신제 당일까지 집안에서 근신하게 된다. 또 음력 1월 31일 저녁 제관들은 나무에 두를 금줄을 만들고 14일 아침 제수를 직접 장만하고 오후에는 나무에 금줄을 치며 저녁에 동신제에 쓸 그릇과 백설기, 돼지머리, 막걸리, 채소, 과일 등 제물을 준비한다. 동신제는 일반제와 같은 순서로 진행되며 축문 낭독과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태우는 20매의 소지가 하늘로 올려지고 동신제 끝나면 다음날 아침 동네 주민들이 모여 전 날의 음식을 나눠 먹는 것으로 동신제 행사는 모두 끝나게 된다.(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5-02-23 오전 9:57:25)
석송령 동신제(正月 대보름 子正을 期해 마을의 安寧과 豊年農事를 祈願하는 石松靈洞祭...) [記事] : 감천면 천향리에서는 2006년 2월 12일 정월대보름을 맞아 석송령(천년기념물 294호)에서 김수남 군수, 안철모 면장, 주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마을의 안녕과 풍년 농사를 기원하는 동신제를 지냈다. 이날 동제에서는 동제 제관은 장규도 씨가, 축관은 조동두 씨가 각각 지냈으며, 주민들은 동제를 마치고 마을회관에서 음복을 함께하며 덕담을 나눴다. 석송령은 6백 년 전 풍기 지방에 홍수가 났을 때 석간천(石串川)을 따라 떠내려 오던 소나무를 지나가던 사람이 건져 심은 것을 천향리에 살던 이수목이라는 사람이 '석평마을에 사는 영감이 있는 소나무'라는 뜻의 '석송령'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자신의 토지 6,600㎡를 물려주고 등기까지 내주어 재산을 가진 소나무가 되었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5백만 원의 상금을 받았으며 마을에서는 석송령의 재산으로 장학금을 조성, 학생들에게 혜택을 주고 있으며 매년 정월대보름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비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석송령은 현재 높이 11m, 둘레 3.67m에 밑동에서부터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어 전체적으로 우산 모양을 하고 있으며 곁가지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곳곳에 돌로 된 기둥을 세워놓고 있다.(金相國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6-02-12 오전 2:59:43)
석송령 동제 [記事] : 감천면 천향리 석평마을의 마을회관 앞에서 자라고 있는 예천 감천면의 석송령은 나이가 6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10m, 둘레는 1.9m, 3.6m이다. 나무는 밑동에서부터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어 전체적으로 우산 모양을 하고 있으며, 결가지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곳곳에 돌로 된 기둥을 세워 놓았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약 600년 전 풍기지방에 큰 홍수가 났을 때 석관천을 따라 떠내려 오던 소나무를 지나가던 사람이 건져서 이 자리에 심은 것이라고 한다. 그 뒤 이 마을에 살던 이수목(李秀睦)이라는 사람이 ‘석평마을 사는 영감이 있는 소나무'라는 뜻으로 석송령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고, 1927년 8월 10일자로 자신의 토지 6,600㎡를 물려주고 등기까지 내주어 재산을 가진 나무가 되었다. 마을에서는 석송령의 재산으로 장학금을 조성하여 학생들에게 주고 있으며 매년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평화를 비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석평마을에서는 천연기념물 제294호인 석송령을 마을 신목으로 여기고 있고, 석송령보존회(80년 전에 설립)가 주관하여 매년 정월 열나흘 날 자정에 제를 지낸다. 5년 전부터 예천군수가 참여하여 아헌관을 하고 있다. 제관과 도관(음식 장만, 요즘은 축관을 선출하지 않아 도관이 축문을 읽는다)을 정월 열이틀 날 마을 주민 중 일진을 봐서 생기복덕을 가려 각 1명을 선출한다. 선출 된 날부터 마을 사람을 봐도 말을 하지 않고 술, 담배, 비린 것을 먹지 않고, 부부간에 잠자리와 외출을 삼간다. 열사흘 날 아침에 제관과 도관이 금색을 만들어 신목과 각자의 집에 친다. 황토는 열나흘 날 아침 각자의 집부터 신목까지 보폭만큼의 간격으로 뿌린다. 장은 열나흘 날 해뜨기 전에 예천장으로 가서 맨 먼저 여는 가게에 가서 구입한다. 장에 갈 땐 말을 하지 않으며, 앞만 보고 간다. 제물을 구입할 때 흥정을 하지 않는다. 제물은 백설기, 삼실과, 사과, 배, 메 1그릇, 탕 1그릇, 삼채, 돼지머리를 올린다. 제의는 제관, 군수, 도관이 초헌, 아헌, 종헌을 올리고 축을 읽고 소지를 올린다. 천향리는 과거 축문을 한문으로 된 것을 읽었으나, 최근에 사람들이 한문의 뜻도 잘 모르고 하여 한글로 된 축문을 읽는다고 한다.
과거 축문 : 維歲次 正月 朔十五日 幼學 ㅇㅇㅇ/ 敢昭告于/ 恭惟洞神 幽應最靈 佑人壽福 俾家熾昌 瓊摩旣俱/ 日吉辰良 香烟上升 靈雲下降 守郊護庄 其理孔神/ 凡此洞民 齊心共尊 誠築壇柵 禮崇郊閭 酒淸肴香/ 飯潔魚淨 沐浴昭告 神如在上 三人致齊 十姓共誠/ 舊賴孔多 新歲新德 學士田翁 載耕載讀 土宜稻?/ 村聞絃誦 農夫夢魚 俊士登龍 里仁爲美 胥勉厚風/ 驅彼厲鬼 降我禎祥 黙垂陰騭 洞人有慶 其靈赫明/ 惟物所? 馬?斯雲 拘足生釐 山君渡河 鳴?達四/ 毫客屛跡 里門夜開 民和物定 洞我太平 禾麻??/ 倉廩崇崇 輔相一村 歌頌三街 候誰之德 咸曰神?/ 敢忘廣惠 永報祀事 拜手祝口 肅雍淸夜 至誠感通/ 神其醉止/ 尙/ 饗
현재 축문 : 유세차 정월 삭십오일 유학 ㅇㅇㅇ은/ 목욕재계하고 경배하오며 감히 아뢰옵니다./ 동신령님이시여 엎드려 생각하업건대/ 신령님께선 수천 년 내려오는 저희들의 삶의 터전인/ 이 땅 천향리를 보살펴 주시며/ 어리석고 몽매한 동민들을 깊은 사랑으로 어루만져 주셨나이다./ 집집마다 사람마다 수와 복을 내리시고 마을을 지켜 주시며/ 전장을 살피시와 이 어린 백성으로 하여금 서로 돕고/ 화평하게 살아갈 수 있게 아름다운 도의심을 밝혀주셨고/ 논과 밭에서는 먹고 남을 넉넉한 곡식을 주셨으니/ 태산 같은 은혜를 어찌 헤아릴 길이 있사오리까/ 우러러 받들어 모시는 한결같은 정성으로/ 여기 조촐한 제단을 모았나이다./ 정결한 메 한 그릇 자반 한 접시에도 성심을 모아/ 그윽한 향연 속에 새해의 새 술을 올리며/ 빌고 또 비나이다./ 전지전능하신 동신령님이시여!/ 이미 베풀어주신 하해같은 은혜를 새해에도 한결같이 내려주소서./ 우순풍조하여 논밭마다 오곡이 풍성하고/ 역귀를 물리쳐서 사람마다 건강을 갖게 하시고/ 언제 어디서나 안전한 삶의 즐거움을 누리게 하소서,/ 서로서로 이해하고 이웃끼리 서로 돕고 예절을 숭상하여/ 순박한 미풍을 간직하게 하소서./ 학업에 열중하는 학도들은 뛰어난 성적으로 이 나라의 동량이 되게 하시고/ 이곳을 집을 떠나 객지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자손에게도/ 건강과 안전 그리고 사랑과 용기를 북돋우어 주소서./ 그리하여 그들로 하여금 조상의 이 고장을 잊지 않게 하여 주소서./ 이렇게 이룩한 영원한 낙토 천향리가/ 동신령님의 하늘같은 은혜로 이룩된 것을 어찌 감히 잊으오리까./ 여기 간절한 소망을 비오며 이 고요한 맑은 밤에 지성으로 축수하오니/ 원하옵건대 음감하시고 흠향하시옵소서./
소지는 마을 각 호주의 성명을 부르며 평안을 빈다. 다음날 아침 석송령의 앞에 위치한 마을회관에 동민 모두 모여 음복한다. 제비는 석송령 보유의 토지를 6가구가 농사를 지어 도지를 받아 지냈으나 현재는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어 2003년부터 군에 지원비를 신청하여 지내고 있다.(제보자 김성호 남 66세 2004년 도관 석송령보존회 총무)(醴泉郡誌 2005)
석송령 동제(安寧과 豊年農事 祈願 正月 대보름 맞이 甘泉 石松嶺, 龍宮 黃木根에서 洞神祭) [記事] : 감천면 천향리(이장 김형덕)는 2007년 2월 4일 정월대보름을 맞아 석송령(천연기념물 294호)에서 김수남 군수, 정석홍 면장, 엄종호 문화관광과장, 이동섭 체육회장, 주민 50여 명 등이 참석한 가운데 동신제를 지냈다. 마을의 안녕과 풍년농사를 기원하는 천향리 동신제는 김형덕, 권종욱 씨가 동제관을 맡아 집전했으며, 김수남 군수는 주민들과 함께 동제를 마치고 마을회관에서 음복을 함께하며 덕담을 나눴다. 석송령은 6백 년 전 풍기지방에 홍수가 났을 때 석관천을 따라 떠내려 오던 소나무를 지나가던 사람이 건져 심은 것을 천향리에 살던 이수목이라는 사람이 '석평마을에 사는 영감이 있는 소나무'라는 뜻의 '석송령'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자신의 토지 6,600㎡를 물려주고 등기까지 내주어 재산을 가진 소나무가 됐다. 이후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5백만 원의 상금을 받았으며 마을에서는 석송령 재산으로 장학금을 조성, 학생들에게 혜택을 주고 있으며 매년 정월대보름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비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석송령은 현재 높이 11m, 둘레 3.67m에 밑동에서부터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어 전체적으로 우산 모양을 하고 있으며 곁가지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곳곳에 돌로 된 기둥을 세워놓고 있다. 천향리 동신제는 동민들이 한 마을의 공동운명체라는 소속감을 다시 확인시켜 주고 조상님들의 본(本)을 그대로 이어가면서 동민들이 동신제를 통하여 공동으로 풍요와 건강을 지키려는 생활공동체임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고 있다. 정월 대보름 풍속으로 새해를 맞이하여 새로운 시간의 창조를 위한 신성의례와 건강하고 풍요로운 생활을 얻기 위한 다양한 제의(祭儀)와 점세(占歲) 및 놀이가 행해지고 있는 가운데 천향리 동신제도 이런 맥락에서 행해지는 행사다. 동신제는 매년 음력 1월 14일 자정에 제관 2명과 동네주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지내고 있으며 제관은 제례 3일 전 동네에서 액운이 없는 사람 2명으로 선정되어 이들 2명은 동신제까지 외지 출입을 삼가며 집안에서 근신해 왔다. 한편, 천연기념물 제400호인 용궁면 금남리 ꡒ황목근ꡓ 현지에서도 정월대보름 맞이 동신제를 지냈다.(金相國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07-03-04 오전 2:59:33)
석송령('醴泉 石松靈' 스크린 出演한다 : 獨立映畵 '나루' 主要 背景 舞臺 設定) [記事] : 경북 예천군이 천연기념물인 석송령을 주무대로 한 독립영화 '나루' 제작을 위해 군과 영화사와 협약식을 갖는다. 독립영화 '워낭리' 촬영지로 전국에 이름을 알린 봉화군에 이어 경북 예천군이 천연기념물인 석송령을 주무대로 한 독립영화 '나루' 제작을 위해 군과 영화사와의 협약식을 가진 뒤, 2009년 연말 본격 촬영에 들어갈 것으로 알려져 지역의 관광마케팅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예천군과 독립영화제작사인 한 코리아는 2009년 9월 28일 오후 군청 영상회의실에서 독립영화 '나루'의 제작을 위한 협약식을 갖는다. 이날 협약으로 군에서는 이번 '나루'의 제작비 7천만 원과 영화의 주무대가 될 천연기념물 제 294호로 지정돼 있는 감천면 천향리 석송령에서의 촬영 전반에 대한 행정적 지원을 하고, 한 코리아는 해외영화제 출품을 겨냥한 예술성을 갖춘 독립영화 제작을 위해 오는 11월 말경부터 본격 촬영에 들어간다. 이번에 제작될 영화는 예천군 용문면 금당실 마을에 살면서 예천군청 안내실에 근무하는 주인공 강나루와 군의 대표적 서원인 옥천서원을 관리하는 70대 노인의 세대를 초월한 아름다운 사랑 얘기가 석송령을 배경으로 그려질 예정이다. 특히 동화작가 지망생인 주인공과 서원 관리인인 노인의 고집스런 삶에 대한 갈등과 반전을 그려내며 결국 주인공 나루가 세대간의 벽을 허물며 노인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이를 통해 동화작가로서의 꿈을 이루어 가는 과정을 그린 휴먼스토리로 결말을 맺게 된다.(張炳喆 記者 慶北日報 2009-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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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교육지원청, 27일 전국체전에서 금메달 5개 획득...축하합니다.
예천교육지원청(醴泉 洋弓의 새 歷史를 쓰다! : 第43回 全國少年體典에서 金메달 5個 獲得) [記事] : 예천교육지원청(교육장 김기한)에서는 2014년 5월 24일부터 27일까지 4일간 인천광역시 계양아시아드양궁장에서 열린 ‘제43회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양궁부문 경상북도 대표로 출전하여 금메달 5개를 획득하는 기염을 토하였다. 기대하던 메달은 대회 첫날부터 쏟아졌다. 대회 첫날 여자초등부 35M에 출전한 김태희(예천동부초) 학생이 동메달을 따내면서 순조로운 출발을 하였다. 김태희 학생은 다음 경기인 30M 경기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하고, 박지민(예천초) 학생이 은메달을 연이어 획득하며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였다. 대회 이틀째인 25일에도 계양아시아드양궁장은 예천의 날이었다. 25M 경기에서 김태희 학생과 박지민 학생이 각각 값진 금메달과 동메달을 추가하였다. 그 중 김태희 학생은 총점 1,400점으로 개인종합에서도 금메달을 차지하였다. 단체전까지 경북이 금메달을 차지하며 김태희 학생은 대회 4관왕(30M, 25M, 개인종합, 단체전)의 위업을 달성하는 동시에, 여자초등부 최우수 선수(금4,동1)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또한 초등여자부 단체전에서 박나원(예천동부초) 학생이 금메달을 획득, 26일은 중학교 여자부 권지인, 김유경(예천여중) 학생이 출전한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대회 마지막 날인 27일에는 조승욱(예천중) 학생이 개인전에서 4위를 달성하며 대회를 마무리하였다. 이로써 예천 양궁은 금메달 5개, 은메달 1개, 동메달 2개를 따내며 명실상부 양궁의 메카임을 다시 한번 전국에 알리는 큰 계기가 되었다. 김기한 교육장은 “그동안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이렇게 좋은 결과를 내어주어 정말 고맙고 감사하다.”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구슬땀 흘리며 훈련에 임한 학생 선수들과 감독, 코치를 비롯하여 양궁 관계자들에게 칭찬과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醴泉뉴스 2014년 0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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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방문 1,121
삼강문화마을(“洛東江 自轉車 一走 通해 自信感 얻었어요” : `오뚜기쉼터’ 統一靑少年 1泊 2日間 140km 一走) [記事] :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과 (사)꿈을이루는사람들이 공동운영하는 북한이탈 무연고청소년 그룹홈 `오뚜기쉼터(대표 이지형)’는 `통일청소년 낙동강자전거 일주’라는 슬로건으로 2014년 5월 24~25일까지 안동-구미 낙동강 자전거길 약 140km를 자전거로 일주했다. 쉼터 입소생 6명과 일반인 중학생 1명, 봉사자 8명이 참가한 이번 행사는 남한에서도 구미라는 지역에서 살아가고 있는 통일청소년들이 다른 남한 학생들과 마찬가지고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자신을 극복하는 경험을 통해 자신감과 협동심을 기를 수 있도록 성주재단에서 후원하고 있다. 첫날 안동댐 인증센터에서 출발하여 하회마을을 둘러보고 예천 삼강문화마을까지, 둘째 날은 예천에서 상주자전거박물관을 거쳐 구미까지 돌아오는 코스였다.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인 안동과 하회마을 일대를 자전거로 하이킹하며 한국의 전통문화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국내 유일하게 남은 삼강주막을 둘러보며 옛 조상들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했다. 이번 자전거 하이킹에 참여한 오뚜기쉼터 한 청소년은 “1박 2일의 시간동안 힘들고, 중간중간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마지막까지 완주하겠다는 의지가 생겼고, 완주 후 느끼는 성취감이 컸다”고 말했다.(김형식 記者 慶北道民日報 2014.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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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