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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701) : 노한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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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봉은 아뢰기를, ꡒ신도 아침 서연(書筵)에 들어갔을 적에는 못 봤는데, 주강 때에 있었다고 하니 이는 대낮에 한 짓입니다. 따라서 외인으로서는 할 수가 없는 일이요, 궐내(闕內)를 드나들어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의 소행입니다. 아직까지 단서가 없어서 오늘 동궁 근처의 차비인을 추문하자고 계청했습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충보(忠輔) 를 미워해서 한 짓이라면 사살(射殺)할 수도 있고 다른 계책으로 해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는 충보 때문에 한 짓이 아닙니다. 흉측한 말을 동궁에게로 돌린 것을 보면 이는 동궁의 화근이니, 위에서는 끝까지 추문하여 통렬히 다스리소서. 요즈음을 인심이 간악(奸惡)하여 큰길 네거리에 방(榜)을 붙이는가 하면 부문(府門)에 화살을 쏘고, 또 심지어는 궐문(闕門)에 화살을 쏘는가 하면 끝내는 동궁에다 극악한 짓을 했습니다. 이는 고금의 사기(史記)에도 없었던 일로 의당 종묘사직의 대계를 위하여 조처해야 됩니다. 외간(外間)에서도 공론이 있습니다.ꡓ 하고, 춘경은 아뢰기를, ꡒ어제의 일은 더할 수 없이 극악한 일로 이렇게 통분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거기에 충보 의 이름이 쓰여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평소 원망을 살만한 자를 추문(推問)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렇게 증오하는 사람이 있어서 글에다 쓰기에까지 이르렀다면, 그런 마음의 소유자로서 한 사람 해치기는 어렵지 않은 데 무엇 때문에 그런 짓을 했겠습니까. 이 극악한 짓이 충보에게서 나온 것같이 하려고 했다면 바로 그 이름을 쓰는 것은 마땅하지 않는 일입니다. 삼척동자(三尺童子)라 할지라도 죄를 지은 자가 자기 이름을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는 바로 대간인(大奸人)이 이에 의거하여 술책을 부린 것이요, 실제로 충보 한 사람 때문에 한 짓은 아닙니다. 이 극악한 일은 뿌리가 매우 깊습니다. 지난해 대내(大內)에 돌을 던졌을 때에 위에서는 죄 없는 사람이 해를 당할까봐서 버려두고 묻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또 이런 변고가 발생한 것이니, 그 사람은 그대로 둘 수 없습니다. 화란(禍亂)의 뿌리는 곡식을 갉아먹는 해충과 같은 것이어서 극악스런 그 뿌리를 끊어버리지 않는다면, 뒷날의 일이 어떻게 될지는 예측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종묘사직의 대계(大計)를 위하고자 하신다면 당연히 대악의 뿌리를 끊어버려야 됩니다.ꡓ하고, 홍섬은 아뢰기를, ꡒ저들의 흉역스런 정상(情狀)에 대해서는 조정이 이미 다 아뢰었습니다. 충보는 그의 이름이 쓰여 있었기 때문에 부득이 추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충보는 일개 필부(匹夫)입니다. 그를 해치려 한다면 법사(法司)에 정고(呈告)할 수 있고 사살도 할 수도 있고 보면 중상(中傷)할 방법이 어찌 없었겠습니까. 궐내는 한 군데뿐이 아닌데 하필 동궁(東宮)에다 했고, 석 줄로 나누어 쓴 글에 순서와 경중이 있었는데 심한 말로 동궁을 지적했습니다. 조정에서도 의심이 가는 데가 있습니다. 이는 바로 난역(亂逆) 가운데도 한 하늘 아래 같이 살 수 없는 원수입니다. 오늘 조정이 모두 입대(入對)하였으니, 위에서는 그 의향을 보고 헤아리시어 조정을 위하고 종묘사직을 위해서 속히 처결(處決)하소서.ꡓ하고,
준경은 아뢰기를, ꡒ이 일은 매우 중대한데도 조정에서 아직 단서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충보를 추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백방으로 생각해 보아도 충보 때문에 한 짓은 아닌 것 같습니다. 충보 때문에 한 짓이 아니라는 것을 누군들 모르겠습니까. 삼척동자라도 다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그 말이 중한 것은 동궁에게 돌려졌고 그 다음 것이 중궁전(中宮殿)에 대한 것이었으니, 틀림없이 화근이 있는 것입니다. 정해년16763) 에 발생했던 작서의 변을 끝까지 추문하지 않았기 때문에 변고가 다시 발생한 것으로, 이는 익숙한 수단을 지닌 자의 소행입니다. 전에는 기대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으나 근래에 와서는 이 기대가 아주 끊기자 그 울분을 풀 데가 없었으므로 결국 여기에다 푼 것입니다. 어제의 전교(傳敎)에 외인의 소행이라고 하였습니다만, 외인이 갑자기 저지른 일이 아님이 분명함은 물론이고 반드시 상응(相應)한 사람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짓입니다. 은혜로운 교분을 공고히 맺어 심복(心腹)을 삼았을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위에서는 반드시 외인만을 의심하실 것이 아니라 내외를 모두 살피셔야 됩니다. 종묘사직의 대계를 위해서 다시 살펴 생각하소서.ꡓ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근년 이래 화살을 쏘고 방을 붙이는 일이 잇따라 자주 일어나고 있다. 이번 이 일은 익명서(匿名書)에 견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목패에 쓰인 글을 가져다가 보니 흉역스럽고 부도(不道)한 정상이 너무도 경악스러웠다. 부득이 추문하고 있지만 소인(小人)의 흉역이 여기에 이를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오늘 마침 신거관의 집에 던져 넣은 글의 내용을 들어보니 거기에도 한충보와 그의 후처(後妻) 동생의 이름이 쓰여져 있었다고 한다. 전처(前妻)의 집안도 의심스러운 단서가 있기 때문에 추문하고 있다. 기타 다른 일도 단서를 잡아서 조처하겠다. 현재 추문하고 있는 사람을 속히 형신(刑訊)하면 단서가 드러날 것 같다.ꡓ하였다. 근사가 아뢰기를, ꡒ신도 역시 이 사람【 한충보(韓忠輔)임.】을 추문하고 싶었습니다.ꡓ하니, 상이 이르기를, ꡒ이 일이 비록 다른 사람이 한 짓이기는 하지만, 그와 같은 족척 사람의 소행이 틀림없음을 알겠다. 이 사람이 스스로 모를 리가 있겠는가. 이 사람을 추문하면 단서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기타 다른 사람도 추문해야 되겠으나 먼저 이 사람을 속히 추문하라.ꡓ하였다.
광필이 아뢰기를, ꡒ동궁께서는 과연 정사(政事)에 관계한 일이 없습니다. 따라서 소장(少莊)들이 의심하는 것이 사건의 핵심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ꡓ하니, 빈청(賓廳)에 전교하였다. ꡒ충보와 혐의진 사람은 형문(刑問)하도록 이미 계하(啓下)했다. 그러나 신거관의 집에 던져 넣은 글의 글자가 겨우 모양을 이루었다고 하니, 형문하기 전에 그들에게 글씨를 쓰게 하여 살펴보도록 하라.ꡓ/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7책 421면/ 【분류】 *사법-치안(治安)/ [註 16757]폐조(廢朝) : 연산군(燕山君)의 조정임. ☞ / [註 16758]독권관(讀券官) : 과거(科擧)를 보일 적에 두었던 임시 관직으로, 전시(殿試)의 시험관. 시험을 감독하고 글장을 채점하여 어전(御前)에서 우수한 것을 읽었음. 의정(議政) 1인과 종2품 이상의 문관 2명으로 구성하였음. ☞ / [註 16759]가전(駕前) : 임금의 수레 앞임. ☞ / [註 16760]정사(政事) : 인사 행정. ☞ / [註 16761]작서(灼鼠)의 변(變) : 중종(中宗) 22년(1527)에 쥐를 잡아 동궁(東宮)을 저주한 사건. 이해 2월 25일 동궁의 생일날 쥐를 잡아 사지(四肢)와 꼬리를 자르고 입․귀․눈을 불로 지져서 동궁의 북쪽 뜰 은행나무에 걸어두고 저주했었음. 그런데 3월 초하루에도 이런 사건이 대전(大殿) 침실(寢室)의 곡란(曲欄)에서 일어났음. 마침내 경빈(敬嬪) 박씨(朴氏)가 지목을 받아 아들 복성군(福城君)과 함께 폐서인(廢庶人)이 되어 쫓겨났는데, 중종 27년(1532) 이종익(李宗翼)의 상소에 의하여 진범(眞犯)이 김안로(金安老)의 아들 연성위(延城威) 김희(金禧)라는 사실을 밝혀졌음. ☞ / [註 16762]삼전(三殿) : 전하(殿下)․중궁(中宮)․동궁(東宮). ☞ / [註 16763]정해년 : 1527 중종 22년. ☞(www.history.go.kr 2009)
노한문 [記事] : 중종실록 80권/ 중종 30년(1535 을미 / 명 가정(嘉靖) 14년) 7월 15일(갑술) 7번째 기사/ 윤풍형․권기․채낙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윤풍형(尹豊亨)을 사간원 대사간에, 권기(權祺)를 사간에, 채낙(蔡洛)을 헌납에, 이팽수(李彭壽)와 노한문(盧漢文)을 정언에 제수하였다./ 【태백산사고본】 / 【영인본】 17책 597면/ 【분류】 *인사-임면(任免)(www.history.go.kr 2009)
노한문 [記事] : 중종실록 80권/ 중종 30년(1535 을미 / 명 가정(嘉靖) 14년) 10월 15일(계묘) 4번째 기사/ 천변과 관련하여 여러 신하들이 시정 득실에 대해 논하다/ 상이 사정전(思政殿)에 가서 신하들을 맞이하여 시정의 득실을 하문하였다. 영의정 김근사가 아뢰기를, ꡒ요즈음 천변이 보통이 아닙니다. 태백이 주현하고 겨울 천둥이 여러 차례 일어나니, 매우 황공합니다. 지금 조정이 화목하지 못하여 천변이 계속 일어나니, 위에서도 특별히 삼가고 유념하소서. 옛사람들이 ꡐ재변은 모두 백성들의 원망 때문에 일어난다.ꡑ 하였으니, 반드시 백성들에게 실제의 혜택을 베풀어 재변을 그치게 하셔야 합니다. 요즈음 겨울이 아직 이른 때인데도 날씨가 이미 추우니, 여러 곳에서 공사(工事)를 하는 역졸(役卒)들이 바람이 불고 비가 오는 가운데 일하느라 어찌 원망과 탄식이 없겠습니까. 그리고 나라의 법에, 가난해서 결혼할 수 없는 자에게는 관청에서 필요한 물건을 주어 때를 놓치지 말도록 하고 있으니, 관리에게 그러한 사람들을 뽑아 올리게 하여 혼기(婚期)를 놓치지 않도록 하면 원망을 없앨 수 있을 것입니다. 근래 농사가 좀 잘 되자 공채(公債)를 거두어들임이 지극히 가혹합니다. 스스로 농사지은 곡식으로도 식량이 부족하여 떠도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원망이 어찌 적겠습니까. 대체로 천변은 백성의 원망에서 나옵니다. 임금이 하늘에 응답함에 있어서는 실답게 하여야지 형식적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조정 신하들을 맞이하여 정사의 득실을 묻고, 자신을 책망하면서 중외(中外)에 구언하셨으니, 상께서 하신 일이 지극합니다. 그러나 한갓 묻기만 하고 채용하지 않는다면 오늘의 일도 쓸데없는 형식일 뿐입니다. 쓸만한 말이면 즉시 채용하는 것이 바로 참다운 일로써 하늘에 응답하는 것입니다.ꡓ하고, 좌의정 김안로는 아뢰기를, ꡒ재변이 한번만 일어나도 보통 일이 아닌데 한 달에 여러 번 발생하였으니, 하늘이 자상하게 일러주고 경계함이 지극합니다. 재변은 헛되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일로 말미암아 생깁니다. 오늘날 조정의 잘못은 진실로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대체적인 것을 요약하면 조정에 복심(腹心)의 병이 있기 때문에 인심이 화목하지 못하여 서로 의심하고 배반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간계는 이미 드러나서 조정이 다 알고 있습니다만 원망하는 자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조정에서 함께 일하는 자들이 이론을 제기하기도 하고 마음에 흡족하지 않으면 흔단을 야기시키기도 합니다. 오늘날 함께 일하는 사림(士林) 사이에도 서로 의심하는 폐단이 있습니다. 사군자가 조정에 벼슬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지조를 한결같이 지녀야지 이랬다저랬다 해서야 되겠습니까. 이러한 폐단이 이미 굳어졌으므로 마음이 변하지 않는 사람에게 대해서도 얼굴만 돌리면 그가 혹 변할까 의심합니다. 조정이 늘 이 일을 걱정하지만 일이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습니다. 만일 사건이 터지면 여지없이 패하여 재기불능의 상태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마음을 굳게 정하고 아랫사람들도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으면 끝내 큰 해를 끼치지는 못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해가 크게 되면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어떻게 수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서로 화목하여 한마음으로 상을 섬겨야 합니다. 간혹 이의를 제시하는 것은 소견이 다르기 때문이니 일에 무슨 방해가 되겠습니까. 마음을 공평히 지니고 상의하여 의견을 하나로 귀일시켜야 합니다. 간혹 서로 위협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 아닙니다. 요컨대 서로 화목해야 됩니다. 이런 일은 아랫사람이 아뢰었을 뿐만이 아니라 위에서도 이미 환히 알고 계실 것입니다.
오늘 조정 신하가 다 입시하였습니다. 서로 화목하면 어찌 나라의 복(福)일 뿐이겠습니까. 자신에게도 좋습니다. 그러나 늘 평지풍파를 일으킴이 이미 고질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형벌로 다스릴 수 없는 것이요, 오직 위에서 뜻을 굳게 정하는 데 달려 있을 뿐입니다. 그래도 그만두지 아니하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형벌을 사용해서라도 진정시키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랫사람은 모름지기 충후(忠厚)한 기풍을 지녀야 합니다. 대체로 조정에 기강이 서지 않았기 때문에 상하의 구별이 분명하지 못합니다. 상하의 구별은 질서를 바로잡는 것이니 엄하게 하여야 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화목하면 예법(禮法)으로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조정에 죄를 지고서 원망을 품은 자들은 자신을 위한 것 같았지만 사실은 자신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조정이 화목하면 이러한 일은 저절로 사라질 것입니다. 임금은 다만 인심(人心)에 의해 종묘사직의 만세의 대업을 유지해 가는 것입니다. 이른바 인심이란 시골 사람들의 마음으로서 만세의 마음도 모두가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조정 심복(心服)들의 마음이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천변이 일어나는 것은 인심이 화목하지 못한 데서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변경(邊境)에 대하여 아뢰겠습니다. 오늘날 여연(閭延)과 무창(茂昌)을 살펴보면 야인(野人)들이 많이 와서 살고 있습니다. 변장이 임무를 다하자면 스스로 살펴야 할 것인데도 반드시 조정의 명령을 기다린 뒤에야 하고 있으니, 이는 변장이 책임을 다하지 않는 탓입니다. 중국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경계 가까이에 와서 살면서 아무런 환란을 일으키지 않았어도 오히려 물리치려고 하였는데, 더구나 얼굴은 사람이지만 마음은 짐승과 같은 자들을 가까운 지역에 살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지난날 그들을 몰아낼 때 우리 나라가 도리를 잃었기 때문에 저들이 우리를 업신여기고 와서 삽니다. 야인들이 만포(滿浦) 건너편에 와서 ꡐ전에는 중국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았어도 너희 나라 사람들은 두려워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너희 나라 사람도 두렵지 않다. 삼화(三靴)를 신은 자는 잡기 쉽다.ꡑ 하였답니다. 저들이 우리나라를 두렵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이와 같은데 변장들은 염두에 두지 않고 있으니 변방의 환란이 장차 일어날 것입니다. 김근사가 아뢴 혼인의 시기를 놓친 자들 가운데 원망하는 남녀들이 어찌 없겠습니까. 재물은 있으면서 혼인 시기를 놓친 자들도 많을 것입니다. 지금은 국가에 별일이 없어 백성만 잘 다스리면 되는데 수령들이 잘 봉행하지 않고 있으니, 민간에 원망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의옥(疑獄)은 이미 초록(抄錄)하여 올리라고 명하셨으니 상의 마음이 지극하십니다. 대저 재상들이 평소에는 품은 생각을 잘 말하다가 상의 앞에만 가면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킴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모름지기 각기 품은 생각을 진달하게 해서 채용한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ꡓ 하고,
우의정 윤은보(尹殷輔)는 아뢰기를, ꡒ천변이 무엇 때문에 일어났다고 지적할 수는 없습니다. 옛사람이 ꡐ필부(匹夫)의 원망도 음양의 조화를 해치고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ꡑ 하였습니다. 신은 경외(京外)의 조례(?隷)와 나장(羅將) 가운데 도망하여 떠도는 자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각기 본사(本司)에서 인원을 충당하라고 재촉하면 각 고을의 수령들은 역인(役人)을 충당할 수가 없어서 군졸(軍卒)이나 사천(私賤)을 강제로 정하고서 이를 윤조례(輪?隷)라고 부릅니다. 그들이 ꡐ나는 역(役)이다. 나는 사천이다.ꡑ 하면, 수령은 ꡐ난들 어찌 하겠는가. 이 달에는 우선 네가 하라.ꡑ고 답합니다. 다음 달에는 다른 역에 있는 사람으로 바꾸어 주면, 그들도 전처럼 말하게 되고 수령도 전처럼 말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번가(番價)를 내게 되니 어찌 원망이 적겠습니까. 한 고을만 그런 것이 아니라 경외(京外)가 모두 그러합니다. 오부(五部)의 관원도 이 때문에 죄를 받은 자가 있지만 여전히 이러합니다. 또 기선군(騎船軍)은 배를 타고 국경을 지킴이 그들의 임무이지만, 지금은 모두 여러 곳의 집짓고 수리하는 부역에 차정(差定)되어 있습니다. 경기 각 고을에는 차정할 인원이 부족하면 각포(各浦)의 후번(後番)의 당령 수군(當領水軍)을 앞당겨 번서게 합니다. 나라에서는 본포(本浦)에서 양식을 싸가지고 번서는 것이 영선(營繕)하는 곳에서 역사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여겨 역사시킵니다. 그러나 한 달의 번가(番價)가 17필(疋)에 이르니 수군(水軍)이 어떻게 지탱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는 반드시 유념해야 할 일입니다. 기선군(騎船軍)을 부린 예는 전에도 있었지만 오늘날 같이 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흩어져 도망하는 자가 많으니 그들의 억울함이 어찌 적겠습니까. 그리고 억울한 일은 옥사(獄事)에 많습니다. 외방의 죄인에 대하여는 애초부터 같이 추국하기 위한 차사원(差使員)을 택하여 정하지 않으므로, 옥사가 이미 이루어지고 나면 다시 신리(申理)할 수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애매한 일로 큰 죄를 받는 자가 많습니다. 이런 일은 바로잡기 어려울 듯합니다. 그러나 각도(各道)에 유시를 내려, 큰 죄에 대하여는 일을 잘 아는 수령(守令)을 추관(推官)으로 정하면 될 것입니다. 애초에 정하지 않았다가 옥사가 이루어지고 나면, 비록 신리하고자 한들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ꡓ 하고, 우찬성 유보는 아뢰기를, ꡒ겨울 천둥이 한 달 안에 여러 번 일어나니 매우 놀랍습니다. 옛사람이 ꡐ음이 성하고 양이 약하여지면 음양이 서로 부딪쳐 겨울 천둥이 일어난다.ꡑ고 하였습니다. 군자는 양이고 소인은 음이며, 중국은 양이고 이적(夷狄)은 음이며, 남편은 양이고 부인은 음입니다. 오늘날의 사세로 본다면 군자와 소인은 서로 섞여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연(閭延)과 무창(茂昌)의 일은, 바로 야인들이 우리나라를 업신여긴 짓으로 그들이 만포(滿浦) 건너편에 와서 살고 있으니 조정의 근심이 적지 않습니다. 또 국경 넘어 내지(內地)에 와서 사는 야인 도 많습니다. 만일 변란이라도 일어나면 반드시 자기네 종족을 따르지 어찌 우리나라를 따르겠습니까. 내응(內應)할까 두려우니 해사(該司)로 하여금 그 숫자를 파악하여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 해야 됩니다. 첩부(妾婦)가 남편을 이기는 사례도 어찌 한둘뿐이겠습니까. 모든 것을 다 염두에 둔 뒤에야 재변에 대응하는 방법이 제대로 될 것입니다.ꡓ하고, 호조 판서 소세양은 아뢰기를, ꡒ예사롭지 않은 천변이 며칠 안에 여러 번 일어나니 상하가 모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조정의 잘못과 민간의 고통이 참으로 많을 것입니다. 하늘과 사람은 한 이치로 통하므로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해 하늘이 반드시 응답합니다. 비록 높고 높게 위에 있지만 상하가 서로 통합니다. 따라서 재변이 일어나는 것은 사람의 일 때문인 것입니다. 근래 해마다 흉년이 들어 백성들은 극심한 빈궁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상께서 걱정하심이 지극하였지만 실제의 은혜가 없으므로 백성들은 위에서 근심하는 것을 모릅니다. 대체로 민간의 곤궁함은 사치(奢侈) 때문입니다. 위에서 사치를 숭상하면 아랫사람들도 그것을 본받습니다. 혼인과 집과 의복을 서로 다투어 사치스럽게 하려는 것은 모두 윗사람을 본받아서 힘쓰는 것입니다. 혼인이나 집을 지을 때 급하지 아니하고 도움도 되지 않는 일은 줄이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또 신이 호조에 있을 적에 보니, 비용에 제공되는 물건을 내년도 예산에서 미리 앞당겨 받아쓰는 것이 많았습니다. 민간의 폐해가 어찌 적겠습니까. 더욱 줄여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작은 일입니다. 조정 신하들이 두 마음을 가지는 것과 사람들의 마음이 화목하지 못한 것이 큰일입니다. 즉위하신 지 30년 동안 밖으로는 화평한 것 같지만, 안으로는 위망(危亡)한 세상과 다름이 없습니다. 즉위하신 지 얼마 안 되어 신이 출신(出身)하여 시종(侍從)이 되었었는데, 그때에는 화평스러워 사리에 어긋나는 일이 없었습니다. 조광조(趙光祖) 등이 한번 군자와 소인을 나누어 말한 뒤부터는 조정의 의논이 둘로 나누어지고 권간(權奸)들은 이 때문에 계속하여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이미 죄를 받았습니다. 기묘년17617) 사람으로 조정에 있는 자는 없지만 선비가 된 자는 아직 많아 의논이 통일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권간들이야 다시 일어나지 못하겠지만 이들은 걱정스러운 자들입니다. 영천(永川) 사람의 사건은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대저 근래 흉상(凶像)을 달아매거나 쥐를 불에 지지는 등 옛날에 없던 일이 자주 일어나는데, 이것도 대개 그러한 종류의 일입니다. 또 송(宋)나라 희령(熙寧) 17618) 과 원풍(元豊) 17619) 연간에 군자와 소인의 다툼이 끝내 송나라 의 쇠망을 초래하였습니다. 지금도 이러한 것은 상의 뜻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한마음으로 나라를 섬기는 것은 신하의 절개입니다. 신리(申理)시켜 조정하려 해도 안 되는 것이, 죄받은 자들을 다시 기용하면 자기 잘못은 뉘우치지 아니하고 모두가 옛날의 유감만 풀려고 할 뿐이니 상께서는 유념하셔야 합니다.ꡓ하고, 공조 판서 윤임은 아뢰기를, ꡒ신은 무반(武班)으로 분수에 넘치게 승진하였으나 일을 잘 알지 못하므로 재변도 어떤 일 때문에 일어났는지를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 날 동안 연이어 일어나니 두려워하고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전에는 재변을 만나면 소방(疏放)하고 구언(求言)하였습니다. 지금 대신들도 아뢰었으니 거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또 폐조(廢朝)17620) 때 폐단을 일으킨 인물로서 죄받은 자 가운데, 어떤 사람은 석방되고 어떤 사람은 석방되지 못하였습니다. 금부와 형조에서 같은 죄로 처벌하였는데 어떤 사람은 석방하고 어떤 사람은 석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벌을 받은 것은 지은 죄 때문이지만 같은 죄인데도 석방하기도 하고 석방하지 않기도 하는 차이가 있음은 온편치 못한 일이니, 어찌 억울함이 없겠습니까. 초록(抄錄)하여 균일하게 함이 타당할 듯합니다.ꡓ하고,
예조 판서 윤인경은 아뢰기를, ꡒ10월의 우뢰가 며칠 사이에 다시 일어났습니다. 재변은 헛되이 생기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로 말미암아 일어납니다. 따라서 어떤 일에 대한 응답이라고 지적하여 말할 수는 없지만, 하늘의 마음은 자애스러운 것이니 임금은 경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늘에 응답함도 실답게 하여야지 형식적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또 근래 조정이 화평하지 않고 인심이 화목하지 않았는데 권간들을 이미 쫓아낸 뒤에는 화목해야 할 듯한데도 이와 같이 화목하지 않습니다. 대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마음을 지녀야 하고, 대간은 그 사이에서 공론(公論)을 주장하여야 하지만, 요 는 상께서 뜻을 굳게 정하심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금년은 농사가 약간 된 듯하지만 해마다 흉년이 들었었으니 비용을 줄여야 하는데도, 영선(營繕)과 혼인 등이 조종조(祖宗朝)에 비하여 지나친 것 같습니다. 조종조 때에는 풍년이 들어도 내수사(內需司)의 물건을 사용하였는데 지금은 모두 경비(經費)를 사용합니다. 대체로 재변은 사람의 일로 말미암아 일어나니 두려워하고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ꡓ하고, 이조 판서 심언경은 아뢰기를, ꡒ요즈음 인심이 순하지 못하여 작은 일을 의논함에도 문득 의심하여 두 마음을 지니며, 조금만 혐의가 있어도 방(榜)을 붙여 타매합니다. 대체로 사람의 의논은 모두 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각자 자신의 의논만 옳게 생각하고 남을 이기려고 하여 인심이 순하지 못함이 이같은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영천 사람의 사건은 지극히 놀라운 일입니다. 만일 미욱한 사람이 쳤다면 아무 곳이나 쳤을 텐데 어찌 기필코 그 글자만을 쳤겠습니까. 아마도 흉패한 사람이 저지른 일인 것 같습니다. 인심이 이와 같으니 하늘의 마음이 어찌 순조로울 수 있겠습니까. 상께서는 뜻을 굳게 정하소서.ꡓ하고, 우참찬 김인손은 아뢰기를, ꡒ백성을 구휼(救恤)하는 일을 수령들이 잘 봉행하지 못하니, 민간의 폐단을 위에서 어떻게 다 아실 수 있습니까. 무릇 공물(貢物)은 1년에 한 번 씩 거두어들임이 관례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내년의 공물까지 바치도록 하고 있고, 군사(軍士)가 한 사람으로서 두 군데의 역사(役事)를 담당한 자도 있습니다. 옥송(獄訟)의 결정에는 기한이 있는데도 오래도록 지체된 사건들이 있습니다. 변경의 일은, 야인들을 몰아낸 뒤부터 우리 선왕의 강토를 침범하는데, 이는 몰아내는 방법에 잘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조정에 있어서는, 조광조 등이 탁락시킨 것과 권간들을, 이미 통찰하여 쓸어 없애 버렸습니다. 오늘날 일을 의논할 때 조그마한 일로 서로 의심하므로 모두들 ꡐ비록 이 일을 의논은 하지만, 마음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ꡑ 하면서 서로 화목하지 못합니다. 인심이 이와 같으니 어떻게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전에는 시종과 대간의 지위에 있던 사람들도 혹 이렇게 하여 죄를 받았었으니, 더구나 여타 사람이야 어떠하겠습니까. 위에서 모든 것을 밝게 살피소서. 조금이라도 해이하면 안 됩니다.ꡓ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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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