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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의 자랑(3711) : 도시복(5)-도안티지-도인수(1)(附 개포면 정옥례, 25일 장관상 수상...축하합니다/예천아리랑 전국대회, 19일 유천초 대상(전지열 등)과 은상(손다민 등), 용문초 금상(안시호 등), 예천여고(황지선) 은상...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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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복([慶北,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라 .17] 明心寶鑑에 실린 孝子 도시복(醴泉) [記事] : 예천 출신의 도시복(都始復·1817~91)은 조선 후기의 이름난 효자다. 명심보감 효행편에 소개될 만큼 효심이 남달랐다. 숯을 팔아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가난한 형편이었지만, 그의 어진 효심에 하늘과 짐승까지 감동했다고 한다. 명심보감에는 ‘솔개가 날라준 고기’ 이야기를 비롯해 ‘한여름 호랑이를 타고 얻어온 홍시’ ‘한겨울에 얻은 수박’ ‘실개천에서 잡은 잉어’ 등 네 가지 이야기가 상세하게 실려 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3년 시묘살이를 하며 애통해했는데, 호랑이도 그의 효심에 감동해 곁에서 지켰다고 한다. ‘경북,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라’ 17편은 명심보감에 실린 효자 도시복에 대한 이야기다. #1. 하늘이 낳은 효자…솔개가 날라 준 고기 : ‘솔개가 날라준 고기’ 이야기를 형상화한 조형물. 도시복이 어머니의 식사가 늦어질까 걱정하던 차에 솔개가 고기를 가로채 집으로 날라 준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여름이 깊어가는 음력 유월. 길손이 소백산 아랫녘 고개를 넘고 있었다. 다리는 절뚝거리고, 얼굴은 부어터지고 피멍이 들었다. 마침 목이 말라 물이나 얻어 마실 생각에 산골마을로 들어섰다. 어느 초가집 앞에 시원한 물이 솟는 샘이 있었다. 길손은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초가집 마당을 훔쳐보니 한 노인이 싸리나무 가지로 빗자루를 만들고 있었다. 길손은 한숨 돌릴 겸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제가 예천장(醴泉場)에 나갔다가 우스운 얘기를 들었습니다. 예천에 도효자(都孝子)라는 사람이 있다던데, 영감님 아시오?” 노인도 안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사람이기에 이름을 효자라 지어 부른답디까. 허허, 듣기에 민망합니다.” “영감님 생각도 그렇지요? 하늘이 낳은 효자랍니다. 그 효심에 날짐승 길짐승들까지 감동을 한대요.” 노인이 웃음을 거두고 혀를 차면서 물었다. “어쩌다가 얼굴을 상했습니까?” “내가 그 도효자 때문에 얼굴이 이 모양이 됐습니다. 들어보시겠습니까?” 길손이 말한 이는 예천 사람 도시복이다. 1817년 5월15일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 야목마을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몹시 가난했다. 그럼에도 부모를 모시는 정성이 남달라 효자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그래서 도효자라 불린 것이다. 명심보감 속편(明心寶鑑 續篇) 효행편에도 그의 이야기가 나온다. 시복은 젊을 때 숯을 구워 팔았다. 예천에 장이 설 때마다 지게에 숯을 져 날라 양식과 바꿔 왔다. 집에서 장터까지 오가는 길이 백리(百里). 새벽에 나서 서둘러야 해 지기 전에 집에 도착했다. 그날도 어머니에게 드릴 고기를 사서 첩첩산중을 헤치고 오는 중이었다. 어머니가 시장해할 것을 걱정하며 걸음을 재촉하는데, 갑자기 머리 위로 시커먼 그림자가 덮쳤다. ‘어~’ 하는 사이 솔개 한 마리가 지게머리에 매달아 놓은 고기를 낚아채 가는 것이었다. 시복이 쫓아가 봤지만 공중으로 솟구쳐 산을 넘어가버린 솔개를 어떡하겠는가. 울면서 집에 돌아가는 수밖에. 시복이 빈손으로 돌아온 까닭을 설명하자 아내가 천만뜻밖의 말을 했다. “쌀을 씻고 있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 나와 봤어요. 커다란 솔개가 지붕에 앉아 있기에 기절할 뻔했지요. 솔개는 곧 날아가고, 정신을 차리고 봤더니 마당에 고기가 떨어져 있었어요. 그것으로 국을 끓여 어머니 저녁을 먼저 올렸어요.” 시복은 고개를 들고 솔개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깊은 산골의 하늘은 이미 칠흑 같았고, 별들이 몰려나왔다. 이제부터 솔개를 원수로 삼으려던 시복은 갑자기 가슴이 뭉클했다. 시복의 어머니는 병이 잦았다. 시복은 저를 고생스럽게 기르다 어머니가 일찍 병을 얻었다 여기며 애달파했다. 부지런히 일했지만 약값을 대기에 바빠 살림은 늘 궁핍했다. 어머니는 정신도 온전하지 못했다. 그래도 시복은 어머니가 원하는 일이라면 소홀함이 없도록 신경을 썼다.
하루는 시복이 마당에서 보리타작을 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소리쳤다. “얘, 시복아. 너 일은 안 하고 왜 거기 서서 빈둥빈둥 거리냐. 저기 텃밭에 널어놓은 보리는 언제 타작할 거냐!” 어머니가 가리키는 곳은 배추밭이었다. 시복은 어머니 얼굴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배추밭으로 들어갔다. 속이 막 차오르고 있던 배추를 도리깨로 쳐서 남김없이 뭉개 버렸다. “잘한다! 우리 시복이가 일을 참 잘한다!” 배추통을 퍽퍽 칠 때마다 시복은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방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어머니를 보며 시복은 따라 웃었다. #2. 한겨울에 때 아닌 수박 : 도시복이 어머니를 위해 엄동설한에 수박을 구한 이야기를 형상화한 조형물. 이런 일도 있었다. 음력 섣달. 문 밖에 잠시만 서있어도 이가 덜덜 떨리는 한겨울 날. 어머니가 수박을 먹고 싶다고 했다. 아내의 만류에도 시복은 옷을 두껍게 껴입고 집을 나섰다. 일단 나오긴 했지만 정해놓은 데는 없었다. 시간을 거슬러 지난여름 수박밭에 갈 수도 없는 노릇이요, 내년 여름 수박밭을 미리 다녀올 수도 없었다. 시복의 발길은 안동 풍산 들판으로 향했다. 수박이 유명한 곳이었지만, 거기라고 사정이 다를까. 사람들에게 수박밭을 물었더니 미친 사람 보듯이 쳐다봤다. 어느 밭 한가운데서 발을 동동 구르며 서 있는데 머리 위로 까마귀가 날아갔다. 부리에 무언가를 물고 있었다. “까마귀야, 네 입에 문 것이 무엇이냐. 섣달 겨울날 개구리를 잡았느냐, 대추알을 주웠느냐. 무얼 입에 물고 가느냐. 늙은 어미한테 주려느냐. 까마귀야, 까마귀야. 그러면 네가 효자다. 네가 효자다.” 시복은 까마귀를 부러워했다. 무심코 까마귀가 날아간 쪽을 따라갔다. 그렇게 하염없이 걸었더니 다 무너져가는 원두막이 한 채 서 있었다. 시복은 제 눈을 의심했다. 난데없이 원두막 안에 푸른 넝쿨이 이리저리 펼쳐져 있는데, 그 한가운데 수박 한 덩이가 달렸지 않은가. 시복은 몇 번이고 눈을 비볐다. 정말 수박이었다. 시복은 누가 주인인지 모르는 원두막에 대고 큰 절을 올렸다. 수박을 안고 돌아오는 시복을 보고 아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머니는 씨앗을 발라주기 바쁘게 붉게 익은 수박을 입안에 감추었다. 그러나 서너 조각 입에 대고 물리니 시복은 또 가슴이 아팠다. 어머니는 이토록 지극한 보살핌을 받다가 시복이 서른 살 되던 해 세상을 떠났다. #3. 한여름에 호랑이를 타고 얻어 온 홍시 :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 효공원에 조성된 호랑이 조형물. 왼쪽으로 효자각이 보인다. 효공원은 명심보감에 실린 도시복의 효행을 재조명하기 위해 조성한 곳이다. 명심보감에는 시묘살이를 함께 하거나 한여름에 홍시를 구할 수 있도록 도와준 호랑이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엄동설한에 수박이라니. 웃기지 않습니까?” 길손은 콧방귀를 꼈다. 그는 예천장터에서 이런 얘기를 듣고 사람들과 시비가 일었다고 했다. 도효자에게 생긴 일을 믿지 않는 그에게 사람들이 나서서 여러 얘기를 더 보탰나 본데, 들으면 들을수록 그는 더 믿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주먹다짐까지 갔다는 거였다. 노인이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하나같이 이상하게만 들렸던가 봅니다?” “거짓말도 그럴싸하게 꾸며야지.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참 믿기지 않는 얘기지요. 겨울에 수박이라니. 맞습니다. 그렇게만 생각하고 아예 나서질 않았다면 그 수박은 절대 못 구했을 겁니다. 그런데 찾다가 찾다가 보니 정말 거짓말 같은 일이 실제로 생기기도 하나 봅니다. 허허.” 길손은 씩씩거렸다. “생각해 보십시오. 솔개가 제 먹으려고 생선을 채 갔지, 효자를 위한답시고 그랬겠습니까. 솔개가 다리에 힘이 빠져서 놓쳤는지 어쨌는지 우연히 그 집 마당에 떨어진 것이면 말이 되지만.” 노인은 여전히 웃음을 띤 채 말했다. “솔개 마음을 사람이 알 수는 없지요. 하늘이 도왔는지도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신기하고 고마운 일입니다. 덕분에 어머니를 잘 대접해드렸으니 솔개가 고마울 수밖에요.” “영감님도 설마 그 말을 믿는 건 아니지요? 그런 효자가 세상천지 어디 있습니까? 그러면 나머지 사람들은 모조리 불효자가 되게요. 부모에게 불효하기로 작정한 자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갑자기 길손이 꺼이꺼이 울었다. 노인은 영문을 몰라 당황했지만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길손이 울음이 섞인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효도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부모님은 내가 효도할 때를 기다려주지 않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는 죽어 저세상에 가서나 뒤늦게 효도를 하겠지요. 내일이 어머니 제삿날입니다. 난 비쩍 마른 조기나 한 마리 겨우 상에 올리고 곡이나 할 뿐입니다.” 노인은 길손을 지켜보다가 조용히 뒤란으로 사라졌다. 길손은 혼자서 울 만큼 울다가 눈물을 닦았다. 생판 모르는 마을에 들어와 남 앞에서 처량한 꼴을 보인 게 부끄러웠다. 길손이 다시 길을 떠나려 할 참에 노인이 나타났다. 작은 광주리를 내밀었다. 홍시 몇 알이 들어 있었다. “영감님. 음력 유월에 웬 홍시입니까? 이게 정말 홍시가 맞습니까?” “어머니 살아계실 제 밥은 못 넘기고 홍시가 먹고 싶다고 해서 난처한 때가 있었지요. 지금 이때였는데, 다행히 강원도 강릉 땅에서 홍시를 구했지요. 음력 유월에 홍시라니 나도 참 믿기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때 배웠지요. 가을에 딴 감을 토굴에 넣고 잘 간수하면 몇 개는 건질 수 있다는 걸. 가져가서 어머니 제사상에 올리시오.” 길손은 마을을 빠져나와 고갯길로 접어들었다. 그때 마침 나뭇단을 지고 내려오는 아이가 있어 물어봤다. “저기 샘터 가에 서있는 초가집 사는 어른이 누구시냐?” “도시복 어른 댁이지요. 우리 마을에서는 도효자 어른이라고 부릅니다.” 아이는 그대로 마을로 내려가고, 길손은 한참 마을을 내려다보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도효자 어른….’ 그는 그저 고개를 끄덕끄덕하다가 초가집을 향해서 허리를 숙였다. 그런 다음 홍시가 짓무르지 않게 조심히 안고 고개를 넘어갔다. 실제 명심보감에는 도시복이 한여름에 호랑이를 타고 얻어 온 홍시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병든 어머니는 하루가 다르게 기력을 잃어갔다. 음식을 제대로 삼키지 못해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힘겨웠다. 그러던 중에 어머니가 난데없이 홍시를 찾았다. 그때가 음력 6월, 한여름이었다. 가을에야 나는 홍시가 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시복은 감나무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 나섰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홍시를 구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날은 이미 저물어 어둑했다. 속상한 마음에 힘없이 집으로 돌아오는데, 집채만 한 호랑이 한 마리가 길을 가로막았다. 호랑이는 긴 꼬리로 제 등을 툭툭 치며 타라는 시늉을 했다. 해치려는 뜻이 없다는 것을 안 시복은 조심스럽게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시복을 태운 호랑이는 산속으로 쏜살같이 내달렸다. 한참을 달린 호랑이가 멈춘 곳은 강원도 강릉의 어느 외딴집이었다. 깊은 밤중이었지만 시복은 주인을 찾아 하룻밤 쉬어 가기를 청했다. 얼마 후 주인이 제삿밥을 차린 음식상을 내왔다. 그날은 마침 주인의 아버지 기일이었다. 상을 받은 시복은 눈을 의심했다. 음식상 위에 홍시가 탐스럽게 올려져 있었다. 너무 기쁜 마음에 시복은 주인에게 자신이 여기까지 오게 된 사연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어떻게 한여름에 홍시가 있느냐”며 주인에게 되물었다. 주인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전에 홍시를 몹시 즐겼다고 했다. 이를 잊지 못해 제사 때 쓰려고 매년 가을에 홍시를 따 토굴에 저장해 왔다고 했다. 이맘때면 대부분 홍시가 상하지만, 그나마 예닐곱 개는 건질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런데 올해는 이상하게 상하지 않은 홍시가 쉰 개가 넘어 마침 의아해하고 있었다고 했다. 주인은 시복의 효성에 하늘이 감동한 것이라며 홍시를 보자기에 정성스럽게 담아주었다. 홍시를 구한 시복은 그길로 문을 나섰다. 그런데 호랑이가 제 갈 길을 가지 않고 여전히 마당에 엎드려 시복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복은 다시 호랑이 등에 올라타고 쏜살같이 집으로 향했다. 기뻐할 어머니의 얼굴이 내내 떠나지 않았다.
#4. 도시복 스토리가 담긴 효공원 : 아버지를 위해 한겨울에 잉어를 구해준 도시복의 이야기를 형상화한 조형물도 효공원에서 볼 수 있다. 명심보감 조형물에는 도시복과 잉어 이야기가 상세하게 적혀 있다. 시복이 살던 집과 자주 거닐던 곳은 효공원(孝公園)으로 조성되어 지금도 도효자의 이야기를 실감나게 전하고 있다. 예천군 상리면 용두리 효공원은 도시복의 효행을 재조명하고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조성됐다. 목조 초가 형태의 도시복 생가와 샘터, 장독대 등을 복원하고 효자각, 홍살문 등을 세웠다. 특히 명심보감 효행편에 수록된 솔개가 날라준 고기, 호랑이를 타고 얻어 온 홍시, 한겨울에 얻은 수박, 실개천에서 잡은 잉어 등 네 가지 스토리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볼 만하다.(조정일<작가·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초빙연구원> 嶺南日報 2013-09-09 07:5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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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안티지(上里面 도안티지 氏 全國노래자랑 年末決選 人氣賞 受賞 : KBS 1TV '12月 26日 낮 12時 放送') [記事] : 상리면 도촌리로 시집온 베트남 신부 도안티지(24) 씨가 KBS 1TV 전국노래자랑 2010 연말결선에서 관내 최초로 인기상을 받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인기상을 받아 너무 기분이 좋다. 많은 배려를 해준 신랑 덕분에 인기상을 받은 것 같다. 열심히 살겠다.”며 수상소감을 밝히고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 늘 즐겁게 생활하고 있다. 도와주신 모든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전국노래자랑 연말결선 무대에 오른 도안티지 씨는 인기가수 현숙의 ‘월화수목금토일’을 불렀으며, 꾸밈없는 생기발랄한 모습과 구수한 예천사투리가 좋은 점수를 받는 중요한 요인이 됐다는 주변의 평가다. 도안티지 씨는 베트남 국적으로 사과농사를 짓는 남편 박경하 씨를 만나 상리면 도촌리로 시집온 지 4년 6개월이 됐으며, 남편과의 사이에 두 딸을 두고 있다. 한국말은 대심리 다문화지원센터에서 배웠으며, (사)한국연예 예술인협회 황성 사무국장의 노래지도를 받아 연말결선에 참가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날 녹화분은 오는 12월 26일 낮 12시에 방송된다.(醴泉新聞 2010년 12월 22일 (수) 00:24:46)
도안티지(上里面 도안티지, 호미藝術祭 白日場 多文化家庭 便紙쓰기에서 1等) [記事] : 2011년 4월 23일 대보면 국립등대박물관 경·내외에서 열린 '제17회 호미예술제 전국백일장·다문화가정 편지쓰기'에서 경북 예천군 상리면의 도안티지 씨가 1등을 하였다.
도안티지 가족(도안티지 家族, 合唱大會 銀賞 受象 : 醴泉을 代表해 出戰해 慶北地域 豫選에서 受賞) [記事] : 예천농협(조합장 이달호)은 2013년 5월 28일 농협경북지역본부에서 개최된 전국 다문화가족 합창대회 참가를 위한 경북 지역 예선에서 상리면 도촌리에 거주하는 도안티지(한국명, 김희지) 씨가 남편 박경하 씨와, 두 딸(박은정, 박은주)과 함께 출전해 현숙의 ‘월화수목금토일’을 열창하여 은상을 수상하고 부상으로 30만원의 시상금도 받았다고 밝혔다. 농협은 법무부와 합동으로 다문화가족의 화합을 통한 대한민국사회 조기 안정적 정착지원, 전 국민적 관심과 참여를 유도, 더불어 사는 사회분위기 조성. 법사랑기금 조성목적의 실현 및 밝고 명랑한 사회건설에 기여하고자 다문화가족 합창대회를 개최하게 되었다. 예천을 대표하여 출전한 도안티지(남편 박경하) 가족은 6년 전 베트남에서 국제결혼으로 가정을 이루어 두 딸을 얻고 상리에서 과수농사와 특용작물을 재배하며 다문화의 모범적인 가족으로 소문이 나 있으며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고 새로이 다문화 가정을 꾸리는 후배들을 이끌어 주고 보살펴주며 일도 열심히 하고 있는 가족이다.(醴泉뉴스 2013년 05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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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인수(龍宮面 出身인 서울市議會 도인수 議員 全國 最優秀議員賞 受賞) [記事] : 용궁면 출신인 서울시의회 도인수 의원은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가 주최하고 (재)미래한국재단 월간지방자치가 주관하는 제1회 지방의회의정활동사례 평가에서 집행부감독분야에서 최우수상수상자 선정되었다. 지방의원의 활약상을 지역주민들에게 널리 알려 의정활동에 대한 이해와 협력을 증진시킬 목적으로 2010년 처음 제정되었으며 자치법규조례제정분야, 정책연구분야, 예결산분야, 집행부감독분야, 주민참여 및 대표기능분야로 나뉘어 심사하였다. 전국에서 232명의 의원들이 총 378건의 의정사례를 접수하여 뜨거운 관심을 보인 가운데, 교수, 연구위원, 고위공무원 등 9명의 심사위원이 3개월에 걸쳐 엄중한 서류심사와 면접, 현장실사를 통하여 최종후보들을 선발하였으며 2010년 1월 29일 오후 2시 국회의원 대강당에서 시상식에서 도인수 의원은 전국 최우수의원상을 수상하였다.(醴泉인터넷放送 2010-01-30 오후 3:49:52)
도인수(5百50里 길 걸어서(서울~龍宮面 德溪里) 故鄕 가는 까닭은?) [記事] : "서울에서 60년을 살았으니 우리 가족의 고향은 서울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 자녀들과는 달리 내 고향은 경북 예천이다" 예천 출향인으로 서울시 서초구의원 및 서울시 의원을 역임했던 도인수씨가 서울~예천까지 550리길(220km)을 걸어서 완주한 기행문을 예천인터넷뉴스에 보내왔다. 나는 이 5백50리 길을 고향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그 옛날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 시험 보러 오르던 길. 그러다가 꿈을 이뤄 장원급제하여 고향으로 내려가던 새재의 오솔길. 그 밖에 많은 사연들이 얽혀 있을 그 길을 직접 걸으면서 세상 물정과도 접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예전 선비들은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갔다면 나는 서울에서 선출직으로 구의원과 시의원을 역임했으니 대비되는 것이 있을까... 우리 부부는 올해로 결혼 40년을 맞이했다. 자식들도 다 성장하여 우리 품을 떠났다. 그간 서울에서 앞만 보고 생활하다보니 고향을 그리는 정이 더욱 절실해졌다. ‘人生七十古來희’라는 옛말이 있지만 내 나이 이미 古稀가 지났다. 그래도 나는 아직 건강하고 여력도 있음을 확인하고 싶다는 욕심이 나를 사로잡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현재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나름대로 산에 다니며 건강관리를 하고 있지만 내 체력에 대한 한계를 점검하고 더 나이 들기 전에 그것을 실천해보고 싶었다. 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가 준 단돈 500환을 가지고 덜덜거리는 버스를 타고 김천까지 갔던 일이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거기서 기차를 타고 서울 용산역에 도착하여 自力으로 고등학교, 대학, 대학원 등을 다니고,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옛날 어른들은 “젊어서 하는 고생은 돈 주고도 못 산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생활하며 노력한 결과 생활이 안정되었고, 이웃 분들의 생활에도 관심을 갖고 꾸준히 봉사해온 덕에 우리 서초주민들의 성원으로 서초구의회의원을 거쳐 서울시의원도 역임하게 된 것이다. 그 동안 내가 한 일이 과연 무엇이었나. 나의 인생 칠십에서 문득 뒤를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고향으로 떠나는 도보여행을 계획하게된 것도 나의 과거를 뒤돌아보자는 생각이 그 중 하나다. 주로 주말(週末)을 이용해서 그 계획을 실천한다. 단번에 고향 예천까지 걸어서 가는 게 아니라 보행자를 막는 터널 같은 곳을 만나면 험한 산길을 더듬어서 저 옛날의 그 사람들이 걸어서 넘었을 그 길로 터덜터덜 걸어간다. 그러다가 날이 저물고 목표점에 이르면 그곳에서 버스 등 대중교통편을 이용해서 서울로 돌아간다. 다음에는 그곳까지 다시 차를 타고 가서 거기서부터 도보여행을 계속하는 것이다. 나의 영원한 동반자인 아내와 함께 걷는 길이다. 둘이 함께 걸으니 더욱 정이 두터워지는 느낌이다. 서울을 시작으로 성남, 광주, 이천, 장호원, 충주, 수안보, 문경새재 등 여러 시군을 지나면서 그 지방의 특산물과 명승지를 구경하고, 자연이나 생태환경을 관찰했다.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분들의 순수함과 서울에서 못 느꼈던 정을 확인하며 나의 삶을 되돌아보고 있다. 이 여행을 처음 시작한날이 5월 10일. 생업관계로 평일에는 일을 하고 일정이 없는 주일에만 보통 7시간정도 걷고 터미널까지 가서 서울 오는 차편으로 상경했다가 주일이면 다시 지난번 끝난 지점부터 시작하곤 하는데 벌써 여섯 번이 지났다. 7월 24일 현재 문경 제1관문까지 갔다. 비록 몸과 다리 등 육체는 피곤하지만 정신은 날아갈 듯이 가볍다. 이런 저런 대화를 하며 다른 지인들도 우리를 부러워하며 안전한 여행을 기원해준다.
이제 내 고향 예천 용궁까지는 2일이면 도착할 것이다. 지금까지 걸으면서 느끼는 것은 많다. 인생은 무소유의 뜬구름 같은 것, 결국은 빈손으로 흙 한 줌 되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생명이 부지한 순간까지 이웃을 위해 情 나누며 합리적으로 살아가야 될 게 아니겠는가, 그런 느낌이 새삼 절실해진다. 세계적 등산가들이 히말라야 등정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나도 그래보고 싶지만 그것은 체력적으로 불가능하고, 이런 여행이 제격인 것 같다. 전국을 남북으로 가로 지르는 3번 국도를 통해 고향까지 도보여행을 하는 5백여 리 길. 그 길에서 나는 오늘도 정다운 사연을 캐고, 뒤늦은 깨달음을 얻는다. 인간끼리 나누는 정, 그것이 무엇보다 소중함을 느끼며... 2011. 7. 26. 전 서울시의원 도인수(인생칠십고래희)(정차모 記者 醴泉인터넷뉴스 2011-08-01 오전 10: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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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포면 정옥례, 25일 장관상 수상...축하합니다.
정옥례(쌀 農業 所得保全 綜合的인 檢討 必要하다 : 쌀市場 全面開放으로 쌀産業 먹구름, 工産品 輸出擴大 等으로 蓄積된 利得, FTA로 被害보는 農民에게 配分해야) [記事] : 농업인들에게 벤치마킹할 사례를 제공하고, 농산물 직거래 및 전자상거래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농업인 홈페이지 경진대회'에서 예천의 쌀농가가 최우수상을 받는 등 군위·김천 등 경북지역에서 모두 3개 농가가 수상 명단에 올랐다. 농림부는 2014년 7월 25일 오후 전북 군산시 농업기술센터에서 열리는 '제6회 농업인 홈페이지 경진대회 시상식'에서 예천의 정옥례 씨(42)가 '쌀아지매(//www.fulender.com)'란 홈페이지 구축을 통해 최우수상인 농림부장관상과 상금 100만원을 받는 등 전국 18개 농가 농업인들의 홈페이지가 우수 홈페이지로 뽑혀 상을 받는다. 지역에서는 정씨 외에도 군위에서 두메농장을 운영하는 김창준 씨(45)가 쌀 관련 홈페이지로 장려상을, 김천 보람이농장을 경영하는 박병윤 씨(50)가 사과 홈페이지 구축을 통해 신인상 수상자로 결정돼 각각 한국농림수산정보센터장상과 상금 30만원을 수여받게 됐다. 쌀 시장 전면 개방, 양파 가격파동, 이상 가뭄 등으로 농작물 결실을 못 맺어 어느 때보다 농민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는 때에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경북지역의 우수한 농업실적의 한편으로 대다수 농가들은 쌀시장 개방으로 쌀농업의 장래에 대한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새정치민주연합 경북도당도 최근 성명을 내고 "사회적 합의 없는 정부의 쌀시장 개방 선언을 경계한다."며 "관세율을 공개하고 사회적 동의를 얻어야 한다."고 촉구한 것은 농심을 의식한 것이다. 정부가 쌀 시장 전면 개방을 선언한 것은 쌀 산업의 미래를 위해 관세화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이다. 쌀 시장 개방 문제는 세계 무역 질서와 관련된 사안이다. 우리나라는 쌀 시장에 대해서만은 관세화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펴서, 일본·대만·필리핀 등과 함께 일정 물량을 의무 수입하는 것을 조건으로 관세화를 유예 받았다. 우리나라는 이후 매년 의무 수입물량을 늘려 올해에는 국내 소비량의 9%에 달하는 약 41만t을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정부는 다시 한번 더 관세화 유예를 할 경우 의무 수입물량이 배 이상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국내 쌀 소비량은 계속 줄고 있어 관세화 유예가 오히려 쌀 산업 황폐화를 앞당길 것이란 주장을 펴고 있다. 실제로 쌀 관세화를 유예 받은 4개국 가운데 필리핀만 두 차례에 걸쳐 관세화 유예를 선택했고 최근에는 협상을 통해 세 번째로 그 기간을 2017년 6월 말까지 5년을 더 연장했다. 하지만, 그 이전 7년이었던 유예 기간은 5년으로 줄었고 의무 수입물량은 35만t에서 80만5천t으로 2.3배로 늘어났다. 2004년 정부가 내놓은 농업·농촌 종합대책에서는 농림부 예산 대비 직불사업 예산 비중을 23%까지, 농가소득 대비 직불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10%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하지만 2013년 실적을 보면 직불사업 예산 비중은 18%, 농가소득 대비 직불금 비중은 4.3%에 머물고 있다. 최근 20년간 농가소득이 2006년까지는 3천230만원까지 증가했다가 2011년 3천15만원으로 감소하는 등 최근 들어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농가소득 대비 직불금 비중이 미국은 12.2%, 영국 19.5% 등에 이르고 있는 만큼 직불금을 지금보다 크게 올리는 것이 필요하다. FTA로 인한 공산품 수출확대 등을 통해 축적한 부는 FTA로 피해를 보고 있는 농민에게 분배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합치하는 범위에서 최대한 높은 관세율을 설정해 쌀 산업을 보호하고 쌀 개방 및 FTA 문제와 관련해 농가소득보전 대책을 세우는 등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慶北日報 2014-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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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천아리랑 전국대회, 19일 유천초 대상(전지열 등)과 은상(손다민 등), 용문초 금상(안시호 등), 예천여고(황지선) 은상...축하합니다.
한국국악협회 예천지부(아리랑 얼씨구나, 잘 넘어가네~ : 第4回 醴泉아리랑 全國 競唱大會 `盛況') [記事] : 제4회 예천아리랑 전국경창대회가 2014년 7월 19일 예천읍 예천청소년수련관 극장에서 열렸다. 이번 대회는 예천군, 예천문화원이 주최하고 (사)한국국악협회 예천지부(지부장 장경자)가 주관했으며, 경상북도, 경상북도교육청, 예천교육지원청, (사)한국국악협회 경상북도지회, 베뱅이굿서도소리보존회, 국악신문사가 후원해 마련됐다. 이 자리에는 이한성 국회의원, 이현준 군수, 이철우 군의장을 비롯해 정희융 문화원장, 변장우 민주평통자문회의 군협의회장 및 각급 기관단체장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으며, 45개 팀 2백여 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1부 행사로 학생부·신인부 경연이 펼쳐졌다. 2부 행사는 전년도 대상 수상자인 황신혜 씨의 노래가락 창부타령으로 문을 열었으며, 일반부·명창부 경연이 진행됐다. 장경자 한국국악협회 예천지부장은 인사말에서 “예천의 정서와 올곧은 정신, 삶의 애환! 역사성을 골고루 겸비한 예천아리랑은 예천인의 긍지이고 정신”이라며 “예천아리랑이 널리 보급되고 불리워져서 사랑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대회를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이현준 예천군수는 대회사를 통해 “1천3백여 년의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쉬는 예향의 도시 예천에서 제4회 예천아리랑 전국경창대회를 개최하게 되어 무척 기쁘게 생각하며, 온 군민과 함께 여러분을 환영한다.”고 밝히고 “희망의 땅 웅비 예천에서 소중한 추억과 희망을 한 아름 안고 돌아가시길 기원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예천아리랑 어린이합창단 공연과 통명농요 기능보유자인 이상휴 선생의 예천아리랑이 펼쳐져 예천아리랑의 진수를 선보였으며, 재담소리 보존회 배수옥 회장의 초청공연이 참가자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물했다. 열띤 경합 끝에 유천초등 6학년 전지열 학생 외 4명이 초등부 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용문초등 3학년 안시호 학생 외 6명이 금상, 유천초등 6학년 손다민 학생 외 4명, 용문초등 2학년 김진규 학생 외 6명이 각각 은상을 차지했다. 또한 예천여고 황지선(1) 학생이 중·고등부 은상을 차지해 예향 예천의 위상을 드높였다.(醴泉新聞 2014년 07월 22일 (화) 18:2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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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2019.02.12



