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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700) : 노한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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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필은 아뢰기를, ꡒ저 사람이 이웃집의 여자를 아내로 삼은 것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집안 일로 싸운 실상이 없으니 분명히 지적할 수는 없습니다. 부득이 동궁의 각 차비인(差備人)을 추문해야 되겠습니다. 옥사(獄事)가 이러한데도 아직 단서를 잡지 못하고 있으니, 정범(正犯)이 곁에서 보고 몰래 웃고 있을 것입니다. 이래서 민망하기 짝이 없습니다.ꡓ하고, 홍숙(洪淑) 【 홍여(洪礪)의 할아버지.】은 아뢰기를, ꡒ지금 이 일은 신의 외간에 있었기 때문에 상세히 듣지 못했습니다만, 일이 너무도 경악스럽습니다. 국가에서는 모름지기 엄한 법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옥사가 오래 지체되더라도 날짜를 계산할 것 없이 끝까지 추문해야 됩니다. 한충보의 일에 대해서는, 그가 스스로 했다면 틀림없이 자기의 이름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니, 이는 그와 원수진 사람의 소행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누구의 소행인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ꡓ하고, 은보는 아뢰기를, ꡒ고금에 이런 변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저번 서문(西門)에 쓴 화살에도 충보의 이름이 쓰여 있었습니다. 이는 한충보와 원수진 사람이 그에게 대죄(大罪)를 받게 하기 위해 저지른 짓이 틀림없습니다. 아무리 원수진 사람이 있다 해도 큰 원수가 아니면 이런 짓을 할 수가 없는 법인데, 이제 추문받고 있는 사람을 보면 큰 원수가 아닙니다. 혹시 크게 원수진 사람이 있는데도 말하지 않고 있는 것인지 인명을 아끼지 말고 끝까지 추고해서 되겠습니다.ꡓ하고, 근사는 아뢰기를, ꡒ지금 옥사(獄事)를 보면 아직도 단서가 없어서 방향을 잡아 추문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충보를 해치기 위한 짓인가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충보의 원혐 또한 그리 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근래 화살을 쏘고 방(榜)을 붙이는 일이 자주 발생되고 있지만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이는 한때의 울분으로 저지른 일이 아니라 원망을 품어온 지가 오래된 자의 소행인 것 같습니다. 충보 의 이름을 여러 번 거론하여 지금까지 차례에 이르렀으니, 신들은 매우 우려하고 있습니다.ꡓ하고, 안로는 아뢰기를, ꡒ예부터 역신(逆臣)은 있었습니다만,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아무리 흉역스런 사람일지라도 어떻게 입에 담을 수 없는 이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는 만고에 없었던 일입니다. 신하들뿐만이 아니라 혈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군들 통분히 여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 아래 유자(猶字)【목패(木牌)에 쓰여 있는 글자를 가리킴.】를 살펴보면 뜻이 없는 것 같기는 하지만, 무식한 사람의 소행은 아닙니다. 신거관의 집에 던져 넣었던 투서에 ꡐ13일 작성했다.ꡑ는 말이 있었는데, 거기에 쓰인 글씨도 보통 사람의 글씨는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억울한 일이 있다 해도 자기 한 몸에 해당되는 작은 일이라면 이런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부터 억울함을 품은 자는 있었지만 이런 일이 있은 적은 없었습니다. 만약 충보 의 소행을 증오하여 한 짓이라면 그 계획이 또한 간교합니다. 이 일이 충보 때문에 한 짓인 것 같기는 하나 충보 때문에 한 짓이라면 그의 이름을 쓸 수 있겠습니까? 여러 번 충보의 이름을 쓰기는 했지만 반드시 충보 때문에 한 짓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단서가 없습니다. 조정에서 이렇게 큰일을 불문에 붙인다면 뒤에는 틀림없이 아무것도 꺼리지 않게 되어 이보다 더 큰 옥사가 생기게 될 것입니다. 모름지기 지금 끝까지 추문하여야 만이 신민(臣民)의 분이 조금이나마 풀릴 것입니다.ꡓ하고,
언필은 아뢰기를, ꡒ신은 외간에 있었기 때문에 자세히 못 들었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이렇게 통분한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온 조정이 누군들 상삼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런 일이 있는데도 나라에서 엄중한 형벌로 다스리지 않기 때문에 간사한 소인배가 기탄없이 멋대로 횡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흉상(凶像)을 동궁에 매단 것은 서연관(書筵官)들에게 보이려고 그런 것이요, 충보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단서가 없습니다. 단서가 갑자기 드러나지 않더라도 모름지기 인명을 아까지 말고 급박하게 추국해야 합니다. 이렇게 통분한 일을 통쾌히 다스리지 않는다면 신민들의 통분한 마음을 어디다 풀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과거에 신주(神主)를 잃어버린 일이 있었는데 이 신주가 성(城) 밖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끝내 그런 짓을 저지른 자를 잡지 못했으니, 그 수모를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이 일에 대해서는, 추관(推官)들이 의당 널리 의논하여 각별히 추국해야 됩니다. 이 일은 너무도 크기 때문에 애매한 사람들이 죽는 일이 있더라도 헤아릴 겨를이 없습니다. 지금 신이 한 말은 유자(儒者)로서는 할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은 인심이 나빠지고 풍속이 야박해졌습니다. 이 일은 역시 조종조(祖宗朝)에 없던 일이니 의당 급박하게 추국해야 합니다.ꡓ하고, 사균은 아뢰기를, ꡒ지금 익명서(匿名書)의 내용을 신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좌우(左右)에서 아뢰는 말을 듣건대 입으로는 할 수 없는 말인 것 같습니다. 위에서는 아뢴 내용에 따라 짐작해서 조처하여야 하겠습니다. 신의 생각에는 이런 일이 근간에 처음 시작된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폐조(廢朝)16757) 때에도 아랫사람이 분을 품게 되어 언문(諺文)으로 익명서를 만든 일이 있었고 반정(反正)한 뒤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데, 억울함이 없게 하기 위해 너그럽게 조처했기 때문에 이런 일로 체포된 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미욱한 사람이 간혹 작은 일 때문에 이런 일을 하기도 합니다. 신이 근래 본 일은 상세한 것이었습니다. 대궐(大闕) 문에 ꡐ 청주(淸州) 의 관리(官吏)가 백성들을 매우 괴롭히고 있다.ꡑ고 쓰여 있었고, 성 모퉁이에도 이런 글이 쓰여 있었습니다. 문 옆의 돌【초석(礎石)을 말함.】을 벼루삼아 먹을 간 것을 보면, 이는 그 고을 군사가 그 고을 관리를 원망해서 한 짓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리고 독권관(讀券官)16758) 이 근정전(勤政殿) 에 들어갔다가 보았는데 그곳에도 이런 글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필시 평상시 대궐을 원우(院宇)처럼 가벼이 보았기 때문에 한 짓입니다. 이는 지금의 옥사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신이 어려서부터 듣기로는 상언(上言)을 올리는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사죄(死罪)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고 가전(駕前)16759) 에 돌진하여 바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기강이 당당한 때는 우려한 일이 없겠습니다만, 기강이 없는 때라면 이를 칭탁하여 은밀히 도모하는 일이 도성에서 발생하게 됩니다. 지금 아무리 원통한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찌 감히 이렇게 기탄없는 글을 쓸 수가 있겠습니까. 이제 보통으로 여겨 조처한다면 이런 사례가 점차로 만연되어 시작은 미소하지만 뒤에 가서 매우 큰 일이 될 것입니다. 엄한 형벌로 다스린다면 그 일의 단서가 반드시 드러날 것이니, 모름지기 끝까지 추문해야 됩니다.ꡓ하고,
손주는 아뢰기를, ꡒ사균이 아뢴 것과 같이 익명서는 폐조(廢朝) 때부터 있었습니다. 지금은 인심이 옛날과 다르고 풍속이 크게 무너져서 친구나 부자 사이이라도 반드시 그 죄악을 나열하여 대서특필(大書特筆)하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들의 허물이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지금 이 일은 매우 부도(不道)한 것으로, 온 나라의 신민(臣民)들 모두가 통분히 여기고 있으니, 기필코 추심(推尋)하여 국전(國典)을 명백히 보여야 되겠습니다. 그런 뒤에라야 이런 폐습이 근절될 것입니다.ꡓ하고, 언경은 아뢰기를, ꡒ어제 목패(木牌)를 보았습니다만 지극히 경악스러웠습니다. 입으로 말할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눈으로 볼 수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통분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미 익명서를 신거관의 집에다 던져 넣고, 또 동궁 근처에다 사람의 머리 모양을 설치하고 목패에 글을 써서 보인 것으로 미루어보면, 이는 범연히 저지른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는 대간의 집에다 먼저 시험해 보았는데도 아무 말이 없었기 때문에 또 궐내(闕內)에다 시험한 것이니, 궐내의 사정을 모르는 외인(外人)의 소행이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반드시 동궁의 자취와 조강(朝講)을 끝내고 나서 주강(晝講)을 열기 전까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상세히 알고서 한 짓이 틀림없습니다. 저번 대내(大內)에 돌을 던진 일에 대해 현상금을 걸었으나 끝내 자수(自首)하는 사람이 없자 국가에서 불문에 붙였기 때문이 이런 경악스런 일이 무수히 발생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충보의 이름을 쓴 것에 대해, 충보 와 조금 혐의가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의 소행이 아닌가 의심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혐의 때문에 이런 엄청난 흉모를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근래 재변이 계속하여 발생하고 인심의 흉특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천변이 발생하는 것이므로, 천변의 발생은 괴이하게 여길 것이 없습니다. 이미 충보 의 이름이 쓰여 있었고 게다가 전처의 동생과 혐의를 품은 일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사건과 서로 부합되는 점이 있기 때문에 의심해서 추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충보 한 사람 때문에 저지른 것이 아니라 아마도 큰 흉특한 인물이 조정(朝廷)의 조처를 엿보려고 한 짓인 것 같습니다. 이로써 살펴보면 나라에 기강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모름지기 광범위하게 끝까지 추문해야 될 일입니다.ꡓ하고, 옥형은 아뢰기를, ꡒ난신(亂臣)과 적자(賊子)가 어느 때인들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전고를 통틀어도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의당 끝까지 추문해야 할 일입니다. 아무리 충보 와 원수진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 흉악스러움이 이처럼 극악하게 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충보 의 이름이 여러 번 거론되었으니 역시 추국해야 되겠습니다. 전에 긴박하게 추문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이런 변이 발생한 것입니다. 모름지기 끝까지 추문하여 기어이 실정을 알아내게 하소서.ꡓ하고, 오준은 아뢰기를, ꡒ이는 신자로서 차마 말할 수조차 없는 일입니다. 이제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니 ꡐ그가 죄받은 일 때문에 분을 품고 한 짓일 것이다.ꡑ고 하였으나 그 때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필 동궁을 향하여 이런 짓을 한 것으로 보아 동궁 근처를 출입하면서 내용을 상세히 아는 자의 소행이 틀림없습니다. 여러 사람의 의견은 아직 단서가 없다고 하지만, 그 일을 저지른 자의 정적(情迹)이 이미 드러났습니다. 이 일은 매우 중대하여 종묘사직에 관계됩니다. 단서가 없다 해도 정적이 이러하니 경솔히 버려 둘 수 없는 일입니다. 당연히 종묘사직의 대계(大計)를 위해 다방면으로 끝까지 추문해야 됩니다.ꡓ하고,
양연은 아뢰기를, ꡒ신자(臣子)들의 절통한 마음을 여러 사람들이 모두 아뢰었으나 다시 아뢸 것이 없습니다. 아직까지 단서(端緖)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서문에 꽂힌 화살에 ꡐ 한충부(韓忠府)ꡑ라고 쓰여 있었고, 또 대간의 집에 던져 넣은 글에는 ꡐ한충부(韓忠副)ꡑ와 노경종(盧敬宗)ꡑ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두 번이나 이런 일이 있었어도 나라에서 추문하지 않기 때문에 동궁 근처에서 그런 짓을 한 것입니다. 이들은 한 집안 사람【 한충부와 노경종임.】이므로 추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추문을 늦추어 말을 꾸밀 수 있게 해주면 끝내 실정을 알아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는 중대한 일이라서 인명을 아낄 수가 없습니다. 동궁 근처에 입직(入直)했던 사람과 출입한 사람 가운데 의심스런 사람을 추문한다면 충보나 경종 과 간여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한 가지 단서를 잡으면 옥사가 크게 진전될 것이니, 모름지기 급박하게 추문해야 될 일입니다.ꡓ하고, 세건은 아뢰기를, ꡒ옛날에도 난역과 난언이 있었고 또 위에 저촉되는 말이 있기는 했습니다만,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신자로서는 읽을 수 없을 뿐만이 아니라 차마 볼 수도 없습니다. 충보 의 이름이 있기 때문에 그와 원수진 사람을 추문하고 있습니다만, 충보 에게 원수를 갚으려는 자가 이런 짓을 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번 일은 궐내(闕內)의 아무 곳에서나 해도 되는데 반드시 동궁에다 한 것은 의도가 있는 것입니다. 또 석 줄의 글이 순서대로 되어 있는데, 그중 중한 말이 동궁에게 귀착된 것으로 보면 정적(情迹)이 없다고 할 수도 없음은, 물론, 미욱한 사람의 소행도 아닙니다. 이렇게 미루어 나가면 정적이 저절로 드러날 것입니다. 돌을 던진 일도 매우 놀랍습니다만 이 일에 견주어 보면 작은 것입니다. 이는 종묘사직에 크게 관계가 되는 일이니 엄중하게 다스려야 됩니다.ꡓ하고, 상진은 아뢰기를, ꡒ이 일의 흉특스러운 정상은 차마 다시 아뢸 수가 없습니다. 그 석 줄의 글도 말에 경중이 있는데 그중 중한 말이 동궁에게 돌려졌습니다. 임금은 형살(刑殺)의 권한을 가지고 있으므로 죄를 받고 원망을 품은 자가 간혹 불궤(不軌)스러운 짓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동궁은 정사(政事)16760) 에 간섭하지 않기 때문에 기탄받을 일이 없는데도 지적한 말이 극심하니, 이는 신자의 마음에 통분을 금할 수 없는 것임은 물론 일단은 모두 의심해봐야 합니다. 예부터 동궁의 형세는 위태로웠었으나 지금 같은 때는 없었습니다. 작서(灼鼠)의 변(變)16761) 이 있은 뒤로 그 형세가 더욱 위태로워졌습니다. 작서의 변은 궁중(宮中)에서 일어났으므로 외인(外人)은 의심할 수 없었습니다. 정현 왕후(貞顯王后)께서 직접 추문하여 실정을 알아냈으니, 종묘사직의 대계를 위하여 통쾌한 결단을 내려야 되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도 신민들이 모두 마음 아파하고 있고, 따라서 화근(禍根)이 아직 남아 있으므로 흉특한 무리들이 분을 품고 못하는 짓이 없습니다. 대저 궐내에다 돌을 던진 일은 모두 위를 원망하는 데서 야기된 것이니, 위에서 정상을 철저히 조사, 종묘사직을 위해 처치(處置)해야 됩니다.ꡓ하고,
백령은 아뢰기를, ꡒ고금에 이렇게 통분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충보 의 이름이 쓰여 있으나 아직 단서를 잡지 못했고 따라서 이를 놓아두고 다른 사람을 추문할 수도 없어서 지금 추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임금을 해치려는 말이 있는 것으로 보면 충보 에게 관계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동궁 근처에 있던 사람은 애매한 것 같으나 그래도 추문하기를 청하는 것은, 충보 때문에 이런 짓을 했다면 이런 정도까지 이르지는 않을 것이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ꡓ하고, 송순은 아뢰기를, ꡒ흉악한 형상은 고금에 없던 일이라서 입을 열어 다시 아뢸 수가 없습니다. 이미 궐문에다 했고 또 대간의 집에다가도 했으며, 또 동궁에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모두 충보의 이름이 쓰여져 있었으므로 사람들로 하여금 충보를 의심케 했습니다. 그러나 충보 때문에 이런 짓을 했다면 그의 이름을 바로 쓸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대저 근래 있었던 돌을 던진 것과 화살을 쏜 일은 모두가 동요시키기 위한 계책에서 나온 것입니다. 시강원 근처에는 조강을 끝낸 뒤부터 주강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사람이 없는데, 이 때를 이용하여 저질렀으니, 이는 외간의 잡인(雜人)으로서는 알 수 없는 사실입니다. 출입한 사람을 추문하면 단서가 드러날 것입니다.ꡓ하고, 희열은 아뢰기를, ꡒ고금 천지간에 어찌 이렇게 흉악한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입에 담을 수가 없습니다. 아직 단서를 잡지 못했는데 충보 의 이름이 쓰여 있기 때문에 그와 원수진 사람의 소행인가 의심하여 추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원수긴 사람이 그를 해치려고 하여 한 짓이라면 반드시 그 일신에 대한 죄를 썼을 것이요, 삼전(三殿)16762) 에 저촉되는 말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소소한 혐의 때문에 외인이 대궐에다 그런 일을 했겠습니까? 동궁 근처의 사람은 의당 끝까지 추문해야 됩니다. 전에 서문(西門)에 쏜 화살에 충보 의 이름이 적혀 있었던 것도 충보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글을 석 줄로 나누어 썼고 그 말도 경중이 있었는데 중한 말을 동궁에 돌려 동궁전(東宮殿)에 매달아 놨으니 동궁을 해치려는 마음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동궁은 정사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원망을 받을 일이 없는데도 이런 의심스런 일이 야기되었습니다. 이는 전일 작서의 변이 있을 적에 왕법(王法)을 바로 잡지 않았기 때문에 화근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종묘사직의 대계를 위해서 조처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랫사람들의 뜻입니다.ꡓ하고,
홍린은 아뢰기를, ꡒ근래 인심이 매우 험악하여 지금보다 더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흉역이 여기에 이를 줄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어제 저녁에 그 사실을 듣고는 국란(國亂)을 만난 것 같아 편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상서롭지 못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충보 의 이름이 목패(木牌)에 쓰여 있고 옥사(獄事)도 귀결처가 없기 때문에 부득이 충보를 추문하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실지로 충보를 원망하여 해치려는 것이라면, 그의 집에 불을 지르거나 그에게 활을 쏘는 등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감히 석 줄의 글을 나누어 써서 상에게 저촉되는 부도(不道)한 말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동궁 근처에는 아침 서연(書筵)과 주강(晝講) 사이에는 사람이 없을 때입니다. 외간 사람이 어떻게 이 사실을 알 수 있겠습니까. 틀림없이 평상시 출입하던 사람들의 소행인 것 같아서 신들이 어제 출입한 사람을 추문하자고 계청했었습니다. 하인들이 흉역을 꾸밈에 있어 크고 작은 지당(枝黨)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반드시 뿌리가 있어 마음을 도사려먹고 있을 것입니다. 돌을 던지고 글을 던져 넣는 등 못하는 짓이 없다가 심지어 흉상(凶像)까지 매달았습니다. 그러나 이뿐이라면 그만이겠습니다만,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에 무슨 화환(禍患)이 숨겨져 있는지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상께서는 통쾌하게 종묘사직의 대계를 위해 후환이 없게 조처하소서. 신이 보기로는 예부터 위에서 견제(牽制)당하는 일로 하여 위망(危亡)이 있어 왔습니다만, 이렇게 군상(君上)을 욕되게 하는 일은 고금에 없던 것이었습니다. 위에서는 반복해서 살피셔야 되겠습니다. 사중(司中)이 널리 추문하고자 하는 것은 그들의 당여(黨與)가 출입하면서 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내용으로 추문해야 됩니다.ꡓ하고, 김기는 아뢰기를, ꡒ지금 이 일은 입으로 말할 수가 없어 아뢸 바를 모르겠습니다. 충보 의 이름이 세 번이나 나왔고 달리 추문할 단서가 없기 때문에 충보를 추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흉상(凶像)이 어제 아침에는 없다가 낮에는 있었으니, 외인(外人)으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틀림없이 동궁 근처를 익히 잘 알고 다니는 사람의 소행인 것 같습니다. 따라서 추문하면 단서가 있을 것 같았기에 사중(司中)에서 널리 추문하자고 계청했던 것입니다. 이는 다른 옥사에 견줄 수 없는 것으로 의당 끝까지 추문해야 됩니다. 그리고 만연될 것은 우려할 필요가 없습니다.ꡓ하고, 무택은 아뢰기를, ꡒ지금 이 일은 음흉한 대역(大逆)으로 만고에 없던 것이고, 그 흉역스런 정상(情狀)은 차마 아뢰지 못하겠습니다. 신자가 한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원수로는 이보다 더한 것이 없습니다. 충보 의 이름이 목패에 쓰여 있기 때문에 조정이 의심하여 추문하고는 있습니다만, 가령 원수진 사람이 있다고 해도 한 몸의 원망 때문에 이런 짓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글을 석 줄로 나누어 썼고 그 말에는 경중이 있었는데 중한 말을 동궁에게 돌렸습니다. 동궁은 별로 원망을 살 일이 없고 보면, 동궁을 원망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직접 세워 놓은 흉상을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이는 일신을 위해서 한 일도 아니요 또한 일조일석(一朝一夕)에 계획한 일도 아닙니다. 아랫사람들의 생각엔 의심가는 곳이 있습니다.【아랫사람들의 의심은 모두 박씨(朴氏) 와 복성군(福城君)의 당여에 있었다.】 궁내의 사람이 이곳에다 세워 놓았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하도록 지시한 자는 따로 있을 것입니다. 신은 대간인(大奸人)이 곁에서 남몰래 웃고 있을까 우려됩니다. 종묘사직에 크게 관계되는 일이므로 고식적으로 조처해서는 안 되고, 대의(大義)에 입각하여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조정이 지금 결단하지 않으면 화근이 남아 있게 되니, 이는 한때 신민들의 통분일 뿐만이 아니라 뒷사람들도 누가 ꡐ조종에 가득한 훌륭한 신하들이 성명(聖明)을 뫼셨다.ꡑ고 하겠습니까? 신민 모두가 그의 살을 먹고 싶어하는 것은 물론이고, 위에서도 충보에게만 의심을 둘 뿐이 아니라 의심이 가는 곳을 두루 생각하십니다. 따라서 이런 계기를 당하여는 종묘사직의 대계를 위하는 것이 온당할 것 같습니다.ꡓ하고,
성윤은 아뢰기를, ꡒ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이는 만고에 없던 흉역입니다. 충보 때문에 그런 것 같기는 합니다만 일신의 원망 때문에 감히 이런 극단적인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석 줄의 글을 보면 3등으로 나누어 차제와 경중이 있었는데 중한 말을 동궁에게로 돌리고 있습니다. 근래 대내(大內)에다 돌을 던지고 화살을 쏘는 등 못하는 짓이 없더니, 지금은 흉특하고 극악함이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경악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단지 충보만을 추문한다면 도리어 대간인의 술책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종묘사직에 관계되는 일은 당연히 종묘사직의 대계를 위해 처단해야 됩니다.ꡓ하고, 계선은 아뢰기를, ꡒ지금 이 일은 고금에 없었던 일로 이렇게 경악스러운 일이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그 석 줄의 글을 보면 말에 경중이 있었는데 중한 말을 동궁에게 돌리고 있었습니다. 어디서든지 할 수 있는 일을 기필코 동궁에다 했으니, 이는 오로지 세자 때문에 한 짓인 것입니다. 지금 충보를 추문하고 있습니다만 충보는 병조의 서리(書吏)이니, 군사(軍士)를 시켜서 하게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외인으로서는 쉽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니, 동궁 근처의 사람 가운데 상응(相應)한 사람이 없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전에 작서의 변이 있었는데 신은 그 화근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이런 일이 계속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종묘사직에 크게 관계되는 일이니, 충보 만 추문해서는 안 되고 궁내에도 추문할 만한 사람이 있으면 역시 추문해야 됩니다. 위에서도 짐작가는 데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보통 일이라면 임금으로선 죄 없이 목숨을 잃는 것을 우려하는 것이 당연하겠으나, 이런 흉역의 무리는 엄중한 형벌로 급박하게 추문해야 됩니다. 만약 완만하게 추문하다가 갑자기 버려둔다면 실정을 알아 낼 수 없음은 말할 것도 없고, 흉역을 징계할 길이 없게 됩니다. 위에선들 어찌 헤아리지 않으셨겠습니까. 모름지기 완만히 하지 말고 급박하게 추문하소서.ꡓ하고, 거관은 아뢰기를, ꡒ신이 집에서 본 내용은 대략 상달했습니다. 이달 12일 본사(本司)에서 집으로 돌아오니 해가 아직 일렀고, 족질(族姪)도 마침 왔었습니다. 마침 노자(奴子)와 구사(丘史)들이 모두 흩어져 나가고 문밖에 사람이 없었는데, 5~6세 되는 아이가 흰 종이를 창틈으로 들여보냈습니다. 뜯어보니 글자가 겨우 모양을 이루었고 내용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살펴보았더니 ꡐ병조의 서리 한충부(韓忠副)와 출시인(出市人) 노경종(盧敬宗) .ꡑ이라고 쓰여 있었고, 유빈(猶賓)이라는 말이 그 아래 더 기입되어 있었습니다. 또 ꡐ아무날 밤ꡑ이라는 말이 있었고 그 곁에 ꡐ13일 씀ꡑ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으며, 또 그 곁에 두 줄의 글이 있었으나 자세히 보지 못했습니다. 유세자(猶世子)라고 쓴 그 다음의 말은 목패의 글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신은 놀라움을 이기지 못하여 찢어버리고 나서 사람을 불렀더니, 마침 노자가 와서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아이를 데리고 가서 받은 곳을 물어보게 하니 그 아이는 집 앞 언덕 밑에서 어떤 사람이 주더라고 했고,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물으니 모른다고 했답니다. 이는 입에다 담을 수 없는 일이라서 감히 계달(啓達)하지 못했는데, 요즈음 이 때문에 늘 마음이 편치 못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제 한충부(韓忠副) 라는 이름을 들으니 신이 본 것과 똑같은 이름이라서 아침에 이미 상달했습니다. 그런데 한충보(韓忠輔)라는 이름이 있는 것을 보면, 충보를 증오해서 저지른 일 같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 정상을 보면 충보를 증오해서 한 짓일 뿐만이 아니니, 추문해야 할 다른 단서가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의당 다방면으로 생각하여 급박하게 추문, 끝까지 밝혀내야 됩니다.ꡓ하고,
광진은 아뢰기를, ꡒ지금 이 일은 입으로는 차마 말할 수가 없습니다. 지나간 역사를 살펴봐도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일국의 신민으로서 이보다 더 통분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목패의 글에 한충보 의 이름이 있었고 신거관의 집에 던져 넣은 글에도 한충보와 노경종의 이름이 쓰여져 있었습니다. 이들은 같은 집안사람이므로 한 집안을 증오해서 저지른 짓인 것 같기는 합니다. 그러나 입에 담을 수 없을 만큼 흉패스럽고 위에 저촉되는 말을 어떻게 감히 충보의 집안 때문에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는 대간인(大奸人)이 하찮은 사람을 사주하여 조정의 조처를 살피려는 것입니다. 단서가 드러나지 않으므로 사중(司中)서 동궁 근처의 차비인(差備人)을 추문하자고 청하였습니다. 이들을 추문한다면 단서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니, 급박하게 추문하여 다른 계책을 낼 겨를이 없게 만드소서.ꡓ하고, 세언은 아뢰기를, ꡒ지금 이 일을 보면 고금에 없던 흉악스런 것입니다. 충보를 미워해서 해치기 위한 수작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충보를 미워해서 해치기 위한 짓이었다면 당연히 그 사람에게만 돌아가게 할 것이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위에 저촉되는 흉역스런 말을 했겠습니까. 석 줄로 나누어 쓴 글의 내용에 경중이 있었는데 세자에게 중한 말을 돌렸고 또 그 흉상을 동궁에다 기필코 세웠습니다. 이는 흉악한 사람이 반드시 뜻하는 바가 있어서 한 짓입니다. 조강을 끝낸 뒤부터 조강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동궁 근처에 사람이 없는데, 외간 사람으로서 이런 내막을 알고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습니다. 획책한 자는 다른 사람일지라도 그 흉상을 세워 놓은 사람은 반드시 동궁 근처의 사람일 것입니다. 각 색장(色掌)과 차비인을 널리 추국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보통 일이라면 인명을 아껴야 하겠으나 이런 일에는 인명을 아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난번 화살을 쏜 일이 있었는데도 추문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흉악한 마음이 자라나서 이런 짓을 한 것입니다. 각별히 다스려야 마땅합니다.ꡓ 하고, 김미는 아뢰기를, ꡒ지금 이 일은 너무도 극악스러워 차마 입으로 말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듣기만 해도 모골이 송연하여 아뢸 바를 모르겠습니다. 대저 이 일은 충보 의 이름이 쓰여져 있기 때문에 지금 추국하고 있습니다. 언급된 사람을 추문하는 것은 예(例)입니다. 그러나 원망하는 말에 경중의 차제가 있었습니다. 동궁은 외인(外人)의 일에 대해 간여한 것이 없고 내전(內殿)에 대해서도 간여한 일이 없으니, 원망할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지금까지 원망받을 일을 했다면 종적(?跡)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감히 일시적인 분노로 하여 충보 한 사람 때문에 이런 극악스런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예부터 난신과 적자는 드러나서 패몰되지 않은 경우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은밀하게 계획했어도 그 종적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종적을 미루어 보면, 상께서 호오(好惡)에 사를 둔 적이 없으므로 죄를 받은 사람만을 해치기 위해 한 짓도 아닙니다. 전에 작서의 변이 궁중에서 일어났을 때에도 자전(慈殿)께서 분명하고 정대(正大)하게 처리하셨었습니다. 지금 이 일도 방술(方術)에 관한 일입니다. 보통의 예(例)로 추국하는 것은 절대로 안 될 일입니다. 천지의 귀신이 환히 포열(布列)하여 있으니 대악(大惡)의 종적이 끝내는 드러나고야 말 것입니다. 상께서 의심스럽게 여기시는 일에 대해서는 당연히 질문하셔야 됩니다. 이렇게 극악스러운 원망은 진실로 고금에 없었던 것이고 따라서 상의 은애(恩愛)도 이미 끊어진 것이므로, 조정을 통쾌하게 해야 됩니다. 이런 대악(大惡)이 그대로 있게 되면 국사(國事)가 끝내는 어떤 지경에 이르게 될지 모릅니다. 군부(君父)에 관계된 옥사(獄事)가 크게 일어났고 조정의 의논도 이미 결정되었습니다. 일시적인 계책에서가 아니라 종묘사직의 만년 대계를 위해서는 당연히 조처해야 될 일입니다.ꡓ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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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